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지
- 감독
- 김재형
- 제작년도
- 2019
- 출연
- 이주석, 서동석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K-컬쳐와 함께 성장한 회사 덱스터스튜디오는 2012년 영화 < 미스터 고 >(김용화, 2013)의 메인 캐릭터인 대형 고릴라 제작을 위해 김용화 감독이 국내 시각특수효과(VFX) 1세대 슈퍼바이저들과 의기투합해 설립한 회사다. 덱스터스튜디오의 이름은 김용화 감독이 지은 것으로, 라틴어 ‘재주가 좋은,’ ‘기술이 좋은’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름처럼 한국에서 최고의 솜씨를 가진 회사로 만들자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인 고릴라의 수준 높은 디지털 털(fur)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프로그램 질로스(Zelos)를 자체 개발했다. <미스터 고>는 제34회 청룡영화제 기술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술상, 제19회 춘사영화상 기술상, 제8회 AFA (Asian Film Awards) 최우수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미스터 고> 제작 시 할리우드 예산보다 대폭 절감된 120억 원대로 고릴라 제작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실력을 인정받아 한국 특수효과 기업 최초로 할리우드 최고 VFX 학술 컨퍼런스 ‘DIGIPRO 2013’ 메인스트림을 장식하게 된다. 당시 픽사, 디즈니, 드림웍스, 리듬앤휴즈(< 나니아 연대기 >, < 라이프 오브 파이 > 등), 이미지 엔진(< 디스트릭트 9 >, < 왕좌의 게임 > 등), 웨타 스튜디오(< 반지의 제왕 > 등)에서 제출한 논문들을 제치고 컨퍼런스 대표 작품으로 주목받아 화제를 모았다. 덱스터스튜디오는 2024년 현재 80여 개의 자체 소프트웨어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덱스터 스튜디오 로비의 <미스터 고> 고릴라 모형 덱스터스튜디오의 사업 영역은 처음에는 VFX 하나로 시작해서 점점 세분화되며 다양해졌고 제작과 음향까지도 발을 넓혀왔다. 2015년 코스닥에 상장하였는데, 이는 여러 부서 및 연관 사업들로 조직이 확장해 나가는 발판이 되었다. 덱스터가 공동제작사로 참여한 영화 < 신과함께-죄와 벌 >(김용화, 2017)은 회사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만든 작품인데, 자체 VFX 기술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덱스터스튜디오가 제작도 하고 VFX 등 포스트 프로덕션도 맡는 회사라는 점을 확실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덱스터스튜디오는 2024년 기준 본사와 자회사 6개가 연결된 그룹사이다. 현재 덱스터스튜디오의 VFX 본부에는 제작관리본부와 함께 2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있고 VFX 본부 이외에 VP본부, DI본부, 사업개발본부, 실감콘텐츠본부 등 6개의 본부와 1개의 R&D 연구소가 있다. 자회사는 총 5개로 광고회사인 ‘덱스터크레마’와 음향 회사인 ‘라이브톤,’ 제작사인 ‘덱스터픽쳐스,’ 광고 쪽 후반 작업을 담당하는 ‘테이커웨이,’ 경주의 미디어아트 사업을 맡아서 진행할 ‘플래시백그라운드 경주’ 등이다. 본사인 상암동에 320명 정도의 임직원이 있으며 있으며 광고회사까지 다 합하면 450명 정도의 인원이 일하고 있다. 덱스터스튜디오 로비와 데이터 스토리지 말하자면 VFX(특수영상, 시각효과)에 기반한 콘텐츠 기업으로 시작하여 현재 영화, VR, 뉴미디어를 망라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종합 스튜디오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실감콘텐츠, AR·VR·XR, 메타버스 등 신기술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기획부터 XR까지: 영상 콘텐츠의 모든 것 상장 이후 너무 여러 개의 회사로 쪼개져 있다는 일부 의견이 있으나, 분사한 회사는 덱스터픽쳐스 한 곳이고 나머지는 인수를 통해 자회사로 편입된 형태이다. 덱스터스튜디오가 <신과함께>와 같은 대형 작품의 제작을 함께 하며 제작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효율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분사한 경우이다. 자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보다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제작사를 분사한 반면, 직접 콘텐츠 제작 이외 전 과정을 커버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가진 회사들을 인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옥은 2012년에 경기도 고양시에 있다가 파주 출판단지에서 4년, 이후 마포구 상암동으로 이전한 뒤(마포구 상암동 매봉산로 75) 주 본부는 현재까지 같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자회사 중 라이브톤은 상암과 일산에 지금 2개소가 운영되고 있고, 색보정을 하는 DI본부는 상암과 일산에 배치되어 있다. 버추얼프로덕션 D1스튜디오는 파주에 있고, 덱스터크레마 광고 회사는 선릉에 있다. 덱스터스튜디오 상암 본부의 메인 공간은 18층과 19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18층은 재무실, HR실, 전략기획실, 덱스터픽쳐스, R&D실 외 기타 회의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19층의 경우, 영화 <미스터 고>의 주인공 고릴라 인형이 있는 로비 공간이 있고, 남쪽과 북쪽으로 작업 및 사무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남쪽은 파이프라인에 맞게 각 파트별로 공간이 배치돼 있다. 북쪽은 슈퍼바이저실, 제작 관리본부, 키친, 강의실, 휴게실, 대표 집무실이 있고 시사실이 가운데 크게 배치되어 있다. 18층과 1층에는 R&D 관련 장비와 포토 스캔 장비,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한 모션캡처를 받는 장비가 구비되어 있기도 하다. 덱스터스튜디오 19층 워크 플로어 현재 공동대표는 김욱 , 강종익 두 사람으로, 이들은 덱스터에 대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회사’라고 소개한 바 있다. 콘텐츠 제작에서 덱스터만이 가진 가장 큰 기술적인 장점은 모든 시스템이 회사 내부에 존재하고, 전체 작업을 관통하는 확실한 파이프라인이 있다는 점이다. 즉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프로젝트를 관리·운영하는 소프트웨어, 구성원 간 효율적인 소통을 위한 규약까지 포괄하는 시스템이 회사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기술적인 도전이 유독 많았던 영화 < 더 문 >(김용화, 2023)을 제작할 때 도움이 되었고 이후 기술적으로 진일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후반작업업체가 기획과 제작에까지 관여하다 보니 장점이 있다. 슈퍼바이저들이 후반작업뿐 아니라 기획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감독의 상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면, 그게 다시 후반으로 이어지면서 퀄리티가 올라가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단순히 크리처 하나를 더 리얼하게 만든다기보다는, 거기에 감정을 넣는 연출을 이해하고 나서 작업을 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점 덕분에 덱스터가 영화나 영상 작업 시 기획부터 참여하게 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덱스터 스튜디오 시스템 매니지먼트 벽면 드로잉 이런 덱스터의 강점은 관객들로 하여금 덱스터가 한국 장르영화나 영상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보장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인식을 주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특히 최근 VFX가 강조되는 콘텐츠의 경우에는 제작에도 참여하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사명이 나오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이름이 각인될 수밖에 없다. 2010년대 이후 복잡하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영상 콘텐츠 산업 환경 가운데에서 덱스터는 성공적으로 적응했고, 충실히 미래를 대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AI 기술의 발전은 영상산업, 특히 후반작업 분야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후반작업 기업(나아가 종합 콘텐츠 기업) 덱스터가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대응할 것인지가 향후 한국 영상콘텐츠 산업 전반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다. 공간 및 운영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매봉산로 75 2) 설립일 : 2012년 3) 대표자 : 공동대표 김욱, 강종익 4) 규모 : 면적 19층 3,211.56㎡, 18층 3,242.51㎡ 5) 공간 구성 : DDMC 빌딩 19층, 18층, 1층으로 구성 - 19층: 슈퍼바이저실, 제작관리본부, 키친, 시사실, 강의실, 휴게실 - 18층: 덱스터피처스, 재무실, HR실, 회의실, 사업개발본부, IT인프라지원실, 전략기획실, 경영관리본부 - 1층: R&D 6) 조직도 및 조직 구성 - (주)덱스터스튜디오: 전략기획, 재무관리, HR지원, IT인프라 지원, VFX본부, 제작관리 본부, VP본부, 실감콘텐츠 본부, 사업관리 본부, 콘텐츠 본부, DI본부 - 연결종속회사: 라이브톤, 덱스터 픽처스, 덱스터크레마, 테이크이웨이, 네스트이엔티, 플래시백그라운드경주 7) 구성원 : 사원수 332명(VFX,DI,VP 265명, 실감콘텐츠·사업개발·콘텐츠 35명, 관리 32명) 8) 주요 장비 (영사 장비, 음향): 18층과 1층에 RND 관련 장비, 포토 스캔 작업용으로 카메라가 원형으로 둘러쌓인 장비, 1층에 애니메이션 작업용 모션캡처 장비 취재 일자: 2024년 8월 20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
일단 < 클로즈 유어 아이즈 >(빅토르 에리세, 2023)를 골랐다. 이 영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 룸 넥스트 도어 >(2024) 사이에서 몇 초 망설였는데 그래도 빅토르 에리세의 신작을 넣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에리세의 영화를 내 리스트에 넣을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올까. 어떤 때는 이 정도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스페인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파블로 베르헤르의 < 로봇 드림 >(2023)인데, 아직 쌍둥이 빌딩이 건재했던 1980년대 뉴욕을 기가 막히게 재현한 애니메이션이다. 거기에 절절한 로봇과 개가 주인공인 멜로드라마를 넣어서. 오로지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만 가능한 마법이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오시야마 키요타카의 < 룩백 >(2024)이다. 창작과 창작자에 대해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짧지만 강렬하고 아름다운 예술가 영화다. 예술가 영화도 두 편이 더 있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클로즈 유어 아이즈>. 다른 하나는 모나 아샤쉐의 < 리틀 걸 블루 >(2023)로, 감독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여러분이 프랑스어권 유성애자 여성작가의 피학적인 오토 픽션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멀리하시기 바란다. 하지만 그런다면 여러분은 마리옹 코티아르가 펼친 최고의 명연 하나를 놓치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냐고? 그렇긴 한데 그와 상관없이 감독은 코티아르에게 자기 어머니 역을 시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해가 간다. 모녀 이야기는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조지 밀러, 2024)의 도입부를 여는 중요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꼭 필요한 무언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2015)가 그랬던 것처럼 끝내주게 재미있는 액션물이고, 이 영화의 실망스러운 흥행성적은 관객들이 뭘 모를 때가 많다는 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긴 관객들은 개봉 당시 존 카펜터의 < 괴물 >(1982)도 대충 넘겼다. 그냥 그렇다고. 로즈 글래스의 < 러브 라이즈 블리딩 >(2023)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는 필름 누아르로, 몸과 섹스와 퀴어성에 대해 정말 신나고 뻔뻔스러운 장면들을 엮어대는 오락물이다. 아, 그리고 재미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하는 말인데, 션 베이커의 < 아노라 >(2024)와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 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4)이 주는 재미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성노동자가 연결된 계급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룬 인디 영화와 마흐사 아미니 시위를 다룬 사회파 이란 영화가 이렇게 갑자기 대중적으로 (심지어 거의 고전 할리우드스럽게) 재미있어지면 관객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과는 별도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주는 즐거움을 주제의 무게나 구질구질함을 두려워하며 버릴 필요는 없다. 한국영화를 두 편 골랐다. 더 고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방에 종말론적 예언이 나팔처럼 울려퍼지고 있었지만 올해 한국영화를 보는 경험은 여러모로 즐거웠다. 그런 경험을 제공해준 영화가 주류영화가 아니었을 뿐이다. 올해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퀴어, 특히 여성 퀴어 영화들의 공습으로, 어떤 때는 네 편의 영화가 동시에 극장에 걸려 다들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당사자성 넘치는 사실주의극인 < 럭키, 아파트 >(강유가람, 2024)부터 올해 가장 뻔뻔스러운 길티 플레저인 < 히든 페이스 >(김대우, 2024)까지 다양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그 때문에 드라마 < 정년이 >(2024)의 비겁함이 더 짜증난다. 오정민 의 < 장손 >(2023)은 거의 임권택 과 이두용 의 직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러면 당연히 올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텐데, 아니다. 이 영화도 ‘재미있다.’ 거의 1세기에 가까운 한반도의 역사를 가족사에 녹여낸 재주, 대한민국 가부장제에 대한 냉정한 고찰만큼이나 신기한 건 이런 주제로 신선한 재미를 끌어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 열 편 중 아홉 편은 호오도를 떠나 대중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마지막으로 고른 영화가 남궁선 의 < 힘을 낼 시간 >(2024)이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유로 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다섯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팝 아이돌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다. 수없이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면 전보를 쳐라’라는 옛 할리우드의 격언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놓고 뻔뻔스럽게 교훈과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들은 많다. 전보로 전달한 텍스트의 다발과, 주제에 공감하는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결합한 결과물의 차이는 엄청나다. 당연히 ’공익영화’는 비하 단어가 될 수 없다. 다른 모든 영화가 그렇듯 좋은 공익영화와 나쁜 공익영화 그리고 그 사이에 걸쳐진 광대한 스펙트럼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힘을 낼 시간>은 여러모로 일단 효율적인 공익영화다.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러닝타임 안에서, 선정적인 실제 사건의 구체적인 재현 없이 한국 연예계의 문제점들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얼마나 되는가. 이것만 해도 엄청난 성취인데, <힘을 낼 시간>은 이 모든 정보와 메시지를 다 담고 있는 동시에 여전히 매력적이다. 공익영화로서의 기능은 영화의 매력에 어떤 핸디캡도 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일부이다. 이 영화의 다음 성취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케이팝이라는 장르에 봉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상물을 만들려는 시도는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초창기의 시도는 김기영 (동명이인이다)의 < 진실게임 >(2000)이다. 아마 더 이전 작품도 있을 거고 사실 여기서 정확한 경계선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래도 20년은 더 됐다. 하지만 성공작이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다들 주저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들은 < 내일부터 우리는 >(윤성호, 2017), < 아이돌 권한대행 >(윤성호, 박현진, 2017), <탑 매니지먼트>(2022)로 이어지는 윤성호 의 시리즈들이다. 만드는 사람들의 아이돌 문화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개성적인 유머 속에서 조화를 이룬 작품들인데 이 작품들이 아이돌 스토리텔링의 주류가 된 적은 없다. 아쉽게도. 나머지는 대부분 성공보다는 실패로 기억된다. 그 중 가장 처참한 실패는 아무래도 드라마 <청춘시대 2>(2017)였던 거 같은데. 일단 이 시리즈는 왜 아이돌 이야기를 왜 굳이 거기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건 여러모로 최악의 오타쿠적 선택이었다. <힘을 낼 시간>은 소위 ’망돌‘이라는 소재를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청춘시대 2>와 반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장점이다. 일단 영화는 왜 이 영화가 ‘망돌들’의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아주 명쾌하고 당연한 이유를 갖고 있다. 주인공이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 주인공 중 망돌은 ‘파이브 갓 차일드‘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 멤버였던 태희( 현우석 )뿐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 ‘러브앤리즈’의 멤버 수민( 최성은 )과 사랑(하서윤)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제법 히트한 노래도 한 편 이상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래보다는 이 팀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더 먼저 떠올리고 제대로 정산을 못 받고 은퇴한 건 태희와 다를 게 없다. 하여간 이 셋은 전재산 98만원을 챙겨들고 제주도 여행을 오는데, 그만 첫날에 한 명이 사고를 내 돈 대부분을 날려버린다. 이 정도면 너무 어이가 없어 슬슬 웃음이 나오는 가학적인 블랙 코미디를 기대해 볼 만도 한 상황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얼마 전에 < 십개월의 미래 >(2020)를 만든 남궁선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보다 평화롭고 진지한 길을 간다. 세 사람은 귤 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고 자기들을 알아보는 케이팝 팬도 만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따분하게 들린다면 미안하지만, <힘을 낼 시간>은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치유의 과정에 대한 영화이고 여기에 진지하다. 이 영화에서 치유라는 단어는 결코 가볍게 쓰이지 않는다. <힘을 낼 시간>의 가장 큰 장점은 ‘좋은 의미로’ 머글스럽다는 것이다. 이 영화엔 다른 케이팝 아이돌 관련 작품들에서 쉽게 발견되는 징그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케이팝 아이돌의 친숙한 이미지를 따르고 그걸 페티시적으로 활용하는 대신 부당한 노동 조건 속에서 시달리다 버려진 젊은 노동자들을 그린다. 이 영화가 정공 공익영화로 기능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쓰면 무지 재미없게 들리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들은 대부분 대중적 재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그건 일단 이 진지함의 정공법이 드라마에서 제대로 작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영화엔 더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오타쿠적인 선택 대부분을 피해가고 있고 일부러 아이돌 캐스팅도 하지 않은 영화인데도 여전히 아이돌스러운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대 장면 하나 나오지 않고 ‘가상의 아이돌 그룹 만들기 게임’에 집착하지 않으며 골수팬을 등장시키지 않는데도 영화는 부서진 홀로그램 조각처럼 케이팝 그룹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노력한 팬이라면 러브앤리즈 팬픽을 쓰는 게 가능할 정도다. 영화의 의도는 전혀 아니겠지만. <힘을 낼 시간>은 최선 또는 최악의 타이밍에 개봉한다.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정치 상황이 모든 이슈를 잡아먹었으니 개봉하는 영화에겐 타격이 크다. 하지만 뉴진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돌의 노동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바로 그 정치적 상황 속에서 수많은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국회 앞에서 휘두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 이 영화에 맞는 시기가 있을까. 듀나(영화평론가) l SF 작가이고 영화 컬럼니스트다. 영화 관련 저서로는 『가능한 꿈의 공간들』(2015),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2022),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2019), 『남자 주인공에겐 없다』(2020) 등이 있다.
일본에서 현재 방영 중인 TV 애니메이션 <시로바코>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배경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내용을 그린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 설명이지만, 실제로 그런 내용의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4년 10월부터 애니플러스 채널에서 방영 중인데, 아직 미완의 작품을 이번 칼럼에서 다루고자 생각한 것은 이 작품 자체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통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로바코>란 제목은, ‘하얀 상자’라고 하여 비디오테이프의 하얀 박스를 가리킨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되면, 수많은 제작 스태프들에게 완성된 본편을 녹화해서 돌리게 되는데 그때 일일이 발매된 소프트(DVD나 블루레이 등)를 주려고 하면 그 많은 인원에 대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기도 하거니와 애니메이션이 소프트로 출시되는 것은 TV 방영 이후 한참이 지난 다음이니 너무 늦다. 그러니 공테이프에 녹화해서 나눠주다 보니 그 공테이프가 담겨 있는 ‘하얀 상자’ 모양을 빗대어 완성본을 ‘시로바코(하얀 상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비디오테이프가 아니라 CD-ROM 혹은 DVD-ROM 등의 매체로 배포되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용어는 그대로 ‘시로바코(하얀 상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시로바코(하얀 상자)’ <시로바코>의 주인공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제작진행’이란 직책을 담당하고 있는 사원이다. 그렇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 말하는 ‘제작진행’의 역할은 무엇일까. 주로 TV 애니메이션 제작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직책명인데, 간단히 말해 애니메이션의 중심 스태프를 보좌하며 잡무를 담당하는 역할이 된다. 자세한 것은 일본어 위키피디아를 참고해보자. 직접 번역을 해보았다. 작화, 배경미술, 채색, 촬영, 현상, 편집 등 애니메이션 제작 공정은 분업화되어 외주프로덕션으로 나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제작진행은 TV 애니메이션에서 해당하는 담당 화를 연출자(‘각화 연출’이라 불리우는 각 화별 담당 연출자)의 지시를 받아 각 제작 외주 프로덕션 사이에 제작 도중의 작품 작업물을 옮겨야 한다. 원화가 완성되면 동화 담당 업체로, 동화가 완성되면 채색 담당 업체로 운반한다는 식이다. 제작 중간 과정의 어떤 작업물을 지금 어느 부서가 갖고 있는지, 항상 변화하는 최신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납품일까지 남은 날짜와 필요한 작업량을 계산하여 확인하고 조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연출가만이 아니라 작화감독 등 개별 부서의 팀장 및 이하 스태프들과 스케줄 관리를 위해 절충을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을 위해 뛰어다녀야 한다. 콘티 등 여러 인원이 공유할 필요가 있는 자료는 복사해둬야 하고, 가끔씩 스태프를 자택과 제작 스튜디오 사이에 이동시켜주기도 해야 한다. 업무 내용이 실로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화려하지 않고 눈에 잘 안 띄는 직책이지만, 제작진행이 없으면 애니메이션 제작은 불가능하다. (중략) 애니메이션 스태프의 생활 리듬은 불규칙적이기 마련이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고, 일이 끝나면 그 즉시 다음 공정으로 작업물을 옮겨야만 한다. 따라서 근무 시간이 불규칙할뿐 더러 장시간 걸리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제작진행은 항상 과중 노동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육체적 피로뿐 아니라 항상 긴박한 스케줄 탓에 정신적으로도 힘든 직책이라 할 수 있다. 업무 시간이 길고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급여가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중략) 가혹한 업무 탓으로 단기간 만에 그만두는 이가 많아, 매해 여러 번씩 직원을 모집하는 회사도 있다. (중략) 셀화로 제작되던 시절에는 연출조수를 겸직하는 경우도 있어, 연출자 옆에서 촬영 준비(필요한 작업물을 모아놓는 작업)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략)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경우에, 각화마다 제작진행 담당자가 별도로 복수 존재하여 교대로 스케줄을 짜서 담당하게 된다. (후략) 이처럼 ‘제작진행’은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의 거의 전체를 지켜볼 수 있고, 또 연출가(감독)와 프로듀서 등 작품의 중심적 인물들과 직접 대화를 하게 되므로 제작진행 출신이 나중에 프로듀서나 감독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로바코>에서 제작진행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의 전반을 다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과거에도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쿠로미 양>(다이치 아키타로, 2001)이란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이 일본의 소위 ‘업계 애니메이션’ 중에서 최초로 애니메이션 업계를 무대로 삼았다고 일컬어지는데, 말하자면 <시로바코>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출을 맡은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은 < 후르츠 바스켓 > 등의 대표작이 있다. <시로바코>는 애니메이션 제작이 풀 디지털화된 현재 시점에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크게 참고가 되는 작품이다. 특히, ‘꿈과 희망’만을 갖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고자 하는 지망생들에게는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그런 현실 위에서 꿈을 잃지 않고 어떻게 해서 ‘직업’과 ‘자아실현’을 연결시킬 수 있을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고교 시절 함께 아마추어 애니메이션 서클의 멤버 중에 유독 성우 지망생 한 명만이 작품 중반을 지난 현시점에서 특별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우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있어 가장 화려한 것이 성우이고, 일본의 성우는 거의 연예인 수준으로 인기가 높지만 그만큼 경쟁률이 무지막지하게 높다. 간혹 한국인인데도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꿈을 갖고 성우학교에 입학하는 이를 볼 수 있는데, 국적만 한국일 뿐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교포가 아니라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입장에서 사실상 외국인이 성우로 기용되기는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꿈을 갖고 많은 비용을 들여 일본의 성우학교에 입학하는 외국인은 비단 한국인만이 아니라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로바코>를 보면 일본인이어도 성우로서 데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가 있다. 성우를 소재로 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시로바코> 외에도 많으니, 최소한 그런 작품은 본 후에 일본 유학을 결심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에 반해 차라리 그림을 그리는 쪽이나, 혹은 촬영, 컴퓨터그래픽 등 다른 분야에서는 외국인이 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거에는 한국 회사가 일본으로부터 소위 ‘하청’을 받아 작업에 참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아예 일본 회사에 직접 입사한 한국인 애니메이터도 많다. 또 그림 분야만이 아니라 다른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직원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시로바코>와 같은 작품은 참고가 된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과거에도 이런 식의 ‘직업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 꽤 많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소위 ‘만화가 만화’ 같은 케이스다. ‘만화가 만화’란 만화가가 만화를 그리는 자체를 소재로 한 만화를 뜻한다. 지금 예를 들자면 대표적으로 「바쿠만」(오오바 츠구미 원작, 오바타 타케시 만화)과 같은 작품이 있겠는데, 그 외에도 좀비만화인 「아이 앰 어 히어로」(하나자와 켄고)에서도 주인공이 만화가 화실의 스태프(어시스턴트)라서 초반 1~2권에는 일본에서 만화가 및 만화가의 화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참고가 되는 내용이 나온다. 또 「외쳐라 펜」(시마모토 카즈히코)은 전형적인 ‘만화가 만화’로서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한 만화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화를 그리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G전장 헤븐즈 도어」(니혼바시 요코)는 만화가와 편집자의 자식들이 주인공인데 일본의 상업만화 세계에서 마치 전쟁처럼 살아가는 만화가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밖에도 ‘만화가 만화’는 많이 존재한다. 「아오이 호노오(푸른 불꽃)」 작년 일본에서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화제를 모은 만화 「아오이 호노오(푸른 불꽃)」(시마모토 카즈히코)의 경우엔, 작가 시마모토 카즈히코가 대학 시절 자신과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던 안노 히데아키(신세기 에반게리온), 야마가 히로유키(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 아카이 타카미(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제작자) 등 이후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를 설립시키는 중추가 되는 인물들과 만났던 때를 회고하는 자전적 만화로서 1980년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하던 젊은이들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계 를 짊어지는 인물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로바코>나 「아오이 호노오(푸른 불꽃)」과 같은 작품들을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을 알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무조건 ‘애니메이션 선진국’, ‘만화의 왕국’이라는 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서양, 특히 미국과 비교할 때 상당히 종사자에게 있어서 불리한 업무 환경이라고 비판받는 경우가 많다. 앞서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기재되어 있는 제작진행 담당자의 업무 내용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급여는 매우 낮은 편인데 업무 시간도 상당히 길고 아주 고생스럽다는 것이다. 이는 제작진행만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애니메이터 역시도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그나마 회사 소속인 제작진행에 비해(제작진행 역시도 대개 계약직이라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지만) 애니메이터는 대부분의 경우 프리랜서이므로 아무런 보장이 없어 더 불리한 직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일본에서는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고, 프리랜서인 애니메이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일종의 고용보험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는 것이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일본에서는 상당히 오랜만에 ‘모든 애니메이터를 사원으로 고용’하는 형태를 추진했는데, 회사의 양대 기둥이 되어 온 두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가 고령으로 은퇴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이미 종래의 ‘완전 고용’을 포기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알 수가 있다. 아주 예전, 일본을 대표하는 유서깊은 애니메이션 회사 토에이 애니메이션(토에이동화)을 필두로 애니메이터들은 전부 회사 소속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일본영화계 자체가 대부분의 스태프, 심지어 배우들까지를 회사에서 고용하는 형태였다. 오히려 그때에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능력 있는 연출자나 배우들은 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빨리 끝나고 프리랜서로 나가려는 분위기였다. 스포츠 선수나 요즘 연예인과 소속사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즉 당시에는 영화제작사가 제작 스태프도 고용했고 연예인 매니지먼트도 담당했다는 뜻인데, 지금 국내에서 가수 분야의 경우 매니지먼트와 음반(음원) 제작을 같은 회사에서 담당하는 것과 비슷하게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때는 왜 영화 분야에서도 그런 식이었는가 하면, 간단히 말해서 할리우드도 그랬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니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소위 ‘할리우드 황금기’ 시대에는 할리우드 영화사에서도 스태프와 배우들이 영화사 소속인 경우가 많았다. 2011년에 발표된 영화 < 아티스트 >를 떠올리면 되겠다. 그래서 그 영향을 받아 일본 영화계도 마찬가지 방식이었고, 영화 제작사가 애니메이션도 제작하던 초창기에는 애니메이션 업계도 비슷했던 것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업계가 점점 변화하면서 모든 애니메이터를 회사가 고용하여 급여를 주는 형태가 점점 불가능해졌고, 결국 전체 사원 애니메이터를 해고하고 외주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분야별로 생기기 시작하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가 일본 애니메이션(그리고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바뀌었다)의 주류 시스템이 되었다. 할리우드에서도 시스템이 바뀌면서 많은 배우나 스태프들이 그 변화 속에서의 소위 ‘패러다임 시프트’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사회 전체가 보다 좌파적, 사회주의적이었던 과거 일본에서는 그 과정이 보다 과격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당시 토에이동화 소속의 애니메이터 노조에서 서기장(직함 자체가 매우 공산주의적이지 않은가)을 맡기도 했고, 역시 토에이 노조에서 부위원장을 맡았던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최근까지도 일본공산당 지지를 공표했던 것이다. 이 둘은 마지막까지도 토에이동화가 사원 애니메이터를 해고하는 데에 대해 노동쟁의를 통해 꽤나 과격하게 반대한 바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둘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스튜디오 지브리는 애니메이터를 사원으로 고용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계약직 형태가 많은 것 같기는 해도.) 지금은 < 에반게리온 > 시리즈를 가지고 가이낙스에서 독립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스튜디오 카라 역시도, ‘애니메이터의 노후 보장’ 등을 고민하면서 사원 제도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같은데, 어쨌든 지브리나 카라 모두 일본에서 흥행면에 있어 가장 성공한 작품을 이미 내놓았기 때문에 그 바탕 위에서 직원들의 복지 혜택까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겠다. 국내에서도 영화 분야에서 소위 ‘열정 페이’ 문제가 많이 논의되는 상황 속에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의 회사가 스태프들과 표준 근로계약서를 통해 작업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사실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 역시도 여전히 ‘열정 페이’ 위에 성립되어 있다는 것이고, 일본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색이 이제야 시작되고 있는 단계라고 보면 되겠다. (따라서, 작품의 연출 방식이나 제작 방법 등을 참고한다면 모를까, 제작 시스템이나 회사의 구조 등에 있어서는 미국이 아닌 일본을 참고로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라고 해서 물론 전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보다 합리적인 시스템을 위해 세세한 스태프들까지 각종 단체를 통해 표준적인 계약서와 계약 관계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으니 좀 더 참고할 만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어쨌든, 이런 ‘시스템’이나 ‘절차’에 대해서는 사실 외국이 정확하게 실무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알기는 쉽지가 않다. 직접 외국의 해당 업체에 들어가서 몸으로 부딪혀보지 않으면 체험하기가 어렵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기에는 언어의 문제도 있고 상황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체험자들의 경험담이 소개되어야 하는데, 관련서적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체험담을 듣는다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우연하게 동료나 선배를 통해 잠깐잠깐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것이 고작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로바코>와 같이 전체적인 업계 사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만화 업계에 대해 <바쿠만>이 국내의 독자들의 이해도를 많이 올렸듯이, <시로바코>도 그런 역할이 되었으면 생각한다. 물론 <바쿠만>에서 일본만화의 모든 측면이 다 소개된 것은 아니고 거기에 다뤄지지 않은 내용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킨 면도 있었듯, <시로바코> 역시도 한계는 있겠으나 워낙 참고할 자료가 없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는 그나마 목마른 자에게 잠깐의 소나기 역할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직업으로!: 트리거류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독본」 사실은, 작년에 일본에서 출간된 「애니메이션을 직업으로!: 트리거류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독본」(이 책의 저자는 애니메이션 <킬라킬>을 만든 제작사 ‘트리거’의 이사 겸 프로듀서 마스모토 카즈야) 등과 같이 실제로 참고가 될만한 관련서적이 국내에도 번역되는 편이 더 확실할뿐 더러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선 기왕에 수입된 <시로바코>라도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는, 국내에도 애니메이션 업계가 존재하고 있고 지망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좀 더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련된 서적이 많이 출간되길 희망한다. 구도나 데생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법서’는 이미 많이 나왔고,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위한 ‘스토리 작법서’ 역시 고전이 될만한 프로프나 캠벨의 저서는 물론이고 재작년부터 화제가 된 오쓰카 에이지의 저서도 번역판이 나왔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분야에서 그런 작법이 아니라 ‘업계 상황’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서적은 아직 거의 없고, <시로바코>나 <바쿠만>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아쉽다. 또 이 작품들은 일본 업계가 아니라 한국의 업계를 다룬다는 한계점도 있으니 더더욱…. 한국의 업계는 좁다 보니 건너건너 다들 아는 사이라서 비판을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애니메이션이든 영화든 만화든 게임이든 지망생이 존재하고 매년 신입이 들어오는 업계이니만큼 입에서 입으로 소문만으로 돌고 끝날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상황을 정리해주는 서적이나 직접적으로 업계를 보여주는 작품이 국내에도 좀 더 나와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