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메
- 감독
- 알랭 카빌리에
- 제작년도
- 1993
- 출연
- 에인 안드레아니, 알렉산드라 아르놀드, 마이클 바리에라, 올리비에 베이온, 루이스 베커
카메라가 진실을 드러내는 무기이며 따라서 대중의 민주적인 열망을 실현하는 소명에 공헌할 수 있다는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믿음은 1960년대 16mm 필름과 뉴스릴 비디오 운동을 통해 여실히 입증되었다. 오늘날 베르토프의 전통은 소형 비디오 및 모바일 카메라로 촬영한 혁신적인 논-픽션 작품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 더 모노폴리 오브 바이올런스 >(2020)는 베르토프의 금언을 현재화한 실천 사례이며 사실을 매개하는 기능과 관련하여 현대 다큐멘터리의 장치와 미학이 도달한 혁신의 지점을 보여준다. 이런 류의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훌륭하게 연출되어서가 아니라 감정과 이성이 충돌하는 다원화된 이미지들을 통해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경청할만한 의제를 던지기 때문이다. <더 모노폴리 오브 바이올런스>는 비범한 깊이와 신랄함으로 카메라-장치와 권력의 문제를 의제화한다. 치안과 질서 유지, 안전은 폭력의 독점을 승인하는 적절한 명분인가? 경찰에게 얼마나 많은 권한이 위임되어 있으며, 이것이 시민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경찰은 언제부터 시민들을 섬기는 본분을 멈추고 국가와 통치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였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최근의 모델 하나가 선택되었다. 2018년 10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탄소세 인상 조치로 인해 유발된 노동자들의 노란 조끼 시위이다. 프랑스 내 여론 조사에 따르면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들까지 대거 참여하였다. 8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에 벌어진 시위는 정부의 세금 인상 정책에 저항하기 위해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히 충돌하면서 상해와 약탈, 인권침해 등 폭력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좌파 저널 ‘리베라시옹’의 기자였고 탐사 저널리즘을 표방한 웹사이트 ‘미디어파트(Mediapart)’의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다비드 뒤프렌느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는 민주주의 국가 안에서 경찰의 위상과 폭력의 합법적 행사, 반(反) 군사적 저항 폭력, 그들의 충돌이 초래한 여파 등을 다룬다. 뒤프렌느는 노란 조끼 시위를 촬영한 푸티지와 시위 관련자, 가족들의 인터뷰,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등장하는 폭력의 독점 이론, 첨예한 정치 현상과 이에 대한 사유를 쟁점으로 펼쳐지는 지식인들의 논쟁을 담화적 형식으로 엮는다. 국가의 기능은 다면적이지만 베버는 폭력의 독점이 근대 국가의 기초이며 다양한 생각을 가진 시민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국가는 폭력의 독점권을 소유하려 한다고 설파하였다. 베버의 후예들에 따르면, 국가의 통치 능력과 폭력을 독점하는 정도는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하는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내전과 분쟁, 재난의 후과가 이와 같은 이론을 뒷받침한다는 주장들이 전해진다. 베버의 사유에서 영감은 얻은 <더 모노폴리 오브 바이올런스>는 우아하고 웅변적인 어조로, 그러나 동시에 지적인 틀로 서사를 구성하여 현대의 군중에 대한 두 가지 경쟁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 군중들과 단단한 헬멧, 안면 보호대, 마스크 뒤에 신원을 감춘 중무장한 경찰들의 쟁투이다. 여기서 뒤프렌느의 이미지 전략은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대중의 행동과 실천을 어떻게 민주화하였는가를 일깨우는 방향으로 기운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시위 현장에서 촬영된 엄청난 양의 영상이다. 소셜 미디어를 출처로 한 시위 현장 영상들은 참가자들 또는 관찰자들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한 익명의 아카이브로부터 나왔다. 거리의 촬영자들은 미디어에 의해 필터링된 보도 뉴스가 아니라 정보 기술의 민주화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된 이미지들을 제공한다. 영상의 절반은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실제 시위대의 경험을 보여주기 위해 쓰이는데 경찰의 잔혹성과 도시 전체가 전란의 현장으로 탈바꿈한 충격적인 장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일부 장면은 끔찍하여 보기가 어렵다. 모바일 영상 푸티지에 등장하는 사람들 일부는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영상이 재생되는 광경을 보면서 기록 내러티브의 등장인물이 되어 당시 상황에 대한 해설에 가담한다. 이를테면 영화의 프롤로그, 화면이 열리고 들려오는 첫 번째 대사는 “저게 나야 C'est moi”라는 말이다.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이 음성은 경찰 폭력에 의해 한쪽 눈을 실명한 청년이 부상 당시 땅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신을 찍은 이미지를 보고 덧붙인 코멘트이다. 이 살풍경한 이미지 뒤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청중들 사이에서 폭력적인 시위자들의 행태를 비난하는 TV 시사 프로그램 화면이 연결되고, 그 뒤에는 실명 청년의 어머니가 경찰 폭력의 참혹함에 대해 성토하는 인터뷰, 이어서 경찰이 카메라를 압수하기 위해 돌진하는 자동차 반사경 이미지가 차례로 배열된다. 용의주도하게 설계된 말과 이미지의 몽타주는 거리 시위의 격렬함과 긴급성을 보여주는데 주저함이 없지만, 뒤프렌느는 이러한 강력한 감정적 요소들의 뒤에 냉철한 논쟁을 배치함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어두운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토론과 논쟁은 지적이되 설익은 계몽으로 흐르지 않는다. 다양한 참여자들의 일대일 대화를 통해 눈 앞에 펼쳐지는 이미지에 더 깊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시네마 베리테 미학에서 영화의 본질에 대한 세심한 검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말과 이미지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정치 다큐멘터리들이 너무 많은 다른 아이디어와 주제를 다루려는데 비해 이 영화는 86분의 단출한 러닝타임 안에서 경찰의 잔혹성이라는 한 가지 아이디어에 전념한다. 사실의 흐름을 전달하기로 선택한 형식적 아이디어는 현대의 소통 장치인 스마트폰과 고전 영화 미학인 몽타주이다. 1인칭 스마트폰 비디오와 주석으로 이루어진 혼합 미디어 저널리즘은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를 증거하면서 시네마 베리테의 현대적 이상을 보여준다. 종횡비가 역전된 스마트폰의 세로 이미지는 관객의 시계(視界)를 좁혀 사태의 긴급성을 증폭한다. 소비에트 몽타주 사상가들이 정립한 충돌 몽타주의 활용을 보여주는 다수 장면들은 복잡한 의제를 횡단하는 감정적이고, 지성적인 견해들을 경합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시력의 상실’은 주요 모티프 중 하나이다. 사위 기간의 법 집행 과정 중에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5명이 손 절단, 27명이 눈을 잃었다고 전해지는데, 영화 안에는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두른 실명자들이 나온다. 이미지와 재현의 특성을 활용한 동일시와 거리두기의 변증법은 사태를 객관화하는 유장한 시각화 방식이다. 전술(前述)한 프롤로그 시퀀스처럼 경찰들의 발포에 의해 한쪽 눈을 잃은 사람들은 움직이는 이미지 앞에서 거리를 두고 사태를 재음미한다. 격렬했던 현장의 영상을 제시하고 그와 동일한 이미지를 벽에 투사하는 반복적인 기술(記述)은 행위자들이 그들의 행위를 보고, 관객은 그들의 뒤에서 보게 만듦으로써 2중의 성찰을 유도한다. 경찰에 의해 자행된 폭력과 경찰에 대항하기 위해 행사된 폭력을 나란히 보게 함으로써 이미지와 논평이 충돌하는 아이러니를 끌어낸다. 영화를 보고 어쩔 수 없이 곱씹게 되는 질문이 있다. 오늘날 국가에 의해 독점되는 것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권리 뿐인가? 팬데믹이 초래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전례 없는 강조, 비(非) 자발적으로 존속되어 온 2년의 억류 생활, 안전한 삶에 대한 대중의 강박, 전체주의적 통제의 일상화는 통제당하지 않는 권력의 구조 아래에서 어떤 위험이 도사릴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커지면서 시민이 주도하는 집단행동에 대해 더 폭력적인 진압이 용인되거나 애초에 금지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시민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국가의 간섭에 저항하는 반동적 폭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상의 의제에 대한 판단과 관련하여 <더 모노폴리 오브 바이올런스>가 보여주는 미덕은 저널리즘적인 균형감각이다. 현장 푸티지들과 공평한 비중을 가진 논평과 분석, 격분, 토론, 전망을 적절히 배분하는 이 영화의 구성 전략은 다양한 각도에서 경찰 폭력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들에 접근한다. 시위대, 철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경찰은 감정과 지성에 강하게 호소하는 클립들에 상이하게 반응하고 그들의 다른 직업과 인식은 경찰과 시위대의 행태, 폭력의 합법성에 대한 신념의 충돌로 이어진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걸러지는 담론 형성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과 일치하는 것에 대해서만 보고 들으려 하는 편향을 낳았다. 이러한 확증편향의 오류를 초월하기 위해 상황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견을 테이블에 올려놓음으로써 뒤프렌느는 관객들이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지시하기보다 자신의 견해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 하물며 우리에겐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아나키즘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더 모노폴리 오브 바이올런스>는 민주주의가 의견이 일치가 아니라 불화의 체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기록물이다.
2001년 | 좋은영화 감독: 김상진 | 원안: 이해영 이해준 김영호 | 각본: 박정우 | 제작: 김미희 | 기획: 강우석 | 촬영: 정광석 | 미술: 조성원 | 음악: 손무현 CAST 박영준: 이성재 | 최기동: 차승원 | 민주란: 김혜수 | 민주섭: 이종수 | 천수: 이원종 | 덕섭: 성지루 | 넙치: 유해진 2000년대 전반기 한국영화의 가장 강력한 트렌드 중 하나는 이른바 ‘조폭 영화’였습니다. < 친구 >( 곽경택 , 2001)를 필두로 < 달마야 놀자 >( 박철관 , 2001) < 조폭 마누라 >( 조진규 , 2001) < 가문의 영광 >( 정흥순 , 2002) 등은 모두 이후 시리즈로 이어지는 흥행작들이었죠. <신라의 달밤>도 이 시기 나온 영화였고 큰 흥행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 주유소 습격사건 >(1999)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제작사 좋은영화와 김상진 감독이 다시 만난 이 영화는, 조폭 영화이면서 동시에 삼각관계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현장 공개는 주란(김혜수)이 경영하는 ‘주섭이네 라면’ 가게입니다. 주섭(이종수)이는 주란의 말썽쟁이 동생으로 조폭이 꿈인 고등학교 ‘짱’이죠. <신라의 달밤>에서 이 공간은 주란과 영준(이성재)과 기동(차승원)의 관계가 시작되고 변화하는 중요한 곳인데요, 영화를 위해 지은 오픈 세트입니다. 꽤나 그럴 듯해서, 촬영 기간 동안 진짜 분식집인 줄 알고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신라의 달밤>의 가장 큰 갈등은 영준과 기동 사이에서 생깁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죠. 차승원이 역할을 맡은 기동은 당시 ‘짱’이었지만 이젠 모교의 체육 교사입니다. 한편 과거 ‘범생이’였던 영준은 지금 조폭이 되어 있죠. 하지만 겉모습만 보면, 기동이 조폭 같고 영준이 선생님 같습니다. 사실 차승원과 이성재는 < 자귀모 >( 이광훈 , 1999)에서 만난 적이 이었는데요, <신라의 달밤>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친해졌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이성재와 외향적인 제 성격으로 인해 껄끄러운 부분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기우였고, 두 사람은 금방 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란과 동생 주섭. 주섭은 매일 같은 싸움질에 얼굴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습니다. 코미디 이미지가 강한 배우지만, 놀랍게도 <신라의 달밤> 이전에 차승원은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었습니다. < 세기말 >( 송능한 , 1999) < 리베라메 >( 양윤호 , 2000) 등에서 비열하거나 악한 캐릭터를 맡았는데요 <신라의 달밤>에서 확실하게 이미지가 변하죠. 이후 < 광복절 특사 >(김상진, 2002) < 라이터를 켜라 >( 장항준 , 2002) < 선생 김봉두 >( 장규성 , 2003) < 귀신이 산다 >(김상진, 2004) 등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200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 배우가 됩니다. 사실 이성재가 맡은 영준은 쉽지 않은 캐릭터였습니다. 영화에선 아무래도 기동이 돋보였고, 영준은 뉘앙스를 통해 연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기동처럼 내지르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성재는 매우 뛰어나게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데요, ‘젠틀한 조폭’인 영준은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한 살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3월의 촬영 현장은 꽃샘추위가 대단했는데요, 설정상 가을 양복을 입어야 했던 이성재는 꽤나 추위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그런 기색을 내지 않았습니다. 1998~2000년에 <김혜수의 플러스유>를 진행하면서 김혜수는 다시 배우로 돌아오기 위해선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에서 <신라의 달밤>은 그녀에게 유쾌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여행 중이던 비행기 안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네요. 차승원과 김혜수는 동갑내기이자 이미 <김혜수의 플러스유>에서 MC와 게스트로 만난 적이 있었죠. 그런 이유로 별 어려움 없이 공연할 수 있었고, 호흡도 잘 맞았다고 합니다. 차승원은 김상진 감독의 전작 <주유소 습격사건>에 카메오로 출연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아쉽게 잘린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고, <리베라 메> 촬영이 끝날 즈음 <신라의 달밤> 시나리오를 접한 후 읽자마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주란과 영준 사이에 약간 어색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김상진 감독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김 감독이 연출하기까진 약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원래 이 영화는 강우석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죠. 그런데 잘 풀리지 않았고,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김상진 감독이 개입하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했고 결국 직접 메가폰을 잡게 되었습니다. 김 감독은 박정우 작가와 함께, 가장 먼저 조폭과 교사의 성격을 바꾸었다고 하는데요, 원래는 교사가 과거엔 짱이었고 조폭은 예전엔 모범생이었다는 설정을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정광석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 동감 >( 김정권 , 2000) 포스팅 에서도 언급했던 정광석 촬영감독은 1960년대부터 활동했던, <신라의 달밤> 현장에선 60대 중반이었던 카메라의 장인이죠. 그럼에도 직접 크레인에 올라가 뷰파인더를 직접 챙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김상진 감독은 다음 작품인 <광복절 특사>(2002)도 정광석 촬영감독과 함께 했습니다. 이 날 촬영은 조금 정신 없었는데요, 분식집에 걸려 있는 여러 신을 한꺼번에 찍었기 때문이죠. 그 중 한 장면은 분식집을 찾아온 기종이 굳게 잠긴 문을 보고 이상한 낌새를 채는 신이었습니다. 주란과 영준이 함께 야유회를 간 것이었는데요, 기동만 허탕 친 게 아니었죠. 여학생 세 명도 분식집 문이 잠겼다며 다른 곳으로 가는데요, 이 학생들은 현장에서 캐스팅 했습니다. 하교 중이던 경주여중 학생들이었는데요, 한 번의 NG도 없이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아 스태프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엉겁결에 분식집 일을 돕게 된 기동의 엉거주춤한 모습입니다. <신라의 달밤>이 7번째 영화인 차승원은 코믹 연기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적인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코미디는 해보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웃기기 위한 설정으로 장면을 만들어내는 건 사실 뻔하잖아요. 상황이 만들어내는 웃음, 그래서 박장대소할 수 있는 웃음이라야 먹히는 거죠.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김혜수 이성재 차승원의 조합이 좋았던 로맨스 조폭 코미디 <신라의 달밤>. 원래는 강우석 감독이 고소영 이성재 박중훈 캐스팅으로 찍으려 했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플로리다 프로젝트란 1965년 디즈니가 테마파크 건설을 위한 플로리다주 올랜도 부동산 매입계획에 붙인 가칭이다. 그렇게 지어진 디즈니월드는 여전히 성업 중이지만 가족 단위 투숙객을 겨냥한 인근 저렴한 모텔들은 2008년 경기침체 이후 극빈층의 임시거주지로 용도가 변경됐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이라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남의 집에 얹혀살거나, 차에서 먹고 자거나, 모텔에 주 단위로 투숙하는 소위 ‘숨은 홈리스’(Hidden Homeless) 현상이다. 숀 베이커 감독의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192번 국도 주변 퇴락한 모텔 매직 캐슬을 로케이션으로 삼아, 디즈니 월드 지척에 살면서도 디즈니 월드와 가장 멀리 떨어진 세계에 속하는 여섯 살 소녀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친구들의 여름을 지켜본다. 아직 10대 티를 벗지 못한 엄마 핼리(브리아 비네트)는 하루 38달러의 방값과 다음 끼니가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처지다. 그러나 말썽쟁이 무니에게 알록달록한 모텔 동네와 기념품 가게들은 신나는 놀이터고 교육의 부재는 무한한 자유다. 소녀는 관광객에게 잔돈을 얻어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이 하나도 슬프지 않다. 엄마끼리 친구인 아래층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이웃 퓨처랜드 모텔에 새로 이사 온 잰시(발레리아 코토)와 삼총사를 이룬 무니는 어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부류의 꼬마다. 자동차 창에 침 뱉기 게임을 하고,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 두꺼비 집을 내리고, 일광욕하는 아줌마를 놀리며 뛰어논다. 말할 나위 없이 한 발 떨어져 보면 아이들의 일상은 위험투성이다. 국도에는 자동차가 질주하고, 수풀에서는 악어가 나올지도 모르고, 공사가 중단된 주택단지에선 뭐가 떨어질지 모른다. 수상한 취향의 뜨내기 아저씨가 노는 아이들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무니의 매일은 여름 캠프처럼 즐겁지만, 엄마 핼리는 생계를 점점 위험한 방법에 의지하게 되고 이는 여름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보호자들이 돈을 버는 사이 본의 아니게 모텔 아이들의 안위를 챙기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매직 캐슬의 관리인 바비(윌렘 데포)다. 관광 모텔이 빈민 레지던스로 변하면서 모텔 매니저인 그는 업무 내역에도 없는 ‘생활주임’ 노릇을 한다. 투숙객들은 그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의지한다. 숀 베이커 감독은 이 사내를 가부장적 시혜자로 만들지 않는다. 모텔 주인의 피고용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명백히 인식하면서도 무니 모녀가 최악의 상태에 떨어질까 반사적으로 경계하는 바비는 수호천사도 선한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그저 다른 인간의 곤경에 감응하는 인간이다. 모녀를 염려하지만 도울 길이 무망하다는 점에서 그는 관객의 대리자이기도 하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 >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부산한 일과를 마친 그가 어스름을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일 때 찾아온다. 바비가 첫 연기를 작은 한숨처럼 내쉬자 모텔 복도 외부 등이 일제히 들어오는 순간은, 이 남자가 ‘매직 캐슬’을 지키는 소박한 마법사임을 말하는 매직 아워다. 바비는 관객의 대리자일 뿐 아니라, 사회 주변부에서 겨우 생존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감독이 택한 윤리적 포지션도 암시한다. 우선 미국 영화에서 거의 재현되지 않는 극빈층 아웃사이더의 삶과 그들의 생활공간, 그들이 매일의 빵을 얻는 지하경제는 숀 베이커 감독이 줄곧 이끌리는 소재다. 2012년 작 < 스탈렛 >은 샌 페르난도 밸리의 백인 포르노 배우가 노년의 여성과 맺는 우정 이야기였고 바로 전작 < 탠저린 >은 매춘으로 먹고사는 트랜스우먼 친구 둘의 크리스마스이브를 그렸다. 이와 같은 소재에 접근하면서 숀 베이커 감독은 외부자로서 취하기 쉬운 분노나 동정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내려다보지 않고 옆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삶에 내재한 아름다움과 어두움을 그대로 파악하고자 한다. 궁핍한 삶에서 방점은 궁핍이 아니라 궁핍이라는 조건을 수반한 삶에 있어야 한다고 숀 베이커의 영화는 믿는다. 예컨대 < 플로리다 프로젝트 >의 도입부에는 무니가 침을 뱉은 차의 주인이 따지러 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내키지 않는 투로 무니의 손목을 끌고 간 엄마 핼리는 피해자 아주머니와 벌 받는 아이들을 구경하다가 아주머니도 처지가 딱해진 딸 대신 손자를 키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담배를 나눠 피는 두 여자 사이에는 어느새 미묘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이 아이들을 보라!”는 계고의 메시지와 거리가 멀다. 숀 베이커의 시나리오와 카메라는 가난한 어린이의 가난에 집중하는 대신,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환희와 활력을 놓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의 객관적 궁지도 직시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극 중 개인도 천사와 악마로 만들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선한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절망을 착취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입증한 바 있다. 핼리는 누가 봐도 훌륭한 엄마가 아니다. 부분적으로 무책임하며, 어리석은 선택도 한다.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팔려고 어린 딸과 함께 호객하고, 매춘을 위한 프로필 사진 촬영을 딸과의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핼리의 행동은 충분히 우려스럽다. 그녀가 딸에게 선물하는 사치는, 좀 더 고급스런 모텔의 아침 뷔페에서 누리는 도둑 포식이다. 숀 베이커 감독은 핼리를 변호하지 않으나 이 캐릭터를 판정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핼리를 한심해 하면서도, 이 어린 엄마가 무니에게 최고의 친구이며 무니를 온 세상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사필귀정이라는 안도감과 모녀가 헤어지는 일은 옳지 않다는 감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영화의 최선은 때로 관객 안에 진정한 갈등을 심는 것이다. 전작 < 탠저린 >을 아이폰 5S로 스크린에 손색없이 아름답게 촬영해 화제를 모았던 숀 베이커는 ‘아이폰 감독’으로 세상에 기억되는 일을 방지라도 하듯 < 플로리다 프로젝트 >를 35밀리 필름으로 찍었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 사일런트 라이트 > < 포스트 테네브라스 럭스 >를 촬영한 알렉시스 사베가 카메라를 담당했다.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프레임은 연보라와 오렌지, 플로리다의 환한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혹자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현실의 어둠과 배치되는 컬러의 역설에서 찾겠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숀 베이커는 그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장소의 공기를 주민의 눈으로 포착할 줄 안다. 저예산 영화 다섯 편을 만들며 세트 없이 인물의 생활공간에서 영화적 긴장을 발견해 온 경험은 그의 커다란 자산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많은 숏은 성인의 허리께에 오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순진한 흥분과 거기에 무심한 세상의 압도적 사이즈를 전한다. 그러나 숀 베이커는 특정 스타일에 고착하는 감독은 아니다. 존재감이 엷고 기동성 높은 스마트폰 촬영으로 비전문 배우의 거침없는 연기를 따라잡고 부추겼던 <탠저린>과 대조적으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주의 깊은 블로킹과 프레이밍이 만들어 낸 숏으로 지지된다. 어린 배우들로부터 의도한 결과를 끌어내는 데에 실용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이 영화의 뇌관인 무니 역 브루클린 프린스의 연기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널리 회자될 터라 여기서는 말을 아끼기로 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공개된 후 프린스와 자주 비교되는 대상은 최연소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됐던 <비스트>(2012)의 크반자네 왈리스인데 왈리스가 아이로서 존재를 그대로 카메라 앞에 드러내는 연기를 했다면 브루클린 프린스의 그것은 타고 난 배우의 철저히 리허설 된 연기다. 이런 영악한 속성이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공으로 믿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무니라는 소녀의 성격과 조화롭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내 관객을 이끌고 무니의 세상을 기웃거리고 뛰어다니던 <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지금껏 한 번도 달리지 않았던 것처럼 달려나간다. 질주인지 비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미지 앞에 떨면서 나는 딱 한 가지만 잊지 않으려고 했다. 예술이 세계를, 예술가가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료 인간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좋은 방법을 아는 영화를 방금 봤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