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남녀
- 감독
- 마위호
- 제작년도
- 2001
- 출연
- 양조위, 정수문, 주려기
어떤 시간은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통과한 시간들이 그랬다.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로는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것. 거대하고, 두렵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동시에, 달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만끽했다. 고로, 나는 특별한 목적보다는 기억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 첫여름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다. 여전히 전부 소화해낼 수 없는 감각을 안고, 순간을 돌아본다. < 첫여름 >(2025)은 여성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만들었던 졸업작품이기도 하다. 졸업작품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여자들의 이야기에 허기를 느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나의 중추이다. 나는 자라면서 여자들이, 나아가 사회의 정상성에 어긋나는 존재들이 따갑고 납작한 사회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생존하는지 보고 겪었다. 축적된 분노와 우울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갈망이 맺혔고, 그 창구가 내게는 영화였다. 자연스레, 졸업작품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는 얄밉고 이기적이었다. 우리 둘은 잠깐 동거를 했었는데 할머니는 내게 어떠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매일 마스크팩을 하시면서도 나에게 한 장을 나눠주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대학 과제로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됐다. 그녀의 연애담을 들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당신이 춤을 출 때 누구보다 신이 나고, 음악을 힘껏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남자와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자신다워지는지를 서툴게 표현하시던 얼굴이 선명하다. 삶이 바빠 할머니를 잊었다. 아코디언이 너무 갖고 싶었지만 비싸 사지 못한다고 했던 할머니를, 애인 소식을 듣지 못해 앓던 할머니를 어린 나는 그토록 쉽게 잊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49재에서 불경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카바레 음악처럼 들렸다. 고개를 드니, 넓은 대웅전 마루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이 춤을 추는 할머니가 보였다. 한동안 나는 그 장면에 사로잡혔고, 기필코 이를 영화에 담아내 갖겠다고 결심했다. ‘관객들이 노인이 아닌 한 여자와 동행했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이 다짐 하나를 손에 쥐고 <첫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대웅전 주변에 앉은 영순(허진) <첫여름> 초고는 지금의 완고와 완연히 다르다. 초고는 손녀의 시점에서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 영순을 이해하게 되는 전개였다. 심지어 삼대가 만두도 빚었었다. 학수도 살아있었다! 어찌 됐든 초고는 실화와 훨씬 가까웠고, 지금의 영화 톤보다 안정적이고 온화했다. 거칠게 쓴 초고를 학교에 들고 갔을 때, 반응이 좋아 어리둥절했다. 수많은 물음표들을 훑기도 전에 나는 졸업작품을 함께 할 학우들과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해야 했다. 곧이어 언어로는 절대 서술할 수 없는 고통, 재난 같은 고역의 시기가 찾아왔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았다. 탈고를 가져가면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초고보다 나은 고를 쓸 수가 없었다. 이동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든 환기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썼다. 동기를 따라 한답시고 스터디카페까지 도달한 나는 밤새 홀로 앉아 텅 빈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침 8시였다. 여전히 모니터도, 머리도 텅- 비어 있었다. 노트북 자판 위로 눈물이 뚝뚝 맺혔다. 그 고통은 공포였다. 나에겐 시나리오와 나를 보고 모여준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대를 꺾지 않는 연출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쓰고 결정을 내려야 다른 팀원들이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이상으로 나를 공포에 내몰았던 존재는 할머니였다. 학교 수업의 일환인 시나리오 크리틱에서 나는 단언했다. “내 졸업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팔아먹은 영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 할머니의 존재는 몸집이 점점 커지더니 나를 꾸짖었다. 너 따위가 한 사람의 존엄하고 아득한 삶을 꾸며내려고 하다니. 네게 어떤 자격이 있다고. 감히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모든 게 다 위선이고 거짓 같았다. 나는 고작 누군가의 삶을 담보 잡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해일처럼 나를 쓸고 해쳤다. 시간은 내 멱살을 잡아끌어 초고는 어느새 완고 비스름한 것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숨을 엄하게 짓눌렀다. 잡념과 눈물이 차올라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교수님을 찾아갔다. 허겁지겁 정리되지 않은 말과 추잡한 감정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교수님은 잠자코 들어주셨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불쑥 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사실 전 제가 쓴 시나리오가 너무 불편해요.” 불편한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초고의 불편함은 내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새로운 고를 써 내려갔다. 손녀 석윤이 아닌 영순이 오롯이 주인공인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드디어 사람같이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였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가뿐했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초고를 쓰며 나는 손녀의 시선으로 영순의 삶을 그렸다. 20대 여성이 보고 싶은 노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노인을 전시하고 대상화한다는 감각을, 그 숨 막히는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이야기의 출발을 배신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삶을 가볍게 다루는 순간,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 죗값은 고스란히 작가에게 돌아간다. 다음 날, 나는 할머니 영순이 주인공인 새로운 고를 A고, 손녀 석윤이 주인공인 이전 고를 B고라고 이름 붙여 팀원들에게 갔다. A고는 등장인물조차 정리가 안 된, 침 냄새가 나는 갓난아기 같았고, B고는 더 이상 돌볼 게 없는 장성한 자식 같았다. 촬영까지 딱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흔들렸다. AB고 대첩은 정확히 반반으로 파가 갈릴 정도로 팽팽했다.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라, 어느 시점에는 다 큰 자식을 독립시켜 안락하게 노후 준비나 하고 싶은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선택을 유보하고, 불확실성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발버둥 쳤다. 팀원들은 굳건히 내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안전한 길을 두고 도박을 하고 싶다는 연출자에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후회 없이 하라며 독려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A고를 택했다. 나는 할머니 영순의 마음이, 그녀의 세계가 궁금해 <첫여름>을 썼다. 태초부터 주인공은 정해져있었다. 우리 영화의 쟁점은 ‘노인’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영순은 극중 70대였다. 70대 배우를 찾아야만 했다. 세월을 연기로 속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노인 배우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확연히 제한된다. 당연하다. 노인 배우는 배우이자 노인, 즉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시간을 한정하고 노인 배우가 안전히 연기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로케이션도, 이동도 적지 않았다. 나아가, 노년기 삶을 가깝고 정직하게 담아내야 했다. 사려 깊고 섬세한 동료들, 그리고 영리한 준비와 현장이 필요했다.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지만, 연출자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일’과 같았다.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품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현장은 재난과 축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연출자는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민하게 타인을 관찰해야 한다. 나의 한계를 채워줄 귀인을 알아보아야 하고, 계속해서 도움과 소통을 청해야 한다. 나같이 느리고 서툰 연출자에게 <첫여름> 팀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행운이었다. 확신이 없어도 현장에 가고 보는 대책 없는 나의 버릇은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난도가 있는 프로덕션이었다. 맨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두들기지도 않고 무식하게 머리만 박았다. 나는 끝까지 엔딩을 정하지 못한 채 촬영을 진행했었다. 나도, 팀원들도 만족할 만한 엔딩을 쓰지 못했다. 이상했다. 첫 장면은 머릿속에서 재현될 만큼 확연했는데, 영순을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첫여름> 촬영 현장 더불어, 나는 콘티에 약한 연출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뚜렷하지만, 이를 장면화하는 일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다. 카메라나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다른 동기들보다 없었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욕심을 부린다. 나와 김시진 촬영감독은 우리 둘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절대 콘티를 그리지 않았다. <첫여름>에서는 사찰에서 영순이 춤추는 씬이 공백이었다. 콘티는 있기야 했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연출자로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일 촬영 계획표가 변동되며, 휠체어 씬과 사찰 씬을 다 소화해야 하는 날. 결국 휠체어 씬의 반 이상을 찍지 못한 채 사찰로 이동하면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사찰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찰에서의 춤 씬을 설계하고 설득할 유일한 기회는 허무하게 끝났다. 녹음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무책임한 나를 증오했다. 스태프들이 밥도 먹지 못한 채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고요하고 우아한 자연 속에 고장 난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해가 지면 사찰에 다시는 못 온다. 한복을 입고 휠체어를 직접 다 끌며 열연하셨던 허진 선생님은 지칠 대로 지쳐 계셨다. 나는 춤을 포기할까, 순간 망설였다. 그런 나 스스로가 오싹했다. 사찰에서 영순이 춤을 추는 모습 하나를 보기 위해 달려가던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찍어내야 했다. 허진 선생님 또한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감정에 대해 다른 해석들을 주셨다. 어느 지점에는 춤을 추는 감정이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아 어려워하셨다. 배우도, 콘티도, 시간도 모두 내게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찍었다. 이 씬을 찍지 않으면 이 영화는 모든 의미를 잃는다.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은 버티고, 설득하고, 성실히 시간을 붙잡는 일뿐이었다. 스스로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 중요한 씬을 왜 이런 식으로 방치했을까. 허탈했다. 그런데, 테이크를 갈수록 내가 그렸던 할머니의 얼굴이 허진 선생님 위로 살며시 드리워졌다. 선생님의 몸짓을 보고 마음에 미약한 움직임이 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49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사찰 씬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알싸한 가을 냄새가 코에 맴돌았다. 내가 만약 확신을 가지고 배우와 스태프들을 설득했었다면 그날 사찰 씬 촬영은 달라졌을 수 있겠다. 그 장면을 편집할 때마다 나는 현장의 나로 돌아갔다.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보다 겨우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뭐가 됐든 나는 동료와 배우를 설득해내지 못한 연출자였다. 자책에서 벗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확신과 솔직함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연출자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사찰 앞, 춤을 추는 영순 허진 선생님과의 작업은 연애와 같았다. 나는 프리 기간 거의 매주 부산-서울을 통근하며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갔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도 많았다. 그녀와 처음 대본 리딩을 하고 팀원들에게 긴 글을 썼다. 확신을 잘 갖지 못하는 내게 확신을 준 배우였다. 나는 분명 허진 선생님에서 우리 할머니를 보았다. 허진 선생님은 톡- 쏘는 청귤 같았다. 작고 푸른데, 시면서도 달고, 균일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 가능하고 사랑스러웠다. 새침하고 외로운 여자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셨고, 사랑하고 싶어 하셨다. 그녀는 그 시절을 버텨낸 여성들이 문신처럼 가진 흉터를 가졌다. 그게 우리 할머니를 닮아 괜스레 마음이 저렸다. 영순은 더 이상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고,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럼에도 허진 선생님과 우리 할머니가 닮은 것을 거부하지 않도록 했다. 나의 전략은 허진 선생님이 그녀 자신으로 연기해도, 영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허진과 영순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었다. 선생님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녀가 살아온 삶을 깊숙이 이해하는 일이 초짜 감독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싸우고 지치고 애정하며 관계를 쌓았다. <첫여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노인을 20대 여성이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판은 아니었다.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생애주기를 살아낸 한 여자가 되어 말을 하고, 감정을 서술해야 했다. 내 시나리오의 빈칸들은 내가 진정으로 영순의 신체와 일상을 이해할 수 없음에서 비롯됐다. 별 수를 다 써봐도 영순이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아침에는 어떤 컨디션인지, 긴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그녀에게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는 보통 컷 사인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간다. 배우는 연기를 멈추고, 다시 자신이 된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은 달랐다. 나는 5회차 촬영 내내 영순이 된 허진을, 허진이 된 영순을 봤다. 빈칸들은 허진 선생님으로 인해 메꿔졌다. 허진 선생님 손등에 난 검버섯 하나와 주름 한 겹이 꾸며낸 대사 몇 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선배는 선배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가 있었고, 나는 신이 나 그 세월을 훔쳤다. 허진 선생님의 몸짓과 숨소리는 내가 연출해낸 것이 아니다. <첫여름> 촬영 중 허진 배우와 허가영 감독 영화 속 영순의 대사, “그놈이 만져주면 동하더라.”는 원래 “그놈이 만져주면 젖어.”였다. 카바레에서 영순과 덕희( 김미향 )는 요실금으로 인해 기저귀를 주고받았었다. <첫여름>을 쓰면서 절대로 지우고 싶지 않았던 장면과 대사였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과 리딩을 한 첫날, 선생님은 바로 이 대사와 장면을 빼자고 제안하셨다. 노인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기싸움을 했고, 나는 벼랑에 매달려 애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허진 선생님의 말을 따랐다. 그만큼 허진 선생님 또한 다른 부분들을 내게 선뜻 양보해 주셨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나의 타협일 수도 있었겠다는 자책이 맴돈다. 그러나, <첫여름>은 배우에게 기대 살을 붙이는 영화였다. 치열하게 설득한 후, 기꺼이 배우를 믿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젊은 내가 노년 여성의 삶을 다루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였기에, 말투 하나, 몸의 반응 하나까지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많은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카바레를 무작정 찾아가 춤을 즐기는 분들과 가까워져 그분들을 영화의 단역으로 모시기도 했다. 카바레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까마시고 그 공간이 가진 온도와 냄새를 살갗으로 느꼈던 순간들, 그곳에서 맴도는 언어와 소문들을 훔치고, 노인들과 함께 춤췄던 순간들을 <첫여름>을 만들어가며 가장 사랑했다. 노인은 욕망하는 주체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년 여성의 욕망을 지우고, 외면하고, 혐오한다. 소위 춤바람, 노망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인들의 움직임은 분명한 역동을 가진다. 속절없이 늙어버린 신체와 삶 안에서도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여자일 수 있고, 남자일 수 있고, 결국 ‘인간’일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기대어 존재를 긍정한다. 나는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카바레에서 만난 노인들의 흘린 땀에서, 그 몸부림과 사랑에서 노인들이 만들어간 문화와 생존을 보았다. 특히, 영화 속 여성의 욕망은 종종 극단적으로 다뤄진다. 억눌리거나, 폭발하거나. 하지만 그사이에는 다양한 결이 있다. 나의 외할머니 역시 사랑을 하고, 춤을 췄지만, 동시에 고된 시집살이를 견뎠다.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에서 ‘영순’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첫여름> 편집 기간은 쉽지 않았다. 나는 원체 편집을 못한다. 속옷가게 씬 편집할 때는 손도 못 대고 벙쪄 있던 기억이 있다. <첫여름>을 사랑했기에, 현장이 눈앞에서 재생되고 후회가 몰려왔다. 지금의 <첫여름>은 처음 그렸던 <첫여름>과 닮고도 많이 달랐다. 이 영화는 더 지저분하고 사람 냄새가 그윽한 영화이길 바랐는데, 내가 더 갔어야 했는데, 밀어붙여야 했는데. 그 실망이 나를 주저앉혔다. 그러나 <첫여름>이 담아낸 영순의 얼굴은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 궤적에서 춤을 추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그 움직임은 아름답고도 인간적이라는 것. 이는 우리가 이야기로서 마주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사랑, 섹스 그리고 삶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나와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 배우들과 동료들이 굳건하고 세밀하게 만들어낸 토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진 생명을 다시 직시하고 믿으며 <첫여름>을 만들었다. 칸영화제에서 내 영화가 아주 먼 곳에서 온 관객들을 만나고, 선명히 상영되고, 수상했던 기억을 가끔 꺼내어본다. <첫여름>이 영화가 되고, 사랑을 받으며 칸국제영화제에 초청이 되면서 내 삶은 질주하듯 전복됐다. 그 변화가 생생한데도 불구하고, 그날의 감정은 거대하고 짙어 지금도 소화하는 과정에 있는 듯만 하다. 시상식 때 1등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던 순간은 특히 그렇다.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동료들 모두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러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 중에 내가 깊이 존경하는 마렌 아데(Maren Ade) 감독이 있어 벅차고 떨렸다. 영어로 더듬더듬 소감을 말한 뒤 동료들 곁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섹션 수상 현장 그저 신기했다. 칸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꿈의 무대인 만큼 눈이 부셨다. 쿠엔틴 타란티노랑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엠마 스톤을 봤다. 한편으론 영화제가 지나치게 화려해 상처받은 순간도 있었다. 종종 영화제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 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낮은 곳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모든 문화적 자본을 누리고 소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다. 영화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라 시네프 섹션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만드는 또래 감독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영화를 비교하고, 만져보고, 느끼며 신났다. 그들과 소통하며 동시대의 영화인들이 가지는 시선을 봤고 큰 자극을 얻었다. 무엇보다 기쁜 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수한 얼굴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었다. 상영 전 발표를 해야 해서 앞줄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영순의 표정과 마음을 따라가며 신나게 웃고 격하게 울어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감정을 일으키고, 우리가 공동체가 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그 귀한 감각을 만끽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관객의 얼굴을 지켜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다가와 소감을 말해주었다. <첫여름>은 그 많은 관객들 하나하나를 만나 그보다도 더 거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가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나갔다. 이 날 것의 반응들과 감정들을 지켜볼 수 있어,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연출자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노인 관객들이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을 때는, 내가 왜 창작자로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사회와 연결되고, 인간과 대화하고 싶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예술이다. 내가 그곳에서 사랑했던 진실을 잊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첫여름>과 함께 내가 자라날 수 있었다. 연출자로서 이토록 가득해 넘쳐흐르던 첫여름이었다. 허가영(영화감독) l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너를 심을 땅 >(2025), <첫여름>(2025) 연출·각본. * 촬영 현장 및 일부 스틸: 필자 본인 제공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입봉이 목표인 삶을 살았다. 입봉하면 천국, 입봉 못하면 지옥. 입봉하면 행복, 입봉 못하면 불행. 내 삶이 지금 지옥이고, 내가 불행한 것은 입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입봉만이 희망이었던 시간을 지나, 작년에 ‘입봉’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이제 드디어 천국에 다다른 것인가 했는데, 막상 겪어 본 입봉 후 삶은 천국도, 행복도 아니었다. 입봉만 하면 천국일 줄 알았는데! 입봉만 하면 행복일 줄 알았는데! (‘뭥미’라고 쓰고 싶지만 영자원 원고이니 참기로 한다.) < 미술관 옆 동물원 >(이정향, 1998)은 미술관을 좋아하는 여자 춘희와 동물원을 좋아하는 남자 철수가 뜻밖의 동거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철수는 연인 다혜와 재결합하고자 하지만, 다혜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춘희는 보좌관 인공을 짝사랑하지만, 인공은 춘희에게 관심이 없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 빈 문서의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는 춘희를 보자마자 ‘춘희, 나랑 똑같네?’라고 생각했다(물론 얼굴이 ‘심은하’라는 것은 빼고 생각했다). 춘희처럼 나도 밥벌이를 하면서 틈틈이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춘희처럼 나도 내 시나리오 주인공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들과 같이 아파하고, 그들과 같이 기뻐했다. 같이 고민해주는 철수는 없었지만. ‘심은하 얼굴’과 ‘철수’만 빼면 그때의 나는 딱 춘희였다. 처음부터 ‘작가가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시나리오에 대한 호기심이 먼저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시나리오를 쓰면 쓸수록 시나리오가 좋아졌다. 작품을 쓰면서 마음속의 생채기들이 하나씩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시나리오는 영화의 설계도이다. 설계도는 건물이 완공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시나리오는 영화가 상영되면서 비로소 완성된다. 아무리 많은 시나리오를 써도 컴퓨터 하드에 저장돼 있을 뿐인 시나리오는 온전히 완성될 수 없다. 그렇기에 꼭 입봉하고 싶었다. 내 시나리오가 스크린에서 살아 숨 쉬는 그 순간을 고대했다. ‘스물넷에 공부를 시작했으니, 서른 즈음 되면 길이 보이겠지.’ 착각이었다. ‘어려운 길이지만, 마흔 전엔 되겠지,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았다. 이쯤 되니 그렇게 좋아하던 시나리오가 내 고통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이제 정말 그만둬야 하는 것인가. 이 지옥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매일매일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든 다혜를 다시 잡고 싶었던 철수는 이미 떠나간 다혜의 마음을 확인하고 좌절한다. 이제는 인공이 관심을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춘희는 여전히 관심이 없는 그의 마음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좌절하고 기대한 것을 얻지 못해 실망하느라, 철수는 좋아하는 베개를 양보해주는 춘희를, 춘희는 욕을 먹어가면서 버스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철수를 보지 못한다. 입봉을 하고 나서야, 입봉했지만 그곳도 천국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입봉을 하지 못해 좌절했던 그 시간들도 지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다만 원하는 것, 기대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뿐. 그래서 미처 보지 못했을 뿐. 그때에도 내 곁에는 ‘지옥이 아닌’ 많은 것들이 있었다. 정반합(正反合). 본래 있던 것에 새로운 것이 다가와 충돌한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난다. 본래 있던 주인공의 삶에 새로운 자극이 다가와 주인공의 삶이나 생각을 바꾸는 것. 그 과정이 시나리오의 1, 2, 3 장이다. 3장에서 변화한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설계도를 그린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내내 3장의 깨달음을 작품에 구현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대부분 그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플롯을 구현할 수 있을까. 매일 부딪혔던 의문은 천국과 지옥, 행복과 불행이라는 양극단의 늪에서 빠져나오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영화 같은 삶, 이라고 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삶의 일부이다. 삶을 넘어서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한 부분을 떼어내 재미있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러한데 이분법의 세상에 갇힌 작가가 어찌 1장에서 2장으로, 2장에서 3장으로 변해가는 삶의 과정을 시나리오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원한 것은 선, 원하지 않은 것은 악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이 어찌 천국과 지옥,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깨달음의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처음 좋아한 이는 인공이었지만, 인공과 이루어지지 못해도 괜찮다. 인공과 다르지만, 그것이 또 좋은 철수가 있으니까. 그토록 그리워한 이는 다혜였지만, 다혜가 떠나갔다고 해도 괜찮다. 다혜와 다르지만, 그것이 또 좋은 춘희가 있으니까. 미술관에서 좋은 그림을 보고자 했지만, 막상 당도한 곳이 미술관이 아니라 해도 괜찮다. 동물원에서도 예상 못 한 즐거움을 만날 수 있으니까. 동물원에서 귀여운 동물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막상 당도한 곳이 동물원이 아니라 해도 괜찮다. 미술관에도 예상 못한 만남이 있을 수 있으니까. 앞으로도 뜻대로 되는 일보다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가고자 한 곳에 가게 되는 일보다는 뜻밖의 장소에 당도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짜고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 고개를 들어 표지판을 보자. ‘천국 옆 지옥’, ‘행복 옆 불행’이 아니라 ‘미술관 옆 동물원’이다. 양극단이 아닌 그 사이 어딘가, 그곳에 영화의 진짜 엔딩이 있다. 김정연(시나리오 작가) l 쓰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 < 비공식작전 >(김성훈, 2022), < 밀수 >(류승완, 2023) 각본. < 더 문 >(김용화, 2023) 각색.
얼마 전 작고한 김수용 감독의 < 야행 >은 1974년 제작됐으나 사전검열과 영화법 4차 개정에 따른 제작사의 등록취소 문제로 1977년이 돼서야 개봉했다. <야행>은 김수용 감독의 전작 < 안개 >(1967)와 공통점이 많다. 두 영화 모두 김승옥 원작에 윤정희와 신성일이 주연을 맡았다. 두 영화는 급변하는 20세기 모던한 서울에서 삶의 방향을 잃은 주인공이 고향을 방문했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구조를 갖고 있다.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서울에서 중산층 이상의 계급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예정된 권태로운 삶에 무의미함을 느낀다. 두 주인공의 방황은 자의식적인 내레이션, 플래시백, 꿈과 환상의 장면으로 표현된다. 권태로움을 깨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규범적인 중산층의 삶에서는 꺼내놓을 수 없었던 성적 환상의 실현이 된다. <안개>는 윤기준(신성일)이라는 부잣집 딸과 결혼해 제약회사 전무 자리를 꿰찬 남자의 시점으로, <야행>은 은행에서 일하며 이제 막 신축한 강남 반포 아파트에 살고 있는 현주(윤정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두 영화 모두에서 도시와 농어촌인 고향의 대비, 도시에서의 경쟁적인 삶과 신분상승의 욕망, 중산층 정상성에의 압박,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같은 국가적 트라우마의 영향이 희미한 배경으로 처리된다.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와 도시화라고 요약할 수 있는 이 쟁점들은 그 원인과 효과가 날카롭게 파헤쳐지기 보다는 개인의 방황을 정당화하는 동기 정도로 차용된다. <안개>와 <야행>은 공통점이 많지만 동시에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도 두드러진다. <안개>에서 윤기준이 무진에서 잠깐 만나는 젊은 음악교사 하인숙(윤정희)을 포함해 아내, 옛 애인, 술집작부 등 여성 인물들은 그의 남성적 수치심, 혼란, 열패감, 권태로움을 반영하거나 보상하는 정형화된 약호들로 기능한다. 무진에서 서울로 가고 싶어했으나 금방 마음이 바뀐 하인숙을 이해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반면 <야행>의 현주(윤정희)의 방황하는 행동은 단순한 변덕이나 모순보다는 도시 신흥 중산층 여성의 내적 풍경으로 이해된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예술 영화를 표방했던 영화와 마찬가지로 <야행>의 현주(윤정희)는 도시 생활의 최첨단에 있다. 그리고 그 최신의 세련됨은 자본주의의 숙성과 관련이 있다. 그는 은행원으로 일하고 강남 개발의 신호탄이 된 반포주공아파트에 산다. 영화는 도시화와 더불어 지루함과 혼란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고속버스 터미널, 서울의 빌딩을 오프닝의 설정 쇼트로 보여준다. 지방에 있는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와 은행에 취직하고 이제는 숙련된 직장인으로 일하는 현주처럼, 서울 역시 어느 정도의 도시화와 근대화가 숙성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설정 쇼트에 이어 영화는 은행의 일상 업무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이제 인프라를 쌓고 직접적인 노동을 통해 성장하는 것에서 돈이 돈을 버는 금융자본이 중요해지고 지대수입을 통해 부를 증식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부의 증식은 계층 격차를 벌어지게 만든다. 영화는 그러한 현상을 강조라도 하듯 현금과 금고를 클로즈업 몽타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정치의 개입이든 경쟁에서의 도태든 탈락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동방상사의 사장이 오래된 부잣집에서 부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과 남자 주인공인 박대리(신성일)가 동방상사를 부도처리하는 장면이 바쁘고 역동적으로 교차편집 되는 와중에 안경을 쓴 현주는 돈다발을 응시한다.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남자들이 몰입해 일을 하는 동안 거리를 두고 약간은 지루하게 응시하는 현주의 모습은 흥미롭다. 영화는 여성인 현주의 관점에서 근대화, 도시화, 자본주의의 숙성을 다루게 될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뒤늦게 밝힌다. 현주 역시 도시 자본주의를 충분히 누리고 있지만 선명하게 정리되지 않는 혼란을 느낀다. 영화는 현주가 결혼을 통해 규범적인 중산층 가족을 이루지 못한 것에 불만을 느끼는 것처럼 묘사한다. 동료와 상사는 ‘노처녀’ 현주가 자기보다 어린 여직원이 결혼을 하는 것에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간다. 실제로 젊은 여직원들은 뒤에서 현주를 욕하고, 남직원들과 남자 상사들은 대놓고 그녀를 동정하며 비웃는다. 아무리 ‘안경만 벗으면 미인인’ 현주라도 나이가 들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그녀를 대한다. 현주도 여기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불만은 훨씬 더 모호하고 복잡하다. 신식 강남 아파트에서 동거를 하고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는 박대리에 대한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현주 역시 그와 정말로 결혼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결혼은 그저 그의 욕망을 찾기 위한 여정을 추진하는 기제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현주는 과거로 돌아간다. 휴가를 받고 고향에 내려간 현주의 회상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선생님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그녀의 첫사랑은 베트남전에서 죽고 만다. 그녀의 아파트가 자신의 첫사랑이 묻혀 있는 현충원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최신식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 자본주의적 현대성은 전쟁이라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대가로 사들인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국가가 오염되어 있는 것처럼, 결혼은 이제 중산층이라는 계층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현주의 욕망은 급작스럽게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그러나 현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과시하는 김수용 감독답게 영화는 그 알레고리를 끊임없이 개인의 성적인 방황과 모던한 아파트의 스펙터클로 재치환 한다. 1974년 제작된 영화는 1973년 처음 공급된 당시 반포주공아파트의 실내 구조와 창밖 전망을 스펙터클화 한다. 영화 속 아파트는 은밀하게 섹스를 하는 에로틱하고 모던한 공간이자, 창밖으로 대단지 내 다른 아파트만 보이고 허허벌판인 황폐하고 삭막한 신도시 공간으로 묘사된다. 아파트 근처에는 베트남 전쟁 중 죽은 옛 연인이 묻혀있는 국립현충원이 있다. 현주는 현충원의 헌병 앞에서 스타킹을 올리며 유혹하는 제스처를 취하곤 한다. 이 장면은 강남개발과 베트남 참전이 모두 국가 주도의 근대화 프로젝트 영향 하에 있음을 은유하는 동시에, 신흥 중산층에 진입했지만 결혼 같은 규범은 원치 않는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다. 지난 50년간 강남 중상층 욕망의 상징이 되어온 반포주공아파트는 2023년 재건축 진행으로 사라졌지만, <야행>은 그 욕망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기록하고 기억한다. 박대리는 뒤늦게 현주에게 결혼을 하자고 하지만, 자신을 성적 도구로만 여기는 그에게 현주는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현주는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성적 방황의 여정을 시작한다. 근대화, 도시화, 자본주의의 숙성을 통과하는 여성의 혼란스러움은 성적 불만족으로 환원된다. 서울로 돌아온 현주는 은행이 내려다보이는 다방에 앉아 박대리와 나눈 대화를 복기한다. 그리고 박대리가 했던 대사를 돌려준다. 박대리는 “우린 안 해?”라고 묻고 현주는 “시시해, 결혼식 같은 건”라고 답한다. 낯선 남자와 총질하는 환상이 삽입되면서 이제 현주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은유화 한다. 남은 휴가를 보내던 현주는 도심의 육교 위에서 느닷없이 수갑이 채워져 여관방으로 끌려가 강제로 관계를 맺고, 이때 첫사랑과의 첫날밤 장면까지 교차되며 그녀의 환상은 극에 달한다. 이 장면은 여성 시점의 강간 판타지를 위험하게 보여준다. 아파트에 갇혀 사는 중산층 여성의 권태로움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 위에 세워진 자본주의 근대화에 대한 불만족을 성적환상으로 대치한 현주는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환상은 환상일 뿐 그녀의 일상은 다시 반복된다. 하지만 박대리와 결혼하는 안일함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주의 눈치를 보는 박대리에게 단호하게 ‘휴가는 끝났다’는 쪽지를 보내고, 자신을 성희롱하는 남자고객을 뒤에서 욕하며 퇴근하는 현주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표명으로 보인다. 특히 나이에 따라 여성들의 가치를 매기는 가부장적 결혼제도로는 걸어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현충원을 지나 양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아파트 사이의 소실점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현주의 뒷모습을 점프컷으로 보여준다. <야행>은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기반 위에서 결혼이라는 규범을 거부하는 자본주의 근대 도시 여성의 얼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