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읽어주는 TV
- 감독
- 전재혁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박영화, 이상범, 이명선, 박선영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중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본 원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에 기반해 작성됐으며,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안내드립니다. * 이 글은 2024년 12월에서 2025년 12월까지의 한 무명 영화평론가의 도전기다. 다 쓰고 보니 비평에 관한 고차원적인 통찰은 없는 것 같다. 그걸 논하려면 실력적으로 좀 더 여물어야 한다. 그전에 평론가로서 생존해야만 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만난 영화들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걸어온 길은 나를 다른 관점으로 좋게 보아온 이들의 눈을 통해서 [1]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Intro 바퀴가 되던가 바퀴에 깔리던가 난 다른 차선에 세우고 깜빡이 켜놔 - 이센스, <쉬게> “보안정책에 의해 차단 되었습니다.” 2026년 상반기에 잠시 일하는 곳에서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기로 한 영화를 예매 취소하려고 로그인하니 떡하니 보였던 문구다. 차단, 배제, 초대받지 못함 등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차단은 상당히 신선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갑자기 일을 하게 돼서, 평소에 가던 평일 오후 2시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주로 하는 언론배급 시사회는 당분간 못 가게 됐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에 가기가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퇴근 후 노트북으로 영화를 파편적으로 보거나 주말을 이용해 밀린 숙제처럼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긴다. 내가 취소하려고 했던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 아마도 악마가 >(1977)였다. 손에 넣으려고 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도망간다. 영화와 잠시 멀어졌지만, 근무지에서 사람들을 대하며 오히려 영화적인 순간을 최근 체험했다.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꼭 그러면 만난다. 하나는 친했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마주쳤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신세라 친구와 담배 하나를 같이 필 수 없었다. 아쉽게 손 인사만 하고 그를 떠나보냈다. 잠시 마주친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친구와의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다른 하나는 답답해서 사무실을 나와 찬 공기를 마시는데 두 명의 영화배우가 지나갔다. 작년 《씨네21》 ‘프런트 라인’에 합류해 처음 쓴 비평이 두 배우가 나온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잘 움직였던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도로에 멈춰 선다. 그는 차 안에서 담배 하나를 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지금이 나에게 그런 시기 같다. 하는 일이 끝날 무렵, 시네필들이 안 좋아하지만 나는 애정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 오디세이 >(2026)가 아마도 용산 아이맥스관에서 시사회를 열 것이다. 놀란이 매달리는 ‘귀환’이라는 화두처럼 나는 다시 영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사회 인원수 제한에 컷 당하지 않고 무사히 입성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비평, 안녕하십니까? 글쎄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KMDb의 “비평, 안녕하십니까” 코너에 나는 언제 써보나? 영자원에 자주 가는 건 소용없다. 이들의 눈에 띄려면 어디서 놀아야 할까? 쟨 뭔데 50주년 리스트를 썼지? 왜 난… 이런저런 불만 섞인 질문들이 쏟아졌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점점 마음이 꼬여갔다. 늘 위기인 비평과 < 기생충 >(봉준호, 2019)으로 정점을 찍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은 후 급격하게 추락 중인 한국영화보다 내가 더 걱정이었다. 그곳에 기생하는 존재라 숙주가 위기일 때 가장 먼저 떠날(능동) 혹은 떨어져 나갈(수동) 이들은 누구일까? 래퍼 이센스의 <A-G-E>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와중에 버는 놈들이 타짜지.” 그런 타짜들이 부럽다. 나도 타짜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한몫 챙기는 영화평론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타짜가 되기엔 애매한 재능 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악마의 저주일까? 이런 상황에서 영화와 비평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내겐 사치다. 위기라고 상정하고 파국이 된 그곳을 사유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안전거리가 확보된 이들에게 허락된 고상한 일은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그러기엔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 간단하게 말해서 일이 없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겠는가. 영화 시장이라는 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내보이곤 있지만 매칭이 잘 이뤄지지 않는 매력적이지 않은 매물인 것이다. 비평가 자체가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대(大) 인플루언서 시대에선 더욱이 말이다. 등단 이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는데) 콩고물이 떨어지길 기대했던 것이 오산이다. 요즘은 등단 없이 혹은 등단 제도에 콧방귀를 뀌며 등장한 평론가들이 오히려 내가 원했던 그 자리에 더 빨리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를 써준 분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완성형 시네필로 등단한 케이스가 아니다 보니, 지금도 나를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시네필-평론가들이 학창 시절부터 영화에 쏟아부었던 시간만큼 나 역시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적게 잡아도 10~15년. 하지만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잡지는 싸움의 장소라기보다는 매칭 애플리케이션이 되었다. 크림처럼 실패한 비평가이자, 실패한 산문가는 오늘날에 잡지에서 그렇게 환대받는 작가는 아닐 것이다. 크림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엄숙한 비평 스타일에서 탈피, 구어적이고 생생한 언어로 비평을 썼지만, 그의 지위는 어중간한 평론가로 머물며, 독자에게 호응받지 못했다.” 강덕구 평론가가 한예종 웹진에 기고한 “ 잡지의 전성기에 관한 영원한 수다 ”란 글의 한 부분이다.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실패한 평론가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신기한 행보로 비칠 수도 있다. 근데 그 누군가는 어디에 있을까? 아예 안 되진 않는다. 뭔가 되기는 한다. 그게 저주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아닌 뒤늦게, A를 바라면 B나 C를. 확실한 건 직행 티켓은 없다는 것! 우회를 거듭하며 돌고 돌아 영화라는 왕국에 잠시 머물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감질나게 맛만 보고 말이다. 2024년이 시작하고 《씨네21》에서 주는 리뷰만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이는 차고 ‘젊은’ 시네필-평론가들이 새롭게 씬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나는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끝난 느낌을 받았다. 리부트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뭔가를 도모할 동료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내게 남은 선택지였다. 또다시 등단을 시도해야만 했고, 단편이 아닌 장편을 만들어야만 했다. 도착 지점은 다름 아닌 영화제. 여태 안 불러줬는데 내년이라고 다를까… 이런 허무함이 나를 뒤엎을 무렵, 안 불러주면 ‘내가 직접 간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오기가 작동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도 만들어서 도전해 보고 그러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래야 후회가 덜 남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영화제에서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 정도야 나도 안다. 그 천운이 내게 안 떨어지는 걸 어떡하겠나. 뭔 수를 써서라도 그 근처라도 가는 수밖에. 내가 찾은 틈새는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전. 부산영평 출신 평론가들이 부산국제영화제 크리틱b상 심사위원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 우회로. 물론 그해 공모전 주제였던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좋아해서 쓴 것은 맞지만 앞서 설명한 저 욕망이 없었다면 글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2025년. 김칫국을 드럼통째로 마시고 있었는데 연락은 없었다. 갑자기 《씨네21》의 김성훈 기자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번에 부산 내려가시죠? -안 불러줘서 못 가요. -(다 함께) 하하하 30주년 기념으로 씨네21상이 신설되면서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는 반가운 섭외 전화였다. 왜 뽑혔는지 나름 예상은 했지만, 핵심은 작년에 부산영평에서 등단했다는 것. 글을 안 썼으면 열리지 않았을 문이다. 우회에 우회. 그렇게 부산에 내려가서 12편의 영화를 보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1. <아코디언 도어>: 월경(越境)의 이미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의 한국독립영화 12편 중 씨네21상은 손경수 감독의 < 아코디언 도어 >(2025)에게 돌아갔다. 위에서 하이라이트한 부분은 모두 이 영화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우선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스크리너를 친히 내준 손경수 감독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영화제 심사 때 쓴 “CINEMA”라 적힌 노트를 다시 꺼내 봤다. 그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영화를 다시 보며 발견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아코디언 도어>에 왜 끌렸을까를 생각해 봤다. 작가(Writer’s Block) 한예종 전문사에 입학하면서부터 글 쓰는 캐릭터에 나도 모르는 새 빠졌던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 버닝 >(2018)의 종수를 시작으로 이지은 감독의 < 비밀의 언덕 >(2022)의 명은이, 그 누구도 기회를 주지 않을 때 GV 모더레이터 데뷔를 시켜준 천재 김홍기 감독의 < 익스트림 페스티벌 >(2022)의 래오, 홍상수 감독의 <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2025)의 시인 동화 그리고 <아코디언 도어>의 지수까지. 영화평론가가 다양한 활동을 한다지만 기본이 되는 것이 결국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와 비평이 내 삶에서 멀어지려고 할 때, 작가의 형상이 아른거리는 영화를 마주하면 더 눈길이 갔다. 캐릭터들의 고민이 그 시기의 나의 고민과 공명한 것도 한몫한다. 초기엔 뭘 써야 할지(<버닝>),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지(<비밀의 언덕>)를 고민했다. 그러다 최근엔 좀 더 현실적인 고민에 접어들었다. 글을 안 쓰고 있는 나의 게으름(<익스트림 페스티벌>)과 나이는 먹어가는데 평론가로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현실(<그 자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초라한 상황과 상반되게 영화제는 너무나 화려했다. 그곳에서 본 <아코디언 도어>의 한 문장이 내 가슴을 후벼팠는지 노트에 많이 적혀있었다. “어차피 평범해질 운명이었다.” <아코디언 도어>에 대한 작품 비평은 이 영화의 개봉을 고대하며 뒤로 미루고 싶다. 대신에 이 영화의 전환점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수직의 움직임을 말하고 싶다. 타임라인 상 가운데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하늘 높이 풍선을 띄운다. 소제목에도 썼듯이 <아코디언 도어>는 경계를 넘는 이미지로 넘실대는 영화다. 크게는 지구와 우주,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도달하는 이 영화는 그 사이에 낀 ‘재능’이란 녀석을 주목한다. 물에서 뭍으로 사진: " 아코디언 도어 ", 부산국제영화제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과학 괴짜 종윤이가 우주 풍선을 쏘아 올린다. 성층권 33km까지 도달한 풍선, 그곳에서 내려다본 지구. 한계에 다다랐을 때 풍선은 터지고 지구로 추락한다. 지구에선 지수( 문우진 )가 강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물에 빠진 건 이때뿐인데 <아코디언 도어>가 그리는 세계는 마치 수면 아래의 세계 같다. 영화 내내 간간이 들리는 파도 소리와 귀가 먹먹한 사운드 효과는 물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영화를 다시 감상하며 지수가 마치 물고기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태 역시 물과 관련됐다. 예를 들면 무언가에 심취(心醉)한, 몰입(沒入)한, 사랑에 빠진(fall in) 등등. 이는 모두 물과 관련된 혹은 연상되는 표현들이다. 그러한 물의 세계와 작별을 고하고 뭍으로 넘어온 지수는 대전환을 맞이한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튜브에서 보고 적어둔 글귀가 있다.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는 것은 인간이 산소통 없이 달에 간 정도의 놀라운 기적.” 물에서 건져진 이후로 지수는 키가 자라고 털이 나기 시작한다. 일종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는 육체적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능만 믿고 까불었던 지수는 새롭게 다가오는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지수는 빵을 만드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한다. 글 쓰는 것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지수는 무탈하게 지낸다. 그리고 글을 조심스럽게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거리감이었다. 매몰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글의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나오고 여러 장면이 몽타주된다. 몇몇 장면에서 감독 본인이 지수의 어른 역으로 등장한다. 그가 출연한 사실 또한 영화를 다시 보며 엔딩크레딧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나오는 그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까지의 부침(浮沈)의 시간이 느껴졌다. <아코디언 도어>는 감독 자신을 영화에 각인시킨 에세이적인 면모를 지닌 흥미로운 픽션이다. 영화제에서 볼 때는 몰랐지만 해가 바뀌고 지수와 엇비슷한 상황에 놓여 영화와 잠시 멀어진 상태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묘했다. <아코디언 도어>는 내게 미래의 한 조각을 미리 보여준 셈이었다. 물 안에서 지수가 봤던 익사한 남자는 최악의 경우 나의 자화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아찔했다. 내시현상(內視現象) - 내 눈에만 보이는 벌레 사진: " 아코디언 도어 ", 부산국제영화제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재능이란 기생충을 CG로 선보이는 방식보다 지수의 시점 숏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놀라웠다. 영화제 때는 발견조차 못했던 장면이다. 그 장면은 지수가 잠에서 깰 때 등장한다. 무언가가 내 눈에만 보이는 내시현상, 의학 용어로 비문증(飛蚊症)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기생충이 지수의 신체 내부에 있는 실체인지 아니면 환영인지는 알 수 없다. 둘 중 어느 쪽으로도 환원시키고 싶지 않다. 그 두 개의 영역이 중첩된 숏이라 말하고 싶다. 기생충이 지수의 눈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낼 때의 조건이 흥미롭다. 무매개적인 조건이 아니라 빛과 커튼이 필요하다. 잠에서 깬 지수가 빛을 머금은 커튼을 바라볼 때 기생충의 모습이 잠시 등장한다. 영화의 영사 원리가 떠오르기도 한 장면이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와 달리 기생충은 지수 눈에만 보인다. 기생충이 몸에서 빠져나간 이후에 지수의 시점 숏이 같은 조건에서 다시 등장한다. 더 이상 지수에게 기생충이 떠다니는 불투명한 필터는 없다. 맨눈이 된다는 것의 두려움. 지수는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아물지 않은 어떤 상처가 이제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에도 지수의 시점 숏이 나온다. 이 영화의 엔딩은 여전히 내게 미궁으로 남아있다. 지수의 흐느낌, 멈춰버린 그의 몸, 시끄러운 기계음. 밀폐된 공간 속에서 시청각적으로 구성된 이 감각적인 엔딩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장에 비평의 언어로 재단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몽타주하고 싶은 것은 현재 지수의 멈춘 뒷모습과 그가 다시 쓰기 시작한 글에서 표현했던 미래의 자신의 뒷모습이다. <아코디언 도어>는 두 뒷모습 사이의 간극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2.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수인(囚人)의 이미지 두 뒷모습은 현실과 픽션의 간극처럼도 보인다. 현실은 잠시 멈춰있지만, 미래에는 좀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써 내려간 희망의 픽션. 나 역시 현실의 고민을 픽션에 투영해 바라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기사 한 줄 없이 주목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영화제에 흔적은 남긴 지옥의 영화 <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2025)이다. 이것은 희망의 픽션은 아니다. 무언가를 내려놓지를 못하는 나를 산 정상에 올려다 놓고 장대비를 맞게 한다. 절벽 끝으로 몰아붙이는 느낌으로 말이다. 계속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하산할 것인지. 질 들뢰즈가 말하는 ‘사유’가 영화의 끝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내리는 비라는 사건은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것과의 우발적인 마주침” [2] 이다. 원래 엔딩은 “CINEMA”라 적힌 노트를 봉수대에 넣고 태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뻔해 보였다. 찬물을 끼얹고 싶었다. 그래서 빗소리를 붙여봤다. 썩 마음에 들었다. 기껏 노력해서 무언가를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는 느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제에 가기 위해 200자 원고지 50매 이상을 썼다. 이번엔 장편 분량의 에세이 영화를 만들었다. 어떤 평론가가 이럴까 싶지만, 방법이 그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감독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없다. 평론가로서 나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을 뿐이다. 그게 과연 통했을까? 프랑수아 트뤼포의 명언이라고 잘못 알려진 ‘시네필 3법칙’을 등단한 이후에 몸소 실천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 비평을 쓰고, 직접 영화를 만들기.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영화와 좀 더 멀어진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중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부산 무사이극장에서 당연히 만들면서도 알았고, 실제도 다 만들고 나서는 더욱 더 난감했다. 이걸 받아 줄 만한 영화제가 있을까? 어느 영화제에 붙여놔도 안 어울렸지만 그냥 일단 다 출품해 봤다. 그래도 받아 줄 만한 곳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였다. 당연히 떨어졌다. 그것에 낙담한 적은 없다. 떨어질 만한 영화기 때문이다. 서울독립영화제 빼곤 남은 카드가 없었다.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떨어진 것 같았다. 때마침 부산의 김영광 평론가가 운영하는 1인 시네클럽 ‘시네마 언노운’에서 상영작 공모가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에서 홍보 게시물을 보자마자 바로 보냈다. 그렇게 다시 부산에 가게 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이 끝나고 바로 다음 주 화요일인 9월 30일에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게 된 것이다. 부산 무사이극장에서 진행된 상영회에서 김영광 평론가는 3시간에 육박하는 GV를 진행했다. 그는 ‘뉴웨이브’가 올 것 같냐고 물었다. 그것은 초청된 모든 감독에게 물어본 공통 질문이었다. 그때는 이걸 왜 물어보나 싶었다.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는 3월 7일에 열리는 ‘뉴웨이브 전초전’이란 대규모 행사를 그때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당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당분간 뉴웨이브는 안 올 것 같다. 지금은 기획자를 원하는 것 같다. 저런 거(<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만들지 말고, 영화를 틀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네마토그래프의 ‘이윤영’ 씨가 지금 스타다. 비평계에선 ‘김병규’ 평론가가 스타고 그 이후엔 없다. 등단하고 나서야 안 것이지만 이미 학창 시절부터 시네필이고 파워블로거고 그 집단을 끌고 들어왔다는 점, 다시 말해 인터넷 인간들을 우군으로 끌고 왔기에 리더다. 밑도 끝도 없이 온 나의 경우는 지지기반이 아예 없는 거고… 지역 기반이 있거나 혹은 업계 사람들을 많이 알아서 일을 따가고 잘 나가도, 그처럼 아이콘은 될 수가 없다. 래퍼 더 콰이엇의 명언이 이곳에도 적용된다. “스타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시대가 원해서 나타나는 것에 더 가깝다. 근데 스타가 안 나온다는 것은 그걸 안 원한다는 거예요. 이 시대가… 근데 때가 되면 나타날 겁니다.” 비평이라면 그것을 소비하는 블로그, 커뮤니티, SNS 사용자를 끌고 와야 하는 것인데, 다음은 어떤 매체일까? 비평을 담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 블로그가 아니었을까. 혼자서는 버겁다. 잘난 사람들도 뭉치는 판이다. 아이돌 그룹처럼 모여서 팀으로 활동한다. 소리그림, 키니마 등등. 현장에선 얼추 비슷하게 말했던 것 같고 상영 이후에 정리한 말들이다. 평론가의 역할이 좀 더 확대되고 있었다. 나 역시 상영 기획을 해야 하나, 영화를 수입/배급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의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것은 감독이 아니라 프로그래머나 수입/배급업자가 아닐까? 활황인 관객 프로그래머와 시네클럽들. 프로그래밍의 외주화. 영화제와 영화관은 이들과 손을 잡고 ‘멋(hip)’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이를 통해 기획, 상영, 비평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융합형 인재가 양성되고 있었다. 새로운 종의 출현인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잠복기를 거쳐 다시 부상한지도 모르겠다. [3] ) 나는 단종된 이전 모델의 길을 걷고 있는 퇴화하는 평론가의 종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러한 압력은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어떤 영화를 어떻게 쓸 건지보다는 어떻게 상영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생존에 유리해졌다. 글도 잘 못 쓰는데 시장에선 그런 사람들을 더 반기니 말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선 이러한 시류를 반영이라도 하듯 ‘클럽 시네마’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소리그림과 키니마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참여해 시네토크를 했다. 여태 이 글을 읽었거나 혹은 영화제를 간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는 해당 영화제에 영화로도, 평론가로도 초대받아 일해 본 적이 아쉽게도 없다. 작가로서의 평론가만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게 됐다. 과감하게 집어던지고 건너편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비평은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 된 것은 아닐까?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나는 그 스킬을 익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은 영화를 보러온 동지들(김영광, 강원우 평론가, 마산영화구락부의 김준희)과 화명역 근처에서 새벽까지 소주 먹고 대단원의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마지막 남은 한 발이 먹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식 발표 하루 전날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다.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부문에 선정됐다는 전화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영화로 영화쓰기” 중 섹션 “오진우 단편선”(상영작 중략) 그전에 7월 15일에 “오진우 단편선”이란 제목으로 그간 만든 영상들을 틀 기회가 있었다. 다른 평론가들이 상영 기획으로 저변을 확대하며 예비 프로그래머로 성장할 때, 나는 영상을 만들어왔다. “ 영화로 영화쓰기 ”라는 프로그램 안에서 내 영상들이 가장 이질적이었다. 다른 상영작들과 어울릴 수 없는, 그래서 단독으로 꾸려졌을 것이다. 특색이 있다지만 일종의 갈라파고스. 나도 다른 창작자들과 교류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도마 위의 생선이 되겠다는 것이다. 평론가와 프로그래머는 칼을 들고 도마 위의 영화라는 생선을 바라본다. 일종의 게이트 키퍼로서 영화를 선별한다. 나도 그렇게 남의 영화를 바라보고 싶었는데 스스로 생선이 되었다. 비평의 세계에서 영화 창작의 세계로. <아코디언 도어>의 지수처럼 나 또한 물고기 같았다. 지수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했다. 나는 이것이 진화인지 아니면 퇴화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후자에 마음이 쏠린다. 애초에 내가 평론가로서 잘 풀렸다면 영화까지 만들었을까? 아닐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타입의 영화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계속해서 비평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비평을 놓아버리고 건너편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미련하게…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KMDb에 이렇게 글을 쓰기 전에 웹진 아카이뷰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또한 우회. 그 글 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비디오 에세이와 에세이 영화는 내게 고치지 못한 습관 혹은 만성적인 질환처럼 남게 됐다. 이 증상으로서의 시네마 를 발견해 준 담당 프로그래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 향후 미래에 다시 누군가가 이 분야를 디깅했을 때 재발견되어 한국 영화비평사의 B-Side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까지, 설령 그날이 안 와도 영화로 가는 길을 계속 걷는 수밖에 없다.” “오진우 단편선”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나를 최초로 발견한 은인 황민진 프로그래머님의 제안 덕분에 성사된 일이다. 좀 더 강단 있고 잘나가고 예술적인 평론가였다면 행사의 흥행을 위해서 고사를 했을 텐데, 아쉽게도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보통 일이 들어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네, 가능합니다.” 황민진 프로그래머가 쓴 노트를 살펴보자.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비디오 에세이,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뮤직비디오를 아우르는 오진우 감독/평론가의 작업은 단일한 규정으로는 묶이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저 모든 걸 안 하고 있기도 하다. 정확히는 못한다. 저 장르로 나아가 아예 감독이 돼서 뭘 만들 줄을 모른다. 자본화되지 않는 기술력인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감독을 꿈꾼 것도 아니고, 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제작 워크숍을 경험한 적도 없다. 평론가로서 다급해져서 만든 성과일 뿐이다. 내 영상은 그간 본 것들의 총합이다. 다양한 것들을 가져와서 믹스하는 것이다. 황민진 프로그래머가 분석한 나의 작업의 특성은 유운성 평론가가 정의한 ‘에세이 영화’의 형식과 공명한다. 유운성 평론가는 에세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에세이란 고전적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부정하는 대안적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포괄하고 자신의 특수한 사례들로 만드는 보편적 형식이다.” [4] 에세이에 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실제로 에세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와닿는 정의가 바로 저 문장이다. < 영상자료원 가는 길 >(2022)과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저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오진우 단편선”을 본 몇 안 되는 관객 중 유운성 평론가님이 계셨고 유일무이하게 리뷰를 남겨주셨다. 글의 일부분을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상) <영상자료원 가는 길> / (하)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 “ MUBI ”, 유튜브 “(…) 최근작인 <홍상수: 중력과 은총>(2025)은 비평적 몽상의 발걸음이 홍상수 영화를 일렁이게 하는 은밀한 저류와 짜릿하게 만나면서 그것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만, 이전 작업들에서 두드러졌던 ‘캐릭터로서의 비평가’는 여기서 훨씬 은근한 형상으로, 수줍은 자취로만 감지된다.” 바로 직전 작업인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에서 ‘캐릭터로서의 비평가’를 전면에 내세워서 반작용이 있었던 걸까? 하긴 이 영화에서도 내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이 영화 또한 직접 보러 와주신 유운성 평론가님은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이 직접 출연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는 숨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라지고 싶었던 것일까. 어디로부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상자료원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도 영화제 맛을 본 작품이다. 여기에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라는 비디오 에세이는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 후 MUBI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됐다. 나름 괄목할 만한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아시다시피 기사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은 부산을 찍고 서울에 입성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내가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서울독립영화제의 자랑인 ‘독립영화 매칭 프로젝트: 넥스트링크’란 프로그램이 있다. 보통의 영화들은 개봉이 목표다. 서독제의 넥스트링크는 배급사와의 미팅을 주선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상영작 중 배급사 미정인 작품이 이 프로그램의 자격 조건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조건을 갖췄으나 (양심적으로) 개봉이나 배급사를 둘 정도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이 영화가 내가 바라는 다음 스텝을 위한 땔감이 되길 희망했다. 마침 그런 장면이 이미 영화 안에 있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은 감독의 자리. 내가 바라고 원했던 자리는 평론가의 자리인 모더레이터가 앉은 저 자리. 장편 분량의 영화를 만들고 고작 바라는 게 그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장은 그렇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여기서 일단 마무리가 됐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영화제 측에 나를 처음으로 알렸다.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를 말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영화만 틀고 끝날 수도 있다. 개막식 때로 시간을 돌려보자. 개막작 < 무관한 당신들에게 >(2025)를 기획한 문주화 평론가님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일은 저렇게 보는 거다.” 지난 1년간 내가 걸었던 길이 구태(舊態)라고 느껴졌다. 그녀는 최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발탁됐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관객석으로 그리고 엉뚱한 사무실로 점점 영화와 멀어졌다. Outro 이것이 나의 지난 1년 간의 이야기다. 손경수 감독이 쓴 <아코디언 도어>의 연출 의도가 떠오른다.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계속할 수 있다는 단순한 답은 계절처럼 한 템포 늦게 찾아왔다.” 비록 잘한 적도 없지만 좋아해서 계속할 수 있다는 단순한 답은 아직 내게 도착하지 않았다. 올해는 어떻게 될까? 그 사이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됐다. 영화에 대한 사랑보단 돈… 거짓말이라도 돈 말고 영화를 사랑한다고 외쳤어야 했다. 모든 것이 내가 자초한 일이기에 별다른 변명도 할 수 없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영상자료원 로그인 차단은 해제되었다. 차단 해제 이후 영상자료원에서 처음 본 영화는 오구리 코헤이의 < 진흙강 >(1981)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명작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진흙강>은 인물들 간의 거리감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우동집 아들 노부오는 창문을 통해 강 건너편에 정박한 배 한 척을 본다. 그것은 그에게 신기한 매혹의 세계였고, 잔혹한 진실의 세계였다. 비가 퍼붓는 날 다리 위에서 노부오는 배에 사는 키이치를 만나 친구가 된다. 배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하나는 남매의 방으로,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방으로. 배는 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됐지만,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세계였다. 들어도 못 들은 척 고통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세계 속에서 남매는 살아간다.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식사 장면이다. 키이치와 그의 누이 긴코는 우동집에 초대를 받아 밥 한 끼를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긴코가 즐겁게 노는 동생을 쳐다보는 장면이 있다. 그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잠시 누린 이 행복이 내 것 같지 않은 느낌. 다른 하나는 마지막 장면이다. 진실을 목격한 노부오는 남매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다음 날 배가 떠나기 시작한다. 노부오는 강을 따라 배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는 연신 친구 키이치를 불러보지만, 배는 무심하게 아무 말 없이 떠난다. <진흙강> 중 / 사진: <진흙강> 중 (“ Doro no kawa ”, IMDb) * 지난 여름과 겨울에 제 영화를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 감독님들, 평론가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영화제 이후 자신의 영화를 내어준 < 관찰자의 일지 >(2025)의 임정환 감독님과 < 겨울날들 >(2025)의 최승우 감독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글을 쓰지 않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볼 수 없었던 길이기에 그저 꿈만 같다. “영원히 꿈을 꾸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 이제 꿈에서 깰 시간. *** [1] 배우 권해효의 멘트를 문장에 맞게 변형해서 사용했다.( 링크 ) [2] 질 들뢰즈, 김상환 옮김, 『차이와 반복』, 민음사, 2004, 313쪽. [3] 한국영상자료원의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가 다른 시네필들이 만났다.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읽히는 “영화서클”은 지금 활황인 시네클럽의 부상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전 세대의 시네클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추적하는 고고학적인 방식의 프로그램 같다. [4] 유운성 평론가는 장 뤽 고다르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 인디아 >(1959)에 대해 남긴 짧은 글로부터 ‘에세이’라는 형식을 다음과 같이 도출한다.(유운성, 『유령과 파수꾼들』, 미디어버스, 2018, 310쪽.) [5] <관찰자의 일지>에 나오는 대사다. 영문 자막이 흥미롭다. “… Dreams can’t last forever … is the theme.” 비평, 안녕하십니까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오진우(영화평론가) l 2020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데뷔했다. 이후 2021년 한국독립영화협회, 2024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전에서도 수상한 바 있다. 에세이 영화 <영상자료원 가는 길>(2022),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2025)과 비디오 에세이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2025)를 만들었다.
사진: “ Sinners ”, IMDb 뱀파이어물과 좀비물을 좋아한다. 전염과 변형이라는 설정은 때로 경계와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날카롭게 벼리는 은유가 된다. 그 속에서 공동체의 무의식이나 내가 지닌 두려움의 근원을 마주하는 일은 늘 일말의 고통을 동반한 쾌감을 준다. 2025년 봄 개봉한 라이언 쿠글러 연출의 < 씨너스: 죄인들 >은 이러한 장르적 가능성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갱신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 뱀파이어물이면서 동시에 음악영화이고, 인종차별을 다루는 정치적 블랙 호러이자 한편으로는 종교와 구원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1932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델타를 배경으로 한다. 노예 해방 이후에도 수많은 흑인이 소작농으로 농장에 묶인 채 가난과 차별 속에 살아갔다. 일부는 사소한 죄목으로 체포되어 강제노역에 내몰렸다. 박해받는 삶 속에서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길 위에 나선 흑인 음악가들이 델타 블루스를 탄생시킨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사진: “ Sinners ”, IMDb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은 시카고에서 갱스터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델타로 돌아온다. 낡은 제재소를 개조해 클럽을 열고, 블루스 뮤지션을 꿈꾸는 사촌 새미와 함께 개업 첫날 밤을 준비하며 새 삶을 그린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흑인들만의 진정한 문화 공동체다. 그러나 새미의 블루스 선율이 울려 퍼지자 어둠의 불청객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클럽 문 앞에 선 세 명의 백인 뱀파이어는 입장을 허락해 달라고 청한다. 자신들도 뮤지션이라며 “불쌍한 울새의 살을 깨끗이 발라먹었지(Pick Poor Robin Clean)”라는 가사의 다소 섬뜩한 노래를 아일랜드 포크 풍으로 연주한다. 능숙하고 경쾌한 연주는 순식간에 좌중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본래 이 곡은 1927년 블루스 뮤지션 루크 조던이 발표한 노래다. 흑인 문화가 백인 사회에서 전유되고 소비되어 온 기나긴 역사가 압축적으로 포착되는 장면이다. 사진: “Sinners( 1 , 2 )”, IMDb 세 백인은 뱀파이어가 되어 뭉쳤지만 다른 백인성의 층위를 드러낸다. 아일랜드인으로 설정된 레믹은 대기근과 식민 지배, 종교적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의 후손이다. 그는 수백 년 전 침략자에게 동화된 피해자이자 문화적 흡혈을 욕망하는 새로운 침탈자다. KKK단원 조안과 버트 부부는 도덕적 타락을 멸시하며 타자를 배제해 온 미국 사회 내부의 폭력성을 상징한다. 그들은 금화를 탐내다 레믹에게 물려 뱀파이어가 되었다. 흑백 대립 바깥에 위치한 인물들에게도 각자의 역사가 있다. 스택과 사랑하는 사이였던 메리는 백인의 얼굴을 가졌지만 흑인 가족 사이에서 자라 흑인처럼 말한다. 피부색과 문화적 정체성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마을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중국계 미국인 부부 보와 그레이스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인과 흑인에게 따로 물건을 팔며 생계를 유지한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 위에 머무는 아시아인의 위치를 드러낸다. 땅의 ‘원주민’으로서 침탈과 학살을 가장 오래 겪어온 촉토인들은 이 모든 갈등 이전에 이미 추방된 공동체가 있었음을 환기하는 존재다. <씨너스: 죄인들>이 그리는 인종 갈등에는 이렇듯 서로 다른 상처의 시간이 혼재돼 있다. 영화 바깥에도 이 구조를 암시하는 시각적 장치가 있다. 개봉과 함께 공개된 십여 종의 인물 포스터다.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등장인물 모두의 얼굴을 개별 이미지로 제작한 방식은, 단 하나의 영웅 서사가 아니라 경계인들의 초상을 나란히 놓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진: “Sinners”, IMDb 선악의 구도 역시 단순하지만은 않다. 쌍둥이 형제는 시카고에서 이탈리아 마피아의 와인과 아일랜드 갱단의 맥주를 훔쳐 왔다. 클럽을 여는 데 사용한 자본 또한 폭력과 약탈의 결과다. 젊은 시절 그들이 인종차별만큼이나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으리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친부 살해 소문으로 형제는 이미 고향에서 악명을 얻은 인물들이다. ‘죄인들’이라는 제목은 일차적으로 이들을 가리키는 듯 보인다.) 라이언 쿠글러는 흑인이 겪어온 고통의 역사를 조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모든 존재가 서로 얽힌 폭력의 계보 위에 서 있음을 끊임없이 암시한다. 영화는 묻는다. 죄인은 누구인가. 하지만 포스터에 찍힌 문구(We Are All Sinners)가 일러주듯, 죄를 귀속시킬 대상은 쉽게 단정되지 않는다. 이 질문을 가장 노골적으로 입에 올리는 인물이 뱀파이어의 수장인 레믹이다. 레믹은 평등과 하나 됨을 외치며 흡혈을 통한 영생의 길을 약속한다. 처음에는 “강요된 종교”였던 기독교를 향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곱씹을수록 입맛이 쓰다. 인간이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은 살아생전에는 불가능하며, 죽어서야 비로소 모두가 동등해질 수 있다는 역설이기 때문이다. 인간 무리와 뱀파이어 무리의 대결은 러닝타임 한 시간을 훌쩍 넘긴 뒤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파국으로 치닫는 이 격투는 분명 <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즈, 1996)를 연상시키는 폭발적인 액션이지만,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덜 중요한 대목일지도 모른다. 장르적 환상은 언제나 현실에 실재했던 고통을 조금 더 견딜 만한 이야기로 바꿔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튿날 아침 무장한 채 트럭을 몰고 클럽 앞에 나타난 KKK단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 편의 극영화가 연출한 클라이맥스의 뒷면을 슬쩍 엿볼 수 있다. 뱀파이어와 치고받고 싸우다 죽는 이야기는 두건을 뒤집어쓴 인간들에게 무차별 총살을 당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받아들이기 쉽다. 모든 초현실적 서사가 그렇듯, 흡혈귀와 인간의 하룻밤 소동 역시 잔혹한 현실을 뒤집어 각색한 이야기일 따름인 것이다. 사진: “ Sinners ”, IMDb 이 영화에서 블루스는 소재나 배경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시공간을 흔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뮤지션의 업보를 짊어진 사람은 생과 사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과거와 미래의 영혼을 불러내는 중재자로 묘사된다. 그 정점은 개업 무대에서 새미의 블루스 선율에 맞춰 클럽 안의 모든 사람이 몸을 들썩이기 시작하는 롱테이크 시퀀스다. 블루스와 힙합, 중국 경극과 발레, 로큰롤과 디제잉이 하나의 공간에 포개지고, 서로 다른 시대의 몸들이 같은 박동 위에 놓인다. <씨너스: 죄인들>은 두 가지 화면비로 촬영되었다. 가로로 긴 2.76:1 비율로 상영되다가 특정 구간에서 1.43:1 아이맥스 GT 화면으로 확장된다. 클럽 롱테이크 시퀀스에서 이 전환은 특별히 압도적인 몰입감을 준다. 그것은 시각적 스펙터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눈앞의 스크린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시간 속에서 구축해 온 문화와 역사의 총합처럼 느껴진다. 프레임은 이미 지나간 것과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을 포함하는 장소가 된다. 영화가 타인들과 함께 꾸는 집단적 꿈이며, 역사라는 무의식의 망막에 잠시 맺혔다가 사라지는 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극장에서의 공동체적 경험을 여전히 믿는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씨너스: 죄인들>은 나의 신체가 극장이라는 어둠 속에 타자들과 함께 놓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감각을 오랜만에 경험하게 해주었다. 이 짜릿한 영화적 경험이 소수의 극장에서만 가능하다는 아이러니를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사진: “Sinners( 1 , 2 )”, IMDb 이 이야기가 흑인의 삶에 대한 헌사로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는 피바람 부는 밤이 시작되기 전의 ‘좋았던 시간’에 타임라인을 할애하지 않는다. 개업을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이 클럽 내부를 고치고 음식을 만들며 웃고 떠들던 낮의 시간은 의도적으로 생략된다. 결말에 이르러 스모크의 회상 속에서 몽타주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중요하게 남겨지는 것은 선택의 순간들이다. 기타를 내려놓고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요구 앞에서 새미는 음악의 길을 택한다.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새미 앞에 뱀파이어가 나타나 영생을 제안할 때도 그는 거절한다. 영원히 노래하는 저주 대신 삶이라는 박해를 끝낼 자유를 택한다. 영화는 다시 묻는다. 블루스는, 나아가 예술은, 죄인가. 아니면 구원인가. 음악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평등도 해방도, 영원한 평화도. 다만 이 폭력적이고 상처투성이인 세계에서 잠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며 불온하고도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스크린이 이따금 그러는 것처럼. 김영글(미술작가) l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과 출판을 아우르며 활동한다. 『아무튼, 야구』(2025), 『남의 노래』(2024), 『사로잡힌 돌』(2024), 『노아와 슈바르츠와 쿠로와 현』(2021) 등의 책을 썼고, 주요 영상 작업으로 < 파란 나라 >(2019), <해마 찾기>(2016)가 있다.
<소년시절의 너> 중 / 사진: Far East Film Festival 대만, 중국, 홍콩을 아우르는 동시대 중화권 청춘영화는 어딘가 안전한 자리로 호출되곤 한다. 이는 가볍고 말랑한 감정의 외피를 두른 ‘틴 로맨스’나 ‘학원물’이 지배적인 인상으로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과 방 한 칸을 배경으로 한 ‘도시 로맨스’, 혹은 성적 지향이나 계급적 주류 범주에서 벗어나는 ‘아웃사이더’의 지난한 성장 서사 또한 그 반경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거짓 없는 미소와 서툰 고백에서 길어 올린 풋풋한 청춘의 초상과, 체제와 현실의 제약 속에서 너무 이르게 마모되어 버린 성장의 잔혹한 기록. 두 계열은 서로 다른 미학과 정서를 지닌 채 엇갈린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의 희미한 슬픔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교차하고 중첩된다. 우리가 중화권 청춘영화로 부르는 범주는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이 영화들은 어떻게 하여 이토록 ‘범아시아적’ 생명력을 유지하는가? 질문은 자연스레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누군가는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구파도, 2011)나 <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조미, 2013)을 기점으로 삼을 테고, 또 다른 이는 < 남색대문 >(이치엔, 200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긴 역사적 궤적 속으로 옮기면, 중화권 청춘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동시대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대만 뉴웨이브와 중국 6세대 영화, 그리고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어 온 홍콩 뉴웨이브의 성취 속에서 그 정서적, 미학적 뿌리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나 아닌 여럿: 중화권 청춘영화의 기원들 누구나 겪지만 결국 지나간 과거로 남게 될 통과의례의 순간. 대만 뉴웨이브는 이러한 청춘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했던 시기로 기억될 만하다. 교복 입은 인물들의 초상이 전면에 놓인 작품도 가히 많았다. 그 출발점에 자리한 < 광음적고사 >(에드워드 양 외 3인, 1982)의 옴니버스 구성 가운데 타오더천과 에드워드 양이 각각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작은 용 머리”와 “기대”), 그리고 진곤후 감독의 < 샤오피 이야기 >(천 쿤하우, 1983)는 소년·소녀들의 작고 애틋한 바람결 같은 초상을 내세운다. 그 물밑으로는 미국 이민, 대학 진학, 도시 중산층 진입이라는 당대 사회적 분위기의 기대와 규범이 조용히 도사리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의 반복을 미묘하고 리드미컬하게 포착한 이 감각은 <남색대문>과 같은 영화들의 정서적 결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일깨우는 동시에, 오늘날 중화권에서 ‘작은 청신함’이라 불리는 샤오칭신(小清新, Xiao qingxin)의 감정 구조와 그것이 하나의 서브 장르로 체화되어 온 흐름의 잠재태를 내포하고 있다. [1] 그러나 이 계보는 허우샤오셴의 < 연연풍진 >(1986)을 비롯한 성장영화에서 에드워드 양의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91)까지 대만 뉴웨이브 1세대가 소외된 젊은 세대를 응시해온 흐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들은 포스트-경제 기적 시기에 접어든 관점에서 계엄령 시기의 역사적 조건을 되비추는 장치로서 청춘을 호출하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통과해야 했던 국면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그 풍경은 담담한 일상으로, 때로 서늘하고 비정한 상태로 각인되는 한편으론 감독들의 노스탤지어와 자전적 경향을 투사한다. 도시로 향한 젊은 연인들이 이뤄질 수 없는 첫사랑을 흘려보낸 기억으로 남기거나(<연연풍진>), 백색 테러의 광풍과 외성인이라 불린 본토 이주민들의 불안정한 삶의 궤적을 통과하던 청년이 끝내 파국적인 폭력으로 치닫는 시간(<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속에서, 청춘은 이미 상실을 예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광음적고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중 (사진: Film at Lincoln Center , Asian Film Archive ) 이러한 정조는 중국 6세대 영화에 이르러 또 다른 시선으로 변주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독립영화 [2] 로 분류될 수 있는 체제 외부의 작품들이 활성화되어, 급격한 시장화 한복판에서 방향성을 잃은 청춘의 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아장커의 < 소무 >(1997)를 기점으로 가시화된 이 흐름은 로우예, 왕샤오슈아이, 장위안 등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6세대라는 미학적 진영으로 일컬어졌다. 소매치기인 주인공과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료를 대조하며 중국 소도시 시장경제의 비루한 풍경을 날것으로 포착한 <소무>의 감각은 < 쑤저우강 >(로우예, 2000), < 여름궁전 >(로우예, 2006), < 북경 자전거 >(왕샤오슈아이, 2001), < 북경 녀석들 >(장위안, 1992) 등에서 목표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머물고 떠밀리며 시간을 견디는 젊음에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6세대는 이처럼 국가 주도 계획경제와 개혁개방 사이의 격변기에 놓인 청춘이 조기에 소진되어버리는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성취를 보였고, 이는 세계 영화제 회로에서 환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중국 본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독립영화’ 정신이 만개했던 때로 기록된다. 작가영화마저 상업영화 및 주선율 영화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현 풍경을 떠올릴 때, 동아시아 청춘영화의 한 모델―즉, 비관적이지만 정직한 모델―을 제시한 당시 6세대의 성취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독립영화의 ‘죽음’이 목격되기 전 [3] , 이러한 계보를 근과거까지 계승하며 그 정서적 맥을 잇고 있는 작품으로 리위 감독의 < 관음산 >(2010)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무>, <관음산> 중 / 사진: IMDb( 1 , 2 ) 홍콩영화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할 만하다. 서극의 < 제일유형위험 >(1980)이 보여주듯, 초기 홍콩 뉴웨이브에서는 청춘의 권태와 분노를 폭발할 듯한 폭력과 뒤섞어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담가명이 호화롭고 자신감 넘치던 당시의 홍콩을 배경으로 도시 노마드들을 그려낸 < 열화청춘 >(1982)과, 왕가위의 < 중경삼림 >(1994)을 비롯한 1990년대 작품들은 청춘의 감정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이어진 프룻 챈의 < 메이드 인 홍콩 >(1997)은 포스트-반환 시기 처음으로 등장한 뛰어난 청춘영화가 아닐까. 영화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두 소년과 이에 합세한 소녀로 구성된 아웃사이더들이 비가역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는 점에서는 <제일유형위험>을 환기시키면서도, 한결 차분한 시선으로 홍콩의 내면적 심상에 집중한다. 한편 왕가위와 같은 홍콩 뉴웨이브 2세대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한 임영동의 <학교 풍운>(1988)은 전형적인 청춘영화의 문법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학교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성장기 소년·소녀들의 위태로움을 그려낸 가장 ‘홍콩적인’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제일유형위험>, <메이드 인 홍콩> 중 / 사진: IFFR , IMDb 중국 문혁 세대와 Z세대의 초상: <방화>, <소년 시절의 너> 그렇다면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좁혀 중화권 영화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시대 작품들은 어떤 청춘의 풍경을 담아내왔을까? 이 작품들을 한눈에 조망하기란 쉽지 않고 필자의 한계도 있기에, 이어지는 글은 그 흐름을 가늠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몇몇 인상적인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를 제공하고자 한다. 먼저, 중국에서 제작된 청춘영화들은 대만발 ‘샤오칭신’ 장르가 중화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을 입증하듯 캠퍼스 로맨스가 주류를 이룬다. 매력적인 주연 배우들의 청신함, 푸르른 여름 하늘, 첫사랑과 서투른 고백 등 이 장르의 관습으로 간주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공부’ 자체가 단순한 성장담의 소재를 넘어 과열된 입시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짓눌린 청춘 서사의 엔진이 된다는 점은, 중국 청춘영화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모범생 소녀가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문제아 소년의 공부를 도와주며 사랑이 싹튼다는 대만 영화의 공식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보여주듯 다소 귀여운 수준에 머물지만, 중국의 대히트작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2013)에 이르면 사뭇 다르게 변주된다. 이는 공부만이 ‘흙수저’인 자신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 믿으며 로맨스를 아예 거부하는 주인공의 철벽같은 마음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 중 / 사진: IMDb( 1 , 2 ) 증궈샹 감독의 < 소년시절의 너 >(2019)는 중국발 학원 영화들의 흐름 속에서 가장 성공한 판본인 동시에 사회성 짙은 텍스트로 각인된다.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코앞에 둔 시기, 주인공 첸니엔(주동우)이 한 소녀가 학교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 죽은 소녀는 교내 가해자들의 악명 높은 괴롭힘에 희생되었음이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다음 표적이 된 첸니엔은 자신을 보호해 주려는 십대 거리의 소년(이양천새)과 운명적으로 엮인다. 영화는 입시 위주 고등학교를 지배하는 잔혹함의 심리를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탐구하며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온 세상에 맞서 싸우는 두 십대의 서로를 향한 헌신과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순수한 로맨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처럼 교육의 살풍경과 두 연인의 낭만적 비극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미덕이라기엔 다소 한계를 노출한다.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에 책임이 있는 체제 내부의 어른들(교사와 경찰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고 도덕적인 인물로만 묘사되고, 가해자들 역시 충분한 전사나 깊이 없이 평면적 캐리커처에 가깝게 제시되면서, 두 상처 입은 영혼들의 고립은 사회적 압박 못지않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는 관계의 내향성에 의한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오카오’ 점수가 부르주아로의 격상과 잔인한 빈곤의 삶 사이 간극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첸니엔이 통과해야 하는 절박함의 정동은 한 편의 ‘십대 오페라’ 같은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요소일 테다. <소년시절의 너> / 사진: IMDb <방화>(2017)는 문화대혁명 말기, 문공단(문화예술선전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공간이 당대의 예술학교나 사실상 다름없었던 현실이 재현될 뿐 아니라, 영화 역시 학원영화의 문법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블록버스터와 풍자극을 넘나들며 < 집결호 >(2007), < 아부시반금련 >(2016) 등을 연출해온 중국의 대표적 감독 펑샤오강의 야심작이다. 무용수가 되기를 꿈꾸는 샤오핑은 문공단에 입성한 첫날, 자신을 마중 나온 선배 류펑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이타적이고 충직한 성정의 류펑은 정작 자신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는 피아노 반주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사망과 4인방 숙청, 그리고 1979년 중-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약 5년간의 격동을 통과한다. 그 사이 샤오핑은 재교육 시설에 수감돼 있던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류펑과 샤오핑 모두 전쟁에 참전한 뒤 정신적·신체적으로 소진된 상태로 귀환한다. 하지만 <방화>는 문화대혁명이 야기한 전면적인 비극을 정면으로 성찰하기보다는, 학교 청춘물의 형식을 빌려 이들에게 고통을 안긴 공산당 간부나 상하이 상류층 자녀들과의 격차를 부각한다. <소년시절의 너>의 첸니엔처럼, 샤오핑 역시 수줍음과 서투름, 그리고 계급 지위로 인해 조롱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즉, 시대의 광기보다는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비판 가능한 엘리트 부유층의 부패와 계급적 소외에 비극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제목인 방화(芳华)는 ‘꽃다운 청춘’ 혹은 ‘향기로운 시절’을 뜻한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두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면에서 문공단 시절은 노스탤지어 깃든 기억으로 남고, 그 공식적 종언을 알리는 해산식 장면에서 샤오핑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춘다. 대만 청춘 영화의 속삭임: <조니를 찾아서>,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 한편 오늘날 대만 청춘영화의 흐름이야말로 젊은 시절을 ‘아팠지만 예뻤던’ 감정으로 재배치하는 ‘샤오칭신’ 감성 구조와 떼어내 설명하기 어렵다. 동시에 그 한편에서는 이전 세대 영화들이 간직했던 불안과 공허의 정조를 일정 부분 봉합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변주하려는 흐름 또한 포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만 청춘 영화들은 불확실한 현재를 견디기 위한 하나의 정서적 피난처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 곧 ‘작은 행복과 미세한 슬픔’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 방식은 개인주의적 정서를 중시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로부터 물러나 자기만의 세계에 침잠하려는 태도를 전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평론가이자 제작자인 페기 차오는 자신의 제작 영화 <남색대문>이 ‘샤오칭신’ 장르로 호명되는 데 대해 조금 다른 관점을 내놓는다. 그 미덕이 “대만 사회에 뿌리를 둔 일상적 디테일의 축적을 통해 그려낸 삶의 초상이자, 자비로 가득하며 악의가 없는 세계”의 포착에 있다는 것이다. [4] 후앙시 감독의 < 조니를 찾아서 >(2017)는 이러한 설명에 잘 부합하는 텍스트다.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세 젊은 인물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오프닝으로 시작된다. 지하철에서 작은 상자를 들고 탄 여자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새장이 아니냐고 묻는다. 여자는 나중에 답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에 그런 상자에 새를 담아온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같은 빌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긴 시퀀스를 통과할 때까지도 이들이 우연히 스친 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후앙시는 허우샤오셴의 < 남국재견 >(1996)과 < 자객 섭은낭 >(2015) 제작부를 거치며 선배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롱테이크를 체득한 인물이며, 이 영화에는 실제 허우샤오셴이 제작자로 참여했다. 영화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을 어떠한 판단 없이 평등한 시선으로 관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일상의 미스터리를 낯설고도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를테면 화면에 익숙해진 뒤에야 청년의 티셔츠 무늬가 작은 새들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처럼, ‘조니’라는 사람을 찾는 이상한 전화들을 계속 받아오던 여자는 문득 옛 애인을 조니라고 부른다. 앵무새를 키우는 여자와 자폐 성향을 지닌 청년, 그리고 탈출한 앵무새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수줍음 많은 집수리공이 왜인지 모를 기분 좋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이야기. 이는 느슨하며, 너그럽고,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삶에 대한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조니를 찾아서>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2020)을 논하기 위해서는 대만발 청춘영화의 또다른 국면을 호출해야 한다. 전형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성보다는 강인하고 때로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가 선호되고, 완성된 사랑보다는 첫사랑의 어슴푸레하고 틀이 잡히지 않은 감정에 집중해 온 흐름 말이다. <남색대문>, < 영원한 여름 >(2006), <여친 남친>(2012) 등이 보여주듯, 대만 청춘영화에는 퀴어 서사와 삼각관계의 묘사를 통해 장르의 영토를 확장해 온 하나의 계보가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미묘한 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종종 촉발되는 모호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섬세한 터치는 대만 청춘영화만의 고유한 미학을 구축해왔다. 패트릭 류 감독의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막 계엄령이 해제된 1980년대 후반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아한은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버디를 만나 단짝 친구가 되고, 두 소년 사이에 형성된 감정은 학교가 여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시험대에 오른다. 신입 여학생 반반의 등장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직면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된다.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통한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테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네 마음>은 정통 퀴어 영화라기에는 터치가 다소 가벼웠던 기존의 청춘영화 흐름에서 한 발 더 묵직하게 나아간다. 기숙학교 내에 공공연히 만연한 호모포비아와, 스스로 게이였음에도 아한에게 ‘교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캐나다인 신부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영화는 계엄령 해제라는 조용한 변화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시간으로 닿는다. 과거의 고통과 열정을 다시 마주하며 잃어버린 줄 알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듯, 주제곡 ‘네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 흐르는 가운데 두 주인공은 죽은 신부의 교구가 있던 퀘벡의 밤거리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결말로 향한다. 홍콩 독립 청춘영화의 새로움: <쪽빛 하늘>, <좁은 길> 마지막으로 최근 홍콩 독립 청춘영화는 대만의 청춘물이 제공하는 감정의 완충 지대나, 중국 본토 학원영화의 서사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려낸다. 이 글을 준비하며 마주한 가장 큰 수확은 홍콩 반환 이후 감독들의 본토행에 따른 영화 산업의 공동화나 정체성의 약화라는 오랜 우려를 불식시키는, 독립영화 진영의 새로운 세대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면서도 도시 청춘들의 표정과 삶의 결을 세밀하게 기록해 온 이 영화들은, 때로는 홍콩을 향한 러브 레터처럼 읽히기도 한다. 아모스 와이의 <닷 투 닷>(2014), <냅핑 키드>(2018), <먼 곳에서>(2022) 등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주목할 점은 홍콩영화발전위원회(Hong Kong Film Development Council)가 주관하는 신인 감독 지원 사업(First Feature Film Initiative)을 통해 입봉하는 신예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지원할 때 홍콩 영화계의 거장 감독이나 베테랑 제작자를 멘토로 매칭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세대 간 유기적 결합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최근 홍콩 독립영화를 보면 타이틀 크레딧에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익숙한 홍콩 감독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쪽빛 하늘> 중 (사진: 서울독립영화제 ) 그중에서도 <쪽빛 하늘>(2017)은 동시대 홍콩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인 청킹와이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천하태평>(2008), <음악 인생>(2009), <하나의 국가, 두 개의 도시>(2011), <테이스트 오브 유스>(2016) 등 홍콩의 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들과 허안화의 <밤과 안개>(2009)의 각본을 쓰며 다져온 청킹와이의 서늘한 시선은, 부모 살해 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통해 홍콩 사회가 청춘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냉정하게 응시한다. <쪽빛 하늘>에서 부모의 시신이 지역 저수지 인근에서 발견된 뒤, 어린 코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다. 이 강렬한 스릴러는 누가 저질렀는가를 이미 알려주고 시작하기에, 질문의 중심은 ‘왜’라는 동기로 집중된다. 빈곤과 학대로 점철된 코니의 가정환경, 그녀가 학교 친구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과정, 그리고 사건에 깊이 관여하면서 점차 자신의 사적인 삶까지 흔들리기 시작하는 여성 수사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세심하게 펼쳐지는 이 탐구의 형식은 평소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코니와 같은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게끔 유도한다. 대만이나 중국의 청춘 학원 영화에서 ‘파란 하늘’이 젊음의 자유를 상징한다면, 이 영화의 어스름한 ‘쪽빛’은 홍콩의 비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짓누르는 색채로 활용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채 위협받는 십대들을 압박감 가득한 스릴러에 담아낸다는 점에서 <학교풍운> 같은 홍콩영화의 고전적 전통이 환기되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부모 살해를 자행한 소녀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거부하는 젊은 여경의 윤리적 딜레마는 평행선을 달리는데, 이는 세대 갈등의 단면이자 출구 없는 미로 같은 도시에 갇힌 홍콩 현세대의 실존적 질식 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좁은 길>(2022)은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자살을 예고한 어린 시위대를 구하려는 청년 구조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를>(2021)을 렉스 렌과 공동 연출했던 람섬 감독의 단독 연출작이다. 이 영화 역시 대만의 낭만이나 중국의 열망과는 또 다른, 도시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는 홍콩 청춘들만의 정직하고도 아픈 초상을 그려낸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영세 청소 대행업체의 일원인 노동자 자크가 늦은 밤 식당을 방역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로 가라앉은 팬데믹 시기의 밤 장면으로 구성된 <좁은 길>은 조용한 노동계급의 고독을 포착하지만, 음울하거나 비관적이기보다는 사회 주변부의 고단한 상황을 응시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한 위로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일손이 절실하지만 도시를 덮친 팬데믹 탓에 자크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는 충동적으로 지원한 캔디의 비공식적인 구직 요청을 받아들이고, 매일 밤 일당을 현금으로 지급한다. 비교적 어린 여성인 줄로만 알았던 캔디는 사실 어린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두 사람은 감정적 방어 기제를 세우면서도 서서히 비즈니스 파트너에서 친구 사이로 발전하지만, 영화는 연애담을 전형화하지 않는 선에서 결말을 열어둔다. 람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힘든 시간을 보낸 홍콩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고, 우리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자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5] 취약함을 인정하는 용기는 <좁은 길>의 가장 큰 미덕이자, 고립 속의 유대를 형성하는 두 주인공의 서사에 깊이 공감하게 만드는 동력일 것이다. 청춘영화라는 틀 안에서 보자면 입체적으로 그려진 젊은 청소 노동자와 싱글맘의 묘사 자체가 인상적인 ‘캐릭터 스터디’라 할 만하다. <좁은 길> / 사진: IMDb *** [1] Papan Yang, “The Taste of Ice kacang: Xiaoqingxin Film as the Possible Prospect of Taiwan Popular Cinema”, The IAFOR JOurnal of Asian Studies, 2:1, 2016, p. 75. [2] Chris Berry, “Cinema: Reconsolidation of Party-State Hegemony in a Market Economy,” in M Dahl, M. Szatkowski & H. Kups (eds.), China under Xi Jinping: An Interdisciplinary Assessment , Leiden & Boston: Brill, 2016, p. 351. 중국 독립영화는 일반적으로 정부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영화를 말한다. 이는 체제 내 상영이 허가된 예술영화(艺术片, yishupian)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공식적으로 상영되지 못하는 독립영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 내 독립 영화제(난징, 베이징 등)나 대안적 상영 공간을 통해 소개되거나, 주로 해외 영화제를 거점으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였다. [3] Chris Berry, ibid., p. 350. [4] Song Hwee Lim, Taiwan Cinema as Soft Power: Authorship, Transnationality, Historiography , London & NY: Oxford University Press, 2022. p. 129에서 재인용함. [5] Elizabeth Kerr, “ Portrait of a City: The Narrow Road ” , ZOLIMA citymag (접속일: 2025. 12. 26.). 박은지(영화 연구자) l 프랑스 탈식민주의 영화와 동시대 동아시아 영화를 연구하고 글을 쓴다.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지은 책으로 『지중해의 영화』, 주요 논문으로는 「장-뤽 낭시를 경유한 클레르 드니의 여정: ‘신체-지리학’ 영화, 생태적으로 그려내기」,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홍콩 누아르에서 포스트-홍콩 누아르까지 성찰적으로 바라보기」, 「두기봉의 밀키웨이 제작사와 포스트-1997 홍콩영화 정체성의 문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