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 감독
- 나카히라 코우
- 제작년도
- 1959
- 출연
- 가츠라기 요코, 이토 다카오, 미야구치 세이지
<사랑은 낙엽을 타고>와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가 간직한 이미지의 존엄에 관해 벨라 타르는 영화감독을 은퇴하면서 설립한 영화학교 ‘필름팩토리’의 취지문에서 이미지의 존엄성(dignity)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가 자신의 영화를 말할 때도 이따금 사용하던 단어다. 영화 작업은 존엄을 보존하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이다. 벨라 타르는 연출자다운 확신의 언어로 말하지만, 존엄의 이미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한 논리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믿음엔 의심할 바 없는 진실이 있다. 하지만 존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존엄의 이미지는 어떻게 스크린에 정착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영화가 세계의 가려진 진리를 밝히는 안내서가 되길 바라지만 그런 믿음은 언제나 불투명한 결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사적인 인상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경험의 빈칸처럼 남겨진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그 불투명한 자국은 더욱 짙게 남겨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시기에 존엄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절실한 필요성을 가질 것이다. 지극히 사소하고 범용한 사물이지만, 올해 지켜본 두 편의 영화에 나온 두 장의 종이가 마음에 남는다. 하나는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온 거장의 영화에 등장하고, 다른 하나는 팬데믹 시기에 촬영된 영화에 나온다. 모든 사회적 활동의 절차가 온라인과 디지털로 정립된 시기에 종이를 다루는 영화의 감각은 무척 희박하거나 시대착오적이라 말하기 쉽다. 두 편의 영화는 그처럼 미약하기 짝이 없는 종이의 물질성과 그 위로 글씨를 쓰는 손짓을 잊기 힘든 동작으로 새겨둔다. 두 장의 종이가 존엄을 증명하는 이미지의 사례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그 이미지들을 떠올리면 존엄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입에서 내뱉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다. 한 장의 종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 사랑은 낙엽을 타고 >에 나온다. 앞서 벨라 타르를 말하며 거론한 단어들(공장, 인간, 존엄)에 더없이 적합한, 일찍이 타르 또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카우리스마키의 신작이다. 슈퍼마켓 계약직으로 일하는 안사와 건설노동자인 훌라파는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의 사정으로 일자리에서 해고된다. 계약직과 일용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익숙한 광경이다. 그들은 노동의 권리를 잃어버린다. 물품을 다루고 건설 도구를 쥐던 손, 유통기한이 지난 샌드위치를 가져가고 술병을 들던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안사가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자 갈 곳이 없어진 두 사람은 밤의 극장으로 향한다. 영화를 보고 나온 안사는 종이에 연락처를 적어 훌라파에게 건넨다. 안사가 떠나고 훌라파가 담배를 피우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다 그만 연락처가 적힌 종이가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종이를 잃어버린 훌라파는 아무런 단서도 없이 극장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안사를 기다린다. 극장 문 앞에 두 사람이 있었고, 한 사람이 사라진다. 다른 한 사람이 기다리다 마저 사라지면 그가 피운 담배가 바닥에 남는다. 단순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이 막연한 기다림이 말로 설명되지 않는 깊은 비애감을 불러온다. 극장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이라면 연인을 기다리며 피우고 버려진 담배에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카우리스마키의 화면은 평면적이고 정적이다. 공간이 침묵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물들조차 몸을 움직이고 동작을 구사하는 것에 서투르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그의 화면은 몇 개의 단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름이 떠다니는 천국과도 같은, 하지만 카우리스마키가 다루는 인물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하늘(< 어둠은 걷히고 >의 원제는 ‘지나가는 구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물들이 머무는 지상의 벽과 바닥이 있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는 공간을 극도로 단순화하는 절차에 속한다. 이러한 절차는 카우리스마키가 밝힌 촬영의 과정에 깃들어 있다. 그가 밝힌 화면의 단순화 과정은 이런 식이다. 하나의 벽이 있고, 벽 앞에 두 사람이 머무른다. 그 위로 미약한 빛과 깊은 어둠을 드리우고, 한 사람을 사라지게 한다. 그러면 남은 한 사람과 벽과 공간에 드리운 빛과 어둠이 있다. 남은 한 사람을 마저 사라지게 하면 벽과 빛과 어둠이 남는다. 벽을 제거하면 빛과 어둠이 남겨지고 마지막으로 빛을 제거하면 어둠이 남는다. 카우리스마키는 그 과정에 영화가 있다고 말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에서 안사와 훌라파는 극장 문 앞의 벽에 선다. 그들 뒤에는 (두 사람이 함께 보고 나온 영화인) 짐 자무쉬의 < 데드 돈 다이 >와 데이비드 린의 <밀회>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안사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남기고 떠나면 훌라파가 남는다. 훌라파가 자리에서 벗어나면 벽과 빛과 어둠이 담긴다. 극장은 카우리스마키가 제시한 영화의 원리를 전하는 연인들의 장소다. < 그들 각자의 영화관 >에 수록된 카우리스마키의 짧은 단편 <주조공장>은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쉬는 시간을 묘사한다. 그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공장 안에 있는 영화관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아낸 뤼미에르의 단편영화를 본다. 건조하고 무뚝뚝하지만 친밀한 감정을 공유하는 관객들의 장소. 돈이 없는 채로 갈 곳을 잃은 안사와 훌라파가 일시적인 도피와 무뚝뚝한 사랑을 이루는, 상실된 만남을 기다리고 다시 재회하는 장소도 영화관이다. 과거 없는 남자가 새로운 삶을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그들은 기억 없는 극장에서 다른 시간으로 들어서고, 다른 현실의 경로를 택한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애틋하게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인간적 존엄과 기억의 흔적을 흰 종이나 천에 담아낸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 과거 없는 남자 >의 첫 장면에서 기차에 도착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집어 든 종이, 그리고 기억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그의 몸에 둘린 흰 붕대. 그것들을 바라보는 카우리스마키의 시선은 인물의 시선이 위치한 곳보다 더 낮은 곳을 향한다. 안사가 떨어뜨린 종이와 훌라파가 피운 담배는 모두 바닥에 남는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듯이 지상에 당도하는 시간을 담아낸 영화다. 영화 초반부, 안사가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들른 인터넷 카페가 30분에 10유로를 받는 규칙을 설정해두듯, 어느새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서도 시간은 자본의 논리에 붙잡혀 있다. 카우리스마키가 전제하는 영화적 실천의 방법은 그 시간의 질서에 격렬히 저항하기보다는 다른 속도의 시간을 동반하는 데 있다. 극장 앞에서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는 상대방과 다시 만날 때까지 서 있는 믿음과 기다림의 시간이 그러할 것이다. 극장 불이 꺼지고 훌라파가 화면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그가 기다린 시간이 영화에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우리스마키의 카메라에 포착된 이들은 세계의 질서를 벗어나 높은 곳으로 향하는 이상적 천사들이 아니라 지상의 중력에 속한 평범한 노동자이자 관객들이며 연인들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그들은 어딘가로 떠난다. 카우리스마키 영화의 엔딩에서 인물들은 배를 타고 바깥으로 떠나거나, 지상에 남아 삶을 이어간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결말은 조금 다른 인상을 남긴다. 안사와 훌라파는 어디론가 떠나간다. 하지만 그들은 바닥에 닿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한 마리의 개가 있다. 안사는 개의 이름으로 ‘채플린’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지만, 그들은 채플린의 떠돌이처럼 세계의 바깥을 배회하다 어느새 돌아오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곳에 있을 것이다. 그들 사이의 한 마리 개는 탈출을 모색하는 대신 이곳에 남아 삶을 지속하도록 이끄는 조건이다. 그렇게 두 사람과 한 마리 개의 뒷모습을 담아낸 마지막 장면이 이어진다. 존엄은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지상에서 대응하는 자들의 뒷모습에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종이에 대해 짧게 말하고 싶다. 미야케 쇼의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에서 주인공이 작성하는 공책이다. 많은 설명이 필요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다른 평자와 관객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도 이 영화의 아름다움에 즉각적으로 사로잡혔고, 특히 첫 장면을 무척 매혹적으로 기억한다. 선천적 청각장애로 귀가 들리지 않는 복싱선수 케이코를 다루는 이 영화는 그녀가 일기장에 무언가를 적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내용은 아직 알 수 없고 그녀가 들을 수 없는 볼펜 소리와 얼음을 씹는 소리가 관객에게 전달될 뿐이다. 16mm 필름의 질감 위에 정밀한 거리감으로 포착된 케이코의 옆모습은 이 영화의 특별한 자질을 순식간에 설득시켜버린다. 아름다운 도입부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기에 이 영화에서 글자를 쓰는 몸짓은 무척 특별하게 다뤄진다. 카메라는 잡다한 대화나 심각한 갈등을 포착하는 대신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케이코의 침묵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가끔 그녀가 공책에 무언가를 적는 순간을 기록한다. 얼마 동안의 시간을 지나 공책에 무언가 적는 케이코의 습관이 기억에서 희미해질 즈음, 우연히 그 기록이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갑작스럽게 입원한 체육관 코치의 병문안을 온 케이코는 병실에 들른 코치 아내의 요청에 공책을 건네준다. 케이코가 그린 그림과 매일 같이 실천한 자기명령의 기록들이 타인의 목소리를 타고 영화에 도착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한 장의 종이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타인의 목소리를 매개로 스크린의 표면에 도착하기까지를 기다리는 영화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도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한 막연한 기다림이 있다. 두 편의 영화가 오늘날의 광폭한 시스템과 질서에 대항해 복고적 취향을 되살리는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미야케 쇼는 영화가 간직한 고전주의적 믿음(두 연출자는 필름 촬영을 고집해 이 영화들을 완성한 이들이기도 하다)이 오늘날의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 자문하는 긴밀한 긴장과 불화를 도입한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복잡한 문제로 향하지 않는다. 두 영화는 무척 단순하다. 에드워드 양이 < 하나 그리고 둘 >의 제작 의도의 핵심으로 ‘극도의 단순성’을 말하던 것처럼, 장 뤽 고다르가 < 언어와의 작별 >에 관해 직접 작성한 개요에서 영화를 “단순한 왈츠”에 빗댄 것처럼 영화는 고독하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도 단순한 문제다. 두 편의 영화는 그 단순함의 원리를 한 장의 종이에 담아 보여준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영화 이미지의 존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딩동. 문이 열리자마자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은 다짜고짜 총을 겨눈다. 헝클어진 머리,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복잡한 얼굴로 총을 든 그녀의 손이 덜덜덜 떨린다. 그녀는 왜, 누구를 향해 총을 겨눈 것일까. 그 날은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자넷의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을 자축하기 위해 자넷 부부는 친구들을 초대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자넷의 절친인 에이프릴(패트리시아 클락슨 분)과 그녀의 남자친구 고프리드(브루노 강쯔 분). 뒤이어 차례로 들어오는 마사(체리 존스 분) 그리고 지니(에밀리 모티머 분). 마지막 손님은 톰(킬리언 머피 분)이다. 톰의 부인인 메리앤은 늦는다는 전언, 이로써 메리앤을 제외하고 올 손님은 다 왔다. 파티는 시작도 전에 불길했다. 손님 맞을 생각은 않고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자넷의 남편 빌(티모시 스폴 분)을 필두로 에이프릴과 고프리드는 티격태격 작은 말다툼을 멈추지 않고, 톰은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콧속에 마약을 잔뜩 넣더니 권총을 품에 쑤셔 넣는다. 에이프릴이 축배사를 시작하려는 찰나 레즈비언 커플인 마사와 지니가 자신들의 세쌍둥이 임신소식을 먼저 발표하며 초를 치고, 에이프릴이 이 불길함에 화룡점정을 찍으니, 샴페인이 터지는 순간 날아간 뚜껑에 거실유리창이 와장창 박살난 것! 이 요란스런 시작은 그 날의 파티가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것을 현현한 것이었다. 출발테이프를 끊은 건 빌이었다. “내 상태가 안 좋다는군. 진단을 받았는데 결과가 별로야. 시한부라네.” 다들 놀라 할 말을 잃은 가운데 정적을 깨는 사람은 톰. “망할 놈!” 위로는커녕 그 와중에 빌에게 욕을 하는 시츄에이션이라니! 하지만 빌이 욕을 얻어먹을 만했다. 그의 자백에 의하면 지난 2년간 그는 톰의 부인인 메리앤과 불륜관계였단다. 갈수록 태산인 건, 그 둘의 밀회를 도운 건 다름 아닌 빌의 친구인 마사이고, 대학시절 빌과 마사는 또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일이 이 지경이라 톰이 연신 외쳐대는 ‘씨발’이 매우 적절한 리액션으로 느껴질 정도다. 감독인 샐리 포터는 이 영화를 ‘비극을 둘러싼 희극’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유머와 위트를 통해 인간이 받는 고통의 모순을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인 걸 보면 결국 방점은 희극에 있지 않고 비극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모두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대입한다면, 이 영화를 우리는 가까이에서 보아야 한다는 말일 게다. 거실과 부엌, 화장실과 앞마당이 전부인 좁고 한정된 공간은 그래서 매우 적절하다. 갇힌 공간은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때문. 공간의 협소함으로 촉발되는 지루함은 71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으로 한 방에 해결했고, 모든 컬러가 배제된 흑백화면은 인물에 대한 편견을 제거시킴으로써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를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이 완벽한 삼합으로 우리는 감독의 완벽한 인질이 된다. 인간의 삶은 세 가지로 나뉜다. 공적인 삶, 사적인 삶, 그리고 비밀의 삶. 이 영화는 비밀의 삶이 어떻게 공적이고 사적인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를 통쾌하게 까발리며 진실과 진리(眞)은 항상 선(善)이 되는지, 선(善)은 늘 아름다울(美) 수 있는지를 대놓고 묻는다. “난 진실과 화해를 믿어. 난 전 세계를 향해 연설했어! 우리나라를 부당착취의 도살장에서 건져 내느라 헌신했다고!” 라고 사자후를 토해낸다고 해서 진(眞)에 가까운 자넷의 공적인 삶이 마냥 사적인 삶과 일치했던 건 아니다. 개인의 삶의 모습과 사회적 정의감은 별개의 층위를 갖는다. “가끔 이기기 위해선 확신에 가득한 ‘척’도 해야 한다”는 자넷 본인의 말마따나 그녀의 진(眞)은 선(善)이 아니라 위선(僞善)에 가까웠다. 아니, 딱 위선이었다. 사적인 삶에서는 외조를 하느라 자신을 희생했던 남편 빌에게 무심한 아내였고, 심지어 계속 울려대는 문자메시지 알림음은 그녀에게 비밀의 삶까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니 말 다했다. 진이 위선으로 연결되는 순간 이미 미는 존재할 수 없다. 미(美)가 실종된 자리엔 추(醜)가 남는다. 다른 사람들의 사정은 나을까. 그럴 리가! 지식인의 대명사인 대학교수 빌과 마사는 입으로는 온갖 격률을 다 쏟아내며 번지르르한 레토릭을 자랑하지만, 실상은 본심을 호도하느라 바쁘다. 정당정치, 합리주의, 페미니즘, 의료정책 등 각종 정치·사회 이슈들을 꺼내며 자신들이 정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굴지만, 그것들이 메리앤을 둘러싼 불륜과 적절히 조합되는 순간 그들 역시 위선자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함을 증명한다. 왜 너의 신념이 바뀌었냐고 추궁당하면 이 한 마디로 자신을 변명하는 그들. “모든 건 변해. 늘 변한다고!” 상황이 이쯤 되니 성공한 금융맨으로 비싼 양복이나 처입는 속물 중의 속물 톰이 가장 순수해 보일 지경이다. 등장부터 고프리드와 옥신각신하던 에이프릴이 이 하극상의 끝에서 “우리사이가 여기서 젤 낫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美)가 아름다움인 것은 미가 바로 각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은 곧 ‘앎’이므로. 비극이 미가 된다는 것은 비극이야말로 우리를 통절하게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님은 ‘비극의 미’를 이렇게 정의했다. 내가 앞서 진선미를 끌어들인 이유이자, 포터 감독이 희극을 가장한 ‘비극’을 연출한 이유일 것이다. ‘앎’을 전하기 위해서. 대체 어떤 앎이기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비밀의 속성에 대해 짚어야 한다. 외부에 당당히 드러낼 수 없는 욕망을 행위했을 때 그것은 곧 비밀이 된다. 또한 비밀은 대개 선의 반대를 품는다. 위선 혹은 악. 그래서 위선 혹은 악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 된다. 원래 이 모임의 목적은 ‘파티’였다. 우리가 쓰는 가장 화려한 가면의 향연인 파티. 욕망의 실체를 감춰주는 게 가면의 역할일 텐데, 그 거창하고도 눈부신 가면을 벗기면서 느끼는 쾌감이 감독이 지향한 길티 플레져였다. 그러나 남의 비밀을 아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진짜 비극은 내 가면이 벗겨져 보이기 싫었던 완연한 민낯이 드러나는 것. 나의 위선, 나의 악, 나의 욕망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저들을 비웃기 위해 가리켰던 손가락을 내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 “아리따운 메리앤! 그녀는 태풍의 눈이지. 늘 태풍의 눈이야.” 영화 초반 에이프릴은 메리앤을 두고 이렇게 말했었다. 태풍은 주변을 초토화시키지만 사실상 태풍의 중심 즉, 태풍의 눈에서는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고요한 상태가 유지된다. 이것이 태풍이 가진 모순이다. 파티의 모든 사람들은 메리앤으로 인해 갈기갈기 찢기고 부서졌다. 그러나 정작 메리앤 본인은 영화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지막 ‘딩동’ 소리에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등장하도록 되어 있지만 역시 그녀의 모습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대체 그녀는 실재하는가 아닌가. 그녀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왜 ‘메리앤 없는, 그러나 메리앤이 중심이 된’ 스토리가 탄생했는가. 영화 내내 썅년 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녀는 과연 누구이기에. 자넷의 손에는 여전히 총이 있고, 그녀는 정면으로 총구를 겨눈다. 자, 이제 다시 대답해보자. 그 총구는 누구를 향해 겨눈 것일까? 여전히 메리앤을 향해서인가? 만약 아니라면? 그럼 그 사람은, 총을 맞을 그 사람은, 총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사람, 바로 너다!
박남옥 , 홍은원 , 최은희 의 뒤를 이어 네 번째로 한국 여자감독이 된 황혜미 는 1970년대 유일하게 활동했던 여성감독이었다. 홍일점 영화감독 자체로도 유명했지만, 더욱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한 것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프랑스 소르본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는 거의 정설처럼 회자되었던 소문이었다. 간혹 남편과 함께 미국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했다는 낭설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 아름다운 생존 >에서 프랑스에 잠시 가있었을 뿐 소르본느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조지타운 대학에 다니지 않았다고 스스로 밝혔지만, 활동 당시에 그녀는 내내 여류감독과 소르본느를 졸업한 재원이라는 수식어로 규정되었다. 황혜미는 1936년 만주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제3공화국 시절이었던 1963년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황종률이며, 아마도 부친이 일본 규슈제국대학 졸업 후 만주국에서 관리로 재직하고 있을 때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후 이화여고를 거쳐 1959년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였고, 1961년 미국에서 김동수와 결혼했다. 졸업 후 프랑스에서 잠시 학교를 다녔지만 바로 미국으로 가느라고 등록만 해놓고 수업을 거의 불참했고 대신 하루에 3편을 볼 정도로 열성적으로 영화관에 다녔다고 술회한다. 1) 인터뷰에서는 그 당시 < 400번의 구타(Les 400 Coups) >(1959) 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본 추억을 생생히 기억해내고 있다. 황혜미는 어릴 때부터 이미 영화광이었는데 중학교 2-3학년이었던 부산 피난시절부터 미성년자 입장불가의 극장을 출입하는데 능숙했었다고 한다. 이 시기 기억나는 영화로 < 무도회의 수첩(Un Carnet de Bal) >(1937)이나 < 망향(Pepe Le Moko) (>(1937)을 몰래 보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때부터 유럽영화에 깊이 심취해있었으며 프랑스 유학시절에는 유럽 모더니즘 영화, 특히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황혜미는 인터뷰에서 스스로 전후 세대로 규정하면서 성장과정에서 카뮈나 사르트르에 영향받았고 헤르만 헤세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언급하면서 특히 영화제작에 대해서는 푸도프킨의 서적을 중요하게 참조했음을 밝혔다. 2) 첫 경험 미국에서 돌아와 김승옥 의 소설을 읽고 매료되었던 황혜미는 남편 김동수 의 도움으로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을 영화화하게 되었다. 김수용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 안개 >(1967)의 감독을 맡기 위해서 소공동의 사무실에서 ‘미국유학에서 돌아온 엘리트’였던 제작자 김동수와 황혜미 커플을 만났고 그 자리에는 당시 신문에 열정적으로 글을 쓰던 이어령도 참석하고 있었다. 3) 태창흥업의 대명제작을 하는 프로듀서로 황혜미는 <안개>를 통해 처음으로 영화계에 입문하였고, 그녀의 표현처럼 ‘처음이라서 재미있으니까 일일이’ ‘로케이션 헌팅까지 쫓아다니’면서 완성한 영화였다. 상업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아방가르드’한 기획을 밀어붙여 제작했지만 이 영화는 흥행에서도 성공을 하였고 젊은 여성 기획자로서 황혜미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문예영화 <안개>의 성공으로 획득한 2편의 외화수입권은 영화계의 초짜였던 황혜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4) 차기작으로 < 감자 >(1968)를 선택했고 김승옥에게 감독을 맡겼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검열에 시달렸던 <감자>는 원래 기획의도와 멀어지면서 흥행에도 실패하였다. 이러한 힘든 경험을 겪은 후 김동수와 황혜미 부부는 1970년 마벨코리아라는 영화사를 세우고 첫 작품으로 황혜미 각본, 감독의 < 첫경험 >(1970)을 제작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말 영화사는 보한산업주식회사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첫경험>은 1970년 11월 27일 국도극장에서 개봉하였다.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영화예술』에서 선정한 1970년 베스트 영화 4위에 올랐다.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황혜미는 신인상을 받았고 흥행 역시 무난히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을 황혜미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영화가 개봉하기 전 “우리영화의 시장조사 및 수출-입 문제에 관한 현지답사”를 위해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기 때문이다. 황혜미에게 이러한 성공을 안겨준 영화 <첫경험>은 중년을 바라보는 부부인 기준( 남궁원 )과 지숙( 김지미 )은 권태로운 일상을 다룬다. 5) 부산으로 출장을 가는 비행기에서 기준은 대학자퇴생 인애( 윤정희 )와 만나게 되고 밀회를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를 눈치 챈 지숙은 방황하게 되고 탈선을 시도한다. 그러자 인애가 기준과의 지난날을 소중한 첫경험으로 남겨두고 떠남으로써 그들의 가정은 파탄직전에서 구출된다. 당시 유행하던 불륜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이야기 자체만 본다면 평범할 수 있으나 권태로운 부부의 일상 그리고 탈선 및 좌절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였다. 슬픈 꽃잎이 질 때 이후로 황혜미는 < 슬픈 꽃잎이 질 때 >(1971)와 < 관계 >(1972)를 연이어 제작, 각본, 감독한다. 황혜미가 사업차 3개월의 외유 끝에 돌아와서 집필한 작품인 <슬픈 꽃잎이 질 때>는 고아인 서은희( 문희 )가 수녀님의 소개로 부호인 엄상훈(남궁원)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상훈은 이름난 바람둥이 홀아비이고 방치 속에 자라는 두 자녀는 개구쟁이들이다. 은희는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결국 아이들과 친해진다. 이 과정에서 점차 상훈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시기한 전부인의 가족이 벌인 흉계에 휘말린다. 결국 상훈과 은희는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가게 되지만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은희는 죽게 된다.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및 등장인물들의 구도는 < 제인에어 (Jane Eyre)>(1944)와 <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1965)의 구조를 차용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영화는 혹평을 받았고 흥행도 크게 실패하였다.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에 치중한 기획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흥행에 실패하였다고 평가한다. 관계 세 번째 작품인 <관계>는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 < 졸업(The Graduate) >(1967)을 패러디한 것인데 원래의 설정에서 남녀를 변경한 영화이다. 홀어머니( 김신재 )와 살고있는 인애( 박지영 )은 근무하는 회사의 전무 기택( 남궁원 )의 유혹에 몸을 버리게 되자 직장을 그만두고 이를 알게된 어머니는 충격으로 숨진다. 여행사에 취직한 인애는 손님인 준호( 신영일 )의 적극적 구애로 사귀게 되고 준호의 부모님과 만나게 된다. 그 자리에서 준호의 아버지가 기택임을 알게되고 결혼을 피하게 된다. 힘들어하는 준호에게 기택은 모든 것을 고백한다. 인애는 자살을 기도하나 준호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된다. 너무 힘들어하는 준호를 보던 준호의 어머니( 문정숙 )은 사실 준호가 기택의 자식이 아님을 밝힌다. 진실을 알게 된 기택은 깊은 참회에 괴로워하고 인애는 병실에서 나와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고속버스를 타고 떠나지만 준호는 차를 몰고 와서 버스를 막아서며 인애와 재회한다. 이 영화 역시 흥행에는 실패했다. 성역할을 변경시켰을 때 그 이야기는 당시 흔한 불륜의 소재 이상이 아니었다는 점과 결국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준호와 인애가 맺어질 수 있다는 결론은 한 신문평의 언급처럼 “<졸업>의 경우 기존윤리를 정면에서 초극하려했던데 비하면 <관계>는 끝내 한국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6) 현재 황혜미가 감독한 이 세 영화 모두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그녀의 작품은 감각적인 영상미로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이 부재는 안타깝다. 이 한계는 황혜미의 문제의식과 그 영화들이 가지는 당대의 의미를 가늠하는 것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본인의 인터뷰와 당대의 평가들 및 관련 자료를 통해 조망해볼 때 우리는 당시 남성감독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감성 혹은 윤리적 길항을 읽어낼 수 있다. 우선 황혜미가 감독으로 활발하게 작업했던 1970년대 초반을 다시금 고찰할 필요가 있다. <첫경험>이 상영된 해인 1970년을 평가하면서 이영일 은 해당년도 영화계에서 두 가지 점에 주목하고자 했다. 하나는 멜로드라마의 트렌드로 떠오른 < 미워도 다시한번 >류의 범람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을 주제로 한 영화가 확연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이었다. 7)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는 1,2,3편 모두 흥행에 성공하면서 1970년대 초반 멜로드라마의 주류서사가 되었는데, 그 내부에는 항상 ‘한 남자의 비틀거리는 행위 때문에 그의 아내와 다른 하나의 동거여인 사이에 ...끝없는 자기희생’을 반복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8) 반면 이러한 보수적 이데올로기 반대편에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성을 그린 성 주제 영화들이 존재했다. 이영일은 <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 >(1960) 나 < 페드라(Phaedra) >(1962) 처럼 파격적인 윤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성을 타부시했던 한국의 상황에서 성을 주제로 한 이 영화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반체제적인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9) 황혜미의 <첫경험>은 위의 두 경향이 기묘하게 길항하고 있다. 당시 유행하는 불륜의 소재를 차용하지만, 불륜으로 인한 신파적 희생은 부재하다. 더구나 불륜 자체는 등장인물들에게 기성의 사회가 가지는 틀에 박힌 질서나 윤리의식을 벗어나는 상황으로 변주된다. 이처럼 불륜이 무겁지 않게 그려지고 있는 것은 성에 대한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의 남성과 젊은 여성은 별다른 윤리적 고민없이 자연스럽게 섹스를 하게된다. 그들이 느끼는 탈선의 근거는 징후적으로 소품이나 이미지를 통해 보여지거나 간결한 플래시백으로 제시된다. 설명이 결여된 채 이미지의 단상들을 통해 관객은 그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일상의 권태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평론가들이 호평하였던 영화의 도입부인 기준과 지숙의 섹스 장면은 “차가운 금속성의 탁상시계 소리를 에펙트로 넣고 그 속에서 부부의 냉각된 섹스”를 보여줌으로써 “부부의 성 자체가 이미 단순한 생활 속의 반복으로 리듬같은 일상으로 변했음”을 드러낸다. 10) 인애 역시 대학이라는 제도 자체에서 막 벗어난 젊은 여성으로 둘은 부산이라는 비일상적 휴양지에서 해방 혹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났다는 기분에 쉽게 섹스를 할 수 있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류의 영화들에서 섹스와 불륜은 엄중한 도덕적 문제였다. 성은 대부분 여성들에게 결혼을 전제로 하는 약속된 행위여야만 했고, 남성의 기만에 속아서 순결을 지키지못한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첫경험>에서 섹스는 그러한 과정을 겪지 않는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둘의 밀회는 계속되고 눈치를 챈 지숙은 배반감에 탈선을 시도한다. 기준은 아들과 아내가 있는 가정이 점차 무너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인애 역시 유부남이라는 현실과 마주했을 때 그 무게감이 점점 힘들어진다. 지숙의 탈선시도는 아슬아슬하게 멈추게 되고 인애는 담담하게 기준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게 한다. 벼랑 끝에서 다시 일상은 봉합된다. 게다가 ‘첫경험’을 한 인애가 파멸을 한다는 암시도 없다. 영화는 치정이나 불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감정적 격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일상성을 강조하며 영상언어를 통해 그 감성들을 유려하게 그려나간다. 공허함을 느낀 지숙이 아들이 동물원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거대한 코끼리와 대조되는 지숙의 왜소함을 이미지화함으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성이 느끼는 위축감을 드러내거나 기준과 인애의 이별 장면에서 문을 사이에 두고 외부에 있는 남성과 내부의 젊은이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젊은 여성을 보여줌으로써 각각 속해있는 세대 차이를 강조하는 장면 등 11) 은 어떠한 발화적인 설명 없이 결국 각자의 벗어나려했던 기존의 틀로 돌아가는 행위의 당위성을 납득시켜준다. 12) <첫경험>의 불륜을 보는 여성적 시선이나 <관계>가 드러내는 한 여성을 둘러싼 부자관계의 비윤리성은 한국사회의 기본 윤리에 대한 저항적 도전이었다. 그러나 황혜미는 결국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거나 친아들이 아니었다는 안도할만한 결론을 내면서 그 저항의 칼끝을 무디게 만들었다. 이 무뎌지는 저항의 감각이 그녀 본래의 윤리의식의 한계인지 상업성의 압박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상업적 압박이 아니었다면 황혜미는 더 강하게 도전적인 시도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안개>를 제작하는 도중이었던 1967년 9월, 그녀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실험적인 시도는 하고 싶지만 당분간은 “밑지는 일이 싫어 월리엄 와일러같은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13) 아이러니 하게도 <안개>는 황혜미가 관여한 영화 중 가장 예술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이 되었을 뿐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을 했다. 그러나 <첫경험>과 이후 작품을 통해 작가적 의식과 상업성은 점차 균형을 잃었다. ‘월리엄 와일러’같은 분위기의 상업영화들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와 그녀가 가진 성과 결혼에 대한 시대감각, 그리고 1970년대라는 현실상황은 매끄럽게 조화되지 못했다. 황혜미는 세 편을 끝으로 영화활동을 접었으며 몸담고 있던 보한산업주식회사 역시 1973년 이후에는 제작을 중단했다. 1) 「영화제작계의 홍일점 황혜미씨」, 경향신문, 1967.9.2.8면. 2) 이 글에서 주가 없는 황혜미의 소회나 발언 및 인용문은 모두 다큐멘터리 <아름다운 생존-여성영화인이 말하는 영화> (2001)에서 채록한 것이다. 3) 김수용, 『나의 사랑 시네마』, 시네21, 2005. 105쪽. 여타 자료나 당시를 회고하는 글들을 참조하면 이어령은 시나리오의 감수를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4) 황혜미, 「연패 끝에 <첫경험>의 메가폰」, 『여성동아』 1970년 12월호, 179쪽. 5) 기준이라는 이름은 <안개>의 남주인공 이름과 동일하다. 그 연결점을 의도적으로 설졍한 것으로 보인다. 6) 「타협으로 끝난 애정모럴의 갈등- <관계>」, 동아일보 1972.4.25.8면. 7) 이영일, 「마비와 혼미의 시대」, 『영화예술』 1970년 12월호, 32-36쪽. 8) 이영일, 위의 글, 34쪽. 9) 이영일, 위의 글, 35쪽. 10) 이서림, 「참신한 영화감각의 가작」, 『영화예술』. 1971년 1월호, 72쪽. 11) 「<첫경험>, 처녀의 불장난을 영상화」, 동아일보, 1970.11.28. 5면. 12) 이러한 서사구조와 영상미의 성취는 당시 프랑스 영화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 1966)와 <파리의 정사>(Vivre Pour Vivre, 1967)의 표절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13) 「영화제작계의 홍일점 황혜미씨」, 경향신문, 1967.9.2. 8면. 황혜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