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지
- 감독
- 안소니 마하라즈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척 제푸레이, 리차드 노튼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과거의 사건은 때로,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분명 그걸 그곳에 갖다놓은 누군가가 있고 또 그렇게 한 이유도 있을 테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냥 ‘그것이 거기에 있음’이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리 듯, 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때는 그런 시대였으니까’라며 그 자체를 하나의 시대성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때가 딱 아시안게임, 올림픽 겹치면서, 비디오가 보급되고, 말 그대로 80년대 초반부터 컬러 방송은 있었지만, 시각문화적으로 정권에서 “국산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를 만들어라!” 호돌이 캐릭터 만들고 그래서 완전히 애니메이션 영상이 그 이전에서 그다음으로 확! 업그레이드 되는, 예. 그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 이용배 , 2020, 79쪽 위 구술을 통해서도 충분히 1980년대 중후반의 한국 애니메이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정부에서 한국의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저 말들 하나하나에는 또 다른 의문들을 달 수 있다. 정부는 ‘한국의 문화’ 중에서도 왜 ‘ 애니메이션 ’의 제작을 꾀했는가? 그 직전까지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방송국에서는 어떻게 저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가?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을 당시 MBC에서 애니메이션 연출PD를 담당했던 황선길 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1987년에 정부에서 KBS하고 MBC한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라는 권유사항이 내려온 겁니다. 근데 KBS하고 MBC는 “우리 제작비 많이 그래서, 못 하겠다.” 전부 그냥 사양했죠. 방송국은 언론기관이니까, 못 하겠다면 못 하는 거죠, 뭐 어떡해. 나라에서 어쩔 수 없죠. 근데 정부에서는 “내년이 88올림픽 대회 아니냐. 그러니까 외국에서 관객들이 와 가지고, 호텔에 묵으면서 텔레비전을 틀면 맨 노랑 머리, 빨강 머리, 그 외국 애니메이션만 나오니까, 우리 애니메이션을 해서 보게 해야 되지 않느냐 .” 이런 권유사항이 내려온 거예요.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KBS, MBC가 “그러면 한시적으로 출발하자. 내년 올림픽 때까지만 제작을 하고, 그리고 이제 끝! 안 하겠다.” 이렇게 한시적으로 출발을 한 겁니다. 그래서 갑자기 한국 TV 애니메이션이 시작이 된 거죠. 개인이 기획한 것이 아니죠. - 황선길, 2020, 76쪽 위 구술에서 정책결정자의 저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이 호텔에서 TV로 외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상황에 대한 상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다. 그는 평소 한국의 어린이들이 외국 애니메이션만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국제 행사를 앞두고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의 텔레비젼 방송을 바라보며, ‘영화나 드라마, 쇼 프로그램은 자국에서 만들어 방영을 하는데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은 모두 외국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 국가의 문화산업에 있어 큰 분기점이 되는 사건은 그렇게 아주 사소한 상상력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도 생긴다. 미국이나 유럽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은 어떻게 국내에서 수입⋅방영이 가능했을까? 분명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그중에서도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1⋅2⋅3차 개방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고, 2004년 4차 개방 대상에 들어가긴 했지만,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6년에서야 전면 개방 되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수입⋅상영이 불가능했던 반면에, 왜 시리즈물은 그 이전부터도 가능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2020~2021년 진행한 ‘한국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채록’에 참여했던 45인의 구술에서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준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던져준 이들은 있다. 조금 지난하지만, 지금부터 하나하나 그들의 말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그들의 말이 주는 단서들 속에서 각자 그 이유를 재미있게 추리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사건의 실마리 1: <손오공의 대모험> KBS는 1970년 4월 16일부터 <손오공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아동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인 6시 30분에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무시’ 프로덕션과 ‘후지’ 텔리비전방송회사가 공동제작한 30분짜리 39편의 어린이용 천연색 만화영화를 흑백으로 방영한다. 우리나라선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일제 필름. … 비록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등장인물 중 일본 인명이나 사물 명칭의 일본어 사용 등은 문제가 있을 듯. - 《경향신문》, 1970. 4. 16. 8면 기사 당연하게도(?) <손오공의 대모험> 방영은 여러 가지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면 아이들의 동심이 ‘일본색’으로 물드는 것을 걱정하는 한편, 문공부가 한국영화제작자협회에서 추진 중이던 ‘일본영화감상회’는 허가해주지 않으면서, 정작 산하기관인 KBS에서는 버젓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고 있어, 문공부의 일본문화 규제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또한 공영방송에서 일본(만화)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방영하게 되면, 이후 민간상업방송에서 각종 일본(만화)영화를 들여올 수 있게 되는 구실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논란의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과 그 역사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낄 것이다. <손오공의 대모험> 이전에도 분명 < 황금박쥐 >(야나기다 큐지로, 1968), <요괴인간>, < 마린보이(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토미노 요시유키, 1969)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방영된 바 있는데, 위 기사는 이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되는 일본 작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래의 기사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TBC TV의 <황금박쥐>나 <요괴인간>, MBC TV의 <마린보이> 등은 완제품이 아니고 보세가공식의 한일합작이었지만 조심스럽게 일본 작품을 도입했던 케이스들. KBS는 민방이 이미 일본만화를 방영했다는 전례를 구실로 삼고, 또한 우리의 동화산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비록 일본영화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건전한 영화를 도입하는 쪽이 어린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동아일보》, 1970. 4. 22. 6면 기사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손오공의 대모험>은 중도 폐지되지 않고 39회차까지 방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일으킨 파장은 방송계에 한동안 영향을 미쳤다. TBC와 MBC는 미국의 애니메이션들(<우주철인 사이퍼>, <자니 게스트의 모험> 등)을 수입⋅방영했고, 심지어 < 우주소년 아톰 >(린 타로, 1963)을 미국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것처럼 소개하며 방영하기도 했다. *주1 KBS도 <손오공의 대모험>이 종영된 이후에는 프랑스의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 틴틴의 대모험 >(스테판 베르나스코니, 1991)을 방영했다. *주2 하지만 논란이 있고 1년여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 타이거 마스크 >(타미야 타케시, 1969), < 철인 28호 >(1963)와 같이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로부터 하청(OEM)을 받은 작품들을 합작인양 은글슬쩍 방영하는 일이 다시 반복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TBC 방송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타츠토코 거 < 독수리 5형제 >다, < 개구리 왕눈이 >다, 수입을 하는데 한국에서 수탁 가공(OEM)을 해서 한 그거를 이 회사에서 수입을 해왔다 해서 수입허가가 떨어져요. 제가 또 수입대행사가 된 거예요. … 애니메이션 영화를 갖다가 유니버설아트가 수입을 하는 것처럼 형식을 갖췄어요. 유니버설하고 상관도 없어요. 그런 서류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예요. - 정병권 , 2020, 132쪽 <손오공의 대모험>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당시 한국사회 내에 여전히 일본문화에 대한 반감이 있었고, 이를 의식한 정부 당국의 규제 또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한국에 준 하청 작업물들을 ‘합작’ 또는 ‘보세가공품’이라는 이름으로 편법 승인을 받아 방영할 수밖에 없었다. 어레레,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런 눈치 보이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가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방영하려 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 방영주체인 방송국 의 입장을 들어보자. <독수리 5형제(과학닌자대 갓챠맨)>(토리우미 히사유키, 1972~1979)의 국내 개봉 포스터(좌)와 <개구리 왕눈이>(사사가와 히로시, 1973)의 한 장면(우). 두 작품 모두 일본 타츠노코 프로덕션 작품으로 유니버설아트 프로덕션에서 하청을 맡아 작업했다. 사건의 실마리 2: KBS⋅MBC 1980년대 초 KBS에 입사하여 영화부에서 < 우주 해적 캡틴 하록 >(린 타로, 1978), < 딱따구리 >(사이드 마커스 등 5인, 1957), < 개구쟁이 스머프 >(레이 피터슨 등 4인, 1981) 등의 해외 애니메이션 더빙 연출과, < 떠돌이 까치 >(조봉남, 1987), < 달려라 하니 >(홍상만, 이학빈, 1988) 등의 녹음 연출을 담당했던 최수형 은 1970~80년대 국내 방송국에서 미국⋅일본 애니메이션을 주로 방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80년대 초중기, 이때는 일본만화영화가 굉장히 싸게 공급 이 됐었어요. (중략) 우리한테 거부감 없이, 전 세계에 거부감 없이 배급할 수 있는 만화가 뭐였냐면, 세계명작동화’가 원작인 만화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많이 보급했는데. 우리도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압박을 받았던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은 기모노만 봐도 그때 트라우마 때문에 견디지 못하시고 텔레비전, 영화에 기모노가 나왔다 해서 전화하시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이런 거를 꼭 내보내야 되느냐구. 그러니까 그런 애니메이션은 방송사에서 소개할 수가 없었죠. 그러니까 대부분 동화나 명작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많이 소개했었던 거 같구요. 미국과 일본의 컨텐츠가 많이 소개된 이유는 이 두 나라가 비즈니스 시스템이 참 잘돼 있어요 . 그리고 일본어나 영어에 능통한 인구도 우리나라에는 많이 있고 그러니까 비즈니스 하기에 참 편했던 환경이었고. - 최수형, 2020, 40쪽 구술자는 첫째로 일본만화영화의 수입 단가가 매우 저렴했다는 것, 둘째로 비즈니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 수입과 방영을 위한 절차들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던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방송국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시청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애니메이션도 수입하고 그랬는데, 수입을 해보면 미국 애니메이션도 있고, 유럽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틀면은, 시청률이 많은 차이가 나요 , 일본 애니메이션은. 왜냐? 미국하고 유럽 쪽엔 정서적인 차이가 있고, 근데 일본은 우리랑 가깝잖아요. 모든 게 가깝고, 스토리든 뭐든 가까우니까 일본 애니메이션이 시청률이 높은 거예요. 그래서 거의 7~80프로,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을 하죠. 특히 유럽은 너무 루즈하고, 스토리도 쳐지고 그래서 별로 유럽은 안 하고. 유럽에도 이탈리아, 프랑스 있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많이 하죠. 근데 거의 수입 안 하고, 미국 것, 디즈니 같은 건 좀 하고 그랬죠. - 황선길, 2020, 105쪽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굳이 내가 보고 있는 TV 애니메이션의 제작국가가 어딘지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묘하게 미국이나 유럽의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이션은 구분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스누피Peanuts>(1965)의 캐릭터도 좋아하고, < 컴퓨터 형사 가제트Inspector Gadget >(데이브 콕스 등 5인, 1983)나 < 핑크팬더Pink Panther Show >(게리 치니퀴, 프리츠 프레렝, 1969)도 재미있게 봤으며, 일요일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디즈니 만화동산> 시간이 되면 자동적으로 눈이 번쩍 떠지고 그랬지만, 그럼에도 기억 속에서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제로 수입하고 OEM 작업을 진행했던 애니메이션 회사 의 입장을 들어볼 차례가 된 것 같다. 1983년 MBC에서 방영된 <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 >(박시옥, 1983/좌), 1987년 KBS에서 방영된 <떠돌이 까치>(우).두 작품 모두 대원동화에서 제작했다. 사건의 실마리 3: 대원동화 물론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을 진행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일본 대중문화개방 이전에도 수입과 방영이 가능했었는지를 물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음은 대원미디어의 부회장을 지낸 바 있는 안현동 과 구술 면담자의 대화이다. (면담자) 《슬램덩크》를 연재할 당시에는 일본만화 수입개방 전이었는데요, 어떻게 수입을 하게 되고 또 일본만화 개방 전이기 때문에 이름도 일본어 이름이 아니라 우리식 이름으로, ‘강백호’ 이렇게 바꿔서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과정들은 생각이 나시나요? (구술자) … 한일문화개방이 아직 안 된 시점이라도 도에이 작품 같은 경우는 우리가 얼마든지 들여와서, 개방되기 전에는 규제나 이런 게 좀 따랐지만은 … (면담자) 일본문화가 개방되기 전인데 < 은하철도 999 >(린 타로, 1977)나 그런 애니메이션, (구술자) 그건 순전히 OEM만 제작을 갖다 한 거예요. 우리가 거기 제작이 돼서 관여할 수도 없고. 그다음에 우리가 여기에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는 거고. … 일본 대사관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왜 연락이 왔냐면 우리가 수출을 하는 것도 좋지만은 이게 일본하고 이런 문제가 있는데. < 천년여왕 > (니시자와 노부타카, 1981)같은 경우는, 작품의 어떤 기본적인 컨셉이 여러 가지 일본하고,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이런. … 그래서 우리를 조사를 하겠다 그래가지고. 우리가 대사관에 가서 설명을 했죠. 그 작화하고 다 갖고 가서. 우리가 여기에 권리가 하나도 없다. 우린 단지 수출, 가공해 가지고 다시 거기 갖고, 직원들 인건비 주고 이런 거지, 여기에 대해서 없다 전혀. … 이것도 누가 이제 계통에서는 ‘대원이 일본 앞잡이 아니야?’ 이렇게 돼서 그때 한번 곤욕을 치른 적이 있고 그렇죠. (면담자) 근데 당시 말씀하신 것처럼 반일 감정도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국산 애니메이션처럼 인식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 방영이 계속되었잖아요. TV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방영을 계속했었구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가 뭐였었나요? (구술자) 근데 원작이 너무 특이하고 재밌어요. 일본에 그 원작은 우리가 참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다가. < 드래곤볼 >이라든가, < 슬램 덩크 > 라든가, 뭐 < 원피스 > 이런 것들은 너무 작품들이, 아직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러다 보니까 이 작품을 방송을 한다던가 하게 되면은 시청률도 높고 이러니까, 이걸 뭐 안 할 수가 없고. 그런 상황이 돼 버리는 거죠. (면담자) 그럼 정부나 심의기관이나 이런 곳에서도, (구술자) 이걸 방송하는 데 큰 하자가 없고, 문화개방 안 돼도 이 작품이 들어와서 유익하고, 뭐 시청률도 높고 이러다 보니까 한 거지. 안 그러면 이게 문제가 되면은 컷이 됐겠죠. 근데 그러진 않았어요. - 안현동, 2020, 119~121쪽 이 대화 속에는 아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본문화개방 이전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면담자와,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 구술자 간의 숨막히는 줄다리기.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치 쫓고 쫓기며,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사실 구술자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해주고 있다. 대원동화는 1970년대 그 전신인 원 프로덕션 시절부터 일본의 영화회사 도에이(東映)와 전속계약을 맺고 하청을 맡았다. < 우주전함 야마토 >(마쓰모토 레이지, 1974), <우주 해적 캡틴 하록>,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같은 작품들이 그렇게 진행된 작품들인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게 OEM을 진행했던 작품들을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보세가공품’으로 국내에 허가를 받아 방영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일본’과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동시에, 자신의 회사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져 이야기가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점이 오히려 구술자가 질문의 내용과 자신이 하고 있는 답이 갖고 있는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술자가 이야기하는 <천년여왕>은 1983년 1월부터 MBC에서 방영되던 중, 같은 해 3월 전체 42회차 중 10회를 방영한 후 돌연 개편을 핑계로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그 전후 사정은 다음과 같다. 방영되고 있는 어린이용 공상과학 만화영화가 대부분 일본에서 그곳 어린이들의 취향에 맞게 제작됐거나 심지어는 일본의 설화를 원전으로 삼은 것도 섞여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MBC TV는 일본 동영동화주식회사가 제작, 동영주식회사를 통해 배급한 <은하철도 999>의 방영에 이어 같은 제작⋅배급망을 거친 <천년여왕>을 지난 1월 23일부터 매주 일요일 상오8시에 내보내고 있다. (중략) <천년여왕>은 MBC가 방영에 앞서 미 유니버설 작품이라고 밝혔었고 방송심의위원회도 그렇게 알고 있다. 방송심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천년여왕> 심의 당시 유니버설 작품으로 돼있었다고 밝히고 “일본만화영화의 방영금지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일본극영화의 수입이 허락되지 않으며 한국영화에 일본 배우의 출연도 막고 있다. 그런데도 만화영화만은 예외인 듯 방송망을 타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일보》, 1983. 3. 10. 12면 기사 MBC TV는 23일 어린이 대상의 공상과학만화영화 <천년여왕>을 도중하차 시켰다. MBC의 한 관계자는 이 만화영화가 일본의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일본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어서 어린이 교육 상 문제가 있다는 여론에 따라 이 프로를 도중에서 폐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후략) - 《한국일보》, 1983년 3월 24일자 12면 기사 사실 《한국일보》의 기사 이전에 이 작품이 ‘일본 작품’이라는 데에 문제를 제기한 이는 시청자였다. *주3 하지만 이 글을 쓴 시청자는 일본 작품의 방영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일본의 만화영화가 방영되면서 일본식 표현을 번역함에 있어 미흡함이 있음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위에 인용한 기사 속 방송심의위원도 ‘일본만화영화의 방영금지규정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TV를 통해 많은 일본 작품들이 국내에 방영되고 있고 그 자체를 문제삼는 분위기는 아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천년여왕>은 일본 대사관까지 그 문제를 조사하고 나설 정도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주4 1982년에는 제2차 한일경제협정안을 놓고 양국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득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사실이 드러나며 1983년 초까지도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 구술자가 들었다는 ‘일본 앞잡이’라는 표현도 당시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주5 다시 말해, 평소에는 일본만화영화를 가져와서 방영을 해도 눈치껏 잘 넘어가주던 방송심의위원회에서도 이렇게 외교적으로, 그리고 국민정서 상 일본문화에 대해 반감이 커지는 시기가 오면 갑작스레 방송 중단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애니메이션 하청⋅수입업자의 입장에서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사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때 하나의 문화가 산업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국가 정책에 따라 규제가 뒤따르기는 하겠지만, 경제적으로 권익을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이 기업적 규모의 인력이 투여되어야 하는 문화의 경우 산업으로 인정받고 장려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일본대중문화개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을 때, 애니메이션 제작⋅배급업자들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당시 정부는 미래의 먹거리로 ‘소프트 산업’을 지목하며, 제재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지원은 최대로 한다는 정책방향을 세우고,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애니메이션 종사자들도 구술을 통해 ‘실제로 김대중 정부 때 가장 많은 지원을 받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기에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되면, 일본만화 및 그와 관련된 콘텐츠를 수입⋅배급하던 회사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사업을 양지화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이 시기 대부분의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작품을 제작함과 동시에 일본 콘텐츠에 대한 수입⋅배급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이는 VCR이 국내 널리 보급되며,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아동용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여러 모로 회사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1980~90년대 대원동화에서 애니메이션 연출과 기획팀장으로 일했던 황정렬 은 1990년대 말, 일본대중문화개방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구술자) 사실은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 수입이 정식적으로, 공식적으로 돼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특히 대기업 같은 경우는 뭐 일본영화라든가 일본만화라든가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죠. 그리고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일본애니메이션이나 일본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사실 대원이 거의 유일했었어요. 70년대 말부터 대원 같은 경우는 애니메이션 OEM을 시작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라든가 그 제작사하고 연계된 캐릭터 사업을 하는 회사라든가 ‘반다이’ 같은 회사들, 그런 회사들하고 계속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해왔었기 때문에 사실 대기업이 아무리 뭐 해외지사가 있고 정보 수집 능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어서는 대원을 따라갈 국내 기업은 없었다고 봐요. (중략) 문화개방을 풀려면 제일 먼저 부딪쳐서 해결해야 될 부분이 공무원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문화관광부 담당 공무원들 만나서 설득하는 작업을 저하고 회장님하고 같이 했었는데, (면담자) 그러면 정책이 나오고 나서 대원은 ‘대중문화 개방 됐으니까 수입하자’가 아니라 좀 더 발빠르게 ‘수입해야 하니까 정책을 만들자’ 이렇게, (구술자) 그렇죠. 현실적으로 일본문화가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있고 청소년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만화라든가 애니메이션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것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막는다는 게 무슨 시효가 있겠느냐, 차라리 개방을 해서 (사이) 양지로 끌어올려가지고 정말 정서적으로 저해가 되는 것들은 법으로 막고 다음에 그 수입을 자유롭게 해야 우리나라의 캐릭터 시장이라든가 애니메이션도 경쟁력이 생겨서 나중에는 오히려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니냐, 그런 논리로 계속 설득을 했죠. - 황정렬, 2020, 120~122쪽 <드래곤볼>, <슬램덩크>, < 달의 요정 세일러문 >(사토 쥰이치, 1992), < 포켓몬스터 >(유야마 쿠니하코, 1997)는 모두 대원동화(현재 대원미디어)에서 수입⋅배급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자, 여기까지가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 TV에서 방영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구술자들에게 들었던 단서들이다(그리고 이보다 많은 단서들을 한국영상자료원 2층 영상도서관에 비치된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코난은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고 외치지만, 사실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은 진실의 뚜렷한 실체를 들여다 보는 것보다는 그 실체가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원래의 실체가 어떻게 생겼던 것일지를 추리하는 일에 가깝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방영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냥’이라든가, ‘심의기관에서 굳이 막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같은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기반 마련이 정책결정자의 작은 상상력에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처럼 구술채록문을 보며 추리와 상상을 쌓아가다 보면 또 다른 출발점이 보일지도 모르니, 다들 시도해보자! ※ 인용된 구술채록문들 김성희⋅이은솔,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22권: 안현동』, 한국영상자료원, 2021. 나호원⋅임정연,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28권: 이용배』, 한국영상자료원, 2021. 배수경⋅남기웅⋅박현선,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35권: 정병권』, 한국영상자료원, 2021. 박경진⋅현찬양⋅공영민,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2권: 최수형』, 한국영상자료원, 2021. 장유진⋅김은하⋅한솔,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4권: 황선길』, 한국영상자료원, 2021. 맹우영,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시리즈 <생애사> 45권: 황정렬』, 한국영상자료원, 2021. *** 주1. “KBS 명화극장에 액션 사극물 <코사크>”, 《조선일보》 1970. 9. 20. 8면 기사. 이 기사에서는 <우주소년 아톰>을 미국 NBC-TV의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2. “[하일라이트] TBC TV 예그린뮤지컬 <재미있는 세상>, KBS TV 어린이 만화영화 <틴틴의 모험>”, 《경향신문》, 1971. 1. 20. 8면 기사. 주3. “[민성-독자가 만드는 조선일보]일서 수입한 TV만화 용어까지 그대로 방영”, 《조선일보》 1983. 2. 12. 8면 기사. 주4. 사실 <천년여왕>의 방영 중단을 놓고, 일본 대사관이 이를 문제 삼아 조사를 했다는 구술자의 말은 조금 의구심이 남는다. 물론 도에이에서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대사관을 통해 항의를 하고, 이를 일본 대사관이 대원동화에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일본 대사관에서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국내 기업을 조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시간이 지나며 구술자의 기억이 왜곡되어 관련 기관을 잘못 말한 것이거나, 실제로는 ‘조사’가 아닌 흔히 ‘초치’라고 표현하는 외교 상 강력한 항의를 받는 수준의 대처를 과장하여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주5.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놓고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으나,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채록연구’를 진행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을 주로 담당했던 구술자들이 들었던 비난으로 ‘친일’과 함께 자주 언급했던 표현 중 하나이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미국의 애니메이션 하청을 주로 맡았던 구술자들이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는 태도를 이들과 비교해보는 것도 ‘애니메이션 종사자 구술’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지점 중 하나이다.
제이콥( 스티븐 연 )과 모니카( 한예리 ) 부부는 미국 남부 아칸소의 외딴 공장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한다. 그들은 하루 종일 병아리의 항문을 확인한 뒤 성별을 구분해 색이 다른 통에 넣는 일을 한다. 성별이 수컷이거나 다친 병아리는 별다른 고려 없이 소각장으로 보내진다. 끊임없이 잿빛 연기를 뿜어내는 병아리 소각장 앞에서 제이콥은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도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거야.” 제이콥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건, 이들 부부의 일상에 비상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 미나리 >는 서서히 코너에 내몰려 결국 인적 없는 미국 남부 시골 마을까지 오게 된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생존을 위한 분투기를 다룬다.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 그리고 부부의 딸 앤과 아들 데이빗은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까 싶은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남겨진 한 트레일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그동안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수많은 한국계 미국인 디아스포라 영화들은 LA처럼 한인 커뮤니티가 잘 형성된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한 고요하고 황량한 벌판, 이제까지 한국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거의 탐험해본 적이 없는, 오히려 개척을 테마로 하는 서부영화에 더 잘 어울릴 법한 풍경 속에서 디아스포라 가정의 서사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지가 <미나리>에 대한 첫 번째 궁금증이었다. 제이콥이 “미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라고 말하는 아칸소의 초원은 미국행을 택한 뒤 10여 년간 실패만 거듭해온 한국계 미국인 가족이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꿔보고자 하는 장소다. 촬영감독 라클란 밀네가 포착한 아칸소의 따스한 햇빛과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 위를 바쁘게 오가는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의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나리>는 묘한 울림을 준다. 품었던 희망들이 하나씩 좌절되며 구석까지 내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의지(그것은 제이콥이 굳이 미국 채소가 아닌 한국 채소를 미국 땅에 재배하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와 애환이 아칸소의 정적이고 서정적인 풍경과 어우러져 강렬한 정서적 감흥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틀림없이 절제된 프로덕션 속에서 감정의 진폭을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그리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로 완성된 영화의 스케일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을 다루는 영화처럼 느끼게 만드는 리 아이삭 정 감독의 연출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미나리>는 가족이라는 우주를 통해 그들이 속한 세계를 조망한다. 식탁에서, 일터에서, 가족이 발 딛고 서 있는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사건들은 문화와 세대의 차이, 이민자 가정의 좌절과 희망, 사랑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가족 구성원에 따라 같은 사안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지고 어떤 구성원이 누구와 마주하느냐에 따라 대변하는 문화적, 사회적 층위가 달라지는데, <미나리>는 그런 점에서 영화의 시선이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는지 살피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일례로 제이콥의 아메리칸 드림은 모니카에겐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 남편이 “아빠가 한번쯤 해내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인프라 없는 시골 마을로의 이사를 결심할 때, 현관문이 없는 새 집의 상태를 근심하는 것,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을 위한 병원이 한 시간 이상 운전해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음을 우려하는 건 전부 아내 모니카의 몫으로 남겨진다. 같은 꿈을 꾸며 택한 미국행이었으나 새로운 정착지에서도 여전히 작동 중인 한국식 가부장제가 어떻게 부부의 마음을 갈라놓는지, 영화는 관찰자의 위치에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배우 한예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 이민자 여성의 초상을 사실적이고도 디테일한 필치로 연기한다. 마음 둘 곳 없는 딸을 위해 한국에서 이민 온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 윤여정 )와 손자 데이빗은 <미나리>를 본 이들이 가장 오랫동안 사랑할 만한 조합이다. 집에서건 밖에서건 한국말을 쓰며 외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모니카와 달리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데이빗은 외양은 한국인이나 이미 자신도 모르는 새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소년이다. 그런 그에게 (미국 할머니들처럼) 요리도 안 하고, 욕설을 입에 달고 살며 ‘한국 냄새’가 나는 외할머니는 납득할 수 없는 존재다. 영화는 순자와 데이빗의 에피소드를 통해 일상적으로 정체성의 충돌과 혼란을 겪고 있는 이민 2세대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외신으로부터 2021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여우 조연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배우 윤여정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를 한다. 그가 연기하는 순자는 동서양을 막론한 장년층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낌없이 베풀고 인자한 모습의 할머니와 거리가 멀다. 호불호가 명확하고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며 무심한 듯 세심하게 삶의 연륜으로부터 비롯된 지혜를 가족들에게 건네는 ‘쿨’한 할머니의 존재는 전세계 매력적인 장년층 여성 캐릭터의 정전에 기꺼이 순자를 추가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 먹고사는 걱정으로 인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력조차 없는 이민자 가정의 척박한 상황을 조명하는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과 관객이 숨을 돌릴 틈을 마련하는 것 또한 외할머니 순자, 그리고 그를 연기하는 배우 윤여정의 몫이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 감독 리 아이삭 정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다. 데뷔작 < 문유랑가보 >부터 <미나리>에 이르기까지 줄거리나 대사로 구현할 수 없는 정서적인 순간들을 특유의 시적 영상으로 구현해온 리 아이삭 정 감독에게 <미나리>는 유년 시절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어 더욱 특별한 영화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가 있는 도시가 아니라 시골(아칸소)에서 성장했다. 스스로를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기보다 코리안/아메리칸이라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감각이 그 자신을 관찰자의 자리에 위치하게 하는 듯하다. 내전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은 르완다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소년과 그와 동행하는 원수지간 부족의 친구를 조명한 <문유랑가보>에서부터 리 아이삭 정의 관심은 경계의 인물들, 소수자들, 다양한 층위가 충돌하는 누군가의 내면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경계에 위치한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아시아계 감독이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은 지난 2018년 주류 미국 영화산업에 선풍적인 박스오피스 기록을 남기며 주목받았던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 < 서치 > 등의 영화와는 또 다른 의미의 인상적인 족적으로 기억될 듯하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감각은 영화 <미나리>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긴밀한 결속과 유대로 이어진다. 결국 이 영화는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민자 가족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에, 기댈 곳은 서로의 어깨 뿐이기에 누구도 이탈하지 않도록 각자의 손을 더욱 단단하게 잡는 이야기다. 집안 곳곳에서 가족들이 맺는 다양한 관계와 유대의 순간들을 조명하며 감정의 폭을 촘촘히 쌓아가다가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감정을 폭발시키는(윤여정의, 윤여정에 의한, 윤여정을 위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의 진폭을 확장시킨다. <미나리>에서 사사롭게 마음이 갔던 대목은 모든 것을 잃은 밤, 온 가족이 바닥에 누워 함께 잠을 청하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고된 현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오늘 밤 아무도 잃지 않았음에 안심하며 또 다른 미래를 위해 힘을 비축하는 이들의 근성이야말로 그 어떤 설명이나 수식 없이 한 가족이 거쳐온 이민자로서의 삶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낯선 땅에 뿌리내리고 풍성하게 자란 미나리처럼, 이 가족의 아메리칸 드림 또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작은 희망을 <미나리>는 안겨주고 있다.
실사영화 < 알라딘 >(가이리치, 2019)이 최근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오래전 2D 애니메이션 < 알라딘 >(데이빗 드웨이츠, 1992)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지니를 실사화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봤지만 그런 우려를 떨쳐낼 만큼 윌 스미스의 매력도 충분했다. 물론 흑인 배우가 지니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일부 팬들의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알라딘>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때 흑인 배우 제임스 먼로 아이글하트가 이미 멋지게 지니 역을 소화한 바 있고, 그를 통해 토니상 남우조연상까지 받았다. 인종 문제 얘기를 하자면,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역시 <인어공주> 실사영화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인어공주 역으로 낙점된 일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알라딘>은 <아라비안 나이트>와 아랍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을 뿐 램프의 요정의 어떤 인종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알라딘>이 아랍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원전에서는 배경이 중국이며 알라딘도 중국인이다. <인어공주> 역시 원작자가 덴마크인이고 북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인어공주는 인간과 다른 종족이기에 피부색이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전세계 영화의 중요한 경향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PC(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고려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의 PC란 인종, 종교, 성별 묘사 등에 있어 그 어떤 편견과 차별도 없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로서의 ‘정치적 올바름’이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유색 인종 캐릭터를 백인 배우가 무분별하게 연기하는 인종차별적 ‘화이트워싱’(whitewashing) 현상에 대한 반발이 가장 크다. 지난 2017년에는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를 < 마션 >(리들리 스콧, 2015) 등 여러 영화의 포스터에 합성해 화이트워싱에 반발했던 캠페인 ‘존 조 주연시키기(Starring John Cho)’가 SNS를 뜨겁게 달궜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 주연을 맡기 힘든 아시아계 배우들의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 서치 >(아니쉬 차간티, 2017)는 그동안 백인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버지 역할을 존 조에게 맡김으로써 미국영화 속 아시아계 배우의 활동 범위를 한층 더 확장했다. 감독 또한 인도계 미국인인 아니시 차간티이며, 자신이 성장해온 미국의 아시안 커뮤니티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고 한다. 같은 해 개봉하여 제작비 대비 7배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보여주며 북미 박스오피스를 강타한, 제작진부터 배역까지 아시아계로 꽉 채워진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존 추, 2018)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는 내년 개봉 예정인 <뮬란>에 화이트워싱 없이 유역비가 주연을 맡고, 마블 최초의 아시안 히어로 영화 <샹치>가 제작 준비 중이다. 마블 최초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 < 캡틴 마블 >(안나 보덴, 라이언 플렉, 2019)을 통해 안나 보덴이 마블 최초의 여성감독이 된 이후, <샹치>보다 앞서 2020년 11월 6일을 개봉일로 잡은 <이터널스>는 마동석 배우의 출연만큼이나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가 마블 최초의 비백인 여성감독으로 메가폰을 잡아 눈길을 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다시 <알라딘>으로 돌아와, 과거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실사영화의 자스민 공주가 궁의 생활을 별로 답답해하지 않는 것 같아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답답한 궁에서 살고 싶지 않아!”라는 과거 자스민의 ‘선언’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수많은 공주들 중에서 처음으로 ‘NO!’라고 말한 획기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실사영화의 자스민은 궁을 떠나려는 게 아니라 그냥 훌륭한 술탄(왕)이 되려고 한다. 과거에는 아버지 술탄이 왕자가 아니어도 공주와 결혼할 수 있게끔 법을 개정했지만, 이제는 “네가 아그라바의 미래다. 술탄의 지위를 너에게 넘기겠다”라며 딸이 직접 술탄이 되고 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게끔 한 것이다. 이런 변화에 더해 최근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디즈니의 오랜 팬들 중에는 디즈니의 ‘과도한 PC 강박’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꽤 많다. 하지만 그들이 집중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해온 지난 10년의 시간이,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가장 고도의 성장을 보여준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 마블과 픽사와 루카스필름까지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디즈니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컨텐츠 제국이 됐다. 오래전 월트 디즈니는 무려 23개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난 이 트로피보다 돈이 더 좋다”고 말해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먼저 시도하고 돌파하며, 언제나 새로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지금의 디즈니 입장에서 말 그대로 PC는 돈이 되는 주문인 것이다. 절대적으로 그것이 중요하다. PC한 것을 추구할 때 좋은 평가도 얻고 돈도 번다는 것을 세계영화계 모두가 알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