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EANIFEST]미용실에 가다 2학년3반 1모둠
- 제작년도
- 2011
이야기는 현실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보고 들었던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 속에서 일부만 골라낸 이야기를 영화라고 한다면, 미처 이야기가 되지 못한 나머지 기억들은 기록영상 컬렉션 곳곳에 심드렁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되는대로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지난 12월 24일에 공개된 ‘ 미국 NA II 소장 노획영상 컬렉션 ’ 준비 과정 중의 이모저모를 소개할까 한다. 이 컬렉션은 지난 2022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에 의뢰하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문서고 2관(National Archives II, 이하 NA II)에서 수집과 동시에 연구까지 진행했던 1930~40년대 미군 노획필름 37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미국 육군 G-2 정보참모부가 적국 정보 수집의 일환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과 6.25 전쟁 당시에 노획한 영상들이다. NA II에서는 ‘해외 노획 기록물’을 묶은 기록군 242(RG 242)에 ‘정보참모부 영화필름’ 시리즈(242-MID)와 ‘정보참모부 일본 관련 영화필름’ 시리즈(242-MID-J)로 분류, 관리되고 있다. 이 필름들은 대부분 선전선동을 위해 제작됐던 것으로서, 일본, 이탈리아, 소련, 북한이 어떤 논리와 방법으로 자신들의 체제를 정당화하고 비인도적인 침략 또는 경쟁국에 대한 흑색선전을 포장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아무리 ‘격동의 현대사’라는 점잖은 표현을 쓰더라도 이 시대가 폭력과 착취의 시대였고 ‘줄을 잘못 서면’ 생존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었던 야만의 시대였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혼란 속에서 파시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체제의 역량을 기울여 선전영상을 만들고 자신들의 세계관을 학습시키고자 했다. 그것이 허구든 실존하는 것이든,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대중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불안정한 시대의 힘 없는 개인에게, ‘믿음’은 합리성보다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래서 노획영상은 태생이 복잡하다. < 황도일본 >(아오키 타이스케, 1940)은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천년 전의 신화집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대전제로 하여 허구 위에 허구를 중첩한다. ‘신의 자손이 신의 명령을 이행한다’라는 신화적 명제를 사실로 포장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창조해낸 개념들의 쓰나미로 보는 이를 압도하고자 했다. 파시즘 우방국 이탈리아는 자신들만의 세계관으로 일제의 침략, 아니 ‘문명의 회복을 위한 전진’에 찬사를 보냈다. 소련은 이러한 ‘제국주의, 파시즘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킨 구원자 스탈린’의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러시아 공산당 중심의 새로운 착취구조를 유토피아적 현실로 포장했다. 북한은 스탈린의 권위를 김일성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로 덧씌웠고, 소련의 ‘만들어진 유토피아’가 담긴 영상을 수입하여 한국어 웅변을 곁들여 북한 각 지역에 ‘영사 폭격’했다. ‘통일’, ‘해방’, ‘자유민주주의’, ‘평화애호’ 등의 인도적 개념어들은 ‘선의의 친구’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로 의도적으로 수없이 사용됐고,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졌다. 이와 같이 선전영상들이 대중 대상의 최면효과를 위해 사용한 전략, 그리고 제작 주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맥락까지 포함하여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모든 기록영상이 그렇듯이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까지도 샅샅이 훑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한 작업의 결과를 컬렉션 페이지의 자료집 에 수록했다. 기록영상 컬렉션에서 TMI는 ‘Too Much Information’이 아니라 덕목이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잡다하게 아는 것은 많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많지 않은 AI 들과 함께 준비했다. 이들은 STT(sound to text - 채록), OCR(광학문자인식), 이미지 분류(유사이미지 검색), 번역, 레퍼런스 찾기, 자유로운 대화상대 역할로 투입됐다. 필자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에서 하우스가 화이트보드 앞에 부하 의사들을 앉혀 놓고 희귀병 추리의 단서를 모으듯, 수개월 동안 허당 AI들로부터 힌트를 뽑아내고 경쟁시켰다. *주1 기만의 전문가들이 만든 영상을 착각의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분석한 셈이다. 이렇게 채굴한 TMI 몇 가지를 부록으로 덧붙인다. 부록 1. <동양의 전투>( Battaglia D'Oriente ): 사상이 맞춤법을 지배한다. 이 영상 은 중일전쟁기 중 1938년 10월에 있었던 일본의 중국 광저우 진격 과정을 이탈리아 영화사(ISTITUTO NAZIONALE L.U.C.E)가 이탈리아어 해설을 곁들여 제작한 것이다. NA II 카탈로그에는 ‘1939년에 송출됐다(...was broadcast)’라고 적혀 있다. 이때는 추축국들이 삼국동맹을 체결한 1940년 9월 이전 시점이다. 하지만 1937년에 이미 이탈리아는 독일-일본의 대 소련 방어를 위한 ‘방공협정’에 참가한 상태였다. 그러니,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을 옹호하여 간접적으로 자국민들에게 파시즘의 정당성을 설파할 목적으로 이런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관영선전영화제작소였던 ‘L.U.C.E(루체)’가 영상에 ‘L.V.C.E.’로 표기되고 있는 것은 많이 이상하다. (좌) 도입부 #1 / (우) 도입부 #2 이에 대해 AI 하나가 오랜만에 실속 있는 의견을 주었다. 이탈리아 통일 이전부터 ‘로마’는 국민적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뜻하는 ‘리소르지멘토’는 ‘부흥, 부활’이라는 뜻이고, 그 지향점은 ‘위대한 로마’였다. 무솔리니는 로마의 이미지에 더욱 천착하여, ‘이전 시기의 부패한 로마’를 청산하고 고대 로마의 덕목과 정신을 이어받은 파시스트의 국가를 건설하는 ‘문명화 사명’론을 내세웠다. 그래서 이탈리아 파시즘은 철저하게 고대 로마의 신화적 상징을 사용하여 대중적 이미지를 조각했는데, *주2 이 영상 도입부의 독수리상, 고대 로마 묘비에 각인됐을 것만 같은 고전적 글씨체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집착의 끝은 U 대신에 V를 사용한 것이다. 에트루리아 알파벳에서 유래한 고대 라틴어는 중세에 이르러 V가 U, V, W로 분화하기 전까지는 V만 존재했다. *주3 그래서 고대의 진정한 로마를 계승한 이탈리아 파시즘의 선봉, 국립영화제작소는 L.U.C.E.가 아니라 고귀한 L.V.C.E.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대 세계의 문명과 질서를 대표하는 일본’에게 ‘기아와 혼란의 시대가 끝났다는 확신으로’ 중국인들이 환대하고 있다는 내레이션 내용은 도입부의 독수리상에 이어지는 도리이(とりい, 일본 신사 등의 관문)와 총칼의 도상으로 이미 예고됐다. 이탈리아인들은 파시즘의 사명을 잇는 일제의 ‘정의로운 전쟁’을 지지하고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그런데, 내레이션 초반에 일본군 지휘관으로 언급되는 ‘왕의 동생 [치치부]’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발음은 [치치부]로 들리고, 다수의 AI가 동일하게 ‘principe(왕족) CCV’라고 채록했다. AI는 위와 같이 대답하면서 1번일 확률이 가장 높다고 했다. *주4 조사해 본 결과, 모두 틀렸지만, 이를 단서로 [치치부]가 쇼와 일왕의 동생 치치부노미야 야스히토임이 밝혀졌다. 그는 당시 현장 지휘관이 아니라 대본영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를 굳이 언급한 것은, 그가 난징대학살과 관련한 군 기강 문제를 지적했다든지, *주5 훗날 삼국동맹을 지지했던 점 *주6 등을 미뤄볼 때, 이탈리아 파시즘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부록 2. <니혼뉴스 제7호>(日本ニュース 第7号): 초조함을 숨길 수 없었던 승전보 속 위치는? 기록영상에서 ‘지명’은 늘 골칫거리다. 근현대 지도에 적힌 지명은 지도마다 제각각이고, 서양에서 통용되던 지명, 타국에서 발음 들리는 대로 표기한 지명, 자국민들이 부르던 지명, 옛날 지명과 이명, (특히 공산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선전과 기념의 목적으로 툭하면 바꾸는 지명까지 모든 것이 뒤엉켜 있는 경우가 많다. < 니혼뉴스 제7호 >(1940)에서 지명 정보는 특히 중요하다. 이 영상은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의 관심이 온통 중국 국민당 정부의 보급선을 끊는 데에 집중됐던 1940년 여름의 뉴스릴이다.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중국 북부, 동부의 주요 도시와 기간시설들을 확보했던 개전 초기에는 전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제스와 국민당이 내륙으로 이동하여 충칭정부를 세운 후부터 이 전쟁은 보급선을 확보하여 더 오래 버티는 쪽이 승리하는 구도로 전환됐다. 특히 일본군은 비현실적으로 전선이 길게 늘어선 데다가 철도, 도로망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내륙 지방까지의 보급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후 1944년에 감행했던 대륙타통작전(1호 작전) 또한 이런 어려움 속에서 중국 내륙 및 남부까지의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둔 무리수였다. 반면, 중국은 동남부 해상으로부터의 보급로, 버마와 베트남으로부터의 육상 및 공중 보급로를 계속 뚫어내면서 장기 태세에 돌입했으니, 시간은 중국 편이었던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이 뉴스릴은 줄곧 이러한 장제스 지원 루트, 즉 원장(援蔣)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일본군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첫 번째 소식은 진해(鎮海)를 공격하여 해상 보급로를 차단했다는 내용을, ‘문제의 원장루트, 인도차이나 국경을 공격하다’라는 제목의 두 번째 소식은 베트남에서 출발하는 두 갈래의 원장루트에 관한 내용을, 마지막 소식은 어려움에 처한 일본이 이후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체제로 돌입하고 군사적으로 폭주하는 도화선이 된 고노에 내각 출범 소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첫 번째 소식의 ‘진해’라는 곳은 어디였을까? 그 단서는 내레이션 중 [셋칸 루트]라고 발음되는 것의 정체를 찾는 데서 출발했다. 가동할 수 있는 모든 AI들은 이를 ‘석관 루트(石管ルート)’라고 채록했다. 그러나, 그런 보급로는 어떤 기록에서도 언급되지 않았고, AI는 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권위 있는 기관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AI의 억지 변명이 분명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실마리는 현재 니혼뉴스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는 ‘NHK 전쟁증언아카이브’ 중 <니혼뉴스 51호>의 스크립트 정보 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셋칸 루트’는 ‘敵浙 루트’였다. AI는 ‘敵浙’을 ‘절강’으로 번역했고, 지도 검색 결과도 절강성 인근으로 나왔지만, 우리가 아는 절강성(浙江省)의 한자는 다르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저장성과 장시성 지역을 잇는 철도인 저간선(浙赣铁路)이 이 시기에 이미 있었다는 것과, 저장성과 장시성의 약칭으로 쓰이는 글자가 저(浙), 간(贛)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도에서 현재의 저간선 경로로부터 해안 쪽으로 탐색해 나가다가 ‘진해(鎮海)’의 현재 표기일 가능성이 높은 ‘전하이 구(镇海区)’를 발견했다. 이렇게 돌고 돌아, 저간 루트로 이어지는 저장성-푸젠성 해안의 보급 거점 위치가 확인됐다. 그런데, 앞선 전쟁증언아카이브의 <니혼뉴스 제7호> 스크립트에는 왜 이 정보가 없었을까? 해당 아카이브를 포함해 이 영상에 대해 현재 알려져 있는 모든 정보 에서 첫 번째 소식은 충칭으로 진격하던 일본군의 ‘사스(沙市) 공략 입성’ 내용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 소식은 < 니혼뉴스 제3호 >의 세 번째 소식을 다시 한번 수록한 것이다. 3호 영상으로 공개했던 내용을 그대로 7호에 다시 수록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현재로서 알 길은 없다. 어쨌든 7호 영상으로 공개된 모든 판본 중에서 NA II 판본만이 유일하게 ‘진해 공격’ 소식을 담고 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사스 입성’ 소식으로 교체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부록 3. 일본인 여행 기록, 언제 촬영했을까? 왜 다른 선전영상들과 함께 노획됐는지 알 수 없는 영상이 있다. 이 영상 은 한 일본인 가족이 도쿄, 카마쿠라, 에노시마까지 여행한 하루 일정의 기록이 담겼고 음향은 없다. 유용한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되더라도 미리 판단할 수는 없다. 이 가족이 여행한 시점이 언제인지 밝히고자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NA II 카탈로그에는 ‘1937 ?’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근거는 밝히지 않고 있다. 화면의 내용을 근거로 좁혀 갈 수밖에 없다. 우선, 부채질을 하고 있으니 여름 즈음이다. 여행 전에 베티 미용실(ベティ美容室)에서 머리를 하는데, 간판 정보로 보아 매월 정기휴일인 17일, 27일은 아니다. 영업시간 정보를 보니 아침 8시 이후이다. 이어 도쿄 메이지신궁 외원의 성덕기념회화관(聖徳記念絵画館)을 방문하는데, 관동 대지진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면 1937년부터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사이 기간인 듯하다. 센소지(淺草寺) 본당 계단을 내려와 바나나 파는 곳을 지나친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바나나의 일본 수입이 중지됐다는 일본어 위키의 정보를 신뢰한다면 1939년 9월 이전이지만, 참고로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사쿠사 마츠야 백화점(1931년 건립) 옥상에 있는 유원지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가 보이고, 그 앞 스미다(隅田)강에 수상버스가 지나간다. AI는 이런 것들이 1930~1940년대 유행했다고 하면서도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좀 더 결정적인 근거는 우에노 동물원 장면이었는데, 수컷임이 분명한 기린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다. 우에노 동물원이 1982년에 발간한 『 우에노 동물원 100년사 』에는 암수 두 마리의 기린을 1933년 8월 21일부터 사육하기 시작했고, 1937년 7월 11일에 첫 새끼가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만일, 이 장면에서 수컷만 있는 이유가 암컷의 출산 때문이라면, 이 영상이 대략 1937년 여름의 것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기린들의 이름이 ‘기린’과 ‘지라프’였는데, 이 책의 사진에는 ‘지라프’라고 적힌 팻말만 보이지만 ‘라벨에 기린과 지라프가 함께 적혀 있다’라는 설명이 달렸다. 영상 속에는 ‘기린’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수컷의 이름이었던 것 같다. (좌) 영상 속 장면 / (우) 책 속 사진 결국 이런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의 촬영 시점은 1937년 이후부터 1940년대 초 사이의 여름 정도의 범위로 좁히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심, 귀여운 기린 새끼가 태어난 날이었길 바라지만 말이다. 이미 글이 길어졌으므로 다른 TMI들이 궁금하다면 컬렉션 페이지 에서 자료집을 다운로드 받아 훑어보기 바란다. 사실상 국가가 정한 ‘전연령 관람 불가 등급’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권 국가 제작 영상(‘특수자료’)들에 대해서는 정보만 안내하고 VOD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산주의자의 영상에도 TMI는 있게 마련이고, 이런 정보들을 최대한 안내하고자 노력했다. 못 미덥지만 함께 수고했던 AI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주7 *** 주1. 물론 필자가 하우스 같은 천재는 아니기에 다소 고통스런 공부가 수반되어야 했지만 말이다. 주2. 최병진, 짐바르도 마르타, 「이탈리아 파시즘 시기 선전물의 쟁점과 어법: 무솔리니의 도상을 중심으로」. 『유럽문화예술학논집』 11호(2), 21~39쪽. 문준영, 「파시즘의 로마 이미지와 로마관, 로마성(Romanità)―그 기원과 변천」. 『역사비평』 139호, 366~400쪽. Coluzzi, Paolo, “The significance of typography in the linguistic landscape during the Fascist period in Italy (1922–1943)”, Forum for Linguistic Studies 5(3):1885, 2023. 주3. “ Latin alphabet ”,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주 4. prompt engineering 효율 측면에서 ‘천황’이라고 언급했다. 명칭은 명칭일 뿐이다. 주5. “ 【独自】秩父宮、軍紀の乱れ懸念…日中戦争初期の書簡見つかる ”, 《요미우리신문》, 2020. 11. 15. 주6. “ 秩父宮雍仁親王 ”, 일본어 위키피디아 주7. 글에는 어쩌다 보니 claude의 프롬프트 화면만 나왔지만, 다양한 AI들과 그 기술이 적용된 툴들이 함께 했다.
2019년 사사로운 리스트 5년째 이 일을 하다 보니, 연말이 되면 사사로운 영화리스트를 작성하고, 리스트에 있는 영화 중 한 편을 골라 글을 쓰는 일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최고의 영화를 꼽는 것도 아닌 그저 사사롭게 좋았던 영화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이 해가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에 대해 매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나의 문제인지, 영화의 문제인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막상 리스트를 완성하고 나면 뭔가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리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편을 선정한 건 각각의 이유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 10편의 영화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2019년 한 해 동안 이러 저런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몇 가지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확하게 느낄 수 없었지만, 2019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고 영화는, 지금, 분명히, 새로운 물결이 한 시대를 밀어내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 흐름은 영화를 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어놓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멀쩡해 보이는 영화에서, 아니 애초부터 멀쩡하지 않았지만 그런 줄 몰랐던 영화 속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이걸 봐 버린 이상 우리는 이제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저항이 있지만, 돌아갈 수 없는, 돌아가서는 안 될 강을 이미 건너버렸다. 따라서 설사 되돌아갈 방법이 있다 해도, 그런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019년 주요 영화들을 관통하고 있는 난민, 페미니즘, 불평등의 주제는 모두 사회적 약자와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가 강력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의 전면에 나서면, 영화는 순수한 영화적 즐거움과 사회를 바꾸려는 캠페인을 위한 프로파간다의 경계에 서게 된다. 그 경계에서 어떤 쪽으로 얼마나 발을 내딛느냐에 따라 영화의 운명은 달라진다. 2019년 최고의 수작과 큰 영화제의 수상작들은 대부분 이 경계에서 양쪽에 모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영화이거나, 주제를 꽉 쥔 채 영화적 쾌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걸 끝까지 밀어붙인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시도들이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정교하고 세련된 세계를 창조, 확장하고 있는 할리우드와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최고의 창작자들에게 자본으로 영화적 자유를 선물하고 있는 넷플릭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항상 반복되어 이야기되는 독립, 예술영화들의 위기가 이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전혀 다른 거대 자본의 틈새에서 시작되고 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넷플릭스는 알폰소 쿠아론, 코엔 형제, 마틴 스콜세즈, 노아 바움백 등 영화의 만신전에 들어갈 위대한 감독들과 손잡고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을 만들고 있다. 넷플릭스와 손잡은 감독들은 간섭하지 않는 자본이 선사해준 창작의 자유를 간증하며 자신의 영화 세계를 담아낸 야심 찬 수작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는 명성이 있는 영화제들을 통해 나오는 주요 예술영화들의 전 세계 배급권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제 자본의 사이즈로는 경쟁이 되지 않는, 중소 규모의 수입 배급사들의 경쟁자이자, 전통적인 예술영화 시장을 위협하는 포식자가 되었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반대편에는 우리가 알던 독립, 예술영화가 아니라, 주요 독립, 예술영화들의 배급권을 모조리 사들이고 싶어하는 넷플릭스가 서 있는 형국이 되었다. 독립영화도, 예술영화도 자본이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 독립, 예술영화는 소수의 예술영화 전용관과 영화제 서킷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통해서, 그게 아니면 넷플릭스를 통해서만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 ‘시네마’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된 건 이런 상황이 지속 또는 확장될 것임을 예측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2019년 리스트에 있는 영화 10편은 그 수많은 영화들 중 ‘시네마 Cinema’ 또는 ‘시네마틱 Cinematic’에 대해 영감을 주었던 영화, 그래서 응원하고 싶은 영화들을 중심으로 ‘사사롭게’ 선택했다. 여기 있는 영화들은 대부분 국내 개봉을 했거나, 국내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영화들이다. 안 본 영화들이 있다면 기억해두었다가 챙겨보길 권하고 싶다. 지금부턴 리스트에 있는 10편의 영화 중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 소녀 안티고네 >(소피 데라스페, 2019)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Antigone>다. 맞다. 고대 그리스의 3대 극작가 중 한 명이었던 소포클레스의 희곡이다, 그가 저술한 4대 비극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그 『안티고네』다, 그래서 한글 제목인 <소녀 안티고네>에서 ‘소녀’라는 단어를 처음 보고 갸우뚱했다. 사람들이 안티고네가 어린 여성인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안티고네가 어린 여성, ‘소녀’라는 사실이 중요했던 걸까? 의도했든 안 했든 ‘소녀’라는 단어가 강인한 인물인 안티고네와 함께 쓰이면서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한층 강해진 것 같긴 하다. 대부분의 영화는 원작이 어떤 작품인지 제목과 간략한 내용만 알아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원작과 제목만 같은 게 아니라, 영화 속 인물의 이름이 기원전 441년에 만들어진 원작 속 인물의 이름과 똑같다. 거기에 주요 인물들이 벌이는 논쟁의 지점도 유사하다. 원작의 틀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원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원작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원작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함께 소포클레스의 “테베 3부작” 중 한 편이다. 서사적으론 『오이디푸스 왕』이 다음의 이야기지만, 시기적으론 가장 먼저 쓰였다. 혈육의 도리를 다하려다 국법을 위반한 여주인공 안티고네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헤겔은 “걸작 중의 걸작이며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이와 비견될 작품이 없다”고 했다.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이자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자신의 손으로 눈을 찔러 맹인이 된 후 왕국을 떠난 오이디푸스를 따라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오이디푸스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이디푸스가 테베를 떠난 뒤 그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다가 모두 죽었다. 그런데 이때 테베의 새로운 왕이 된 숙부 크레온은 외국의 군대와 함께 테베를 공격했던 폴리네이케스를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하고 매장을 금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의 칙령을 어기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생매장의 벌을 내리지만 그녀는 벌이 실행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편 안티고네를 사랑했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 하에몬은 아버지로부터 그의 사면을 얻어내지 못하자 그를 따라 자결한다. 『안티고네』가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군주의 폭정과 귀족과 성직자들의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킨 프랑스인들과 혁명의 동조자들에게 안티고네는 자유, 평등, 박애로 대변되는 혁명 정신에 대한 완벽한 알레고리였기 때문이다. 안티고네가 죽은 오빠에게 보낸 절대적인 사랑은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로 읽혔고, 국가권력에 맞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다가, 자살을 선택한 그의 모습은 천부인권설에 담긴 개인의 자유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와 함께 여성으로서 모든 권력을 가졌던 남성과 당당하게 맞섰던 그는, 성평등은 물론이고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의 평등과 정치적 참정권의 옹호자로 상징되었다. 그리하여 폭군에 대한 안티고네의 저항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혁명 정신과 겹쳐졌고, 저항의 대가로 받게 된 생매장의 형벌은 바스티유의 지하 감옥을 환기시켰다. 또한 그의 자결은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강력한 자유 의지와 혁명을 위한 숭고한 순교로 받아들여졌다. 논쟁적 사유, 불굴의 의지,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으로 무장한 영웅적 주인공의 이상적 모델로서의 안티고네의 상징성과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1) 특히 『안티고네』가 주목받았던 건 왕의 칙령을 어기고 오빠를 매장한 안티고네와 국가 반역자의 매장을 금지한 크레온의 대립과 둘 사이의 논쟁 때문이었다. 신성한 윤리이자, 감정에 호소하는 가족 윤리(자연법)와 공동체의 안녕과 존속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법의 정면 충돌, 각자의 입장에서 정당성을 주장하는 두 개의 거대한 윤리 또는 법 사이의 충돌과 논쟁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안티고네』 서사의 핵심이다. 또한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논쟁은 결국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완벽한 가부장적 사회에선 혁명의 서사가 아니고선 결국 막강한 국가권력과 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이 운명과도 같은 비극의 서사를 활용하여 당대의 사회적 논쟁에 대한 정치적 성찰을 이끌어내고 도덕적 힘들의 충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제시했다. 『안티고네』가 세상에 나온 지 2천 4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새로운 모습을 한 안티고네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 살고 있다. 그는 이제 왕족이 아니라 알제리에서 온 난민이다. 3살이 되던 해,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언니 이스메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조국을 떠나 캐나다와 도착했고, 몬트리올에 정착했다. 현재 그의 가족은 아직 시민권을 갖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뿌리가 알제리임을 잊지 않은 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두 오빠는 자기 밥벌이 정도는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의 갱단에서 활동하고 있고, 성인이 된 이스메네는 미용실에서 보조로 일을 하고 있으며, 안티고네는 장학금을 받아가며 열심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제 안티고네 가족은 풍족하진 않아도 미래를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던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이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설상가상으로 함께 있던 폴리네이케스는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경찰폭행죄로 알제리로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부모의 죽음을 겪으며 먼 타국에서 간신히 삶의 터전을 잡은 듯했던 한 가족은 이제 합법적 국가권력에 의해 해체될 위기에 놓인다. 이제 안티고네의 시간이 도래했다. 연약하게만 보이던 막내 안티고네는 가족을 위해 수감된 오빠를 감옥에서 빼내기로 마음먹는다. 폴리네이케스는 남은 가족 중 유일한 남자이고, 그의 존재는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은 단순했다. 미성년자인 자신은 어떤 잘못을 하든 쉽게 풀려날 거라 믿었다. 머리를 자르고, 문신을 하고, 남자 옷을 입고, 오빠와 비슷하게 변장하고 면회에 가서 옷을 바꿔입고 오빠를 탈옥시킨다. 원작의 매장은 탈옥으로, 크레온은 국가의 사법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안티고네의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모든 용기를 짜내어 법을 지키는 대신 가족의 윤리를 택했다. 완전히 상반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정당한 두 가치를 어떻게 충돌시키냐와 안티고네에게 얼마나 감정이입할 수 있느냐가 이 영화의 관건이다. 가족을 위해 범법자가 되어 법정에 선 그는 두려워하면서도 당당하게 유죄를 인정한다. 그리고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 오빠를 도우라고 제 심장이 제게 말하고 있어요”라고 외친다. 재판 초기 범죄 조직에 가담한 불법 난민의 아이콘이 되어 인터넷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던 안티고네는, 남자친구 하에몬의 노력으로 인해, 가족를 위해 범법자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용맹한 소녀로 회자된다. 대중의 지지가 강해지면서 난민 소녀 안티고네는 가족의 가치를 수호한 영웅이 된다. 그러자 합법의 탈을 쓴 국가폭력의 이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대 그리스에서 목숨을 놓고 벌인 2천여 년 전의 비극적 논쟁은 이렇게 동시대적 감각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며 부활한다. 이 흥미로운 각색의 중심에는 소피 데라스페 감독이 있다. 그는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안티고네의 서사에 현재 전 세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난민 문제를 성공적으로 이식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주연을 맡은 신인 배우 나에마 리치다. 그는 데뷔작임에도 강렬한 연기력으로 서사를 장악하고 주도한다. 안티고네가 머리를 깎고 언니에게 가족을 위해 일할 것을 강하게 요구할 때, 애써서 탈옥시켰지만 다시 잡혀 와 법정에 선 오빠를 향해 피를 토하듯 절규할 때, 그리고 그 어떤 유혹의 순간에도 망설임 없이 가족의 윤리를 선택할 때 등 서사의 인과관계의 중요한 고비마다 튀니지 출신의 이민자인 그의 연기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며 관객을 설득해낸다. 이렇듯 <소녀 안티고네>는 한 발 더 나간 결말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담겨 있던 사회적 논쟁에 대한 정치적 성찰과 함께 양립하는 두 가치의 충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고스란히 영화에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1)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저, 강태경 역, 홍문각
198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적인 개성은, 각자의 대사와 (완성형의) 자기 플롯이 있는 인물들이 무려 열다섯 명에 달한다는 것이고, 모두 뚜렷하게 구별이 가면서 그 필요를 인정할 만큼 생생하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세 청년을 중심으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도시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좌절과 상실을 주로 주목하지만, 그들이 만나는 여러 다양한 개성의 이웃들 또한 보기만큼 가볍거나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방향이 잘 설정되어 있고, 그 인물들이 틀림없는 순간과 장소에 정확하게 등장했다가 퇴장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성취인 것이다. 관심이 가고 주목이 되는 수많은 인물들을 스크린 위에 쏟아놓은 뒤, 교통정리를 잘 해가면서 각자가 내려야 할 도착지로 능숙하게 데리고 가는 이야기는 그것이 아무리 오래 전 만들어진 영화의 것이라 해도 매번 놀랍고 감탄스럽다. 세 청년들의 쓰라린 정착 초기 모습을 발랄하게 스케치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 철가방을 든 젊은 얼굴의 안성기 가 등장한다. 덕배라는 이름의 어리숙한 이 중국집 배달부는 이후 유지인 이 연기하는 상류층 여성인 명희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로맨스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들의 플롯은 덕배로 하여금 결국 권투선수가 되어 이 영화의 유명한 마지막 대사(‘그동안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줄곧 맞아온 것처럼 생각되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맞아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를 내뱉게 하도록 작동한다. 그러니까 다들 엇비슷한 러닝타임을 가져가고 있는 터라, 딱히 누구의 이야기라 정리하기에 애매한 이들 청년의 플롯 중에서도, 굳이 ‘주인공’이라고 부를 만한 캐릭터를 꼽자면, 당시 가장 인지도 있는 배우( 안성기 )가 연기한 이 ‘덕배’라는 캐릭터일 것이다. 즉, 사나운 개가 핥고 있는 빈 그릇을 가져가지 못해 쩔쩔 매다 주인에게 비웃음이나 당하던 중국집 배달부의 앞모습이 이 영화의 오프닝이고, ‘이젠 맞아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는 보이스-오버와 함께 벌떡 일어나 주먹을 날리는 권투선수의 뒷모습이 엔딩이라면, 이 영화가 결국 ‘덕배’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이야기라 해도 무리가 없는 해석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종착점이었고, 그 마지막 보이스-오버가 이 영화를 정리해내는 한 줄 테마였다는 사실을 적용시켜보면, ‘덕배’야말로 수많은 인물들의 플롯이 씨줄날줄로 엮이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덕배가 권투선수의 마음을 가지고 영화 밖으로 퇴장하게 되기까지, 그를 조력했던 다른 두 청년의 플롯을 하나씩 짚어보자. 이영호 가 연기한 이발소 직원 ‘춘식’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미스 유( 김보연 )를 좋아하는데, 그녀는 단골손님이자 땅투기로 벼락부자가 된 김회장의 노골적인 추파를 받는다. 미스 유는 춘식에 대한 애정이 없진 않지만 줄줄이 딸린 동생들과 아픈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춘식과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다. 유럽의 복지국가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하며 자신의 꿈을 부끄럽게 고백하는 송전탑 아래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사무치게 아름다운 씬이 될 자격이 있다. 결국 이들의 플롯은 춘식이 김회장을 살인미수하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돌진하는데, 버림받은 아이처럼 자주 울컥하던 춘식의 영화 속 마지막 얼굴이 카메라를 향해 죽을 듯 울부짖는 클로즈업이라는 사실을 적용시켜보면, 온통 공사판인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이나 높은 언덕에서 자주 만나 속마음을 주고받던 이 두 사람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심장이나 다름없다는 생각과 마침내 만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성찬 이 연기한 ‘길남’은 여관에서 일하며 근처 미용실 직원 진옥과 연애하는 청년이다. 그의 꿈은 언젠가 평등하게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호텔을 여는 것이며, 아예 어리숙하거나 자주 울컥하는 다른 두 친구와는 달리, 길남은 세속적이면서도 대체로 긍정적이고 매사에 웃고 다니며 가끔 실없다. 그의 플롯은, 자신이 결혼상대로 생각해 맡겨둔 돈을 진옥이 들고 도망치자 망연자실하고 결국 군대에 끌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끌려간다’는 표현은, 영장이 나왔다는 사실을 모든 희망이 사라졌고 결국 다 끝나버렸다는 듯 오열하며 말하는 장면이 숨기고 있는 감정에서 짐작가능하다. 춘식은 감옥에 갔고, 길남은 입대했으며 덕배는 권투선수가 되었다. 아니, 춘식이 감옥에 갔고, 길남이 군대에 끌려갔기 때문에 덕배가 권투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들이 스치듯 만나고 헤어졌거나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미워했던 이웃들도 있었기에 더욱 더 그는 권투선수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영화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 안의 인물들도 모두 퇴장한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2018년의 지금, 그들은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을까. 그 사람들은 어떤 현재를 보내고 있으며,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무엇보다, 아직까지 서로 만나는 친구사이일까. < 바람 불어 좋은 날 >은 볼 때마다 그런 궁금증들을 남기는 영화로 매년 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