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둘이서
- 감독
- 박윤교
- 제작년도
- 1976
- 출연
- 백윤식, 서미경, 방희, 남희, 이현숙, 김신명, 방수일, 김홍량, 허영, 안진수, 김용학, 임해림, 주용남, 임성포, 양일민, 최일, 박종설, 나갑성, 태일, 이승열, 방일수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소피아 코폴라, 2003)는 소통을 통해 위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도쿄라는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삶의 고독 속에서 표류하는 외로운 두 미국인 남녀의 정서적 교감을 그린다. 중년 배우 밥(빌 머레이)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을 방문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오랜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은 연락은 그에게 공허함과 권태로움만을 안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사진작가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 도쿄에 머물고 있지만, 홀로 보내는 나날 속에서 막연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두 인물은 공통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단절을 겪으며 심리적 고립에 빠져 있다. 영화는 초반 엘리베이터 장면부터 밥을 외부인으로 설정하는 위트 있는 연출의 묘미를 보여준다. 좁은 공간 안에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 무리 사이 홀로 우뚝 솟은 밥의 대비되는 신체 비율을 정면으로 직시한다. 아무런 대사 없이 그가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걸 보여준다. 구도와 비율만으로 메시지를 센스 있게 전달하는 장면이다. 밥이 홀로 머무는 호텔방은 고독과 침묵이 가득하다. 지극히 미니멀하고 한없이 적막함이 느껴지는 온기 없는 방이다. 무기력한 밥을 응시하는 카메라는 무심하게 정지한 상태로 여백을 많이 둔다. 배우의 체구가 큰 편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덩그러니 홀로 있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밥의 시선으로 보이는 일본 TV 프로그램 속 기이하고 과장된 이미지들은 그의 문화적 소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샬롯이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창밖 도쿄 도심은 차갑고 건조하다. 넓게 펼쳐진 도심뷰 창문 앞에 홀로 배치된 샬롯의 뒷모습 샷들은 창문 너머 세상에 대한 동경이거나 혹은 철창 같은 호텔방을 벗어나 해방을 갈망하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성 꼭대기에 갇혀 있는 고립된 공주처럼 창밖 배경과 인물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고독감은 증폭된다. 방 안에 흐트러진 옷가지와 정리되지 않은 소품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그녀의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듯하다. 종이꽃으로나마 방 안을 꾸미려는 샬롯의 행위는 삶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샬롯이 우연히 꽃꽂이 수업 공간에 들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꽃 한 가지를 꽂는 장면은 소소하지만 묘한 울림이 있다. 이 장면은 비언어적 교감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3 )", IMDb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샬롯의 시선으로 보이는 혼잡한 도심 풍경을 카메라는 핸드헬드로 불안하게 보여준다. 건물의 파사드 광고에 등장하는 공룡들의 이미지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더더욱 낯설고 모호한 공간으로 느껴지게 한다. 홀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가는 신사 또한 서양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공간일 것이다. 영화는 뜻을 알 수 없는 일본어 네온간판들이 가득한 번화한 야경 거리, 파친코 상점, 가라오케 같은, 이들에게 더욱 낯설게 다가올 공간 속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캐릭터의 감정적 소외를 컬러풀한 조명의 시각적 요소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언어의 청각적인 요소에 대비시킨다. 도시의 혼잡함과 인물의 고요함을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들의 정적인 내면을 부각시킨다. 화려하고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도쿄라는 배경은 영리하면서 감각적인 선택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을 설정했더라도 이야기는 성립되었겠지만, 의사소통도 감정소통도 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상태의 이방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배경을 택한 거다. 일상으로부터 격리된 낯선 문화 속에서의 혼란과 외로움의 정서가 배경과 어우러져 한층 더 밀도 있게 시너지를 낸다. 사진: "Lost in Translation( 1 , 2 )", IMDb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단절된 상태였던 이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긴밀하게 느낀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대로 맺어지며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이제 프레임 속에서 그들은 각자 홀로가 아닌 둘이 함께 존재한다. 이들이 소통해 나가면서 서구적 시선으로 바라보던 어색하고 불편한 낯선 나라의 문화는 다른 시선으로 바뀐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유쾌하게 도시를 경험하며 즐긴다. 홀로 경험하는 도쿄는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둘이 함께 하는 도쿄는 새롭고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지치고 무기력한 눈으로 바라보던 낯선 풍경은 술에 취해 혼미한 시선으로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맞이하는 해방감과 설레임이 도쿄거리의 흐릿한 불빛들과 함께 자유로이 부유하는 듯 보인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Photo by Yoshio Sato - © 2003 Focus Features)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외피를 썼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성 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모호한 플라토닉 우정에 가깝다. 한 침대에 누워 함께 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샬롯의 발에 살며시 올려놓은 밥의 손은 묘하게 에로틱하면서도 숭고함마저 깃든다. 무언의 위로와 정서적 교감이 정점으로 느껴지는 최애 장면이다. 마침내 이들은 이렇게 숭고하게 그토록 원하던 깊은 잠에 들며 평온한 밤을 맞이한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이들은 계속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서로가 외롭지도 권태롭지도 않기를 바랄 것이다. 진솔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우수에 찬 마지막 시선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이들이 작별하는 엔딩의 도쿄 도심 풍경은 이전에 보여줬던 도심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이전의 도심이 화려한 간판 불빛에 눈부시고 정신 없이 번쩍였다면, 엔딩의 도심은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성이다. 동시에 두 인물의 정서적 변화도 느껴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는 설정된 무드의 공간 안에 배치된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감정에 충분히 공감한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탁월하지만 침묵 속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언어 대신 이미지로 말하는 느낌이다.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인물의 공허한 심리묘사를 섬세하게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스파이크 존즈의 < 그녀(HER) >(2013) 역시 인물의 감정선을 반영한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는데,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음에도 그 파동이 강하게 전달된다고 느꼈던 소피아 코폴라의 초기 작품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공간이 단지 보기 좋은 배경으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내러티브와 연계되어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서사의 일부로 작용할 때 미장센의 진정한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런 미술을 지향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마친다. 사진: " Lost in Translation ", IMDb 서성경(미술감독) l 이야기에 숨결을 더하는 미장센을 지향합니다. < 사바하 >(장재현, 2018), < 가장 보통의 연애 >(김한결, 2019), < #살아있다 >(조일형, 2020), < 원더랜드 >(김태용, 2024), < 파묘 >(장재현, 2024) 미술감독.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일은 없다’. 가끔식 남의 집 가훈을 들으면 실소가 나올 때가 있다. 가훈이란 원래 성경의 한 구절 같아 실천하기 어렵고 이루지 못할 이상향 같은 것 아닌가. 그래서 영화 ‘잠’에서 둘이 함께를 강조하며 남편과의 분리를 극도로 경계하는 아내의 집착이 처음부터 매우 불안해 보였다. 급기야 남편에게 귀신이 씌였다는 무당의 한마디에 의해 불안은 공포로 급격하게 전환되는데. 그 말이 아랫집 할아버지의 말이든 혹은 남편의 속마음이든 둘이 함께라는 말은 이제 둘 이외의 것들은 모두 제거되어야만 성립되기 때문이다. 남편의 몽유병, 아내의 불면증 남편은 잠이 들고 아내는 그런 남자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본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어쩐지 함께 잠드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이란 시간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유한다. ‘둘이 함께라면’이라는 가훈의 전제는 영화 시작부터 어긋나있다. 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밤 시간을 공유하던 부부에게 마침내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남편이 자다가 얼굴에 피가 나도록 뺨을 긁고, 잠든 상태에서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갑자기 거칠고 낯선 사람으로 돌변한다. 더없이 편안하고 안락해야 하는 둘만의 밤이 당장 해결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하지만 몽유병을 앓고 있는 남편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내가 밤새 함께 꾸었던 악몽으로 인해 그들의 신혼집은 불길하고 뒤숭숭한 꿈자리로 바뀐다. 의사의 치료, 무당의 치유 악몽과도 같은 현실로부터 발생한 문제를 의사는 수면장애로 진단하고, 무당은 빙의라 점을 친다. 적극적인 치료와 치유가 필요한데, 의학은 환자의 상태를 시각화된 그래프로 제시하고 무당은 부부 사이에 보이지 않은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고 점을 친다. 어쩐지 의학의 이성적 치료와 무속의 영적 치유라는 극단의 처방으로 인해 부부의 불면증과 몽유병 증세가 더욱 악화되는 것 같다. 이제 남편의 잠은 현실을 더 끔찍한 악몽으로 만들고, 그 속에서 아내는 펄펄 끓는 솥에 토막난 아이가 들어있는 악몽에 시달린다. 이런 부부에게 의사는 잘 듣지도 않은 약을 처방하고, 무당은 집안 곳곳에 붙일 부적을 주며 굿이 최선의 방법이라 조언한다. 애초에 몽유병과 불면증이라는 실체가 모호한 증상에 시달리는 부부에게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은 정신과 영혼을 다루는 정신의학과 무속 외에 달리 기댈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남편은 몽유병 완치 판정을 받지만, 이번엔 아내의 편집증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다. 아내는 이미 무속에 깊이 심취해 남편의 빙의를 확신한다. 남편의 연기(혹은 빙의), 아내의 프레젠테이션 이제 막 아이가 태어난 젊은 부부의 집은 방문마다 자물쇠가 걸려 있고, 냉장고는 한때 그들이 키우던 애완견이 죽어 있던 곳이다. 아기와 엄마는 욕조에서 문을 잠근 채 잠들고, 아이 아빠는 잠든 채 거실을 배회하다 아이 침대에 소변을 본다. 급기야 거실에서 귀신 쫓는 굿이 벌어지고, 온 집안이 부적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기어이 일이 벌어지는데. 이때 남편이 아랫집 할아버지에게 빙의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여자가 남편에게 지금 그들의 가정이 처한 상황과 그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방법이 다름 아닌 프레젠테이션이다. 남편의 몽유병과 아내의 편집증으로 인해 고조된 긴장감이 이 부분에서 와르르 무너지며 당혹감을 안겨준다. 극도의 불면증과 불안증세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여자가 남편(에게 씌인 귀신)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PT라니. 게다다 남편과 관객은 그 PT 속 사진 자료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 집에서 귀신을 쫓는 굿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왜 그처럼 중요한 굿 장면이 하필 PT속 사진 한 장으로 제시된 걸까. 생각해보니 앞서 냉장고에서 애완견이 발견되었을 때의 충격도 아내의 비명과 몸짓으로 전달했는데, 이번에도 남편의 몸에 귀신을 봉인하는 글귀를 세기고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을 사진 한 장으로 갈음해버린다. 공포와 미스테리 영화를 표방하면서도 가장 끔찍하고 강렬한 공포 이미지를 굳이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있을 터. 문득 아내가 남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장면에서 어쩌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관계의 사람과도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설득해야 하는지 정말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니 남편이 직장을 관두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남편의 재능을 추켜세우고 용기를 복돋는 말로 그의 중도 포기를 막는다. 본인의 수면장애가 가족의 안위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남편이 잠깐 방을 따로 얻어 나가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을 때 아내는 가훈을 이유로 단칼에 거절한다. 대기업 사원인 아내에게 중도 포기는 지독한 경쟁 속에서 자멸로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또한 기업 시스템의 통상적인 보고 방식에 길들여져 있기에 위급한 상황에서 PT는 그녀가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사적인 대화마저 그녀가 공적인 장에서 습득한 방식으로 이뤄진 장면으로의 전환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이하게 와닿았다. 아내에게 ‘둘이 함께’는 어떤 상황에서도 실천하고자 했던 개인적 믿음에 가까운 말인데, 이 또한 결국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환상이 아닐까. 남편 또한 아내의 광기에 가장 공적인 소통 방식으로 맞선다. 긴급한 순간에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학교와 현장에서 배우고 익혀왔던 연기를 응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여자의 말처럼 남편은 진짜 빙의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자기 정신으로 연기를 했든, 진짜 빙의된 상태였든, 그 또한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배우고 익힌 연기 혹은 타인이 일생에 걸쳐 사용해온 언어로 아내를 진정시키게 된다. 노인과 아파트 이 영화에서 부부의 아파트를 침범한 외부인은 아랫집 노인이었다. 물론 귀신일 수도 있고, 아내가 만들어낸 환상일 수도 있다. 영화는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난해하게도) 부부의 불면증과 몽유병의 원인이 된 노인이 귀신이었는지 환상이었는지에 대해 끝내 밝히지 않는다. 다만 무당의 말 “개 짖는 소리 없이 애기 우는 소리 없이 둘이서만 살고 싶어”가 남편과 노인 중 누구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인지 의미심장하다. 마지막에 남편의 빙의(혹은 연기)를 통해 어쩌면 노인은 그 아파트란 공간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부부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노인의 딸은 아내를 볼 때마다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이혼을 권한다. 남편에게 노인은 조금 더 먼 미래일지도 모르며, 아내에게 노인의 딸은 조금 더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 전형적인 공통의 삶은 윗집의 후추와 아랫집의 앤드류를 통해 드러난다. 마치 복제한 것 같은 두 반려견을 통해 윗집과 아랫집이 바닥과 천장을 공유한 것을 넘어 실은 더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닮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서로에게 타인이란 당장 베란다와 창문 밖의 가파른 벽과 같은데, 그 단단하고 차가운 벽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존재를 알게 되고 신경 쓰게 된다. 막연한 추상이 아니라 동일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벽을 통과해온 소음과 베란다 창을 타고 올라온 담배연기, 화장실 천장의 누수를 통해 타인을 감지하게 된다. 이웃을 향한 우리의 감정선과 억측 또한 그로부터 생성된다. 단단하게 굳은 철근콘크리트 벽과 바닥으로 인해 우리는 보이지 않고 대화하기 어려운 타인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오해하며 망상한다. 영화에서 아랫집 노인은 살아서는 불쾌한 이웃이었고, 죽은 뒤에는 광기와 공포의 원인으로 내쫓아야만 하는 악귀가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노인은 부부가 나눈 대화, 아내가 아랫집에서 발견한 흔적, 그리고 남편의 몸을 통해 빙의 혹은 연기되는 존재로 등장한다. 타인의 삶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일련의 과정이 어딘가 익숙하다. 지금 우리가 매끈하고 스마트한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 잘 알지 못하는 이웃을 규정하는 방식과 닮아 있어서다. 영화를 보다 몇 년 전에 한 어르신이 들려주신 태몽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몽이란 흔히 부모가 태어날 아이에 대해 꾸는 꿈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노인들의 태몽은 이웃집에 살고 있던 어르신들이 꾸기도 했다. 한 아이의 탄생이 자기 부모와 가족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누군가에 의해 암시된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때 한 아이에게 이웃의 노인은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몽상가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를 알고 있었음에도 영화 ‘잠’에서 무당의 한 마디에 남편의 몸에 빙의된 존재를 추적하는 아내를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아랫집 노인을 떠올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생각의 흐름이 소름끼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느꼈던 찝찝함과 다소 무서웠던 감정의 실체가 이와 같다. 인물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의 의미를 곱씹으며 내용과 결말을 유추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를 발견할 수 있어서다. 영화를 보고나서 타인에 대한 지독한 오해와 혐오를(아내의 불안과 공포의 원인) 만든 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초반에 부부의 가훈을 유독 강조해서 드러내는데, 이미 그 가훈의 ‘둘이 함께’는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곳에 둥지를 튼 부부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까 부부가 된 두 사람에게 닥칠 숱한 문제 속에서도 오직 둘만 바라보고 살아남겠다는 다짐처럼 읽힌다. 그런데 이미 두 사람은 함께 누워 각기 다른 잠을 자고 꿈을 꾸며 살고 있고, 이제 둘은 셋이 되었다. ‘셋이 함께’ 겪을 문제는 또 어떤 잠과 꿈을 불러올까. 아랫집 여자의 말처럼 그냥 다 놓고 헤어지면 그만인데 부부는 기어이 또 함께 살며 또 다른 악몽을 감내하게 되었다. 셋이 함께 말이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사진 클릭 시 유튜브 인터뷰 영상으로 이동) 한국영화 황금기 20년의 역사를 함께 하다 셀은 2003년 6월25일 황효균·곽태용 대표가 설립한 특수분장 업체,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이다. 두 대표는 세포의 기본 단위이자 배터리의 최소 에너지 단위를 뜻하는 의미를 담아 회사의 이름을 지었다. 한때 같은 특수분장 회사에 다녔던 동료인 두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 쓰리, 몬스터 > 중 단편 <컷>을 필두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해, 이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김용화, 나홍진 등 한국영화의 내로라하는 창작자들이 신뢰하는 동료로 자리 잡았다. 분장 및 더미·애니매트로닉스·특수소품·세트팀 등을 운영하는 국내 대표 특수분장 업체 셀의 현재 인원은 총 20명으로 해마다 약 10여개 이상의 작품에 참여해 지금까지 170여 작품에서 활약해왔다. < 친절한 금자씨 > < 도둑들 > < 부산행 > < 신과 함께 > < 기생충 > 등의 주요 미장센을 상상의 영역에서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낸 셀의 핵심 가치는 분장과 소품, 애니매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위한 테크니컬 아트의 전천후를 담당하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역량이다. 회화를 전공한 황효균 대표는 분장 및 더미, 공학을 전공한 곽태용 대표는 애니매트로닉스가 전문 분야다. 두 대표의 진두지휘하에 더미 전문가인 이희은 이사, 실장 3인(박영무, 박신영, 이효응), 팀장 2인(이고운, 박소연) 외 12명의 팀원들이 3개 층으로 구성된 메인 작업동에서 협업하고 있다. 황효균 대표는 24년, 곽태용 대표는 22년 경력의 베테랑이며 이희은 이사를 비롯한 실장급 직원들 모두 1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작업동 디자인실에서 작업중인 팀원들 셀 스튜디오는 설립 당시부터 주5일제 근무를 시행, 현재 주 40시간 일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영화 현장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저녁과 휴일을 보장해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병행하며 작업에 섬세히 몰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국내 여타 특수분장 업체와 비교해 직원 수가 많은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부산행>과 <킹덤>을 거쳐 SF 장르에 도전하다 설립 이후 긴 시간 쉼 없이 성장해온 셀은 김지운 감독의 < 달콤한 인생 >에서 총격 신 더미를, < 인류멸망보고서 > 중 <천상의 피조물>에서 로봇 캐릭터를 구현하면서 역량을 한층 강화했다. 카이스트 로봇업체에서 억대로 책정한 로봇을 셀은 그보다 낮은 비용, 양질의 퀄리티로 결국 완성해냈다.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부산행>에서 보여준 최초의 K좀비는 < 반도 >를 거쳐 넷플릭스 < 킹덤 >에 이르면 백성 출신 좀비와 양반 출신 좀비,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왕 좀비 등으로 조선 좀비의 디테일을 새로이 창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 밖에도 <기생충>의 수석과 털이 살아 있는 복숭아, < 옥자 >의 돼지 옥자, < 엑시트 >의 유해가스, < 암살 >에서 나이 든 염석진의 축 처진 뱃살 등이 모두 셀의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속에서 본격적인 업력을 쌓았고, 스릴러 강세 속에서 전에 없이 완성도 높은 액션 신의 원천으로 자리했던 셀은 이제 < 승리호 > < 고요의 바다 > < 더 문 > < 정이 > 등을 통해 SF 장르로 새 무대를 개척하고 있다. 셀의 일원들은 할리우드와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부하고 있다.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으며 2019년 이후 OTT 시리즈 작업 의뢰가 급증해 현재 < 커넥트 > <기생수>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OTT 시리즈 < 지옥 >에 쓰인 괴물의 미니어쳐 *CELL의 주요 작업 <쓰리, 몬스터> 중 <컷>의 손가락 <친절한 금자씨>(2005)의 반인반견 백선생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의 말 < 도둑들 >(2012)의 마카오 박(김윤석)이 변장한 얼굴 < 늑대소년 >(2012)의 늑대소년 <인류멸망보고서>(2012) 중 <천상의 피조물> 인명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의 이병헌(광해) 더미 < 미스터 고 >(2013)의 고릴라 링링 < 암살 >(2015)의 배우 이정재(염석진) 분장 < 부산행 >(2016)의 좀비 < 대호 >(2016)의 호랑이 < 로봇, 소리 >(2016)의 로봇 소리 <옥자>(2017)의 옥자 <기생충>(2019)의 수석과 복숭아 <반도>(2020)의 좀비 시리즈 < 스위트홈 >(2020) 속 괴물 시리즈 <고요의 바다>(2021)의 우주복 <정이>, 시리즈 <커넥트>, <기생수> 등 회의동 2층의 회의실 벽면: 그간 CELL에서 작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체계적인 공간 구성과 동선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셀은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북부에 자리한 덕이로 172번길 4-72에 위치해 있다. 남측에는 고양종합운동장, 북측에는 운정신도시 아파트단지, 동측으로는 3호선 주엽역과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접근하기 용이하다. 인접한 건물로는 고양예술고등학교가 있다. 2003년 설립한 셀은 인근의 소규모 스튜디오를 이용하다 2020년 전용 건물 준공을 마쳤다. 1320m² 부지에 2개동으로 구성된 990m²의 건물이 현재의 셀 스튜디오다. 셀 스튜디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전경은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평화로운 시골의 풍경으로, 그 아래 마당에는 주위의 목가적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거나 피칠갑한 더미들이 햇볕 샤워 중이다. “셀 스튜디오의 앞마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방문객은 자연스럽게 향후 1년 내로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한국영화의 밑그림을 절로 그려보게 된다”(<씨네21>, 2016년, 셀 스튜디오 특집)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더미가 방문객을 반기는 셀의 마당을 지나면 각각 작업동, 회의동으로 불리는 2개 건물이 연결된 채 마주보고 있다. 셀의 직원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작업동이다. 1층은 크게 기계장비실, 용접실, 자재실로 구분된다. 밀링, 선반, 알곤 용접기, 드릴프레스, 절단기 등 중량감 있는 주요 장비들이 모인 공간이다.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주로 곽태용 대표가 관리한다. 1.5층에는 기계작업실, 3D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물질 없이 깔끔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터실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채색실은 환풍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작업동 1층 기계 및 애니매트릭스 작업실 전경 2층은 황효균 대표가 관장한다. 보다 정교한 작업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등으로 쪼개진 공간에는 온갖 팔레트와 실리콘, 붓, 알코올, 접착제, 리무버, 프라이머 등등이 조합된 특수분장 가방이 펼쳐져 있고 더미 채색, 더미의 머리카락과 눈썹을 심는 작업, 괴생명체 등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주요 작업물 및 조형에 사용하는 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2층 테라스를 따라 회의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셀이 수상한 주요 상패를 모아둔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등이 있다. 1층은 식당과 휴게실로, 3층은 자료실로 사용된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로 172번길 4-72 2. 설립일: 2003년 6월 25일 (2015년 7월 17일 법인 전환) 3. 대표자: 곽태용, 황호균 4. 규모: 부지 1320m² / 건물 990m² (2개동) 5. 조직 구성: 총직원 20명(공동대표 2인 포함) 6. 공간 구성 - 작업동 1층 - 기계장비실, 용정실, 자재실, 남자화장실 1.5층 - 기계작업실, 3D 프린터실, 폴리실, 디자인실, 기계부 채색실 2층 - 미술작업실, 채색실, 폴리실, 우레탄 성형실, 재료실 3층 -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여자화장실 - 회의동 1층 - 식당 및 휴게실 2층 - 회의실, 라이프 캐스팅실, 남녀 화장실 3층 - 자료실 인터뷰: 황효균, 곽태용 대표(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CELL) 테크니컬 아트 스튜디오 황효균(우측), 곽태용(좌측) 대표 김소미 _셀의 설립 배경을 들려주세요. 황효균 _2003년도 새해를 둘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되든 안 되든 한 2년 정도는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면서, 밥벌이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고요. 셀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디님이나 제작실장님이나 조감독님, 이런 분들이 신작 들어갈 때 새로 생겼으니까 일을 한번 맡겨주신 거죠. 김소미 _두 분이 일하신지 총 몇 년이 되신 거지요? 곽태용 _저는 22년차고. 황효균 _저는 24년차이지요. 김소미 _두 분의 첫 인연은 언제 맺어졌나요? 곽태용 _영화 쪽에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업체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둘이 처음 만나게 된 거예요. 좀 부족하지만 우리 것 한번 만들어보자 해서 의기투합했던 게 시작이었죠. 초반에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둘이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재료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좋은 감독님들을 만나게 된 거죠. 황효균 _저희 사이를 돌아보게 되는 좋은 시간인 것 같네요. (웃음) 옛날 20년 전 골방에서 시작했어요. 버는 족족 투자해서, 딱 밥 먹을 정도만 남겨놓고 공간을 꾸려갔죠. 저희는 성격도 서로 참 달라요. 저는 좋게 말하면 꼼꼼한 편이고 곽 대표는 통이 커요. 분야도 다른데, 제가 미술과 분장, 더미 쪽이고 곽 대표는 기계 쪽, 로봇, 하드케이스 등을 만듭니다. 김소미 _공식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된 셀의 첫 작품은 무엇인가요? 곽태용 _개별적인 의뢰를 받고 소품이나 특수 제작물을 제작한 경우들이 앞서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처음 작업하게 된 건 박찬욱 감독님의 <쓰리, 몬스터>죠. 그전에 배고픈 시기도 겪은 터라 사실은 굉장히 열심히 작업했었어요. 남들이 보기엔 ‘어, 저게 뭐지’ 싶은 새로운 효과를 가미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이 박찬욱 감독님께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다음 작품도 박찬욱 감독님과 하게 되고 또 그 작품을 함으로써 김지운 감독님, 봉준호 감독님의 의뢰를 받게 되었죠. 초창기에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도 참 절실히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황효균 _<쓰리, 몬스터>에 저희 역량을 보여줄 요소가 다양하게 많았어요. 손가락을 잘라서 믹서에 갈아버리는 설정이라든가. (웃음) 이후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몸은 개인데 얼굴은 최민식 배우인 반인반수 소품도 있었죠. 박찬욱 감독님 작품엔 항상 저희에게 큰 숙제 같은 것들이 하나씩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에 놓인 인체 일부 모형들 김소미 _셀이라는 이름의 작명 배경도 궁금합니다. 황효균 _멋있는 영어 단어로 이름을 짓고 싶었죠. (웃음) 로봇, 더미, 특수분장 쪽으로 의미 있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찾다가 셀이라는 단어가 외자라는 게 특히 좋았어요. 생명체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곽태용 _또 배터리의 가장 기본 단위 에너지인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황효균 _처음에는 회사 설립 후 전화 받을 때 ‘셀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요술공주 샐리’ 아니냐는 말도 듣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름 하나 잘 지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김소미 _두 분이 성격과 전문 분야에 있어서 상호보완적인 시너지를 이루고 계시네요. 곽태용 _이 일 자체가 굉장히 복합적이잖아요. 간단한 특수분장에서 시작해, 분장으로 안 되는 건 더미를 만들고, 또 더미를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더 활용하고 싶으면 거기다 애니매트로닉스를 적용하고. 결국 이게 다 섞여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할 수 있어야 퀄리티 높은 작업물이 나옵니다. 각각의 세분화된 영역을 한데 모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김소미 _테크니컬 아트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서의 비전은 설립 초기에도 명확히 갖고 있던 그림인가요? 황효균 _그렇죠. 예를 들면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병헌 배우의 더미가 나오는데요. 그냥 가만히 있는 더미가 아니고, 독에 중독된 채로 숨도 쉬고 고통스러울 땐 미간을 살짝 찌푸리거나 건초를 태워서 코에 갖다 대면 연기가 코로 빨려 들어가는 식의 설정들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그럼 저희는 2층에서는 더미 외형을 만들고 1층에서는 안의 기계 장치를 동시에 만들어요.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는 거죠. 지금은 특수분장팀이 많지만 저희는 외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할 수 있는 팀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김소미 _황효균 대표는 분장과 더미 전문, 곽태용 대표는 기계 및 애니매트로닉스 전문으로 자신만의 특화된 분야를 개척하기까지 두 분 각자의 전공과 최초의 관심 분야느 무엇이었나요. 황효균 _저는 미술,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캔버스에 그리는 게 아닐 뿐 결국 입체 위에 그리는 작업으로서 같다고 느낍니다. 결국 좀비 분장도 배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거죠. 어릴 때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더미나 괴물 캐릭터를 만든다고 하면 모델링, 채색을 주로 해야 하니까 결국 영화 특수분장 일은 제 전공을 그대로 이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곽태용 _저는 화학공학을 전공하다가 중퇴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거나 분해해서 작동 원리를 연구해보는 성향이 있었어요. 모형 제작을 취미로 계속하기도 했고요. 그걸 계기로 미니어처 작업을 통해 영화 쪽에 처음 입문했습니다. 영화 애니매트로닉스 분야는 정확한 전공이나 커리큘럼이 있다고 보기가 어려워요. 결국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계의 원리를 면밀하게 관찰해서 그걸 응용하는 거거든요. 해외 자료들도 많이 보고요.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사무실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늘 새로운 것들을 연출하길 원하는 감독의 바람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 더 커요.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작업동 2층 미술작업실 전경 김소미 _지금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셀의 매출 및 작업 규모 혹은 기술 수준에 있어서 확실한 성장의 분기점으로 꼽아볼 작품이 있을까요? 곽태용 _특수분장이라는 게 맨 처음에는 배우의 얼굴에 실제로 상처를 낼 수 없으니까 그것을 분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더 심한 상처가 필요하면 더미로 커버를 하고, 나중에는 그 더미가 기계 장치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극적인 효과를 내는 식으로 계속 간 거잖아요. 저희도 초반부터 그런 모든 기술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처음엔 상처 분장, 인조 피부 이런 작업 위주로 했었죠. 그러다 아무래도 한국영화의 흐름에 영향을 받았죠. 스릴러영화를 하게 되면 더미가 많이 나오니까 한동안 그런 작업 위주로 하게 되었어요. <달콤한 인생>의 경우 총격 신에서 더미가 많이 필요하잖아요. 총에 맞은 손가락이 터져 나간다든가 하는 효과들도 저희로선 의욕을 부추기는 데가 있었죠. 또 <부산행>을 기점으로 좀비물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덩달아 관련 작업도 늘어났죠. 또 재밌었던 작품 중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는데, 움직이는 말을 제작해서 슈팅카에 실었어요. 실제 달리는 말을 대체해 촬영을 했어요. 저희 작업 이후 사극에서도 많이 활용이 되었죠. 황효균 _운이 좋았죠. 그런 작업을 처음 맡을 수 있었다는 게. 셀이 최초로 시도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전에는 움직이는 말을 만들어서 촬영한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배우들은 항상 낙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액션을 소화하면서 말을 탄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배우가 저희의 움직이는 말 소품을 써보고 괜찮아서 이후에 계속 쓰고 싶다고 하면 보람이 있죠. 또 로봇을 직접 제작해 촬영한 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 <로봇, 소리>도 중요한 작품이 되겠네요. 게다가 이제는 우주로 나아가지 않습니까. < 외계+인 > 1부 같은 작품을 보면 마블의 < 어벤져스 > 시리즈 못지않게 현실감 있게 나오니까 이제 한계점이 사라진 게 아닐까 싶어요.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를 위해 우주복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곽태용 _최근엔 연상호 감독의 <정이>를 작업했고요. 영화 <대홍수>도 SF고 드라마 쪽에서도 우주 배경의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나왔던 움직이는 말 기계 모형 김소미 _<인류멸망보고서> 중 <천상의 피조물>을 위해 제작한 로봇 소품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직접 로봇을 제작한 경우가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효균 _맞아요. 저 작품을 찍고 7년인가 있다가 개봉을 했거든요. 처음 촬영할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그게 될까’ 하던 때였거든요. 로봇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움직임들을 다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사가 카이스트의 로봇 공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뢰를 했었는데 그들은 정석대로 접근한 거죠. 이를테면 영화 세트장 바닥은 미끄러워서 작동이 불가능하다, 기간은 1~2년, 비용은 10억~20억원이 든다고 했대요. 제약이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사실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카메라가 발 부분을 잡지 않는다면 로봇이 실제로 걷지 않아도 그럴듯한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어찌 보면 편법에 강한 겁니다. 영화 촬영을 위한 잔머리가 강한 거고, 응용력이 중요하죠. 김소미 _지금의 셀 스튜디오는 언제 완공이 된 건가요. 황효균 _여기 이사 온 지는 이제 2년 정도 되었네요. 곽태용 _원래 있던 곳도 여기 근처죠. 황효균 _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 스튜디오보다 규모가 약 1:3 정도였습니다. 옛날보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곽태용 _예전에는 큰 작업물을 만들면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안에 있던 걸 다 빼고 다 치우고 하느라 고생했죠. 아예 외부 창고를 단기 임대해서 그쪽으로 장비를 다 옮기기도 했고요. 황효균 _지금 부지는 총 400평이고요. 3층 건물은 약 80평 정도 됩니다. 작업동 3층 몰드 및 제작물 보관실 선반의 인체 모형, 인체 일부 김소미 _총 3층으로 이루어진 셀 스튜디오의 주요 작업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곽태용 _일단 1층 애니매트로닉스 작업실 쪽은 무거운 기계와 재료들이 많죠. 밀링 머신. CNC, 드릴, 프레스 등등. 가공 자재들도 기본적으로 쇠파이프 같은 무거운 재료들이니까 아래층에 있는 게 좋겠지요. 그 위에 1.5층이 있는데 프린트, 레이저, 도면 기반의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방을 따로 두었습니다. 1층 기계실은 아무래도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소음이 심해 조금 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3D 프린팅 작업실을 위쪽으로 분리한 거죠. 황효균 _1층은 을지로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됩니다. (웃음) 공구들, 기계 장비들. 안 다루는 부품이 없고 전기, 배선, 라이팅까지 전부 다 하니까요. 2층으로 올라가면 페인트류, 실리콘, 물감, 분장 재료들이 중심이 되지요. 곽태용 _더미의 머리카락, 눈썹을 섬세하게 심고 채색하는 공간도 따로 구분되어 있어요. 화학 약품을 많이 쓰는 도색 작업 공간엔 냄새가 많이 나고 휘발성 페인트가 많기 때문에 환기 시설이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고요. 황효균 _이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설계 사무소와 논의해서 여러모로 저희 입맛에 맞게 건물을 지은 거지요. 냄새가 나는 방은 환기가 중요하니까 맨 뒤쪽, 오른쪽 구석에 가 있게끔 하고 분진이 많이 나는 폴리실은 따로 두고, 청결 유지가 필요한 채색실은 그 반대편에 거리를 두고 만든다든가 하는 식이죠. 김소미 _개인적으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이 있을까요. 곽태용 _저는 도면실이요. 도면실 겸 취미 활동방이 되었는데요. 개방해놓고 쓰고 있어요. 컴퓨터 옆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거든요. 퇴근하면 직원들이 거기서 드럼 치고 있어요. 황효균 _곽 대표님은 보통 도면실이 있는 1층과 1.5층에 많이 머무르죠. 저는 아무래도 2층이겠죠.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에 충실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도면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곽태용 대표 김소미 _셀의 현재 직원수는 총 몇 명인가요.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들에 상당수 참여하고 있는데, 근무 강도를 어떻게 자평하는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저희가 지금 다 해서 20명인데 보통의 특수분장팀들과 비교하면 3~4배 정도의 규모라고 해요. 많이 듣는 얘기가 ‘셀은 맡은 작품 수가 많으니 야간작업을 자주 하는 거 아니냐’인데 그렇지가 않아요. 저희는 오후 5시 반 되면 다 퇴근해요. 곽태용 _한 8년, 9년 전부터 주 40시간 근무합니다. 황효균 _창립 초기부터 주5일제로 일했고요. 곽태용 _가끔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 때문에 마감이 늦어지면 밤 9시, 10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때도 있는데, 1년에 5번도 안 돼요. 촬영이 걸리지 않는 이상은 각자의 저녁 시간을 갖고, 빨간 날은 그냥 쉬는 걸로 해요. 그래서 인원이 좀 많은가 봐요. 이렇게 일하려면 적어도 3~4명은 더 있어야 되거든요. 그리고 저희는 일용직이랑 계약직을 쓰지 않고 정직원만 고용합니다. 일단 고용안정이 돼야지 자기 실력이 발휘가 되니까요. 이 분야는 적어도 1년에서 2년은 배워야지 실력 발휘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러려면 꾸준히 다니면서 할 수가 있어야 하고요. 김소미 _셀 입사를 꿈꾸는 구직자들이 많겠습니다. 지금 젊은 직원들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황효균 _애니매트로닉스 쪽은 남자가 많고요. 미술 파트 쪽은 여자가 많고. 곽태용 _전체로 따지면 여성 직원이 더 많습니다. 입사 희망자들도 여성 비율이 높고요. 황효균 _분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남자들에게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곽태용 _그런데 사실 기본적으로는 골조도 넣어야 되고 또 되게 무거운 몰드도 돌려서 스킨을 뽑아내야 되고, 작업의 많은 부분이 중노동에 가깝기도 하지요. 반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하고 이 일을 희망하는 분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성비로만 놓고 보면 포트폴리오 지원자 중 여성들이 월등하게 많습니다. 인체 모형을 작업중인 직원 김소미 _최근의 테크니컬 아트를 위한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제작 여건 면엥서 가장 크게 변화를 실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효균 _옛날에 직원이 3D 프린터란 게 나왔으니 하나 사달라고 해서 구매했더니, 스프라이트라고 하는 긁힌 자국이 그대로 다 보이는 수준이어서 ‘아, 이게 될까’ 싶었죠. 초창기에 300만원 주고 하나 사보자고 하는 걸 일단 시험 삼아 들여서 저희들끼리 열쇠고리 같은 것도 뽑아보고 그랬어요. 그렇게 실험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음 버전이 나와요. 지금은 3D 포인트 프린트를 스튜디오에 5~6대 정도 놓고 쓰거든요. 만약 처음 나왔을 때 실험해보지 않았으면 아직도 못 쓰고 있을 거예요. 새로운 장비가 나왔다고 하면 우선 투자를 합니다. 최근에는 직원들이 레이저 각인기를 사달라고 해요. 우주복을 예로 들면 그 위에 NASA라고 새길 수 있는 거죠. 원래는 업체에 외주로 맡겨야 했던 작업을 그 기계를 사면 직접 새길 수 있대요. 200만원 정도 하는 것 같아요. 괜찮을까, 지금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또 직접 사서 써 봐야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거죠, 물론 그냥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곽태용 _저희는 어떤 기계를 원래 목적 그대로 정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변형시켜서, 그러니까 작업의 목적에 맞추어 변형해서 쓰는 거죠. 시나리오에 담긴 천차만별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선 편법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지 만들 수 있고요. 박람회가 열리면 가서 구경하고 응용할 거리가 있으면 구매해서 테스트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박물관에 주고요. (웃음) 작업동 1.5층 3D 프린팅 및 스캐닝실 전경 김소미 _셀이 새 자리로 이사한 이후, 코로나19가 영화계를 강타한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곽태용 _한국은 팬데믹 기간에도 록다운 없이 영화 촬영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시리즈에는 계속 투자가 이뤄졌고, 그런 수요를 저희도 느꼈죠. 약간 반전이었죠. 황효균 _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작년, 재작년 엄청 바빴어요. 시리즈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거죠. 지금 다시 극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영화 작업도 많이 들어가고 있는데요, 저희 욕심만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다른 업체들도 많이 생겨났으니 현업에서 계속 뛰긴 하지만 저희 둘만큼은 전보다는 일에 덜 쫓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영화라는 게 몰릴 때 몰리고 또 없을 때 없고 하니까, 뭐 잘 조율해가면서 해야죠. 김소미 _아직까지도 '이것만큼은 꼭 해보고 싶다' 싶은 도전 과제가 남아 있으신가요? 곽태용 _ 이 일은 전적으로 과제가 주어지는 일인 거잖아요. 연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를 갖고 오면 최대한 그걸 구현해보고 싶은 거죠. 어렸을 때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 항상 꿈꿔왔던 것은 있어요. 예를 들면 <에이리언>이요. 과거에는 이런 작품 해보고 싶다고 하면 뜬구름 잡는 소리였는데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리우드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동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우리의 작업을 레퍼런스 삼는 나라들도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황효균 _한국 콘텐츠의 질이 엄청 높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특수분장을 꿈꾸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고요. 제보받은 게 있는데 중국, 싱가포르에서 한국영화 보면서 저희 레퍼런스를 많이 참고한다고 해요. <옥자>에 쓰인 기술은 할리우드에서 그대로 따라 하고 있어요. 해외에 셀이 소개될 때 <부산행>을 했던 회사라고 하면 다 알아봐 주고요. 그런 게 참 뿌듯합니다. 필자: 김소미(씨네21) 사진촬영: 백종헌 인터뷰 일자: 2022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