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크런치
- 감독
- 박순천
- 제작년도
- 2016
나는 촬영하는 배우다. 대학에 연기전공으로 입학했고, 단편 영화연출로 졸업영화를 만들어 졸업했다.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잡종’이다. 좋게 표현하면 촬영팀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영화에 대한 경험과 공부를 하고 있다. 때때론 촬영일 비중이 더 커 반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촬영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내 이야기를 만들고 연기하며 운이 좋아 기회가 되면 다른 영화에도 출연한다.(사실 출연은 늘 목마르다.) 이런 삶은 벌써 5년 차로 접어들었고, 이렇게 좋은 기회 얻게 되어 촬영팀의 위치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영화를 접했던 것은 2013년 1월이었다. 강사로 나오시던 촬영감독님의 권유로 학교 선배와 함께 독립영화에 촬영팀으로 참여하게 됐다. 독립영화지만 처음 겪는 장편현장에 적응해 나가기 급급했다. 그러던 중에 촬영감독님의 부상 아닌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촬영팀 퍼스트로 계셨던 형님이 카메라 오퍼레이팅을 하면서 나는 졸지에 촬영팀 퍼스트 위치가 되어 이 영화의 포커스를 담당하게 되어버렸다(그때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다). 단편 영화에서만 접해본 포커스의 영역으로 장편영화로 넘어오니 겁이 덜컥 났다. 그렇게 과분한 역할에 호되게 고생해가며 첫 장편영화를 만났고 결국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 문영 >이라는 영화로 탄생했다. < 문영 >이란 작품을 하면서 필름시대의 촬영감독님 덕분에 포커스의 근본적인 원리와 테크닉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포커스풀러는 눈이 세 개정도 있고, 그 세 개의 눈이 각기 다른 곳을 보고는 뇌로 각자 신호를 보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손이 움직여야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눈이 두 개고 그 두 눈이 동시에 하나밖에 볼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를 수도 없이 확인했다. 스케일이라는 줄자를 가지고 현장을 발 빠르게 돌아다녔다. 거리를 측정하고 또 측정했다. 인물이 움직이면 카메라의 앵글에 보이지 않는 바닥에 테이프로 수많은 마킹을 했다. 심지어 영화 전체가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는 영화였기에 인물이 움직이지 않아도 카메라가 움직인다. 정말 멘붕이다. 한번이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맞출 수 없다. 모니터만 의지해서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촬영자가 인물에 절묘하게 조금씩 가까이 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경우가 많다. 그럼 포커스는 빗맞는다. 그럼 관객이 보는 영화에서 인물의 표정이 흐릿해진다. 그 순간 하나가 감정의 전달에 독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몰입에 방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나의 손가락과 눈이 집중하지 못하고 나의 역할에 한순간 실수가 벌어진다면 몇 천만 원, 나아가 몇십 억의 예산이, 감정에 집중하여 열연하는 배우의 에너지에, 추위와 싸우는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고가, 몇 년 동안 준비한 감독님의 이야기에 영향이 끼친다고 생각하면 자기 전에도 스케일을 꺼내볼 수밖에 없었다(실제로 그 당시 같이 했던 형과 자기 전에 스케일을 꺼내어 천장까지 거리를 측정하고 맞히는 실로 이상한 내기를 했다).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연습하고 확인하고 했던 경험을 가지고 그 뒤로도 포지션에 상관없이 촬영팀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 문영 >에서의 경험이 없었으면 아마 이후 작품들을 만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연애담 >이라는 작품을 할 때에는 퍼스트는 아니었지만 촬영팀 직책을 수행하면서 데이터관리를 병행했다. 데이터매니저가 존재하면 그럴 일 없겠지만 여타 독립영화에서 왕왕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주어진 일에 막무가내로 꼼꼼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영화는 제목 따라간다는 소문이 있던가, 프로덕션 기간 중 마침 개인적인 연애사도 끝났다. 그래서인지 극 중 윤주가 지수에게 헤어지기 아쉬워서 10분만, 5분만 같이 있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 지켜보다가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다(핸드폰으로 현장에서의 그 장면을 촬영하여 한동안 그때 그 감정을 간직하기도 했다). 이렇듯 촬영팀이라는 포지션은 그만큼 배우와 가까이 존재하고 호흡하는 스태프라고 생각한다. 연기자, 연출자의 꿈을 품고 촬영팀 역할을 수행하는 나에게는 어느새 현장은 더할 나위 없는 공부의 장이었다. 영화 < 아기와 나 >에서는 촬영감독님의 권유로 장편영화의 퍼스트 직책을 맡게 되었다. 막무가내로 겪었던 < 문영 > 때의 경험을 되살려 촬영팀 친구들과 영화아카데미에서 여러 테스트와 사전 준비를 시작하였다. 모자랐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귀찮았겠지만 잘 따라주었던 촬영팀 친구들이 마냥 고맙고 이렇게 고민을 하게 해준 촬영감독님에게도 감사한다. 먼저 영화아카데미에서 탄생하는 영화를 촬영팀으로 몇 차례 참여한 경험이 있어 대략적인 시스템과 장비가 파악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촬영감독님이 원하는 기술적인 것들을 준비하기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테스트하고 또 테스트했다. 매번 하는 역할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기에 불안한 것들을 제거하고 하나하나 체크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엔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하기엔 조금은 아쉬움이 남지만 열심히 했고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한번은 < 아기와 나 > 현장에서 이이경 배우님, 정연주 배우님, 박순천 선생님, 세 명의 배우가 요람 안에 아이를 바라보며 대화하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한 컷에 담아내려했다. 촬영감독님과 나는 요람 뒤의 공간에 쪼그리고 들어가 앵글을 만들었고 카메라와 각기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세 인물 모두에게 포커스을 맞출 순 없었다. 약간 다른 이야기. 나는 시나리오를 꽤나 많이 읽고 프로덕션에 투입되었다. 이유는 오디션을 보고 운 좋게 영화 속 승일이라는 배역을 연기할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영화의 성격이나 태도를 파악해야했고, 그리고 물론 최종적인 것은 승일이라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함이었다(사실 이이경 배우님의 도일 역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요람 숏은 꽤나 오래 찍었다. 나름대로 테이크도 많이 갔던 것 같다. 촬영감독님과 나는 결국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포커스’였다. 누구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었다. 첫 테이크에서는 대사마다 포커스를 이동시켰다. 그리고 테이크가 끝나고는 촬영감독님께 질문했다. 누구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하나, 촬영감독님도 고민했고 나도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이내 둘은 시나리오에 그 씬을 다시 읽었고, 나름대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촬영은 재개되었다. 그렇게 테이크가 더 진행되었고, 모두에게 가는 포커스가 꽤나 작위적이었고 이질감에 불편했다. 시나리오의 내용과, 배우들의 연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니 글에서 받았던 상상과는 느껴지는 것이 조금은 달랐다. 나는 꾸준히 연기적인 측면에서 고민했고, 감정에 집중했다. 촬영감독님도 그렇게 고민하셨을 것이다. 심지어 카메라를 어깨에 얹고 좁은 구석에서 조금씩 무빙을 하고 있는 그는 더 복잡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짧은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도일에 집중했다.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는 도일에 이입했고, 도일이 겪는 앞뒤 정황을 고민하고 포커스를 제안했고, 결국 우리는 선택했다. 정답이었는지 오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고민은 상당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 초행 >이라는 작품을 포커스풀러로 마무리했다. 큰 줄기 안에서 영화는 배우의 연기를 중점으로 만들어져갔고, 모든 장면을 롱테이크로 담아내는 방식이기에 어느 때보다 즉흥성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아마 이전 작업들이 없었다면, 그리고 내게 연기 경험이 없었다면 굉장히 어렵거나 혹은 오히려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작품을 대했을 것 같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방식의 작업이었고 이를 ‘나의 영화’에 그대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녹아낼 수 있었던 것 같아 벌써부터 설렌다. 사실 최근까지도 늘 불안했다.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 연기면 연기, 촬영이면 촬영 하나만 택했더라면 조금은 더 빠른 시기에 조금 더 좋은 위치에 있을 수 있을지 모른다. 혹은 여기까지 올 수 없어 이 많은 작품들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후회는 없다. 조금 더 하나의 포지션에 집중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은 이번 글을 끝내면서 접기로 했다. 무엇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말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연출자의 몫이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보여주지 말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연출자를 포함해 촬영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아무 고민이 없는 촬영팀은 단지 촬영자의 모자라는 손과 발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적어도 이 모든 고민 덕에 현장에서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이는 동시에 우리가 영화를 만들면서 겪는 어떤 희열이 아닐까? 그렇게 연기 전공자이면서 연출자의 꿈을 키우는 동시에 촬영자인 ‘잡종’은 영화를 하며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