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임팩트
- 감독
- 미미 레더
- 제작년도
- 1998
- 출연
- 로버트 듀발, 테아 레오니, 모건 프리먼, 일라이저 우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막스밀리안 셀, 제임스 크롬웰, 더그레이 스코트, 리리 소비에스키
태양계 궤도를 도는 에베레스트 크기만한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박사 과정의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다른 동료들의 열렬한 축하를 받는 가운데 지도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궤도 계산을 하다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6개월 안에 지구와 충돌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딪치는 순간 종말이 펼쳐질 게 명백한 상황이기에 케이트와 민디 박사는 NASA에 보고하는데 이때 정부 관계자들이 극비리에 개입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익숙한 SF 재난 블록버스터를 떠올릴 법하지만, < 돈 룩 업 >은 그 쉽고 흔한 길을 걷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혜성 충돌의 고전적인 마스터피스 <세계가 충돌할 때>나 < 지구의 대참사 >도, 할리우드 스케일의 위력을 담은 < 아마겟돈 >이나 < 딥 임팩트 >도, 운명적인 < 너의 이름은 >이나 로맨틱 코미디의 < 세상 끝까지 21일 >도, 그리고 암울한 아트하우스의 < 멜랑콜리아 >도 보여주지 않았던 세태 풍자에 집중한다. 무능한 정부는 정치 스캔들에서 벗어나 중간 선거에 이기기 위해 혈안이 돼있고, 언론은 심각한 분위기를 피해 가십으로만 소비하려 한다. 여기에 이익에만 눈이 먼 기업과 전문가들의 경고를 외면하고 기만하는 대중들이 가세하며 환장의 대(大)콜라보를 이룬다. SNL 작가 출신으로 윌 페럴과 함께 많은 코미디를 작업한 아담 맥케이 감독은 기후 환경 문제와 막장의 끝을 달린 트럼프 정부 그리고 제작과정 중 실시간으로 터진 코로나 상황을 혜성에 빗대 마치 실제 인류의 대위기 앞에서 벌어질 법해 정말로 무서워(!)지는 블랙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제니퍼 로렌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 조나 힐, 마크 라일런스, 케이트 블란쳇, 타일러 페리, 티모시 살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쿠디, 히메시 파텔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돈 룩 업>은 넷플릭스에서 성공의 지표로 뽑는 “공개된 지 28일 동안 가장 많이 본 영화” 중 < 레드 노티스 >에 이어 역대 2위를 차지했다. 비판의 대상이 다소 편향적이라는 지적과 반복적이고 단선적인 플롯과 고압적인 자세가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는 등 호불호가 갈렸지만, 2021년 오스카를 비롯해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등 후보에 오르며 완성도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극찬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풍자하는데 주력한 작품이지만, 이 극도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재미, 감동을 이끌어내는 건 바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나름 객관성을 유지하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명민한 음악 덕분이다. 니콜라스 브리텔 배리 젠킨스의 < 문라이트 >와 <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으로 오스카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 음악상 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주목을 받은 니콜라스 브리텔은 1980년대생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력을 쌓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다. 뉴욕의 유대 가정에서 자란 브리텔은 피아노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며 고교 시절 줄리어드 음대의 프리 칼리지 프로그램을 이수했으나, 왜 인간이 음악에 매료될까에 궁금증을 느껴 하버드 심리학과에 지원할 정도로 괴짜이자 수재였다. 학부 시절 내내 힙합 연주그룹에서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심취했고, 자신의 하버드 심리학과 동기였던 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처음 연출한 단편 <EVE>에서 그의 소품 “Forgotten Waltz No.2”가 쓰이며 영화음악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포트만이 참여한 < 뉴욕 아이 러브 유 >의 한 꼭지를 비롯해, 각종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리텔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지 않고 월스트리트에서 잘 나가는 해지펀드 매니저이자 외환 딜러로 활동했는데, 그가 결국 다시 음악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건 < 노예 12년 >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부탁으로 한스 짐머가 <노예 12년>의 스코어를 맡았지만 영화 전반에 삽입될 소스 음악들에 대해선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라 새로 외부 음악가를 수혈했는데, 그게 바로 니콜라스 브리텔이었다. 그는 전혀 녹음된 바 없고, 제대로 전승되지도 못한, 잃어버린 노예들의 음악을 위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실제 유행하던 스타일에 맞춰 철저한 고증 끝에 새롭게 만들어 빌보드 매거진으로부터 “<노예 12년> 음악의 비밀병기”란 극찬을 받았다. 금융권 출신답게 브리텔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제작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 영화에 제작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며(그게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 위플래쉬 >였다!), 후에 이 영화가 장편화되며 음악에서 일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확고히 영화음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건 앞서 언급한 배리 젠킨스와 아담 맥케이와 함께 한 일련의 작품들이 성공한 덕분이 크다. < 빅쇼트 > 때 브리텔의 대본에 적힌 전문적인 금융(음악이 아니라!)업계 용어 메모에 놀라 아담 맥케이가 반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이 가진 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미 <빅쇼트>와 < 바이스 >를 통해 복잡하고 민감한 경제와 정치 생태계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음악적으로 정리한 바 있는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번 <돈 룩 업>에서도 멸망을 앞둔 경박한 사회적 혼란과 진실이 잘못된 정보 앞에 덮이는 아이러니, 무능한 정부를 비꼬는 다양하고 세련된 스코어들을 들려준다. 신랄한 풍자와 날 선 묘사들로 불쾌해질 수 있는 영화의 공격성을 최대한 무마하고, 널뛰는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는 여러 고민 끝에 혼란이 절정에 달했던 2차 세계대전 시기 유행한 업 템포의 빅밴드 사운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메인 테마의 색채로 잡는다. 광기와 혼돈을 묘사하면서 멸망이라는 실존적인 문제 앞의 우울함과 슬픔을 내재해야 하고, 동시에 코미디 음악으로서 희극적인 면모도 갖춰야 하기에 복잡하고 미묘한 톤을 유지해야 하는데, 브리텔은 절규하듯 울부짖는 브라스섹션에서 절묘한 부조리의 묘미를 찾았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필사적으로 혜성 충돌을 경고할 때마다 빅밴드 사운드는 더 처절하게 조증 기조를 발하고, 격렬하고 활력 넘치는 사운드는 이들이 무기력하게 실패할 때마다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스티브 잡스의 ‘애플’,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영화 속 대기업 BASH의 다양한 징글(방송이나 광고, 벨소리에서 쓰이는 짧은 곡)을 배치해 공허한 낙관론과 가짜 희망주의를 조롱하며 음악적 효과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니콜라스 브리텔은 이를 위해 영화 속에 나오는 모든 핸드폰 벨소리와 기업 프레젠테이션 속 영상, 방송 시그널과 CF 음악들을 일일이 작업했다. 여기에 영웅적인 블록버스터 사운드(물론 이마저도 비웃기 위해 사용되었다!)나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까지 활용하며 음악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장르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악기에서도 베이스, 드럼, 트럼펫 그리고 색소폰 트리오 등의 빅밴드나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는 물론, 밴조와 만돌린, 토이 피아노, 첼레스타, 파르피사 오르간, 차임벨, 힙합 비트를 포함한 각종 일렉트릭 효과까지 특이하고 독특한 종류를 혼합해 유희적이고 절충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 보인다. 일견 스코어만 듣고 있으면 짧은 큐들에, 워낙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두서없이 펼쳐져 응집력이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영화 내에서 각각 장면마다 강력하게 작용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또한 영화 내에선 니콜라스 브리텔이 공동으로 참여한 두 곡의 노래도 흘러나오는데, 극중 커플로 나오는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가 영화 중반 소행성과 충돌을 경고하기 위해 콘서트장에서 부르는 “Just Look Up”과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게 된 지구인들의 쿠키를 담은 엔드크레딧에 흐르는 “Second Nature”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키드 쿠디의 듀엣송으로 전통적인 사랑 노래처럼 시작하는 “Just Look Up”은 후반 2절에 이르러서 무지한 대중들의 계몽을 일깨우는 과격한 가사로 영화의 조롱 강도를 더한다. 아름다운 파워 발라드에 이질적인 가사가 던지는 격차야말로 이 노래의 백미로, 2021년 강력한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였지만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Second Nature”는 브리텔과 인디 밴드 본 이베어의 리더인 저스틴 버논이 함께 만든 곡으로, 혜성 충돌 후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먹먹해진 감성과 풍자로 쓰린 속을 다스리기에 좋은 몽환적인 포크송이다. 권력과 재력으로 새로운 세상에 이주한 이들을 위한 노래가 아닌, 현시점에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른 선택과 희망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응원가이자 송가라 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비장의 OST 중 하나였던 <돈 룩 업>으로 자신의 세 번째 오스카 음악상 후보에 지명된 니콜라스 브리텔은 아담 맥케이와 함께 HBO에서 4시즌까지 방영된 드라마 <섹세션>과 디즈니 플러스의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 < 안도르 >를 통해 안방 데뷔에도 성공했으며, 24년 배리 젠킨스와 새롭게 도전하는 라이온 킹의 실사화 속편이자 프리퀄인 <무파사: 더 라이언 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Track List 1. "Just Look Up" by Ariana Grande & Kid Cudi 2. Discovery 3. Ephemeris 4. On Hold 5. The Call 6. C-5 Galaxy 7. Don't Look Up (Main Title Theme) 8. BASH Corporate Ident ("Liif") 9. Hyperobject Approaches 10. My Boyfriend Broke Up With Me 11. The Arrest 12. It's A Strange Glorious World 13. The Launch 14. The BASH Presentation 15. Kate Goes Home 16. FEMA-BASH Commercial 17. Arrival At The Hangar 18. There Is A Comet 19. The Comet Appears 20. The Prayer For Stuff 21. The BASH Launch 22. Twenty-Four Drones Is Enough 23. It All Comes Down To This 24. Thanksgiving (Overture To Logic And Knowledge) 25. The End? 26. Memento Mori 27. Don't Look Up (End Credits Suite) 28. Logic Waltz In B Major (Bonus Track) 29. Don't Look Up (Main Title Suite; Bonus Track) 30. Ode To Science (Bonus Track) 31. "Second Nature" by Bon Iver
영화사들이 보내는 수많은 보도자료 속에서 ‘서바이벌리스트’란 제목의 영화를 발견했다. 극장 개봉 없이 IPTV로 직행했다는 선입견에 ‘서바이벌리스트’란 제목이 더해지면서 과거 비디오가게 주인아저씨들이 독신 남성 고객들에게 추천해주었을 법한 액션영화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주인공은 전직 군인. 초야에 묻혀 살지만, 어느 날 그의 액션본능을 일깨우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는 다시 살인 병기가 될 것이다. 할리우드 어디에선가 제작됐을 그 영화들도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 없이 동네 비디오 가게로 직행했다. 그럼에도 ‘서바이벌리스트’가 달리 보였던 건, 풀숲을 배경으로 찍은 한 장의 스틸 때문이었다. 주인공 남자의 얼굴이 너무 말랐던 것이다. 이렇게 삐쩍 마른 남자는 살인 병기일 수가 없다. 영화를 보고나니, 과거의 비디오가게 독신 고객들이 봤으면 잠시 현실을 잊기는커녕, 더 큰 외로움에 사무쳤을 이야기였다. < 서바이벌리스트 >는 ‘인류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영화다. 이 소재는 재미를 보장한다. 멸망이 다가오는 시점을 포착한 영화들, 이를테면 < 딥 임팩트 >나 < 월드워Z > < 눈먼자들의 도시 >와 같은 작품은 거대한 스케일로 관객을 만족시킨다. 멸망 이후의 영화들은 세상을 리부트한 후, 새로운 상상력을 채워 넣는 재미가 있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나 < 12 몽키즈 > <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 같은 영화가 그렇다. 인류는 어떤 과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이며 또 어떤 시스템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 임모탄 같은 무시무시한 독재자의 지배하에 살 수도 있고, 진화한 유인원들과 싸워갈 수도 있고, < 나는 전설이다 >의 로버트 네빌 처럼 다른 사람을 애타게 찾으며 살 수도 있다. ‘인류 멸망’이란 소재가 영화를 만드는 이들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이유다. 영화의 사이즈를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불합리성을 지적할 수도 있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류 멸망’의 소재를 다루면서 거대한 스케일도 없고, 새로운 시스템의 사회를 그리지도 않는 데다, 배경은 숲 속의 오두막뿐이고, 등장인물은 3명뿐인 영화라면 어떨까? 이야기의 배경은 어느 숲이다. 주인공 남자(이 남자의 이름은 없다)는 시체를 옮기는 중이다. 시체의 발목에는 큰 상처가 있다. 이 남자는 < 나는 전설이다 >의 로버트 네빌 처럼 자신이 사는 오두막 주변에 덫을 설치해놓았다. 그가 경계하는 건, 좀비도 아니고 정체 모를 바이러스도 아닌 그냥 사람이다. 그에게 ‘타인’이란 그저 자신을 죽이고 식량을 약탈해가려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외부인을 경계하는 동시에 자신이 먹을 작물을 키우며 하루를 보낸다. 씨앗을 심고 자신의 소변으로 거름을 주는 일을 반복하는 그의 일상은 < 마션 >의 마크 와트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에게 외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시체의 품에서 찾아낸 여러 사진들을 보다가 누군지 모르는 여성의 사진을 간직하며 잠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영화는 숲을 돌아다니며 먹을 걸 찾고, 작물을 키우고, 때로는 사람을 죽이고, 밤이 되면 모든 불을 끄고 잠드는 그의 일상을 약 19분에 걸쳐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남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혼자 있기 때문에 말이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모녀가 그의 오두막을 찾아온다. 그들은 작물을 나눠달라고 간청하지만, 남자는 거절한다. “좀 나눠줄 수 있잖아요? 충분해 보이는데…” 영화가 시작한 지, 약 19분 만에 남자의 첫 대사가 나온다. “그런 생각이 세상을 망쳤지.” 엄마는 딸의 몸을 주는 대가로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한다. 남자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딸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딸이 당신을 마음에 들어한다”며 데리고 살 생각이 없는지 묻는다.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친 남자는 잠시 멈칫한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들을 내보내려는 순간, 딸은 남자의 수염을 면도해주겠다고 다가온다. 그렇게 하룻밤뿐일 거라고 생각했던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 남자는 여전히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지만, 세 사람은 함께 작물을 키우고, 함께 먹고, 한 집에서 함께 자며 지낸다. 하지만 이 모녀는 남자를 죽일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 서바이벌리스트 >에서 인류 멸망의 계기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된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에서는 흔히 전쟁을 비추는 뉴스릴을 연이어 보여주며 설명하지만, <서바이벌리스트>가 사용하는 건 단 두 개의 선이다. 빨간 선과 파란 선. 빨간 선은 세계 인구를 나타내고, 파란 선은 석유 생산량을 나타낸다. 두 선은 곧게 상승곡선을 그린다. 그러다가 파란 선이 먼저 하향곡선을 그리고, 그래서 상승곡선에 있던 빨간 선은 잠시 후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한다. 자원이 고갈되면서 인류도 함께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간결한 설명이다. 영화 속 주인공 남자의 첫 대사가 뜻하는 맥락이기도 하다. “(충분하다는) 그런 생각이 세상을 망쳤지.” 자원의 양과 세계 인구의 그래프가 평행선을 그린다면 세상은 평화롭겠지만 <서바이벌리스트>가 배경으로 삼은 것은 인구에 비해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시점이다. 약탈과 살인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먹어야 살아남는다. 하지만 사람은 많고 먹을 건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죽인다. < 서바이벌리스트 >는 이 단순한 명제들을 가지고 100여 분의 시간을 풍부한 긴장감으로 채우는 영화다. IMDb 크레딧은 마틴 맥캔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 남자만을 ‘서바이벌리스트’로 표기했지만, ‘서바이벌리스트’는 그와 모녀, 그리고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사람들 모두를 뜻한다. 모두 ‘생존주의자’인 것이다. 세 사람에게 잠시 평화가 찾아온 이유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식량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이 남자의 밭을 습격하고 난 후, 이들은 다시 계산을 하기 시작한다. “저 남자를 죽이면 남은 식량으로도 우리 두 사람은 살 수 있어.” 스케일이 거대하지도 않고, 공간은 한정적이고, 인물도 적고, 대사도 거의 없는 영화가 때로는 진정한 영화적인 재미를 알게 해주곤 한다. 더이상 더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영화는 인물과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 서바이벌리스트 > 또한 간결하고 집중력 있는 연출이 오히려 영화적인 재미를 증폭시킨 경우다. 영화를 연출한 스티븐 핑글턴 감독은 2012년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당시 그가 세운 목표는 “CG 없이 만드는 SF영화”였다. 인류 멸망 이후 어느 숲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투쟁이라는 이야기는 그의 목표에 매우 부합하는 콘셉트였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할리우드의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와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라마인데도 블록버스터가 될 수 없는 시나리오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처음 구상보다 더 작은 규모로 제작됐지만, 그 결과 <서바이벌리스트>는 감독의 비전을 더욱 명확히 구현한 작품이 되었다. 영화는 과감한 생략으로 당연히 이어질 장면들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버린다. 대신 이들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 순간에서는 공간의 감각까지 담아내려 공을 들인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연출의 태도가 극 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매우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총은 있지만, 총알은 2개 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총알을 아끼면서 살아간다. 끝내 누군가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남아있는 총알을 걱정한다. 스티븐 핑글턴 감독은 ‘스크린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영화는 별다른 음악이 없었기 때문에 사운드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고 말했다. 주어진 것을 가지고 최대의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의 밖의 감독은 이 질문을 함께 감당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충돌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 서바이벌리스트 >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감정은 그리 1차원적이지 않다. 영화 속 인물들은 살고자 하는 본능과 인간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배회한다. 연민보다 본능의 힘이 더 강했던 탓에 인류의 멸망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찾아온 이 거대한 질문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영화의 선택은 차가운 동시에 쓸쓸하지만, 결국 희망적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관객 또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바이벌리스트>는 ‘인류 멸망’이란 소재로 영화가 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사이즈’를 키우는 것만 빼고 나머지 모두를 구현한 흔치 않은 사례다. 영화적인 재미와 현실의 조명, 인간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거대한 사이즈의 인류멸망 스토리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90년대 말. 영화적 테크놀로지가 극대화되자 할리우드엔 다시 재난영화의 바람이 불었다. 70년대 재난물이 화려한 올스타 캐스팅에서 오는 캐릭터들의 재미였다면 90년대 말에 불어 닥친 재난물의 주인공은 단연 비주얼이었다. 가공할만한 시각효과와 압도적인 입체음향으로 그 어떤 아날로그 효과로는 구현할 수 없던 영상과 소리를 얻게 되자 재난영화는 날개를 달았다. 1995년 역사에 기록된 우주적 재난을 다룬 < 아폴로 13 >을 필두로, 96년엔 토네이도의 위력을 실감 나게 묘사한 < 트위스터 >와 람보가 터널로 들어간 < 데이라잇 >이, 97년엔 두 편의 화산 영화 < 볼케이노 >와 < 단테스 피크 >, 그리고 흥행 기록을 다시 쓴 < 타이타닉 >이 개봉됐다. 98년엔 소행성이 두 번이나 지구를 찾아 < 딥 임팩트 >와 < 아마겟돈 >이 쌍끌이 흥행을 기록했으며, 폭우를 다룬 < 하드 레인 >과 산불을 다룬 < 파이어 스톰 >이 제작되며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유행에 불을 지피고 확실한 인장을 찍은 건 1996년 전미/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빛나는, 외계인 침공의 SF 재난영화 < 인디펜던스 데이 >였다. 90년대 각종 재난영화들 영화는 크게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 7월 2일, 반격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7월 3일, 해결책을 찾아내고 최종 결전에 나서는 7월 4일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윈 앨런표 고전 재난물처럼 여러 인물들과 상황에 포커스를 맞춰 고난에 맞서 싸우고 극복하는 모습들을 담아낸다. 그러나 팍스아메리카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날짜와 제목에, 외계인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조종사와 닭살 돋는 연설을 늘어놓고 직접 전투기를 몰고 출격하는 미국 대통령, 맥OS와 호환되는 외계인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나 너무나도 흔해빠진 음모론 로스웰사건까지 난입하며 황당무계하고 게으른 설정과 오글거리는 캐릭터들로 재난 영화에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은 희생정신과 감동스토리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채, 멍청하고 한심한 영화, 미 패권주의 영화로 낙인찍히고 놀림 받는다. 그러나 이전까진 볼 수 없었던 화끈하게 터져나가는 백악관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거기에 하늘을 뒤덮는 장관의 거대 우주선과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공중전, 도시의 아비규환 등을 담은 다양한 볼거리로 단순한 플롯과 바보 같은 설정을 마취시키며, 미국에서만 3억 불, 전 세계적으로 8억 불이 넘는 흥행을 기록해 롤랜드 에머리히의 지구파괴 미학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그는 < 투모로우 >와 < 2012 >에 이르며 더 강렬하고 큰 스케일로 지구를 초토화시키며 이 분야의 독보적인 대가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애국심을 잔뜩 고취시키는 장엄한 음악으로 영화 보는 동안이나마 논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킨 데이비드 아놀드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데이비드 아놀드 1993년 학창시절 친했던 대니 캐논 감독의 요청으로 < 영 아메리칸 >의 음악을 맡아 데뷔한 데이비드 아놀드는 그 사운드트랙에서 같이 작업한 브욕의 ‘Play Dead’로 UK차트 12위까지 오르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의 탁월한 멜로디 솜씨를 주목한 롤랜드 에머리히와 딘 데블린 콤비는 자신들의 첫 번째 협업작 < 스타게이트 >를 위해 데이비드 아놀드를 픽업했고, 마치 <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 < 스타워즈 >를 섞은 듯한 이국적이고 장엄한 에픽 사운드로 찬사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실패한 서부극이지만 역시나 웅장하고 서정적인 스코어로 숨은 걸작 사운드트랙이란 평을 받은 < 라스트 도그맨 >을 거쳐 다시 에머리히/데블린 콤비와 뭉친 <인디펜던스 데이>은 포스트 존 윌리엄스라는 극찬을 안기며 그를 성공적으로 메이저에 안착시켰다. 단 네 작품 만에, 3년이란 단기간에 그가 이룩한 업적이었다. 이어 18번째 007시리즈 < 네버 다이 > 음악에 전격적으로 기용, 존 배리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전통적인 사운드에 신세대적인 감각을 덧입혀 훌륭하게 메꿨으며, 비록 흥행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음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던 < 고질라 >를 담당해 ‘사이즈의 영화음악’의 진수를 펼쳐 보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터트린 샴페인이었던 걸까. 그는 그 이후 인상적인 결과물을 낳지 못했다. 5편의 007 시리즈와 존 싱글턴과 마이클 앱티드 감독과의 유대, 에드가 라이트 같은 젊은 피와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사운드 지평을 넓혔지만, 데뷔 초기 그가 보여줬던 놀라운 임팩트에 비하면 현재의 필모가 다소 주춤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만 최근 BBC 드라마 < 셜록 >의 성공과 30회 런던올림픽의 개·폐막식 음악 감독을 맡으며 역량을 다시금 뽐내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음악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의 규범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최대한 신디와 일렉트릭 악기를 배제한 채 100인조에 이르는 풀 오케스트라와 46인조의 코러스를 대동해 압도적인 고전 심포닉 사운드의 위용을 펼쳐 보인다. 마치 존 윌리엄스로 대표되는 70년대 재난물과 80년대 블록버스터의 기운을 모두 한데 합쳐놓은 이 엄청난 스코어의 박력은 지구를 박살 내는데 혈안이 된 에머리히의 비주얼적 야심에 못지않다. 그는 특히나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3개의 인상적인 라이트모티프를 가지고 인간과 외계인들 간의 혈전에 집중하는데, 가장 귀에 쉽게 들리는 건 <인디펜던스 데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테마, 애국심을 팍팍 고취시키는 영웅적인 팡파르다. 승전보를 알리는 듯 희망적이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이 곡조는 외계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단초를 발견했을 때, 전쟁의 주도권을 거머쥐었을 때 얇고 높은 피콜로와 마칭 스네어를 곁들어 군악대스러운 편곡으로도 사용되는데, 브라스와 혼, 퍼커션이 한데 어우러지며 진격의 나팔을 힘차게 불던 과거 전쟁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로부터 전쟁영화음악에 있어 말콤 아놀드나 존 에디슨, 론 굿윈과 벤자민 프랑켈 등 걸출한 작곡가가 많았던 영국이기에 그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순 없을 듯하다. 두 번째 모티브 세 번째 모티브 두 번째 모티브는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사연을 풀어내던 멜로드라마적인 테마로 스트링이 주가 되어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숨 가쁘게 달려온 영화에 여백과 여운을 불어넣는다. 종종 숭고하고 거룩한 합창대의 목소리를 빌어 더 강력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주로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팡파르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극적인 효과를 노리거나 다양하게 파생·변주돼 가족애 및 캐릭터들의 상호 연대감을 복돋아 주는데 주력한다. 마지막 모티브는 외계인 침공을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혼돈의 사운드로 울부짖는 혼과 질주하는 브라스를 전면에 배치해 압도적인 힘과 공포감을 느끼도록 설정했다. 마치 존 윌리엄스의 ‘임페리얼 마치’나 홀스트의 행성 중 ‘화성’을 듣는 듯 고전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위압감을 선사하는데, 다양한 퍼커션과 드럼을 활용해 침공에 대한 긴박감과 스케일을 극대화시켰다. 그들의 절대적인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마는 나약한 인간들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큐이기도 하다. 편곡자이자 지휘자인 니콜라스 도드의 솜씨가 두드러지는 부분으로 이 3개의 주된 선율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며 얄팍하기 그지없는 영화에 입체적인 깊이와 실감 나는 무게감을 던져주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이 사운드트랙으로 그해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사운드트랙은 96년 영화 개봉에 맞춰 BMG에서 발매되었지만 온전한 음원을 다 담은 건 아니었다. 팬들의 성화가 빗발치자 2010년 라라랜드 레코드에서 5,000매 한정으로 CD 2장, 총 130분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완전판을 발매했다. 데뷔 초기 번뜩이던 데이비드 아놀드의 위력적인 사운드와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차기작으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을 찍겠다고 공언했다. 2015년 7월 3일로 개봉일마저 공개한 상태다. 2000년 <패트리어트> 부터 공동 작업이 불발된 이후 에머리히는 같은 독일 태생의 영화음악가 해롤드 클로저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부디 제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에선 그들이 다시 재회하길 기대해본다. Victory Track List DISC ONE 1.1969: We Came In Peace 2.S.E.T.I.-Radio Signal 3.Mysto Bridge/Satellite Collision/ Destroyers Disengage/Russell Casse-Pilot 4.First Sighting/AWAC·Attack 5.The Darkest Day 6.Moving Day/Countdown 7.Cancelled Leave 8.Commence Lift-off/Parabolic Indenwhat? 9.Evacuation 10.Firestorm 11.Aftermath 12.Base Attack 13.Marilyn Found 14.Area 51/The Big Tamale/Formaldehyde Freak Show 15.El Toro Destroyed 16.Slimey Wakes Up 17.Target Remains/Rescue 18.The Death of Marilyn/Dad’s A?Genius 19.Alien Ship Powers Up 20.International Code 21.Wedding 22.The President’s Speech DISC TWO 1.Just In Case/Attacker Fires Up 2.The Launch Tunnel/Mutha Ship/Virus Uploaded 3.Hide!/Russell’s Packin’ (The Day We Fight Back) 4.He Did It 5.Jolly Roger 6.Victory 7.End Credits BONUS TRACKS 8.1969: We Came In Peace ?Alt. 9. Destroyers Disengage (No Choir) 10. Cancelled Leave -Alt. 11. Commence Lift-off -Alt. 12. Base Attack (Segment-Film Version) 13. Marilyn Found (No Choir) 14. Target Remains/Rescue -Alt. 15. Dad’s A?Genius -Alt. 16. Attacker Fires Up (Original Version-No Choir) 17. Virus Uploaded -Alt. 18. The Day We Fight Back (Original Version) 19.Jolly Roger -Alt. 20. End Credits (Segment, No Ch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