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도미노
- 감독
- 니콜라이 풀시
- 제작년도
- 2007
2. ‘늑대소년’ 에피소드 2011.9.1 ~ 2011.12.20 프리 프로덕션 2011.12.21 ~ 2012.4.15 프로덕션. 총 67회차 후반 작업 후 2012.10.31.(개봉) 프리 프로덕션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히 말하는 대박이 났던 영화.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첫 시작은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었다. 물론 당시 감독님은 < 남매의 집 > < 짐승의 끝 >으로 한창 주목받는 신예였지만 상업영화 스태프들의 눈에는 여전히 신인 감독이라는 색안경이 있었고 주연이었던 송중기 도 지금은 아시아의 프린스지만 당시는 라이징 스타 정도. 박보영 또한 과거 히트를 친 경험이 있는 배우였지만 몇 년 쉰 후의 복귀작이라 주변에서 불안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더군다나 다른 팀의 영화 만드는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 중 “뭐 대충은 알겠고, 그럼 너네 영화 내용은 뭐냐? ” 라고 물었을 때 “첫 사랑 이야기고 꽃미남 소년이 늑대로 변신해. 그리고 늙지 않고 나중에 할머니가 된 소녀와 다시 만나는 이야기야” 라고 했을 때 10명 중 9명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늑대로 변신한다고? 누가, 사람이? ...... 그게 되겠냐? 한국에서 판타지는 안돼!” 그들의 예상은 시원하게 틀렸지만 리얼리티의 맹신자! 한국 관객들의 특성을 우리도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한가득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프리 프로덕션을 하면서 가장 공을 들였던 것들은 역시나 늑대. 송중기 =철수 역이었다.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질까? 였다. 그 첫째가 우선 비주얼 문제. 소년이었을 때 모습과 늑대가 되었을 때 모습. 소년이었을 때야 뭐 중기가 워낙 꽃미남이라 걱정 안 했지만 늑대로 변신한 모습은 중기 본인과 모든 스태프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둘째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늑대소년이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길들여져 가는 과정에 몸짓, 감정의 표현들이었다. 왜냐하면 분명 이 영화는 사랑을 속삭이는 멜로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했다. 20110906 철수 관련 회의록 중 일부 1. 눈 1안 : 사람 눈 → 늑대 눈 2안 : 늑대 눈 → 늑대 눈 (밝기와 동공모양) 2. 이빨 평소 : 사람이빨 같은데 송곳니가 도드라져있다. / 변했을 때 : 더 부각이 된다.(길어진다) - 4단계 정도 3. 손톱, 발톱 - 자르는 순간:1안. #18씬. (깨져있거나 울퉁불퉁인데 ---- 다듬어진다) / 2안. #28씬 - 자를 필요가 없다. ............................................................... - 평소 : 노말한데 변했을 때 : 더 부각이 된다.(길어진다) 4. 구부정 #12 처음등장은 네 발 짐승 1단계 1안. 처음부터 인간과 만나면서 두 발로 다닌다. 2안. #27부터 두 발이 된다. 2단계 #28씬 --어느새 사람처럼 허리를 거의 핀 철수. 3단계 - #55 이후는 사람에 가까운데 의기소침해서 구부정한 것. 그 이후는 감정에 따라서 구부정의 모습이나 형태가 변한다. - #40에서 인간적인 것보다는 동물적으로 구부정하게 돌아간 철수 단, 순이와 함께할 때는 인간에 더 가깝다. ............................................................... * 개처럼 누워있는 것은 영화 전체적으로 계속적인 철수의 습관이다. 감정에 따라서 그 표현 수위만 조절 (귀엽게 엎드려있기도 하고 화가 날 땐 으르렁 거리면서 엎드려있다) ............................................................... 프리 프로덕션 단계 때는 이런 아이디어 회의를 수도 없이 한다. 보니까 초창기, 가장 기초적 회의라 좀 러프하고 정리가 덜 된 상태지만 이러한 아이디어 회의를 기준으로 야생의 철수가 사람이 되는 모습, 행동의 변화를 시나리오 흐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눠서 그 단계에 맞는 의상과 분장, 배우의 움직임, 자세를 정교하게 만들었다. 또한 동물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익히기 위해 배우 이준혁 선배(움직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두 달가량 중기가 트레이닝을 받았다. 러프 콘티가 나와 있는 상태였고 (기본적인 동선) 이것을 기준으로 씬 별로 준혁 선배가 동물의 기본적인 습관, 움직임을 보여주고 아이디어를 주면 중기는 그 움직임을 베이스로 본인 나름의 재해석한 연기를 했고 우리 연출부는 매번 연습장면을 찍고 감독님과 배우에게 전달했었다. 그리고 각자 그 영상을 보면서 촬영 전에 연출과 액팅을 시뮬레이션했고 조금씩 약점을 개선해 나갔다. 또한 관심사였던 철수가 괴물로 변신했을 때의 모습은 감독님이 직접 디자인을 해서 만들었다. 조성희 감독님의 주특기가 시각 디자인 전공에 CG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워낙 비주얼에 관해서는 본인 생각이 확고한 사람이라 본인이 그린 괴물을 스태프들에게 보여줬을 때 모두들 굉장히 만족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상작업에서 단순한 스케치라도 시각화를 해야 이야기를 나누기도 편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확장시키기도 좋은데 괴물의 모습이 탄생하면서 의상, 분장, 특분, CG, 특효, 무술 등의 여러 파트에 준비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감독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은 영화작업에 있어서 매우 큰 장점이다. 분명 스태프들로부터 더 큰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1 2012년 2월 9일. 29회차 촬영 스케줄표 (스태프들끼리는 촬영 달력이라고 부르는데 촬영 내용을 간단하게 표시한 요약집 같은 거다) #41D. 지태( 유연석 )가 순이( 박보영 )를 괴롭히고 때리는 것을 지켜보던 철수가 화를 참지 못하고 영화상 처음 괴물로 변신하던 날이었다. 밤 촬영이었고 지태와 그 친구들이 철수와 복잡한 액션을 찍는 첫날이었고 괴물로 변한 철수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다가 관객들에게 처음 완전체를 보여주는 날이라 우리 영화에 흥망이 달린 촬영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낮부터 촬영장에는 스태프들,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액션 동선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안전장치, 와이어, 와이어 크레인, 액션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사전에 약속된 소품, 특수효과들을 준비하느라 에너지가 넘쳐났다. 나는 감독님들과 찍는 순서, 디테일한 세부 사항을 약속하고서 다시 그 결과를 스태프들과 공유했다. 겨울 촬영이라 해는 금방 넘어갔고 다들 저녁을 먹은 뒤 본격적인 밤 촬영을 준비했다. 촬영장은 전주 양묘장이라고 전주시에서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던 공터였는데 그곳에 순이 집의 외관 껍데기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 오픈 세트장에서 며칠 촬영하며 안 사실이었지만 쓰레기 매립장이어서 그랬는지 밤이 되면 땅속에서 어떤 가스와 습기들이 올라와서 지표면을 뿌옇게 채웠었는데 이 습기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추위를 선물했었다. 이날도 고작(?) 영하 10도였지만 실제 우리가 느낀 체감 온도는 그 차가운 습기 때문에 더욱 덜덜덜 + 덜덜 이었다. 저 멀리 크레인이 올라가고 영화용 달이 뜨면서 현장 세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어서 2시간 정도의 특수 분장을 마친 중기가... 아니 늑대소년이 현장에 왔다. 그가 왔을 때 스태프들의 표정은 아직 생생하다. 풀 세트를 장착한 늑대소년을 사진으로만 본 사람도 있고 처음 본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맞나...? 맞을 거야... 맞나? 맞을 거야... 아닌가...? 맞을 거야.” 상상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 그것을 다시 영화적으로 만져서 극장에서 보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본인들도 경험상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라는 같은 글을 수십 번 읽으면 각자가 상상한 늑대소년의 모습은 서로서로가 다르고 내심 자신의 판타지를 닮았기를 바란다. 감독이 결정한 모습이 있음에도 말이다. 참 재밌는 현상인데 스태프는 작업자이자 동시에 이 영화의 첫 관객이기도 하다. 영화 스태프를 하며 자신의 상상과 현실을 이어보려고 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참 진귀한 풍경이다. 꿈속에서 보던 백마 탄 왕자를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 농담이 아니고 딱 그거다. 그리고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여담인데 마찬가지 이유로 스태프들은 영화 작업을 하는 몇 개월을 시나리오를 통한 반복 학습을 하며 각자만의 상상 속에서 살게 되는데 이 효과가 얼마나 강력하고도 강력한지 나는 알고 있다. 한 예로 이전 멜로영화를 만들다 보면 현장에서 탄생하는 커플들이 유독 많았고 액션 하드코어를 찍다 보면 현장 분위기가 우울하고 드셌다. 공포 영화를 찍다 보면 꼭 세트장에서 귀신 봤다는 스태프들이 등장했고 한때 섹시 코미디 영화를 작업했던 나는.................. 흠. 어쨌든 그 날은 현장 스태프가 100명이 훌쩍 넘었고 모두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대규모 전투를 치르듯이 찍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관객들이 제발 괴물이 된 늑대소년을 처음 보고서 “에이 이게 뭐야! 말이 돼?” 라는 반응만 안 하길 빌며 촬영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 새도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또 난이도가 있던 촬영이라 그랬는지 예상치 못한 사고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괴물이 된 늑대소년이라 컬러렌즈를 꼈고 송곳니가 달린 가짜 치아를 끼고 있었는데 찍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액션 중 송곳니가 부러졌고 그 조각이 중기 목에 걸리는 사고도 났었고 눈에 낀 칼라렌즈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한 컷 한 컷 찍어가며 철수가 나쁜 놈들을 이리 던지고 저리 물리치던 #41D는 3일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지금도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괴물이 된 철수가 차가운 입김을 내뱉으며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다가 전주 밤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포효하던, 그 새벽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중기가 용기 있게 잘해낸 씬 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2 2012년 1월 3일. 9회차 촬영 스케줄표 #38B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철수와 순이. 둘 만의 데이트. 순이가 철수를 위해 자신이 만든 노래를 기타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보영이는 현장에 마스코트. 분위기 메이커였다. 싹싹했고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잘 어울렸고 의외로 터프했다. 이날은 보영이가 프리 내내 연습하고 연습했던 기타연주와 노래를 뽐낼 시간이었다. 순이가 된 보영이는 거실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고 철수는 마룻바닥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노래를 하는 순이를 지긋이 바라본다. 둘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중요한 씬이었고 아름다운 감정씬이었다. 두 대의 카메라가 순이를 향해 있었고 멜로의 뽀샤시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조명 감독 형은 앉아있는 순이의 뒤통수가 정말 타들어 갈 정도로 강력한 HMI 조명들을 몇 개나 설치했다. 연주를 시작하는 순이. 그 날의 첫 샷. 첫 테이크를 찍을 때의 그 순간.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A캠이 트래킹을 하며 순이의 메인 컷을 찍고 있었고 B캠은 약간 옆쪽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순이의 손과 얼굴 위주로 FOLLOW 하며 찍었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거실 바닥에 앉은 체 그녀의 단독 콘서트를 숨죽이며 보고 있었다. 음악 감독님 작곡. 감독님 작사에 ‘나의 왕자님’ 이란 노래가 시작되었고 이 넓은 전주 세트장에 아름다운 기타 연주와 순이의 수줍은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나는 뒤쪽으로 살짝 빠져서 이 촬영장 전체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뭔가 뭉클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스태프들 얼굴을 보니까 구경하는 남자 스태프들은 이미 눈이 달나라, 별나라로 향해 있었고 여자 스태프들은 ‘흥, 칫, 뿡’. 괜한 팔짱을 끼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났던 것은 노래가 끝나고 몇 초의 적막이 흐른 뒤 감독님의 컷 소리가 났는데도 보통 때 같았으면 컷 소리와 함께 다음 컷 준비로 소리 지르며 바로바로 소란스럽게 움직였을 사람들이 쥐죽은 듯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드 썬! 과 동시에 별나라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최면이 풀리면서 지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가 보다. 그 후로도 몇 초가 지나서야 조심스레 다음 컷을 준비하기 시작한 스태프들. “이보게나, 정신들 차리게.” “아... 네. 네. 배시시” 미소 짓는 그들의 얼굴은 뭔가 밝고 따뜻하며 다정다감한, 원래 항상 착했던 사람들처럼 변신해 있었다. 조감독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런 순간들은 참으로 신비하고도 놀랍다. 다음 컷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평소보다 더 신중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이쿠야. 안 하던 양보도 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애기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보영이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고. 행복해진 것이다. 이 뜻은 그 장면이 본인들이 상상해왔던 것만큼 잘 찍혔다는 이야기고 관객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씬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을 ‘영화 현장의 마법’이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이 만족감에 취해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 스태프들은 다시 최선을 다해 영화의 장면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이렇게 촬영을 하는 날은 안 봐도 뻔하다. 그 날 촬영 회차에 점수를 매기라면 분명 10점 만점에 100점이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3 2012년 2월 18일. 35회차 촬영 스케줄표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연이다. 조감독들의 가장 큰 숙제이자 적. 촬영장에 생기는 대다수의 변수들은 정말 정 안되면 스태프들이 으싸으싸 하던지 그것도 안 되면 결국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답이 없다. 촬영 스케줄이라는 것이 100명의 사람들, 그리고 각각의 팀들이 세팅하고 작업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시간, 수십 명의 배우들에 개인 스케줄들, 촬영 장소별 섭외 여건, 세트의 완공 시기, 비싼 소품과 장비의 대여 기간 등등등등.... 하물며 야식 먹는 시간까지. 거짓말 안 하고 수십, 수백 가지의 요소와 가능성을 생각해서 짠 거대한 테트리스 같은 건데 인간의 일들은 설득이란 게 있고 섭외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자연은 말이 없다. 그리고 이 변수 때문에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하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도미노처럼 발생하고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초과되기 일쑤다. 한 예로 여름 장마 기간, 태풍에 크게 잘못 걸린 팀은 보름 가까이 쉬는 팀도 봤었다. 제작자, 피디 형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도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날씨가 오락가락하면 그 날을 애초에 쉬는 날로 하느냐, 아니면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지켜보며 대기를 타느냐의 판단도 늘 촬영 때마다 있는 가슴 졸이는 일이다. 보통 촬영장에 기본적으로 있는 스태프의 수가 70명가량이고 움직이는 차량이 십여 대가 훌쩍 넘는다. 서울에서 대기를 타고 있는 수십 명의 배우들은 계속해서 전화를 건다. “우리 촬영장 가요, 말아요? 찍는 겁니까, 안 찍는 겁니까? 언제 결정이 나나요?” 글을 쓰면서도 스트레스가 확 밀려온다. 어쨌든 우리는 겨울 촬영이었고 우리의 변수는 비. 눈. 한파였다. 그래서 애초에 메인 촬영 장소를 강원도나 북쪽이 아닌 남쪽 지방에서 찾았고 전주를 중심으로 촬영 장소를 선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상청을 통해 전라도 지역에 도시별 5년간 적설량, 강우량을 뽑아서 촬영 스케줄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2008년부터 쭉 데이터를 뽑아보니 우리가 찍는 2012년. 짝수년이 더 추워서 비보다 눈 위주로 많이 왔고(다행히) 그 짝수년들을 보니까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눈이 많이 내렸고 2월부터는 간간히 눈이 오더라. 라는 나름의 통계를 뽑을 수 있었다. 물론 100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반복적인 데이터였다. 그래도 갑자기 내리는 비와 눈은 하늘의 뜻이니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고. 어쨌든 이 자료를 디테일하게 반영해서 전주에 내려간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는 야외 촬영 없이 전주 세트장 안에서 내부 세트만 촬영을 하고 1월 이후에 야외로 나간다, 라는 큰 그림을 그렸고 만약 야외 촬영 중 눈이나 비의 변수가 생길 경우 당장 가까운 거리에 점프해서 촬영할 수 있는 예비 촬영 장소와 찍을 것들도 2안으로 준비했었다. 그런데 우리 영화에 또 다른 숙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위 스케줄 표에 나와 있는 눈 배경 장면이었다. 그것도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눈이 와 있는 추억의 별장을 노인이 된 순이가 찾아가는 장면과 영화의 에필로그. 혼자 남은 철수가 여전히 순이를 추억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 그래서 이 장면들은 고창 청보리밭에서 찍기로 했었는데 그 이유는 콘셉트에도 맞는 목가적 풍경을 가지고 있었고 전라북도 지역에서 눈이 자주 오는 곳이기도 했고 메인 거점이었던 전주에서 차량으로 한 시간 반 거리라 전주에서 변수가 생길 시에 언제든 점프를 할 수 있는 장소였었다. 촬영 스케줄 상 이 씬들은 어느 날짜라고 픽스를 짓지 않았고 전주 야외 촬영 중 고창에 충분한 눈이 내리면 언제든 점프한다는 각오로 준비했다. 그러던 중 첫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2012년 1월 31일. 전주 양묘장 오픈 세트장에서 야외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번째 날, 일기예보와 다르게 낮인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마당에서 감자를 우걱우걱 집어 먹는 철수의 머리 위로 함박눈이 내렸다. 이곳의 촬영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고 긴급회의를 열어 고창 쪽 상황을 알아보니까 그쪽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 시간이 오후 1시 무렵이었고 고창 쪽에 지금 내린 눈이 쌓인다면 내일 점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다음 날 까지 눈이 유지될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결국 그 날은 모두가 만세를 외치는 휴차(쉬는 회차)가 되었다. 두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전주에는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전라북도 전 지역에 걸쳐서 내리는 비였다. 그리고 고창지역은 늦은 밤부터 비가 눈이 돼서 적설량이 5cm가 넘는다는 애매하고도 애매한 예보였다. 다시 긴급회의가 열렸고 제작부장과 내가 고창 쪽에 넘어가서 새벽 2시까지 상황을 지켜본 후 다음 날 고창에서 촬영을 할지 말지에 대해 상황보고를 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계획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다수였지만 내 입장에서는 2월에서 3월로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눈 내린 들판 장면을 못 찍지나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걱정에 밀어붙이기로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스태프들 또한 전주 숙소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새벽까지 대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밤 12시부터 고창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폭설이었다. 쌓이지 않는 폭설. 싸리 눈이었다. 제작부장과 나는 쓸쓸히 전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2월이 가고 있었다. 3월이 되면 우리는 다른 촬영 관계상 전라도를 떠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제는 오히려 눈이 내리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중 날짜가 서서히 박혔다. 2012년 2월 18일. 이미 일주일 전부터 전북 지역 전역에 걸쳐 폭설이 예보돼 있었고 그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일기 예보의 확률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하루 전날 연출부 세컨 동생과 제작실장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창 청보리밭으로 급파됐다. 이날의 일기예보는 늦은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폭설이 예보되어 있었고 그 예보가 몇 일째 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숙소에서 콩닥 콩닥 마음 졸이며 삼십 분에 한 번꼴로 체크 전화를 걸어서 욕을 먹던 중, 열 시를 넘을 무렵 희망찬 메시지가 날아왔다. “조감독님, 눈 옵니다. 폭설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현장 사진이 날라 왔다. 대략 3cm 정도의 눈이 내린 상태였고 내일 오전까지 내리고 기온도 영하라고 하니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빠르게 키 스태프들과 의논을 했고 다음 날 촬영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낮 촬영이고 이동 거리가 한 시간 반이라 스태프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촬영장을 향했고 촬영장을 향하는 동안 오히려 폭설을 해치며 가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넓고 넓은 평야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때 저 멀리서 선발대로 와있던 연출부 동생이랑 제작실장이 새벽어둠을 뚫고 뚜벅뚜벅 눈을 맞으며 걸어오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장 넓은 샷을 우선 찍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넓은 벌판 위에서 철수가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눈 내린 배경에 촬영은 순조롭게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찍었던 엔딩 장면을 우리는 추후 3월 14일. 대관령에 가서 재촬영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뭐 그런 것이 촬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영화 마지막에 눈사람 굴리는 철수의 장면은 대관령 촬영 분량이 쓰였고 그 외에 노인이 된 순이 장면은 고창 청보리밭 촬영 분량이 쓰였다. 3 마무리 영화 스태프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촬영 때는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 만땅 이지만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근질근질해지고 그리워지는 게 현장이라고. 그리고 다음 작품은 보다 내 취향과 잘 맞는 시나리오, 감독님과 작업하기를 늘 꿈꾼다. 내 취향에 맞는 일을 할 때, 나랑 잘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의 손때가 뭍은, 내가 찾은, 내가 캐스팅한, 내가 찍은, 내 손으로 만든 나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장면들이 스크린에 펼쳐질 때 그 희열이란 한 번이라도 맛을 보고 나면 중독이 돼서. 그래서 다시 영화 촬영장을 그리워하고 꿈꾸는 것 같다. 감독님들. 배우. 스태프들. 정해진 시간 속에서 같이 밤을 새우고 같은 비바람을 견디며 영원히 기억될 영화를 만든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두가 좋아서 이 일을 할 뿐이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길,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반복한다는 것.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찍는다는 문제는 한국영화에서 종종 제기되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김기영 . < 하녀 >를 1960년에 찍은 다음 거의 같은 이야기로 1971년에 < 화녀 >를 칼라 버전으로 찍었다. 그런 다음 약간의 변형을 가한 < 충녀 >를 이듬해에 만들었고 십년 뒤에 다시 < 화녀 82 >를 찍었다. 마치 하녀 역을 연기할 새로운 여자 배우가 나타나기만 하면 김기영은 언제든지 다시 찍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김기영은 이 영화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영화사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세기가 바뀐 다음 같으면서 다른 버전으로 임상수 가 2010년에 다시 < 하녀 >를 찍었다. 이만희 가 1966년 < 만추 >를 만든 다음 김기영은 같은 시나리오로 < 육체의 약속 >을 1975년에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로 다시 김수용이 < 만추 >를 1981년에 찍었다. 무대를 미국의 시애틀로 옮긴 다음 김 태용 은 전면적인 개작을 해서 다시 < 만추 >를 2010년에 찍었다. 나는 지금 단순하게 리메이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그 이야기가 먼저 있고 영화가 거기에 다가갔다는 전도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영화들을 무언가의 중심 안으로 환원시키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들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우리들은 거기서 매번 다시 시작하는 순간을 낚아채야 한다. 그런 다음 사라져 가버린 것들을 놓치면 안 된다. 그것들이야말로 서로 흩어진 이야기들이 그 스스로 차별 지어져 존재하게 만드는 진정한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그 이야기들 사이의 매듭을 찾아야 한다. 이 세 가지 운동을 모두 발견했을 때에만 비로소 따분한 반복과 사소한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논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 망부석 >과 < 십년세도 > 오프닝타이틀 임권택 의 < 십년세도 >는 같은 반복 안에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기 일 년 전에 임권택은 같은 회사인 세기흥업에서 < 망부석 >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이 영화에 대해서 썼다) 그런 다음 이듬해 <십년세도>를 찍었다. 두 편의 영화를 연이어 보면 조선시대에 관한 다소 이상한 연표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두 영화는 서로 비스듬히 겹쳐 있으면서 동시에 같은 이야기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을 취하고 있다. 어떤 것이 되돌아온다는 문제. 그 안에서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남겨놓아야 할까. 간신히 끝냈다고 생각한 이야기의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가야 할 때 느끼는 망연자실함. 거기에 마치 어떤 진실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되돌아왔음을 발견했을 때 거기서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여기서 임권택은 이미 지나가 버린 자기 영화에 대해서 마치 지금 다르게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한 방법으로 다시 한번 시작하고 있다. 후렴구처럼 반복하고 싶은 말. 다시 한 번 다르게. 임권택은 숙종에서 장희빈을 거쳐(< 요화 장희빈 >) 경종에서 영조로 이어진 다음 사도세자의 뒤주에서의 죽음을 둘러싼 비화(<망부석>)를 거쳐 그의 아들이자 영조의 손자인 22대 왕 정조의 즉위와 그의 정치적 투쟁에 관한 이야기(<십년세도>)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여기서 조선왕조실록의 고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는 일이다. 또한 사‘劇’영화에서 관점에 따라 비평적인 질문과 전술적으로 필요한 대답을 위하여 그 이면과 표면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영화에서는 역사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먼저 환기시키고 싶다. < 망부석 >에서 영조 살아생전 그의 아들 사도세자는 화완옹주와 그 무리들의 음모에 빠지고 그만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일시적으로 중단된 다음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인 정조가 아직 즉위를 하지 못했지만 어른이 된 이후로 건너뛴다. 그런 다음 정조는 여전히 화완옹주의 독살 음모 속에서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인) 정조를 사모하는 여인 꽃봉이의 목숨을 건 희생으로 위기를 벗어나서 왕위에 즉위한 다음 이야기는 끝난다. 여기서 실록에도 등재된 정조의 충신이었던 홍국영(1748년~1781년)은 그저 꽃봉이가 화완옹주의 요구로 독약을 들고 정조의 처소를 찾았을 때 그 음모를 밝히는 인물로 잠시 등장한 다음 사라진다. 그는 완전히 이야기 외곽에 놓여있으며 주의 깊게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 십년세도 >의 주인공은 홍국영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의 아버지 홍성원이 국경수비 대장이자 당시 영조의 신임을 받던 간신 장지항의 음모에 빠져 참수를 당한 다음 간신의 아들이라 하여 과거도 보지 못한 채 저잣거리를 떠도는 홍국영에게서 시작한다. 허나 그의 어머니로부터 큰 꾸지람을 듣고 더 이상 허송세월을 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홍국영은 음모를 꾸며 자격을 취득한 이후 장원급제한다. 이미 사도세자는 세상을 떠난 뒤이며 영조는 아직 살아있고 정조는 지금도 화안옹주의 위협적인 음모와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 망부석 >에서 정조를 연기하는 김운하 < 십년세도 >에서 정조를 연기하는 이수련 < 십년세도 >에서 영수를 연기하는 김운하 우선 역할(들) 사이의 반복과 차이. 두 영화 모두에 반복해서 나오는 정조를 한번은 김운하 가 연기하고(< 망부석 >) 다른 한번은 이수련이 한다. (< 십년세도 >) 하지만 임금을 연기했던 김운하가 이번에는 가장 밑바닥의 상놈을 연기하면서 (<망부석>에서) 자신을 모셨던 홍국영에게 (<십년세도>) 그의 누이를 사랑했다는 죄로 고문을 당하고 제주도로 유배를 당한다. 두 영화 사이의 차이는 고작 일 년이기 때문에 이런 배역 사이의 교환이 기이한 착각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영조는 최남현 에서 김동원 으로 바뀌었고, 또한 화완옹주도 도금봉 에서 이민자 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홍국영 역을 신영균 으로 바꾸었다. (<망부석>에서 홍국영 역을 한 배우의 이름은 자료에 나와 있지 않다) 나는 볼 때마다 두 영화에서 만일 동일한 배우들이 동일한 배역을 연기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라는 불가능한 상상을 하곤 한다. 두 영화의 차이는 단지 정조로부터 홍국영에로, 임금에서 신하에로, 위에서 아래로 관점을 이동한 데서 멈추지 않는다. <망부석>이 사도세자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정조가 어른이 된 다음 임금의 자리에 즉위하는 데까지를 다루었다면 <십년세도>는 어른이 된 정조가 영조의 신임을 얻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다음 영조의 가신들(이자 간신들)을 모두 물리치고 진정한 왕위를 수립하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망부석>이 시작된 다음 그 중간에 이르렀을 때 <십년세도>는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나 두 영화 사이의 시간적 간극은 고작해야 일 년에 불과하다. < 십년세도 >의 독살 시도 두 영화 사이의 동일한 에피소드에 대한 다른 장면. < 망부석 >에서 화완옹주는 정조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 다음 그의 처소에 드나들 수 있는 꽃봉이에게 독약을 탄 보약을 들려 보낸다. 하지만 꽃봉이는 그 보약을 사도세자가 죽은 다음 망부석이 세워진 곳에 감춰놓고 그냥 빈손으로 찾아가 정조를 마지막으로 만난다. 물론 그다음 장면은 대신 꽃봉이가 독약을 탄 보약을 마시고 죽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 십년세도 >에서도 화완옹주는 정조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옹주의 가신 중의 한 명이 독약을 품에 넣은 다음 정조의 처소에 몰래 찾아가 그가 늘 즐겨 마시던 술이 담겨있는 호로병에 털어 넣는다. 바로 그 순간 처소에 들른 홍국영은 한눈에 음모를 간파하고 그를 그 자리에서 붙잡은 다음 화완옹주 일파를 척결하기에 이른다. 물론 두 장면을 동일한 에피소드로 보는 대신 동일한 방법을 두 번 사용한 서로 다른 장면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두 개의 장면을 놓고 진위를 가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내 관심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망부석>에서 꽃봉이는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그녀가 아니라면 실존했던 인물인 화완옹주의 음모를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여기서는 가상으로 실재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이 영화의 후반부는 꽃봉이의 심리적인 정념에로 옮겨간다. 만일 잠시 동안 등장한 사도세자를 (이제 막 청춘‘스타’가 된) 신성일 이 연기하기 때문에 필요했으리라는 상업적인 배려의 짐작이 아니라면 이 영화의 (전반부의) 절반은 다소 어리둥절하게 보인다. 우리는 영화의 대중성에서 스타의 거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신성일이 연기하는 사도세자는 영조에게 뒤주에서 죽임을 당한 이후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플래시백이 없다. 그런 다음 갑자기 시간을 건너뛰어 정조 주변에서 꽃봉이의 덧없는 사랑의 정념이 어떻게 궁궐 안의 권력 다툼에 착취당하고 교활한 전술에 강요당하는지를 애처롭게 지켜본 다음 그 과정에서 그녀 자신이 내려야 하는 행위의 결정이라는 순간과 마주쳤을 때 결국에는 해야 하는 행동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무능하게 쳐다보게 된다. 이 장면은 <망부석>의 이야기 중심에 놓여있으며 사실상 이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이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며 이 장면을 구심력으로 하여 다른 장면들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이 장면에서 꽃봉이의 행동이 자살에로 이끌리기 때문에 시종일관 거의 모든 제스처,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 무심한 정조에게 바치는 대사의 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음악이 비극의 정조에 휩싸여있다. 마치 그러한 기호들은 그녀를 옭아매는 운명의 사슬처럼 보일 정도이다. 임권택 은 이 장면에서 씬들을 할 수 있는 한 길게 늘여놓고 있다. 그런 다음 자살의 장면을 향해서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들은 꽃봉이를 따라가면서 그녀의 삶에 관한 작은 희망의 기호를 찾아내기 위해 예민해진다. 하지만 물론 그 과정은 좌절의 심화에 다름 아니다. <십년세도>에서 동일한 에피소드는 홍국영의 지혜롭고 영민하며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정조의 처소 안에서 벌어진 현장에서 행위에로 즉각 옮겨가면서 화완옹주의 음모를 막아낼 뿐만 아니라 이를 기회로 삼아 그들을 일거에 섬멸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이런 사건이 정말 있었는지, 그래서 이를 기회로 삼아 화완옹주 일파에게 그 죄를 물어 멸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비교적 단순하게 찍혔고, 그런 다음 이 사건은 영화 안에서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자명해 보인다. <십년세도>는 홍국영의 영웅적인 행위를 위한 사건으로 다루어지지만 <망부석>은 꽃봉이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인한 자살에로 이끌린다. 둘 다 국면의 전환을 가져오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던 주인공의 운명에는 정반대의 결과로 다가온다. 나는 그 결과에 대해서 좌절한 운명의 실패인지 아니면 반대로 성공적인 기회를 만든 사건인지, 라는 방식으로 그 둘을 나누고 싶지 않다. 두 편의 영화를 일 년 사이에 연달아 찍은 임권택 이 두 개의 장면이 같은 에피소드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마치 임권택은 < 망부석 >을 찍은 적이 없다는 듯이 < 십년세도 >를 찍었다. 하나의 사건. 두 개의 장면. 서로 다른 배치. 이 둘 사이에는 좀 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바보 같은 설명도 가능하다. 세기흥업은 <망부석>의 흥행에 성공했고 그들은 같은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찍고 싶었으며 그래서 주인공을 달리하여 이번에는 스타 신영균을 주연으로 하여 만들자고 임권택에게 제안해서 <십년세도>를 찍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게 사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사극은 돈이 많이 들고 성공적인 흥행은 그것을 시장에서 다시 한 번 손쉽게 반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유혹을 했을 것이다. 그 둘은 같은 이야기이고 그러므로 같은 에피소드를 다룬 장면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산업적 설명이다. 좋다. 하지만 우리는 좀 다른 관점에로 옮겨서 질문을 더 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임권택의 난처한 곤경이 숨어있다. 임권택은 에피소드를 반복하고 있지만 의미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때 이것을 인물(들) 사이에 놓인 구성의 차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기에는 다소 까다로운 반문이 기다리고 있다. 반복이 다른 반복의 깊이를 가져오는 대신 반복 안에서 잠재적인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섰을 때, 그래서 그 반복으로 하여금 동일한 시대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을 때, 그로 인해 세계의 정념이 바뀌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태인 것일까. (적어도 1964년의) 임권택에게 세계는 주어진 것이어서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삶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질서가 아니라 관점에 따라 주관적인 이동을 통해 재구성되는 일종의 원근법적 도착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마치 여기에는 두 개의 조선시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두 개의 정조에 관한 기록이 있다. 내 질문의 시작은 여기에 있다. 임권택은 세계 안에 살고 있다기보다는 나와 세계 사이의 매개의 문제라는 방식으로 이 질문에 접근한다. 물론 <십년세도>가 이 문제에 정교하게 대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망부석>과 <십년세도>가 기괴할 정도로 동일한 구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두 편의 공통점은 단지 정조를 다루었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에서 정조를 다룬 영화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준익 이 송강호 를 주연으로 ‘아마도’ 정확하게 같은 시기, 영조에서 정조에로 왕권이 이행되는 과정을 다룬 < 사도 >를 찍고 있다. 방송드라마를 포함하면 걷잡을 수 없어질 것이다. 내 말은 대중들에게 영조와 정조의 이야기는 조선왕조사에서 매우 친숙하다는 뜻이다) 두 편의 영화가 절반을 진행한 다음 갑자기 중단되고 나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망부석>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다음 갑자기 십 년 세월을 건너뛴 다음 마치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가 시작한다. 두 번의 시작. 영화의 시작 영화의 절반 대목 그런데 더 이상한 쪽은 < 십년세도 >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 망부석 >이 절반을 나눈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 나는 이미 두 영화가 비스듬히 겹쳐있다고 말했다. 물론 방점이 홍국영에게 놓여있기 때문에 그가 궁궐에 들어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다룬 이야기가 앞에 놓여있지만 이미 사도세자는 죽은 지 한참 전이고 정조는 혜경궁 홍씨와 함께 궁궐 바깥으로 내쳐졌다가 다시 영조의 부름으로 들어온 그 시기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 다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단 한 번 홍국영의 어린 시절로 불현듯 되돌아간 장면(flash_back)에서 어린 홍국영은 아버지 홍성원이 간신으로 몰려 참수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홍국영의 아버지는 홍성원이 아니라 홍낙춘이며 그는 간신으로 몰리지도 않았으며 참수를 당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 장면은 누구라도 어린 정조가 영조의 명에 의해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장면과 어떤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어린 정조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장면이 준 충격이 홍국영에게도 동일한 충격의 외상으로 남아있으며 (실재적 아버지의 죽음?) 그들은 동일한 오이디푸스적 결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친화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의 아버지들은 동일하게 영조의 명에 따라 죽임을 당했으며 동시에 그들은 영조에 의해 그들 각자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임권택 은 재빨리 어른 홍국영에로 돌아온 다음 그가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하여 정조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는 장면에로 넘어간다. 그리고 화완옹주의 독살음모를 밝혀내고 그들 일파를 모두 멸한 다음 정조를 안전하게 왕위에 즉위시킨다. <망부석>은 여기서 끝난다. 그런데 <십년세도>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마치 여기서 일부가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시작한 지 48분이 되는 대목에서) 이야기를 중단시킨 다음 다시 시작한다. 그걸 마치 알리기라도 하듯이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온다. 무효가 되어버린 절반. 이 반복은 몹시 불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첫째, <십년세도>의 시작 장면은 지금 임금인 영조가 치세를 잘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탐관오리들에게 수탈 당하는 모습을 연달아 이어지는 쇼트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봉건체제에서 할 수 있는 가능한 해결은 다음 임금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기대가 <망부석>의 마지막 장면에 담겨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중간에서 동일하게 다시 반복할 때 그것은 단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정조의 치세가 실패했음을 설명하는 것이 된다. 영조를 정조 위에 겹쳐놓기. 여기서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기술적으로만 말하면 순간적으로 마치 앞에 이미 본 쇼트들이 무언가 잘못 편집되어서 다시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반복되는 동일한 장면들. 이때 <망부석>에서 외관상 보이는 해피엔딩은 사실상 그 ‘이후’의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실패에 대한 즐거운 위장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십년세도>는 정확하게 <망부석>의 그 자리를 겨냥한다. 그래서 <십년세도>는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기보다는 마치 이미 한 이야기의 오류를 수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는 역사의 반복에 대한 우울한 악순환의 반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회귀의 필연성. 한없는 반복. 그러므로 나쁜 시간은 되돌아온다. 임권택은 부지불식간에 역사에서 결정적인 한 번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을 하고 만다. 결정적인 한 번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사회에 대한 단절.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로의 도약.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임권택은 영화에서 단 한 번도 그런 희망에 이끌려본 적이 없다. 봉희와 영수 홍국영 둘째, 내가 말하려는 핵심은 여기서 좀 더 밀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 절반에 이르기까지 두 영화의 차이는 하나가 완전히 비극으로 이끌리는 데 반해서 다른 하나는 영웅적인 승리에로 이끌린다는 것이다. 그 둘은 서로 전혀 다른 정감을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사건 속에서 서로 정반대의 인물에 의해 그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역사의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허구적인 인물과 실존했던 인물. 멜로드라마와 전기. 그런데 이 절반을 나누는 시퀀스를 보여준 다음 홍국영은 이제까지 자신이 어떤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행동했던 것과 반대로 마치 자신의 자리에서 가졌던 이상이 강요된 선택이었던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물론 명분은 탐관오리들의 배후세력이자 사리사욕에 눈이 먼 수비대장 장지항이 선왕의 신임을 받고 유언에 따라 정조가 그의 부정을 우유부단하게 눈 감는 것에 대신하여 그 스스로 엄벌을 내리기 위해 세력을 확장하고 왕권을 배후에 얻을 수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그 순간 그의 정의는 권력의 네트워크 안에서 정치적 게임이 된다. 여기에는 동일한 주체가 겪어야 하는 분열의 고통이 뒤따라온다. 정의의 주체는 자신이 세계와 거리를 유지할 때에는 투명해 보이지만 일단 세계 안으로 끼어들어 가서 갑자기 결정에 관한 선택을 하는 순간 선택이 정의를 불투명하게 만든다. 이때 정의는 그 개념과 목표 아이에서 그 둘이 서로 자기의 편에 두기 위해 잡아당기면서 찢겨져 나가기 시작한다. 홍국영은 결정적인 시험에 든다. 그는 내빈과 금슬의 정을 나누지 못하는 정조에게 자신의 여동생 홍봉희를 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홍봉희는 오빠의 결정에 격렬하게 저항한다. 왜냐하면 아직 그의 오빠가 과거 급제하기 전 몰락한 가문의 과년한 처녀로 지내던 시절 영수와 정분을 나누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적 서사의 되풀이. 오래된 궁정연애의 장치들. 하지만 임권택 은 여기서 이상한 내기를 시작한다. 몰락했다곤 하지만 홍봉희는 양반 가문의 자식이었고 영수는 상놈 출신이어서 그의 아버지는 엄중한 목소리로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충고한다. 이 장면은 영화 앞부분에 놓여있어서 이미 비극을 예고하고 있다. 그래서 홍국영이 과거 급제했을 때 영수는 그녀의 집을 찾아와 절망적인 목소리로 오빠의 소식을 알려준다. 홍봉희가 오빠 홍국영을 따라 입궐한 다음 그리움에 지친 영수는 담장을 넘어 홍봉희를 찾아와 그녀에게 사람들이 모르는 곳으로 함께 떠나자고 조른다. 이 말은 예전 홍봉희가 영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 둘은 급히 짐을 꾸리지만 우연하게 내당을 지나던 집사의 눈에 띄고 만다. 홍국영은 한걸음에 내달려 그 자리에서 영수를 포박한 다음 무자비하게 매질을 하면서 이는 나라의 법에 따른 것이며 죽어도 할 말이 없을 것, 이라고 울며 매달리는 여동생 홍봉희에게 매정하게 대꾸한다. 여기까지는 이미 예정된 이야기의 수순을 따라간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은 단지 이것을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비애를 한껏 과장하고자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이 수순은 < 십년세도 >가 오히려 다른 사극의 유형을 그대로 베끼듯이 뒤따라가는 것이다. 이제 서로 길이 갈라지는 것은 홍봉희의 선택에 달려있게 된다. 여기서 홍봉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빠의 뜻을 따를 테니 영수를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거래. 님을 위한 희생. 하지만 영수는 그 희생을 고마워할까. 홍국영의 나라를 위한 가혹한 정의의 집행과정. 그러나 반대로 영수의 자리에서 상실한 정의는 어디서 거래가 되어야 할까. 임권택은 여기서 영수를 괄호 친다. 홍국영은 집사에게 영수를 다시는 뭍에 오르지 못하게 제주도로 보내라고 명한다. 이 장면 이후 우리는 영수를 영화에서 다시는 보지 못한다. 혹은 그의 생사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오빠와의 약속에 따라 홍봉희는 정조의 원자아기 씨를 받기 위한 원빈 홍씨가 된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사극의 이름으로 비애의 장르가 자기의 법칙을 수행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임권택이 상황을 만든 다음 거짓말을 이용하여 진실을 설명하는 정의의 오작동 방식은 멈춰 서서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임권택은 진실을 진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온통 거짓말로 가득 차 있는 < 길소뜸 >의 절반 이후를 떠올리고 있다. 혹은 < 서편제 >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빠 동호와 여동생 송화가 만난 다음 나누는 거짓말을 떠올려보라. 이때 거짓말과 진실은 둘 사이의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삼자 관계로 이루어진 긴장이라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나머지 하나란 무엇인가. 거짓말을 통과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진실 안의 내밀한 진실. 영수를 가운데 앉혀놓고 홍국영과 홍봉희는 서로 거짓말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홍국영은 영수를 포박하여 주리를 틀며 매질을 하는 것이 상놈에게 자신의 누이를 빼앗긴 것에 대한 상실감이 안겨준 모욕 때문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면서 홍봉희에게 양자택일의 길, 그러니까 사랑하는 남자를 희생시킨 다음 자기의 뜻을 거절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를 희생하고 오빠의 뜻을 따르는 대신 저 남자 영수를 살릴 것인지를 놓고 벌이는 내기의 상연을 한다. 홍봉희도 홍국영이 하는 퍼포먼스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홍봉희가 오빠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을 때 홍국영은 마치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라도 한 것처럼 영수에 대한 매질을 멈춘 다음 그를 홍봉희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라는 명을 내린다. 물론 매질은 홍봉희의 대답을 재촉하기 위한 일종의 효과이다. 이때 홍봉희가 홍국영에게 하는 약속은 이중적이다. 그녀가 오빠의 말을 따르겠다는 것은 정조의 내빈이 되기 위해 입궐하겠다는 뜻이지 마음을 바꾸어 영수를 포기하고 정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시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홍봉희의 대답은 절반만 진실이고 나머지 절반은 거짓말이다. 그걸 홍국영도 알고 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핵심은 이 나머지 절반이 정조에게는 전체를 거짓말로 만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홍국영은 정조에게 거짓말의 행위를 수행하려는 것이다. 이때 여기서 사라진 장면이 있다. 홍봉희의 진술을 들은 다음 홍국영은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어떤 설득도 하지 않으며, 또한 임권택도 그런 장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혹 설득에 실패할지라도 해야 하는 (그래서 적어도 내 생각에는 있어야 하는) 그런 장면이 없다. 그때 홍국영이 수행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가장 쉬운 대답은 홍국영이 정의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불가피하다고 따분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대답을 금방 곤경에 빠트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정의는 어디에 있나요? 지금 홍국영의 행위는 정의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중이다. 임권택은 여기서 정의를 위해서 언제든지 진실을 희생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때 거짓말은 진실을 대신해서 정의를 수행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한다. 홍봉희가 오빠의 명령을 따른다면 홍국영은 정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국영도 자신이 희생자라는 관점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제 이 희생의 논리는 일종의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는 희생의 교환으로 약속한 오빠의 명령에 따라 내빈이 되는 홍봉희의 행위를 사랑이라고 착각한 정조도 그런 의미에서 거짓말의 희생자인 동시에 정의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이때 정의가 진실보다 상위 개념에 놓여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홍국영의 행위는 무조건 정의라는 매우 주관적이고 허약한 가설을 밑바탕에 깔고 버티는 중이다. 논점을 피하려고 현실에서의 정의의 실행을 위해서 우리는 좀 더 관대하고 유연하게 진실에 관한 예외의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이때 누군가는 즉각적인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 예외가 누군가의 진실에 침해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영수를 셈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가장 간단한 해결방법은 영수가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홍봉희를 사랑한 적이 없어요. 그저 그녀를 겁탈하기 위해서 담을 넘었을 뿐이에요. 홍봉희는 그 대답을 듣고 마음을 돌려 자발적으로 오빠의 명에 따라 입궐하여 정조의 곁으로 갔을 것이며 어쩌면 진심으로 보필했을지도 모른다. 홍국영은 구태여 누이에게 거짓된 행동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또한 그는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얻기까지 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잔인한 해결방법이다. 영수는 모두의 진실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다음 이 게임에서 자신을 삭제하는 일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물론 그렇게 간단하게 거짓말과 진실의 게임이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때 선택을 오작동시키는 척하면서 진정으로 이들 사이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은 영수의 고백이 홍봉희를 위한 거짓말인 경우이다. 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그 거짓말을 홍봉희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홍국영도 그것을 알고 영수가 진정으로 자기의 누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임권택은 이런 경우의 수를 선택하지 않고 그 전에 멈추었다. 영수는 여기서 침묵을 지키면서 마치 각자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이 자기의 할 일이라는 듯 그들을 쳐다본다. 이때 희생은 홍봉희에게로 모아진다. 영수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긴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상놈인 그가 한성에 있으나 제주도에 있으나 사실상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영수가 한성에 남아있을지라도 상놈인 그에게는 어떤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담을 뛰어넘은 영수의 행위는 홍국영의 선택에 덧셈이 되었을 뿐이다. 만일 영수가 아니었다면 홍봉희를 그의 명에 이렇게 쉽게 굴복시킬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은 희생의 논리에 대한 검토를 요구한다. 진실과 거짓말 사이를 매개하는 고리가 희생될 때 진실은 이중의 무게를 견뎌야만 한다. 하나는 물론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희생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여기서 정의가 다시 되돌아온다. 나는 논점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런 우여곡절에도 뒤이어 장지항을 바로 책임을 물어 파직시키지 못한다. 여전히 홍국영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결심을 내리지 못한다. 바로 이때 홀연 원빈 홍씨가 오빠의 말에 대한 메아리처럼 나타나 홍국영의 말에 뒤이어 백 년 사직을 위해 용단을 내리셔야 한다고 웅변하듯이 말하면서 정조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이 장면에서 임권택 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자기를 원망하면서 지낼 줄 알았던 여동생이 마치 자신의 충언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나타나 자기편을 들면서 임금을 설득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의혹과 기쁨 사이에서 짓는 표정(insert_shot)의 변화이다. 이때 원빈 홍씨의 말은 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태도에 있다. 임권택은 대사를 할 때 그 사람을 바라보거나(point_of_view_shot) 그 사람을 바라보는 상대방을 바라보기는(point_of_view_reaction_shot)하지만 대사를 하는 상대방의 대사 사이를 파고 들어가면서 바라보는 쇼트는 거의 없다. 만일 이 장면을 (적어도) < 잡초 > 이후에 마주쳤다면 원빈 홍씨가 대사를 하는 동안 그냥 홍국영의 표정을 찍었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설명은 임권택의 영화 언어가 점점 더 단순해지면서 내적으로는 비가시적이 되어가는 진화에 대한 (어쩌면 과도한) 추측이 아니다. 여기서 임권택의 카메라가 멈춘 것은 원빈 홍씨의 태도가 뜻밖이라는 듯한 홍국영의 표정이다. 이때 홍국영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반대의 표정을 지었다면 여기는 홍국영이 자신의 대의를 누이인 원빈 홍씨가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서서 오빠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망쳐버린 누이의 사랑과 (더 나아가) 삶에 대해서 조금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의 고문에 가까운 감정적인 투쟁을 정의라는 이름의 베일 저편으로 감춰놓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오해라는 환상의 장막. 거의 물신이 되어버린 정의. 거기서 진실이 거의 질식해서 죽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홍봉희의 자리에서 오빠 홍국영이 괴물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처음 홍국영이 누이에게 정조의 내빈의 자리에 가라고 말했을 때 그녀가 보인 저항을 생각해보라. 왕실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에 대한 단호한 거절. 그런 다음 영수가 담을 넘어 그녀 곁에 오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난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낯선 장소에로 함께 도망칠 결심을 했었다. 홍봉희는 쇠락한 양반 집안에서 영수와 아무런 허물없이 지내면서 상놈들과 거의 같은 수준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 도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자, 홍국영의 대의는 잘 알겠다. 그런데 홍봉희에게 오빠 홍국영의 대의는 지켜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는 홍국영의 표정으로 되돌아오고 싶다. 그가 원빈 홍씨의 도움에 의혹과 기쁨을 느끼며 바라보는 까닭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 행동이 의외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만큼의 고마움의 표현이다. 여기서 홍국영의 세 개의 표정의 쇼트는 정확하게 정의가 구현되고 있는 만큼 거짓말이 실현됨으로써 도덕법칙이 파괴되고 있는 증거이다. 내가 여기서 멈춘 것은 임권택이 자신의 영화 전체에서 내내 마주치게 될 거짓말과 도덕 사이의 대결을 이야기 속에서 끌어내 상황을 만든 다음 하여튼 다시 시네마틱 센스로 각색하려 드는 순간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이 문제가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무엇이 무엇 위로 가야 하는가. 그는 이 문제를 개념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한국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상황, 그 상황 중에서도 조선에서 일제 강점하를 지나 해방 직후와 거기에 마치 꼽추의 혹처럼 달려있는 한국전쟁을 거친 다음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역사 속 일회적인 존재방식을 쳐다본다. 만일 단 한 번이라는 개념이 임권택에게 던져진다면 그것은 삶 그 자체이다.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서의 개념들의 위계질서의 내기. 그런 다음 예기치 않은 장면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다. 정조는 원빈 홍씨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수비대장 장지항을 불러 파직하고 재산 전체를 몰수하자 그 자리에 홍국영이 나타나 자신의 승리를 마음껏 즐긴다. 하지만 뒤이어 원빈 홍씨는 하얀 한복을 입고 (그래서 흑백화면으로는 마치 소복처럼 보이며) 미루어 짐작건대 독약이 들었을 법한 사발을 들고 그녀의 마지막 대사를 한다. “오빠, 이제 소원대로 되었사오이다. 이젠 소녀도 소녀의 길을 가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 저승에 가서야 이루어보겠습니다. 저승에 또한 오빠 같은 분이 계셔서 뜻을 이루지 못하오면 그땐 상놈의 딸로 다시 태어나렵니다. 오빠, 굽이 살펴주시어요” 원빈 홍씨의 자살은 그 행위 때문이 아니라 시점 때문에 기이한 질문이 된다. 무자비한 대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감상적인 연인들의 실패한 사랑의 이야기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운명을 수없이 보았다. 그러므로 원빈 홍씨의 자살이 우리를 놀라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기라도 하듯 자살을 하는 대신 그에 앞서 홍국영이 장지항의 파직을 간청할 때 그 곁에 나타나 오빠를 위해, 자기의 사랑을 망쳐놓고, 자기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매질로 주리를 틀면서 자기에게 굴복을 요구한 다음 그것을 이루자 제주도로 쫓아낸 사람을 위해, 기꺼이 거짓말을 한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던가요. 장지항은 부패한 지방 관료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들을 보호한 파렴치한 간신이 맞지 않던가요. 물론이다. 그 말의 내용은 사실일 것이다. 나는 홍국영의 간청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빈 홍씨는 여기서 오로지 오빠의 정의를 위하여 자기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일뿐이다. 여기서 그 말의 내용을 중심으로 놓는 대신 약간 그림을 비튼 다음 그 측면도법에 따른 왜상효과(anamorphosis)처럼 그 말의 그림자를 원상복구 시켜보자. 이때 원빈 홍씨의 진실은 정확하게 오빠의 대의와 대립하는 것이다. 홍국영은 조선이라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가족, 자신의 누이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이때 우리를 역겹게 만드는 것은 홍국영이 홍봉희를 자신의 대의를 위한 도구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만일 원빈 홍씨가 홍봉희의 자리로 돌아가 자살하는 장면이 없었다면 그 둘 사이의 상호교환이라는 질문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원빈 홍씨가 오빠 홍국영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모든 진실, 자신이 왜 당신 곁에 있는 지를 고백하는 것이다. 좀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홍국영이 간청할 때 그저 침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우리들이 예상한 것과는 정반대로 홍봉희는 대의를 위해서 (몹시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자신의 복수를 배신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무엇을 얻었는가. 쟁점은 그렇게 함으로써 홍봉희는 자신이 자살할 명분을 얻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는 대의를 위하여 필요한 그녀의 몫을 모두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빈 홍씨가 홍국영의 편을 들어 정조에게 간하는 것과 그녀의 자살은 과정안의 서로 대립덫염甦ㅐ?아니다. 임권택 이 여기서 노리는 것은 무대에 오른 이 모든 개념들의 변덕이다. 그런 다음 그는 영화 속에 역설적인 상황을 반복해서 만들어나가면서 실망하고 또 실망한다. 마치 실망이 자신의 목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 놀랍게도 지치지 않고 그것을 매번 다시 시도한다. < 십년세도 >가 걸작은 아니지만 비로소 임권택 이 임권택이 된 첫 번째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영화에는 비로소 임권택에게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마주치게 될 질문의 도래가 있다. 그걸 임권택 자신이 < 망부석 >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듯이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느린 걸음. 그것도 아주 느린 걸음. 그래서 처음 보았을 때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방법의 발견. 이때 임권택은 <망부석>을 수정하면서 마치 <십년세도>에서 양보할 수 없는 전도를 시도하고 있다. 핵심은 전도라는 그 관점의 이동 자체에 숨어있다. 말하자면 임권택의 반복은 한편으로는 오류를 수정하는 척하면서 변덕의 심연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절망적인 행위이다. 매번의 예외. 이때 임권택이 수수께끼처럼 생각하는 것은 변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진실이 지켜지느냐에 있다. 물론 그사이에 운명처럼 끼어든 다음 덧없이 사라지는 매개의 희생이 아니라면 이 진실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진실은 가냘프고 애처로운 것이다. 때로는 완전히 부서지고(< 길소뜸 >) 가끔은 그 파편들이 남아서 가까스로 자기의 존재를 남겨놓기도 하며(< 티켓 >) 거의 불투명 속에 머물면서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만다라 >) 너무 때늦게 도착해서 거의 놓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짝코 >, 아마도 < 서편제 > 혹은 < 하류인생 >) 그래도 여전히 남겨져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 축제 >, 그리고 < 천년학 >) 나는 멀리서부터 임권택이 왜 갑작스러이 인본주의(人本主義)라는 말에 이끌렸는지를 생각하는 중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어디에 놓여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실험이라는 말처럼 내게 읽힌다. 그러므로 그사이에는 희생을 무릎 쓰고 횡단해야만 하는 환상이 있다. 물론 그 횡단의 순간에 종종 점핑이 실패로 끝나버려 추락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임권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1964년 93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극동흥업 각색 이진섭 , 임권택 촬영 장석준 조명 박진수 편집 김희수 음악 김용환 신영균 홍국영 김동원 영조 이수련 정조 김신재 혜빈홍씨 김운하 영수 이민자 화완옹주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염려가 먼저 들 때가 있다. 치코, 하포, 그루초 마르크스 삼형제의 난동극에 가까운 < 오페라의 밤 >을 처음 보았을 때는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부글부글 거리더니 점점 넘쳐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급기야 걷잡을 수 없게 넘쳐날 때 그걸 가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마치 햄릿 같은 말투로 기꺼이 찬사를 바쳤다. B급인가, 아방가르드인가, 여기서 영화의 장치들이 고스란히 창자를 내보인다. 하지만 이걸 보고 심미주의를 느끼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설 것이다. 아아, 천국이라니. 착란과도 같은 반란. 유희와도 같은 실험.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들을 너무 빨리 보기 시작했다. 이런 과잉의 영화들의 계보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정말 미친 듯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만찬의 영화. 그런데 그 만찬은 (롤링 스톤즈의 앨범 제목을 빌려 부르자면) ‘거지들의 만찬’(Beggar’s Banquet)이다. 나는 이 행복한 표현을 긍정의 의미로 사용하는 중이다. 영화의 운동에 부여한 난처하리만큼 불편한 포만감. 갑자기 화면은 일시적으로 두뇌의 활동을 정지하고 육신과 감각, 팔과 반경거리, 사방을 둘러보는 눈, 허우적거리는 동선,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발과 제한적인 공간, 그 안에서 영화의 모든 기호가 결국 주어진 세계-내-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고야 만다. 그런 다음 카오스가 기다리고 있다. 마치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할 때 그들이 쓰러트리는 것은 반대로 점점 더 속도를 더해간다. 여기서는 오로지 영화가 허용한 모든 것을 현실에서야 어찌되었건 잠시뿐 일지라도 법칙을 무시하고서라도 허용한다. 영화만의 선언. 말 그대로 이 안으로 들어오면 위반을 긍정한다. 영화는 세계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바깥으로 나가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해진다. 종종 이 결정이 영화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버리는 영화들이 있다. 그래서 세계를 비현실로 만들어버릴 때 갑자기 세계 자체가 영화라는 이미지가 되어버린다. 여기서는 몸으로 버텨야 한다. 물론 모든 희극영화들은 폭력 안에서의 웃음이다. 버스터 키튼의 필사적인 질주. 찰리 채플린의 곡예와도 같은 방어술. 웃음이 아니라면 이들의 악전고투를 차마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 개의 전통으로부터 톱니바퀴처럼 갈려 나온 서로 다른 운동의 수없는 변주들. 하지만 토키영화가 시작하자 영화 안에서의 기계적인 활동들은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만 같았다. 대신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영화 안의 기호들로 이루어진 서로 다른 차원의 이미지의 행성들은 안정을 얻는 것처럼 서서히 자기 자리를 잡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는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들이 나타났다. 닥치는 대로 열거하자면 그 중에는 프랭크 타쉬린(과 제리 루이스), 스즈키 세이준, 러스 메이어, 로저 코먼, 존 워터스, 그리고 (....)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들은 희극의 장르 안에서도 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는 거의 아슬아슬하게 그 전통의 자락에 기대어 선 영화이다. 나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갑자기 임권택 이 이 계보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그런 영화를 만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오랫동안 머문 것도 아니다. 그는 잠깐 동안, 정말 잠깐 동안 머문 다음 재빨리 빠져나갔다. 1969년을 임권택은 그 자신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시기라고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이 시기에서 갑자기 임권택의 영화들이 자유로워졌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 몽녀 >의 몽환적인 산책. < 황야의 독수리 >의 무국적 풍경. < 속눈썹이 긴 여자 >의 조명이 넘쳐나는 실내.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에서 보여준 상실의 멜랑꼴리. 그리고 < 둘째 어머니 >의 황당무계할 정도로 긴 마지막 시퀀스. <신세 좀 지자구요>는 이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사라진 칸막이들. 고정적인 문법을 따른 안정된 선을 버리고 갑자기 생겨난 쇼트의 난반사들. 무언가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상야릇한 새로운 습관들. 나는 여기서 임권택의 이전 장면들에선 본 적이 없는 영화적 습관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지금 그걸 이 시기의 영화를 건드릴 때마다 일일이 열거하는 중이다. 물론 그때 임권택은 주어진 상속의 전통 바깥으로 나가면서 갑자기 자신이 전락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장에서 점점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의 끝에 가 불현듯 나타났다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구先生 미셸 시몽, 시인 천상병 처음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보았을 때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구先生은 임권택 의 영화중에서 가장 이상한 인물이다. 어쩌면 한국영화 속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주인공이다. 구태여 다시 한 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이런 인물을 미셀 시몽의 천의무봉에서나 찾을 수 있다. 장 르누아르의 < 물에서 건진 부뒤 씨 >와 장 비고의 < 라탈랑트 >에서 거의 같은 역할을 해낸 이 이상한 인물. 선과 악의 경계 바깥에서 종잡을 수 없게 살아가는 사람. 장 조레스가 암살당하고 인민해방 전선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 나타난 무정부주의적인 삶을 구가했던 이상한 보헤미안들. 구태여 여기에 더해야 한다면 (자끄 타티가 만들어낸) 윌로 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은 정치적으로는 의미가 다르다) 이런 주인공을 떠올린 이유가 있다. 난처한 주인공, 번번이 추적의 선을 끊어버리는 것만 같은 행각.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마치 자기 법칙이 있다는 듯 이리저리 옮겨간다. 나는 자료를 뒤져야했다,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이제는 알겠다. <신세 좀 지자구요>의 주인공 구先生의 모델은 시인 천상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성립된다. 아마도 시인 중의 시인, 그 스스로 시인의 삶을 살아간 마치 봉황의 깃털과도 같았던 사람. 누군가에게 배우기도 전에 처음부터 그가 시를 쓰면 읽는 사람을 움직였다. 김춘수 시인에게 발견된 재능. <신세 좀 지자구요>를 둘러싸고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설명을 읽기 전에 불행했던 시인 천상병의 위대하고 가냘픈 시를 먼저 읽어주기 바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영화의 원작이었던 문화방송 드라마 <불청객>을 보지 못했다. 이 드라마는 친구들 집을 아무 거리낌 없이 동가식서가숙했던 천상병 시인의 기인 행각을 보면서 소재 삼아 그의 친구 중의 한 사람이자 극작가였던 신봉승 이 대본을 썼고 1966년에 방영되어 그해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의 한 편이 되었다. 나는 원래 드라마에 천상병 시인의 삶의 향기가 얼마나 배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신봉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 자신과 친구들이 겪었던 이야기로 매회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 후 <방 좀 빌립시다>로 준비되었던 이 영화는 <신세 좀 지자구요>로 제목이 바뀌어서 삼 년 후에 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작 드라마 각본을 영화를 위해서 신본승 자신이 각색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구先生이 시인이라는 설정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처음부터, 그러니까 드라마 대본에서부터 없었던 것일까) 다만 고향에서 올라온 갈데없는 독신 중년으로만 소개하고 있다. 구先生은 계속해서 언젠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며 (그러므로 영화의 엔딩은 구先生이 고향에 내려가는 것으로 끝난다) 거기서 잘못된 사랑을 했으니 이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하지만 그가 어떤 잘못된 사랑을 했는지, 왜 그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는지, 그리고 여기서 다시 삶을 살아볼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어떤 설명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나중에는 이 모든 고백이 거짓된 핑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어쩌면 구봉서 가 연기하는 구先生의 어디에서도 시인 천상병의 그림자 자락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구봉서가 훌륭한 희극 연기의 대가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는 천상병의 천의무봉한 자유와 거의 사회적으로 파문당하기 직전까지 몰렸을 때조차 거기서 재난에 가까운 사건 사이를 가볍게 지나쳐가면서 그 모든 것이 우리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시적인 사유의 행위라는 것을 펼쳐 보이지 못한다. 그저 과장된 개그의 제스처, 우스꽝스러운 표정. 그러나 천상병 시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1967년 7월 14일 ( 윤이상 , 이응로를 간첩으로 몰아붙인) 동백림 (북한 대남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다음 세상에 돌아와 ‘그 날은 새’라는 시를 썼다. 고문 후유증으로 내내 고통을 받았고 1971년에는 행적이 묘연해지자 동료 문인들이 유고시집을 발간했지만 길거리에 쓰러져 행려 취급을 받고 서울시립병원 정신병동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가까스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시인 천상병은 무거운 가난을 등에 짊어지고 계속해서 자신이 새가 되고 싶다는 시를 썼다. (시집 “새”) 세상이라는 도면에 대한 서로 다른 관측법. 누군가는 그걸 그 안에서 두리번거리며 바라볼 때 누군가는 상공비행해서 내려다 볼 것이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무언가 여기에는 신비로운 모험이 사라져버렸다. 구先生의 기행은 드라마 안에서 시종일관 전혀 설득되지 않으며 그러면서 점점 더 기괴해져가기만 한다. 무엇보다도 구先生에게서 세속 바깥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의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다른 목적을 지닌 삶, 거기서 그를 비루한 현실 속에서조차 구해내는 고귀한 목표의 겸손함, 그때 어떤 수단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나는 그게 신봉승이 (어떤 이유에서) 포기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임권택이 삭제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여기 남아있는 것은 구先生의 기행 뒤에 숨겨져 있는 고독함뿐이다. 어쩌면 천상병 시인의 기인과도 같은 삶은 결국 고독함이라고 이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先生이 마담과 함께 한밤중에 데이트하는 장면의 우울함은 갑자기 이 희극 영화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만 같은 속도로 바뀐다. 종종 전체적인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만 같은 이 영화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간단하게 무시하면서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씬에서 무언가 사무치는 것만 같은 정서가 거의 유령처럼 출몰한 다음 수없이 부스러기처럼 잘게 쪼개져버린 이 세계의 한 순간을 멈춰 세우기 때문이다. 이재명(우)과 아내(좌) 구先生과 마담 보영 세진 먼저 KMDb 에 소개된 줄거리의 정정. “ 구봉서 와 김희갑 은 절친한 사이다. 그래서 갈 곳이 없는 봉서는 희갑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자니 자연히 희갑의 부부간에는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그때마다 봉서가 화해시킨다. 어느 날 봉서가 산 복권이 당첨이 된다. 그리하여 봉서는 희갑의 어려운 사정들을 해결해 주고 남은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간다.” (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2010 ) 구봉서와 김희갑이 절친한 친구 사이로 나오는 건 사실이고 그 집에 머무는 것도 맞지만 그런 다음은 영화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복기할 수밖에 없다. 지방에서 올라온 구先生(구봉서)은 누군가의 집에서 쫓겨난 다음(영화의 첫 장면) 겨울 거리를 배회하다가 술집에서 옛 고향 고등학교 동창 이재명(김희갑)을 만난다. 갈 데 없는 구先生은 뻔뻔하게 이재명의 집에 쳐 들어와 방 한 칸을 차지하고 그냥 머물면서 아침 겸상에 용돈까지 받아 챙긴다. 이재명의 아내( 도금봉 )은 어이가 없지만 체면 때문에 참고 딸 보영( 전양자 )은 재미있게 생각하고 식모( 안인숙 )은 그저 어쩌지, 어쩌지, 할 뿐이다. 이재명은 감원 대상자 명단에 매번 자기가 속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중이고, 구先生은 낮에는 다방에 나가 마음에 둔 마담( 조미령 )과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이재명의 집에 다시 쳐들어온다. 그런 와중에 구先生은 시종일관 사고만 치고 이재명 부부로서는 점점 참기 힘든 상태가 된다. (갑자기 여기서부터 인물관계가 뒤엉키기 시작하지만 정작 영화를 볼 때는 문제가 안 된다) 마침 딸 보영이 다니는 회사의 전무가 이재명이 다니는 회사 과장( 양훈 )의 아들( 이철 )이고 그는 이재명의 딸 보영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과장의 아내와 계장( 서영춘 )까지 나서서 결혼을 재촉하지만 보영에게는 이미 마음을 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구先生 단골 다방의 마담의 아들 세진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이재명 아내는 만일 청혼한 과장 집보다 혼처가 훌륭하다면 결혼을 승낙하겠다면서 부모 상견례를 하자고 제안한다. 마담은 구先生에게 하루만 성공한 남편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에 과장집 식구들에 계장까지 모여 지켜보고 있다. 자, 여기까진 아무래도 좋다. 임권택 은 여기서 두 세계 사이에 모호하게 머문다. 하나는 세계 안에 머무는 영화이다. 모든 것은 세상의 법칙을 따르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고통 받고 점점 찌그러진다. 가장에게 끊임없는 감원의 협박. 근처에서 맴도는 가난. 회사 안의 위계질서에 따른 부당한 요구의 반복. 위협받는 순수한 사랑. < 신세 좀 지자구요 >의 인물들은 대부분 여기에 머문다. 다른 하나는 세계 곁에 있는 영화이다. 영화는 거기서 세상의 법칙이 금지한 바깥으로 나와 만일 영화가 허용한다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 구先生의 탈선. 하지만 수 많은 사고를 만들어내도 그는 언제든지 그 자신도 알지 못하는 법칙에 의해 항상 구원받는다. 문제는 두 영화가 하나의 세계 안에 공존할 때 생겨난다. (나는 두 세계가 하나의 영화 안에 공존한다, 고 쓰지 않았다) 기괴한 예. ( 서영춘 ) 계장은 ( 양훈 ) 과장과 아들 혼사 문제를 놓고 계획을 짜다 말고 갑자기 그 유명한 만담을 한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강에 가야 고기를 잡지,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이 없으면 못 마십니다, 돈 내고 돈 먹기, 시작해야 부자 되지 어서 어서 오세요...(그리고 한참 더)” 이 만담은 서영춘 이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백금녀 와 함께 이중창처럼 라임에 맞춰 노래하듯이 외우는 구절이며(그래서 이 만담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합창하듯이 따라했다) 레코드로 출반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신세 좀 지자구요>에는 백금녀가 출연하지 않아 서영춘 혼자 이 만담을 하는데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장기자랑이 마침내 시작해서 반갑기는 하지만) 너무 갑자기 등장해서 어리둥절해진다. 하지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이때 ‘사이다 송’ 만담을 하는 서영춘의 얼굴을 극단적인 왜곡 상태로 만들어(fish_eye_wide_lens)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씬은 누구라도 보는 사람을 꺼림칙하게 만든다. 우스꽝스럽기는커녕 무언가 잘못 작동되기 시작한 인형이 재롱의 동작을 취하면 취할수록 원래의 목표를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이제는 수명이 다해버린 음울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만 같은 인상을 자아낼 때 우리의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틀림없이 이 장면은 웃기 위해서 찍은 씬이다. 서영춘은 언제나처럼 약간 넋이 나간듯한 표정을 만든 다음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자기의 차례가 돌아오자 외운 것을 반복하는 기계처럼 구절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그 자체로 인격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의 모델이 된 채 추상화된 자동기계 인형이 된 서영춘을 다시 한 번 굴곡 된 이미지로 만들어버릴 때 거기엔 우리가 개입할 코믹한 환상의 여지가 사라진다. 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때 내가 보는 것은 괴로운 현실과 더 괴로운 환상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방식이다. 임권택은 희극이 고통으로부터 잠시 동안 우리를 구하는 것이라는 통념적인 생각과는 반대로 두 개의 고통을 전시한다. 하나는 물론 억압에 의지해서 버티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억압이 사라지자 통제가 불가능해져버리는 환상이다. 둘 사이를 분리하는 경계는 여기서 그렇게 분명한 것이 아니다. 종종 그 둘은 서로의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인물들은 현실이 무너져 내리듯 홀연히 비현실의 장막 안으로 들어서면 추상적인 미결정의 이미지에로까지 다가간다. 이때 이미지는 히스테릭하게 웃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이미지가 웃는다고 썼다. 이미지가 웃기 시작할 때 일그러진 화면은 육체를 침공하듯이 뒤집어쓴 다음 그것을 통해 고통을 전시한다. 나는 그 뒤에 무언가 숨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그 뒤는 그저 공허한 텅 빔이 전부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점점 더 히스테릭해지는 이미지는 대신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자멸해버리듯이 스스로를 일그러뜨리며 웃기 시작한다. 그때 일그러지면서까지 웃는 이미지는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일까. 물론 대답은 환상의 불만족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또 다른 고통의 왕국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히스테리가 만족을 얻게 된다면 이미지를 둘러싼 영화의 기호들은 갑자기 도착적인 기능을 시작할 것이다. 그건 임권택이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걸 바라기 시작할 것이다. < 천년학 >의 마지막 장면은 분명히 그러했다) 아직은 고통에 머물러야 한다. 이때 임권택의 희극은 웃음이 고통이라는 이상한 역설에 빠진다. 언젠가 내게 말했다. “거 참, 이상하게도 나는 코미디가 안 되는 거예요”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아니요, 코미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 고통에 머물러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화에서 웃음은 고통스러운 감정의 경련입니다. 송해 와 박시명 장소라는 쇼트의 하부구조. 이 히스테리의 경기장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은 절정은 (내가 줄거리를 정리하다말고 잠시 중단한 이후의) 마지막 시퀀스 전부이다. 무대는 고급 제과점. 이재명과 그의 아내, 딸 보영은 지금 다방 마담과 그 아들 세진과 (결혼을 해야 할지 말 지를 결정하기 위한) 서로간의 부모 상견례를 위해 여기 나와 앉아있다. 제과점은 1960년대 한국영화에서 상견례 장소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장소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트에서 찍은 것이 분명한 이 장소는 이제까지의 장면들에 비해서 지나치게 밝고 화사한 느낌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약간 비현실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이 경기장을 처음 작동시키는 이미지 벡터는 주문을 받으려고 테이블을 오가는 두 명의 점원, 그런데 마치 쌍둥이 로봇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송해 와 박시명 이다.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두 사람. 서로가 거울에 비친 것처럼 행동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동작을 보완하는 개그는 물론 송해와 박시명 콤비의 발명품이다. 이때 이 둘이 주문을 받으러 가는 손님은 이재명 가족의 테이블이 아니라 영화에 처음 등장한 (그녀 자신을 ‘뚱보 여성’ 코미디언 백금녀 와 구별하기 위해 지은 예명인) 오천평의 테이블이다. < 신세 좀 지자구요 >에 차례로 등장하는 코미디언들의 열거 방식은 이 영화가 종종 예능 프로그램 방식으로 연출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나는 이 대목에 돌아올 때마다 다소 무례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때 영화산업은 추락하고 있었다. 충무로의 수많은 재능들이 방송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방송국은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서 경험이 있는 연출자와 촬영, 조명, 편집, 혹은 이미 얼굴이 알려진 스타들과 안정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이 필요했다. 한국영화는 이중의 검열 속에 관객들에게 거리의 죽은 개 취급을 당하면서 구경거리로서도 버림받고 있었다. 재빨리 대중들은 스크린을 버리고 모니터 앞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1969년의 이야기이다. 그때 방송국은 안정된 직장이었다. 임권택 은 <신세 좀 지자구요>를 연출하면서 종종 텔레비전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것만 같은 실험을 할 때가 있다. 그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그 실험이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로셀리니를 시작으로 (그의 교훈에 따라) 에릭 로메, 자크 리베트, 고다르, 필립 갸렐, 외스타슈, 라이너 베르너 파쓰빈더, 헤어초크, 벤더스로 이어지는 수 없는 텔레비전과의 모험이 있다. 시네-텔레비전이라고 세르주 다네가 명명했던 시기. 레지스 드 브레는 좀 더 과감한 예언을 했다. 결국 관객은 시청자의 감각을 갖게 될 거예요. 그 말을 빌려서 나는 우리 시대의 관객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관객은 스마트폰 유저의 감각을 갖게 될 거예요. 하지만 임권택의 실험은 미학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관점에 따른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미디어의 잡종교배에 따른 방법의 탐구인지 아니면 그 자신이 방송국으로 옮겨갈 것을 염두에 둔 테스트인지는 (당연히 내가) 알 수 없다. 경기의 시작. 마치 우회를 하듯이 오천평의 테이블을 거쳐서 송해 와 박시명 은 이재명과 아내, 그리고 딸이 앉은 테이블로 간다. 물론 오천평은 경기장의 새로운 벡터를 더할 것이며 지금은 단지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재명의 아내는 신랑댁이 시간에 늦는다면서 툴툴 거리고 있지만 딸은 아직도 3분이나 남았다고 대답한다. 그때 저편에 ( 양훈 ) 과장과 아내, 아들( 이철 ), 계장( 서영춘 )이 이미 자리를 잡고 감시하듯이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그들이 왜 온 것일까. 대답은 단순하지만 기괴하다. 최후의 클라이맥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러나 그것은 영화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대답이다. 만일 그러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이재명 테이블로부터 시선 바깥에 숨어있거나 (이 영화가 희극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변장을 하고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다른 집안의 상견례에 개입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테이블에서는 마치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일종의 양해를 받은 시선의 차단. 혹은 관객과의 약속. 간단하지만 지나치게 간단해서 기형적인 배치. 말하자면 여기서는 통상적인 영화의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르(Fort)-다(Da)의 원근법이 성립되지 않고 있다. 혹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진행된다. 임권택 은 두 집단 사이의 시선을 다시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앙상하리만큼 드러난 인물들의 노출. 붙들어 매어놓은 것처럼 한 화면 속에 앉아있는 의자 위의 인물들. 그런데도 그렇게 해도 여기서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 장소는 영화의 법칙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임권택이 이따금 비영화적인 배치에 이끌릴 때 만들어내는 블록의 구성에 대해서 난처함을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순간 중의 하나이다. 세 개의 테이블. 이재명 가족이 기다리는 테이블과 오천평이 혼자 앉아있는 테이블과 과장 가족과 계장이 훔쳐보는 테이블. 마치 기계처럼 돌아가는 순서가 이어진다. 이제 소개가 끝나자 (조미령) 마담과 아들 세진이 제과점에 들어선다. 마담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도도하게 다가와 이재명 테이블의 의자에 앉고 그 기세에 눌려 ( 도금봉 ) 아내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는 듯 맞이한다.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홀의 서빙. 송해 와 박시명 점원이 다가와 오렌지 주스 주문을 받는다. 잔의 주문 숫자를 영어로 세면서 거기에 자기들의 숫자까지 슬쩍 더한 다음 (그런데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돌아간다. 마지막 등장인물. 말하자면 완결된 숫자. 이 장소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마담의 남편 자리에 구先生이 약간 거만한 자세로 나타난다. 모습이 가관인 것은 카이저수염을 달고 거기에 중절모를 쓰고 이 자리에 나온다. 물론 구先生도 누구를 만나러 이 자리에 자기가 불려나왔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구先生은 능청맞은 얼굴로 마치 처음 보는 사람들인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면서 인사를 한다. 이때 이재명과 그 아내, 딸 보영은 그가 구先生이라는 것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이미 이 시퀀스의 약속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그 변장한 모습 때문에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구先生이 쓰고 나온 모자는 원래 이재명이 가장 아끼는 비싼 모자이며 눈치 없는 식모가 그만 구先生이 필요하다는 말에 냉큼 내다줬다가 아내로부터 야단을 맞은 것인데, 바로 그 모자를 쓰고 나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한다. 좀 더 간단하게 자기 모자를 쓰고 나온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재명의 가족들이 구先生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 안에서 서로 약속한 생활의 기호들에서조차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중의 장님 효과가 있다. 몹시 망설이면서 이재명의 아내는 “혹시 구先生님 아니세요?”라고 묻지만 모자를 벗고 (뒤집어쓴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대머리(모양의 가발)을 보여주자 금방 실례했다고 사과한다. 이야기는 납득할 수 있는데 전개 방식은 ( 임권택 답지 않게) 전혀 납득할 수 없게 진행된다. 사실 이 장면이 드라마로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긴장은 구先生의 변장이 들키느냐 마느냐에 있다. 이중의 역할. 마담의 남편의 자리이자 구先生이라는 역할. 구봉서 라는 배우, 드라마가 불러일으키는 긴장. 여러 개의 진동판을 동시에 건드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허약한 약속. 여기서 그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이때 우리는 이 약속을 좀 더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좀 전에 한 말을 수정하고 싶다. 희극의 진정한 약속은 여기서 그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이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된다, 라고 전제를 던진 다음 그것을 기어이 들키게 만들어서 소동을 만드는 것이다. 전형적인 포르-다 게임. 이때 눈속임은 이중으로 배치된다. 이야기 안의 인물들은 속지만 이야기를 보는 우리는 절대 속지 않는다. 우리가 속는 것은 절대 속지 않는다고 가정된 약속 그 자체의 배신이다. 당신은 이 상황이 1969년에 만들어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희극 영화이며, 게다가 텔레비전에서 영향 받은 분장이라고 가볍게 지나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잘못 붙잡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지금 구先生의 외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모자라는 기호를 질문하는 중이다. 종종 어떤 기호들은 마치 침점과 같아서 이야기 안의 시간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 문제가 보기와 달리 그렇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이미지의 재현이 약속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재현 자체가 대상의 뿌리와 관련지어야 한다고 믿는 연출자이다. 그건 < 두만강아 잘 있거라 >에서부터 그러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이 연출한 1960년대의 사극을 볼 때마다 그가 어떤 순간에는 과도할 정도로 그 뿌리의 안에서 영화가 살아가야한다는 믿음을 밀고 나가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을 때를 발견하곤 했다. 그는 어느 순간 그게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놓고 이미지의 자리에 대한 내기를 벌이곤 했다. 영화는 그에게 재현될 때 그 안에 대상의 뿌리가 체화되고 시간이 종합되는 장면을 보는 것이라는 어떤 믿음의 일관성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걸 < 길소뜸 >에서 무시무시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를 만들던 해에 임권택은 < 황야의 독수리 >를 연출했다. 이 시기의 임권택은 매우 빠른 속도로 자기 영화의 어느 부분들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종종 어떤 영화들은 임권택의 영화들 안에서 완전히 고립된 것처럼 보일 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무언가 재현의 이미지들은 단절되고 스스로 이야기 안의 인물들의 기호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은 소리를 듣는다. 갑작스러운 사고. 여기서 괴상한 장면이 연출된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손님 오천평의 주문을 받고 핫 케익 10장을 구운 접시와 주스를 담은 쟁반을 들고 나오다가 그만 송해 와 박시명 은 서로 부딪쳐서 그걸 바닥에 떨어트려 접시는 나뒹굴고 컵은 깨지고 핫케이크는 바닥에 떨어진다. 그때 갑자기 기적이 벌어진다. 놀라지 말 것. 영화 화면이 거꾸로 돌아가면서, 말하자면 카메라 필름을 되감으면서(rewinding_shooting), 바닥에 떨어졌던 케이크와 주스 잔과 접시가 바닥에서 위로 날아올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물론 간단한 테크닉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영화의 기계장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리듬은 산산 조각나버린다. 혹은 완전히 작동을 중단하게 된다. 차라리 어리둥절한 중단. 이 순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버린다. 무언가 이 쇼트는 이 갑작스러운 리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보인다. 마치 이 순간에 대한 알리바이를 준비하기라도 하듯이 구先生은 먹을 것을 보면 식탐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반복되었다. 이를테면 양주병에 바꿔 넣은 화장품 스킨로션 한 병을 모두 마시고 화장실을 몇 차례이고 반복해서 드나드는 장면. 이때 임권택 은 구先生의 복통을 배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장면과 마치 폭격기의 폭음과도 같은 과장된 사운드를 결합시켜서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주스를 보자 구先生은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맥주를 마시기라도 하듯이 그걸 벌컥벌컥 마신다. 그때 이들과 아무 상관없는 오천평은 자신이 주문한 핫케이크를 다른 테이블에서 혼자 정신없이 먹기 시작한다. 두 개의 테이블. 하나의 장소, 새로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테크닉. 영화는 그 둘을 반복해서 서로 오가면서(cross_cutting) 마치 둘 사이에 어떤 관계라도 있다는 듯 보여준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도 없으며 또한 드라마도 생겨나지 않는다. 강제적인 매듭. 사회적인 태도를 포기하고 본능에 충실하겠다는 듯한 동물적인 제스처. 오로지 그 둘의 관계는 탐식의 광란에 가까운 속도 이외에 어떤 연관성도 없다. 여기까지 드라마를 쫓아왔다면 당신은 중얼거릴 것이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그리고 이 말은 내가 맨 처음에 했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반응은 이제 이 운동이 완전히 이야기 바깥으로 나갔음을 알린다. 거의 제멋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신체들. 마치 그 주인들이 통제를 상실하기라도 한 것처럼 카메라가 대상을 건드리면 그 부위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구先生과 오천평이 각자의 테이블에서 각자의 음식에 매달리자 과장 가족과 계장이 앉은 테이블에도 진동이 온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이걸 바라보던 ( 서영춘 )계장이 마치 이미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인형이 두 사람의 탐식에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듯이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내자 그게 날아가 ( 양훈 ) 과장의 입에 꽂힌다. 사라진 삶의 법칙. 그걸 (양훈) 과장이 다시 뱉어내자 그게 아내의 코에 가서 박힌다. 거의 서커스와도 같은 동작. 물론 여기서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훈련받은 연기자들의 묘기가 아니라 영화의 기계적인 트릭이다. 오로지 영화라는 기계의 작동. 그걸 아내가 다시 콧바람으로 불어내자 그게 날아가 다시 (서영춘) 계장의 입에 꽂힌다. 질세라 그걸 다시 뱉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벌려 ( 이철 ) 아들이 받아먹는다. 이 개그는 사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와 아무 상관도 없으며, 심지어 이재명 가족과 마담 가족 간의 상견례의 어떤 내용과도 상관이 없다. 그들 사이에서의 행동은 어떤 비유도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테이블은 상징과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세 개의 테이블을 어떻게 짝 지워야 하는 것일까. 세 개의 테이블은 가장 단순한 상태의 신체라는 운동의 작동만이 기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제 이 세 개의 테이블로 나뉜 기계적인 활동을 어떻게 하나로 결합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았을 뿐이다. 첩첩산중. 이 활동에서 어떤 작동을 중단시키고 이들을 보다 큰 범주의 새로운 운동의 경기에로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가. 구先生은 큰 기침을 한다. 콧물을 닦으려하자 (당신도 예상했듯이) 카이저수염이 떨어져나간다. 이때 이재명과 아내는 깜짝 놀라지만 이상한 것은 그걸 보고 딸 보영이 깔깔 웃는 것이다. 사실상 구先生의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상견례는 파국을 맞을 것이며 보영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면서 반복해서 웃는다. 이 순간 구先生이 실례했습니다, 라는 대사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할 말이 없다. 상황종료를 알리는 대사. 임권택 은 다시 상황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파리가 구先生의 대머리 가발에 앉는다. 이번에는 (두 명의 점원 중의 한명인) 송해 가 다가가 구先生의 머리에 앉은 파리를 잡는다고 내려치다가(물론 우리는 그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긴장을 불러내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두려운 기대이다) 그만 가발을 벗겨버린다. 그제서야 이재명과 아내는 마담의 남편(역할을 하기 위한 나온 이 사람)이 구先生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관객 중에 이 사람이 구先生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여기엔 어떤 게임도 없다) 맙소사. 드라마는 사실상 여기서 가장 불편한 순간을 맞이한 것이르였?이상 해야 할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다. 새로운 동선. 그때 어디선가 크림을 잔뜩 토핑한 케이크가 날아와 구先生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는다. 돌아보니 ( 양훈 ) 과장과 아내, 아들, ( 서영춘 )계장이 일어나서 이재명의 테이블을 향해 일제히 던지기 시작한 케이크가 날아든 것이다. (할리우드 희극장르에서) 파이던지기(라고 부르는) 액션. 파이던지기는 카오스로 달려가는 입구이다. 임권택 은 전쟁영화를 찍을 때 누가 누구를 (종종 과도할 정도로) 쏘는 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자이다. 하지만 자, 정반대로 여기서 임권택은 거의 고의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던지는지를 알 수 없게 동선을 무시하고 (좀 더 정확하게는 넘나들면서) 서로에게 집어던진다. 혹은 누가 누구에게 던지든 상관이 없다. 순간적으로 그 자리를 피한 사람은 쓰러진 책상 밑에 모습을 숨긴 이재명의 딸 보영과 마담의 아들 세진이다. 그때 송해 와 박시명 은 재빨리 파이던지기의 동선에서 빠져나와 케이크를 맞고 기절한 오천평의 삼백만 원짜리 반지를 빼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서로 관계가 없는 전체. 그저 동선의 재난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활동. 그때 인물들은 뒤집어쓴 케이크의 크림으로 무너져 내린 형상이 되어간다. 반드시 상대방을 겨냥할 의도조차 없이 사방에서 서로 던질 때 여기에는 원칙이 없다. 그런 다음 거의 지친 그들이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할 때 (양훈) 과장과 이재명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서영춘) 계장과 구先生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들 사이의 짝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사이에 ( 이철 ) 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빨리 바깥으로 도망친다. 당신이 좀 더 예민하다면 문득 화면의 주변을 돌아볼지 모르겠다. 그렇다. 그들이 케이크를 집어 던지는 사이에 처음 시작할 때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은 아무 말 없이, 말 그대로 소리 없이, 마치 그들의 난동극에 조금이라도 방해라도 될 것 같아 자리를 피하기라도 하듯이, 흔적도 없이 화면에서 사라졌고, 그런 와중에도 카운터 저편의 제빵 셰프들은 그들이 만든 케이크를 사방에 집어던지는 동안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마치 그들을 보지도 못한 듯이, 계속해서 빵을 만든다. 그러다가 구先生이 두 어머니, 이재명의 아내와 다방 마담에게 그들의 자식들에게는 그들의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충고를 주고 떠나갈 때에야 비로소 돌아본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장면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는 대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싶다. < 신세 좀 지자구요 >는 임권택 이라는 설명 바깥으로 나간 영화이다. 그냥 서둘러 실패작이라고 설명한 다음 빠져나오고 싶을 정도로 한편으로는 부서져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에너지가 그 사이를 메워나간다. 처음 볼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예기치 않은 골격이 나타나 영화의 윤곽을 다시 설정하기 시작할 때 임권택은 거기서 무언가 혼란스럽긴 하지만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변형을 가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걸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는 이런 방식을 두 번 다시 취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무언가 모델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눈으로 만지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육체처럼 다루어지기 시작할 때 몸은 히스테리에 빠져들기라도 한 것처럼 무언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려 든다. 지나치게 빈약한 장치들. 모든 것이 드러나 버린 몸. 벌거벗은 영화. 여기서 눈은 기능을 포기했고 창자가 음식에 반응하면서 영화의 장치들을 뒤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배고픈 영화. 굶주린 수사학. 나는 그 사이에서 무언가 거기서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건 리비도의 퍼포먼스이다. 이제까지 임권택을 다루면서 이상할 정도로 아무도, 정말 누구도,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질문. 나는 이 질문의 시작을 여기서부터 해볼 생각이다. (계속) 1969년 9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신봉승 촬영 장석준 조명 김진도 편집 장현수 음악 김기갑 구봉서 ... 구선생 김희갑 ... 이재명 도금봉 ... 이재명의 아내 전양자 ... 이재명의 딸, 보영 조미령 ... 마담 서영춘 ... 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