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항구
- 감독
- 박용
- 제작년도
- 1958
- 출연
- 박경주, 이용, 임향아, 임생출, 임손, 차석종, 전예출, 조석근, 최성, 하룡, 김성녀, 김정옥
한국영상자료원은 2006년 2월 2일,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를 오픈했다. 그리고 오늘 2026년 2월 2일. KMDb는 2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는 KMDb를 기획·구축하며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 고민했다. 누군가 ‘무비씨’라는 이름을 제안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나고, 그러나 아무래도 어딘가를 따라 한 것 같지만 그 이상의 이름은 없다고 판단해 KMDb로 지었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은 kmdb.or.kr 도메인을 구매했다. KMDb에는 20년간 생겼다 없어진 콘텐츠와 기능이 많다. 초기에는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입력하는 기능도 상당했으나 생각보다 양질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관리가 어려워 하나둘 폐기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과 독립영화 전용 KMDb를 따로 만들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통합된 상태에서 최대한 간결한 기능과 콘텐츠로 운영하는 중이다. KMDb를 준비하며 호기롭게 “풀 크레딧을 가지고 갑시다!”라는 (제안을 내가 한 것 같고 그래서) 고생문이 활짝 열린 정책을 시작하며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로 인해 어디에도 없는 데이터를 보유하게 된 KMDb는 영화·영화인 DB 서비스뿐 아니라 VOD로 한국고전영화 스트리밍을 시작했고, 영화글로 다양한 필자의 글을 소개했으며 리스트와 컬렉션이 순차적으로 오픈해 지금에 이르렀다. 2006년 2월 1일. 오픈 전날 디지털정보화팀의 담당 세 명은 그제야 동명이인에 대한 이슈를 발견하는 사고를 친다. 비슷비슷한 나이의 정유미 배우가 하나가 아니고 무려 세 명이래! 라는 비명을 한밤중에 지르며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인물을 분리하며 밤을 지새다 퇴근해 다음 날 오픈시켰다. 그리고 그 동명이인 이슈는 지금까지도 완전하지 않다. 완전할 수가 없다. IMDb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이슈를 KMDb 라고 별수 있겠는가. IMDb 매니저는 이름이 짧은 한국 인명으로 동명이인에 대한 고충이 더 심하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성명이 “정유미”인 배우 3인에 대한 KMDb 영화인 정보 KMDb는 영화·영화인 데이터의 완벽함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며, 이제는 영화인이 자신의 필모를 증빙하기 위한 웹사이트로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문득 KMDb에 쌓인 데이터가 어떤 모양새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사용자들도 궁금해할까? KMDb 20주년 이벤트를 근사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데이터로 가득한 사이트의 20년 묵은 통계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축하가 아닐까 생각했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지난 20년의 통계 10선을 소개한다. 1.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극·비극) 의 수: 50,787편 2.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인 의 수: 83,279명 3. 가장 많이 접근된 영화인 페이지 정윤희(1위), 임권택(2위), 신성일(3위) / 사진: 전승열, 정기성 1위 | 정윤희 2위 | 임권택 3위 | 신성일 4위 | 김기영 5위 | 이상사 6위 | 김지미 7위 | 박노식 8위 | 김진규 9위 | 신상옥 10위 | 안성기 4. 작품 리스트(필모그라피) 가 가장 많은 영화인 1위 | 현동춘 | 편집 | 994편 2위 | 김희수 | 편집 | 863편 3위 | 최형래 | 음향효과 | 850편 4위 | 손인호 | 음향효과 | 793편 5위 | 김기범 | 배우 | 753편 6위 | 허장강 | 배우 | 687편 7위 | 임해림 | 배우 | 660편 8위 | 김재경 | 음향효과 | 657편 9위 | 윤일주 | 배우 | 650편 10위 | 최남현 | 배우 | 609편 5. 한 작품(장편영화)에 가장 많은 크레딧 을 올린 영화인 1위 | 노영석 | THE 자연인 (노영석, 2023) | 17개 공동 2위 | 박용철 | 싸이더:애,심 (박용철, 2019) | 16개 공동 2위 | 준오 | 휴게소 (준오, 2016) | 16개 ※ 노영석 감독은 <THE 자연인>에서 감독, 각본, 출연, 프로듀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미술, 의상, 동시녹음, 사운드(음향), 시각효과, 색보정, 예고편, 포스터, 기타스탭(캘리그라피)을 담당함. 6. 참여 스태프 가 가장 많은 영화 <한산: 용의 출현>(1위) 1위 |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2) | 1,665명 2위 | 백두산 (이해준, 김병서, 2019) | 1,612명 3위 | 안시성 (김광식, 2018) | 1,502명 4위 | 미스터 고 (김용화, 2013) | 1,492명 5위 | 신과 함께–죄와 벌 (김용화, 2017) | 1,487명 7. 상 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 1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58회 2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45회 3위 | 추격자 (나홍진, 2007) | 41회 4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40회 공동 5위 | 괴물 (봉준호, 2006) | 31회 공동 5위 | 벌새 (김보라, 2018) | 31회 ※ KMDb에서 관리하는 영화제·시상식에 한함 8. 리스트에서 본 영화로 가장 많이 체크된 작품 <올드보이>(1위), <괴물>(2위), <기생충>(3위) / 사진: 디씨어터 1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2,581명 2위 | 괴물 (봉준호, 2006) | 2,355명 3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2,178명 4위 |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 2,055명 5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 1,672명 6위 | 아가씨 (박찬욱, 2016) | 1,648명 7위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 1,574명 8위 | 마더 (봉준호, 2009) | 1,533명 9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1,515명 10위 |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1998) | 1,438명 ※ 박찬욱 감독 작품 4편, 봉준호 감독 작품 4편 9. 리스트에 본 영화 체크를 가장 많이 한 사용자 1위 | bo**** | 2,076편 2위 | ha**** | 1,865편 3위 | gs**** | 1,747편 4위 | ba**** | 1,696편 5위 | in**** | 1,636편 ※ ****는 ID의 글자 수와 일치하지 않음. 10. 가장 많은 조회수의 영화글 1위 | “ [시네필 안내서]서문: 시네필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은 당신에게 ” (영화천국 Vol.48) | 정성일 | 91,634회 사실 진정한 20주년 이벤트라면 올해 KMDb가 전면 개편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득하지만 어찌 됐든 2026년 말 새로운 KMDb가 문을 열 것이다. 오랜 KMDb 관여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20년이 지난 이젠 누구나 KMDb를 KMDb(b를 소문자)로 써주길 바란다는 것 정도.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나는 정주리 감독이 밉다. < 도희야 > 같은 엄청난 데뷔작을 내놓고 아직도 차기작을 내놓지 않으니 말이다. 아니다, 말은 바로 해야 된다. <도희야>를 만든 감독이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국영화산업이 정말로 문제다. 이번 칼럼은 의심과 취약성의 정동이 영웅 서사를 변형하는 방식에 대한 것인 동시에, 정주리 감독의 차기작을 갈급하게 요청하는 사심 가득한 글이기도 하다. <도희야>는 한국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던 ‘섬에 들어온 외부인’ 설정을 따른다. 그 설정은 대체로 다음의 서사를 따른다. “자기들만의 도덕과 관행으로 똘똘 뭉친 시골 마을에 외부인이 들어와 공동체의 문제들을 들춰내기 시작하자, 착하고 순박하게만 보였던 사람들은 불쾌한 이면을 드러내며 외부인을 위협한다.” <도희야>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외부인이 레즈비언이라는 설정이 추가되면서 익숙한 관습의 궤도에서 벗어난다. 서울에서 온 엘리트 경찰 영남(배두나)은 바닷가 작은 마을의 파출소 소장으로 발령받는다. 동성애자인 그는 아우팅을 당한 피해자지만 경찰조직은 ‘말하지도 묻지도 말라’며 품위손상을 이유로 도리어 그에게 징계를 내린다. 간부와 선배들은 징계를 내리면서도 레즈비언이나 동성애자라는 단어가 병이라도 옮기는 듯 분명하게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는다. 피해자인 영남은 그 자체로 잘못된 존재가 되어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히는 이로 낙인찍힌다. 그러나 그는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문제는 경찰조직이 아니라 영남이 된다. 절대로 튀지 말라는 선배의 조언대로 애인까지 버리고 1년 정도 숨죽여 있으려 했던 영남은 그 동네에 도착하는 처음부터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영웅은 여러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누가 지금 구원을 요청하고 취약한 상태에 있는지를 예민하게 인지하는 자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약자가 언제나 크게 비명을 질러 자신의 피해사실을 명백하게 알려줄 수 있는 조건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존재의 취약성에 대한 예민함은 타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까지 향해야 한다. 취약한 자는 취약한 자를 한눈에 알아본다. 따라서 강함만 있어서는 영웅이 되기 어렵다. 영남은 그러한 영웅의 자질을 갖고 있는 캐릭터이다. < 양들의 침묵 >에서 클라리사 스털링(조디 포스터)이 어린 시절 양떼목장에서 죽어가던 양들의 울음소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여전히 들려와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 역시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갖고 있는 이 취약한 영웅들은 상처받고 약한 자들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실제로 영남은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차로 인해 크게 물이 튀여 피해를 입었는데도 괜찮은지 확인하려 하자, 잽싸게 도망가 버리는 소녀 도희(김새론)를 발견한다. 그 이후 도희는 계속 영남의 눈과 귀에 뜨인다. 취약성에 대한 감각의 예민함을 표현하기 위해 <도희야>는 영화적이고 서사적인 층위 모두에서 소리를 강조한다. 욕하고 때리는 계부 용하와 할머니의 학대하는 소리, 계부인 용하와 할머니에게 맞아 비명 지르고 도움을 요청하는 도희의 소리,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자신의 피해를 말하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침묵의 소리, 피해자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 불면증인 영남이 술을 따르고 마시는 소리, 동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생수병에 소주를 옮겨 담는 소리, 소주가 담겨있던 빈 플라스틱 생수병이 부딪히고 구겨지는 소리, 영남과 도희가 목욕하는 소리, 도희가 영남이 목욕하고 있는 화장실에 들어와 소변보는 소리까지 영화적 사운드가 외화면과 내화면에서 지속적으로 도드라진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소문과 험담의 소리는 다양한 존재들을 위축시키고 허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웅 외에도 취약한 자를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이가 또 있다. 그는 착취와 학대를 가해도 자신에게 문제가 안 생길 정도로 취약한 이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타인의 치명적인 약점을 빠르게 알아챈다. 박용하(송새벽)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마을의 주요 생계인 가두리 양식장의 운영을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는 용하는 동네의 유일한 젊은 사람으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를 두둔한다. 마을 사람들은 직접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험담과 소문으로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려 한다. 동네 사람들은 “젊은 년이 계급장 달았다고 동네를 들쑤시고 다닌다”며 대놓고 욕을 하고, 용하는 첫 만남부터 “솔찬히 미인이어서 소장인줄 몰랐다”는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던지며 영남을 공격한다. 영남이 애인과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용하는 영남이 이주노동자를 보호하려는 결정적 순간에 “서울서 내려온 여자하고 뭘 하는 걸 봤으면 하는데 어느 한 새끼라도 나한테 물어봤으면 좋겠네, 입이 근질근질하네”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젊은’ ‘여자’ ‘동성애자’는 모두 영남의 다층적인 취약점이 된다. 영남이 동성애자인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용하는 ‘성적 대상’으로 영남을 지시하며 그가 가진 권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영남이 동성애자라는 것이 밝혀지자 오히려 그는 성적 착취자가 된다. 도희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려는 그의 모든 행동은 성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정주리 감독은 관객들에게 미묘한 질문을 던진다. 관객들이 영남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시점에 도희와 영남이 함께 욕조에서 목욕하는 장면, 영남이 목욕을 하고 있는 와중에 외화면에서 도희가 소변을 보고 물을 내리는 장면, 용하와 할머니에게 맞은 도희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영남을 보여주며 둘만의 내밀한 순간들을 공들여 연출한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지나칠 정도로 반복된다. 사실 용하와 형사들이 영남에게 소아성애자라는 혐의를 씌우기 전에 관객들은 여기서 이미 이상한 긴장감을 느낀다. 게다가 영남의 스타일을 따라하고 그의 애인을 질투하며 집착하는 도희의 모습도 평범해 보이진 않는다. 이 긴장감과 불편함의 근거는 무엇일까? 어떤 면에서 정주리 감독은 연출적으로 소위 ‘오해의 여지’를 점점이 뿌린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이 행동들이 그렇게 설명 불가능한 것인가? 심지어 영남은 경찰로서, 즉 폭력 피해자를 상대해본 전문가로서, 도희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영남은 도희가 “폭력에 길들여진 위험한 상태여서 특별한 보호가 필요”했고, “아이가 나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경찰 제복을 입고 있고 나쁜 짓 하는 남자들 혼내줄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여 그러는 것이라고” 매우 타당성 있는 전문적인 해석을 내린다. 영남은 도희의 애착이 버려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자기 보호와 생존의 욕망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더불어 영남 스스로도 도희와 지나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긴장하고 관계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성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장면들에서 일말의 불편함과 긴장감이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남은 곧 성인 여성으로서 그리고 경찰로서 보호자로서의 정체성을 충분히 인식하며 도희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전에 멈칫하다가도 그를 품어준다. 그렇다면 그 긴장과 불편함을 성적으로 읽어내는 것은 누구인가? 레즈비언인 것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행동들이 갑자기 어떻게 성착취의 증거가 되는가? 관객들은 정말로 경찰과 마을 사람들의 생각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가? 존재에 자체에 대한 의심과 혐오의 씨앗은, 그것이 막연한 긴장감과 불편함에 불과할지라도 질문하지 않고 놓아두면 언젠가 그 존재의 모든 행동을 오염시킨다.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 혹은 동성애자가 영웅이 되기 위해선 소문과 낙인, 존재 그 자체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래서 소수자가 영웅이 되는 것은 더 어렵다. 소수자 영웅은 타자를 구원해 더 크고 강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존재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취약성을 드러내게 되고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 영남은 도희에게는 ‘맞지 말고 저항하라’고 했지만, 오히려 자신은 경찰조직의 억압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말하지 않고 묻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피해자임을 부인하고 거부해 왔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은 어떤 면에선 더 많은 고통을 불러왔다. 자신뿐 아니라 애인에게도. 그러나 끝까지 도희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영남은 다시 가해자의 외피를 쓴 피해자가 된다. 여기서 영남은 도희의 구원을 받는다. 도희는 ‘순수한’ 피해자와는 거리가 멀다. 도희는 더 이상 맞지 않기 위해 할머니가 추락한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고 계부를 함정에 빠뜨려 감옥에 보내 자신과 영남을 구한다. 여기서도 전화의 사운드가 이용된다. 도희는 추문을 추문으로 막는다. 도희는 자신이 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취약성은 때로 존재를 단단하게 만든다. 영남은 도희를 두고 혼자 떠나려다가 도희가 “어린 괴물” 같다는 후배 경찰의 소리에 차를 돌려 도희를 데려간다. 존재에 대한 의심과 오염이 얼마나 그 존재를 갉아먹는지를 잘 알고 있는 영남은 도희를 버려둘 수 없다. 이 선택은 그녀의 경력을 무너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의 정체성과 존재 자체도 오염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존재를 걸고 자신의 취약성을 받아들이며 영웅이 되기를 선택한다. 어떤 면에서는 영남과 도희 모두 서로의 취약성을 발견하고 나서야 서로를 구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취약성을 통해 영웅이 된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나쁜 짓을 그만두기 처음 < 카센타 >( 하윤재 , 2018)를 보고 약간 혼란스러웠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과 장르적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지만 이 모든 내용이 마지막까지 하나의 큰 줄기로 수렴되지 않는다. 각 사건 사이에는 우연이 불쑥 개입하고, 몇몇 장면들에서 주인공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상황에 휩쓸리기만 한다. 작은 카센타를 운영하는 가난한 부부가 의도적으로 ‘빵꾸 사고’를 유도해 큰 돈을 버는 줄거리만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아동 유괴, 성범죄, 공무원 비리, 가족 간 갈등 같은 사건이 계속 벌어지자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전개를 바로 따라가지 못했고, 영화가 조금 산만하다는 인상도 받았었다. 하지만 <카센타>의 말로 쉽게 설명하기 힘든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난 뒤 이 영화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주인공 부부를 중심으로 하나의 일관적인 이야기를 만들 생각이 없다. 즉 소위 ‘기승전결’의 순서를 따라 사건의 발생과 해결 과정을 매끄럽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어떤 부조리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지, 그 안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혼란과 갈등을 겪는지 보여주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는 깔끔한 결말과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가 없으며 단지 자신의 욕망을 쫓는 여러 인물 군상의 추악한 모습만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만약 전자를 기대한다면 높은 확률로 실망할 것이다). 그러니 <카센타>를 볼 때는 개별 사건의 명확한 인과 관계나 통쾌한 결말, 또는 교훈을 억지로 찾기 보다는 이 영화가 한 공동체의 더러운 모습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묘사하는지 한발짝 물러서서 관찰하는 게 더 유의미한 관람 행위가 될 것이다. 이때 먼저 강조하고 싶은 건 <카센타>의 세계가 나쁜 사람들의 이상한 결속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점이다. 달리 말해 <카센타>에는 악한 인물과 선한 인물의 대결이 없다. 영화 속 재구( 박용우 )와 순영( 조은지 ) 부부를 포함한 등장 인물 대부분은 다들 몰래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슈퍼 할머니와 손녀라는 예외가 있지만 이들은 결국 피해자로 그려진다). 비리를 저지르는 경찰, 경찰을 수족처럼 부리는 청년회장,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가, 범죄를 저지르는 공무원, 이기적인 가족들, 그리고 도로에 못을 박는 재구와 순영. 여기서 주목할 건 재구와 순영이 저지르는 행위에 깔린 심리적 동기가 다른 사람들의 나쁜 짓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있다는 점이다. 즉 주인공 부부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심리적 알리바이로 삼는다. 재구는 궁지에 몰렸을 때 억울하다는 듯 외친다. “내가 왜 깜빵가냐?”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는 청년회장도 있고 그린벨트를 파괴하는 사장도 있는데 ‘겨우’ 도로에 못을 박는 건 그리 큰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 “빵꾸 다 내서 이 동네 확 쓸어버려야 되는데!”라고 소리치기까지 한다. 이 대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재구는 자신의 범죄가 다른 사람들의 범죄보다 더 낫다고 정당화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카센타>는 하나의 범죄에 이어 또다른 범죄가 잇달아 일어나는 공동체의 작동 구조를 정확하게 간파한다. 어떤 사람이 저지르는 하나의 나쁜 짓은 개별적 사건 같지만 사실 이 모든 그림자는 서로를 양분 삼아 자라고 있는 중이다. 청년회장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누군가의 잘못을 눈감아주고, 누군가는 그동안 더 큰 잘못을 저지른다. 이제 옳고 그름의 감각은 희미해지고, 결국엔 재구와 순영처럼 뒤틀린 논리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한다. 비록 <카센타>는 시골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우리 사회의 풍경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감독은 누군가의 악행이 또 다른 누군가가 저지르는 악행의 그럴듯한 핑계가 되어주는 공동체의 씁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내가 <카센타>를 좋아하는 건 단지 이 이유 때문은 아니다.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악당이라는 관점으로 현실을 묘사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아마 냉소일 것이다. 즉 더 나아지려는 의지, 심지어 현실에 분노할 마음마저 잃어버린 채 그저 남과 나 스스로를 비웃으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카센타>는 냉소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민낯을 직시하고 이를 부수려는 용감한 태도를 취한다. 아직 영화를 못 본 관객을 위해 결말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모든 게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물론 그 파국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일시에 멈추려 할 때, 이 중단의 행위는 최근 본 어떤 한국영화에서보다 비장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피하고 싶다. <카센타>의 강렬하고 기묘한 마지막 장면을 꼭 함께 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