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개비 루
- 감독
- 민병천, 조성희
- 제작년도
- 2009
현서를 찾으려는 강두 가족의 사투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산업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계에 분 산업의 활기는 2006년 정점을 찍었다. 2003년부터 80편대를 기록하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6년을 기점으로 100편을 넘어섰다. 2001년 50%를 넘어 2004년부터 60%대에 육박하던 한국영화 점유율도 급기야 2006년 63.8%를 기록했다. 현재(2018년 기준 50.9%)까지도 가장 높은 수치로 기록된 비율이다. 이처럼 2006년이 한국 영화 산업에서 가능한 최대치를 보여준 해였다면, 2007년 이후는 위기 혹은 조정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2006년 7월 긴 논란 끝에 결국 스크린쿼터 즉 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도가 73일로 축소되었고, 때마침 버팀목이라도 무너진 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세졌으며, 한국영화 관객은 감소했고 수익률과 수출 실적 또한 하락했다. 2007년 50%로 내려선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8년 42.1%까지 떨어졌다. 2007년부터 시작된 산업의 하락세가 불과 2년 만에 극복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2009년 시장과 관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하더니, 2011년부터는 극장 관객과 매출액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영화도 4년 만에 다시 시장점유율 50%대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2012년을 기점으로 한국영화산업은 관객 수, 매출액, 수익성 면에서 도약하며 불황의 그늘을 완전히 떨쳐냈다. 한국영화 점유율도 다시 60%대에 육박하게 된다. 2013년 영화산업은 다시 호황을 맞이한다. ‘천만 영화’가 말해주는 것들 2004년 < 실미도 >(강우석, 2003)와 <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2004)로 시작된 천만 관객 영화가 한국 영화 산업의 상승 국면과 연동되어 등장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2005년 < 왕의 남자 >(이준익)가 1,200만, 2006년 < 괴물 >(봉준호)이 1,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000년대 중반 영화 산업의 활력을 대변했다. 그리고 2년간의 체질 개선을 거친 2009년 < 해운대 >(윤제균)가 천만 영화 대열에 다시 합류했다. 따져보면 천만 영화가 등장한 것은 산업이 회복됐다는 신호가 강해진 시기다. 이후에도 2012년 < 도둑들 >(최동훈) < 광해, 왕이 된 남자 >(추창민), 2013년 < 7번방의 선물 >(이환경) < 변호인 >(양우석), 2014년 < 명량 >(김한민) < 국제시장 >(윤제균), 2015년 < 암살 >(최동훈) < 베테랑 >(류승완) 등 매년 2편씩의 천만 영화가 잇달아 등장하며, 한국영화산업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한국영화의 천만 관객 동원은 무엇보다 영화산업의 양적 규모를 확대해나가는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큰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천만 영화는 제작사의 역량이나 투자배급사의 물량 공세만으로 달성되기는 힘들다. 넓은 층위의 관객들에게 일정한 공감을 얻어야 하는 동시에 개봉 시점 한국 사회의 분위기나 관심사와도 들어맞아야 한다. 어쩌면 천만이라는 숫자는,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선 일종의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의 장르나 경향으로 일별하기 힘든, 각기 당대의 복잡한 맥락이 새겨져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괴물>은 대형 배급사가 150억 원의 총 제작비를 투여하고 스크린 독과점 이슈까지 발생시킨 영화였지만, 영화적으로는 다른 천만 영화들이 목표로 한 대중적 화법에서 가장 벗어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는 봉준호라는 특별한 감독이 산업과 행복하게 결합한 덕분이었다. 봉준호 감독 영화광 출신의 감독, 글로벌 영화로 나아가다 한국의 ‘영화청년’은 어떻게 감독이 될 수 있을까. 봉준호 는 한국에서 감독이 되려는 영화청년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된 감독이다. 영화광으로 출발한 그가 개척한 길은, 현재 영화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인상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그의 구체적인 행보뿐만 아니라 독특한 감각의 영화 세계, 양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1969년생인 봉준호는 대학에서는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로 입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대학 동아리에서 첫 단편영화 < 백색인 >(1994)을 만들었고, 영화아카데미에서는 < 프레임 속의 기억 >(1994)과 졸업 작품으로 < 지리멸렬 >(1994)을 연출했다. 이후 충무로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김유진·장현수·정지영·박철수·박종원·장길수·강우석, 1996)에서 각색과 연출부를 경험했고, < 모텔 선인장 >(박기용, 1997)에서 각본과 조감독을 맡았고, < 유령 >(민병천, 1999)의 각본도 썼다. 많은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6년가량 그저 버텨보는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감독 데뷔의 기회는 후자의 두 작품을 제작한 차승재의 우노필름에서 얻었다. 한 대학 시간강사가 일으킨 소동을 통해 한국 사회를 빗대 보는 < 플란다스의 개 >(2000)는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인상적인 데뷔작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작품이다. 특히 봉준호 영화 세계의 원형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꼭 다시 확인해야 할 영화이기도 하다. 2003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1980년대의 시대상을 투영해 풀어낸 < 살인의 추억 >이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하며 연출 역량을 인정받았고, 2006년 세 번째 장편 <괴물> 역시 국내를 넘어선 흥행과 비평적 지지를 받으며 봉준호는 21세기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의 반열에 오른다. 2009년 네 번째 장편 < 마더 >는 모성을 미스터리의 소재로 삼아 한국 사회의 단면을 포착하며 국내외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2013년 450억 규모의 다국적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글로벌 영화 신에 성공적으로 진출했고, 2017년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제작한 < 옥자 >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처음 진출하기도 했다. 봉준호는 이제 한국영화를 넘어, 그의 이름 자체가 영화 브랜드가 된 국제적인 감독이 되었다. 현서가 갇혀 있는 하수구 공간 미학으로 승화된 스타일, 한국사회에 대해 발언하다 영화 <괴물>이 탁월한 지점은, ‘괴수영화’라는 장르적 표면(환상)과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발언(리얼리티)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아낸 것이다. 이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정교하게 설계된다. 첫 장면은 2000년 시점의 미8군 용산기지 영안실, 감독은 수평 구도의 미장센과 인물의 어깨너머 쇼트를 활용해 관객을 영화 속으로 이끈다. 2000년 실제 발생한 사건인 주한 미군의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을 직접 인용한 영화는, 바로 2002년 한강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돌연변이 물고기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2006년 한 중소기업 사장이 한강으로 떨어져 자살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극 중 동료/관객에게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 잘 살아들”이라는 말을 남기고 한강 밑으로 빠져든다. 우리 소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둔하게 살고 있는가. 빗물이 떨어지는 수직 구도의 한강을 배경으로 ‘괴물’의 타이틀이 나오고, 영화는 한강변 매점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노란 염색 머리의 남성 강두(송강호)를 보여준다. 아버지 희봉(변희봉)이 운영하는 매점에서 딸 현서(고아성)와 같이 사는 그는 한눈에 봐도 좀 모자란 사람이다. 하지만 강두는 딸에 대해서만은 절대적인 애정을 보이는 인물로, 이후 영화가 진행하면서 현서와 관련된 일이라면 순간적으로 똑똑해지고 괴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희봉과 현서가 매점 안에서 고모 남주(배두나)의 양궁 대회 중계를 보고 있는 동안 한강변에 괴생물체가 나타난다. 한강을 찾은 시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낀 강두는 그들과 같이 괴물에게 먹을 것을 던지는 등 장난을 친다. 우매한 대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평 구도가 인상적인 장면이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괴물이 지상으로 올라와 공격을 시작하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한다. 백주 대낮 살육의 아수라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영화는 한강 다리 위 버스 속 할머니의 시점으로 그 전경을 보여주며 현실감을 놓치지 않는다. 강두는 현서의 손을 잡고 도망가다 놓치고, 현서를 꼬리에 감은 괴물은 한강 속으로 사라진다. 희생자들 가족이 집결한 단체 장례식장, 희봉의 말대로 현서 덕에 남주와 남동생 남일(박해일)까지 모든 가족이 모이게 된다. 죽을 힘을 다해 현서를 찾는 이들은 국가가 아닌 강두의 가족이다. 2014년 4월 전 국민의 비극이 된 사고처럼, 국가 시스템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국민의 생존을 방해할 뿐이다. 시민들 역시 행동은 고사하고 감정적으로도 다른 이의 불행에 연대하지 못한 채, 강두 가족의 사투를 방관한다. 어쩌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는 전광판의 TV 뉴스를 보며 횡단보도에 서 있는 퇴근길 직장인들의 모습에서 압축적으로 묘사된다. 역시 수평 구도를 활용한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실체도 없는 바이러스 보도에 이목을 빼앗겨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할 뿐이다. 과연 영화 속 괴물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국가주의 혹은 미국이라는 패권국에 대한 비판일까. 아니면 자각하지 못하는 대중, 개인의 이기심 나아가 휴머니즘의 상실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의 복합체가 괴물일 것이다. 권력 피라미드의 하층부에서 수평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민중은, 괴물에 잡히는 순간 수직 구도의 하수구로 떨어져 살아 나오지 못한다.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한강으로 떨어져 자살한 남성이 경고했듯이, 우리 소시민들은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자신만 챙기다가 계급 구도의 가장 밑바닥으로 하강해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앞둔 순간, 괴물은 현서와 남자아이를 삼킨 채 다시 땅으로 올라온다. 결국 괴물을 물리친 것은 현서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진한 강두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들은 현서의 시신을 찾는다. 끝내 감독은 해피 엔딩을 선택하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눈이 내리는 한강변의 매점이다. 이제 강두는 현서가 돌보던 남자아이와 단둘이 산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을 지키는 이는 여전히 총을 놓을 수 없는 검은 머리의 강두다. 에필로그 현재 한국영화는 150억 원 이상의 고예산을 투여하는 대작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2006년 <괴물>이 만들어낸 정점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지점은 바로 한국사회에 대한 발언과 작가주의적 연출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으면서도 천만 이상의 관객으로부터 응답받은 것, 즉 작품성과 흥행성을 완벽하게 충족시켰다는 의미의 성취다. 감독의 발언은 선동이라기보다 세련된 우화에 가까웠고, 섬세한 연출 스타일은 미학으로 승화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대중 상업영화의 오랜 경계까지 무너뜨렸다. 지금 ‘천만 영화’라는 욕망을 품고 선보이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과연 <괴물>이 도달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가? 흥행 성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주목받지 못하는 고예산 영화들이 반복되는 현재야말로, 산업의 양적 성장을 질적 수준으로 전환시킨 13년 전의 <괴물>을 복기해볼 시점일 것이다. 2016년 7월호부터 시작한 ‘한국영화사 100년’의 연재를 예정했던 20회보다 빠른 18회로 마치게 되었다. 한국영화 제작이 처음 운을 뗀 김도산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부터 2000년대 박찬욱과 봉준호의 작품까지, 이 연재는 각 5년의 시기마다 주목해야 할 감독과 그 영화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예술영화보다는 대중영화라는 장에서, 작가주의를 견지하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을 선정했고, 대체로 그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업영화로 기록된 경우였다. 2010년대를 대표하는 두 감독과 영화를 선정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재 초기부터 고민을 멈추지 못한 2010년대 이후의 두 감독을 선정하는 작업을 일단 유보해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물론 필자 역시 여러분이 떠올릴 몇몇 감독을 생각했고 그들이 훌륭한 작품을 선보였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박찬욱, 봉준호처럼 대중영화와 작가주의 영화의 경계를 지워낸 감독이 등장했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 힘들 것 같다. 남겨진 숙제는 다른 지면에서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그동안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0년 | 싸이더스 감독: 이현승 | 각본: 여지나 | 제작: 차승재 | 촬영: 홍경표 | 미술: 김기철 | 음악: 김현철 | 무술감독: 정두홍 CAST 성현: 이정재 | 은주: 전지현 | 한 교수: 김무생 | 재혁: 조승연 2000년대 초, ‘시간’은 한국영화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강세를 띠기 시작했던 멜로와 로맨스 장르의 흐름 속에서, ‘시간 판타지’의 상상력이 발휘된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여기에 환생이나 소울메이트 같은 모티브가 결합되면서, 잠깐이었지만 한국영화는 낯선 사랑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현승 감독의 <시월애>는 이런 트렌드를 대표하는 영화입니다. 1997년의 남자 성현(이정재)과 1999년의 여자 은주(전지현). 그들은 시간을 뛰어넘어 편지로 사랑을 나눕니다. 2000년 5월 말 공개된 <시월애>의 현장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 석모도. 그곳 해변에 지어진 집 한 채.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이 2년의 시간차를 두고 사는 집인 ‘일 마레’(Il Mare). 이탈리아어로 ‘바다’라는 뜻이죠.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이 세트는 디자인도 중요했지만, 갯벌을 다지는 지반 공사를 해야 했기에 2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든 ‘작품’입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날 촬영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원형 트래킹 신이었습니다. 우편함을 가운데 놓고 성현과 은주가 시간을 뛰어넘어 만난다는 설정인데요, 마치 두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가 회전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원형 트래킹 카메라 워크를 썼습니다. 덕분에 촬영 스태프들은 카메라에 걸리지 않으려 몸을 최대한 낮춰야 했죠. 우편함 앞에 선 성현과 은주를 각각 촬영한 후 두 사람을 함께 촬영해 합성합니다. 설명이 조금 복잡한데요, 영화로 보시면 어떤 비주얼인지 쉽게 아실 수 있습니다. 햇살이 제법 따가운 초여름이었지만, 영화의 배경 탓에 배우들은 겨울 옷을 입고 구슬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현장의 이정재와 이현승 감독입니다. 연기 지도라기보다는, 촬영 중간중간에 ‘일 마레’ 앞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촬영을 맡은 홍경표 촬영감독입니다. 당시 그는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촬영감독이었죠. < 유령 >( 민병천 , 1999)의 특수촬영, < 반칙왕 >( 김지운 , 2000)의 역동적 카메라워크 등으로 주목 받았는데요, <시월애>에선 사뭇 다른 장르에 도전에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매력적인 배우들과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영화 <시월애>에서 관객들이 느낀 가장 큰 매력은 공간과 풍경이 만들어낸 비주얼의 감성적 느낌이었겠죠. “컷!” 사인이 떨어지면, 감독과 스태프와 배우가 모니터 앞에 모여 ‘그림’을 확인합니다. 원래 시나리오엔 전원 주택 스타일이었지만, 이현승 감독은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을 원했고 그 결과 ‘일 마레’가 탄생했습니다. 갯벌 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에 반대도 많았지만, 감독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죠. 집의 구조도 독특한데요, ‘현실’이라는 땅으로 나오기 위해선 긴 다리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아무튼 ‘일 마레’는 단순한 집이 아니라 영화를 풍부하게 만들어준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공간도 연기를 하는 셈이었죠. 여름의 촬영을 마치고 9월 9일 개봉을 앞둔 가을의 어느 날 <시월애>의 시사가 있었습니다. 사진은 시사 후 기자 간담회 때 이현승 감독의 모습인데요, 그 장소는 인사동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일 마레’였습니다. <시월애>는 < 그대 안의 블루 >(1992) <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1995)에 이은 세 번째 영화이며, 처음으로 자신이 쓰지 않은 시나리오로 찍은 작품이었습니다. 감독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전지현과 이정재입니다. 당시 이정재는 < 이재수의 난 >( 박광수 . 1999)를 마치고 2000년에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며 한 해에만 세 편의 멜로를 내놓습니다. < 인터뷰 >( 변혁 , 2000) <시월애> 그리고 < 순애보 >( 이재용 , 2000)죠. 한편 <시월애>는 전지현의 두 번째 영화였는데요, 스무 살 시절의 모습이 반갑네요. “저 같으면 은주처럼 과거의 사랑으로 괴로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을 택했을 거예요.”(전지현) “성현과 은주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고, 그냥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연결되는 관계예요. 그런 상황에서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잡아낼까, 이 부분이 참 어려웠어요.”(이정재) 이현승 감독은 언제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대 안의 블루>와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에 이어 <시월애>도 마찬가지였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과 사랑’이나 ‘결혼’ 같은 페미니즘적 테마에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는 점인데요, 은주는 아직은 세상과 많은 갈등을 겪지 않은, 대신 사랑의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감정의 흔들림을 겪는 캐릭터입니다.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얼마 전 배우 이영진 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 한 편이 있었다. <데우스 마키나>라는 영화다. 배우 이영진이 2000년대 중반엔 몸이 얼마나 지금보다 더 유연했던가, 액션 배우를 했다면 우마 서먼이 < 킬 빌 >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뭔가를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 도중에 나온 제목이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데우스 마키나>가 대체 무슨 영화인가 싶을 거다. 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를 전 국민의 지적 유행어로 만든 진중권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아, 사실 진중권이 연출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영화가 나온다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서울이 일베와 깨시의 전쟁으로 불타오르는 가운데 홀연히 연기를 뚫고 청와대 앞뜰에 착륙한 경비행기 한대. 거기서 진중권이 한 손에 고양이를 안고 라파엘로 그림 속 천사처럼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리고, 갑자기 신서울시에 출몰한 사도와 대결을 펼치는데…. < 천사몽 >(2001)과 < 성냥팔이 소녀 >(2002) 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데우스 마키나>는 지난 2002년 기획에 들어가서 영화의 절반을 촬영해 놓고 갑자기 중단된 미완의 영화다. 이 영화를 ‘삐용삐용B무비’의 마지막에 꺼내놓는 이유? 완성됐더라면 < 천사몽 >이나 < 성냥팔이 소녀 >를 뛰어넘는 한국 B급 SF영화의 계보를 훌륭하게 완성했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이어지는 그 무시무시한 SF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종종 그립다. 그 시기는 그러니까, 충무로로 쏟아져 들어오던 대기업의 엄청난 눈먼 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장렬하게 산화하겠노라는 이글이글한 야심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던 시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였고,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만듦새였으며, 하나같이 장르의 기본이 하나도 안 된 영화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대가 그리운 이유는 정말이지 모두가 영화를 막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시나리오 한줄 한줄 빨간 펜으로 검사하던 시절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괴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도 모르는 영화적 에너지의 시대였다. 맞다. 바로 그 시기 때문에 지금 한국 영화계가 이렇게 된 거다. 그런데도 그 시기가 그립다니 이거 참 사람이 경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하여간 다시 <데우스 마키나>로 돌아가자면 이야기는 이렇다. 무대는 2003년이다. 서울의 한 고층빌딩을 과격한 테러 단체가 점거하는데, 한국 최대의 정보 통신 기업은 이걸 진화하기 위해 비밀 인간병기 조직을 투입한다. 작전을 완료하고 돌아가던 인간병기 조직의 미녀( 김정화 )는 헬기 추락으로 부상당하고, 이를 오토바이 광인 미남( 권상우 )이 집으로 데려가고, 미남과 미녀는 사랑에 빠지고, 그러나 인간병기인 미녀를 되찾기 위해 정보 통신 기업이 찾아오고, 그들을 질기게 쫓는 인간 최종병기는 배우 이영진 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 영화가 끝까지 만들어졌다면 그랬을 거라는 소리다. <데우스 마키나>를 만들다가 무릎을 꿇고 결국 사라진 감독은 이현하 다. 당시 영화잡지의 인터뷰들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유학파고, 구로사와 아키라에 관한 석사논문을 쓴 적이 있고, 프랑스영화자유학교(CLCF)에서 영화 실무를 공부했다. 나로서는 그의 경력으로는 도무지 이 영화를 가늠할 수 없다. 다만 몇몇 인터뷰들을 통해 대충 <데우스 마키나>가 어떤 영화가 됐을지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 총몽 >, < 공각기동대 >, < 아키라 > 등을 적극 차용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사실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나온 SF영화 중에서 이 세 작품을 적극 차용하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으니까. 형식적인 면에서 이 감독은 “< 와호장룡 >이나 < 매트릭스 >와는 달리 원심력과 중력이 느껴지며, 움직임과 기하성을 조화시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건 더더욱 모르겠다. 흠. 아마도 원화평의 안무와는 다른 안무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아니다. 나는 지금 <데우스 마키나>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꿈을 능욕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나는 중간에 엎어져서 영원히 스크린에 걸릴 기회를 박탈당한, 만약 만들어졌다면 정말이지 끝내주게 삐용삐용한 B무비가 됐을 이 영화의 운명을 슬퍼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거의 100억대의 제작비를 투여한 <데우스 마키나>의 시나리오에는 민병천 의 < 내츄럴 시티 >를 연상시킬 만큼 순결한 나이브함이 깃들어 있으며, 만약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내츄럴 시티>와 함께 ‘한국 영화가 가장 도전적이었던 시절’을 기념하는 유물로 남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잊혀진 <데우스 마키나>의 이야기를 꺼낸 김에, 나는 몇 편의, 여러분에게 보여질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사라진 몇 편의 장편과 단편을 거론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도살자>( 김진원 , 2007) 먼저 김진원 감독의 2007년 작인 <도살자>다.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한 뒤 사라진 이 장편 고문 호러영화는 돼지머리를 가진 괴물을 주인공으로 스너프영화를 찍는 도살업자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 영화에서는 익히 볼 수 없었던 피와 배설물, 내장의 스펙터클이 카메라 바깥으로 진동을 한다. 돼지 발정제를 먹은 (가히 < 텍사스 전기톱 대살륙 >의 악마를 닮은) 괴물이 남자 희생자를 강간하는 장면에서 당신이 만약 B급 고어영화의 팬이라면 흐뭇해 했을 지도 모른다. 동시에 김진원 감독은 스산한 서울 교외의 배경을 통해 어떤 서정성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도 성공한다. 나는 김진원 감독이 꼭 다시 호러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 < 편대단편 >( 지민호 , 2005) 또 언급할 영화는 지민호 감독의 2005년 작 < 편대단편 >이다. 350만 원으로 10년에 걸쳐 완성된 이 영화는 당시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꽤 화제를 모았다. 혼자 연출, 제작, 각본, 편집, CG를 다 해내는 지민호 감독의 이 보기 드문 SF 단편은 일종의 ‘안티 < 스타워즈 >’로, 강제로 군에 징집된 뒤 기억을 삭제당한 식민지 행성의 젊은이들 이야기다. 물론이다. <편대단편>은 꽤나 허술하고, 종종 (이 분야의 오덕들이 만드는 영화가 대게 그렇듯이) 지나치게 진지하다. 하지만 지민호 감독이 좀 더 많은 투자를 받아 장편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생각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 불청객 >( 이응일 , 2010)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영화는 2010년에 나온 초저예산 SF영화 < 불청객 >이다. 만년 고시생과 백수들이 택배 상자에서 튀어나온 외계인을 만나는데, 알고 보니 이 외계인은 루저들의 생명을 적립해 늙은 거부들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일종의 고리대금업자로, 주인공들이 계약을 거부하자 자취방이 통째로 우주로 날아가버린다. 이건 한마디로 말하자면 ‘88만원 세대의 SF 어드벤처’로, <이나중 탁구부> 시절 후루야 미노루를 연상시키는 정말 기가 막히게 엇나가는 풍자 코미디로 가득하다. 아니, 나는 <불청객>보다 더 웃기는 영화를 2010년 이후로 한국 영화계에서 본 적이 없다. <불청객>이 소규모 개봉관에서 약간의 화제를 모은 뒤 이응일 감독은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 지구를 지켜라 !> 이후 가장 발칙한 데뷔작이었던 <불청객>의 감독이 아직도 메가폰을 잡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이다. 자, ‘삐용삐용B무비’를 마치며 내가 바라는 소원은 두 가지다. <데우스 마키나>의 묻혀있는 필름만이라도 다시 발굴해서 단관에서라도 상영을 하는 것, 그리고 이응일 , 김진원 , 지민호 에게 어떤 독지가나 어떤 진취적인 제작자라도 나타나서 제작비를 좀 지원해주는 것. 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B무비의 역사가 바뀔….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기념할 만한 B무비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