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제를 가다-해운대 모래축제
- 제작년도
- 2010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영화를 좋아해 자주 극장을 찾는 편이었지만, 유난히 집중적으로 영화를 보았던 시기가 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파리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시절이다. 그때 나는 북역(北驛) 근처의 작은 스튜디오에 살았다. 아랍인, 인도인, 중국인, 아프리카인 등 여러 지역에서 흘러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거리는 낡고 허름했지만, 이상한 활력과 혼돈으로 가득했다. 향신료 냄새가 뒤섞여 풍기는 공기에는 흥분과 불안이 실려 있었고, 길을 지날 때 들려오던 언어들은 바벨탑에서나 흘러나왔을 법한 다성(多聲)의 소음이었다. 그 자체로 ‘영화적’이던 이 온갖 감각들이, 마치 모래시계의 바닥에 쌓여가는 부스러진 시간처럼, 서서히 나의 내부에 침전되어 갔다. 여가라 부를 만한 것이 없던 일상에 유일한 출구가 있었는데 그것이 극장이었다. 파리는 시네마의 도시였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영화관이 서너 개 있었고, 생미셸의 낡은 옛날 극장들에서는 고전영화가 끊임없이 돌아갔다. 일 년 내내 열리던 회고전들, 퐁피두센터의 특별 상영들,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 한국 감독들의 전작(全作), 영화 교과서에서 이름만 보았던 옛날 작품들을 관람하는 기회를 누렸다. 논문을 쓰던 스튜디오와 극장은 삶의 두 극점(極點)이었다. 외로움, 침잠, 우울의 극을 이루는 스튜디오. 그리고 놀라운 이미지들이 주는 충격, 활력, 기쁨의 극을 이루는 극장. 나는 이 두 지점 사이를 오가던 진자와도 같았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은 특별한 외출이 아니라 습관화된 생활 방식의 하나였다. 영화를 연구하거나 전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내가 몰두한 공부는 이미지의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나는 벤야민의 저술들을 탐구하고 있었고,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선생의 강의를 들으며 그의 이미지 철학과 (수업에서 다뤄지던) 아비 바부르크의 문화학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미지의 물질성, 역사성, 능동성, 생명력에 대한 감수성을 이론적 사유의 동력으로 전환한 사람들이다. 특히 바부르크와 디디-위베르만은 이미지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의 길을 연다. 바부르크가 바라본 이미지는 태어나고 변이하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생명 현상이었다. 이미지에 스며 있는 이 시간적 리듬을 그는 ‘잔존(Nachleben)’이라 불렀다. 이미지도 생명체처럼 고통을 겪고, 변형되며, 살아 나간다. 파토스(pathos), 곧 겪음, 시련, 고통이라는 문제의식이 바부르크의 사유를 관통한다. 이미지를 본다는 것은, 지진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지진계처럼, 그것이 행사하는 힘을 겪어내는 일이다. 바부르크가 “파토스적 패러다임” [1] 을 실험한 이론가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디-위베르만은 바부르크가 던진 주제들을 한층 더 밀고 나가, 로고스를 중심으로 조직된 예술사 전통을 해체하고, 이를 징후학적 시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시각 경험 고유의 현상학적 특성, 다시 말해 ‘본다(voir)’는 행위가 언제나 ‘응시당한다(regarder)’는 역관계와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이었다. [2] 그는, 주체가 자신이 보는 것에 의해 찔리고 상처 입는 촉각적 경험, 그리고 이미지가 주체 내부로 스며들어 탈주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게 이미지란 유령이자 파토스이며, 동시에 징후다. 이는 이미지를 의미나 사실, 표상으로 고정하고 물화하여 상징계에 예속시키려는 지적 경향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당시에는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파리에서 천착하던 이미지 철학은 (지금 나에게 익숙한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다음의 세 가지 항목으로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째, 이미지는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 동등한 위상을 갖는 생명이며 힘이며 운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존재론). 둘째, 인간이 이미지를 선험적 인식의 틀에 포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지가 인간에게 침투하여 그를 흔들고 변화시키는 행위자라는 점(정동론). 셋째, 이미지를 보는 인간은 이러한 실효적 이미지에 의해 감응되어 변형되는 감수자라는 점이다(페이션시의 이론). [3] 『세계에 대한 믿음』 중 소개된 작품들 (상) < 부운 >(나루세 미키오, 1955), < 황혼의 빛 >(아키 카우리스마키, 2006) 중 (사진: “ Ukigumo ”, “ Laitakaupungin valot ”, IMDb) (하)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나의 해방일지 >(김석윤, 2022) 중 (사진: “ 헤어질 결심 ”, 네이버영화 / “ 나의 해방일지 ”, JTBC) 서설이 길어진 이유는, 작년 겨울에 출판된 『세계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쓰이게 되었는지를 (청탁을 받은 후에) 곰곰이 떠올리다 보니 그 기원이 20여 년 전 파리 시절의 이미지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집필의 실제 시간대만 놓고 말하자면, 저 책은 2021년에서 2024년 사이에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서울리뷰오브북스》, 『안과밖』, 《뉴래디컬리뷰》 같은 지면에 발표한 영화평들을 책으로 묶었고, 거기서 다룬 작가들은 나루세 미키오, 타르코프스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지아장커, 코엔 형제, 아키 카우리스마키, 켈리 레이카트, 박찬욱 , 박해영 등이다. 한눈에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듯, 저들을 묶는 단일한 주제나 특정 경향, 시대나 지역적 동질성 같은 것은 없다. 아마도 가장 느슨한 공통점은 내가 저들의 작품에 깊게 감응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책을 쓰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시네필’이나 ‘비평가’가 아니라 영화를 겪는다는 의미의 ‘시네-페이션트(cine-patient)’라고 불렀다. 시네-페이션트는 이미지를 겪는 자다. 영화에 의해서 변형되는 자. 영화를 바이러스처럼 삼켜 그것과 함께 하나의 어셈블리지로 생성되는 숙주다. 최근에 내가 제안한 한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봄의 겪음(suffering seeing)”의 주체라고 부를 수도 있다. [4] 이런 존재는 도대체 영화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쓸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이 책의 저변에 흐른다. 나는 영화를 정신분석이나 기호학, 또는 사회학이나 매체이론으로 ‘분석’하는 대신, 영화가 가져온 감각적, 감정적, 지적 변용을 ‘보고’하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다. 이는 책에서 자주 인용된 들뢰즈의 방식이기도 하다. 영화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동맹자로 만드는 것. 감독을 철학자로, 사상가로, (또는 나의 경우에는 사회학자로) 대우하는 것. 영화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영화에 ‘의해’ 감응되어 쓰인 글. 이것이 내가 책에서 시도했던 비평의 한 방식이라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앞에서 언급한 디디-위베르만과 바부르크의 ‘파토스적 패러다임’에 닿아있다. 시네-페이션트는 영화가 눈동자에 던지는 세계의 이미지들을 겪고, 견디고, 앓는다. 나는 책에서 여러 차례 영화의 힘의 바탕에 이런 수동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썼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봄을 겪는다.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태를 겪는다. 극장에서, 우리의 눈동자는 그 안으로 세계가 침투하는 열린 상처, 또는 벌어진 구멍이 된다. 상처가 상처를 통해 상처를 바라본다. 기쁨이 기쁨을 통해 기쁨을 바라본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런 체험의 파편들이 책 곳곳에 흩어져 있다. < 스토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79) 중 (사진: “ Stalker “, IMDb) 아쉽게도, 이제 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살아내는 이들을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어졌다. 우리는 이미 포스트-시네마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영화의 황혼이며, 극장의 황혼이며, 영화를 보러 가던 마음의 황혼이고, 영화를 보고 난 뒤 스며오던 그 막막하고 어둡고 따스한 기분의 황혼이며, 그 기분을 나누는 대화와 관계의 황혼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슬프지는 않다. 쇠퇴해가는 매체만이 마지막 순간에 방출하는 구원의 힘(벤야민)을 믿기 때문일까? [5] 『세계에 대한 믿음』은 영화를 통해 인간과 세계와 맺는 관계를 고민해 온 한 시네-페이션트의 기록이다. 이미지가 우리를 통과하는 겪음의 시간이 어떻게 사유와 행위로 전환될 수 있을지를 묻는 소박한 실험. 이 책이 독자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이미지를 겪고 말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기를 희망한다. 시네-페이션트가 또 다른 시네-페이션트에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보았는가? 당신은 무엇을 보는 것을 겪었는가? *** [1]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잔존하는 이미지』, 김병선 옮김, 새물결, 2022, 270쪽. [2] Georges Didi-Huberman, 1992. Ce que nous voyons, ce qui nous regarde , Paris. Minuit, 1992. [3] 페이션시는 행위능력(agency)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감수자의 위치, 경험, 힘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하는 힘이 아니라 겪는 힘이며, 겪음을 통해서 형성되는 잠재력이기도 하다. [4] 김홍중, “시대횡단의 징후학1.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사회와이론』 52, 2025. [5] 로절린드 크라우스, 『북해에서의 항해』, 김지훈 옮김, 현실문화A, 2017, 87쪽. 김홍중(사회학자) l 사회이론과 문학, 예술, 문화사회학을 전공한다. 그간 인간의 심적 활동이 어떻게 사회를 형성,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심리사회 연구를 수행해 왔다. 최근에는 21세기 생태파국에 대한 대안적 사회이론과 새로운 문화적 실천들을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음의 사회학』(2009), 『사회학적 파상력』(2016), 『은둔기계』(2020),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2024), 『가까스로-있음: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2025)이 있다.
<무소주>(2024)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차이밍량은 2012년부터 <행자(行者)> 연작을 찍기 시작했다. 장소만 달려졌을 뿐 내용은 모두 동일하다. 리캉성이 붉은색 가사를 입고 약간 고개를 숙인 다음 한 손은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어 불가의 공(空)을 표시하고 다른 한 손은 내린 채 펼친 다음, 혹은 마찬가지로 원을 만들어서, 천천히 걷는다. 맥락과 배경,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설을 달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 보는 건 그게 전부이다. 차이밍량은 2013년 < 떠돌이 개 >를 찍은 다음 더 이상 극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언젠가부터 점점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극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들이 희박해져 갔다. 그는 < 안녕, 용문객잔 >(2003)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이미 모두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행자> 연작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시작되었다. 2011년 타이베이 국립극장에서 300석 규모의 무대에서의 공연을 제안받았다. 세 명의 배우를 무대에 불러 각자의 모노드라마를 올릴 계획이었다. 세 명은 양구이메이, 루이징, 그리고 리캉성이었다. 리캉성에게는 일인삼역을 부탁했는데, 리캉성 본인과, 차이밍량의 아버지, 그리고 현장(玄奘)법사였다. 현장법사는 당나라 시대의 승려이다. 불교 교리를 연구하려고 했지만, 그때 중국에는 불교 경전이 없었다. 그래서 경전을 구하기 위해 천축국(지금의 인도)으로 길을 떠났다. 627년의 일이다. 둔황을 거쳐 천축국에서 불경을 얻은 다음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것은 645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그 여정을 명나라 시대에 신괴소설(神怪小說)로 쓴 오승은 작가의 『서유기』이다. 삼장법사와 세 명의 제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그들을 기다리는 온갖 요괴와 난관을 헤쳐 나가는 모험극. 하지만 무대에서 리캉성은 무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사각형으로 된 무대 끝 선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차이밍량은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무대에서 한 번 공연한 다음에 사라져 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걸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옮기겠다. <행자>는 영화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모래>(2018)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하지만 무대에서 이미 한 것을 카메라 앞에서 반복하지 않았다. 차이밍량은 리캉성에게 붉은 가사(袈裟)를 입히고 길거리로 데려 나갔다. <무색>(2012)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행자>는 2012년 타이베이의 야시장(夜市場)에서 걸었다. 아주 느리게 걸었다. 이 해에 세 편의 <행자>를 더 찍었다. 처음에는 상영시간이 짧았지만, 점점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덟 번째 <행자> 연작인 <모래>(2018)에서 처음으로 1시간 상영시간을 넘어섰다. 아무 사건도 없고, 아무 이야기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대사도 없다. 리캉성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언제나처럼 붉은 가사를 입고 한 손으로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고 다른 손을 내린 채 맨발로 몹시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마치 멈춘 것 같은 속도로 걷는다. 하지만 길거리로 나가자 구체적인 문제와 만나야만 했다. 기후의 가혹한 조건. 환경이 요구하는 한계. 한여름 뜨거운 햇빛으로 달궈지다시피 한 말레이시아 쿠칭의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걸었고(다섯 번째 <행자>인 <물 위 걷기>) 추운 한겨울 밤에도 도쿄의 길거리도 맨발로 걸었다(여섯 번째 <행자>인 < 무무면(無無眠, No No Sleep) >). 그래서 차이밍량은 모든 테이크를 단 한 번만 찍었고, 리캉성은 같은 장소에서 두 번 걷지 않았다. <행자>는 정신적인 여정이지만 육체적인 기록이다. < 곳 >(2022), < 무소주 >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열 번째 <행자>인 < 무소주(無所住, Abiding Nowhere) >(2024)에서 리캉성은 미국 워싱턴 DC를 걷는다. 아홉 번째 <행자>인 <곳(何處, Where)>(2022)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아농 홍앙시가 등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하고 각자의 일을 각자 한다. 부사(副詞)로서의 각자(各自). 서로 따로따로. 어떤 일? 리캉성은 쉬지 않고 걷고, 아농은 외출하고 돌아와서 면을 끓인 다음 먹는다. 그 둘은 무슨 사이일까. 전주에서 만난 차이밍량은 내게 비밀을 알려주었다.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차이밍량 <행자> 전작 회고전을 했고, 차이밍량은 전주에 방문했다. 이때 긴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언지무(言之無)―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나는 이를 추구한다”, 《필로》 38호, 2024 May_June.) “<행자> 연작 일부분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 예를 들면 내가 어릴 적에 읽은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 같은 개념들을 몰래 넣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알려줄 수는 있지만, 관객들에게 내 생각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행자> 연작을 찍을 때는 어떤 방법을 통해 표현할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파리에서 찍은 <곳> 속의 아농은 거미 요괴를 닮았습니다. 그가 리캉성, 그러니까 행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요괴를 닮았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차이밍량은 거기까지만 비밀을 알려주었다. <무소주>에서 아농이 요괴인지 그렇다면 어떤 요괴인지, 거기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무소주> 중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 <무소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석양이 저물어가는 물가를 리캉성이 걷는다. 그때 해가 저물어가면서 물 위로 반사광이 피어오른다. 구태여 비유를 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바세계(娑婆世界)를 건너서 극락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그때 노래가 흐른다. ‘了悟心性究竟之上師祈請文’. 문자 그대로 옮기면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스승들의 기도’이다. 이 노래가 들릴 때 리캉성은 마치 긴 여정을 마치는 것만 같다. 차이밍량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이 열 번째 <행자>가 연작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추신 _ 전주영화제에서 차이밍량에게 열한 번째 <행자>를 제안했고, 차이밍량은 다음 <행자>를 전주에서 찍을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것이 새로운 <행자> 연작의 첫 번째 영화가 될지, 아니면 열한 번째 <행자>일지, 그도 아니면 번외편이 될지, 또는 에필로그가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다고 했다. 나는 두근거리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동안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것에 혈안이었다. 자그마치 10년이란 시간 동안 감별사를 자처했다. 영화를 보며 “이건 진짜야! 저건 가짜야!”라고 생각했다. 그 시작은 < 잠 못 드는 밤 >(장건재, 2012)이었고 같은 해 < 사랑에 빠진 것처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2) 덕분에 감별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분별하려 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급하게 촬영을 미뤘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다시 시나리오를 썼다. 나의 이야기였다. 이 방식이 진짜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을 연기할 배우를 찾았고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엄마였다. 영화 속 엄마는 내 생각보다 더 철이 없었고 불쌍해 보였다. 진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진짜를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래방에서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엄마에게 연기를 제안했다. 이번에는 제법 진짜 같았다. 하지만 아직 이상했다. 영화 속 엄마는 마치 해탈한 사람 같았다. 다시 한번 엄마와 영화를 찍었다. 상조 회사가 배경이었다. 회사 사람들과 일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다큐멘터리 같기도 했다. 결과는 여태까지 내가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엄마였다. 영화 속 혜정(김혜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만든 것은 무엇일까? 진짜도 가짜도 아닌, 이곳도 저곳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는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2020) 중 그러던 중 < 낭트의 자코 >(아네스 바르다, 1991)를 만났다. 감독은 아네스 바르다로 자크 드미(아네스 바르다의 배우자이자 영화감독)의 어린 시절을 재현했다. 영화의 구성은 극으로 재현된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실제 자크 드미의 모습,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 일부가 삽입되어 있다. <낭트의 자코>는 자크 드미가 성장하며 영향 받은 것과 그것이 어떻게 영화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컬러와 흑백이 섞여 있는 점이 내게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재현된 어린 시절은 대부분 흑백이었고 삽입된 영화는 대부분 컬러였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손가락 표시와 중간에 삽입된 영화들이 일정한 기준이 없어 보였기에, 하나의 맥락으로 묶기는 어려운 영화였다. 제일 먼저 컬러와 흑백의 기준을 알고 싶었다. 온전한 것들은 컬러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흑백이라는 추측을 했다. 자크 드미의 얼굴이 모두 컬러인 것이 근거였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형극(예술)은 컬러이지만 바라보는 아이들(픽션)이 흑백으로 표현되거나, 극장의 포스터(물질)는 컬러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자코(픽션)가 흑백이라는 점은 얼추 맞아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대화 장면에서 컬러와 흑백이 섞여 있는 장면도 있었다. 이런 장면은 별다른 이유가 없어 보였기에 온전함의 문제로 해석하기에는 정확하지 않았다. 그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이 지났다. 인형극(컬러)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흑백) 사진: "Jacquot de Nantes", IMDb ( 좌 , 우 ) 한참 뒤에야 <낭트의 자코>가 다시 떠올랐는데 바로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고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고 한 번도 보지 않은 아버지였다.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건 생선이었기에 뽀얀 피부에 정장을 입은 영정사진이 제법 멋있어 보였다. 장례식이 끝나도 계속해서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편히 감은 눈이었다. 오히려 죽고 나니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는데 바로 자크 드미였다. 어딘가 모르게 둘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큰 눈이나 오뚝한 코가 그랬다. 그렇게 <낭트의 자코>가 다시 궁금해졌다. 다시 본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자코로 시작하여 자동차 정비소의 전경을 담는 카메라가 시작이었다. 카메라가 사람이 되어 그곳을 두리번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문 너머에서 바라보는 볼뽀뽀 장면도 그랬다. 그러다가 어떤 장면을 마주하고 꼬인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화면 가득 보이는 자크 드미였다. 자크 드미의 하얀 머리카락에서 시작하여 얼굴의 주름을 지나 그의 눈동자로 도착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어떤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그 움직임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와 닮아있었다. 누워있는 머리부터 시작하여 편히 감은 눈을 지나 목에 둘러진 삼베와 그의 손가락까지. 그제야 모든 것들이 감독 아네스 바르다의 기어코 잊지 않으려는 마음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두리번거리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이는 카메라가 담은, 자크 드미의 주름과 눈동자 사진: "Jacquot de Nantes", IMDb ( 좌 , 우 ) 자코와 친구들이 창문에 모여 낙하산을 탄 군인을 바라보는 장면(흑백)이 떠오른다. 이어서 현재의 자크 드미(컬러)가 등장하고 그날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면은 다시 군인으로 돌아가고 자크 드미의 내레이션은 계속된다. 이전과 같은 장면임에도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군인은 컬러로 표현된다. 같은 장면이 자크 드미의 발화로 인해 색상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영화가 운동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크 드미와 다른 장면 사이에서 무언가가 오고 가는 움직임을 느꼈다. 더 나아가 감독 아네스 바르다와 자크 드미 사이에서 오고 가는 운동 자체가 곧 <낭트의 자코>였다. 이제야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이곳과 저곳 사이를 가로지르는 무언가였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군인(컬러)과, 장면과 장면 사이의 손가락 사진(좌): " Jacquot de Nantes ", moving pictures / 사진(우): " Jacquot de Nantes ", IMDb 끝으로 영화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모래와 바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이내 사라지는 모래와 바다였다. 이처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컬러가 되거나 또 흑백이 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시선-관계의 문제였다. 더 이상 진짜와 가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모든 것은 진짜이기도 가짜이기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만든 애매모호한 것이 실패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었다. 나중에야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합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준비된 사진이 없었다고 했다. 겨우 찾은 증명사진이 티셔츠를 입은 사진이었고 그 위에 정장을 덧씌워 그럴듯한 모습을 만든 거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엄마와 영화를 찍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는 영정사진이라니 나름 근사했다. 해리포터가 생각나기도 했고 뤼미에르가 생각나기도 했다. 산 자의 죽음을 미리 애도하는 꼴이 우습지만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것이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찍으면 찍을수록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고 내 욕심인 것만 같다. 그럴 때면 아네스 바르다의 영화를 보며 방향을 점검한다. 그러면 길이 보이는 것도 같다. *** 사진(마지막): " Jacquot de Nantes ", IMDb(상) / " Jacquot de Nantes ", moving pictures(하) 신동민(영화감독) l 영화를 만들고는 있지만 뭘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2020), < 당신에 대하여 >(2020), < 당신으로부터 >(2023)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