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조
- 감독
- 이광국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김영필, 신동미, 이채은, 이다윗, 김동현, 조한철, 류의현, 김수웅, 박혜진, 조덕제, 서영화, 신연숙, 백익남, 박수민, 배단희, 방영배, 이달, 곽자형, 김새벽, 조재윤, 팽재국, 이승호, 변재상, 소원, 이예나, 유금정
얼마 전 2018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영화 공개되었다. 선정위원이 고른 리스트 에 빠져 아쉬운 한 편은 무엇이였을까?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2019.2.16~28)과 함께 오늘부터 일주일에 한편씩 그 영화 리뷰 연재 [KOFA 10 Best + 1]을 시작합니다. 이광국 감독의 <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은 호랑이의 ‘어흥’ 포효처럼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담은, 내게는 2018년의 한국영화 중 한 편이다. 제목은 창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의 인상을 단순하고 짧게 전하는 게 보통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은 인상보다는 내용과 형식에 관한 힌트를 개성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들의 ‘시장 친화적인’ 태도에 반(反)하는 의지가 충만하다. 진짜 호랑이거나 아니거나 처음 볼 때는 그래도 설마 호랑이가 직접 언급되거나 등장하지는 않겠지, 예상했다. 짐작이 무색하게, 여자 친구 현지( 류현경 ) 집에 군식구로 사는 경유( 이진욱 )가 아침 식사를 하던 중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묻는다. 현지 왈, “뉴스 보니까 호랑이 한 마리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대.” 호랑이가 탈출했다고! 근처에서 울음소리까지 들렸다고!! 그런데 경유와 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일상적인 톤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도대체 왜? 바깥에서 호랑이가 날뛴다고 한들 그보다 무서운 현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경유를 비롯하여 주요 인물의 마음속에 가둬두었던 ‘호랑이’의 마음이 폭발(=탈출)하여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거나, 그러니까, 사실이거나 상징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꿈과 현실을 뒤섞고, 극 중 극의 구조를 활용했던 이광국 감독의 전작 < 로맨스 조 >(2011)와 < 꿈보다 해몽 >(2014)을 고려할 때, 호랑이의 의미는 어느 하나에만 기울지는 않을 터다. 현지의 부모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경유는 아직 결혼하기 힘든 형편(“나 어제 일 잘렸어”)이 부담스러워 집을 나온다. 친구 집에서 신세 좀 질까, 근데 문전박대당하고, 추운 밤 사발면에 의지해 대기하다가 겨우 한 건 잡은 대리운전 고객이, 글을 포기한 자신과 다르게 작가로 등단한 전 여자친구 유정( 고현정 )이고, 그로 인한 패배감을 풀어보려 찾아간 현지는 글쎄 경유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이사를 떠났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것 같은, 억세게 풀리는 거 하나 없는 경유에게 차가운 현실이야말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과 다를 바 없다. “다른 대리 기사 불러줄게”(경유), “아니야 네가 해줘”(유정), “내가?”, “좀 불편한가?”, “아니”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억울한 심정을 어떻게든 참아보려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답형의 대답으로 애써 마음을 채비하는 경유의 심리 상태는 유정의 차를 몰고 가는 라디오 뉴스 방송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탈출한 호랑이의 행방이 묘연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호랑이와 마주치게 되면 움직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데요.’ 손님이거나 아니거나 최선을 다해 죽은 듯 하려는 경유의 마음은 대리기사로 손님을 맞이할 때마다 최선의 의미가 무색하리만치 최악으로 향한다. 대리기사 주제에 왜 손님을 기다리게 하느냐는 둥, 처음 탈 때는 멀쩡했는데 잠에서 깨어나 확인하니 왜 차에 흠집이 있냐는 둥, 지갑에 돈이 없다며 잠시 기다리게 한 후 연락을 끊는 둥, 운전 노동을 마친 후 경유가 손에 집어 드는 건 요금 대신 손님들의 경멸 어린 시선과 이에 따른 치욕과 그래서 참을 수 없는 분노다. 어쩌다가 받게 된 돈도 유정의 경우처럼 바닥으로 떨어진 경유의 자존감을 더욱 비참하게 하는 굴욕감의 형태다. 호랑이로 사실과 상징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영화의 특징은 손님을 경유의 대척점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경유의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기능하도록 한다. 대리기사일 때 경유는 손님을 받는 입장이지만, 마땅한 거처가 없어 그에게 묵을 곳을 제공하는 이들에게는 손님의 위치다. 후자로서 경유는 그 자신이 경험한 손님들처럼 불편한 존재다. 그렇지 않았으면 현지는 왜 경유 몰래 이사를 한 것이겠으며 친구는 또 왜 문 앞에서 모질게 대하며 경유를 집에 들이려고 하지 않은 걸까.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사실을 달리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 경유에게 이 말은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생존의 개념에 가깝다. 단편 소설을 완성해야 하는 유정에게는 마감일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는 창작의 고통을 의미한다. 삶이 자기에게만 불공정하게 느껴진다면, 그래서 혼란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질서의 양면성을 하나의 입장만 취해 바라본 까닭이다. 갈수록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은 대리운전 중 자살 시도하는 여성(김예은)을 구한 경유에게 경찰(정승길)이 전한 얘기 중 일부다. 경찰은 그러면서 “두 사람을 구했어요” 하자 경유는 그 여성이 만삭의 상태였다는 걸 알고 놀란다. 이의 설정에 관해 이광국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경유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나는 그에 더해 이 세상이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질서에 관한 은유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이광국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취하고 있는 형식이 작동하는 원리다. 현실이거나 초현실이거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건 만삭의 여인처럼 이면 혹은 행간을 품고 있어서다. 호랑이의 동물원 탈출 소식을 전하면서도 이 사실을 가지고 경유의 차가운 현실을 은유하는 이 영화의 서술 방식은 바로 그런 세계의 질서를 내재한다. 창작이란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호랑이보다 차가운 겨울손님>은 창작의 동력을 잃은 경유가 다시금 어떻게 펜을 들어 소설을 쓰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편소설 작업이 지난한 유정도 이에 해당할 수 있겠다. 물론 경유와는 다른 형태다.) 경유가 글쓰기 작업을 한동안 포기하면서도 유일하게 버리지 못한 소설이 있다. 『노인과 바다』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 산티아고가 오랜 기다림 끝에 잡은 청새치를 끝내 뼈대만 남긴 채로 가져온다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소설의 노인처럼 경유도 현재 몸뚱이만 남은 정신적인 뼈대의 상태다.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은 것은 차치하고, 유정이 실은 경유가 쓴 과거의 단편을 고쳐 쓸 목적으로 연락한 것을 알자 올라오는 화를 억누를 수가 없다. 짐도 챙기지 못하고 유정의 집에서 나와 추운 거리를 걷자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허무한 상태다. 누군가에게 삶의 허무는 인생의 끝을 의미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는 떨어질 수 없는 상태가 반동이 되어 새로운 시작의 계기로 작용한다. 경유는 후자의 경우로, 결과는 허무일지라도 이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유의미한 삶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을 다시 쓸 노트와 함께 구입한 담배에 불을 붙여 폐로 한 모금 빨아들인 연기는 차가운 현실처럼 쓰리다. 그래도 이를 숙성해 밖으로 내뿜을 때는 부연 연기일지라도 어떤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창작을 향해 퍼지는 의지이기도 하다. 경유가 구한 여인은 경유 자신의 창작욕을 구원한 일종의 다른 판본이기도 하다. 창작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살점 없는 세계의 질서에 구체적인 살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경유에게 남은 건 실체와 마주할 용기다. 그리고 기어코 등장하는 탈출한 호랑이의 정체. 이것은 호랑이인가, 호랑이의 탈을 쓴 인간인가. 당신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현실과 초현실을 하나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를 구체화한 이광국 감독의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그 이상의 무엇을 보았다. 뻔한 한국 대중영화의 울타리에서 탈출한 대담한 상상력을 말이다.
2001년 | 좋은영화 감독: 김상진 | 원안: 이해영 이해준 김영호 | 각본: 박정우 | 제작: 김미희 | 기획: 강우석 | 촬영: 정광석 | 미술: 조성원 | 음악: 손무현 CAST 박영준: 이성재 | 최기동: 차승원 | 민주란: 김혜수 | 민주섭: 이종수 | 천수: 이원종 | 덕섭: 성지루 | 넙치: 유해진 2000년대 전반기 한국영화의 가장 강력한 트렌드 중 하나는 이른바 ‘조폭 영화’였습니다. < 친구 >( 곽경택 , 2001)를 필두로 < 달마야 놀자 >( 박철관 , 2001) < 조폭 마누라 >( 조진규 , 2001) < 가문의 영광 >( 정흥순 , 2002) 등은 모두 이후 시리즈로 이어지는 흥행작들이었죠. <신라의 달밤>도 이 시기 나온 영화였고 큰 흥행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 주유소 습격사건 >(1999)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제작사 좋은영화와 김상진 감독이 다시 만난 이 영화는, 조폭 영화이면서 동시에 삼각관계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현장 공개는 주란(김혜수)이 경영하는 ‘주섭이네 라면’ 가게입니다. 주섭(이종수)이는 주란의 말썽쟁이 동생으로 조폭이 꿈인 고등학교 ‘짱’이죠. <신라의 달밤>에서 이 공간은 주란과 영준(이성재)과 기동(차승원)의 관계가 시작되고 변화하는 중요한 곳인데요, 영화를 위해 지은 오픈 세트입니다. 꽤나 그럴 듯해서, 촬영 기간 동안 진짜 분식집인 줄 알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신라의 달밤>의 가장 큰 갈등은 영준과 기동 사이에서 생깁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죠. 차승원이 역할을 맡은 기동은 당시 ‘짱’이었지만 이젠 모교의 체육 교사입니다. 한편 과거 ‘범생이’였던 영준은 지금 조폭이 되어 있죠. 하지만 겉모습만 보면, 기동이 조폭 같고 영준이 선생님 같습니다. 사실 차승원과 이성재는 < 자귀모 >( 이광훈 , 1999)에서 만난 적이 이었는데요, <신라의 달밤>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친해졌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이성재와 외향적인 제 성격으로 인해 껄끄러운 부분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기우였고, 두 사람은 금방 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란과 동생 주섭. 주섭은 매일 같은 싸움질에 얼굴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습니다. 코미디 이미지가 강한 배우지만, 놀랍게도 <신라의 달밤> 이전에 차승원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었습니다. < 세기말 >( 송능한 , 1999) < 리베라메 >( 양윤호 , 2000) 등에서 비열하거나 악한 캐릭터를 맡았는데요 <신라의 달밤>에서 확실하게 이미지가 변하죠. 이후 < 광복절 특사 >(김상진, 2002) < 라이터를 켜라 >( 장항준 , 2002) < 선생 김봉두 >( 장규성 , 2003) < 귀신이 산다 >(김상진, 2004) 등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200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 배우가 됩니다. 사실 이성재가 맡은 영준은 쉽지 않은 캐릭터였습니다. 영화에선 아무래도 기동이 돋보였고, 영준은 뉘앙스를 통해 연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기동처럼 내지르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성재는 매우 뛰어나게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데요, ‘젠틀한 조폭’인 영준은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한 살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3월의 촬영 현장은 꽃샘추위가 대단했는데요, 설정상 가을 양복을 입어야 했던 이성재는 꽤나 추위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그런 기색을 내지 않았습니다. 1998~2000년에 <김혜수의 플러스유>를 진행하면서 김혜수는 다시 배우로 돌아오기 위해선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에서 <신라의 달밤>은 그녀에게 유쾌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여행 중이던 비행기 안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네요. 차승원과 김혜수는 동갑내기이자 이미 <김혜수의 플러스유>에서 MC와 게스트로 만난 적이 있었죠. 그런 이유로 별 어려움 없이 공연할 수 있었고, 호흡도 잘 맞았다고 합니다. 차승원은 김상진 감독의 전작 <주유소 습격사건>에 카메오로 출연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아쉽게 잘린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고, <리베라 메> 촬영이 끝날 즈음 <신라의 달밤> 시나리오를 접한 후 읽자마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주란과 영준 사이에 약간 어색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김상진 감독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김 감독이 연출하기까진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원래 이 영화는 강우석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죠. 그런데 잘 풀리지 않았고,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김상진 감독이 개입하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했고 결국 직접 메가폰을 잡게 되었습니다. 김 감독은 박정우 작가와 함께, 가장 먼저 조폭과 교사의 성격을 바꾸었다고 하는데요, 원래는 교사가 과거엔 짱이었고 조폭은 예전엔 모범생이었다는 설정을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정광석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 동감 >( 김정권 , 2000) 포스팅 에서도 언급했던 정광석 촬영감독은 1960년대부터 활동했던, <신라의 달밤> 현장에선 60대 중반이었던 카메라의 장인이죠. 그럼에도 직접 크레인에 올라가 뷰파인더를 직접 챙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김상진 감독은 다음 작품인 <광복절 특사>(2002)도 정광석 촬영감독과 함께 했습니다. 이 날 촬영은 조금 정신 없었는데요, 분식집에 걸려 있는 여러 신을 한꺼번에 찍었기 때문이죠. 그 중 한 장면은 분식집을 찾아온 기종이 굳게 잠긴 문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채는 신이었습니다. 주란과 영준이 함께 야유회를 간 것이었는데요, 기동만 허탕 친 게 아니었죠. 여학생 세 명도 분식집 문이 잠겼다며 다른 곳으로 가는데요, 이 학생들은 현장에서 캐스팅 했습니다. 하교 중이던 경주여중 학생들이었는데요, 한 번의 NG도 없이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아 스태프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엉겁결에 분식집 일을 돕게 된 기동의 엉거주춤한 모습입니다. <신라의 달밤>이 7번째 영화인 차승원은 코믹 연기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적인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코미디는 해보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웃기기 위한 설정으로 장면을 만들어내는 건 사실 뻔하잖아요.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 그래서 박장대소할 수 있는 웃음이라야 먹히는 거죠.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김혜수 이성재 차승원의 조합이 좋았던 로맨스 조폭 코미디 <신라의 달밤>. 원래는 강우석 감독이 고소영 이성재 박중훈 캐스팅으로 찍으려 했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2011년 10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가 연출한 첫 번째 장편영화 < 물고기 >가 처음 상영되었다. 이전에 7편의 단편영화를 찍었지만 국내 영화제에 단 한 번도 초청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3D영화인 <물고기>는 연출자인 내가 후반작업 공정을 감당해야 했는데,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3D작업은 많은 작업량이 필요한데다, 사실 촬영 전부터 제작사가 투자 이외에는 작품 제작에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평 남짓한 조그만 방에서 오랜 시간 작업하며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다행히 부산에 초청된 이후, 로테르담국제영화제부터 밴쿠버국제영화제까지 열 군데가 넘는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토니 레인즈(영화 평론가), 거윈(로테르담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많은 해외 영화인들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또한 이광국 감독(< 로맨스 조 > < 꿈보다 해몽 >), 박정범 감독(< 무산일기 > < 산다 >), 이돈구 감독(< 가시꽃 > < 현기증 >) 등 멋진 작업을 하는 감독들과 교류하며 영화작업 외적인 행복감도 느꼈다. 이후 < 물고기 >는 2013년 1월에 개봉했고, 언론배급시사회와 유료시사회는 전부 3D로 상영했지만 정작 본 개봉은 3D 관을 하나도 잡지 못하고 소수의 일반 상영관에서만 개봉을 하며 500명을 간신히 넘는 스코어를 기록하고 말았다. 열패감이 심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사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2년간 <황사>라는 시나리오를 열심히 취재하며 썼고, 2년 넘는 작업 끝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러나 결국 여러 지원 프로그램에서 떨어지고 제작하려는 사람도 없게 되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방향을 잃어버리니 스스로가 점점 고립되어 갔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될 그즈음 이광국 감독은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 꿈보다 해몽 >을 완성하였고(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내가 매일 혼자 방에 있는 것을 알고는 수시로 작업실로 찾아오며 대화상대를 해줬다. 이돈구 감독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실에 와서 재능을 의심하고 있는 나에게 큰 힘을 주곤 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할까.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영화를 찍고 싶다. 왜 찍고 싶을까? 영화를 통해서 내 고민을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내가 흥미 있는 방식으로 솔직하게 영화로 만들어보자. 또한 어차피 고독할 거라면 내가 모든 제작 공정을 전부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며 시작한 영화가 바로 < 혼자 >이다. < 혼자 >라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자체에 몰입하며 여러 복잡한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었다. 한참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구상하고 있을 때 박정범 감독이 갑자기 차를 몰고 왔고, 함께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가게 되었다. 바닷가에서 돗자리만 펴고 잠든 다음 날, 나는 박정범 감독에게 “대낮에 살인을 저지른 괴한이 내 작업실에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 목격자인 나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데, 나는 죽지 않고 맞은편 정자에서 알몸으로 깨어난다.”는 기본 줄거리를 처음 이야기했고 그러자 “재밌겠네.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있는 작업실의 맞은편 동네는 신당9구역 재개발지역으로 신당동에 마지막 남은 재개발 구역이다. 현재는 재개발과 도시재생 사이에서 첨예한 대립각에 놓여있다. 힘들 때 옥상에 올라가면 이 동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데, 언덕 빽빽이 놓인 집들의 모습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왠지 아름답기도 하고 압도적이기도 하고. 힘들 때 동네를 보고 있으면 이 동네의 모습이 마치 내 뇌 속 같다는 느낌도 들곤 했다. 이러한 느낌들을 영화로 구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일 그 동네를 걸어 다니며 고민하고 관찰했다. 그리고 그 복잡 미묘한 동네의 모습과 내 무의식의 흐름을 대입시켜 표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움직이는 롱테이크를 사용하면 무의식의 흐름이 긴 줄기처럼 효과적으로 표현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칙은 CG는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본 촬영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감당할 것. 그리고 무의식의 흐름을 긴 줄기처럼 표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롱테이크 기법을 최대한 활용할 것. 이었다. 움직이는 롱테이크를 잘 구현하려면 안정적인 카메라 움직임이 필요했고, 이에 대해 고민을 해야 했다.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일단 테스트가 필요했고, 장비 렌탈을 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직접 구비하고 되파는 방식을 선택했다. 우선 갖고 있는 물건들을 팔고 빌려 돈을 마련했고, 필요한 촬영 장비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사진 설명] 블랙매직 포켓 카메라 이미지 출처: https://www.blackmagicdesign.com/products/blackmagicpocketcinemacamera 일단 작은 카메라를 사용하고 싶어서 블랙매직 포켓 카메라를 구매했다(마침 차기 제품이 나오기 전 반값으로 할인하는 특별행사 기간이었다). 일반적인 DSLR류 카메라는 압축코덱을 사용하여 색보정 시 열화가 발생할 확률이 높지만 이 카메라의 경우는 저가 카메라에서는 보통 채택하지 않는 무압축 코덱(RAW)을 지원하고 계조가 13스톱이기 때문에 색보정 시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많았다. 대신 단점도 많았는데 일단 선예도가 뛰어나지 않고 환산화각이 2.88:1 배율이라 화각이 너무 좁아 12mm 렌즈를 사용해야 간신히 표준 사이즈로 들어올 수 있었다. 추가 화각을 확보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결국 30%가량의 화각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화각 확보도 확보인데 포커스 아웃에서 발생하는 망울 느낌과 아나모픽 특유의 푸른 가로선 등이 내가 고민하는 영화의 기호와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AG-LA7200 어댑터 렌즈 이미지 출처: https://youtu.be/WkmS-9MTyR8 저가형 아나모픽 렌즈를 구매하고 팔며 테스트도 해보고 여러 군데를 다니며 공부를 하던 중, 파나소닉에서 예전에 캠코더의 4:3 사이즈를 16:9로 바꿔주는 AG-LA7200 어댑터 렌즈를 발매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제품을 16:9 렌즈에 장착하면 2.35:1로 바꿔주는 효과가 생긴다. 또한 대다수 아나모픽 렌즈는 아나모픽 렌즈에서 포커스 조정을 한 번 더 해줘야 하는데 이 제품은 본 렌즈의 포커스만 조정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 제품은 절판된 데다가 국내 중고장터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 해외 이베이를 뒤지기 시작했고, 겨우 독일에서 판매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국내 도착까지 2주가량 걸렸는데 다행히 장비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대신 이 제품이 원래 캠코더용이기 때문에 일반 렌즈에 장착하려면 여러 어댑터 링이 필요해서 종류에 맞춰서 구비해 놨다. 이 상태에서 여러 테스트 영상을 찍기 시작했는데 카메라가 너무 흔들려서 도저히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 스테빌라이저 장비를 사용해야겠다고 판단했고 다시 조사를 하던 중, DJI 사의 로닌이라는 제품이 발매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전에도 몇몇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짐벌을 제작하고 발매하였지만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안정성에 있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제품의 제원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 있었다. 현장에서의 짐벌, 이지리그 사용 모습 짐벌을 구매하고 나서 다시 생긴 문제는 포커스 부분이었다. 짐벌에 올린 상태에서는 카메라 수동 포커스 플레이가 불가능 한 것이다. 수동으로 포커스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필요했는데 가장 유명한 바텍이라는 업체의 무선 팔로우 포커스는 가격대가 1000만 원 가까이라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중국 제품을 쓰기에는 소음문제나 연동문제에 있어서 불안한 부분이 꺼려졌다. 그때 프랑스 이베이에 올라온 영화 장비 경매에서 바텍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격도 원가의 1/10에서 경매를 시작했고, 관세 포함 1/5 가격 정도에 낙찰받았다. 물품이 배송되는 몇 주 동안 문제가 발생할까 봐 정말 피를 말렸는데 다행히 도착한 제품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무선 팔로우 포커스가 장착된 무선 모니터 이후, 카메라에 무선 팔로우 포커스와 짐벌을 장착하고 테스트를 했는데 카메라의 움직임은 만족스러웠지만 영상을 모니터 할 수가 없어 저가의 중고 소형 모니터 2대를 추가로 구매했다. 그리고 무선 영상 송수신기와 여러 장비들을 장착하니 너무 무거워져 안정적으로 카메라를 지지할 수 있는 이지리그 등을 추가로 구매했다. 또한 골목길에서 계단을 올라다니며 촬영을 하려면 촬영자가 수동으로 짐벌의 움직임을 조정할 컨트롤러가 필요한데, 지금은 정품 발매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로닌에서 썸 컨트롤러가 발매되지 않아서 인도 이베이에서 개조해서 쓰고 있는 판매자를 통해 모사품을 구매하여 장착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기본 카메라 세팅을 했지만 촬영 과정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다행히 그쯤 김병정 촬영감독님이 작업에 참여하시게 되어 함께 준비할 수가 있었다. 스토리보드에 짜 놓은 모든 장면이 영상으로 가능한지 전부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대부분의 장면이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많이 고민했던 미장센을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 그래서 구현 가능한 방법을 찾기 위해 촬영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복면남이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초반 시퀀스와 편의점 장면 등 대부분의 장면은 많은 리허설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민이 텅 빈 동네를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장면은 기존 장비와 상황으로는 구현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맞은편 옥상에서 동네를 촬영할 경우 망원렌즈를 쓰면 노출이 너무 떨어진다. 그래서 ISO값이 높게 적용되어 어두운 곳에서도 촬영이 비교적 용의한 A7S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압축코덱을 사용하여 색보정 시 불리한 점과 낮은 스탑의 다이나믹 레인지, 카메라 간 질감 차이 등은 감수하기로 판단했다. 맞은편 옥상에서 반대편 동네를 걸어 다니는 수민을 관찰하듯 촬영하려면 망원렌즈를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아답터 적용 값과 표준 사이즈 대비 카메라 크롭 정도까지 포함해서 환산화각 2000mm 이상이 되는 렌즈를 사용하여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이 장비들의 경우 렌탈해서 테스트했는데 미세하게 조절을 하지 않으면 인물을 따라가기 어렵거나 움직임이 틀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김병정 촬영감독님과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여 준비를 하고 많은 테스트를 해가며 확신을 가져갔다. 또한 정말 어려웠던 장면은 동네 전경을 비추던 카메라가 서서히 내려와 수민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후, 택시를 타고 떠나는 수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은 이 동네가 수민의 머릿속이고, 이곳을 수민이 벗어나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달아난다는 기호를 이미지적으로 심플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에 꼭 한 커트여야 했다. 지미집 팀이 와서 촬영도 해보았는데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 실패하게 되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내 의도를 구현해주려 많은 고민을 하시던 김병정 촬영감독님이 결국 청계천에 가서 철근과 와이어 등을 구매하여 수동 크레인을 제작하셨는데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장면이 나오게 되어 놀라웠다. 몇만 원도 되지 않는 제작비로 원하던 장면을 얻었던 그 날, 그 상황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계속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 장비를 사용하여 수민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까지 촬영이 가능했다. 이 영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이런 테크니컬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요 인물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함께 섬세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비 세팅 이후에는 배우들과도 함께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거쳐 영화 전체를 테스트 촬영했다. 보통은 배우들과 리딩 정도를 하고 본 촬영에 임하는 경우가 많지만 < 혼자 >의 경우는 실제 촬영할 장소로 가서 반복적인 리허설을 시도했다. 테크니컬한 것에 함몰되면 내가 의도하는 영화적 표현이 의미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작비도 직접 마련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압박도 심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생각을 다잡으며 왜 영화를 하고 싶었는지 초심을 계속 떠올렸다. 촬영 현장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2015년 2월 중순, 총 9회차로 영화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 편집과 색보정은 직접 진행을 했고 전작인 물고기 때도 함께 작업했던 VFX 업체인 IOFX 지명구 실장과 오수진 음악감독님도 흔쾌히 본 작업에 참여해 주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또한 고맙게도 부산국제영화제 ACF 후반제작지원도 받게 되어 잘 마무리되었다. < 혼자 >는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소개되었고, 올해의 배우상( 이주원 )과 시민평론가 상을 받았다. 이후 로테르담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총 국내외 18군데가량의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여러 영화제에 참석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해외 영화인들이 전작 < 물고기 >를 기억하고 있었고 차기작인 <혼자>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감사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2016년 11월 24일 국내 개봉을 했다. 하지만 개봉관 수가 일반 독립영화에 비해서도 너무 적게 잡혀서 역시나 스코어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물고기> 때보다는 훨씬 많은 국내 영화인들이 <혼자>를 봐주었고 좋은 평가를 해주었다. <혼자>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