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 감독
- 박미정, 서미진
- 제작년도
- 1997
밴쿠버국제영화제에서 `젊은 영화를 위한 용호상`을 수상한 데 이어 로테르담을 비롯한 국제 영화제들로부터 러브 콜을 받고 있는 장건재 감독의 < 회오리바람 >을 2010년 또 하나의 독립영화계의 `사건`이라고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 하다. 더 나아가 최근 제대로 된 청춘영화가 없다는 영화계 항간의 볼멘 소리도 이 영화의 출연을 통해 당분간 잦아들 것이라 장담한다. < 회오리바람 >은 말 그대로, 멜랑꼴리를 끌어안고 있는 청춘영화다. `이 사랑 모두가 안 된다고만 한다`라는 영화 포스터 헤드 카피가 정확히 적시하듯 10대 청춘들의 그 열병과도 같은 사랑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얼핏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는 고등학교에서 제작되는 단편 영화들이 숱하게 스케치 하는 그저 그런 10대들의 무모한 사랑 이야기들의 반복일 수도 있겠고, 관객의 오감을 관통할 정도의 색다르고 새로운 소재와는 거리가 멀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전형적인 이야기는 감독의 절제된 영화 언어를 통해 충분함 이상의 사실감을 성취하고 있다. 힘을 뺄 때와 힘을 줄 때를 감독은 정확히 알고 있고, 이 효율적인 에너지 배분은 상투적 소재가 어떻게 훌륭하게 영화적으로 요리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의 오프닝 컷은 신인 감독의 재능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뛰어난 청춘영화로 한국 영화사에 기록되리라는 것을 마치 선언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배치된 뛰어난 씬이다. < 회오리바람 >은 내러티브의 순서를 살짝 비틀어놓은 회상구조를 취하고 있다. 고등학생인 김태훈과 박미정이 부모 몰래 바다 여행을 떠난 지 3개월부터 영화가 시작되는데, 이들 여행의 기록은 중간중간 회상을 통해 현실 속에 틈입한다. 이들의 밀월 여행이 발각되어 부모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김태훈의 시간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여자 친구 박미정은 더 이상 만나주지 않고, 방학 동안 중국집 아르바이트를 하다 교통 사고를 내고, 보충 수업을 빼먹다가 선생한테 들켜 두들겨 맞는 찌질함의 연속. 이 청춘의 찌질함은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고백처럼 읽혀지는데, 정교하게 계산된 컷과 편집의 리듬을 통해 녹록치 않은 여운을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다. 가령, 박미정이 이별을 통보하는 순간에 무릎을 꿇는다든지, 박미정을 위해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두 털어 선물을 산다든지 하는 십대의 어리숙한 열정의 클리셰조차 미학적 절제를 통해 전혀 상투적이지 않게 보일 뿐만 아니라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고백에 대한 스스로의 연민까지도 독해하게끔 만드는 힘이 그것이다. 물론 영화에 배치된 여러 에피소드들이 사랑의 열병에 데인 십대 남자의 고난과 역경을 드러내기 위해 수동적으로 배치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또한, 토니 레인즈가 과찬한 그 두 개의 오토바이 질주씬과 사막을 홀로 거니는 판타지씬으로 과연 회오리바람같이 외상에 반응하는 청춘의 그 들끓는 내면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자 친구한테 채이고, 부모한테 인정도 받지 못하고, 학교 울타리를 넘어 도망칠 수밖에 없는 소심한 10대 남학생의 그 찌질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감독의 우직한 시선은 근래 보기 드문 영화적 뚝심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뚝심은 영화의 공기를 섬세하게 장악한 뛰어난 씬들로 화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건재 라는 새로운 감독의 출현을 증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상사병에 걸린 자는 우울한 자다. 상사병에 걸린 자는 그가 소유했던 대상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라 외려 우울하기 때문에 그 상실된 존재를 새롭게 구성하고, 자기 안으로 손짓을 하여 불러들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아감벤의 `식인증적 주체`에 다름 아니다. 상사병에 걸린 자들은 잃어버린 자들이 아니라 잃어버렸다 착각하는 대상들을 자기 내면의 땅에 파종을 해놓고 물을 주며, 자장가처럼 홀로 노래를 불러주는 자들이다. 한국 청춘영화들이 너무 멜랑꼴리적이라는 비판도 더러 있지만, 되려 멜랑꼴리아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회오리바람’ 같은 영화들은 대상의 상실에 따른 퇴행적 반응이라기보다, 오히려 상실된 대상을 살아있게 만드는 몽환적인 능력에 대한 성찰을 품고 있다. 사랑의 열병이라는 성장통을 견뎌낸 소년 김태훈은 아마 다시 꿈을 꾸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