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짐승
- 감독
- 마스무라 야스조
- 제작년도
- 1969
- 출연
- 후나코시 에이지, 미도리 마코, 센고쿠 노리코
처음으로 좋아한 격투기는 프로레슬링이었다. 김일의 박치기와 천규덕의 당수를 보며 가슴 졸이고 환호했다. 홍수환, 유제두, 박종팔 등의 복싱도 열심히 봤다. 그리고 프라이드와 UFC 등을 접하며 종합격투기에 빠져들었다. 격투기는 원초적인 스포츠다. 프로레슬링은 번외로 하자. 프로레슬링은 육체의 기술을 갈고닦아 캐릭터와 스토리를 더해 만들어진 쇼다. 육체의 화려함과 열정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는 엔터테인먼트. 프로레슬링은 쇼이지만, 복싱과 종합격투기는 일상의 싸움과 다르지 않다. 후두부와 성기 등 급소를 때리지 않는 정도의 규칙만 있을 뿐이다. 맹수의 공격을 방어하고, 동물을 사냥하고, 인간끼리의 다툼에서 필요한 생존의 기술은 격투기로 발전했다. 내가 격투기에 빠진 이유는 단순했다. 싸우는 그들에게 끌렸다. 격투기의 결과는 승패로 갈린다. 하나는 이기고, 다른 하나는 진다. 오로지 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상대를 때리고, 걷어차고, 꺾는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싸운다. 하지만 격투기를 보면서 승자에게만 열광하지는 않았다. ’졌잘싸‘라는 말이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 의 줄임말이다. 비록 승부에서는 패배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이를 보면 가슴에 무엇인가 일렁인다. 오로지 승리하기 위해서, 치사한 전략으로 일관하는 놈을 보면 짜증이 일어난다. 단지 지지 않기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녀석을 보면 그저 한심하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미야케 쇼의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격투기의 감흥을 떠올리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격투기, 복싱의 희열이 무엇인지 그리는 영화가 아니다. 복싱을 택한 청각 장애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에 가깝다. 복싱은 케이코에게 중요하지만, 생활을 압도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 케이토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복싱을 택했을 뿐이다. 누군가가 아니라, 세상을 때리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싸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던져진 것이니까.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일본 최초의 청각장애인 여성 복서 ‘오가사와라 케이코’의 자서전 <지지 마!>(2011)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미야케 쇼는 오가사와라의 모든 이야기를 영화에 담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만, 모든 시간과 사건을 그리지 않는다. 미야케 쇼는 말한다. ‘복싱을 다룬 것만이 아닌, 하루하루 링 위에서 그리고 링 밖에서 싸워나가는 한 여성을 그린 영화다.‘ 오가사와라 케이코가 소속된 체육관의 관장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재능은 없어요. 키가 작고, 리치도 짧고, 스피드도 느리고요. 하지만 뭐랄까. 인간적인 기량이 있어요. 정직하고 솔직하고 아주 좋은 녀석이에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케이코는 반항적인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는 분을 못 이겨 선생을 때릴 정도였다. 보통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 때문에 울분이 많고, 쌓인 감정을 발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반항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케이코는 호텔에서 객실 청소 일을 하고, 복싱을 시작한다. 케이코는 말한다. ‘때리면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또 말한다. ‘맞을 때 아픈 것이 싫어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 치열하게 싸우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케이코를 비롯한, 싸우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치고받으며 싸우는, 마지막까지 전장에 서 있는 이들을 보면 어딘가 연대감이 느껴진다. 처참하게 패배할지라도, 함께 끝까지 싸워보고픈 마음이 든다. <내일의 죠>의 명대사처럼, 마지막까지 ‘하얗게 불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랄까. 실베스터 스탤론의 < 록키 >처럼, 지더라도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난 후 링 위에 꿋꿋하게 서 있고 싶어진다, 할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젊을 때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미야케 쇼는 인터뷰에서 ‘나는 솔직히 말해 10대부터 20대까지 꾸준히 성실하게 살자, 라고 하는 구호에 약간의 반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이대에 접어드니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숏 한컷 한컷이 쌓여 완성되는 영화처럼 인생의 의미란 것이 결국 아주 조그마한 것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쌓아가는 게 아닌가, 그렇게 느리고 작은 움직임이 소중하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영문 제목을 떠올려 보니 ‘Small, Slow But Steady’다. 작고, 느린 것이 소중함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케이코의 위대한 승리나 처절한 노력을 말하지 않는다. 케이코는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체육관에서 열심히 훈련한다. 그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합에서 지는 일은 벌어진다. 그렇다고 상대가 엄청난 것도 아니다. 그 역시 케이코와 마찬가지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운동하며 살아가는 생활 복서다. 천재도, 셀럽도 아닌 그들의 성취는 작고 느리게 이루어진다. 미야케 쇼는 케이코의 일상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케이코는 들을 수 없지만, 세상에 가득 찬 소리들. 케이코가 다니는 체육관과 강변 그리고 골목길 등을 채우는 햇살과 공기 그리고 먼지들. 우리들의 일상은, 문득 멈추어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작고 느린 것들로 가득하다. 16밀리 필름으로 촬영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다정하고, 섬세하다. 그리고 사려깊다. 소리도, 공기도, 어느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고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한다. 작고 느린 것들은 꾸준하게 움직이며 어디론가 나아간다. 아니 존재한다. 케이코는 아픈 것이 싫다. 복싱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세상도 그렇다. 때리고 싶고 싸우고 싶은 마음만큼 도망치고 싶고 피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넘친다. 그런 케이코를 붙들어주는 존재는 타인이다. 오랜 시간 권투를 했고, 지금은 후배를 키우는 체육관 관장. 나이가 들어 육체는 쇠하며 병이 들었고, 재개발로 인하여 체육관을 닫아야 한다. 세상은 결코 그의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은 케이코를 가르친다. 청각 장애인인 케이코가 싸워나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은 일상의 싸움을 무수하게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공감했을 것이다. 관장만이 아니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인물들은 모두 예사롭지 않다. 음악을 하는 케이코의 남동생은 말한다. 누나는 강하다고. 자신은 누나처럼 강하지 않다고. 흑인 혼혈인 남동생의 애인 하나는 케이코에게 선뜻 다가가 인사를 하며 친해진다. 하나는 케이코에게 춤을 알려준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재능이 있고, 최고가 아닐지는 몰라도 서로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무엇을 가르칠 정도는 된다. 그들은 자신의 길에서 작고 느리게, 꾸준하게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윗세대인 케이코의 엄마와 체육관 관장은 그들이 걸어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미리 판단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보면서, 세파에 움추러든 아이들의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준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따뜻한 영화다. 케이코는 결코 외롭지 않다. 언제나 그들이 있고, 풍경이 있다. 케이코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풍경 속에서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소리와 공기가 가득 차 있다. 케이코도 우리도, 언제나 함께, 세상 안에 있는 것이다.
1. 1970년대의 한국영화는 그 독특한 조증과 울증의 세계로 기억될 것이다. 이를테면 1974년 경이적인 흥행성공을 기록한 < 별들의 고향 >이 마련해낸 70년대의 여주인공 경아는 까르륵거리는 웃음과 흘러내리는 눈물로 기억된다. 혹은 < 바보들의 행진 >의 저 과도한 명랑과 내러티브 공간의 바깥으로 번져나오는 우울을 생각해보라. 프로파간다적 명랑성이라 할만한 대책없는 웃음과 영화 안에서는 거의 해명되지 않는 우울의 왕복. 이 감정의 기복은 너무 극심하고 빈번해서 한 편의 영화 내에서, 그러니까 컷과 컷의 연쇄 안에서 그 적소를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인다.(물론, 검열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몇몇 참혹한 사례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 1970년대 한국영화를 보는 데 있어 끊임없이 영화 바깥을 참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조울증의 영화들은 영화를 국가 시책의 방도로 삼고자 했던 정책자들의 과도한 개입과 이제 막 등장한 대중의 상상태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 장사치들의 욕망이 얼기설기 엮여진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놓여있던 액션영화는 어떠한가? 그러니까 도시 하위계급 남성들의 값싼 오락거리이자, 국가의 직접적인 치안의 대상이며(이런 영화들이 상영되던 장소는 가장 빈번한 경찰력의 검속 대상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때때로 통국가적 장르의 위용을 과시하며 장사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었던 바로 그 장르 말이다. 2. 임권택의 1972년 영화 < 삼국대협 >은 액션 히어로의 트랜스내셔널한 교류의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복합적인 동시에 가장 고립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제목 그대로 이 영화에는 일본의 맹협(盲俠) 자토이치와 홍콩의 외팔이 독비도(獨臂刀), 한국의 의적 일지매가 모두 등장한다. 당시의 광고. “중국의 외팔이, 일본의 맹협, 한국의 일지매가 한꺼번에 나온다!” 이 광고 문구는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간결하게 전달한다. 동어반복이지만, 다시 한 번 말하건데 자토이치와 독비도와 일지매를 한 자리에 모으는 것. <삼국대협>이 만들어지기 일년 전, <신자토이치 부셔라! 중국검>(일본 제목)=<독비도 대전 맹협>(홍콩 제목)이 < 외팔이와 맹협 >이라는 심플한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해 인기를 끌었다. <자토이치> 시리즈의 22번째 작품이자 <독비도> 시리즈 중 하나로 카운트되는 이 일본-홍콩 합작영화는 아마도 1970년대 초 이 지역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가장 대담한 기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자토이치와 독비도는 아시아를 석권하고 있던 당대의 액션 히어로들이었다. 1962년 제1작을 내놓은 이래 <자토이치> 시리즈는 1960년대 내내 일본 내에서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였다. 이 시리즈의 주요 수입처였던 홍콩의 쇼브라더스는 이 시리즈의 직접적인 영향하에서 자신들이 새롭게 전개해나갈 신파 무협영화의 기본틀을 완성하였다.(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당시의 쇼브라더스 라이브러리에서 <자토이치> 시리즈를 컷 바이 컷으로 ‘사숙’한 신필름의 임원식과 최경옥은 자토이치-카츠 신타로의 맹인 검법을 응용, 여성 맹인 검사 이야기 < 맹수 >와 < 비연맹녀 >를 만들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쇼브라더스는 <독비도>(한국 제목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를 통해 신파 무협영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으며, 이로써 외팔이-왕우라는 자토이치-카츠 신타로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액션 히어로가 탄생하였다. 자토이치와 외팔이가 대결하는 <신자토이치 부셔라! 중국검>=<독비도 대전 맹협>은 < 에이리언 VS. 프레데터 > 같은 기획이다. 물론 훨씬 더 성공적인. 문제는 이 절대 강자들의 대결을 어떤 결말로 이끄는가이다. 즉, 누가 이기는가의 문제. <신자토이치 부셔라! 중국검>=<독비도 대전 맹협>은 이 문제를 각각의 자국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일본 버전에서는 자토이치가 이기고, 홍콩 버전에서는 독비도가 이긴다. 다시, 1971년 <외팔이와 맹협>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개봉했던 당시로 돌아가보자. 이 영화는 위장 일본영화가 아닌가라는 논란이 있었으나 일본-홍콩 합작 서류 사본을 제출함으로써 개봉될 수 있었다. 인기 절정의 ‘외팔이 독비도’와 더불어 전광석화 같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맹인 자토이치의 오리지날 검법을 드디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영화의 흥행은 예상대로 성공적이었으며, 서울에서만 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참고로 말하자면 이 순간에 확인된 ‘자토이치’의 흥행가능성은 한국에서 개봉될 수 없었던 이 일본영화의 판권을 사들이도록 만들었고, 곧 <자토이치>의 한국 버전 < 죽장검 >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돈방석에 앉을’ 거라고 예측됐던 이 영화는 그러나 흥행에 실패했으며, <자토이치>처럼 시리즈로 만들고자 했던 당초의 기획은 좌초되었다.) <외팔이와 맹협>에서 이루어진 자토이치와 독비도의 기념비적인 만남을 염두에 둔다면, 이로부터 촉발되어 여기에 한국산 히어로 일지매까지 가세한 <삼국대협>은 이로부터 한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고까지 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이들 앞에 공동의 적을 설정해둠으로써, 불필요한 우열 가르기를 지양하고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적을 무찌른다는(이 적은 물론 악독한 일본인이다) 산뜻한 쾌감까지를 선사하고자 한다. 이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 때는 임진왜란 직후인 조선중기. 조선의 검객 일지매는 일본이 빼앗아간 왕의 보검을 찾아서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에서 외팔이와 맹협을 만난 일지매는 이들과 힘의 우열을 가리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셋이 모두 힘을 합쳐 공통의 적이자 사원(私怨)의 대상인 악당 구로다와 대결한다. <삼국대협>이 진정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영화가 자신의 줄거리에도, 그리고 이 줄거리가 전달하는 그 어떤 도상에도 전적으로 무관심하다는 데에 있다. 첫 번째, 이 영화는 일단 설정상 세 나라가 모두 개입된 동아시아 국제전으로 임진왜란을 불러오고 있지만, 이 설정은 다만 삼국의 캐릭터를 불러모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보인다. 즉, 이 시대배경을 그럴듯하게 만들어줄 디테일도, 역사적 관점도 전혀, 부재한다. 두 번째, 명백히 당대의 인기있는 히어로들을 빌려오고 있지만 여기에는 자토이치-카츠 신타로도, 독비도-왕우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카츠 신타로를 그럴듯하게 흉내내기 위해 흰 눈자위를 희번뜩거리는 김희라와, 왕우를 흉내내서 머리를 하나로 틀어올리고 한쪽 팔을 옷소매에 숨긴 채 외팔이가 된 김기주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원본을 모방하는 데에 있어 그 어떤 심혈도 기울이지 않는다. 의상, 제스처, 무기 등 대부분의 디테일은 원본으로부터 어긋나 있다. 맹협은 장발이며(자토이치는 짧은 머리이다. 이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맹인 안마사인 자토이치가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유력한 징표였다), 외팔이는 장검을 사용하는 데다가 검은 옷도 입고 있지 않다(검은 옷이 홍콩 무협영화에서 차지했던 의미와 부러진 칼이 <독비도>에서 가지고 있던 내러티브적-신체적 의미를 생각해보라!). 다시 말하자면 이 맹협은 자토이치를 흉내내고 있으나 자토이치는 아닌 말 그대로 (한국어 번역인) 맹협이며, 외팔이는 독비도를 흉내내고 있으나 독비도는 아닌 (마찬가지로 한국어 번역인) 외팔이일 뿐이다. 세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유일한 관심은 맹협과 외팔이와 일지매라는 세 인물의 등장에 있다. 정말로 그것이 유일한 관심인데, 왜냐하면 이들은 등장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종종 슬랩스틱 코미디와 같은 움직임을 연출하거나, 옷 바꿔입기와 같은 작은 소극들을 만들어낸다. 아무도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믿지 않으며,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또한 믿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난감한 순간이 마지막에 온다. 세 히어로는 드디어 힘을 합쳐 구로다의 집에 쳐들어간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강력한 구로다의 일격에 세 명의 칼이 모두 잘려나가고, 흘러내리는 바지춤을 움켜쥔 채 도망다니는 이 우스꽝스러운, 거의 비루해 보이는 히어로들의 형상은 과연 무엇일까? 3. 정성일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여기에 대한 가장 적절한 묘사일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슬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의 무의미. 내가 여기서 보는 것은 달리 말하기 힘든 우울증이다.” 1) <삼국대협>에 관한 가장 길고, 가장 정교한 분석일 이 글에서 정성일은 이 ‘우스꽝스러운 슬픔’을 임권택이라는 작가(무)의식 안에서(혹은 임권택을 통해 한국영화사의 부단한 계보를 형성시키고 하는 그의 의도 속에서) 발견해내고 있지만 아마도 이것은 임권택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지지부진한 조울증이야말로 1970년대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는가를 실감케 하는 것인지 모른다. 베트남전 특수를 거치며 한국은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대중사회로 진입해가고 있었으나 민족중흥을 외치는 독재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폐쇄적인 언설공간으로 이를 마름질하고자 하였다. 세계를 향한 열림은 마치 베트남전과 이 나라가 관계맺던 방식만큼 왜곡되어 있었다. <삼국대협>이라는 저 ‘빈곤한 이미지’야말로 이 순간 한국영화가 가닿은 가장 국제적이고, 가장 지엽적인 한 형상에 다름 아닐 것이다. *** 1) https://www.kmdb.or.kr/story/5/1338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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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외국인의 출입과 거주가 허용되면서 서울에 근대식 건축물과 일본식 가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곧이어 도로가 닦이고, 전기가 들어오고, 전차가 다녔다. 날이 갈수록 눈에 띠게 달라지는 서울에는 구경꾼들도 모여들어, 각지에서 온 ‘경성관광단’ 소식이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보도되곤 했다. 구경꾼 무리 중에는 바다를 건너온 일본인 관광단도 있었다. 대륙으로 뻗어가는 제국의 위세를 확인하기 위해 만주-조선 시찰 중 식민 수도 경성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와 조선의 부산 사이를 운행하는 관부연락선을 이용했는데, 부산항에 내려서 경부선 기차로 갈아타고 경성으로 오는 식이었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 산기슭에 자리 잡은 조용한 마을과 단조로운 농촌 풍경뿐이라 지겨워 졸고 있노라면 시끄러운 소음에 눈을 뜨게 되는데, 거기가 바로 가스등과 전기등이 빛을 밝히는 경성역이었다. 전차가 달리고, 자동차가 달리고, 인력거가 달리는 경성은 일본의 도시들을 부지런하게 모방하며 변해 가는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경성에 도착한 그들은 번화한 일본인 거류지에 숙소를 잡고 고궁과 사찰, 유적지, 그리고 종로의 조선인 거리를 탐방한 뒤 다시 일본인 거류지로 돌아오는 식으로 관광을 했다. 자신들과 외모는 비슷하지만 말이 다르고 의식주가 다른 조선 사람들의 생활 풍속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한편으로,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의 식민 통치가 조선의 경관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 ‘흐뭇하게’ 눈에 담는, 제국주의적 욕망이 투사되는 관광이었다. 일본인 관광단에게 경성의 극장은 한번쯤 가 볼 만한 곳으로 여겨진 듯하다. 이들이 마치 조선에 대한 안내서인 양 읽었던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의 소설 『조선(朝鮮)』(東京日日新聞, 1911년 6월 19일~11월 25일 연재)에서도, 주인공이 종로의 조선인 거리와 기생집을 구경한 다음 극장을 찾는 대목이 있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조선의 극장과 공연 문화를 관찰한 이 대목은 당시의 극장 문화를 상상해 보는 데에도 유익한 자료가 된다. (아마도 1908년에 세워진 원각사를 떠올리게 하는) 극장 ‘원융사(圓融社)’에 방문한 주인공은 조선인 관객들과 함께 음악 연주, 기생의 춤, 그리고 중국인 마술과 곰 곡예를 구경하면서, 그러한 극장 연예가 일본과 어떻게 다르며 조선의 관객들이 무엇에 흥겨워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여행자에게 타지의 극장은 본국으로부터 떠나왔다는 고립감을 환기하는 동시에 이색적인 경험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림2. 곰 곡예 출처: 다카하마 교시, 『조선』 중에서 경성의 도시 경관은 계속 바뀌어 갔고, 극장은 그에 따른 풍속의 변화를 예리하게 감지할 수 있는 장소였다. 다카하마의 『조선』으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나, ‘대경성(大京城)’으로 확장된 경성을 소개하는 『신판 대경성 안내』(『新版大京城案內』, 矢野干城·森川淸人, 京城都市文化硏究所出版部, 1936)가 발간되었다. 이 안내책자는 “영화관 외에는 이렇다 할 놀 곳이 없는 경성인에게 영화 보기는 경성인의 최대 오락”이라며 경성의 여러 극장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희락관, 낭화관, 중앙관, 약초영화극장, 송죽좌, 경룡관, 단성사, 조선극장, 제일극장, 우미관, 동양극장이 영화를 상영하는 시설이었으며, 조일좌와 경성극장이 연극을 상연하는 시설이었다. 『조선』의 일본인 여행자가 조선인 극장에서 조선인이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신기해 하며 관찰하는 태도를 취했다면, 『대경성 안내』는 일본인 관광객이 도시의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소비 공간—카페, 바, 끽다점, 백화점—과 함께 극장을 소개하면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유익할 정보들을 제공하는 모양새이다. 각 극장의 주요 프로그램이나 입장 요금, 영사 시설, 냉난방 설비 등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극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버스나 전차의 노선과 정류장으로 극장의 위치를 안내하는 것도 흥미롭다. 1936년 현재, 아직 명치좌(明治座)는 개관하지 않았지만 경성의 극장가가 한창 들떠 있는 듯하다. 이를 두고 『대경성 안내』는 경성의 영화 흥행계가 설비를 개선하고 신관을 건축하는 등 일본의 일류 도시에 버금갈 정도로 극장을 단장 중이라고 전한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경성 영화가의 풍속도 빠짐없이 기록한다. 1935년 말 신설된 약초영화극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극장에 ‘극장 여급(お茶子)’이 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극장 여급은 입장한 관객을 좌석으로 안내하면서 방석과 화로 등을 거의 강매하다시피 판매했다.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은 ‘50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도 방석과 화로를 따로 구매해야 해서 실제로는 ‘65전’ 이상을 부담해야 했다. 필름 영사 중에도 담배를 필 수 있게 해서 극장 환경이 위험하고, 위생상 불결하다는 점도 관광객들을 불쾌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일본의 모든 극장이 고급한 설비를 갖춘 것도, 모든 일본인 관광객의 문화 취향이 고상했던 것도 아닐 테지만, 『대경성 안내』는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추고 관객의 편안한 관람을 방해하는 관행이 없어져야 ‘문화의 전당’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다고 전제하며 일본의 문화 수준에 미달하는 경성의 극장 정보를 이른바 ‘알아두면 쓸데 있는’ 관광 정보로 제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낙후되었다고 본 경성의 극장들에 대한 기록이 오늘날 경성의 극장 문화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셈이다. 상단그림1. 원각사를 모델로 한 '원융사' 출처: 다카하마 교시, 『조선』 중에서 <자료> 1. 다카하마 교시, 『조선』, 김영식 옮김, 소명출판, 2015, 74~79쪽, 부분 발췌. 극장 앞은 아직 번잡하게 보였다. 나는 한정 없이 환락을 쫓아 돌아다녔던 학생 시절의 기분을 환기시키면서―열한 시가 되건 열두 시가 되건 잠도 피로도 잊고 등불 있는 곳을 쫓아 돌아다녔던 그 당시의 기분을 불러일으키면서―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형의 건물은 서양풍을 가미한 것으로,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좌석에는 많은 조선인이 조용히 구경하고 있었다. 무대에는 두 사람의 총각과 세 명의 요보 1 가 마주하고 있어, 잠시 들어보니 봉오도리(盆踊) 노래 같은 것을 합창하면서 각각 손에 들거나 목에 건 악기를 요란하게 치고 있었다. 홍 상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여기는 극장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대중연예장처럼 되어 있어 음악도 하고 기생 춤도 하며 중국인 마술 같은 것도 한다고 했다. 우리는 가장 뒤의 높은 곳에 빈 의자를 발견하고 앉았다. 그곳도 조선인이 앉아 있었으나 우리를 보고 자리를 양보했다. 둘러본 바, 일본인은 나와 고조뿐으로 장내의 조선인은 모두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또, 남녀의 좌석은 엄밀히 구분되어 있어 여자 쪽 자리에도 의외로 많은 부인이 얼굴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홍 상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양반 등의 첩으로 정식 부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무대의 요란한 전주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홍 상은, “이건 참 따분하군요. 무언가 재미있는 것으로 빨리 바꾸면 좋을 텐데”라고 조바심을 냈다. 그렇지만 나는 무대보다도 관람석 쪽에 더 많은 흥미를 찾아내며 그들 조선인 남녀가 어떠한 기분으로 이들의 연예를 보러 왔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은 정숙하게 멍하니 단지 그 음악을 듣고 있었다. 우리가 내려다보는 바로 밑쪽에는 아이를 업은 총각이 의자 위에 엎어져서 자고 있었다. 업힌 아이도 그대로 자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 앉아 있는 조선인은 손에 쥔 긴 담뱃대의 대통을 무릎 위에 얹고 때때로 입으로 연기를 내뿜으면서 계속 조용히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 좌석 쪽도 모두 딴 곳으로 보지도 않고 각종 색깔의 옷자락을 양손으로 여미고 일제히 무대 쪽을 보고 있었다. 그때, 지금 막 들어와서 뒤쪽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소담이 틀림없었다. (...) 과연 중국인의 마술은 재미있었다. 한 사람의 중국인은 이상한 큰 소리를 내며 뭐라고 하자 조선인은 모두 웃었으나 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저건 조선말입니까?”라고 홍 상에게 묻자, “그렇습니다”라고 홍 상은 대답했다. 이윽고 중국인은 하나의 큰 상자 같은 것을 꺼내 정면의 상 위에 놓고 그 상자 안을 관객에게 보이며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 후에 곧 그 안에서 이런저런 것을 끄집어내어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빈 상자 안에서 물건을 꺼낸다는 것은 일본의 마술과 다를 바 없었으나 단지 그 상자가 매우 큰 상자로, 그 안에서 끄집어내는 것도 커다란 화분이나 크고 더러운 항아리 등인 것이 일본 마술의 섬세함과 비교하여 대국적(大國的)으로 보였다. 특히 중국인은 더럽게 때가 낀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마지막에는 상의를 벗어 맨몸을 보이고 변발을 뱀처럼 목에 감고 그 끝을 입에 물거나 하며 분발하는 것이 특이하게 보였다. 반주는 징이나 북이 들어간 극히 살벌하고 요란한 것이었다. 단조롭고 유장한 조선인의 음악과 춤의 다음에 나와서인지 자극이 강한 이 반주나 연희는 매우 사람의 마음을 북돋았다. 그 다음은 다시 중국인의 곰 곡예였다. 잘 훈련된 한 마리의 곰이 중국인의 명령에 따라 양 발로 일어나거나 고개를 넘거나 봉을 들거나 하는 여러 곡예를 하면 그때마다 국자 한 잔씩 먹이를 얻어먹고 요상한 소리로 짖었다. 그 소리가 참으로 맹수적으로 왠지 기분 나쁘게 들렸다. 평생 사육을 당하며 약간의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여러 가지 곡예를 부리고 슬프게 울부짖는 맹수의 소리와, 그 맹수를 질타하는 중국인의 소리와, 그것을 기쁘게 환호하는 조선인의 소리가 뒤섞여서 이채로운 느낌을 주었다. 홍 상은 매우 흥에 겨운 듯 지금까지 별로 본 적이 없는 열띤 표정을 하고 열심히 무대를 바라보았다. 곰 곡예가 끝난 후, 다시 조선인 네다섯 명이 악기를 들고 무대에 나타나 단조로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조를 깨워서 밖으로 나왔다. 달은 기울며 점점 환해지고 밤의 서늘한 기운은 피부에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2. 야노 간조․모리카와 기요히토, 『신판 대경성 안내』, 경성도시문화연구소 출판부, 1936, 184~187쪽, 필자 옮김. 영화관 외에는 이렇다 할 놀 곳이 없는 경성인에게 영화보기는 경성인의 최대 오락이다. 상설영화관만 해도 11개에 달하고, 1년의 입장 연인원은 쇼와 9년에 2,314,914명, 그 입장료 판매 수익은 13만 3천원에 이른다. 상설관을 열거해 보면, 희락관(喜樂館) 본정 1정목. 닛카쓰(日活) 영화 직영관, 웨스턴 재생기로 수은정류기(水銀整流器)를 설비, 영사 시설로는 부내(府内) 제일을 자랑한다. 봉절은 내지보다 1개월 정도 늦다. 입장 요금은 계상 70전, 계하 50전이 봉절 흥행의 표준. 때로 오래된 사진을 재상영, 대중석 20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장소는 본정 한복판으로 부내 제일. 다만, 스팀은 있으나 엄동설한에는 조금 춥다. 낭화관(浪花館) 명치정. (전차는 명치정 입구 하차) 쇼치쿠(松竹) 영화 봉절. 이곳은 원래 양화 전문관이었던 것을 빌려서 신관이 생길 때까지 (쇼와 11년 7월 준공 예정) 가주거 정원 350명인 베이비관. 그런 이유로 1일 3회 흥행을 하고 있다. 단 제3회째는 교체한다. 재생기는 닙톤 직류이기 때문에 화면은 선명. 입장 요금은 계상 60전, 계하 40전이 표준. 스팀 설비가 있고, 관이 작아서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하다. 봉절은 대체로 내지보다 1개월 정도 늦다. 중앙관(中央館) 영락정. (전차는 황금정 2정목 하차) 신코(新興), 간(寬)프로, 2 반쓰마(阪妻) 3 영화 봉절, 때로 외국물도 봉절한다. 재생기는 RCA 포토폰. 개봉은 내지보다 2개월 정도 늦다. 입장 요금은 계상 60전, 계하 40전이 표준. 스팀 설비가 있고, 엄동설한에도 비교적 따뜻한 편. 1일 3회 흥행. 약초영화극장(若草映畵劇場) 약초정. (전차는 약초정, 버스는 본정 3정목) 철근 콘크리트 3층의 모던 건축, 내지와 비교해서도 정상급 신관이다. 재생기는 로얄. 방화는 PCL 봉절, 외국영화는 파라마운트 봉절을 중심으로 각 사 봉절 재상영도 하고 있다. 입장 요금은 계상 50전 균일, 학생 30전 균일. 온풍냉풍 설비는 있지만, 엄동설한에는 조금 춥다. 1일 3회 상영. 송죽좌(松竹座) 황금정 3정목. (전차는 황금정 3정목 하차) 이름은 송죽좌지만 이전 명칭을 그대로 쓰는 것으로, 현재는 마키노(マキノ), 교쿠도(極東), 다이토(大都), 워너를 봉절한다. 옛날에 황금관, 동아구락부 등으로 사용했던 오래되고 큰 관이지만, 현재 신관을 건축 중이다. 입장 요금은 계상 30전, 계하 20전이 표준. 1일 2회 흥행. 봉절은 비교적 빠르다. 경룡관(京龍館) 용산 연병정. (전차는 연병정 하차) 2류관, 쇼치쿠와 PCL의 재상영, 입장 요금은 20전이 표준. 1일 야간 1회 흥행으로 일요일과 휴일만 주야 2회 흥행. 단성사(團成社) 종로 3정목. (전차는 종로 3정목 하차) 모던한 신관으로 재생기는 RCA. 외국영화 전문관으로서 각 사의 우수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내선(內鮮) 쌍방의 고급 관객을 끌어 모은다. 입장 요금은 계상 60전, 계하 40전이 표준. 내지인들에게는 조선어 설명이 귀에 거슬리지만, 봉절도 상당히 빠르고 양화팬이 즐길 수 있는 관이다. 조선극장(朝鮮劇場) 인사동. (전차는 종로 2정목 하차) 외국물 봉절과 일본영화 재상영, 그리고 때로 조선연극을 상연한다. 재생기는 RCA. 한때는 단성사와 나란히 양화 봉절관으로서 내지인 관객도 있어 전성시대를 누렸으나, 단성사의 신축 이후 2류관이 되었다. 입장 요금도 저렴하다. 제일극장(第一劇場) 종로 4정목. 2류관으로서 일본영화를 재상영하여 조선인 대중을 부른다. 우미관(優美館) 종로 2정목. (전차는 종로 2정목 하차) 일본영화 재상영, 외국 대중 작품 봉절을 하여 역시 조선인 대중 팬을 노리고 있다. 동양극장(東洋劇場) 죽첨정. (전차는 서대문 하차) 조선인 측에서는 가장 새로운 모던 관으로, 외국물을 개봉하거나 조선연극, 레뷰를 상연한다. 이상이 경성의 영화관 개요이다. 그 밖에 현재 쇼치쿠영화의 봉절관으로 송죽좌 신관이 건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렇게 경성의 영화흥행계도 설비 개선, 신관 건축 등으로 면목을 일신하여 내지 일류 도시의 수준에 달하고 있다. 내외의 영화배급사도 지사나 출장소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다만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내지에서 온 사람들을 깜짝 놀랄 만큼 불쾌하게 하는 것은 ‘극장 여급(お茶子)’의 존재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유유히 들어가면, 에이프런을 걸친 무뚝뚝한 극장 여급이 안내하면서 방석과 화로를 강매한다. 방석은 5전, 화로는 10전, 따라서 가령 50전의 흥행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65전이 든다. 물론 반드시 빌려야 할 의무는 없지만, 방석이 없으면 의자가 딱딱하고, 게다가 극장 여급이 퉁명스럽게 굴어서 더욱 불쾌해진다. 극장 여급 제도에 대해서는 각 방면에서 비난과 폐지의 소리가 있으나, 약초극장만 폐지했다. 그 외에도 흥행 취체가 불완전해서 영사 중에 제멋대로 담배를 피거나 하는 그러한 불쾌한 점들이 있는데 당국에서 드디어 취체를 강화하기로 했다. 극장 경성은 연극으로는 완전히 척박한 곳이다. 필름 1편으로도 족한 영화와 달리 규모 있는 극단을 부르게 되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부른다고 해도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입장 요금을 내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순회 구파•신파 극단이나 만자이(萬歲, 漫才) 4 등으로 만족해야 한다. 다만 쇼와 10년에는 경성에 전례 없는 방문이 있었다. 만주황군 위문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치무라 우자에몬 일좌(市村羽左衛門一座)와 닌교조루리 분라쿠자(人形瑠璃文樂座)가 공연한 것이다. 이것은 경성의 연극애호가들이 대단히 기쁘게 했다. 경성극 흥행계의 고민은 그뿐만이 아니다. 훌륭한 대극장이 없는 것도 큰 결함이다. 현재는 조일좌 (朝日座, 본정 5정목), 경성극장 (京城劇場, 본정 2정목) 2곳이 있는데, 둘 다 내지의 3, 4류 도시의 소극장 정도이다. 경성부민들이 대망하던 부민관 대홀 (정원 1,800명)이 등장하여 이를 흥행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서 대극장 문제는 일단 해소되었으나, 공공건물이라서 부민들 간에는 순흥행적인 새로운 극장을 요망하는 소리가 높다. 조선연극 은 내지의 가부키나 신파에 비해서 수준이 매우 낮다. 현재 직업 극단으로서 신무대(新舞臺), 태양극장(太陽劇場), 신성좌(新星座) 등이 있고, 주로 조선극장, 동양극장 등에서 공연한다. 음악 방면으로는 내지의 일류 악인이나 외국의 내조자(來朝者) 지방 순회가 신문사 주체 등으로 이루어져 그 대부분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행이다. 이들의 공연장으로는 부민관 대홀, 경성공회당 (장곡천정, 상공회의소의 누상(樓上))이 사용되고 있다. 1) 조선인을 가리키는 말. ‘여보세요’의 ‘여보’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설 『조선』에서는 ‘大人’, 즉 ‘어른’이라고 쓰고 ‘요보(ヨボ)’라고 병기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에는 조선인 성인 남성을 가리키던 ‘요보’는 점차 조선인을 멸시하거나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2) 아라시 간주로 프로덕션(嵐寛寿郎プロダクション)의 약칭. 3) 반도 쓰마사부로 프로덕션(阪東妻三郎プロダクション)의 약칭. 4) 원문 표기는 ‘만세(萬歲).’ 만자이(漫才)는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으며 진행하는 해학적인 화예(話藝)로 만담과 유사하다. 13, 14세기에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새해에 악귀를 쫓고 번영을 기원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쌀과 돈을 청한 사람들을 ‘만자이(萬歲)’라고 했는데, 이것이 만자이의 기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