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감독
- 강민지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김종수, 김슬기
어떤 시간은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통과한 시간들이 그랬다.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로는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것. 거대하고, 두렵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동시에, 달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만끽했다. 고로, 나는 특별한 목적보다는 기억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 첫여름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다. 여전히 전부 소화해낼 수 없는 감각을 안고, 순간을 돌아본다. < 첫여름 >(2025)은 여성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만들었던 졸업작품이기도 하다. 졸업작품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여자들의 이야기에 허기를 느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나의 중추이다. 나는 자라면서 여자들이, 나아가 사회의 정상성에 어긋나는 존재들이 따갑고 납작한 사회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생존하는지 보고 겪었다. 축적된 분노와 우울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갈망이 맺혔고, 그 창구가 내게는 영화였다. 자연스레, 졸업작품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는 얄밉고 이기적이었다. 우리 둘은 잠깐 동거를 했었는데 할머니는 내게 어떠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매일 마스크팩을 하시면서도 나에게 한 장을 나눠주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대학 과제로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됐다. 그녀의 연애담을 들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당신이 춤을 출 때 누구보다 신이 나고, 음악을 힘껏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남자와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자신다워지는지를 서툴게 표현하시던 얼굴이 선명하다. 삶이 바빠 할머니를 잊었다. 아코디언이 너무 갖고 싶었지만 비싸 사지 못한다고 했던 할머니를, 애인 소식을 듣지 못해 앓던 할머니를 어린 나는 그토록 쉽게 잊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49재에서 불경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카바레 음악처럼 들렸다. 고개를 드니, 넓은 대웅전 마루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이 춤을 추는 할머니가 보였다. 한동안 나는 그 장면에 사로잡혔고, 기필코 이를 영화에 담아내 갖겠다고 결심했다. ‘관객들이 노인이 아닌 한 여자와 동행했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이 다짐 하나를 손에 쥐고 <첫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대웅전 주변에 앉은 영순(허진) <첫여름> 초고는 지금의 완고와 완연히 다르다. 초고는 손녀의 시점에서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 영순을 이해하게 되는 전개였다. 심지어 삼대가 만두도 빚었었다. 학수도 살아있었다! 어찌 됐든 초고는 실화와 훨씬 가까웠고, 지금의 영화 톤보다 안정적이고 온화했다. 거칠게 쓴 초고를 학교에 들고 갔을 때, 반응이 좋아 어리둥절했다. 수많은 물음표들을 훑기도 전에 나는 졸업작품을 함께 할 학우들과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해야 했다. 곧이어 언어로는 절대 서술할 수 없는 고통, 재난 같은 고역의 시기가 찾아왔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았다. 탈고를 가져가면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초고보다 나은 고를 쓸 수가 없었다. 이동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든 환기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썼다. 동기를 따라 한답시고 스터디카페까지 도달한 나는 밤새 홀로 앉아 텅 빈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침 8시였다. 여전히 모니터도, 머리도 텅- 비어 있었다. 노트북 자판 위로 눈물이 뚝뚝 맺혔다. 그 고통은 공포였다. 나에겐 시나리오와 나를 보고 모여준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대를 꺾지 않는 연출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쓰고 결정을 내려야 다른 팀원들이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이상으로 나를 공포에 내몰았던 존재는 할머니였다. 학교 수업의 일환인 시나리오 크리틱에서 나는 단언했다. “내 졸업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팔아먹은 영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 할머니의 존재는 몸집이 점점 커지더니 나를 꾸짖었다. 너 따위가 한 사람의 존엄하고 아득한 삶을 꾸며내려고 하다니. 네게 어떤 자격이 있다고. 감히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모든 게 다 위선이고 거짓 같았다. 나는 고작 누군가의 삶을 담보 잡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해일처럼 나를 쓸고 해쳤다. 시간은 내 멱살을 잡아끌어 초고는 어느새 완고 비스름한 것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숨을 엄하게 짓눌렀다. 잡념과 눈물이 차올라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교수님을 찾아갔다. 허겁지겁 정리되지 않은 말과 추잡한 감정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교수님은 잠자코 들어주셨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불쑥 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사실 전 제가 쓴 시나리오가 너무 불편해요.” 불편한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초고의 불편함은 내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새로운 고를 써 내려갔다. 손녀 석윤이 아닌 영순이 오롯이 주인공인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드디어 사람같이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였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가뿐했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초고를 쓰며 나는 손녀의 시선으로 영순의 삶을 그렸다. 20대 여성이 보고 싶은 노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노인을 전시하고 대상화한다는 감각을, 그 숨 막히는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이야기의 출발을 배신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삶을 가볍게 다루는 순간,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 죗값은 고스란히 작가에게 돌아간다. 다음 날, 나는 할머니 영순이 주인공인 새로운 고를 A고, 손녀 석윤이 주인공인 이전 고를 B고라고 이름 붙여 팀원들에게 갔다. A고는 등장인물조차 정리가 안 된, 침 냄새가 나는 갓난아기 같았고, B고는 더 이상 돌볼 게 없는 장성한 자식 같았다. 촬영까지 딱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흔들렸다. AB고 대첩은 정확히 반반으로 파가 갈릴 정도로 팽팽했다.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라, 어느 시점에는 다 큰 자식을 독립시켜 안락하게 노후 준비나 하고 싶은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선택을 유보하고, 불확실성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발버둥 쳤다. 팀원들은 굳건히 내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안전한 길을 두고 도박을 하고 싶다는 연출자에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후회 없이 하라며 독려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A고를 택했다. 나는 할머니 영순의 마음이, 그녀의 세계가 궁금해 <첫여름>을 썼다. 태초부터 주인공은 정해져있었다. 우리 영화의 쟁점은 ‘노인’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영순은 극중 70대였다. 70대 배우를 찾아야만 했다. 세월을 연기로 속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노인 배우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확연히 제한된다. 당연하다. 노인 배우는 배우이자 노인, 즉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시간을 한정하고 노인 배우가 안전히 연기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로케이션도, 이동도 적지 않았다. 나아가, 노년기 삶을 가깝고 정직하게 담아내야 했다. 사려 깊고 섬세한 동료들, 그리고 영리한 준비와 현장이 필요했다.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지만, 연출자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일’과 같았다.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품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현장은 재난과 축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연출자는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민하게 타인을 관찰해야 한다. 나의 한계를 채워줄 귀인을 알아보아야 하고, 계속해서 도움과 소통을 청해야 한다. 나같이 느리고 서툰 연출자에게 <첫여름> 팀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행운이었다. 확신이 없어도 현장에 가고 보는 대책 없는 나의 버릇은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난도가 있는 프로덕션이었다. 맨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두들기지도 않고 무식하게 머리만 박았다. 나는 끝까지 엔딩을 정하지 못한 채 촬영을 진행했었다. 나도, 팀원들도 만족할 만한 엔딩을 쓰지 못했다. 이상했다. 첫 장면은 머릿속에서 재현될 만큼 확연했는데, 영순을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첫여름> 촬영 현장 더불어, 나는 콘티에 약한 연출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뚜렷하지만, 이를 장면화하는 일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다. 카메라나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다른 동기들보다 없었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욕심을 부린다. 나와 김시진 촬영감독은 우리 둘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절대 콘티를 그리지 않았다. <첫여름>에서는 사찰에서 영순이 춤추는 씬이 공백이었다. 콘티는 있기야 했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연출자로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일 촬영 계획표가 변동되며, 휠체어 씬과 사찰 씬을 다 소화해야 하는 날. 결국 휠체어 씬의 반 이상을 찍지 못한 채 사찰로 이동하면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사찰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찰에서의 춤 씬을 설계하고 설득할 유일한 기회는 허무하게 끝났다. 녹음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무책임한 나를 증오했다. 스태프들이 밥도 먹지 못한 채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고요하고 우아한 자연 속에 고장 난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해가 지면 사찰에 다시는 못 온다. 한복을 입고 휠체어를 직접 다 끌며 열연하셨던 허진 선생님은 지칠 대로 지쳐 계셨다. 나는 춤을 포기할까, 순간 망설였다. 그런 나 스스로가 오싹했다. 사찰에서 영순이 춤을 추는 모습 하나를 보기 위해 달려가던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찍어내야 했다. 허진 선생님 또한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감정에 대해 다른 해석들을 주셨다. 어느 지점에는 춤을 추는 감정이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아 어려워하셨다. 배우도, 콘티도, 시간도 모두 내게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찍었다. 이 씬을 찍지 않으면 이 영화는 모든 의미를 잃는다.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은 버티고, 설득하고, 성실히 시간을 붙잡는 일뿐이었다. 스스로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 중요한 씬을 왜 이런 식으로 방치했을까. 허탈했다. 그런데, 테이크를 갈수록 내가 그렸던 할머니의 얼굴이 허진 선생님 위로 살며시 드리워졌다. 선생님의 몸짓을 보고 마음에 미약한 움직임이 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49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사찰 씬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알싸한 가을 냄새가 코에 맴돌았다. 내가 만약 확신을 가지고 배우와 스태프들을 설득했었다면 그날 사찰 씬 촬영은 달라졌을 수 있겠다. 그 장면을 편집할 때마다 나는 현장의 나로 돌아갔다.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보다 겨우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뭐가 됐든 나는 동료와 배우를 설득해내지 못한 연출자였다. 자책에서 벗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확신과 솔직함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연출자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사찰 앞, 춤을 추는 영순 허진 선생님과의 작업은 연애와 같았다. 나는 프리 기간 거의 매주 부산-서울을 통근하며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갔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도 많았다. 그녀와 처음 대본 리딩을 하고 팀원들에게 긴 글을 썼다. 확신을 잘 갖지 못하는 내게 확신을 준 배우였다. 나는 분명 허진 선생님에서 우리 할머니를 보았다. 허진 선생님은 톡- 쏘는 청귤 같았다. 작고 푸른데, 시면서도 달고, 균일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 가능하고 사랑스러웠다. 새침하고 외로운 여자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셨고, 사랑하고 싶어 하셨다. 그녀는 그 시절을 버텨낸 여성들이 문신처럼 가진 흉터를 가졌다. 그게 우리 할머니를 닮아 괜스레 마음이 저렸다. 영순은 더 이상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고,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럼에도 허진 선생님과 우리 할머니가 닮은 것을 거부하지 않도록 했다. 나의 전략은 허진 선생님이 그녀 자신으로 연기해도, 영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허진과 영순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었다. 선생님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녀가 살아온 삶을 깊숙이 이해하는 일이 초짜 감독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싸우고 지치고 애정하며 관계를 쌓았다. <첫여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노인을 20대 여성이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판은 아니었다.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생애주기를 살아낸 한 여자가 되어 말을 하고, 감정을 서술해야 했다. 내 시나리오의 빈칸들은 내가 진정으로 영순의 신체와 일상을 이해할 수 없음에서 비롯됐다. 별 수를 다 써봐도 영순이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아침에는 어떤 컨디션인지, 긴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그녀에게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는 보통 컷 사인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간다. 배우는 연기를 멈추고, 다시 자신이 된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은 달랐다. 나는 5회차 촬영 내내 영순이 된 허진을, 허진이 된 영순을 봤다. 빈칸들은 허진 선생님으로 인해 메꿔졌다. 허진 선생님 손등에 난 검버섯 하나와 주름 한 겹이 꾸며낸 대사 몇 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선배는 선배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가 있었고, 나는 신이 나 그 세월을 훔쳤다. 허진 선생님의 몸짓과 숨소리는 내가 연출해낸 것이 아니다. <첫여름> 촬영 중 허진 배우와 허가영 감독 영화 속 영순의 대사, “그놈이 만져주면 동하더라.”는 원래 “그놈이 만져주면 젖어.”였다. 카바레에서 영순과 덕희( 김미향 )는 요실금으로 인해 기저귀를 주고받았었다. <첫여름>을 쓰면서 절대로 지우고 싶지 않았던 장면과 대사였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과 리딩을 한 첫날, 선생님은 바로 이 대사와 장면을 빼자고 제안하셨다. 노인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기싸움을 했고, 나는 벼랑에 매달려 애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허진 선생님의 말을 따랐다. 그만큼 허진 선생님 또한 다른 부분들을 내게 선뜻 양보해 주셨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나의 타협일 수도 있었겠다는 자책이 맴돈다. 그러나, <첫여름>은 배우에게 기대 살을 붙이는 영화였다. 치열하게 설득한 후, 기꺼이 배우를 믿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젊은 내가 노년 여성의 삶을 다루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였기에, 말투 하나, 몸의 반응 하나까지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많은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카바레를 무작정 찾아가 춤을 즐기는 분들과 가까워져 그분들을 영화의 단역으로 모시기도 했다. 카바레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까마시고 그 공간이 가진 온도와 냄새를 살갗으로 느꼈던 순간들, 그곳에서 맴도는 언어와 소문들을 훔치고, 노인들과 함께 춤췄던 순간들을 <첫여름>을 만들어가며 가장 사랑했다. 노인은 욕망하는 주체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년 여성의 욕망을 지우고, 외면하고, 혐오한다. 소위 춤바람, 노망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인들의 움직임은 분명한 역동을 가진다. 속절없이 늙어버린 신체와 삶 안에서도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여자일 수 있고, 남자일 수 있고, 결국 ‘인간’일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기대어 존재를 긍정한다. 나는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카바레에서 만난 노인들의 흘린 땀에서, 그 몸부림과 사랑에서 노인들이 만들어간 문화와 생존을 보았다. 특히, 영화 속 여성의 욕망은 종종 극단적으로 다뤄진다. 억눌리거나, 폭발하거나. 하지만 그사이에는 다양한 결이 있다. 나의 외할머니 역시 사랑을 하고, 춤을 췄지만, 동시에 고된 시집살이를 견뎠다.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에서 ‘영순’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첫여름> 편집 기간은 쉽지 않았다. 나는 원체 편집을 못한다. 속옷가게 씬 편집할 때는 손도 못 대고 벙쪄 있던 기억이 있다. <첫여름>을 사랑했기에, 현장이 눈앞에서 재생되고 후회가 몰려왔다. 지금의 <첫여름>은 처음 그렸던 <첫여름>과 닮고도 많이 달랐다. 이 영화는 더 지저분하고 사람 냄새가 그윽한 영화이길 바랐는데, 내가 더 갔어야 했는데, 밀어붙여야 했는데. 그 실망이 나를 주저앉혔다. 그러나 <첫여름>이 담아낸 영순의 얼굴은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 궤적에서 춤을 추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그 움직임은 아름답고도 인간적이라는 것. 이는 우리가 이야기로서 마주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사랑, 섹스 그리고 삶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나와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 배우들과 동료들이 굳건하고 세밀하게 만들어낸 토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진 생명을 다시 직시하고 믿으며 <첫여름>을 만들었다. 칸영화제에서 내 영화가 아주 먼 곳에서 온 관객들을 만나고, 선명히 상영되고, 수상했던 기억을 가끔 꺼내어본다. <첫여름>이 영화가 되고, 사랑을 받으며 칸국제영화제에 초청이 되면서 내 삶은 질주하듯 전복됐다. 그 변화가 생생한데도 불구하고, 그날의 감정은 거대하고 짙어 지금도 소화하는 과정에 있는 듯만 하다. 시상식 때 1등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던 순간은 특히 그렇다.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동료들 모두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러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 중에 내가 깊이 존경하는 마렌 아데(Maren Ade) 감독이 있어 벅차고 떨렸다. 영어로 더듬더듬 소감을 말한 뒤 동료들 곁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섹션 수상 현장 그저 신기했다. 칸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꿈의 무대인 만큼 눈이 부셨다. 쿠엔틴 타란티노랑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엠마 스톤을 봤다. 한편으론 영화제가 지나치게 화려해 상처받은 순간도 있었다. 종종 영화제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 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낮은 곳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모든 문화적 자본을 누리고 소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다. 영화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라 시네프 섹션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만드는 또래 감독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영화를 비교하고, 만져보고, 느끼며 신났다. 그들과 소통하며 동시대의 영화인들이 가지는 시선을 봤고 큰 자극을 얻었다. 무엇보다 기쁜 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수한 얼굴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었다. 상영 전 발표를 해야 해서 앞줄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영순의 표정과 마음을 따라가며 신나게 웃고 격하게 울어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감정을 일으키고, 우리가 공동체가 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그 귀한 감각을 만끽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관객의 얼굴을 지켜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다가와 소감을 말해주었다. <첫여름>은 그 많은 관객들 하나하나를 만나 그보다도 더 거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가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나갔다. 이 날 것의 반응들과 감정들을 지켜볼 수 있어,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연출자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노인 관객들이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을 때는, 내가 왜 창작자로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사회와 연결되고, 인간과 대화하고 싶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예술이다. 내가 그곳에서 사랑했던 진실을 잊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첫여름>과 함께 내가 자라날 수 있었다. 연출자로서 이토록 가득해 넘쳐흐르던 첫여름이었다. 허가영(영화감독) l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너를 심을 땅 >(2025), <첫여름>(2025) 연출·각본. * 촬영 현장 및 일부 스틸: 필자 본인 제공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10,000건 이상의 검열 행정자료들 중 흥미롭고 주목할만한 것들을 선별하여 영화사적 배경이나 상황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글들을 통해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는 기쁨과 아울러, 한국영화사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만희 감독만큼 검열 이슈가 많았던 감독도 드물다. <7인의 여포로> 사건 으로 한국영화 감독 중 최초로 반공법 위반혐의를 받았고 옥고까지 치렀으며, < 휴일 >(1968)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개봉조차 되지 못했다. 이 영화의 필름은 2005년, 거의 40년이 지난 후에야 대중을 만날 수 있었다. < 기적 >(1967)은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영화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거의 1년을 시달렸다. 심지어 영진공이 직접 제작한 국책영화 <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조차, 영화가 충분히 반공의 이념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당국과 갈등을 빚다 마지막 검열을 포기했다는 설까지 있다. 이 글을 통해 살펴볼 < 삼포가는 길 >(1975)은 그런 종류의 검열 이슈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종류”라는 것은 삭제, 제한, 공개 금지 등 네거티브한 규제, 즉 검열에 대해 통상적으로 가지는 인식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권장과 규제의 변증법: <삼포가는 길>의 사례가 보여주는 피검열자의 기예 그렇다면 <삼포가는 길>은 무엇이 다른가? <삼포가는 길>의 검열과 관련한 사건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영상자료원이 2021년 <삼포가는 길> 블루레이 서플먼트로 인터뷰한 동영상에서 주연배우 문숙 님은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사안은 간단하다. 하층민 세 명의 우연한 동행을 담은 이 영화가 검열의 제약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제작사가 감독에게 새마을 운동 홍보가 될 수 있는, 그러니까 당시 한국의 발전상을 담은 장면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이만희 감독은 내켜 하지 않았으나, 제작사의 간곡한 설득에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해대교를 무대로 엔딩 장면을 촬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이 장면을 넣지 않으려 했으나 그가 뜻하지 않게 영화 편집 중 별세하면서, 이후 제작사 쪽에서 이 장면을 넣었다는 내용이다. <삼포가는 길> 블루레이 출시 기념 주연배우 문숙 특별 인터뷰 "마지막 장면은 검열 때문에 들어간 거예요“ (16분 56초,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삼포가는 길>의 사례는 검열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로 우리를 이끈다. 검열하는 주체의 소망은 검열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당연하게도 검열자가 검열을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검열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검열 주체가 보기에) 바람직한 산출물만 나오는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다. 그런 세상을 실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산출물을 제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산출물을 권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아래 서류들을 살펴보자. 1970년대 검열관들은 특정 영화에 대한 검열을 시행함에 있어 검열기준(영화법 시행규칙 제9조 영화검열기준)과 함께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을 참고해야 했다. 심지어 이들은 단순히 이를 참고할 뿐 아니라 영화가 어떤 항목에 해당하는지를 표시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검열기준이 아니라, 권장방향이다. 완성품을 대상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삭제하거나 제한하는 것만이 검열이라 보는 입장에서는 이를 통상적인 검열 절차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왜 “제작권장방향”이 주어졌던 것일까. 일단 이 서류가 시나리오 검열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향후 제작될 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당대 검열이 단순히 제한과 삭제라는 부작위의 명령에 머무르지 않았음이 반증된다. 즉, 그것은 해당 영화뿐 아니라 영화 일반의 생산 주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리스트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 리스트는 궁극적으로 검열이 도달해야 할 바를 가리킨다. 1970년대 검열관들이 참고한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 <삼포가는 길>의 제작자가 두려워했던 것은 단순히 하층민의 재현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낙후된 사회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 내내 검열적 금기였다. 한국영화 감독들은 빈민촌을 비롯한 낙후된 사회의 모습을 포착하는 장면에 대한 무자비한 삭제에 대해 빈번이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실제 검열기준에 이와 관련하여 삭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은 시행규칙 2호 “적성국가(대한민국과 분쟁중인 상대방을 포함한다)를 유리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에서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모호한 부작위 명령 규정보다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에서 더 나은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기본방향 중 “1.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약진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부각시킬 수 있는 내용”, 세부방향의 “2. 영화의 소재는 가급적 고속도로, 웅장한 공장, 새로운 주택가 등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배경으로 할 것 / 3. 농촌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가급적 농업의 기계화, 새로운 농지정리 및 지하수 개발 등 밝은 농촌을 배경으로 할 것” 등이다. 이는 단순히 권장방향이 그 자체로 검열기준이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검열이라는, 흔히 생각하는 부작위의 명령에 내재하고 있는 작위의 요소들을 무의식 중에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검열자는 종국적으로 삭제를 전제한 검열기준보다 “제작권장방향”만이 남기를 바란다. 비가시성이 완벽히 가시성 속에서 지양되는 것, 그것이 검열이 최종적인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의 의지는 현실 속에서 교활한 시장 주체들과 만날 때 교란된다. 피검열자들의 기예는 검열의 본성과 의지를 시험하고, 왜곡하고, 오도한다. 그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가 <삼포가는 길>의 남해대교 씬과 같은, 권장과 제한 사이의 줄타기다. 즉 권장 요소를 포함시켜서, 제한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검열자가 원하는 것을 주면서, 검열자가 원하지 않는 것도 함께 포함하고자 하는 전략인 셈이다. 70년대 내내 검열자들은 “반공을 빙자한 폭력”, “반공을 빙자한 에로” 영화들에 넌더리를 내었다. 많은 제작자가 정책적 목표인 반공을 이용하여 폭력과 에로티시즘을 섞은 반공 아닌 반공영화들을 양산했던 것이다. “반공”이라는 정권의 제1 가치가 상업영화 제작자들로부터 조롱당했던 셈이다. <삼포가는 길> 마지막 장면(남해대교 씬)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테마 1990년대 이후 검열 이론을 전환시켰던 것은 검열이 단순히 부정적 규제가 아니라 생산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테마였다. 명백하게 푸코의 권력이론을 반영한 이 테제는 검열은 네거티브한 규제라는 인식을 전환했고, 보다 복잡한 절차와 효과들을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아직 어떤 합의된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논자마다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논의하곤 한다. 이 제한과 권장의 변증법 역시 검열의 생산성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권장과 제한의 변증법이 정책적으로 완벽하게 합일된 사례가 있다. 1980년, 영화검열을 담당하던 공연윤리위원회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검열위원들이 정부가 관장해 온 우수영화의 선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우수영화란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우수하다고 판단한(그 세부 기준은 해마다 달라졌으나, 관제적인 영화에 미학적 완성도가 가미된 기준이라 볼 수 있다) 영화에 외화수입권을 포상하는 제도였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외화수입권의 이권이 한국영화 한 편의 제작비를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보니 우수영화에 선정되기 위한 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했고, 우수영화 선정 여부는 그해 영화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리고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한국영화 제작사들을 통제했다. 말하자면 우수영화 선정 사업은 당시 한국영화 정책 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중차대한 국가적 진흥 사업의 임무가 검열기관에 주어졌던 것이다. 진흥기관인 영화진흥공사가 별도로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더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물론 그 결정은 영화인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진흥공사가 심사를 공정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검열관들이 어차피 영화를 보게 되니 그 과정에서 우수영화를 선정할 수 있으리라는 문공부의 편의주의적 발상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편의주의적 결정의 이면에는, 어쩌면 검열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꿰뚫은 무의식적 사고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공윤이라는 검열기관이 부정적인 규제뿐 아니라 능동적인 권장 사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처럼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당시 영화검열위원이자 공윤의 부위원장을 역임한 여석기는 “생산적”이라는 단어를 활용하여 이 모순을 해소하고자 시도하려 한다. 공윤이 맡아서 하는 일은 윤리규제이니까 그 자체로서 오히려 통념대로라면 규제란 뭔가 하지 말라는, 즉, 표현 내용을 자유롭게 허용하기는커녕 제한을 가하는 기능밖에는 없으니까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굳이 「생산적」이란 용어를 쓰는 이유는 윤리규제가 양질의 문화를 생산하는데 간접적 기여를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런 역할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의 창의성을 침해하는데 최소의 작용을 하는 반면에 저질화를 막는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할 때 윤리규제는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규제 그 자체는 비평 행위가 될 수 없고 대상이 되는 작품의 값을 따져야 하는 입장에 서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최소한의 「이런 것은 안된다」하는 주의 환기로서 끝나는 것이 그 본래의 기능일 것이다. 그러나 공윤이 우리사회에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 능동적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규제가 육성으로 연결되는 점이 아니겠는가. - 여석기, "새시대 공연문화와 윤리", 《공연윤리》 53호, 1981. 1. 15. (강조는 필자) 여석기는 검열이 가지는 수동적 기능 혹은 부정적 규제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검열이 한국사회에 양질의 문화를 전파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인용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공윤이 우수영화의 선정과 같은 적극적인 어떤 행위를 작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굳이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는 “비생산적”인 네거티브한 규제라 할지라도 그 자체에 충실할 때 생산적인 결과가 이어진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문장 속 “규제가 육성으로 연결되는 점”이라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되어야 하는”이 아니라, “되는”이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당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검열 규제가 육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 때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여석기는 시대를 앞질러, 검열의 궁극적 본질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겠다. *** 이 글은 필자가 발표한 두 편의 논문, 「한국영화검열사의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시론적 연구」(『한국극예술연구』 제59권, 2018)와 「〈애마부인〉이 등장하기까지: 영화 풍속 검열의 변동 요인 분석, 1979∼1982」(『영화연구』 제104호, 2025)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소피아 코폴라, 2003)는 소통을 통해 위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도쿄라는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삶의 고독 속에서 표류하는 외로운 두 미국인 남녀의 정서적 교감을 그린다. 중년 배우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오랜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연락은 그에게 공허함과 권태로움만을 안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사진작가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도쿄에 머물고 있지만, 홀로 보내는 나날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두 인물은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단절을 겪으며 심리적 고립에 빠져 있다. 영화는 초반 엘리베이터 장면부터 밥을 외부인으로 설정하는 위트 있는 연출의 묘미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 안에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 무리 사이 홀로 우뚝 솟은 밥의 대비되는 신체 비율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아무런 대사 없이 그가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걸 보여준다. 구도와 비율만으로 메시지를 센스 있게 전달하는 장면이다. 밥이 홀로 머무는 호텔방은 고독과 침묵이 가득하다. 지극히 미니멀하고 한없이 적막함이 느껴지는 온기 없는 방이다. 무기력한 밥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무심하게 정지한 상태로 여백을 많이 둔다. 배우의 체구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밥의 시선으로 보이는 일본 TV 프로그램 속 기이하고 과장된 이미지들은 그의 문화적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샬롯이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창밖 도쿄 도심은 차갑고 건조하다. 넓게 펼쳐진 도심뷰 창문 앞에 홀로 배치된 샬롯의 뒷모습 샷들은 창문 너머 세상에 대한 동경이거나 혹은 철창 같은 호텔방을 벗어나 해방을 갈망하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성 꼭대기에 갇혀 있는 고립된 공주처럼 창밖 배경과 인물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고독감은 증폭된다. 방 안에 흐트러진 옷가지와 정리되지 않은 소품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하다. 종이꽃으로나마 방 안을 꾸미려는 샬롯의 행위는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샬롯이 우연히 꽃꽂이 수업 공간에 들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꽃 한 가지를 꽂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이 장면은 비언어적 교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3 )", IMDb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샬롯의 시선으로 보이는 혼잡한 도심 풍경을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불안하게 보여준다. 건물의 파사드 광고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이미지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더더욱 낯설고 모호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홀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는 신사 또한 서양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공간일 것이다. 영화는 뜻을 알 수 없는 일본어 네온간판들이 가득한 번화한 야경 거리, 파친코 상점, 가라오케 같은, 이들에게 더욱 낯설게 다가올 공간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캐릭터의 감정적 소외를 컬러풀한 조명의 시각적 요소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언어의 청각적인 요소에 대비시킨다. 도시의 혼잡함과 인물의 고요함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들의 정적인 내면을 부각시킨다. 화려하고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도쿄라는 배경은 영리하면서 감각적인 선택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설정했더라도 이야기는 성립되었겠지만, 의사소통도 감정소통도 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상태의 이방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배경을 택한 거다.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낯선 문화 속에서의 혼란과 외로움의 정서가 배경과 어우러져 한층 더 밀도 있게 시너지를 낸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IMDb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단절된 상태였던 이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긴밀하게 느낀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대로 맺어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이제 프레임 속에서 그들은 각자 홀로가 아닌 둘이 함께 존재한다. 이들이 소통해 나가면서 서구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색하고 불편한 낯선 나라의 문화는 다른 시선으로 바뀐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유쾌하게 도시를 경험하며 즐긴다. 홀로 경험하는 도쿄는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둘이 함께 하는 도쿄는 새롭고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지치고 무기력한 눈으로 바라보던 낯선 풍경은 술에 취해 혼미한 시선으로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맞이하는 해방감과 설레임이 도쿄거리의 흐릿한 불빛들과 함께 자유로이 부유하는 듯 보인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외피를 썼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성 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모호한 플라토닉 우정에 가깝다. 한 침대에 누워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샬롯의 발에 살며시 올려놓은 밥의 손은 묘하게 에로틱하면서도 숭고함마저 깃든다. 무언의 위로와 정서적 교감이 정점으로 느껴지는 최애 장면이다. 마침내 이들은 이렇게 숭고하게 그토록 원하던 깊은 잠에 들며 평온한 밤을 맞이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이들은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서로가 외롭지도 권태롭지도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진솔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우수에 찬 마지막 시선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이들이 작별하는 엔딩의 도쿄 도심 풍경은 이전에 보여줬던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전의 도심이 화려한 간판 불빛에 눈부시고 정신 없이 번쩍였다면, 엔딩의 도심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성이다. 동시에 두 인물의 정서적 변화도 느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는 설정된 무드의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탁월하지만 침묵 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언어 대신 이미지로 말하는 느낌이다.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공허한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파이크 존즈의 < 그녀(HER) >(2013) 역시 인물의 감정선을 반영한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는데,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그 파동이 강하게 전달된다고 느꼈던 소피아 코폴라의 초기 작품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공간이 단지 보기 좋은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내러티브와 연계되어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서사의 일부로 작용할 때 미장센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런 미술을 지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친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서성경(미술감독) l 이야기에 숨결을 더하는 미장센을 지향합니다. < 사바하 >(장재현, 2018), < 가장 보통의 연애 >(김한결, 2019), < #살아있다 >(조일형, 2020),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파묘 >(장재현, 2024) 미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