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첫사랑
- 감독
- 미아 한센 러브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세바스찬 우르젠도우스키, 롤라 클레톤, 발레리 보네통, 세르게 렌코, 오제이페크, 필립 파임블랑크
지금 말하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지극히 사적인 영화들의 목록이다. 만들고 싶은 영화, 꿈꾸는 영화들, 마음으로 두고 싶은 영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열 편의 작품은 굳이 말하자면 각별히 올해 내 마음에 다가왔던 영화들이다. 그러니 작품을 평가하거나 가치를 나열할 생각 대신에 마음이 동했던 몇 가지 이유들을 적으려 한다. 먼저, 최근에 세상을 떠난 두 작가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 방문 혹은 기억과 고백 >(1993), 그리고 샹탈 아커만의 < 노 홈 무비 >(2015). 이 두 편의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기획한 추모전의 일환으로 상영했다(사실 이들을 추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삶과 죽음을 간결하면서도 대담하게 다룬 작품들인데, 두 편 모두 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올리베이라는 영화가 예술이 아니며, 인생도 아니고, 그 둘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영화는 늘 그 사이에 있고, 우리 또한 영화들 사이에 있다. 집을 보여준다는 것은 관객을 개인적이고 비밀스런 공간에 초대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에게 초대받을 만한 친밀한 이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들의 방문이 작별을 통고받는 자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말은 아니다. 실은 우리가 함께할 시간을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후카다 코지의 < 사요나라 >(2015)와 필립 그랑드리외의 < 밤임에도 불구하고 >(2016)는 바라보는 것의 불안을 오래간만에 느낀 작품들이다. 후카다 코지의 영화에 대해서만 짧게 언급하자면,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대전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한 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했다. 히라타 오리자의 안드로이드 연극을 원작으로, 이른바 ‘포스트 3.11 영화’의 계열에 자리 잡을만한 작품이다. 미래의 어느 때, 원전사고가 일어난 일본에서 해외 이주정책이 발표되고, 폴란드 난민 출신의 여인은 이제는 더 이상 떠날 곳을 찾지 못해 예정된 죽음을 기다린다. 하루하루의 소멸될 시간에서 유일한 말벗은 시를 읽어주는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창가의 소파에 누워 마지막 시간을 보내던 여인은 마침내 숨이 꺼지고, 시간이 흘러 그녀의 피부는 썩어들어 가고 한 줌의 뼈로 남게 된다. 그 모든 시간을 그녀 앞에서 꼼짝 않고 바라보던 이는 그녀의 로봇이다.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남게 될 세계에서 우리의 죽음을 지켜볼 시선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파멸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매혹적인가.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특별히 나이의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게 했던 영화들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민하고 자숙한다. 자기 자신으로 남는 피로감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야 할 욕구 사이에서 주저하고 용기를 내기도 한다. 주아옹 니콜라우의 < 존 프롬 >(2015)은 십 대들의 욕구와 환각 모험을 그리는데, 여전히 이런 경쾌한 움직임이 영화에서 가능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몹시 반가웠던 영화다. 이제 서른인 대만의 여성감독 위에이산의 < 어린 부모 >(2015)는 내가 꼽는 올해의 데뷔작 중의 한 편이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안이한 결말로 쉽게 끝나지 않으면서, 얇지만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서늘한 느낌이 오래 남았던 영화다.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는 한 번 더 기회가 여전히 주어진다는, 그럴 기회가 있음을 믿게 하는 영화다. 사실 이 두 편의 영화는 이 작품을 본 소수의 관객들과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나만의 리스트’로 남게 될 것이다. 미아 한센 러브의 < 다가오는 것들 >(2016)은 유일한 개봉작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만든 성숙한 영화라는 점에서 공감했다. 생 말로의 고요한 섬, ‘파도와 바람 소리만을 듣고자 했다’는 샤토브리앙의 무덤에서 시작하는 오프닝이 영화가 끝난 뒤 다시 생각난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거쳐,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여인의 고립과 분리를 마치 섬의 고립처럼, 조수간만의 물결처럼 밀려오고 떠나가게 한다. 한때 급진적인 생각을 지녔던 주인공 여인은 학생들의 파업에 반발하고, 변모하는 철학 서적 마케팅 시장의 논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 급진적인 사상의 제자에게서 사고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비난까지 듣는다. 나도 이제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자각! 그녀는 “난 변했다”고 말한다. 제자는 그녀에게 “그런데 세상은 그대로인 걸요. 더 나쁘기만 해요”라 반문한다. 변한 게 없는 변화의 삶이라니. 삶의 변화란 어떤 마음의 결심을 하는 것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다. 대신 다른 곳에 가고, 다른 것들을 보고, 다른 것을 듣고,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것으로나 가능할 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와 켄 로치의 두 작품은 영화라는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 은판 위의 여인 >(2016)에서 한 컷을 촬영하는데 몇 시간 내지 하루가 걸리는, 노출 시간이 긴 촬영을 고집하는 은판사진작가의 강박적인 작업은 이미지에 대한 어떤 기대가 없다면 그저 시대에 뒤떨어진, 위험하고 지루한 노동일 것이다. 영화작업이란 여전히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노동이다. 켄 로치의 영화는 이제는 작가적 접근보다는 어떤 하나의 사상이 작동하는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외에 다른 불만을 내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미 사상이 되어버린 예술가의 견해라고 할까. 다니엘 블레이크, 그는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본디 그에게 속한 존엄을 되돌려 받기 위해 주장한다. 행복에의 기대, 그 이미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켄 로치에게 영화라는 노동은 시민에게 존엄을, 시민권을 되돌려주는 예술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마도 나 홀로 이야기하게 될 한 작품이 남았다. 케이타 무카이의 <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 >(2016)가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이들은 내가 아는 한 서너 명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영화제에서 두 차례 상영한 바 있으니, 제주 시민들 백여 명 정도가 더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나라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작은 미술관 강당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보느라 서다 앉기를 반복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했다. 나라에는 사슴은 많지만 국제영화제가 개최될만한 영화관은 없다고 한다. 나라시의 지원도 끊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어 개막식 레드 카펫 행사에 나섰다. 영화제의 중심에는 알다시피 가와세 나오미가 있다.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내게 영화제 방문은 그녀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을 깨는데 충분한 기회였다. 그녀의 수고와 노력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였다. 아무튼, 이 작품은 실은 큰 기대 없이 보았던 영화다. 그때 그 시간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였을 뿐이다. 영화 경험이 전무한 스물네 살의 청년이 만든 자전적인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카탈로그에 실린 짧은 소개 글을 읽으며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될까, 염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몸을 뒤척거리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는데, 첫 내레이션부터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석양에?물든 호류지(나라현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절이라고 한다)가 보이면서 배경에는 희미한 종소리가 울린다. “호류지의 종은 두 시간마다 울린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금속의 울림은 온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울려 퍼지다가 사라져 간다. 내 어린 시절, 하루의 끝에서 울리던 그 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호류지의 종소리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아동 양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도록 재촉하는 불안한 소리였다. 양호시설의 통금시간은 여섯 시. 밤 아홉시에는 소등이 된다. 화면에는 마치 수용소를 보여주는 것 같은 몇 장의 사진들이 슬라이드 화면처럼 지나가고, 날마다 똑같은 고아원에서의 반복적인 일과들이 설명된다. 그나마 특별한 날이라면 달이 바뀔 때마다의 생일잔치였다고 한다. 파티 장식도 없고, 음악도 없었고, 늘 똑같은 축축한 버터크림의 초콜릿 케이크가 전부였던 생일잔치이다. 그런데 이 달콤한 초콜릿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도 같아 그에게 어두운 과거를 단박에 떠올리게 한다. 감독 케이타 무카이는 이 작품으로 양호시설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18세가 되면 아이들은 양호시설을 떠나 자립해 살아가야만 한다. 그는 이제 성인이 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고, 양호시설에 자신을 맡긴 아버지와 힘겨운 대화를 시작한다.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 관심을 두어 양호시설 자원봉사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영화작업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열등감, 부모에 대한 분노, 가난과 학대받은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말하게 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예전의 친구들과 교류하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들에게 기억은 그러므로 일종의 이중구속으로,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더라도 그들은 양호시설에서의 삶을 비판하되 부정하지 않는다. 비록 수용시설의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 기억과 시간은 이제 간신히 긍정할 수 있게 된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를 한편으로는 달콤하고 씁쓸한 기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정든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표현한다. 초콜릿 케이크와 호류지의 종소리는 이 둘의 특별한 결합이다. 기술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케이타 무카이의 촬영이 가장 탁월한 표현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는 중반 이후의 장면부터는 내내 서서 보아야 할 정도로 몹시 감동을 받기도 했다. 나라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상영 후 잠깐 감독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작품이 상영되기를 기원한다고 말을 건넸다. 그 자리에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그의 친구들도 함께했다. 때마침 올해 제주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상영할 수 있었고, 상영 후 그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에서의 첫 상영에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공개될 만한 작품이 아니라며 부끄러워했고, 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가 국내에서도 더 상영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그를 한 명의 작가로서 기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삶이 영화라는 것을 통해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떻든 나는 그의 다음을 기대하고 있다.
영화란 무엇일까? 다시 1년이 지나갔다. 소통할 수 없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영화는 자꾸 숨 막히는 현실의 탈출구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꼭 봐야 할 영화가 되었고, 꼭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들조차 그런 영화로 호명되었다. 비루한 현실은 그렇게 영화를 프로파간다化 했다. 우리는 그런 영화들로 위안을 얻었고, 그렇지 않은 영화들조차 그런 의미가 되어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급변하는 정치 환경 속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속에서, 영화 속 현실이 영화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재현이라는 걸, 아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으며 모두가 분노하고 허탈해했다. 굳이 극장에 가지 않아도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한 말과 이미지 속에서 기대와 불안으로 지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 봐도 최근 몇 년간 극장에서 개봉하고,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수없이 많은 영화들을 본 우리들은 한 영화를 두고 치열한 논쟁하지도 않았고, 뭔가 새롭고 흥미로운 논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게 영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리들 때문이었을까? 문득, 영화의 죽음이라는 말이 떠올랐던 건, 영화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올랐던 건 그 때문이었다. 올해의 리스트 사사로운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 2016년 한해 본 영화들의 리스트를 뒤적거렸다. 베를린 영화제에 다녀와서 그 결과가 리스트에 반영이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뽑아보니 생각보다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먼저 영화를 보는 순수한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해준, 그리고 장르 안에서 예측을 깨뜨리며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논 영화 두 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 비거 스플래쉬 >와 폴 버호벤의 < 엘르 >. 특히 <엘르>는 영화가 가지고 있던, 아니 내가 가지고 있던 강간의 신화를 해머로 내리치듯 깡그리 부숴버리고, 오랜만에 영화가 선사하는 순수한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윤가은 감독의 < 우리들 >, 호평을 받을 만한 영화가 호평을 받았으므로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영화는 완벽하진 않아도 기존의 제작 시스템의 틈을 비집고 나온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걸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더 반가웠던 영화였다. 그리고 작년에 이어 다시 라브 디아즈, 그는 이제 어떤 경지에 도달한,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재 진행형이면서 전진하는 작가라는 걸 < 슬픈 미스터리를 위한 자장가 >로 다시 한번 증명했다. 미셸 프랑코의 < 크로닉 >,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를 계속 전진시키는 파격적인 엔딩은 현대 영화의 결말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고, < 다가오는 것들 >을 보면서는 미아 한센 러브의 전진하는 보폭이 커서 이 감독의 차기작은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2011년 그의 세 번째 장편 <자이언츠>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 해지고는 새까맣게 잊고 있다가, 올해 베를린 영화제 상영작에서 이 감독의 이름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가 보았던 보울리 레너스의 네 번째 장편영화 < 더 퍼스트, 더 라스트 >. 난 그가 연기한 영화보다 연출한 영화가 더 보고 싶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두 편. 먼저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잔 프란코 로시의 < 화염의 바다 >, 처음 보고 갸우뚱했다. 이탈리아 시골의 한 가정과 이탈리아에 유입된 난민들의 행렬을 대비시킨 이 다큐멘터리는 축이 되는 두 이야기의 교차 지점의 인과관계가 약해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일 년 내내 마음 한 켠에 껌딱지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작업과 사회운동이 밀착되어 있거나, 대상에 대한 감독의 입장이 명확한 최근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경향 속에서 대상과 카메라의 거리를 지켜내려는 두 감독의 의지로 완성되어 한국 다큐멘터리의 지평을 다시 확장시킨 소중한 결과물, 김일란 , 이혁상 의 < 공동정범 >.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들랏 타히믹의 < 발릭바얀#1 -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III >, 이 영화는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MMCA필름앤비디오의 기획 프로그램 <이야기의 재건>의 첫 번째 시리즈와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를 통해 두 번에 걸쳐 한국에서 공개된 바 있는데, 올해에는 사사로운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 중 이 영화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할까 한다. 키들랏 타히믹 - 고요한 번개. 키들랏 타히믹 감독은 일만 불의 제작비로 만든 데뷔작 <향기어린 악몽 Perfumed Nightmare>(1977)이 베를린 영화제 포럼 창립자이자 당시 포럼 디렉터였던 울리히 그레고르에게 극적으로 발굴되어 상영된 후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화려하게 국제영화계에 등장했다. 그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화사에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아시아 영화감독 중 한 명이며, 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아시아적인 소재와 관점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필리핀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자 아티스트이다. 1912년 필리핀 바기오 시에서 출생한 키들랏 타히믹은 필리핀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필라델피아의 와튼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5년 동안 파리에 위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OECD를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업에 실패하고 뮌헨의 예술가 공동체에서 잠시 지내다가 베르너 헤어토크를 만나 그의 영화 <하늘은 스스로 돌보는 자를 돌보지 않는다>(1974)의 배우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길을 걷게 된다. 그가 초기에 만든 세 편의 영화는 - <향기어린 악몽>(1977), < 누가 요요를 만들었나? 누가 월면차를 만들었나? >(1979), <투룸바>(1983) - 은 그를 후기 식민주의 제3세계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이 세 영화는, 말하자면 트랜스내셔널 시네마 Transnational Cinema에 속하는데, 사실 영화 이론 쪽에서 이런 개념이 정식으로 사용되기도 전에 영화가 먼저 만들어진 셈이다. 키들랏 타히믹 감독은 지금보다 훨씬 덜 네트워크화된 시대에 정치, 경제, 문화적 세계화 Globalization의 문제를 영화적으로 기록한 영화사의 첫 감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프레데릭 제임슨이 자신의 이론에 그의 영화를 끌어들인 것도, 수잔 손탁과 오에 겐자부로로부터 환대받은 이유도, 그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주제의식과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었다. 그는 세 번째 영화 <투룸바>(1983)를 완성한 후 필리핀 토착민들과 함께 살면서 주로 필리핀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가족에 대한 가치를 바탕으로 한 비디오 에세이 형식의 영화들을 주로 제작해왔다. 요요, 쌀, 지붕, 바학, 가족의 가치, 필리핀의 역사들을 소재로 한 그의 영화들은 필리핀의 역사와 필리핀 고유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해 분명하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특정한 영화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선형적인 내러티브 대신 가지가 뻗어 나가듯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입체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절대로 유머를 잃지 않는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와 실험영화 사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그의 영화는 ‘고요한 번개’라는 자신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대로, 고요하면서 날카롭고 지적이면서 유쾌하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꼿꼿이 자신만의 길을 닦아온 키들랏 타히믹과 그의 영화들은 많은 필리핀 감독들에게 존경을 받았고, 젊은 감독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그 영향력은 브리얀테 멘도사와 제프리 제투리안의 사회적 리얼리즘부터 존 토레스와 라야 마틴의 개인적 에세이, 라브 디아즈와 카븐 데 라 크루스, 쉐라드 안토니 산체스의 영화적 실험에까지 이른다. 특히 자신만의 형식과 스타일로 필리핀의 역사를 영화적으로 재현하며 끊임없이 전진해온 라브 디아즈는 키들랏 타히믹의 영화와 정신을 계승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가장 독창적인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발릭바얀#1 -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III 2015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첫 공개 되어 호평을 받은 그의 최신작 < 발릭바얀 #1―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Ⅲ >은 1980년에 촬영을 시작하여 30여 년이 지난 2010년에 미완성된 채 공개된 33분짜리 단편영화 < 과잉개발의 기억 Memories of Overdevelopment >의 두 번째 확장판이자 첫 완결판이다. 키들랏 감독은 세계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한 인물이 포르투갈 출신의 항해사 페르디난드 마젤란 Ferdinand Magellan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의 노예였던 믈라카 Melaka 출신의 엔리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단편영화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시아인의 관점에서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을 재해석하려고 했던 이 야심 찬 시도는 한동안 미완성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키들랏 타히믹 감독은 2010년 이후 이미 1차로 완성된 33분 분량의 단편영화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감독이 살고 있는 1천 5백 미터의 고지에 위치한 바기오시 이푸가오족 마을에서 촬영한 장면들을 뒤섞고 편집하여 140분 분량의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완성했다. 그의 영화는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촬영하고 편집한 후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는 기존의 영화제작방식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는 늘 카메라를 곁에 두고 관심 있는 대상을 촬영한 후 모아두었다가, 이야기가 떠오르면 감독이 의도하는 대로 기존의 영상들을 배치하여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따라서 <투룸바> 이후의 그의 모든 영화들은 계획에 따라 ‘이미지를 메이킹’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콜렉팅’ 한다는 점에서 현대 디지털 영화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또한 자본의 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 제작기한을 정해두지 않으며, 돈이 없으면 작업을 중단하고, 돈이 생기면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기름 한 컵 영화 만들기’라고 불리는 이런 독특한 영화 제작 방식 때문에 그가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기간을 일정하지 않다. 이처럼 가장 독립적인 영화제작방식으로 평가받는 그의 영화제작방식은 영화가 완성된 후에도 계속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가장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 발릭바얀 #1―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Ⅲ >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약 1시간 40분 정도 분량의 전반부는 구조적으로 보면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하나는 화자가 과거의 시점으로 들려주는 마젤란의 노예 엔리케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마젤란과의 세계 일주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는 현재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한 젊은이가 바닷가에서 엔리케의 후예로 보이는 한 노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 후 사라진 노인을 쫓던 젊은이가 결국 노인과 다시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담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두 이야기가 교차하고 노인을 찾던 젊은이는 결국 노인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의미심장하게도 젊은이의 이름은 엔리케이고, 노인의 이름은 페르난디드 마젤란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미 한 편의 완결된 영화이기도 한 전반부를 보고 있으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영화감독이자 이야기꾼이고, 자신만의 영화제작방식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오랜 세월에 걸쳐 어떻게 진화시켜 왔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감독 스스로 ‘디렉터스컷’이라고 부르는 약 40분 분량의 후반부는, 전반부에 대한 해설서이자, 감독이 평생에 걸쳐 필리핀인으로 추정되는 엔리케의 삶을 통해 탐구해온 자신의 삶과 생각을 정리한 철학서이자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실천해온 철학적 방법론은 주로 후반부를 통해 다루어진다. 특히 키들랏 감독은 ‘제3세계 영화’의 핵심이기도 한, 불평등의 문제에 주목하는데, 감독이 직접 새로운 언어를 배우다가 스페인 학자 안토니오 데 네브리아의 “언어는 제국의 가장 완벽한 무기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상징적인 시퀀스는 제국주의의 핵심에 대한 통찰과 함께 탈식민주의의 방법론까지 제시한다. 장난기 많은 동네 할아버지 같던 키들랏 타히믹 감독의 날카롭고 유쾌한 통찰이 다시 한번 번뜩이는 순간이다. < 발릭바얀#1 - 돌아온 과잉개발의 기억 III >은 이렇게 ‘첫 번째 외국인 노동자’를 의미하는 ‘발릭바얀#1’이라는 이 영화의 제목대로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 속에 있었던 한 아시아 출신의 첫 외국인 노동자 엔리케의 여정을 통해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한편 현재 시점으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반복되는 역사적 전통과 순환의 문제를 흥미롭게 고찰하고 있다. 또한 과거 식민주의 시대의 기억을 호출하여, 아시아의 관점에서 아시아의 역사를 재해석해 온 35년간의 실천적 과정을 탁월한 통찰력으로 유쾌하게 엮어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키들랏 타히믹 감독의 영화 세계를 집약한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떠나기 전, 다음 해 디지털 삼인삼색 감독 중 한 명으로 키들랏 타히믹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문득, 그에게 5천만 원의 제작비가 주어졌다면, 그는 < 과잉개발의 기억 >을 어떻게 완성했을까? 여전히 멈추지 않고 진화하고 있는, 올해로 75세가 된 키들랏 타히믹의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떠오른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