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 감독
- 저스틴 커젤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마이클 파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데이빗 듈리스, 잭 레이너
2015년에 만들고 2018년에 개봉한 첫 장편 < 파란 입이 달린 얼굴 >(2015)을 두고, 김수정 감독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보고 싶은 것만 열심히 본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눈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르고 붙이고 나누는 내 머리 속의 활동을 말한다. 그렇게 열심히 보다 보면 그것이 ‘전부의 세계’가 돼버린다.” 인용문의 ‘나’를 관객의 응시를 지정하는 카메라로, ‘전부의 세계’는 카메라가 본 것을 편집 테이블에서 자르고 붙이고 나눈 뒤 투사하는 뇌 속의 스크린과 같은 ‘프레임’으로 바꿔 읽어도 문제는 없을 터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의 카메라는 (앙드레 바쟁 같은 이가 영화의 중요한 존재론을 구성한다고 여겼던) ‘프레임’의 안과 밖을 오가며, 주인공 서영과 그녀 밖의 세계 그리고 서영의 자아와 타자를 규정하는 경계를 오가는 모든 ‘비존재’들을 빼어나게 가시화한다. 그리고 김수정 감독은 신작 < 해변의 캐리어 >(2017)를 상재했다. 사전제작지원한 2017년 부산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상영된 다음, 2018년 11월에 열린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독립영화여성감독전’에서 다시 보여졌다. “바다를 떠나는 여자와 바다에 도착한 남자의 맹렬한 하루”라고 간략히 소개된 <해변의 캐리어>(2017)는, ‘연극성’을 영화적 효과로 채용한다. 영화에서 ‘연극성’이란 무엇인가. 앙드레 바쟁은 『영화란 무엇인가』 중 「연극과 영화」 편에서, 연극과 영화의 관계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되고 친밀하며, <햄릿><헨리 5세><맥베스> 같은 희곡의 영화화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했다. 바쟁에 따르면, 영화의 ‘연극성’은 대사에 종속되는 각색, 또는 희곡을 사진처럼 복제하는 작업과는 다르다. 연극과 다른 영화만의 정체성을 만드는 차이로 바쟁이 꼽았던 두 가지 요소는 ‘배경’과 ‘데쿠파주’였다. 인간이 개입해야 성립하는 연극에서 세트가 하는 역할은 “극이 펼쳐지는 장소”일 뿐이다. 반면, 연출 행위가 적극 개입해야 존재하는 영화의 배경은 카메라가 움직이는 덕에 성립할 수 있다. 연극의 무대장치는 무대건축 구조의 한 요소로 머물기에 “물리적으로 폐쇄되어 있고 한정되어 있으며, 경계가 쳐진 장소”다. 한편, <해변의 캐리어>의 부산 광안리 바다와 그곳을 굽어보는 창이 있는 노래방의 낮과 밤은 연극적 표현주의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무대인 동시에, 실재하는 자연과는 다른 특권적 자연, 즉 영화의 프레임이라는 세계를 이루는 상상적 공간이며 미학적 소우주다. 데쿠파주에 있어서도 김수정 감독은 발군의 창의력을 보여준다. <해변의 캐리어>의 프레임은 “주변 존재를 끊임없이 감지하는 현실의 일시적 결정”을 화편화한다. 자신의 퍼포먼스를 보았던 관객과 재회한 여자(김다인 분)가 나누는 대화와 포옹, 바다가 보이는 방을 찾는 남자(박종환 분)가 방문한 부동산 직원이 겨누는 총, 노래방을 방문한 손님들과 사장이 창출하는 리듬은, 관객이 연극 무대를 눈앞에 둔 듯 사건이 표출하는 희비극의 에너지에 공명하게 한다. 이러한 힘은, 장 콕토에게서 바쟁이 발견한 데쿠파주의 역량처럼, 쇼트-리버스 쇼트 촬영이 배우의 몸과 대사를 새롭게 분할하는 상상력에서 온다. 결국, <해변의 캐리어>에서 마주한 남녀 주인공의 “상호의식에 바탕을 둔 연극은, 연기가 현실과 대립하고, 공모가 무관심과 대립하며, 전례가 실익의 비속함과 대립하듯 세계의 다른 부분과 대립함을 필요로 한다. 의상이나 가면, 분장이나 언어양식, 또는 풋라이트 같은 것이 이와 같은 구별에 협력하고 있”다. 여기서 구별의 가장 분명한 징표는 무대인데, 대다수 프레임의 배경인 노래방과 바다가 분할된 몸과 대사를 구별하게 하는 무대다. “우리는 다만 공간이라는 단 한 가지 현실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영상으로부터 모든 현실을 퇴거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바쟁은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자연을 일절 고려하지 않은 공간 재현이란 있을 수 없으며, 스크린이라는 세계는 우리의 세계와 나란히 존재할 수 없고 우리의 세계와 대치하고야 만다. 기실 세계라는 개념 자체가 배타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에 관해서도, 영화는 세계이며 우주요,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자연이기도 하다.” 역시 바쟁에 따르면, 인간이 드라마의 주요한 원천임을 부인할 이유는 없으며 그런 연유로 영화는 연극과 겹쳐질 수도 있다. ‘자연’과 ‘무대’, 이른바 ‘사실주의’와 ‘표현주의’의 경계를 자신의 몸과 목소리로 교란하는 두 주연 배우의 호연 덕에, <해변의 캐리어>는 연극적인 동시에 영화적이기도 하다. 어떤 “전부의 세계” 또는 우주를 ‘상연’하는 <해변의 캐리어> 속 바다와 카메라는, “일단 커다란 짐 가방을 다 풀고 보자”는 연극연출가 출신 감독의 의도를, 배우들과 더불어 한 시간 남짓한 자연으로 형상화한다.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 *바쟁의 『영화란 무엇인가』 인용문은 ‘시각과 언어’가 출간한 1998년 한국어판(박상규 역)을 바탕으로 했으며, 필자가 일부 번역을 수정했습니다.
최근 가장 ‘핫’한 배우를 꼽으라면 마이클 패스벤더를 들 수 있겠다. 고뇌하는 지식인, 색정광인 남자, 스티브 잡스 같은 실존 인물은 물론, 인간이 아닌 존재 데이빗까지 확장되는 그 놀라운 연기의 스펙트럼은 물론 남성적 매력을 완벽하게 갖춘 신체적 조건과 얼굴까지, 거의 완벽한 배우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 패스벤더가 주연한 최근 개봉작으로는 < 맥베스 >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영화화한 케이스로는 로만 폴란스키의 어마어마한 걸작이 있었던 관계로 이후에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언제나 그것과의 비교라는 운명을 피해나갈 수 없었다. 이번에도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지만 ‘패스벤더가 맥베스’라는 엄청난 세일즈 포인트 덕분에 볼만한 영화가 됐다. 2015년 12월 17일 현재 전국 7만9천 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으니, ‘다양성 영화’치고는 괜찮은 스코어다. 멀지 않은 과거에 만들어진 패스벤더 주연 작 중 가장 특이한 영화는 바로 < 프랭크 >다. 2014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고 이후 극장 개봉을 통해 전국 5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이 정도면 대충 유명한 작품인데, 조금은 숨어있는 영화를 소개하는 컨셉트의 신판 주말의 명화에서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올레TV 기준으로 현재 무료로 풀려 있기 때문이다. 안 보신 분들은 이번이 기회라는 이야기다. 아일랜드 출신 감독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작품인 < 프랭크 >는 일단 설정에서 뭔가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같은 일본 개그만화가 생각난다. 주인공 프랭크는 밴드의 보컬리스트인데 어떤 강박증 때문에 항상 ‘탈바가지’를 쓰고 있다. 면상만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모여라 꿈동산’ 풍의 머리 전체를 덮는 탈이다. 모양은 흉측하거나 기괴하지 않고 눈이 땡그란게 왠지 귀엽다. 영화 <프랭크>의 주인공 프랭크의 탈바가지 얼굴은 사실 영국의 실존인물인 코미디언 크리스 시비가 연기했던 ‘프랭크 사이드바텀’으로부터 따 온 것이다. 실제로 이 캐릭터는 영화 ‘프랭크’의 프랭크와 비슷한 모습의 탈을 쓰고 1980년대에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컬트 코미디언으로부터 따 온 설정이니 이 영화가 코미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극장에 들어설 관객은 드물었다. 크리스 시비 영화의 초반부는 썰렁한 코미디의 연속이다. 주인공이자 내레이터인 존은 영국의 어느 조용한 바닷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청년이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직업을 가졌고 외롭게 트위터나 하면서 살고 있는데, 뮤지션, 특히 작곡가 지망생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서 우연히 어느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가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소동을 벌이는 것을 목격한다. 밴드의 매니저는 존에게 묻는다. “C F G 칠 줄 아나?” 그렇다고 대답하자 바로 밴드의 키보디스트로 고용된다. 연습을 좀 해야 하지 않냐고 묻자 9시까지 극장으로 오라는 말만 던진다. 초특급 행으로 밴드 소론프르프브스(Soronprfbs)의 멤버가 된 존은 다른 밴드 구성원들과 인사조차 할 시간 없이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보컬리스트가 등장하는데, 머리에 바로 그 탈바가지를 쓰고 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영화의 관객들은 빵 터질 것이다. 기마자세를 하고 “수프에 든 생각 빵조각 기름투성이 익히지 않은 소시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는 가사로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부르는 프랭크, 목소리는 분명히 패스벤더인데 탈바가지를 쓰고 있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노래를 부르며 흥에 취해 춤 비슷한 것을 추는 몸개그가 작렬하는데 평소 패스벤더의 반듯한 이미지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선사한다. 솔직히 패스벤더를 캐스팅했다고 하고는 다른 배우가 연기하고 있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다. 영화 < 프랭크 >는 그렇게 조금 썰렁한 톤앤매너의 코미디로 전반부와 중반부를 장식한다. 영화 내내 프랭크는 절대로 탈을 벗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는 물론 먹을 때도 잘 때도 심지어 샤워를 할 때도 탈을 벗지 않는다. 한마디로 탈과 물아일체의 지경에 이른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모여라 꿈동산 얼굴로 신분증명서까지 있다는 점이다. 프랭크의 캐릭터 코미디가 하나의 축을 이루는 가운데 내레이터 존은 이 희한한 예술병 환자들의 밴드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영화 < 프랭크 >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바로 밴드의 멤버들 간의 역학관계와 갈등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점에 있다. 적어도 밴드를, 특히 실력 없는 밴드를 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에 크게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자살을 기도한 키보디스트 대신 밴드에 들어간 존은 음반을 만들기 위해 아일랜드의 조용한 호숫가 마을의 오두막에서 합숙을 시작한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이곳에 온 존은 멤버들과 함께 앨범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프랭크를 제외한 멤버들이 좀처럼 환영하지 않는다. 프랭크는 신비의 악기 테레민이나 키보드 등을 연주하는 여성 멤버 클라라에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클라라는 정말이지 완벽한 예술병 환자다. 어떻게 보면 클라라의 복잡한 정신세계에 프랭크가 지배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밴드의 음악은 실험정신을 지닌 음악에 관심이 많은 마니아들일지라도 도저히 못 들어줄 법한 노래들로 채워져 간다. 거기서 존은 프랭크를 설득한다. 좀 더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자고. 자신들의 작업을 유튜브에 올리니 많은 조회 수가 생기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준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프랭크는 저 심연한 인디의 바닥으로부터 수면으로 올라올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텍사스의 그 유명한 음악 축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에 출연을 결심한다. 그리고 밴드는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망가지기 시작한다. < 프랭크 >는 황당한 코미디로 시작해 진중한 메시지를 지닌 영화로 변해나간다. 레니 에이브럼슨의 차분하고도 섬세한 연출은 돔놀 글리슨이나 매기 질렌할 등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을 결코 낭비하지 않았다. 사실 <프랭크>는 극장 상영 시 그렇게 크게 환영받지는 못했는데, 바로 적지 않은 관객들이 요절복통 코미디를 기대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희극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전개되는 영화들은 많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적어도 그냥 대책 없는 비극적 서사만으로 결론 나는 작품은 아니다. 마이클 패스밴더의 팬이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언젠가 한 번쯤은 패스밴더의 얼굴이 나오지 않을까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오듯 부릅뜨고 보게 될 텐데, 과연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대신 당신이 마이클 패스벤더의 진정한 팬이라면 그의 얼굴 없이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패스벤더는 그 가면 속에서 그의 아름다운 저음과 의외로 대단한 노래 솜씨를 들려준다. 비록 얼굴은 감춰져 있지만 패스벤더의 아우라는 그것을 뚫고 나온다. 어떤 관객들은 < 프랭크 >를 마이클 패스벤더의 최고작으로 치기도 하던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