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 감독
- 지아 장 커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샤오동 리우
1920년대 후반 일군의 조선인 영화인들이 상하이에서 그들의 영화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한국영화사에서 상해파 영화인이라고 명명될 정기탁 , 김일송(상하이 활동 당시 이름은 정일송), 이경손 , 전창근 등이 그들인데, 특히 그 중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기탁은 필모그래피만 보더라도 놀랍도록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그는 1928년 상하이의 주요 영화사 중 하나였던 대중화백합(大中華百合影片公司)에서 연출한 <애국혼 愛國魂>을 통해 성공적으로 상하이 영화계에 데뷔했으며(이 영화에는 김일송이 주요 배역 중 하나를 맡고 있으고 전창근 또한 출연 및 각본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해에만 < 삼웅탈미 三雄奪美>, < 화굴강도 火窟鋼刀>까지 세 편의 영화에 감독이자 출연자로 이름을 올렸다. 1929년에는 대중화백합에서 만든 9편의 영화에 감독 겸 배우로 관여하였고, 대중화백합을 포함한 영화사들의 트러스트로 이루어진 연화영화사(聯華影業公司)가 제작한 영화 <출로 出路>(1933)를 감독했으며, 1934년에 마찬가지로 연화에서 완성한 완령옥 주연의 < 상해여 잘 있거라 ! 再會吧, 上海!>를 끝으로 상하이 영화계를 떠났다.(이 시기 만들어진 영화 중 유일하게 필름이 남아있는 <상해여 잘 있거라!>는 영상자료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정기탁은 1934년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1937년에 죽었다.) 그런데 이 이름을 한국영화사 안에서 호명해오는 데에는 적잖은 난감함이 따라붙는 게 사실이다. 정기탁은 상하이 영화계의 주류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의 <애국혼>부터 1934년의 <상해여 잘 있거라!>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채우는 영화들은 이 영화들이 제작된 대중화백합이나 연화가 중국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주류적 위치만큼이나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상해영화사의 전형적인 조류와 일치하고 있다. 즉, 1928-1929년의 그의 영화들은 1920년대 후반 상하이라는 도시에서 형성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영화의 모색과 함께 하고 있으며, 이후 연화에서 완성한 두 편의 영화 <출로>와 <상해여 잘 있거라>는 1930년대 좌익 멜로드라마들을 통해 ‘중국영화의 첫 번째 황금기’를 이끌었던 이 영화사의 전형적인 영화 패턴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실천들은 중국영화사의 한 장 속에 자리매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내셔널 시네마적 귀속이란, 그 네이션의 성립의 전후까지를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얼마나 사후적인 것인가? 월경자들의 실천이 ‘경계’의 이쪽과 저쪽에서 형성되는 사후적 담론 내로 수렴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후적 귀속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실천이 이루어졌던 바로 그 시간대 안에서 사유해본다면 어떨까? 정기탁이 대중화백합에서 출연작까지 포함하여 무려 12편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1928-29년, 상하이라는 시공간은 특별히 흥미롭다. 1919년 9월 이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선포된 장소, 3.1운동과 5.4운동 이후 반제의 기치 아래 한중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미만했었던 시간. 나아가 열강들의 조계지이자 1차대전 이후 이 지역 일대에서 가장 활발한 산업과 무역의 거점지로서 1925년의 5.30 운동에서 시작된 반제 계급투쟁으로서의 ‘혁명’의 열기가 뜨거웠던 장소, 1927년 국민당의 우경화와 장제스의 4.12 쿠데타로 이 ‘혁명’이 폭력적으로 좌절된 시간. 또한 1928년은 이후 이 지역 일대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대중문화적 자원으로 기능할 어떤 장르영화가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이해 <불타는 홍련사 火燒紅蓮寺>(명성영화사)의 성공으로 불붙은 무협영화 붐은 거의 이상 현상이라고 할만한 사태를 불러일으켰으며, 관객들은 홀린듯 이 새로운 장르영화가 보여주는 운동과 시각적 쾌감에 사로잡혔다. 붐이 피크에 달한 1929년 한해에만 85편이 제작된 무협영화는 1928년에서 1931년 사이 무려 250여 편이 만들어졌다. 이 조류의 한복판을 통과해갔던 동시대인의 증언처럼 말 그대로 ‘미친 물결(狂濤)’가 같았던 이 흐름에서 자유로운 곳은 거의 없었으나 정기탁이 몸담고 있던 대중화백합역시 여기에 매우 적극적으로 호응하던 영화사였다. 1928년에서 29년까지 약 1년 반 동안 이 영화사에서 만들어진 30편의 영화 중 거의 절반이 무협영화였으며, 같은 기간 정기탁이 대중화백합에서 감독 혹은 배우로서 관여했던 11편의 영화 중 다수가 이 장르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 영화들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해왔던 자들은 상하이와 남양 일대의 공장과 농장의 노동자들, ‘농공(農工) 군중’이라고 불려졌던 자들이었다. 말하자면 무협영화는 이제 막 형성된 대규모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지역 최초의 액션영화였다. 1920년대 후반의 상하이, ‘농공 군중’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끌어모은 최초의 액션영화 장르로서의 무협영화, 이 장르와 연계되어 있는 조선인 망명자의 영화적 실천. 다시 한번 언급컨대, 이 점들을 잇는 첫 장면에 들어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애국혼>이다. 상하이 영화계에서의 정기탁의 성공적인 안착을 가능하게 한 이 영화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거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협영화 장르가 이 지역 일대에서, 나아가 화교 문화권과 상관없는 장소(이를테면 1960년대 후반 이후의 한국과 같은 지역을 상기해보자)에 끼친 광범위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이 순간은 어떤 동아시아 액션영화의 원형이 당도한 기원의 시간이라고 할만하다. 그 첫머리에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라는 행위에 집중한 안중근 서사가 동시도착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통적인 문의 강조로부터 무로의 이동이 20세기 초 이 지역에서 사유되었던 근대적 국가 성립에의 열정과 이를 떠받치는 근대적 신체의 문제와 관련있다면(근대국가라는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는 ‘상무(尙武)’) ‘법을 범하는 무’로서의 협은 반식민지 상태의 중국과 식민지 조선에서 상상되었던 아나키한 힘에의 열정과 관련있다. 동시에 수중의 폭력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자, 협객은 <애국혼>에서 국가 간 교전이라는 주권적 행위를 수행하는 자와 겹쳐진다. 먼저 안중근에 대해 말하자면, 중국에서 안중근은 1909년의 그의 거사 직후부터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일찍이 량치차오가 이 거사 직후 쓰여진 「추풍단등곡 秋風斷藤曲」(1909)에서 그를 형가와 예양에 비견한 이래, 그에 관한 시문과 평전이 꾸준히 등장했으며 1919년 5.4운동 시기에 안중근 의거를 소재로 다룬 극은 반제반봉건 투쟁의 중요한 수단으로서 중국 각지의 학생연합회에서 빈번히 상연되었던 레파토리 중 하나였다.(안중근의 서사는 1937년의 중일전쟁 발발 이후의 항일 선전대에서도 중요한 레파토리 중 하나였다.) 이 이름이 지닌 반제 항일의 아이콘적 지위를 생각한다면 정기탁이 대중화백합에서의 그의 첫 번째 영화 프로젝트로 안중근 스토리를 선택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정기탁의 이 상하이에서의 첫 영화는 가히 성공적이라고 할만했다. “군사를 날줄로 삼고, 로맨스를 씨줄로 삼았으며, 의기 충만한 격앙감”이 있는 “고상한 스토리”로 소개된 <애국혼>은 근래 ‘국산영화’ 중 사상적으로 가장 충만한 영화(《申报》 1928.11.11.)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의 필름은 남아있지 않지만, 공개 당시 쓰여진 동명의 영희(影戲)소설 碧梧, 《爱國魂》(《電影月報》1928年 第7期). 이 자료는 영상자료원에 소장되어 있다. 을 통해 면모를 확인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위국(魏國)의 정치가 등박문(縢溥文)은 여국(黎國)의 간신 여용(黎庸)을 매수하여 이 나라를 침탈하고자 한다. 어느날 이들의 음모를 알게 된 샤딩춘(夏鼎醇)이 안영진(晏永鎭)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영진은 등박문을 암살하기 위해 그에게 폭탄을 던지나 실패하고 등박문의 수하에 의해 횃불로 불태워져 죽임을 당한다. 한편 영진의 아들 안중권(晏仲權)은 누이동생을 괴롭히는 위국 병사를 때려죽이고 도망치던 중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다. 몰래 상하이로 건너간 중권은 그곳에서 ‘중국인 혁명가’ 주한룽(朱漢龍)을 만나 의기투합하고 한룽의 누이동생 아이란(愛蘭)과 사랑에 빠진다. 중권과 한룽은 서울로 잠입하여 거사를 치루려고 하나, 호텔에서 등박문을 향해 겨눈 중권의 총구는 빗나가고 만다. 중권과 한룽, 샤딩춘과 박재명은 다시 등박문의 암살계획을 세우지만, 여관 하인의 밀고로 들이닥친 위국 병사들에 의해 중권은 체포되고 샤딩춘은 죽음을 맞는다. 하인의 회개로 힘을 합쳐 중권을 감옥에서 구출해내는 한룽과 박재명. 그 와중에 하인은 죽지만 중권은 무사히 탈출한다. 중권, 한룽, 박재명은 두만강을 건너 장일성(張一成)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여기에 중권의 동생 옥실 또한 합류한다. 뒤따라온 위국 군대와의 전투에서 장일성이 죽고 자신의 어린 아들을 중권에게 부탁한다. 남은 자들은 홍콩으로 떠나 류동샤(劉冬夏)의 집에서 후일을 도모하고, 와중에 옥실과 한룽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중권을 그리워하던 아이란은 그리움으로 병들어 죽는다. 두만강 근처의 의용군에 합류한 중권, 한룽, 재명, 옥실. 어느날 적의 상황을 정탐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한룽과 재명이 위군 병사에게 체포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재명은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으로 목숨을 잃고, 고문으로 양쪽 눈을 잃은 한룽은 중권에 의해 구출된다. 류동샤로부터 등박문이 하얼빈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중권은 한룽에게 옥실을 부탁하고, 홀몸으로 하얼빈으로 떠난다. 드디어 등박문의 저격은 성공하고, 체포된 중권은 늠름한 모습으로 사형당한다. 등박문(縢溥文), 여용(黎庸), 안중권(晏仲權) 등 한자음의 종족성을 통해 희자(戲字)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고유명사들로 이루어진 세계의 이야기는 1920년대 상하이라는 장소에서 가능했던, 피식민지인과 반(半)식민지인이 항일과 구국이라는 공통의 가치로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에 관한 가장 강렬한 상상태를 보여준다. 한국 혁명가와 중국 혁명가는 거듭되는 전투와 체포, 탈출, 다시 전투를 통해 피를 나누고, 급기야 한국 혁명가가 중국 혁명가에게 자신의 동생을 부탁할 때 실제로 ‘형제’가 된다. <애국혼>은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일단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라는 사건을 제외하고는 안중근의 실제 이야기와 그다지 상관없어 보인다. 정기탁은 안중근 스토리를 제재로 삼았지만 그의 전기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이야기를 오직 암살 시도, 실패, 탈출, 추적, 전투로 이루어진 활극영화로서 다루었다. 이 이야기가 지극히 흥미로워지는 것은 영화가 시작되는 저 순간이 어떤 전사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국혼>은 명백히 한국영화의 기원적 장면이라고 할만한 것을 반복하고 있다. 이 순간 정기탁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분명 1927년 조선영화 최대의 히트작 < 아리랑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랑>을 염두에 놓고 보자면, <애국혼>은 마치 <아리랑> 이후, 혹은 <아리랑>의 저 출구 없는 결말 너머를 상상하는 소망처럼 보인다. <아리랑>의 영진처럼 <애국혼>의 중권 역시 여동생을 폭행하려는 자를 때려죽인다. 그러나 영진이 일본 순사에게 묶여 고개를 넘어가며 그저 아리랑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면 일본 ‘군인’을 때려죽인 중권은 국경을 넘어 상하이로 건너간다. <애국혼>이 반복하고 있는 <아리랑>의 이 장면은 왜 그토록 강렬한 것인가? 이 장면이 보여주는 바는 세 가지이다. 먼저 ‘그’는 자신의 수중의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을만큼의 힘을 소유하고 있다.(낫을 들어 죽인다) 둘째, 그러나 그 폭력이 발현되는 순간 그는 법에 포박당한다.(순사에게 잡혀간다) 셋째, 이 법은 당연한 말이지만 식민지 권력이 이곳에 강제한 것이다. 조선이라는 내부가 아닌 상하이라는 외부의 장소로 탈주한 <애국혼>은 바로 이 장면을 반복하면서 사적 폭력을 공적 폭력으로 옮겨온다. 즉 결투는 이제 전투로 옮겨갈 것이다. 식민과 수난의 땅으로서의 조선과 주권과 주권의 교전이 일어나는 장소로의 중국 혹은 상하이. 동시에 <애국혼>의 시작 지점이 구축해놓은 등박문을 죽이려다가 죽임을 당한 아버지 안영진의 죽음이라는 사건(이것은 안중근의 전기적 사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은 등박문 암살이라는 중권의 행위를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아버지의 복수라는 사적인 원념과 나라를 구한다는 공적인 가치를 일체화시키는(게다가 이 아버지 스스로가 ‘구국’을 위해 일어섰다가 죽임을 당한 자임을 상기해보라) 한편 이 영화를 동시기의 유행장르, 무협영화의 장르적 특성으로 밀어넣는다. 무협 장르의 내러티브적 핵심은 젊은 남자(혹은 여자)가 행하는 복수에 있다. 그 혹은 그녀는 스승, 아버지, 주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복수는 행위의 근본적 추동 요인이다. 그런데 복수는 최선의 경우라 하더라도 (종종 이들은 충과 효라는 이 세계의 ‘보편적’ 윤리를 끌어들이지만) 개인의 개인에 대한 응징, 사적 폭력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애국혼>은 항일과 구국이라는 대의를 아버지의 복수라는 사적 원념과 일치시킴으로써 한편으로 흥행 장르의 규약을 공유하면서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 안중근의 실제 이야기로부터 영감 정도를 받아 자유로운 각색이 구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중권이 의용군에 합류한 이후 등박문의 암살에 성공한다는 사실에 부합하는 설정을 고수하고 있는 지점은 새삼 의미심장해 보인다. 이 설정은 중권의 행위가 도당적 행위가 아닌 군사적 행위임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인다. “군사를 날줄로 삼고, 로맨스를 씨줄로 삼았”다는 이 영화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영화는 이 순간 군사영화, 다시 말해 전쟁영화이다. <애국혼>은 아버지의 복수를 행하는 아들이라는 무협영화와 구국의 항전이라는 전쟁영화를 겹쳐놓음으로써 식민지/반식민지의 경험 위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액션영화의 하나의 원형적 틀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이제 막 시작된 무협영화의 컨벤션과 전쟁영화를 뒤섞고 있는 <애국혼>을 좀더 적극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애국혼>은 안중근이라는 실제 인물의 표상, 반제와 항일이라는 반(半)식민지 중국과 식민지 한국의 공통적 이념 하에 협과 의리에 기반한 복수 서사를 전개해나간다. 그럼으로 이 반제 ‘액션영화’에는 무림 혹은 강호라는 판타지 공간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근대 국제 정치의 교전/전쟁의 문제와 혁명 혹은 반란의 상상인 ‘협’의 문제가 교직된 <애국혼>은 소위 동아시아 액션영화의 대표 장르로서의 ‘무협영화’를 통해 3.1운동과 5.4 운동 후의 한중연대의 정치적 움직임과 계급투쟁으로서의 5.30 운동과 동아시아적 액션이라는 문화적 과제가 어떻게 교직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투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국혼>이 절반쯤 기대고 있던 무협영화는 1931년 이후 적어도 상하이의 주류 영화 산업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국민당 정부는 상하이를 비롯해 전국적 규모로 이 장르의 제작을 전면 금지하였다. 이후 중국 본토에서 거의 상영될 수 없었던 무협영화의 제2차 붐이라고 할만한 것은 1960년대 중반 홍콩에서, 정확히 첫번째의 붐을 이끌고 목격했던 자들에 의해 가능해졌다. 1920년대 말 무협영화붐의 중요 에이전시였던 천일(天一)영화사의 후신인 쇼브라더스는 1965년 <강호기협 江湖奇俠>(서증굉)을 시작으로 ‘무협신세기’를 선언하며 이 장르를 ‘모던’하게 환골탈태시키고자 하였다. 쇼브라더스의 기획은 호금전의 <대취협 大醉俠>(1966)과 홍콩 영화 최초의 백만달러(홍콩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인 장철의 <독비도 獨臂刀>(1967)로 성공적으로 안착하였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 영화들은 이제 남한으로 구획된 대한민국의 영화시장에 적극적으로 어필한 최초의 무협영화가 되었으며, 이후 이곳의 남성 하위문화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대중문화의 자원으로 기입되었다. 다음 시간에는 바로 이 기입의 순간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글의 내용 일부는 필자의 「협(俠)과 액션, 동아시아 액션영화의 역사적 기원 - 정기탁의 〈애국혼〉과 상하이 무협영화」(홍지영 공저)를 가필 수정한 것임을 밝힌다.)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20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의 < 기차의 도착 >(1895)은 활동사진이라는 신(新) 예술의 도착을 알렸다. 시오타 역 플랫폼으로 진입하는 기차의 현실감에 압도당한 관객들이 겁에 질려 소란이 일었다는 거짓말 같은 일화도 전해진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하나의 ‘기차 영화’가 이목을 끌었다. 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한 < 박하사탕 >(1999)에 기차가 도착한 순간 한국영화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시대로 진입한다. 이창동 의 기차는 거꾸로 간다. <박하사탕>에서 기차 장면들은 서사의 가장 중요한 마디들에 배치되었다. 회색 양복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 김영호(설경구)는 원근법적 구도로 찍힌 선로에 위태롭게 서 있다. 곧이어 영호의 몸은 이미지의 소실점으로 이끌리듯 뒤로 기울어진다. 뒤에서 기차가 굉음을 내면서 다가오자 영호는 휙 돌아서 기차의 정면으로 향하고 금속 기계로 빨려 들어간 관객의 눈은 카메라의 시점에 동기화된다. 팔을 위로 뻗은 채 영호는 비명을 지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회전과 동시에 시간도 회전하고, 절규하는 영호의 얼굴 위에서 이미지는 얼어붙는다. <박하사탕>의 내러티브 궤적 내에서 이 얼어붙은 이미지는 형식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박하사탕>은 혁신적인 스토리텔링에 의해 전달되는 파괴적인 드라마였다. 이창동의 거꾸로 가는 기차는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관한 은유이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 점점 확대되는 햇살 속으로 기차가 빠져나가면서 영호의 여행도 시작된다. <박하사탕>의 시간여행은 통상적인 플래시백과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플래시백이 누군가의 시점(point of view)을 경유한 회상으로 정의되는 데 반해 <박하사탕>에서는 시점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사 안에는 시간의 고정점이 부재하며 따라서 후진하는 기차를 따라 기술되는 과거 스토리는 영호의 회상이 아니다. 기차는 시간을 거슬러 여행한다기보다 시간을 이동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창동은 앞으로 진행하는 시간과 매몰된 시간들을 소환하는 시각적인 은유로 기차를 활용해 역사의 닫힌 경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인간의 비극을 다룬다. 한편으로 기차는 당시까지 이창동의 영화 세계를 표상하는 시간-장치였다. 그의 데뷔작 < 초록물고기 >(1997)는 덜컹거리는 기차의 외경 쇼트로 열린다. 군에서 막 전역한 막동(한석규)은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미애(심혜진)와 우연히 교차한다. 기차 문에 걸터 선 막동에게 미애의 자줏빛 실크 스카프의 날아드는 장면은 고전적인 러브스토리에서 로맨스가 피어나는 순간을 재연하는 것 같다. <박하사탕>의 기차 장면들은 1979년부터 1999년까지 영호의 삶을 망가뜨린 7개의 삽화들 사이에 배치되어 시간 이동을 위한 프레이밍 장치로 사용된다. 각각의 삽화는 기차의 마지막 칸에 배치된 카메라 앵글로, 철도 선로 위의 움직임을 찍은 짧은 막간 쇼트들과 연결된다. 이 막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디제시스를 뒤로 당기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영화의 스토리는 앞으로 전진한다’는 관객들의 경험을 따라간다. 스토리 시간은 뒤로 가지만 스토리는 앞으로 가는 플롯의 효과가 창조되는 것이다. 기차는 영호의 삶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등장하여 그의 삶을 치욕과 악행, 파멸로 몰아간 궁극적인 원인을 찾도록 한다.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과관계는 사실상의 테마가 된다. 중요한 삽화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관객은 행동과 동기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기 위해 애쓴다. 각각은 이미 발생한 최종 결과, 즉 영호의 자살을 설명할 이유를 찾도록 주문한다. 통념상 전진하는 스토리 안에서 목표 달성은 가장 중요하며 이를 달성하는 수단은 부차적이지만, <박하사탕>과 같은 형식은 클라이맥스에서 시작하여 인과론적 미스터리를 탐색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내러티브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은 이미 공개된 현재 상황을 설명할 과거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순수와 완전성에 대한 상실감과 애통이 스토리의 해결책을 제공하므로 영호의 개인사는 한국 현대사와 연결되어야 한다. 가장 가혹한 장면은 기차 뒤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아름다운 전원의 풍광을 배경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부 장면에서 시간은 우울한 현악 4중주 음악과 함께 잔혹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위주의 정부와 학살, 고문, 물신주의가 어떻게 순수를 독살했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후진하는 내러티브는 순수하고 도덕적인 청년이 어떻게 회복할 수 없이 망가졌는가를 강조한다. <박하사탕>의 스토리는 혁신적 구조와 다층적인 플롯, 여러 가지 의제를 제공하는 효율성에 힘입어 추진력을 얻는다. 관객은 장면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이 영호를 어떻게 타락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창동은 한국 현대사의 요점들을 훑어가면서 공동체의 관습이 도덕성과 대립하는 방식, 개인의 행복과 성취를 추구하는 방식을 서사화한다. 보이지 않거나 말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춘 이창동의 영화 세계에서 영호는 한국 사회가 잊고 싶은 모든 것, 존재하지만 보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대표한다. 무구했던 삶에 가해진 악의적 영향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왔으나, 실패에 실망이 더해지고 절망에 낙담이 더해지면서 비극과 재앙은 잔해더미처럼 쌓였다. 시작점에서 끝나는 이 순환 구조는 대비를 분명하게 한다. 생애 초기 순진한 영호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임박한 죽음은 스토리의 시작부터 이 남자를 지켜보던 관객들을 놀라게 하면서 평범한 세계의 경험을 초월적인 높이로 끌어올린다. 물론 이와 같은 이야기 서술법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하사탕>의 서사구조는 영화의 테마를 존재론적인 단계로 밀어 올리고, 그것들을 움직이는 이미지의 시간성과 연결함으로써 창의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연결되어야만 했다. 마지막 장면은 청년 시절 영호의 사랑이 피어나는 고요하고 아름다움의 순간이다. 영호는 20년 후 목숨을 앗아갈 철로 아래에 눕는다.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내는 영호의 머리 위로 기차 소리가 웅웅댄다. 에필로그에서도 기차는 변함없이 서사의 전진 움직임을 비유한다. 프롤로그의 얼어붙은 이미지와 반향하면서 재등장한 영호의 뺨 위에서는 관객들이 이미 목격한 그의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듯이 두 줄기 눈물이 흐른다. 흡사 그는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여 우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과거 -현재 - 미래의 시간성은 영화적인 시간 조작술의 마법에 홀린 것 같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 꼬방동네 사람들 >은 1982년 5월 개봉하여 1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해 흥행 4위에 오른 1) , 배창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장호 , 1980)에서 시작하여 < 우묵배미의 사랑 >( 장선우 , 1990)에 이르는, 노동자 개념으로 포괄되지 않는 소외계층을 포착한 1980년대 영화의 계보에 놓인다. (2) 그리고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원세 , 1981), < 어둠의 자식들 >(이장호, 1981)과 함께 1980년대 초 도시 빈민을 다룬 ‘사회물’ 또는 ‘리얼리즘’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80년대 초는 시민의 피를 밟고 집권한 신군부 정권이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 동안 규제되어 왔던 컬러TV방송을 허가하고, 스포츠와 문화 육성을 표방하는 등 선심성 정책을 편 시기다. 1970년대에 텔레비전 드라마 시대가 열리면서 불황에 빠진 영화산업은 컬러TV방송으로 인해 한층 더 수심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분명히 1970년대와는 다른 시대의 기운이 저류하고 있었고, 박정희 정권기의 영화 검열 제도가 온존하는 가운데서도 영화계는 돌파구를 모색한다. 이때,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중검열 속에서, 용공 또는 외국에 보이기 부끄럽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던 ‘가난’이 적극적으로 재현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6년부터 발이 묶였다가 4년 만에 활동을 재개하게 된 이장호 감독이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어둠의 자식들>로 그러한 작업을 시작했다. 배창호는 바로 이 두 영화의 조감독이었고, <어둠의 자식들>의 원안자였던 이동철(본명 이철용)이 <꼬방동네 사람들>의 원작자이기도 했다. 1970년대 수기 붐에 이어 1980년대 초에는 도시 빈민의 삶이 그 계층 출신의 생생한 증언으로 서술되는 책이 주목을 받는다. 1980년에 이동철이 구술하고 황석영이 정리하여 출판한 『어둠의 자식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듬해에는 아예 이동철 작(作)으로 『꼬방동네 사람들』이 출간되는데 또 베스트셀러가 된다. 여세를 몰아 1982년에는 『오과부』가 출간되었고, 이는 < 과부춤 >(이장호, 1983)의 원작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그때까지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에 대중이 귀기울이고, 영화가 그것을 재현하는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당당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짧은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원작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검은 장갑」을 각색한 것이다. ‘검은 장갑’은 손에 흉터가 있어서 검은 장갑을 끼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명숙이라는 기구한 여자의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어쩌다 보니 ‘두 서방’을 갖게 된 이 여자의 사연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영화에서는 원작의 여러 일화 중 이 스토리를 전경화시켜 꼬방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후경에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 명숙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멜로드라마로 장편화했다. 명숙( 김보연 )은 십대에 김주석( 안성기 )이라는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그가 일반적인 회사원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소매치기였다. 주석은 소매치기를 하다 체포되어 구속되고 명숙은 임신한 몸으로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무고하게 수감되기도 하고,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홧김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하면서 주석의 전과가 느는 동안 명숙은 지쳐간다. 그리고 주석이 감옥에 있을 때 어린 아들을 데리고 떠난다. 그 후 꼬방동네에 자리 잡은 명숙은 강태섭( 김희라 )이라는 건달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반찬가게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출감 후에 택시운전사가 된 주석이 우연히 명숙을 발견하여 찾아온다. 그는 명숙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고 안 된다면 아들만이라도 달라고 조른다. 태섭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명숙을 가운데 둔 두 남자의 갈등이 격화한다. 결국 태섭이 과거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수하러 가는 길에 주석을 찾아가 명숙을 부탁하는 것으로 갈등은 봉합된다. 혈연과 가부장 질서에 순응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귀결되는 것은 당시 대중들이 기대하는 무난한 결말이었을 것이며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해결방식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결말이 영화에 시종일관 흐르는 민중 신학의 가르침과 맞물리며 도덕성을 확보한다. 태섭에게 살인죄를 부과하여 자수하게 하는 것이나 주석이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다. 여기에는 이미 각색자의 윤리적 판단이 전제되어 있으며 결말이 예비된다. 명숙은 주석과 재결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은 태섭의 속죄 여부다. 태섭이 끝까지 악인으로 남아 체포되어 간다고 해도 멜로드라마의 결말로서는 안 될 게 없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를 속죄케 하고 공소시효가 이틀 남은 시점에서 자수하게 만든다. 이는 마지막에 길게 삽입되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라는 공목사( 송재호 )의 설교에 맞닿는 것이다. 공목사가 설교하는 가운데 술에 절어 살던 ‘길자’( 김형자 )가 개과천선하여 흰옷을 갈아입고 나타나는 것 또한 태섭의 행동과 동궤에 놓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적 비계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빈민 계층을 연민과 계도의 관점에서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조응한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러한 낭만적인 도덕성이 눈에 띄게 부상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1960년대 초였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초였다. 전자의 경우 근대적 가부장 질서와 손잡으며 공권력의 강화로 이어졌다면, 후자에서는 민주적 저항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초 그러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화해로운 이상을 품었던 영화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이상적 가치나 도덕성이 이 영화에서 여전히 빛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의 활력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인물이 바로 명숙이다. 당시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 달리 명숙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녀는 주석이 소매치기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꿋꿋이 그를 기다린다. 그러다 옥바라지가 힘겨워지자 주석을 찾아가 사랑하지만 지쳤다며 떠나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명숙이 주석에게 이별을 통보한 날 김영동의 ‘조각배’가 깔리는 가운데 아이를 들쳐 업고 황량한 길을 걸어가는 장면은 참으로 절절하다. 그러한 정서를 유발하는 것은 우선 명숙의 신산한 처지에 기인하나, 그것이 보다 핍진한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 행동에 배어있는 주체적 배려와 진정성에 있다. 결말부에 이르면 그녀의 이러한 성격이 더욱 오롯하게 드러나며 영화의 압권을 이룬다. 그녀는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하는 주석에게 일갈한다. “정말 당신네 남자들 왜 이러는 거예요? 내 아일 가지고 무슨 권리로 당신네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라고. 그리고 태섭에 의해 남편을 잃고 ‘팔자가 꼬여’ 아비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여인에게 명숙은 반찬가게 판 돈을 내어준다. 일견 명숙이 태섭을 대신해 속죄하는 듯하지만 결코 관습적인 속죄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녀의 행동은 소외계층의 연대이자 여성의 연대로까지 의미화될 만한 결단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이 영화가 당시 다른 영화들과 변별되는 지점이다. 아울러 이 영화에 특별출연한 공옥진 씨의 역할 또한 주목을 요한다. 공옥진 씨의 춤과 노래는 사람을 모이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줌으로써 공동체의 활력을 추동한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녀는 마을의 소문을 실어 나르고 사건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드는 ‘짹짹이 아줌마’를 연기하여 영화 서사에도 활력을 부여한다. 모자라 보이고, 주책없으며, 오지랖 넓어서 갈등을 조장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은 이 영화가 재현하고자 했던 소외계층의 표상이다. 가난과 빈민이 카메라의 중심에 놓이는 일은 빈민운동이 조직화되는 1987년 이후에는 오히려 점차 사라져 간다. 서울의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성매매 업소들이 폐업되어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상업적 극영화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빈민의 모습은 아파트가 숲을 이루는 도시에서 은닉되며 대중의 눈에서 멀어져 가기도 했다. 또한 ‘민중의 시대’가 저물고 전 세계적 자본주의화로 치달으면서 대중이 ‘가난’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게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제 행정적 검열이 아닌 자본의 검열이 도시 빈민의 재현을 배제하게 된다. 이후 그들을 포착하고 문제 삼는 일은 다큐멘터리가 주로 담당해왔다. < 상계동 올림픽 >( 김동원 , 1988)부터 < 공동정범 >( 김일란 · 이혁상 , 2016)에 이르는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1) 「통계로 본 올해의 영화가」, 『동아일보』, 1982.12.15.,12면. 2) 이용철, 「꼬방동네 사람들」,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 100선』, 한국영상자료원, 2015, 138-139면. 3) 「‘꼬방동네 사람들’, 전국서점 현지조사 베스트셀러 1위」, 『경향신문』, 1981.9.24.,12면. >> 꼬방동네 사람들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