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저리
- 감독
- 롭 라이너
- 제작년도
- 1990
- 출연
- 캐시 베이츠, 제임스 칸, 로렌 바콜, J.T.월쉬, 리차드 판스워드, 프란시스 스턴하겐, 그라함 자비스, 제리 포터, 토마스 브루넬, 준 크리스토퍼, 줄리 패인, 아치 하흔, 그레고리 스네고프, 웬디 보워스, 롭 라이너
대한극장 이 영화 상영관으로서는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아쉬움 가득한 회고가 쏟아진다. 과거의 화려했던 극장 건물이 허물어지고 고층 빌딩으로 변신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안녕을 고하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20세기 대한극장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1958년 4월 4일과 1998년 4월 4일 1998년 4월 4일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CGV 강변 이 정식 개관하기 전까지 극장의 규모나 흥행수입에서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곳이 서울 중구 충무로의 대한극장이었다. 우연인지 한국 극장역사의 필연인지, 대한극장은 최초의 멀티플렉스 개관으로부터 40년 전인 1958년 4월 4일 개관했다. 개관작은 1994년 리메이크해 국내에서도 사랑받았던 < 러브 어페어(Love Affair) >(글렌 고든 카론, 1994)의 원작인 < 잊지 못할 사랑(An Affair to Remember) >(레오 맥캐리, 1958)이었다. 극장 측은 대지 660평, 연건평 1,432평의 무창(無窓) 5층 건물에 냉난방 장치와 고급 좌석, 최신식 상영 설비 등을 갖춰 외국 극장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건전한 오락과 영화문화를 위하여 많은 기여가 있기를 바란다”라는 위풍당당한 출정 소감을 밝혔다. *주1 하지만 1년도 채 못돼 운영난을 겪게 되면서 1959년 2월 극장의 운영권은 영화 수입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던 세기상사로 넘어갔다. 세기상사는 폴 뉴먼의 대표작 중 하나인 < 상처뿐인 영광(Somebody Up There Likes Me) >(로버트 와이즈, 1956)을 ‘신발족(新發足)’이라는 야심찬 문구를 곁들여 광고하며 대한극장 인수를 알렸다. 한편으로는 입장객에게 피아노와 고급상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마련하고, 이탈리아 오페라단의 내한공연을 올리는 등 새롭게 출발하는 대한극장의 다양한 면모를 알리기도 했다. (좌) <잊지 못할 사랑> 전단 (우) <상처뿐인 영광> 전단 대형극장의 위용을 갖추다 여러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말까지는 국도 , 명보 , 단성사 등을 잇는 후발주자의 느낌이 강했던 대한극장이 본격적으로 대형극장, 흥행극장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국내 최초로 70밀리 초대형 영화를 상영하면서부터였다. 1961년 9월 21일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 남태평양(South Pacific) >(조슈아 로간, 1958)은 영화의 내용과 평가를 넘어 영화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케 하고, 당해 연예계의 주요 뉴스에 꼽히는 등 영화 매체의 큰 변화로서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남태평양> 이후 대한극장이 국내 제일의 대형극장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 영화는 < 벤허(Ben-Hur) >(윌리엄 와일러, 1959)였다. <벤허>는 1962년 2월 1일 대한극장에서 개봉해 10월 8일까지 무려 8개월 동안 장기 상영했고, 10월 9일부터는 세기상사가 소유한 또 다른 개봉관인 세기극장으로 이동해 상영을 이어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때의 기록적 흥행과 초대형 영화관람의 경험은 여러 차례에 걸쳐 <벤허>가 재상영될 때마다,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대중을 극장으로 이끄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벤허>가 대한극장에 관한 회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할 터이다. (좌) <벤허> 국내 포스터 (우) 1986년 대한극장의 모습 <벤허>와 더불어 < 오클라호마(Oklahoma!) >(프레드 진네만, 1955), < 캉캉(Can-Can) >(월터 랭, 1960), < 왕중왕(King of Kings) >(니콜라스 레이, 1961) 등 70밀리 영화들의 연이은 상영은 대한극장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대형 스크린과 좌석 수 2천이라는 규모, 그 위용에 걸맞은 초대형 영화, 그리고 극장 앞 인산인해를 이룬 관람객의 모습을 삽입한 광고는 1990년대까지 대한극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했다. 이와 같은 대형극장으로서의 위용과 이미지는 1990년대까지 단관극장으로 버티는 힘이 되었다. 1990년대 말 대한극장의 상영⋅배급을 담당했던 임철호 의 구술처럼 영화 한 편이 “터졌다 하면 하루에 만 명인데, 열흘 만에 십만 명이 되” *주2 는 규모를 여전히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화하며 극장 지형과 극장 문화 또한 변화를 겪었지만, 단관극장의 매력과 흥행의 묘미가 남아있었던 20세기 말 충무로의 풍경에 대한극장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70밀리 대형영화와 마무리한 단관극장의 여정 멀티플렉스의 성공적인 안착과 함께 단관극장으로서의 대한극장 또한 마무리에 들어가면서 들고 온 프로그램들은 역시나 70밀리 초대형 영화들이었다. 또다시 재탕이라는 소리도 들었겠지만, 대한극장다운 프로그램 선정이었다. 1998년과 1999년 상영한 <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데이빗 린, 1962), <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데이빗 린, 1966) 등은 여전히 단관극장과 초대형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 호응을 얻었다. 국내에서 단관극장의 마무리가 어땠는지를 둘러보면 비교적 아름다운 행보였다고 할 수 있으려나.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던 단관극장으로서의 대한극장 21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대한극장도 멀티플렉스로 전환하면서 충무로의 풍경 또한 변했다. 그동안 충무로와 종로, 을지로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극장들을 계속해서 목격했다. 사라진 극장들과 20세기의 대한극장을 기억하면서 꽤 오래전 광화문 네거리의 동화면세점을 국제극장 이라 지칭하시던 택시 기사님이 불현듯 떠올랐다. 구술채록을 하면서 대한극장에서 원로영화인을 뵐 일이 많았는데, 그들과 나는 항상 최첨단의 시설을 갖춘 대한극장에서 만났지만, 그 기사님처럼 우리는 늘 20세기의 대한극장을 떠올리며 약속을 정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제야 해 본다. 어쩌면 나는 대한극장의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상영 전 대기할 변변한 장소도 없어 극장 밖 거리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장 순서를 기다리던 20세기 후반으로 돌아가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천 명이 함께 < 미저리(MISERY) >(롭 라이너, 1990)의 공포를 느끼고, < 라밤바(LA BAMBA) >(루이스 발데스, 1987)의 OST를 소리 없이 따라부르던 그 시절로 말이다. *** 주1. “새영화-잊지 못할 사랑”, 《경향신문》, 1958. 4. 5., 4면. 주2. 채록연구 공영민, 「임철호」, 『2020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60~1990년대 수입외화의 변화 3』, 한국영상자료원, 2020, 153쪽. 공영민(영화사 연구자) l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인 구술사의 채록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2003년 | 싸이더스 감독, 시나리오: 장준환 | 제작: 차승재 | 촬영: 홍경표 | 프로덕션 디자인: 장근영 김경희 | 음악: 이동준 CAST 병구: 신하균 | 강 사장: 백윤식 | 순이: 황정민 | 추 형사: 이재용 < 지구를 지켜라! >는 외계인이라는 소재와 병구와 강 사장의 대립을 통해 한국 사회를 통렬하게 폭로합니다. 저녁에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갈등에 대한 영화인 것 같다”고 말하자, 장준환 감독은 “맞다. 사실 외계인 같은 덴 별 관심도 없다”고 직설적으로 대답하기도 했죠. 추 형사가 벌떼의 공격을 받는 장면을 중심으로, 현장은 정말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장준환 감독은 속보로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배우와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스태프들과는 영화의 디테일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데뷔 감독의 열정과 꼼꼼함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죠. < 복수는 나의 것 >(2001) < 서프라이즈 >(2002)에 이어 신하균이 선택한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였습니다. 병구는 외딴 곳에 홀로 살며 외계인의 존재를 추적하는 캐릭터죠. 내성적이지만 에너지를 내뿜을 땐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인물인데요, 신하균은 자신과 병구 사이에 꽤 많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연기의 감정적 밀도가 높아서 한 컷 안에서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보여줘야 하는 게 어려움이라고 하더군요. 이 날 촬영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신하균이 아니라 추 형사 역의 이재용이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영화계에 막 얼굴을 알리는 단계였는데요, 곽경택 감독의 < 친구 >(2001)에서 유오성 의 얼굴에 지긋이 칼을 대던 조폭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긴 후였죠. 장준환 감독 현장에서 장준환 감독은 조용하면서도 섬세히 요구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가 병구 역에 신하균을 떠올린 건 시나리오를 마칠 즈음인데요, 어느 잡지에 실린 그의 얼굴과 눈빛을 보고 병구의 광기를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하네요. 짙은 노란색 머리는, 감독 자신이 직접 염색한 거라고 합니다. 숙소에서 심심해서 그냥 한 번 해봤다는군요. 홍경표 촬영감독 최근엔 이창동 감독의 < 버닝 >(2018)으로, 그리고 < 곡성 >(2016)이나 < 설국열차 >(2013), 더 거슬러 올라가면 < 마더 >(2009)와 이명세 감독의 < M >(2007) 그리고 < 태극기 휘날리며 >(2004) 등에서 카메라를 잡았던 홍경표 촬영감독. 그는 스태프 중 가장 연장자였지만 가장 활기에 차 보였습니다. 홍 감독의 촬영 플랜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카메라워크와 그린 톤이었는데요, 궁극적 목표는 코미디와 서스펜스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봉장 위엔 병구의 집이 있습니다. 공포영화에서나 만날 수 법한 을씨년스러운 곳이었죠. 이곳에서의 촬영 공개는 없었지만, 내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병구는 가내수공업으로 마네킨을 만들며 외계인의 존재를 주시하는 인물인데요, 그런 캐릭터가 공간에도 잘 드러납니다. 하얀 마네킨과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외계인 관련 자료들, 그리고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장준환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 >(1991)과 < 미저리Misery >(1990)를 참고했다고 하는데요, 이 공간을 본 후에 감독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산은 금방 어두워집니다.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현장. 촬영장에 어둠이 깔리고, 이제는 카메라를 꺼야 할 시간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