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호텔 비상구
- 감독
- 장영일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엄도일, 유아라, 김형자, 박규식, 권혁진, 차성춘, 김은지, 김다은, 이한웅, 문철재, 주삼기, 이창제
<대불 +> 작년에는 전반적으로 흉작 또는 주목할 만한 영화가 없었다는 평들이 많지만, 아시아(독립)영화들로 보자면 나름대로 의미 있고 흥미로운 한 해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성장하는 영화산업 규모와 더불어 급격하게 변화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의 아시아 영화들 또는 주목할 만한 감독들, 혹은 어떤 경향을 보여주는 몇몇 작품을 통해 돌아보는 2017년 아시아독립영화에 대한 일종의 일람표이자 짧은 코멘트. 올해 중화권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영화는 <대불+>이다. 동명의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확장하면서, 아이폰과 아이폰 플러스의 차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대불+>로 타이틀을 붙인 이 대담하고 어두운 블랙코미디 영화는 대만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던 후앙신야오 감독의 첫 번째 장편극영화인 <대불+>의 탄생과정에는 <일로순풍>과 <실혼>의 감독 청몽홍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추앙신야오의 단편을 본 청몽홍 감독이 자신이 제작자로 참여할 테니 장편 버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던 것. 각본가이자 감독인 청몽홍이 촬영감독으로 참여할 때는 ‘나카시마 나가오Nakashima Nagao’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데, <대불+>에는 제작자로 그리고 촬영을 맡으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리고 <일로순풍>에 출연했던 배우 대립인(다이리 런, 레온 다이-배우 계륜미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홍콩 우산혁명에 대한 적극적 지지 이후 중국에서의 활동에 상당한 제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불상공장의 사장 케빈 역으로 출연해 중심을 잡아주었다. 영화는 거대한 청동 불상을 제조하는 공장이 배경이다. 공장 야간경비원 피클은 고물수집상이자 친구인 벨리 버튼과 함께 매일 밤 도색잡지나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무료해진 둘은 공장 사장인 케빈의 고급차량에 달려있던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보기 시작하는데, 사장의 은밀한 사생활과 불륜이 담긴 영상을 보던 중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우연히 스치듯 만난 적이 있는 사장의 내연녀와 한밤의 살인사건, 사라진 그녀, 최근 공정보다 훨씬 빨리 완성된 거대한 불상, 그리고 피클과 벨리 버튼에게 다가오는 위협의 그림자. 세련된 만듦새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대담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하는 <대불+>은 대만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코엔 형제를 연상시키는 블랙코미디,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확장하는 사건의 고리 등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두 가지 정도를 언급하자면 우선, 흑백과 컬러의 대비를 통한 계급 관계에 대한 노골적인 언급. 피클과 벨리 버튼이 등장하는 비루한 일상은 흑백으로, 사장 케빈이 등장하는 블랙박스 영상은 컬러로 처리하는데, 소외계층의 파토스를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설명처럼, 영화는 둘의 비루함과 무력감은 단조로운 모노톤으로 담아내고, 사장 케빈의 일상이나 정치인, 종교인, 지역 유지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선명한 컬러로 담아내면서 분명한 의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관음증의 세계. 자동차에서 벌어지는 내연녀와의 불륜 장면, 고속도로에서 싸우는 장면이나 러브호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장면 등은 실제 블랙박스 영상처럼 보이는데, TV에서나 접하던 가진 자들과 유한계급들의 은밀한 세계를 피클과 벨리 버튼과 함께 엿보면서 관객들도 두 세계를 함께 오가는 영화적 체험을 하게 된다.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2017년 단연 주목받았던 국가는 인도네시아다.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몰리 수리야 감독의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은 한 여성이 자신이 살해한 남성의 잘린 머리를 들고 경찰서로 가서 자수한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거장 가린 누그로호가 작업한 3페이지의 트리트먼트로 시작된 프로젝트이자 부산국제영화제 APM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작품. 인도네시아 동부 숨바섬의 아름답지만 황량한 느낌의 사막을 공간으로, 복수와 구원이라는 서부극의 전통적인 모티브를 살짝 변형하고 여러 장르를 혼합한 독특한 형식과 색깔로 올해 최고의 아시아영화로 호평받았다. 잘린 남성의 머리를 들고 경찰서에 가기 위해 황토색 사막을 가로지르는, 서부극 카우보이 같은 말리나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영화로 인도네시아 예술영화를 주도하는 최고의 제작진이 참여해 프로덕션 디자인, 촬영, 음악까지 최상의 결과물로 완성했다. 상반기에 <살인자 말리나의 4막극>이 있었다면 하반기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로 세계를 매혹했던 카밀라 안디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단연 주목을 받았다. 병상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쌍둥이 남동생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어린 동생을 떠나보내야 하는 누나 탄트리의 내면과 불안한 심리가 춤과 노래, 그리고 놀이를 통해 환상적이고 마법적인 이미지들로 펼쳐진다. 3년전 론칭한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첫 경쟁부문인 플랫폼은 주로 서양권 영화들로 채워지는데(<문라이트>와 <재키>와 같은 영화들이 여기서 경쟁했다) 아시아영화로는 드물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초청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인도네시아 독립 예술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자 든든한 후견인을 자임하는 가린 누그로호의 딸로도 잘 알려져 있는 카밀라 안디니는 족자카르타에서 감독, 제작자인 이파 이스판샤와 함께 족자카르타 영화학교에서 강의와 연출지도를 하고 있다. 족자카르타에서는 매해 12월이면 족자-넷팩아시아영화제가 열리는데, 가린 누그로호와 이파, 그리고 감독 이스마일 바스베스(<회전목마는 멈추지 않는다>)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16년에 4천 명 정도에 불과했던 관객 수가 올해의 경우, 3배 가까운 12,000명 정도로 증가했고, 무엇보다 관객들이 대부분 20대나 대학생들이어서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특별전 <가린과 넥스트 제너레이션: 인도네시아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서 가린 이후 그의 제자, 후배 감독과 제작자들이 새로운 산업적 토대와 미학구축을 통해 성과를 거뒀고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하나의 주요한 경향이자 동력으로 언급했던 ‘여성파워’가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할 수 있는 2017년이었다. <섹시 두르가> <뉴턴> 마지막으로 인도영화. 방대한 시장에 비해 독립. 예술영화는 여전히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도영화는 2013년 <런치박스>의 국제적 성공(2008년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미친 영화도 아주 크다) 이후 새로운 변화를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발리우드 상업영화의 자장 아래서 예술. 독립영화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테스트가 활발한데, 2017년의 경우는 그 가능성의 희망을 본 해이기도, 절망을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 시작은 로테르담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한 사날 쿠마르 사시다란 감독의 <섹시 두르가 Sexy Durga>다. 시나리오는 물론 스토리도 없이 배우와 소규모 팀을 꾸려 22일 동안 촬영한 이 저예산 말라야람어 영화는 인도 북부출신 여성과 케랄라 출신 남성이 야반도주를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둠이 짙게 내린 도로를 따라 역을 향해 걷는 커플에게 지나가는 승합차의 남성들이 합승을 제안하고, 차량에 올라탄 이들은 지옥을 경험한다. 다문화, 다인종으로 구성된 인도 사회에 내재된 공포를 그로테스크하게 담아내며 호평을 받은 영화지만, 오랫동안 인도 영화계를 짓눌러온 검열의 날을 비껴가진 못했는데, <S. Durga>로 제목을 바꾸고 일부 장면을 덜어냈지만 지금까지 자국 내 상영은 물론 개봉까지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다. 2017년 인도독립영화인들에게 가장 큰 희망과 기대를 안겨준 작품은 아미트 마수카 감독의 <뉴턴>이다.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서 첫 공개된 이 영화는 마오주의 반군과 정부군이 대립하고 있는 차티스가르주 분쟁지역을 배경으로, 갓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대기 중인 뉴턴이 이 지역주민들의 투표지원 업무에 자원하면서 생기는 과정을 따라간다. 강직하지만 융통성 없는 공무원 뉴턴과 지역을 관할하는 정부군 소속 군인들, 그리고 선거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변방 마을 주민들을 통해 인도 사회를 재치 있게 풍자하는 이 블랙코미디는 인도독립영화인들과 시네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며 새로운 대안 영화로까지 평가를 받은 작품. 이후 개봉을 통해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으며 특히 쟁쟁한 상업영화들을 제치고 2018년 아카데미영화상 외국어영화상 부문 인도 출품작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다. 아쉽게도 <섹시 두르가>는 아직 한국에서 소개된 적이 없으며, <뉴턴>의 경우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바 있다.
지금도 일본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AKB48에서 처음으로 센터를 맡았던 마에다 아츠코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오프닝이 지나가고 나면, 영화 제목이 나온다. ‘사요나라 가부키초’. 안녕 가부키초, 라는 서정적인 제목을,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적인 ‘러브호텔’로 바꾼 것 아닐까 잠시 의심했다. 하지만 영문 제목 자체가 ‘가부키초 러브호텔’이다. 도쿄의 번화가 신주쿠에서도 환락가인 가부키초에 위치한 러브호텔의 하루를 보여주는 군상극.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섹스를 하고, 싸우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안녕을 고한다. 가부키초는 언젠가 떠나가야만 하는 곳이다. 때로는 살해당한 채로. 가부키초는 환락가다. 일본의 신주쿠는 도쿄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온갖 일이 벌어지는 거리다. 신주쿠 골덴가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드는 퇴폐적이면서도 유장한 거리라면, 가부키초는 그야말로 난잡하고 휘황찬란한 환락가 자체다. 러브호텔과 풍속 업소가 빼곡하게 들어차고 야쿠자와 불량청소년과 외국인들이 모여드는 곳. 하세 세이슈의 소설 「불야성」 3부작을 읽어보면 1980년대부터 다국적 공간으로 변해버린 가부키초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그걸 판타지로 풀어내면 기쿠치 히데유키의 <마계도시 신주쿠> 정도가 된다.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 <신주쿠 흑사회>와 <표류가>는 야쿠자와 중국계 조직폭력단을 중심으로 가부키초를 들여다본 영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가부키초는 여전히 환락가이지만 여느 도시의 번화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심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면 나오는, 유난히 번들거리고 뒤틀린 공간.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거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마계도시 신주쿠> <신주쿠 흑사회> <표류가> 러브호텔 아트라스의 점장 테츠는 인디 뮤지션인 사야와 동거하고 있다. 오다이바의 특급 호텔에서 일하는 호텔리어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곳이다. 아트라스에서 객실 청소를 하는 스즈키 사토미는 폭행사건의 범인인 야스오와 함께 도주 중이다.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시효가 끝나 자유의 몸이 된다. 한국에서 온 혜나는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동거 중인 정수에게도 말을 못했지만 그녀는 데리헤루, 즉 콜걸 일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성행위는 하지 않지만 유사 성행위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거리를 헤매는 여성들을 데리헤루에 팔아버리는 일을 하는 마사야는 가출소녀 요코를 만나 아틀라스에 하루 숙박을 한다. 단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2층을 통째로 빌린 AV 촬영팀에 피자를 전해주러 간 테츠는 여동생을 발견한다. 테츠의 가족은 해일이 모든 것을 파괴한 센다이 지역에 살고 있었다. 전문대를 다니던 여동생은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그 때 AV 배우 모집 광고를 보고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 번 도쿄에 와서 촬영하고는 돌아간다. 이제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학교도 잘 다닐 수 있다. 죄책감은 없다고 그녀는 단언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혜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왔다. 여기서 번 돈으로 한국에 가서 옷가게를 낼 생각이다. 건설회사에서 밀려나 전단지를 돌리게 된 중년 남자를, 그녀는 따뜻하게 안아준다. 요코는 재혼한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도망쳤다. 죽어버리라는 말까지 들었다. 요코는 말한다. ‘죽어버리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매춘을 해서라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거야’라고. 그런 요코를 보고, 마사야는 혼돈에 빠진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예정된 균열이 생기거나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관계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하필이면 테츠가 일하는 아틀라스에, 사야가 다른 남자하고 들어온다. 음반회사의 관계자다. 사야라는 것을 확인하고도 테츠는 애먼 방문을 걷어차는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사야의 얼굴을 보고도, 그만두라고 말하거나, 손을 잡고 도망치지도 못한다.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아니까.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의 인물들은 대체로 그렇다. 혜나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수에게 말하지 못한다. 아무리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테츠는 여동생에게 말한다. AV 배우 한다고 부모님한테 말할 수 있어? 여동생은 아니라며,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다. 아무리 자신은 떳떳해도, 세상은 다른 눈으로 보는 일과 사람들이 있다. 가부키초의 러브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 태반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간다. 지금은 이렇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떳떳하고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시효가 끝날 때까지 꿋꿋하게 버티면서 일을 하는 사토미처럼.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요코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약속을 지키는 마사야처럼, 그들에게는 최후의 믿음이 있다. 그건 요코의 끈질긴 생명력 같은 것이다. 죽어라, 하는 말에는 결코 복종할 수 없다는 오기 같은 것.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라고 내뱉는 테츠보다는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야. 접대로 한 건데 뭘 그래. 데뷔할 수 있잖아.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야? 쪼잔해, 라고 말하는 사야가 훨씬 더 건강하고 애잔하다.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 이란인 등이 뒤엉켜 살아남기 위해 살육전을 벌이던 가부키초에서는 지금도 보통의 남녀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상의 어둠에 파먹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혜나도, 사야도, 요코도, 사토미도 악착같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아간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 들어온 감옥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요나라는,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쓰는 인사다. 다시 보지 않으려 할 때. 그러니까 이제 그들은 가부키초를 떠나간다. 혜나도, 마사야도, 사야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부키초가 기억에서 지워야 할 지옥이나 악몽은 전혀 아니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이 그리는 가부키초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보다 조금 더 아래에 있는 공간일 뿐이다. 지저분하다거나 추악하다고 힐난할 수도 있는, 아래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몸을 팔거나, 뒤틀린 욕망이 뒤엉킨 곳이지만 히로키 류이치 감독은 씁쓸하면서도 건강하고 경쾌하게 그들의 하루를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종잇장 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별다르지 않으니까.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 나도, 언제 한 칸 아래의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니까. 1982년 핑크영화로 데뷔한 히로키 류이치는 < 경멸: 에고이스트 > < 도발적 관계: 엠 > < SM 작가 > 등에서는 도발적이고 뒤틀린 성애를 묘사하지만 < 바이브레이터 > < 노란 코끼리 > 등에서 여성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태도를 드러낸다. < 가부키초 러브호텔 >은 후자에 가깝다. 굳이 따진다면 인정희극에 기울어진다. 비극보다는, 그래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카메라를 가져간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