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론의 풍운
- 감독
- 카를로 루도비코 브라가글리아
- 제작년도
- 1954
- 출연
- 론다 플레밍, 리카르도 몬탈반, 롤다노 루포
영화사에 관한 책을 보면 누구라도 마주치게 되는 영화. 보고 있으면 단지 압도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그 무게에 눌려서 질린 상태가 되어 보게 되는 영화. 말 그대로 모든 점에서 훌륭하고 심지어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건 예언적인 영화. 그런데 한 번 보고 나면 두 번 볼 엄두가 안 나는 영화. 데이빗 워크 그리피스의 < 불관용 >은 처음 볼 때 있는 힘을 다해서 보아야 하는 영화이다. 왜냐하면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책에서 이 영화를 <인톨러런스>라고 그냥 ‘音讀’한다. 여기서는 번역어로 옮길 생각이다) 단지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길기 때문만은 아니다. 게다가 내내 스펙터클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세트는 장엄하고 모든 장면들은 공들여 찍었다. 3,000명의 엑스트라들이 동원되었고, 바빌론 궁전 세트는 높이 90미터에 이르는 건축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불관용>은 (다른 그리피스의 영화가 그런 것처럼) 멜로드라마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두 번 보기가 힘든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불관용>은 영화사에서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구태여 말하자면) 마치 미켈란젤로가 1508년에서 12년 사이에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천장화>와 같은 위치에 있다. 위대하다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그 천장을 3시간 30분 동안 반복해서 볼 자신이 없다. (<불관용>은 여러 판본이 있다. 좀 더 자주 시네마테크에서 볼 수 있는 버전은 상영시간 3시간 17분 판본이다) 그리피스는 1915년 < 국가의 탄생 >을 완성했다. 영화에서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에 겨룰만한 성취를 얻어냈다고 에이젠쉬테인은 찬사를 보냈다. 미국에서는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언론과 지식인들은 <국가의 탄생>이 흑인에 대한 인종편견에 찬 영화라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리피스는 이중적인 태도로 <불관용> 제작 연출에 착수하였다. 하나는 물론 알라바이이다. 자신이 인종편견주의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인류애라는 휴머니즘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걸 영화로 증명하길 원했다. 속죄로서의 영화. 다른 하나는 그때 예술적으로 거의 정점에 올라온 그리피스는 자신의 영화적 가능성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불관용>은 거의 전례 없는 규모로 진행된 실험적인 영화이다. 모든 의미에서 <불관용>은 동시대 영화들과 차원을 달리한 영화였다. 아마도 <불관용>에 연출부였던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과 토드 브라우닝은 그때 많은 것을 훔쳤을 것이다. 그리피스는 서사에 네 개의 기둥을 세웠다. 서기 전 539년. 바빌론은 모든 것이 평화롭고 풍족한 왕국이었다. 벨샤자르 왕자는 펴민인 산골소녀를 돌보고 그녀는 왕자에게 사랑을 느낀다. 파국은 바깥에서 온다.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은 대규모의 군사를 이끌고 바빌론을 쳐들어온다. 서기 27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며 전도에 나섰을 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자들의 음모에 빠져 십자가를 지고 거기에 매달리게 된다. 서기 1572년 8월 24일. 프랑스. 신교도 위그노들과 갈등을 빚어오던 가톨릭교도들은 그날 대규모의 신교도 학살을 한다. 1914년 현재. 가난한 젊은 청년은 공장에 다니면서 아내와 살고 있다. 공장에 파업이 일어나고 이에 연루되어 해고당한다. 이제 낯선 곳에서 먹고 살기위해 애쓰던 청년은 그만 범죄조직과 얽혀든다. 그를 구하기 위해서 그의 젊은 아내가 가련하게 애를 쓴다. 이제까지의 영화들은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서사를 가지게 되면 차례로 진행하였다. 그리피스는 야심적으로 이 네 개의 시대를 번갈아 오가는 구조로 재구성하였다. 다른 영화들이 이 쇼트와 저 쇼트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의 문제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리피스는 영화 전체를 (아직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시간의 몽타주의 천장 벽화처럼 만들었다. 시간은 자유로이 여기서 저기로, 그리고 저기서 거기로, 그렇게 이동하면서 그 자체로 인류의 역사를 펼쳐보였다. 아놀드 하우저는 <불관용>을 본 다음 문학이 이제까지 이르려고 애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혹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영화는 시작하였다, 라고 탄식하듯이 썼다. 심지어 1916년은 제임스 조이스가 아직 <율리시즈>를 쓰고 있었고(이 소설은 1922년에 출판되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두 번째 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를 발표했을 따름이다. (1912년에 초고가 끝났을 뿐이었다) 그리피스는 서사 전체의 시간, 차라리 인류의 역사 전체를 그렇게 잘게 쪼개놓은 다음 완전히 서사 바깥에 놓여있는 에피소드를 반복적으로 추가하였다. 릴리안 기쉬가 연기하는 어머니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어린 아기가 누워있는 요람을 흔드는 그 유명한 장면. (그래서 이제는 모든 영화교과서에서 문법처럼 인용되고 있는 장면) 그리피스는 여기서 우리에게 서로 다른 시대의 시간으로 산산 조각난 씬들을 하나의 고정점 아래 매듭을 만들어 새로운 질서를 세워 유기적 통일성을 부여하였다. 영화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의 순간 중의 하나. 하지만 <불관용>은 그리피스의 알리바이를 증명하지도 못했고, 동시에 미학적으로 대중적 승리를 맛보지도 못했다. 이 영화는 자기의 시대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관객들은 자신들의 오락이 예술적인 목표를 향해 도약하는 새로운 도전을 참지 않았다. <불관용>은 대중들의 ‘인톨러런스’ 앞에서 거의 재난에 가까운 박스오피스를 마주했다. <불관용>의 가장 열렬한 관객은 예상치 않게도 (어쩌면 충분히 예상대로?) 볼쉐비키 혁명에 성공하고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에 새로운 예술적 가치가 필요했던 블라디미르 레닌이었다. 레닌은 이 영화를 자본주의 역사의 ‘인톨러런스’로 읽어냈다. 그래서 <불관용>을 수입하여 러시아 전역에 대대적인 개봉을 했으며, 더 나아가 그리피스에게 새로운 소비에트 영화산업 위원장 자리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리피스는 이 자리를 거절했다. 나는 거절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이 제안을 수락하고 그리피스가 소비에트에 갔다면, 그래서 젊은 제자들, 에이젠쉬테인, 푸도프킨, 지가 베르토프, 미하일 롬, 도브첸코, 보리스 바르넷을 가르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십년 후에 < 전함 포템킨 >을 보는 그리피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영화사의 순간들의 우연이 만들어내는 별자리들. (계속)
지금까지 본 애니메이션 DB사이트 「애니Db」에 칼럼과 애니메이션 추천 글을 몇 번 써왔는데,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에 집중하고자 했다. (※원고 후반부 리스트 참조)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필자는 1995년부터 여러 잡지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글을 연재해왔는데, 그 중에는 몇 가지 집중적으로 주목해온 테마가 존재한다. ‘한국 작품의 해외 진출’ 등과 같은 테마가 그것인데, 또 하나 애니메이션계에서 여성 스태프의 역할에 대해서도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글에서는 특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제작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여성 애니메이터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남성 중심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국내외를 막론하고, 단편애니메이션이 아닌 상업 작품에서는 여성 스태프의 역할이 주로 작화나 각본 분야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즉 캐릭터 디자이너라든지 원화와 동화 등 작화 부분, 그리고 스토리를 쓰는 각본 분야에는 여성 스태프도 많지만,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감독’이나 제작을 책임지는 ‘프로듀서’ 등의 파트에는 여성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참고로 일본의 TV애니메이션에는 작품 전체의 감독을 ‘시리즈 감독’이라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와 구분하는 의미에서 각 화별 연출담당을 ‘연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의 TV애니메이션의 경우 ‘연출’이라 불리우는 직함이 보통 국내에서 사용되는 ‘감독’과는 조금 다른 의미일 수 있는데, 이 ‘연출’ 부분에는 여성 연출자도 과거로부터 어느 정도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예를 들어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나 『기동전사 건담』의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 『 공각기동대 』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나 『 신세기 에반겔리온 』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 등에 해당하는 ‘감독’은 대개 남성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일본에서 현저한 상황이었는데, ‘00년대’도 끝나 2010년대에 접어든 현재 이 경향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있지 않나 생각되어 그 부분을 살펴보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일본의 여성 애니메이터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전통적으로 여성 스태프가 주로 캐릭터디자이너나 작화 감독, 혹은 원화나 동화 담당 등 작화 분야에 존재해왔다. 『 마법의 천사 크리미마미 』(국내 제목 『천사소녀 새롬이』)와 『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 등의 작품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은 타카다 아케미(高田明美), 『미소녀전사 세일러문』과 『세일러문 R』, 『애천사전설 웨딩피치』의 캐릭터디자이너 타다노 카즈코(只野和子), 소위 ‘용자 시리즈’ 중의 일부(『 전설의 용자 다간 』『용자특급 마이트가인』『용자경찰 제이데카』)와 『 마법기사 레이어스 』의 작화감독(일부는 캐릭터디자인까지)을 맡은 이시다 아츠코(石田敦子) 등이 그런 사례이다. 『시티 헌터』 시리즈와 『아르스란 전기(Arslan戰記)』(『아루스란 전기』라고도 표기)의 캐릭터디자인을 맡았고 『루팡 3세 PartⅢ』, 『기동전사 건담ZZ』 등에서는 몇몇 화의 작화감독을 맡은 카미무라 사치코(神村幸子) 역시 일본에서 여성 애니메이터로 유명한 인물이다. 타카하시 쿠미코(高橋久美子) 역시 『시티 헌터』 시리즈에서 작화감독을 맡은 후 『도쿄 BABYLON(바빌론)』『 카드캡터 사쿠라 』 등 만화가집단 CLAMP(클램프) 작품을 애니메이션화할 때 캐릭터디자인·작화감독을 맡은 바 있다. 최근에는 『오란고교 호스트부』『기동전사 건담 UC(유니콘)』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았다. 이노마타 무츠미(いのまたむつみ)는 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더 많이 활동했는데, 초기에 『 전국마신 고쇼군 』『시티 헌터』에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참여하고 『 윈다리아 』『마경전설 아크로번치』『프라레스 산시로』에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다.또 『우주황자』『바람의 대륙』『퓨처 그랑프리(GPX) 사이버 포뮬러』『브레인 파워드』에 캐릭터원안으로 참가했다. 나카지마 아츠코(中嶋敦子)는 『 란마 1/2 』『 체포하겠어 』 시리즈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고, 『하멜의 바이올린』『트리니티 블러드』『프린세스 프린세스』에서 캐릭터디자인을 맡은 베테랑 애니메이터다. 하야시 아케미(林明美)의 경우에는 거의 주로 원화나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애니메이터인데, 『너스앤젤(간호천사) 리리카 SOS』『 소녀혁명 우테나 』 등이 대표작이다. 『 후르츠 바스켓 』에서는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도 맡았고, 『극장판 소녀혁명 우테나 애덜레센스(Adolescence) 묵시록』에서는 작화감독을 맡은 바 있다. 야마모토 사와코(山本佐和子)는 여성 애니메이터로서 메카닉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사라키』『진키 익스텐드』『슈퍼로봇대전 OG -디 인스펙터-』에서 메카닉 작화감독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 밖에는 『지옥소녀』『학생회의 일존』『전설의 용자의 전설』 등에도 각화별 작화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 세인트 세이야 』(다른 번역 제목 『성투사 성시』)의 히메노 미치(姬野美智)도 마찬가지로 작화 분야의 유명한 인물이다. 히메노 미치는 『꽃의 아이 룽룽』, 『 베르사이유의 장미 』 등 1979∼1980년 작품에서부터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았던 베테랑으로, 최근에는 『 유☆희☆왕 』 시리즈의 캐릭터디자인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여성 애니메이터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너에게 닿기를』 시리즈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 각화별 작화감독 등을 맡은 시바타 유카(柴田由香), 『12국기』『미도리의 나날』『영국사랑이야기 엠마』 등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은 쿠스모토 유코(楠本祐子), 『강철천사 쿠루미』『플라네테스』『브레이브 스토리』 등에서 캐릭터디자인과 총작화감독을, 『코드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시리즈에서 메인 애니메이터와 총작화감독을 맡은 치바 유리코(千羽由利子) 등이 그 예이다. ■일본의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위에 소개한 것 이외에도 작화 분야에서는 많은 여성 애니메이터가 활약했고, 그밖에도 여러 분야에서 여성 애니메이터의 이름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주지한 바와 같다. 하지만 유독 작품 전체를 통괄하는 ‘감독’이나 작품의 기획 단계를 진행하는 ‘프로듀서’라는 직함에서만큼은 여성 감독의 이름을 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소녀만화(국내에서는 주로 ‘순정만화’로 분류되는) 원작 작품이나, 여성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조차도 감독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여성 애니메이션 팬은 남성 대상의 작품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고, 혹은 캐릭터 중심의 팬, 성우 팬으로 넘어가는 케이스도 적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다. 애니메이션의 여성 팬들에게서 소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소위 ‘BL(보이즈러브)’ 패러디나 동인지가 등장하는 이유 중 하나에는 어쩌면, 이와 같이 작품 기획 단계에서는 철저하게 남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특성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느껴진다. 공고한 듯 보이던 남성 중심의 애니메이션 감독직에 여성이 기용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났끼 때문이다. 우선 1990년대에 애니메이션 작품의 감독을 맡은 여성으로서는 『마루코는 아홉살(꼬마 마루코)』 시리즈의 스다 유미코(須田裕美子), 『YAWARA!(야와라)』『 미라클 걸즈 』『쾌감 프레이즈』의 토키타 히로코(ときたひろこ), 『미소의 세상(키코 스마일)』의 시부이치 세츠코(四分一節子), 그러던 것이, 『에비츄』(1999년), 『부탁해! 마이멜로디』 시리즈(2005년~2009년), 『탐정오페라 밀키홈즈』(2010년)의 모리와키 마코토(森脇眞琴), 『 최종병기 그녀 』(2002년), 『리스토란테 파라디조』(2009년)에서 감독을 맡은 카세 미츠코(加瀨充子), 『신백설공주 전설 프리티아』(2001년), 『뱀파이어 기사』(2008년), 『스킵 비트!』(2008년)의 사야마 키요코(佐山聖子) 등 점점 TV시리즈를 연출하는 여성 감독이 늘어나는 추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점점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주류적인 히트작을 내놓는 여성 감독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 중에도 『부탁해! 마이멜로디』(모리와키 마코토 감독)는 4년 이상 이어진 장편이고, 그 이전의 『마루코는 아홉살』(스다 유미코 감독), 『미소의 세상』(시부이치 세츠코 감독) 역시 1년 이상의 장편 TV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전부 유아 내지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징이 있다. 『YAWARA!』『미라클 걸즈』의 토키타 히로코 감독 정도가 예외적으로 아동용이 아닌 장편 TV애니메이션을 연출했다는 예외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2010년대의 일본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2000년대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게임의 화제작으로서 관심을 모은 『쓰르라미 울 적에』의 TV시리즈(2006~2007년), 그리고 유명한 『 노다메 칸타빌레 』 시리즈(2008~2010년)는 콘 치아키(今千秋) 감독 작품이다. 콘 치아키 감독은 그 외에도 『순정 로맨티카』 시리즈(2008년), 『괭이갈매기 울 적에』(2009년)도 연출했다. 『AIR(에어)』『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러키☆스타』『CLANNAD(클라나드)』에서 원화를 맡았던 야마다 나오코(山田尙子)가 첫 감독 작품으로 내놓은 『케이온!』은 2009년과 2010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최대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초대형 인기작이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11년 개봉 예정인 『 케이온! 』의 극장판 감독으로도 내정되어 있고,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연출자로서 자리잡고 있다. TV판은 아니지만, 2006년에야 애니메이션 업계에 데뷔한 1985년생의 젊은 마츠모토 리에(松本理惠)는 경력의 대부분이 『두 사람은 프리큐어』 시리즈 뿐인데, 2010년 『영화 하트 캐치 프리큐어! 꽃의 도시에서 패션쇼…인가요!?』로 약관 25세에 시리즈 최초의 여성감독으로 발탁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2000년대 후반 이후 주목받는 여성 애니메이션이 늘어나고 있는데,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1990년대에도 이미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은 존재했으나 대형 히트작을 담당한 경우가 없었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크게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전까지의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특징으로 여성 캐릭터의 기호성(소위 ‘모에’, ‘츤데레’ 등)이나 데이터베이스성(아즈마 히로키 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등의 서적을 참조할 것)이란 측면이 주로 지적받았던 점은, 어쩌면 남성 중심의 연출이 일반적이었던 2000년대 이전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특징과도 연관된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케이온!』과 『쓰르라미 울 적에』로 여성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계가 어떤 변화를 보일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케이온!』으로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2009년 일본의 잡지 「오리콘 biz」와의 인터뷰에서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기호화되기 쉬운데, 그런 단어(분류법)으로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작화 담당자에게 애니메이션의 여자 캐릭터가 자주 하는 포즈를 금지하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케이온!』은 기존의 남성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초대형 히트작이 되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기호화’를 쓰지 않고도 인기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명을 한 셈이니 향후 업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궁금하다.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과 사회 변화 출판만화나 문학에서는(일본에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장편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겐지 이야기』의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부터가 여성작가로 알려져 있다) 오래 전부터 당연히 존재해왔던 것이 여성 작가인데, 크리에이터 단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르에서는 당연했던 여성의 존재가 집단 제작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단체를 통솔하는 역할인 감독으로서 드물었던 것은 결국 일본 사회에서의 여성이 가지는 위상과 연관이 있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만화연구서 『만화! 문화 사회학적 읽기』(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9년 발행)의 공동저자인 최흡은 2011년 1월 20일에 열린 「망가: 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전 심포지엄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같은 예술 작품이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는 사회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그 사례로 작중의 여성 인물의 위상 변화에 관해 지적한 바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30년 이상 시리즈가 이어진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시대별 여성 캐릭터를 망라하여 그 특징을 설명했는데, 1979년 발표된 『기동전사 건담』에서는 군대 내의 여성 캐릭터가 주로 통신을 담당하는 통신사였고 로봇의 파일럿이나 전함의 함장을 맡은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임시직 정도의 대우였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던 것이 1985~1987년의 『기동전사 Z건담』『기동전사 건담ZZ』에서는 정식 파일럿이나 메카닉 기술자로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2002년의 『기동전사 건담 SEED』에 이르러서는 여성 캐릭터가 군대 내에서 함장이나 부함장 등 ‘지도자’ 역할로도 등장하게 되는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2007년 작품 『기동전사 건담 00(더블오)』에서도 마찬가지로서, 70년대로부터 8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이르면서 여성 캐릭터가 점점 전문직으로, 커리어우먼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애니메이션 작품 내에서의 여성 캐릭터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업계 내에서의 변화에도 시사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여성이 단순한 동화나 채색을 담당하던 것에서 캐릭터디자인이나 각본과 같은 전문직으로, 나아가서는 집단을 통솔하는 지휘자로서도 변화해온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내부의 변화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사회학적인 연구에도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