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파 - 무중력 (@ 봄의 피로)
- 제작년도
- 2009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에 짐을 실어야 하듯, 우리에겐 늘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 결핍이 필요하다 - 쇼펜하우어 SF의 변곡점 SF(Science Fiction) 영화가 ‘공상 과학 영화’로 번역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에스에프’라고 불리는 것 같다. 공상(空想)과 과학은 다른가? ‘공상 과학’의 어감은 과학이 첨예한 정치경제학의 산물임을 은폐하는 듯하다. 마치 ‘괴짜의 상상력’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다. 상상력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자의 위치를 이동시킬 때 다르게 보이는 경험이 주는 자원. 이것이 상상력이다. ‘공상 과학’은 사회적 위치성(포지션)을 공상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한다. 수많은 SF 영화가 있지만 나는 우주(외계인)와 지구를 대립적으로 다루는 영화가 불편하다(솔직히 말해, ‘분개한다’). 대개의 SF에서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미국인은 외계인과 친하든, 그들을 연구하든, 전쟁을 수행하든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를 대표한다. 실제로 미국은 지구를 ‘지킨다(지배한다)’. 그들은 세계의 경찰임을 자칭하면서 대외적 군사 개입을 “경찰 활동(police action)”이라며, ‘국내 치안’으로 생각한다. 한국전쟁 참전도 공식적으로 “경찰 활동”(트루먼 대통령)이었다. 전 세계가 미국의 땅이라는 발상이다. 자기만 ‘지구의 1등 시민’, ‘제1의 성’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9․11 이전까지 국방부가 없었다. 미국 국방부(DOD, Department of Defense)는 우리나라처럼 자국 방위를 위한 부처가 아니라 전 지구를 대상으로 업무를 보는 곳이다. 9․11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자기 땅이 침략당한(?) 사건이었다. 이후 미국은 다른 나라의 ‘진짜 국방부’에 해당하는 국토방위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를 신설했다. 디스트릭트 9(District 9) 외계인과 싸우는 지구의 대표가 ‘파키스탄인’이거나 ‘에콰도르인’인 영화가 있었던가. 닐 블롬캠프 감독의 < 디스트릭트 9(District 9 )>(2009년) 가 걸작인 이유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섹스나 감염 문제를 다룰 때 실험 대상은 백인 남성이 아니라 유색 인종이거나 여성임을 날카롭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나오지 않는, 실종된 미국 우주인을 그린 < 그래비티(Gravity) >는 <디스트릭트 9>과 함께 SF의 역사의 한 챕터에 등장할 만하다. 더불어, <그래비티>는 우주 쓰레기 문제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스페이스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비록 중국이지만’)아시아 국가가 나온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었다. 우울증과 중력 내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첫 영화는 < 이 투 마마(Y Tu Mama Tambien, And Your Mother Too) >(2001)였다. 황홀했다. 나는 한동안 디에고 루나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 서 헤어 나오지 못했으나 친구들과 신나게 영화 감상을 나누지는 못했다(‘미남’ 배우에 대한 자기 검열이 있었다). 이후 두 배우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필모그래피는 말할 것도 없다. 제작자로 참여한 < 비우티풀(Biutiful) >이나 <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 모두 굉장한 세계였고 <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 <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 >, <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Harry Potter and the prisoner of Azkaban) >에 대한 내 의견은 사족이리라. 알폰소 쿠아론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는 2014년 제86회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탔다. 나는 아직 <로마>(2018년)를 보지 못했고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지만, <그래비티>(2013년)는 그의 대표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내게는 ‘내 인생의 영화’다. 하지만 두 번 볼 용기는 없다. 치유 과정의 고통을 두 번 겪고 싶지는 않다. 직면하기 어려운 영화다. 이 영화를 ‘호러’로 분류하면, 미친 짓인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비티>는 물리학과 실존주의를 융합하고 그 두 세계를 모두 넘어서, 제3의 지식을 만들었다. 우울증에 관한 설명이 그것이다. 모든 질병이 그렇지만, 우울증은 묘사하기 매우 어려운 병이다.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질병이다 보니,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인간이 자연을 마구 파괴하다 보니, 이제 자연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물론 우울증은 고대부터 있었다). 대개의 질병은 ‘원인’은 다양하고, 증상은 비슷하다. 그래서 증상을 통해 병명을 진단할 수 있다. 우울증은 반대다. 원인은 ‘하나’인데, 증상은 다양하거나 극단적으로 반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의사도, 환자도 진단이 어렵다. 불면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내내 자는 사람도 있다. 폭식증이 있는가 하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병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살아 있을 때 몸은 의지로 움직인다. 죽음이란 몸에서 의식이 빠져나간 이후를 말한다. ‘몸’만 남는 것이다(영어의 ‘body’는 본래 시체라는 뜻이다).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울증은 의지-의식-의욕, 이 세 가지 상실이 혼재된 상태인 듯하다. 한마디로 무기력의 연속이다. 그래서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몇 년간 계속되어 욕창으로 사망하는 이도 있고, 우울한 상태에서 극한의 자신과의 투쟁으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이도 있으며, 심지어 우울을 잊기 위해 미친 듯이 일이나 공부, 글쓰기에 몰두하여 생산력이 높은 ‘고기능 우울증 환자’도 있다(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마지막의 경우 오래가지는 못한다. 대개 육십 세를 전후하여 자살한다. 더는 그럴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이다. 이 힘은 모든 곳에 있다. 그래서 만유인력(萬有引力, universal gravitation)이라고 부른다. 그래비티, 중력(重力)은 말 그대로 무거운 힘이다. 물체의 무게는 이 힘을 가리킨다. 만유인력과 지구 자전에 따르는 원심력이 더해져, 우리는 지표면에 의지해 살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호소. “지구가 나를 붙잡지 않아요.” 중력의 법칙에서 배제된 이들이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다. 우울증의 고통에 비하면, ‘우울(憂鬱)’이라는 표현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우울증 환자의 삶은 격렬하다. 격렬한 고통이다. 현실의 중력이 너무 강하면 세상살이가 고달프다. 지표에 끌려다니며, 먹고 사느라 세속을 헤매게 된다. 우울증은 반대로, 몸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아 지표면에서 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무중력 상태의 삶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우울증은 살기 싫은 병이기 때문에, 몸과 땅이 붙지 않고 서로 싸운다. 누가 이기겠는가. 중력이 버린 몸. 자살은 이 증상으로 인한 질병사일 뿐이다. 마흔에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삶을 지속하고 있는 내 친구는 말한다. “난 그때 죽었는데, 왜 살아 있는 거야? 그때 죽었는데, 내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듯한 느낌 알아? 매일 내 장례식에 다녀온 기분 알아?” 우울증 환자가 24시간 아픈 것은 아니지만, 불행한 감정 상태에 ‘몰빵’되어 다른 인생을 상상하기 힘들다. 우울증에 걸린 그 순간 이후의 삶은 잉여, 살아 있으되 죽어 있는 시간, 비참하고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약으로 고통을 완화할 수는 있다). 인생이라는 배가 돌아다니기(움직임) 위해서는, 일단 정박(碇泊)할 곳이 있어야 한다. 정박할 곳이 없으면 이동하지도 못한다. 정박하지 않은 배는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모든 것으로부터 상처받는다. 배는 서서히 부서지고 부식된다. 살려는 의지와 죽음의 욕망(‘충동’이 아니다, 죽을 만큼 아픈 것이다) 사이에서의 투병 생활은 매 순간 ‘선택’의 압력에 시달리는 상태다. 이때, 선택은 자유 의지로 하는 선택이 아니다. 기분이 날뛰며(업앤 다운이 반복) 기진맥진해지는 기분 장애(mood disorder)의 상황이다. 내가 아는 우울증 환자는 이 병으로 인해 그녀가 평생 노력해서 얻은 ‘좋은 직장’을 잃었다. ‘성취’가 끝나자마자 질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행복한 기억이 없다. 가장 괴로운 시간은 아침이다.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떠날지, 한국을 떠날지, 지구를 떠날지. 지구를 떠난다면 갈 곳은, 단 한 곳 우주이다. 그녀는 매번 ‘선택’에 대해 조언을 구하지만, “조언해 달라”는 그녀의 요청에 한없이 응대할 사람은 없다. 그녀가 요구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중력이 없어서 생존 가능한 공간, 우주 우주는 무중력 상태이므로 지구와 달리 우울증 환자가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우주가 배경인 <그래비티>에서 우울증 환자는 지구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중력이지만, 첨단 장비가 끊어진 중력과 자신을 연결해주니 발버둥 치지 않아도 생존 가능하다. 지구에서 이 연결은 사람과 사랑이지만, 구하기 쉽지 않은 끈이다. 우주의 무중력은 지구의 중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출발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울은 같지 않다. 두 가지로 구별해야 하는데, 나누지 않아서 문제다. 인간은 누구나 슬프고 기쁘고 우울하고 들떠 있다. 다양한 기분 상대를 산다. 그리고 누구나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약간 우울한 사회, 고뇌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反사회적 인간의 조증(躁症)이 판치는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 글의 서두에 인용한 대로, 안정된 삶은 어느 정도의 ‘마음의 짐’을 진 채 사는 것이다. 우울, 걱정, 슬픔은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타인과 조화로운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다. 이런 우울한 상태는 인간의 조건이다. 하지만 질병으로서 우울증은 이와 크게 다르다. 정신 질환(mental disease)과 신체적 질병(physical disease)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사회는 유독 ‘정신병자’와 ‘암’ 환자를 다르게 생각한다. 둘 다, 고통받는 몸(body in pain)인데도 말이다. 정신 질환은 가볍게 취급되거나(“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반대로 통제 불가능한 공포의 대상(“정신병자가 탈출했다!”)이라는 식의 극단적 인식을 오간다. <그래비티>에서 산드라 블록은 아이를 잃은 전문직 여성이다.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 누가 우울하지 않겠는가. 비통하지 않겠는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애도의 시간은 지극히 정상이다. 반면, 이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면, 의학의 도움이 필요한 질병으로 진전될 수 있다. (일견 해피엔딩으로 보이지만)이 영화에서 그녀가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지구에서는 땅을 디딜 수 없었던 그녀가 땅을 밟을 필요가 없는 우주를 경험함으로써,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여행(journey)하는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우리가 우울할 때 혹은 우울증을 앓는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두 경우 모두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집에서, 침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일이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동과 운동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우울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다른데, 움직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우주, 가장 먼 이동이다. ‘우울과 중력’이라는 주제에 대해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만한 통찰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 같다. 시리아나(Syriana) 이 영화에서 어떻게 조지 클루니를 빼놓을 수 있을까. < 시리아나(Syriana) >, < 마이클 클레이튼(Michael Clayton) >, < 인 디 에어(Up in the air) >를 보길 권한다. 특히 <시리아나>를 강력히 추천한다. 이 영화들에서 그는 반미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이며, 인생의 바닥을 수십 번 치고도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매력적인 루저이며, 패배를 반복하고도 변화할 줄 아는 인간을 연기한다.
‘레디 고’란 외침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빌딩에서 뛰어내린다. 그는 아마도 영화감독인 듯하다(실제로 이장호 감독이 이 역할로 출연한다). ‘활동사진 멸종위기’라는 정치적인 시위에서나 나올법한 단호한 구호가 들리고, 이어 거리의 바닥에 나뒹구는 신문지마냥 남자의 몸이 뉘어진다. 동칠이라 불리는 한 남자에게 귓속말로 그의 마지막 전언이 전달된다. 이어지는 초등학생쯤 되는 어린아이의 웅변조 내레이션이 들린다. “어느 날 동칠이는 옥상에서 뛰어내린 영화감독을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은 영화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스포츠에만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화감독은 혼자서 죽어버렸습니다” 이장호 의 < 바보선언 >(1984)이 흥미로운 것은 이 자살 장면이 몇 편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에 있다. 나는 두 편의 일본영화를 거론할 생각이고 장면의 유사성만이 아니라 그 전언의 교감성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 하나는 와카마츠 코지의 < 가라 가라 두번째 처녀 >(1969)이며 다른 하나는 오시마 나기사의 <도쿄전쟁전후비화>(1970)이다. 시대와 상황은 제각각이고 나 또한 이 영화들을 상이한 시기에 접했지만(이장호의 영화는 80년대 초에, 오시마의 영화는 90년대에 와카마츠의 영화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이다) 동시대성을 느꼈다. 동시대성이라는 말로 나는 파솔리니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백색치즈>에서 영화감독으로 분한 오손 웰즈는 파솔리니의 책을 인용하며 '나는 과거에서 온 전령사이다. 진정으로 동시대적인 것은 일종의 시대착오 속에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각각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만들어진 세 편의 영화가 지닌 내적인 관계는 주관적 설명을 필요로 하지만 최소한 이 세 명의 작가가 내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80년대에 오시마 나기사와 이장호 감독의 관계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2002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한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때에 이장호 감독은 <소년> 상영 시 그가 일본에서 이 영화를 ATG 상영회의 노천극장에서 보았던 경험과 오시마 나기사 감독과의 개인적 친분에 대해 말했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과 이장호 감독의 관계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와카마츠 감독은 자신의 영화관에서 이장호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일본의 영화계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일에 기여했다는 걸 큰 자랑으로 여겼다. 2006년에 개최한 ‘와카마츠 코지 특별전’에서 이장호 감독은 그와 만났던 사연을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해 소개하며 그와 재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이 글이 사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와카마츠 코지 감독에 대한 기억에서 촉발됐다는 말을 밝히고 싶다). 이런 내밀한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다음의 일로, 여기서는 앞서 말한 시대착오적인 동시대성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바보선언 >에 대한 어떤 내용적 독해도 여기서는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이 작품이 다른 영화와 맺는 코레스판던스에 대해서는 논의할 것이다). 이 세 작가의 작품을 연결하는 공통의 지점은 물론 자살에 있다. 그 맥락은 물론 다르다. 다만 옥상에서 뛰어내린 어떤 이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산의 (정치적)영화적 가치의 교호성으로 흥미롭다. 미학자인 디디 위베르만이 반딧불의 잔존에 관한 아름다운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시대를 상상하는 방식 속에서 우리의 정치하는 방식의 조건을 고려하는 것, 그것은 시차를 넘어서 잔존하는 것을 살펴보는 일이다. 지난달에 도쿄에서 열린 일본영화와 관련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나는 이런 시대착오성에 대해 이야기를 잠깐 나눴었다. 60~70년대 일본영화의 국제적 수용이라는 주제로 영화제 프로그램의 기획자들, 학자들이 서로의 견해를 나누는 자리였다. 시대착오적인 동시대성이란 내게는 이런 식이다.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를 처음 제대로 접한 것은 90년대 초의 일이었다. ‘제대로’라는 표현은 그때 처음으로 < 일본의 밤과 안개 >(1960)와 <도쿄전쟁전후비화>를 봤기 때문이다. < 감각의 제국 >(1976)을 보았던 터이긴 하지만, 오시마의 영화는 이 두 편으로 꽤 충격적인 느낌을 남겼다. 당시 문화학교서울이라는 작은 비디오테크에서 뒤늦게 본 셈인데, 그전까지 달리 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을 다룬 이야기나 형식이 꽤나 흥미로웠다. 안보투쟁 이후 좌익정치운동을 둘러싼 패배의 분위기와 심각한 절망감, 학생운동 내부에서 발생한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디스커션 드라마’의 형식으로 풀어낸 독특함에 깊은 공감했다. 30년 전의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현실감을 얻었다. 마치 당대의 한국현실을 질타하는 영화처럼 보였다. 그 무렵 한국에서도 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1990년에는 < 파업전야 >가 자주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정부가 영화 상영을 금지시켜 대학교에서의 자주상영을 둘러싸고 경찰과 대치하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같은 해에 지리산 파르티잔의 이야기를 그린 정지영 의 < 남부군 >이 개봉했고, 좌절한 학생운동가의 이야기를 그린 박광수 의 < 그들도 우리처럼 >이 개봉해 열띤 호응을 얻었다. 장선우 의 < 우묵배미의 사랑 > 또한 이 시기 주목할 만한 영화였다. 새로운 사회파 영화들이 만들어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초에 한국사회가 직면한 현실은 영화가 보여주는 문제를 훨씬 상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91년의 ‘5월 투쟁’은 지극히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1991년 4월 26일, 시위를 하던 명지대학교 학생 한 명이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죽은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한 달 넘게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11명의 목숨이 희생됐다. 91년 5월 투쟁은 당시 6공화국의 집권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표출되었던 권력형 대형비리와 공안통치, 장기집권을 향한 정권야합에 대항한 사건이었다. 여러모로 87년에 있었던 6월 투쟁과 맥을 같이 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실패로 끝났고, 진보운동에 대한 반동적인 이데올로기 공세가 드세게 전개됐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린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벌어졌고, 당시 참교육을 주장하던 전교조 교사들을 해직시킨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학생들의 밀가루-계란 세례에 언론이 ‘극악한 악행’이라 매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발맞추어 민주화운동진영에 있었던 일부의 지식인들이 당시의 운동세력을 매도하는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에 실린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 환상을 갖고 누구를 선동하려 하나’라는 글이나 서강대 총장의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라는 글이 대표적이었다. 90년대에 현실은 빠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그즈음에 <일본의 밤과 안개>와 만났던 내 경험이 각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실 정치의 문제를 대담하게 풀어낸 것에 놀라웠고, 숨겨진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매료됐다. 터부시 된 이야기, 상기하기 곤혹스런 과거의 기억을 드러내는 방식에 놀랐었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면, 이장호 감독의 < 바보선언 >에서의 영화감독의 자살은 어떤 질문처럼 다가왔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 시절에 사당동의 재개봉관 이수극장에서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장호 감독의 영화는 그 시절에 한국영화의 대명사처럼 다가왔다.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린 것은 앞서 언급한 두 일본작가의 영화를 접하면서이다. 가령, 이들의 영화에서 죽음이 어떤 하나의 귀결인지(시대적 상황의 결과) 아니면 어떤 선언인지(영화 멸종선언)는 모호하다. 예를 들어 와카마츠 코지의 < 가라 가라 두번째 처녀 >에서 강간을 당한 여인과 살육을 행한 남자가 옥상에서 동반 자살할 때, 그들은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옥상 아래로 몸을 던진다. 이들은 자살에 이른다기보다는 사실 몸을 던진다고 말할 수 있다. 옥상이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에서 거대한 밀실이라면 그곳에서 몸을 내던지는 행위는 죽음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뛰어내림은 와카마츠의 영화에서 (권력의)중력을 탈피하는 무중력(혹은 부력)의 힘이기도 하다. 종종 카메라는 인물들을 부감으로 잡아내는데, 옥상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세계를 벗어나 거리로 몸을 던지는 행위 또한 이러한 중력을 벗어나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오시마 나기사의 <도쿄전쟁전후비화>는 ‘카메라로 유서를 남긴 사나이’라는 부제가 더 적절해보이는 데 왜냐하면 카메라로 유서를 남긴 젊은이의 죽음의 이미지가 가장 강렬한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 어느 누구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만큼 빈곤하게 죽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마치 낮에 겪은 시간을 밤에 꾸는 이미지들로 대치하는 듯한데 여기서 밤의 이미지란 (카메라로 촬영해 필름에 흔적을 남긴) 영화이다. 가장 주관적이고, 모호한 내적 경험이 이 이미지들을 구성하고 이야기하는데, 그리하여 이 이미지는 증언이자, 동시에 생성 중인 정치적 역사에 대한 예견과 예언으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에는 죽어가는 자의 권위라는 문제설정이 있다. 와카마츠의 영화나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는 모두 (영화와 정치의)소멸과 한계화의 과정에서 취약한 시간적 조건과 대면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아마도 영화를 할 수 있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문화적 조건을 살고 있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이른바 ‘활동사진 멸종위기’). 하지만, 죽음이 남긴 유서는 신체가 남긴 것으로(가령 <도쿄전쟁전후비화>는 신체와 이미지를 계속 결합시키는 불가능한 시도를 보여준다), 그러하기에 무기력이 남긴 외침은 도리어 완전히 다른 질서에 속하는 반박의 역량을 구성할 수 있다. 이장호 의 < 바보선언 > 또한 그러한 선언의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죽음은 이중적이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그들의 죽음을 보고 무언가의 소멸이 발생했다는 걸 감지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소수성, 우리의 고유한 욕망, 공동체와 운동체에의 갈망, 다른 이와의 커넥션을 만들려는 의지들이 소멸과 죽음에서 다른 시대착오적인 시간들과의 다른 커넥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젊은이들의 행동과 제스처들의 기억, 거기에 수반되었던 욕망을 그 만큼의 영화적(정치적) 역량으로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소비의 회로에 놓인, 혹은 예술마저도 이러한 권력 속에 회수되어버리는 한계화 된 영화들을 다시 쫓고 뒤늦지만 새롭게 커넥션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동시대성을 사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게 이장호의 <바보선언>이 여전히 의미 있게 동시대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