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쉘 바스키아: 더 레이디언트 차일드
- 감독
- 탐라 데이비스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장미셸 바스키아
1.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연재를 시작한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우리가 만들 에세이 필름의 제작비는 한푼도 모이지 않았다. 투자자나 제작자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시작할 때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전개에 아연실색한 정연씨는 실망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지돈씨, 어쩌죠. 게다가 연재 조회 수는 매회 마다 정확히 반토막이 났고 이렇게 계속 쪼개진다면 쿼크 입자 수준까지 내려갈 지경이었다. 정연씨, 꼭 돈이 있어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요. 내가 말했다. 로저 코먼이나 로버트 로드리게즈를 떠올려봐요. 나는 로저 코먼이 첫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상기시켰다. 로저 코먼은 본인이 제작한 첫 영화 <해저에서 온 괴물>(1954)을 찍기 위해 지인들에게 투자금 개념으로 돈을 받아냈다. 조건은 성공하면 러닝 개런티까지 더해서 돌려주겠다는 거였다. 심지어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에게도 임금을 주기는 커녕 돈을 받았다. 로저 코먼이 와이어트 바니에게 물었다. 바니. 자네 전에 시나리오 팔아서 얼마 받았나? 4천 달러요. 좋아! 그럼 2천 달러만 투자하게. 감독으로 데뷔시켜줄게. 그러니까 영화는 주식 투자와 다를 바 없다. “투기 시대의 피투자자 정치Investee Politics in a Speculative Age”인 거죠. 금정연이 손 따옴표를 그리며 말했다. 지돈씨가 제게 영감을 줬네요. 금정연에 의하면 벨기에의 철학자 미셸 페르Michel Feher는 이렇게 말했다. 금융화된 “에이전시”의 노동자 주체는 신자유주의의 주체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주체가 임금을 받고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라면 동시대의 주체는 자산을 평가받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야한다. 아마존이나 우버 같은 기업을 보라. 지금 당장은 이윤이 낮거나 손해를 봐도 주가는 치솟는다. 핵심은 상품 판매를 통한 이윤이 아니라 낙관적인 미래를 생산하는 프로젝트의 실행이다. 바로 이게 모든 예술-창작의 원리지요. 특히 영화. 그런 의미에서 미래의 자본주의가 유희 자본주의화 될 거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아……? 이제 우리의 포트폴리오-연재를 관리해야 할 때가 왔네요. 2. 포트폴리오 혹시 잊은 사람들이 있을까봐 말하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은 에세이 필름을 제작하기 위한 시나리오 또는 트리트먼트다. 단지 “에세이”라거나 칼럼, 아니면 영화에 대한 수다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우리는 21세기 한국 영화가 어쩌면 갈수도 있었을 상상의 경로를 민속지적 관점에서 기억하고 복원하는 오디오-비주얼-에세이 필름을 제작하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고 이 영화의 감독은 금정연이 될 예정이다. Lost Korean in Korean cinema 감독 금정연 시나리오 금정연 목소리 금정연 제작 금정연 편집 금정연 … .. Thanks to 정지돈… 이게 내가 (미쉘 페르의 용어로 말하면) 추측하고Speculative 투기하는Speculative 미래다. 문제는 금정연이 영화감독을 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 상업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을 때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금정연이 영화감독까지 탄탄대로를 밟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우리랑 연락 끊지 마요, 정연씨, VIP 시사회에서 강동원 옆에 앉혀줘요, 정연씨, 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금정연은 고개를 저었다. 지돈씨, 저는 영화 감독이 될 생각이 없어요. 왜요, 왜요. 정연씨가 아니면 누가 감독해요? 누군가 하지 않을까요… 어느 글에서 쓴 적 있지만 금정연은 야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기다리는 유형의 사람이지 쟁취하거나 애쓰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서평가가 됐고 어쩌다보니 편집위원이 됐으며 어쩌다보니 시나리오 작가도… 그렇지만 영화감독은 어쩌다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감독이 되기 위해선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감독의 인성에 대한 걱정 없이 영화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직업으로서의 영화감독은 도달하기 힘들 뿐 아니라 유지하기도 힘들다. 어떤 감독들은 이 과정에서 종종 맛이 가기도 하고(이에 관한 내용은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시그마북스, 2010)를 참고할 것) 맛이 간 상태로 영화를 만들어 세계에 거대한 똥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게 바로 내가 금정연이라는 장외 주식에 내기를 건 이유다. 미셸 페르는 말했다. 투기자본주의 시대에는 노동조합과 다른 종류의 저항이 필요하다. 그것은 투자를 미래를 저당잡히는 행위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피투자자들의 힘을 거대하게 조직해 그들에게 투자하지 않고서는 체제가 유지될 수 없게 만드는 거라고… 다시 말해 <나랏말싸미>가 잘 되기만 하면…… 그러나 영화 개봉과 거의 동시에 우리는 증권거래소의 통보를 받았다. 상장 폐지. 우리 중에 유일하게 주식을 하는 소설가 오한기는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저었다. 잡주에 투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잡주? 금정…? 참고로 한기씨는 공격적인 주식 투자로 한푼도 벌지 못했고, 요즘은 일론 머스크가 나오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설치류를 닮은 어느 공무원이 도지코인에 투자했다가 전재산을 잃고… 일론 머스크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가 탄 스페이스X의 민간 우주선에 숨어들었다가 화성에서 온 외계인을 만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3. Secret Lives of Great Filmmakers 금정연 King jung yeon 1981. 9. 2. ~ 국적 대한민국 별자리 처녀자리 대표작 <커피와 담배와 영화>, <아무튼 택시 드라이버> 그외 다수 말말말…. “Saram salryeo yeogi saram itseoyo.” 영화계의 전설에 따르면 금정연이 처음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한 것은 영화평론가 겸 영화감독 정성일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성일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연재 중이던 금정연의 칼럼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을 눈여겨봤다가 신인 감독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추천했다. “금정연에게 맡겨봐. 마감을 칼같이 지켜.” 4. 얼굴들 감독의 얼굴이 아니야. 금정연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을 찍을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말했다. 왜? 봐봐. 친구가 금정연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감독들의 이름을 검색창에 차례로 입력했다. 박XX, 김XX, 이XX …. 차이를 모르겠어? 무슨 차이? 금정연과 한국 영화 감독들의 관상 차이. ……. 나는 금정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정연씨, 정연씨는 영화감독 관상이 아니래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정연씨는 그 말을 듣고 심각해졌다. 그러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어쩌죠? 제 남은 인생은 어떡하구요. 우리 나윤이의 앞날은…? 나 역시 심각해진 건 마찬가지였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금정연의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관상 문제가 터진 것이다. 관상이라니, 21세기 메타버스 시대에 무슨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란 말인가. 그러나 나와 정연씨는 우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관상의 문제는 얼굴의 문제이며 얼굴은 언어와 함께 영화의 핵심이자 동시에 제거되어야 할 형상,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스펙타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옵시스! 정연씨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예요? 미메시스!! 그건 또 왜…? 지돈씨, 아직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머의 위버 마리오네트와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론을 거쳐 영화의 형상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무슨 말인지?? 인간의 뇌에서 얼굴 인식 매커니즘은 가장 고등한 기능 중 하나예요. 영장류의 뇌 하측두엽에는 얼굴에만 반응하는 영역 여섯 곳이 있습니다. 이를 페이스 패치Face Patch라고 해요. 각 패치들은 부분 기반 관점과 전체론적인 게슈탈트 원리를 결합해서 얼굴을 검출하고 구성하고 식별합니다. 어떤 패치는 얼굴의 방향에 반응하고 어떤 패치는 모양에 반응해요. 더 흥미로운 건 내측두엽에는 사람의 이미지에만 반응하는 신경세포 집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중 한 세포는 유명 인사의 얼굴에만 반응해요! 예를 들면… 일론 머스크! 중요한 건 영화가 일종의 얼굴 패치라는 사실입니다. 재현이 중심이 된 영화 속의 얼굴은 특정 문화권의 얼굴을 뇌에 업데이트한다는 거죠. 패치를 설치한 것처럼요. 연재 초기에 했던 이야기 기억나세요? 모든 씨네필은 자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자국어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어는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니까, 모든 감독들이 무성 영화를 그리워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화라는 예술의 핵심처럼 여겨진 얼굴 역시 사실은 영화에 이질적인 요소예요. 특히 스펙타클로서 재현된 얼굴은 더욱 그렇죠. 제가 라쿠 라바르트와 롤랑 바르트, 고든 크레이그와 브레송을 말한 이유를 이제 알겠죠? 필립 라쿠 라바르트의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연극에서 무대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스펙타클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은 오직 목소리, 낭독만으로 전달할 수 있다. 라쿠 라바르트에게 미메시스란 어떤 장면의 모사 또는 재현이 아니라 현시다.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만드는 것. 이러한 실천을 위해서 형상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현이란 욕망의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들로 붐비는 거추장스러운 형상화이다. 즉 그것은 알리바이의 공간이다.” 형상화가 재현이 아닌 즐거움으로서의 욕망이 되기 위해서는 “모방적 구조가 아닌 도표적 구조”로 드러나야 한다. 영화는 그럴 때에 진정 형상적인 것이 된다. 20세기 영국의 배우이자 연극연출가 고든 크레이그는 연극이 사회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사회를 창조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1) 배우의 움직임은 상징적인 동작만으로 제한되고 2) 얼굴에 가면을 씌우며 3) 종국에는 배우를 인형으로 대체할 것. 로베르 브레송 “모델들. 그들은 겉으로는 기계적이 되었지만, 내적으로는 변한 것 하나 없이 순진무구하다.” 그러므로 비약하면, 정연씨가 말했다. 우리의 에세이 필름은 영원히 지금 여기서 씌어져야 합니다. 기록, 확인, 재현, 묘사의 조작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수행동사라고 부르는 것, 정확히 말해 발화하는 행위 외에 어떤 언표도 가지지 아니하는 그런 진귀한 언술적인 형태. 삶은 영화를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영화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입니다. 이른바 포스트-얼굴Post-Ulgul! 응? 지돈씨 대략 이런 내용으로 이번 연재는 마무리 해주세요. 음… 더 자세히 설명해야 되지 않을까요? 모르겠어요? 알듯말듯… 그럼 제가 다음 연재 때 보충할게요. 정말요? 어쩌면…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김경식 옮김, 2000, 열린책들)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로버트 쉬네이큰버그, 정미우 옮김, 시그마북스, 2010) 『텍스트의 즐거움』(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무대』(필립 라쿠-라바르트, 장 뤽 낭시, 조만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통찰의 시대』(에릭 캔델, 이한음 옮김, 알에치코리아, 2014) <고든 크레이그의 연극예술론>(정하니, 2018)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로베르 브레송, 오일환, 김경온 옮김, 동문선, 2003) “Movements of Counter-Speculation: A Conversation with Michel Feher”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movements-of-counter-speculation-a-conversation-with-michel-feher/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2016년은 내게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될 한해다. 현실 세계에서건 극장에서건, 그동안 발화되지 않았든 혹은 쉽게 간과되었던 여성의 목소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울림으로 다가왔고 이러한 흐름이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의 나에게도 큰 감흥을 주었던 것 같다. 2016년 한해 사사롭게 마음에 품었던 영화 중 많은 작품이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거나 여성의 서사에 보다 주목한 작품들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 엘르 >와 < 아쿠아리우스 > < 아가씨 >와 < 줄리에타 >가 그런 작품들이다. 다시 한번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호흡을 맞춘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호연이 인상적이라는 점에서 < 퍼스널 쇼퍼 >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만 이 영화와 <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 그리고 < 곡성 >은 불균질한 요소들의 충돌과 결합으로부터 생성된 미스터리한 기운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 패터슨 >은 영화의 리듬감이, <룸>은 스토리텔링이 인상적이었던 영화였고 드라마 <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 >은 아이디어와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만 같은(그러나 쉽게 일어나지 않는) 불길한 무드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사사롭게 고백하자면, 리스트를 꼽기 전에 < 비밀은 없다 >를 보았다면 나는 주저 없이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 대신 이 영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손예진의 폭발적인 연기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한국 여자’에 덧씌워진 이미지를 사정없이 깨부수는 동시에, 한국 여성 캐릭터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멋진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지면에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묶인 영화들 중 가장 과격한 영화라고 할 만하다. 201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중 최고의 논쟁작이었던 < 엘르 >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감독 폴 버호벤이 할리우드에서 자국으로 돌아가 만든 < 블랙북 > 이후 10여 년 만에 연출한 장편영화로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 < 베티 블루 37.2 >(1986)의 동명 원작을 집필한 프랑스 작가 필립 지앙의 소설 「오...」(2012)를 영화화한 <엘르>는 폴 버호벤이 원래 미국에서 촬영하려 했던 작품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투자자이든 배우이든 이 영화에 참여하는 데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버호벤은 유럽으로 눈길을 돌려 원작의 무대이기도 한 프랑스에서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엘르>를 보면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불륜, 강간, 관음, 사도마조히즘, 폭력. 온갖 종류의 금기에 노골적으로 현미경을 들이대는 이 영화는 미국인들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모험심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여주인공이 괴한에게 광폭하게 강간당하는 첫 장면부터, 시나리오를 덮어버린 이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 엘르 >는 미쉘(이자벨 위페르)의 비명으로 포문을 연다. 그녀는 복면을 쓰고 집으로 침입한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한다(사건은 암전된 화면 속에서 진행되고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괴한은 유유히 사건 현장을 떠나고, 남겨진 미쉘은 잠시 몸을 추스르더니 의연한 얼굴로 입었던 옷을 쓰레기통에 넣고 깨진 접시를 치운다. 그리고 목욕을 하며 다리 사이에서 흐르는 피가 섞인 거품을 바라본다. 이 충격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하나의 질문을 제기한다. 누가, 왜 그녀에게 그런 짓을 했는가? 아직도 미쉘의 곁을 맴도는 전남편, 미쉘과 불륜 관계에 있는 친구의 남편, 미쉘에게 자꾸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는 옆집 남자, 게임 회사 대표인 미쉘에게 사사건건 불만을 털어놓는 부하 직원. 모두가 조금씩 의심스럽다. 미쉘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주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엘르>의 초반부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띤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누가 범인일지 짐작해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범인의 정체를 추리하는 건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엘르>의 핵심은 ’그 여자’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미쉘이라는 인물의 욕망과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쉘의 삶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연쇄살인범이고, 어머니는 철이 없다. 전 남편은 제 앞가림을 못 하고 어리숙한 아들은 여자친구가 낳은 다른 남자의 아이에게 집착한다. 불륜 관계에 있는 친구의 남편은 직장에서건 밖에서건 발정 난 동물처럼 추근대고 회사의 남자 직원 중 누군가는 미쉘이 게임 캐릭터에게 강간당하는 영상을 단체 메일로 뿌린다. 어쩌면 삶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는 다양한 시련들 사이로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처럼 사뿐하게 걸어나가는 미쉘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 엘르 >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미쉘은 선택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사회가 부여한 역할은 온갖 괴물이 출몰하는 1인칭 게임 속 주인공이지만, 그 역할을 거부하고 스스로 게임의 콘솔을 잡은 플레이어가 되길 욕망하는 느낌이랄까(그런 점에서 시나리오 에이전시의 대표였던 원작 소설 속 미쉘의 역할이 게임 회사 대표로 바뀌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일례로 이 영화에서 미쉘이 가장 먼저 내리는 선택은 경찰에 성폭행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다. 기겁하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경찰하고 엮이기 싫어. 이 얼간이 때문에. (‘연쇄살인범의 딸’이라는 오명 때문에) 내 인생을 재건하려고 정말 힘들게 싸웠어.” 그리고 덧붙인다. “미친놈은 잡아야지. 미친놈 해결하는 건 내 전공이야.” 그렇게 미쉘은 시스템보다 손도끼와 스프레이의 힘을 더 신뢰하는 여자다. 그 선택이 때로는 비윤리적이고 상식과 동떨어져있다 해도, 중요한 건 그녀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이길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임을 깨부수고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 믿는 폴 버호벤의 고약한 취향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성모상을 옮기는 옆집 남자를 창문으로 엿보며 자위를 하고, 성폭행범이 밝혀진 뒤에도 그와 은밀한 게임을 벌이며 사도마조히즘적인 욕망을 펼쳐 보이는 이 여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금기시되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펼쳐 보이며 관객을 난감한 상황으로 밀어 넣는 폴 버호벤의 장기는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미쉘로 분한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는 그녀의 근작 가운데서도 최고다. “이처럼 변태성을 탐험하는 작업을 하려면, 기쁨과 창의성을 가지고 (감독과) 저 멀리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이런 악보에 장단을 맞출 수 있는 배우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처럼, 이자벨 위페르는 스릴러와 블랙코미디를 오가며, 냉철한 커리어우먼과 비밀스러운 욕망을 지닌 여성을 넘나들며 폴 버호벤의 변화무쌍한 장단에 기꺼이 ‘놀아’난다. 비틀린 욕망을 지녔다는 점에서 < 엘르 >의 미쉘은 역시 그녀가 주연을 맡았던 < 피아니스트 >의 에리카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도 있는데, 하네케의 영화가 에리카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면 버호벤의 <엘르>는 욕망의 주체로서의 미쉘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느낌이다. 한편 < 엘르 >는 게임의 규칙을 아는 이들만이 헤아릴 수 있는 은밀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영화다. 미쉘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빠르게 습득한 뒤, 그녀가 매 순간마다 각기 다른 인물들과 나누는 시선의 교환을 좇는 재미가 이 영화엔 있다. 특히 모든 등장인물들이 미쉘의 초대로 한자리에 모이는 크리스마스 파티 장면이 압권이다. 이 부르주아들은 점잖게 차려입고 샴페인 잔을 부딪히지만,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들의 정체가 불륜남, 얼뜨기, (아마도) 강간범-정체가 밝혀지기 전이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우스꽝스러운 난장의 한복판에서 오직 미쉘만이 고고하다. 파티의 기저에 은밀하게 흐르는 욕망과 비밀스럽게 구축된 관계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자에게 은밀한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미쉘의 장단에 놀아난다. 이토록 야심만만하게 게임의 완전한 지배자가 되려 하는, 지배자가 되기 위해 때로는 괴물이 되기도 서슴지 않는 여성 캐릭터를 또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 폴 버호벤의 다음 영화는 < 블랙북 >과 <엘르>만큼이나 간극이 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지운 감독의 < 악마를 보았다 >에서 발견된 건 비단 인간의 내재된 흉폭성과 잔인함 그리고 그간 터부시 되어왔던 고어의 미학뿐만이 아니었다. 이 영화로 처음 상업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 모그 ’라는 괴물 신인 영화음악가의 등장 또한 반겨야 했다. 그 진한 피칠갑의 향연 속에서, 또 뜨겁고 차디찬 복수의 공방 속에서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두 남자를 애달프게 지켜보고 대신 눈물 흘려야 했던 모그의 비정하면서도 감성적인 사운드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공명이었다. 이 논란 많은 영화에서 만장일치의 갈채를 이끌어낸 모그의 영화음악은 강렬하고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이미 정점에 올라선 탁월한 베이시스트로서 특유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솜씨였다. 프로 연주자이자 아티스트였던 그는 재즈와 라틴, 록과 블루스, 일렉트로니카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리쉬하고 새로운 시도들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어려서부터 여러 환경 속에서 본능적으로 연주해온 덕택에 탄력적인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을 지녔으며, 야성적인 그루브 밑에 숨겨진 애수와 특유의 서정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구사했다. 베이스라는 악기의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그의 앨범들은 트렌디한 감각과 열정, 실험과 모험이 가득한 퓨전의 정수였고, 낭만의 끝이었다. 음악 시장이 눈에 띄게 개편되던 2000년대 중후반 몇몇 단편들과 다큐를 시작으로 영화음악에 뛰어든 그는 임필성 , 김지운, 장준환 , 황동혁 등의 감독들 눈에 띄었고, < 플래닛 비보이 > 이후 5년이 갓 넘은 시간 동안 착실히 필모를 쌓아가며 자신의 지장을 확실히 남겼다. 길이와 장르, 공동작업과 국적을 가리지 않은 전천후 행보였다. 모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Hot)한 영화음악가다. 2010년 <악마를 보았다>를 필두로 2011년 < 도가니 >, 2012년 < 광해 >, 2013년 < 화이 >로 데뷔 이후 4년 연속 국내 영화 시상식 음악상을 거머쥐었고, <도가니>와 <광해>는 도합 1,700만에 이르는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많은 공감대를 얻어냈다. 게다가 < 라스트 스탠드 >로 한국 영화음악감독 최초의 할리우드 상업영화 스코어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을 사로잡고, 영화감독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비밀이 궁금했다. 최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하셨고, 역시나 꽤 센 영화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하드보일드와 스릴러 장르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일로서 하려면 영화라는 거 자체가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잖아요? 진행되기 위해서 투자도 필요하고. 네임 벨류 있는 감독이 네임 벨류 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드림팀을 짜듯이 하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처음 했던 게 <악마를 보았다>였어요. 그때 이런 배우와 이런 감독이 아니면 평생 못해보겠다 싶었는데, <화이>도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볼 때 이런 조합이 아니면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캐스팅 전에 먼저 시나리오를 받아보신 건가요? 아뇨, 캐스팅이 어떤 어떤 분들이 되었다는 것만 대략 알고 (있었고), 그 전에 < 카멜리아 프로젝트 > 중 ‘러브 포 세일’을 장준환 감독님과 함께했었기 때문에 왕래가 간혹 있었어요. 근황을 묻다가 <화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책 보내줄게’ (해서 작업하게 되었죠). 장준환 감독님은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소개로 알게 되었어요. 홍경표 감독님은 영화 일 하기 전부터 지인을 통해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러브 포 세일> 때 소개받고 작업을 같이 하게 됐죠. 장준환 감독님과 작업은 어떠셨어요? 작업 스타일이나. 감독님들이 다 다르세요. 작업하면서 감독님들이 연기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것들이 있고, 음악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디렉션을 어떻게든 잘 따르려고 많이 노력했죠. 기대치라는 게 생기니까, 그 영화의 기대치 때문에 더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는 거고, 제가 저를 더 괴롭히게 되죠. 이 정도면 됐는데 하는 지점이 점점점점 상향 조정 되다 보니까. 부담감이 좀 있으시겠어요. 그죠. 끝나고 나면 허탈해 하고. 장준환 감독님이 좀 천재과라 하잖아요. 꼼꼼하게 디렉팅 하시는지? 네, 되게 꼼꼼하신 편이에요. 장준환 감독님은 지점 지점마다 집착이 강하세요. 그래서 그 집착을 채워주는 게 제일, 늘 어려웠어요. <화이>에서는 한 번 보면 안 보이는 부분들이 되게 많아요. 저도 여러 번 보다가 발견한 지점들이 되게 많고요. 편집본을 보면서 여기서 왜 이 컷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이 소리가 왜 나는 건지. 소리까지도 (신경을 썼죠). < 지구를 지켜라! >때도 한번 보여주셨지만 상징적인 것들을 좋아하세요. 뭐 (예를 들어) <화이>에서는 탄피가 떨어져서 굴러가는 씬(중반의 병원)에서 보면 사운드 디자인하고 믹싱할 때 탄피 굴러가는 소리만 제가 몇 시간을 찾고 그랬어요. 그게 굴러감과 동시에 화이 생모를 죽이러 오는 살인청부업자의 휠체어 바퀴 소리가 딱 물리는, 그런 묘한 상징적인 지점들을 많이 만들어놔서요. 그 음향을 피해서 또 음악은 존재를 해야 하고. 괴물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괴물이 된 자와, 괴물이 되어가는 자가 싸우는 이야기인데. 그전에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어요. 음악이 전체적으로 강하고 파괴적일 거 같은데 그보단 애수 어리고 서정적인 거 같습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감독님이랑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서 그 주제들로 두 시간 동안 화면 안에서 관객들에게 밀어붙이면 불편한 것들이 많이 생기고 그러니까, 음악으로 이런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거죠. 귀에 들리는 건 멜로적인 음악이 많이 들리는 거고, 그 사이 사이에는 미니멀한 음악이라든지, 제 나름대로 장치적으로 구성해놓은 음악들이 전체적인 드라마와 사건을 끌고 가는 데 힘을 보태주는 거죠. 처음에 설계를 할 때는 작정하고 비틀려고 많이 설계를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극장에서 두 시간 동안 그 뒤틀림을 볼 때, 상업 장편영화다 보니 대중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어쨌든 <화이>라는 영화가 소년이 킬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으로 슬픈 인간의 모습이라 감정적인 지점을 계속 건드릴 필요도 있었어요. 관객들이 호응할만한 상황을 만들 필요도 있었고요. 주제가를 요조 가 작사 작곡을 했는데요, ‘앨리스 인 위어드 랜드(Alice in weird land)’요. 그건 어떻게 선택하게 된 건가요?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제가 요조 씨에게 의뢰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빠져있던 70~80년대 영화에는 주제가라는 게 있잖아요. 아카데미에서도 주제가상이란 걸 따로 주고 스코어 부문이 따로 있는데. 제가 주제가를 작업한 적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근작 중에도 007를 보면 잭 화이트가 주제가를 따로 작업하고, 스코어는 데이빗 아놀드가 맡고 했었는데, 그런 것처럼 곡을 써서 가수에게 주는 것 보다는 장면을 보여주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곡 작업을 해보자, 가사도 이렇게 써보고 하면서. 그래서 ‘위어드 랜드’라는 게 이상하다 못해 공포감을 주는거잖아요. 공포감을 주는 이상한 느낌의 영화 <화이>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앨리스’가 소년 ‘화이’의 얘기를 담아낸 거죠. 그 음악이 들어가는 씬에 그런 스타일의 곡이 필요했기 때문에, 요조가 작사 작곡을 한 것을 제가 편곡했어요. 그 장면과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전체적인 편곡이나 악기 사운드를 통해 배가하려고 했죠. 엔딩 크레디트의 그림들과 곡이 잘 어울렸어요. 장 감독님이 소년 감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어요. < 아저씨 > 같은 영화 보면, 인간 감성이 별로 안 느껴지는데, ‘화이’라는 캐릭터는 그렇지만 항상 소년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킬러와 소년 감성을 교차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교복 입고 그렇게 동년배 아이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주니까, 교복을 입고 총을 쏘는 장면 같은 것들도 뒤틀리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생기는 거잖아요. <화이>는 음원으로만 출시됐어요. CD로는 발매 계획이 없으신 건가요? 결국은 CD를 사려고 돌아다녀도 살 곳이 없더라고요.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상점이 안 보이다 보니까 별로 그렇게 의미가 안 생겨서요. <화이> 같은 경우는 비매품으로 소량 만들긴 했어요. 사운드트랙 CD들이 말씀하신 대로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기가 힘들잖아요. <광해>같은 경우는 벌써 절판이 됐더라고요. < 회사원 >이나 < 남자 사용 설명서 >는 음원조차 없고요. 음원을 출시할까 생각을 했었는데요, 영화 자체가 어느 정도 흥행을 하고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동의를 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회사원> 같은 경우는 그 당시에 음악저작권협회와 문제가 있을 때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 배급사에서 약간의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은 하더라도 나중에 (하자 했어요). 근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김지운 감독님과는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단편부터 쭉 하셨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호흡이 잘 맞는 거 같으세요? 제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공부가 많이 돼요. 영화적인 설명이나 디렉션을 굉장히 잘 해주세요. 상황 상황, 여기서 필요한 게 무엇이다, 라는 걸 잘 가르쳐 주시죠. 일단 제 영감이나 상상력에 맡겨 놓다가 그게 일치하는 부분은 그냥 가고, 어떤 부분들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프로페셔널한 것들을 체크해주세요. 저 같은 아티스트 베이스가 있는 영화음악감독들은 가다 보면 한없이 옆으로 빠질 수 있는데 그걸 잡아주시죠. 장영규 감독님도 김지운 감독님과 작업을 하셨는데, 굉장히 많이 들려주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레퍼런스 같은 게 확고하신 듯하고요. 김지운 감독님은 음악을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찾아 들으시면서, 이런 류의 음악을 꼭 써보고 싶다, 클래식도 이런 건 어떤 장면을 찍을 건데, 거기 쓰면 좋지 않겠냐, 미리부터 염두하는 부분도 있어요. 찍어놓으시고 나서 이렇게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이런 것도 있고요. 상업 데뷔작이었던 <악마를 보았다>는 수위가 셌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으셨을 때부터 애초에 그렇게 센 수위를 예상하셨나요? 전 그게 그렇게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어할지 몰랐어요. 제 입장에서는 인간의 내면을 미학적으로 다른 지점에서 다뤄주는 것들, 예전에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 같은 것도 살육하는 게 적나라하게 나오진 않지만, 주인공의 악마와도 같은 패륜성을 끝까지 보여주잖아요. 그런 걸 현실로서 접할 수 없고, 문학과 같은 예술로 접할 수 있고, 또 그걸 비주얼의 세계로 옮겨오기도 하는데, 사진과 그림도 그런 게 많이 있죠. 그런데 유독 영화이다 보니까 더 생생하게 다가갔던 거 같아요. 이만하면 상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저도 점점 바뀌게 되는 거 같고요. 대중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나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절감하는 거죠. 그러니까 <악마를 보았다>도 피드백을 통해서 그게 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못 보겠더라’ 하지만 난, 왜 못 보지? 그런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오페라를 지루한지 모르고 봤는데, 어떤 사람들은 보다 자기도 하듯이 사람들마다 예술을 이해하는 폭이 다양하고 다르니까요. 그럼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서 감독님의 대중적인 수위가 일반 대중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신 거잖아요. 그 이후에 음악 작업에 있어서 영향이 있었던 건가요? 그죠, 작품을 보는 시각이 계속해서 저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 거 같고요. 계속 환경으로부터 생기는 학습이 쌓이니까요. 그래도 상업영화 첫 작품에서 그런 충격이랄까, 그런 게 왔었네요. 네, 전 잘 될 줄 알았어요. (웃음) 그 영화가 <아저씨>와 1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는데,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하면 <아저씨>가 2위가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여자가 아니다 보니 원빈 씨가 그렇게 멋있다는 데이터도 없었고요. (웃음) 이 영화도 영화가 센 만큼 음악이 무척 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화이>처럼 감성적인 접근은 하신 게 있으신 거 같더라고요. 보사노바 음악도 사용되었고요. 음악 감독으로서 일반 고어무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시나리오 때부터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일반 고어무비와는 다른 지점들이었어요. 고어무비에서는 인간의 내면 같은 거 생각도 안 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주제는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 샘솟아 나오는 처절한 복수심 때문에 잘근잘근 한이 풀릴 때까지 몰아붙이는 영화거든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악을 구체적인 형상화로 잘 만들어 놓은 영화였고, 그걸 전달해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내면이 가지고 있는 악도 슬픔의 한 종류죠. 그게 없으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면에서 그런 선과 악이 싸우기 때문에 그냥 법에 맡기자, 쟤도 인간인데, 그렇게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택하고 느끼는 지점으로 계속 복수하는 걸 찍은 거기 때문에 슬픔이 더 강하게 전달되도록 했고, 음악 자체가 멜로적인 끈적임을 많이 느껴지도록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의 제목은 <아열대의 밤>이었어요. 그래서 처음 음악 스케치 할 때는 열대의 후끈한 열기와 끈적함을 지점으로 삼았죠. 남미영화들 있잖아요. 전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이런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라는 영화가 < 성스러운 피 >였거든요. 그 음악도 좋고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렬함을 좋아해서요. OST 속지를 보면 ‘스릴러의 백미는 영화음악’이라고 적혀있는데, 스릴러 음악이 관객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기능적인 음악일 수도 있는데요, 어떻게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전에 음악을 하면서 다다르고 싶었던 지점이 형이상학적인 음의 배열과 어떤 리듬과 화성 같은 부분이었어요. 항상 스릴러 영화, 특히 고전으로 갈수록 히치콕 영화 같은 데 보면 클래식 쪽의 현대음악, 컨템포러리 같은 그런 기법부터 해서 재즈 쪽의 프리뮤직 같은 스타일도 많이 쓰이니까, 그런 영화들을 보게 되면 제가 동경했던 음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흥미가 있었죠). 버나드 허먼의 < 택시 드라이버 > 음악을 들으면 되게 격조 높고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가다가 갑자기 형이상학적으로 틀어지면서, 그때 주는 엄청난 충격과 파장이 있잖아요. 그래서 <악마를 보았다> 음악도 되게 서정적으로 가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뒤틀기도 하고요. 녹음할 때도 일반 클래식 녹음할 때 같이 따뜻하게 녹음되는 걸 최대한 피하려고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가 할 때 쓰이지 않는 마이크나 장치들을 사용했어요. 들을 때 뭔가 이렇게 기분이... 나빠진다기보다는 불편한 지점들이... 왜 그랬을까?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과도한 리버브 사용이라든지. 과도한 저음의 사용이라든지. 그런데 영화음악이 아니라면 제가 따로 음반 작업을 하면서 그런 작업을 하기는 힘들어요. 어떤 스릴러를 좋아하세요? 80년대 이전 스릴러들이 많이 참고가 되었다고 하셨던데요. <택시 드라이버>도 있고요, 히치콕 영화들 많이 좋아해요. 버나드 허만이 작업한 스코어가 있고 모리스 자르가 작업한 <토파즈> 같은 작품이 있는데, 전 버나드 허만 보다는 모리스 자르를 더 좋아했어요. (히치콕의) 후기 음악들이 어떻게 보면 더 낭만적인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 프렌치 커넥션 >도 좋아해요. 그 영화에선 재즈에서 사용되는 악기들을 가지고 형이상학적인 음들을 많이 만들었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 큐들을 짧은 편입니다. 영화음악은 그런 식으로 시간의 제약이 강한데 그에 대한 한계나 불편함은 없으셨나요? 처음에는 불편하다 생각을 했는데요, 나중이 되니까 그에 대한 재미가 있더라고요. 도전이 생기니까요. 되게 짧게 큐를 구성해놓고 효과가 극대화될 때 내가 작업을 잘하고 있구나. (웃음) 40여 곡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요, OST에 다 실으신 건 아니시죠? 네, 엠비언스 같은 음악들을 많이 썼기 때문에 그런 곡들을 감상하시라고 내놓기는 좀 그렇죠. 시나리오를 먼저 받으셨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에는. 보통 촬영 중에 편집이 끝난 다음에 작업을 하시는 편이세요? 아니면 시나리오 받자마자... 그것도 영화마다 다른 게,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게, 상업영화로서는 심플한 상황도 아니고 김지운 감독님도 스릴러를 처음 도전하시는 거니까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작업을 하면서 감독과의 정서를 상의하며 여기선 유혈이 낭자한데, 이런 느낌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음악 설계가 먼저 들어갔죠. <라스트 스탠드> 같은 경우는 파이널 편집이 다 끝난 상태에서 (들어갔어요). 할리우드 영화 같은 경우는 특히 음악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가기 때문에 신나게 처음부터 끝까지 팝콘무비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 음악도 마찬가지로 연속성 있는 느낌 필요했던 거죠. 영화마다 다 다른 거 같아요. 어떤 방식이 유리한지는 감독님과 제가 고민해서 정하게 되는 거죠. 그다음 작품은 좀 편한 작품을 하시나 했더니 <도가니>였습니다.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작품이었는데, 감정적으로 지치시지는 않았는지요? 음식도 그렇잖아요. 막 매운 걸 먹고 나서는 다신 먹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또 다음 날 되면... (웃음). 굉장히 징하게 작업을 하고 나서 한동안 허탈해 하다가 <도가니> 시나리오를 보는데, 내가 아직 완전 연소가 안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게 있구나. 결혼도 안하고 아이들과 가까이 있을 일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도가니>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까 이 안에서 막... <악마를 보았다>를 읽을 때 같은... (웃음) 또 다른 <악마를 보았다>를 보는 느낌. 감독님들은 다 다르신 데, 저 혼자 <화이>까지 ‘악마’ 삼부작을 작업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발극이고 사회 드라마라서 톤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초반에는 스릴러 느낌도 나고, 후반의 법정 장면은 자칫하면 신파로 빠질 수도 있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과잉이 될 수 있는데, 음악이 절제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항상 음악을 부족하게 쓰는 영화가 좋지 않을까, 하는 편이에요. 특히 어떤 주제 자체가 엄청나게 센 파장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이요. <도가니>에서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스타일로 스케치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도가니>는 피아노곡이 많던데요. 네, 너무 레퍼런스를 받은 게 있으니까 그걸 치환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피아노로 치환하고, 기타라는 악기보다도 아이들과 매치시키기 좋은 악기가 피아노라고 생각해서 작업하고, 중간 중간에 약간씩 기타 연주를 넣었죠. 황동혁 감독님의 전작이 < 마이 파더 >였는데, 아무래도 신파에 대한 강박이 있었나요? <도가니>가 상업적으로 울리는 것도 필요한 작품이죠. 중요한 것은 실화를 다룬 거기 때문에 이 작품을 작업할 때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사람들의 아픔을 우리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요. 어떤 부분은 다큐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음악이 존재감 없는 것도 좋겠다. 황동혁 감독님도 워낙 머리가 좋으신 분이라 수 싸움을 잘한 거 같아요. 다른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보다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많이 만들려고 하셨어요. 원작에서 보면 조성모의 노래라고 되어 있었는데, 영화에서도 직접 조성모의 ‘가시나무 새’를 넣으셨어요. 감독님의 의견이셨나요? 그건 황동혁 감독님이 소통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대중가요가 여기선 필요한 시점인데, 원작 책에도 조성모가 있으니 가시나무 새’를 쓰는 게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했던 거죠. 제가 <남자 사용 설명서>같은 영화에서는 선곡에도 관여를 많이 하게 되는데 <도가니>에서는 워낙 대중과 소통하는 지점이 필요해 (감독님이 직접 하셨고), ‘가시나무 새’ 뿐 아니라 노래방 룸살롱 장면이 있는데, (교직원들이) 여자들이랑 술을 마시고 흥건히 취해서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르는 장면도 모두 감독님의 선곡이에요. 가사와 정반대의 상황인 거잖아요. 실질적인 데뷔작은 단편 <멋진 신세계>였죠? 2006년에 작업하셨으니까요. 그땐 그런 스타일의 영화들이 나의 영화다, 라고 생각했었죠. (웃음) 그 영화가 개봉을 못 하고 < 인류멸망보고서 >로 묶이게 되었잖아요. 단편들을 모두 따로따로 작업하신 건가요? 네, 그 프로젝트가 변형이 많이 됐어요. 한재림 감독님까지 세 분의 감독님(김지운, 임필성)이 작업을 하게 됐다가 아무래도 일반 상업영화가 아니라 실험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성이기 때문에 투자가 흔들릴 때마다 상황이 많이 바뀌게 되었죠. 그래서 결국 <인류멸망보고서> 패키지로 나오게 된 거죠. 그럼 한 작품 끝나고 시간 지나서 또 한 작품을 하시고... 그럼 작품 간격이 굉장히 길게 있었겠네요. - 네. 뭔가 그런 영화들을 작업해야 내 삶이 진짜 예술을 하는 느낌도 들고, 몸도 더 건강해지는 거 같고. 회복도 잘되고... (웃음) 쉽지 않은 SF물, 좀비물도 있고 그랬는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것들이 매력적이었고요, 좀비물들, < 새벽의 황당한 저주 >를 보면서 이건 좀비물인데 이런 블랙코미디가 많이 생기고, 또 조지 로메로 감독의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같은 좀비물들을 보며 거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들 뽑아서 (참고했죠).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 형사들의 칠판 보셨죠? (벽면에 사진과 메모가 붙은)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거든요. 작업이 다 끝나면 꼴도 보기 싫고 그래서 다 버리지만요. 집착증 환자처럼 보드에다 영화라든지 OST의 관계도들을 점점점 그려 나가요. <화이>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데가 아닌, 저만 볼 수 있는 벽장 안쪽에 보드를 설치해서 매일 그거 들여다보면서 작업을 했어요. 또 우리나라 흥행 영화의 데이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놓고 이 영화와의 간극, 이것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 이런 걸 색깔로 해서 신파적인 요소가 강하다, 하면 빨강색. 이런 식으로 보드를 만들어 나갔어요. 감독님이 영화를 비주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지만 저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두 시간짜리의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한 큐가 끝나면, 쉼표를 길게 줄까 짧게 줄까, 아니면 끊지 않고 갈까를 설계를 해놓게 되죠. 여기서 여기까지는 최근 영화들이 클리셰들을 많이 써서 소통이 된 거 같으면 이번에는 클리셰를 좀 써주자. 그런 식으로. 단편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장편하고는 많이 다른 데, 그런 부분들이 어떠셨나요? 장편은 항상 대중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방금 말씀드렸던 복잡한 관계도를 만들어 작업을 하게 되는데, 단편은 오히려 관계도 없이 리액션만 가지고 할 수 있으니까 덜 정치적인 작업을 하게 돼요. 음을 덜 정치적으로 쓰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상업영화는 무서운 게 소수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드는 영화는 거의 없으니까요, 단편영화는 그렇지 않으니까 소수만 볼 수 있는, 소수에게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툭툭 던질 수 있는 기회인 거죠. 거의 프리토크와 같은 작업인 거죠. 그림 보면서 한 번에 보고 끝내버리기도 하고. 오히려 그런 게 덜 정교해도 더 맛이 있는 지점도 있어요. < 사랑의 가위바위보 > 같은 경우는 특이하게 음원이 출시됐습니다. 그런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만약 장편이었으면 하다 지칠 수도 있는 건데 단편이라 즐겁게 할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보다는 제 추억을 하나 남기는 걸로 (작업을 했죠). 그게 왜냐하면 <라스트 스탠드>로 김지운 감독님이나 저나 만신창이가 된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가볍게 해보려고 해서, (웃음) 풋풋한 느낌의 나의 기념품이 되었으면 하는 작품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있는데요, 특이하게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김준성 음악감독과 공동 작업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하계 되셨나요? 장영규 음악감독님 작업하시는 걸 보면 달파란 음악감독님과 공동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혼자 외롭기도 했어요. 그러다 김준성 음악감독님의 작품을 듣게 되었고, 저는 정식 음악 공부의 길을 걷지 않고 음악을 한 사람인데, 김준성 음악감독님은 클래식을 전공하셔서 뭐랄까... 저의 동경을 살 수 있는 분이었죠. 마침 저작권협회 관련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을 수도 있었고요. <광해>는 제가 먼저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저의 음악 포인트는 음악을 최소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의 기대치는 스펙터클의 끝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었고, 제가 해석했던 방향을 감독님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다크 나이트> 와 같은 해외 대작 영화들이 개봉을 하게 된 거예요. 결국 음악이 너무 많이 필요한 작업이 되어 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저는 이걸 빨리 마치고 <라스트 스탠드>를 하러 넘어가야 했고, 그래서 이럴 때 공동작업을 해보지 언제 해보겠냐는 결론에 도달했고요. 원래는 김준성 음악 감독님께 부탁드리며,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한테는 제가 요 정도까지 했으니까 이러저러한 분이 작업을 하게 되셨고 전 이제 사라지겠습니다,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그냥 같이 공동작업 하는 상황이 되어서 클래시컬한 사운드를 김준성 감독님이 하셨죠. <광해> 인트로를 보시면 완전히 제 스타일이고요,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악사들의 정서고, 중간중간 클래시컬하게 귀족 냄새가 나는 음악들은 죄다 김준성 감독의 작품이죠. (웃음) 영화 시작할 때 이병헌 이 손질 받던 장면에 나오던 음악도 꽤 클래시컬하게 들렸는데요. 그게 사실은, 전 그런 음악들은 그렇게 클래시컬하다고 생각 안하고요. 어떻게 보면 탱고나 유럽 변두리 지방 왈츠가 많이 가지고 있는 정서고, 정말 클래시컬한 건 오스트리아 느낌? 의 그런 음악들인 거죠. 맘 단단히 먹고 콘서트를 가야 할 거 같은 그런 음악이요. (웃음) 사극이었는데 애초에 국악은 전혀 고려 안 하신 건가요? 제 의도는 변두리 지방, 집시 클래식 느낌으로 다 밀고 가려고 했어요. 왜냐면 시나리오 자체에서 왕이 주인공이 아니라 광대가 주인공이고 광대가 왕의 자리에 앉으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전 그 재미를 음악적으로 배가시키려면 장중하거나 우리나라의 국악 같은 느낌보다는 약간 하이브리드가 필요한 게 아닐까. 제 해석은 그랬어요. 저는 이 작품을 사극이라 생각하지 않고, 일본 애니메이션 보듯이, 일본 애니메이션 보면 이탈리아 음악도 나오고 온갖 스타일이 나오고 그러잖아요. 어떻게 보면 할리우드 대작 느낌이 좀 들었어요. 클래시컬한 느낌. 김준성 감독님이 베이스가 단단하셔서 그런 걸 진짜 잘 잡으세요. 베이시스트였던 경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에 대한 감각이 좋으신 것 같아요. <화이>나 <도가니>, <악마를 보았다> 모두 현의 부분들이 굉장히 센 데, 오케스트레이터 작업은 따로 하시는 건가요? <악마를 보았다> 때는 제가 거의 다 했고요, 점점점 가면서 저와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과 나눠서 (하게 되죠). 저는 주로 피아노 건반에서 화성적으로 제가 구현하고 싶은 것들을, 일반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화성 진행을 눌러가듯이 만들고 그 후 현으로 치환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저와 같이 작업하는 음악팀 친구들 중에는 클래식 전공한 친구들이 있어서, 어쨌든 음악은 보는 관점이랑 접근하는 시선이나 지점에 따라서 다른 정서를 뿜어낼 수가 있으니까요. 처음엔 제가 작가주의적인 음악감독이 될 줄 알고 그렇게 살아야지, 하고 영화음악감독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너무 필요한 것들 많더라고요. 영화라는 게. 내가 좋다고 느끼는 지점보다도 남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많으니까요. 산업화, 기능화가 되어가는 거 같아요. 그렇죠. 점점 그게 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기능화에 대한 압박도 심해지고요. 그 스트레스를 어쩌면 단편으로 풀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단편으로 푸는 게 가장 건전한 방법인 거 같아요. (웃음) 이병우 음악감독님과도 약간 비슷한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음악을 시작할 때 많이 힘이 됐던 선배님들 중에 한 분이세요. 왜냐하면 그 분도 연주자였고. 연주자와 영화음악 모두 가장 호황일 때 활동하신 선배님이시죠. (웃음) 그런 선배 음악감독님들의 작업들을 많이 참고해서 작품마다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어서 작업을 하게 돼요. 이병우 감독님은 아티스트 베이스이지만 조영욱 감독님은 선곡과 프로듀싱 능력을 가지고 작업을 하시니까 그 분만의 시각을 작업하는 데 참고를 많이 하려고 하고 있죠. 달파란, 장영규 감독님은 또 다른 지점에서 오신 분들이고. 영화 나올 때마다 보면서 이런 한 수가 있었구나, 이런 것들을 확인하곤 해요.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라스트 스탠드>에 대한 질문인데요, 결과만 놓고 보면 많이 아쉬웠어요. 이정도 참패하리라고 생각하셨나요? 처음에는 이렇게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못했어요. <라스트 스탠드> 개봉이 1월 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개봉 전까지 수도 없는 총기사고가 일어나고 그 때 총기에 관한 모든 영화가 다 망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전주에 개봉한 영화 < 갱스터 스쿼드 >도 망하고 < 브로큰 시티 >도 잘 안되고. 그것 때문에 요즘 < 컨저링 >같은 영화의 붐이 일어난 것도 같아요. 더 이상 총은 사람들이보고 싶지 않다는... 제 입장에서는 어쨌든 총 쏘는 영화를 언제 해보겠냐 했었는데, 저도 서부영화를 동경하면서 자란 세대였고요. 그 영화 자체가 지극히 서부영화적인 상황이었어요. 말 없고 자동차 이런 식이었거든요.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정말 웨스턴 느낌이 납니다. 표현하고 싶었던 게, 21세기의 웨스턴 음악이란?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에 김지운 감독님이 영화에 대해 짧게 설명할 때, < 하이눈 >과 함께 비교해 주셔서 머릿속에 딱 들었던 생각이 옛날 서부영화음악 작곡가와 같은 스코어를 만들고 싶은데, 그런 스코어는 현대물에는 잘 붙이기 어렵기 때문에 전자음악과 잘 믹스된 새로운 웨스턴 음악을 해보자고 했던 거였어요. 흥행까지 잘 됐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웃음) 전체적인 음악을 들어보면 할리우드 음악 같아요. 큐들이 굉장히 길고, 스피디한 질주 씬에선 일렉트로닉도 나오고요. 엔딩 타이틀, ‘모그 심포니’에서는 오케스트라 작업도 하시고요. ‘모그 심포니’는 영화에 나오는 곡들의 하이라이트들을 다 모아서 리믹스 버전을 (만든 거죠). 요즘 음악 추세가 리믹스가 많이 나오잖아요. 예를 들면 다프트 펑크 앨범이 하나 나오면 리믹스 버전, 혹은 어레인지된 버전만 한 100개 이상 나오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쓰였던 큐를 잘 이어서 리믹스 버전 하나로 만들어서 마지막 엔딩롤 올라갈 때 쓰려고 ‘모그 심포니’를 OST에 집어넣었죠. 국내 영화음악과는 다른 거 같아요. 국내 영화음악은 큐들이 짧게 들어가는 데 할리우드 음악들을 길게 사용하고 있잖아요.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정서가 없잖아요.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건데, 워낙 그쪽 산업시스템이 글로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감정이란 것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동양에서 슬픈 것이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음악으로는 감정을 주는 것보다 속도감을 높여줘야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리고 동기부여 같은 기능들이 필요한 거고요. 한국영화들보다 훨씬 더 기능적으로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거군요. 그렇죠. 한국영화들이 훨씬 더 음악의 오리지널리티 쪽에 가깝고 할리우드에서는 어차피... 제일 어려운 게 그거예요. 저랑 감독님이랑 이렇게 하자 해서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고, 특히 음악 같은 경우는 임직원분들 중의 관리하시는 분들이 다 컨펌을 해요. 할리우드는 말이나 음악을 들려주고 시작하는 게 아니고 제가 항상 문서를 만들어요. 질문사항이 딱 있으면, 큐 24-A의 시작점에 대해서 모호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반성문 쓰듯이 글짓기를 해야 해요.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이런 건데 너희들의 생각이 그러면 요렇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그런 걸 다 글로 설명을 하고 작업을 해서... 완전히 논리네요. 논리적인 피드백을 거쳐서 음악이 나오게 되는. 그렇죠. 제가 그렇게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어요. (웃음) 아침마다 이메일을 열면 그런 몇몇 담당부서에서 답변을 달라는 메일이 와있어요. 그런 그 답변을 쓰고 작업실로 가면 낮 한 시쯤 돼요. 집에서부터 산타모니카에 있는 작업실로 가게 되는데, 한스 짐머의 작업실에 세 들어 있다 보니까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오전에 이야기하면 오후에는 다 와있어요. 그.. 산업의 첨병에는 항상 유통이 있는 거 같아요. 보도 듣도 못한 기타도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디서든지 오후에 다 와있더라고요. 그런 좋은 것이 있는 반면에 수많은 글짓기를... (웃음) 작가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될 정도였죠. 어휘력과 글에 대한 한계를 매일매일 절감했거든요. 제가 스마트폰, 구글링, 어플리케이션 같은 거에 되게 경계가 많았는데 바로바로 번역을 해주니까 다 쓰게 되더라고요. 거기서는 음악감독이 아니고 그냥 컴포져잖아요. 뭔가 어떤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거리도 생기고, 존경심도 부르고 그렇게 되는데, 컴포져 composer, er은 별로 그런 걸 수반 안하는 거 같아요. (웃음) 그냥 직책인 거 같아요. <라스트 스탠드>는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안 나왔고요, 해외에는 나왔는데 조금 늦게 발매가 됐더라고요. 영화 개봉이 좀 지난 다음에. 그 영화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어서 DVD 같은 게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참 사람 욕심이 특이한 게 존 카펜터 영화 같은 경우는 극장에서 보고 싶진 않은데, 꼭 비디오나 DVD, OST를 다 사서 모으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라스트 스탠드>도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존 카펜터 영화처럼 그런 컬트 레전드가 되어가고 있다, 좋은 거다, 고 하더라고요. 전 뭐 좋을 수도 있죠. 아티스트가 볼 땐 제가 작업한 영화가 컬트 레전드야... (웃음) 옛날에 80년대 그런 영화들 많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나 제작사는 극장에서 수입을 만들지 못해서... 어디 OST 오덕들의 차트를 보니까 그런덴 워낙 게임 OST가 많아서 전체 순위는 100위 중에서 13위 였는데, 지난주까지 <라스트 스탠드>가 영화중에서 3위였어요. 감독이나 제작사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라스트 스탠드> 음악 작업한 게 있거든요. 컬트스러운, 일반 할리우드 영화음악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들이요. 씨네21 인터뷰를 보면 뮤직 에디터의 필요성을 지적하셨어요. 뮤직 에디터란 정확히 어떤 직책인가요? 작곡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곡에 칼을 잘 못 대요. 원곡이 있는데, 영화의 편집에 따라 순서를 바꾸는 게 영화적으로 도움이 된다, 하면 그걸 하는 거에 있어서 전 굉장히 거리감이 있고 불편한데 그걸 뮤직 에디터가 편하고 합리적으로, 음악 감독이 이해할 수 있고 또 감독이나 스튜디오에서도 이해하괏옥졀?큐레이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거죠. 또 제가 음악 작업을 하기 전에 템프 뮤직(편집자 주: 영화를 편집하고 작곡가에게 음악을 의뢰하기 이전에 감독이 의도하는 음악의 분위기를 지정해 주기 위해 임시적(Temporary)으로 사용하는 음악)을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 배치를 해서, 음악이 이런 형식으로 연결돼서 이어지는 효과를 스튜디오와 감독에게 보여주는 역할도 하게 되고요. 우리나라에서 현장편집과 같은 느낌이네요. 그렇죠. 미국은 현장편집이 없어요. 대신 뮤직 에디터가 있어요. (웃음). 재미있는 게 뭐냐면 암암리에 미국에서는, 할리우드에서는 음악의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을 하고,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의 중요도가 높고 후반작업의 중요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후반 쪽에 가면 미국에서는 에디터들 있잖아요. 총 슈퍼바이저 같은 역할을 해요. 믹싱하는 데까지 가서 소리도 지르고. 감독이 편집권을 못 갖게 되면 에디터가 왕이 되는 거죠. 그처럼 할리우드는 후반작업에 힘을 굉장히 많이 실어주고, 또 그쪽에 투자, 배분이 많이 되어있는 거겠죠. 미국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음악은 오케스트라 어디서 녹음할래, 그런 얘기들을 쉽게 해요. 베를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웃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물론 시장의 사이즈 때문에. 그래서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영어로 만드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가다 보면 언어적으로 전달 못하는 뉘앙스들을 사운드와 음악으로 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그런 쪽에 더 힘이 실리고 투자가 많은 게 아닌가 싶어요. 미국영화 말고 일본의 타케 마사로 감독의 < 에덴 >이란 작품도 작업 하셨는데, 영화는 못 봤는데, 게이 바의 드래그 퀸이 나오는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 씨네콰논 극장을 하시던 이봉우 대표가 오랜만에 제작하신 작품이고, 일본 영화도 작업을 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시기가 잘 맞아서 하게 된 거죠. <도가니> 딱 다음에 작업을 하게 됐어요. 제가 정말 모르는 다른 나라의 이상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죠.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셨어요. <플래닛 비보이>와 < 뒷담화 >. <플래닛 비보이>는 좀 더 다큐고, <뒷담화>는 페이크 다큐였죠. 어떻게 보면 장르적이지도 않고 내러티브도 없고, 캐릭터도 약간 흐릿한데 작업하실 때 극영화와 차이점이 있나요? 다큐멘터리는 덜 계획적으로 소스를 수집한 다음에 관객들이 가장 보기 좋은 지점으로 조화롭게 배열하며 만들어가는 거여서 해프닝이 많이 생겨요. 해프닝에 대한 재미가 있는데, 예상하고 작업하는 게 아니고, 마음가짐에 없다가 문득 이런 게 부각되면 더 재미있을 거다 그런 게 있죠.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들이 내는 작은 아이디어들부터 고민을 하다 보면 하나의 큰 얼개가 나오게 되기도 해요. 좀 더 작업방식이 자유스럽네요. <플래닛 비보이>는 아무래도 미국 영화니까 템프 트랙을 깔고 시작하다 보니까 (그렇게 자유스럽진 못해요). 다큐멘타리인데도요? 네. 그런데 한국에서 이재용 감독님과 함께 작업할 때는 훨씬 자유스럽죠. 작업기간은 좀 더 길수밖에 없죠. 처음부터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작정을 하고 끌어가는 게 아니다 보니까. 촬영 전부터 콘셉트를 잡지 않고 후반에 하게 되는 건가요? 전체 콘셉트를 잡아놓는데, 중간 중간 계속 소스나 상황에 따라 이걸 더 부각시키는 게 괜찮겠다 하면, 처음 콘셉트와는 좀 다르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는 코미디를 하셨는데, 굉장히 음악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어요. 약간 B스러운 코미디와도 잘 어울렸고요. 음악이 얼마나 사용되었나요? <라스트 스탠드>보다 더 썼을 거예요. 짧게 짧게 계속 쓰였거든요. 이원석 감독이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했고, 미국 B무비에 대한 동경이 많았어요. 사실 영화 자체도 한국에서는 구현하기가 힘든 상황의 영화잖아요. 결국 만들어내면서 미국 B무비를 하듯이 그런 주묍엔였?해서 음악 작업을 하다 보니까 거의 그만큼의 음악을 쓰게 된 거죠. 이 영화에서 보면 마카로니웨스턴에서 나올법한 음악들도 나와요. 어떻게 보면 더 <라스트 스탠드>보다 더 서부극 같은... 네, 아예 대놓고. (웃음) 그래야지 더 B무비의 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질펀함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으니까요. 모든 씬들의 오리지낼리티를 최소화 하다보면, 그 다음에 그런 것들을 모두 합쳐놓고 보면 오리지낼리티 있게 영화가 나오는 게 사실 B무비거든요. 그런 실험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동생으로 가깝게 지내던 감독이어서 그런 요구가 사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 부드럽게 오는데 전혀 뭐... ''형 이거 우리 해줘야 돼!!'' 이렇게 와서 (웃음). 이런 거 있잖아요. ''아 왜 그거 그렇게 안돼~??'' (웃음) 이원석 감독님이 굉장히 상상력이 많으신 분 같아요. 웨스 앤더슨 같기도 하고 미쉘 공드리 같기도 하고. 그런 세계를 워낙 동경했던 감독이고,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있고, 음악도 많이 알고 좋아하고요. 이원석 감독이 재밌는 게, 어렸을 때 디제이도 했었어요.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때, 파티들이 많으니까. LP 시절의 디제이를 하고, 아직도 그때 당시의 향수가 있더라고요. 사실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저와 작업하시는 감독님들, 김지운 감독님, 장준환 감독님, 이원석 감독님, 임필성 감독님. 영화감독이라기에는 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요. 너무 많이 알고. 그래서 그게 좋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디테일한 걸로 들어가다 보면 두루뭉술하게 할 수가 없는 (애로사항이 있죠). 김지운 감독님은 소리에도 굉장히 예민하셔서 제가 스트링에 톤만 조금 트래블을 올렸다고 하면 그걸 감지하시면서 고음이 좀 더 올라간 거 같애, 하시니까 그게 어떤 면으로는 섬뜩할 때가 있죠. (웃음) 되게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아니, 음악 하는 사람도 이런 건 잘 판단 못 하는 데. 그래서 제가 훨씬 더 치밀하게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저음부를 2Db를 올렸다면, 그걸 안 적어 놓으면 ‘저번엔 이렇지 않았다니까’ 이런 말을 듣고 되돌릴 때 힘들죠.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는 삽입곡도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나체로 활보하다가 검문 당했을 때는 ‘네순도르마’도 나오고요, 엔딩에서는 고리엘라의 ‘리가야’도 쓰였고요. 그럼 곡들은 디제잉을 하셨던 이원석 감독님이 선택하신 건가요? 저랑 그런 의견을 조율하는 거죠. ‘리가야’ 같은 경우도 저희 어렸을 때 클럽에 가면 (항상 나오던) 파티 음악이었거든요. (그 곡을 부른) 고리엘라가 듀엣인데 그 중 한명이 티에스토였어요. DJ였던 그가 데뷔한 그룹이기도 한데, 그런 것들 때문에 (사용하게 됐죠). 이런 음악들은 만드는 것보단 이 파티 음악을 그대로 쓰는 게 낫겠다고 감독도 강하게 주장을 했죠. 그런 선곡을 하면 항상 예산이 발생이 되기 때문에 제작자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곱지만은 않은 (입장이에요). 사운드트랙이나 음원을 기대했는데 안 나와서 섭섭했습니다. 예, 저도. 원래 제작하셨던 대표님이랑 300만 넘어가면 OST를 내주시겠다 했었는데... (웃음) (흥행이란 게) 배급시기라든지 배급의 힘 등에 좌지우지 많이 되는 거 같아요. 그 영화는 어떤 극장에서는 첫날부터 교차 상영이 되기도 했었어요. 굉장히 코미디 장르도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 코미디가 거의 없으세요. 코미디를 하시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화이> 다음으로 하는 작품이 < 수상한 그녀 >라는 코미디에요. 심은경 , 나문희 선생님 주연작이고요. <남자 사용 설명서>와는 다른 지점의 좀 더 대중적으로 소통하기 좋은 작품이에요. 제가 우울증이 심하고 평소에는 정서 자체가 가라앉아있기 때문에, 조증이 갑자기 생길 때가 있어서 <화이> 작업할 때도 어떻게든 에너지를 조증을 만들면서 버티고 했었는데, 코미디 장르를 다음 작품으로 하니까 덜 가라앉아서 음악을 하게 되지 않을까. 굉장히 기대가 큽니다. 삽입곡 같은 경우도 보니까. <회사원>에서는 이미연 씨가 전직 가수로 나왔는데, 부르던 곡도 따로 작업하셨다고요. 네. 그건 제가 사이드로 아는 뮤지션 친구들과 습작 같은 작업을 해놨다가 영화와 매치가 잘 돼서 그걸 여기다 쓰자, 했던 거죠. 직접 이미연 씨가 부르신 건가요? 네, 이미연 씨가 부른 파트가 있고요, 어떻게 설정이 되느냐면, 전직 여가수의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구간은 이미연 씨가 부르시고, 몽타주로 이어지면서 영화의 느낌을 부각시켜줘야 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그런 게 튈 수가 있으니까 가수분이 불러주셨죠. 그걸 리믹스하듯이 절묘하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 작업할 때 조금 어려웠었죠. 음악이 좀 80년대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았어요. <회사원> 영화의 그런 톤들을 감독이 만들고 싶어 했어요. 인터뷰에서 보면 좋아하시는 작곡가로 데이빗 샤이어나 랄로 쉬프린을 꼽으셨어요. 어떻게 보면 70년대 가장 핫했던 분들인데요. 장르영화들을 많이 하시던 분들이었죠. 제가 볼 때는 70~80년대가 영화음악의 황금기였던 거 같고요, 그 뒤부터 워낙 좋은 사운드 시스템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영화음악은 훨씬 더 입지가 좁아진 거 같아요. 사운드가 음악의 역할을 많이 대체하게 되는 상황이 되니까. 그분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의 음악들은 한 큐 때문에 주먹을 불끈 쥐게 해주고, 또 그런 역할을 해주던 그 시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죠. 정말 좋은 시절을 사셨구나. (하지만) 막상 저 같은 사람이 그 시기에 영화음악을 하라고 하면 못했겠죠. 이분들은 거의 악보를 탈곡기에서 뽑아내듯이 작곡을 해내시니까. (웃음) 자기 빅밴드와 오케스트라와 녹음하고 막. 또 빌 콘티와 같은 작곡가도 좋아했었어요. <록키>는 그냥 음악 나오면!! 개인적으로 좀 더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으신가요? 영화음악가 중에서요. 요즘에는 (소더버그와 작업한) 클리프 마르티네즈 같은 요즘 작곡가 좋아하고요. 미니멀한 작업하시고요. 산타올라야 같은 분도 좋아하고. 기타 하나 가지고... 한국 영화음악 하시는 분들의 음악도 많이 들어요. 한국 감성을 채우는 방식은 또 다르니까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꾸준히 작업하셨는데, 작업 속도가 빠르신 것 같아요. 그렇게 팀을 셋업을 해놨어요. 처음에 혼자 작업할 때는 정말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어떤 형태를 끄집어내기 전에 내가 그 형태를 잃어버릴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아예 팀을 셋업하고 파트를 나눠서 이쪽에서는 에디팅만 하게 하고, 이쪽에서는 소스만 컬렉팅하게 하고, 그럼 제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필하모닉 한 60인조 소스 좀 해줘, 그럼 빨리빨리 그게 나오니까, 금방금방 제가 근사치를 확인해볼 수 있으니까, 훨씬 빨라진 거죠. <악마를 보았다>는 거의 혼자 했어요. 오퍼레이터 하는 친구와 둘이 하다가, 아무래도 영화음악을 계속 하고 영화 사이즈가 점점 커지고, 영화라는 게 저와 맞닥뜨렸을 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량과 인내심과 감정싸움이 필요하다 보니까, 그렇게 팀이 있으면 상처도 덜 받고, 덜 지치게 되더라고요. 모그에 있어서 영화음악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단독 개인앨범 작업보다는 점점 영화음악 쪽에 치중하시잖아요. 산업이 변화하는 것에 거스를 수도 없고요. 단독 작업이란 것 자체가, 앨범이란 것을 손에 쥘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공기처럼 떠다니게 하는 음악 작업이 힘들더라고요. 받아들이기가. 어쨌든 영화음악이란 작업은 제약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작업인 거 같아요. DVD라는 것도 만들 수 있고요. 손에 잡히는 결과물에 대한... 습관처럼 생긴 저의 집착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 연주하면서 세션을 할 때는 그게 다 크레디트에 남는 세상에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느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해도 그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살아야 된다는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음원을 보면 또 그런 게 안 나오죠. 그렇죠. 어떤 사람이 음악을 듣는데, 음반을 사서 그 안에 적혀있는 글부터 해서 이건 어디서 녹음을 했고, 누가 참여를 했고, 편곡은 어디서 했고, 이런 데이터들을 쌓고 음악을 들어왔다면, 요즘은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도 되게 힘든 세상이라는 것 자체가 감당이 안 되거든요. 특히 전 베이스를 치던 사람이라서 이런 걸(스마트폰)로 음악을 들으면 베이스는 들리지도 않아요. 존재감도 없고요. 스펙트럼이나 다이나믹한 것들이 전혀 안 느껴지고, 질감 같은 것들이 무시되는 세상에 살게 되니까요. 사실 영화음악이 그것의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좋은 오디오 시스템에서 들을 수 있는 환경, 앨범이란 게 나올 때만 해도 아는 분들 중에서 마니아들이 있으면 좋은 앰프와 스피커가 구비되어 있으면 거기서 한 번 들어봐야지, 하면서 차 한 잔 마시며 음악을 듣곤 했었는데, 점점 그런 게 없어지죠. 음원이란 것도 정액제로 확 묶어놓다 보니 진짜 1회용이 되어버려서 사람들이 데이터(음원)를 넣었다가 공간이 차면 또 비워내고. 음원 공유 시스템 자체가 아티스트의 에고나 존재 자체를 지워놔 버려서요. 차라리 영화음악을 하는 게 그 아티스트 경계의 안과 밖에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정말 아이덴티티가 안 생기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영화관이라는 좋은 시스템 안에서 음악을 들을 수가 있게 된 거네요. 그게 유일한 해소 지점이 된 거 같아요. 차기작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아까 말했던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가 내년 1월 중에 개봉할 거 같고요, 이재규 감독의 <역린>, 박흥식 감독의 <협녀>를 준비하고 있어요.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정말 몰랐습니다. _ 인터뷰 : 문상윤 _ 정리, 사진 : 유성관 _ 2010.10.17, 미래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