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젊은 날의 홍법대사 · 공해만다라
- 감독
- 텐 웬자
- 제작년도
- 1991
- 출연
- 나가시마 토시유키, 사쿠라다 준코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
<만다라>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스튜디오가 인플루언서들의 극찬을 수집할 수 있다면 누가 영화평론가를 필요로 할까요?” 2023년 7월, 《가디언》에 실린 기사의 도발적 제목은 영화 저널리즘이 직면한 현실을 꼬집는다. 평론가 마누엘라 라직은 < 바비 >(그레타 거윅, 2023)의 런던 시사회 경험을 크게 두 가지 풍경으로 일축했다.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인플루언서들 사이에 합류한 기자에게도 각종 굿즈를 건네주는 안내원. 그리고 이어지는 독려. “긍정적인 느낌을 공유해주세요!” 프리랜서 크리틱인 그는 자기 계정에 무슨 말을 쓰려다 말고 개봉 이틀 전에야 엠바고가 해제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당황했다고 쓴다. 기사는 가뜩이나 영화 매체의 대중문화적 위상이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이와 같은 문제 제기가 무슨 소용인지 자조하는 모순적 자기검열로 마무리된다. 올해 칸 기자회견장 옆자리에서 통성명한 《인디와이어》 에디터에게 용기 내 이 기사를 본 적 있냐고 물었을 땐 심드렁한 답변이 돌아왔다. “뻔한 소리, 요샌 부정적 평가를 미리 예측해서 특정 비판은 하지 말아 달라는 식의 가이드도 오는데요 뭘.” 비평가를 위한 친절한 가이드라. 선댄스발 코미디 영화 제목 같다고 생각했다. 취재 기자의 실무는 산업적 관점에 자주 노출되고 그래서 홍보, 마케팅 환경에 질식하기도 쉽다. 잡지사의 생리는 작품의 시의성이나 신속한 이슈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영화는 너무 성급히 말하게 되고 어떤 영화에 대해서는 말할 기회를 놓친다. 다각의 요구와 마감 시한, 닥쳐오는 개봉작들을 포용하는 이 일은 자기 감식안의 모서리를 ‘업계’의 비바람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극장에서 상영관을 확보하는 영화들은 중·저예산의 참신한 기획을 내건 작품들조차 아찔할 정도로 안전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맞서지 않고 있다가는 예리해지긴커녕 시시각각 풍화될 가능성이 크다. 행여 영화기자의 호러라는 장르가 생긴다면 명대사는“그래,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영화지”일 것이다. 취재의 특권은 비평 앞에서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그보다 본질적으로는 분열하고 충돌하는 내면의 목소리들이 가끔 시끄럽다. 이 일은 자연스럽게 필름메이커들의 속내와 고충을 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과물로서의 작품 이전에 만드는 과정과 방식을 관찰하는 일도 중요해진다. 걸작이든 범작이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전심전력을 다했(다고 말한)다. 주관적 진실 속에서 창작자의 자부심과 소통하는 저널리스트의 객관성은 늘 자기 의심의 대상이다. 현장 비평을 향한 열의가 때로 거의 어떤 말도 하지 못하겠다는 실의를 동반한다. 매주 지면 안팎에서 줄다리기가 열린다. 감독, 창작자, 제작진의 예술적 비전을 정확히 전달하고 해설하는 중간자의 본분이 한쪽에, 작품 본연의 의도보다 평자의 패러다임이 선명한 창조적 쓰기가 다른 한쪽에서 실랑이하는 형국이다. 잡지계의 악명 높은 평론가 폴린 카엘에 관해 《뉴요커》는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반대자(contrarian)”라고 정의한 바 있다. 카엘의 탁월한 반대는 역설적으로 발굴과 호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금은 고전이 된 < 보니 앤 클라이드 >(아더 팬, 1967)를 구해내어 할리우드가 그 명성을 스스로 재창조하도록,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독려한 인물로 기억된다. 걸출한 반대자의 식견, 호전성, 무시무시한 헌신과 성실함을 동경하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가 않다. 문제는 지금 여기에 선 사람의 막막한 과제다. <만다라> 중 법운과 지산 번뇌 앞에서 임권택 감독의 < 만다라 >(1981)를 되짚어본다. 6년의 수행에도 여전히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자조 속에서 고뇌하는 승려 법운( 안성기 )은 술 취한 탕아 행색이 더 어울리는 행자 지산( 전무송 )과 스치고 헤어지길 반복한다. 법운은 지산에게서 구도의 가능성을 본다. 그의 야생성은 안쪽에 자리한 단호함과 순수를 동경하게 만든다. 그러나 법운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지는 끝내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신당의 불상 점안식을 도운 뒤 마을 어귀에서 술에 의지하던 지산은 불탑 아래 엎드리며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얼어 죽는다. 지산을 발견한 법운은 그동안 자신이 찾아 헤맸던 깨달음을 하나의 형상으로 발견한 사람처럼 슬피 운다. 혹한의 날씨에 불상 앞에 납작 엎드린 자세로 굳어버린 수행자를 기리는 마지막 의식이 곧 법운의 몫이 된다. 지산의 죽음 이후 법운의 행적에 어떤 망설임도 없어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움직인다. 임권택 감독, 송길한 작가, 정일성 촬영감독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통과하며 청년들의 죽음이 들려오는 시절의 수치와 공허를 절감하는 중에 <만다라>를 만들었다. 지금 돌아보기에 <만다라>는 시대를 감당하기 힘든 이들의 흔들림이 걸어갈 수 있는 하나의 길, 우회로를 터 내는 영화다. 말미에 이르러 법운은 승려라기보다 매개자로 변모한 모습이다. 암자에 불을 붙여 다비를 마친 후, 법운은 지산이 잊지 못했던 여인 옥순( 방희 )을 찾아간다. 지산의 유품, 그가 직접 조각한 매우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불상을 전하러 간 것이다. 이어서 법운은 오랫동안 외면했던 어머니를 찾아가 더 이상 자신을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담히 전한다. 직접 불붙인 암자의 화마를 잠자코 지켜본 뒤 여관방과 다방을 향한 법운은 혼란을 거두고 세속의 안쪽을 통과한다. 유품을 건네고 어머니(들)에게 (대신) 안부한다. 이 뜻밖의 행로에서 법운은 자기 안에 지산이, 또 다른 죽음들이 들어찬 사람같이 부지런하다. <만다라>의 마지막에는 먼 길을 걸어가는 매개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다시 방향을 뒤집어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움직임이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그는 멀어진다. 물론 되돌아오기도 할 것이다. 불탑 앞 기도하는 자세의 지산 / 암자에 불을 붙인 법운 속세와 구도의 경계에서 겁먹은 수행자의 클로즈업이 종내에 아득한 롱쇼트로 바뀌어 갈 동안 나는 극장에 앉아서 짐짓 딴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말을 전하고 의식을 치르는 매개자의 역할이 품을 수 있는 쓸모 같은 것을 궁리했다. 창작자와 관객, 예술과 산업, 비평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각각의 형식과 규격, 정당성 같은 것을 찾고 또 찾는 것이 아니라 영화 매체의 본래적 지향과 그것을 만들고 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태계에 제각기 충실할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드는 데 바탕이 되고, 이미 만들어진 영화가 관객에게 가는 경로를 터 낼 수 있다면. 한 주에 80페이지가 훌쩍 넘어 과연 어느 성실한 독자가 다 소화하고 있는 것인지 근심하게 되는 지면에 틈새를 더 파내어 보기로 한다. 이상할 정도로 말해지지 않는 영화들 쪽으로 조금 더 움직여보기로 한다. 슬며시 머릿속에 내게 주어진 길 하나를 그려본다. 직업적 특권 아래 남보다 조금 일찍,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영화와 영화 안팎의 사람들이 지나가게 하는 길. 이 길이 안녕하냐고 물어올 때 드리우는 암울한 직업적 자의식을 거둬내고 나면 답은 간명하다. 저널리즘과 비평가를 위한 가이드가 주어지는 현실은 동시대 영화 매체가 처한 메마른 환경부터 극명히 가리킨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중심에서 바깥으로 다시 밖에서 안으로 황무지를 횡단하는 시도의 필요를 믿어볼 때다. 영화 안팎의 안부를 그러모으는 매개자의 눈과 손이 겁을 떨쳐내기를. 말끔히는 어렵더라도 부단히, 부단히. <만다라> 중 김소미(영화기자) l 영화주간지 《 씨네21 》 취재팀장. 책 『불이 켜지기 전에』(2025)를 썼다.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하게 된 일이지만, 평론가로 활동하는 일은 솔직히 내겐 사치스러운 일이다. 영화평론가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는 건 내 돈과 시간, 자원을 써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영화를 감상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걸 멈추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개봉작을 부지런히 보러 다녀야 하고, 미처 보지 못한 고전 영화도 꾸준히 찾아봐야 하며 영화 관련 이론이나 최근 담론을 공부하는 것도 게을리할 수 없다. 시간은 차치하고서라도 한 달에 청탁 받은 원고를 써서 받는 돈이 이 모든 활동을 하는데 드는 돈보다 더 많았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본업이 있기 때문에 주로 평일 낮에 열리는 시사회에 가지 못해 일반 관객과 똑같이 직접 내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다녀야 하며 OTT 콘텐츠 구독료와 영화 관련 서적, 강의에도 돈을 쓴다. 나는 궁금했다. 다른 평론가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그들은 대부분 영화와 관련한 학계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거나 영화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거나 아니면 아직 학생이었다. 나처럼 영화와 관련 없는 본업을 갖고서 퇴근 후나 주말에 짬을 내어 활동을 이어가는 평론가가 과연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이쯤 되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그런데도 왜 나는 계속 영화를 보고 글을 쓰나? 비정규직 회사원과 프리랜서 생활을 번갈아 전전하며 혼자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30대 여자인 내게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존의 평론을 볼 때마다 나와 시선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높은 평가를 받은 영화 중 내게 불편하게 다가온 것들이 많고, 반면 주목받지 못한 영화 중에 어떻게 이런 영화가 저평가 받고 그대로 묻힌 건가 생각이 드는 것들이 있다. 이렇게 주류 대중과도 기존의 평론가들과도 시선이 어긋나는 지점들을 하나씩 짚고, 내가 영화 안에서 다르게 포착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 영화의 뛰어남을 형식 중심으로만 얘기할 때의 거북함도 있다. 한 영화가 영화사적으로 높게 평가받을 만한 훌륭한 형식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그 안에 드러나 있는 노골적인 혐오나 비윤리성을 아예 못 본척하고 언급하지 않는 비평들이 불편했다. 영화는 형식과 내용의 결합이다. 형식이 곧 내용이라는 관점에서 비평을 한다면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어쩔 때는 내용이 곧 형식이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볼 필요도 있다. 형식과 내용은 결코 분리될 수도 없고, 한 가지가 다른 한 가지를 온전히 대변할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한편으로는 타자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가 그 생경함으로 인해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입장에 놓였던 타자의 시선에서 구성된 형식과 내용은 기존 영화의 역사와 문법으로만은 파악될 수 없는 지점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리턴 투 서울>(데이비 추, 2022) 중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은 캄보디아계 프랑스 이민 2세대인 데이비 추 감독의 < 리턴 투 서울 >(2022) 이었다. 한국의 해외입양 정책에 의해 갓난아기 때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 여성 ‘프레디’가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겪는 혼란들을 불균질적으로 담아냈다. 최근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아시안 디아스포라 영화의 자장 안에 놓여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결이 조금 다르다. 부모 세대나 자신의 의지로 인해 외국에 정착하게 된 이민자들이 주류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그린 게 아니라, 어렸을 때 입양되어 외국인 부모 밑에서 평생을 그 나라의 시민으로 자라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담았기 때문이다. 프레디의 감각은 그 어떤 한국인과도, 프랑스인과도, 또 프랑스에 정착해 살고 있는 한국인 이민자와도 다르고, 프레디의 부모 찾기 여정은 < 라이스보이 슬립스 >(앤소니 심, 2022)의 경우처럼 캐나다에 이주했다가 한국의 친가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통해 한국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동현(이든 황)의 경우와도 매우 다르게 진행된다. 입양아, 한국계 프랑스인, 여성이라는 삼중의 소수자성이 교차되며 만들어지는 감각의 특수함이 긴 시간 안에서 파편적으로 묘사된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중요성과 작품성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영화 중엔 여성 주체의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에서 만든 영화들이 많다. 작년에는 < 나의 피투성이 연인 >(유지영, 2023)이 그랬다. 여성의 원치 않는 임신 문제를 그린 영화는 많지만 보통 그런 영화는 두 가지 중 하나의 방향을 선택한다. ‘그래도 낳아야 한다’라는 당위성 안에서 아이 낳는 과정을 어떻게든 긍정적인 색채로 꾸미거나 또는 아이를 지울 수 없거나 결국 낳게 되어서 불행에 휩싸이는 여성의 삶을 고통스럽게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그런 이분법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 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 어떤 선택에 직면하고 어떤 비난에 취약하게 노출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그에 무너지지 않고 그녀가 자신의 신념을 지킬 때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냉정하게 담아낸 결말에 힘이 있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유지영, 2023) 중 < 절해고도 >(김미영, 2021)에서도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과 감각을 마주했다.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 간의 관계 묘사가 레퍼런스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신선했고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그에 영향받는 등장인물의 고통에서 한 발짝 물러나 시간과 여유를 갖고 지켜보는 거리감도 범상치 않았다. 계절감을 갖는 자연을 풍부하게 담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조각가인 윤철( 박종환 )은 불혹을 넘긴 나이에 자신에게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그다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황한다. 그러던 중 미술에 재능을 보이던 딸인 지나( 이연 )가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출가를 하겠다고 한다. 예술가가 되지 못하면 스님이나 수도사가 되고 싶었던 윤철은 그가 갖지 못했던 재능을 갖고 그가 가지 못했던 길을 가는 딸을 지켜보며 변화한다. 속세에 있을 때 서로 가시 돋친 날카로운 반말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던 부녀는 딸이 행자가 되고 난 후 예우를 하고 존대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하며 딸의 삶에 간섭하기 보다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 걸어가는 딸을 옆에서 지켜보며 지지하면서 윤철 자신도 변화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대부분 핸드헬드에 롱테이크로 찍혀 불안감을 자아내지만 지나가 도맹 행자가 되고 난 뒤의 후반부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고정샷으로 차분히 지켜본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인해 한때 관계가 틀어졌던 애인과의 관계 또한 변한다. 윤철은 암이 재발해 죽어가는 전 연인을 바라는 바 없이 옆에서 지켜봐 주고 또 그녀가 자신의 존엄을 위해 호스피스로 가는 선택 또한 존중해 준다. <절해고도>를 만든 김미영 감독은 임권택 감독 밑에서 십여 년 동안 연출부로 활동했다. 이번 작품은 마찬가지로 임권택 감독과 일했던 강창호 미술감독과 함께 만든 영화이다. < 안개마을 >(임권택, 1982)을 레퍼런스로 해서 자연 안에서 인물이 하나의 요소로 공존하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임권택 감독의 < 만다라 >(1981), < 아제아제 바라아제 >(1989) 같은 불교영화에서 다뤘던 주제의식을 이어가면서도 여성을 타자화했던 시선에서 벗어나 모든 인물을 주체로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구도의 길을 걷는 주체와 그를 현혹하는 타자의 이분법을 벗어나면 영화의 정서와 스토리의 방향성, 미학 등도 다 함께 바뀌게 된다. 한국 영화의 거장 아래에서 받은 영향을 짙게 드러내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시선에서 이뤄진 이 전환에 대해 좀 더 주목하고 의미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절해고도>(김미영, 2021) 중 한 편의 영화엔 세상과 인생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가 담겨있다. 무엇을 담을 것이고 어떤 거리에서 어떤 시간과 빛으로 그 장면을 구성할 것인가? 이건 영화에 대한 지식과 경험에 더해 살아온 삶과 사유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영화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거기엔 단순히 영화의 역사나 형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을 초과하는 삶이 있다. 따라서 한 편의 영화를 이해하는 데는 영화사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감각도 필요하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과정을 거쳐 비슷한 삶을 삶고 있는 사람들은 한 영화를 비슷하게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배경에서 다른 삶을 산 사람이 그 영화를 본다 해도 그 영화에 대한 비슷한 평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떤 감상들은 그것이 전문적인 영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무시당하고 간과된다. 하지만 다른 위치에서 오는 삶의 감각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의 의견은 한 영화를 둘러싼 담론의 장을 넓히고,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다른 방향성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등단한 후에도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쓰는 내 삶과 태도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블로그에 취미로 영화 비평을 쓰던 아마추어 정신으로 평론을 쓰고 있다. 주류에서 비켜난 자리에서 내가 좋다고 생각한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의 흥행이나 홍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청탁이 들어와도 본업에 치여 마감을 어기기 일쑤이고, 별로라고 생각한 영화에 대해서는 에둘러서라도 칭찬을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나는 영화평론가라는 명칭에 걸맞은 자격을 여러모로 갖고 있지 못하면서도 우연히 등단한 후 뻔뻔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있고, 이런 자리에서만 쓸 수 있는 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오늘도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유지영, 2023) 중 박예지(영화평론가) l 소수자의 시선에서 영화를 보고 쓴다. 2022 영화의 전당 영화평론대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 영화비평 구독 메일링 서비스 <씨네픽션>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