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신사]바이 준 - 통조림 (피아노독주)
- 제작년도
- 2010
2002년 | 디엔딩닷컴 감독: 최호 | 원안: 강수현 | 각본: 김은정 오현리 최호 | 제작: 심보경 조동원 | 촬영: 박현철 | 미술: 이경진 오상만 | 음악: 방준석 서준호 CAST 지형태: 조승우 | 서인주: 이나영 | 김남훈: 이장원 | 최보영: 조은지 1997년 < 접속 >( 장윤현 )은 ‘PC 통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뭇 다른 로맨스의 결을 만들어냅니다. 익명의 남녀가 가상의 공간에서 채팅을 통해 소통하는 관계는, 캐릭터의 내면을 반영한 OST와 함께 어우러지며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샀죠. 5년 후에 나온 < 후아유 >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입니다. <접속>의 제작사인 명필름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죠. 여기서 <후아유>는 <접속>에서 연령대를 낮추고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합니다. 채팅 게임 사이트 ‘후아유’. 상대방에게 누구냐고 묻는 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2001년 12월 추운 밤, <후아유>의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한강 둔치. 더욱 추운 곳이었죠. 주요 인물 네 명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었죠. 친구 사이인 형태(조승우)와 남훈(이장원), 인주(이나영)와 보영(조은지)은 우연히 노래방에서 만납니다. 형태는 인주와 아는 사이였고, 그렇게 네 사람은 함께 어울리다가 한강 둔치까지 오게 된 거죠. 술에 취한 인주는 나무를 올려다 보며 소리 칩니다. “야! 나무, 너…” 이나영 특유의 어떤 엉뚱한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장면입니다. 한쪽에선 형태와 남훈과 보영이 있습니다. 연애사 때문에 힘든 보영은 울고 있고 남훈은 다독이고 있는 상황, 형태는 소리 칩니다. “인생 끝났냐? 뭐야 질질 짜고! 우는 여자 진짜 재수 없어!” 이 소리를 듣고 다가온 인주는 다소 격앙된 톤으로 형태에게 따지듯 말합니다. “넌 안 울어? 기분 더러울 때 안 울어?” 그리고 형태를 밀어버리죠. 갑작스러운 인주의 일격에 쓰러진 형태입니다. <후아유>는 단지 인주와 형태의 로맨스가 아닌, 당시 청춘들의 삶에 대한 일면이 담긴 드라마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남훈과 보영이라는 캐릭터 덕이었죠. 남훈 역의 이장원은 지금은 성우로 유명하지만, 연기의 시작은 영화였고 < 세친구 >( 임순례 , 1996)의 삼겹으로 데뷔했습니다. <후아유>에선 형태의 동료로, 다른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에 갈등합니다. 인주의 친구인 보영은 여행사 가이드입니다. 조은지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요, < 눈물 >( 임상수 , 2000)로 데뷔한 그녀의 세 번째 영화입니다. 난방기구 앞에 네 배우가 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배우들은 카메라 앞을 벗어나면 곧장 두꺼운 점퍼를 입고 몸을 녹여야 했습니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닙니다. 중간 야식 시간에 스낵카 안의 이나영과 조승우인데요, 마치 자연스러운 연인 연기를 하는 것처럼 잘 어울립니다. 모니터링 중인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최호 감독입니다. < 바이준 >(1998)로 데뷔한 최호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인 <후아유>에서도 청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요, “사랑을 게임처럼 즐기면서도 진실한 사랑을 찾고 싶어하는 2000년대 젊은이들의 이중적인 사랑관과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이후 최호 감독은 < 고고70 >(2008)에서 조승우와 재회하기도 합니다. CF 모델로 시작해 연기로 영역을 넓힌 이나영에게 <후아유>는 세 번째 영화입니다. 일본 영화 < 에이지 >(구로츠치 미츠오, 1999)와 판타지 액션 < 천사몽 >( 박희준 , 2000)이 있었죠. 하지만 이나영은 <후아유>가 첫 영화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내보이는 느낌이 드는 영화이기 때문. 한편 인주는 ‘이나영 캐릭터’의 시작으로, 이후 그녀는 내면의 아픔을 누르며 살아가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인주랑 비슷하느냐는 질문 많이 들었어요.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그냥 ‘닮았어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인주를 닮은 것이 아니라, 인주가 저를 닮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주라는 인물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20대 여자라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지닌 인물인 거죠.” 조승우에게도 <후아유>는 세 번째 영화였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 춘향뎐 >(2000)으로 데뷔한 후 < 와니와 준하 >( 김용균 , 2001)를 거쳐 <후아유>의 형태 역을 맡게 된 거죠. 그는 게임 개발자이며 ‘멜로’라는 아이디로 인주의 아바타인 ‘별이’를 만나게 됩니다. “형태는 일에 찌들어 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죠. 그는 일 이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냉소적이며 꾀죄죄한 사람이에요. 형태와 제가 닮은 점이 있다면, 저도 일 외의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에요. 내 일이 아니다 싶은 것에는 관심이 가질 않아요. 그렇지만 형태처럼 차가운 성격은 아니에요.” 한강 둔치 촬영에 이어 형태와 인주가 도심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영화의 엔딩 부분에 해당하는 장면 촬영도 있었습니다. 촬영 사이에 두 배우가 포즈를 취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건너는, <후아유>의 마지막 장면 촬영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에선 사이버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후아유> 제작발표회의 이나영과 조승우입니다. 이나영은 인주라는 캐릭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연기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멜로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살리는 것이 힘들었어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힘들었죠. 그렇지만 저에게 오기가 있거든요. 나중에는 제가 우겨서 다시 찍기도 했어요.” 조승우는 이나영과의 호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우리 둘 다 조금은 폐쇄적인 성격이고 말도 느려요. 촬영 현장에서 우린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불렸어요. 애늙은이처럼 군다고 스태프들이 붙여준 별명이었죠. 그런 비슷한 구석 때문인지 호흡이 잘 맞았어요.”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최근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기는 1997년부터 1998년까지가 아니었을까. 민주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으면서 표현의 제약이 사라졌고, 새로운 영화사들이 새로운 자본을 만났던 이때 패기와 재능을 갖춘 신인감독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1997년에는 < 초록물고기 >의 이창동 , < 넘버 3 >의 송능한 , < 접속 >의 장윤현 , < 비트 >의 김성수 , < 내 안에 부는 바람 >의 전수일 등이 데뷔했고, 이듬해에는 < 조용한 가족 >의 김지운 , < 처녀들의 저녁식사 >의 임상수 , < 기막힌 사내들 >의 장진 , < 정사 >의 이재용 , < 미술관 옆 동물원 >의 이정향 , < 바이준 >의 최호 등이 첫 영화를 내놓아 충무로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예고했다. < 8월의 크리스마스 >의 허진호 감독 또한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이 ‘신 르네상스’ 혹은 ‘신신 르네상스’의 신인 감독들은 영화문법에 혁명을 가져온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존 장르영화를 자신의 색깔에 따라 변주하거나 아예 변종 장르영화로 만들어 한국영화의 장을 한창 넓혔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당시까지 한국 멜로영화의 주된 감성이었던 신파조를 거세한 채 시종 절제된 감정의 드라마를 펼쳐놓아 새로운 감수성의 멜로영화라는 평가를 얻었다(바로 그 이유 때문에 흥행에서는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의 사랑 이야기는 기존 신파 멜로극에서 자주, 그리고 쉽게 이용돼왔던 소재였지만 이 영화는 이를 관객의 눈물을 쥐어 짜기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죽음 자체에 무게를 부여함으로써 다른 차원의 멜로적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정원( 한석규 )은 소도시의 변두리에서 사진관을 운영한다. 친절하고 성실하고 조용한 그는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주차단속원 다림( 심은하 )은 필름을 현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다가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둘의 사랑은 운명적인 그것이라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인 정(情)과 비슷하다. 그 심심하지만 은은한 감정은 오가는 아이스 바나 스쿠터를 함께 타는 ‘스킨십’ 속에서 조금씩 무르익는다. 이 영화가 기존 멜로영화와 구별되는 지점은 이야기의 또 다른 축, 그러니까 죽음이다. 정원은 불치병을 앓고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지만 겉으로 내색하기는커녕 도리어 항상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맞상대하는 그만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친구와 술에 취하거나 이불을 두르고 홀로 흐느끼지만, 자신의 죽음 자체보다는 그 이후 주위 사람들의 삶을 더 걱정한다. 그 마음은 아버지를 위해 비디오플레이어와 현상기기의 작동법을 정리하는 인상적인 장면에서도 드러나지만 다림과의 이별에서도 엿보인다. 그들의 헤어짐은 그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시작되지만 정원이 훗날 그녀와 재회하지 않는 것은 다림에게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덧씌우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영화가 여전히 ‘슬프지만 밝은 멜로영화’로 기억되는 데는 정원이 죽은 뒤 사진관을 찾은 다림이 창가에 놓인 자신의 사진을 보고 웃으며 화면을 빠져나가는 에필로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죽음과 사랑을 겹쳐놓는 대표적인 신은 정원의 첫사랑이었던 지원( 전미선 )이 찾아온 뒤의 몇 장면이다. 정원은 사진관 유리창을 물로 청소하고 있는데, 이때 영화는 유리창에 흐르는 물 너머로 지원을 보여준다. 다음 컷에서 정원은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다. 버스 안에서는 김창완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가 흘러나오고 우리는 지원이 자신의 사진을 사진관 유리창에서 치워달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곤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정원의 독백이 이어진다. 그 다음으로 병원에서 돌아온 정원이 마루에서 발톱을 깎는 아름다운 장면이 이어진다. 구차한 설명 없이 스러지는 육신과 기우는 사랑의 감정을 엮어내는 절묘한 신이라 하겠다. 학교 운동장에서 정원과 다림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20대의 생기로 넘치는 다림이 힘차게 달려오고 쇠약해가는 정원이 그 뒤에서 힘겹게 달리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 사랑이 언젠가 끝나리라고 예감하게 된다. < 8월의 크리스마스 >의 정서는 화면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특히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려한 화면은 그 정서를 확장시킨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거의 없고 커트 분할도 많지 않지만, 미세하게 변화하는 앵글과 효과적인 조명은 그들의 내면에 일렁이는 감정의 변화를 조화롭게 보여준다.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숏’과 비교됐던 툇마루 장면들이나 일상 안에서 움트는 사랑의 감정을 포착한 사진관 내부 장면들은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군산에 차려진 오픈세트를 비롯해 실제 생활이 이뤄지는 공간에서 촬영이 이뤄졌다는 점 또한 과장되지 않은 소박한 정서를 자아낸다. 허진호 감독의 새로운 감수성, 유영길 촬영감독의 미학, 한석규 의 절제된 연기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 8월의 크리스마스 >가 줬던 충격 중 가장 컸던 것은 심은하 의 연기였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로 화려하게 데뷔해 < 아찌 아빠 > < 본 투 킬 >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솔직히 그전까지는 그녀가 좋은 배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심은하는 정말로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구청에 취직한 주차단속요원이요, 첫사랑을 하는 수줍은 스무살 여성이요, 참을 수 없는 감정에 못 이겨 돌을 들어 유리창을 깨는 소녀였다. 피곤에 절어 사진관에 들어오자마자 “저 지금부터 잘테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소파에 주저앉아 눈을 감은 모습이나 사진관 앞에 놓인 스쿠터의 사이드 미러에 얼굴을 슥 비춰보며 미소 짓는 모습, 텅 빈 사진관에 편지를 꽂아넣었다가 며칠 뒤 다시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모두 스타였던 그녀를 배우로 바꿔놓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건 그녀라는 마술에 우리가 덜컥 걸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마술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나는 궁금하다. 사진관 선풍기에 날리던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목욕탕에서 갓 나와 말아쥐던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도대체 어떤 향기가 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