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외팔이
- 감독
- 장철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왕위, 진성, 초교, 곡봉, 유가량, 고룡, 전풍, 적룡, 우마
< 삼국대협 > 신문광고 다소 장황하긴 하지만 먼저 약간의 회고가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때 몹시 비분강개하고 있었다. 1972년 가을. < 삼국대협 >이라는 영화 앞에서 보기도 전에 마음껏 비웃고 경멸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홍콩 쇼 브라더즈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염두에 두어주기 바란다. 이제 막 중학생이었던 소년은 호금전의 < 용문의 결투 >를 시작으로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 < 돌아온 외팔이 >,그리고 < 심야의 결투 >에서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삼국대협>의 신문광고를 노려보듯이 쳐다보았다. “最後의 勝者는 누구냐! 映畵史上 類例없는 殘酷! 激情! 興趣! 의 크라이막스!! 中國의 외팔이, 日本의 盲俠, 韓國의 一枝梅가 한꺼번에 나온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조건반사적으로 그해 여름에 본 < 외팔이와 맹협 >이 떠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때 나는 트랜스 내쇼널 시네마를 알지 못했고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영화적 개념 자체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그저 이건 쇼 브라더즈 ‘짝퉁’을 다시 ‘짝퉁’으로 한 번 더 버전 ‘다운(!)’시킨 것이라는 생각에 분노를 거의 참을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때 나는 막 열 살이 넘었을 뿐이다. 용돈은 충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동네 극장에서 상영하기를 기다렸다. 오랜 교훈. (보기도 전에) 일단 적의가 생기면 영화는 어떤 장점에도 모두 눈이 멀어버리는 법이다. 물론 나는 이 자리에서 <삼국대협>이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고 난 다음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기분에 빠졌다. <삼국대협>은 영화 자체가 몹시 불쾌하다는 어떤 긴장의 유지랄까, 무언가 참을 수 없는 기분, 단지 이 영화가 형편없어, 라거나 나는 이 영화가 싫어, 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내팽개칠 수 없는 예기치 않은 그 무언가의 방해에 맞닥트린 것만 같은, 그런 기묘한 거부감에 사로잡혔다. 그때 나는 그걸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떤 장면이, 이를테면 과도하게 폭력적이거나 혹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성적인 순간들이 돌발적으로 분출하는, 말하자면 그런 이미지나 쇼트, 혹은 대사가 문제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어린 소년이 받아들이기 힘든 심리적인 관계가 설정되었거나 숨겨져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이건 내가 미처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삼국대협>은 (그것이 부정적이었다 할지라도) 내게 하나의 에너지로 등록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나는 그것을 영화를 보면서 셈을 하는 항수(恒數)로 등록하는 데 실패했다. 대신 어떤 상처를 받았다. 잘못으로서의 세계. 속임수와 그 무언가 그 사이에 숨어버린 어떤 방법.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방법이다. 두 번째 만남은 이상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 삼국대협 >이 임권택 의 영화라는 사실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시절에 보았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게다가 임권택의 영화들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 잡초 >조차 찍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1987년 그해 겨울, 임권택 감독님과 인터뷰를 위해서 작품 목록을 정리하는 과정 중에 거의 난데없이 이 영화 제목과 다시 마주쳤을 때 망연자실하다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나의 심정을 한 번 상상해주기 바란다. 순서대로 인터뷰가 진행되었고 결국 이 영화에 대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왔다. 그때 임권택 감독님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다음 “내가 그런 영화도 찍었어요?” 라고 반문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정리한 줄 알고 다시 작품 목록을 찾아보았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고 일일이 신문광고를 찾아보아야만 했다. 물론 <삼국대협> 신문광고에는 ‘監督 林權澤’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확인을 하고 다시 질문을 했을 때 한참을 들어보시더니 “전혀 기억이 안 나요”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어쩔 수 없이 질문은 거기서 끝났다. 정말 기억이 안 나시는 건지 아니면 기억을 안 하고 싶은 건지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1972년 그해에 임권택은 ( 변장호 , 최인현 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 명동 잔혹사 >와 <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 그리고 <삼국대협> 세 편을 찍었다. 한 가지 더. 다소 의미심장하게 <삼국대협>은 임권택의 마지막 무국적 무협활극영화이다. 그는 < 장군의 아들 >로 ‘다찌마와리’ 장르에 돌아온 적은 있지만 두 번 다시 무협활극을 찍지 않았다. 그런 다음 2013년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한 번 임권택 전작전을 (2010년 영상자료원 회고전에 이어 두 번째로) 하면서 이전에 공개된 적이 없는 <삼국대협>을 포함시켰다. 그제서야 나는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B무비의 열렬한 팬이자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이었던)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 감독인 샤를 테송은 뉴 커런츠 심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달려와서 이 영화를 본 다음 앉아서 해설까지 듣더니 내게 기쁘게 악수를 청했다. 샤를 테송은 올리비에 아사이야와 함께 1984년 9월호 카이에 뒤 시네마 특집호 「홍콩 시네마」의 특집호를 만들었던 비평가이다. 아마 그는 토니 레인즈와 함께 홍콩영화에 매혹된 서방세계의 첫 번째 세대일 것이다. 이때 샤를 테송은 이미 소림사 영화의 계보를 썼으며, 쇼 브라더즈 영화사의 대표 런런쇼와 인터뷰를 했다. 물론 이 특집호에는 호금전과 장철의 인터뷰뿐만 아니라 (< 매트릭스 >가 등장하기 20년 전에) 무술감독 류가량과의 인터뷰와 무술 동작지도의 장면 분석(shot_by_shot)도 실려 있다. 말하자면 그는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의 존재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일본 ‘찬바라’ 장르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는 비평가이다. 샤를 테송은 <삼국대협>을 본 다음 약간 흥분상태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This is so funny lovely treasure!”라고 약간 외치듯이 말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답을 피하거나 아니면 자리를 떠나는 비교적 예의바른 프랑스 비평가이다.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그냥 맞받아치거나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자기의 반대 의견을 반드시 전해서 기어이 그 자리를 망쳐놓는다.) 나는 이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삼국대협>이 내 앞에서 걸작으로 둔갑한 것은 아니다. 그건 그의 견해이다. 내 관심은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본 다음 불쾌라는 기분, 너무 사소하게 느껴져서 이론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대답하고 싶어졌다.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 < 돌아온 외팔이 > 포스터 22번째 ‘자토이치’ 연작 <신 자토이치, 물리쳐라! 당나라에서 온 검객> 다소 어색하더라도 먼저 < 삼국대협 >에 이르는 과정을 약간 추리소설처럼 생각해보자. 물론 가장 앞에 있었던 영화는 홍콩 무협활극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와 < 돌아온 외팔이 >일 것이다. 장철과 왕우. 과도할 정도로 커다란 성공.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스타일. 고전주의적 규범들을 중단시킬 만큼의 어떤 단절감. 물론 이 장르를 열어놓은 사람은 < 용문의 결투 >의 호금전이었지만 장철은 그 방향을 완전히 틀어놓았다. 뭐랄까, 장철은 마치 이 장르에서 (제한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셀지오 레오네가 서부극에 대해서 한 것과 같은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장르 안에서 반칙으로서의 자기 순환의 에너지. 두 편의 ‘독비도(獨臂刀)’는 홍콩영화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 안에서 법칙은 단순하게 영화 안에서만 활동하지 않았다. 쇼 브라더즈는 일본 영화사들의 방식을 받아들였고 소속 영화인들을 월급제로 운영하였다. 왕우는 두 영화의 성공 이후 쇼 브라더즈를 떠났다. 우연의 일치. 쇼 브라더즈에서 경력을 쌓은 제작 프로듀서 레이먼드 쵸우(鄒文懷)도 마침 떠나서 새로운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를 세웠다. 레이먼드는 영화사의 핵심은 스타라고 생각했고 재빨리 왕우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골든 하베스트는 화어권 영화 극장 체인을 장악한 싱가폴 화교출신의 소씨(邵氏) 두 형제가 세운 쇼 브라더즈의 독과점 방식의 배급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만 했다. 중국 본토는 문화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서방세계의 시장은 너무 멀었다. 아시아의 가장 활발한 영화시장 일본. 만일 동경을 점령할 수 있다면 홍콩영화를 들고 미국 시장을 두들겨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골든 하베스트는 왕우라는 스타를 일본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쇼 브라더즈는 초기 무협영화에서 무술 동작지도를 위해 일본에서 사무라이들의 활극장면 미장센을 연출하는 살진(殺陣) 감독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레이먼드는 비교적 일본 영화계의 인맥과 잘 알고 있었다. 골든 하베스트는 한편으로는 화어권 내에서의 새로운 ‘독비도’ 연작을 염두에 두면서 일본에서 자토이치(座頭市) 연작과의 합작을 타진하였다. 떠돌이 장님 안마사이자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뛰어난 검술을 지닌 자토이치는 아무런 보상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악인들을 물리치고 서민들을 돕는 정체불명의 협객이자 방랑자이다. 1962년에 시작한 ‘자토이치’ 연작은 단숨에 가츠 신타로를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눈이 먼 자토이치가 흰자위를 껌뻑거리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맹인 지팡이인 줄 알았던 막대기에서 불현듯 칼을 빼내 순식간에 그를 둘러싼 사무라이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하나의 컨벤션이 되었다. 이 연작 중의 한 편도 보지 못한 분들은 기타노 다케시가 다소 패러디하듯 (그 자신의 인터뷰를 빌리면) “흉내를 내면서 리메이크한” < 자토이치 >의 활극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자토이치 연작은 너무 많이 만들어졌고 게다가 매번 귀신같은 칼 솜씨를 뽐내는 자토이치와 일대 일 막상막하의 대결 장면을 펼치기 위해서 다른 텍스트로부터 라이벌을 꺼내 들었는데 미야모토 무사시까지 등장했을 때 사실상 이 연작은 거의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그때 골든 하베스트의 제안은 자토이치 구미(組)에게도 흥미로운 제안이었(을 것이)다. 왕우가 누군지도 모르고 단 한 편의 ‘독비도’ 영화도 동경에 개봉하지 않았지만 절정의 무술을 지닌 장님과 중국 대륙에서 온 외팔이가 대결을 벌인다는 것은 대중들에게 색다른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시리즈 번외편’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 영화산업으로서는 (이차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전역에서 일본영화가 수입 금지되거나 (한국도 그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극심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홍콩 영화의 배급망을 통해 대표적인 일본 대중영화의 시리즈물이 알려지는 것은 여러모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야스다 기미요시가 감독을 하고 외팔이 검객 왕강이 혈혈단신으로 (쇼 브라더즈 버전의 외팔이 검객의 이름은 방강이며 아내가 있다) “단지 조용히 살고 싶어서” 일본을 찾아왔다가 그만 왕족 행렬에 휘말려 들어 우연히 만난 중국인 부부가 죽고 거기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전개된 끝에 결국 오해에 오해가 반복되면서 자토이치와 최후의 대결을 벌이는 ‘자토이치’ 연작 22번째 영화 <신 자토이치, 물리쳐라! 당나라에서 온 검객(新 座頭市, 破れ!唐人劍)>이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화어권 개봉을 위해서 일본판과 홍콩판을 별도로 편집했고 각 버전은 각 나라의 주인공이 최후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홍콩판은 서증굉(徐增宏)이 다시 편집했고 제목은 <獨臂刀大戰盲俠>이다. 세 개의 후일담. 그 하나. 쇼 브라더즈로서는 황당무계한 상황을 맞이한 꼴이 되었다. 아마 장철의 입장에서도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나는 1971년 홍콩의 판권분쟁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골든 하베스트의 왕우판 ‘독비도’ 제작을 막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대신 장철은 자신의 새로운 주인공인 (그때는 ‘깡따위’로 알려진) 강대위를 주연으로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오른팔을 자기 손으로 자른 다음 왼팔 검법을 익힌 주인공을 내세워 <신 독비도(新 獨臂刀)>를 연출하였다. 이 영화가 나쁘지는 않지만 (마지막 시퀀스 전체는 장관이다) 이 연작에 감돌던 그 어떤 매혹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장철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그는 더 이상 ‘독비도’ 연작을 찍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왕우는 온갖 변주를 만들면서 ‘외팔이’ 시리즈를 계속해서 제작하고 종종 연출도 직접하면서 주연 영화에 출연하였다. 장르와 연출과 스타의 삼각형 중 한쪽 꼭짓점이 괄호 쳐졌을 때 도형은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에 관한 하나의 사례. 후일담 그 둘. 일본 진출은 생각만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 관객들은 이 영화를 홍콩에서 온 새로운 스타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자토이치’ 연작의 외전(外傳)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오히려 전 지구적 DVD 마켓이 (말 그대로) 개방된 다음 좀 괴상한 경로를 거쳐서 (일부 서방세계 자토이치 ‘덕후’들의) 컬트영화의 반열에 올랐다. 진정한 의미에서 골든 하베스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왕우의 다음 세대, 이소룡이 그들을 찾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졌다. 첫 번째 영화 < 당산대형 >, 그리고 < 정무문 >, 하지만 그건 이 글과 상관없는 후일담이다. 후일담 그 셋. 그런 다음 ‘자토이치’ 연작은 네 편이 더 만들어진 다음 거기서 끝났다. 다음 세대들이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새로운 ‘자토이치’를 연출했지만 그건 오마주거나 향수로만 반복되었다. 가츠 신타로 없는 ‘자토이치’는 아마도 왕우 없는 ‘외팔이’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외팔이와 맹협 > 신문광고 이제 세 번째 이야기의 차례. 1972년 7월 30일 서울 단성사. 그때 일본영화는 아직 수입을 허락받지 못했다. 일본에 관한 대중적 상품들은 종종 적대적이거나 경멸을 담아서 (그리고 반민족적이라는 위협적인 어조로) 왜색문화로 불리었으며 영화와 대중음악은 모두 금지되었다. 금지는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었고, 소문은 덧칠이 된 전설을 만들었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일본 사무라이 영화들은 화면에 피 칠갑을 하고 시체들은 칼바람에 사지 절단되어 온 사방에 뒹굴고 대결장면들은 너무나 눈부셔서 화면을 마주 보기도 전에 끝난다고 전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홍콩영화로 둔갑한 < 외팔이와 맹협 >이 개봉을 한 것이다. 모두들 말하진 않았지만 이 영화가 일본 사무라이 활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중학생이었던 나도 알고 있었다. 맹렬하게 홍콩영화를 보던 나(와 내 친구들)은 하나의 사건으로 이 사태를 받아들였다. 정말로 불가능한 순간이 이루어진 화면을 보고 싶었다. 꿈의 영화. 당신은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무엇을 상상하고 있어도 그보다 더 훌륭한 영화를 우리는 기적처럼 마주치곤 하지 않았던가. 각자의 비장의 목록들. 그러나 <외팔이와 맹협>은 나를 완전히 실망시켰다. 장철의 영화처럼 비장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미지의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신비로운 비밀 따위도 없었다. 액션 시퀀스는 시시했고 왕우는 홍콩 쇼 브라더스 영화에 비해서 눈에 띄게 둔해 보였다. 게다가 가츠 신타로가 연기하는 맹협은 무언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두 팔 중의 하나를 제거한 다음 던져진 제한적인 조건. 두 눈을 멀게 만든 다음 시각적인 암흑 상태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의 청각 기호들. 두 개의 조건을 바탕으로 마주한 세상의 상이한 재구성. 나는 아직 육체의 권리를 놓고 신체훼손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질문할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외팔이와 맹협>은 그해 여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아무 정보도 없이 <외팔이와 맹협>이 ‘독비도’ 연작의 팬들을 능멸하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이런 영화가 성공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해 추석, 9월 22일에 < 삼국대협 >이 개봉하고 말았다. 그렇게 쓸 수밖에 없다. 대중적 성공의 재생산. 이제 여기에 조선의 일지매를 더해서 ‘독비도’를 한국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황당무계한 전술적 배치. 그런데 여기에는 그나마 <외팔이와 맹협>에 출연했던 왕우도, 가츠 신타로도 없다. 물론 누구든 한쪽 팔을 숨기고 외팔이 검객 방강을 연기할 수 있으며, 흰자위를 드러내고 눈을 껌뻑거리면서 맹협 자토이치를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배우가 장르 안에 들어가 고유한 스타가 된 다음 텍스트의 주인을 자처할 때 그 자리를 훔쳐내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이미 주인의 자리에 들어선 고유한 상대와 사랑에 빠진 관객들의 연애감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나타난 다음 그 사람이라고 허풍을 늘어놓기 시작할 때, 그건 정말이지 마치 같은 옷을 입고 나온 전혀 다른 상대와 데이트를 하라는 요구만큼이나 무례한 짓이다. 일단 연애감정이 발생하면 내가 사랑한 상대방이 왕우인지 외팔이 방강인지 그 경계선이 애매모호해진다. 흐릿해진 경계. 이때 경계를 두고 마술이 벌어진다. 그 둘은 서로를 교환하면서 매혹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시시각각 밀어내거나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데이트는 미묘해서 아주 작은 부분들까지도 때로는 능동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고 대부분 그냥 지나쳤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된 것들이 그 어느 것보다도 힘들의 관계 안에서 (정감으로서의) 무드를 자아내거나 (가시적인 형식으로서의) 모드를 이룬다. <삼국대협>은 어린 내게 허풍 뒤에 나타난 거짓말처럼 보였다. 여기엔 물론 어떤 종합도 없고 마찬가지로 어떤 분화도 없었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변주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다시 그 안에서 같은 것 안의 새로운 것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여기엔 우스꽝스러운 위장이 있을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줄거리. 1598년 선조 31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명나라 사신의 방문을 앞둔 조정은 중신들이 모여 의논하면서 “상감의 신표나 다름없는 귀중한 나라의 보물인 천하의 명검 천룡검마저도 왜놈들에게 약탈당했다는 사실이 탄로 나면 나라의 체면이 뭐가 되며 우리들은 무슨 면목으로 상감을 대할 수 있단 말이요”라며 탄식하자 다른 중신이 “그저 사생결단 하고 일본 땅으로 건너가 천룡검을 찾아오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줄 아오”라고 답한다. 그러자 “그렇다고 군사를 파병할 수는 없는 일...” 하자 “허나 지모를 겸한 고수급 검객을 한 사람 밀파한다면 일루의 희망은 있을 것 같소이다만...” 라고 덧붙인다. 구태여 길게 대사를 옮긴 것은 조정에서 중신들의 대화 장면이 녹음대본에는 남아있지만 현재 복원된 판본에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극장 상영판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고, 현재 디지털 복원판은 이 씬이 녹음대본에만 있고 상영판본에서는 편집된 것이 아닐까, 라는 추론을 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 장면이 없기 때문에 (혹은 없다면) 일지매가 왜 일본까지 와서 악전고투 끝에 천룡검을 빼앗아 조선에 가져가야 하는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외팔이 검객과 맹협의 사연은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면서 일지매만 어떤 과거의 장면도 없기 때문에 마치 신비한 인물처럼 감춰진다. (현재의 복원판본의) 첫 장면은 요란한 사운드트랙과 함께 느닷없이 검은 복면을 두르고 지붕에서 나타난 일지매가 자신의 무술을 뽐내듯이 뛰어내려 일당 수십 명의 검사(劍士)들을 추풍낙엽처럼 무찌른다. 그런 다음 거만하게 칼집에 칼을 꽂으며 복면을 벗으면 곁에 ‘일지매 신영일’이라는 자막이 뜬다. 두 번째 등장인물. 한쪽 팔이 없는 무사가 건물의 실내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열댓 명이 칼을 빼 들고 달려들자 순식간에 그들을 물리치고 마찬가지로 거만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그러면 곁에 ‘외팔이 김기주’라는 자막이 오른다. 두 가지 지적. 이미 충분히 설명했지만 ‘독비도’는 왕우여야만 한다. 두 번째 불만. 아마도 임권택 은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를 보긴 했지만 (인터뷰에서 질문하자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고 대답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 같다. 혹은 이 연작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독비도’는 장철의 버전이건 ‘외전편’ < 외팔이와 맹협 >이건 언제나 ‘외팔이 검객’ 방강은 절반으로 동강난 칼을 사용하였다. 그건 하나의 약속이다. 왜냐하면 팔이 잘려진 후 새로 검법을 익히는 중에 온전한 검을 사용하면 균형을 잡기에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반검(半劍)을 선택하였다. 이건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 영감을 얻어 연출된 (아마도 최상의 리메이크 버전일) 서극의 < 칼 >에서도 지켜진다. 그러나 임권택 버전의 ‘외팔이’ 검객은 삼국의 협객 중 어떤 결함도 없는 가장 큰 칼을 사용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왕우 버전의 ‘외팔이’ 검객은 마치 단 한 벌의 옷을 지닌 것처럼 검은 옷만을 입었다. 임권택 버전의 ‘외팔이’는 단 한 번도 검은 옷을 입지 않는다. 장르 영화에서 옷은 기호 체계일 뿐만 아니라 신화를 구성하는 다소 복잡한 코드군(群)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어떤 의미나 상징이 개입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혹은 그 어떤 해석을 요구하지 않아도, 기능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거기서 만들어지는 즐거움이라는 유혹이 당신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중이다. 무언가? 잘 설명되지 않는 쾌락. 그 안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머물고 있는 알 수 없는 섬세함. 어떤 비평적 시선도 거절하면서 거기서 비로소 온전하게 이 영화를 보는 관객과의 은밀한 유희가 시작된다. < 삼국대협 >은 이 유희를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거나, 혹은 모르거나, 아니면 무시하고 있)다. 세 번째 등장인물. 지팡이를 더듬거리면서 다리 위를 걸어오는 자토이치는 갑자기 나타난 사무라이들이 자기를 둘러싸자 언제 그런 걸음을 걸었나 싶게 재빨리 칼을 꺼내 순식간에 쓰러트린다. 그러면 곁에 ‘맹인 김희라’ 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포스터에도 ‘盲俠’이라고 소개하면서 정작 영화 자막에 ‘맹인’이라고 써 있는 것은 좀 어리둥절하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일본을 무대로 해서 (물론 모두 한국에서 찍었다) 일지매와 외팔이 검객, 맹협이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사소한 오해를 반복하다가 세 명이 힘을 합쳐 모두의 원수이기도 한 구로다 시게야쓰의 적진에 쳐들어가 함께 물리치고 천룡검을 되찾은 일지매는 일본을 떠난다, 는 줄거리이다. 나는 구태여 이야기의 디테일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 삼국대협 >의 모든 장면이 ‘독비도’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임권택 이 <삼국대협>을 연출하기 위해서 < 돌아온 외팔이 >를 보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장면. 장철은 이 장면을 쇼 브라더즈 세트 안에서 찍었다. 외팔이 협객 방강은 대나무 숲에 숨어있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재빨리 경공술로 날아오른 다음 대나무를 베고 쓰러진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잘려나간 대나무를 밟아가면서 위에서 아래로 공격한다. 임권택은 대나무 숲에 가서 이 장면을 찍었다. 잠입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위장을 하여 구로다의 편에 선 일지매가 (그의 돈을 훔치려다가 그만 사랑에 빠진) 은월과 함께 대나무 숲을 거닐다 그를 찾던 (기다리던?) 외팔이 검객과 맹협을 마주친다. 하지만 이건 구로다의 무사들이 파 놓은 함정이었다. 대나무 숲에서 모두들 칼을 뽑고 활극이 펼쳐진다. 임권택은 진행을 하던 영화의 물리적 리듬이 갑자기 변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즐기지 않는 감독이다. 그래서 101편의 영화에서 슬로우 모션을 마주치는 것은 이례적인 순간이다. 나는 1980년 < 짝코 >에서 슬로우 모션을 본 다음 임권택이라는 영화의 속도 안에서 두 번 다시 슬로우 모션을 보지 못했다. < 장군의 아들 >에서 김두한이 골목에서 학생 깡패 오찌아리를 물리칠 때의 짧은 스텝 프린팅, 그리고 <서편제>에서 동호가 누이를 떠올릴 때 이미 눈이 멀어 지팡이를 짚고 서성거리는 송화, 그런 다음 마지막 장면에서 눈 내리는 날 소녀의 손에 이끌려 떠나가는 송화를 보여주는 장면에서의 옵티컬 프린팅을 제외하면 영화의 이미지들은 질서정연하게 24분의 일초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에서 활동하는 슬로우 모션은 아름답다. < 협녀 > 포스터 먼저 장소. 대나무 숲은 호금전이 < 협녀 >에서 빛과 안개, 바람으로 가득 채운 다음 동양화의 풍경으로 만든 공간이다. 무협영화 안에서 대나무 숲의 전통은 리안의 <와호장룡>과 장이모우의 <연인>에서 매너리즘의 대상이 되었다. 임권택 이 <협녀>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서울에서 개봉한 적이 없고, 아직 DVD는 발명되지 않았으며, 1969년에 제작된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 첫 상영된 것은 1975년의 일이다. < 삼국대협 >은 <협녀>에 지나치게 가깝게 있다. 여기서 임권택이 대나무 숲을 선택한 것은 풍경(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힘)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들의 방향과 칼로 베어 쓰러트릴 때 만들어내는 빗변의 대각선 운동 때문이다. 그런 다음 사방으로 서 있던 대나무들이 쓰러지면 새롭게 확보할 수 있는 시야의 확장과 활동 반경의 접선을 더 멀리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다음 동선. 이 장면은 세 사람이 서로 대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구로다의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면서 살진(殺陣)은 세 개의 집합으로 분화된다. 여기에 일지매와 숲에 함께 온 여인 은월이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녀는 무술을 전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 집합의 어느 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다. 만일 구태여 끌어들이려면 일지매가 그녀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을 연출해야만 한다. 재빠른 무술과 전혀 대결의 리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위험한 생명의 자리 사이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내는 긴장의 구도. 그런 다음 예정된 장르의 (따분한) 약속. 그 둘 사이에서 주인공은 희생을 무릅쓰고 자신의 리듬에 대한 제약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그녀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임권택은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녀를 세 개의 집합 바깥으로 내보내는 대신 이 삼각형의 구심점으로 활용한다.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 장면에는 지금 하나의 극(劇)을 바탕으로 한 기승전결이 없었을뿐더러 일지매와 외팔이 검객, 맹협은 각자 싸우고 있기 때문에 장소의 공집합 이외에 어떤 이접적 접합의 이음새도 갖지 못하고 마치 다 각자의 활동영역 안에 머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은 하나의 씬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들은 검의 활동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시야 앞의 대나무를 계속 베어나간다. 그때 대나무는 어느 각도에서 베어도 은월을 향해서 쓰러져 내린다. 말하자면 은월은 이 씬에서 대나무들이 쓰러져 내리는 방향을 유도하면서 움직이는 자석의 미장센이다. 그래서 세 개의 집합의 쇼트들은 매번 은월을 중심으로 오가면서 왕복운동을 계속한다. 세 번째 문제. 이접적 종합을 위한 모멘트. 검의 활동. 대나무 숲 장면이 무심코 볼 때는 그저 살진(殺陣)의 교집합을 단순하게 변주시키면서 숲 안에서 이동하는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여기서 동선의 모멘트는 접촉의 괴상한 무효로 이루어져 있다. 분명히 이 장면은 그것이 일대 일이건, 일대 이건, 일대 다수이건 서로 검을 겨루면서 진행되는데 정작 검과 검이 서로 부딪치는 순간이 거의 없다. 끊임없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휘두르는 장면만이 서로의 검의 곡선을 그은 다음 그 반경 거리 안으로 들어가서 쓰러지거나 바깥에서 마주하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진행된다. 무심결에 볼 때에는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과도하게 사운드 효과를 사용하고 있어서 마치 검에서 어떤 힘(劍氣)이 반경거리를 확장한 것 같은 착시를 이용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단지 쇼트가 짧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연결 지점 없이(match_cut) 어떤 생략의 순간들만으로 (jump_cut)으로 편집했기 때문에 칼과 칼이 부딪치는 순간이 없는데도 그걸 생략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이유가 좀 기괴하게 보인다. 이 씬에서 검술 장면을 전개하면서 동작을 연출한다기보다는 마치 그 동작의 어떤 순간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켜서 찍은 것만 같은 순간들의 쇼트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슬로우 모션은 하나의 장치이다. 샘 페킨파는 액션의 방점을 찍기 위해서 갑자기 어느 순간을 멈추듯이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 와일드 번치 >. 몹시 인상적인 < 가르샤 (의 목을 가져와라)>. 장철은 할 수 있는 한 늦추기 위해서 시간의 확장으로 이용한다. 막상막하의 < 심야의 결투 >와 < 복수 >. 그리고 리듬의 인상주의라고 할 만한 왕가위의 < 화양연화 >. 임권택은 단락(短絡)의 순간에 갑자기 사용한다. 거의 카오스에 가까운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 장면들은 쇼트가 제각각일 뿐 아니라 사실상 검술 대결의 순간이 없기 때문에 쇼트들의 콜라주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되면 고전적 영화의 규칙 안에서 유기적 구성의 윤곽이 부서질 수 있는 순간을 서로 다른 리듬의 교차라는 불협화음의 몽타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몽타주의 프로그램에서 이것은 매우 위험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르의 대가들이 만들어낸 계보를 경유하여 만들어진 이 장면은 활극장면이기 때문에 우리와의 약속안에서 허용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 씬 전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건 열세 살의 나이에 볼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단지 지금은 그걸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장면의 디테일이 미학적으로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곤궁에 처한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설명하려는 장면은 거기가 아니다. 알 수 없는 불쾌감.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기분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을 때 나는 (여기서 서로 다르게 사용한 두 개의) 무언가에 대해서 대답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 삼국대협 >을 간절할 정도로 다시 보고 싶게 만들었다. 여기엔 내가 미처 듣지 못한 소음과 같은 영화적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마저 세우고 싶게 만들었다. 명백히 실패했는데 단지 그것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게 만드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떤 메아리랄까, 말하자면 내가 이제까지 다루어 온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어둡고 축축한 불길함이 거기 버티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단지 그게 기분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시퀀스가 되었을 때 어떤 대답을 거기서 보았다. 구로다의 성에 붙잡혀 온 외팔이 검객과 맹협, 그리고 정체가 탄로 난 일지매는 감옥에 갇힌다. 여기에 목숨을 걸고 (일지매와 사랑에 빠진) 은월이 구하러 온다. 그들은 이제 힘을 합쳐 구로다의 사무라이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구로다와 대결을 한다. 구로다는 명검 천룡검을 뽑아든다. 말하자면 <삼국대협>의 클라이맥스. 이때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구로다가 천룡검을 휘두르자 이 세 사람의 칼이 모두 잘려나간다. 무시무시한 검. 게다가 구로다는 (영화 속의 설명에 따르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심복에 오른 장군 중의 한 명이다.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칼이 모두 잘려나간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때부터 미로처럼 이어진 일본식 다다미방의 방문 사이로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게 전부이다. <삼국대협>은 유머가 있긴 하지만 희극이 아니다. 이들이 구로다를 피해 도망 다닐 때 천룡검에 그만 바지가 찢겨져 나가 속옷 바람이 되고, 그나마 흘러내려 엉덩이를 보일까봐 두 손으로 치켜 올리면서 겅중겅중 뛰면서 칼을 피해 도망 다닌다. 구로다는 이들을 뒤따라 천룡검을 움켜쥐고 이 방 저 방 뛰어다닌다. 헛 칼질. 전혀 위험해 보이지도 않은 채 절대로 천룡검에 베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 다니는 세 사람. 이때 약간 프레임의 속도를 빨리해서(slow_speed_shooting)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왜곡되고 깨어진 표면. 잘못 작동되기 시작한 장르의 장치들. 나는 중얼거렸다. 아아, 이 노골적으로 잔인한 장면이여. <삼국대협>은 안티 클라이맥스의 영화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나는 이미 대나무 숲에서의 활극 장면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했다. 임권택 은 이 장면을 장르에 충실하게 묘사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부분적으로나마 만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언가 자해하는 심정으로 스스로 장면 전체를 부숴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왜 그런지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다. 그건 소설의 영역이다. 그 대신 여기서는 어떻게, 에 대해서만 쳐다볼 생각이다. 임권택은 일지매와 외팔이 검객과 맹협의 검술을 여기서 보여줄 생각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시작하자마자 그들의 검을 모두 잘라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구로다의 검술이 가히 절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어도 이미 잘려나간 상대방의 검 앞에서 달리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의 장면이 없다. 정말 이상한 것은 의도적으로 보여줄 게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때 이 말을 비틀고 싶다. 정말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 상황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이 씬의 중요한 특징은 갑자기 장르를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까지 왜곡되고 부풀려진 방식의 긴장을 갑자기 망쳐 버리면서 재빨리 지금까지 전혀 건드리지 않았던 (혹은 금지되었던) 상황으로 몰아넣은 다음 무언가를 교란시킨다. 무언가? 여기에서 저기에로, 혹은 저기에서 여기에로. 말하자면 도약. 아니, 그 말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면 단지 추락이라고 말해도 좋다. 이건 도약이자 추락이다. 내 대답은 의미 안에서 갑자기 그 자체의 효과를 무의미하게 만덫였模?어리둥절한 횡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수평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마지막 장면 전체를 기괴하게 만들어버린다. 여기에는 유머도 없고, 역설도 없고, 패러디도 없고, 어떤 냉소도 없다. 게다가 여기서 무언가를 하려다가 실패했다기보다 오히려 그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걸 해버렸다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엔옙실?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의 무의미. 내가 여기서 보는 것은 달리 말하기 힘든 우울증이다. 무언가를 없애버리고 싶어서 눈앞에 있는 것을 증오하면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영화 자체를 나쁜 것으로 규정 내려 버리고 마는 이 이상한 감정 상태 앞에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임권택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알 수도 없다. 그 자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영화의 규칙 안에서 자기가 펼쳐놓은 상황에 대해 쓸모없음을 탄식하는듯한 슬픈 웃음이다. 여기에는 자기 안에 들어온 나쁜 것과 저항하며 싸우는 대신, 혹은 달래며 자기편을 만드는 대신, 거기에 편승하는 대신, 거기에 의지하는 대신, 그저 상처받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이미 벌어진 상황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치 남의 일이기라도 한 듯, 그냥 아무것도 감추지 않은 채, 결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고통받고 있는 듯한 방법을 택하고 있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쇼 브라더즈 영화를 보면서 언제나 내가 즐긴 것은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매번 비극의 영웅적 승화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삼국대협>은 그 순간을 무의미와의 만남이라고 선언해버리듯이 만든 다음 어떤 불연속성의 자리에로 데려가 망쳐놓았다. 우울한 목소리. 거기엔 볼 것이 없어. 만일 멜라니 클라인이라면 훨씬 정교하면서 시적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설명했을 것이다. 거기서 내 즐거움은 토막 난 상태가 되어버렸다. 영화는 (그때라면) 미처 반격도 하기 전에, (지금은) 더 설명을 할 수 있기 전에 재빨리 끝난다. 나는 <삼국대협>을 다시 보면서 하여튼 대답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나를 우울한 슬픔에 젖게 만들었다. 거기엔 임권택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시행착오의 힘도, 무언가를 참고 견디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들어내는 의지도, 아니 최소한의 영화에 대한 긍정도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 마지막 장면의 순간에서 내가 본 것은 고통받는 시간뿐이었다. 하여튼 이 이야기를 마치기는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장면 없이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장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고통을 거기에 고스란히 남겨놓았다. 어떤 비장감도 없이, 지나칠 정도로 통속적인 상황 안에서, 그저 거기서 덧없다는 듯, 거기서 끝날 수 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영화가 끝난다. 나는 여기서 영화가 또 다른 의미에서 과정의 예술이라는 것을 배운다. 악순환은 중단되어야 하고 주사위는 다시 던져져야 한다. 임권택은 이듬해 < 잡초 >를 찍었다. (계속) 1972년 90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우진필름 각본 권용 촬영 최호진 조명 최입춘 편집 김희수 음악 황문평 신영일 ... 일지매 김기주 ... 외팔이 김희라 ... 맹인
“이 以上 더 재미있는 劍客映畵는 없다!” < 뢰검, 번개칼 >의 포스터 맨 윗줄에 자리 잡은 단 한 줄의 영화 소개. 검객영화라는 자기 지시. 약간의 유머. 나는 이 포스터를 보자마자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가 떠올랐다. 무언가 여기에는 우리를 낭패스럽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둘 사이의 서로 피할 수 없는 관계. 검객영화라는 말. 검객영화로서의 <뢰검, 번개칼>. 두 말이 서로 딱 맞게 겹쳐지지 않을 때 나는 맞지 않는 그 모서리를 생각하는 중이다. 영화를 보여주기와 설명하기. 영화를 둘러싼 이미지와 문장. 이때 저 문장이 호금전의 < 용문의 결투 >를 설명할 때와 지금 임권택 의 <뢰검, 번개칼>에 가서 달라붙었을 때의 차이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단지 이쪽과 저쪽의 우열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나의 인용을 오해한 것이다. 왜 여기서는 저 말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까. 말하자면 저 문장의 세계를 이 영화가 담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여기 따라올 때 영화는 저 세계에 관한 만족할 만한 주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두 개의 텍스트. 검객영화라는 지시. 검객영화라는 (만드는 쪽과 보는 쪽 사이의) 약속. 영화에서 약속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무엇일까. 하나는 문법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영화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이때 나는 크리스티앙 메츠가 아니라 파졸리니의 영화 언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파졸리니는 이미지란 글쓰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영화는 랑그이고 영화들은 파롤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리얼리티와 영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긴 논의가 시작된다. 파졸리니는 운이 나쁘게 이탈리안 네오리얼리즘의 순간에 도착했고, 그는 자신의 이론을 경유하여 자기 자신을 자기의 시대로부터 소외시켰다. 그는 롯셀리니의 난처한 영화와 마주쳐야만 했다. 말하자면 < 이탈리아 여행 >이라는 수수께끼. 나는 이 문제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생각이다. 리얼리티와 영화라는 랑그. 임권택 의 기묘한 리얼리티. 이상하리만큼 잘 다루어지지 않은 < 티켓 >. 역사(들). 무엇보다도 < 길소뜸 >. 파롤로서의 영화 안에 상주하고 있는 랑그의 억압적 제도들. 다른 하나는 장르의 세상을 방문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건드리려는 것은 이 두 번째 방문이다. 장르는 영화에서 환경에 대해서 논의를 하려는 것이다. 환경? 그렇다. 어떤 장르 안으로 들어오면 갑자기 영화가 그 장르의 약속에 따라서 자기의 기호들의 질료가 각자의 구실과 관계의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코미디 영화에서 망치로 사람의 머리를 치는 것과 공포영화에서 톱으로 머리를 자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된다. 둘은 거의 동일한 행위이지만 그 둘은 완전히 다른 반응을 끌어낸다. 채플린이 절벽에 매달리는 것은 운명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황금광 시대 >) 릴리안 기쉬가 얼음 조각 위에 쓰러진 채 강물 위로 떠내려가는 것은(<동쪽으로 가는 길>) 절망적인 사건이 된다. 말하자면 영화적 환경. 이때 이 환경 속에서 지질학적 운동은 각자의 장르 안에서 서로 다른 세계의 속도와 질량을 갖게 될 것이다.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가. 주인공이 무엇과 연결되어 활동하기 시작하는가. 이를테면 라이플. 마니 파버는 서부극이란 결국 라이플의 운동이라고 말했다. 하워드 혹스의 < 리오 브라보 >. 악당이 무엇과 접속하여 자기의 힘을 누리기 시작하는가. 프릿츠 랑의 <빅 히트>. 뜨거운 커피. 사건들 사이에서 무엇을 통과시키고 어떻게 가로막는가. 두기봉의 < 익사일 >의 첫 시퀀스를 떠올려보라. 이층으로 이루어진 집. 둘로 나누어진 등장인물들. 그들의 손에 들린 총. 그들이 따라 올라가는 계단. 아무도 없는 것만 같은 거리. 순찰중인 경찰들은 정확히 그 순간 잘못된 장소에 도착했다. 새로운 배치. 그때 무엇이 어떻게 귀속되느냐라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 종종 영화는 세계의 이미지라고 말한다. 나는 영화가 세계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세계의 가능성을 거기에 덧붙이면서 그렇게 그 자신을 증식해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부극. 영화가 발명한 세계. 그런 다음 차례로 이 세계는 확장되어 나아갔다. 코미디(들). 멜로드라마. 갱스터 영화. 필름느와르. 사극들. 뮤지컬, SF영화. 공포영화(들). 그리고 수많은 변종들. 세상의 표면 아래 있었을 가능성들. 이때 영화는 세계와 새로운 약속을 맺어나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영화와 세계 사이의 약속을 종종 이중분절 시켜나갔다. 첫 번째 분절. 환경의 내재성. 두 번째 분절. 기호의 약속. 그때마다 새로운 방법의 약속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새로운 분자들이 활동을 개시하였다. 분자들? 그렇다. 기호들 사이에 스며들어간 새로운 힘. 끊임없이 안정된 구조는 다시 정의되었고, 그런 다음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일단 이 환경 안으로 들어오기로 했으면 이 세계의 약속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이때 이 배움은 셋이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주인공. 그에게 요구되는 이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 이 세계 안의 친족관계.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가, 라는 문제. 그런 다음 그 세계 안으로 들어온 감독. 차라리 여기서는 (작가가 아닌 말 그대로) 이 세계를 쓰고 있는 한 사람의 저자(un ecrivain, pas un auteur)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는 이 세계의 약속의 문법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아니, 차라리 얼마나 믿는가. 이때 절반은 자기 자신 속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절반은 이 세계를 따라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있는 1969년의 영화관객들. 그들은 아직 호금전의 < 협녀 >, 장철의 < 복수 >, 1970년대 홍콩 골든 하베스트의 무술 영화들. 서극의 < 촉산 >, 왕가위의 < 동사서독 >, 리안의 < 와호장룡 >, 후 샤오시엔의 <섭은낭>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는 당신이 < 뢰검, 번개칼 >을 지금 본다면 1969년 ‘이후’의 영화들의 경험을 먼저 중단시켜야 한다고 충고할 생각이다. 지금 우리는 시간의 마모를 초월하는 예술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신 정반대로 왜 어떤 영화는 시간의 맥락 안에서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동시대를 경유하는 상상의 공동체. 이때 그들은 서로에게서 서로를 배워야 한다. 세 개의 배움의 선. 이때 이 배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부분적으로만 배우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두 다 배운다 할지라도 그저 순순히 따르기만 한다면 금방 이 세계는 진부해질 것이다. 종종 이 과정은 환상을 부추길 수도 있지만 환멸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이 세계는 자기를 구성하는 내부 환경과 이 환경을 떠받치고 있는 외부 환경 사이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종종 상대적인 경계를 형성하거나 예기치 않았던 원인 때문에 낯설고 불편한 약속에 따라 새롭게 세워지거나 종종 중심이 옮겨가기도 한다. <요검>(1971), <월하의 검>(1970) 누군가는 이 약속을 코드라고 지칭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 단어를 피하고 있다. 코드라는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더 이상의 활동이 중단된 인상을 포함하고 있다. 약속의 형식들. 형식의 약속들. 이 둘 사이의 끊임없는 교환, 이때 나는 먼저 < 뢰검, 번개칼 >이 무협(武俠)영화라고 자기를 호명하는 대신 검객영화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무협영화와 검객영화. 검(劍)이라는 말. 협객과 검객. 나는 차례대로 목록을 정리하다 말고 잠시 멈춰 서서 세 편의 영화제목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순서대로 <뢰검, 번개칼>과 < 비검 >, 그리고 < 요검 >. 검(劍)이라는 단어의 반복. 이 세 편은 마치 삼부작처럼 보이지만 (자료만으로는)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주연 배우도 전혀 다르며 세 편의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도 다르다. <뢰검, 번개칼>과 <비검>은 극동필름에서 찍었지만 <요검>은 덕영필름에서 찍었다. 다만 유일한 공통점은 이 세 편의 영화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제목으로만 따라간다면 <뢰검, 번개칼> 직후에 < 월하의 검 >이 한편 더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셈에서 제외하였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가 무대이다. 같은 이유로 제외한 1967년의 영화 < 풍운의 검객 >. 문득 떠올린 이 공통점은 내게 이상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임권택 은 사극, 혹은 시대극을 찍을 때 언제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 세 편은 모두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개에 따르면 <비검>과 <요검>은 백제를 무대로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세 편의 영화를 비교할 기회가 우리에게는 없다. 이 세 편 중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는 <뢰검, 번개칼>뿐이다. 한편 더. 제목으로부터는 떨어져 있지만 1967년에 만든 < 망향천리 >도 줄거리의 소개에 따르면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도 지금은 우리가 볼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이 세 편, 그 중에서도 <뢰검, 번개칼>만을 대상으로 할 생각이다. 서기 668년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의 낯선 환경. 역사의 인과관계로부터 희미해진 시간. 말하자면 검객영화가 성립될 수 있는 장소. 나는 먼저 무협영화를 생각해보고 싶다. 먼저 도착한 것은 무협영화가 아니라 무협소설이었다. 그때는 무협소설이라는 이름대신 무협지(武俠誌)라고 불렀다. 1961년 김광주가 대만의 무협지 <검해고홍>을 번역한 <정협지>가 경향신문에 처음 연재되었다. 그런 다음 1965년 대만작가인 와룡생의 <군협지>와 <무유지>가 번역되었다. 이 두 권의 소설은 무협소설 독자들에게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무협지가 대중적으로 일종의 서브 컬처가 된 것은 1968년 만화대본소를 중심으로 대여방식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시작되었다. 문학비평은 무협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 책들은 서점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무협지가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 김용의 <영웅문>이 서점에 판매의 유통구조로 등장하게 된 다음의 일이다. 무협지는 장안의 독자들의 소소한 소일거리이기는 했지만 아무도 이 책들을 사서 자신의 서가에 소장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려면 전집으로 사야했다) 대부분 시멘트 종이라고 불리는 싸구려 제본을 했으며, 그 당시의 모든 무협지는 (상당수가 국내 출판사가 무명의 작가들을 고용해서 날림으로 쓴 다음) 거의 예외 없이 와룡생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면서 원본과 진본의 구별조차 애매해졌다. 1966년, 호금전의 무협영화 < 방랑의 결투 >가 개봉된 다음 < 용문의 결투 >와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부천영화제에서는 <독비도>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가 홍콩 무협영화의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 성공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었다. 약간의 기이한 상황. 차라리 풍속이라고나 할까. 이때 당신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무협영화를 ‘보는’ 영화관객과 ‘보지 않는’ 관객들 사이에서 어떤 경계선 같은 것이 세워졌다. 이 경계선은 제법 오래 이어졌다. 무협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내내 이 장르를 탐닉했고, 그렇지 않은 관객들은 이 장르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혐오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황당무계하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황당무계하지 않은가요. 서부극의 수많은 상황 속의 액션장면들. 또는 뮤지컬의 갑작스러운 안무들. 무엇보다도 힛치콕의 < 새 >. 하지만 1969년을 생각해야 한다. 관객들은 무협영화의 상상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손에서 장풍이 나오며 그저 칼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십 수명이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 누군가는 피가 끓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워보였다. 이건 영화를 보는 쪽과 만드는 쪽 양쪽 모두에서 심지어 충무로에서도 많은 영화 스태프들은 이 장르를 ‘으악새 영화’라고 부르면서(등장인물들이 ‘으악’하고 죽은 장면들이 줄을 지어 등장한다고 해서 경멸조로 붙인 이름이다)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이 황당무계한 거부 반응의 이면에는 무언가 무협영화가 대중과 영화가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는 불쾌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무협영화는 십대 청소년들, 혹은 아직 미숙한 어른들, 그 중에서도 남자들의 문화라고 받아들여졌다. 반대로 그들은 어른들이 세워놓은 사회적 약속의 이면을 들여다보았다고 생각했다. 다소 소박한 사회심리학적인 의미에서 무협영화를 1969년에는 외설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논점을 벗어나면 안 된다. 나는 지금 < 뢰검, 번개칼 >을 만든 임권택 의 상황을 생각하는 중이다. 도식적으로만 말하면 1969년은 영화가 환상의 자리에 (미처 배우지 못한 욕망에게) 양보한 어떤 지연 속에서 망쳐버린 채 살아있는 현실이라면 무협영화는 영화에 대한 도착적인 형상을 한 이면의 모습으로 분열되었다. 무협영화는 자신이 환상이라는 것을 영화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때 이 적나라한 노출에는 좀 우스꽝스럽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미숙한 영화가 액션 속에서 영화 그 자체의 기계적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려야 한다. 배우들을 끌어당기는 피아노 줄, 손바닥에서 나가는 장풍 뒤에 숨겨진 환풍기, 아주 초보적인 특수촬영, 그대로 약점이 노출된 스크린 프로세스, 그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활동하는 배우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마치 그런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한 듯이 시침 뚝 떼고 보고 있는 관객들. 무협영화의 약속에는 기괴하지만 일종의 크리스마스와도 같은 상황이 존재한다. 누구나 산타 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날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무협영화의 화면에서 벌어지는 이미지가 진짜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내세워 빈정거리지는 않는다. 응,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할 수 없잖아, 그러니 해도 괜찮아, 그리고 해야만 해. 이건 무협영화잖아. 무협영화의 약속에는 어딘가 냉소적인 상상이 관객의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때 이 냉소적인 상상은 만드는 쪽도 동시에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1969년, 이 약속의 세계를 경유하는 임권택. KMDb 에는 < 뢰검, 번개칼 >의 줄거리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뢰검이라는 보검을 둘러싸고 검객들 사이에 치열한 칼싸움이 벌어진다. 그들 검객 중 안길원이 뢰검의 행방을 찾아 적진으로 혼자서 돌진한다. 그리하여 적장들을 섬멸하고 뢰검을 찾은 다음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떠난다” (http://www.kmdb.or.kr/movie/md_basic.asp?nation=K&p_dataid=01976) 먼저 이 소개를 빨리 잊을 것. 줄거리를 쓴 사람은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자료도 찾아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크게 웃을 수밖에 없는 지적. 아쉽게도 이 영화에는 ‘뢰검’이라는 보검이 나오지 않는다. 이 줄거리는 영화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영화 <뢰검, 번개칼>은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아마도 영화는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과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소설의 출간 시기와 영화의 제작년도가 같은 1969년인 것으로 단지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고향하와 성걸 두 작가가 함께 집필한 <뢰검(雷劍)>은 다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권마다 서로 다른 부제가 달려있다. 당시의 소개를 보면 대만 무협지가 번역되던 시기에 ‘한국 작가가 쓴 최초의 무협소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아마도) 창작 무협소설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두들겼던 것 같다. 이 다섯 권의 소설은 지금도 (짝을 모두 갖추지 못한 채) 고서희귀본 호사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이 다섯 권의 소설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영화 <뢰검, 번개칼>은 이 소설의 첫 번째 권인 ‘풍운의 제국’만을 영화로 각색하였다. 나는 이 소설이 연작으로 기획되었는지, 아니면 어떤 연유에서 첫 번째 권만이 영화화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영화에 한정해서만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우선 낯선 환경. <뢰검>은 중국의 중원을 무대로 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협지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소림사. 무당파, 화산파, 곤륜파, 아미파, 점창파, 청성파, 공동파, 종남파, 그리고 거지패들로 이루어진 개방이 모두 이야기의 장치에서 제외되었다. 혹은 약속의 바깥에서 진행된다. 무협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 안의 국가이다. 이 말을 유심히 보아주기 바란다. 두 개의 국가 사이의 연합과 분리. 선택받은 자들만이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국가 바깥의 국가에 머물러야만 한다. 국가 안의 보이지 않는 국가. 무협의 기호를 배운 자들만이 이 국가 안에 들어올 수 있다. 물론 이 기호를 아는 자들이 외부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나라를 찾아오는 다른 나라의 문화는 이질적이거나 종종 외부적인 존재들로 취급당한다. 이를테면 서역인들. 낯선 상인들. 적대적인 조정의 관료들. <뢰검>은 이 국가 바깥의 이야기이다. 아니, 차라리 변방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중원의 그림자가 거기 부분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을 본다. < 뢰검, 번개칼 >의 등장인물들은 장풍, 검법. 경공술, 때로는 은신술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이렇게도 물어볼 수 있다. 왜 마찬가지로 삼국시대라는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서 사는 다른 장르의 다른 주인공들은 이 방법을 익히지 못한 것일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무협이라는 환경. 그러나 <뢰검, 번개칼> 속에서는 너무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거나 무언가 다른 것과 서로 겹치고 더해졌다. 나는 둘 사이에 어떤 위계를 설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뢰검>의 두 작가 자신에 따르면 대만 무협지를 옮기는 대신 일본의 닌자(忍者) 무협과 중국의 무협기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으며 의도적으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들이 참고한 소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여기서 다소 곡예를 부리듯이 두세 가지 추론을 하고 싶다. 임권택 은 < 뢰검, 번개칼 >을 각색하면서 홍콩 쇼브라더즈 무협영화를 빌려오는 대신 그 자신이 어린 시절 고향에서 천막치고 보았던 일본 시대활극 영화들을 떠올렸음에 틀림없다. 임권택은 호금전의 < 방랑의 결투 >와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를 보았다. 내가 질문을 하자 그 두 편의 영화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온 영화들은 황당무계해서 금방 관심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이 활극영화의 시대 ‘이후’ 임권택은 사무라이들의 활극 장면을 1990년에 한 번 더 찍었다. 그 장면은 < 장군의 아들 >에서 김두한이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 장면에 슬그머니 등장한다. 이 액션장면은 다른 영화에서 빌려온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장군의 아들>의 한 장면을 위해서 그 자신이 연출한 씬이다. 이 장면과 <뢰검, 번개칼>의 검술 액션장면을 연결시켜 보면 이상할 정도로 둘 사이에서 시간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유사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뢰검, 번개칼>에서 닌자 복장을 한 신라의 검객들이 도풍으로부터 버림받고 혼자 남겨진 채 성녀를 둘러싸고 벌이는 활극장면. 이때 인물들을 펼치고 좁히면서 옮겨가는 공간적인 이동의 동선. 나는 임권택이 검술 활극장면에 대해서 하나의 모델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본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몇 차례를 물어보았지만 유감스럽게 그 제목을 들을 수 없었다. 틀림없이 마키노 쇼조(와 마사히로)와 이토 다이스케로 시작한 (일본 영화사의) ‘피의 살진(殺陣)’ 1925년으로 시작된 다음 193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던 활극중의 한편일 텐데, 서울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이 시기의 일본 시대극은 너무 제한적이어서 거의 추론할 수가 없다. 아마도, 아마도 내 추론이 틀리지 않다면 임권택은 홍콩 쇼 브라더즈 무협영화를 거의 참고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69년은 그 영화들을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두 편의 영화 <방랑의 결투>와 < 용문의 결투 >가 개봉된 다음 한동안 호금전의 영화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다. (한참 뒤에 < 충열도 >가 개봉하였고, < 산중전기 >는 절반 이상이 재편집되어 개봉하였다) 장철은 < 돌아온 외팔이 > 혹은 < 심야의 결투 >에서부터 그의 무술 동작지도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임권택 스스로 종종 언급하는 영화적 ‘스승’ 정창화가 홍콩에서 만든 무술영화들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세 편의 ‘검’에 관한 제목을 단 영화들이 만들어진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그 영화들은 임권택과 아무 관계가 없다. 아마도 임권택은 그 영화들에 어떤 호기심도, 어떤 호의도, 어떤 배움도 가지지 않은 것 같다. 한 가지 더. 임권택은 무협소설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다. 1961년 경향신문에 첫 번째 무협소설 <정협지>가 연재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첫 번째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내 경험으로 어른들은 그때 만화 대여점에 오지 않았다. 이곳 문턱을 들락날락 거리던 독자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 청소년 사내아이들이거나 아니면 백수처럼 보이는 남자 어른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만화대여점들은 낮에 운영되었고 해가 지면 대부분 일찍 문을 닫았다. 어두컴컴한 실내는 책을 읽기에 적절치 않았고, 그때는 형광등의 수명이 매우 짧았다. 물론 빌려 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다섯 권이 한 질로 이루어진 무협지는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하루, 혹은 길어야 이틀 단위로만 대여하였다. 지방촬영을 다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무협지를 빌려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때 임권택은 너무 많은 영화를 찍었고, 게다가 그가 이제까지 찍은 영화들은 무협소설의 세계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다시 한 번 환기하지만 지금은 1969년이다. 검객들의 세계. 새로운 약속의 문법. < 뢰검, 번개칼 >은 이제 막 삼국통일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서기 642년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개소문이 영류왕과 그를 뒤따르는 온건파 중앙귀족들을 참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 혹은 진행 중인 시대. 이때 연개소문이 세운 또 다른 계획 중의 하나는 삼국통일을 막기 위해 신라의 김유신을 암살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 그 당시의 삼국시대는 당나라와 한반도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힘의 관계이며, 이 이야기는 사후적으로 신라가 당나라에 협력하여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는 역사적 결과를 귀납적으로 재구성한 다음 설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에서 즉각적으로 이상하게 여긴 것은 이 설정의 역사적 당위성에 대해서 <뢰검, 번개칼>은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권택 은 <뢰검, 번개칼> 이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사극영화에서 이런 설정을 한 적이 없다. 이를테면 사도세자와 22대 정조에 관한 궁중사극인 네 번째 영화, 1963년에 만든 < 망부석 >을 떠올려보라. 그는 역사적 배경을 지닌 사건을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혹은 1973년, 그러니까 < 잡초 >이후에 만들어진 사극영화들에서 임권택은 과도할 정도로 역사적인 연표에 대해서 정확함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왜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이상하게도 임권택이 <뢰검, 번개칼>을 환상문학의 일부 같은 방식으로 취급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물론 나는 이 말을 그저 느슨하게 인상에 한정지어서만 할 생각이다. 여기서 임권택이 환상의 진짜다움을 끌어낸 다음 과장의 경이와 수수께끼와 같은 괴기에 대해서 시적인 마법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여기에는 세상의 내용과 표현 사이의 구분이 거의 사라진 것 같은 어떤 붕괴의 순간이 차례로 찾아온다. 범주가 사라진 채, 여기서 저기로, 혹은 다시 저기서 여기로 넘어오는 과정에 어떤 문턱도 없는 것 같은 카오스. 스승 도풍과 주룡 성녀와 도풍 버들녀와 주룡 고구려의 무술을 전수하고 있는 고명한 스승은 두 제자를 부른다. 그런 다음 자신의 딸 성녀와 약혼한 제자 도풍에게 연개소문의 명이라는 말을 전하며 신라에 가서 김유신을 암살하고 돌아온 다음 결혼을 하라고 명한다. 두 개의 명. 국가와 스승의 명. 그러나 도풍은 신라에 간 다음 국가와 스승을 배신하고 신라에 투항한다. 스승은 두 번째 제자 주룡을 다시 보낸다. 한편 성녀는 자신과 스승, 국가를 배신한 약혼자 도풍을 죽이기 위해 아버지 몰래 길을 떠나지만 도풍을 만나서 차마 죽이지 못한다. 신라에 잠입하던 주룡은 우연히 주막에서 무술이 뛰어난 버들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주룡을 돕는다. 마침내 주룡은 김유신의 처소에까지 잠입하지만 김유신이 함께 천하를 통일해보자는 제안을 하자 그를 죽이는 대신 그를 배신한 신라의 상인 최현을 고발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떠나기 전 주룡은 도풍과 마지막 대결을 한다. 자, 이 마지막 대목을 잠시 멈춘 다음 읽을 것. 도풍은 갑자기 나타난 약혼녀 성녀의 손에 죽고, 이제까지 딸과 제자의 뒤를 쫓으며 음으로 양으로 돕던 스승은 자기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녀의 죽음 앞에서 그냥 떠난다. 주룡은 버들녀와 함께 떠난다. 어디로? 그건 알 수 없다. 그가 심산유곡으로 은퇴를 하는지, 아니면 이제 남은 유일한 나라 백제로 가는지 그건 영화 ‘이후’의 일이다. 어디까지는 대중 무협지의 약속을 따르는 척 하면서 어디서부터는 완전히 벗어나기도 하는 이 줄거리 앞에서 나는 어디서부터가 각색이며 어디까지가 원작에 따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를테면 마지막 대결의 순간, 주룡이 도풍을 처형하는 대신 그의 약혼녀인 성녀가 그를 칼로 찔러 벌하는 것은 감정의 과도하리만큼 기형적인 행동처럼 보인다. 게다가 도풍이 자신의 임무가 무가치하다고 성녀에게 말하면서 신라를 떠나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가서 함께 살자고 말한 다음 그걸 실행에 옮길 때 이미 도풍과 주룡의 대결은 무의미해진 다음이다. 이미 사회적으로 상징적 네트워크 안에서 자살을 선택한 도풍을 구태여 죽일 어떤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좀 더 결정적인 사회적 등록의 취소. 딸 성녀를 만나서 아버지는 변장을 벗은 다음 자신이 연개소문의 거짓말에 속아서 배신당했음을 알릴 때 주룡과 도풍의 임무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이다. 임권택 은 이 줄거리를 문제 삼지도 않을뿐더러 등장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이 아이러니를 신중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그 어느 장면보다도 김유신을 대면하는 결정적인 순간, 그러니까 이 가상의 이야기가 역사의 중심에 들어서서 마치 실재를 베일 듯한 순간과 마주했을 때조차 임권택은 더 밀고 나아갈 생각이 없다. 역사의 저 멀리서 온 이야기가 마침내 역사 안에 들어선 순간, 어쩌면 누군가는 장이모우의 < 영웅 >에서 무영이 우여곡절 끝에 진시황을 눈앞에 두고 칼을 거두고 포기해버리는 결정을 떠올리면서, 두 이야기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장이모우는, 거기에 동의의 여부와 상관없이, 역사를 느껴본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거기서 시간을 끈다. 음미의 시간. 교차점. 현재로 소환된 과거. 물론 역사는 집행될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아주 잠시만이라도, 할 수 있는 한 잠시라도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역사가 택한 입장 앞에 선 우리를 생각하게 된다. 두 개의 우리. 임권택은 여기서 역사가 미처 자기를 눈치 채기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듯이 잠시 동안 마주본 다음 재빨리 빠져나온다. 주룡은 김유신을 내리칠 수 있었고, 또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하지 않는다. 이때 그가 하지 않는 이유는 쇼트의 질서 안에서 잘 설명되지 않는다. 마치 영화 바깥의 그 무언가에 대한 복종처럼, 마치 사후적으로 김유신이 역사 안에서 여전히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오래된 타임머신의 이론처럼, 시간의 질서를 건드리는 순간 현재가 카오스가 될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 자리를 떠난다. 이야기(histoire)가 역사(Histoire) 앞에 서서 느끼는 자기의 왜소함. < 뢰검, 번개칼 >의, 어쩌면 가장 의미심장한, 이 장면에서 나는 역사가 어떻게 임권택을 바라보는지를 쳐다본다. 반복. 역사가 어떻게 임권택을 바라보는지를 쳐다본다. 나는 역사와 임권택을 반대로 쓴 것이 아니다. 한밤중. 유령들이 출몰하는 시간. 그때 영화는 주룡을 따라 김유신을 찾아간다. 거의 마주보는 듯한 느낌이 없는 시선의 쇼트 사이의 교환. 주룡이 자신을 죽이러 온 자객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가, 라고 묻자 김유신은 인명은 하늘에 달렸다고 말한 다음 오히려 등을 내보인다. 이때 김유신과의 절대적인 비대칭성 앞에 세워진 불균형 앞에서 임권택은 재빨리 뒷걸음질 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는 지금 주룡의 자리에 임권택이라고 썼다. 여기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김유신이 아니라 그를 죽이러 온 주룡의 자리에 선 임권택이다. 이때 임권택이 물러선 세계는 역사의 그림자가 거의 희미하게 진 채 기계적으로 약속이 작동하는 검객영화의 (상상적) 국가이다. 나는 이 두려움을 임권택의 영화에서 형식을 달리하여, 매번 다른 심급으로, 수십 겹으로 쌓이고 또 다시 쌓이는 지층의 결을 따라가며, 거의 문자 그대로의 역사 앞에 다가가거나, 반대로 역사 안에서 종종 교란당한 것만 같은 사건들의 와중에서, 때로 인물을 따라갈 때조차, 내내 느껴본다. <뢰검, 번개칼>은 임권택의 영화중에서 어떤 자리에서 질문을 던져도 자기가 서 있는 자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채 거의 어떤 상호작용도 멈춰버린 영화이다. 그때 내게 신기하게 보이는 것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들 중에서 영화 안의 모든 기호들의 능력과 사용의 역할과 방법의 감각들이 가장 덜 조직적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삶의 강도와 영화의 기호들 사이의 힘의 관계. 나는 <뢰검, 번개칼>을 보면서 임권택의 영화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세상 안의 서로 다른 삶의 기호들과 얽혀들고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확인하게 된다. 반대로 이 영화가 완전히 자기의 세계로 돌아와 액션 활극장면을 펼칠 때 나는 임권택 이 무언가 자기의 향수의 환상을 즐기고 있다는 기분을 멈출 수 없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극단이 있다. 하나는 역사의 실재에 다가가는 척 했다가 재빨리 빠져나온 다음 할 수 있는 한 그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서 영화 사방에 만들어놓은 블랙홀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약속 안에서 그 약속 자체를 종종 기괴하게 보일 정도로 소박하게 쳐다보는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다가가도 < 뢰검, 번개칼 >은 진지한 구석을 찾을 수 없는 영화이다. 나는 이 장르 자체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믿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호금전의 < 협녀 >. 하지만 <뢰검, 번개칼>에서 아이러니나 유머를 맛보려는 의도도 없다. 반대로 이 영화는 자기가 다루려는 이야기를 무언가 신비롭게 믿으려는 태도가 어슴푸레 감돈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이야기를 믿으려 한다기보다는 자기가 이미 본 장면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미 그 장면은 존재했고, 그러므로 그 장면을 다시 재현한다는 기분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향수가 거기서 배어나온다. 당신이 이것을 기분의 비평이라고 불러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기분을 좀 더 섬세하게 다루고 싶다. <뢰검, 번개칼>이 기술적으로는 유치하지만 반대로 그 소박함을 하나의 원장면(Urszene)으로 설정하면 마치 영화가 자기의 장치를 꺼내들었을 때 그것 자체를 믿을 수 있다는 향수의 시선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가장 아름다운 예.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안젤리카의 이상한 경우>에서의 그 놀라운 상공비행의 장면. 이때 물론 이 성립의 바탕에는 멜리에스가 있다. <뢰검, 번개칼>의 바탕에는 1930년대 일본 시대극의 활극장면이 있다.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마치 무성영화 시대의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장소의 재빠른 이동을 보여주기 위한 점프 컷. 아니, 차라리 그냥 흐르는 공간 안의 시간의 장면들을 잘라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하나의 쇼트 안의 가시적인 데쿠파주. 마치 가위로 오려낸 것만 같은 인물을 배경 위에 올려놓고 진행되는 스크린 프로세스라는 경공술. 나는 이 장면들을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어떤 존경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자기가 본 대중영화들의 감흥을 개인적인 세계 안의 새로운 예술품으로 끌어올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아예 그런 시도 자체를 믿지 않는다. 좀 더 가혹하게 말할 수도 있다. 임권택은 자기가 다루는 대상을 그런 소멸 속에서 다시 부활시켜 찬미하고 그것을 새로운 단계의 감흥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곤 조금도 믿지 않는다. 그 대신 여기에는 이미 자기가 본 것에로 자기가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체념의 전망이 향수 속에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지속된다. 무엇이 무엇을 전제하는가. 그때 전제는 무엇을 허락하는가. 나는 도풍과 주룡의 대결 장면의 기괴한 반복을 보았을 때 정말 이상해서 처음에는 내가 무얼 본거지, 라는 일시적인 중단의 자리에 머무는 것 같은 착시에 빠졌다. 이 대결은 두 번 되풀이 된다. 두 번 되풀이 된다는 자체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처음 도풍과 주룡이 서로 대결을 했을 때 나는 전체의 균형 속에서 좀 이르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아직 영화는 40분이 남았고, 이 약속 안에서 도풍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며, 도풍이 죽고 나면 사실상 더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따분하게 이 순간을 해결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도풍이 승리한 다음 다시 두 사람의 대결을 준비하는 것이다. 약속의 게으른 관습. 그런데 < 뢰검, 번개칼 >에서 이 첫 번째 대결은 이상한 방식으로 중단된다. 도풍의 편에서 주룡을 생포하기 위해 대결의 장소를 습격한 신라 닌자 입운과 그의 부하들이 주룡의 부하들을 몰살한 다음 홀홀단신의 주룡을 거의 포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풍은 별다른 이유 없이, 마치 주룡의 편에서 그의 사정을 위해서 행동하기라도 하듯, 그저 간단하게, 오늘은 여기서 멈추지, 라고 한 다음 그냥 그 자리를 떠난다. 주룡도 더 이상 대결할 의사가 없다는 듯 도풍이 떠나는 것을 수수방관한다. 둘 중 누가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며, 그 두 사람이 대결을 중단해야 할 어떤 이유가 생겨난 것도 아니다. 나는 어리둥절하게 이 장면을 지나쳤다. 그런 다음 더 이상하게도 도풍은 이제 더 이상 신라를 위해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다는 듯 그의 약혼녀(이자 스승의 딸인) 성녀와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약간의 우여곡절. 혼자 남겨진 성녀 앞에 나타난 스승은 연개소문이 자기를 속였다고 탄식한다. 이제 주룡과 도풍이 대결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어진 셈이다. 그런데 떠나가는 도풍 앞에 주룡이 나타나서 마지막 대결을 청한다. 이때 이 두 번째 대결은 마치 첫 번째 대결이 다시 반복되기라도 하듯이 거의 비슷한 풍경을 지닌 장소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정확하게 같은 장소는 아니다) 이때 이 반복은 마치 이 두 번의 대결 사이의 이야기를 무효화 시키는 것처럼, 말하자면 두 개의 씬 사이의 수많웰오潔薩綬?간단하게 접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혹은 좀 더 인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앞의 장면이 그대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기묘한 기시감을 안겨준다. 물론 결정적으로 이 두 개의 장면에서 주룡과 도풍이 입은 의상은 정반대로 첫 번째는 둘 다 검은 흑색 옷을 입었고, 두 번째에서 고용은 흰색 백의를 주룡은 노란색 황의를 입었다. 여기서 즉각적으로 먼저 이상하게 여긴 것. 왜 도풍과 주룡 이 두 사람의 옷을 매번 서로 반대의 색을 선택하는 대신 서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상을 입혔냐는 것이다. 첫 번째 의문. 장르의 아이코노그래피. 말하자면 이상할 정도로 여기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다. 게다가 악의 편에 선 도풍이 마지막에 흰 색 옷을 입은 것은 더 이상한 선택이다. 두 번째 의문. 미장센의 경제학. 이 의상은 검술이라는 액션 장면의 연출에서도 매우 비경제적인 선택이다. 왜냐하면 서로 검술을 교환하면서 오갈 때 종종 카메라는 이 두 사람의 액션을 더 잘 보여주거나 혹은 전문적인 대역 무술감독이 그들 대신 연기하기 위해서 카메라가 부감으로 수직 상승하거나 아주 멀리 떨어질 때 두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는 문제와 부딪치기 때문이다. 이건 임권택 도 잘 알고 있는 문제이다. 이를테면 거의 동시에 만들어진 < 황야의 독수리 > 혹은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를 생각해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렇게 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생각해본다. 임권택은 여기서 이미 드라마에 관심을 잃은 지 오래이다. 그 대신 반복할 수 없는 것을 눈앞에서 다시 재현할 때 거기서 불러 일으켜진 시뮬라크라에 다소 당황한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나는 두 번째 대결 장면이 정말 이상해 보인다. 도풍과 주룡의 대결의 액션 설계는 두 사람의 상반신을 중심으로 한 투 쇼트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먼 롱 쇼트를 반복해서 교차시킨다. 하나의 쇼트는 두 사람의 액션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반대로 다른 하나의 쇼트는 너무 멀리 떨어져서 누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물러난다. 그 두 개의 쇼트 사이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교환은 거의 영화의 배열 장치를 중단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지금 나는 임권택이 여기서 실험적인 시도를 한다거나 반대로 유물론적 교차 편집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 두 개의 쇼트는 보는 우리들을 두 사람의 대결에 몰두시키는 대신 하나는 줄거리의 중심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대결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이 진행의 또 다른 쇼트는 이 대결이 세상이라는 풍경 안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시도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둘 중 어느 쪽도 따를 수 없는 까닭은 하나의 씬 안에서 어느 쪽에도 주도권을 주지 않고 반복적으로 두 개의 서로 다른 계열의 두 개의 동일한 내용의 쇼트가 교환되면서 둘 사이에 어떤 공백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채워져야 할 이 공백은 임권택의 향수이다. 어린 시절 천막 앞에서 느껴보았던 영화라는 체험의 경이. 이미지들의 기쁨. 생각지 않았던 감각들의 향연. 잠들었던 기억의 시간. 물론 나는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글은 금방 소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하고 싶다. 임권택은 여기서 자기의 향수를 그냥 공백인 채로 남겨놓는다. 그는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인다. 그래서 < 뢰검, 번개칼 >은 명백히 자기의 영화적 계보를 드러내면서도 그 장면들에 어떤 오마주의 존경이나 되찾은 시간의 기쁨이 없다. 임권택 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서 영화가 영화 그 자신에게 기꺼이 바치는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망설임. 언제나 망설임. 그때 그가 망설이는 것은 아마도, 아마도 영화가 아니라 그 영화를 느껴보았던 시간일 지도 모른다. 그 시간의 뿌리. 종종 그래도 괜찮을 법한 자기의 기억에 베풀어도 상관없을 우월한 관점이 여기에는 없다. 나는 가끔 영화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임권택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는 세상이 영화를 볼 때 영화가 그걸 견디지 못하면 부서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세계와 저 세계. 나는 지금 그 사이의 틈새, 간격, 거리. 무엇보다도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르는 비밀 통로를 찾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찾고 있는 중이다. (계속) 1969년 87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주식회사 극동필림 각본 서윤성 , 강조원 촬영 구문석 음악 황문평 미술 노인택 편집 김희수 안길원 주룡 이훈 도풍 김청자 성녀 오경아 버들녀 안일력 입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