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
- 감독
- 창체
- 제작년도
- 1973
- 출연
- 강대위, 아그네스 찬 메이링, 적룡, 루티, 양지경, 린 징, 공링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쯤 지나면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얕은 부감으로 촬영한 것뿐인 대화 신이다. 이 신은 카메라와 대상 간의 거리 감각을 왜곡하는 것을 목표로 찍혔는데 두 인물의 대화를 보여주기 위함인지 카메라는 처음에 시계 반대 방향으로 패닝하다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의 회전 방향은 불규칙하게 흘러간다. 이 신이 낯설어 보인다면 연출자 에두아르도 윌리엄스가 360도 VR 카메라, 즉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방사되는 여덟 개의 렌즈를 사용하여 영상을 촬영하는 구형 카메라로 촬영했기 때문이다. VR 카메라의 특성과 작업방식 덕분에 윌리엄스는 후반 작업을 할 때 신의 구도를 설정할 수 있었다. 이는 촬영할 때와 다른 형태로 장면을 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지의 형태와 질감, 조형에 있어 실험을 멈추지 않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신가 윌리엄스는 10년 간의 커리어 동안 노마드와 같은 여정을 통해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도입해 왔다. 디지털과 셀룰로이드 포맷(16mm)을 혼합하여 촬영한 < 인류의 상승 >(The Human Surge, 2016), 고프로(GoPro) 360으로 촬영하여 < 인류의 상승 3 >로 진화하는 단초를 제공한 초현실적인 질감의 단편영화 <파르시>(Parsi, 2019), 내시경 카메라를 내장 기관 속으로 삽입하여 인체 해부도를 그려낸 <매우 긴 지아이에프>(A Very Long GIF, 2023)까지, 하나같이 영화 표현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시도들이다. 글로벌 환경 아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행적을 연결한 <인류의 상승>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상승 3>는 페루, 스리랑카, 대만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청년들의 삽화를 뜨개질한다. 중심 서사랄 것이 없는 이 영화는 국가, 캐릭터, 대화의 사이에서 방황하는데, 1편의 네트워크 내러티브 구조를 완전히 유동적인 스타일로 재구성하여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자유로움을 선사한다. 전 지구적인 수준에서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어 살아가는지에 대한 놀이의 영화를 발명하였던 윌리엄스는 걷고, 말하고, 시시덕거리는 십대들의 목적 없는 여행이 호수와 평원, 언덕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마술적인 시청각 조형술을 통해 연출한다. 야심이 없어 보이는 그의 인물들과 달리 윌리엄스의 예술적 야망은 원대하지만 결코 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 자연스럽고, 더 가벼우며, 더 장난스러운 느낌을 주는 등장인물들은 마치 웜홀을 통과한 것처럼 그들 각자의 거처에서 튀어나와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구의 친구들과 함께한다. 표랑하는 존재의 상태와 연결을 시각화하기 위해 다수의 상황은 화면 안과 화면 바깥에서 동시에 펼쳐지거나,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쇼트 또는 매치 커트, 쇼트-리버스 쇼트 편집 따위의 영화적 관습을 회피하면서 몰입형 스토리텔링에 도달하는 시퀀스들을 제시한다. 롤 플레잉 게임(RPG)이나 가상현실 영상에서처럼 360도 기술의 한계를 넘어 이미지에 기묘한 단절과 불일치를 만들어내는 순간들이 곳곳에 있다. 물결과 같은 파장 효과, 형상의 굴절, 비디오 스트리밍이 지연될 때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의 흐름, 리듬이 개입하는 순간들이다. 이러한 재현의 불완전함은 영화의 분위기를 해치거나 파노라마적인 풍경 쇼트의 흐름을 방해하기보다는 비현실적인 정지 상태, 즉 육체와 우주가 만나고 인간과 풍경이 합치되는 듯한 초월의 느낌을 자아낸다. 동시대 영화감독들과 달리 윌리엄스의 모든 작업은 이론의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감각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진행되어왔다. <인류의 상승 3>에 나오는 인물들은 1편에서처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에 갇히지 않는다. 거주의 장소로부터 해방된 이들은 여러 장소를 순간 이동하며 이동의 경로를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교차한다. 느슨하게 떠돌고 표류하는 놀이의 분위기뿐 아니라 오류, 예측 불가능성, 탈 중심성 등은 전작으로부터 이어진다. 극적이고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명상적인 여정을 통해 안정된 개념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스토리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없다. 러닝타임 내내 저들은 꿈, 환각, 이미 보았거나 앞으로 보게 될 것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며, 한 신 안에서 두 가지 언어의 교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광경과 소리, 말들이 누적되면 단일한 타임라인으로 내러티브를 통합하려는 시도는 부질없어진다. 표면의 물리적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신들은 확장된 공간에서 이를 통합하는 능력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윌리엄스가 제시하는 이미지의 경로들은 한눈에 보지 못하는 무한한 수의 잠재적 경로에 대한 인식을 활성화한다. 우리들 앞에 놓인 상황을 실재라고 가정하면, 잠재된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는 가상을 실재와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상승 3>를 보는 것은 실재 현실과 가상 현실이 하나의 이미지 안에 공존하는 전례 없는 체험이 된다. 에두아르도 윌리엄스는 제한적인 아트하우스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 노정된 예술영화의 상투형을 탐구하는 것에 만족하는 감독이 아니다. 그의 야심은 광대하며, 심지어 <인류의 상승 3>에서 시네마의 존재론적 가소성(可塑性)을 시험한다. 영화가 비디오 게임과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그 증거 중 하나이다. 게임 속 인물은 전통적인 캐릭터라기보다는 여러 장소들을 이동하는 ‘아바타’에 가깝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의 미학에 부분적으로 관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윌리엄스의 미학은 특정 기술과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술이 미학의 본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인류의 상승 3>는 ‘가상’이라고 부르는 효과가 가상현실의 기술적 작동에 국한될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영화 제작의 고정된 프레임을 해체하려 한다. 점점 더 세계화되는 세상에서 ‘연결’에 대한 감각과 마찬가지로 매체들의 경계와 기원, 쓰임, 효과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미지를 믿는 감독과 현실을 믿는 감독’이라는 앙드레 바쟁의 이분법에 윌리엄스는 도전한다. 그는 카메라가 실제 세계와 마주하는 순간에 영화의 본질이 있다고 믿는 ‘존재론’의 전제를 붕괴 직전까지 밀어부친다. 열대우림의 울창한 숲속을 탐사하는 한 장면에서, 인물들이 큰 나무 주위에 모여 있을 때 카메라는 인간 피사체를 떠나 윙윙거리는 곤충을 따라가며 몇 초 동안 이 생물체의 클로즈업을 담는다. 촬영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 윌리엄스는 곤충을 발견하고 사후에 프레임에 담는 대안을 구상했다. 윌리엄스의 방법론은 촬영의 순간 카메라가 현실에 임하였고 함께 존재했는가, 라고 하는 실존적인 계율에 의문을 던진다. <인류의 상승 3>의 마지막 부분에서 윌리엄스는 명료한 설명을 제공한다. 원숭이가 천천히 프레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가 물속으로 떨어지는 기나긴 쇼트를 촬영할 때, 카메라는 피사체에서 서서히 멀어지면서 360도 회전한다. 회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여덟 개의 렌즈 이음새가 이미지를 만화경처럼 흐릿하게 표현한다. 이미지가 확대 및 축소됨에 따라 픽셀화되고, 이미지와 현실의 구분이 디지털 노이즈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진다. 이 반역적인 이미지들의 안무가 끝나갈 즈음 번개가 번쩍하며 페루의 작은 산 정상으로 순간 이동한다. 공상과학의 영역으로 발을 디디는 것처럼 보이는 이 클라이맥스 신에서는 일곱 명의 십대 청년들이 산을 오르면서 이야기하는데, 360도 VR 이미지가 삼중으로 왜곡된다. 여기서 기술의 효용성은 그 차이와 특성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예측할 수 없는 카메라 움직임으로 인해 때때로 3D 이미지와 2D 평면 사이의 접점이 노출되는데, 이는 윌리엄스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5분 정도 지속하는 이 신들의 연결에서 줄기차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정글을 촬영하기 위해 제자리에 고정된 직후 나무를 지나서 프레임 상단에 위치한 들쭉날쭉한 교차점에 초점을 맞춘 다음 그 주위를 회전하여 어지럽고 만화경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는 쇼트를 이어 안개에 휩싸인 경사로를 따라 산 정상으로 향하는 단체 하이킹을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시각화한다. 각각의 장소들, 그들 장소의 이동은 비현실적이고 기괴하며 외계의 공간 감각을 자아내는데 현실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디지털 오아시스, 불안정하고 끊임없이 뒤집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하늘과 땅은 구부러지고 왜곡된다. 얼굴과 몸은 줄무늬로 분해될 것처럼 보이고, 중력조차도 선택적이 되어 일부 사람들은 붕붕 뜨거나 공중제비를 돌기도 한다. 순간, 리얼리즘의 흔적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놀이의 공간으로 순식간에 변형되는 이 기이한 언덕의 퍼포먼스는 스크린을 변위된 촉각의 영역으로 바꾸어 관객들이 자신의 신체를 새로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윌리엄스의 목표와 맞닿는다. <인류의 상승 3>은 평범한 이미지를 다른 방식으로 본다는 아이디어에 기초한 새로운 유형의 영화이다. 영상을 보면서 발견한 것들은 새로운 장소, 낯선 장소, 현실보다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장소의 인상을 주는데 이미지의 질감뿐만 아니라 다양한 촬영 상황에서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은 경이롭다. 비디오 게임을 배신하는 기괴한 시각적 기법과 모호한 주제와 철학적 레토릭으로 가득 찬 이 영화는 지루함과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현대영화에 대한 기대를 거스르는 창작 방법을 활용하여 새로운 네트워크가 세상과 인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그려낸다. 에두아르도 윌리엄스의 담대한 실험은 영화 이미지의 해체, 세계화에 대한 탐구, 다성적 테크놀로지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비디오 아트를 하나로 녹여 버그에 비견할만한 시네마 쿠테타를 기도(企圖)하고 있다.
에로 팬들에게 1990년대 초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1988년 유진선 감독의 < 매춘 >을 정점으로 한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는 확실히 하향곡선을 그렸고, 이후 < 애마부인 > < 산딸기 > < 변강쇠 > < 빨간 앵두 > < 뽕 > 등 굵직한 프랜차이즈들이 속편을 쏟아냈지만 태작이 대부분이었다. < 사방지 >(송경식. 1988)나 < 애란 >(이황림. 1989) 등 주목할 작품도 있었지만 대세를 막을 순 없었다. 다행히 하향세의 반대편에 에로 비디오가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 젖소부인 바람났네 >(김인수. 1995) 같은 압도적 작품은 도착하지 않았다. 이 틈새에 등장한 이상한 에로 사극 한 편이 있었다. 1993년 여름에 개봉된 양병간 감독의 <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하 <무쓰물>)다. 여기서 ‘양병간’이라는 이름이 왠지 익숙하다고 느끼셨다면… 맞다. 8년 전 < 무서운 집 >(2015)이라는 저예산 호러를 내놓은 바로 그 감독이다. <무서운 집>의 거친 페티시즘과 느닷없이 몰아치는 분위기의 정서적 근원이 궁금했던 관객이라면 <무쓰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현장의 양병간 감독과 배우 김문희. 양 감독은 1950년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계에 들어와 연출부 생활을 했고 1985년에 < 피조개 뭍에 오르다 >로 데뷔했지만 검열로 인해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진 못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는 8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작품으로 파격적인 에로 사극이고, 다음 해 미스터리 멜로인 < 태양 속의 남자 >(1994)를 연출했다. 이후 20년 가까운 공백을 딛고 내놓은 저예산 호러 <무서운 집>(2015)은 컬트로 평가 받고 있다.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지만, <무쓰물>은 조선 시대 설화집 『고금소총』에 수록된 ‘귀봉변괴’(鬼棒變怪)가 원작이다. ‘귀신 들린 방망이의 이상야릇한 일’이라는 뜻으로, 도깨비가 던져 준 양물(陽物), 요즘으로 치면 ‘딜도’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何用物耶)라는 주문을 접하면 건장한 남자로 변해 눈 앞에 있는 여성과 성교를 한다는 판타지 스토리다. 감독은 이 매력적인 소재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두 편의 에로 정전을 끌어왔다. 바로 <변강쇠>(엄종선. 1986)와 <뽕>(이두용. 1986)이다. <무쓰물>은 전자의 ‘과장된 성적 표현’과 후자의 ‘마을을 휩쓰는 섹스 스캔들’이라는, 한국 사극 에로의 가장 중요한 장르 관습을 결합한다. 클리셰를 이용한 안전 장치인 셈인데,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클리셰를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척하면서 위반하고 뒤집는 태도다. 김문희와 이미지의 캐스팅은 이 영화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1960년대 동갑이던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 노련하면서도 섹슈얼한 연기를 해낸다. 이미지는 아쉽게도 2017년 5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주인공은 한 과부(김문희)와 오 과부(이미지)다. 독수공방을 벗어날 수 있게 정인을 점지해 달라고 매일처럼 폭포수 밑에서 정화수 떠놓고 빌던 한 과부는 어느 날 우연히 집 마당에서 양물을 줍는다. 무심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혼잣말을 하자, 갑자기 상의를 탈의하고 한쪽 다리는 걷은 건장한 사내(이상일)가 나타나 한 과부에게 달려들고, 마을에 지진이 날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의 방사가 치러진다. 나무 막대기에서 11단 변신을 통해 정인으로 변하는 남자 덕에 한 과부의 얼굴엔 화색이 돌고, 이를 수상하게 생각한 오 과부는 그 비밀을 알게 되고, 양물을 훔친 오 과부도 놀라운 경험을 한다. 이후 양물은 마을을 돌아다니게 되고, 결국 여인들과 함께 그 요술 방망이는 관아에 끌려가게 된다. 사또(홍성민)는 양물을 뜨거운 물에 끓이기도 하고 불 속에 넣기도 하지만, 끄떡없다. 결국 단두대를 통해 절단하려는 찰나, 변신이 이뤄지며 등장한 사내는 한 과부를 번쩍 들어 안고 늠름하게 걸어간다. 한 과부가 치성 드리는 장면. 사극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지만, 바위와 폭포수가 만들어내는 교묘한 미장센은 분출하는 성욕에 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무쓰물>은 한국의 극장용 에로 사극 끝물에 등장한 전복적 텍스트다. ‘판타지 에로 사극’이라 부를 수 있는 이 영화는 그 환상성을 토대로, 에로 사극에서 여성에 대한 양대 억압 기제였던 ‘은장도’와 ‘열녀문’ 이데올로기를 뒤집는다. 절개를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자결하겠다며 욕망을 억압하고, 가부장제에 순응한 대가인 열녀문을 하사 받기 위해 역시 욕망을 억압해야 했던 조선 시대 사극. 이 장르가 항상 그 욕망의 경계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냈다면 <무쓰물>은 그 제약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억압 같은 게 있었어?”라고 반문하듯, 이 영화에 등장하는 마을의 아낙네들은 열녀문을 하사 받은 양반댁 마님이든, 여염집의 과부댁이든, 어엿한 남편을 둔 유부녀든, 갑자기 마을에 찾아 든 양물(과 그것이 변한 사내)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집단적 욕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영화 초반부 어느 양반집 마님이 외간남자를 취한 후 관계가 끝나자 하인들을 시켜 먼 곳에 내다 버리는 설정이 등장한다. 조선 시대 하류층의 수절 과부가 노총각이나 홀아비를 납치하는 일(이른바 ‘보쌈’)이 있었다곤 하지만, <무쓰물>은 상류층 여성의 원 나잇 스탠드를 과감하게 영화 첫 장면에 배치하며, 이 영화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상당 부분 이탈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양물이 변신한 사나이도 흥미롭다. 일반적인 에로 사극의 돌쇠가 산발 스타일의 순수남이라면, <무쓰물>의 사나이는 상투를 틀었고 항상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서 한쪽 바지는 허벅지까지 걷었다. 헝크(hunk, 덩치가 크고 섹시한 남자) 스타일에 결혼한 남자의 징표인 상투가 있는, 변형된 남창(gigolo) 이미지다. 원 나잇 스탠드와 지골로. <무쓰물>은 이러한 요소를 통해 1980년대 에로 사극과 결별한다. 양물은 11단 변신을 거치며 사나이로 변한다. 돌쇠가 아닌, 헝크이자 지골로 이미지를 지녔다. 이 영화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건 비역질에 대한 묘사다. 양물은 성적 대상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주문에 반응하고, 사나이는 눈 앞에 보이는 존재를 무조건 범하는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인데 스님이나 사또도 피해가지 못한다. 특히 관아에서 사또와 이방이 비역질을 당하는 대목은 “찢어졌구만!”이라는 고통 섞인 대사와 함께 한국 사극에선 접하기 힘든 설정이다. 종교와 정치에 대한 반역적 메타포라고 확대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성적 표현의 수위 만으로도 <무쓰물>은 선을 넘는다. 여기서 <무쓰물>은 애너크로니즘(anachronism)을 통해 확실하게 탈주한다. 번역하면 ‘시대 착오’ 정도가 될 애너크로니즘은 조선 시대 배경 영화에 고려 시대 의상이 등장하는 정도의 고증 오류 수준이 아닌, 좀 더 파격적인 방식으로 <무쓰물>에 확실한 인장을 남긴다. 마을 전체가 양물의 광풍에 휩싸이자, 음란함을 다스리는 음무제(淫撫祭)가 치러진다. 이 장면에서 일반적 사극이라면 무당의 굿판이 벌어지겠지만, <무쓰물>은 놀랍게도 동네 여인네들이 모여 캉캉 춤 추는 장면을 보여준다. 음무제의 캉캉 춤과 해피 엔딩. 이 영화는 사극 장르를 경쾌하게 해체한다. 감히 말하건대 한국영화에서 이런 파격은 없었고, 이외에도 강인구의 전자 음악(그는 <무서운 집>에서도 음악을 맡았음)이나 길로틴의 등장 등은 <무쓰물>의 장르 해체적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나이가 한 과부를 안고 어디론가 가는 대목은 한국 사극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해피 엔딩이자 감동의 피날레다. 부디 두 사람, 행복하시길.
영화 <낙동강>과 교향시 <낙동강의 시(詩)> <낙동강의 시(詩)>는 윤이상의 미발표곡이다.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17년에 자필 악보가 발견되어 2018 통영국제음악제 공식 공연 프로그램으로 추진되었고, 2018년 4월 5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한스-크리스티안 오일러가 지휘한 하노버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세계초연했다. 윤이상이 1956년 11월 30일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윤이상은 한국에서 <낙동강의 시>를 작곡하다가 1악장과 2악장을 파리에서 완성했고 그곳에서 3악장을 써서 11월 29일 저녁에 전곡을 완성했다[편지상의 제목은 '낙동강시'이며 자필악보상의 제목은 'Poems of the Nak-tong River'이다]. 윤이상은 같은 해 4월 <현악사중주 1번>으로 서울시문화상을 받고 6월에 유학길에 올랐으며, 처음에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유학하다가 서베를린 국립음대(현 베를린 예술대학)로 옮겨서 그곳에서 학업을 마쳤다. 제목과 작곡 시기 등을 고려하면,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와 영화 < 낙동강 >의 관련성을 의심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낙동강의 시>가 초연되던 2018년 당시에는 영화 필름이 유실된 상태였으며, 인터넷 검색으로 접근 가능했던 주변 정보에는 영화 음악을 담당한 사람이 김동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낙동강의 시> 세계초연을 앞두고 쓴 프로그램 노트에서, 글쓴이는 영화 <낙동강>과 교향시 <낙동강의 시> 사이에 간접적인 관련성 정도가 의심된다고 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혹을 남겼다. "1악장은 웅장한 팡파르로 시작하고, 핵심이 되는 4도 상행 음형이 악곡 전체의 씨앗이 됨으로써 작품을 지탱하는 형식적 일관성을 확보한다. 이 팡파르와 그에 이어지는 선율 사이의 급격한 텍스처 대비는 마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에서 실제 영화로 이어지는 장면전환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이 과연 영화 <낙동강>과 무관한지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유실된 영화 필름을 발굴함으로써, 이제 기존의 잘못된 정보를 다음과 같이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 오해 ①: 영화 <낙동강>의 음악을 맡은 사람은 김동진이다. ☞ 진실: 영화 크레딧에 김동진 이름이 없으며 '음악·작곡: 윤이상'이라고 되어 있다. • 오해 ②: 영화 <낙동강>에 나오는 윤이상 작곡 <낙동강>은 오늘날 알려진 <낙동강>과 다른 곡이다. ☞ 진실: 영화 <낙동강>에는 오늘날 알려진 곡과 동일한 윤이상의 <낙동강>이 사용되었다. • 오해 ③: 윤이상이 <낙동강> 제목으로 쓴 노래는 두 곡이며, 윤이상의 또다른 <낙동강>은 '경남도민의 노래'처럼 불렸다. ☞ 진실: '경남도민의 노래'처럼 불렸던 노래는 윤이상 곡이 아닌 박태현 곡이다. • 오해 ④: 영화 <낙동강>과 윤이상 교향시 <낙동강의 시> 사이에는 간접적인 관련성 정도가 의심된다. ☞ 진실: 영화 <낙동강>에 사용된 음악은 윤이상 교향시 <낙동강의 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확인된다. 영화의 도입부와 교향시의 도입부 영화 <낙동강>은 트럼펫 팡파르로 시작하며, 그 주제선율은 윤이상 교향시 <낙동강의 시>의 1악장 도입부 주제와 사실상 동일하다. 4도 상행 음정을 핵심으로 하는 팡파르 주제는 영화 곳곳에서 변형·반복되며 국면 전환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팡파르와 함께 화면에 나오는 짧은 시는 이은상 시 <낙동강>의 3연 구조와 호응한다. (윤이상 <낙동강의 시> 1악장 팡파르 주제) 낙동강 / 흐르고 흘러서 / 쉬임 없는 낙동강 겨레의 전통을! / 겨레의 승리를! / 겨레의 희망을! 한줄기 물결에 / 담아싣고 / 오늘도 / 낙독강은[sic] 흘러간다 팡파르에 이어서 윤이상 작곡 <낙동강>이 합창으로 나온다. 이때 화면으로는 무용수의 춤, 강변의 풍경 등과 더불어 '구상 양성봉, 원작 이은상, 음악·작곡 윤이상' 등의 크레딧이 나온다. 이은상 시 <낙동강>은 ① 전통의 낙동강 ② 승리의 낙동강 ③ 희망의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3연 구조로 되어 있고, 영화 <낙동강>의 플롯 구조는 이은상 원작시와 호응한다. 윤이상의 <낙동강>은 이은상 시 <낙동강>을 가사로 하며, 3절까지 이어지는 노래가 영화 도입부에 모두 나옴으로써 이은상 시 전체를 노래하는 동시에 영화 전체 내용을 개괄한다. 이것은 오페라에서 서곡(overture)이 오페라 전체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것과 비슷하다. (윤이상 <낙동강의 시> 2악장 오보에 주제) 영화 <낙동강> 제1절: 전통의 낙동강 보아라 신라 가야 빛나는 역사 흐르듯 담겨있는 기나긴 강물 잊지마라 예서 자란 사나이들아 이 강물 네 혈관에 피가 된줄을 오 낙동강 오 낙동강 끊임없이 흐르는 전통의 낙동강 윤이상 곡 <낙동강>이 3절까지 끝나면, 음산한 현악 트레몰로 음형과 더불어 구슬픈 오보에 독주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때 오보에 주제와 현악 음형은 윤이상 교향시 <낙동강의 시> 2악장 주제와 사실상 동일하다. 강변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과 더불어 '낙동학원' 현판이 보인다. 남녀 주연인 박일령(이택균 분)과 백옥남(최지애 분)이 등장하고, 옥남이 낙동학원 홍보물로 짐작되는 전단지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이때 어린이들이 배를 타고 노래하는 모습을 일남이 지켜보는 장면이 지나가듯 나온다. 노래는 이은상 시 <낙동강>을 가사로 하며, 1절 전체와 2절 일부가 영화에 나온다. 작곡자는 알 수 없다. 박일령이 낙동학원에 모인 마을 사람들에게 낙동강의 문명사적·문화사적 의미에 관해 강의한다. 수업이 시작되면서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변하며, 관객은 마을사람의 일부가 되어 수업을 듣게 된다. 이때 <영산회상(靈山會相)>을 비롯한 한국 전통음악이 배경으로 나온다. 영화 <낙동강> 제2절: 승리의 낙동강 산 돌아 들을 누벼 일천 삼백리 구비 구비 여흘 여흘 이 강 위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정의의 칼로 반역의 무리들을 무찔렀나니 오 낙동강 오 낙동강 소리치며 흐르는 승리의 낙동강 아이들이 전쟁놀이를 하고, 실제 전쟁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일령과 옥남이 마을 사람들 앞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발언을 하고, 마을 사람들이 식량과 귀중품을 땅에 묻어두고 피난을 떠난다. 피난 장면과 함께 비통한 합창곡이 흐른다. 이 곡의 음 소재와 영화의 다른 곳에서 사용된 관현악 음형이 유사성을 띄는 것으로 보아 이 합창곡은 윤이상이 영화를 위해 작곡한 것으로 짐작된다. (가사는 '낙동강'으로 시작하는데, 글쓴이는 그 이상의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일령이 옥남에게 입대 결심을 밝히는 듯한 장면과 더불어 이은상 시 <꽃다발>이 자막으로 나온다. "조국을 구하려고 뛰쳐나선 그대앞에 / 황금을 바치리가 진주를 바치리가 / 값주고 못살 꽃다발 한아람을 바칩니다." 일령이 배를 타고 마을을 떠나고, 마을 사람이 태극기를 흔들며 일령을 환송한다. 옥남은 높은 곳에 올라가 마지막까지 일령이 탄 배를 지켜본다. 일령의 입대를 기점으로 전황은 반전된다. 영화 <낙동강> 제3절: 희망의 낙동강 두 언덕 고을 고을 정든 내 고장 불타고 다 깨어진 쓸쓸한 폐허 돋아 오는 아침 햇빛 가슴에 안고 나가라 네 힘으로 다시 세우라 오 낙동강 오 낙동강 늠실늠실 흐르는 희망의 낙동강 군복을 입은 일령이 아내 옥남에게 돌아온다. 옥남이 묘비를 세운 '장송의 무덤' 앞에서 일령이 묵념한다. 마을 곳곳에, 나룻배에, 아이들의 손에 태극기가 휘날린다. 마을 사람들이 잔치를 연다. 아이들이 박태현 작곡 <낙동강> 중 1절을 부른다. 사람들이 마을을 재건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오고, 일령과 옥남이 함께 강물을 바라본다. 윤이상 작곡 <낙동강> 중 3절이 흐르는 가운데 영화가 끝난다. 윤이상의 '영화 주제가' <낙동강>과 교향시 <낙동강의 시> 영화 <낙동강>은 1951년에 제작이 시작되어 1952년에 발표되었고, 음악학자 김용환에 따르면 윤이상이 <낙동강> 노래를 작곡한 것 또한 1952년이다. 또 영화 개봉 당시의 기억에 관한 진의장 전 통영시장의 증언에 따르면, 윤이상이 작곡한 <낙동강>이 영화에 삽입된 사실은 그때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진의장은 박태현이 작곡한 <낙동강>을 윤이상 곡으로 오해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윤이상의 노래가 영화 개봉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윤이상은 처음부터 영화에 삽입할 목적으로 <낙동강>을 작곡했을 가능성이 있다. (좌측 박태현의 <낙동강>, 우측 윤이상의 <낙동강>)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추측하자면, 처음에는 김동진이 영화음악을 맡기로 했다가 영화 제작 도중에 윤이상이 맡는 것으로 바뀌었을 수 있다[김동진은 양명문 시에 곡을 붙인 <낙동강>을 1951년에 남긴 바 있으나 영화 <낙동강>과는 관련이 없다]. 또 영화음악에 관한 전권이 윤이상에게 있었을 것 같지는 않으며, 영화 곳곳에 삽입된 음악의 완성도가 고르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윤이상은 영화음악을 작곡한 이후 그 일부를 따와서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를 별도로 작곡하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낙동강의 시> 자필악보의 목차는 1악장 프롤로그, 2악장 黃昏(황혼)이 물들 때, 3악장 嘉俳節(가배절; 한가위), 4악장 갈대밭, 5악장 豐年歌(풍년가), 6악장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완성된 작품은 3악장 짜임새로 1악장 프롤로그, 2악장 洛東江(낙동강)의 저녁, 3악장 舞曲(춤곡)으로 되어 있다. <낙동강의 시>는 1·2악장과 3악장 사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3악장은 윤이상이 유학을 떠난 이후에 작곡한 것이며, 어쩌면 윤이상이 6악장 구성을 3악장 구성으로 바꾼 것 또한 이와 관련 있을 수 있다. 윤이상이 이은상 시의 3연 구조 또는 영화의 세도막 구조를 의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악곡의 음악적 서사 구조는 영화 또는 이은상 시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윤이상은 파리 시절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때때로 배움에 대한 조급함을 드러냈으며, <낙동강의 시>에 관해서는 "너무 통속성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자신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음악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여기서 '통속성'이란 영어 'conventional'에 대응하는 말로 유럽의 최신 아방가르드 음악이 아니라 전통적인 기능화성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윤이상은 오늘날 서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현대음악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낙동강의 시>는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이 서구적 의미에서 전통적인(conventional) 음악 어법으로 작곡한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곡가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윤이상은 3악장에 나오는 민요풍 선율을 훗날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7)에 사용한 바 있다. 백기완의 시를 사용한 해당 부분의 가사는 "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등이다. 참고문헌 김용환, "윤이상: 그의 삶과 음악." 『음악과 민족』 (부산: 민족음악학회, 1996), 제11권 0호, pp.11-48. 김원철, "윤이상: 낙동강의 시(詩)." 『Returning Home (2018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 (통영: 통영국제음악재단, 2018), p.122. 노동은, "새로 발굴한 윤이상의 50 년대 글과 노래." 『민족음악의 이해』 (부산: 민족음악학회, 1994), 제3권 0호, pp.325-341. 박태현, "낙동강." 『한국애창가곡 88』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3), pp.90-91. 윤이상, Poems of the Nak-tong River. 미출판 자필 악보. 윤이상,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 1956년 11월 30일. 이용민, "영화 <낙동강> 개봉 당시의 기억에 관한 진의장 전 통영시장 인터뷰." 2018년 2월 경. 이용민, "박태현 작곡 <낙동강>에 관한 진의장 전 통영시장 인터뷰: 영화에 삽입된 음원을 듣고 한때 '경남 도민의 노래'처럼 불렸던 노래가 맞다고 증언." 2022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