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 모랭 신부
- 감독
- 장 피에르 멜빌
- 제작년도
- 1961
- 출연
- 장 폴 벨몽도, 엠마누엘 리바, 이레네 툰크, 니콜 미렐, 지셀 그림
조선극장은 1922년 11월 6일 개관하여 1936년 6월 11일 화재로 소실되기까지 인사동 입구에 위치했던 영화관이다. 조선극장의 설립자는 명월관 지배인 황원균(黃源均)이다. 그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11월, 독립운동 진영에 합류하기 위해 상해로 떠나려던 의친왕(義親王)의 행적을 일제경찰에 밀고하여 의친왕의 상해 망명을 좌절시킨 장본인이었다. 이 사건으로 경찰부장으로 승진한 치바 료(千葉了)는 의친왕의 행적을 제보하여 대동단(大同團) 단원들을 체포하는데 도움을 준 황원균에게 평소 바라던 극장 신설 허가를 내주었다. 뿐만 아니라 요코하마에 근거지를 둔 동양생명보험의 경성지사장 야자와 긴지로(矢澤近次郞)를 통해 극장 설립 자금까지 융통할 수 있게 도왔다. 황원균의 조선극장 설립 허가는 강점 이후 조선인에게 주어진 첫 번째 경우로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어낸 그 자체로 대단한 특혜였다. 황원균은 과거 연흥사가 있던 자리에 공사비 5만여원, 총비용 14만원으로 지상 3층 건물을 짓고 이름을 조선극장이라 정했다. 이렇게 완공된 조선극장은 총 8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객석 내부에는 박스석을 설치하고 엘리베이터를 설비했으며 옥상에는 레스토랑까지 갖추었다. 1922년 11월 6일 개관된 조선극장에서는 개관공연으로 윤백남이 연출한 만파회의 <장발장>과 경성 다섯 권번 기생들의 공연, 명창 이동백의 독창, 그리고 몇 편의 서양영화가 상영되었다. 개관식이 있은 후 황원균은 쇼치쿠영화사, 다이카츠(大活, 大正活映)영화사와 특약을 맺어 프로그램을 충실히 하는데 애썼으며 서양영화 수입사를 운영하던 알렌상회에게 잠시 극장운영을 위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권자인 요코하마 동양생명보험의 야자와는 개관 3개월 후부터 원금 상환을 독촉했고 원금을 상환할 수 없었던 황원균은 야자와에게 조선극장을 빼앗기게 된다. 야자와는 조선극장을 부동산회사인 도쿄건물회사에 매각한다. [자료] 조선극장 개관피로 광고(《동아일보》, 1922.11.7.) 도쿄건물회사가 소유하게 된 조선극장을 운영한 주체는 한때 황금관과 유락관을 경영한 바 있고 1923년 <춘향전>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하야가와 마쓰타로(早川增太郞)의 동아문화협회(東亞文化協會)였다. 동아문화협회에서는 1924년 7월 13일 내부공사를 마치고 조선극장을 활동사진관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하야가와는 그 사이 <비련의 곡>, <흥부놀부> 등을 제작하여 조선극장에서 상영하였다. 조선극장의 운영권을 인수한 하야가와는 1925년 9월 예전 자신이 운영했던 황금관의 운영권까지 획득하여 조선 내 두 군데의 영화관을 운영하는 수완을 보였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 불어 닥친 극심한 불황과 1926년 실시된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에 의거하여 부과된 검열수수료로 인한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건강까지 악화되자 하야가와는 결국 조선에서의 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건너가 1928년 7월 30일 교토에서 사망했다. 1926년 9월부터 하야가와를 대신해 조선극장을 운영한 이는 변사 김조성(金肇盛)이었다. 그는 하야가와가 세운 동아문화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동아문화협회에서 제작한 영화 <춘향전>의 이도령으로 출연했던 인물로 조선극장 경영에서 물러난 하야가와를 대신해 조선극장을 맡았다. 그는 공격적인 영업으로 업계에 파장을 일으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금 유용을 이유로 운영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1926년 12월에는 차영호(車泳鎬)가 조선극장의 새로운 운영자가 되었다. 상설관 운영 경험이 없던 그는 1927년 2월 나운규의 <풍운아>를 상영하면서 김조성을 주임변사로 다시 불러왔으며 1927년 6월에는 현철(玄哲)과 김영식(金榮植)을 공동경영자로 끌어들였다. 현철을 중심으로 잡지발간, 배우양성, 영화제작을 도모했지만 공동운영자들의 경영 미숙과 운영자와 관원들 사이의 갈등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 없이 문을 닫게 된다. 1927년 9월부터 조선극장은 주임변사 김조성이 이태진을 공동 경영자로 끌어들여 운영되었다. 단성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안정적인 운영을 이어오던 조선극장은 1928년 12월 주임변사이자 공동경영자인 김조성이 필름 임대업자인 임수호에게 210원에 필름을 임대해 놓고 이태진에게 370원의 돈을 이중으로 받아 160원을 착복한 사건이 발각되면서 다시 복잡한 상황으로 빠지게 된다. 결국 조선극장은 문을 닫았고 이태진은 조선극장의 운영권을 안봉호에게 인계하였다. 안봉호는 1929년 8월 신용희를 지배인으로 두고 극장운영을 시작했는데 신용희는 기존의 영화 상영만 이루어지던 영화관에 재즈밴드단과 여성무용단을 조직하고 영화상영 사이에 레뷰 공연을 넣어 다른 영화관이 갖지 못한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했다. 하지만 조선극장에서 제작하던 영화 <젊은이의 노래>에 대해 악단장 윤창순이 저작권을 위배했다며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한 후 조선극장 측에서는 악단을 해산하고 레코드로 반주를 하게 된다. [자료] 화재를 당한 조선극장(《동아일보》, 1936.06.12.) 신용희가 지배인으로 영업을 책임진 이후 조선극장은 점차 안정을 찾아 갔다. 이에 따라 1931년 7월 조선극장을 중심으로 자본금 8만원의 조선흥행주식회사가 설립된다. 사장은 정완규, 전무취체역 전현국, 상무취체역 신용희, 정은규, 취체역 정현성, 김찬영, 감사역으로는 정현용이 선임되었다. 조선흥행주식회사는 최신의 토키설비를 구비하고 고급의 토키영화를 상영하여, 조선극장은 일명 토키영화의 전당이라 불리게 된다. 하지만 조선흥행주식회사 간부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여 급기야 1932년 10월 조선흥행주식회사가 극장 지배인 신용희를 해고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자 건물주인 도쿄건물회사에서는 신용희와 계약한 흥행권만을 인정한다며 극장사용을 중지해 버렸고 조선흥행주식회사는 조선극장에 설치한 토키 설비를 뜯어 단성사로 옮겨 영화상영을 계속하였다. 1932년 12월부터 기신양행의 김찬영과 손잡은 신용희가 조선극장을 운영하게 된다. 운영자 김찬영, 지배인 신용희 체제에서 조선극장은 김찬영이 소유한 영화배급회사 기신양행을 통해 안정적으로 필름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비싼 토키필름 가격에 비해 줄어든 관객으로 인해 극장 경영은 어려움이 많았다. 이때 신용희는 서울무대라는 극단을 조직하여 프로그램의 일부를 연극으로 채울 생각을 하였다. 1933년 조선극장의 추석 프로그램에서 공연된 서울무대의 <등대>에서 배우가 대본에 없는 대사를 했다는 이유로 공연이 정지되었고 관객들이 항의하는 일명 조선극장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임석경관의 횡포에 변사 성동호가 상부에 투서함으로써 발생한 것이었다. 결국 변사 성동호가 구속되면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김찬영과 신용희 체제의 조선극장은 결국 1934년 12월 김찬영이 영화업에 손을 떼면서 끝나고 만다. 1934년 12월, 종로 5가에 위치한 제일극장 소유자 미나토 큐기치(港谷久吉)가 조선극장의 소유권과 흥행권 일체를 약 10만원의 자금을 들여 인수하게 된다. 새로운 경영자의 등장으로 기존 조선극장 관원들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것을 염려하자 경기도 경찰부에서는 이들의 고용을 유지하라고 권고하여 대부분의 관원들이 그대로 극장운영을 이어갔다. 하지만 미나토 큐기치가 운영하던 조선극장은 1936년 6월 11일 방화로 전소되어 이후 복구되지 못했다. 조선극장은 잦은 운영자 교체로 인해 경영이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운영하던 이들 대부분이 서양영화의 배급사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서양영화의 전당”이라 불릴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조선인극장과 일본인극장을 통틀어 조선극장은 단성사와 더불어 서울에서 서양영화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인식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극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토월회의 공연이 개최되면서 한국연극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장소로 기록되고 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매일신보》, 《조선중앙일보》, 《중외일보》 이승희, 「조선극장의 스캔들과 극장의 정치경제학」, 『대동문화연구』 72호, 2010. * [사진](상단) 조선극장 낙성 광고(《매일신보》, 1922.11.03) [자료] 《 매일신보 》 , 1922.11.7. 조선극장의 개관식 , 작일 오후 ᄒᆞᆫ시부터 셩대하게 거ᄒᆡᆼᄒᆡᆺ다 이번에 셔로 건츅한 부내 인사동 됴션극장 ( 朝鮮劇場 ) 은 예뎡한 바와 갓치 작 륙일 오후 한시부터 동 극쟝에서 ᄀᆡ관식을 거ᄒᆡᆼ하엿ᄂᆞᆫ바 인사동 드러가ᄂᆞᆫ 어구로브터 극장ᄭᆞ지ᄂᆞᆫ 만국긔와 오ᄉᆡᆨ긔며 뎐등으로 챤란하게 장식하엿고 극장 안에는 칠ᄇᆡᆨ여명의 ᄅᆡ빈이 상하층에 가득하였더라 . 관쥬 황원균 ( 黃元均 ) 씨의 ᄀᆡ관식사와 여러 변사와 극가의 예슐과 극장에 대한 말이 잇셧고 그 후에ᄂᆞᆫ 경셩 오번권 기ᄉᆡᆼ의 가무와 밋 셔양츔이며 현대 일류 명창 리동ᄇᆡᆨ ( 李東伯 ) 의 독창과 현대극계의 권위인 만파회 ( 萬波會 ) 의 신극 츌연이 잇엇고 계속하야 활동사진을 영사하야 ᄅᆡ빈의 이목을 즐겁게 하고 동 오후 네시에 폐회하얏ᄂᆞᆫ대 ᄅᆡ빈에게는 기념품까지 쥬엇는바 극쟝에 장관스러운 설비와 챤란한 쟝치ᄂᆞᆫ 조션에 쳐음이라 하겟다더라 . [자료] 《 매일신보 》 , 1922.11.7. 신축낙성 ( 新築洛城 ) 當 本月 六日 개장 ( 開場 ) … 프로그람 … ◎ 경성 오권번 ( 五券番 ) 의 가무 음곡 ( 音曲 ) 급 ( 及 ) 서양댄스 ◎ 일류 명우 ( 名優 ) 이동백 ( 李東伯 ) 군의 독창 ◎ 현대극계의 권위 만파회 ( 萬波會 ) 의 출연 ◎ 태서 ( 泰西 ) 저명한 고급 활동사진 이상 반도 유수 ( 半島 有數 ) 의 대극장 조선극장의 개장 경성부 인사동 전화 本局 三六二 ○番 [자료] 《 중외일보 》 , 1926.12.19. 영화 · 연예 《 나는 영웅이다 》 ( 全七卷 ) 조선극장 (18 日 봉절 ) ◇ 원명 …… ᄲᅥᆼ커 - 대왕 ◇ 원작 …… 레온 윌손 씨 ◇ 감독 …… 하리 ᄲᅩ - 몬 씨 --- 캬스트 --- ◇ ᄲᅥᆼ커삔 …… 마트 무어 씨 ◇ ᄲᅳ리드 …… 죠지 니콜스 씨 ◇ 카사노바 부인 …… 노라 세실 양 ◇ ᄲᅡ사쟐 대선생 …… 푸랑크 레이 씨 --- 이하 략 ( 畧 ) --- 사람 좋은 《 ᄲᅥᆼ커삔 》 은 그의 동무들이 그를 가리켜 《 나폴레옹 》 의 재생이니 혹은 녯날 《 애급 》 나라의 임금의 후신이니 하야 가면서 놀리는 것도 모르고 그것이 정말인줄만 알고 가진 공상을 다하고 있었다 . × 그리하여 한번만 그 공상하는 병이 시작되기만 하면 그는 중대한 재긔 회사의 일도 돌아보지 않고 천금을 아끼지 않고서 《 미 - 라 》 를 사오고 ᄯᅩ 그 외에 무엇 무엇 쓸대업는 것을 구해다 노코서 공상을 하기에 가진 진기한 사건은 다음에서 다음으로 생긴다 . 그는 확실히 자긔가 영웅인 것이나 가티 생각하는 것이었다 . × 그러나 결국 그는 자긔 애인인 사장의 딸과 야구선수들의 도움에 의하여 간신이 본정신을 차리고 공상에서 ᄭᅢ어서 견실한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하는 것이 이 재미있고 우스운 사진의 이야기입니다 . ( 사진은 《 나는 영웅 》 의 한 장면 ) ◇ 조선극장 개관 일시 경영 곤란으로 폐관하였든 시내 인사동 조선극장은 다시 유지들의 활동으로 《 조선키네마회사 》 제공 《 풍운아 》 ( 風雲兒 )( 全 7 卷 ) 과 《 나는 영웅이다 》 ( 全 7 卷 ) 기타 희극 등 재미잇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십팔일 밤부터 개관하게 되엇는데 료금 등은 종전과 같다더라 . [자료] 《 매일신보 》 , 1927.7.26. 조극개관기 ( 朝劇開館期 ) 아즉도 멀어 부내 인사동 ( 仁寺洞 ) 죠션극장 ( 朝鮮劇場 ) 은 지난 륙월 삼십일에 돌연히 폐관한 후 수십여명 관원ᄭᅡ지 젼부 해산을 식히고 경영자의 한사람인 현텰 ( 玄哲 ) 씨는 내지로 건너갓는대 그동안 관원들은 경영자 측에 대하야 휴관하여 잇는 동안에는 극장을 관원에게 빌려쥬워 관원의 손으로 당분간 영업을 계속하야써 관원의 생활을 보샹케 하여 달라하야 양방의 타협이 진행즁이더니 그것도 결국 파열되야 관원 일동의 ᄇᆡᆨ여명 식구는 목하 생활 곤난을 당하고 잇는 즁인바 동 극쟝은 ᄅᆡ월 십삼일경에나 이르러 젼 경영자의 경영 하에 개관될 모양이라더라 .
이렇게 매력 충만한 영화가 극장 개봉을 못 하다니, 좀 억울하지 싶은 생각이 든다. 스크린으로 못 보는 것도 그렇고, 덕분에 마케팅의 기회를 잃어 소개될 기회도 제한된다는 생각이 드니 그런 안타까움이 급증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코너가 그래서 생겨났지 하는 생각에 일단의 안도감을 느끼며. < 더 브론즈 >는 굳이 카테고리를 찾자면, 스포츠영화다. 뼈대로만 보면 17살 체조선수가 부상 후 실의에 빠져 있다가 몇 년 후 후배 선수를 양성하며 다시 자아를 찾아 나가는 예측 가능한 형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손쉽게 설명하고 말아버리면 영화의 매력이 손가락에서 모래 빠져나가듯이 쉬쉬쉬 다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기존 스포츠영화가 가진 식상한 도식들에서 벗어날 비장의 무기들을 잔뜩 챙겨가지고 있으니, 부디 일단은 빨,파,흰색 조합의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걸친 멜리사 로치의 <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스러운 스틸 컷에 일단 혹해주길 바랄 뿐이다. 호프 앤 그레고리(멜리사 로치)는 미국 중서부의 작은 마을 애머스트에서 나고 자란 영웅이다. 올림픽 체조 동메달 선수로 명성을 얻어 마을 입구 비석에는 ‘세계 제일 사암의 고장’이라는 수식과 함께 ‘2004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호프 앤 그레고리의 고향’임이 자랑스럽게 표기되어 있다. 그녀의 동메달이 화제가 된 건 2004년 올림픽 도중 발목에 부상을 입은 채로 아픈 다리를 수습하고 이단 평행봉에 도전한 스포츠 정신을 높이 사서다. 그렇게 그녀는 일숨에 에머스트의 천사가 되었다. 착지의 순간, 브라운관을 빠져나온 카메라가 잡는 건 화면을 보며 쾌감에 젖은 현재의 호프다. 호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현재에는 ‘가망’이 없다. 부상으로 체조를 그만둔 그녀는, 일생 최고의 환호가 쏟아지던 순간을 되감기 하며 침대에서 자위를 하고 약물을 흡입하며 시간을 보낸다. 단둘이 사는 아버지에게는 온갖 짜증과 욕설을 퍼붓고, 우체부로 일하는 아버지의 우편물을 뒤져 돈을 훔치기 일쑤다. 마을 곳곳 상점에 동메달을 목에 건 빛바랜 사진으로 간신히 명성을 입증해야 하는 삶.(그러고 햄버거 할인을 받는 정도랄까) 호프의 현재에는 그러니까, 문제가 넘쳐흐른다. 호프 앤 그레고리가 가진 문제의 핵심은 그녀가 한때 ‘공주’였으며, 공주가 아닌 현재의 그녀가 여전히 그 ‘한때’를 놓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생활은 불가능한데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선수, 연금이 이미 다 바닥났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수익으로 집안이 유지된다고 믿는 자신감. 그 갭과 괴리감을 다른 누가 메꾸어 줄 수나 있을까. 일단 차림새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어딜 가나 호프 앤 그레고리를 모를 새라 등에 큼지막하게 U. S. A가 새겨진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를 보면서 찬란했던 그녀의 과거를 유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호프를 추락한 지금의 일상에서 끄집어내는 계기는, 자신이 지금 지도 중인 매기를 올림픽에 나가게 해준다면 50만 달러의 유산을 호프에게 상속해 주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택한 그녀의 전 코치에게 있다. 현실을 위해 50만 달러의 가능성을 수락하지만, 사실 호프에게 중요한 건 돈보다, 대중에게 천사로 군림해 온 자신의 자존심이다. 전도유망한 후배 선수 매기에게 기름진 햄버거만 먹여 망쳐놓는 건,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해 줄 코치가 아니라 여전히 자신만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주인공이고 싶어 하는 열망에서 기인한다. 그녀가 현실과 과거에서 오는 영광의 갭을 줄이지 못하는 걸 탓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 인정욕구 역시 호프가 별나서가 아니다. 올림픽 출전을 꿈꾸며, 메달을 향해 달려왔던 이 영화의 선수들 모두가 그렇다. 호프와 티격태격하며 시종 그녀를 시기하는 팀 코디네이터 랜스 터커는 그리하여 이렇게 폭발한다. “난 금메달, 은메달 다 땄는데, 사람들은 모두 동메달 딴 ‘호프의 기적’만 대단하다고 말한다고!” 체중 조절을 위해 ‘한 달 동안 수박주스만 먹어, 씹는 법을 새로 익혀야 할 정도’인데다, 가슴이 나오지 않도록 붕대로 가슴을 꽁꽁 싸매고 다닌 호프 같은 사춘기의 선수들에게 대중의 인정은 곧 폼 나는 삶을 유지할 동력이다. 경쟁, 시기, 낮은 자존감, 부상 같은 변수들 앞에서 영화의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 모두 자신이 획득한 영웅의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무시무시한 공포를 끌어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정상적인 어른이 되어갈 뿐이다. 호프는 결국 매기가 올림픽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돕게 되지만, 그러기까지는 환호 속에 존재하던 자신이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이 씁쓸한 현실 어디에도 여느 스포츠 영화의 ‘재기와 갱생의 프로젝트’가 들어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 더 브론즈 >의 장면 중 마음을 흔드는 하나의 장면은 올림픽 경기에서 매기가 환호를 받는 순간 자신의 영광을 뒤로하고 멀어져가는 호프의 뒷모습이다. 관중은 새로운 영웅을 주목할 뿐, 그 순간 과거의 영웅은 빛을 잃는다. 그 교체의 시간을 안타깝고 길게 응시해주는 건 호프의 아버지뿐이다. 브라이언 버클리 감독은 체조경기의 쾌감은 모두 덜어낸 채, 오롯이 대중의 심리가 움직이는 역동성 안에서 벌어지는, 이 감정의 분투를 지켜본다. 이 영화가 신기한 지점은 욕쟁이 호프를 위시한 어느 하나 선뜻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호프 정도는 좀 포장해줄 법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데 오히려 점수를 주고 싶다. 시트콤 < 빅뱅 이론 >에서 독특한 목소리로 시종 웃음을 끌어내는 베르나데트 역의 멜리사 로치가 심통스런 호프 역을 맛깔나게 연기할 뿐 아니라, 그녀의 남편 윈스턴 로치와 공동 각본을 집필했는데, 그녀의 코믹함을 십분 투여했지만 그게 <빅뱅 이론>에서처럼 귀엽고 유쾌한 웃음과는 거리가 좀 멀다. 그들은 그냥, 지질하고 있는 그대로여서 웃길 뿐이다. 아, 호프와 랜스가 급작스럽게 돌진하는 19금 체조 섹스 장면에서만큼은 호프의 캐릭터만큼이나 제대로 ‘병맛’ 살린다. 미국을 대표하는 남녀 국가대표 체조의 다양한 동작들이 격렬한 체위로 수행되는 그 과정에 대해 랜스 역을 연기한 세바스티안 스탄은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하면 병맛을 살릴지 스태프들과 함께 엄청난 구상과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었다“고 밝힌다. IPTV 서비스로는 안타깝지만 그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바람에, 그렇게 고심해서 찍었을 게 분명한 정말 중요한 장면 하나를 놓치고 만다는 걸 미리 알려둔다.
증기선이 질주한다. 목재를 태우고, 목재가 떨어지자 뜯어낸 갑판을 태우고, 구명보트를 태우고, 밀랍인형을 태우고, 악마의 음료이자 만병통치약인 럼주를 태우며 질주한다. 닥터 존(윌 로저스)이 이끄는 낡은 ‘클레어모어 퀸’ 호는 폭발할 듯 불꽃을 뿜으며 1890년대의 미시시피 강을 달린다. 태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태우자(존 포드의 형인 프랜시스는 여전히 술에 취한 채 동료 선원도 태우려 한다) 비로소 결승점에 도착한다. 목적지에 이르자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된다. 간발의 차이로 닥터 존의 조카 듀크는 교수형을 면하고, 그들 가족은 또 다른 증기선 ‘프라이드 오브 파둑’을 획득한다. 증기선은 자기의 모든 것을 태우고 달리며, 영화는 서사의 모든 것을 태우고 달린다. < 굽이도는 증기선 >이 걸출한 액션영화라면(하스미 시게히코는 이 영화를 최고의 액션영화 50편 중의 하나로 뽑았다), 증기선의 물리적 운동감 때문이 아니다. 사실 이 증기선은 그렇게 날렵하지도 빠르지도 않으며, 영화의 서사도 민첩하기는커녕 태평스럽고 느리기 짝이 없다. 태워질 것이라 예상할 수 없었던 것들, 사라질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었던 차이들이 화로에서 한몸이 되어 불타오른다. 불타오르며 둔중한 증기선을 힘차게 밀고 간다. 우리를 사로잡는 건 배의 속도감도 불의 물리적 형상도 아닌, 배의 육체도 서사의 육체도 다 태워버릴 듯한 난폭하고도 맹렬한 불의 활동이다. #1 #2 1939년 < 역마차 >가 나오기 전까지 존 포드의 1930년대는 위대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윌 로저스를 주연으로 기용한 세 작품(< 닥터 불 > < 저지 프리스트 > < 굽이도는 증기선 >)과 < 순례여행 > <에어 메일> 등을 제외하면 그가 <역마차> 이전에 만든 20여 편의 유성 영화들은 어딘지 허술하고 독창성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물론 < 밀고자 >(1935)로 첫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긴 했지만 이 영화는 과대평가된 포드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의 동년배인 킹 비더와 조셉 폰 스턴버그가 무성 시대의 말기와 유성시대의 첫 10년 동안 자신의 대표작들을 쏟아낸 것과 비교하면, 존 포드의 1930년대는 차라리 탐색기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 굽이도는 증기선 >은 이 탐색기의 의심할 수 없는 최고작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 포드의 거의 모든 것이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처음엔 자신을 한 사건의 서사로 제시하지만 사건이 거의 잊혀질만큼 그것의 장악력이 느슨해지면서, 그 틈새들 사이로 유머와 헛소동, 잉여의 몸짓과 표정들, 그러니까 삶의 조각들과 세계의 조각들이 제멋대로 빛을 내며 활동하기 시작한다. 포드는 이 조각들의 난장을 플롯의 기예로 정리할 생각이 없다. 대신 하나의 결정적 활동 안에 그들을 밀어 넣는다. 미시시피 강에서 증기선 경주가 벌어지는 마지막 20여 분의 시퀀스는 그 조각들이 불타오르며 벌어지는, 영화사가 기억해야 할 황홀한 축제이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닥터 존은 미시시피 강 일대를 돌아다니며 싸구려 럼주를 만병통치약으로 속여 판다. 그는 한때 항해사였고 유일한 가족은 조카인 항해사 듀크다. 두 사람은 닭장처럼 초라하고 낡은 증기선 ‘클레어모어 퀸’을 최근에 구입해 들뜬 상태다. 듀크가 늪지대에 사는 소녀 플리티 벨과 사랑에 빠져 그녀를 데리고 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녀에게 추근대던 선원을 살해한 것이다. 선원이 먼저 칼을 뽑았기 때문에 정당방위이지만, 유일한 목격자인 얼뜨기 예언자 ‘새로운 모세’는 행방을 알 수 없다. 듀크의 사형이 확정되고 항소는 거부당했다. 사형은 증기선 경주가 끝나는 시점에 경주의 결승점에서 집행될 것이다. 클레어모어 퀸은 듀크의 결백을 증언할 ‘새로운 모세’를 찾아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여기엔 멀쩡한 사람이 없다. 주인공인 닥터 존은 사기꾼 약장사이며, 그의 조카는 정당방위이긴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 자신을 새로운 모세, 새로운 엘리아 선지자라고 주장하는 엉터리 예언자들, 자수하러 온 살인자에게 귀찮다는 듯 감옥 열쇠를 던져주는 보안관, 사형집행을 앞두고도 증기선 경주에 더 관심이 많은 주지사, 항상 취해있는 알콜 중독 기관사 에페(프랜시스 포드) 등등, 이곳은 사기꾼과 가짜 예언자와 주정뱅이와 게으른 관리의 세계다. 여기엔 영웅도 악인도 없다. 신기하게도 포드는 이 비루한 세계를 더없이 평화롭고 따뜻한 곳으로 그려놓았다. 닥터 존과 ‘새로운 모세’는 적이지만 둘은 부딪히는 일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기 치며 살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미 벌어진 정당방위 살인과 곧 벌어질 부당한 사형집행.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 문제를 포드는 사소하게 다룬다. 그의 인물들은 종종 그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의 서사는 스스로 종종 그 문제를 잊어버린 것처럼 진행된다. 인물도 서사도 주어진 그 순간이 전부인 것처럼 현재에 몰두하는 것이다. 포드는 때로, < 황야의 결투 > 혹은 < 웨건 마스터 >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영화가 심각한 문제를 다룰 때조차 심각해질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처럼 보인다. 혹은 영화가 사건을 등장시킨다 해도 사건을 다루는 매체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에게는 중심 사건조차 서사의 한 조각일 뿐이거나 때로 핑계에 가깝다. < 굽이도는 증기선 >에서 살인과 사형집행은 무엇의 핑계인가. 혹은 살인과 사형집행을 사소화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결국 증기선의 연료가 될 두 소재, 럼주와 밀랍인형을 먼저 떠올려보자. 닥터 존은 럼주가 전설의 인디언 처녀 포카혼타스의 처방약이라고 선전한다. ‘새로운 모세’는 럼주가 악마의 음료라고 주장하며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성령의 리본을 판매한다. 각각 전설과 성경을 근거로 럼주를 찬미하거나 규탄하는 것이다. 의미의 원천인 전설과 성경이 여기선 두 사기꾼의 효과적인 선전도구로 작동한다. 하지만 포드는 이 사기행각들의 악덕을 드러내기는커녕 그것에 유쾌한 활력과 정감을 불어넣는다. 우리의 주정뱅이 에페가 성령의 리본을 달고 악마의 럼주를 들이키며 즐거워할 때, 그는 사기의 희생자라기보다는 조작된 의미들과 유희를 벌이는 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존재처럼 보인다. 증기선 안에 설치된 밀랍인형 박물관은 모세와 선지자들, 나폴레옹, 조지 왕, 그랜트 장군 등 위대한 전설을 거느린 역사적 인물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영리한 사기꾼 닥터 존은 그들을 남부의 농부들이 좋아할 만한 인물로 바꿔버린다. 조지 왕은 조지 워싱턴으로, 북군의 그랜트 장군은 남군의 리 장군으로, 모세는 무법자 제시 제임스로 명찰을 바꿔단다. 이 영화의 가장 우스꽝스러운 장면 가운데 하나는, 박물관을 부수러 온 성난 농부들이 제시 제임스로 앞에서 겁을 집어먹고, 리 장군에게 경례를 하는 장면이다. 총을 든 제시 제임스는 좀 전까지 모세였고, 리 장군은 좀 전까지 자신들이 싫어하는 그랜트 장군이었다. 물론 둘 다 밀랍인형이라는 모조품이다. #3 #4 #5 #6 럼주와 밀랍인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들 속에서 역사와 전설, 신화와 성경은 제멋대로 전용되며 조작된다. 진리의 원천, 의미의 심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이곳에서 모든 것은 표층의 유희로 전유 되어 끝없이 변형된다. < 굽이도는 증기선 >가 기호 놀이라면 기의를 따돌린 기표들의 아방가르드적 유희가 아니라, 임의적이고 일회적이며 종종 기만적인 의미작용 자체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기호놀이다. 이제 이 영화에서 사건의 역할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형집행은 사건으로서의 중대성 때문이 아니라 이 기호놀이의 종결자로 동원된 것이다. 클레어모어 퀸은 유일한 증인 ‘새로운 모세’를 찾아 사형집행 전까지 결승점에 도착해야 한다. 그 둔중한 육체를 전속력으로 약동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건 에너지이며 힘이다. 이제 주변 사물들은 그것의 유동하는 의미와 상징이 아니라 에너지를 발산하는 순수한 물질로서만 가치를 지닌다. 조지 워싱턴, 리 장군, 제시 제임스, 악마의 음료, 만병통치약은 사라지고 오직 연료로서의 물질들만 남았다. 사형집행은 기만적이고 유희적인 기호놀이를 중단시키고, 모든 것을 힘과 속도의 문제로 바꿔버린 것이다. 목재는 물론이고 갑판도 구명보트도 태워버린 뒤, 닥터 존이 외친다. “박물관을 태워.” 이제 이름들과 의상들이 상징들이 사라지면서 밀랍인형들이 불탄다. ‘박물관’마저 다 태워버리자 화로는 다시 죽어간다. 부당한 사형집행을 막을 시간도 사라져 간다. 이때 주정뱅이 에페가 화로 곁에서 럼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그를 본 ‘새로운 모세’가 화를 내며 술병을 빼앗아 화로에 던지지 않았다면, 아무도 이 악마의 음료가 그토록 가공할만한 연료인지 몰랐을 것이다. 누가 주정뱅이를 비난할 것이며, 거짓예언자를 손가락질할 것인가. 우연의 간계는 때로 악덕을 천상의 미덕으로 바꿔놓는다. 럼주가 마지막 연료로 등장해 화로에서 폭음을 내며 배를 집어삼킬 듯 불꽃을 내뿜을 때, 탄성을 참기 힘들다. 닥터 존에게 럼주는 이제 조카의 죽음을 막은 진정한 만병통치약이 되었다. ‘새로운 모세’에게 이것은 악마의 음료를 태워 없애며 한 생명을 살린 신성한 의식이 되었다. 두 사람은 사기꾼이며 엉터리 예언자였고 또한 서로 적이었지만, 어떤 논쟁도 대결도 없이 럼주를 함께 불태우는 행위 하나만으로 자신의 사기와 엉터리 예언을 자기도 모르게 정당화한 것이다. #7 의지와 우연, 미덕과 악덕들이 모두 하나의 불꽃으로 타오르자 비로소 간발의 차이로 행복한 목적지에 이른다. 이 대책 없는 서사의 낙천성은 세계관의 낙천성과 무관하다. 그것은 의지의 뜨거움이 아니라 운명의 차가움에 대한 긍정이며, 운명의 차가운 힘을 알게 된 자의 유희정신이다. 존 포드는 후에 “이건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었는데, 나서기 좋아하는 새 매니저(대릴 F. 자눅을 말한다)가 와서 코미디를 다 덜어내는 바람에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불평했지만, < 굽이도는 증기선 >는 여전히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코미디 중 하나이고, 소란과 난장의 활력이 영화 전부를 지배하는 포드의 첫 유성영화이며, 그의 후기 대표작들을 예기하는 걸작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3주 전인 1935년 8월 15일, 윌 로저스는 비행기 사고로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를 누빈 카우보이, 신랄하고도 유머러스한 칼럼니스트, 보드빌과 연극과 영화를 오간 배우이자 타고난 익살꾼이었던 로저스는 대통령에서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당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사내였다. < 굽이도는 증기선 >의 원래 엔딩은 로저스가 또 다른 증기선 선장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을 고하는 장면이었지만, 그의 죽음 직후 그가 증기선에 편히 누워있는 지금의 엔딩 장면으로 바뀌었다. 원래 엔딩으로 상영할 경우 극장이 울음바다가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