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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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무대로 펼쳐지는 모험과 로맨스의 대작 오락물’에서 존 포드의 이름을 보게 되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 모감보 >는 여러 면에서 예외적인 포드 영화다. 먼저 눈에 띄는 건 배우들이다. 주연을 맡은 당대의 톱스타 클락 게이블, 애바 가드너, 그레이스 켈리는 이 영화 외엔 포드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반면 신부를 맡은 단역 데니스 오데아(Denis O’Dea)를 제외하면 포드 사단에 속한 배우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프리카가 공간적 배경인 영화도 <모감보>가 유일하다. 각본을 쓴 존 리 마인(John Lee Mahin)은 이 영화가 포드와의 첫 작업이며 6년 뒤의 < 기병대 The Horse Soldiers >(1959)가 포드와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공동작업이다. 촬영을 맡은 로버트 서티스(Robert Surtees)는 < 솔로몬왕의 보고 King Solomon’s Mines > < 벤허 > 등의 대작을 찍었으며 역시 < 모감보 >가 포드와의 유일한 공동작업이다. 존 포드가 자신의 영화적 고향 모뉴먼트 밸리 혹은 미국도 아니며 가족의 실제 고향 아일랜드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에서 낯선 배우들, 낯선 스태프들과 만든 이례적인 영화가 <모감보>다. <솔로몬왕의 보고>(1950), <아프리카의 여왕>(1951), <킬리만자로의 눈>(1952) 개봉 당시에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평론가 보슬리 크라우더는 이 영화를 “또 하나의 아프리카 사파리 영화”라고 불렀다. 당시 할리우드에는 < 솔로몬왕의 보고 >(캠튼 베넷, 앤드류 마튼 감독/데보라 커, 스튜어트 그랜저 주연, 1950), < 아프리카의 여왕 The African Queen >(존 휴스턴 감독/험프리 보가트, 캐서린 헵번 주연, 1951), <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 >(헨리 킹 감독/그레고리 펙, 수잔 헤이워드, 애바 가드너 주연, 1952)과 같은, 빅 스타를 내세우고 미지의 땅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모험과 로맨스를 배합해 관객의 이국 취향을 만족시키는 영화들이 유행했다. 당대의 관객이나 평자들에게 < 모감보 >는 ‘Great White Hunter’ 멜로드라마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런 영화들의 아류로 비쳤던 것 같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990년에 내놓은 < 추악한 사냥꾼 White Hunter Black Heart >은 <아프리카의 여왕> 촬영 당시 존 휴스턴 감독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이자, 이 장르의 패러디이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당대의 평론가들은 물론이고, 존 포드 열광자들 중에서도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는 드물다. 린지 앤더슨은 < 모감보 >가 “오락과 도피를 위한 외도이며, 콘셉트도 야심적이지 않고 결과도 신통치 않은 영화”라고 잘라 말한 뒤 어떤 논평도 덧붙이지 않는다(『About John Ford』). 앤드루 새리스 역시 “작가의 영화라기보다는 장인의 영화”이며 “포드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고 그의 개인적 프로젝트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 온 마을의 수다 The Whole Town’s Talking >(1935)와 함께 포드의 가장 즐길만한 영화”라고 적고 있다. 다만 새리스는 “이 도피주의적인 빅 스타 오락물이 (대중영화로서) 흠잡을 데가 거의 없는데도, 대중영화 지향적인 비평가들조차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덧붙인다.(『John Ford Movie Mystery』) 생전의 포드를 만난 진지한 인터뷰어들도 이 영화엔 별다른 관심이 없어, 포드가 이 이례적인 프로젝트를 왜 시작했는지, 어떤 구상으로 촬영했고 결과에 대해 어떤 소회를 가졌는지에 대한 발언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반면 당시 언론의 연예란에는 이 영화가 뜨거운 이슈였는데, 영화 자체 때문이 아니라, 세 주연 배우가 톱스타이자 당대의 바람둥이였고, 촬영현장에서 얽히고설킨 염문을 끝없이 낳았기 때문이다. < 모감보 >는 메이저 스튜디오 밖에서 만들어진 포드의 개인적 영화들(< 도망자 > < 웨건 마스터 >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 라이징 오브 더 문 >)이 겪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소외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기묘한 소외를 겪은 셈이다. 전후의 존 포드가 개인적 프로젝트(위의 네 편과 < 말없는 사나이 > 등)의 제작비 마련을 위해 스튜디오 납품용으로 당대의 상업적 장르인 서부극을 찍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전형적인 오락물처럼 보이는 < 모감보 > 역시 같은 의도로 만들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의 우리에게 <모감보>가 흥미롭게 보이는 이유는, 스스로는 충분히 의식하지 않았더라도, 포드가 완전히 다른 세팅으로 또 다른 서부극을 찍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드는 자신의 서부극이 서부의 역사를 충실히 기록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서부극뿐만 아니라 서부극적인 비서부극이 보여주는 바는, 포드의 서부극이 실화에 바탕한 이야기의 충실한 재현이라기보다 바르트적인 의미에서 신화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애바 가드너, 클락 게이블, 그레이스 켈리 줄거리는 이렇다. 케냐의 밀림 지역에 터를 잡은 빅터(클락 게이블)는 두 백인 및 원주민 조력자들과 함께 맹수를 포획해 유럽의 동물원과 서커스단에 파는 백인 사냥꾼(white hunter)이다. 어느 날 밤무대 무희처럼 보이는 켈리(애바 가드너)가 도착해 빅터와 짧은 인연을 맺지만 빅터는 그녀를 부담스러워한다. 곧이어 젊은 영국 인류학자 도날드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린다(그레이스 켈리)가 사파리 여행을 위해 이곳에 온다. 빅터와 린다는 곧 사랑에 빠지지만 이를 숨기고, 네 남녀는 고릴라 거주 지역을 향한 위험한 사파리 여행을 떠난다. #0 거의 지적되지 않는 점이지만 < 모감보 >는 < 역마차 >(1939)와 많은 면에서 흡사하다. 이주민들의 불안정하고 작은 마을, 온갖 위험이 도사린 야생 지역(초원과 밀림/황야)을 차례로 통과하는 여정, 적대적 토착민들(아프리카 원주민과 맹수/인디언)의 위협, 주인공 남녀의 결합이라는 주요 모티프들을 두 영화는 공유한다. 고릴라 지역 원정대는 마치 서부의 평원을 지나는 마차 행렬처럼 찍혀 있다.(#0) 운송수단은 마차에서 지프와 카누로 달라졌지만, 빅터 일행의 지프와 카누가 역마차처럼 두세 곳의 토착민 마을을 경유해 최종목적지에 이르는 구성은 같으며, 승객 캐릭터들도 유사하다. 야생의 삶에 익숙한 유능하고 과묵한 단독자인 주인공(빅터/링고 키드)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프/마차에는 지금 문명화된 지역에서 온 숙녀(린다/루시)와 창녀 혹은 유사 창녀(켈리/댈러스)가 타고 있으며 숙녀는 창녀를 경계한다. 물론 < 모감보 >의 지프와 카누에는 주정뱅이 철학자도 없고(주정뱅이는 있지만 철학자는 아니다), 이상심리의 도박사도 위선적인 절도범도 없다는 점에서 캐릭터 구성은 훨씬 단조롭다. 또한 링고 키드의 여정은 복수를 향한 것인 반면 빅터의 여정은 로맨스(다른 남자의 아내를 얻기 위한)를 향한다는 차이도 있다. 하지만 여정의 끝에 주인공과 창녀의 결합(빅터-켈리/링고 키드-댈러스)이 이뤄진다는 결말은 완전히 같다. <역마차>의 링고 키드 / <모감보>의 빅터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 역마차 >에는 공동체가 있지만 < 모감보 >에는 공동체가 없다는 점이다. <역마차>의 마을은 문명화의 도정에 있다. 이 불안정한 공동체에는 문명의 완성을 위해 제거되어야 할 외부의 위협(인디언 제로니모)과 내부의 위협(악당 플러머 형제)이 있으며 동시에 문명의 악덕(은행가의 탐욕과 범죄, 창녀와 주정뱅이 철학자를 추방하는 위선의 율법)도 이미 만연해 있다. 링고 키드는 사적인 복수심의 발로라 해도 악당들을 제거해 사실상 공동체의 문명화에 기여했지만, 이젠 살인자가 된 그를 위한 공동체 내부의 자리는 감옥이나 교수대 외에 없다. 그는 떠나야 한다. 문명화의 도정에 있는 서부 공동체의 딜레마는 오늘은 폭력적 영웅이 필요하지만 내일은 그를 추방해야 하는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웅의 폭력 행사와 (자기)추방은 모두 공동체의 도덕적 요청인 것이다. <역마차>라는 서부극 서사에서 공동체의 도덕은 영웅의 윤리와 긴장하고 대립하는 중심 모티프이다. < 모감보 >에는 빅터가 거주하는 마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그의 윤리와 긴장하는 공동체의 도덕 같은 건 없다. 이 마을은 사실상 빅터가 사장인 비즈니스 조직에 가깝다. 그의 표면적 목적은 더 많은 동물을 잡아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일 뿐이다. 물론 그의 근본적 동기가 돈벌이인지 도피인지는 모호하긴 하지만, 이곳은 온전히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빅터의 소왕국과도 같은 곳이다. <모감보>의 서사가 < 역마차 >에 비해 얇아 보이는 건 캐릭터 구성의 단조로움 때문이라기보다 영웅의 비극적 운명을 요구하는 공동체의 잔혹한 도덕이라는 모티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차이 하나는, 당연해 보이는 말이긴 하지만, < 모감보 >에는 공동체가 없으므로 공동체의 바깥도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서사의 외부 혹은 서사의 초월적 층위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역마차 >의 링고 키드는 댈러스와 함께 지평선 너머를 향해 떠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멕시코라는 특정 지역이라기보다 공동체의 바깥, 주정뱅이 철학자 닥 분의 표현을 빌리면 ‘문명의 축복을 벗어난’ 미지의 땅이다. < 황야의 결투 >의 와이어트 업, < 수색자 >의 이산 에드워즈도 그곳을 향해 떠났다. < 웨건 마스터 >의 인물들은 평생 그곳을 찾아 떠돌아다닐 것이다. 포드 서부극에서 그 바깥이 서사를 영원한 미결의 여정으로 만든다. 영웅의 떠남이 사실상의 추방 심지어 죽음의 은유라고 해도 그에겐 적어도 떠남의 결정권이 주어졌고 무한한 광야로 시각화된 그 바깥은 감상적 위안마저 안겨주는 낭만적 외부였다. 포드의 서부극에 한정한다면 이 외부가 닫히는 건 1960년대의 두 서부극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와 < 샤이엔의 가을 >에서였다. 두 영화는 이 바깥의 최종적 폐쇄의 확인이라는 목적지에 이르는 길고 고단한 여정이었다. 아프리카라는 공간 < 모감보 >의 장소인 아프리카는 물리적으로는 미국 서부보다 훨씬 광대하고 더 아득한 미지의 땅이다. 하지만 이곳이 < 역마차 >의 서부보다 좁아 보이는 이유는 외부가 없는 달리 말해 초월적 층위의 장소가 상상될 수 없는 동질적 공간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항상 일정한 위험이 일상인 장소이고 그 위험은 관리될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제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 깊은 정글로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빅터는 무슨 이유에선지 문명을 떠나 이 외지고 위험한 곳에 정착했고(그의 개인사는 설명되지 않는다), 도시로 나간 적도 거의 없다. 그는 문명 공동체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달리 말하면 빅터는 < 역마차 >의 결말에서 링고 키드가 향해 떠난 곳에 이미 도착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계속 밀림 탐색에 나서겠지만 더 이상 미지의 땅을 향해 떠도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소왕국으로 반복해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지만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다. 말하자면 < 모감보 >의 정글은, 다른 층위의 장소를 향해 열린 곳이 아니라, 영웅이 자신을 최종적으로 유폐시킨 폐쇄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모감보>는 <역마차>의 변주이면서 동시에 후일담으로 볼 수도 있다. 혹은 <모감보>를 포스트 서부극이라 말할 수도 있다. < 모감보 >가 ‘또 하나의 아프리카 사파리 영화’가 아니라 포드 서부극의 친족처럼 보이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존 포드는 메이저 스튜디오가 요구한 아프리카 사파리 장르를 수용하면서도 이 장르의 다른 영화들이 채용한 정글 모험의 일반적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예컨대 존 휴스턴의 < 아프리카의 여왕 >에서 작은 증기선에 올라탄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헵번의 주된 곤경은 끝없는 갈대숲과 진창, 엄청난 수의 모기떼, 강의 가파른 급류, 미친 폭우와 강풍과 같은 아프리카의 가혹한 자연환경이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모감보>는, 맹수의 등장을 제외하고는, 아프리카라는 장소를 특별한 공포와 매혹의 스펙터클로 만드는 데 무관심하다. 서부극의 주요 장르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문명과 자연의 대립이라는 설명은 널리 통용되지만, 포드 서부극에서 적대적 자연환경이 주된 모티프로 등장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자연재난 장르인 < 허리케인 >을 제외하면, 성서번안극에 가까운 유사서부극 < 3인의 대부 3 Godfathers >(1948)의 소금사막이 드문 예외다. 포드 서부극에서 자연 풍경은 오히려 깊이 침묵하는 초서사(超敍事) 혹은 비지(非知)의 심연이다. 적대적 자연으로 흔히 오인되는 것은 적대적 인디언이다. 백인의 이주민공동체와 대립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북미 인디언의 토착민공동체인 것이다. 백인 문명이 자연 지배적이고 인디언 문명이 자연 순응적이라고 해도, 이 대립은 분명히 하나의 문명과 또 다른 문명의 대립이며 투쟁이다. 인디언 공동체가 백인 공동체보다 도덕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더 우월한 것으로 묘사되는 < 아파치 요새 >보다 이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그가 달빛이 흐르는 강을 사랑하는 건 분명하지만(< 젊은 날의 링컨 > < 모감보 > < 라이징 오브 더 문 >), 감독으로서의 존 포드는 자연을 공포 혹은 신비의 대상으로 드러내는 상투적 방식에 이끌린 적이 거의 없다. < 모감보 >에서 포드는 모험이 아니라 여정을 택한다. 사파리 장르의 강점인 맹폭한 자연 대 분투하는 인간이라는 구도를 활용하는 대신, < 역마차 >의 궤적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여정의 서사 안에서 <역마차>에서처럼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적어도 <모감보>의 세계 안에서라면 아프리카의 자연은 빅터라는 유능한 영웅에게 거의 위협이 되지 못한다. 빅터는 공동체와 절연한 단독자이며 그를 망칠 수 있는 건 이제 그 자신밖에 없다. 이런 점들이 <모감보>를 <역마차>의 후일담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자신이 맹수이며 자기 내부에 모든 위협을 지닌 영웅이라는 점에서 빅터는 모던한 서부사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에서 그는 또 다른 맹수로부터 위협받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최상위 포식자다. 공동체의 율법도 외부의 위협도 사실상 부재한 곳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일상적 먹이 사냥을 제외하면 짝짓기 말고 달리 무엇이 있을까. 돌려 말할 필요가 없겠다. < 모감보 >는 맹수의 짝짓기 영화다. < 모감보 >의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위협적인 맹수들이 등장하는 시퀀스들이 최상위 맹수인 빅터의 알레고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맹수들은 빅터의 분신으로서 그의 정체를 암시하고 그의 위협을 상연하며 그의 불길한 미래를 예기한다는 것이다. #1 #2 #3 #4 이 영화에선 흑표범이 여러 번 등장한다. 첫 시퀀스에서 함정에 빠져 포획된 흑표범은 백인 조수의 실수로 그물을 뚫고 도망간다.(#1) 몇 장면 뒤에 린다는 혼자 산책을 나갔다 같은 함정에 빠지고 흑표범이 그녀를 향해 으르릉거리며 다가온다.(#2, #3) 뒤늦게 쫓아온 빅터는 흑표범을 쏜다.(#4) 여기 세 맹수가 있다. 첫째, 그물을 뚫고 탈출한 맹수. 둘째, 함정에 빠진 미녀에게 다가오는 위협적인 맹수. 셋째, 여인의 육신을 노리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맹수. 첫째는 공동체를 탈주한 빅터의 전사에 해당될 것이며, 둘째는 자기도 모르게 함정에 빠진 린다에게 접근하고 있는 빅터의 현재에 해당될 것이다. 셋째는 결말부에 전개될 빅터의 미래에 해당될 것이다. #5 더 흥미로운 장면은 후반부에 있다. 고릴라 거주지역 부근 텐트에서 혼자 앉아있는 켈리 곁을 치타가 무심하게 지나간다.(#5) 켈리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놀라지만 치타는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맹수와 여인이 한 프레임에 담긴 유일한 장면이며, 촬영 현장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을 재연한 장면이지만, 켈리에 대한 빅터의 미지근한 태도뿐만 아니라, 빅터와 켈리가 같은 종의 맹수임이 절묘하게 암시된다. 둘은 모두 문명이 아니라 정글에 속한 존재인 것이다. 린다와의 결합에 실패한 뒤, 빅터는 떠나려는 켈리를 붙잡으며 “함께 있어주면 좋겠소. 당신은 내게 어울리니까.”라고 말한다. 달콤한 구애의 언어를 기대했던 켈리는 “어울린다고?”라며 화를 내고 배에 올라탄다. 하지만 그녀는 곧 배에서 내려 빅터에게 달려온다. 빅터의 말대로 둘은 사랑한다기보다 어울리는 게 맞다. 빅터와 켈리의 결합에는 < 역마차 >의 링고 키드와 댈러스의 결합에서처럼 로맨틱한 감정교환 대신 동류의 존재로서의 확인만 존재한다. 비유컨대 < 모감보 >는 먼저 떠난 링고 키드에게 댈러스가 뒤늦게 찾아온 이야기다. 둘은 맹수로서 앞으로도 공동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정글에서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 장면 이 마지막 장면은 해피엔딩처럼 보이지만 아름답다기보다 처연하다. 여기엔 모종의 단념이 있기 때문이다. 린다가 일깨운 문명으로의 복귀 가능성, 로맨스, 열정의 회복이 모두 단념된다. 포드는 단념의 사유를 설명하지 않고 단념의 결정만 제시한다. 마치 단념이 빅터와 켈리의 운명이라는 듯. 이것이 자신을 정글에 유폐한 서부사나이의 삶이다. 그런데 < 모감보 >에는 이 모든 설명을 부질없게 만드는 시퀀스가 있다. 산책 도중 위험에 빠진 린다를 빅터가 구한 뒤에 둘이 돌아온다. 린다는 날렵한 초식 동물처럼 프레임을 재빨리 빠져나가다(#6) 나무 등걸에 기대 그를 바라보며(#7), 빅터라는 맹수를 피하듯 유혹한다. 급작스러운 폭풍우가 몰아치고 빅터가 린다를 안아 올리자 린다는 갑자기 빅터의 몸을 빨아들일 듯 안겨든다.(#8) 그런 다음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이어진다. 남편이 잠든 린다의 방 앞에서, 빅터는 린다의 스카프를 벗기고 그녀의 목을 감싼 다음 거칠게 당긴다.(#9) 흔들리는 눈빛의 린다는 다가올 듯하다 돌아서 들어간다.(#10) #6 #7 #8 #9 #10 입맞춤조차 없지만 이 일련의 장면들에는 숨막힐듯한 유혹, 외설적 욕망과 섬뜩한 불안이 숨 가쁘게 교차한다. 이 영화의 드문 지지자인 태그 갤러거의 표현을 다시 옮기자면 여기엔 “절정, 사랑, 이해, 공포, 고통, 모욕, 분노, 두려움, 수치와 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한 장면에 모두 담겨있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포드를 무엇보다 위대한 디테일의 작가, 감정 표현의 마술사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사적인 감상으로는, 이 시퀀스 하나만으로도 < 모감보 >를 포드의 걸작 반열에 올리고 싶어진다.(계속)
일흔을 바라보던 존 포드는 존 웨인과 함께 영화사상 가장 정교한 실내 서부극이라 부를만한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를 찍은 뒤, 웨인을 < 말없는 사나이 >의 이니스프리를 닮은 또 다른 샹그릴라로 데리고 간다. 그곳은 ‘할레아칼로아’(Haleakaloa)라는 허구의 지명이 주어진 폴리네시아의 한 섬이다. 실제 촬영 장소는 하와이의 카우아이이며, 할레아칼로아는 하와이어로 ‘웃음과 사랑의 집’이라고 한다. 이니스프리보다 이상향에 더 가까운 이 아름다운 섬에서 존 웨인이 분한 ‘건즈(Guns) 도노반’은 한 때 전쟁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몇 척의 배를 거느리고 ‘도노반의 산호초’라는 술집을 운영하며 풍요와 게으름을 만끽한다. 서부극 만들기를 직업적 책무로 여기던 전후의 포드가 이 외딴 섬에서의 촬영을 일종의 휴식으로 여겼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 도노반의 산호초 >는 정말로 휴식과도 같은 영화다. 사건에의 무관심이 많은 포드 영화들의 숨겨진 태도라고 해도, 또한 후기로 갈수록 그 태도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해도, <도노반의 산호초>보다 더 무관심할 수는 없다. 제거해야 할 악은 물론 공동체나 개인을 위기로 몰아넣는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거구의 폭력적인 사내가 이 ‘웃음과 사랑의 집’에서 할 일은 말 그대로 우스꽝스러운 소동과 사랑 외엔 없다. 계급과 성향이 다른 남녀의 결합이 주된 테마라는 점에서 이 영화를 포드의 드문 스크루볼 코미디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 말없는 사나이 >에서처럼 사랑의 성취를 위해 주인공이 애써야 할 일도 없다. 사소한 결핍과 결함들이 무기력과 지루함을 방지하는 유쾌한 오점이 되는 세상, 어떤 긴급한 행동도 요청되지 않는, 그러니 행동 대신 활동만 난무하는 세상. 포드 영화는 결국 이런 곳을 향해 긴 항해를 해왔을 것이다. 서부극 외엔 포드 영화의 상업적 잠재력을 미심쩍어하던 메이저 스튜디오가 이런 한가한 세계를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1962년 7월, 포드가 이 영화의 촬영을 위해 하와이에 도착한 직후 파라마운트는 투자 보류 결정을 내린다. 포드는 철수하지 않고 자신이 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파라마운트는 배급만 맡고 ‘존 포드 프로덕션’이 제작 크레디트에 오른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한가롭고 아름다운 섬에서, 완성된 시나리오도 없이 촬영을 시작한 포드는 매일 밤 다음날 촬영 분량을 구상하는, 즉흥 연출에 가까운 작업을 시도했다. 고령의 포드가 ‘액션’을 외치고 나서야 아직 대사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깨닫는 날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제작 환경은 이 영화의 느슨함, 불균질성 그리고 활력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개봉 직후 앤드루 새리스가 「빌리지 보이스」(1963. 8. 1.)에 기고한 평은 “<풀밭 위의 오찬>이 장 르누아르의 <폭풍우>이듯, < 도노반의 산호초 >는 존 포드의 <풀밭 위의 오찬>이다.”라는 흥미로운 문장으로 시작된다. 포드의 <도노반의 산호초>와 르누아르의 <풀밭 위의 오찬>이라는 영화,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폭풍우>라는 희곡은 공히 “노예술가의 평정심과 지혜의 궁극적 정수”라는 것이다. 새리스는 이 작품들에서 “(창작자의) 활달한 사적 비전이 유동하며 캐릭터들의 윤곽을 지워간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노예술가의 작품을 ‘평정심과 지혜’의 산물로 보는 건 너무 상투적인 단정이 아닐까. 오히려 만년의 포드라면, 실은 만년의 르누아르도 마찬가지이지만,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에서 아도르노의 논의를 빌려 베토벤의 후기작을 두고 말했던 “달관, 체념, 이해, 화해, 포용, 조화, 종합이 아닌 파국, 파열, 흠집, 모순”의 궤적, 그러니까 “죽음 앞에서 또 한 번의 혁명이며 창조적 몸부림”의 표현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 같지는 않다. 돌이켜보면, 전부는 아니라 해도, 젊은 날의 포드 영화를 포함해 많은 포드 영화가 “파국, 파열, 흠집, 모순”의 표현이 아니었는가. 우리는 이미 < 굽이도는 증기선 >이나 < 젊은 날의 링컨 > 같은 포드의 1930년대 작품에서조차 소란과 난장의 디오니소스적 활력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또한 ‘영예의 시기’에 난데없이 튀어나온 낮도깨비 같은 영화 < 타바코 로드 >에서 속수무책의 파국과 파열의 소요를 만나지 않았는가. 포드의 마지막 작품이 더없이 엄격하고 운명론적인 <일곱 여인>이라는 사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포드 세계의 여행자인 우리로선 아직은 어떤 부류의 단계론이나 양식화도 보류하고, 개별 작품을 하나의 독립된 전체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다. #1 #2 #3 #4 #5 < 도노반의 산호초 >의 첫 장면도 < 말없는 사나이 >만큼이나 사랑스럽다. 배우 리 마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분한 ‘보츠(Boats) 길훌리’가 섬에 도착하는 첫 시퀀스를 좋아하지 않기 힘들 것이다. 할레아칼로아 연안을 지나는 해군 함정에서 갑판 청소를 하던 길훌리(중년이며 전쟁영웅인데도 여전히 사역을 하는 사병이다)는 선장이 섬에 정박하지 않을 거라고 낄낄거리며 심술궂게 말하자 같이 낄낄거리다 선장을 막대 걸레로 내려친 다음 경례까지 하고 바다로 뛰어든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멀리서 헤엄치며 일으키는 물보라만으로 섬사람들은 그가 길훌리임을 알아보고, 모두 항구에 몰려나와 춤추며 환영 퍼포먼스를 벌인다. 곧이어 도노반이 도착하고 예정된 주먹다짐을 시작한다.(#1~#5 ) 같은 날에 태어나 22년째 자신들의 생일만 되면 주먹다짐을 벌이는 전통을 이어온 전쟁 동료인 두 사내의 대결은 섬 최고의 이벤트이지만, < 말없는 사나이 >에서 폭발 직전까지 압축된 갈등의 유일한 해결책이자 대단원이었던 두 사내의 대결과는 다르게, 아무런 서사적 기능이 없는 그저 구경거리일 뿐이다. 마을의 정신적 지도자인 윌리엄 데드햄 박사가 치고받고 있던 두 사람을 꾸짖자 대결은 영화 초반에 끝나버린다. 그토록 인상적으로 등장한 리 마빈의 역할도 이후엔, 그의 팬이라면 섭섭한 일이지만, 코믹한 조연의 역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리 마빈은 촬영장에 매일 술에 취해 나타났기 때문에, 포드가 그의 역할을 축소시켰을 가능성도 크다). 두 사내의 대결은 싱겁게 끝났지만, 이 섬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곧 보스톤의 부유한 상속녀 아멜리아가 길훌리에 이어 섬에 도착한다. 그녀의 임무는 이곳의 유일한 의사이며 원주민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 윌리엄 데드햄 박사를 만나 유산 양도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다. 여기엔 가족을 버리고 떠도는 미지의 아버지와 독립적인 여인으로 성장한 딸의 갈등과 화해라는 가족 멜로드라마의 오래된 테마가 있다. 또한 도시적이고 세련된 여성 아멜리아와 전근대적이고 마초적인 남성 건즈 도노반의 대립과 결합이라는 스크루볼 코미디적인 테마도 있다. 이 부녀(아멜리아-데드햄 박사)와 남녀(아멜리아-도노반)의 대립적 관계는 개인주의적이고 문명화된 동부와 공동체적이고 야성적인 서부의 갈등이라는 서부극 테마의 변주다. 무엇보다 이곳은 원주민, 일본인 하인과 중국인 상인과 노동자, 프랑스인 지사와 목사 및 간호사, 미국인 유지와 의사,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이 뒤섞인 인종 전시장이다. 인종주의는 특히 아멜리아와 배다른 혼혈 동생과의 대면이 낳을 수 있는 또 다른 테마다. 하지만 포드는 이 테마들을 다루는 데 많은 숏을 할애하진 않는다. 데드햄 박사는 모든 면에서 존경받을만한 인물이니 부녀의 화해에는 별다른 장치가 필요하지 않고, 도노반과 아멜리아는 처음부터 매력적인 남녀로 설정되어 있어 이들의 결합도 시간문제다. 인종주의는 뒤에 말하겠지만 서사의 주제가 아니라 퍼포먼스의 주제로 다뤄진다. < 도노반의 산호초 >의 포드에게, 테마처럼 보이는 것들은 제재들이다. 서사적으로 탐구될 주제의식이 아니라 일종의 상황 혹은 조건에 가깝다. 유사 테마를 던져놓고 포드는 그 상황 아래 놓인 인물들과 유희한다. <도노반의 산호초>는 더도 덜도 아닌 영화적 놀이다. 그런데 놀고 있는 건 인물이 아니라 포드 자신이다. 우리를 매혹시키는 건 그 유희의 물리적 운동감과 활력이다. 아멜리아의 도착과 그에 이어지는 시퀀스들에서 보는 이를 사로잡는 것도 이런 것이다. #6 #7 #8 #9 #10 #11 아멜리아를 해안으로 무사히 안내하기 위해 도노반이 카누로 마중을 나오지만, 두 남녀는 모두 물에 빠진다. 그러자 원주민으로 보이는 선원들이 줄이어 바다로 뛰어든다. 그녀가 지갑이 바다 속에 빠졌다고 말하자 도노반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그도 곧바로 뛰어든다. 깔끔한 안내는 실패하고 두 남녀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다. 이 시퀀스의 마지막은 바닷가에서 도노반의 손에 끌려가던 아멜리아의 엉덩방아와 작은 물보라다.(#6~#11) #12 #13 # 14 #15 #16 아멜리아를 태운 지프는 출발하자마자 엔진 폭발음을 내며 달린다. 폭발음은 데드햄 박사 집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날 밤 폭풍우와 천둥 번개가 몰아친다. 문소리에 깨어 1층에 내려간 아멜리아는 집에 들어온 아이와 뒤따라온 도노반, 그리고 들이닥치는 비바람을 만난다. 아이를 비바람 부는 밤에 데리고 다닌다고 아멜리아가 도노반을 비난하자 도노반이 문을 박차고 나가고, 다시 거센 비바람이 실내로 몰아치며, 문을 닫던 아멜리아는 엉덩방아를 찧는다.(#12~16) 물보라, 엔진 폭발음, 폭풍우. 이 셋의 의미론적인 연관은 없다. 이들은 이야기와는 이질적인 영역의 잉여들이다. 굳이 찾자면 공통점이 없지 않은데, 그것은 낯선 여인과 접촉한 이 섬의 물리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아멜리아의 바닷물과의 접촉, 자동차와 접촉, 대기와의 접촉에 대한 반응이 각각 물보라, 엔진 폭발음, 폭풍우인 셈이다. 주민들은 환대하고 있지만 원시의 섬 할레아칼로아는 지금 대도시에서 온 방문자에게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 없이도 이 장면들은 우리를 사로잡는데, 물보라가 다른 물보라를 불러내고, 엔진 폭발음이 물보라의 시각적 소란을 이어받으며, 폭풍우와 천둥 번개가 물보라와 폭발음에 대답하는 역동적 연쇄의 박력 때문이다. 아멜리아의 도착에 이어지는 일련의 시퀀스들에서 활동하는 건 어떤 서사적 기능도 없이 역동하는 이 잉여들이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연쇄적 소란이 화면에 무의미의 활력과 리듬감을 빚어내는 것이다. 섬의 고장 난 소품들도 잉여들의 소란에 가세한다. 작동하지 않는 축음기, 6년째 고장인 슬롯머신은 소음을 뱉어낼 뿐이며, 뚫린 교회 지붕의 구멍으로 비가 쏟아져 예배자들을 적신다. 서사는 진전을 잊고 소음들이 제멋대로 떠들며 소란을 합주한다. 이곳은 그런 잉여들과 소음들의 축제다. #17 #18 #19 #20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축제가 우리를 홀린다 해도, 이런 영화적 놀이가 과연 칭송받고 존중받아 마땅한가. 왜 우리는 이야기를 잊고 활개 치는 잉여의 숏들에 종종 매혹되는가. 잉여의 숏으로 충분하다면 이야기는 왜 필요한가. 가능한 대답 하나는 이야기의 구속이야말로 잉여의 숏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 안에 있으면서 이야기와 긴장하고 있지 않다면 잉여라고 불릴 이유도 없다. 위대한 숏이 심미적인 구도의 이미지이거나 이야기에 충실히 봉사하는 이미지가 아님은 물론이지만, 이야기로부터 독립적인 자기 완결적 이미지도 아닌, 이야기와 교섭하고 긴장하며 이야기를 넘어서려는 하나의 운동이다. 위대한 숏은 아무리 유희적으로 비치더라도 내재적이면서도 초월적이라는 역설의 구현이다. < 도노반의 산호초 >가 유독 유희적으로 보인다면, 포드가 어떤 영화에서보다 이야기를 느슨하고 허술하게 만들어 곳곳의 틈새들을 잉여들의 놀이터로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술집에서의 난투극처럼 쓸데없는 장면도 드물 것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도노반의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게 된 길훌리는 술 마시러 온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하사관 셋을 경멸 투로 ‘수병(limey)’이라 부르며 내쫓으려 한다. 싸움이 붙으려는 찰나에 도노반이 뜯어말린다. “우린 전우였잖아”라는 도노반의 말에 수긍하고 웃으며 화해의 악수까지 나눈 뒤 ‘수병’은 뒤따라온 사병에게 “넌 저 양키 두 놈과 한패 먹어. 이제 3대3이지?”라며 사병의 얼굴을 갈긴다. 갑자기 싸움판이 벌어지자마자 길훌리는 수병이 아니라 도노반을 때려눕힌다. 몰려온 수병들까지 가세하지만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 알 수 없는 난장판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도 도노반은 길훌리가 일어설 때마다 때려눕힌다. 클라이맥스는 그다음이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길훌리가 난데없이 슬롯머신에 동전을 넣자, 6년째 고장이던 기계가 동전을 폭포수처럼 뱉어낸다. (#17 ~ #20) 이치에 닿지 않고 어리석으며 유치하고 폭력적인 본능의 퍼포먼스가 벌어진 뒤 갑자기 축복이 쏟아진다. 슬롯머신의 동전 세례는 말 그대로 하늘의 축복이다. 이 돈으로 비로소 교회의 지붕을 고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섬에선 그리고 < 도노반의 산호초 >에선 모든 게 이런 식이다. 진지한 이야기가 다룰만한 심각한 문제란 존재하지 않고, 선의의 인간들은 게으른 시간을 누리며, 바다와 하늘과 사물들은 이유 없이 삐걱거리며 소음을 연주하고, 작은 구원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온다. 고장 난 사물, 심술궂은 대기의 변덕스러운 작동, 하지만 난데없이 되찾아지는 균형과 해결되는 갈등. <도노반의 산호초>가 장 르누아르의 <풀밭 위의 오찬>과 공유하는 게 있다면 인간의 서사를 오작동시키는 정령의 서사라는 점이다. 이건 존 포드의 전적으로 새로운 이야기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포드의 많은 서부극들은 이미 인간의 서사를 왜소하게 만드는 초월적 풍경의 서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1 또 다른 시퀀스 하나를 빠트리고 갈 수는 없다. 지붕이 수리되지 않은 교회에서 섬 주민들이 모여 성탄 미사를 시작한다. 프랑스인 지사가 내레이션을 시작하고 아이들과 몇몇 어른들이 이에 맞춰 기발한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리하여 아기 예수가 탄생한 다윗의 도시를 베들레헴이라 불렀다. 저 하늘의 별을 보라. 그때 동방에서 세 현자가 찾아왔다. 세 왕들은 선물을 들고 아기 예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했노라. 그중 한 명은...” 이때 섬의 원주민 경찰서장이 열대과일을 잔뜩 들고 등장한다. “폴리네시아 왕이었고...”(#21 ) #22 내레이션은 이렇게 이어진다. “중국의 황제도 왔으며...”. 이번에 지사의 비서이자 책사인 중국인 미스터 유가 찻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등장한다. (#22 ) #23 “또 한 명은...” 이어지는 내레이션을 읽던 지사가 잠시 멈칫한다. “...또 한 명은 미국의 왕이었다.” 어이없게도 풀잎 면류관을 쓴 길훌리가 고장 난 축음기를 들고 등장한다. (#23) #24 이 순간 폭우가 쏟아진다. 모두 예상한 듯 우산을 꺼내 들지만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과 ‘미국의 왕’ 길훌리는 물세례를 받는다.(#24 ) 이것이 이 영화에서 인종주의를 다루는 포드의 방식이다. 서사의 기술이 아니라 액자화된 퍼포먼스로 인종 간의 화해를 노래하기. 포드는 이야기꾼이 아니다. 그는 서사의 정교한 장치를 채택하지 않는다. 허구로서의 서사적 해결을 설득하는 대신 그는 인종주의를 다룬 하위 서사를 과장되고 날조된 퍼포먼스로 제시한다. 과장과 날조를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에 영화에서 이야기의 지위, 인간의 서사를 다루는 포드의 중요한 태도가 담겨 있다. 그는 여전히 대지의 감독이다. (계속)
존 포드에 관해 말하게 될 이 연재의 제목을 ‘존 포드 이야기’로 정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내가 아직 존 포드 감독론을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에 이미 많은 존 포드론이 출간되어 있고, 이 위대한 예술가의 세계에 접근하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존 포드론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훌륭한 책을 번역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 길을 찾고 있는 중일 따름이다.(사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1997년 토론토에서 비디오로 포드의 < 도망자 The Fugitive >(1947)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전부터 < 수색자 >와 < 역마차 >를 좋아해오고 있었지만, 이 영화는 내가 아는 포드의 서부극과는 전혀 다른, 괴기스럽지만 신비롭고 매혹적인 표현주의 영화였기 때문이다. 올해는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 태양은 밝게 빛난다 The Sun Shines Bright >(1953)를 드디어 35mm 프린트를 보고 그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포드가 어디까지 간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그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도망자 The Fugitive>(1947) 다른 하나는 한국의 시네필들과 영화애호가들의 존 포드에 대한, 나아가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과 연관되어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꽃피기 시작한 한국의 시네필 문화는 유럽 시네아스트들에 대한 편애를 벗어나지 못했고, 미국 고전기 작가들은 오슨 웰즈와 알프레드 히치콕을 제외하면 여전히 무지와 무관심의 사이 어디쯤인가에 방치되어 있는 것 같다(최근 들어서는 유럽의 혹은 유럽 출신의 옛 거장들조차 점점 잊혀져가는 듯한 불길한 징후가 보이긴 하지만). 단적으로 한국에는 존 포드에 관한 단 한권의 역서도 저서도 출간되어 있지 않다. 내가 역자로 참여한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한나래)의 한 챕터의 절반가량이, 장르적 시야에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나마 존 포드를 주의 깊게 다룬 유일한 한글본이다. 이런 상황은 시네마테크 프로그램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부산에서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밍을 8년째 해오고 있는 내 경험으로는, 고전기 할리우드 영화 기획전은 객석이 텅텅 비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감행하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더 많고 다양한 취향의 시네마테크 관객들이 모여 있는 서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유럽과 일본의 시네아스트들에 집중되어 있다. 장 르느와르, 에릭 로메르, 오즈 야스지로 등의 이름은 빈번히 오르내리지만,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라울 월시 등의 이름은 찾기 힘들다. 어떤 시네마테크도 수익 혹은 점유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상황이 바뀌기를 바라지만, 아직 우리에게 존 포드는 새롭게 해석되기보다 먼저 소개되어야 할 시네아스트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존 포드 이야기’라는 간판을 단 이 곳에서 나는 한 사람의 해석자가 아니라 소개자로서 존 포드를 말하려 한다. 그래서 이 글을 본 몇몇 사람이라도 존 포드의 영화를 보고 좋아하게 되기를 바란다. 존 포드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한 거장의 세계와 만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모든 음악의 흐름은 바하로 되돌아간다”는 쇤베르크의 말을 모방해 나는 ‘모든 영화의 흐름은 포드로 되돌아간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만일 이 말을 포드가 직접 듣는다면 그는 화를 내며(그는 다혈질이었고 예술 운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그리피스나 무르나우에게나 어울려”라고 말했을지 모르겠다. 또한 다른 만신전의 명부를 가진 많은 영화전문가들의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표현은 과장이다. 존 포드만큼 우뚝 솟은 많은 감독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영화들을 어떤 영화들보다 원형적이라고 느낀다. 고요한 대지, 말없는 사나이, 떠나는 자의 뒷모습, 발설되지 않은 신음과 폭발하는 광기, 축제와 난장의 활력과 도취, 경건한 제의, 안식으로서의 유머, 추하고 사랑스런 얼굴들, 숭고한 배려와 보살핌, 악인의 예의 혹은 성인(聖人)의 비행(非行), 빛과 어둠이 빚어내는 매혹과 불안과 피로의 풍경, 소멸해가는 공동체의 향기, 그들의 배열이 빚어내는 리듬과 화음과 아름다움 등등 내가 영화를 보고 경탄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영화에 담길 수 있을까. 나는 존 포드의 영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거기엔 우리가 영화에 빠지게 만든 대부분의 것들이 있다. 한 사람의 포드가 아니라 여러명의 포드가 있을 것이다.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오슨 웰즈에게 좋아하는 감독들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웰즈는 “존 포드, 존 포드, 그리고 존 포드”라고 답했다. 웰즈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나는 그의 대답을 존 포드의 다면적 원형성에 대한 찬사라고 느낀다. 존 포드의 영화를 보는 것은 장르와 사조를 넘어 시네마틱한 것들의 난장으로 입회하는 것이다. 존 포드 John Ford 존 포드는 1894년에 태어나 1973년에 죽었다. 1917년부터 1966년까지 무성영화, 단편,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140여편의 영화를 감독했고(무성영화의 상당수는 소실되었다), 전무후무하게 4번의 오스카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으며 < 철마 The Iron Horse >(1924)를 비롯한 많은 영화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할리우드 주류에서 환대받았고 세속적 명예와 부를 얻은 가장 출세한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대의 존 포드는, 고전기 할리우드의 다른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장인으로 존중받았으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당대의 비평가들은 존 포드 영화의 미학적 가치에 대해선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이었다. 포드 스스로도 자신의 영화를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자신을 예술가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영화를 ‘시’라고 부른 한 평자의 말을 ‘헛소리’(horseshit)라고 일축했다. 존 포드가 당시의 미국 특히 뉴욕 지식인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꽤 알려진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마틴 스콜세지의 경험담이다. 존 포드의 열렬한 팬인 스콜세지는 뉴욕대학교(NYU) 강사 시절이던 1969년 존 포드의 영화를 수업시간에 상영했다. 당시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은 이렇게 회고했다. “마티(마틴 스콜세지의 애칭)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가짜 권총을 든 채 교실에 들어왔다. 원래 상영할 예정이던 < 이창 > 대신 존 웨인이 가증스런 인종주의자를 연기하는 서부극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창>을 보려고 모여든 학생들은 모두 낙담해 ‘우’하고 소리를 질렀다. < 그린 베레 >가 공개중인 때로 존 웨인은 닉슨 다음으로 인기가 없는 인물이었다. ‘교실을 나가는 학생은 성적을 주지 않겠어’라며 가짜 권총을 든 채 스콜세지는 교실 문앞에 버티고 섰다. ‘영화의 제목은 < 수색자 >다. 이건 서부극 최고의 걸작이야’라고 말했다. 영사가 시작됐다...... 쓸쓸한 존 웨인의 모습이 황야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문을 통해 보여지는 마지막 장면이 끝났다.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마틴 스콜세지: 영화로서의 삶>) 1960년대 진보적인 뉴욕 대학생들의 야유를 불러일으켰던 < 수색자 >는 2012년 영국의 영화지 「사이트 앤 사운드 Sight & Sound」가 전세계 846명의 영화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집계한 세계영화사 10베스트 명단의 7번째 자리를 차지했고 존 포드는 가장 위대한 감독 리스트에서 칼 드레이어와 함께 6번째 자리에 올라있다.(<수색자>가 10년마다 집계되는 이 명단에 처음 오른 것은 포드 사후 9년이 지난 1982년이었다.) <수색자 The Searchers>(1956) 또다른 사례는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에와 연관되어 있다. 두 사람은 1975년초 자신들의 작품 <모세와 아론>이 상영되는 뉴욕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마르크주의자인 브레히트의 정신적인 제자를 자임한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당대의 가장 전위적인 작가로 평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뜻밖에 2년 전에 죽은 존 포드를 보고 싶다고 말해 영화제 프로그래머인 리처드 라우드를 당황케 했다. 당시 젊은 영화학도였던 태그 캘러거는 이렇게 회고한다. “스트라우브에 관한 최초의 책을 출간한 바 있는 리처드 라우드는 존 포드를 스트라우브의 안티테제로 통렬히 비난한 바 있다. 라우드의 태도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당시 많은 뉴욕 사람들은 포드의 영화가 인종 차별과 군국주의, 가부장제, 쇼비니즘, 감상적인 통속성, 진부한 상투성을 옹호한다고들 했으며, 따라서 그를 혐오하는 것을 일종의 도덕적 의무로 여기고 있었다.” 태그 갤러거는 두 사람을 집으로 초청해 거실 바닥에서 존 포드의 < 순례 여행 Pilgrimage >(1933)과 < 도노반의 산호초 Donovan’s Reef >(1963)을 16mm 프린트로 같이 보았다. 영화를 본 다음 장 마리는 얼굴을 붉히며 자신이 영화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 존 포드와 미조구치 겐지를 결합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경험담을 전한 태그 갤러거는 10여년 뒤 「JOHN FORD-The Man and His Films」(1986)를 썼고 이 책은 아직까지도 존 포드에 관한 최고의 연구서로 꼽힌다.) 많은 고전기 할리우드 거장들은 당대에는 비평적으로 경시되다가 영화 이력의 말기 혹은 사후에 주로 프랑스 누벨바그 세대에 의해 ‘작가’로 추앙되고 미국 평단이 이를 뒤따르는 경로를 밟았다. 잘 알려진 대로 1967년에 첫 출간된 프랑수아 트뤼포의 명저 「히치콕과의 대화」는 유능한 흥행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을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재평가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존 포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누벨바그 세대가 작성한 ‘작가’ 명단에서 빠지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그들의 비평은 히치콕이나 하워드 혹스, 니콜라스 레이 등에 대한 숭배에 비하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편이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이것이 누벨바그 세대의 대부인 앙드레 바쟁이 존 포드의 매력에 둔감한 데서 오는 ‘바쟁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바쟁은 서부극에 관한 비평을 여러 번 썼고 < 수색자 >를 수작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같은 해에 나온 버드 보에티처의 < 7인의 무뢰한 Seven Men From Now >(1956)을 더 높이 평가했다. 누벨바그 평론가들의 기지였던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 1958년 12월호에 실린 올 타임 베스트 명단의 24위 안에는 존 포드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1위는 무르나우의 < 선라이즈 >였다). 히치콕에 열광한 프랑수아 트뤼포도 존 포드에 대해선 냉소적이었다. 1975년에 쓴 에세이에서 트뤼포는 이렇게 고백했다. “비평가 시절에 나는 존 포드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악평을 두세번 썼다. 하지만 TV에서 < 말없는 사나이 The Quiet Man >(1952)를 보고 내가 얼마나 장님이었는지 깨달았다. 그의 영화를 계속 다시 보게 되었고 지금은 장 지오노만큼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The Films in My Life」). 하지만 포드의 사후에도 이 정도 논평이라면 어쩐지 인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974년에 쓴 추도문에서도 트뤼포는 “포드의 영화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항상 캐릭터에 우선권을 준다는 점이다.... 그는 모파상과 투르게네프에 비견될 수 있다.”고 썼다. 확실히 트뤼포에게 포드는 문학적인 감독으로 비쳤던 것 같다. 히치콕에게 트뤼포가 있었다면 존 포드에게는 린지 앤더슨 Lindsay Anderson(1924~ 1993)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영국 프리시네마의 기수이자 기념비적 작품 < 만약에... If... >(1968)를 만든 이 비평가/감독은 젊은 시절부터 자칭 ‘포드 중독자’였고, 「사이트 앤 사운드」 등을 통해 1951년부터 존 포드 영화에 관한 열렬한 찬사를 바쳤으며 다섯 차례 포드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하지만 그의 비평은 종종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누벨바그 세대의 비평만한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고, 그나마 그의 비평과 인터뷰를 모은 단행본 「About John Ford」는 1981년에야 첫 출간되었다.(하지만 <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를 포드의 최고작 가운데 하나로, < 수색자 >를 퇴조의 징후가 명백한 영화로 꼽는 그의 독특한 견해는 존중할만한 예민함을 갖추고 있다.) 요컨대 존 포드는 고전기의 거장 가운데서도 가장 늦게 발견된 시네아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며 그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존 포드에 대한 비평의 지체에 대해 하스미 시게히코는 세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국적을 불문하고 사람들이 자국 영화에 냉담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둘째는 진보적인 ‘전위 작가’, 보수반동의 ‘고전적인 작가’ 같은 이데올로기가 개입된 관념들이 영화를 볼 힘을 뺏기 쉽다는 것이다. 셋째는 1970년대까지도 영화사라는 개념의 성립에 필수적인 영화를 볼 기회가 매우 한정적이었다는 것이다. 2005년 5월25일 서울의 필름포럼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하스미는 “그래서 존 포드에 대해선 우리(동양인)가 서양인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기세 좋게 주장했다. 하스미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존 포드의 영화를 더 잘 보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자리와 시기에 있는 셈이다. 이 연재는 포드의 전기적 사실들과 그의 작품을 함께 다루게 될 것이다. 다음 회에는 존 포드라는 사람에 대해 주로 소개하려 한다. 존 포드라는 사람과 그의 작품 모두 모순투성이인 복합체라고 말한 사람은 태그 갤러거다. 예술가의 인격과 작품은 완전히 독립적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존 포드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존 포드는 사람으로서도 매우 흥미로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