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레스 클레이븐
- 감독
- 테일러 핵포드
- 제작년도
- 1994
- 출연
- 캐시 베이츠, 제니퍼 제이슨 리, 크리스토퍼 프라머, 존 C. 라일리, 에릭 보고시안, 데이빗 스트라탄
1930년 1월 조선극장과 단성사가 토키를 상영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의 활동사진 변사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조선의 영화 문화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변사들의 연행이 ‘화예(話藝)’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원숙한 경지에 이른 때였다.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변사의 한 사람, 김영환은 곱상한 외모와 단정한 매너로 흥행계에서 인기를 얻어왔을 뿐 아니라, <장화홍련전>(1924), <세 동무(삼걸인)>(1928), <약혼>(1929), <젊은이의 노래>(1930), <연애광상곡>(1931)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했으며, “낙화유수”, “세 동무” 등의 영화 주제가와 “강남제비”, “추월색” 등의 유행가를 작곡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1928년에 단성사에서 조선극장 해설부 주임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앞으로 수년 내에 변사라는 직업이 사라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에서의 영화해설 역사를 설명한 음반 《역려》(1932)에서, 그는 자신이 서있는 격변의 시간을 “활동사진이란 그 이름이, 영화라는 이름으로 바꾸이는 동시에 변사라고 하든 것도, 해설자라는 것으로 고치어진 오늘” 1 이라는 정도로 인식했다. 그가 보기에 토키 이후의 변사는 ‘활동사진 변사’에서 ‘영화의 해설자’로, 그러니까 극장의 엔터테이너에서 필름 텍스트에 한걸음 더 다가가 영화의 번역자로서 자기 인식을 가져야 하는 존재였다. 김영환에게는 더 나은 해설자가 되는 것이 중요할 뿐 굳이 다른 분야를 곁눈질할 필요가 전혀 없어 보였다. 김영환은 ‘조선인 변사 1세대’ 서상호와 김덕경의 견습으로 흥행계에 입문했다. 경상도 출신으로 사투리 탓에 견습 시절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꽤 오래 생활고에도 시달렸지만, 이제 영화해설계의 중진이 되자 변사의 화예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는 외국영화뿐 아니라 국산영화를 상영할 때도 변사의 해설이 붙는 일본이나 조선에서 “해설은 외국인들도 일찍 발견치 못한 영화감상의 효과를 한층 더 힘 있게 하는 일종 특수적 색채”이며 “영화를 일반적으로 감상시키는 동시에 영화의 색채와 더 예민한 감각과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작품을 해부하여 일반적 감상에 바치는 일종 수단”인 영화해설에는 그야말로 ‘연구’가 필요하다. “지껄이되 잘 지껄이자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조리 있게 잘 지껄일까를 힘써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연구 끝에 김영환은 영화의 주제와 플롯, 분위기를 이해하고, 작자의 주안(主眼)과 세선(細線)을 분별하는 안목을 보유하며, 영화 번역에 창의성을 발휘하되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는 것이 해설자의 자질이라고 풀어 설명했다. 2 1931년 조선극장에서 <럭비시대>(The Forward Pass, 1929)와 <크랙 장군>(General Crack, 1929)을 상영하던 때, 김영환이 기록한 일기에는 이제 막 토키 시대로 진입한 조선 변사의 일상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는 하루하루가 바쁜 변사였다. 조선극장에서는 이미 외국의 토키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김영환은 그 외국어 자막을 번역해 설명하는 연행을 했다. 그런 한편 개인적으로 유성기 극음반을 취입해 상당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유성기와 라디오 보급률이 서서히 증가하면서 극장에서 ‘오리지널’한 변사의 목소리는 레코드를 통해 ‘복제’되고 방송을 통해 ‘전파’되었다. 변사가 자신의 다른 목소리들과 공존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30년대의 김영환은 라디오에 출연해 영화를 해설하고 극음반 취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새로운 ‘재생 예술’들과 상보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소리 복제 시대’를 반기고 있었다. 1931년 봄 김영환이 콜롬비아레코드에서 취입한 《춘향전》은 윤혁과 이애리수의 실연(實演)과 박록주의 창, 그리고 그 자신의 설명이 어우러진, 다시 말해 연극과 판소리, 영화해설이 뒤섞인 음반으로서 구매자들에게 풍성한 즐거움을 제공했다. 극음반이 잘 팔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던 김영환은 극음반 취입의 소감을 이렇게 기록했다. “영화는 형태의 촬영이라면 레코드는 음성의 촬영이다.” 3 기술적 격변의 시기에 그는 쏟아지는 신작 영화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계 영화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자, 일본의 영화 잡지 『키네마순보(キネマ旬報)』와 『키네마주보(キネマ週報)』를 구독하며 동시대적인 감각을 익히려 노력했다. 어느 날은 자신이 취입한 음반이 많이 판매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솔직하게 적었지만, 또 어느 날은 일본의 명변사 도쿠가와 무세이(德川夢聲)가 ‘토키영화 설명 반대론’에 대해 반론을 펼친 데 깊이 동조했다. 김영환은 여기서 언어와 계급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토키영화를 해설하지 않는 것은 민중 오락인 영화를 “일부 유식급(有識級)만이 즐길 수 있는 일종 독락적(獨樂的) 기호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인해 일본영화 산업계의 구조 조정이 시작된 것을 영화 노동자의 입장에서 아프게 바라보기도 하는데, 체계를 갖춘 스튜디오 하나 없이 산업적으로 허약한 조선영화의 현실에서는 그것조차도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4 기술과 산업의 후진성이 어떤 경험을 ‘결핍’시키거나 ‘지연’시키는 조선의 현실에서, 1930년대 초반의 변사들은 기존의 상영 관습을 이어가는 차원에서, 또 외국어 토키에 대한 관객들의 언어적 소외를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발성영화의 음향을 줄이고 영화해설을 곁들이는 ‘토키 연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관객의 항의에 부딪치지는 않았다. 비단 외국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조선에서는 여전히 무성영화가 제작되고 있었고 아직 토키 상영 설비를 갖추지 못한 극장들도 많았다. 무성영화 프린트는 계속 유통되었고, 변사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며 관객들이 영화 사운드와 영상 동조 시스템을 이해하고 자연스레 토키 감상에 익숙해지자 변사는 점차 불필요한 존재로 그의 연행은 ‘낡은 문화’로 인식되어갔다. 김영환의 일기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30년대 후반, 경성의 이른바 ‘일류관’에서 변사의 해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근대 문화의 첨단에 서 있었던 변사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활동사진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1938년 가을, 조선일보영화제에 자극을 받은 ‘재경해설유지연맹(在京解說有志聯盟)’이 동양극장 영화부의 후원을 얻어 11월 16일부터 3일간 ‘무성영화 감상제’를 개최했다. 그해 여름 우미관 화장실에서 변사한 왕년의 인기 변사 서상호를 추모하듯, 무성영화 감상제에서는 과거의 동료들인 ‘무성영화 해설계의 권위’ 변사 이십여 명이 해설을 하고 그들과 함께 이름을 날리던 악사들이 영화음악을 연주했다. 5 <선라이즈>(Sunrise: A Song of Two Humans, 1927), <부활>(Resurrection, 1927), <거리의 천사>(Street Angel, 1928), 그리고 조선영화 <철인도>(1930), <아리랑 전·후편>(1926, 1930) 등 ‘추억의 명화들’이 이병조, 최병룡, 서상필 등의 해설로 다시 상영되었다. 그때가 아마도 ‘잊혀졌던 암실의 웅변가’들이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조명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진 2. ‘무성영화감상제’ 광고 출처: 『동아일보』 1938년 11월 16일자, 3면. 1) 배연형·구인모,「역려」『유성기 시대, 변사의 화예』, 한국문화사, 2018, 321쪽. 2) 김영환,「영화해설의 소고(小考)」『대중영화』 제4호(1930년 7월), 8~13쪽. 3) 김영환,「영화생활」『영화시대』 1권 3호(1931년 5월), 32쪽. 4) 김영환, 위의 글, 30~31쪽. 5) 「해설유지 주최 무성영화감상제」『동아일보』 1938년 11월 17일자, 4면. 상단사진 1. 변사 김영환의 영화일기 출처: 「영화생활」, 『영화시대』(1931년 5월) (아단문고 미공개 자료 총서 2013, 7권, 104쪽)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 김영환, 「영화생활」 『영화시대』 1권 3호(1931년 5월), 30~32쪽. (부분 발췌) 3월 7일 (토) 10시 기상— 근래 처음으로 충분히 잠을 잔 모양이다. 어린애가 몸성히 잘 있다는 편지가 왔으므로 오늘은 마음이 좀 편해진다. 오늘은 토요일, 주야(晝夜) 곱빼기를 또 마시는 날이다. 『영화시대』에 보낼 원고 몇 장을 쓰고 나니 벌써 무대 교대 시간이 되었다. 마음에 없는 작품을 지껄이는 것이야말로 울면서 겨자 먹기, 이를테면 ‘빵’ 구실에 지나지 못하니 ‘밥’이 시키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는 그것뿐. 밤에 김연실, 강석연, 강석제, 유영광 이 네 분의 양(孃)들이 놀러 왔었다. 편지 쓰고 있던 때라 고급적 인사를 못하였더니 “방해가 너무 많아 미안합니다”라고 석제 씨의 꼬는 말씀 한마디에 낭자군은 일제 행동! 네 분의 양군(孃群)은 객석으로 달아났다. 저녁 일을 마치고 『키네마순보(キネマ旬報)』(3월 1일 제393호)를 통독함. 유니버설 춘계 작품 에드윈 커리우 (Edwin Carewe) 감독, 루프 벨레즈 (Lupe Velez) , 존 볼스 (John Boles) 주연으로 톨스토이의 『부활』이 재차 영화화가 된 모양. 반가운 소식이다. 돌로레스 델 리오 (Dolores del Rio) 가 지긋지긋하게 싫으니만큼 전(前) 영화 <부활> (Resurrection, 1927) 에서도 나는 호감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라 재차 영화화인 루프 벨레즈와 존 볼스의 이 신(新) <부활> (Resurrection, 1931) 에 나는 기대를 가져본다. 메트로골드윈메이어 영화로 세실 B. 드밀 (Cecil B. DeMille) 감독 <마담 사탄> (Madam Satan, 1930) 의 발표는 그리 반갑지가 않다. 또 어느 구석에서든지 기필코 하나님이니 무엇이니 하고 씨부렁대놓은 구절이 있을 것 같아서 평(評)이나 시사를 대하기 전까지는 믿고 싶지가 않다. 동 회사 클래런스 브라운 (Clarence Brown) 감독 <불사조> (Wonder of Women, 1929) , 문호 주더만 (Hermann Sudermann) 의 원작인 만치 스토리의 통속적이 아니요, 비상업적인 그 점에서 어서 좀 보고 싶다. 일활(日活) 촬영소에서는 소원(所員)의 감봉 정리를 단행하였다고? 해고당한 50명 중에는 기술자나 배우로서 제일선에 나선 사람은 하나도 끼이지 않은 모양. 그러고 본즉 결국 수하 자(手下者) 참수 단행이나 아닌지 원! 먹을 것이 제법 생긴다는 저 땅에서도 영화 노동자의 수난이 생길 데에야 백사지(白沙地) 이 땅 위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우리 영화 노동자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리. 아직도 참수 단행은 당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도쿠가와 무세이(德川夢聲) 씨의 「영화연첨일기(映畫軟尖日記)」, 『키네마주보(キネマ週報)』소재, 토키영화 설명 반대론에 대한 대항전은 흥미 있게 읽었다기보다도 장차 우리에게도 전환되어올 수난일 듯한 거기에서 같은 감정에 가슴이 흔들린다. 토키영화 설명 반대론에 대해서는 나 역시 거기에는 수긍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직업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제3자의 견지로도 물론 그러하다. 만일 세계 공통어가 세계적 보급과 발달을 얻고, 그리하여 그 세계 공통어로 취입(吹込)하여 토키영화를 제작한다면 모르되, 그것을 얻지 못하는 금일에 있어서 토키영화 설명 반대를 고창(高唱)하는 것은 민중 오락에 본위를 가진 영화 그 물건으로 하여금 일부 유식급(有識級)만이 즐길 수 있는 일종 독락적(獨樂的) 기호물을 만들어 버리겠다는 전횡적 야심인 동시에 가공적 잠꼬대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 과학문명의 발달은 노동자의 생명을 뺏는 독와사(毒瓦斯)! 축음기의 권위로 말미암아 음악사(音樂士)의 희생을 본 오늘에 있어 토키영화의 출현으로 해서는 또다시 해설의 존재까지 그러하지 않은가! “아- 쿠오바디스 (Quo Vadis) 변사여!” 무세이 씨의 차탄사(嗟歎詞)이다. 참 아닌 게 아니라 어디로 갈꼬! 3월 8일(일) 9시 기상- <럭비시대> (The Forward Pass, 1929) 를 오늘도 주야로 두 번씩이나 씨부렁댈 일을 생각하니 졸음이 온다. 존 배리모어 (John Barrymore) 주연 <크랙 장군> (General Crack, 1929) 은 내가 보지는 않았으나 생각건대 <럭비시대>보담은 지껄일 재미가 좀 있으리라 했더니 후반을 담임한 성동호 군, 지긋지긋해 죽겠다는 말. 그러나 <럭비시대>나 <크랙 장군>이 태작이라고 할 지경이면 배급소의 시비를 받을 말인 고로 이를테면 어디까지든지 태작이 아니요, 걸작이란 말이다. 요컨대 이 두 개의 걸작이 유감천만히도 우리들의 입에는 맞지 않는 음식과 같아 씨부렁대기에 매우 부아통이 터질 뻔 했다는 그것뿐이니 당해 배급소여! 달은 잡지 마실지어다. 적선동 강대원 씨에게 조극(朝劇) 초대권으로 미성(微誠)을 표하였다. 콜롬비아축음기회사 문예부 강윤석 씨 방문, 나의 취입한 레코드 초회 발매, 레코드 대회, 2회 발매, 《춘향전》은 상당히 잘 팔린다는 말 듣기에 기쁘다. 영화는 형태의 촬영이라면 레코드는 음성의 촬영이다. 촬영을 마친 영화배우나 취입을 마친 취입자의 궁금증은 피차가 일반이니 시사나 시험반(試驗盤)을 대하기까지에 일력장(日曆帳)이 곤죽이 되어버리는 것도 똑같은 일이다. 3회 발매품은 무엇인지 어떻게 되었을까. 잘 되었으면 좋고, 못 되었으면 낙망! 낙망! 단성사 해설부 견습이던 편순만 군. 조극 무대로 오겠다는 것을 단성사 해설 주임 김덕경 씨의 승낙을 맡아오라 했더니 저녁에 씨(氏)의 쾌락을 맡아왔음으로 즉시 출연을 허락하였다.
< 쇼생크 탈출 > < 미져리 > < 미스트 > < 캐리 > < 돌로레스 클레이븐 > < 하트 인 아틀란티스 > < 그린 마일 > <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Apt Pupil > < 샤이닝 > < 스탠 바이 미 >...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중 보편적으로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거나 상업적 성공, 혹은 비평적 성과를 얻어낸 작품을 대략 생각나는 대로 적어 봤다. 10편이다. 셰익스피어를 제외하고 어느 소설가가 10편 이상의 ‘성공적 영화화’라는 결실을 얻어 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킹에게는 ‘망한 영화가 많은 원작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물론 그렇다. 비교적 근래에는 < 셀: 인류 최후의 날 >과 사이파이 채널의 드라마 <헤이븐>이 있었고 <공포의 별장>이라는 제목 등으로 세 번이나 만들어진 「세일럼스 롯 Salem’s Lot」들도 신통치 않았다. 더 옛날로 가 보면 수많은 똥망작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 옥수수밭의 아이들 > 시리즈 중 1편을 제외한 모든 작품들이 그러하며 < 괴물 Graveyard Shift > 등 온갖 희한 야릇한 영화들로 필모그래피가 더럽혀져 있다. 이건 다작을 하는 작가의 숙명이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거나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작품들 중에서도 스티븐 킹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적지 않다. < 초능력 소녀의 분노 Firestarter >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초능력 소녀의 분노>라는, 시놉시스를 제목화 해버린 번역제의 1984년 영화 < Firestarter >가 있다. < 캐리 >를 감명 깊게 본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유년판 과학 소설 풍 캐리’라는 측면에서 박수를 보낼 수 있다. 특히 번역제에 나와 있는 바로 그 ‘분노’ 시퀀스가 지니고 있는 후련함과 은근한 공포는 나에게 30년 이상 뚜렷하게 각인 돼 있다. 사실 스티븐 킹 원작 영화들이 독특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임에도 불구하고 B급 상상력으로 도배돼 있는 바람에 B무비로 직행한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지금은 거장이 돼 버린 크로넨버그의 < 초인지대 Dead Zone >가 그랬고 메리 램버트의 < 공포의 묘지 Pet Sematary >라던가 호러의 제왕 존 카펜터의 < 크리스틴 > 역시 1980년대 B무비를 사랑한 이들이라면 꼭 거쳐 간 작품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 자신 역시 B무비의 광팬이라는 사실은 「죽음의 무도」만 읽어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킹은 꾸준히 B무비와 어울리는 스토리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생물의 반란’이다. <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들 중 대중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소재들이 예의 ‘무생물의 반란’이다. 그중에서도 기계들이 인간을 해친다는 내용의 영화들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 써스펙트 >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시됐던 1995년 작 <맹글러 The Mangler>에서는 세탁 공장의 대형 프레스 다리미를 비롯한 기계가 인간을 학살한다. 2016년작 < 셀: 인류 최후의 날 >은 핸드폰의 전자파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설정이었고, < 크리스틴 >은 저주받은 자동차의 이야기다. 이렇게 하드웨어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소재는 그야말로 B급 영화를 위해 최적화돼 있다. 진짜 사물을 배치하고 약간의 장치만 하면 되니까 아트 디렉션에서도 큰돈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단편 「트럭」은 1980년대와 90년대에 두 번이나 영화화됐는데 그중 먼저 만들어진 <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는 킹이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전문가 평가와 박스오피스 성적 모두 실패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 웨스트월드 >나 < 코마 > 등에서 감독으로서의 재능 역시 증명한 것과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들의 안정적 간택을 받을만한 정서로 무장했던 마이클 크라이튼에 비해 스티븐 킹은 스스로 B급 정서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 <맥시멈 오버드라이브>는 한마디로 러스 마이어의 그라인드하우스 영화들, 로저 코먼이나 조지 A 로메로의 저예산 호러들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그 유명한 콜라 자판기의 공격 신이라던가 신체 절단 장면들은 스티븐 킹이 이 영화를 어떤 태도로 만들었는지 증명하는 부분이다. 충격적인 장면을 무표정하게, 때로 잔혹 유머로 버무리는 애티튜드는 킹이 소설을 집필하는 자세와도 동기를 이룬다. <맥시멈 오버드라이브>의 가장 후련한 부분은 바로 음악이다. 작가들만으로 이뤄진 밴드 ‘Rock Bottom Remainders’의 멤버이기도 한 스티븐 킹은 AC/DC의 노래들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채웠다. 특히 주제곡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Who Made Who’의 호방함은 이 영화가 지닌 자세와 격을 함께 한다. 그렇게 할리우드의 평범한 감독이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은 대단했지만 안타깝게도 배우를 보는 눈과 다루는 방법에서 미숙함을 드러내는 바람에 이 작품은 나 같은 변태들만 좋아하는 컬트영화가 돼 버렸다. 스티븐 킹의 영화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의 원작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영화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좋아하지는 않는 영화도 만들 수 있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하나도 놀랍거나 안타깝지 않다. 그 무한한 의외성. 그래서 언제나 스티븐 킹의 영화를 기다리게 된다.
2차대전 종전 직후 수작 < 데이 워 익스펜더블 >(1945)과 <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를 잇달아 내놓은 존 포드는 마음속에 오래 품어온 영화 한 편을 완성한다. 그래엄 그린 Graham Greene의 소설이 원작이며 우울한 떠돌이 성직자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어떤 제작자도 원하지 않는 프로젝트였다. 여기엔 결투도 로맨스도 없었으며 멕시코 올 로케이션 촬영이어서 제작비 부담도 컸다. 포드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릴 자눅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건 돈을 걸만한 상업영화가 분명히 아니야. 하지만 내 심장과 믿음은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이 영화를 위해 포드는 폭스의 연봉 60만 달러 계약을 거절하고, 자신의 프로덕션 브랜드인 아고시 Argosy를 법인화해 직접 제작에 나섰다. 결과는 처참했다. 아고시는 1백만 달러의 빚을 짊어지게 되었고 이 영화가 성공하면 포드의 또 다른 개인적 프로젝트 < 조용한 사나이 >를 지원한다는 RKO와의 계약도 무용지물이 됐다. 포드가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거의 전부 뜯어고치는 바람에 시나리오 작가 더들리 니콜스와의 사이도 틀어졌으며, 원작자 그래엄 그린도 “포드의 아일랜드식 카톨릭주의 때문에 내 원작이 희화화되었다”며 비난했고,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도 멀어져갔다. 평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나쁜 편이었다. 포드의 열렬한 지지자인 린지 앤더슨조차 이 영화가 “과도하게 장식적이고 감상적”이라고 평했고 장 미트리는 “이론적 리얼리티를 지닌 이론적 드라마이며... 탈개인적이고 차갑다”고 비판했다. 오직 포드 자신만이 이 영화의 유일한 변호인이었다. “나는 이 영화 보는 게 즐겁다. 내게 이 영화는 완벽하다.” 무엇이 포드 스스로 ‘완벽’이라는 단어까지 쓰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가 왜 그토록 폄하되었는지도 짐작하기 힘들다. 1997년 이국 도시에서 낡은 VHS 테이프로 이 영화를 처음 만났을 때의 놀라움을 아직 기억한다. 우울한 표정의 한 사내가 대의도 명분도 없이 죽음을 향해 느리게 걸어가고 있었다. 영화는 줄곧 어둠과 불안으로 가득했고,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사내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이게 정말 존 포드 영화인가? 사내의 선택에 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지만 그 선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 형언하기 힘든 압도적인 공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이 영화가 재발견을 기다리는 포드의 걸작 가운데 하나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남자가 들판을 지나 무너진 성벽을 넘어 무엇엔가 쫓기듯 비틀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가 이 영화의 영웅인 신부(헨리 폰다)이다.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도 영웅의 등장이 이토록 불길하고 초라하지 않았다. 장면이 바뀌면 그는 아치형의 기둥이 끝없이 도열해 있는 회랑을 지나서 걸어온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말이 아니라 노새를 타고 마을을 향해 간다. 그리고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진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경에서 시작된 옛날이야기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주제이며 세계 여러 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영화의 촬영지는 멕시코이며 멕시코 정부 및 영화계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배경이 된 마을은 적도와 멀리 떨어진 허구의 공간이다. 누가 알겠는가.” 포드의 영화적 무대는 대개 미국의 서부이거나 아일랜드의 마을이었으며, 지리적 좌표와 역사적 시간과 연루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 도망자 >는 자신의 예외성을 처음부터 공표한다. 여기엔 특정한 시대와 장소도 지정되지 않고 신부를 비롯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이 자의식적 우화의 원본은 그래엄 그린의 소설 이전에 신약성경이다. < 3인의 대부 Three Godfathers >가 서부극의 세팅 위에서 예수 탄생기를 원용했다면, <도망자>는 초시대적 알레고리로 예수의 최후를 우울증적 서사와 표현주의적 영상으로 번안한다. 도입부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정체불명의 마을에 진입한 사내는 언덕 위의 폐건물과도 같은 버려진 성당으로 들어간다. 이어지는 3분여의 짧은 성당 숏 안에 포드는 극도의 간결함과 압축미로 이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을 단번에 드러내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한다. #1 #2 #3 #4 #5 신부는 긴 그림자로 성당에 입장한다(#1). 실루엣으로만 그의 모습이 드러나며 카메라 위치를 반대로 잡은 장면에서도 그는 여전히 검은 실루엣이다(#2). 그는 그림자 혹은 어둠의 존재이다. 그의 지친 듯 얼빠진 표정이 드러나면(#3), 그에게 드리워진 어둠이 그가 단순히 도망자라는 신분을 은유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의 상실과 밑 모를 불안이라는 내면의 표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형 십자가도 성상도 없는 성당에서 그를 맞은 건 부서질 듯 왜소한 나무 십자가들이다(#4). 남자의 뒤를 따라 성당에 들어온 여인 마리아 돌로레스와의 만남 장면에서 그의 불안한 존재감은 더 강조된다. 여인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둘러싸이지만 사내는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다(#5). 이 명암 대조는 관습적인 조명법을 교란한다. 신부는 어둠의 편에 여인은 빛의 편에 속해 있는 것이다. 여인이 묻고 남자가 대답하는 짧은 대화가 이어진다. “누구세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여기가 내 집이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이 마을 남자들은 내가 다 알아요.” “........................” “혹시 경찰인가요?” “경찰을 피하고 있습니다.” “범죄자인가요? 도둑질하거나 살인을 저질렀나요?” “아닙니다. 난 신부입니다. 내 성당이지요.” 이 단문의 대화만으로도 이 상황의 모든 것이 단번에 드러난다. 아이를 안은 여인은 창녀이고 남자가 로마군에 쫓기는 예수처럼 경찰에 쫓기는 신부이며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여인이 “교회가 다시 열리나요?”라고 묻자 사내는 “아마도요”라고 대답한다. 여인이 “세례를 못 받은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신부님이 여기 오신 건가요?”라고 묻자 사내는 역시 “아마도요”라고 대답한다. 사내는 자신이 이곳에 온 돌아온 이유와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매춘부인 여인은 지금 빛을 받으며 구원자의 자리에 서 있고, 신부인 사내는 범죄자처럼 어둠 속에서 무언가 망설이고 있다. 창녀=구원자라는 암시가 < 역마차 >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일곱 여인들 7 Women>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 도망자 >는 무엇보다 먼저 < 젊은 날의 링컨 >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내의 망설임 때문이다. 역시 헨리 폰다가 연기한 젊은 링컨에게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망설이듯 전진하는 우아하고도 기묘한 움직임이었다.(4회 참조) <젊은 날의 링컨>애서 자신의 선택이 자유의지인지 운명의 간계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공동체 영웅, <도망자>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성직자는 동질의 인물이다. 그들을 일반적 대중영화에서의 고결한 속인과 대비되는 범속한 성인(聖人)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존 포드의 영화를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가 그 범속성의 몸짓이다. 그들에게 종교적(혹은 공동체적) 소명은 고결한 사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대의에 투신하는 게 아니라 대의의 실행자라는 자리에 불려 나온 것이다. 하여 그들은 종종 그 자리에 가기를 원치 않는 듯 느리게 움직이고 엉뚱한 심술을 부리며, 불안과 공허의 몸짓으로 프레임을 채우고 때로 자신의 지위를 부인하기도 한다. < 도망자 >의 사내에게 목숨을 걸고 자신의 교회로 돌아온 결단과 “아마도요”라는 망설임의 발화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요”라는 말은 자신의 소명에 대한 소극적이고 우회적이지만 그러나 완강한 부인의 몸짓이다. 사내가 신부임을 알게 된 마리아가 몸을 숙여 그의 손에 입 맞추려 하자, “그러지 마세요”라고 만류한다. “그러지 마세요”라는 말은 이후에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그는 지금 성직자의 임무를 위해 돌아온 자리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계속 부정하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짧은 순간이나마 소명을 잊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의 슬픔에 젖은 표정과 느린 동작, 낮고 우울한 목소리는 그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임을 동시에 암시한다. 그는 다시 소명을 부인하고 탈출을 시도하겠지만 결국 실패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덧없는 시도의 여정이 될 것이다. 아름답고 불안하며 고요한 성당 장면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예감케 한다. < 도망자 >를 보고 로베르 브레송의 <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1951)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회의하고 불안이라는 질병에 시달리는 성직자, 그를 폄하하고 부정하는 환경, 사제의 죽음이라는 귀결 등은 물론이고 에피소드 병렬의 구조, 연극적인 말투와 연기, 인물의 텅 빈 표정과 동작에 대한 모더니즘적 몰두에서도 공통적이다. 하지만 이 유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는 종교적 외피 아래 숨겨진 리비도가 점액질의 촉감을 만들어내지만, <도망자>는 엄연히 고전적인 캐릭터 스터디의 면모를 갖고 있다. 일견 포드적인 것과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망자>는 포드적인 세계의 또 다른 표현이다. 여기엔 신부 외에도 두 사내가 더 등장한다. 신부를 추적하는 장교, 그리고 현상수배범 그링고(워드 본드)이다. 돈을 밝히고 천박한 총독 일당에 비하면 장교는 잔인하지만 품위 있는 혁명가이다. 그는 내세의 구원을 경멸하고 현세의 행복을 부르짖는다. 우연히 마을에 도착하는 무법자 그링고는 내력이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서부극의 전형적 인물이다.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신부의 탈출을 돕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고결함 혹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트라는 점이다. 이 점이 근본적으로 관능적인 브레송과의 차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실패한다는 것이다. 무법자는 총 맞아 죽고 신부는 사형대에 오른다. 장교는 세속적 승리자이긴 하지만 그가 부르짖는 행복한 공동체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되며, 신부를 총살할 때 그의 가책의 몸짓은 그 실패를 예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포드는 세 인물을 유기적으로 엮는 서사에는 무관심하다. 대신 세 인물을 한 공간에 모아놓고 그들의 선택과 행로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세 사내는 서부사나이를 셋으로 나눠놓은 것 같다. 우울하고 불안한 성직자, 잔혹하고 강인한 혁명가, 무도하지만 따뜻한 무법자. 세 인간 유형은 실은 동일한 존재의 변주들이다. 자신의 신념 혹은 운명이라는 감옥에 갇힌 자. 포드의 서부사나이는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가. < 도망자 >를 그런 점에서 포드적 영웅의 해부라고 말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포드적인 것과 가장 멀어 보이는 이 영화야말로 포드적 세계의 훌륭한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엔 그가 사랑한 인물들의 어두운 심연이 있고, 강렬한 표현주의적 영상과 아름다운 구도가 있으며, 실패한 구원의 서사가 있다. 다만 여기엔 포드가 그토록 사랑한 것처럼 보였던 유머와 헛소동이 없다. 포드는 왜 이 영화를 두고 ‘완전한’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2차 대전의 체험이 그의 마음을 유희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일까. 이 질문은 제대로 답해질 수도 없고 실은 불필요한 질문일 것이다. 평자로서 말할 수 있는 건 창작자의 의도가 아니라 그의 작품 자체일 뿐이다. 대신, 이 질문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영웅의 선택의 과도함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다. 신부의 선택은 표면적으로 과도하다. 죽음 직전에 이른 한 사내의 마지막 고해성사를 위해 그는 자신이 방금 탈출한 곳으로 목숨을 걸고 되돌아간다. 두 번 스치듯 만난 것 외엔 어떤 인연도 없는 한 사내(신부는 이 현상범이 자신의 탈출을 도왔다는 사실을 모른다)의 구명이 아니라 고해성사가 자신의 생명을 걸 만큼 중대한 소명일까. 이 대목은 전 회에서 말한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고스란히 상기시킨다. 걸려 있는 것이 목숨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라는 사실 때문에 얼마간 가려지긴 했지만, 프리스트 판사에게 장례식 주재라는 행위의 사소성에 비해 너무 큰 희생의 결단이 요청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상황과 행위의 비대칭, 다시 말하면 상황의 과소함과 그것이 요청하는 행위의 과도함의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여기에 있다. 고전적 할리우드영화의 도식이 S-A-S′(문제적 상황-해결의 행위-개선된 상황)라면 포드의 두 영화에서의 도식은 s-A-s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과 끝의 소문자 s는 과도한 행위를 요청한 상황이 영웅의 행위 이후에도 근본적으로 변함없다는 사실을 표시한다. 이 도식은 두 서사에서 결국 행위를 표시하는 대문자 A가 가장 문제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를 말하면서 이를 ‘도덕과 윤리의 불안정한 동반에서 윤리만이 문제되는 상황으로의 이행’으로 요약한 바 있다. 그런데 < 도망자 >를 보고 나면 이 수정된 도식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신부는 첫 시퀀스에서 돌아온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 이유를 신부가 다시 탈출한 뒤 은신처에서 의사에게 하는 말에서 들을 수 있다. “자만에 도취해서 생각했어요. 혹시 알아? 순교자가 될지.” 그에게 순교라는 선택은 상황으로부터 독립적이며 그 자체가 자기목적적인 행위이다. 신부를 되돌아가게 만든 죽어가는 이의 고해성사는 바로 이 순교를 위한 일종의 도구라고 볼 수도 있다. A는 s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도식은 s…A…s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순교 혹은 최종적 결단의 자기목적성, 자기충족성은 정말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자기완결적 행위인가. 오히려 우리가 포드의 영화에서 보는 건 공동체의 완고한 부도덕의 표정, 세계의 되돌릴 수 없는 타락의 그림자, 혹은 순교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회의의 몸짓이 아닌가. < 도망자 >를 지배하는 그림자와 폐소공포증적 어둠, 그리고 불안한 말투와 망설임은 그것의 표상이 아닌가.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영웅은 결단했지만 창녀들은 예정대로 추방되었고(< 태양은 밝게 빛난다 >), 마을은 잔인한 혁명가가 그대로 지배한다(<도망자>). 영웅의 결단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동일하다면 그 견고한 s야말로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고 궁극적 행위자이며 영웅의 행위는 순교든 희생이든 부질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정말 과소한 것은 A이다. 그렇다면 이 도식은 다시 수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S)-a-(S)로 표시될 수 있을 것이다. S-A-S′의 여러 변형 도식들로 말하려는 건 그들의 분석적 효용성이 아니다. 포드의 어떤 영화에서도 고전기의 원형적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S와 A는 끊임없는 불안정과 비대칭의 관계에 놓인다는 것이다. 종종 뒤돌아 떠나는 영웅의 뒷모습으로 은유 되는 주인공의 죽음은 이런 물음을 남긴다. 그것은 과도한 A, 혹은 과대망상적 행위의 증상인가. 아니면 과소한 a, 혹은 행위의 근본적 무기력의 증상인가. 이 물음은 포드 영화 이력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된다. #6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말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엉뚱하게도 금주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신부는 가까스로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바로 다음 장면은 정갈하고 평온한 휴양지와도 같은 곳이다. 그리고 ‘IN ANOTHER STATE(다른 나라 혹은 다른 주)’의 ‘SANCTUARY’(은신처 혹은 성역)이라는 이 영화의 유일한 중간 자막이 떠오른다(#6). 유성영화에서 중간 자막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포드가 여기서 굳이 이 자막을 쓴 이유는 짐작하기 힘들다.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이 중간자막은 그 존재감 때문에 앞 장면과의 근본적 단절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탈출한 마을과 신부는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이제 곧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다음 시퀀스에서 마을에서 온 뱀과 같은 사내가 신부의 침실에 숨어들어 신부를 다시 꼬드긴다. 총에 맞은 무법자가 죽어가니 신부로서 마지막 고해성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신부는 금방 마을로 돌아간다. 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순간 죽음이 기다린다는 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고 ‘다른 나라의 은신처’는 마을에 인접한 곳에 불과했다. 중간자막이 가져다준 단절과 평온의 예감은 한순간에 붕괴한다. 이 붕괴의 느낌은 충격에 가깝다. 주인공이 탈출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완전히 갇혀있다는 느낌. 신부의 소명이 벗어날 수 없는 감옥으로 실감되는 것, 앞서 말한 도식을 원용하자면 s가 (S)로 한순간에 변하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어떤 영화에서도 중간자막이 이처럼 감각적 충격의 진원이 되는 순간을 겪지 못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