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왕별희
- 감독
- 첸 카이거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장국영, 공리, 장풍의, 리 단, 영달, 루 콰이, 리 춘, 갈우, 동제, 양 페이, 마 밍웨이, 잉 지, 레이 한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K-컬쳐와 함께 성장한 회사 덱스터스튜디오는 2012년 영화 < 미스터 고 >(김용화, 2013)의 메인 캐릭터인 대형 고릴라 제작을 위해 김용화 감독이 국내 시각특수효과(VFX) 1세대 슈퍼바이저들과 의기투합해 설립한 회사다. 덱스터스튜디오의 이름은 김용화 감독이 지은 것으로, 라틴어 ‘재주가 좋은,’ ‘기술이 좋은’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름처럼 한국에서 최고의 솜씨를 가진 회사로 만들자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인 고릴라의 수준 높은 디지털 털(fur)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프로그램 질로스(Zelos)를 자체 개발했다. <미스터 고>는 제34회 청룡영화제 기술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술상, 제19회 춘사영화상 기술상, 제8회 AFA (Asian Film Awards) 최우수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미스터 고> 제작 시 할리우드 예산보다 대폭 절감된 120억 원대로 고릴라 제작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실력을 인정받아 한국 특수효과 기업 최초로 할리우드 최고 VFX 학술 컨퍼런스 ‘DIGIPRO 2013’ 메인스트림을 장식하게 된다. 당시 픽사, 디즈니, 드림웍스, 리듬앤휴즈(< 나니아 연대기 >, < 라이프 오브 파이 > 등), 이미지 엔진(< 디스트릭트 9 >, < 왕좌의 게임 > 등), 웨타 스튜디오(< 반지의 제왕 > 등)에서 제출한 논문들을 제치고 컨퍼런스 대표 작품으로 주목받아 화제를 모았다. 덱스터스튜디오는 2024년 현재 80여 개의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덱스터 스튜디오 로비의 <미스터 고> 고릴라 모형 덱스터스튜디오의 사업 영역은 처음에는 VFX 하나로 시작해서 점점 세분화되며 다양해졌고 제작과 음향까지도 발을 넓혀왔다. 2015년 코스닥에 상장하였는데, 이는 여러 부서 및 연관 사업들로 조직이 확장해 나가는 발판이 되었다. 덱스터가 공동제작사로 참여한 영화 < 신과함께-죄와 벌 >(김용화, 2017)은 회사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만든 작품인데, 자체 VFX 기술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덱스터스튜디오가 제작도 하고 VFX 등 포스트 프로덕션도 맡는 회사라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덱스터스튜디오는 2024년 기준 본사와 자회사 6개가 연결된 그룹사이다. 현재 덱스터스튜디오의 VFX 본부에는 제작관리본부와 함께 2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있고 VFX 본부 이외에 VP본부, DI본부, 사업개발본부, 실감콘텐츠본부 등 6개의 본부와 1개의 R&D 연구소가 있다. 자회사는 총 5개로 광고회사인 ‘덱스터크레마’와 음향 회사인 ‘라이브톤,’ 제작사인 ‘덱스터픽쳐스,’ 광고 쪽 후반 작업을 담당하는 ‘테이커웨이,’ 경주의 미디어아트 사업을 맡아서 진행할 ‘플래시백그라운드 경주’ 등이다. 본사인 상암동에 320명 정도의 임직원이 있으며 있으며 광고회사까지 다 합하면 450명 정도의 인원이 일하고 있다. 덱스터스튜디오 로비와 데이터 스토리지 말하자면 VFX(특수영상, 시각효과)에 기반한 콘텐츠 기업으로 시작하여 현재 영화, VR, 뉴미디어를 망라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종합 스튜디오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실감콘텐츠, AR·VR·XR, 메타버스 등 신기술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기획부터 XR까지: 영상 콘텐츠의 모든 것 상장 이후 너무 여러 개의 회사로 쪼개져 있다는 일부 의견이 있으나, 분사한 회사는 덱스터픽쳐스 한 곳이고 나머지는 인수를 통해 자회사로 편입된 형태이다. 덱스터스튜디오가 <신과함께>와 같은 대형 작품의 제작을 함께 하며 제작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효율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분사한 경우이다. 자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보다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제작사를 분사한 반면, 직접 콘텐츠 제작 이외 전 과정을 커버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가진 회사들을 인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옥은 2012년에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가 파주 출판단지에서 4년, 이후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전한 뒤(마포구 상암동 매봉산로 75) 주 본부는 현재까지 같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자회사 중 라이브톤은 상암과 일산에 지금 2개소가 운영되고 있고, 색보정을 하는 DI본부는 상암과 일산에 배치되어 있다. 버추얼프로덕션 D1스튜디오는 파주에 있고, 덱스터크레마 광고 회사는 선릉에 있다. 덱스터스튜디오 상암 본부의 메인 공간은 18층과 19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18층은 재무실, HR실, 전략기획실, 덱스터픽쳐스, R&D실 외 기타 회의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19층의 경우, 영화 <미스터 고>의 주인공 고릴라 인형이 있는 로비 공간이 있고, 남쪽과 북쪽으로 작업 및 사무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남쪽은 파이프라인에 맞게 각 파트별로 공간이 배치돼 있다. 북쪽은 슈퍼바이저실, 제작 관리본부, 키친, 강의실, 휴게실, 대표 집무실이 있고 시사실이 가운데 크게 배치되어 있다. 18층과 1층에는 R&D 관련 장비와 포토 스캔 장비,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한 모션캡처를 받는 장비가 구비되어 있기도 하다. 덱스터스튜디오 19층 워크 플로어 현재 공동대표는 김욱 , 강종익 두 사람으로, 이들은 덱스터에 대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회사’라고 소개한 바 있다. 콘텐츠 제작에서 덱스터만이 가진 가장 큰 기술적인 장점은 모든 시스템이 회사 내부에 존재하고, 전체 작업을 관통하는 확실한 파이프라인이 있다는 점이다. 즉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프로젝트를 관리·운영하는 소프트웨어, 구성원 간 효율적인 소통을 위한 규약까지 포괄하는 시스템이 회사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기술적인 도전이 유독 많았던 영화 < 더 문 >(김용화, 2023)을 제작할 때 도움이 되었고 이후 기술적으로 진일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후반작업업체가 기획과 제작에까지 관여하다 보니 장점이 있다. 슈퍼바이저들이 후반작업뿐 아니라 기획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감독의 상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면, 그게 다시 후반으로 이어지면서 퀄리티가 올라가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단순히 크리처 하나를 더 리얼하게 만든다기보다는, 거기에 감정을 넣는 연출을 이해하고 나서 작업을 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점 덕분에 덱스터가 영화나 영상 작업 시 기획부터 참여하게 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덱스터 스튜디오 시스템 매니지먼트 벽면 드로잉 이런 덱스터의 강점은 관객들로 하여금 덱스터가 한국 장르영화나 영상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보장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인식을 주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특히 최근 VFX가 강조되는 콘텐츠의 경우에는 제작에도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사명이 나오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이름이 각인될 수밖에 없다. 2010년대 이후 복잡하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영상 콘텐츠 산업 환경 가운데에서 덱스터는 성공적으로 적응했고, 충실히 미래를 대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AI 기술의 발전은 영상산업, 특히 후반작업 분야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후반작업 기업(나아가 종합 콘텐츠 기업) 덱스터가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대응할 것인지가 향후 한국 영상콘텐츠 산업 전반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매봉산로 75 2) 설립일 : 2012년 3) 대표자 : 공동대표 김욱, 강종익 4) 규모 : 면적 19층 3,211.56㎡, 18층 3,242.51㎡ 5) 공간 구성 : DDMC 빌딩 19층, 18층, 1층으로 구성 - 19층: 슈퍼바이저실, 제작관리본부, 키친, 시사실, 강의실, 휴게실 - 18층: 덱스터피처스, 재무실, HR실, 회의실, 사업개발본부, IT인프라지원실, 전략기획실, 경영관리본부 - 1층: R&D 6) 조직도 및 조직 구성 - (주)덱스터스튜디오: 전략기획, 재무관리, HR지원, IT인프라 지원, VFX본부, 제작관리 본부, VP본부, 실감콘텐츠 본부, 사업관리 본부, 콘텐츠 본부, DI본부 - 연결종속회사: 라이브톤, 덱스터 픽처스, 덱스터크레마, 테이크이웨이, 네스트이엔티, 플래시백그라운드경주 7) 구성원 : 사원수 332명(VFX,DI,VP 265명, 실감콘텐츠·사업개발·콘텐츠 35명, 관리 32명) 8) 주요 장비 (영사 장비, 음향): 18층과 1층에 RND 관련 장비, 포토 스캔 작업용으로 카메라가 원형으로 둘러쌓인 장비, 1층에 애니메이션 작업용 모션캡처 장비 취재 일자: 2024년 8월 20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과거의 사건은 때로,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분명 그걸 그곳에 갖다놓은 누군가가 있고 또 그렇게 한 이유도 있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냥 ‘그것이 거기에 있음’이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리 듯, 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라며 그 자체를 하나의 시대성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때가 딱 아시안게임, 올림픽 겹치면서, 비디오가 보급되고, 말 그대로 80년대 초반부터 컬러 방송은 있었지만, 시각문화적으로 정권에서 “국산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를 만들어라!” 호돌이 캐릭터 만들고 그래서 완전히 애니메이션 영상이 그 이전에서 그다음으로 확! 업그레이드 되는, 예. 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이용배 , 2020, 79쪽 위 구술을 통해서도 충분히 1980년대 중후반의 한국 애니메이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정부에서 한국의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저 말들 하나하나에는 또 다른 의문들을 달 수 있다. 정부는 ‘한국의 문화’ 중에서도 왜 ‘ 애니메이션 ’의 제작을 꾀했는가? 그 직전까지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방송국에서는 어떻게 저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을 당시 MBC에서 애니메이션 연출PD를 담당했던 황선길 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1987년에 정부에서 KBS하고 MBC한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라는 권유사항이 내려온 겁니다. 근데 KBS하고 MBC는 “우리 제작비 많이 그래서, 못 하겠다.” 전부 그냥 사양했죠. 방송국은 언론기관이니까, 못 하겠다면 못 하는 거죠, 뭐 어떡해. 나라에서 어쩔 수 없죠. 근데 정부에서는 “내년이 88올림픽 대회 아니냐. 그러니까 외국에서 관객들이 와 가지고, 호텔에 묵으면서 텔레비전을 틀면 맨 노랑 머리, 빨강 머리, 그 외국 애니메이션만 나오니까, 우리 애니메이션을 해서 보게 해야 되지 않느냐 .” 이런 권유사항이 내려온 거예요.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KBS, MBC가 “그러면 한시적으로 출발하자. 내년 올림픽 때까지만 제작을 하고, 그리고 이제 끝! 안 하겠다.” 이렇게 한시적으로 출발을 한 겁니다. 그래서 갑자기 한국 TV 애니메이션이 시작이 된 거죠. 개인이 기획한 것이 아니죠. - 황선길, 2020, 76쪽 위 구술에서 정책결정자의 저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이 호텔에서 TV로 외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상황에 대한 상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다. 그는 평소 한국의 어린이들이 외국 애니메이션만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국제 행사를 앞두고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의 텔레비젼 방송을 바라보며, ‘영화나 드라마, 쇼 프로그램은 자국에서 만들어 방영을 하는데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모두 외국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 국가의 문화산업에 있어 큰 분기점이 되는 사건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상상력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도 생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은 어떻게 국내에서 수입⋅방영이 가능했을까? 분명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그중에서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1⋅2⋅3차 개방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고, 2004년 4차 개방 대상에 들어가긴 했지만,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6년에서야 전면 개방 되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수입⋅상영이 불가능했던 반면에, 왜 시리즈물은 그 이전부터도 가능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2020~2021년 진행한 ‘한국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채록’에 참여했던 45인의 구술에서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던져준 이들은 있다. 조금 지난하지만, 지금부터 하나하나 그들의 말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그들의 말이 주는 단서들 속에서 각자 그 이유를 재미있게 추리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사건의 실마리 1: <손오공의 대모험> KBS는 1970년 4월 16일부터 <손오공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아동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인 6시 30분에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무시’ 프로덕션과 ‘후지’ 텔리비전방송회사가 공동제작한 30분짜리 39편의 어린이용 천연색 만화영화를 흑백으로 방영한다. 우리나라선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일제 필름. … 비록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등장인물 중 일본 인명이나 사물 명칭의 일본어 사용 등은 문제가 있을 듯. - 《경향신문》, 1970. 4. 16. 8면 기사 당연하게도(?) <손오공의 대모험> 방영은 여러 가지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면 아이들의 동심이 ‘일본색’으로 물드는 것을 걱정하는 한편, 문공부가 한국영화제작자협회에서 추진 중이던 ‘일본영화감상회’는 허가해주지 않으면서, 정작 산하기관인 KBS에서는 버젓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어, 문공부의 일본문화 규제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또한 공영방송에서 일본(만화)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방영하게 되면, 이후 민간상업방송에서 각종 일본(만화)영화를 들여올 수 있게 되는 구실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논란의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그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낄 것이다. <손오공의 대모험> 이전에도 분명 < 황금박쥐 >(야나기다 큐지로, 1968), <요괴인간>, < 마린보이(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토미노 요시유키, 1969)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방영된 바 있는데, 위 기사는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일본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래의 기사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TBC TV의 <황금박쥐>나 <요괴인간>, MBC TV의 <마린보이> 등은 완제품이 아니고 보세가공식의 한일합작이었지만 조심스럽게 일본 작품을 도입했던 케이스들. KBS는 민방이 이미 일본만화를 방영했다는 전례를 구실로 삼고, 또한 우리의 동화산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비록 일본영화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건전한 영화를 도입하는 쪽이 어린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1970. 4. 22. 6면 기사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손오공의 대모험>은 중도 폐지되지 않고 39회차까지 방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일으킨 파장은 방송계에 한동안 영향을 미쳤다. TBC와 MBC는 미국의 애니메이션들(<우주철인 사이퍼>, <자니 게스트의 모험> 등)을 수입⋅방영했고, 심지어 < 우주소년 아톰 >(린 타로, 1963)을 미국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것처럼 소개하며 방영하기도 했다. *주1 KBS도 <손오공의 대모험>이 종영된 이후에는 프랑스의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 틴틴의 대모험 >(스테판 베르나스코니, 1991)을 방영했다. *주2 하지만 논란이 있고 1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 타이거 마스크 >(타미야 타케시, 1969), < 철인 28호 >(1963)와 같이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로부터 하청(OEM)을 받은 작품들을 합작인양 은글슬쩍 방영하는 일이 다시 반복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TBC 방송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타츠토코 거 < 독수리 5형제 >다, < 개구리 왕눈이 >다, 수입을 하는데 한국에서 수탁 가공(OEM)을 해서 한 그거를 이 회사에서 수입을 해왔다 해서 수입허가가 떨어져요. 제가 또 수입대행사가 된 거예요. … 애니메이션 영화를 갖다가 유니버설아트가 수입을 하는 것처럼 형식을 갖췄어요. 유니버설하고 상관도 없어요. 그런 서류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 정병권 , 2020, 132쪽 <손오공의 대모험>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당시 한국사회 내에 여전히 일본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이를 의식한 정부 당국의 규제 또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한국에 준 하청 작업물들을 ‘합작’ 또는 ‘보세가공품’이라는 이름으로 편법 승인을 받아 방영할 수밖에 없었다. 어레레,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런 눈치 보이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가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방영하려 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 방영주체인 방송국 의 입장을 들어보자. <독수리 5형제(과학닌자대 갓챠맨)>(토리우미 히사유키, 1972~1979)의 국내 개봉 포스터(좌)와 <개구리 왕눈이>(사사가와 히로시, 1973)의 한 장면(우). 두 작품 모두 일본 타츠노코 프로덕션 작품으로 유니버설아트 프로덕션에서 하청을 맡아 작업했다. 사건의 실마리 2: KBS⋅MBC 1980년대 초 KBS에 입사하여 영화부에서 < 우주 해적 캡틴 하록 >(린 타로, 1978), < 딱따구리 >(사이드 마커스 등 5인, 1957), < 개구쟁이 스머프 >(레이 피터슨 등 4인, 1981) 등의 해외 애니메이션 더빙 연출과, < 떠돌이 까치 >(조봉남, 1987), < 달려라 하니 >(홍상만, 이학빈, 1988) 등의 녹음 연출을 담당했던 최수형 은 1970~80년대 국내 방송국에서 미국⋅일본 애니메이션을 주로 방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80년대 초중기, 이때는 일본만화영화가 굉장히 싸게 공급 이 됐었어요. (중략) 우리한테 거부감 없이, 전 세계에 거부감 없이 배급할 수 있는 만화가 뭐였냐면, 세계명작동화’가 원작인 만화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많이 보급했는데. 우리도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압박을 받았던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은 기모노만 봐도 그때 트라우마 때문에 견디지 못하시고 텔레비전, 영화에 기모노가 나왔다 해서 전화하시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이런 거를 꼭 내보내야 되느냐구. 그러니까 그런 애니메이션은 방송사에서 소개할 수가 없었죠. 그러니까 대부분 동화나 명작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소개했었던 거 같구요. 미국과 일본의 컨텐츠가 많이 소개된 이유는 이 두 나라가 비즈니스 시스템이 참 잘돼 있어요 . 그리고 일본어나 영어에 능통한 인구도 우리나라에는 많이 있고 그러니까 비즈니스 하기에 참 편했던 환경이었고. - 최수형, 2020, 40쪽 구술자는 첫째로 일본만화영화의 수입 단가가 매우 저렴했다는 것, 둘째로 비즈니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 수입과 방영을 위한 절차들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던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방송국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시청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애니메이션도 수입하고 그랬는데, 수입을 해보면 미국 애니메이션도 있고, 유럽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틀면은, 시청률이 많은 차이가 나요 , 일본 애니메이션은. 왜냐? 미국하고 유럽 쪽엔 정서적인 차이가 있고, 근데 일본은 우리랑 가깝잖아요. 모든 게 가깝고, 스토리든 뭐든 가까우니까 일본 애니메이션이 시청률이 높은 거예요. 그래서 거의 7~80프로,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을 하죠. 특히 유럽은 너무 루즈하고, 스토리도 쳐지고 그래서 별로 유럽은 안 하고. 유럽에도 이탈리아, 프랑스 있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많이 하죠. 근데 거의 수입 안 하고, 미국 것, 디즈니 같은 건 좀 하고 그랬죠. - 황선길, 2020, 105쪽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굳이 내가 보고 있는 TV 애니메이션의 제작국가가 어딘지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묘하게 미국이나 유럽의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이션은 구분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스누피Peanuts>(1965)의 캐릭터도 좋아하고, < 컴퓨터 형사 가제트Inspector Gadget >(데이브 콕스 등 5인, 1983)나 < 핑크팬더Pink Panther Show >(게리 치니퀴, 프리츠 프레렝, 1969)도 재미있게 봤으며, 일요일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디즈니 만화동산>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번쩍 떠지고 그랬지만, 그럼에도 기억 속에서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제로 수입하고 OEM 작업을 진행했던 애니메이션 회사 의 입장을 들어볼 차례가 된 것 같다. 1983년 MBC에서 방영된 <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 >(박시옥, 1983/좌), 1987년 KBS에서 방영된 <떠돌이 까치>(우).두 작품 모두 대원동화에서 제작했다. 사건의 실마리 3: 대원동화 물론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을 진행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일본 대중문화개방 이전에도 수입과 방영이 가능했었는지를 물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음은 대원미디어의 부회장을 지낸 바 있는 안현동 과 구술 면담자의 대화이다. (면담자) 《슬램덩크》를 연재할 당시에는 일본만화 수입개방 전이었는데요, 어떻게 수입을 하게 되고 또 일본만화 개방 전이기 때문에 이름도 일본어 이름이 아니라 우리식 이름으로, ‘강백호’ 이렇게 바꿔서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과정들은 생각이 나시나요? (구술자) … 한일문화개방이 아직 안 된 시점이라도 도에이 작품 같은 경우는 우리가 얼마든지 들여와서, 개방되기 전에는 규제나 이런 게 좀 따랐지만은 … (면담자)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인데 < 은하철도 999 >(린 타로, 1977)나 그런 애니메이션, (구술자) 그건 순전히 OEM만 제작을 갖다 한 거예요. 우리가 거기 제작이 돼서 관여할 수도 없고. 그다음에 우리가 여기에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는 거고. … 일본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왜 연락이 왔냐면 우리가 수출을 하는 것도 좋지만은 이게 일본하고 이런 문제가 있는데. < 천년여왕 > (니시자와 노부타카, 1981)같은 경우는, 작품의 어떤 기본적인 컨셉이 여러 가지 일본하고,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이런. … 그래서 우리를 조사를 하겠다 그래가지고. 우리가 대사관에 가서 설명을 했죠. 그 작화하고 다 갖고 가서. 우리가 여기에 권리가 하나도 없다. 우린 단지 수출, 가공해 가지고 다시 거기 갖고, 직원들 인건비 주고 이런 거지, 여기에 대해서 없다 전혀. … 이것도 누가 이제 계통에서는 ‘대원이 일본 앞잡이 아니야?’ 이렇게 돼서 그때 한번 곤욕을 치른 적이 있고 그렇죠. (면담자) 근데 당시 말씀하신 것처럼 반일 감정도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국산 애니메이션처럼 인식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방영이 계속되었잖아요. TV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을 계속했었구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뭐였었나요? (구술자) 근데 원작이 너무 특이하고 재밌어요. 일본에 그 원작은 우리가 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다가. < 드래곤볼 >이라든가, < 슬램 덩크 > 라든가, 뭐 < 원피스 > 이런 것들은 너무 작품들이,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다 보니까 이 작품을 방송을 한다던가 하게 되면은 시청률도 높고 이러니까, 이걸 뭐 안 할 수가 없고. 그런 상황이 돼 버리는 거죠. (면담자) 그럼 정부나 심의기관이나 이런 곳에서도, (구술자) 이걸 방송하는 데 큰 하자가 없고, 문화개방 안 돼도 이 작품이 들어와서 유익하고, 뭐 시청률도 높고 이러다 보니까 한 거지. 안 그러면 이게 문제가 되면은 컷이 됐겠죠. 근데 그러진 않았어요. - 안현동, 2020, 119~121쪽 이 대화 속에는 아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본문화개방 이전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면담자와,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 구술자 간의 숨막히는 줄다리기.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치 쫓고 쫓기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구술자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해주고 있다. 대원동화는 1970년대 그 전신인 원 프로덕션 시절부터 일본의 영화회사 도에이(東映)와 전속계약을 맺고 하청을 맡았다. < 우주전함 야마토 >(마쓰모토 레이지, 1974),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같은 작품들이 그렇게 진행된 작품들인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OEM을 진행했던 작품들을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보세가공품’으로 국내에 허가를 받아 방영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일본’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동시에, 자신의 회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져 이야기가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점이 오히려 구술자가 질문의 내용과 자신이 하고 있는 답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술자가 이야기하는 <천년여왕>은 1983년 1월부터 MBC에서 방영되던 중, 같은 해 3월 전체 42회차 중 10회를 방영한 후 돌연 개편을 핑계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그 전후 사정은 다음과 같다. 방영되고 있는 어린이용 공상과학 만화영화가 대부분 일본에서 그곳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게 제작됐거나 심지어는 일본의 설화를 원전으로 삼은 것도 섞여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MBC TV는 일본 동영동화주식회사가 제작, 동영주식회사를 통해 배급한 <은하철도 999>의 방영에 이어 같은 제작⋅배급망을 거친 <천년여왕>을 지난 1월 23일부터 매주 일요일 상오8시에 내보내고 있다. (중략) <천년여왕>은 MBC가 방영에 앞서 미 유니버설 작품이라고 밝혔었고 방송심의위원회도 그렇게 알고 있다. 방송심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천년여왕> 심의 당시 유니버설 작품으로 돼있었다고 밝히고 “일본만화영화의 방영금지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일본극영화의 수입이 허락되지 않으며 한국영화에 일본 배우의 출연도 막고 있다. 그런데도 만화영화만은 예외인 듯 방송망을 타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일보》, 1983. 3. 10. 12면 기사 MBC TV는 23일 어린이 대상의 공상과학만화영화 <천년여왕>을 도중하차 시켰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이 만화영화가 일본의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일본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어서 어린이 교육 상 문제가 있다는 여론에 따라 이 프로를 도중에서 폐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후략) - 《한국일보》, 1983년 3월 24일자 12면 기사 사실 《한국일보》의 기사 이전에 이 작품이 ‘일본 작품’이라는 데에 문제를 제기한 이는 시청자였다. *주3 하지만 이 글을 쓴 시청자는 일본 작품의 방영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일본의 만화영화가 방영되면서 일본식 표현을 번역함에 있어 미흡함이 있음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기사 속 방송심의위원도 ‘일본만화영화의 방영금지규정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TV를 통해 많은 일본 작품들이 국내에 방영되고 있고 그 자체를 문제삼는 분위기는 아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천년여왕>은 일본 대사관까지 그 문제를 조사하고 나설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주4 1982년에는 제2차 한일경제협정안을 놓고 양국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득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사실이 드러나며 1983년 초까지도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 구술자가 들었다는 ‘일본 앞잡이’라는 표현도 당시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주5 다시 말해, 평소에는 일본만화영화를 가져와서 방영을 해도 눈치껏 잘 넘어가주던 방송심의위원회에서도 이렇게 외교적으로, 그리고 국민정서 상 일본문화에 대해 반감이 커지는 시기가 오면 갑작스레 방송 중단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애니메이션 하청⋅수입업자의 입장에서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사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때 하나의 문화가 산업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국가 정책에 따라 규제가 뒤따르기는 하겠지만, 경제적으로 권익을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이 기업적 규모의 인력이 투여되어야 하는 문화의 경우 산업으로 인정받고 장려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일본대중문화개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업자들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당시 정부는 미래의 먹거리로 ‘소프트 산업’을 지목하며, 제재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지원은 최대로 한다는 정책방향을 세우고,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애니메이션 종사자들도 구술을 통해 ‘실제로 김대중 정부 때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기에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되면, 일본만화 및 그와 관련된 콘텐츠를 수입⋅배급하던 회사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사업을 양지화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시기 대부분의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작품을 제작함과 동시에 일본 콘텐츠에 대한 수입⋅배급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이는 VCR이 국내 널리 보급되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아동용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여러 모로 회사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1980~90년대 대원동화에서 애니메이션 연출과 기획팀장으로 일했던 황정렬 은 1990년대 말, 일본대중문화개방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구술자) 사실은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 수입이 정식적으로, 공식적으로 돼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특히 대기업 같은 경우는 뭐 일본영화라든가 일본만화라든가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죠. 그리고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일본애니메이션이나 일본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사실 대원이 거의 유일했었어요. 70년대 말부터 대원 같은 경우는 애니메이션 OEM을 시작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라든가 그 제작사하고 연계된 캐릭터 사업을 하는 회사라든가 ‘반다이’ 같은 회사들, 그런 회사들하고 계속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해왔었기 때문에 사실 대기업이 아무리 뭐 해외지사가 있고 정보 수집 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어서는 대원을 따라갈 국내 기업은 없었다고 봐요. (중략) 문화개방을 풀려면 제일 먼저 부딪쳐서 해결해야 될 부분이 공무원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문화관광부 담당 공무원들 만나서 설득하는 작업을 저하고 회장님하고 같이 했었는데, (면담자) 그러면 정책이 나오고 나서 대원은 ‘대중문화 개방 됐으니까 수입하자’가 아니라 좀 더 발빠르게 ‘수입해야 하니까 정책을 만들자’ 이렇게, (구술자) 그렇죠. 현실적으로 일본문화가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있고 청소년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만화라든가 애니메이션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것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막는다는 게 무슨 시효가 있겠느냐, 차라리 개방을 해서 (사이) 양지로 끌어올려가지고 정말 정서적으로 저해가 되는 것들은 법으로 막고 다음에 그 수입을 자유롭게 해야 우리나라의 캐릭터 시장이라든가 애니메이션도 경쟁력이 생겨서 나중에는 오히려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니냐, 그런 논리로 계속 설득을 했죠. - 황정렬, 2020, 120~122쪽 <드래곤볼>, <슬램덩크>, < 달의 요정 세일러문 >(사토 쥰이치, 1992), < 포켓몬스터 >(유야마 쿠니하코, 1997)는 모두 대원동화(현재 대원미디어)에서 수입⋅배급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자, 여기까지가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TV에서 방영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구술자들에게 들었던 단서들이다(그리고 이보다 많은 단서들을 한국영상자료원 2층 영상도서관에 비치된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코난은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고 외치지만, 사실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은 진실의 뚜렷한 실체를 들여다 보는 것보다는 그 실체가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원래의 실체가 어떻게 생겼던 것일지를 추리하는 일에 가깝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방영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냥’이라든가, ‘심의기관에서 굳이 막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같은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반 마련이 정책결정자의 작은 상상력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처럼 구술채록문을 보며 추리와 상상을 쌓아가다 보면 또 다른 출발점이 보일지도 모르니, 다들 시도해보자! ※ 인용된 구술채록문들 김성희⋅이은솔,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22권: 안현동』, 한국영상자료원, 2021. 나호원⋅임정연,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28권: 이용배』, 한국영상자료원, 2021. 배수경⋅남기웅⋅박현선,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35권: 정병권』, 한국영상자료원, 2021. 박경진⋅현찬양⋅공영민,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2권: 최수형』, 한국영상자료원, 2021. 장유진⋅김은하⋅한솔,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4권: 황선길』, 한국영상자료원, 2021. 맹우영,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5권: 황정렬』, 한국영상자료원, 2021. *** 주1. “KBS 명화극장에 액션 사극물 <코사크>”, 《조선일보》 1970. 9. 20. 8면 기사. 이 기사에서는 <우주소년 아톰>을 미국 NBC-TV의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2. “[하일라이트] TBC TV 예그린뮤지컬 <재미있는 세상>, KBS TV 어린이 만화영화 <틴틴의 모험>”, 《경향신문》, 1971. 1. 20. 8면 기사. 주3. “[민성-독자가 만드는 조선일보]일서 수입한 TV만화 용어까지 그대로 방영”, 《조선일보》 1983. 2. 12. 8면 기사. 주4. 사실 <천년여왕>의 방영 중단을 놓고, 일본 대사관이 이를 문제 삼아 조사를 했다는 구술자의 말은 조금 의구심이 남는다. 물론 도에이에서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대사관을 통해 항의를 하고, 이를 일본 대사관이 대원동화에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일본 대사관에서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국내 기업을 조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시간이 지나며 구술자의 기억이 왜곡되어 관련 기관을 잘못 말한 것이거나, 실제로는 ‘조사’가 아닌 흔히 ‘초치’라고 표현하는 외교 상 강력한 항의를 받는 수준의 대처를 과장하여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주5.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놓고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으나,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채록연구’를 진행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을 주로 담당했던 구술자들이 들었던 비난으로 ‘친일’과 함께 자주 언급했던 표현 중 하나이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미국의 애니메이션 하청을 주로 맡았던 구술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지점 중 하나이다.
< 오월의 눈 >(Snow in Midsummer)은 말레이시아 총 킷 옹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지난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섹션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던 단편이자 말레이시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5.13 사건을 다뤘던 <장중한 무덤>(Cemetery of Courtesy)을 장편 프로젝트로 확장하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올해는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성취한 아시아 영화들이 많았던 해로 평가할 수 있는데, 특히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수상한 말레이시아 출신의 아만다 넬 유 감독의 < 호랑이 소녀 >(Tiger Stripes)와 더불어 말레이시아 신인감독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오월의 눈>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중화권 지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만금마장 영화제 두 편의 개막작 중 한 편으로 선정되었으며, 총 9개 부문 후보지명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오월의 눈>은 말레이시아와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가 공동제작으로 협업해 완성한 영화다. 말레이시아 출신이 대만으로 이주해 창작을 이어가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다. 차이밍량 감독과 호 위 딩 감독이 대표적이지만, 그 이후로도 상당수의 말레이시아 젊은 창작자나 감독지망생들이 대만으로 이주해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에는 여러 배경이 있겠으나, 아무래도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이주. 정착하면서도 여전히 중국식 문화와 언어, 생활을 유지해온 화교 문화권이라는 공통기반이 있어서 가능한 지점일 것이다. 특히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대만으로 이주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가는 라우 켁 후앗 감독은 1950년대 말레이시아 공산당 운동의 역사를 다룬 <무단 외출>(Absent without Leave)과 <오월의 눈>의 주요 소재인 말레이시아 5.13 사건을 다룬 <도끼는 잊어도 나무는 기억한다>(The Tree Remembers), 그리고 대만인과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이 충돌하자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부가 유혈진압을 자행해 3만명 가량의 희생자가 발생했던 대만 2. 28 사건을 다룬 <야생 토마토의 맛>(Taste of Wild Tomato) 등을 통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며 잊혀진 역사를 재구성하고 영화적으로 복기하는 과정을 수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가 공동제작한 <오월의 눈>은 최근 몇년간 도드라진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들의 공동협업이라는 뚜렷한 흐름을 보여주는 케이스이기도 하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베트남 출신의 팜 티엔 안 감독의 <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Inside the Yellow Cocoon Shell)은 베트남, 싱가포르, 프랑스, 스페인 등이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렸는데, 감독의 전작이자 단편인 < 정신차려 >(Stay Awake, Be Ready)가 2019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단편경쟁에서 주목 받으면서, 싱가포르 젊은 프로듀서와 의기투합해 장편 프로젝트로 개발했고, 이후 유럽에서 주요 펀딩을 받으며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밟았다. 비슷한 예시로,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지만 자국인 말레이시아에서 개봉 당시 일부 장면이 삭제되며 검열논란을 일으켰던 아만다 넬 유 감독의 <호랑이 소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독일 등 무려 8개 국가가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렸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여러 프로젝트 마켓을 통해 주목을 모았던 장편 프로젝트들이 대체로 동남아시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공동제작의 형태로 개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몇 년간 이러한 경향이 더욱 도드라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히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공동제작 프로젝트에 대만 영화기관과 펀딩이 주요 파트너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파트너십과 돌파구가 필요한 한국독립예술영화계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오월의 눈>은 1969년 5월 13일 말레이계와 중국계 이주민(주로 중국남부에서 이동해온 호키엔족)이 충돌해 유혈폭동으로 이어진 5. 1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그리고 중국계 이주민들로 연결되는 복잡다단한 말레이 반도의 역사를 단박에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화교의 숫자가 많았던 싱가포르를 억지로 독립시켰고, 그럼에도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던 중국인과 인도계에 대한 차별과 분리가 이어지던 1960년대의 말레이시아는 민족주의의 발흥과 인종 차별,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인해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폭발 직전의 인종 갈등을 촉발시킨 계기는 1969년 말레이시아 세번째 총선거 이후 3일째가 되던 5월 13일,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중국인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거리에 나서면서 이에 자극 받은 말레이계와 충돌하면서부터다. <오월의 눈>의 제목은 오랫동안 중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고전 희곡인 관한경의 『두아원(竇娥寃)』에서 왔다. 『두아원』은 하늘에 사무치는 두아의 원한, 이라는 뜻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목이 베어지는 참형을 당한 두아(영어로는 Dou E)가 처형 직전, 내가 죄가 없다면 초여름에 눈이 내리고 가뭄이 들 거라고 외치고 처형을 당했는데, 실제 그녀의 예언대로 서리가 내리고 가뭄이 들자, 조정에서 재조사에 나서 그녀를 음해한 사람들을 처형한다는 스토리를 지닌 일종의 잡극. 중국에서는 초등학교 과정에서도 소개되며 모든 연령대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자, 13세기 중국을 배경으로, 당시 지배계층의 착취와 혼란스런 정치로 인해 고통 받던 민중들의 현실과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정치극이었으며,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경우를 당하는 민중에 대한 메타포로 종종 언급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어제목으로는 『The Injustice to You E』 또는 『Snow in June』로 번역되었는데, <유월의 눈>을 차용해 <오월의 눈>으로 제목을 지은 것은 감독의 명확한 의도가 읽혀지는 지점이다. <오월의 눈>은 크게 두 챕터로 나눠진다. 첫 번째 챕터는 1969년 5월 13일, 당시 중국인 집단 거주지역에서 중국오페라 거리극 <유월의 눈> 공연을 준비하는 극단 사람들과 두 아이를 가진 중국인 부부의 하루를 따라가며 그날, 중국인 거주지역의 현장으로 관객을 데리고 간다. 두 번째 챕터는 2018년 5월 13일, 말레이시아 14번째 총선거 이후 4일째가 되는 날 시작하는데, 이 총선거를 통해 말레이시아에서는 61년 만에 최초로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1969년 5월 13일 당시, 살아남은 아 엥은 신문기사를 통해 5.13 사건 희생자들의 집단매장지로 추정되는 공동묘지터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50년만에 아빠와 동생이 묻혀있을 수도 있는 매장지를 찾는다. 영화는 크게 두 챕터로 나눠지지만, 두 개의 챕터를 연결하는 역할은 거리극 <유월의 눈>의 주인공인 “두이 Dou E”가 맡는다. 중국인 거주지역에서 거리극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의 주연배우인 두이는 첫 번째 챕터에서는 마제스틱 극장 지붕에서 유혈현장을 바라보며 위무의 노래를 부르고, 두 번째 챕터에서는 집단매장지에서 죽은 자들과 무명묘를 위해 위무의 노래를 부른다. 첫번째 챕터는 역사서에 기록된 문장에서 시작한다. “말레이 연대기 The Malay Annals”에는 “왕의 한센병은 감히 말라카 술탄에게 탄원서를 보낸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선 술탄의 발을 씻은 물을 마셔야한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기록은 말레이인과 중국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주요한 텍스트로, 그리고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주요한 영화적 상상으로 재연된다.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딸을 데리러 온 엄마는 버스를 타고 아빠 아쿠와 아들이 있는 신사로 향한다. 말을 잘 듣지 않는 아들을 위해 Datuk Gong (말레이와 중국의 신이 혼재된 형태의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행하는 부부. 아빠는 인근 마제스틱 극장 티켓 2장을 구했다며 아들과 극장으로 향하고, 엄마는 딸과 함께 거리극 <유월의 눈>을 관람한다. 당시 마제스틱 극장에는 대만영화 <부심적인 負心的人>(The Jilted)이 상영중이었는데, 상영 전 광고로 보여지는 차기 개봉작은 말레이시아 영화 <송곳니를 가진 왕>(Raja Bersiong, The King with Fangs)인데,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민담을 영화화한 것으로, 우연하게 음식에 들어간 피맛을 본 왕이 그 맛에 취해 더 많은 피를 원하게 되면서 민중들을 학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방화와 살인이 시작되고, 엄마와 딸은 극단원을 따라 무대 뒤 공간으로 숨어들지만, 외부에 소리가 들리지 않아 대피하지 못한 극장 안 사람들은 모두 살육당하고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간다. 영화의 두번째 챕터. 2018년 5월 13일. 당시 엄마와 함께 살아남은 아엥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남편의 구박에도 무기력하고 지쳐보인다. 오랫동안 아빠와 동생의 시신을 찾아 다녔지만, 그동안 엄마는 죽었고, 아무 기록도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아 엥은 무력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5. 13 사건의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집단 매장지가 재개발된다는 기사를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쿠알라룸푸르로 향한다. 당시 중국인 집단거주지역이었던 푸두 Pudu는 이제 고층빌딩이 들어선 도심으로 변했지만 마제스틱 극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서 있다. 어려서 다녔던 초등학교 옆 가게에서 차를 마시는 아엥은 옆 자리에 있던 일군의 사람들이 공연에 늦었다며 재촉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 뒤로 남아 있는 낡은 신사에는 버려진 두리안 껍질들과 쓰러진 작은 불상들이 있다. 택시를 타고 숭가이 불로에 있는 지역 집단 매장지로 향하는 아엥에게 택시기사는 이곳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이 있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도착한 아엥은 그곳에서 아까 가게에서 만났던 무리들이 무덤 주변에 공연을 위한 무대를 설치하려 하지만, 공무원으로 보이는 관리인이 말리자 포기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난 두이가 죽은 자들을 위한 위무의 노래를 부른다. 시대를 구분하여 두 개로 나눠진 영화의 구조는 완전히 다른 양식과 형식미를 보여준다. 학살의 순간, 극장 공간 안과밖에서 운명의 순간을 맞이해야 했던 한 가족의 비극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우아한 움직임과 다다미 쇼트를 연상시키는 낮은 앵글, 그리고 형식미를 강조한 미장센은 일본과 대만의 고전영화로부터 받은 영화적 유산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여러 지점에서 허샤오시엔 감독의 < 비정성시 >를 떠오르게 한다. 특히 거리극의 공연장면을 삽입하고 거리극과 현실 사건의 스토리를 교차하면서 엮어내는 방식과, 코끼리를 탄 말라카 술탄이 등장하는 장면은 기이하고 신비로운 마술적인 영화적 경험을 선사하는데, 이를 다루는 신인 답지 않은 영화적 야심과 완숙미가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2018년에서 시작하는 두 번째 챕터는 동남아시아 예술영화의 전통과 특징들이 묻어나는데,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아엥의 무료한 일상과 지근거리에 있는 신사의 존재, 그리고 산 사람인지 영혼들인지 불문명한 사람들이 등장해 도시를 지나 집단매장지에 이르는 동안, 카메라는 유령을 쫓듯 계속 흔들리고 유동하듯 움직인다.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드러나지 않는 사건의 실체. 남은 기록이라곤 증언과 기억밖에 없는 그날의 진실을 매년 5월 13일이 되면 집단매장지를 찾아와 제사를 지내는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통해 인물과 사건을 창조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빼어난 사운드로 그날의 현장을 영화적으로 복원해낸 감독의 뚝심과 용기에 찬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