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 감독
- 다미엔 차젤레
- 제작년도
- 2016
- 출연
-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존 레전드, 로즈마리 드윗, 테리 월터스, 칼리 헤르난데즈, J.K. 시몬스, 제이슨 퍼치스
영화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는 지난 2017년 개봉해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작품이다. 어느 촬영 현장에 나타난 좀비가 스태프들을 뜯어먹는 잔혹한 장면들로 시작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고단함을 보여주며 끝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제목에 영화의 슬픔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배우가 연기를 못하더라도, 스태프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거나 술에 취해 있더라도, 심지어 좀비가 나타나도 카메라는 멈추면 안 된다.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 스태프는 지금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코로나 19 버전’이 제작된다고 보도했다. 이미 지난 2019년 속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이 개봉되기도 했지만, 코로나 19 버전은 그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이번에 제작되는 작품의 제목은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원격 대작전! >(이하 <원격 대작전!>)이다. 코로나 19로 외출 금지와 자가격리를 강요받은 일본의 현재가 영화의 배경이다. 자가격리 중인 영화 프로듀서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온다. "이달 중으로 재연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배우들도 모두 자가격리 중인 상태. 결국 프로듀서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원격으로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1편의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영상 통화 화면이나 배우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찍은 화면을 편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우들은 집에 있는 옷으로 의상을 해결할 것이고, 자신의 대사를 하는 장면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에 반응하는 장면까지 스마트폰으로 찍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촬영감독은 역시 자신의 집을 이용해 여러 인서트 샷을 찍어줄 것 같다. 영화적인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시도만으로도 흥미롭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전 세계의 영화산업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했고, 칸 영화제마저 개최 여부가 불확실하다. 전 세계 영화인들은 먼저 영화팬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겨울왕국>의 제작진과 목소리 배우는 각자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목소리를 더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앳 홈 위드 올라프>를 유튜브로 공개했다. <원더우먼>의 갤 가돗과 나탈리 포트먼을 비롯한 22명의 배우들은 존 레넌의 ‘이매진’을 부르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보여준 사실은 영화가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세계에서 영화 산업은 버티고 설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산업 자체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미국의 라이언스게이트는 <라라랜드>와 <헝거게임> 등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관련 행사에서 성금을 모금해 영화 산업 근로자를 돕는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영화인들도 당장 수입이 없는 스태프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원격 대작전!>의 사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작품은 자가격리 중인 시민들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목적으로만 제작된 게 아니다. 앞선 영화인들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의 바람에 의한 것이었다. 영화에 대한 영화팬들의 관심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 업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업계를 떠나면 안 된다. 그런데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영화 현장 또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 원격 제작으로 만들어지는 이번 작품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창출하는 하나의 팁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일거리가 없는 영화인들에게 생활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일을 만드는 맥락에서 <원격 대작전!>을 기획한 것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약 3천만원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학교 워크숍 작품이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영화적인 매력을 구현했던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코로나 19’가 위기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됐을 것이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말처럼 <원격 대작전!>이 이후의 영화산업에 팁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까? <원격 대작전!>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은 상황에서 찾아낸 자구책이지만,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의 세계에서도 ‘원격’과 영화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지난 오스카 시상식에서 서로에 대한 존경을 나누었던 봉준호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각자의 공간에서 촬영한 영상과 대화를 공유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HBO가 제작하는 드라마판 <기생충>의 주인공으로 거론된 마크 러팔로와 송강호가 ZOOM을 이용해 나는 대화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쉽게 협업하지 못했던 전 세계 영화인들이 ‘원격’으로 만나고, 그렇게 나온 작품을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HBO MAX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원격’으로 감상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 19’는 세상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불가피하게 시작된 ‘온라인 개학’은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 ‘원격 교육’의 시험대가 되었고, ‘재택근무’ 또한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최근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디즈니를 앞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 그래도 변화의 시기에 있던 영화의 세상도 ‘코로나 19’로 인해 더 빨리 변하는 중이다. <원격 대작전!>은 그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을 수 있다는 안심을 주는 사례다. 이 작품은 5월 초까지 완성된 후, 유튜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무더위가 기지개를 펴는 지난 초여름 어느 날, 콩닥콩닥 가슴 설레며 프랑스 앙시로 현장실습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기막힌 뮤직비디오 한 편을 메신저로 날려 보냈다. 오렌 라비(Oren Lavie)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Her Morning Elegance >이 몽블랑 아랫마실 앙시 호숫가의 느리고 여유 있게 움직이는 객체들을 멋진 영상으로 표현해야 하는 학생들의 창작활동에 도움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Sun been down for days 며칠째 해가 나오질 않네요. A pretty flower in a vase 꽃병 속엔 어여쁜 꽃 A slipper by the fireplace 벽난로 옆엔 슬리퍼 한 짝 A cello lying in its case 케이스 안에 누워있는 첼로 Soon she's down the stairs 이제 그녀가 계단을 내려와요. Her morning elegance she wears 그녀가 갖춘 아침의 우아함 The sound of water makes her dream 물소리가 그녀를 꿈꾸게 하네요. 작품의 도입부는 읊조리는 음악과 함께 묘한 현기증 일으키는 스톱모션(픽실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느낌은 프랑스 슈농소 성 앞에 놓인 이브 생 로랑의 장식용 양 조각이 삶의 풍요를 위한 미적 환영이 된 것처럼, 고립된 평면 침상을 무한공간으로 확장한 작가의 발칙한 상상력이 3분여간 펼쳐진다. 제작예산문제로 ‘이틀’이라는 짧은 촬영기간 동안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프레임마다 놀랍도록 섬세하게 연출한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의 신체 언어, 음악에 똑 떨어지게 맞춘 립싱크, 그리고 < 라라랜드 >를 넘어서는 여주인공 쉬르 숌론(shir shomron)의 매혹적인 잠옷 댄싱까지 모든 것이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한다. 앙시의 현장실습을 다녀온 날로부터 짙은 여독과 함께 잠 못 이루던 열대야가 뜸해지는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영상자료원으로부터 꽤 오랜만에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추천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더위가 꺾이는 말복까지 여러 날을 지나며 개인적으로 아카이빙했던 자료와 영화제 본선작, 최신 업로드된 유튜브를 뒤졌지만 마땅한 작품을 찾지 못한 채 흔들의자에서 선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던 중 꿈결에서 불현듯 오렌 라비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이 떠올랐다. 아마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새로운 뉴스가 연일 이어지면서 어지럽고 살벌한 악의 도시 ‘고담시’로 박제화 되어가는 우리나라와 세계 곳곳의 공포현실에 부드러운 충격 완화제가 되길 기대하면서 이 작품을 무의식중에 선택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각극장’(1892), <하르피아>(1979) 현대는 100년 세월이 10년, 10년 발전이 1년 만에 이루어질 정도로 쫓아가기 벅찬, 총알같이 빠른 급변의 세상이 되었다. 에밀 레이노가 프락시노스코프를 이용해 만든 ‘시각극장’(1892)의 마술 같은 시각놀이와 라울 세르베가 연출한 <하르피아 Harpya>(1979)의 기묘한 영상이 당시로서는 ‘억’ 소리 나는 충격이었겠지만 이제는 낡은 골동품이 된 것처럼, 라이드 머신에 쌀랑한 에어컨 바람과 입안을 톡 쏘는 얼음 콜라를 마셔도 다가오는 졸음을 쫓기 어려워진 그렇고 그런 3D 애니메이션들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이종교잡으로 진화한 간사하고 예민한 감성을 가진 인간들에겐 식상해진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은 세계 최고의 스톱모션회사 라이카(Laika)의 장편 애니메이션 < 쿠보와 전설의 악기 >(2016)에 비견해도 손색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 자신이 직접 부르고 녹음한 음악에 범상치 않은 영상의 일탈을 잘 녹인 보기 드문 걸작으로, 기법면에서는 죠르쥬 멜리어스의 < 달세계 여행 >(1902)에서 출발한 특수효과나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그리고 이제는 변곡점 시대에 이른 3D입체영상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통적인 스톱모션과 세련된 메타몰포시스 영상 언어, 그리고 시적 몽타주 기법을 에셔의 초현실 그림처럼 우아한 몽환으로 엮어낸 빼어난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오렌 라비는 앨범 전체의 작사, 작곡은 물론 가수로 출연하고, 감독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 작업 외에도 극작가, 연극 연출가, 무대 감독, 동화 작가를 종횡무진 오가는 다재다능한 예술적 소양을 갖춘 아티스트다. 올해는 오렌 라비의 철학적인 우화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독일 그림작가 볼프 에를브루흐(Wolf Erlbruch)의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일러스트 협업으로 또 한편의 어른아이들을 위한 명작동화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도 출간하였다. 그 동화책의 한 대목이 머리와 가슴으로 쏘옥 들어온다. “와우 멋진걸! 내가 정말 ‘나’였으면 좋겠어” ... ... “아! 네가 나구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아무도 몰랐던 곰 이야기』 한편 오렌 라비와 공동 연출을 담당했던 유발 나단, 메라브 나단(Yuval Nathan, Merav Nathan) 부부는 여러 편의 스톱모션 뮤직비디오와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다.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시를 시각적으로 잘 해석한 <로빈 Robin>(2014)과 모래 질감의 속성을 잘 살린 <바다거북의 노래 Lose This Child>(2010)는 또 한편의 감수성 진한 뮤직비디오라고 할 수 있다. <로빈>(2014), <바다거북의 노래>(2010) 혹시 점심시간 전이라면 오렌 라비의 < 그녀의 우아한 아침 >을 애피타이저로 식욕을 돋우고, 식사 끝난 오후라면 중독성 있는 부다바(buddabar)의 라운지음악 ‘Hotel Costes vol 10- paper aeroplane’을 디저트로 들으면서 고소달콤씁쓸한 거품이 코끝을 적시는 피넛키오와 아인슈페너의 절묘하게 변해가는 커피 맛을 생채기 난 감성의 치유제로 권해본다. Where people are pleasantly strange 사람들이 유쾌하게 낯설고 And counting the change 잔돈을 세고 있는 곳 And she goes 그리고 그녀가 가네요.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Nobody knows 아무도 모르게
90년대 말. 영화적 테크놀로지가 극대화되자 할리우드엔 다시 재난영화의 바람이 불었다. 70년대 재난물이 화려한 올스타 캐스팅에서 오는 캐릭터들의 재미였다면 90년대 말에 불어 닥친 재난물의 주인공은 단연 비주얼이었다. 가공할만한 시각효과와 압도적인 입체음향으로 그 어떤 아날로그 효과로는 구현할 수 없던 영상과 소리를 얻게 되자 재난영화는 날개를 달았다. 1995년 역사에 기록된 우주적 재난을 다룬 < 아폴로 13 >을 필두로, 96년엔 토네이도의 위력을 실감 나게 묘사한 < 트위스터 >와 람보가 터널로 들어간 < 데이라잇 >이, 97년엔 두 편의 화산 영화 < 볼케이노 >와 < 단테스 피크 >, 그리고 흥행 기록을 다시 쓴 < 타이타닉 >이 개봉됐다. 98년엔 소행성이 두 번이나 지구를 찾아 < 딥 임팩트 >와 < 아마겟돈 >이 쌍끌이 흥행을 기록했으며, 폭우를 다룬 < 하드 레인 >과 산불을 다룬 < 파이어 스톰 >이 제작되며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유행에 불을 지피고 확실한 인장을 찍은 건 1996년 전미/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빛나는, 외계인 침공의 SF 재난영화 < 인디펜던스 데이 >였다. 90년대 각종 재난영화들 영화는 크게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 7월 2일, 반격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마는 7월 3일, 해결책을 찾아내고 최종 결전에 나서는 7월 4일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윈 앨런표 고전 재난물처럼 여러 인물들과 상황에 포커스를 맞춰 고난에 맞서 싸우고 극복하는 모습들을 담아낸다. 그러나 팍스아메리카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날짜와 제목에, 외계인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조종사와 닭살 돋는 연설을 늘어놓고 직접 전투기를 몰고 출격하는 미국 대통령, 맥OS와 호환되는 외계인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나 너무나도 흔해빠진 음모론 로스웰사건까지 난입하며 황당무계하고 게으른 설정과 오글거리는 캐릭터들로 재난 영화에 필수 덕목으로 자리 잡은 희생정신과 감동스토리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채, 멍청하고 한심한 영화, 미 패권주의 영화로 낙인찍히고 놀림 받는다. 그러나 이전까진 볼 수 없었던 화끈하게 터져나가는 백악관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거기에 하늘을 뒤덮는 장관의 거대 우주선과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공중전, 도시의 아비규환 등을 담은 다양한 볼거리로 단순한 플롯과 바보 같은 설정을 마취시키며, 미국에서만 3억 불, 전 세계적으로 8억 불이 넘는 흥행을 기록해 롤랜드 에머리히의 지구파괴 미학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그는 < 투모로우 >와 < 2012 >에 이르며 더 강렬하고 큰 스케일로 지구를 초토화시키며 이 분야의 독보적인 대가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애국심을 잔뜩 고취시키는 장엄한 음악으로 영화 보는 동안이나마 논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킨 데이비드 아놀드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데이비드 아놀드 1993년 학창시절 친했던 대니 캐논 감독의 요청으로 < 영 아메리칸 >의 음악을 맡아 데뷔한 데이비드 아놀드는 그 사운드트랙에서 같이 작업한 브욕의 ‘Play Dead’로 UK차트 12위까지 오르며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의 탁월한 멜로디 솜씨를 주목한 롤랜드 에머리히와 딘 데블린 콤비는 자신들의 첫 번째 협업작 < 스타게이트 >를 위해 데이비드 아놀드를 픽업했고, 마치 <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 < 스타워즈 >를 섞은 듯한 이국적이고 장엄한 에픽 사운드로 찬사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렸다. 실패한 서부극이지만 역시나 웅장하고 서정적인 스코어로 숨은 걸작 사운드트랙이란 평을 받은 < 라스트 도그맨 >을 거쳐 다시 에머리히/데블린 콤비와 뭉친 <인디펜던스 데이>은 포스트 존 윌리엄스라는 극찬을 안기며 그를 성공적으로 메이저에 안착시켰다. 단 네 작품 만에, 3년이란 단기간에 그가 이룩한 업적이었다. 이어 18번째 007시리즈 < 네버 다이 > 음악에 전격적으로 기용, 존 배리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전통적인 사운드에 신세대적인 감각을 덧입혀 훌륭하게 메꿨으며, 비록 흥행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음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던 < 고질라 >를 담당해 ‘사이즈의 영화음악’의 진수를 펼쳐 보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터트린 샴페인이었던 걸까. 그는 그 이후 인상적인 결과물을 낳지 못했다. 5편의 007 시리즈와 존 싱글턴과 마이클 앱티드 감독과의 유대, 에드가 라이트 같은 젊은 피와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사운드 지평을 넓혔지만, 데뷔 초기 그가 보여줬던 놀라운 임팩트에 비하면 현재의 필모가 다소 주춤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만 최근 BBC 드라마 < 셜록 >의 성공과 30회 런던올림픽의 개·폐막식 음악 감독을 맡으며 역량을 다시금 뽐내고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음악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코어의 규범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최대한 신디와 일렉트릭 악기를 배제한 채 100인조에 이르는 풀 오케스트라와 46인조의 코러스를 대동해 압도적인 고전 심포닉 사운드의 위용을 펼쳐 보인다. 마치 존 윌리엄스로 대표되는 70년대 재난물과 80년대 블록버스터의 기운을 모두 한데 합쳐놓은 이 엄청난 스코어의 박력은 지구를 박살 내는데 혈안이 된 에머리히의 비주얼적 야심에 못지않다. 그는 특히나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3개의 인상적인 라이트모티프를 가지고 인간과 외계인들 간의 혈전에 집중하는데, 가장 귀에 쉽게 들리는 건 <인디펜던스 데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테마, 애국심을 팍팍 고취시키는 영웅적인 팡파르다. 승전보를 알리는 듯 희망적이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이 곡조는 외계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의 단초를 발견했을 때, 전쟁의 주도권을 거머쥐었을 때 얇고 높은 피콜로와 마칭 스네어를 곁들어 군악대스러운 편곡으로도 사용되는데, 브라스와 혼, 퍼커션이 한데 어우러지며 진격의 나팔을 힘차게 불던 과거 전쟁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로부터 전쟁영화음악에 있어 말콤 아놀드나 존 에디슨, 론 굿윈과 벤자민 프랑켈 등 걸출한 작곡가가 많았던 영국이기에 그에 대한 간접적인 영향력도 무시할 순 없을 듯하다. 두 번째 모티브 세 번째 모티브 두 번째 모티브는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등장인물들의 고뇌와 사연을 풀어내던 멜로드라마적인 테마로 스트링이 주가 되어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숨 가쁘게 달려온 영화에 여백과 여운을 불어넣는다. 종종 숭고하고 거룩한 합창대의 목소리를 빌어 더 강력하게 감정선을 자극하지만, 주로 단독으로 쓰이기보다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팡파르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극적인 효과를 노리거나 다양하게 파생·변주돼 가족애 및 캐릭터들의 상호 연대감을 복돋아 주는데 주력한다. 마지막 모티브는 외계인 침공을 암시하는 어둡고 무거운 혼돈의 사운드로 울부짖는 혼과 질주하는 브라스를 전면에 배치해 압도적인 힘과 공포감을 느끼도록 설정했다. 마치 존 윌리엄스의 ‘임페리얼 마치’나 홀스트의 행성 중 ‘화성’을 듣는 듯 고전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위압감을 선사하는데, 다양한 퍼커션과 드럼을 활용해 침공에 대한 긴박감과 스케일을 극대화시켰다. 그들의 절대적인 힘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마는 나약한 인간들의 참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큐이기도 하다. 편곡자이자 지휘자인 니콜라스 도드의 솜씨가 두드러지는 부분으로 이 3개의 주된 선율은 서로 교차하고 충돌하며 얄팍하기 그지없는 영화에 입체적인 깊이와 실감 나는 무게감을 던져주었다. 데이비드 아놀드는 이 사운드트랙으로 그해 그래미상을 거머쥐었다. 사운드트랙은 96년 영화 개봉에 맞춰 BMG에서 발매되었지만 온전한 음원을 다 담은 건 아니었다. 팬들의 성화가 빗발치자 2010년 라라랜드 레코드에서 5,000매 한정으로 CD 2장, 총 130분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완전판을 발매했다. 데뷔 초기 번뜩이던 데이비드 아놀드의 위력적인 사운드와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차기작으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을 찍겠다고 공언했다. 2015년 7월 3일로 개봉일마저 공개한 상태다. 2000년 <패트리어트> 부터 공동 작업이 불발된 이후 에머리히는 같은 독일 태생의 영화음악가 해롤드 클로저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부디 제발 <인디펜던스 데이> 후속편에선 그들이 다시 재회하길 기대해본다. Victory Track List DISC ONE 1.1969: We Came In Peace 2.S.E.T.I.-Radio Signal 3.Mysto Bridge/Satellite Collision/ Destroyers Disengage/Russell Casse-Pilot 4.First Sighting/AWAC·Attack 5.The Darkest Day 6.Moving Day/Countdown 7.Cancelled Leave 8.Commence Lift-off/Parabolic Indenwhat? 9.Evacuation 10.Firestorm 11.Aftermath 12.Base Attack 13.Marilyn Found 14.Area 51/The Big Tamale/Formaldehyde Freak Show 15.El Toro Destroyed 16.Slimey Wakes Up 17.Target Remains/Rescue 18.The Death of Marilyn/Dad’s A?Genius 19.Alien Ship Powers Up 20.International Code 21.Wedding 22.The President’s Speech DISC TWO 1.Just In Case/Attacker Fires Up 2.The Launch Tunnel/Mutha Ship/Virus Uploaded 3.Hide!/Russell’s Packin’ (The Day We Fight Back) 4.He Did It 5.Jolly Roger 6.Victory 7.End Credits BONUS TRACKS 8.1969: We Came In Peace ?Alt. 9. Destroyers Disengage (No Choir) 10. Cancelled Leave -Alt. 11. Commence Lift-off -Alt. 12. Base Attack (Segment-Film Version) 13. Marilyn Found (No Choir) 14. Target Remains/Rescue -Alt. 15. Dad’s A?Genius -Alt. 16. Attacker Fires Up (Original Version-No Choir) 17. Virus Uploaded -Alt. 18. The Day We Fight Back (Original Version) 19.Jolly Roger -Alt. 20. End Credits (Segment, No Cho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