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밀양아리랑대축제 아랑규수선발대회 02
- 제작년도
- 2011
부산의 독립영화계에 200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다큐멘터리의 바람이 생겨났다. 그들은 30대 전후의 젊은 감독들이고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조성봉 감독이 제주 4.3 학살에 대한 도전적인 기록인 < 레드 헌트:빨갱이 사냥 >(1997), < 레드 헌트 2: 국가범죄 >(1999)를 제작했고, 계운경 감독이 장애 여성의 사랑과 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귀담아들은 < 팬지와 담쟁이 >(2000)를 만들었다. 기채생 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부산, 광주 등의 지역 인디씬의 성립과 변화, 와해의 지점을 오랜 기간 기록했다. 새롭게 등장한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주축이 된 집단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나 시점에 차이가 있고, 다큐멘터리의 미학적 수사에 대한 생각도 다르지만 부산독립다큐멘터리의 층이 세분화되는 지점은 이들로 인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오지 필름’은 박배일 이 주축이 된 집단으로, 이들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현장에 찾아가 함께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박배일은 <제제에게 가는 길>(2007), <내 사랑 제제>(2008), < 나비와 바다 >(2013)를 통해 장애인의 연애와 사랑,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그들의 곁을 지켜보았다. 소외된 이웃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그들만의 크리스마스>(2007), < 잔인한 계절 >(2010)은 이웃집 할머니, 분주한 도시의 후미진 곳에서 노동하는 환경미화원의 열악한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못 본 척 지나치는 그 지점을 찾아가 새벽과 밤의 시간을 공유하고 기록했다. 이후 박배일은 다른 지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옴니버스로 제작한 4대강 문제, 제주 강정 마을의 문제 등을 담은 영화를 거친 후에 < 밀양전 >(2013), < 밀양 아리랑 >(2014)에 이르렀다. 밀양 송전탑 설치를 맨몸으로 막기 위해 산을 오르는 밀양의 할머니들과 함께하기 위해 밀양에 머물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몸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할머니들의 일상적인 삶을 관찰하면서 밀양에서 살아온 시간에 대해 기록하고 증언한다. 박배일의 카메라가 충돌의 현장을 마다치 않고 종횡무진하면서 관찰한 사건들은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기본적인 인권이나 행복하게 살 권리를 함부로 훼손시키면서 공동체의 가치까지 허물어뜨리는지 낱낱이 폭로한다. < 밀양 아리랑 >( 박배일 , 2014) < 악사들 >( 김지곤 , 2014) ‘탁주조합’은 김지곤 과 그의 조연출을 맡았던 오민욱 이 함께 만든 집단이다. 이들은 함께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예민한 영화적 감각을 통해 공간을 새롭게 직조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김지곤은 쇠락해가는 극장을 좁은 영사실을 통해서 바라본 < 낯선 꿈들 >(2008)과 극장 바깥에 존재하는 삶의 터전을 기록한 < 오후 3시 >(2009)를 통해 사라질 공간, 매혹으로서의 극장에 대해 접근하는 그의 감수성을 드러냈다. 이후 제작된 < 할매 >(2011), < 할매-시멘트 정원 >(2012) 연작은 우연하게 만난 산복도로의 할머니들의 삶과 무자비한 도시개발의 파괴력, 그로 인해 흩어져야 하는 할머니들의 친근한 공동체의 와해 과정을 기록한다. 김지곤의 카메라는 할머니들의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순간을 중심축으로 구성해낸다. < 악사들 >(2014)은 속칭 ‘오부리’라고 불리는 악사들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면서 이들이 다시금 연주를 들려주는 순간을 기록한다. 오민욱 은 < 1987061020080610 >(2008), < 상 >(2012)을 통해 부산민주화운동의 뜨거웠던 투쟁을 과거와 현재의 시점에서 환기시키고 있다. 특히 <상>의 오래된 사물을 통해 그 순간의 기억이 현재 공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 존재하는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오랜 기간 인간의 눈과 관심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놓여 있던 사물을 통해 역사와 기억에 대해 미학적인 접근을 하는 방법은 이후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 재 >(2013)와 < 범전 >(2015)은 부산의 장소가 어떤 방식으로 제도적 시선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 현재 그곳을 채운 개발의 흔적과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침투하는지를 실험적인 이미지와 바라봄의 체험이라는 감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재 >( 오민욱 , 2013) <사냥>( 김영조 , 2013) 이 외에도 김영조 의 제작사 ‘월요일 아침’은 다큐멘터리의 활성화와 후배 육성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김영조의 < 가족 초상화 >(2007), <목구멍의 가시>(2009)는 가족의 숨겨진 비밀과 가족사를 관통하는 문제들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미시적인 접근이 증폭시키는 감정이 인상 깊다. < 태백, 잉걸의 땅 >(2008), <사냥>(2013)은 한국사회가 지닌 문제들을 담백하게 관찰하는 사람 중심의 영화다. 또 현재 영화 제작보다 미디어 운동이나 풀뿌리 운동과 연관된 실천을 중심에 둔 ‘미디토리’의 대표인 박지선의 <전설의 여공>(2012), < 그림자들의 섬 >(2014)을 제작한 김정근 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시선과 묵직한 삶이 교차하고, 미학과 정치가 예리하게 맞물리기도 하는 부산의 독립다큐씬의 활력은 감독들의 차기작으로 인해 더욱 풍성해진다. 김지곤은 할매 연작의 마지막 편을 제작 중이고, 김정근은 지하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찾아다닌다. 박배일은 막걸리 생탁의 노동쟁의를 기록하고 있고, 오민욱 역시 부산의 잊힌 공간을 부지런히 오간다. 김영조는 영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중이다. 이들의 카메라가 운동으로 향하건, 투쟁이나 사색의 현장을 지칭하건 그들 모두는 부산이라는 지역과 장소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카메라의 태도에 대해 고군분투한다. * 사진설명: 좌측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배일 , 김지곤 , 오민욱 감독
밀양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커다란 송전탑을 가까이서 본 적도 없다.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에 대한 뉴스를 보고 때로 분노했을 뿐, 사실 그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살아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 밀양 아리랑 >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 밀양 아리랑 >은 밀양의 송전탑 반대투쟁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는 오지필름에서 만든 밀양에 관한 두 번째 작품이다. <밀양 아리랑>은 새벽에 산에 오르는 밀양 주민 한 사람으로 시작한다. 깜깜한 산속을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 그녀의 뒤를 쫓는 장면을 보며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곧 웃음이 터졌다. 경찰들이 놔두고 간 수박을 쪼개 먹으며 달다고 웃고, 공사하는 포크레인 위에다가 스프레이 락카로 ‘도독놈’ ‘성리는 우리의 것’이라고 적으며 “입으로 말하는 대로 적으면 우짜노” 하고 유쾌하게 웃어버리던 그 장면에서, 나는 이 주인공들에게 푹 빠져버렸다. 친근해진 마음으로 두 시간 동안 본 영화에서는 사건과 투쟁보다는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밀양에서 농사짓는 영자 씨의 꿈이 원래는 여군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녀가 돌보지 못해 빛을 잃은 농작물에 같이 마음이 아팠다. 내 나이만큼 이사를 다니며 살아서 삶의 터전이 바뀌는 무거움을 잘 몰랐는데, 집에 뿌리내리듯 살아온 덕촌할매의 모습을 보며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시간에 대한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편 다큐멘터리에서 얻을 수 있는 큰 매력은 어떤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 밀양 아리랑 >이 가진 미덕은 화면 속의 인물을 ‘그들’로 보게 하지 않고 ‘우리’처럼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산속 농성장에서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다. 아마도 6월 11일,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농성장 침탈현장의 소리가 들린다. 함께 밥을 퍼서 웃으며 밥을 먹는 그 날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일상적인 얘기들을 나누며 함께 밥 먹는 그 장면에 얹어진 비명소리, 뭔가를 뜯어내는 둔탁한 소리는 그들이 부수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게 끝난 거 같은데,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농성장이 부서졌는데, 송전탑은 하늘 아래 차곡차곡 올라가고 있는데, 밀양의 사람들은 다시 함께 밥을 먹고 새로운 싸움을 준비한다. 밀양 투쟁을 다룬 또 다른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 밀양, 반가운 손님 >을 보면서 느꼈던 게 막막함과 답답함이라는 감정이었다면 < 밀양 아리랑 >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싸우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었다. 세월호에 관한 작가들의 글을 묶은 책 「눈먼 자들의 국가」 중 진은영 작가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세계의 거짓과 태만이 그들의 집을 부쉈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수도권에서 전기를 쓰며 이 글을 쓰는 나도 밀양에 세워지는 송전탑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투쟁이 그들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어야 한다. < 밀양 아리랑 >을 보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 시작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