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
- 감독
- 존 맥켄지
- 제작년도
- 1992
- 출연
- 프랭크 오사티, 셰릴린 펜, 대니 에일로, 제프리 노들링
윤가은 감독은 2016년 여자아이들의 우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 우리들 >로 큰 주목을 받으며 장편 데뷔를 했다. 이미 단편 < 사루비아의 맛 >(2009), < 손님 >(2011), < 콩나물 >(2013)에서 여자아이들의 감정과 모험을 다룬 윤가은 감독은 최근작 < 우리집 >(2019)에서도 각자 집에 해결할 문제를 안고 있는 하나와 유미·유진 자매를 통해 집과 우리의 의미를 묻는다. 이렇게 여자아이들의 다양한 관계와 삶을 다룬 연작으로 윤가은 감독은 ‘우리 유니버스’라고 칭해지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유니버스’는 10대 여자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영화적이고 스펙터클한지, 그리고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은지를 증명한다. <우리들>의 오프닝 장면을 보자. 블랙 스크린이 지속되는 첫 쇼트는 여러 아이들이 각자 자기 팀이 될 멤버를 뽑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서로 자기를 먼저 뽑아달라는 대사와 뽑히지 못해 아쉬워하는 한숨소리가 뒤섞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쇼트에서 관객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한 선의 얼굴을 만난다. 더티 싱글의 롱테이크로 연출된 이 클로즈업 쇼트는 선의 얼굴 주변 배경으로 프레임 인 & 아웃과 포커스 인 & 아웃이 반복되며 시끄럽게 장난치는 다른 아이들의 무신경함과 말없이 눈치만 보는 선을 대비시킨다. 아이들은 선을 대놓고 따돌리진 않지만 굳이 한 팀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선은 속상하지만 티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화면 밖에서 마지막 가위바위보가 이뤄지고 선은 끝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선을 데려가게 된 아이는 선을 다른 아이와 바꿔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이 장면은 자존심 상하고 주눅 들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10대 여자아이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정확하고 강렬하게 그려낸다. 단 두 개의 쇼트로 구성된 이 오프닝 장면은 10대 여자아이가 은근하게 따돌림 당하는 환경과 감정, 배경과 인물, 외면과 내면을 모두 가시화하며 한 여자아이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단숨에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한 사건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집>도 이와 유사하게 오프닝을 연다. 블랙 스크린으로 시작한 오프닝 장면은 불안하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 한숨소리, 밥 먹는 소리, 매미소리가 레이어를 만들며 점점 사운드가 쌓여가는 가운데 그 꼭지점에서 엄마아빠가 싸우는 소리와 함께 주인공 하나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은 온전히 어찌할 바 모르는 하나의 불안한 감정과 수심에 가득 찬 얼굴에 집중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얼마나 주변의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들>이 두 여자아이의 우정에 대한 영화라면 <우리집>은 여자아이들에게 돌봄과 ‘우리’라는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10대 여자아이를 통해 돌봄이 고단한 노동일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는 관찰의 제스처이며, 친밀감, 공동체 구성을 통한 안정감, 문제해결의 성취감, 선행의 인정욕구, 서로를 간섭하는 데서 오는 짜증, 자기 욕망과 강제된 성별역할 사이의 혼란 등 다양한 상태와 감정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들>에서도 사용되었던 사운드로 화면 안과 밖을 끊임없이 연결하고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고 영향 받는 영화적 연출형식은 돌봄의 제스처와 정동을 체화한다. <우리집>의 주인공 하나는 나이는 어리지만 학교에서 선행상을 받을 뿐 아니라 방학숙제로 요리책을 만들고 실제로 타인을 위해 요리해주는 것을 즐긴다는 면에서 돌봄 능력이 뛰어나다. 하나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뿔뿔이 흩어지기 직전의 가족을 다시 ‘하나’로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성숙한 하나라도 어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란 쉽지 않다. 하나가 할 수 있는 건 밥을 차려 같이 먹자고 반복적으로 요청하거나 좋았던 시절의 추억을 살려 가족여행을 가자고 조르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조차 매번 실패한다. 그래서 하나는 유미와 유진 자매를 발견한다. 대형마트에서 하나는 꼼꼼한 관찰력으로 유미와 유진 자매에게 어른들의 일상적인 돌봄이 부족함을 알아챈다. 길을 잃어버린 유진을 찾아주며 친분을 맺은 하나는 화목해 보이는 유미와 유진의 집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아파트에 사는 하나와 달리 옥탑방에 사는 유미와 유진이네 집은 잦은 이사를 다녀야 하는 처지이다. 이혼직전의 부모가 문제인 하나와 안정적인 거주조건이 부족한 유미는 서로의 집을 부러워한다. 셋은 <열차의 이방인>(1951)의 인물들처럼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한다. 하나는 자신의 문제 해결이 힘들어질수록 유미와 유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집착한다. 하나가 자매를 돌봐주는 데서 오는 기쁨과 만족감은 단순하지 않다. 부차적이긴 하지만 하나는 자매를 돌보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서 영향력과 능력의 성취감을 느끼며 자신의 가족 내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 우여곡절 끝에 하나의 부모는 가족여행을 가기로 약속하지만, 하나는 곧 그것이 부모의 이혼여행임을 알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부모는 이혼 합의에 이르러서야 지난한 싸움을 멈춘다. 그러나 이혼이 가족의 해체로 이해되는 하나는 이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는 가족여행 직전에 가출해 유미와 유진 자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엄마 아빠를 만날 기쁨에 셋이 함께 모은 상자로 만든 된 집을 등에 진 어린 유진과 무력함과 상실감에 빠진 하나, 그리고 그 둘 모두를 걱정하며 돌보는 유미는 자매의 부모가 일하는 보리해변으로 떠난다. 길을 잃고 어딘지 알 수 없는 해변에 도착한 셋은 갈등이 폭발하고 유진이 갖고 온 상자집을 발로 짓이겨 부숴버린다. 오랜 시간 공들여 함께 만든 집을 부수고야 셋은 서로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서로를 돌아보게 된다. 파괴가 오히려 새로운 우리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자매의 집의 부동산 계약이 성사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방문객들에게 아이들이 집에 대한 악평을 하고 방을 어지르는 해체적 방식을 썼던 것처럼 그들은 정형화된 집을 부수고 나서야 자기들만의 집을 찾는다. 하나는 마침내 새로운 집을 만들기 위해선 때로 해체와 파괴도 필요하다는 것, 집은 하나의 모양과 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돌봄에 대해서도 하나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유미와 유진을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유미 역시 계속 하나의 기분을 살피고 하나가 언니(리더)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돌봐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돌봄에는 여러 결과 각도가 있다. 하나의 엄마는 직장과 가사 일을 모두 잘하는 수퍼맘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가부장제적 압박에 지쳐 하나의 돌봄 행위가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성별역할을 벗어난 다른 결과 감정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가 성별고정관념 때문에 돌봄을 순순히 여자아이의 역할로 받아들이거나 문제해결을 돌봄을 통해서만 하려는 건 아닌지를 고민하고 걱정하는 하나 엄마의 감정 또한 여자아이와 관련된 돌봄의 정동이다. 집을 지키고 서로를 돌보고자 하는 세 여자아이의 모험은 집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동과 모험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고전 주류 서사는 끊임없이 여성을 집(돌봄)과 일치시키면서 공간화화하고 정주시키며 모험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반면 남성은 모험을 떠난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리더십을 시험하고 개인 영웅으로서의 성장서사를 만든다. <우리집>은 집과 길, 정주와 모험, 유지와 성장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집>은 집과 돌봄의 주제, 그와 관련된 감정과 관계를 버리지 않으면서 여자아이들의 모험의 서사를 만든다. 그를 위해 집을 트랜스포머처럼 이동시키고 해체하고 모험의 공간으로 만들며 때로 추상화한다. 유진의 상자집처럼 말이다. 셋이 해변가에서 우연히 만난 캠핑장의 텐트처럼 집은 얼마든지 모험적인 소재와 주제가 될 수 있다. ‘길 위의 집’의 모험을 통해 하나는 ‘우리’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게 되는 성장을 한다. 하나는 엄마아빠가 이혼해도 다른 모양의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가족 외에 우정으로 이어진 ‘우리’를 소중히 여기며, 물리적 공간이나 제도적 구속력이 ‘우리’를 떠받치는 유일한 조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나는 마지막까지 가족들에게 밥을 차려주며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갈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 모험의 여정에서 하나는 돌봄의 가치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리더십을 시험하고 ‘우리’를 다양하게 구성하며 성장서사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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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영화에서 스튜디오의 역사는 그 자체로 그 나라 영화의 역사의 하부 토대이며 동시에 대중영화의 정치경제학이다. 돈의 역사. 아무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스튜디오의 의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할리우드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독점자본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에서 고몽 파데의 스튜디오가 세워졌다. 그러나 독일에서 세워진 UFA는 다른 설명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베를린에 세워진 UFA(Universum-Film Aktiengesellschaft) 스튜디오는 독일 영화사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화가 지닌 상품적 성격에 따른 해외배급의 맹렬한 경제적 지역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독일은 군소영화사들이 흩어져있었고 할리우드 영화와 프랑스 영화, 이탈리아 영화들이 독일 영화시장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다. 1913년 독일에 개봉한 독일영화는 1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독일 대중들은 전시 상황에서 구경거리를 원했고 수요는 폭등하고 있었으며, 사회는 전시경제로 불안하기만 했다. 이 상황을 근심한 것은 영화인들이 아니라 루르지방의 중공업자들 대표였던 알프레드 후근베르크였다. 그는 19·16년 독일 소규모 제작사를 중심으로 한 카르텔 형태의 도이치 리히트빌트(Deutsche Lichtbild)를 세웠다. 이것이 하나의 출발이 되었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만든 연합체는 불공정 거래를 했으며 경쟁 영화사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였다. 여기에 개입한 사람은 독일 군(軍)장성이었던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이었다. 전시체제였고, 아직은 바이마르 공화국 전야의 빌헬름 2세가 이끌던 프로이센 왕국의 마지막 황혼기였다. 루덴도르프 장군은 놀랍게도 영화가 지닌 정치적 오락 프로파간다의 성격을 간파했다. 그는 국방부장관에게 편지를 보내서 “조국의 극장을 외국의 영화에 내주어서는 안 되며 외세의 영화들로부터 방어해야 합니다. 영화가 지닌 특별한 힘을 우리는 전시 중에 보았습니다. 이제 대중들을 집중시키고 통제해야 합니다” 아마도 루덴도르프 장군이 염두에 둔 것은 (정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에서 전시 중에 내내 프랑스 국민들에게 유리하게 편집된 뉴스 릴을 통해서 영화의 프로파간다 홍보 활동을 했던 고몽영화사 ‘주르날 시네마’이었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아직 등장하기 전인 그 시절 영화보다 더 강력하게 전쟁의 현장을 전달하는 다른 수단은 없었다. 아마도 영화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는 그렇게 독일의 정치적 전술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치 문화상이었던 괴벨스는 어린 시절 그 영화들을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루덴도르프 장군이 나서서 새로운 독일 영화사들의 연합체를 설립하였다. 이 연합체인 UFA는 합병형태(consolidation)로 서로 결합했는데 정확하게 동일한 형식은 아니지만 트러스트의 협약방식을 따랐다. 그들은 트러스트 협약형식처럼 서로간의 경쟁형태를 피하고 서로 간의 수익을 거두기 위하여 독점적 지위를 갖기는 했지만 각자의 독립적 위치를 포기해야했다. UFA의 경제적 협력방식을 규명하는 설명에는 영화학자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이견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환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UFA는 처음부터 프로이센 왕국의 군부 산하 명령을 따라야했으며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가 된 다음에는 국방부에서 이 스튜디오를 관리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문화부에로 이관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장점도 있었다. 처음 UFA 스튜디오를 출범할 때 국가가 보증했기 때문에 독일은행인 도이체 방크가 거액의 기금을 내놓았다. 1917년 12월 13일 베를린에서 거의 기습적으로 UFA 출범을 발표하였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영화사들이 당황했지만 이 스튜디오를 주관한 사람이 루덴도르프 장군이라는 사실을 앍고 모두 침묵하였다. 군부는 그 당시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반대를 표명하는 것은 반국가적인 행위가 되었다. 처음 출범할 때 노르디스크 영화사. PAGU, 메스터 GmbH를 합병하였고, 1921년까지 21개 영화사를 UFA 스튜디오 아래 집결시켰다. 그러면서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면서 오늘날 영화사에서 프릿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무르나우의 <최후의 사람>을 보면서 감탄해마지 않는 UFA 스튜디오가 되었다. UFA는 거의 모든 영화를 제작했다. 극영화, 다큐멘터리, 민족지 영화, 그리고 무엇보다 매주 상영되는 뉴스 릴 영화를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 출발이 영화사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UFA는 바이마르 문화의 위대한 꽃이 되었다. 여기서 독일 표현주의 영화가 시작되었으며, 그리고 독일 영화감독들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영화인들도 이곳으로 합류하였다. 프릿츠 랑, 빌헬름 프리드리히 무르나우, 조셉 폰 스턴버그, 에른스트 루비치, 빌헬름 디터, 로베르트 시오드마크(훗날 할리우드로 망명한 로버트 시오드마크), 심지어 빌리 빌더(훗날 할리우드에 간 빌리 와일더)도 여기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프릿츠 랑이 UFA 스튜디오에서 사람들을 최면으로 조종하는 마부제 박사의 이야기 <마부제 박사>를 찍고 있을 때 아돌프 히틀러는 감옥에서 자신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쓰면서 출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와 역사는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가.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영화는 무엇일까?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코리안 뉴 웨이브’를 중심에 둔다면 그 시작인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이장호)일 것이고, 작가주의 예술 영화라면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배용균)이 떠오를 것이다. 대중적 상업영화의 규범으로는 배창호의 < 고래사냥 >(1984)과 < 깊고 푸른 밤 >(1985)이 있을 것이며, < 길소뜸 >(1986. 임권택)이 보여준 리얼리즘의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애마부인>(1982년)부터 등장한 시그니처 포즈 하지만 영향력으로 본다면 단연 < 애마부인 >(1982. 정인엽)이다. 이 영화 이후 충무로는 ‘에로티시즘’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애마 프랜차이즈’는 1980년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한국영화의 ‘에로 패러다임’을 규정한다. <애마부인>은 이전까지 한국영화가 애써 눈 감아 온 ‘여자의 욕망’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그 표현이 미학적이거나, 그 서사가 논리적으로 수긍할 만하다는 건 아니다. <애마부인>은 거대한 시작이었고 수많은 에로 영화들은 이 영화를 모방하거나 변주했다. ‘애마’라는 캐릭터가 30년 넘게 그려온 연대기는 한국영화의 웬만한 에로틱 아이템은 모두 품고 있었고, 그 흐름은 이후 < 젖소부인 바람났네 >(1995. 김인수)로 만개한 에로 비디오 시장과도 직결된다. 1대 애마 안소영. <애마부인>은 애마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이때 애마는 고개를 돌려 관객을 응시한다. 애마의 각성. 이 테마는 3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애마 프랜차이즈’의 핵심이다. 1982년은 분기점이었다. 이 해 안소영 과 임동진 이 부부/연인으로 등장하는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된다. <애마부인>과 < 산딸기 >(1982. 김수형)였다.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에로틱 멜로드라마와 일제 강점기를 다룬 토속 영화. 만약 <산딸기>가 더 인기를 끌었다면, 1980년대 에로 트렌드는 후자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지만, 결과는 전자의 압도적 승리였고 이후 ‘애마의 세계’가 열린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 이후 신군부 쿠데타와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겪은 남한 사회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전한 공포 정치였지만, 그 표면은 훨씬 화려해졌다.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을 동원한 이른바 ‘3S 정책’의 시대였고, 통금 해제와 함께 ‘심야 상영’이라는 게 가능해졌으며, 그 첫 수혜자는 바로 <애마부인>이었다. 그 해 한국영화(당시엔 ‘방화’라고 불렀던) 흥행 1위였던 <애마부인>은,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극장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던 화제작이었다. 감독은 정인엽 . 1960년대에 데뷔해 반공 영화부터 청소년 영화까지 이런저런 장르를 섭렵하다가 호스티스 영화 < 꽃순이를 아시나요 >(1979)로 빅 히트를 기록한 정인엽 감독은 1970년대 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다. 이때 아트하우스에서 접한 유럽과 미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귀국 후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조수비의 『애마부인』(1981)을 영화화한 것이다. <애마부인>은 달랐다. 여성이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 자유 연애를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여성의 육체를 눈요깃감으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꽤나 모순적인 영화였지만, 당대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1980년대식 욕망을 읽었다. 혼자 아파트에 살며,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고, 패셔너블하면서, 나이트 클럽이나 바에서 즐기는 여자. 여기엔 1960년대 멜로드라마의 모성에 대한 강박이나,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가 지닌 비극적 운명의 흔적은 없었다. 유명무실한 가부장제(애마의 남편은 감옥에 있다), 육아의 의무에서 해방된 솔로의 삶(시댁에서 아이를 빼앗아갔다), 경제적 풍족함(애마에겐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육체적 매력(남자뿐만 아니라 동성 친구도 눈독 들인다)…. 애마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였으며, 한편으론 남한 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일부일처제가 붕괴중임을 몸으로 선언하는 인물이었다. <애마부인> 시리즈에서 ‘애마’는 ‘말’과 함께 ‘자동차’를 의미한다. 호스티스 영화가 가난 때문에 몸을 팔아야 했던 여성들의 사연이라면, <애마부인>의 애마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 오너 드라이버인 그녀는 직접 차를 몰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사진은 <애마부인 6>. 모델인 애마(다희아)는 자동차 CF를 찍고 있는데, 이 영화엔 현대자동차가 공식 협찬을 했다. 산업적으로도 <애마부인>은 전인미답의 경지로 들어갔다. 이른바 ‘애마 프랜차이즈’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시리즈일 것이다. 1982년에 첫 선을 보인 후 최근 < 애마부인 2016 >(2016. 김미연)까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20대 초반의 관객이 어느덧 환갑에 가까워질 때까지, 애마의 역사는 세대를 가로질러 이어졌다. 연방영화에서 제작한 ‘정전’은 1996년까지 13편으로 이어지지만, 정전보다 많은 ‘외전’이 있었다. 극장용 영화에서 시작한 프랜차이즈는 비디오 시장과 모바일 시장을 거쳐 IPTV 시장까지 이어졌으니, <애마부인>과 그 후예들은 한국의 영상 콘텐츠에 대한 산 증인인 셈이다. 그리고 애마 시리즈는 스타 시스템에 정면 도전했다. 배우와 장르의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프랜차이즈 자체의 동력을 통해 ‘O대 애마’라는 식으로 편마다 신인(급) 여배우를 등장시켰고 그들을 스타덤에 올렸다. 1대 애마 안소영, 2대 애마 오수비, 3대 애마 김부선. <애마부인> 시리즈의 초창기를 장식한 강렬한 섹슈얼 카리스마 배우들. 흔히들 <애마부인> 1편만 보고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본 양 이야기하지만, 정인엽 감독이 연출한 1~3편을 모두 본 후에야 이 시리즈의 진수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애마부인>과 < 애마부인 2 >(1984. 정인엽)는, 배우는 안소영에서 오수비 로 바뀌지만,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이어지는 스토리라인을 지닌다. 1편의 마지막에서 애마는 젊은 애인과 남편 사이에서 결국 남편을 선택하고, 그들의 가정은 회복된다. 하지만 남편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일에 바쁘다는 이유로 밤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을 위해 단장했던 애마가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우면서 영화는 끝난다. 2편의 시작 역시 애마(오수비)가 화장을 지우는 장면이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1편을 통해 애마는 각성했고, 2편의 그녀는 이미 이혼했으며 외국 항공사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고 근사한 애인 성현( 신일룡 )이 있다. 1편이 애마가 불행한 이유로 ‘바쁜 남편으로 인한 외로움’을 제시한다면, 2편에선 단 한 줄의 대사로 그것은 모두 허울이며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린 함께 도달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 애마부인 3 >(1985. 정인엽)에 오면 더욱 명확하게 진단한다. 의사( 진봉진 )는 말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다수의 부인들은 남편이 무력하다는 이유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마부인>의 엔딩(상단).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애마는 화장을 지운다. <엠마누엘>(1974. 쥐스트 자켕)의 엔딩(하단). 엠마누엘(실비아 크리스텔)은 짙게 화장을 한다.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새롭게 변신한 모습이다. <애마부인 2>의 첫 장면에서 화장을 지우던 애마의 모습은 1편의 엔딩과 연결된다. 하지만 <애마부인 2>의 엔딩에서 활짝 웃는 애마는 헤어스타일을 단발로 바꾸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다. 남편, 애인, 연하남 등 ‘남자’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자존심을 죽이고 잠자리를 요구할 때마다 당신은 무참하게 날 거부했어요,”(애마) “난 당신이 그런 여자인 줄 몰랐어.”(남편) 이런 식의 대사로 변죽만 울렸던 게 <애마부인>이라면, <애마부인 2>는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부부 사이의 ‘섹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며 애마는 “난 이제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어요”라며 선언한다. 그리고 3편에 오면 애마( 김부선 )는 남편을 집에 남겨두고 떠나 버린다. 종종 사람들이 <애마부인> 시리즈를 유부녀의 일탈과 불륜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여기는데, 이 시리즈는 시종일관 ‘부부 관계’에 대해 고찰한다(10년 후에 나온 < 결혼 이야기 >(1992. 김의석)는 <애마부인>에 로맨틱 코미디를 결합한 업그레이드다). 그런 점에서 <애마부인>은 20년 가까이 독재와 유신 체제로 억눌렸던 한국 사회가 폭발했던 1980년대의 ‘욕망의 사회학’이자 ‘부부의 심리학’이었다. <애마부인>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 애마 못지 않게 인상적인 캐릭터는 에리카이다. 1편과 2편에서 김애경 역할을 맡은(목소리는 박정자 의 더빙) 에리카는 “애마야, 제발 그 봉건적 사상 좀 버려. 사랑해주지 않는 그런 남자와는 같이 살 필요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계몽적 멘트를 날리면서, 한편으론 “네 몸은 언제 봐도 정말 예뻐”라며 섹슈얼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당시로선 과감하게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해 가감 없이 표현했고, 이것은 억눌린 부부 관계의 반대편에서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이국적 이름을 지닌 동성 친구’ 캐릭터는 3편의 세실리( 박원숙 )을 거쳐 < 파리 애마 >(1986. 정인엽)와 <애마부인> 4편과 5편엔 다시 에리카로 이어지고, 7편에선 루비아( 박혜란 )가 등장한다. 이후에도 이 시리즈엔 항상 예술계나 화류계에 종사하는, 개방적인 여성들이 등장해 애마의 곁에 머문다. 애마에겐 항상 자유로운 삶을 사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솔로 친구가 있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1편과 2편의 에리카(김애경), 3편의 세실리(박원숙), <파리 애마>의 에리카(민복기), 4편의 에리카(윤지원), 5편의 에리카(전혜성), 7편의 루비아(박혜란). <애마부인>에서 애마와 에리카의 얼굴을 교차해 보여주는 신. 에리카는 말한다. “애마야, 네 몸은 언제 봐도 정말 예뻐.” 두 여성의 에로틱한 관계는 8편 이후 두드러지며, 이전엔 ‘노골적 암시’ 수준이었다면 매우 직접적인 베드 신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남자가 점점 싫어져.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아”라는 애마의 대사가 드러내듯, 10편은 퀴어 영화에 가까운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섹스 신은 9편일 듯하다. 애마( 진주희 )는 여행 중 우연희 강희( 강선영 )라는 포토그래퍼를 만나 그녀의 모델이 되고 사랑을 나누는데, 그 베드 신은 아마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격렬한 수위일 듯. 이때 강희는 말한다. “나는 구속 당하는 건 질색이다. 그런 날, 사람들은 레즈비언이라 비웃더군.” 호모섹슈얼리티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중요한 테마였다. (상단 좌측부터 지그재그로) <애마부인 7>의 애마(강승미)와 루비아. <애마부인 10>의 애마(오노아)와 영주(유미희). <애마부인 9>의 애마와 강희. 한편 정인엽 감독은 <파리 애마>의 유혜리와 ‘엠마누엘’ 실비아 크리스텔과 함께 <성애의 침묵>(1992)를 찍는다. 이 영화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애마부인> 시리즈는 수많은 클리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건 말 타는 장면일 것이다. 애마의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은 말을 통해, 말을 어루만지는 행동과, 말을 타는 쾌감과, 말 위에서 느끼는 속도감 등을 통해 해소되는데, 종종 이 신은 판타지로 제시되며 일종의 마스터베이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전통은 최근작인 <애마부인 2016>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남편과 트러블이 있는 은혜(류현아)는 친구 유리( 백세리 )의 권유로 승마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접어든다. ‘말’로 상징되는 자연은, 도시에서 해소되지 못하는 욕구의 해방구이기도 한데, <애마부인> 시리즈는 바닷가나 숲 속 같은 공간을 종종 섹스의 공간으로 설정하며, 여기서 말은 어떤 매개체가 된다. 한편 이 시리즈엔 ‘도시 VS 자연’처럼 수많은 이항 대립이 존재하며, 이것은 영화 전체를 구성하는 어떤 공식이 된다. ‘결혼 VS 불륜’ ‘남편 VS 애인’ ‘애마 VS 에리카’ ‘이성애 VS 동성애’ ‘현실 VS 판타지’…. 여기서 애마는 그 경계에서 고뇌한다. 이외에도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홀로 엑스터시를 느끼거나(이때 애마는 종종 안대를 한다), 고독이 몸부림 칠 때 침대나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 등도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시그니처 포즈’들. 이 모든 것이 애마의 내면적 갈망을 표현한다. 훔쳐보기 신도 마찬가지다. 애마는 카페나 술집 같은 곳에 자주 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낯선 커플의 애정 행각을 목격한다. 그 모습에 격정을 느낀 애마는 몸을 비틀며 스스로를 느끼는데, 이때 그런 애마의 모습을 역시 훔쳐보는 음험한 남성의 시선이 있다. 그 남자는 애마에게 접근해 섹스를 요구하고, 애마는 뿌리친다. 이런 구도는 종종 스토킹이나 강간의 모티프와 결합되어 <애마부인> 후기 시리즈에 자주 등장한다. 흥행력이 떨어지던 시기 자극적 요소로 관객을 끌려는 시도일 수도 있지만, 그 시기 창궐하던 에로 비디오의 성폭력적 요소를 받아들인 면도 있다. (계속) <애마부인>. 전설의 장면. 말이라는 상징적 존재와 무의식. 그리고 판타지. <애마부인 2>. 욕조에서 목욕을 하던 애마는 말의 판타지에 빠지고, 그 안에서 젊은 남자와 섹스를 한다. 현실로 돌아왔을 땐 침대에 마치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다. <애마부인>에서 애마는 바에서 어느 커플을 엿본다. 이때 그녀를 바라보는 낯선 남자가 있다. 격렬한 키스를 나누는 커플. 애마는 다리를 비틀며 은밀한 마스터베이션에 빠진다. 엿보기와 마스터베이션의 결합은 <애마부인> 시리즈에서 여러 번 반복된 공식이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애마부인> <애마부인 2> <애마부인 3> <애마부인 9>의 애마들. 그들이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모습은 이 시리즈의 시그니처 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