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로 가는 길
- 감독
- 박지훈
- 제작년도
- 2009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에 바로 지금 잠시 멈추어 서 보자. 나는 지난해에 몇 편의 영화를 보았다. < 아가씨 > 혹은 < 밀정 >그리고 < 덕혜옹주 >와 < 해어화 >. 그런 다음 약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 자리에 < 암살 >이 떠오른다. 여기에 변주에 가까운 < 기담 >과 < YMCA 야구단 > < 그림자 살인 >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 뒤따라온다. 물론 맨 앞에 < 모던 보이 >가 있다. 올해에는 강제징용 간 조선인들이 노역에 지친 나머지 목숨을 건 탈출을 하는 < 군함도 >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경향인지 아니면 시대정신인지 혹은 일시적인 유행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염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부정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자 갑자기 일제 강점기 문화에로 인문학은 관심을 돌렸다. 좋은 일이다. 나는 언제나 일종의 단절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이 시간적 단층을 언젠가 역사의 담론이 채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담론들은 단층을 역사화 하는 대신 낭만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메이지유신이 가져온 일본의 근대화는 종종 식민지 경성에 믿을 수 없는 문화적 순간을 마련하였다. 나는 1930년대에 파블로 카잘스와 자크 티보, 알프레드 코르토로 이루어진 카잘스 트리오가 경성을 방문했었다는 기사를 읽고 어떤 쇼크를 받았다. 경성의 ‘모던 뽀이’들과 ‘모던 껄’들은 전설적인 카잘스 트리오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가졌었다. 어쩔 수 없는 탄식. 눈앞에서 티보의 저 신비로운 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니, 아니 코르토의 전성기의 미스 터치의 건반을 직접 볼 수 있었다니, 그리고 카잘스의 춤추는 것만 같은 첼로를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다소 역겨운 표현이지만) 식민지 신민들의 과분한 기쁨.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쉬 현악사중주단이 경성에 와서 베토벤 현악 사중주의 레퍼토리를 연주했었다. 이 악보를 역사상 가장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었던 단체의 연주로 들었던 세대. 21세기의 우리는 그걸 고작해야 SP 복각음반으로 수 없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하면서도 도대체 정말 그들의 음색은 어떠했을 지 상상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그걸 들으러 다닌 ‘뽀이’들과 ‘껄’들은 친일분자들의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이미 역사의 저 너머로 스러져버린 조선의 정체성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었을 것이며, 풍문으로 전해온 청산리 눈밭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36년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은 다음 미국에 의해 해방되자 소설가 이광수가 했던 유명한 한 마디. “그렇게 빨리 해방이 될 줄은 몰랐다”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 말은 수없는 변주의 버전으로 식민지 강점하를 배경으로 한 해방 ‘이후’ 영화에서 마치 알리바이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나는 먼저 한계를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36년을 설명하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은 덧붙이고 싶다. 여기엔 아직도 설명되지 않은 (어쩌면 아직도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밀정> (김지운, 2016) <암살> (최동훈, 2015) 한국영화사에는 일제 강점기 36년을 다룬 영화들의 두 시기가 있다. 하나는 1960년대 말에서 1979년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지금이다. 나는 앞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전기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고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포스트 식민지 영화라고 부르겠다. 그 둘의 차이는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먼저 1960년대에 만들어진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바로 지금 만들어지는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결정적 차이. 한 쪽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시대와 직접 맞대면하고 살아보았고 다른 한 쪽은 양쪽 모두 그 시대를 교육을 통해서 학습했다는 사실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해보고 싶다. 살아보았다, 라는 거의 절대적인 차이. 한 쪽은 영화를 보는 시각적인 리얼리티에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의 경험이 포함되고 다른 한 쪽은 지식의 상태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물론 경험과 지식의 차이를 단순하게 삶의 문제로 치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개입한다. 살아본 사람이 대상을 관념화할 수 있는 거리의 한계만큼 똑같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거리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영화에서 재현의 표식들이 어떻게 공유되었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경험이라는 네트워크의 토대를 물어보는 것이다. 별다른 해독을 요구하지 않는 기호들의 기억. 게다가 더딘 근대의 풍경은 아직까지 일제 강점하의 생활을 재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 말뜻은 일제 강점하의 이미지와 말이 여전히 일상 안에 머물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1970년대에 영화를 만들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촬영 팀은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얼마든지 자신들이 살았던 시간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미지에서 기억은 지속이라는 흐름 안에서 머물고 있다고 일깨워준 베르그송의 조언을 잊으면 안 된다. 순수 지각없이 표상이 성립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것 없이 세워진 포스트 식민지영화들의 향수들이 그리워하는 순수 지각은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여기에 좀 더 복잡한 역사적 논점이 기다리고 있다. 1980년을 경계로 갑작스러운 부동산 산업은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 흔적을 폭력적으로 지워나갔다. 여기에 역사의 트라우마에 대한 국가적인 말소 따위란 없다. 오직 자본주의 경제학의 논리만으로 한국사회의 풍경을 바꿔나갔다. 그런 다음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일제 강점하를 오로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부채 위에 세워진 채 정책적으로 편향되고 부정확한) 자료와 학교 제도의 교육을 통해서만 학습한 세대였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는 뜻이다.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의 풍경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기호이며 사진을 경유하여 재현된 이차 자료들이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경험이 매개되어 있지 않은 지식의 한계 속에서의 인공적인 세계가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더도 덜도 아닌 < 아가씨 >. <아가씨> (박찬욱, 2016) 임권택 을 설명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볼 때마다 종종 과도하게 (이런 표현이 용서된다면) 유물론적 경험론에 사로 잡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지금 이 표현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화가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건드릴 때마다 거기에는 위태로울 정도로 확신에 찬 어떤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거기서 감도는 어떤 정서, 어떤 추억, 어떤 감흥, 어떤 기억, 어떤 흔적, 어떤 시간. 아니 차라리 누군가. 그런 다음 임권택은 이 시간의 선을 망쳐버린 역사라는 법칙 앞에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져가는 섬광 같은 순간을 붙잡기 위해 애를 쓴다. 임권택의 영화가 아름답다면 그것은 가련한 실패의 수단으로 시청각 기호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만 이 무자비한 목적론적 설명. 나는 < 왜 그랬던가 >를 말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첫 번째 시기의 일제강점하를 무대로 한 전기 식민지 영화만을 건드려볼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따금 바로 지금 여기의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을 호명할 것이다. 상황을 먼저 설명하겠다. <왜 그랬던가>는 그때 만들어진 거의 하나의 제도적인 장르라고 불릴만한 일제 강점기 독립군 영화중의 한 편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이 영화들은 인기가 없었다. 이 영화들의 대부분은 마지못해 만들어졌다. 박정희 제3공화국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 경쟁 속에서 두 가지 이념을 들고 나왔는데 하나가 (물론) 적대적인 반공주의였으며 다른 하나가 맹목적인 민족주의였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가까이 있었고 불씨를 안고 있는 휴전은 반공을 내세워서 민주주의를 향한 어떤 정치적 저항도 무력화시켰다. 그러는 한편 민족주의 이념 전파는 둘로 나뉜 한반도에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권력이 헤게모니 장악을 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 되었다. 1960년대 남한 민족주의는 단군의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적 서사(‘우리는 하나다’)와 일제 강점하의 식민지 지배라는 다른 민족에 의한 침략의 경험을 경유시켜(‘소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북한은 또 다른 식민지이다’, 라는 정식화. 그래서 북한을 괴뢰(傀儡)정권이라고 불렀다) 상상적 공동체로 접합시킨 이데올로기였으며 사실상 그것이 변형된 파시즘이라는 것을 드러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정책 수행과정에서 문화부는 영화를 앞세워 대대적인 이념 홍보를 했으며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보급되기 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주기 바란다) 영세자본과 탈세, 사실상 암시장 구조에 가까운 배급 체제를 갖춘 그 당시의 한국영화는 검열과 지원 정책이라는 채찍과 당근에 길들여져 정부가 요구하는 것을 순순히 수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힘세고 나쁜 일본, 힘없는 착한 조선으로 단순하고 도식적으로 이분화 되었다. 그런 다음 기괴할 정도로 이 과정에서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수사로 망설임 없이 가혹한 고문을 개입시켰으며 종종 이 장면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육체를 포박당한 채로 전시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훼손당하면서 변태적인 관음적 시선의 에로틱한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소름 끼치게 만드는 순간은 유교를 내세운 검열이 과도할 정도로 성적인 묘사에 히스테리에 가까운 가위질을 하다가도 일제 강점하의 고문장면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해질 때이다. 이를테면 < 아가씨 >의 관음적 마조히즘의 전시와 < 밀정 >에서 잡혀온 다른 ‘남성’ 독립 운동가들을 제쳐놓고 유일한 여자인 연계순을 과도할 정도로 가혹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 그리고 이 장면들은 전기 식민지 영화들과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 사이의 간극이 서로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들의 논점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일제강점하 식민지 이야기를 다루는데 아무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건 만드는 쪽도 그렇고 보는 쪽도 그렇다. 남한은 프랑스와 달리 해방 이후 부역자들을 심판하는 일에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만이 부를 성공적으로 축적했다) 그래서 일제 강점하를 다루는 것은 언제나 현실적으로 불편한 일이 되었다. 한국근대사에서 해방은 친일부역자들의 승리의 역사이다. 여기에 복잡한 계산이 끼어든다. 사실상 이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역사를 다룬다기보다는 1960년대 박정희 체제 혹은 1970년대 유신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 블록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가에 무조건 복종하는 민족주의 이념의 전기 식민지 영화들은 어떤 이해관계에 앞서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해방 ‘이후’의 국가에 관한 충성을 어디서 시작하건 동일한 결론에로 이르는 필연적인 정의의 진리인 것처럼 위장시켰다. 그들은 항상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다음 자발적으로 희생을 받아들였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은 포스트 식민지영화들조차 이런 희생양의 논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반복 재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서 보는 것은 우리의 학습 과정이 식민지 강점하의 지식이 아니라 거기서 파생된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 체제라고 불리는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끈질기고 악랄하게 뇌에 달라붙어있는 것인지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이미지 서사들이다. 이를테면 < 밀정 > 혹은 < 암살 >. 여기에는 어떤 전도가 있다. 이 전도를 이론화 시키는 것은 이 지면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지만 정식화시킬 필요는 있다. 이때 이 정식은 일종의 도착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내 선택이 옳기 때문에 내 민족을 위해 희생한다, 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내 민족을 위해 희생하기 때문에 내 선택이 옳다, 라는 착각에로의 자리바꿈은 나를 국가 앞에 완전히 굴복시키기기를 요구하는 유신정권의 파시스트 정책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문화적(이자 동시에 정치적인) 훈련과정의 반복이다. 나는 이 기괴한 정식을 들고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던 세대의 전기 식민지 영화에 대해서 질문해보려고 한다. 「마록열전」 그리고, 그리고 반드시 여기에 셈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은 < 왜 그랬던가 >를 만들었던 해이다. 1975년 11월 15일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그 해 1월 유신헌법이 국민투표로 통과되었고 4월 8일에 긴급조치로 인민혁명당 재건위 관련자를 체포한 다음 대법원 판결을 내리고 8명을 채 하루가 되지 않아 사형 집행했다. 5월에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되었고 온 세상이 숨을 죽였다. 민방위를 창설하였고 무시무시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해 이만희 는 < 삼포가는 길 >을 편집하다가 편집실에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 바보들의 행진 >은 검열로 거의 사지절단 당하다시피 했다. 가장 나쁜 상황. 임권택 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여기서 멈춰야 한다. 나는 지금 전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비평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 순간 왜 당신은 잭 런던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야 했나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그저 세간에서는 새마을 국책영화를 만들고 B급 다찌마와리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고 당신을 부르던 시간에, 그저 혼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내면의 풍경 앞에서, 어쩌면 사정없이 조여들어오는 연좌제의 두려움 앞에서, 왜 위험하기 짝이 없게도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만들어야 했나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왜 그랬던가>를 보다가 그 문제의 ‘桃苑茶室’에서 김참의의 아들이 송주희에게 잭 런던의 책을 건네주는 순간 무언가에 감전된 것만 같은 쇼크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아마, 당신도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족보> (1978) <왜 그랬던가> (1975) 나는 몇 번이고 같은 자리로 돌아와서 임권택 의 영화들이 서로를 이루는 방식에 대해서 종종 (데리다의 멋진 표현을 빌려) 서로 대리하거나 보충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토대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한다.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종합이란 없다. 그는 자기의 내부를 모순된 사태 그 자체로 내버려두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종종 영화들 사이에서 약간 의아할 정도로 이 영화가 저 영화의 무언가를 폭로하는 듯한 거울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이때 대부분 이 문제를 앞으로만 밀고 나아간다. 나는 오히려 반대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어진다. 그 자리에 놓인 영화중의 하나가 < 왜 그랬던가 >이다. 임권택의 영화를 설명하는 대부분의 비평은 <왜 그랬던가>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는 숨은 걸작, 같은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왜 그랬던가>가 없었다면 < 족보 >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두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단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만이 아니다. 두 영화는 모두 친일부역자였던 아버지가 (서로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일련의 시련을 겪으면서 죽음을 대가로 치르면서까지 자기보다 소중한 그 무언가를 지키려고 한다. 같은 말이 반복. 자기보다 중요한 그 무언가. <왜 그랬던가>의 일본 경찰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동포를 밀고하는 마영과 <족보>의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수원 유지인 설진영은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서로 전혀 다른 자리에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가면 그들은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내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과 바꾼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한 과정을 거쳐 같은 결론에 이른다. 심지어 <왜 그랬던가>에는 이야기의 진행과 아무 상관도 없이 조선 총독부의 경감이 기노시타 형사를 세워두고 조선 도자기를 감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경감은 감탄을 하면서 “조센징들이 우리들보다 월등히 앞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라는 대사를 한다. <족보>의 설진영은 자살하기 직전에 도자기를 정성스럽게 정리한다. 둘 사이의 유사점은 주인공에서 멈추지 않고 마치 서로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듯 이상한 곳에서 반복된다. <왜 그랬던가>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송주희가 일본 형사들에게 고문당하는 것을 마영은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족보>에서 딸의 약혼자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설진영을 핍박하기 위해 붙들려가 고문을 당한다. 다소 가혹한 표현이지만 그들 자신은 고문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은 동일하게 그들을 자발적인 죽음에로 이끈다. 여기서 왜 구경꾼들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이때 나는 다소 기이하게 반문해보고 싶어진다.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차라리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임권택이 일제 식민지 강점하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은 무엇일까. 그런데 그 무언가는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동일한 보물로 취급될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 보물은 해방이 되자 거의 돌아보지도 않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을까. 혹시 여기에 전기 식민지 영화(들)의 어떤 수수께끼 같은 핵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이 질문에 대해서 임권택 은 < 왜 그랬던가 >에서 거의 하나의 정식화와 같은 대답을 제시한다. 마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하나의 조건에 놓여있다. 그것은 물론 일제 강점기에 놓여있는 그의 조국이다. 마영이 체포되어 감옥에 끌려 갈 때에도 세상에는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다. 게다가 세상의 모든 일은 마침 그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마영의 거의 유일한 소망대로 그의 아들은 경성제국대학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받는다. 그러므로 마영의 변화는 외부 조건의 변화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의 어떤 요구에 따른 것이다. 어떤 정신적 신호. 그리고 응답. 이때 그 설명을 단순하게 마영의 신념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렇게 말해버린다면 차라리 이건 신념이라기보다는 변덕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 어떤 조건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영의 변화를 주변의 누구도, 심지어 그의 가족들조차, 이제까지 아버지를 경멸했던 그의 아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마영은 이 순간 이제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속적 성공의 거의 문턱 앞까지 가까스로 도달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걸 자포자기하듯이 버린다. 지금 자신이 하는 행위가 결국에는 실패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무엇이 마영을 이기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삶으로부터 도무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희생의 선택에로 이끄는 것일까. 마영이 희생을 한다고 해서 독립운동의 큰 사건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국면이 전환되는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다. 마영은 민족, 과 같은 거대한 담론에는 끝끝내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이 임권택의 영화가 그 주변의 전기 식민지영화들과 결별하는 지점이다. 역사 앞에서 좀 더 냉정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 식민지로부터 독립운동을 통해서 안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전쟁에 항복함으로써 바깥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얻어진 것이다. 게다가 <왜 그랬던가>의 인물들에게는 주어진 조건에 대한 어떤 외부적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임권택은 이들의 세계를 어떤 가능성으로부터도 차단된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일본 제국주의는 끊임없이 전선을 확장하고 지칠 줄 모르는 전쟁을 했지만 마영은 세계의 새로운 질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전혀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혹하게도 객관적으로 마영은 이 상황에서 그저 희생당하는 것이다. 객관과 주관 사이의 서로 넘을 수 없는 간극.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그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선택은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한 결정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이행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마영이 자신의 정신적인 매트릭스 자체를 현실적인 조건으로부터 그 무엇인가의 환상에로 옮겨놓은 것이다. 마영은 왜 현실로부터 환상에로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것일까. 가장 쉬운 대답은 마영이 윤리적 결단을 내린 다음 그 심연을 횡단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론은 간단하다. 그렇다면 왜 해방이후에 임권택의 주인공들은 동일한 행위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 대답은 전기 식민지영화들, 그 영화들 모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임권택은 오직 여기서만 성립하는 셈을 치루면서 그것이 보물과 바꿀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결단을 내리는 중이라는 것이다. 마영 자객 그 보물은 무엇일까. 그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약간 장황하게 이야기의 윤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영은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일본 경찰에게 밀고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리 빼돌리며 양쪽에서 돈을 챙기는 박쥐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마영은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부끄러운 줄 모른다기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기 자신을 위한 알리바이가 있다. 알리바이? 그렇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의 입장. 물론 그 자신도 자기가 무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죄의식을 성공적으로 떠넘긴다. 그때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은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 그의 아버지에게 있다. 마영은 한일합방에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다. 영화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를 할 때보다 더 분노한 마영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의 밤. 박쥐가 마음껏 날아다니는 시간. 이때 박쥐는 오로지 자기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마치 자기의 망친 삶의 원인을 향해서 복수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만일 그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기회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주변에 자기를 노리는 수많은 자객들에게 쫓기면서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한다. 마영은 지금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하는 중이다. 첫 시퀀스가 끝나고 집으로 귀가하면서 그를 뒤쫓는 자객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런 다음 자객은 내내 그의 뒤를 쫓으며 기회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일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일말의 후회도 없이 수행하는 중이다. 무엇이 그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일까. 임권택 은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더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단순해보이지만 그의 삶 전체 내내 진행되어왔던 그 무거운 그림자와의 투쟁. 마영이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을 배신하고 밀고하는 것은 역사의 이치를 반대한 아버지 때문에 망친 자기 삶에 대한 보상의 요구이다. 약간 따분하지만 좀 더 도식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마영의 행위는 아버지의 결정으로 자기 삶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을 과정과의 주관적인 인정투쟁이며 역사의 객관적인 진행을 외면하고 자기 서사의 내면화로 재도식화 해나가는 퍼포먼스이다. 이때 그 밑바닥에는 애처로운 호소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버지, 왜 당신은 당신의 아들의 앞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나요. 당신의 아들이 살아야 할 조선이 한일합방이 된 다음 식민지라는 사실이 되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걸 정말 몰랐나요. 일본 식민지가 되었을 때 당신의 아들은 어떻게 견뎌야 하나요. 아버지의 침묵. 마영의 아버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이미 마영에게 오직 부정하는 것 이외에 대결할 방법이 없는 대상이 되었다. 이때 이 모습은 마영의 절반이다. 그는 집에 귀가하자마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애로운 아버지가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아들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기만을 바라면서 그걸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잠시 후에 마영이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는 이유가 아직 합격하지도 않은 아들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이유를 서둘러 충족시키려는 이 간절함. 이때 마영의 행위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행하지 않은 것의 정확한 반복이다. 혹은 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의 재현이다. 나는 내 아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럴 뿐만 아니라 그걸 위해서 내가 무얼 해야 하는 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그걸 해야만 해요. 만일 이것을 마영이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행위라고 읽으면 그건 표면만을 건드린 것이다. 정확하게 마영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하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데까지 밀고 나간다. 이 부정적 동일화.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서사와의 동일화. 이때 마영의 동일화는 보편 역사로부터 떨어져 나와 특수하고 개인적인 서사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반대로 이 서사가 마영을 포획하고 그 안에서 텅 빈 서사의 공백을 메우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비극은 마영이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 가상의 대리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그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텅 빈 공허 안으로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내 청을 들어주시오.” 일본인들에게 폭행 당하는 마영의 아들 “아버지, 이야기나 할까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중단 갑작스러운 에피소드. 마영의 아들은 합격통지서를 받아오던 날 술에 취해서 느닷없이 아버지에게 질문한다. “나도 아버지 부탁대로 했으니 아버지도 내 청을 들어주시오.” “아무 것도 필요 없어요. 나는 개의 자식으로 살으리오까, 늑대의 자식으로 살으리오까?” 물론 잭 런던의 책을 빌린 질문이다. 이때 이 책을 읽은 적이 없는 마영은 이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아들이 술 취해 하는 소리로만 생각할 뿐이다. 바로 다음 시퀀스. 마영의 가족은 함께 경복궁에 나들이를 간다. 여기서 백주 대낮에 근정전 앞에서 오줌을 싸는 아이를 수수방관하는 일본인 엄마에게 마영의 아들은 예의를 갖추어 야단을 친다. 하지만 이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한 일본인 엄마는 다른 일본인들을 끌고 와 마영의 아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다. 자기 아들이 폭행을 당하는 꼴을 본 마영이 달려가 말리지만 그들은 함께 가세한 일본인들에게 그저 무기력하게 당할 뿐이다. 그런 다음 이상한 씬이 이어진다. 아들은 이불에 누워있고 마영은 벽에 기대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아들은 아마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누우세요, 아버님도” 그 말을 듣고 마영은 옆 자리 이불에 눕는다. 그러자 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이야기나 할까요” 임권택 은 매우 공들여 연출하다가 갑자기 여기서 쇼트의 진행을 중단시킨다.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마영이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지, 아니면 한 밤중에 부자지간에 언성을 높였는지, 그도 아니면 이야기는 중단되고 잠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임권택은 이 결정적인 순간을 하나의 블랙홀로 만들어버린다. 아마 보물은 그 블랙홀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임권택이 보물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마스크를 쓴 마영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영은 그 다음 날 경찰서로 출근하면서 입가에 난 구타 흔적을 감추기 위하여 큰 마스크를 쓴다. 이때 이 마스크는 동시에 밀고가 어제까지의 일이었던 마영이 그 행위를 거절하는 하나의 기호처럼 읽힌다. 그런 다음 마영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이제까지 밀고 대상으로 삼았던 김참의 아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갑자기 민족에 대해 자신이 해야 할 어떤 임무를 깨달은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순간이 없다. 다만 이건 마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의 제스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용으로는 반대이지만 형식적으로 이 행위는 이제까지 마영이 해온 것과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다만 그 방향이 세 개의 씬을 사이에 두고 반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기서 까다로운 운동이 발생한다. 무엇을 하려는 지는 알겠다. 그런데 마영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대립의 운동에 대해서 먼저 그 성격을 살펴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마영은 이제까지 부정해온 것을 긍정하면서 긍정해온 것을 부정하는 중이다. 이때 목적어는 민족이나 독립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아들 사이를 매개하는 텅 빈 자신의 자리이다. 그는 이제까지 아버지와 자신의 선을 끊어내기 위해서 부정의 행위를 맹렬하게 해 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아들의 선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절단도 중단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차라리 이 과정은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과정의 반복인 것이다. 늑대는 개가 아니며 개는 늑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늑대는 개가 되는데 실패한다. 세 개의 선은 서로 연결된 것이며 사실은 하나의 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바카야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희들 왜놈이 아닐까?” 이제 거의 기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임권택 은 여기서 보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영은 김 참의의 아들을 돕지만 그의 계획은 거의 완전히 실패로 끝난다. 모든 계획은 탄로가 나고 마영은 그렇잖아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기노시타 형사에게 체포된다. 마영이 이제까지 해 왔던 밀고 행위에 대해 단 한 번 속죄를 하기라도 하듯 목숨을 걸고 했던 행위는 실패로 끝난다. 더 상황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큰 부자인 김 참의는 총독부에 돈을 바친 다음 사건을 무마시킨다. 김 참의 아들 관점에샬옌뺨摸?여기까지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어떤 장애물도 없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리둥절할 정도이다. 그렇게 되면서 사실상 마영의 행위는 그 자체로 무의미해진다. 그렇다면 이 실패의 서사가 왜 필요해진 것일까. 나는 여기서 이 질문을 더 밀고 나아가고 싶다. 왜 세 개의 씬, 그러니까 블랙홀처럼 막아선 세 개의 씬 다음에 실패가 기다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편집은 마치 이 실패가 세 개의 씬의 결과처럼 읽힐 수도 있게 배치되어 있다. 잡혀온 마영 앞에서 기노시타 형사는 거만하게 충고하듯 말한다. “바카야로, 아무리 날뛰어봤자 조선은 영원히 일본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거야. 알았나, 바카야로” 그러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영은 기노시타 형사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대답한다. “내가 광복된 조국을 못 본다고 치자, 그리고 또 내 아들이 조국의 광복을 못 본다고 치자, 그러나 아들에게는 손자가 있고, 또 손자의 아들이 있고, 이렇게 우리 민족이 멸망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광복의 날이 온다. 바카야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희들 왜놈이 아닐까?” 마영이 생각하기에 ‘왜놈’이 정말 깨닫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답은 언젠가 광복의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마영은 자신이 그걸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도 볼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 아들의 아들도 볼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이 선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마영의 대답에는 만일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광복을 볼 수 있다면 그건 자신이 보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여기에 역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선은 반대로 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성립하는 것이다. 이 대답을 하는 순간 마영은 이제까지 부정한 아버지를 완전하게 긍정하는 것이다. 보물은 여기에 있다. 이 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 대답을 임권택은 좀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 족보 >에서 한다. 얼핏 보면 차이를 알 수 없는 그 대답 속에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어떤 심연이 있다. 대부분의 전기 식민지영화들이 그 대답을 민족에서 찾을 때 임권택은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유교에서 이끌어낸다. 유교라는 절대적인 지식. 이때 절대적인, 이라는 표현은 거기에 모든 것이 우선권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것에 한계를 부여한다는 뜻에서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우리가 무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엇에로 되돌아오는지를 분명하게 만든다. 같은 동포들 중의 누군가가 해방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그것을 분명히 한다. 내 아들이 보아야 하고, 아들의 아들이 보아야 하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보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올바른 대답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대답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 씨받이 >를 다루면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민족주의가 권력의 담론이 되었으며 동시에 법의 통치수단이 되었던 시기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중이다. 영화에서 민족은 권력자의 형상이 되었으며, 그 안에서 국민은 끊임없이 민족으로 환원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예기치 않은 것을 꺼내 들었다. 이것은 단순하게 아버지와 아들의 정신분석적인 도식에로의 환원이 아니다. 마영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운명에 이끌리는 오이디푸스와 달리 너무 많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제기된 것은 특수한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유교적 ‘父子’의 귀환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임권택은 이 과정에서 마영이 아버지라는 자리를 결국 떠맡게 되는 것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는 대신 유교라는 의무의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뒤집는다. 이것은 비로소 그 속에 나도 포함되었다는 상상이 안겨주는 기쁜 희생이 아니라 결국 그 안에 있어야한다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반성에 찬 희생이다. 보물은 아들을 아버지로 만들어주는 그 무시무시한 체계 안의 선이다. 그렇다면 뒤따라오는 질문에도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임권택 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이 귀환은 해방 이후에는 사라졌는가. 무엇이 이 귀환을 가로막는가. 반대로 무엇이 식민지 강점하에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가. 거의 뒤따라 만들어진 < 깃발없는 기수 >나 < 짝코 >에서 그들은 보물을 누릴 기회를 갖지 못한다. 혹은 좀 더 뒤에 만들어진 또 다른 한국전쟁 이후의 정식화인 < 길소뜸 >은 그 보물이 완전히 유실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니, 차라리 해방(과 뒤이은 한국전쟁)은 유교라는 체계를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놓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때 무엇이 무엇으로 이행하고 있는가. 반대로 < 씨받이 >에서는 비극의 형태로 재빨리 그것이 되돌아온다. 여기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이미 매우 느슨하게 임권택의 영화가 유물론적 경험론에 사로잡힌 것 같다는 표현을 썼다. 임권택은 종종 자기가 경험한 세계를 그 어떤 다른 것으로 환원불가능하게 다룬다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것은 일회적인 세계이며 거기서 발을 빼는 것은 이미 경험한 것을 추상적으로 만든다는 두려움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완강해진다. 이때 그의 영화 안에서 내가 느껴보는 것은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현실 안을 통과하기 위해서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그 세상을 살아내고 있던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태도를 경유해서만 그 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흐릿한 인상이다. 고향이라는 공동체. 안전한 집.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반복적인 문중제례.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는 원을 그리는 것만 같은 시간의 계절. 여기에 갑자기 단절이 생긴다. 한국전쟁과 가출. 그런 다음 그가 부모 곁을 떠나서 만난 세상과의 관계에서 그는 그 거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현실과 마주친다. 어떤 우회도 없는 경험. 그는 부모 곁을 떠나는 순간 그 보물을 잃어버렸다. 물론 이 표현이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차라리 이것은 비평의 언어가 아니라고 말해도 좋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다. 임권택의 영화를 나누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번에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기준으로 둘로 나눠보고 싶다. 임권택은 양쪽 모두에서 현실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적대적인 관계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지를 다룬다. 이때 기이하게도 해방 이전을 다룰 때마다 임권택은 그 시간을 일종의 진공상태와 같은 상황에로 밀어 넣는다. 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다시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 그냥 그 자체로 주어진 세계. 그의 영화에서 이 시간이 역사성을 갖게 된 것은 < 개벽 > 이후에서나 가능해진 일이다. 임권택은 매번 이 시간에 이를 때마다 그 자체로 완결된 것만 같은 세계 안에서 사건을 만난다. 사건은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이 세계 안에 무언가 불완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 앞에서 비로소 진공상태는 자기의 형식 안에 결여된 구멍을 내보이고 임권택은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 그 내용을 끌어내는 것으로 자기 서사를 진행시켰다. 이때 주인공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견디는가. 결정적인 차이는 해방 이후의 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이 사건으로부터 소외되어 나간다면 반대로 해방 이전의 영화들은 그 사건 안으로 주인공들이 완전히 동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말을 유심히 읽어주기 바란다. 그들은 상황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동화되는 것이다. 이 동화의 과정에서 임권택은 일관되게 유교라는 규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바라보면서 사건의 순환을 더 없이 순종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이 파괴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련하게 지켜본다. 반대로 이 규율이 파괴되자 임권택은 그 상실감에 가득 차 때로는 우울하게, 종종 차디차게, 그리고 어떤 동정심도 없이, 그저 수수방관하면서 쳐다본다. 거꾸로 뒤집어 세운 카메라 나는 여기서 이제 이 영화가 할 이야기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다음, 그러니까 마지막 장면 다음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불러야 할, 그저 괴이하다고 밖에 달리 말하기 힘든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마영은 호기롭게 기노시타 형사를 꾸짖은 다음 그를 기다리고 있을 감옥에로 향하는데 그때 이제까지 그의 뒤를 쫓으면서 동포를 밀고했던 처단하려고 했던 사내의 기습적인 칼이 날아와 그의 등에 정확하게 꽂힌다. 물론 그 사내는 마영이 이제까지의 그의 행위를 반성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김참의의 아들을 구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이러니한 성공. 매번 실패하던 그 시도는 실패해야할 순간 기다렸던 것처럼 성공한다. 그 사내는 자신의 시도가 성공하자 재빨리 경찰청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때 등에 칼이 찔린 채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면서 마영은 그 사내를 걱정하듯이, 마치 그 사내가 자기 말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중얼거리면서 말한다. “잡히지 마라, 잡히면 안 돼, 안 돼, 바보 녀석, 그리로 가면 잡힌다구, 담 쪽으로 뛰어, 그렇게 힘을 내서 뛰어, 잘했어, 왜놈에게 잡히면 안 돼지” 하지만 그게 이 장면의 전부가 아니다. 임권택 은 도망치는 사내를 마영이 쓰러져 누운 채 죽어가면서 바라보는 시선으로(point_of_view_shot) 찍었다. 이때 영화는 도망치는 사내를 아래 위가 뒤집힌 이미지로 보여준다. 그래서 사내가 담장을 넘을 때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은 이런 방식으로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찍은 적이 없다. 마영은 칼을 맞은 다음 그냥 돌아서서 볼 수도 있었다. 혹은 바닥에 누웠다 할지라도 구태여 카메라를 거꾸로 세워서 찍을 필요는 없다. 아니, 차라리 화면의 아래 위를 바꾸기 위하여 마영을 바닥에 눕혔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임권택의 카메라를 거꾸로 뒤집어 세운 것일까. 나는 여기서 마영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안으로 통합시키려는 유혹에 대한 임권택의 완강한 거절의 제스처를 느낀다. 마영은 자신과 아들 사이의 관계를 경유하여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회복한 것에 대해서 (어쩌면)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그가 회복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억압받는 민족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뿌리 깊은 유교의 부름인 것이다. 그래서 이 아래 위가 뒤집힌 카메라는 마영이 중얼거리는 그 말, 그가 자신의 등에 칼을 찌르고 도망치는 사내에 게 베푸는 관용에 대해서, 그 오해에 대해서, 그 잘못된 환대에 대해서, 교정하는 시선이다. 여기에는 민족을 향한 어떤 열정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마영의 저 희생적인 용서에 대해서 아이러니한 감정을 품고,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차갑게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이, 그렇게 뒤집는다. 임권택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보물이 무엇이 아닌 지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분리선. 하지만 아직은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임권택에게 일제 강점기라는 시간은 그것을 분리해내는 시간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이 모든 질문의 출발처럼 보이는 그 한복판에 선다. 그런 다음 그 안에서 나눔의 질문을 시작한다. 어떤 분류. 모두들 각자의 방식의 분류를 해냈다. 그걸 포스트 식민지 영화들이 보여준다. 박찬욱의 분류. 김지운의 분류. 류승완의 분류. 최동훈의 분류. 분류의 소음들. 그때 누가 어떤 부름을 따르느냐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부름들 사이의 차이. 이 차이가 그들의 인물들을 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각자의 주체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주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임권택은 민족적인 주체와 유교적 주체를 분리해낸 다음 한 쪽을 버리고 다른 한 쪽을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이 장면을 대사와 이미지 사이를 둘로 찢어낸 것만 같은 결단의 이유일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주체 앞에 붙어있는 이 술어에 대해서 반복해서 더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마 그래야만 할 것이다. (계속) 1975년 10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우성사 각본 이은성 촬영 이석기 조명 최임춘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허장강 박근형 양광남 박지훈
한국전쟁 이후에 한국전쟁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할까? 영화는 처음에는 그렇게 물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가야만 했다. 그런 다음에는 한국전쟁은 어떻게 경험되는가, 라고 질문을 바꾸었다. 전쟁의 시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한국전쟁을 장르영화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아마 그 자리에 < 태극기 휘날리며 >가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북한은 한국영화에서 신비로운 타자가 되었다. 추운 나라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사람들은 할리우드 SF영화에서 나타난 ‘인간의 마음을 가진’ (포스트모던) 사이보그들처럼 보였다. 주체의 분열. 아니, 차라리 환자라고 부르고 싶은 증후들의 집합. 여기엔 무언가 우리가 합류할 수 없는 접근불가능이라는 어떤 장애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논점을 놓치면 안 된다. 한국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전쟁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내 능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적인 정치적 역학들. 아직도 베일에 싸인 배경. 그 대신 여기서는 전쟁 이후의 생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지금 프리모 레비를 떠올리고 있다. 여기에는 생명과 증언이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었고 그런 다음 다시 살아남았다. 구태여 다시, 라는 말을 쓴 것은 그 사이에 놓인 해방 직후의 좌우익 대립을 셈에 포함시킨 것이다. 역사의 자기 파괴적인 변증법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레비는 가라앉은 사람들이라고 불렀고, 여기서 남은 자들을 구조 받은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물론 한국전쟁은 아우슈비츠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이데올로기로 둘로 나뉜 민족은 서로 무자비한 살육을 시작하였다. 기록들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참혹하다. 휴전이 시작된 다음 ‘빨갱이’는 시민권을 박탈당한 자처럼 처리되었다. 단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연좌제라는 법의 새로운 항목으로 그들의 가족들까지 그 범위는 확대되었다. 그들은 범죄자들보다도 더 가혹한 취급을 받았으며, 어쩌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제공되는 어떤 배려도 없이 삶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들은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야만 했으며,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증언도 금지되었다. 나는 지금 임권택 을 말하는 중이다. 당신에게 다소 양해를 구한 다음 나는 약간 소설처럼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이건 전적으로 내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다. 임권택 감독님과 처음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이어진 긴 인터뷰를 하면서 < 증언 >에 이르렀을 때 한참을 멈춘 다음 몹시 고통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날이 며칠인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 기나긴 한숨소리는 바로 지금 곁에서 금방이라도 들리는 것만 같다. 이것만은 정말 내가 찍고 싶지 않은 영화였어요. 그 말이 첫 대답이었다. 나는 대답을 위해서 알리바이를 덧붙일 생각이 없으며 상황을 감상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영화진흥위원회인) 영화진흥공사는 1973년 4월 표면적으로는 ‘한국영화의 육성과 발전’을 위한 영화제작에 나섰지만 내용은 국책에 따른 반공영화 제작이었다. 국방부가 이를 후원했으며 사단병력과 화력장비를 동원하여 전쟁장면을 무제한으로 찍을 수 있는 조건이 주어졌지만 영화진흥공사로부터 허락받은 시나리오로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 거절하면 되지 않나요?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신은 그때 막 유신정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정부기관들은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는 것은 ‘반국가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서 신고의 대상이 되었다. 임권택에게는 이중의 난관이 있었다. 하나는 이미 그 자신이 부모님의 빨치산 경력으로 인한 연좌제 보호관리 대상의 가족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부모님만이 아니라 외가쪽의 친척들이 해방 직후 좌익 활동에 대부분 포함되었으며 그 중에 일부는 한국전쟁 동안 입산을 해서 빨치산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대구 교도소에서 총살을 당했고, 또 일부는 그 이후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실종되었다. 어떤 이는 ‘조선 인민공화국 해방군’이 후퇴를 할 때 함께 북에 올라갔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의 말로는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도 하지만 더는 안부를 알 수 없었다. 1973년은 전쟁이 휴전한 지 고작 20년밖에 흐르지 않은 다음의 일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다른 하나는 그 자신에게 내면적인 고문이었다. 임권택이 제안 받은 영화는 한국전쟁에 관한 반공영화였다. 물론 임권택만이 그런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만희 는 < 들국화는 피었는데 >를, 그리고 김수용 은 <전쟁의 얼굴>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의미. 1973년에 이르러 임권택은 긴 시간 동안 사극, ‘다찌마와리’ 영화, 만주 웨스턴, ‘나미다’ 멜로드라마, 홈 코미디, 첩보영화, 무국적 무협활극을 찍었으면서도 이만희, 그리고 김수용의 반열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임권택 자신의 말을 빌리면 “내가 비로소 영화감독이라는 책임을 갖고 만들고 싶었던” 영화, 그때 막 단 한 편 < 잡초 >를 연출했을 뿐이었던 그 해였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임권택에게 곤궁이 되었다. 자신이 국책의 도구가 되어 본의 아니게 부모의 선택을 비판하는 자리에 불려가게 된 꼴이 되었다. “내가 부모님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욕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임권택은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자리에 불려갔다. “영진공 사장이 보자고 불러서 갔죠.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생판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사장 옆에 앉아서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그때는 공사 안에서 후반 작업들을 했기 때문에 직원들을 다 아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그 옆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나한테 오래 전에 나도 잊어버린 친척 이름을 대면서 그 사람 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그 친척이 한국 전쟁 때 산에 올라간 분이거든요. 그러면 도리가 없는 거예요” 완전한 수동성 안에서의 최소의 능동적인 선택. 그는 하여튼 만들어야 했다. 여기서는 어떤 합리적인 논의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수행해야만 한다. 역사에서 칼을 배제하고 그것을 다루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칼을 손에 든 그 앞에 자신의 부모의 삶과 시간이 놓여있다. 나는 여기서 과도하게 정신분석에 기댄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임권택 의 트라우마. 임권택의 증후. 임권택의 오이디푸스. 임권택의 안티고네. 임권택의 늑대인간, 임권택의 억압. 임권택의 불안. 임권택의 대상-원인. 임권택의 (...) 등등. 대신 이때 임권택은 어느 자리에 놓여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다시 배치라는 문제. 말하자면 영화의 실행 안에서의 푸념 섞인, 때로는 불안에 가득 찬, 그래서 종종 자포자기해버린 것처럼 보이면서도 끝까지 그 자리를 향해 이동하면서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시네마틱한 역량의 위상기하학. 그 안에서 숨겨있을지도 모르는 예술의 조그만 힘은 어디로 이동하고 역사의 이면에 있던 개인의 작은 단위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척하면서 어떻게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가. 나는 약간 이 영화에 전략적으로 다가서고 싶다. 그 안의 불안정성. 몹시 위험한 말이지만 (대부분 버림받은) 1970년대 한국영화에 내가 매혹되는 순간은 과도할 정도로 요구되는 검열의 방어 속에서 그 틈 사이로 들어가 각자의 전략을 수행하는 내내 어쩔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 불안정한 상태를 발견할 때이다. 그때 무언가 부서지고 있다. 나는 그걸 바라보면서 봉쇄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로서의 불안정성을 생각한다. 스피노자를 흉내 내서 설명하고 싶다. 거미처럼 칭칭 동여매고 감싸 안을 수 없을 때,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내려다볼 수 없을 때, 두더지처럼 그 아래로 파고 들어가고, 그래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밑바닥을 뒤흔들기 시작해야 한다. 그게 거의 무의미할 지라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기가 실존할 자리의 확보를 위한 안간힘. 그런 다음 그 안에서 살아가기. 거기에서 우리가 보는 자기 삶에 대한 제작자로서의 역량. 이를테면 김기영 의 < 흙 >. 유현목 의 <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 김수용 의 < 웃음소리 >, 이만희 의 < 04:00 -1950- >. 아마 임권택도 그런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마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몹시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화의 제목은 < 증언 >으로 결정되었다. 임권택은 이 영화 안에서 아무 것도 증언해서는 안 되는 자리에서 김강윤 이 각본을 쓴 이야기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는 거기에 아무 것도 더하려고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재현(해야만)하는 자리에 있었다. 이 곤궁은 우리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사태를 훨씬 불안하게 만든다. 아무 결정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영화를 수행해야만 한다. 수행의 역설.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은 해야만 합니다. <증언>은 단순한 역설에 대한 증언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따라가는 것은 영화에서 삶이 어떻게 통합되고 그 안에서 주체가 어떻게 분열되며 다시 그 안에서 고난이 어떻게 그 수행을 기록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시선과 광경 사이의 교차. 우리들의 관람과 영화의 광경. 물론 <증언>의 주인이 임권택이라는 식으로 등치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비평의 수사학 안에서 그런 식의 순진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도식적인 작가주의 관점을 버린 지 오래이다. 임권택은 그 영화 안의, (그런 다음 다시) 그 중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증언>에서 이야기의 문자를 재현시키는 일을 수행해야할 임무를 지닌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임권택이다. 그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을 조금도 과장하지 않았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내 말의 핵심은 바로 여기서 이 상황을 일반론으로 환원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영화는 언제나 특수한 조건이며 일회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언제나 이미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사건 안에서 모두 살아야 한다. 그 자리가 배우이건, 촬영이건, 조명이건, 프로듀서이건, 영화감독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임권택은 <증언>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박순아 장욱 소위 < 증언 >은 임권택 의 모든 영화중에서 가장 산산조각 난 영화이다. 이 말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의 전체가 있었는데 그게 어딘가에 부딪쳐 마치 실수를 해서 떨어트린 거울처럼 깨져버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총체적인 관점? 거기서 참조할 대상이 사라져버렸다는 그 시대의 불행? 그 어떤 요구에 대한 어떤 두려움? 어떤, 어떤, 어떤, 대답할 수 없는 어떤, 이라는 지칭. 그런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처음부터 그런 것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증언>을 보는 내내 그게 한 편의 영화라는 내재적인 자기규정 말고는 마치 서로 다른 층위의 순간들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처럼 제각각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첫 인상이었다. 임권택은 영화에서 고전적인 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출의 계보에 속하는 방법의 자장 안에 있다. 언제나 그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이보다 더 동선이 반복해서 수없이 끊겨나가면서 마치 매번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경우는 다른 영화에서 본 적이 없다. 그게 검열 때문은 아니며 미학적인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이걸 각본의 실패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게 보인다. 이 시나리오는 기능적으로 쓰여 졌다. 여기서 기능적이라는 표현은 제작에서의 역할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김강윤 은 <증언>의 제작 방법을 염두에 두고 연출의 입장에서 쓴 것이 분명해 보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최소의 이야기.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전쟁을 도발하고 그날 정오 무렵 박순아의 연인인 17연대 장욱 소위는 잠시 데이트를 하다가 재빨리 귀대한다. 서울은 함락되고 한강다리를 건넌 박순아는 피난을 가면서 전쟁의 수많은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그 수많은 참상의 씬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심지어 이 영화는 줄거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좀 더 편리한 서술 장치는 끊임없이 개입하는 박순아의 설명(voice_over_narration)이다. 이 설명은 근본적으로는 <증언>에서 (이제는 사라진) 대한뉴스와 같은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상황을 설명하고 (주인공을 대신해서) 선과 악을 구별한 다음 평가를 내리고 때로는 신의 시점에서 전쟁에 대한 훗날의 역사적 평가까지 내린다.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의 주인. 그걸 이용해서 임권택은 때로 재빨리 전체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하고(master_shot) 갑자기 시간을 옮겨가거나 조건이 바뀌었을 때 보충을 하고(transitional shot) 그런 다음 다루기 까다로운 경험에 대한 감정적인 설명을 한다. 화면 바깥의 목소리는 때로 이 영화의 시제를 모호하게 만든다. 가장 쉬운 방법, 그만큼 나쁜 모델. 나는 여기서 간단하게 평가에로 달려가는 대신 잠시 머물면서 질문하고 싶다. <증언>을 보고 있으면 명백히 순서대로 찍지 않았고(못했고?) 그 해 여름 영화 현장에 도착하는 군부대의 조건에 맞춰 촬영이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거의 모든 장면에는 대규모 군부대가 이동하고 있고 여러 장소를 이동하면서 찍었기 때문에 (아마도) 인근부대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큰 규모의 전쟁장면과 최소의 출연진으로 이루어진 배우들로 찍을 수 있는 소규모의 장면들이 번갈아 오가도록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그 중의 일부가 빠진다고 해서,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장면을 찍지 못했다 할지라도, 전체 구성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는 진행을 염두에 두고 씬을 배치하였다. 물론 각자의 시퀀스 안에서 진행되는 유기적인 쇼트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과장될 정도로 이 영화는 시퀀스 단위로 나뉘어져 있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퀀스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진행될 때 여기서는 단지 사건의 조각난 단위가 아니라 경험의 파편이라는 내면의 붕괴에로 이끌린다. 이건 예기치 않은 재난이거나 아니면 이미 각오한 희생일 것이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증언>은 재난이거나 희생이다. 후렴구처럼 반복해보고 싶다. 재난이거나 희생. 어떤 피난처도 없을 때 맞이해야 하는 상황 앞에 서서 고스란히 느껴보는 고통. 영화가 시작할 때 정확하게 거기서 전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시계가 가리키면 포성이 울리면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포를 쏘는 장면이 연달아 보여진다. 무료할 만큼 반복되는 쇼트. 아무런 긴장도 없는 쇼트의 연속. 우리는 이미 이 영화가 한국전쟁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게다가 이 전쟁은 북한이 시작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대포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장면은 대포가 포격을 하는 쇼트는 있지만 이 대포를 누가 쏘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똑같은 의미에서 그 대포가 목표로 하는 대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시퀀스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이외의 어떤 진술도 없다. 내가 여기서 읽어내고 싶은 것은 전쟁이라는 사건과의 사이의 거리이다. 그때 느껴보는 공포는 이 영화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1973년의 구호를 떠올려야 한다. “잊지 말자 6.25, 쳐부수자 공산당” 교실에서 아이들은 매일같이 이 구호와 함께 생활했다. < 증언 >은 만들어지고 난 다음 모든 학교의 학생들에게 의무 관람을 시켰다. 이때 <증언>은 한국전쟁에 대한 공포를 전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여기에 전혀 반대의 두 종류의 관람객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물론 한국전쟁을 본 적이 없는 전후 세대이며 다른 하나는 그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세대이다. 이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고작해야 이제 막 스무 살이 넘었을 때였다는 점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공교롭게도 어른들과 아이들로 정확하게 그 경험의 여부를 나눈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 사회 안의 절대적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경험. 그들은 그 경험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경험? 그러나 전쟁이란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경험을 소유하는 것이다. 각자의 피난. 각자의 생존. 그 경험에 보편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이 가르치려고 한 것은 공포가 아니었을까. 이때 영화는 무엇을 증언해야 할까. 이야기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참 좋은 때로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새벽의 포격 시퀀스에 이어지는 장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필요 이상으로 평화로운 일요일을 보내고 있는 서울의 풍경이다. 주인공 순아가 하숙을 하는 집주인 아줌마( 황정순 )가 그걸 바라보며 한 마디 거든다. “참 좋은 때로구나” 좋은 때. 참 좋은 때. 그날 전쟁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날이 좋은 때라는 것은 한국근대사 안에서 얼토당토않은 표현이다. 해방직후 대한민국과 조선 인민공화국은 각자의 방식의 권력투쟁에 몰두하면서 한 쪽은 무자비한 숙청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미군정 아래 좌우익의 대립이 피비린내 나게 이어지고 있었다. 좀 더 간단한 설명이 있다. 거의 같은 시기를 다룬 임권택 의 두 편의 영화 < 증언 >의 도입부와 < 깃발 없는 기수 >를 비교하면 된다. 전력의 대부분을 신의주 수력 발전소에 의지하던 한반도에서 해방 직후 북한은 남한에 공급을 중단했으며 경제적으로 남한은 북한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놓인 상태였다. 모든 것이 뒤숭숭하던 시절. 그냥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일요일은 참 화창했다. 그날 동대문 운동장에서는 야구경기가 있었고, 서울 시민들은 뚝섬에 나가 한가로운 한강에서 초여름 바람을 맞이하였다. 물론 그날 열일곱 살 임권택은 고향인 전라남도 장성에 있었고 이 모든 풍경은 시나리오를 쓴 김강윤 의 기억일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그날 서울에 있었다. <증언>에 얼마만큼의 역사적 고증과 그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의 (객관적) 기록이 담겨있는 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그건 이 글의 성격을 훨씬 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임권택의 ‘증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임권택의 ‘증언’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 태백산맥 >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 영화로부터 30년 후의 이야기이다.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는 동안 전쟁이 시작된다. 25일에 휴전선을 넘은 다음 북한군의 탱크는 이틀 후인 27일 미아리고개에 나타났다. 서울 시민들은 그제야 피난을 준비했고 (이승만 정부는 휴전선에서 ‘괴뢰군’을 격퇴시키고 있다고 방송을 했다) 28일 새벽 2시 30분 북한군의 남침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국군은 한강다리를 폭파하였다. (이승만 자신은 이미 피난 간 다음에도 서울을 “시민들과 함께 死守하겠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 작전은 후일 효과가 없었으며 피난민들만 서울에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판결에 따라 폭파 명령을 시행한 책임자 최창식 대령이 9월 21일 사형을 당했다. 영화 <증언>은 사형 판결을 다루지 않지만 최창식 대령을 둘러싼 한강다리 폭파에 대해서 주인공 순아를 버려두고 긴박하게 오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피난민 대열에 섞인 순아는 이 결정을 알지 못하며 순아의 애인인 장욱 소위는 (마찬가지로 그 결정을 알지 못한 채) 그 다리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마지막 소대의 지휘관이다. 그리고 이 다리 폭파장면을 위해서 전조명 촬영감독은 일본 특수촬영 팀과 (그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미니어처 촬영을 별도로 하였다. (<증언>의 촬영감독은 서정민 이다) 지금 보면 이 장면은 매우 조악해서 전쟁장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본 괴수물의 세트처럼 보인다. 내 설명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이 장면은 공을 들였지만 효과적이지 않으며 기술적 수준 때문에 이야기 전체가 패배와 살육으로 가득 찬 이 영화의 무드에도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로 보인다. 그걸 몰랐을 리가 없다. 아직 디지털 특수효과가 도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그때 할리우드 영화는 < 에어포트 >를 시작으로 재난영화(panic films) 장르의 붐이 막 시작되고 있었으며 < 포세이돈 어드벤처 >, < 대지진 >, < 타워링 >으로 이어지는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었고 이 영화들은 <증언> 맞은 편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어쩌면 <증언> 제작진은 이 영화를 전쟁영화이면서 동시에 재난영화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약간 바보같이 반문하고 싶다. 만일 그렇게 되면 여기서 한국전쟁에 대한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때 <증언>이 요구하는 진실의 효과는 무엇일까. <증언>의 메시지는 이 영화를 국책영화라고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과 달리 모호한 구석이 사방에 출몰하기 시작한다. 한강 다리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 증언 >은 전체적인 균형을 무시하고 긴 시간 동안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전체 상영시간 1시간 55분 중 한강다리가 끊어지는 순간은 30분 55초에 이르러서이다. 수많은 전쟁장면이 뒤에 기다리고 있으며, 게다가 한강다리 폭파장면에는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 이것은 실패한 작전이며 여기서 피난을 가던 서울 시민들은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한밤중에 강을 건너다 죽음을 당했다. 이 장면에서 순아가 죽음을 맞이하면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퀀스 전체는 순아의 동선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증언>은 한강다리 폭파 시퀀스를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다리 폭파를 결정하는 장교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두 번 다시 영화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하게 마치 저승에서 들리는 것만 같은 이승만의 목소리가 서울을 빠져나갈 때까지 여기저기 화면에 울려 퍼진다. 아마도 잡음과 함께 뒤섞인 소리들은 오래 전의 라디오 방송에서 가져온 테이프에서 고스란히 시간이 묻어나오기 때문이겠지만 반대로 <증언>에서 이 순간의 역사적인 실재는 오로지 이 목소리뿐이다. 시간의 결.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목소리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라는 실재와 대면하는 인공적인 이미지로서의 영화. 게다가 이 장면은 밤에 진행되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인 약점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실재와 외양, 경험과 풍문, 역사적인 증언과 인공적인 스펙터클, 영화와 라디오, 그리고 영화라는 훈련에 동원된 군대와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들이 뒤섞여서 만들어내는 광경이 펼쳐진다. 광경? 그렇다. 이상하게도 서로 쌍을 이루면서 이 둘 사이의 간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좁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보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광경이다. 이를테면 피난민을 연기하는 엑스트라들의 무리와 진군하는 국군들이 교차하는 사이에서 김진규 와 엄앵란 이 마이크를 들고 군인들을 독려하는 웅변과 그들 곁에서 노래를 부르는 부인회의 모습은 얼마나 기괴한가.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지금 상황이 자신들과 상관없다는 듯이 한가롭게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증언 >은 그런 다음 순아가 한강을 도강해서 피난민 틈에 끼어, 때로는 남침하는 북한군 무리들과 함께, 그리고 위험한 순간마다 국군을 만나 구조를 받으면서, 낙동강을 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연인인 장욱 소위를 찾고 있으며, 장욱 소위는 그녀와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와서 서울 수복을 하는 그 순간 시청 앞 광장에서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경례를 한다. 그 사이에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그녀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죽음으로 퇴장을 한다. 그때마다 그 증인으로 순아는 매번 그들의 시신 곁에서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는 역할을 떠맡는다. 순아가 그걸 지켜볼 때 비분강개한 목소리가(voice_over_narration) 나타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그 목소리가 이상한 것은 그 주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순아가 그 증인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또 다른 증인이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서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시간적으로 지금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부터 완전히 탈구된 상태로, 그 목소리는 자율적으로 화면을 향해서 중계방송 하듯이 진행된다. 그러나 이것은 ‘證言’이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지금 눈 앞에서 전개되는 이미지가 일종의 주관적 착시라고 설명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조차 이 목소리는 우리들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원래 이 목소리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바라보는 우리들을 차갑게 만든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해서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오작동을 일으킨 경우이다. 혹은 정확하고 올바르게 그것을 사용하려는 사람의 의도를 배신하고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목소리의 미학적인 차원을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와 약간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장면보다 목소리가 먼저 울 때 슬픈 감정을 느껴보는 대신 자기의 기회를 빼앗긴 관객은 슬픈 영화를 쳐다보기 시작한다는 고전적인 시나리오 이론이다. 나는 단순하게 서투른 작법에 대해서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걸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보길 제안하고 싶다. 이 순간과 마주할 때 이상하게도 이미지에 목소리가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목소리에 이미지가 설계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물론 이미지를 먼저 보여준 다음 목소리가 뒤따라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목소리는 마치 특이한 환상에 대한 보충설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특이한 환상? 한국전쟁이라는 환상. 우리는 지금 이 전쟁이 순아의 피난길을 따라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녀 앞에 적과 아군이 번갈아 나타나 전쟁을 연기하는 중인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나는 한강다리에서 연출된 이 우스꽝스러운 스펙터클을 본 다음부터 마치 전쟁을 연출하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되었다. 요점은 간단하지만 좀 기괴하다. < 증언 >은 곧장 전쟁에 들어가는 것을 한참 망설였다. 전쟁이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을 “참 좋은 때”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보낸 다음 다시 한강다리에서 현실적인 감각을 완전히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서 다시 긴 시간을 보낼 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를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만드는 씬들 사이의 교차가 몇 번이고 이루어진다. 여기서 한강 다리 폭파장면까지는 긴장감이 넘치는 대신 이상할 정도로 지루하고 길게 이어지면서 거의 지칠 만큼 늘려 놓았다. 그런 다음 갑자기 마치 일부 장면이 생략이라도 된 것처럼 순아는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진다. <증언>에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한국전쟁을 경험적으로 재현하려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오히려 이것이 더 진정한 목표인데)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참 좋은 때”가 무너지고 언제든지 다시 지금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은 한국전쟁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가능한 재현이다. 아마도 그것이 반공영화들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기치 않은 오작동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기억하라, 고 요구하는 대신 “참 좋은 때”로부터 시작해서 그 속에 숨어있었을 가능성의 환상으로 밀고 나아가는 방향으로 영화가 진행되기 시작할 때, 그래서 정확하게 그 문턱이라고 불러야 할 한강다리 미니어처의 폭파 장면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갑자기 전쟁은 “참 좋은 때”의 이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참 좋은 때”를 보완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쟁. 당신은 이때가 유신정권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라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첫번째 예 두번째 예 이면의 수행성에 대해서 약간 어리둥절해지는 것은 마치 한강 폭파 이후의 장면들이 모두 “참 좋은 때”의 이면의 판본을 연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무대처럼 서로 연기를 하며 가장(假裝)의 시퀀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첫 번째 예. 순아는 피난길에 오르면서 예기치 않게 장소위의 부대원이었던 김일병을 만나 함께 남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북한군의 진군 속도가 너무 빨라 그 두 사람을 앞질러서 그만 한밤중에 잠시 몸을 의탁하기 위해 찾아든 곳에 이미 그들이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한밤중에 찾아든 남녀가 자신들의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면서 먼저 받아들인다. 그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김일병은 재빨리 자신을 그들과 같은 북한군으로 위장하면서 자기 고향인 북한말을 쓴다. 여기서 순아와 김일병은 북한군을 자신들을 환대해 줄 상대로 변모시키기 위해서 가장을 한다. 이때 거짓말은 그들이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거의 불가피하게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희미하긴 하지만 환대에 대한 배반이 숨어있다. 그들은 불균등하긴 하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환대와 거짓말을 교환한다. 이때 그 둘 사이에 매개가 되는 것은 가장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공포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어떤 아이러니한 익살이 감돈다. 두 번째 예. 추풍령을 넘으면서 북한군은 탱크 앞에 피난민을 내세운 다음 자신들은 그 뒤에 숨어서 지뢰를 피할 계략을 꾸민다. 그런 다음 피난민들에게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뒤에서 총으로 사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국군은 피난민들 때문에 매복해놓은 지뢰를 폭파시켜야할 지를 망설인다. 피난민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차라리 국군들에게 도움이 되는 편이 낫지 않느냐면서 (그러니 우리들은 북한군의 총알에 죽고 탱크는 국군의 지뢰에 폭파당하도록 내버려두기 위해) 전진을 거부하는 이들과 그래도 어쩌면 지뢰를 피해서 요행수로 살 수도 있다는 생존의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로 나뉘어서 두 편이 서로 다툰다. 영화는 그들이 긴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도 마치 그걸 귀 기울여 듣기라도 하듯 일시적으로 전쟁이 중단된 것처럼 보여준다. 여기서 피난민을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얼룩이라고 설명하면 완전히 논점을 벗어나는 것이다. 상황을 완전히 아이러니하게 만들 수 있다. 피난민들이 두 개의 입장으로 나뉘어서 논쟁을 시작할 때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난 지금부터 공산주의자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희생당하는 대신) 당신들의 탱크에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데올로기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나는 이 영화가 국책영화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다소 가혹하게 말하고 싶다. 여기서는 그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질문할 때 이 시퀀스가 요구하는 것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 전쟁에서 올바른 역할을 위한 자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남겨진 것은 역할을 연기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두 개의 역할을 동시에 연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예는 다소 까다롭다. 순아는 북한군에게 붙잡힌 다음 장교에게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취조를 당한다. 자신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면서 사실대로 말한다면 당신을 그냥 놓아줄 수도 있다는 제안을 한다. 그는 순아에게 자신이 가방을 뒤지는 대신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한다. 이때 순아는 가방 속에 장욱 소위의 사진이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 사진은 발견되고 만다. 북한군 장교는 그 사진을 본 다음 잘 알았다면서 그녀를 그냥 풀어준다. 물론 순아와 또 다른 부녀자가 그들이 주둔하는 집을 떠나 발걸음을 옮기자 멀리서 조준사격을 가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또 다른 부녀자가 죽으면서 순아의 몸을 감싸 안기 때문에 그녀는 살아난다) 물론 여기서 북한군 장교는 처음부터 순아를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단지 이것은 그에게 일종의 게임인 것이다. 그걸 순아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진실을 고백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친절한 요구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대응이 이 씬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여기서 상황을 괄호 친다면 북한장교의 예의바른 제안에 대해서 순아의 거짓말은 무례한 대답이다. 그러므로 그녀를 풀어준 다음 조준 사격하는 것은 그녀의 거짓말에 대한 벌로 읽힐 수도 있다. 물론 후자는 위장된 거짓 논리이다. 이 시퀀스의 일차적인 목표는 (누구라도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공산당들은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회유를 하며 우리들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그건 모두 거짓말입니다, 라는 경고이다. 하지만 여기엔 까다로운 미끼가 있다. 그냥 총살시키면 되는 상황에서 왜 이런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느냐, 는 것이다. 단지 재미를 위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장면이 정말 문제가 되는 상황은 북한군 장교가 오로지 자기의 예의바른 태도를 남한의 숙녀에게 전시하기 위해서 정말로 순아를 살려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약간 서둘러 방향을 틀어보고 싶다. 네 번째 예에 이 장면과 똑같은 순간이 반대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순아가 남하하다가 북한군들이 국군의 복장을 하고 길목을 지키고 서서 본대로부터 탈영하여 국군에 귀순하려는 북한군들을 기다리다가 총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자 순아는 정말 국군을 만났을 때 마치 자신이 북한군 정훈장교인 것 같은 연기를 한다. 국군을 만난 다음에도 자신이 북한군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여자를 만나자 국군은 순아를 체포하여 본대로 보낸다. 거기서 국군 정보장교가 순아에게 매우 친절푀옇凋응막?전후 사정을 들으면서 충분히 이해했다뇩옇뺐?함께 하지만 그걸 자신들이 믿기 어렵다는 말을 어렵게 꺼내든다. 여기서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순아는 전쟁 중에 체포한 북한 정훈장교이다. 그런데도 정보장교는 예의를 갖추어 (자신보다 어린 그녀에게) 경어를 쓰면서 기꺼이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인다. 만일 여기서 국군 정보장교가 북한군 장교와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친절하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네, 당신 말을 충분히 들었어요. 하지만 믿긴 어렵군요. 게다가 지금은 전쟁 중이고 당신 스스로 자신이 북한군 정훈장교라고 소개한 것 말고는 다른 정보가 없군요. 당신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고 우리는 후퇴하는 중이니 즉결 사형에 처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다음 자기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순아가 사형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국군 소위이자 순아의 연인인 장욱이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여기서 북한군 장교와의 장면에서 < 증언 >에서 사용된 장면을 N(north) 1이라고 하고 가정된 장면을 N 2라고 한 다음 마찬가지로 국군 장교를 만나서 사용된 장면을 S(south) 1이라고 하고 가정된 장면은 S 2라고 부르겠다. 만일 N 2가 사용된 다음 S 2가 대응한다면 그건 북한영화의 버전이 될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N 1이 사용된 다음 S 2가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 우리는 몹시 부조리하지만 무언가 균형을 이루었다는 불편한 생각을 떨치기 어렵게 된다. 이 순간 여기서 한국전쟁을 괄호치고 오로지 주인공 순아가 두 개의 나라 사이에서의 전쟁을 오가면서, 이를테면 여기서 멀리 떨어진 발칸 반도라고 가정하고, 이 상황과 마주쳤다면 순아에게는 가혹한 결정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잔인하고 비극적인 방식으로 균형을 잡았다는 인상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난처해지는 것은 N 2가 사용된 다음 S 1이 여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물론 순아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서 남한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두 번째가 아니라 이 네 번째 판본이다. 왜냐하면 이 네 번째 판본에서 북한은 무조건적인 용서라는 방식으로 순아의 실수를 교정한 다음 되돌려 보내지만 남한은 조건을 달고 실수를 교정한 다음 그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S 1을 고정시켜놓고 N 1과 N 2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단순하게 한 쪽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S 1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N 1의 흉내를 내면서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제도 안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N 2를 선택했을 때 가장 난처해지는 설명은 북한군 장교가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훨씬 미묘하게도 순아를 보고 어떤 감정적인 동요를 느낀 나머지 한편으로는 예의바르고 친절한 자세 뒤에 위태롭게 숨어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에 주어진 임무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려 보냈다는 멜로드라마적인 해석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군 장교는 이 영화에 나오는 어떤 인물보다도, 심지어 순아보다도 더 인간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북한군이 국군보다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책영화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가정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건 이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사람이라는 명제의 반복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 놓았던 경계선은 무너지고 이제 이 전쟁에서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전쟁에서 살아가게 된다, 혹은 죽어가게 된다. <증언>은 기묘하게도 매번 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거의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간 다음 진부한 국책영화의 흑백논리로 재빨리 되돌아온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나는 몇 차례이고 임권택 의 전쟁영화, 혹은 국책영화에로 되돌아와야 할 것이다. 이때 망설이는 당신의 근심을 알고 있다. 거기서 기다리는 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함정 아닌가요.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보려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작동되는가, 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무시무시한 기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선가 잠시 멈칫 거리면서, 그것이 의도라기보다는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매번 거기서 우울한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치 영화가 자기가 처해있는 영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본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거기엔 무언가가 추방되어 버렸다. 그저 광경만이 남았다. 단지 황폐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부서진 낮과 꺼져버린 빛 때문에 세상이 거의 지워진 밤. 그리고 낮보다 더 많은 밤. 그 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린 탓일까. 그런데 전쟁이 난 그해 비가 그렇게 내린 것일까, 아니면 촬영을 한 그 해에 내린 비 때문일까. 나는 알지 못한다. 이상할 정도로 습도가 높은 화면들. 종종 젖어있는 것만 같은 폐허들. 그때 무엇이 출현하고 있는 것일까. < 증언 >이 거의 부서져가면서 가까스로 이어져갈 때 거기 끼어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고통이나 연민이 이야기 안에 넘쳐나면서도 그걸 영화가 느껴보는 순간이 없다. 나는 지금 유령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이미 지나가버린 영화 안에서 아직 오지 않은 그 무엇을 기다리듯이 그저 길 잃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 같은 심정.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지금 그 시간을 다시 불러오고 있는 중이다. 두렵지만 이건 나의 사명이다. 그러니 <증언>을 향하여 소리 높여 질문한다. 말하라. 나는 너의 증언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계속) 약간의 첨언. < 증언 >은 판본의 문제가 있다. KMDb에 따르면 <증언>의 상영시간은 2시간 5분이지만 지금 내가 보고 이 글을 쓴 판본은 8분가량이 짧은 1시간 56분 58초이다. 임권택 감독님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증언>을 완성한 다음 이 판본에 대해서 제작사였던 영화진흥공사가 몇 가지 보충촬영을 지시했는데 이미 다음 작품을 촬영하고 있어서 그 부분을 제작 프로듀서였던 정진우 감독이 촬영하고 편집했다. 아마도 두 가지 버전 중에서 2시간 5분 버전은 정진우 감독의 보충촬영 추가 편집본일 가능성이 크다. 개봉은 이 버전으로 했을 것이며 현재 영상자료원 소장본은 짧은 임권택 버전(일 것)이다. 정진우 버전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기억하지 못한다. 1973년 12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일영화주식회사 각본 김강윤 촬영 서정민 조명 최의정 편집 김희수 음악 한상기 김창숙 신일용 박지훈
영화를 보러 쏘다니는 것은 가끔 시대착오적으로 여겨진다. 나는 이 말을 단지 새로운 방법으로 방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영화관에 가는 것을 비웃기 위해서 꺼내 든 것이 아니다.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경험이라는 것을 중심에 가져다 놓는 것을 허락한다면 영화들은 서로 구름처럼 뒤섞인다, 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영화가 저 영화와 겹치고, 저 이미지가 이 영화 안으로 들어온다. 쇼트들 사이의 칸막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 사이를 어떤 경계도 없이 자유자재로 비행할 때 거기엔 어떤 법칙도 없고 중심도 없다. 그저 감정의 바람이 있을 뿐이며, 이따금 하나로 뭉친 구름들이 만들어낸 비가 내리거나, 혹은 반짝이는 감각의 빛이 섬광처럼 스쳐 갈 것이다. 이 구름과 저 구름을 서로 구별할 수 있을까. 영화들 사이를 오가는 것은 나를 흘러가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만든다. 그렇다.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은 멈추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나는 이 말을 공간적인 자리에 제한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다. 자크 오몽은 약간 웅변조로, 게다가 어떤 예술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닐 뿐만 아니라 특수한 문화적 소양도 없는) 대중 관객이 과거와 최근 작품들을 동등하게 찾아보는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라고 반문한 다음 나는 같은 날 저녁에 존 포드와 힛치콕, 오우삼이나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다 함께 볼 수 있으며, 시간 여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다른 스타일 사이를 여행했다고 느낄 것임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 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와 모더니티>) 영화 관람의 새로운 일상생활을 영원한 동시대성이라는 정의 곁에 놓아둘 때 영화는 아무것도 모순되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여기서 임권택 의 영화(들)을 읽는 시간이 바로 지금, 2013년 늦봄에서 초여름에 이르는 계절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싶다. 지금 내 곁을 흘러가는 구름. 나는 막 난니 모레티의 <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를 본 다음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썼다. 난니 모레티는 처음에 다소 우스꽝스럽게 시작했지만 교황청을 빠져나온 멜빌을 따라가면서 마법에 가까운 운율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한편으론 바티칸에 갇혀서 교황 발표가 날 때까지 기다리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추기경들이 편을 나눠 배구를 하는 장면들은 이상할 정도로 시적인 감흥이 감돈다. 왜 아무도 이 기적적인 순간을 함께 감탄하지 않는 것일까. 타비아니 형제의 < 시저는 죽어야 한다 >는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영화를 보면 정확하게 거기서 멈춘다. 켄 로치의 <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 >는 시작하고 15분은 여전히 훌륭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시작되면 여전히 지루하리만큼 계몽적이다. 두 개의 여전한 사이의 불균형한 면적. 그리고 지금 내 눈앞을 지나가고 있는 구름들. 스티브 맥퀸의 < 헝거 >는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 셰임 >은 안전하고 세련되었으며 그만큼 상투적이다. 필요 이상으로 안정적인 균형상태 안의 권태로운 음악들로 이루어진 장식. 런던의 아일랜드인과 뉴욕의 아일랜드인의 차이? 2013년 5월 15일 오후 7시 칸에 자리한 뤼미에르 극장에서 상영된 < 위대한 개츠비 >는 칸 영화제의 첫 번째 3D 개막작이다.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분한 만찬. 끝. 이를테면 작년 개막작인 우디 앨런의 < 미드나잇 인 파리 >와 비교해보라. 물론 지금 (그다음 영화인) < 로마 위드 러브 >가 상영 중이다. 누군가는 두 편의 우디 앨런의 영화 중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말한다. 나는 둘 사이의 차이는 그저 유럽지도 전체를 펼쳐놓은 다음 파리와 로마를 힐끗 쳐다보면서 배치의 공존을 모색하는 지리학적인 거리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할 수만 있다면 뉴욕과 베니스와 파리를 연결한 다음(<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 바르셀로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런던(< 스쿠프 >, < 매치 포인트 >, < 환상의 그대 >) 를 펼쳐놓고 우디 앨런의 유럽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다. 나는 의도적으로 목록을 펼쳐 들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대로 열거하는 중이다. 아마 여기에 빠진 영화제목이 있을 것이다. 경계선 없는 도시들. 그 사이를 마치 거미가 쳐 놓은 함정처럼 이어지는 선들. 사랑의 선. 질투의 선. 의심의 선. 그때 그 선을 건드리는 것은 우연과 운명이다.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각자의 존재들 사이의 비평형적 균형. 저 멀리 흘러가는 구름. 나는 그 시간에 < 안개마을 >을 다시 보고 있었다. 여전히 반짝거리는 정윤희. 때로 어떤 배우는 전혀 연기하지 않는데도 그 존재만으로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근처에서 떠도는 구름. 나는 두 편의 영화를 어떻게 해서든 여기 잠시 머물게 하고 싶다. 레오 카락스의 < 홀리 모터스 >는 종종 섬광처럼 빛나며, 때로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복화술사의 테크닉을 이용해서 영화 그 자체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우리에게 내기를 요구한다. 어떤 내기? 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술래잡기. 그때 어디선가 영화의 죽음이 어른거린다. 레오 카락스는 영화를 구하기 위해 밤새 유령을 잡기 위해서 온갖 곳을 돌아다닌다. 수평과 곡선. 상승과 추락. 당신이 영화를 사랑한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임무이다. 구름들 사이의 대기현상. 하늘의 구름들이 일시에 대지로 내려올 때 거기서 새로운 질서를 보게 될 것이다. 리차드 링클래이터의 < 비포 미드나잇 >은 잘 알려진 것처럼 < 비포 선라이즈 >, < 비포 선셋 >에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물론 리차드 링클래이터가 에릭 로메처럼 사랑의 도덕적 서스펜스를 전개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점심을 먹으면서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산만하고 상투적으로 찍혔다. 자신이 없으면 식탁에 앉히면 안 된다. 하지만 리차드 링클래이터는 일단 걷기 시작하면 설명하기 힘든 매직의 순간을 만든다. 산책의 영화. 걸어가는 영화. 선물 받은 호텔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제시와 셀린느가 걸어가면서 대화하는 기나긴 매직 아워는 마치 저물어가는 햇빛을 쫓아가는 것처럼, 때로 즉흥적인 순간에 의지하면서, 종종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연출되었다. 하루의 날씨. 대기의 이동. 제프 니콜스의 < 테이크 쉘터 >는 코엔 형제의 < 시리어스 맨 >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대답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다음 곧 자기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이야기? 그렇다. 이 영화는 이미 이야기의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한 바로 그 자리에서 아직 구름이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구름의 그림자 아래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때 나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영화들 사이에서 마치 구름들처럼 이것 때문에 저것이 안 보이는 경우란 없다. 마치 두 개의 구름이 서로 겹칠 때 번개가 일어나는 것처럼 내가 그 글을 쓸 때 그 영화들은 새로운 영감을 안겨주었다. 그럼 다음 < 울지 않으리 >를 보았다. 상황의 설명. 임권택 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처음부터 만들었다. (지금 프린트가 남아있지 않은) 두 번째 영화 < 전쟁과 노인 >(1962년) 이후에도 < 전쟁과 여교사 >(1966년), 그리고 < 증언 >(1973년)을 연출했다. 여기에 무장공비나 간첩과 관련된 영화를 포함시키면 셈이 더 복잡해진다. <증언>과 <울지 않으리>와 1960년대 전쟁영화의 차이점은 국가 행정기관이었던 영화진흥공사의 제작으로 만들어지면서 국방부의 실제적인 군부대 지원을 받았고, 그런 까닭에 이 영화들은 당시 정부의 반공정책에 따른 홍보영화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물론 이런 영화를 만든 것은 임권택만이 아니다. 이만희는 국방부 국군영화 제작소에서 < 고보이강의 다리 >(1970년)을 만든 다음 영화진흥공사 제작으로 <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년)를 찍었다. 이 목록은 한참 더 이어질 수 있다. 시나리오는 사전 검열을 거쳐 감독의 손에 도착했으며, 그런 다음 완성된 영화는 다시 한 번 검열을 거쳤고, 이렇게 개봉된 영화들은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학생 단체관람을 거친 후에 극장에서 사라졌다. 이 시기의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사 안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진지한 연구들도 영화들을 정책 홍보의 담론 안에서 제한적으로 설명하였다. 나는 의도적으로 어제 본 영화를 맨 앞에 붙여놓았다. 물론 이 영화가 제작된 배경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 과정을 다른 영화들과 함께 간단하게 당신에게 환기시켰다. 그런 다음 즉시 여기서 제작 과정을 치워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괄호 치기이다. 대신 나는 여기서 질문의 방식을 바꿔볼 생각이다. 우선 간단한 줄거리. 재남은 아직 국민학교에 다니는 어린 소년이다. 병원원장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북한군이 밀려오자 서울에 유학 중인 형과 누나가 내려온다. 할아버지는 집을 지키기 위해서 남고, 식구들은 피난을 떠난다. 그러나 피난길에 아버지는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 어머니는 폭격에 숨을 거둔다. 폭격에 뿔뿔이 흩어진 형과 누나와 헤어진 재남은 오던 길을 되돌아서 고향으로 간다. 그러나 고향은 이미 북한군 인공치하가 되었고, 할아버지는 반동 지주로 몰려 강제부역을 하는 중이다. 재남은 동네 아이들과 힘을 합쳐서 마을을 점령한 북한군을 괴롭히고, 여기에 북한군에서 탈영한 동네 아저씨들이 돕는다. 그 사이 서울이 수복되고 북한군은 철수를 결정한다. 떠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을 몰살하려던 음모를 알게 되고, 북한군과 마을 주민들은 밤새 총격전을 벌인다. 아침이 밝아오자 북한군은 물러가고 군인이 된 형과 간호병이 된 누나가 돌아와 재회한다. 자, 무슨 이야기인지도 알겠고 거기서 어떤 것을 원하는지도 알겠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효과 전부라고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 울지 않으리 >를 건드릴 때 정책 담론의 효과를 설명하려는 방법들은 대부분 영화가 자기를 둘러싼 세계의 제도와 정책(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데올로기 효과)에 대해서 이미지들이 어떻게 조합되고 그런 다음 증언하는가를 따라간다. 이때 사실상 그 설명들은 영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다음 이후를 겹쳐놓고 동어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반대로, 하지만 그 안에서, 거기, 바로 거기, 그 영화 안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다. 무엇이 그 안에서 홀로 말하고 있는가. 틈새들. 하지만 그 균열은 작지만 좁고 깊게 그 안으로 파고 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다. 임권택 은 기계적으로, 상투적으로, 자동적으로 시나리오의 서사를 따라가다가, 가끔, 아주 가끔, 갑자기 어느 장면에서, 경험의 존재론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순간의 쇼트를 지금 진행되는 영화의 규칙 바깥에서라도 온 것처럼,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진행에 변형을 가해서라도, 그것을 디테일 안의 표현이라는 방법으로 다시 그려 넣기 시작한다. 줄거리 바깥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면서, 단지 디테일이라는 표면 위에서 활동하는 표현의 쇼트들. 그게 너무 이상해서 영화의 다른 전체와 아무 상관도 없는 증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때 이야기는 희미하게 지워지고 마치 그 위에 덧칠을 하는 것처럼 다시 표현되기 시작한다. 지금 영화를 둘러싼 제도의 증언과 그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이야기 속의 증인. 그때 경험의 표현. 좀 더 정확하게 그 시간을 경험한 존재의 증명을 어쩔 수 없이 더하는 표현. 이 쇼트들은 시나리오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이야기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인물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건 전쟁을 경험한 사람의 몸에서 온 체험의 디테일이다. 내 질문은 간단하다. <울지 않으리>에 국가 정책과 반공 효과는 어떻게 배치되었고, 어디에서 작동을 시작하며, 그 안에서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지배에 대한 전략적인 비평의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헤게모니를 둘러싼 영화 안의 (지배) 질서에 대한 거절과 저항. 이때 나는 문득 돌아본 다음 질문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참, 임권택은 어디에 있습니까. 불확실성 안에서 진행되는 관계. 이야기 안의 경험이라는 문제. 그리고 그들 사이의 표현. 나는 분석하는 대신 묘사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그 안에서 임권택이라는 인칭, 그것을 통해서만 설명되는 장면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그 이야기를 다루면 그 배경 안에서 피할 수 없게 되는 시간을 바라보아야 하는 순간의 시선. 그때 그 시선으로 이야기의 틈새 사이를 지나가야 할 때, 다소 고개 숙인 시선 아래서 차라리 더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쇼트와 마주칠 때, 바로 그 시간의 쇼트들에서 나는 이 영화에서 부정할 수 없는 임권택의 흔적을 보게 된다. 말 없는 보충. 남겨진 흔적. 무엇이 거기서 사라졌을까. 그런 다음 무엇이 남겨진 것일까. 산만하게 흩어진 자국들. 그 사이를 연결하는 선. 나는 그 선을 따라 그려나가면 거기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그림? 나는 매번 새로운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내게 다소 유머를 허락한다면 지금은 마티스를 떠올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1904년 앙리 마티스가 그의 그림 <사치, 고요, 쾌락>을 그렸을 때 한 말. “나는 지금 내 감각을 조정하는 중이다” Henri Matisse, < Luxe, calme et volupte > < 울지 않으리 >를 다시 보면서 나는 두 장면에서 멈추었다. 비슷한 장면. 이 말의 방점, 비슷한, 이라는 반복의 바깥, 혹은 차이의 디테일. 임권택 이 의도적으로 둘로 나눈 것은 아니지만 같은 씬이 두 번 반복된다. 첫 번째 씬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두 번째 쇼트부터 시작되는 첫 번째 대목이고, 그런 다음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거의) 절반에 이르렀을 때 그 씬의 쇼트들이 다시 반복된다. 이때 이 둘은 서로 동등하지도 않고 짝이 맞지도 않는다. 그 둘이 반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들의 이미 본 장면들에 대한 경험의 기억에만 의존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이 비대칭 안의 대비적인 구조는 <울지 않으리>에서 전쟁에 의한 순환의 중단이라는 재난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삶의 탈선. 이때 차이는 역사라는 얼룩에 의한 어두운 바탕을 배경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차이를 운반하고 있는가. 그때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가. 그 사이를 연결하면서 머물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두 개의 씬 사이에서 수없이 참혹한 전쟁 장면들을 이미 보았다. 임권택은 그런 다음 전쟁의 효과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효과? 그렇다. 이 무시무시한 말. 영화는 전쟁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당신은 맨 먼저 전쟁의 지각을 떠올릴 것이다. 임권택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경험에 대해서 느껴보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와해되고 어떻게 폐기되고 그런 다음 지워져버렸는가. 영화가 느껴보는 비극. 나는 재남이라고 쓰지 않았다. 첫 번째 질문. 이때 쇼트는 왜 어제를 반복하지 못하는가. 대답. (역사 안의) 전쟁은 지금 영화를 부수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 질문. 이때 쇼트는 어떻게 반복하는 일을 멈추는가. 우리는 반대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반복을 봉쇄하는가.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S#13 S#14 첫 장면. 초여름, 조용하고 화창한 대낮. 느리게 수평으로 이동하는 화면(horizontal_pan)은 마치 병풍처럼 보일 정도로 과도하게 아름답다. 이 말의 방점. 과도하게. 이 영화 전체의 얼룩. 금방이라도 지나쳐버릴 것만 같은 평온함. 이런 감흥을 이 영화에서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막 1950년 6월 25일이 지난 다음 월요일일 것이다. 혹은 아무리 늦어도 화요일일 것이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북한군은 쳐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금방 그들은 물러갈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오늘도 어제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병원에 출근하고, 막내 재남은 학교에 가야 한다. 사람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쇼트. 토끼장 안에 토끼들( S# 1) 그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재남, “튼실한 놈으로 열 마리만 낳으라구, 알았지” 라고 말하면서 일어서는데(hand_held_tilt_up) 어머니가 멀리서(LS) 학교 가라고 이른다.( S# 2) 재남 집의 행랑채에서 사는 성식이가 어머니에게 인사하고(pan_right) 문 저편에 보이는 재남에게(LS) “재남아, 나 먼저 학교 갈께”라고 하자 재남이 “알았어”라고 대답한다.( S# 3) 마루가 보이는 전경, 아버지와 재남은 각자 집을 나설 채비를 한다.( S# 4) 아버지 정원을 가로 질러( S# 5) 옆 정원을 돌보는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재남 따라와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려는데 저 멀리서(LS) 어머니가 따라 나온다( S# 6) 집 대문 앞에서 자전거를 탄 아버지와 재남에게 쫓아온 어머니가 도시락을 건네준다. ( S# 7)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재남의 뒷모습.( S# 8) 어머니, 그걸 바라보다가 (BS) 손을 흔든다.( S# 9)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재남, 읍내 큰 길에 ‘영광 오토바이’가 보이고 다리를 저는 아저씨가 지나가는 아버지에게 배앓이 약 처방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 S# 10)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재남, 은화상회, 中央精肉店, 德元商會가 (pan_right) 차례로 보이고 ( S# 11) 慈愛病院 입구에서 아버지가 자전거를 세우자 재남은 학교로 간다.( S# 12) 멀리서 대포소리가 들리자 아버지 불안한 표정으로(BS) 돌아본다. ( S# 13) 학교 앞에서 친구들을 만난 재남은 함께 등교하면서 정문까지 걸어간다. ( S# 14) 여기서 평화는 끝난다. 나는 다소 장황하게 두 번째 장면까지의 광경을 설명할 것이다. 당신은 줄거리를 따라오지 말고 이것이 광경의 묘사라는 걸 떠올려야 한다. 사방에서 감도는 피비린내. 그런 다음 우리는 이 영화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찍은 영화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디테일이라는 묘사의 미시적 재현들. < 울지 않으리 >에는 자꾸만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광경의 디테일 속에 들어가 멈칫거리면서 그 안에 펼쳐지고 있는 세상이 진정 그러하다, 는 순간과 만나는 사건들이 나타난다. 경험의 밀도. 기억의 부피. 영화에서 디테일이라는 난처한 개념. 어떻게 이미지의 디테일들은 서사의 흐름을 중단시켜가면서까지 대상의 실감을 자아내는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아무리 동화 같은 설정이 벌어져도 거기에 달라붙는 이상할 정도로 사실적인 재현들의 무게. 임권택 과 어린 재민이. 둘 사이에서 공유하는 시간. 학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담임선생님은 불길한 표정으로 아침 조회를 시작한다. 그리고 미처 선생님의 말이 끝기도 전에 가까이서 들려온 포탄소리가 교실 맨 뒤에 자리 잡은 아이들의 미화게시판에 걸려있는 그림을 뒤흔들어 한쪽 끝이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전쟁의 신호. 그런 다음 이야기는 무자비하게 진행된다. 할아버지는 집에 남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에서 막 내려온 형과 누나와 함께 재남을 데리고 피난을 떠난다. 마치 끊어지지 않는 줄처럼 이어진 수많은 난민들. 길에서 죽은 어머니와 울고 있는 가엾은 어린아이. 기력을 잃은 채 길에 주저앉은 할머니와 어린 손녀. 거기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날 밤 아버지는 길을 막아선 공산군으로부터 중상을 입은 중대장을 치료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그 자리에서 총살당한다. 갑작스러운 폭격. 마치 세상이 화가 난 듯한 불바다. 어머니는 중상을 입고도 딸을 구하기 위해 후퇴하는 국군 트럭에 그녀만을 실어 보내고 그만 숨을 거둔다. 형은 전쟁에 휩쓸려 피난민을 따라 가족과 헤어진다. 순식간에 모두가 헤어져 버린 가족. 이제 혼자 남은 재남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신을 거두어 착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묘를 만들고 우연히 죽은 국군의 시신에서 수류탄이 잔뜩 담긴 가방을 손에 쥔 다음 수차례의 고비를 넘긴 끝에 고향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거기까지 걸어갔으니 아마도 재남은 걸어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떠날 때는 온 가족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재남 혼자뿐이다. 게다가 재남은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신을 모두 본 유일한 증인이다. 재남은 이미 고향을 떠날 때의 그 소년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보았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고, 피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손에 피를 묻혀보았고, 그런 다음 수류탄을 던져서 사람을 죽였다. S#1 S#2 S#3 S#4 S#5 S#6 S#7 S#8 S#9 S#10 S#11 S#12 S#13 S#14 S#15 S#16 S#17 두 번째 광경은 재남이 다시 돌아오게 된 자기 동네에 들어서는 장면이다. 이때 이 둘 사이에 개입한 시간의 부피는 한국 근대사를 둘로 쪼개는 단절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첫 장면. 살던 동네로 돌아온 재남, 힘없이 걸어간다. (LS)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휴지가 흩날린다.( S# 1) 걸어오는 재남, (frontal_tracking_back) 바람이 분다.( S# 2) 재남이 쳐다보는(point_of_view) 을씨년스럽게 닫힌 가게들 ( S# 3) 걸어가는 재남, 신문지가 재남의 얼굴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 S# 4) 재남의 시선으로(point_of_view) 德元商會, 中央精肉店이 차례로 보인다.( S# 5) 재남, 달려가기 시작한다.( S# 6) 재남, 읍내 대로변을 따라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LS) ( S# 7) 재남, 집 앞 골목을 달려온다.( S# 8) 재남, 집 대문 앞으로 뛰어 들어간다.( S# 9) 재남, 집 안 마당으로 뛰어 들어간다.( S# 10) 그리고 집을 두리번거리면서( S# 11_12, dissolve) 누가 없는지 둘러본다. 재남을 반기는 건(point_of_view) 토끼장이다.( S# 13) 바라보는 재남, 표정이(CU) 밝아진다.( S# 14) 재남, 토끼장 앞에 서서 (over_the_rabbit’s_shoulder) 새로 낳은 토끼 새끼들을 세어본다.( S# 15) 한 마리씩 세어보는 재남(voice_over/point_of_view) 앞의 토끼들.( S# 16) 재남, 토끼 한 마리를 들어 올리는데 뒤편에서 성식이 재남을 부른다. ( S# 17 ) 먼저 환기할만한 사실. 재남이 고향에 돌아오기 전에 사실상 영화는 이미 돌아온 다음이다. 이 첫 장면 앞의 씬은 고향에 남은 재남의 할아버지가 ‘노력동원’에 끌려가 무거운 통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하는 장면이다. 이때 이 작업은 (첫 장면에서 본 이 마을의 녹음 짙은 풍경과 동떨어진 채) 마치 다른 지역에 끌려가기라도 한 것처럼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다른 ‘반동분자’들과 함께 부역을 하는 중이다. 발은 피범벅이고, 할아버지가 등에 엎쳐 들고 나르는 건 이미 그 나이에 들 수 없는 무게의 통나무이다. 그림자 한 점 없어 쉴 곳조차 없는 벌판. 낯선 장소. 마치 병풍과도 같았던 그 숲과 같았던 나무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 더 이상 여기는 낙원이 아니다. 혹은 일상생활의 시간선은 이미 끊어졌고 지금은 역사 안의 함정에 떨어져 그 안에서 견뎌야 한다. 새로운 조건. 임권택은 그렇게 두 개의 씬을 연결하였다. 재남에게 어떤 희망도, 어떤 기대도, 어떤 구원도 서둘러 뺏어버리는 것. 그는 이곳에서 저곳을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지금 이곳은 다른 이곳이다. 정확하게 이 두 번째 시퀀스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B_S# 1 A_S# 10 나는 두 개의 시퀀스를 비교하기 위해서 첫 번째 시퀀스를 A라고 부르고, 재남이가 돌아온 시퀀스를 B라고 구별할 것이다. 재남이가 동네에 들어서는 첫 장면은( B_S# 1)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장소를 이동한 다음 원래의 장소로 돌아올 때 마을 전체의 풍경을 보여주는 편이(establishing_master_shot) 쇼트의 진행에서 경제적이며 재빨리 다음 씬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을 통해서 공간적인 지각을 할 수 있게 지형적이며 지표적인 지도를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권택 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게 안에 들어가서 동네로 돌아오는 재남을 보여주고 있다. 텅 빈 동네. 아마도 동네 사람들은 모두 ‘노력동원’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쇼트의 바로 전 씬. 그러므로 가게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왜 가게 안에 들어가서 재남을 바라보는 것일까. 그렇게 되면 이미지의 면적은 매우 제한적인 풍경만을 보여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때 이상하리만큼 스산한 바람이 불어 휴지들이 흩날린다. 우리에게 읽기를 요구하는 것만 같은 우연한 대기현상의 기호. 이 바람은 물론 만든 것이다. 휘날리는 바람은 동네에 재남이 들어서는 것을 방해라도 하듯이, 혹은 반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제부터 벌어질 나쁜 사건들에 대해서 불길한 예언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재남을 마주 보고 맞은편에서 불어오고 있다. 이 쇼트는 재남이 아버지와 함께 학교 가던 첫 번째 씬에서 집 앞 골목을 막 벗어난 다음 마을 읍내에 들어서던 첫 번째 쇼트와 같은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 A_S# 10) 그러나 여기서 두 개의 쇼트 사이의 관계가 개념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형식적으로 마치 오른손과 왼손처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할 것이다. 첫 번째, 배치라는 문제. 두 개의 쇼트 모두 마을 읍내로 들어가는 것을 안내하는 첫 번째 쇼트이다. 이것을 만일 풍경으로 찍었다면 우리들은 순간적으로 놓쳤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두 쇼트의 풍경은 정반대로 찍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하나는 평화롭고 행복한 ‘전쟁 이전’ 시간의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전쟁 이후’의 풍경이다. 나는 반복해서 이전과 이후라는 말을 꺼내 들 것이다. 임권택은 둘 사이에서 여전히 거기 머물면서 변하지 않는 읍내 가게 공간을 프레임으로 하여 재남이가 읍내로 들어가는 장면의 풍경 입구(introducing_master_shot)를 배치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쇼트는 가게 안에서 재남을 찍으면서 동일한 프레임을 보여주지만 동일한 가게에서 찍은 것이 아니다. 동일한 구도. 두 개의 쇼트 모두 왼쪽 길에 자리 잡은 가게 안에서 찍었다. 다른 가게. 그 둘은 같은 가게에서 찍으면 안 된다. 첫 번째 장면에서 우리는 저 멀리 ‘영광 오토바이’가 보이지만 재남이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그 가게가 보이는 그 자리가 아니다. 안 되는 이유. 재남은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첫 번째 장면은 집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이 둘을 동일한 가게에서 찍으면 재남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의 연속적인 쇼트를 집에서 나오는 장면의 역순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이 문제를 기능상의 문제로 단순하게 환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남이 같은 길을 되돌아옴과 그 길의 다름은 동일한 과정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제 더이상 동일한 시간의 길이 아닌 것이다. 임권택은 두 개의 쇼트 사이의 거리와 차이 사이에서 그 동일성을 때려 부순 전쟁이라는 효과를 보여주는 중이다. 두 번째, 분배라는 문제. 이야기 안에서 기계적인 운동은 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진행될 때 주거나 배분받은 인물이 누구인가 만큼이나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재남이가 아버지와 학교에 갈 때 그들의 자전거 선을 가로막고 나선 사람은 다리를 저는 동네 아저씨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다리를 저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기억할 수밖에 없다. 아저씨는 아버지에게 처방해주신 약 덕분에 배앓이가 모두 나았다고 길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까다로운 문제. 재남이와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이 장소를 지나가기 때문에 순식간에 지나쳐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저씨의 장광설은 이 쇼트를 오랫동안 붙잡아 놓는다. 게다가 이 아저씨는 다리를 절기 때문에 더 속도가 느려진다. 나는 이 동선을 반대로 설명하고 싶다. 이 쇼트를 기억하지 못하면 재남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마을 읍내의 첫 쇼트를 여기서 시작하기 난처해진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기 때문에 쇼트의 프레임을 순식간에 가로질러 가버릴 것이다. 만일 여기서 쇼트를 나누기 시작하면 동선이 끊어져 버릴 것이다. 하나의 동선. 하나의 운동. 이 곡선을 나누면 안 된다. 다리 저는 아저씨는 여기서 가게 안의 프레임 쇼트를 멈춰 세우는 고정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때 자전거가 프레임을 빠져나간 다음 그 동선은 카메라의 기계적인 운동으로 이어진다. 임권택 은 쇼트를 나누는 대신 여기서 거의 곡예에 가까운 운동으로 줌과 팬을 이용해서 다리 저는 아저씨에게 머문다. 그러나 전쟁 ‘이후’ 다리 저는 아저씨는 ‘지주’인 할아버지를 고발하고 당원이 된다. (그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을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재남이의 씬에 있었던 아저씨는 재남이 마을 읍내로 돌아올 때 할아버지를 감시하는 자리에서 강제부역이 진행되는 전 씬에 자리하고 있다. 만일 이 아저씨가 당원이 되지 않았다면 있어야 할 자리는 전 씬의 강제부역이 진행되는 황량한 벌판이 아니라 마을 읍내 큰길가에서였을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그가 강제부역 공사장에 있어야 할 자리가 달리 어디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읍내 길가에 서 있다면 반대로 재남의 동선을 다시 가로막고 나섰을 것이다. 하나의 선. 멈추지 않는 선. 끊어지지 않는 선. 우리는 영화에서 동선이라는 문제가 동시에 각자의 자기 자리의 자기 원인의 운동이자 실존의 곡률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B_S# 3 B_S# 4 B_S# 5 B_S# 6 A_S# 11 두 번째 쇼트. 재남은 이 낯선 풍경 앞에서 마을 읍내로 들어선다. 물론 집으로 가는 길이다. 영화는 재남을 바라보면서 뒤로(tracking_back) 물러난다. 재남의 표정. 그는 다른 풍경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이때 재남을 가로 막아나서는 것은 바람이다. 그의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는 바람결. 나는 첫 장면에서 이상하리만큼 바람 한 점 없었던 여름날 화창한 기후를 기억한다. 여기서 이 바람은 이상할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바람은 비를 불러오기 위한 신호가 아니다. 바람결의 매치 컷. 재남을 맞이하는 것만 같은 바람. 단지 그것이 만들어진 바람이라서가 아니라 왠지 그 장소에 불어오는 바람이 그 쇼트 바깥에서 불어오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바깥의 어디? 이제까지 진행된 전쟁 장면들의 쇼트들 사이의 잔인함과 무심한 순간들의 이미지가 서로 부딪치면서 만들어낸 충돌의 몽타주 효과. 그것이 아니라면 달리 어디서 불어 올 수 있겠는가. 여기에 더해 A씬에서 단 한 번도 자전거의 속도로 카메라가 이동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다. 더도 덜도 아닌 풍경(속의 재남)을 바라보기. 그렇다면 여기서는 왜 재남의 발걸음이라는 속도가 필요해진 것일까. 당신을 환기시키고 싶은 사실.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이야기. 이제부터 우리는 한국전쟁의 이상한 나라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재남이 만들어내는 주관적인 이야기의 세계. 만일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재남의 ‘전쟁’은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 더이상 이 모험의 선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의 위기. 새로운 속도. 이때 이 바람을 재남이 고향의 낯선 공기 안에서 느껴보는 감정의 터치라고 말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더이상 마을 읍내의 가게들은 정겨워 보이지 않고( B_S# 3) 지나쳐가는 바람결에 날리는 신문지가 재남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B_S# 4) 마치 그에게 마을 읍내의 풍경을 돌아보기를 요구라도 하는 듯한 일깨움.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면서 보았던 가게의 간판들이 (역순으로) 차례로 보인다.( B_S# 5) 德元商會, 그리고 中央精肉店. 이때 이 쇼트를 전쟁 ‘이전’의 쇼트 맞은편에 세워놓을 필요가 있다. 전쟁 ‘이전’의 쇼트( A_S# 11)에서 재남은 아버지의 자전거에 실려 이 가게들 앞을 기분 좋게 달려간다. 조금 더 앞부터 시작된 자전거의 운동은 은화상회를 거친 다음, 德元商會, 그리고 中央精肉店을 지나서 간판이 없는 가게 앞을 지나간 다음에도 마치 그 기분을 음미하기라도 하듯 자전거가 빠져나간 다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잠시 그 자리에 머문다. 그 순간이 매우 짧은 데도 불구하고 임권택 은 인물이 빠져나갈 때 거기 공백을 남겨놓지 않기 때문에 이 쇼트의 여분의 지속이 이상할 정도로 길게 느껴진다. 그러나 전쟁 ‘이후’의 쇼트는 하나로 찍은 쇼트를 찢어놓았다.( B_S# 4_5_6) 이 쇼트의 분리는 반대로 마을 읍내의 풍경과 아버지와 재남을 연결하는 자전거의 동선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하게 유기적인 관계를 구성하지 않으면 하나의 쇼트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만 같다. A_S# 7 A_S# 8 A_S# 9 A_S# 11 B_S# 7 B_S# 8 두 개의 씬, 전쟁 ‘이전’과 ‘이후’에서 한 장소를 반복해서 오가면서 임권택 은 같은 쇼트와 다른 쇼트를 마치 붙였다 떼어놓기 혹은 하나를 다른 하나 위에 겹쳐놓는 것처럼 보인다. 재남이 집을 향해서 달려갈 때 마을 읍내를 수평으로 달려가는 장면( B_S# 7)은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같은 길을 지나가던 장면( A_S# 11)을 같은 자리에서 단지 자전거와 재남의 동선을 반대로 하여 다시 한 번 찍은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의 진행에는 단 하나의 어떤 다른 장소의 쇼트도 개입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되풀이. 그 둘은 형태적으로는 동일한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마치 이 길은 집으로 가는 다른 길을 알지 못한다는 듯이 그렇게 하나의 선을 따라간다. 그래서 읍내의 이 길을 벗어나자 다음 장소는 바로 집 앞의 골목으로 이어진다. 골목과 집 앞 대문을 하나의 이미지로 찍은 쇼트는 없지만 이 길은 분명히 집 앞 대문에서 이어져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 ‘이전’의 씬에서( A_S# 7_8_9) 집 앞 대문까지 따라 나온 어머니가 재남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 #7) 골목 앞을 자전거를 타고 빠져나가는 아버지와 재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8) 손을 흔들 때 ( #9) 그 세 개의 쇼트 사이에서 문 앞에 서 있는 어머니가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기 위해서는 시선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 개의 쇼트로 진행되는 이 씬을 처음 보았을 때 운동의 연속성을 지연시킬지라도 골목을 빠져나가는 아버지와 재남을 마을 읍내로 보내기 위해서 어머니의 손짓이 둘 사이를 면과 면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서(invisible_cut)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집합의 다리(transitional_shot)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문제를 기능적으로만 바라보면서 ‘엄마의 클로즈업’이라는 정감이 가져다주는 씬 전체 안에 놓인 관계의 도약을 놓쳤다. 이 자리가 분명해지는 순간은 재남이 전쟁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사라진 쇼트 안에 있다. 구멍 뚫린 씬. 그 쇼트는 거기 있지 않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거리를 두고 자기의 존재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서술의 목소리. 나는 그 바깥의 체험을 사라진 쇼트 안에서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남이 집에 가기 위해서 집 앞 골목으로 뛰어오는 장면은 ( B_S# 8) 재남이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가던 그 장면 ( A_S# 8)과 같은 프레임이다. 다만 둘의 차이는 온다, 와 간다, 는 반대 운동방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어머니의 손짓 장면을 반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 가지 가능성은 가까스로 남아있다. 그건 재남이 환상을 동원해서 어머니의 손짓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동원하면 재남은 어쩔 수 없이 환상이 요구하는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다. 결과는 지금보다 더 가련해진다. 재남은 전쟁 ‘이전’과 ‘이후’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남은 이제 자기만의 전쟁을 시작할 명분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임권택은 그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였다. 재남은 어머니를 자기 손으로 아버지 곁에 묻고 지금 여기에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는 더이상 재남이 (환상 안에서) 진행해야 할 행위의 줄거리는 남아있지 않다. 매장이라는 문제. 나는 따분하게 여기서 억압의 귀환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A_S# 7 B_S# 9 B_S# 17 이때 내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사라진 쇼트가 아니다. 비슷한 것과 같은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이 두 개의 씬, 그러니까 전쟁 ‘이전’과 ‘이후’의 씬은 사라진 쇼트와 비슷한 쇼트 사이, 이 둘 사이에서 서로 다른 짝을 찾아가고 있다. 이 둘 사이에서 공명을 느껴보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둘 사이의 진동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놓여있는 전쟁이 없다면 반대로 그 둘은 아무런 진동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이 둘 사이의 플래시백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임권택 은 여기서 어떤 사건, 어떤 줄거리, 어떤 설명을 하는 대신 그냥 간단하게 성립이라는 질문을 던져본 다음 동일한 쇼트의 재현이라는 요구의 불가능을 마주하게 만든다. 재남이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집을 떠나는 쇼트( A_S# 7)는 재남이 집에 도착하는 장면( B_S# 9) 과 동일한 장소지만 동일한 프레임이 아니다. 왜 두 개의 쇼트는 동일한 쇼트 대신 비슷한 쇼트라는 방법으로 짝을 이루는 것일까. 이 세 개의 쇼트와 두 개의 쇼트는 그 둘을 비교할 때 동선의 방향이라는 질문 앞에서 갑자기 부서진다. 우리는 영화가 물리적인 예술이며, 장소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안에서 뇌 위에 펼쳐지는 상상적인 지도를 만든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반복된 설명(을 통한 문제제기). 재남과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집을 떠나는 골목과 재남이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은 같은 골목이며 같은 방향에서 (거의 같은 자리에서) 찍었다. 그런 다음 어머니의 손짓과 눈길로 이 골목과 집 대문의 선에 대해서 이미 설명했다. 전쟁 ‘이전’의 쇼트만으로 이 선을 따라가면 이 골목은 집 대문을 정면으로 해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길이다. 그러나 재남은 이 골목을 따라 어떤 우회도 없이 일직선으로 수직으로 집 대문을 향해 뛰어간다. 동선으로만 설명하면 이 두 개의 골목은 서로 다른 골목이다. 첫 번째, 오로지 기능적인 설명. < 울지 않으리 >는 시네마스코프로 찍었고, 자전거에 재남을 태운 다음 아버지가 끄는 자전거로 이 프레임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수평의 구도가 필요해졌다. 이렇게 설명하면 재남이가 돌아오는 쇼트는 완전하게 잘못 찍힌 동선이다. 자동적인 설명. 그렇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두 개의 쇼트는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재남의 동선을 연결하기 위하여 곡선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혹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둘 사이에 직선을 그은 다음 180도를 기준으로 하여 연결시킨(match_cut)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이걸 경로적 공간으로 재 정의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전쟁 ‘이전’과 ‘이후’의 두 개의 시퀀스가 진행되는 과정이 단순히 역순을 밟아나가는 대신 사라진 쇼트와 비슷한 쇼트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했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왜 두 개의 씬은 함께 가능하지 않을까. 하나의 세계에서 가능했던 쇼트가 다른 세계에서는 불가능해질 때 우리는 그 둘 사이에 놓인 칸막이로서의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이 장면들은 지금 공간적인 특징을 따라오는 대신 재남이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세상의 풍경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남이가 이 동네로 들어올 때 부는 바람은 달리 설명될 수가 없다. 마치 재남의 마음으로부터 불어온 듯한 바람. 게다가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은 마을 읍내. 어른들은 부역에 모두 끌려 나갔다고 반문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강제부역 현장에서 단 한 명의 여자도 보지 못했다. 재남의 할머니가 없기 때문에 여자들의 부역장을 찍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재남의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갔는가? 그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았다고 주장하려면, 혹은 그 시간에 모두 학교에 있었다고 가정하려면, 그와 동시에 재남이 집에 들어선 다음 토끼장 앞에 섰을 때 행랑채에 살던 성식이는 왜 그 시간에 집에 있었는지를( B_S# 17)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둘 중 어느 쪽이 재남의 주관적인 풍경이라고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양쪽 모두 부분적으로 풍경 안에 주관적인 디테일의 삽입이라는 방식으로 외상의 얼룩을 더해놓았다. 이를테면 전쟁 ‘이전’의 과잉할 정도로 평화로운 낙원에 가까운 풍경. 반대로 전쟁 ‘이후’의 인공적으로 삭제시킨 낙원의 디테일들. 그 안에서 종종 비정상적인 운동이 그 내부의 배치 사이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B_S# 10 B_S# 11 B_S# 12 B_S# 13 B_S# 14 B_S# 15 집을 나서는 장면과 돌아온 장면의 차이. 재남이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면서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집을 떠나는 장면이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서 반복될 수 없는 것은 두 쇼트 사이의 크기가 불러일으키는 같은 장소의 다른 조건이다. 그저 힐끗 보는 것만으로 느껴보는 두 쇼트 사이의 차이는 마치 전쟁 ‘이전’의 쇼트를 ‘이후’의 쇼트는 확대시켜 놓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두 쇼트는 카메라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확대하여 촬영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두 가지 모두를 건드려볼 필요가 있다. 전쟁 ‘이전’의 쇼트는 가벼운 이동 사이에서 집 대문을 열어 놓고 어머니를 왼쪽에 세운 다음 아버지와 재남의 자전거를 오른쪽에 세웠다. 물론 세웠다는 표현은 정확한 묘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금 막 병원(과 학교)로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 세 사람을 뒤로하고 집 대문은 활짝 열려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하루. 누구라도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 문. 물론 이 장면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누구라도 이 세 사람의 가족에게 모여 있기 때문에 그 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전쟁 ‘이후’의 장면은 여기서 재남의 집 대문과 지붕이 담길 만큼 뒤로 물러서서(long_shot) 찍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집 대문을 중심으로 한 전체의 모습. 이건 지금 이 집의 흉한 몰골을 보라는 이미지이다. 아무도 드나들지 않고 있을 것만 같은 집. 이때 초여름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이 집의 행랑채 창문은 닫혀있고, 오른쪽에 자리한 쪽문도 단단히 닫혀 있다. 그런데 왜 대문은 열려있는 것일까. 그 말은 이 집을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재민이가 피난을 떠날 때 그대로의 집. 어머니와 아버지가 없는 집. 연신 땀을 닦고 있는 재민의 제스처. 그렇게 힘들게 재민이 먼 길을 돌아 돌아왔는데도 누구도 반기는 사람이 없는 집. 대문이 반쯤 열려있지만 마치 집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문 안의 벽은 우리가 전쟁 ‘이전’의 쇼트에서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을씨년스러운 풍경. 마치 모두가 어디로 가버린 것만 같은 집. 집에 들어선 재남은 텅 비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 B_S# 10_11_12) 그런 다음 고개를 돌려 토끼장을 바라본다. ( B_S# 13_14_15) 이 쇼트는 물론 영화의 맨 첫 장면으로 되돌아온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 다시 시작한다. 다시 시작한다. 이중의 용례. 나는 위험한 자리에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모두들 들어서기를 두려워한 시작. 임권택 의 영화를 다룰 때 < 증언 >에서 시작하는 일련의 국책영화에 대해서 할 수만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한다. 종종 임권택의 60년대 영화들, 이를테면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로 이어지는 다찌마와리들, 그리고 < 황야의 독수리 >와 함께 하는 만주 웨스턴들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하던 관대한 대중영화의 친구들마저 1970년대 정책영화들 앞에서는 침묵을 지킨다. 심지어 임권택 자신도 이 영화들에 대한 대답을 미루거나 혹은 종종 피한다. 하지만 나는 그걸 마주 볼 생각이다, 그리고 마주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생각이다. 모델? 그렇다. 나는 지금 이브 알랭-브아를 떠올리고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프리모 레비의 증언을 읽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서 살아남는 것, 그런 다음 연좌제의 그늘 아래서 1970년대 반공국가의 독재를 통과해온 삶. 이 둘이 서로 비스듬하게 겹칠 때, 결국 이 모든 것은 다시 삶의 문제이다. 나는 이 질문을 외상적 증후의 과도한 도식으로 만드는 것에 맹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희생이라는 방법으로 살아가기. 그 안의 임권택. 영화를 저들의 것에서 다시 나의 것으로 되돌리는 순간, 바로 예외적 순간만이 영화를 다시 한 번 가능하게 열어줄 것이다. 영화 안에서 예외적 지위에 놓여있는 쇼트들. 굴복하지 않는 쇼트. 나는 지금 1970년대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계속) 1974년 11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영화진흥공사 각본 신봉승 윤삼육 나한봉 촬영 박승배 조명 박태수 편집 김창순 음악 한상기 이승현 재남 황해 할아버지 김진규 아버지 문정숙 어머니 박지훈 재석 김영숙 지은 이일웅 칠용 추석양 다리 저는 동네 아저씨 독고성 공산당 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