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 감독
- 김용완
- 제작년도
- 2024
- 출연
- 설경구, 김희애, 김미숙, 김영민, 김홍파, 임세미, 전배수, 김종구, 장광, 박근형, 이해영, 강상원, 정해균, 오민애, 박경찬, 최성재, 차순배, 박정표, 남경읍, 이유현, 송수이, 이제우, 이유현, 정지훈, 홍정호
사진: “ 졸업 ”, tvN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이 글을 구상할 즈음 ‘비상계엄’이 도둑처럼 선포됐다. 용감하게 국회로 달려간 많은 시민들과 사명감을 가지고 사투를 벌인 공직자들 덕분에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한국사회의 시간은 ‘12.3 내란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이 모든 상황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하고 생각하다가 지난 여름에 본 < 돌풍 >(김용완, 2024)이 떠올랐다. 한국 정치사를 압축한 것 같은 <돌풍>이 재현한 한국사회는 ‘대의 민주주의’ 대신 음모와 폭로가 난무하는 세계였다. 당시 나는 이 드라마의 위험한 상상을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 위험한 상상은 몇 달 뒤 현실이 됐다. 참으로 유해한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비상계엄이 아니더라도 이 세계는 이미 비상시국이다. 먼 곳에서 전쟁 소식이 끊이지 않았고, 기후위기가 코앞까지 도달했음을 절감했고, 경기침체로 인해 온갖 사회 지수는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사회적 갈등뿐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민자,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지긋지긋하게 반복됐다. 마치 지구 종말 200일을 앞둔 < 종말의 바보 >(김진민, 2024) 풍경처럼. 이런 유해한 세상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자극적인 맛, 즉 도파민을 상승시킬 무언가를 찾고 또 찾았다. 드라마 세계도 마찬가지다. 사적 복수극, 고자극 장르물, 이번 생은 망했으니 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욕망을 실현하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서사가 줄을 이었다.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바로 세우며 남편에게 복수하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박원국, 한진선, 2024)가 주목을 받았고, < 살인자ㅇ난감 >(이창희, 2024), < 더 에이트 쇼 >(한재림, 2023), <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완일, 2024) 등 사적 복수물이나 고자극 장르물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이런 드라마들이 예전처럼 큰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생산되던 고자극 드라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피로감을 느끼게 된 탓이다. <돌풍>, <종말의 바보>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뜻밖에도(!) 올해 가장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는 <눈물의 여왕>(장영우, 김희원, 2024)이다. 이 드라마는 ‘너무 늦게 도착한 과거’와 같은 드라마이다. ‘퀸즈’로 대표되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재벌가(가부장제)를 선하고 무해한 집단으로 재현하며 무너진 퀸즈 일가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여기에 불치병과 기억상실증 등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가 빠지지 않았다. 위기를 통해 부부 관계와 가족애를 회복한다는 방향성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혈연·혼인 중심 가족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일상의 피로감이 높아질수록 단순한 맛을 찾기 마련이다. 맵거나 달거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자극 드라마에 피로감을 느낀 우리는 순하고 달달한 드라마를 도피처 삼아 그 세계에 몰입하여 울고 웃었다. <눈물의 여왕>은 그런 우리의 필요를 잘 반영했기에 진부한 설정에도 선택을 받은 것이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마니아층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선재 업고 튀어>(윤종호, 김태엽, 2024)나 시원하고 무해한 제주도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웰컴 투 삼달리>(차영훈, 김형준, 2023~2024) 등도 비슷한 이유로 관심을 모았다. 사진: “ 눈물의 여왕 ”, “ 선재 업고 튀어 ”, tvN “생각 없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 곁에는 서로를 구원함으로써(쌍방구원) 위로를 전하며 치유적 기능을 한 드라마들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 ‘먼치킨’ 주인공이 위험으로부터 인간-사회를 구하거나 악을 제대로 응징하여 ‘사이다맛‘ 정의를 구현하는 히어로물이 인기를 모았으나 그 히어로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히어로’가 사라진 자리에 ‘힐러(healer)’가 찾아왔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조현탁, 2024)은 우울증, 불면증, 비만이라는 ‘현대인의 질병’에 걸려 초능력을 상실한 가족 이야기다. 이들이 초능력을 상실한 이유는 화재 참사로 인한 상실감과 죄책감 때문이었다. 어디 드라마 속 인물들뿐일까?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한국사회 속 우리들 또한 같은 이유로 현대인의 질병에 걸린 게 아닐까? 드라마는 상처로 인해 무기력에 빠졌던 인물들이 “히어로는 아니지만” 서로의 행복을 바라며 구원하고자 애쓰는 것에서 희망은 시작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 Mr. 플랑크톤 >(홍종찬, 2024)은 뿌리를 모른 채 딛고 설 땅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모든 물고기들의 밥”이자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인 플랑크톤과 같은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구원했다. 세상은 유해한 것들로 가득하지만, 인간은 끝까지 ‘선함’의 본능을 잃지 않고 서로를 구원하고야 만다는 단단한 신뢰를 이런 드라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Mr. 플랑크톤> (사진: “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 JTBC /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드라마가 단지 도피처, 위로와 치유적 경험만 제공한 것은 아니다. 장르를 망라하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늘’을 구현함과 동시에 ‘내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해 드라마가 담은 오늘과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물의 여왕>이 절절하게 보여주었듯 기성사회와 미디어는 여전히 가부장적이며 혈연·혼인 중심 가족을 대표적 가족 모델로 반복재생 하지만, 한국사회의 전통 가족 모델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재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전통 가족의 모순성을 보여주거나 가족의 경계를 허물어 확장하는 지향성을 가진 드라마들을 통해 구현됐다.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 2024)나 <가족X멜로>(김다예, 2024) 등에서는 가부장 중심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었고, <우리, 집>(이동현, 위득규, 2024)이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송연화, 2024)를 통해서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신뢰와 애정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의심과 오해로 조각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가족이라서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우리는 이 드라마들을 통해 씁쓸하고 서늘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과 결혼이 당연하지도 않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도 있었다. < 트렁크 >(김규태, 2024)는 ‘계약결혼’이라는 파격적 설정을 통해 가족과 부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결혼이나 혈연을 넘어선 가족들도 등장했다. <조립식 가족>(김승호, 2024)과 <손해 보기 싫어서>(김정식, 2024)와 <Mr. 플랑크톤>은 ‘정상’ 세계에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인간들이 혈연·혼인이라는 관습과 제도를 넘어 서로의 ‘가족’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족일 수 있을까? 가족의 재구성의 문제는 관계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생활고 때문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젊은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을 협박한다는 신박한 설정의 < LTNS >(전고운, 임대형, 2023)는 ‘불륜’이라는 키워드로 (부부) 관계의 복잡성을 상기시켰다. 부부, 가족, 인간관계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이토록 친밀’한데 ‘배신자’ 일수도 있는 법이다. 드라마는 이런 인간의 복잡성을 흔들리거나, 해체되거나, 재해석되고, 재구성되는 가족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상) <우리, 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진: “ 우리, 집 ”,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MBC) (하) <트렁크>, <LTNS> (사진: 유튜브 넷플릭스 코리아 / 유튜브 CJ ENM 글로벌)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늘어난 여성서사가 올해도 다양한 얼굴로 우리와 만났다. 여성서사는 주인공 혹은 중심인물 다수가 ‘여성’인 경우를 의미하지만, 그 여성‘서사’에 무엇을 담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올해도 드라마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얼굴을 응시했고, 용감하고, 슬기롭고, 끈질기게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여성들을 통해 새로운 인간-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이형민, 최선민, 2024)는 뜻밖의 사건으로 낮에는 ‘아줌마’로 호명되는 50대 여성으로, 밤에는 ‘취준생’ 20대 여성인 본래 몸으로 살게 된 이미진/임순을 통해 사회적 존재감을 잃어버린 여성들이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졸업>(안판석, 2024)에서는 대치동 학원가 1타 강사, 서혜진( 정려원 )이 퍽퍽하고 고단한 30대 여성 직장인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밤에 피는 꽃>(장태유, 최정인, 이창우, 2024)은 사별한 여성에게 자결하여 열녀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의적으로 활동한 조여화( 이하늬 )의 액션 활극을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정숙한 세일즈>는 1992년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생계를 위해 성인용품 방문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을 통해 여성들이 ‘정숙’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또한 무능하고 유해한 가부장들과 능동적이고 협력적인 여성들의 연대를 대비시켰다. 199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낡은 서사로 여겨질 뻔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지향은 오늘날의 여성들과 공명하기에 충분했다. <굿파트너>(김가람, 2024)는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 장나라 )을 중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며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 서사를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손해 보기 싫어서>는 ‘위탁모’로 봉사한 어머니를 둔 손해영( 신민아 )과 ‘위탁아동’으로 연결된 또 다른 ‘딸들’의 자매애를 보여주었다. <피라미드 게임>(박소연, 2024)은 한 달에 한 번씩 비밀 투표로 왕따를 정하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의 문제를 환기하고 여성 청소년들이 연대하여 힘의 세계관에 저항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 정년이 >(정지인, 2024)는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중후반까지 유행한 ‘여성국극’을 재현하여 남성중심 사회 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과 여성들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여성국극’은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라는 대안적 상상을 해보게 하는 담대한 시도였다. 여성서사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 여성들은 꾸준하게 진화하고 있다. 드라마 속 여성서사는 장르도, 시대도, 인물들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지금-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적 지향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중요한 흐름이다. 사진: “ 밤에 피는 꽃 ”, MBC / “ 굿파트너 ”, SBS 드라마에서 여성서사의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단지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퀴어서사의 공간도 함께 늘어나게 됨을 의미한다. <피라미드 게임>, <웨딩 임파서블>(권영일, 2024), <엄마친구아들>(유제원, 2024)과 같이 퀴어 캐릭터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퀴어프렌들리’ 드라마들이 있었고, <정년이>, < 대도시의 사랑법 >(허진호, 홍지영, 손태겸, 김세인, 2024), <옥씨부인전>(진혁, 2024) 등 퀴어가 중심이 된 드라마도 제작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설가 박상영의 소설을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하여 호응을 얻었는데 게이 남성 고영( 남윤수 )을 통해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동성애’도 당연하고 보편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옥씨부인전>은 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이 바뀐 여성, 구덕( 임지연 )을 중심으로 여성, 노비,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정년이>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퀴어서사에 관해 고민하게 했다. 동명의 웹툰 원작에서 정년이와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인물인 ‘부용’이 드라마에는 삭제됐다는 면에서 그렇다. 부용은 페미니즘과 퀴어서사를 담당한 중요한 캐릭터였기에 타협적이고도 퇴행적 각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대도시의 사랑법>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의 거센 항의에 예고편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 두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드라마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절감하게 했다. 이화여대 퇴임교수 김훈순의 진단처럼 드라마는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 적극 개입하는 문화적 생산물”임과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문화적 공론장”이자 “시대 흐름 속에서 충돌하는 가치들을 담아내는 역동적인 텍스트”이다. 그렇기에 순응하거나 퇴행하는 면도 있지만, 관습의 저항을 피하기는 어려운 순간도 있다. <정년이>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충돌하는 가치들을 ‘뚫고’ 나아가는 서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사진: “ 정년이 ”, tvN / “ 옥씨부인전 ”, JTBC 한 해 동안 우리가 주목했던 드라마들의 흐름을 톺아봤다.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유해한 현실의 도피처로서 무해한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다가 위로를 받았다.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의 말처럼 드라마가 “하루하루 수고한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고 “시름을 잊게” 한 것이다. 또한 드라마가 구현한 작은 세계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돌아볼 수 있었다. 드라마라는 거울은 우리의 ‘오늘’뿐 아니라 ‘내일’로 나아갈 길을 발견케 했다. 드라마가 비춘 현실은 자주 절망적이었지만, 관습을 깨고, 더 나은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꾸준하게 성장하는 여성서사와 꿋꿋하게 등장하는 퀴어서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다양하게 넓어지고 있다는 희망적 생각을 해보게 됐다. <정숙한 세일즈>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처럼 어떤 시도는 “시대를 앞서간 느낌” 때문에 저항에 부딪히지만 곧 그 시차를 극복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질문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움’과 ‘가족’으로 상상된 사회공동체다(그렇기에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는 걸 보여준 드라마들이 반갑다). 올해 본 드라마 중 가장 좋아한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졸업>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졸업>은 한국사회의 욕망이 집약된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정답’이 아닌 ‘지문 바깥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역량과 ‘인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는 자신의 삶과 연인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실하고 윤리적인 직업인 혜진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었다. 혜진은 수업 시간에 에리히 프롬의 글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것은 나와 우리, 그리고 ‘유해한’ 세상을 향한 조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소명과도 같다. 사진: “ 졸업 ”, tvN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올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진행된 ‘해외 영화학자 초청 대중 특강’의 내용을 강연자의 시점에서 정리합니다. 영화와의 첫 만남과 학계 입문 과정에 얽힌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세계 속 한국영화의 위치, 최근 몰두하고 있는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분석까지. 한국영화를 향한 해외 영화학자 6인의 개성과 열정으로 꽉 채워졌던 2시간을 KOFA가 직접 기록한 특강노트 로 만나보세요. 정혜승 교수 는 영화와 미디어를 인종이나 정체성 등의 개념과 관련지어 연구해왔다. 미국과 동아시아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경험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한편, 영화사 고문헌을 탐독해 한국영화 검열사를 연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 State Censorship and South Korea’s Cold War Culture(2024), Movie Minorities: Transnational Rights Advocacy and South Korean Cinema(2021, 공동 집필), Hollywood Diplomacy: Film Regulation, Foreign Relations, and East Asian Representations(2020), Movie Migrations: Transnational Genre Flows and South Korean Cinema(2015, 공동 집필) 등이 있다. 하와이대학교 마노아캠퍼스 미국학과와 오클랜드 대학교 영어·영화학과에서 강의한 후, 현재는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할리우드 키드에서, 실증적 영화연구자로 영화학자의 길에 들어서기 전, 그 시작을 만들어준 계기를 꼽자면 어린 시절 접했던 할리우드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께서 < 애정이 꽃피는 나무 >(에드워드 드미트릭, 1957)를 보고 감탄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미군정 시기부터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몸소 경험한 세대는 이 시대에 대량으로 수입된 할리우드 영화에 매료되곤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군사 정부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나도 < 헐리우드키드의 생애 >(정지영, 1994)의 내용이 자서전에 가깝다고 느낄 만큼, 20세기를 통과한 한국인들이 영화에 처음 눈을 뜨는 데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 할리우드를 빼놓을 수 없다. 나는 특히 미국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적 서사를 지닌 작품들(거의 엠지엠 스튜디오MGM Studios가 제작했다)에 눈길이 갔는데, 인물과 세계관(또는 서사)이 비현실적으로 설정된 콘텐츠를 즐기며 내가 처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욕망을 작품에 투사했던 것 같다. 언뜻 보면, 현재 미국의 사회적 소수자들이 한국의 아이돌을 보고 정서적으로 위안을 얻으며 K팝 팬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유사한 흐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좌) 유년기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할리우드 영화 / (우) 한국영화 검열사에 관한 저서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 (2024) 본래 나는 미국에서 활동하며 영화와 사회문화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영화를 연구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영화의 역사적 측면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론보다는 ‘ 실증적 ’ 방법론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필름 아카이브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존도 도 당연히 높았다. 여러 아카이브를 방문해 대량의 자료를 조사하고 그 결과물을 비교하는, 미국 영화연구의 이 주된 경향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박사 과정 재학 시절부터 들어왔다. 이후 학계에 입문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2021년 풀브라이트 연구원으로서 한국을 찾아 1960~80년대 한국영화 검열사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자원)이 공개한 검열서류 컬렉션 속 방대한 1차 자료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으며, 연구 결과는 저서 Cinema under National Reconstruction(2024)에 정리해 곧 출간할 예정이다. 한편, 이때는 < 오징어 게임 >(황동혁, 2021)이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기기도 했다. 한국 콘텐츠의 전례 없는 흥행에 세계가 놀랐고, 마침 CNN이 인터뷰를 요청해왔기에 여기에 응하기 위해서 이 작품에 대한 연구까지 병행했다. 그래서 검열사와 OTT라는, 교집합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듯한 두 주제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카이브의 힘과 한국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상호작용하면서 영화연구의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영화와 콘텐츠의 세계화, 그리고 넷플릭스 내가 미국에 처음 도착했던 1997년만 해도, 미국 현지에 알려져 있던 한국영화는 비디오 가게 ‘킴스비디오’에 소장된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배용균, 1989)과 < 삼공일 삼공이(301, 302) >(박철수, 1995)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홍상수 등 몇몇 예술영화 감독들의 이름이 해외에 알려졌고, 한국형 블록버스터 속 스펙터클 역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2010년대 자사의 스트리밍 및 DVD 대여 서비스 대상 작품에 한국영화 약 200여 편을 포함시키면서(물론 지금은 넷플릭스가 제작에 참여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주를 이루지만)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고,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범위는 2016년에 아시아 문화권을 포함한 전 세계로 갑작스럽게 확장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극장 보호를 위한 통상의 홀드백 기간을 두지 않고 봉준호 감독의 < 옥자 >(2017)를 이례적으로 동시 스트리밍한 플랫폼으로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공개된 < 킹덤 >(김성훈, 2018)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가입자 수까지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세계 OTT 시장에서 한국형 시리즈물의 두각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고, 이 기세는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그 이후에 공개된 여러 작품을 통해서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가 넷플릭스의 주력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특정 지역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콘텐츠를 기획해 글로컬리티를 선보임으로써 흥행을 꾀한다. 또한 더 많은 지역으로 빠르게 배급하기 위해 콘텐츠의 IP를 자사가 전적으로 보유하는 방식으로 오리지널 시리즈를 기획하곤 한다. 이렇게 제작된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로서 해외, 특히 미국에서 성공한 콘텐츠들은 대체로 액션 위주의 자극적인 구성이나 기괴한 분위기로 미국인들의 취향을 겨냥하고 있다고 본다. 이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는 한류 스타를 내세워 아시아 팬들을 사로잡는 시리즈들(주로 멜로드라마 장르에 치중한다)에도 투자하는데, TV 드라마를 기획하는 국내 콘텐츠 대기업과 공동으로 제작한 후 전 세계 배급을 위한 권리를 획득하며 아시아 시장에서의 수익 창출을 꾀한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제작된 국내 콘텐츠들이 해외에서 불러일으킨 반응들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미국의 지인 한 명이 내게 <갯마을 차차차>(2021)에 대한 감상을 여러 번 전해준 적이 있다. 그는 삶의 어두운 면을 다루면서도 작품 속 갈등이나 미스터리를 차분하고 완곡하게 풀어나가는 한국 드라마만의 서사 전개 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인물들의 성격을 인위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극의 흐름과 복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사실적으로 탄탄하게 구성한 점 역시 놀랍다고 말해주었다. 작품 속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서사에 몰입하도록 하는, 한국 콘텐츠의 흡인력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좌) 아시아 콘텐츠 시장을 겨냥해 넷플릭스와 국내 콘텐츠 대기업이 공동 제작한 드라마 (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관해 미국의 지인이 직접 전해온 감상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내 콘텐츠 산업에 침투한 넷플릭스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유명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한국의 창작자들과 기업들까지 관심을 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기존의 작업을 모두 OTT 시리즈의 형식에 끼워 맞추는 양상이 과연 긍정적일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하는 것이다. 연구자로서 이렇게 양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현상이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국내 창작자들과 기업, 그리고 전 세계 OTT 플랫폼 간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가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는 현 시점에서 진단하기보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분석해나가야 할 과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영화 검열사 연구와 아카이브의 중요성 이제부터는 강의 서두에 언급했던, 필름 아카이브의 소장자료를 참고해 실증적으로 연구한 주제 ‘ 1960~80년대 국내 영화검열사 ’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역사를 간략히 짚고 가자면, 국내 영화검열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 군정법령 제115호 가 공포되면서 주무 부처가 영화의 상영허가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허가를 담당하는 부처의 명칭(공보부, 문교부, 문공부 등)은 자주 변경되었지만 1996년에 사전심의가 위헌 판결을 받기 전까지 이 법은 계속 시행되었다. 영자원이 공개한 검열 관련 소장자료는 대부분 1960~80년대에 상영허가를 담당한 부처에서 작성된 행정서류들이었고, 한국에 온 나는 이 자료들을 토대로 관련 주제를 연구했다. 연구를 소개하기 전, 우리가 검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바를 먼저 공유해보자. 어느 사회에서든 ‘검열’은 대부분 독재나 반자유를 암시하는 부정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나는 영화나 문학이론에서 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검열에 접근하는 경향을 살펴봤는데, 푸코의 담론 일부를 인용해 이를 설명해보고 싶다. *주1 푸코는 ‘권력(power)’이 정복이나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 도처의 여러 주체들 사이에 다양한 모습으로 편재되어있는 관계의 일부라고 말한다. 다수가 욕망하거나 획득하고 타도해야 할 실체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간의 관계 속에서 유동적으로 형성된 무정형의 네트워크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에는 ‘저항’이 수반되는데, 나는 여기서 말하는 저항 역시 권력과 절대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권력과 상호작용하거나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또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국내 영화검열 역시 검열자가 피검열자를 억압하려는 시도로만 인식되기보다, 두 주체가 활발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영화 창작과 배급의 생산성을 더하는 요소로 읽힐 가능성도 있음을 제안하고 싶다. 국내 영화검열, 특히 박정희 집권 당시 영화검열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영화가 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하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할리우드의 자체 검열이 목표로 하고 있는 바와 유사하다. 영화를 개봉시켜 더 넓은 시장으로 배급하기 위해 제작자는, 그 안에 담긴 표현과 내용이 다양한 관객에 의해 무리 없이 수용될 수 있게 하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정 인종, 지역, 젠더 등에 대한 혐오 섞인 시선을 반영하거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작품은 윤리적 논란에 휩싸일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더 많은 관객에 의해 향유될 기회 또한 잃게 된다. 산업 육성이 최대 목표였던 박정희 정부에서, 개봉한 영화가 시장에서 공유되지도 못하면서 관련 산업의 활성화까지 저해하는 사태는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 감상이 세계화된 오늘날, 텍스트는 창작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전 세계의 감상자들에게 열려 있다. 이들을 구성하는 여러 집단을 존중하고 시장 내 더 많은 관객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좋은 의미’의 검열(good censorship)의 필요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때이다. 피에르 부르디외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창작자는 시장의 구조를 고려해 무언가를 ‘완곡하게’ 표현하고, 이를 수용할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해 이후에는 스스로 자체 검열을 진행한다고 논의한다. *주2 이처럼 산업과 더불어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는 검열의 경우 올바른 방향으로의 창작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고 본다. 1983년 이래,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는 마가렛 헤릭 도서관(Margaret Herrick Library)을 통해 2만여 점의 자체 검열 관련 서류들을 공개했는데, 이 자료들을 연구한 몇몇 학자들 역시, 자체 검열이 영화로 하여금 젠더와 폭력, 인종, 국적 등의 주제에 좀 더 세심하게 접근하도록 하며 미국 영화산업에 생산성을 더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한국영화 검열서류의 디지털 스캔본을 대량으로 공개한 영자원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에도 이러한 측면이 나타날까? 영자원에서 1960~80년대 영화검열 당국(공보부, 문공부 등)이 작성한 행정서류들의 디지털 스캔본을 공개하면서 이에 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현재까지도 507편의 작품에 대한 서류가 온라인으로 게시되어있어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고, 영자원 내 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을 이용하면 온라인으로 노출되어있지 않은 4,000여 편에 달하는 작품에 관한 서류 스캔본을 열람할 수 있다. 국가가 직접 작성했던 방대한 규모의 행정서류를 공개하는 공공 필름 아카이브는 국내에서 이곳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전까지 구술사나 신문기사 등의 2차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검열사 연구자들이, 실존하는 1차 자료를 근거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영화는 물론 국내 문화예술 행정의 역사가 궁금한 연구자들이라면 이 검열서류 컬렉션 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검열자외 피검열자의 관계, 그리고 <오발탄> 저서 Hollywood Diplomacy (2020)에 적었듯이, 중국의 영사(미국인)가 1933년 현지 영화계를 주제로 미국영화협회에 쓴 한 서신에서, 당시 중국의 영화들이 ‘ 승화(uplift) ’라는 기제를 영화에 어떻게 적용하는지가 나타난다. 영사에 따르면, 당국은 국가나 자국민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영화의 개봉을 검열로 통제했고, 대중에게 삶에 대한 낙천적인 의지를 주입하고 자국 문화에 성실히 적응하도록 하는 ‘승화’적 요소의 배치를 장려했다. 이 ‘승화’라는 개념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이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박정희는 이승만 집권기 동안 사회 전반에 번져버린 부패를, 전방위적인 개발을 통해 근면하게 척결해나가겠다는 정치적 목표를 내세웠다. 국민들의 ‘문화’ 역시 이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나타나는 패배주의, 즉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어떠한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단정하는 나약한 관념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가 집권하던 시기에 이런 패배주의나 비관주의, 허무, 우울 등의 개념은 그야말로 ‘문화적인 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도 고된 여정을 지나 마침내 그 위기를 극복하는 인물형을 보여주면서 ‘승화’의 순기능을 강조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맥락을 참고해서 < 오발탄 >(유현목, 1961)의 검열 과정을 이해해보자.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가 집권하면서 불순영화가 재검열되고 상영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이때 상영이 중지된 국내 영화가 <오발탄>인데, 중지 처분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극중 한 노파가 “가자!”라고 외치는 장면이 월북을 암시했고, 반공 기조가 심한 박정희 정권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점을 자주 거론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작성된 서류를 보면 조금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당시 내무부 치안국이 검열 당국인 문교부에게, <오발탄>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선전 자료”라는 내용으로 심의를 의뢰한다며 보낸 공문을 보면, 작성일이 쿠데타 발생 전인 1961년 4월 19일이다. 1960년대 초, 문화 정책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중앙정보부가 영화검열에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위 서신에서 보듯이 이러한 타 부처의 간섭은 치안국 등이 검열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5·16 군사정변 이전부터 나타났다. 이어서 5월 28일에, 치안국은 문교부에게 <오발탄>을 둘러싼 여론을 홍보한다는 취지로 다시 공문을 보낸다. 이들이 문서에 적어둔 “부분적인 인상”에서, “기타 제대 군인, 실직자, 박봉 생활을 하는 소시민 빈민층의 절망만을 나열하여 결론적으로 아무런 해결의 암시도 없이 비참하게 끝을 맺는 점 등”이라는 표현이 두드러진다. 영화가 시대적 고난이 야기한 상황만을 강조해 승화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비관주의로 일관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후 7월 20일 재검열을 거친 <오발탄>에 대해서는 결국 국내 상영 보류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중앙정보부 소속의 검열자가 작성한 의견서에도 “현 국가 재건 도상에 상반되는 내용”이라는 검열 이유가 적혀있어, 동 시기 건설적 미래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가로막는다는 견해가 재검열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좌) 국산 영화 "오발탄" 심의 의뢰의 건(1961. 4. 19. / 발신: 치안국장, 수신: 문교부 문화국장), 그리고 한국영화 "오발탄"에 대한 여론 홍보(1961. 5. 28. / 발신: 치안국장, 수신: 문교부 문화국장) (우) 검열 의견서 (종합 재검열 분)(1962. 2. 6.) 검열이 검열자와 피검열자 간의 쌍방향적이고 미시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진행된 흔적도 엿볼 수 있다. 1963년, 제작자 김성춘 은 문제가 된 대사를 수정하고 혁명공약 일부를 마지막 크레딧에 명기했으며, 해당 작품은 본래 정부의 이념을 지지하려는 의도로 제작(주제의식이 ‘승화’임을 설득)되었기에 상영중지를 재고해달라는 진정서를 공보부에게 보냈다. 그러던 중 같은 해에,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영화학과 교수 리차드 맥캔(Richard Dyer McCann)이 국립영화제작소에 기술고문직을 수행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리고 그가 <오발탄>이 베니스영화제에까지 출품될 만한 수작이라고 평가하자, 영화계에는 작품 상영중지 해제를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좌) <오발탄> 제작자 김성춘이 중앙정보부장에게 보낸 진정서 (우) 리차드 맥캔 교수가 당시 공보부 공보국장 이성철에게 보낸 서신 이에 공보부는 대사와 화면 일부를 수정하는 조건으로 한 차례 상영보류 해제를 통고했지만 얼마 안가 시기상 상영이 적절치 못하다는 이유로 금세 결정을 번복했다. 그러자 김성춘은 본 작품이 제7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로부터 출품 제의를 받았고 미국 엠지엠스튜디오도 수입 의사를 밝혀왔다며 재상영 허가를 다시 한 번 요청했고, 공보부는 다시 정식으로 상영보류 해제를 결정한다. 당시 공보부가 김성춘의 진정서 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리차드 맥캔의 평가와 해외 수출의 필요성을 적시해 중앙정보부와 내무부 모두에 공문을 배포한 것으로 보아, 검열 당국인 공보부가 작품의 수출과 홍보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제작자의 협력자로도 기능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더군다나 외환위기가 심각했던 이 시기에 <오발탄>의 해외 수출 제의는 외화 보유액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서 정부 차원에서도 반갑게 다가왔을 것이다. 국산영화 “오발탄”에 대한 상영허가 보류해제 통고(1963. 8. 23. / 발신: 공보부, 수신: 중앙정보부 제5국장) 샛길 위에서 찾는 또 다른 목적지: 검열과 영화연구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미국에서는 국가나 민간 소유 아카이브에 대량으로 소장되어있는 각종 자료를 참고하곤 했지만, 내가 검열사 연구를 시작한 당시 아쉽게도 영자원을 제외한 국내 유관기관에 관련 1차 자료가 보존된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신문기사, 구술사, 시나리오 등 주제와 직결되지 않은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연구의 근거를 색다른 결의 자료들로 보충하기도 했다. 제약으로 여겼던 환경에서, 조금 다른 경로이더라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의외의 창작성을 발견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연구 과정에서 얻게 된 이 깨달음이 검열의 일면과도 맞닿아있음을 느낀다. 여러분 역시 ‘제한’된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주변에 숨겨진 다른 선택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효능감을 느껴보길 바란다. * 질문과 답변 * (질문1) 서두에서 말씀하셨듯이 할리우드 키드이셨던 어린 시절을 지나 지금은 해외 영화학자의 길을 걷고 계신다. 영화팬이자 연구자로서 현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셨을 때 소회 가 어떠실지 궁금하다. (답변1) 최근 ‘한국문학과 영화 속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회에 갔다가 임순례 감독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을 들었다. 본인도 OTT와 드라마 콘텐츠 진출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영화’의 위기는 어느 때보다 심각함을 강조하셨다. 임 감독님께서도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셨고 국내 영화문화의 발흥기에 시네필의 일원으로 활동하신 바 있다. 영화에 각별한 애정이 있으신 그 역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영화라는 매체의 위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해주신 것이다. 나 또한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지만 지금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테두리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동시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연구한다면 OTT 등의 뉴미디어는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현재 미국 콘텐츠 산업 내 주요 기업들도, 영화와 드라마, 기타 뉴미디어 콘텐츠들을 수평적으로 통합해 기획 및 제작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영화를 별도로 분리해 고유한 예술성을 되새기려는 움직임이 유용할지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회의적이다. 넷플릭스가 IP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 영화 제작이 좌절된 <오징어 게임>은 오히려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공개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영화도 동시대 뉴미디어 매체를 이용해 전 세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 중 하나로서, 특정 작품만의 브랜드를 확립하고 지속적으로 부가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한국의 경우 이러한 변화가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발생하면서 콘텐츠 제작을 위해 미국 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이 우려되기는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0세기 국내 관객에게는 할리우드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발전을 거듭한 우리나라 콘텐츠가 이제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여기에 계신 분들을 포함해, 앞으로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이 기세를 이어받아 한국영화와 콘텐츠가 지닌 역량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질문2)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1차 자료 기반의 실증적 연구는 아카이브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 아니면 실증적 연구가 먼저 이뤄졌기에 아카이브가 비로소 유지되고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인지가 궁금하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김홍준) (답변2) 실험영화 위주의 영상자료를 보존하는 뉴욕의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Anthology Film Archive)에 가보면, 말씀하신 일기나 편지 등의 사소한 기록들이 무척이나 많이 소장되어있다. 국내에서도 영자원 외에,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으로 방대한 자료를 관리하는 사설 아카이브가 더 많이 설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로 축적된 서류들을 분류하고 보존할 수 있는 인력 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여기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최근 문화예술 정책의 예산과 역량은 거의 한류 콘텐츠의 해외 홍보에만 집중되어있는데, 이중의 일부만이라도 문헌 보존에 투자되어 한국영화사 연구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질문2에 대한 코멘트) 40년 전 미국에서 유학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영화 관련 도서들의 주제가 아주 실증적이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시기에 이론 위주의 영화 도서가 많이 읽혔던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나 시나리오 작가의 회고록 등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영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 것 같다. 오늘 전해주신 말씀을 참고하면, 이런 소재들이 연구되고 세상 밖으로 나와 이야기될 수 있었던 데는 아카이브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카이브가 소장하고 있는 다채로운 1차 자료들을 토대로 작지만 새로운 영화학적 주제를 발굴 하고, 이와 연관된 다른 자료들도 살펴보면서 경험적인 연구를 진척한 후에야 이론이 성립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자원도 각기 다른 잠재력을 지닌 영상자료들의 소재를 빠르게 파악하고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자료의 원 소장자들(기증자 등)이 본인이 보유한 자료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다소 안타깝다. 예를 들어, 필름이나 동영상, 포스터 등은 영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면서 ‘수집될 만한’ 가치를 지닌 자료로 인식되지만, 영화연구 세미나 도중 작성된 발제 자료, 영화인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의 중요성은 그에 비해 평가 절하되기 쉽다. 당장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영화사의 어느 한 순간을 간직한 채 향후 영화 연구자들의 자양분이 되어줄 1차 자료들은 형태와 관계없이 모두 소중하다 는 인식이 보다 많이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김홍준) 김신재 배우가 박남옥 감독에게 보낸 성탄 카드(1989. 12. 6.)_이경주 기증 (편집자 삽입) *** 주1.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The History of Sexuality: An Introduction , Vintage, 1990. 주2.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Language and Symbolic Power , Blackwell Publishers, 1992.
우리는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과 비물질을 가리지 않고 여타의 지식과 자료는 거의 모두 정보로 가공되며 정보에의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용이해지고 정보 자체가 중요한 경제적 가치가 되는 시대다. 이러한 정보적 전환의 핵심적 기제는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 이미지와 서사 역시 정보로 환원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영화는 정보화된 시각적 질료를 어떻게 영화 이미지로 창조할 수 있을까? 2012년 개봉해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관객 수 7만을 넘으며 돌풍을 일으켰던 < 두 개의 문 >은 재난사건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급증한 정보 이미지를 영화화 하며 정치적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두 개의 문>은 2009년 용산 재개발 지역에서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경찰의 무리한 진압과정에서 화재로 사망한 참사를 다룬다. <두 개의 문>은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다큐멘터리이다. 당시 철거민들이 농성을 위해 망루를 지었던 남일당에는 수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채증을 위해 농성 현장을 기록하던 경찰의 카메라, 진보적 성향의 언론과 정당에서 실시간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을 위해 나온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의 카메라, 도로현황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 전체를 조망하던 하이앵글의 CCTV 카메라가 있었다. <두 개의 문>은 이렇게 스트리밍되고 기록된 시청각 자료들을 활용해 망루가 세워지던 낮부터 화재가 일어난 새벽까지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변호사, 활동가, 인터넷 방송 비디오 저널리스트와 같은 전문가들의 인터뷰, 재판에서 제시된 여러 증거와 증언이 교차편집으로 덧붙여진다. 다큐멘터리는 짐짓 법정영화 혹은 탐정 느와르의 서사적 관습을 따라간다. 여섯 명이 죽은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어떻게 참사가 벌어지게 된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랬는가? 무리하게 진압작전을 벌이며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경찰과 이후 국가폭력에는 눈 감은 채 농성현장에 있던 철거민과 연대자들을 공동정범으로 규정한 검찰 역시 동일한 서사 프레임을 공유한다. 영화는 철거민들을 범죄자로 규정한 검경의 프레임을 회피하기보다는 그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이 질문을 검경에게 되묻는다. 국가는 과연 시민에게,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아야했는가? 이에 질문하고 답하기 위해 영화가 사용한 파운드 푸티지들은 정보 이미지로서 흥미로운 성격을 갖고 있다. 사용된 파운드 푸티지를 만든 주체는 영화의 제작진이 아니다. 영상을 만든 이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현장에서 동시에 기록을 하며 정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교통 흐름을 관리하기 위한 서울시의 행정용 CCTV 카메라, 모든 시위와 농성을 불법으로 예단하며 시민들의 행동을 채증하는 경찰의 카메라,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정보의 왜곡을 방지하고 농성 철거민들을 국가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도 하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의 카메라가 함께 영화를 만든다. 이 영상을 만든 주체들은 사전 협의도 없고 정치적 관점도 목적도 다르지만 정보의 네트워크에서 각자 위치에서 거의 사각지대 없이 사건현장을 촬영했다. 이제 어떤 사건과 현장도 정보의 제공을 위한 시청각적 기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게 촬영된 영상은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사이즈와 앵글의 영화 이미지를 제공했다. 이 영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개인 혹은 집단의 주체적 숙고와 협의보다는 네트워크된 제도와 기본적으로 모든 사건이 시청각적으로 정보화 되는 시대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관객 역시 영화 이미지를 정보로 받아들인다. 실시간 영상의 사건 재구성이라는 영화적 형식은 관객들이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여기서의 현장은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고, 다른 하나는 법정이다. 이 영화에 사용된 파운드 푸티지들은 재판에 증거로서 제공된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관객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카메라의 시점을 실시간으로 따라간다는 경험을 제공받기도 하지만, 변호사, 검사, 판사의 위치에서 법정에서 증거로 제시된 증거-이미지를 취합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체험을 한다. 관객들은 누가 옳고 그른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해석과 결론이 이미 내려진 관점을 제공받기 보다는, 날 것의 정보 이미지를 제공받고 스스로 판단하기를 원한다. 그 정보를 검토하는 일은 제작진이 편집을 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두 개의 문>은 관객들이 그러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일종의 내비게이터 역할을 한다. 여기서 영화(의 질료) 이미지, 정보 이미지, 증거 이미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이렇게 <두 개의 문>은 이미 정보화된 사건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관객들이 정보를 직접 탐색하고 검토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보와 관객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건이 발생하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들이 급증하게 되고, 그리고 얼마든지 줌-인해 정보를 상세히 살필 수 있고, 관객들은 정보를 읽어낼 충분한 능력을 갖췄으며, 그렇게 하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실제로 영화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경찰이 왜 평소와 달리 급하게 협상을 포기하고 망루에서의 농성이 시작된 지 7시간 만에 테러를 진압하는 목적을 가진 특공대를 투입하게 되었는지, 망루가 지어진 남일당 옥상에 출입구가 두 개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위험하게 진압작전을 수행했는지를 밝혀낸다. 시민의 안전과 통제를 방패막이로 삼은 경찰이 스스로는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고, 또 다른 시민인 철거민과 말단 경찰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읽어내지 못할 정보가 없는 것처럼 주어진 자료들을 거침없이 탐색하며 사건을 재구성하던 영화는 마침내 그 사건의 마지막 순간, 불타오르는 망루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한다. 검경은 망루 안에 인화물질이 있었고 그 때문에 불이 나게 된 것이라며 참사를 철거민들의 잘못으로 몰아갔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렵다. 화재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일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애초에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작전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현장과 법정을 누비던 카메라와 관객은 ‘여기 사람이 있다’라고 부르짖는 불타는 망루 앞에서 더 들어가지 못하고 멈춰 선다. 카메라의 접근 불가능성은 ‘죽음의 스펙터클’이 될 수밖에 없는 이미지 정보의 한계와 농성 철거민의 현실에서 기인한다. 망루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증언해줄 이들은 <두 개의 문>이 제작되던 당시 사망했거나 입원 중이거나 수감됐기 때문이다. 멈춰 선 카메라와 접근 불가능성은 정보로 환원할 수 없는 이미지가 있음을 예증한다. 이 정보로의 환원 불가능성, 죽음 이미지의 접근 불가능성이야 말로 <두 개의 문>에 이어 출소한 농성 철거민들의 트라우마를 다룬 < 공동정범 >(김일란, 이혁상, 2018)의 제작이 필요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공동정범>은 바로 그 불타오르는 망루를 다시 짓고 허물고 또 다시 지으며 트라우마와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그들을 더 이상 정보로 다루지 않을 때 이미지에 접근 가능해진다. 정보에의 줌인과 탐색이 이미지의 해상도를 반드시 높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