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 아일랜드
- 감독
- 맷 퍼거슨
- 제작년도
- 2009
< 괴물 >(2006)은 서울 도심의 한강에서 거대한 돌연변이 생물이 나타나 사람들이 붐비는 공원을 날뛰다가 여중생을 꼬리에 움켜쥐고 납치하는 기둥 설정 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장르에 대한 성공적인 전복의 사례인 < 살인의 추억 >(2003)과 마찬가지로 장르의 꼴을 갖추고 있는 <괴물>에서 봉준호는 괴수영화의 관습을 이용하여 현대 한국의 사회, 정치적 현실을 다룬다. 미군 기지를 발원지로 하는 환경 사고의 산물인 괴물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쉽게 읽히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더 복잡한 그림이 드러난다. 납치된 소녀 현서(고아성)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경제 기적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사회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박씨 집안의 구성원이다. 현서의 가족은 느리지만 헌신적인 아버지 강두(송강호)와 강변 매점을 강두와 함께 운영하는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으로 구성돼 있다. 결정적인 순간 얼어붙는 버릇이 있는 양궁 선수 이모 남주(배두나)와 한때 급진주의자였으나 지금은 실직한 주정뱅이인 삼촌 남일(박해일)도 있다. 국가는 이 가족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괴물의 공격이 있은 후 정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숙주라며 가족을 비롯한 괴물과 접촉한 모든 사람을 격리한다. 하지만 강두는 괴물에게 납치당한 뒤 한강을 따라 배치된 미로 같은 하수구에서 노숙자 소년과 함께 숨죽이고 있는 현서의 전화를 받는다. 박씨 가족 일행은 아둔한 병원의 통제 시스템을 벗어나 현서를 찾기 위한 자경단의 여정을 시작한다. <괴물>은 장르와 양가적 관계를 구현한다. 봉준호는 괴수 장르의 발전 도상위에서 자신의 영화를 할리우드와 더 밀착시키고자 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괴물의 충격적이고 갑작스러운 등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위기에 처한 여러 인물들의 예상치 못한 용감한 행동으로 절정에 이르는 고전 괴수영화의 시각적, 서사적 관습을 따른다. 스토리는 전국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무대, 즉 수도 서울의 상징인 한강변을 배경으로 한다. 시각효과 스튜디오 오퍼니지와 협력한 할리우드 수준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퀄리티 이면에 놓인 봉준호의 야심은 괴수영화와 슬랩스틱 코미디의 관습이 충돌하는 장르의 미학을 전개하는 것이다. 노란색 방호복을 입은 방역 요원이 바나나 껍질에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강두에게 총알이 한 발 남았다는 말을 들은 희봉이 아들이 총알의 수를 잘못 세었다는 것을 깨닫고 괴물에게 최후를 맞는 장면 등에서 이런 충돌이 가시화된다. 봉준호는 괴물의 실체를 초반에 드러내거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괴물의 입에서 빠져나온 현서가 가족의 간청에 화답하지 않고 비극을 맞이하는 가슴 아픈 장면 등에서 할리우드 주류 장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장르의 관습을 전복한다. 봉준호는 장르 관습의 조각들을 한국적 문맥에 맞게 배열하는, <살인의 추억>에서 시작한 연출 전략을 이어간다. 가장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장면 중 하나는 클라이맥스, 거리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격렬하게 대치하는 가운데 강두의 가족들이 한강변의 노숙자(윤제문)와 함께 괴물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감행하는 신이다. 정치적인 함의가 강력하게 폭발하는 이 장면에서 노숙자는 남일이 배낭을 벗어 던지고 불타는 화염병을 던질 준비를 하는 동안 괴물의 목구멍에 휘발유를 붓고 병이 손에서 미끄러져 발밑에 부딪히자 놀란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때 남주가 활을 들고 나타나 절묘한 타이밍에 화염이 이는 화살을 괴물의 입을 향해 발사하고 강두는 쇠파이프로 괴수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이 장면이 강렬한 이유는 할리우드의 장르 관습과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불덩어리가 되어 쓰러지는 괴물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은 괴수 영화의 전형적인 관습 아래 있다. 괴물을 처단하는 공격의 수단은 너무나 한국적이다. 배낭을 멘 청년이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은 민주화시대를 통과한 한국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선명한 도상은 1980년대 민주화 시위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 세계화 및 자유무역 반대 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이 참여했던 20여 년간의 거리 시위를 환기한다. 이러한 시위 중 상당수가 억압적인 군사정권을 지지하거나 점령군의 부당한 지위를 남용하고, 신(新) 자유주의 경제 의제를 추진한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저류에는 뚜렷한 반미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활과 화살을 든 남주의 이미지에는 한국의 여성 양궁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해 온 국가적 색채도 담겨 있다. 괴물과 미국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이 장면들은 글로벌한 미국인-타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정치적 주장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것은 노숙자, 실직자, 정치적 액티비스트, 삼류 운동선수 등 사회적, 경제적 주변성과 실패한 인물들을 통해 한국성을 표현하려는 또 다른 맥락이 있다. 봉준호는 국가의 대리인이 아닌 이들을 도덕적으로 정당한 한국성의 구현으로 지지한다. 범죄 드라마가 아닌 괴수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표면적 범죄와 심층적 범죄라는 <살인의 추억>의 구조를 이어받는다. 납치와 실종의 상황은 <괴물>에서 반복되는데 괴물은 내러티브에 구조를 부여하는 장치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초점은 아니며 실제로 괴물은 플롯이 전개되는 동안 점차적으로 중요성을 상실한다. 흥미로운 것은 대도시의 표면 아래 숨겨진 현서를 찾는 가족의 여정이 현대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한 범죄의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박씨 일가가 관료 조직과 자본에 얼키고 설키면서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의 상징물인 한강 다리 아래를 전전할 때 그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고 그저 경멸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거짓을 말하고, 경찰은 현서의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병원은 현서를 찾기 위해 격리를 해제하지 않으며, 강변을 소독하는 방역 요원들은 쉽게 뇌물에 굴복한다. 남일은 급진주의 액티비스트 시절의 정치적 이상을 고액 연봉과 교환한 친구 뚱게바라(임필성)에게 배신을 당한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경제적 성공을 연상시키는 고층 빌딩 꼭대기에 있는 통신회사 사무실에서 뚱게바라는 휴대폰 추적을 통해 현서의 위치를 찾아내지만 카드빚을 갚기 위한 신고 포상금을 노리고 경찰에 남일을 신고한다. 이러저러한 삽화들을 통해 봉준호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환상을 야유하고 경제적 기적을 돌연변이 괴물로 재탄생시켜 근대화를 얻기 위해 지불한 사회적, 도덕적 비용의 크기를 가늠하고자 한다. <괴물>이 폭로하고자 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범죄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프롤로그는 돌연변이 생물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장면은 주한미군 사령부이자 서울 중심에 위치한 용산 미군기지(이곳 근처에 현재 한국 정부가 터를 잡았다는 사실도 기이한 반향을 불러온다)의 영안실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인 영안실 의사가 한국인 부하 직원에게 포름알데히드 병을 하수구에 버리라고 명령하고, 소극적으로 항의하던 부하는 이내 순순히 복종하여 수백 병의 독극물을 싱크대에 쏟아 붓는다. 이 장면은 고전 공포영화의 클리셰인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더 미묘한 공포는 부하가 미친 과학자의 명령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불안을 조성하는 이 장면은 자국민에 극도로 해로울 수 있는 범죄를 종용하는 미국의 명령에 순응하는 한국 정부의 종속성을 재현한다. 한 병원 장면에서 기괴한 방호복을 입은 미국 관리가 한국인 의사에게 강두의 뇌를 뚫으라고 명령하는데 이 가학적이고 비논리적인 행위를 한국인 의사는 묵묵히 수행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괴물이 자연이나 과학, 심지어 미국의 군사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종이라는 정치적 태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주장한다. 괴물을 만드는 것은 미국인 영안실 의사가 아니라 한국인 조수이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인 ‘숙주’는 미국에 기생하는 한국의 지위를 가리키면서 심오한 범죄의 본질을 암시하는 셈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1. …지돈 씨, 이 시대는 이상한 시기이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팽창하나 경련적인 변화의 물결의 시대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가 모순적 효과를 동시적으로 확대합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변화의 시대가 권력관계의 잔인함을 지워내지는 않고, 오히려 다양한 방식들로 권력관계들을 강화하면서 내파의 지점으로 이끕니다… 1) 연재를 시작한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가 만들 에세이 필름의 제작비는 한푼도 모이지 않았다. 투자자나 제작자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연재 조회 수는 매회 마다 정확히 반토막이 났고 이렇게 계속 쪼개진다면 쿼크 입자 수준까지 내려갈 지경이었다, 라는 말로 JD가 지난 회를 시작한지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조회 수가 반토막을 넘어 1/3토막이 났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지난 반년 동안 우리의 연재를 읽고 뭐라도 반응을 보여준 사람은 셋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영화평론가들이다. 임재철: 아니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었다는데 무슨 길을 잃었냐고. 내가 보기엔 한국 영화에 들어간 적도 없는데, 안 그래? (직접 들음) 유운성: 제가 문근영 배우를 좋아하긴 하죠, 하하. 집에 싸인도 있고… (전해 들음) 오진우: 연재된 글들을 보고 웃어본 적은 없지만 응원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봄) 세 분 평론가에게 마음 속 깊은 감사와 우정을 전한다. 영화라는 우정. 하지만 지금 JD와 내게 필요한 건 일반적인 우정이 아니다. 영화라는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우정이라고 할까? 그건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가능한 우정이고, 영화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물적조건(=돈)과 뗄 수 없는 우정이다. 물론 모든 우정이 영화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영화가 우정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말해야겠다. 영화라는 우정은 우정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을 통해 <초국지소지천황>을 봤다. 1971년, 감독 하라 마사토와 일군의 배우들은 [고지키]로 알려진 역사와 신화에 관한 오래된 책을 바탕으로 이 16mm 영화를 촬영했다. 하라는 당시 촬영을 끝내지 못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혼자 슈퍼8 카메라로 촬영을 재개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돌아보고, 신화는 외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물리적인 의미로는 촬영될 수 없지만, 영화 그 자체 혹은 영화 만들기 과정에 깃드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2) 몇 번의 재편집을 거쳐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진 <초국지소지천황>은 완성되지 못한 16mm 푸티지와 촬영지에서 촬영지로 움직이는 1인칭 시점의 8mm 촬영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흘러가는 동안 하라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떠들고, 때로는 직접 노래를 하기도 한다.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영화일기, 에세이 필름, 바르트가 말한 글쓰기-의지(scripturire)에 빗대자면 순전한 응시-의지로 이루어진 영화라고 할까.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동시에 렌즈를 바라보는 하라는 말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영화를 위해 희생한 과거도, 바칠 현재도 갖고 있지 않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모든 걸 갖고 있다.” 나도 20대 초반의 촉망 받는 영화 감독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마흔을 넘긴 서평가이지만 서평은 쓰지 않고,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영화도 좋아하지 않는다(내가 쓴 [담배와 영화]라는 책의 부제는 ‘나는 어떻게 흡연을 멈추고 영화를 증오하게 되었나’다). 우정을 싫어하진 않지만 우정이라는 말을 남발하는 건 싫다(진정한 우정은 우정이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식의 고색창연한 로맨티시즘의 발로일 수 있다). 영화를 위해 희생한 과거도 바칠 현재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건 우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라 마사토의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능의 카메라와 편집 프로그램에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심지어 여기엔 ‘하지만’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2. “얼굴에서, 얼굴에서! 얼굴은 얼간이들을 위해 만들어졌군!” 3) 얼굴은 보편적이 아니라고 들뢰즈는 말했어요, 라고 JD는 말했다. 그건 백인 그 자체이고, 그리스도이며, 유럽인이고, 에즈라 파운드가 뭔가 관능적인 인간이라 부른 것, 요컨대 평범한 색정광(érotomanie)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보편적인 것의 얼굴, 한 마디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라는 거죠. 4) JD는 계속해서 말한다. -얼굴은 우리를 비인간성으로 이끄는 일종의 정치와도 같은 것, 따라서 인간이 운명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굴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기표화와 주관화로 작동하는 기계이자, 인종차별주의 및 민족중심주의를 산출하고 강화시키며 얼굴의 선별에 이용되는 기계인 얼굴성이라는 추상적 기계로부터 도망치는 거라나 뭐라나… 5) 밤이었고, 우리는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KTX 066호 열차를 타고 있었다. 긴 하루였다. 정지돈과 박솔뫼, 그리고 나는 삼요소라는 이름의 서점에서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독자들과 함께 하는 세 개의 세션을 진행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박솔뫼가 예매한 기차는 15분 먼저 출발했고, 둘만 남아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다. 창작과 비평에 대해서, 문학과 사회에 대해서, 문학이라는 좁은 동네에 대해서, 자음과 모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고, 우리가 처한 상황과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한 것들, 그리고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는 최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온라인 상영관을 통해 본 두 편의 영화, 하라 마사토의 <초국지소지천황>과 크리스 페티와 이안 싱클레어의 <런던 순환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런던 순환도로>는 크리스 페티와 이안 싱클레어가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패스인 M25 외곽순환도로에 관해 만든 작품으로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사회학적인 비평, 한 세기 전의 미래파 문학 속으로의 영화적인 여행이고,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두 인물 사이의 영화적 대화이다. 6) 두 영화는 여러모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일단 듀얼 스크린이라고 하나? 독립된 두 개의 화면이 동시에 흐르며 내레이션을 통해 진행된다는 것,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는 부분 등이 그렇다. 물론 다른 점은 더 많다. 하나는 사회(학)적-비평적-대화-외부를 향하는 영화(<런던 순환도로>)고 다른 하나는 신화적-시적-독백-내부를 향하는 영화(<초국지소지천황>)라는 것. 그중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하라는 카메라를 바라보지만 페티와 싱클레어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열이면 열 <초국지소지천황>을 더 예술적이라고 말할 거예요. -왜죠? -일종의 진정성일까요. <런던 순환도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학적인 일화들을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통해 배열하고 보여주는데 그걸 하나로 묶어주는 건 런던 순환도로죠. 따라서 이건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 일종의 교양다큐 같은 걸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예요. 반면 <초국지소지천황>의 모든 이미지와 이야기를 묶어주는 건 결국 하라 마사토라는 개인이에요. 실제로 감독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시네마와 내 얼굴을 마주하겠다, 대적하겠다, 내 얼굴을 보여주겠다, 뭐 이런 다짐을 몇 차례 반복하잖아요. 그런 감독의 행위가, 정확히 말하면 그런 감독의 얼굴이 영화에 진정성을 주입하는 거죠. -저는 사실 그 부분이 싫더라고요. -진정성을 주입하는 부분이요? -카메라로 자기 얼굴을 찍는 부분이요.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나는 내가 얼굴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에 나오는 얼굴만 그런 게 아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 상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거울에 비친 내 얼굴. 얼굴이 발산하는 정보가 너무 많아 종종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말 그대로 TMI. 언젠가부터 길을 걷고 마트에 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상적인 행위들이 훨씬 수월해졌는데, 그건 물론 마스크 때문이다. 얼굴, 얼마나 소름끼치는가. 들뢰즈는 말한다. 자연스럽게도 얼굴은 모공들, 평평한 부분들, 뿌연 부분들, 빛나는 부분들, 하얀 부분들, 구멍들을 가진 달의 풍경이다. 얼굴을 비인간화하기 위해 그것을 클로즈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커다란 판(gros plan)이며, 자연스럽게 비인간적이며, 괴물적인 복면이다. 7) 영화의 일반적 얼굴은 바로 제국주의의 얼굴이며, 자본주의에 의해 집요하게 그리고 참을성 있게 구축된 세계적 질서의 얼굴이지 않은가? 8) -그래서 우리 연재가 자본주의가 구축한 세계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완벽하게 정교한 얼굴 가면을 계속해서 바꾸어 쓰는 요원들이 등장하는 < 미션 임파서블 >에서 시작했던 거군요. 소름… 그러므로 비약하면, JD가 말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져야 합니다. 기록, 확인, 재현, 묘사의 조작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수행동사라고 부르는 것, 정확히 말해 발화하는 행위 외에 어떤 언표도 가지지 아니하는 그런 진귀한 언술적인 형태. 삶은 영화를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영화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입니다. 이른바 포스트-얼굴Post-Ulgul!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천천히 눈이 감겼다. 강연 준비를 하느라 밤을 꼴딱 샌 탓이다. 우리 열차는 곧 광명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리실 때는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시고…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안내 방송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부디 우리의 영화에도 광명(光明)이 있기를, 가능하면 우리의 삶에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3. …지돈 씨,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 예술, 세계, 미래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세트부터 짓겠습니다. 촬영 들어가는 날에는 저는 감독 의자에 앉아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지돈 씨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9) JD가 어느 글에서 쓴 것처럼 나는 불확신의 픽션을 가진 사람, 약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며, 뭔가를 이루겠다는 욕심이나 기분 같은 게 없어서 주도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다만 어쩌다보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말하자면 세상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구원이든 종말이든 그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스스로의 운명을 조종하고 얼굴로부터 도망갈 수 있도록.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박솔뫼와 정지돈과 내가 대전의 삼요소에서 진행한 세션 중 하나는 독자들과 함께 즉석에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3명의 작가와 9명의 오프라인 참가자 그리고 10명 남짓한 온라인 참가자가 함께 ‘대전만세!’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 대전에 관한 소설을 써달라는 대전관광공사의 의뢰를 받고 대전에 도착한 금정연이 원고료가 든 서류가방을 들고 영화를 보러 대전아트시네마에 갔다가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홍콩과 마카오, 런던과 대천 해수욕장을 오가며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인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극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양조위가 금정연에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도망가자.”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그런 방식으로 도망가면 좋겠다는 말이다… 우리가 얻는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누군가 울고 있을 때 얻게 되는 아이디어다, 라고 존 케이지는 썼다. 뒤샹은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몇 년 후 같은 도시의 같은 지역에서, 거의 같은 이유로, 라우셴버그는 울고 있었다. 11) 그래서 얻게 된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존 케이지는 쓰지 않는다. 존 케이지가 늘 그렇듯이. 나도 울고 있었다. 집이었고 평범한 저녁이었다. 아이를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려는데 커튼 뒤에 숨어서 나오질 않았다. 우리 아가가 없어졌네, 어디 갔지, 엉엉. 내가 우는 시늉을 하자 아이가 얼굴을 내밀고 물었다. 아빠 우는 거야? 응, 우는 거야.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아이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숨을 테니까 아빠 울어. 알겠다고 하고 계속 우는 시늉을 하는데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커튼 튀에 숨어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지, 왜 우는 거지’… -우리 아이가 없어져서 울고 있었지. 약간 뻘쭘한 기분으로 내가 말했다. -나는 이빨이 튼튼한 아기 상어 포크레인인데. -이빨이 튼튼한 아기 상어 포크레인이구나. 이빨이 튼튼한 아기 상어 포크레인 어디 있어? -여기 숨어 있어. -거기 있었구나! 이빨이 튼튼한 아기 상어 포크레인, 이리 와서 옷 입자.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나는 엄청 빠른 소방차 뽀로론데? -아, 엄청 빠른 소방차 뽀로로구나…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다 그런 것처럼 우리 아이 역시 변신의 귀재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쓰레기를 줍거나(청소차) 호스로 불을 끄는 시늉을 하거나(소방차) 폴짝 폴짝 뛰면서 개굴개굴 울거나(개구리) 인상을 쓴 채 거실을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돛새치 혹은 중장비차) 논다. 그렇담, 나는 생각했다. 나도 이것저것 따지고 재며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감독이 되면 되는 거 아닌가? 로지 브라이도티는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점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즉 고전적 양태로 존재하기Being보다 오히려 결국에 우리가 돌연변이, 변화, 변형을 어떻게 재현하고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또는 로리 앤더슨이 현명하게 말했듯, 요즘에는 분위기moods가 존재의 방식modes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것은 변화를 창출하고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이점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불안감의 원천입니다. 12) 4. …마지막으로 르네 도말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한 번 더 인용하겠습니다. 주려고 하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한다.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하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한다.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살게 된다. 13) 지돈 씨,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기 시작했다. 홍상수가 내가 되고 싶은 감독의 이상형에 가까웠기 때문은 아니고, 때마침 개봉을 앞둔 홍상수의 신작 제목이 < 당신 얼굴 앞에서 >였기 때문이다. -우연은 중요하죠. 저희 어머니는 정의당의 이정미 대선 경선후보를 지지하는데, 저희 어머니 성함도 이정미거든요. -고마워요 지돈 씨, 언제나 적절한 예를 들어주시네요… 우연은 또 있다. 로지 브라이도티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유일한 상수 는 변화지만, 그것은 단순한 과정도 아니고 단선적인 과정도 아니다… 14) -근데 정말 브라이도티 말이 맞더라고요. -뭐가요, 상수는 변한다고요? -네, 그리고 그건 단순한 과정도 아니고 단선적인 과정도 아니던데요. 내가 마지막으로 본 홍상수 영화는 < 자유의 언덕 >과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였는데, 그때 나는 홍상수 영화의 반복되는 어떤 정서, 느낌, 분위기에 조금은 질려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김민희와 정재영이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 같은 것. 그런데 지금은… -먼저 < 풀잎들 > 넷플릭스에 있어서 봤는데, 완전 트위터를 영화로 옮겨 놓은 것 같더라고요. 카페가 트위터고 각각의 테이블마다 멘션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구석에 앉은 김민희가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일방적으로 혼자 비계인용 달고, 그러다 갓생 사는 동생 커플 만나서 괜히 화내고, 다시 돌아와서 밤 늦게까지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랑 멘션을 섞고 결국 트친 되고… -그게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리고 < 도망친 여자 >도 봤는데 처음엔 경기도 외곽의 빌라에 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하고 북촌에 있는 아는 언니 집을 방문하는데 두 집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구해줘! 홈즈’ 극장판 같은 건가? 아니면 각각의 집을 방문한 한국 남자들에 대한 일종의 생태학? 그런데 마지막에 들른 극장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는 장면을 보면서 깨달았죠. 아, 이건 씨네필들을 풍자하는 영화구나. 김민희=도망친 여자=씨네필이구나. -네??? -지돈 씨, 생각해보세요. 첫 번째로 방문한 경기도 빌라에서 김민희는 CCTV를 통해 이웃집 여자를 만나는 지인을 훔쳐봅니다. 두 번째로 방문한 북촌의 빌라에서는 도어락 모니터를 통해 스토킹하는 시인을 훔쳐보고요. 세 번째로 방문한 극장에서 일하는 대학 친구를 우연히 만나고, 한때 김민희의 연인이었으나 지금은 대학 친구의 남편이 된 작가를 마주치고 찝찝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 도망치듯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잖아요. 모르시겠어요? -(대체 무슨 소린지)??? -그렇지만 제일 좋았던 건 < 클레어의 카메라 >였는데요, 저는 그것이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영화에 어떤 힌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 1)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13쪽 2)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홈페이지의 영화 소개 참고 3) <누벨 바그>(장 뤽 고다르, 1990) 4) [천 개의 고원](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338쪽 참고 5) [영화 속의 얼굴](자크 오몽, 김호영 옮김, 마음산책, 2006) 307쪽 참고 6)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홈페이지의 영화 소개 참고 7)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앞의 책, 362쪽 8) 자크 오몽, 앞의 책, 308쪽 9) <기생충>(봉준호, 2019) 중에서 기우의 편지를 변형함 10)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정지돈, 문학동네, 2021) 43쪽 참고 11) [사일런스](존 케이지, 나현영 옮김, 오픈하우스, 2014) 131쪽 12)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로지 브라이도티, 김은주 옮김, 꿈꾼문고, 2020) 15쪽 13) [마운트 아날로그](르네 도말, 오종은, 이모션북스, 2014) 14) 변신 495쪽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 평론가였던 오영진(1916-1974)은 대단한 영화광으로 알려져 있다.태평양전쟁 전에는 일주일에 4, 5회나 극장에 갈 정도였고, 경성제국대학 재학 중에는 제국대학생들의 문예지였던 『성대문학(城大文學)』 동인들과 함께 영화동호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1936년 출범한 이 영화동호회는 경성제대 학생식당에서 창립 모임을 가졌는데, 오영진은 이 자리에 법문학부의 경제학 교수 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를 초대해 ‘영화담’을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경성 부민관에서 ‘총후 학생 문화 운동’을 명분으로 영화 관련 행사를 여는 등 영화동호회 활동에 꽤 열성적이었다. 솔직히 말하여, 20년 전에 나로 하여금 대학 안에 ‘영화동호회’를 조직케 한 큰 원동력은 불란서영화이었다. 그때, 우리들 젊은 대학생들은 불란서영화를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러시아문학보다도 더 광범히 사랑하였다.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 소개된 불란서영화의 수효는 지극히 소수의 것이었다. 그러나 1년에 5, 6 작품밖에 안 되는, 이 정선된 작품, 하나하나가 마치 주옥같은 걸작들이었다. 쥬리앙‧뒤비비에, 자크‧페에데, 르네‧클레에르 등등의 예술품이 20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1 영화동호회를 결성하고 20여 년이 지난 후, 오영진은 자신과 친구들을 영화광으로 만든 것이 ‘불란서영화’였다고 회고했다. 원래 문학청년이던 그는 쥘리앙 뒤비비에(Julien Duvivier) 감독이 연출한 일련의 ‘문예영화’들, 즉 <상선 테나시티(Le paquebot Tenacity, 1934)>나 <우리들의 동료(La belle équipe, 1936)> 같은 영화를 좋아했다. 프랑스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당시 오영진만의 유별난 취향은 아니었다. 일본과 조선의 문화 엘리트 사이에서 이른바 ‘프랑스 4대 명장’―르네 클레르(Rene Clair), 쥘리앙 뒤비비에, 자크 페데(Jacques Feyder), 장 르느와르(Jean Renoir)―의 영화는 각별한 애호와 지지를 받았고, 그중 장 가뱅(Jean Gabin)이 주연한 뒤비비에 감독의 영화 <망향(Pépé Le Moko, 1937)>은 영화 좀 본다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언급할 정도로 화제작이었다. 프랑스영화 외에도 이태리,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등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일본을 거쳐 조선에 도착했고, 젊은 학생과 지식인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식민지 시기 조선에 수입되는 외국영화 중 유럽영화는 수적으로 줄곧 열세였고 스크린 점유율도 낮았다. 수입 외화의 90% 이상을 할리우드 영화가 차지했다. 그러나 문화 엘리트들에게는 유럽영화가 근대인의 교양이자 이상적인 예술이라 인식되었고, ‘우수한 좋은 영화’라는 의미로 ‘명화(名畫)’와 동일시되곤 했다. 오영진이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1930년대 중반, 경성의 극장가에서 유럽에서 온 ‘명화’는 실패가 없는 흥행 상품이기도 했다. 유럽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이 높아서 각종 단체나 언론사는 부민관과 같은 비영리 공간을 빌려 ‘명화감상회’를 주최하고 경성의 영화광들이 ‘명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시기 경성의 유럽영화 관객층은 이전 어느 때보다 폭넓어졌으며, 유럽영화에 대한 담론 공간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7월, 오영진은 《조선일보》에 「영화예술론 - 그 예술성과 오락성」(1937년 7월 6일~9일)을 발표하며 처음으로 전문적인 영화 글을 쓰게 된다. 경성제대 영화동호회의 짧은 역사는 전쟁 발발 직후 막을 내렸지만, 영화동호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 영화인 오영진의 시대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 일본 유학길에 오른 그는 동경발성영화제작소에 입사해 조연출로 일하며 일본의 제작 현장을 경험했고, 1942년 조선에 돌아와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촉탁을 지내며 『배뱅이굿』, 『맹진사댁 경사』 등의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해방 후에는 예술원 회원으로서 남한 문화 권력의 중심에서 영화계 원로로 활동했다. 특히 대종상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우수영화’ 선정에 관여하기도 했는데, 당시 영화평론가 이영일이 진행한 좌담회 「꿈을 키워준 시절의 영상 / 나의 영화적 낭만의 시대」(『영화예술』, 1965년 4월 호)를 보면 그에게 ‘좋은 영화’란 청년 시절에 사랑했던 영화들을 모범으로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오래전 그 영화들을 ‘명화’로 기억하는 것은, 영화광이었던 청년 시절의 자신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1941년에 개봉된 영화 <반도의 봄>(이병일)은, 묘하게도 이처럼 유럽의 ‘명화’에 열광하며 좋은 영화는 몇 번이나 다시 보았던 1930년대 경성의 영화광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춘향전>의 제작 과정을 담고 있는데, 눈 밝은 관객이라면 <춘향전>의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영화 속의 영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장센의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는 유럽영화 포스터들 말이다. 전쟁 중,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표출되던 때이던 만큼 외국영화에 대한 열기가 유럽영화로 집중되었을 수도 있지만, 작품 속 영화인들의 사무실과 분장실, 극장 계단에 걸린 유럽영화 포스터들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반도의 봄>이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단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에도 온갖 곤경을 겪어야 하는 조선의 영화인들에게 <마주르카(Mazurka, 1935)>, <청춘의 바다(Abel mit der Mundharmonika, 1933)>, <부르크 극장(Burgtheater, 1936)>, <제니의 집(Jenny, 1936)>, <어여쁜 청춘(Hélène, 1936)>, <열풍(Amok, 1934)>, <소곤거리는 나무 그늘(So endete eine Liebe, 1934)>, <고향(Heimat, 1938)> 등 저 유럽영화들이 가리키는 세계는 아득히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영화인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분투했던 힘은, 동경하던 예술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어하던 영화광들의 열정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 오영진, 「불란서영화의 금석(今昔) - 젊은 팬을 위하여(1956)」, 『오영진전집 5. 영화평론‧수필』, 범한서적, 1989, 16쪽 사진 2, 3, 4. <반도의 봄>에서 * 상단사진1. <반도의 봄>의 한 장면 <자료> ※ 이하 자료는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현대어 표기에 맞게 다시 썼다. 일부 표현은 문맥에 맞게 다듬었다. 1. 「음악명화(音樂名畫)의 던진 거탄(巨彈) “동․키호테”는 살었다」, 《조선일보》, 1938년 7월 8일자, 4면. 지난 5, 6 양일간 본사 주최로 부민관에서 개최된 음악명화 감상회는 절대의 인기로써 대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때마침 공습관제 하에 긴장되었던 민중이 5일 이 비상경계가 해제되자 그들은 비로소 새로운 광명의 세계에 해방된 듯 다시 보기 어려운 이 명화를 찾아 정각 전부터 모여들었다. 이제 여기 이모저모의 풍경과 각 방면 인사의 소감편편을 엮기로 하자. 이를 통하여 느낀 첫 인상을 한 말로 한다면 예술의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이며 위대한 예술일수록 인류에게 더 강한 친화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이 영화감상회는 어찌 보면 영화라는 한정된 세계보다도 영화가 표현한 순수한 영화의 경지 이외의 더 큰 문학적, 음악적, 예술적인 거룩한 생명을 우리에게 느껴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 이유가 이 영화 감상미를 더 의의 깊게 한 것 같다. 그렇길래 좀체로 외출 안하시던 조선 문단의 선구이신 벽초 홍명희 선생도 시간을 놓치지 아니하고 정각 전에 시원한 푸른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오셨고, 이화전문에서는 요새 근로봉사로 모두 피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학교 선생, 학생 백여 명이 단체로 구경 왔던 것이다. 눈에 제일 많이 띄는 학생 중에는 연전(延專), 세전(世專), 불전(佛專), 법전(法專)의 전문학생과 흰 테를 두른 대예 [필자주: 大豫, 즉 경성제대 예과를 가리킨다.] 학생이 그중 많았다. 중학교는 마침 학기 시험인 관계가 있기는 하면서도 참다운 문학과 영화를 사랑하는 4, 5학년 학생들의 씩씩한 얼굴들이 보이는 것은 매우 반가웠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정답게 예술과 사상으로 맺어진 안호상, 모윤숙 부부와 이태준, 이순옥 내외의 양자가 보이는 것도 이 감상회의 이채일 것이요, 동덕고녀(同德高女)에서는 비가 쏟아지는 둘째 날 시험 때의 바쁨도 무릅쓰고 음악선생 정순철, 이형우, 정갑 외 여러 선생이 오신 것도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평론가 백철 씨가 이 감상회 때문에 평양으로 급히 가야할 일을 하루 연기하는 정성도 짐작할 만하다. 그리고 이 명화감상회를 보신 이 중에서 감격된 인사 몇 분의 자발적 감상의 편편을 모아보자. 김상용 씨 : 시인이요, 겸하여 이전(梨專) 문과 과장으로 계신 씨는 이 영화회가 세상에 알려지기가 급하게 여러 해를 두고 기다렸던 듯 감격하여 “참 내가 솔선하다시피 해서 이번 학생애들을 단체로 구경 가도록 했습니다. 영화도 위대한 예술이라면 위대한 산 교훈과 감격을 줄 수 있는 데 있을 줄 압니다. <동․키호테[Don Quixote, 1933]>는 내 일생에 가장 감격된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회합을 가지는 게 퍽 좋겠지요.” 김재훈 씨 : 경성음악전문학원을 경영하시는 음악가인 씨는 매우 만족한 웃음을 띠며 “처음으로 <동․키호테>를 영화에서 봤습니다. 물론 샬라핀[Feodor Chaliapin Sr.]의 예술은 음악학도로서 높이 평가합니다. 아무쪼록 자주 이런 훌륭한 예술적 회합을 가지도록 노력해주십시오. 아주 감격했습니다.” 안석주 씨: 열정적인 씨는 상기된 얼굴에 그 음성까지도 다소 떨리는 듯 “참 좋아요. <동․키호테>를 5년 전 처음 볼 때보다도 이번이 더 감격되는데요, 다시 보니까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흥분과 가슴에 넘치는 감명이 있습니다. 참 최고의 예술적 표현과 생명을 가진 것이 <동․키호테>라고 하겠어요.” 안호상, 모윤숙 여사 : 두 분은 나란히 앉아서 이 영화에서 얻은 감명을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하신다. 안(安) : <동․키호테>는 물론 문예작품으로 위대하니까 감명이 큽니다마는 영화로 보기에는 현대 감정을 담은 <윈나의 황혼[Maskerade, 1934]>이 더 나아 뵙니다. 모(毛) : 나는 의상으로나 분위기로나 오히려 <동․키호테>의 그 비장한 장경이 더 좋아요. 두 분의 이야기는 다시 아돌프 월브류크 [필자주: 원문에는 '아돌프 월브류크'로 되어 있으나 안톤 월브류크(Anton Walbrook)의 오기로 추정된다.] 의 연기에 대해서 논하신다. 김성진 씨 : 조선에서도 최고로 가는 영화팬인 씨는 좀 창백하신 얼굴에 다소 긴장된 흥분을 감추어가지고 겸손하게 “자주 이런 회합을 가지도록 해주십시오. 적어도 한 달에 한번쯤 해주셨으면 구경하는 사람으로는 여간 좋은 기회가 아니겠어요. 아주 감격했습니다.” 이날 밤 관중의 그 어느 얼굴에나 긴장되고 흥분되고 감명된 빛이 없는 이가 없었다. 서로 쳐다보는 얼굴에는 비상한 산 교훈을 받은 감이 있었다. 산쵸가 마지막 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우는 장면에서 울음이 난다는 이, 동․키호테가 운명한 후에 들리는 비통한 노래에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감격을 했다는 이……. 악수로 퍼붓는 비에도 밀려나오는 군중에도 옆에 와 이야기하는 데도 전연 무감각한 채 지극한 감명 속에 외로운 듯 초연히 서있는 무서워 보이는 한 얼굴, 돌과 같이 굳어진 그 표정이 분이 솰라핀의 음악과 베토벤의 인간에 지극히 감격되고 숭모하는 정순철 씨인 것은 아마 알아본 이가 그리 많지는 못했으리라. 2. 「꿈을 키워준 시절의 영상 / 나의 영화적 낭만의 시대」, 『영화예술』 창간호(1965년 4월), 30~37쪽, 부분 발췌. [...] 이영일: 그래서 이제부터서 선생님들이 보신 영화 중에서 가장 감동을 많이 받은 영화 한두 편씩 말씀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오영진: 해방 전 것까지 해서—. 이영일: 네… 네, 어린 시절부터 학생 시절에 걸쳐서……. 선우휘: 네, 사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배우 위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가 하면, 스토리가 좋아서 오래오래 남는 수도 있는데, 제가 지금도 기억 남는 것은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7]>인데 그때가 바로 유럽에서 전쟁이 한창일 땐데 스탭‧캐스트가 나오기 전 자막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영진: 원작자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었죠. 선우휘: 네… 네. 전문(前文)에 “이렇게 피로써 피를 씻는 동란이 계속되는 시대에 우린 이런 환상적인 꿈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느냐?” 이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말하자면 유토피아적 세계를 그린 건데, 항공기가 추락되어서 비행사가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눈보라를 헤치고 가다보니까 석문(石門)이 있어서 열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때부터는 봄과 같은 날씨에 내(川)가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는 돌연변이의 세계가 화면에 나옵니다. 그런 영향에서 그런지 전 꿈이란 것을 생각하면 곧 영화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여석기: 저도 동감인데, 좀 다른 의미로 해석해서, 내가 대학 때니까 1929년입니다. 1차 대전 [필자주: 원문에는 '1929년입니다. 1차 대전’이라고 되어 있으나 오기로 추정된다. 연극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인 여석기는(1922-2014)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있었던 1939년에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이 벌어져 독일이 폴란드를 침입해서 주위는 회색으로 변하고 연령적으로 우린 청춘으로서의 꿈도 있어야겠고 윤택한 정서도 필요하고… (추억에 의존할 나이는 아니니까) 그걸 어디서 찾느냐? 결국 문학이나 예술에서 인생을 관조하고 지식을 얻으려고 한단 말이에요. 여기에서 영화가 당당한 역할을 하는데, 그 점에서 꿈의 대용품이라 하겠지요. 영화적 기교는 알 턱도 없고 다만 막연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인생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거겠지요. 선우휘: 그 다음에 생각나는 것으로 ‘페페 르 모코’ <망향>이 있고, <황혼의 비엔나[Maskerade, 1934]>도 좋습니다. 오영진: 윌리 폴스트[Willi Forst]가 나오지요. 선우휘: 그리고 음악영화론 조예가 없지만 <미완성 교향곡[Unfinished Symphony, 1934]> 같은 거……. 오영진: 그것도 윌리 폴스트일 거에요. 이영일: 이제까지 선우 선생께서 명작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내셨는데…… 최 선생님은……. 최정희: 두 분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참으로 영화는 인생의 꿈을 많이 길러주는 것 같아요. 여석기: 뜻은 좀 다르지만 ‘꿈의 공장’이란 말이 있지요. 일동 : 그렇지요. [...] 이영일: 이런 점에서 영화가 개인 개인에게 굉장히 많은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전체적으론 사회적 영향력이 방대하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매스컴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에 있어서 영화의 미디어적 영향이 실로 지대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것은 반대로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관객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영화사회학의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영화예술지는 건전한 관객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 관객을 많이 가질 수 있느냐? 한국영화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훌륭한 관객사회가 형성되어야 하겠다는 의도에서 ‘시네 클럽’ 운동을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오 선생님, 어떻습니까. 요 먼저 말씀하시던 중에 옛날의 ‘시네 클럽’ 운동이 있었다고 기억되는데요……. 오영진: 우리 대학 땐 영화동호회란 것을 만든 일이 있어요. 학생끼리였지만 교수 한 분을 모시고 연구적인 모임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의식적으로 영화를 보는 분에도 소설을 쓸 분도 있을게고 영화계에 종사할 분이 있겠지만…… 영화를 어떻게 감상하느냐란 문제를 서로 연구‧토론할 클럽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젊은이들의 교양 향상을 위해서 우리도 대학 때 그걸 만들었다가 일본 학생이 이상하게도 점점 많아져서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이영일: 여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여석기: 나도 오 선생님 말씀에 절대 동감입니다. 우리들의 대학 때보다는 영화 서클이 적은 것 같아요. 요새야 사회‧정치 서클이 많은데 우리 문학, 연극, 영화 동호회가 보다 활발하여야 되겠습니다. 극장 측과 교섭해서 반액 정도로 감상한 다음에 자유스러운 디스커션을 통해서 인생의 폭을 넓히고 교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은 유치하건 말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영화계에 들어가려면 직행합니다. 박모(朴某) 감독한테 가서 현실적으로 교섭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