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amirang]故박완서 선생 빈소를 다녀 오면서
- 제작년도
- 2011
1. 영화검열이 선택한 ‘한국’영화의 풍경 1980년 개봉한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오프닝 시퀀스는 한국영화의 분명한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된 오프닝 타이틀을 지나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량 내부의 시점으로 높이 솟아오른 빌딩들을 보여주던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카메라는 곧 그 시선을 낮추어 빌딩들 사이, 좁고 낮은 곳에 펼쳐진 난잡한 시장을 비춘다. 이후에도 이 작품은 도시로 상경한 세 청년이 도심 속 이 비루함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일하다 엉덩이를 맞으며 괴로워하는 춘식(이영호), 골목 구석 좁은 공간에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불을 피우며 연신 땀을 닦아대는 길남(김성찬), 위험한 가스통을 뒤로 하고 쪼그려 앉아 망치질을 바라보다 비명을 지르는 덕배(안성기)의 얼굴에서 멈춘 카메라는 그들이 현재 도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국영화사에서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사회(비판)적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 장면들에서 기인할 것이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나오기 전인 1970년대, 빈부격차가 극에 달한 시기였지만 한국영화에서 가난은 철저하게 가려져야 하는 것이었고 검열은 강박적으로 성장의 지표들을 영화에 등장시키도록 강요함으로써 이를 수행하고자 했다. 1970년대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이하 예륜)의 검열관들은 검열 시 법적 근거를 지닌 「영화법 시행규칙 제 9조 영화검열기준」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제공된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까지를 참고해야 했는데,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이 기본 방향의 첫 번째로 꼽는 것은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약진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부각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영화를 구성하라는 것이었다. 그 세부방향으로 제안된 것은 ‘가급적 고속도로, 웅장한 공장, 새로운 주택가 등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배경으로’하며 농촌을 소재로 하더라도 ‘가급적 농업의 기계화, 새로운 농지정리 및 지하수 개발’의 적극적인 노출이었다. 고향이 변화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애잔함과 절망이 교차하던 정씨(김진규)의 얼굴에서 갑작스레 바다 위 거대한 다리를 건너는 버스의 줌아웃으로 넘어가 마무리되는 그 유명한 <삼포 가는 길>(1975)의 기형적인 엔딩은 1970년대의 성장에 대한 강박이 영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서늘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1970년대를 지나 도달한 1980년의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오프닝은 그래서 의미를 지닌다. 무작정 상경한 세 청년이 도시에서 겪어내야 했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 <바람 불어 좋은 날>은 그만큼 상징적인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불러일으킨 변화는 사실 이 작품에 한정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돌출된 것이었다. 1980년으로 진입하면서 영화법 자체의 개정이나 검열의 기준이 바뀐 것은 아니었으며 검열의 방식 역시 이전과 동일한 상황에서 <바람 불어 좋은 날>이 가난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예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서술되는 영화사와 마찬가지로 검열 역시 한 시대를 묶어 범박하게 설명되는 경향이 크지만 갑작스런 정치·사회적 전복의 순간들은 검열의 탄성(彈性)에 변화를 일으키며 흥미로운 흔적을 남긴다. 이 글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너무도 짧았던 ‘서울의 봄’과 함께 움직였던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검열은 검열에 있어 1980년대‘적’이라기보다 1980년대 ‘찰나의 균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 짧았던 ‘서울의 봄,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이장호 감독이 1975년 말 대마초 파동 후 재기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이장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기존 한국영화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장호 감독은 활동이 어려웠던 4년 동안 연극계와 문학계 등의 인사들을 만나면서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 즉 한국영화가 현실을 그리지 못하고 정권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리얼리즘의 회복에 대해 고민했다고 이야기 한다. 1 이 시간을 보낸 이장호 감독이 1980년에 들어 착수하는 작품이 급격한 도시화와 그 안에서 황폐해지는 청년들을 다룬 최일남의 중편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이었다. <바보들의 행진> 시나리오 심의의견서 정확한 일시가 적혀 있지는 않지만, 제작신고 전 이루어졌을 시나리오 심의의견서의 의견을 살펴보면 이 작품은 ‘청춘물’로 분류되어 있으며 ‘底邊靑春(저변청춘)을 不條理(부조리)하게 描寫(묘사)한 것은 아니므로 크게 問題(문제)될 点(점)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별첨으로 추가된 지적사항은 문틈으로 보이는 정사 장면이나 신음소리, 인물들의 상상 속 정사 장면 등의 외설적이라 판단한 부분들에 대한 것이었다. 검열관은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도심 속 밑바닥 청춘들의 모습이 사회 비판적이지 않다고 판단, 시나리오 심의를 통과시킨 것임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제작사는 1980년 3월 27일 「영화제작신고서」를 제출하고 4월 19일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제작신고가 수리, 영화는 제작에 들어간다. 영화가 완성된 후 제출된 「예고편 영화 검열신청서」와 「영화 검열신청서」에서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이 작품의 예고편 심의에서도 가난에 관한 언급보다는 외설적인 부분에 치중했다는 것과 시나리오가 아닌 영화 필름의 검열이 문공부가 아닌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라는 민간심의기구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먼저 예고편의 영화검열을 위해 제출된 영화예고편 대본을 보면 안마하는 장면이나 안마하는 이를 만지는 장면 등에 삭제 표시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대우받지 못하는 젊은이들. 그들이 이 도시에 뿌리내리려는 몸부림’, ‘사회부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밑바닥 인생의 삶’, ‘한 판 즐겁게 놀아보자 그러나 이 놀이판에 깔려 있는 슬픔과 한을 잊지 말자’ 등의 자막에는 어떠한 제재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가난’, ‘밑바닥 인생’, ‘슬픔과 한’과 같은 정서가 걸러내야 하는 감정으로 자리했던 1970년대와 비교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우울함보다 중요한 것이 외설적인 장면의 삭제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바람불어 좋은 날> 영화 검열신청서 위의 서류의 좌측 하단에 찍힌 파란 도장은 1979년부터 바뀐 영화시책의 시행을 방증한다. 정부는 문공부에서 맡았던 영화검열을 1979년 4월 10일부터 민간단체인 공윤으로 이관하고, 영화관계자와 각계 인사들로 영화검열심의위원회를 구성, 이들이 영화검열을 진행토록 했는데 2 , 이러한 계획은 그해 2월 대통령 연두순시에서 정부주관 문화행사를 조금씩 민간기구로 넘길 것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한 문공부의 첫 번째 실천이었다 3 . 하단의 도장은 영화검열심의 대본과 필름이 공윤 쪽으로 접수 완료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1979년 이후 이 시책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작사에게 영화검열이 늦어진다는 회신을 보내거나 영화검열의 합격을 통보하는 공문을 내리는 일 등은 문공부에서 진행, 1970년대 영화 실사 검열을 직접 진행하던 문공부가 1979년의 시책 변화 이후 제작사측에 결과를 통보하는 행정적인 일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공윤’의 심의를 거친 <바람 불어 좋은 날>은 1980년 8월 22일 영화검열에 합격하는데 어떠한 제한사항도 없이, 그러니까 영화 실사검열에서 단 한 군데의 화면 삭제나 단축 없이 심의위원 8명의 전원 찬성으로 검열에 합격한다. 이장호는 당시의 검열 상황을 술회하면서 이러한 결과는 ‘서울의 봄’ 시기에 구성된 전향적인 심사위원 중 소설가 박완서의 강력한 주장에서 비롯되었다며 박완서가 <바람 불어 좋은 날>을 검열에 통과시키기 위해 열 시간에 걸친 회의를 하며 애를 썼다고 이야기한다 4 . 여기에서 주목해 볼 것은 민간 심의기구의 한 심사위원이 ‘가난’과 ‘밑바닥 인생’과 ‘슬픔과 한’이 담긴 이 영화의 무삭제 통과를 강력히 주장할 수 있었다는 그 자체와 그것이 수용될 수 있었던 ‘서울의 봄’ 시기에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검열이 정확하게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이다 5 . 3. 다시 ‘고발성 우려’로 삭제되는 서민의 현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1980년 3월 27일 제작신고서를 제출, 약 5개월 후인 8월 22일 영화 검열 합격증을 받았다. 민간 심의기구로 심의가 이관된 지 약 1년여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 그 사이 벌어진 10.26과 12.12 직후의 혼란과 무엇보다 아직 군사정권이 공식적으로 정치에 가담하지 않았던 최규하 대통령의 짧은 재임기간에 절묘하게도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검열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때문에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예로 들어 민감 심의기구로 심의가 이관된 후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흐름을 설명한다거나 1980년대에 들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검열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정말 짧았던 ‘서울의 봄’의 훈기를 탄 예외적인 작품이었다. 물론 <바람불어 좋은 날> 이후, <어둠의 자식들>(1981),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꼬방동네 사람들>(1982)와 같이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 가난한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줄줄이 제작·개봉되었다. 이러한 작품의 등장 자체가 이전 시기와는 다른 1980년대의 분위기의 예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의 작품들이 원작과는 분명한 차이를 지니며 6 영화 자체의 분위기나 설정이 어색하고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 작품들이 의도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예상컨대 이전에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이러한 작품들의 등장은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리얼한’ 소재가 무리 없는 검열을 지나 개봉한 전례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혼란스럽게 들어선 1980년대이지만 1970년대에 비해 자유로울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적으로 넘치고 있었고, <바람 불어 좋은 날>은 이를 잘 보여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검열과정을 살펴보면 1981년으로 들어서면서, 정확하게 말한다면 1980년 9월 1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보궐선거로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 남은 임기를 채우고 다시금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해 1981년 2월 25일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사회는 급격하게 경색되었고, 검열 역시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 한 눈에 포착된다. <바람 불어 좋은 날>과 다르게 위의 작품들은 각종 사유서와 각서로 원작과는 다른 의도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증명해보이고 난 후에야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했던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시나리오 심의의견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개작사유서 가령 1981년 7월 21일자로 영화제작신고서를 제출했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시나리오 심의가 통과되지 않아 개작의 개작을 거듭하고 유의사항까지 통보 받은 후에야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심의 의견서의 심의의견 첫 번째에 주목해보자. 심의위원은 이 작품이 ‘1970년대 중반을 시대 배경으로 명시하기는 했으나 가난하고 절박한 서민들의 생활상과 애환이 짙게 깔려 있어 많은 사회적 문제’의 가능성을 지녔다는 점을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1970년대 중반’이라는 설정이 현재가 아니라고는 하나 철거의 문제, 빈부의 격차 등은 ‘현재’에도 분명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노출되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제작사는 ‘원 대본에서 완전히 탈피 현 사회에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기업의 공해문제로 사회 계도성 주제 설정을 내용으로 하는 계몽영화로 개작’하여 대본과 사유서를 제출한 후에야 영화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영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도심 속 철거민, 난장이의 이야기가 아닌 염전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로 바뀌어 버린다. 1981년 12월 10일자로 영화제작신고서를 제출했던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도 사정이 다르진 않다. <꼬방동네 사람들> 극영화 제작신고에 대한 회신 「<꼬방동네 사람들> 검토의견」에는 ‘서민촌 시민생활의 직설적인 표현으로 사회질서 문란과 사회일면의 고발성 우려가 있음’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7 . ‘무허가 건물의 철거로 인해 쫓겨날 형편’을 불법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서민생활의 직설적인 표현’이 ‘고발’로 보인다는 것은 그러한 사실이 있다 해도 감추어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이 작품 역시 ‘사회악적인’ 장면을 삭제하고, ‘서민층의 비관적인 삶의 묘사를 피하’며, ‘의지로 환경을 극복’, ‘가난한 판자촌의 애틋한 이야기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밝은 얼굴로 볼 수 있도록 서정적인 영상’을 활용하겠다는 개작 내용을 제출했고, 여러 번의 개작 끝에 엄격하게 실사검열을 진행하겠다, 문제가 생겼을 시 모든 책임을 제작사 측에 묻겠다와 같은 협박에 가까운 경고를 들은 후에야 영화를 제작·완성할 수 있었다. 이 영화들은 모두 1981년을 지나 제작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영화화를 시도한 작품들로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검열 진행과는 1년도 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류들에서는 민간 심의위원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은 찾아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 문공부와 내무부 등이 나서 이 작품이 품고 있을 위험성에 대해 직접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잠시 동안 꿈꾸었던 자유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는지 이 검열서류들이 너무도 명징하게 보여준 셈이다. 이후 가난을 그리는 작품들은 1987년을 지날 때까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옥외 광고탑에서 외치던 세상을 향한 목소리가 제 멋대로 해석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1980년대의 진실에 대해 풍자했던 가난한 청년들의 영화 <칠수와 만수>가 1988년 개봉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바람 불어 좋은 날>과 여타의 영화들이 놓인 시기적 차이와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4. 검열의 탄성(彈性)을 결정짓는 것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갑작스레 밝은 노래로 마무리 되지만, 이 엔딩송이 흘러나오기 전 덕배는 좁은 사각 링 안에서 긴 시간 얻어맞는다. 이 장면에 깔리는 덕배의 내레이션은 희망찬 엔딩송과는 전혀 다른 편에 서 있다. 덕배는 이야기한다. 서울에 올라와 2년을 사는 동안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줄 곧 맞아온 것처럼 생각된다고. 누가 때리는 것인지는 모른 채 2년 동안 맞아온 상경한 청년의 이야기는 그렇게 잠시 스크린에 자리할 수 있었다. 1980년대를 설명할 때의 위 작품들은 시대의 변화에 등장한 하나의 경향으로 묶여 설명되곤 한다. 리얼리즘의 회복이라 설명되는 <바람 불어 좋은 날>과 그 이후 나온 작품들은 ‘현실’을 묘사한 작품들로 동등한 층위에서 설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기에 영화에서 묘사하는 꾀죄죄함과 비루함에는 무수한 균열들이 도사린다. 그리고 이후 ‘서민’의 삶이 다시금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스크린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또 다시 긴 시간이 지나야했다. 1. 김상민 엮음, 『박정희 시대와 한국 대중문화』, 선인, 2012, 34-48면. 2. 신문기사에 따르면 영화검열의 민간 이양은 4월 1일부터로 명시되어 있지만( 「영화검열 민간 단체에 이관」, 《경향신문》, 1979.3.9.) 당시 실제 영화검열 사무를 담당했던 공윤의 월보 『공연윤리』에서는 4월 10일자로 업무가 이관된 것으로 적고 있다(「영화의 검열 심의업무 공윤 민간 기구로 이관: 심의위원은 각계 인사 17명으로」, 『공연윤리』, 1979.4.(32호), 1면. 신문은 기사에 따라 민간이양 일자를 4월1일이나 4월 2일로 각기 다르게 적기도 하며, 실제 업무를 담당하던 공윤에서 명시한 날짜가 더욱 신빙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 영화업무의 민관이양 일자는 1979년 4월 10일로 서술하였다. 3. 「영화검열의 민간 이양」, 《경향신문》, 1979.3.24. 4. 김영진, 『이장호vs 배창호』, 한국영상자료원, 2007, 50-51면. 이 글에서 이장호는 몇 장면은 끝내 통과되지 못한 채 삭제되었다고 기억한다. 이장호는 영화에 삽입되어 있던 노래 가사가 문제가 되어 가사 부분의 사운드 트랙을 늘려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서류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서류와 구술이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 그 상황은 구술자의 기억의 오류 등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서류에는 남아 있지 않는 심의위원과 창작자 간의 협상이나 검열의 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 대해서는 좀 더 다각적인 접근과 확인이 필요하다. 5. 이장호는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완성될 무렵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고, 유신정권 못지않게 억압적인 독재체제가 수립, 1980년대의 말과 상황이 달라져 있다고 술회하지만(김영진, 위의 책, 50면)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완성, 그 후 검열의 신청과 진행은 최규하의 하야(1980.8.16.) 이전이다. 이때에도 실세는 이미 군부로 넘어가 있는 상황이었겠지만, 공식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기 이전과 그 후는 사회적 분위기면에서도, 영화 내부로 들어온다면 영화 검열 서류상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6. <어둠의 자식들>과 <꼬방동네 사람들>은 이동철의 동명의 소설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조세희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7. 서류에 적힌 ‘직절적인’은 ‘직설적인’의 오기인 것으로 보인다.
이장호 감독의 < 바람 불어 좋은 날 >(1980) 마지막 장면에서, 섀도복싱을 하는 덕배( 안성기 )의 잽은 흡사 태양을 두들기려는 듯 보인다. 때맞춰 안빈낙도의 정서를 노래한 김도향의 동명 주제가도 터져 나오지만 사실 덕배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낯선 서울살이에서 친형제나 다름없었던 두 절친은 각각 감옥과 군대로 끌려갔다. 그 자신은 중국집 배달 일도 그만두고 전업 권투선수의 길로 나섰음에도 스파링에서조차 내내 얻어맞기만 한다. 애먼 태양에라도 화풀이를 해보려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내 카메라는 물러서고 석양은 조롱하듯 멀어진다. 못다 한 화풀이는 1년여 후를 기약해야 했다. 긴급조치와 10월 유신 시국의 1974년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구로동 2인조 카빈 강도 사건’을 영화화하면서, 이장호 감독은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1981)라는 강렬한 타이틀을 선택했다. 실화에 대한 감독의 해석인 이 제목 문구는 중의적이다. 그들이 쏜 것은 부도난 희망을 낳은 위선의 태양이자, 또한 사람의 이름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문도석( 이영호 )과 이종배( 박일 ) 2인조에게 있어 태양의 빛이란 만물을 평등하게 내리쬐는 축복이 아니었던 게다. 아울러 경찰에 포위된 이종배가 자살하기 전 손수 총을 쏴서 목숨을 끊은 어린 장남의 이름도 하필이면 ‘태양’이었다. 첫 번째 해석은 범인들의 대담성과 잔인성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을 낳은 사회적 맥락을 돌아보자고 말했던 박완서, 최인호(사건을 각색한 소설 『지구인』을 썼다) 등의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어쩌면 영화라는 예술에 몸담고 있었던 이장호 감독은 그들을 범행으로 내몬 가난보다도, 그 가난으로 인해 좌절된 두 실존 인물의 예술적 야심에 연민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갓 1차 범행을 마친 두 캐릭터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장면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종배와 문도석은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나오던 어느 가장을 차로 납치했다가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총으로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도로변에 있던 아기엄마 하나도 오발된 총탄을 맞아 목숨을 잃는다. 이런 급박한 상황 끝에 야산으로 도피한 범인들이건만 문도석은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질 않나, 이종배는 마치 조각을 하듯 세심하게 변장 목적으로 길렀던 수염을 면도하고 있다. 실제 문도석 또한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고, 이종배는 미술가가 꿈이었으나 생계를 위해 극장 간판을 그려야 했다고 한다. 이렇듯 못 이룬 꿈의 상징들과 어우러져,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는 도석은 자기연민에 빠지고 종배는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자신들의 범행 속보를 들으며 “대낮에 살인강도가 설치고 다니니…”라며 남 얘기하듯 중얼거릴 만큼. 범행을 후회하며 안절부절못하는 도석과 주범인 종배의 갈등은 장차 갈대밭에서의 주먹다짐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익스트림 풀 쇼트로 멀어지며 관조적으로 거리를 두는 이 싸움은 글자 그대로 이전투구다. 액션의 박진감과 타격의 쾌감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고, 질질 끌리는 발길질과 힘겨운 주먹질에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고통의 신음만 울려 퍼진다. 사회의 혜택이 닿지 않는 버려진 땅에서, 소외된 자의 분노는 또 다른 소외된 자를 향할 뿐이며, 약자들은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는 생존하지 못한다. 이후 2차 범행은 이종배 단독으로 진행된다. 손을 씻고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보려 했던 문도석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 탓에 경제적 곤란을 겪다 다시 종배에게 돌아온다. 2인조가 3차 범행을 모의하는 곳은 사람이 찾지 않는 철 지난 해수욕장. 그들이 억하심정을 품고 있는 태양의 또 다른 반대말은 물인지라, 두 사람도 이 공간에서만은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파도를 타고 나아가야 할 배 한 척은 모래톱에 엎어져 있을 따름이니, 애초 그들에게 자유란 막다른 배수의 진에서나 가능한 반쪽짜리일 뿐이다. 예술가가 되지 못한 범죄자들을 향한 감독의 연민과 감정이입은 이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는 호러영화 < 너 또한 별이 되어 >(1975)와 스포츠물 < 이장호의 외인구단 >(1986)과 함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는 드물게 본격 장르 영화로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다만 < 엑소시스트 >를 비롯해 공포영화의 익숙한 관습을 적극적으로 빌려왔던 <너 또한 별이 되어>와 달리 이 작품에서 갱스터 장르는 대체로 서사의 틀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그런데 실화의 리얼리티와 육중한 메시지가 이끌어가던 극은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장르를 소환한다. 유유히 은행을 턴 후 직원들에게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시켜놓고 떠나는 강도들의 모습은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흑백화면으로 묘사되었다. 고전 갱스터물의 패러디로 연출된 이 장면은 곧 이종배의 상상임이 밝혀진다.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시뮬레이션의 실패는 파멸의 출발점이 된다. 음악가와 미술가가 되지 못하고 강도가 돼야 했던 것처럼, 이 종합예술 콤비의 영화적 상상력도 현실 앞에서 좌절된다. 신분이 탄로 난 문도석은 아내에게 유서를 남기고 아들과 함께 먼저 자살을 택한다. 유서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플래시백 화면, 그가 아내에게 프러포즈하던 해변의 기억 속 도석의 머리 위에는 아직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허나 경찰에 포위된 어둠 속 종배의 집 위로는 단죄의 벼락만이 내리칠 뿐이다. 저항을 포기한 그는 실제 이종배가 유서에서 밝힌 대로 자신이 살해한 이들의 시신 유기장소를 경찰에게 상세히 고백한 후 동반자살을 원하는 아내를 먼저 쏜다. 그리고 드디어 총구는 어린 맏아들 태양을 향한다. 겁이 난다는 아들에게 종배는 아빠의 이름을 크게 외치라고 시킨다. “이종배!”를 부르짖는 아이에게 “더 크게!”를 종용하는 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이 대목은 이전에 등장한 바 있는 놀이터 장면의 반복이다. 술래가 된 아들 태양이 아빠가 탄 회전무대를 돌려줄 때도 부자는 똑같은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쓰고 돌려봤자 회전무대는 제자리로 돌아올 뿐, 결국 지친 태양이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랐던 후손 또한 쳇바퀴의 현실에 좌절할 것을 직감했던 종배. 아버지의 이름은 이제 죽음의 이름이 되고,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는 절망은 끝내 태양을 쏘고 만다. < 바람 불어 좋은 날 >로 흔히 리얼리즘 시대라 불리는 2기 필모그래피를 열어젖혔던 이장호 감독은 후속작으로 < 어둠의 자식들 >(1981)과 <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를 동시에 착수했다. 두 영화 모두에 온전한 역량을 투여할 수 없었던 감독은 <어둠의 자식들>에 힘을 싣는 것을 선택했고, 이 작품은 상대적인 저평가의 불운을 떠안아야 했다. 그러나 힘을 뺀 덕분에 오히려 과잉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연출의 미덕은 물론, 이후 감독이 선보일 작가적 탐구의 방향성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먼저,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종교적 구원의 가능성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살아남은 도석의 아내( 이경실 )는 성당 신부로부터 자신이 살인자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이 결말은 시력(빛/태양)을 잃은 후 신에게 의탁한 안요한 목사의 실화극이자 후속작인 < 낮은데로 임하소서 >(1982)의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나아가 당대 불평등 구조의 근원을 좇아 유신 시대의 과거로 떠났던 감독은 이종배의 이력에서 중요한 단서 하나를 얻었다. 영화에서 그는 말한다. “난 어린 시절에 전쟁을 겪었다. 별의별 끔찍한 죽음을 한꺼번에 봤어. 추운 겨울 들판에다가 갓난애를 버리고 가는 지독한 여자도 있었지. 굶주림은 밥 먹는 것보다 많았어.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하는 놈 봤니? 나도 태어날 때부터 강도질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야.” 어쩌면 이 모든 참혹한 현실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 전쟁과 분단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훗날 감독의 역작인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7)를 통해 완성되었다.
“쿵딱 똑뚜르르 똑뚝딱... 쿵딱 똑뚜르르 똑뚝딱...” 뜨개질 바늘 부딪히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루핑 되면서 끝없이 뜨개질을 이어가는 단편애니메이션 <마지막 뜨개질 The Last Knit>(로라 네우본넨, 2005)은 최근 생기고 있는 지역중독센터의 주요 정신치료대상이 되기 시작한 ‘인터넷, 모바일 게임 중독’이나 ‘웹툰 중독’처럼 반복되는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벗어나기 힘든 말초적 감각의 즐거움으로 채워진 중독과 같이, 갇힌 시야로 인해 한 가지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궁(迷宮)과 같은 병적인 ‘집착’에 관해 다루고 있다. 필자는 이번 추천 애니메이션에 ‘집착으로 쌓인 내공’이라는 주제로 화두를 풀어가려고 한다. 2006년 일본 도쿄아니메페어 출장으로 신주쿠역을 출발해 도쿄역에서 환승, 역사를 막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당연히 우리나라와는 기후, 환경, 그리고 지하철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 등 생활문화가 여러 가지로 다를 것이라고 짐작을 한 여행이었지만, 서울역을 중심으로 여러 전철역의 선로 옆 도심과의 경계를 위해 위협적으로 세워진 철조망, 콘크리트 방음벽, 오랜 세월 달리는 철마의 분진으로 바닥과 벽들이 온통 빨간색으로 물든 철도변의 모습과는 달리 동경 전철역과 선로주변은 경계석을 제외하고는 철조망이나 방음벽을 볼 수 없었다. 때문에 수없이 지나가는 전철의 소음 속에도 고양, 일산 신도시의 고급 주택가처럼 깔끔하고 멋 부린 주택들이 올망졸망 늘어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밤 일본어 회화책에서 얄팍하게 배운 감탄사를 조용히 내뱉는다. “스고이...!” 전철은 이제 서서히 속도를 더하는데 “아뿔사!” 한 수 더한 ‘깔끔한’ 상황에 열린 입을 다물기가 쉽지 않았다. 아담한 2층집 계단의 난간 손잡이가 스텐레스 봉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마침 그날은 일요일 아침이라 집주인이 바깥 청소를 시작한 모양이다. 주인장은 스텐레스 손잡이에 광택제를 뿌리고 헝겊으로 빡빡 문지르기 시작한다. 3월 하순의 아침햇살과 동경 시내 풍경이 집주인이 닦아낸 거울 같은 손잡이에 영롱하게 교차되면서 반사 굴절된다. 필자에게는 넋 나가는 충격이었지만 일본 전철선로 옆집 아저씨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으로 보였다. 이는 일본 전철역 주변 사람들만의 ‘청결’에 대한 집착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습도 높은 섬나라 민족의 위생강박관념에 의해 오랫동안 진화된 변종 염색체의 고착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일본 사람들의 청결과 위생의 집착에 관한 또다른 에피소드가 있는데, 2005년 히로시마페스티벌로 가져간 PISAF(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홍보물 박스를 버리려고 휴지통을 찾았지만 행사장이나 시내 어디에서도 찾지 못해 결국 한국으로 되가져온 방증만으로도 그 순위를 마땅히 세계 1위에 올릴 수 있다. 이러한 데는 일본의 지역적 기후, 풍토 등 환경적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분야에서는 이렇게 깔끔한 민족성이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배경이 된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16세기 우키요에(浮世繪) 이후 명작 만화와 애니메이션들이 일본에서 많이 나오는 나름대로의 연유가 되는가보다. 문화와 예술작품에 관해서도 이러한 집착과 내공의 함수는 비례한다. 그래서 잔인하게도,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에 대해 우리 민족의 고유 창작품으로서 평가하고 찬사를 보내기에는 찰흙이 아닌 거친 화강암을 수없이 두들겨야만 형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물리적 속성의 모순을 풀지 않고는 그 찬사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여 부득불 공염불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엿판처럼 질긴 화강석에 망치질을 해보지 않은 여러 미학자들과 평론가들은 우리나라의 천재 석공이 단번에 두들긴 정질에 유아독존 석굴암이 탄생했다고들 감히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추천 애니메이션을 이야기 해보자. 1987년 도쿄 판타스틱 영화제에 특별 초대되었던 이색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 미궁물어 迷宮物語 >는 평단으로부터 아낌없는 극찬을 받았고 일련의 비디오물들 보다는 월등하게 탁월한 작품의 완성도 때문에 2년 뒤인 1989년 극장에서 다시 개봉하였다. 또한 이 작품은 현재 거장이 된 린타로, 가와지리 요시아키, 오토모 가츠히로 3명의 감독들이 미궁(迷宮)이란 이름에 걸맞게 마유무라 타쿠(眉村卓) 동명 원작소설의 난해한 이야기를 감독별로 작가적 감성과 색채를 진하게 녹여서 풀어내고 있어 감독들의 발자취와 축적되어가는 작업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오프닝작 <라비린스 라비린토스 ラビリンス ラビリントス>의 린타로(りんたろう) 감독은 < 우주해적 캡틴 하록 >(1978) < 은하철도 999 >(1979) < 안녕 은하철도 999 >(1981) < 환마대전 >(1983) < 카무이의 검 >(1985) <불새-봉황편>(1986) < 메트로폴리스 >(2001)를 통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린타로 감독의 이전의 스타일과는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라비린스 라비린토스=미궁, 미로’라는 작품제목과 같이 몽환적인 상상력으로 옴니버스 전체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줄거리는 데이브 맥킨의 몽환적 작품 < 미러 마스크 >(2005)의 설정처럼 서커스 극장의 환상으로 시작하는데, 여자아이 사치와 고양이 치치로네가 이상한 피에로를 쫓아 환상의 미로를 지나 이제 막을 올린 서커스 극장 속으로 들어간다. 작품 후반부의 미궁 같은 골목길에서 3D CG처럼 재현된 모호한 공간지각에 대한 상상력은 가히 대단하다. 두 번째 작품은 < 요수도시 >(1987) < 마계도시 신주쿠 >(1988) < 수병위인풍첩 獸兵衛忍風帖; 무사쥬베이 >(1993)으로 유명한 카와지리 요시아키(川尻義昭)의 <달리는 남자 走の男>다. 이 작품은 감독의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나는 그림체와 연출 등이 이후의 명작들을 낳게 한 초기 작품으로 충분히 가늠된다. 1등에 대한 집착이 강한 카레이서 ‘잭 휴’가 생명을 담보로 레이싱을 펼쳐 경쟁 카레이서들을 물리치고 1등을 하지만 자동차와 함께 그도 결국 산화해간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린타로나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에 비해 3D 공간감과 구조적인 상상력이 다소 아쉬웠다. 하드고어한 하이프리얼 해부학적 묘사와 유려한 동작, 스토리에 몰입감을 점증해가는 매끄러운 전환을 특징으로 하는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옥의 티’로 슬쩍 넘기고 싶다. 세 번째 작품은 한번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상 깊게 기억하는 < 아키라 >(1988)와, <노인Z>(1991)의 감독 겸 만화원작자로서, 혹은 < 메모리즈 >(1995)에서 히치콕의 오마주로 22분 18초 동안의 롱 테이크로 연출된 <대포의 거리>와 < 스팀보이 >(2005)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오토모 가츠히로(おおともかつひろ)의 데뷔작 <공사중지 명령 工事中止命令>이다. 필립 글래스의 ‘자푸라 강 Japura River’처럼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단조로운 반복음이 좌우, 앞뒤에서 소리의 정위감(Sound localization)으로 울리면서 정글이 있는 아로아나 공화국의 444프로젝트 공사장 이정표에서 3인칭 시점을 슬로우 아웃으로 멈추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줄거리는 444프로젝트를 중지하기 위해 주인공을 파견하지만 오직 로봇으로만 작업되고 있는 거대한 공사현장의 책임자 로봇은 오히려 파견된 주인공을 감금하고 공사를 계속해서 진행시키려 한다는 내용으로 자연파괴와 기계적인 현실에 갇힌 현대 사회의 인간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세밀한 자연생태와 인공구조물, 그리고 설계도까지 가미되어야만 정확한 움직임이 구현될 수 있는 다양한 기계류에 대한 복잡한 상상력과 세세한 묘사력은 ‘감독’이라는 호칭에 앞서 실로 ‘기계와 구조 컨셉의 달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 미궁물어 >가 개봉된 후 오랜 경험과 수련으로 쌓인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업계의 내공이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음은 더할 나위가 없지만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95년에 개봉한 3편의 중편(그녀의 추억;彼女の想いで, 모리모토 코지 감독 / 최취병기;最臭兵器, 오카무라 텐사이 감독 / 대포도시:大砲の街,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으로 구성된 114분의 또 다른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 메모리즈 メモリ?ズ >는 완성도와 밀도에서 <미궁물어>의 신선, 난해함을 실사영화보다 더 사실적인 치밀함과 회화적인 묘사에 블랙유머의 여유까지 더해서 업데이트한 일본 중편애니메이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영화관객 수로 법석을 피운 알폰소 쿠아론의 < 그래비티 >(2013)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 인터스텔라 >(2014)는 <메모리즈>의 ‘그녀의 추억’과 ‘최취병기’의 오마주가 아닐까, 라고 치부하고 싶다. 박수근 화백의 ‘낙엽 떨어진 나무’를 팩션과 언어의 향연으로 풀어낸 ‘나목’이 박완서 작가의 공력을 쌓아올린 등단작이 되었듯이 섬세한 감성과 오랜 기간의 수련에서 체득한 내공이 작품에 배어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 시대를 창작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난해하면서도 복잡한 상상력으로 어우러진, 풀기 어려운 방정식 같은 작품 < 미궁물어 >를 감히 추천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내친김에 < 메모리즈 >까지 보시고... 바흐의 ‘평균율 1권 1번 프렐류드’에서 반복되는 피아노 음이나 필립 그래스의 ‘라비린토스, ‘해변의 아인슈타인 Einstein on the Beach’과 와크티(Uakti)가 연주한 ‘자푸라 강’, ‘아마존 강 Amazon River’의 난해하지만 형이상학적 감성의 신비로움과 환상을 자아내는 단조로운 반복음이 창조해낸 음율의 감미로움을 최면술로 즐기는 사람들은, 오늘처럼 겨울을 더해가는 진눈깨비가 내릴 때, 브람스 4번 교향곡과 스파클링 와인 모스까토 큰 한잔으로 이 계절을 즐겨야 하는 예술가의 사명감을 당연히 수행하듯 소위 엘리트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하는 만큼 들릴 수밖에 없다. 뵈프 브로기뇽을 배불리 먹지 말고, 맛있게 먹어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