데드엔드
- 감독
- 김민주
- 제작년도
- 2022
- 출연
- 유영현, 이가경
1 인간은 영화관에 가는 동물이다. -조르조 아감벤 2 정상적인 관객은 자신이 욕망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며, 자신이 이미 인생에서 싫어하는 것을 영화관으로 보러 가지 않은 사람이다. -세르쥬 다네 3 일요일의 충무로는 처음이었다.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간 것도 처음… 한때 매일같이 충무로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충정로에 있던 회사에서 퇴근해 7011번 버스를 타고 매일경제본사 앞에서 내려 영한빌딩까지 걸어가 여자친구가 일을 마치기를 기다리던 20대 후반의 몇 년, 그리고 은평구에 있던 집에서 3호선을 타고 6번 출구로 나와 매일경제본사 맞은편에 있던 ‘동화삘딍’ 4층 사무실에서 아저씨들과 머리를 맞대고 한숨과 담배연기를 번갈아 내뱉으며 시나리오를 쓰던 30대 후반의 일 년.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그때 충무로는 내게 해질 무렵의 골목, 커피와 생맥주, 닭꼬치, 돼지껍데기, 철판스테이크, 복지리, 통북어, 하루종일 가시지 않는 지독한 담배 냄새, 낡은 당구장, 서지 않는 택시 같은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영화였고(여자친구가 참여한), 그리고 영화였다(내가 연루된). 그리고 오늘, 40대가 되어 처음 가는 충무로 역시 영화가 될 예정이었다. 나를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영화. 영화들. 얼마나 다행인가? 내 영화가 아니라는 게… 4 영화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장 루이 뢰트라와 수잔 리앙드라 기그는 이렇게 요약한다.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진정한 악마의 소굴, 왕관을 다투는 시장, 배움의 장소—말하자면 감정교육, 많은 사람들의 오락, 일부 사람들의 직업, 어떤 사람들의 열정, 여기저기서 채취해 온 1-2시간의 소재, 별 아래서 보내는 온종일, 대낮 같은 밤, 어두운 밤으로 빨려드는 불빛, 친구와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토론, 계속되는 이야기들, 역사의 단편, 움직임-지속의 덩어리, ‘현실’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 설정(현실을 회피하시오, 그러면 현실이 당신을 따라가고, 현실을 따라가시오, 그러면 현실은 당신에게서 도망간다!), 위험할 정도로 서로가 닮아 있는 영화 속의 얼굴과 신체들, 진부하거나 기상천외한 대상들과 풍경들, 마치 우리가 항상 살았던 듯한 느낌을 갖는 상상 속의 저택과 또 다른 화려한 저택들, 일시적인 경험, 은밀하고 격렬한 열정이나 몸짓들, 나를 끌어들이고 빨려 들게 하는 방식, 또는 단숨에 혹은 한순간에 불확실하거나 형성중인 사고나 상상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식, 사회, 사람들이 말한 것, 타인과 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꿋꿋한 시선… 5 나는 이 목록에 두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브루스 윌리스와 니콜라스 케이지. 내게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다. 동시에 내게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기도 하다.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다. 블록버스터와 컬트무비와 허섭쓰레기를 오가는 그들의 긴-긴 필모그래피에서 함께 출연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그나마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 플래닛 테러 >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 데쓰 프루프 >를 ‘동시상영’으로 묶은 <그라인드 하우스> 중간에 삽입된 4편의 가짜 영화 예고편 중에서 롭 좀비가 연출한 <나치의 늑대여인Werewolf Women of the S.S.>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경우가 가장 근접함). 따라서 브루스 윌리스가 실어증으로 은퇴를 선언한 2022년 3월 31일은 영화가 죽은 날(the day the movie died)이다. 적어도 반쯤은 그렇다… 6 충무로를 다시 찾은 건 『마테리알』이 주최한 릴레이 발표대회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4월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모두 여섯 명의 발표자가 발표를 한다고 했다. 토요일 한국 독립 영화 사운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 최지영(사운드 디자이너) 언제나 밝은 방에서 여러개의 창을 틀어놓고 / 윤원화(시각문화 연구자) 정당화하는 관점: 임흥순에 대한 불만 / 윤아랑(비평가) 일요일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 / 함연선(마테리알 편집인) 문화로서 영화: 누가 도대체 진지한 표정으로 영화 이야기를 들을까? 당신도 / 강덕구(작가, 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 운영자) 해적질과 영화 문화 / 한민수 모두 매력적인 주제들 가운데서 특히 내 눈을 잡아끈 것은 함연선의 ‘비천한 영화를 위하여, 그 중에서도 한국 영화’였다. 때마침 JD와 나는 봉준호, 홍상수, 이창동 같은 이름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고, 관객수로 줄을 세우지도 않으면서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참이었다. 우리는 그 모든 영화들이 없었던 것처럼 굴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모르는 영화를 우리가 ‘발굴’한 것처럼 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행사 안내 페이지를 캡쳐해서 JD에게 보냈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수학 학원 선생님의 질문에 "화산고"라고 대답한 학생은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차라리 <스파이더맨>이라고 말했다면 괜찮았을까...?' 수치의 순간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한 사춘기 청소년은, 결국 유사-스노브로 성장하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영화 경험의 근원에는 "비천한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원고를 위해 저는 여기에 가야겠어요, 그리고 어쩌면 임창정에 대해 쓸지도 모르겠네요, 쓰고 싶지 않지만요. 쏘옥, 소리와 함께 아이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답장은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메시지를 작성 중이라는 말풍선조차 뜨지 않았다. 나도 구태여 오픈 스페이스 날짜가 원고 마감일 이후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원고 마감일을 어길 수밖에 없다는 말은… 7 왜 모든 영화 관련 이벤트(GV, 강연, 세미나, 기타 등등)는 내가 가기 힘든 시간만 골라서 열리는지 모르겠다. 씨네필들은 가정이 없나? 아니면 가정이 없는 것처럼 가정하고 살아가거나… 다네는 말한다. “영화 팬은? 헛되이 두 눈을 크게 껌뻑거리는 사람이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며, 프로다운 ‘영화 팬(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는 삶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는 행위들이다.” 뢰트라와 기그는 여기에 축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믿는 표정을 지으면서 최대한 아주 늦게 도착하는 것이 틀림없이 사람들이 영화 팬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나는 영화-어쩌고가 아니며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영화 팬의 핵심을 수행하긴 했는데, 짧게 이야기하면 이렇다. 내가 차를 몰고 갔다는 사실은 앞서 말했다. 오픈 스페이스를 마치고 처갓집으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철거된 동화빌딩과 매일경제본사 사이에 있는 노상공영주차장(주말과 공휴일에는 무료개방)에 주차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빈자리가 없었고 그래서 (저렴한 금액으로) 주차할 곳을 찾아 빙글빙글 돌다보니 시간이 흘렀다. 결국 (구)극동빌딩 (현)남산스퀘어빌딩에 차를 세우고 오픈 스페이스가 열리는 대한극장 뒷골목의 서울지역영화교육허브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분도 더 늦은 시간이었다. 문앞에 선 채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일정에 따르면 첫 번째 발표에는 2시간이 배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축제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믿는 표정 을 지으면서 발표회장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설상가상, 빈자리가 없어 발표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맨 앞자리까지 빽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으며… 8 한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발표가 끝나버렸다. 스탠리 카벨은 누구나 자신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 자신의 인생이 이 시간과 장소라는 지점에 이르게 된 것, 자신의 역사가 펼쳐져서 이 방에, 이 길에, 이 곳에 이르게 된 것을 잠깐이나마 기이하게 여긴 적이 있을 것이라고 썼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질의응답이 시작되었지만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졌다는 생각에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문윤기를 보았고—나와 그는 JD를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현실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실은 나와 ‘트친’인 영화평론가이고, 그밖에도 이 좁은 장소에 내가 타임라인에서 보아 왔던 사람들이 득시글하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기이함the uncanny은 영화에서는 보통의 경험이다, 라고 스탠리 카벨은 계속해서 쓴다. 도주, 구출, 우연의 만남이나 근처에 있는 탓에 인생이 변모해버리는 것—이러한 우연과 만남은 영화의 모든 장르를 지탱해주는 것이다. 물론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연한 만남은 우연한 만남일 뿐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건 또 아닌데, 모든 만남은 크건 작건 우리 안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위대한’ 영화가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백 편의 ‘비천한 영화’는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제법 높은 확률로… 9 카벨은 음악이나 문학과 달리 영화의 경우에는 보통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높은 레벨의 영화를 진정으로 좋아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영화를 모른다면 높은 레벨의 영화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통의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다. 카벨 스스로 이미 ‘보통의 영화’와 ‘높은 레벨의 영화’를 구분 짓고 있는 판에 하물며 ‘비천한 영화’는 또 어떻게 말할 것인가? 질의응답 시간에 이어진 것도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 몰려 있는 비천한 영화들, 혹자는 OCN 영화들이라고도 부르는 그것들이 영화 경험의 근원에 있다고 해도 그것을 굳이 복원시킬—비평적 공론장으로 끌어올릴—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나왔고, 현재의 영화 담론이 특수한 세대적 경험을 보편으로 인준하는 시스템 속에서 작동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영화들을 비평의 언어로 끌어들여 담론장에 균열을 낼 필요가 있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00년생이어서, 02년생이어서, 90년대 후반생이어서 오늘 언급된 < 달마야 놀자 >, < 신라의 달밤 >, < 두사부일체 >, < 조폭 마누라 > 같은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인가?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아마 나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10 항상 12살 짜리가 있는 법이고 그들에게 맞는 책이 역시 있는 법이다. 스탠리 카벨은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걸작이 아닌 다음에야, 예전 그대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어지는 카벨의 목록: 찰스 로튼과 클라크 게이블의 <전함 바운티>, <십자군>, <유니온 퍼시픽>, <새벽의 성찰>, < 캡틴 블러드 >, <알제리>, <찰리 챈>, <폭풍의 언덕>, < 스텔라 달라스 >, <킹스 로우>, <교수와 미녀>, 로날드 콜만의 < 젠다성의 포로 >, < 마음의 행로 >, < 잃어버린 지평선 >, <후아레즈>, <데드 엔드>, <모히칸족의 최후>, <부러진 화살>, <장군, 새벽에 죽다>, <밀드레드 피어스>, <오페라의 유령>, < 스트라이크 업 더 밴드 >, <비에 노래하며>, < 캣 피플 >, <환상의 여인>, <도시의 절규>, <안녕, 내 사랑>, <화이트 히트> 등 그밖에 백 여편의 다른 영화들. 카벨은 계속해서 말한다. 이 영화들과 보낸 시간은 정말 전율의 시간이나 나날이었다. 중대한 순간이었지만 아주 일순간이었다. 기억과 회상에서만 포착 가능한 시간으로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다. 지금 당신이 이 영화들을 처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뿐 아니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당시 내가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오해하면 안 된다. 카벨은 지금 정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지식이나 교양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개인의 영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렇다: < 동감 >, < 번지 점프를 하다 >, < 친구 >, < 엽기적인 그녀 >, < 킬러들의 수다 >, < 공공의 적 >, < 결혼은, 미친짓이다 >, < 후 아 유 >, < 라이터를 켜라 >, < 연애소설 >, < 광복절 특사 >, < 품행제로 >, < 클래식 >, < 동갑내기 과외하기 >, < 선생 김봉두 >, < 와일드 카드 >, < 싱글즈 >, < 오! 브라더스 >, < 황산벌 >,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 어린신부 >, < 효자동 이발사 >, < 늑대의 유혹 >, < 바람의 파이터 >, < 시실리 2km >, < 알포인트 >, < 슈퍼스타 감사용 >, < 귀신이 산다 >, < 말아톤 >, < 잠복근무 >, < 혈의 누 >, < 사랑니 >, < 광식이 동생 광태 >, < 태풍 >, < 작업의 정석 >, < 싸움의 기술 >, < 흡혈형사 나도열 >, < 음란서생 >, < 달콤, 살벌한 연인 >, < 사생결단 >, < 구타유발자들 >, < 천하장사 마돈나 >, < 미녀는 괴로워 >, < 1번가의 기적 >, < 좋지 아니한가 >, < 이장과 군수 >, < 즐거운 인생 >, < 스카우트 > 기타 등등… 이것은 내가 왓챠피디아에 평가한 1499편의 영화 중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를 구작순으로 필터링한 것 중에서 봉, 홍, 박, 이 등의 작품과 여기에 제목을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작품을 빼고 나열해본 것이다. 모든 영화가 내게 전율을 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한두 장면이라도 재미를 느낀 부분이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나 역시 빙크스 볼링처럼 “못 만든 영화라도 일단 빠져들면 무척 행복”한 관객이기 때문이다. 11 다시. 문제는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말하느냐다. 카벨은 모든 시대의 12살에게 맞는 공통의 책들이 있는 반면, 서로 다른 시대의 12살에게는 그때그때의 영화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걸작 리스트는 공유가 가능하지만 어쩌면 평범하거나 비천한 영화들의 리스트는 공유 불가능한 게 아닐까(“지금 당신이 이 영화들을 처음 본다면 재미있게 볼 뿐 아니라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 당시 내가 알았던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에 대한 바르트의 구분처럼, 걸작은 문화적으로 구성된 스투디움의 영역이지만 비천한 영화는 보는 사람의 주관에 달린 푼크툼 같은 게 아닐까? 여기에는 다양한 층위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을 위해서는 또 다른 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는 21세기 첫 20년의 한국 영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만이 (여전히) 남아 있다. 걸작을 나열하지도, 천만 영화 목록을 훑지도 않으면서. 다시 한 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우리는 한국 사람… 12 우리가 하려는 게 비평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둬야겠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내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라 카메라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겠다. 오픈 스페이스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오픈 스페이스 현장을 찍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말이다. 에세이 필름을 만들어야 하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영화 그 자체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니콜라스 케이지가. 최근 케이지는 < 참을 수 없는 무게의 미친 능력 >에서 한때 잘나가던 슈퍼스타였지만 이제는 빚더미에 올라 아무 영화나 막 찍는 ‘닉 케이지’를 연기했다. 그가 자신의 광팬이자 억만장자 마약왕인 페드로 파스칼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가 예기치 못한 소동에 휘말리는 이야기라는데 내가 본 건 트위터에 돌아다니는 짧은, 그러나 영감으로 넘치는 클립이다. 으리으리한 페드로 파스칼의 집. 파스칼이 소파에 앉아 있는 케이지에게 와인을 따라준다. 케이지 고마워. (사이) 말 좀 그만 돌리고 대답해봐. 세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가 대체 뭐야?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파스칼, 결심한듯 내뱉는다. 파스칼 패딩턴 2 . 비명을 지르며 잔을 내려놓는 케이지. 케이지 뭐?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이랑 <패딩턴 2>?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말은,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파스칼 영화 보는 내내 울었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고. 케이지 야, X까! 장면 바뀌면, 화면을 바라보며 코를 훌쩍이는 케이지의 모습. 나는 JD에게 링크를 보내고, 기다린다. 여전히 답이 없다. 말풍선도… *다음 책들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 [영화를 생각하다](장 루이 뢰트라.수잔 리앙드라 기그, 김영모 옮김, 동문선, 2005) [눈에 비치는 세계](스탠리 카벨, 이두희.박진희 옮김, 이모션북스, 2014)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존 포드의 ‘영예의 시기’(1939~1941)에 태어난 영화 중에 < 젊은 날의 링컨 > < 역마차 > < 분노의 포도 >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는 이 연재의 초기에 다뤄졌다. 남은 세 편의 영화 중에서 < 롱 보이지 홈 >과 < 타바코 로드 >를 이제 만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모호크족의 북소리 >(1939)는 별도로 다루지 않을 생각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직 좋은 점을 찾지 못했다.) <롱 보이지 홈>(1940)은 촬영은 훌륭하지만 캐릭터나 이야기에서 포드적인 복합성이 부족한 영화, <타바코 로드>(1941)는 장점을 찾기 힘든 총체적인 실패작이라는 것이 존 포드 연구자들 사이에서의 일반적인 평가다. 물론 극소수의 지지자도 있다. 나로선 두 영화가 걸작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여기엔 포드의 영화 이력의 중요한 계기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먼저 <롱 보이지 홈>을 만나보자. 이 영화에서 먼저 떠올려야 할 이름은 그렉 톨랜드Gregg Toland(1904~1948)이다.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44세의 나이에 영면한 전설의 촬영감독 그렉 톨랜드는 존 포드와는 두 영화(< 분노의 포도 > < 롱 보이지 홈 >)에서 함께 작업했고, <롱 보이지 홈> 다음에 오슨 웰스의 < 시민 케인 >(1941)을 찍었다. 천재였지만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던 25세의 청년 오슨 웰스에게 촬영에 관한 모든 것을 그렉 톨랜드가 개인교습을 통해 가르쳤고, <시민 케인>의 성취가 웰즈의 것인 만큼 톨랜드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웰스는 <시민 케인>의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과 톨랜드의 이름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다. <시민 케인> 촬영장의 오슨 웰스와 그렉 톨랜드 그런데 이미 할리우드의 거목으로 군림하고 있던 존 포드와의 작업은 어땠을까. 이에 대한 자료나 증언이 별로 없어 정확한 사정을 알기는 힘들다. 다만 존 웨인은 < 롱 보이지 홈 >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영화들의 경우) 촬영감독이 최대한의 효과를 위해 구도를 잡는 일은 대개 존 포드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을 때는 반대로 촬영감독 톨랜드가 존 포드를 돕는 쪽이었다. <롱 보이지 홈>은 아마도 가장 아름답게 촬영된 영화일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적어도 화면 구성에선 그렉 톨랜드가 주도적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존 웨인의 말대로 < 롱 보이지 홈 >의 화면은 더없이 아름답다. 그런데 여기엔 서사와 영상의 미묘한 불협화음이 있다. < 분노의 포도 >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이 불협화음이 포드와 톨랜드의 현실의 불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을 근거는 없지만, 당대 최고의 감독과 당대 최고의 촬영감독이 함께 빚어낸 영화가 모종의 불협화음을 낳는다는 것은 얼마간 흥미로운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존 포드와 그렉 톨랜드는 최상의 조합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존 포드가 무성영화 시절부터 전경, 중경, 후경을 함께 담는 심도화면에 몰두해왔고, 무르나우에 감화된 뒤로 종종 표현주의적 조명과 화면 구성에 심취했음을 알고 있다.(< 네 아들 > 편 참조) 딥포커스의 창시자로 알려졌으며,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표현주의적 영상의 대가인 그렉 톨랜드는 포드의 이상적 동반자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표현주의적 영상에 종종 이끌리긴 했지만 포드는 그 세대의 다른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사실주의자였다. 적어도 포드의 유성영화에서 카메라는 초월적이거나 자기 과시적인 시각 기계가 아니었다. 카메라의 시선이 인간의 시선과 다른 차원의 것으로 인지되거나 카메라의 존재가 관객에게 의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라이징 오브 더 문 > 3부의 사각촬영은 드문 예외다.) 하지만 젊고 야심적인 톨랜드는 카메라의 비인칭적 시선과 기계적 역량에 몰두함으로써 종종 카메라의 권능을 과시하며 일상적 지각양식에 충격을 가한다. 심도화면을 찍는 방식에서 두 사람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같은 해 포드가 아서 밀러를 기용해 찍은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의 한 장면(#1)과 톨랜드가 찍은 < 시민 케인 >의 한 장면(#2)을 비교해보자 #1 #2 포드의 심도화면에는 전경의 사물, 중경의 인물, 후경의 또 다른 인물이 극히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이것이 심도화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며, 화면의 다양한 결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놓치기에 십상이다. 반면 딥포커스 기법을 과시하는 톨랜드의 심도화면에는 전경의 인물은 클로즈업으로 후경의 인물은 익스트림 롱숏으로 대비되어 있어, 누구나 이 구도의 작위성을 의식하고 인물뿐만 아니라 카메라의 시각적 수사학 자체를 감지하게 된다. 이 쇼트는 두 인물을 따로 찍어서 합성한 것인데, 톨랜드는 다른 몇 장면에서도 딥포커스 효과를 위해 합성을 시도했다. 앙드레 바쟁은 < 시민 케인 >의 “바로크적 요소의 과도함”을 지적하면서도 그것의 딥포커스가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시각적 공간의 전체를 동일한 선명도로 포착”함으로써 “지각 가능한 연속성을 회복시켰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 찬사는 오히려 존 포드나 장 르누아르에게 어울릴 것이다. 오슨 웰스는 딥포커스를 즐겨 사용한 이유를 묻자 “인간의 눈이 보는 세상은 딥포커스 화면에 보다 가깝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웰스 역시 톨랜드의 딥포커스가 지닌 수사학적인 면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렉 톨랜드는 과장된 딥포커스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심도화면에도 뛰어났으며, 윌리엄 와일러와의 작업(< 폭풍의 언덕 > < 작은 여우들 >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에서 특히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와일러의 < 데드 엔드 >(1937)에서 이미 톨랜드는 < 시민 케인 >의 수사학적 딥포커스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로선 톨랜드의 오래된 야심이 또 다른 천재 야심가 오슨 웰스를 만나 만개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 롱 보이지 홈 >으로 돌아오자. 유진 오닐의 네 편의 희곡을 더들리 니콜스가 각색한 이 영화는 2차대전 시 영국 화물선 선원들의 생활을 담고 있으며, 중심인물이 따로 없는 앙상블 드라마이다. 선상이 무대의 거의 전부이며, 나머지 공간도 항구로 제한되어 있다. 선원들은 배라는 폐쇄공간에의 감금을 선택한 존재, 바다에 자신을 유폐한 자들이다. 그들은 서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육지의 기억으로부터 바다와 배로 도피한 것이다. 우울한 현자와도 같은 선원 당키맨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을 가장 잘 다루는 방법은 기억을 잊는 거야. 남자가 바다로 나설 때는 육지에 관한 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 돼. 육지는 당신을 더 이상 원하지 않거든. 내게도 나쁜 기억이 있지. 그건 전부 육지에서 온 거야. 나는 육지를 버렸고, 육지도 나를 버렸어.” 집으로 가는 머나먼 항해. 이 제목은 반어적이다. 올슨을 제외하면 선원 누구도 집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를 떠난다면 그건 귀가가 아니라 죽음이다. 폭풍우로 부상당해 죽거나(양크), 독일군의 습격으로 죽거나(스미스, 드리스콜). 그러지 않더라도 그들은 소명도 전망도 없이 조금씩 죽어갈 뿐이다. 포드의 서부극을 ‘약속의 땅을 찾아 황야를 가로지르는 운동의 영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웨건 마스터 > 편 참조), 죽음을 향해 바다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서부극의 염세적 번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존 포드가 유진 오닐과 가까운 친구라 해도 이처럼 염세적인 희곡에 끌린 이유는 불확실하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도 없고 운동감을 살릴 여지도 제한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더구나 대사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포드로서는 촬영에 거의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다. 운명론과 폐소공포증의 공기를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그렉 톨랜드라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은 아마도 이 프로젝트의 최상의 동반자였을 것이다. < 롱 보이지 홈 >의 첫 시퀀스는 우리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다. 막이 열리면 밤의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섬 남자들의 노래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고, 섬 여인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나무에 기대 유혹하듯 몸을 비튼다.(#3) 그리고 기항하지 않은 채 연안에 정박 중인 배의 거대한 실루엣이 위협적으로 등장한다.(#4) 갑판의 선원들은 노랫소리를 향해 불안과 망설임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서 있다.(#5, #6) 지금이 전시임을 알려주는 라디오방송 외엔 대사 없이 5분간 지속되며, 귀기와 외설과 불안과 망집이 교차하는 이 시퀀스는 포드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다. #3 #4 #5 #6 선원들은 섬에 닿지도 바다로 가지도 못한 채 그사이에 멈춰 있다. 한쪽에는 초대인지 위협인지 불분명한 북소리와 노랫소리, 누군가를 유혹하려는지 아니면 무엇엔가 이미 취해 있는지 알 수 없는 여인들의 에로틱한 몸놀림이 있다. 반대쪽에는 라디오방송이 암시하는 전쟁 그리고 바다가 내재한 상시적인 재난의 위협이 있다. 말하자면 지금 선원들은 신화적 유혹과 역사적 사건 사이에 놓여 있다. 물론 어느 쪽이나 위험하다. 선원들은 그 경계에서 초조한 얼굴로 서성이고 있다. 경계란 실은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거나 정박할 수 없는 곳이며 그들은 이제 곧 하나씩 사라질 것이다. < 롱 보이지 홈 >이 도피를 위해 바다를 택했으나 에로스의 유혹도 역사의 위협도 피하지 못한 사내들의 이야기라면, 이보다 더 멋진 오프닝 시퀀스를 상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성취의 반 이상은 그렉 톨랜드의 것으로 돌려져야 할 것이다. 전경의 피사체를 극대화한 특유의 딥포커스, 실루엣 효과를 과시하는 빛과 어둠의 능란한 대조, 현란한 앵글 사용은 < 시민 케인 >에서의 만개를 예고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대로 이 영화에서 톨랜드의 촬영과 포드의 서사에는 미묘한 불협화음이 있다고 나는 느낀다. 불협화음의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이 오프닝 시퀀스는 과도하게 멋지다. 이후에 이어질 본편보다 5분 동안의 오프닝이 더 크고 화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건 본편이 빈약하다기보다 오프닝과 본편이 이질적이라는 느낌에 가깝다. 오프닝에서 예기된 모호하고도 매혹적인 대립항들의 긴장이 본편에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오프닝에는 신화적이고 몽환적인 기운이 가득하지만, 본편은 대부분 사실적인 사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톨랜드의 시각적 수사학이 포드의 배우들의 연기 방식에 맞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 시민 케인 >은 연출과 촬영뿐만 아니라 50년의 세월을 연기한 배우 오슨 웰스의 연기력으로도 칭송받았다. 하지만 웰스의 연기는, 케인이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시적이고 연극적인 제스처로 가득하다. 톨랜드의 시각적으로 과장된 프레임이 웰스의 자기 과시적 몸짓을 고양시킨다. 하지만 포드의 배우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포드는 할리우드 고전기 감독 중에서도 양식적 연기, 연극적 연기를 가장 멀리한 사람이며, 배우가 지닌 고유의 존재감을 가장 존중한 사람이다. 또한 그의 영웅들은 앞서 여러 영화에서 보았듯이, 과시하기는커녕 망설이듯 프레임에 진입한다. 앞서 예로 든 한 장면(#2)에서 웰스의 일그러진 얼굴은 딥포커스 화면의 전경을 가득 채울 때 그는 무언으로 자신의 분노와 인내를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 롱 보이지 홈 >에서 존 웨인의 얼굴은 어떤가?(#7) #7 이 장면 외에도 여러 쇼트에서 웨인은 프레임의 전경을 채우지만, 그의 얼굴은 텅 비어있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가 연기한 올슨은 이 앙상블 드라마에서도 가장 존재감이 약한 인물이다. < 롱 보이지 홈 >에는 시각적으로는 강렬하지만 공허한 쇼트들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다음은 다른 사례다. #8 #9 #10 인물(스미스)이 프레임의 수직선을 질주하다 소실점 밖으로 사라진다. 이런 부류의 심도화면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톨랜드는 달리는 인물이 점이 될 때까지 찍으면서 화면의 깊이를 과장한다. 문제는 바로 다음 쇼트에서 인물이 쉽게 붙잡힌다는 것이다. 공간의 아득한 깊이와 소실의 운동이 다음 쇼트에서 간단히 부정될 때, 이런 시각적 수사학이 장식적으로 보이지 않기란 힘들다. 몇 가지 결함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 롱 보이지 홈 >을 좋아한다. 사적인 10베스트에 넣기는 망설여지지만 이 영화의 소란과 활력과 어둠을 사랑한다. 하지만 포드의 유성영화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시각적 수사학의 과잉이 마음에 걸렸다. 존 웨인의 진술이 맞다면 그 과잉은 < 시민 케인 >과 < 작은 여우들 >을 비슷한 시기에 찍으면서 정점에 이른 그렉 톨랜드의 의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물론 톨랜드 역시 이 시기를 지나면서 수사학적 과장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그는 누가 뭐래도 영화사에서 가장 뛰어난 촬영감독이었으며, 나는 그가 촬영한 영화 중에서 윌리엄 와일러의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1947)를 가장 좋아한다.) 존 포드는 표현주의적 구도와 조명에 심취했지만, 그 한계도 이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을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 포드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더 고도의 균형을 향해 더 나아가고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