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젤리스 카잔
- 참여 작품
- 유랑극단 (1975), 1936년의 나날 (1972)
1986년 제임스 호너는 이제 막 영화음악가로서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시기였다. 70년대 전반에 걸쳐 UCLA에서 영화음악을 가르치던 그는 종종 미국영화협회의 의뢰를 받아 독립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하며 이론보단 실제 작업에 더 큰 매력을 느꼈는데, 결국 가르치던 것을 그만두고 로저 코만의 도움을 얻어 B급 영화 <심해의 공포 Humanoids from the Deep>와 <우주의 7인 Battle Beyond The Stars>을 통해 상업영화에 데뷔하게 된다. 두 영화에서 각각 그 시절 유행하던 두 스타일, 조르지오 모르도와 반젤리스로 압축되던 전자음악과 존 윌리엄스와 제리 골드스미스로 대표되던 대규모 관현악 사운드, 모두 훌륭하게 들려준 바 있는 이 늦깎이 신인을 주목한 건 당연지사.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 <악령의 리사>와 올리버 스톤의 <악마의 손> <늑대인간의 습격> 등 다양한 저예산 장르물들을 통해 노련한 감각과 대담한 시도들을 펼쳐 보이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메이저의 발판에 올라서게 된 건 프랜차이즈 SF < 스타트렉 >의 속편과 월터 힐 감독의 액션 코미디 < 48시간 >이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면서부터. 디즈니는 베테랑 영화음악가 조르쥬 들르뤼와 앨머 번스타인이 음악을 맡았던(그러나 해고된) <이상한 실종 Something Wicked This Way Comes>과 <머나먼 시애틀>에 제임스 호너를 대타로 내세우며 그의 실력에 깊은 신뢰감을 보냈고, 이후 < 코쿤 >과 < 코만도 > 등 잇따른 흥행작들을 담당하며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 피블의 모험 An American Tail >과 세계적인 지성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제작된 다국적 프로젝트 < 장미의 이름 >을 앞둔 1986년은 제임스 호너에게 분명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 그리고 또 한 작품. 20세기폭스가 7년 만에 속편 제작에 나선 < 에이리언 2 >의 음악도 그의 몫이었다. 제임스 호너 녹음을 위해 영국 땅에 내렸을 때만 해도 호너는 부푼 꿈과 희망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국은 유년시절 왕립음악학교에 다니며 음악을 배우던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고, 이미 1983년 <브레인스톰>과 < 혹성의 위기 >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협연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다. 더욱이 제임스 카메론과는 앞서 로저 코만이 제작한 영화 <우주의 7인>에서 미술과 음악으로 만난 바 있기에 소통에도 문제가 없으리라 여겼다. 이는 호너의 오판이었다. <에이리언 2>의 작업은 지옥과도 같았으며, 일생일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치욕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영화의 개봉일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에게 전달된 촬영분은 전무했다. 작업에 6주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3주가 지나도 촬영은 끝나지 않았고, 편집도 이뤄지지 않았다. 제작자인 게일 앤 허드는 어쩔 수 없이 오케스트라를 먼저 섭외했다. 기다리는 동안 호너는 촬영장과 편집실을 다니며 분위기를 익혀 곡을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편집이 덜 끝나 전체적으로 화면 분량에 정확히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녹음이 이뤄질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당시 워낙 노후된 장비들로 차 있어서 전자음마저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에 쫓긴 호너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곡을 쓰고 연주해야 한다고 성토했고, 녹음 하루 전날엔 한 시퀀스가 통째로 편집이 바뀌어 36시간 동안 다시 작업을 해야 했다. 곡에 대한 의견 차이로 호너와 카메론은 수없이 다퉜고, 더 완벽한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감독의 말에 그만두겠다며 강경하게 응수했다. 결국 호너의 곡은 의도와 상관없이 누더기로 마구 재단되고 반려당하며 삭제되었고, 그는 두 번 다시 제임스 카메론과 작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호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음악상에 처음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에이리언 2 여러모로 제임스 호너의 <에일리언 2>는 제리 골드스미스가 음악을 맡은 전편 < 에이리언 >과 닮았다. 고딕적인 호러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1편과 달리 밀리터리 액션 음악에 가까웠던 후속편이지만, 두 작품 다 영화상에서 스코어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1편의 감독이었던 리들리 스콧과 편집자인 테리 로링스는 제리의 스코어가 너무 빽빽하다고 생각했고, 좀 더 미니멀한 사운드를 찾다 결국 제리의 다른 스코어였던 <프로이드>에서 여러 곡을 골라 배치했다. 엔드 크레딧엔 하워드 핸슨의 ‘Symphony No. 2, Romantic’을 삽입했다. 제리 골드스미스는 이를 두고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을 미워(?)했다. 제임스 호너가 음악을 맡은 속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제임스 카메론은 호너의 다른 스코어였던 < 스타트렉 2 >과 3편의 요소(정확히는 클링곤 테마)가 묻어나기를 요구했고, 오프닝과 엔딩 테마에선 아람 하차투리안의 ‘가야네 발렛 슈트’의 곡조를 인용하기를 바랐다.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에서 잠깐 동안의 평화와 안식을 보여줄 때 흘러나왔던 곡으로, <에일리언 2>에서도 모든 상황이 시작하기 직전의 평화스러운 모습과 모든 것이 종료된 이후 안식을 나타내듯 상징적으로 쓰이길 원했다. 호너가 만든 많은 곡들이 빠졌고, 원래 장면과 다르게 잘려져 부분적으로만 사용되거나 또는 다른 곡으로 대체되었다. 편집상에서 아주 드러내 감독판에서만 들을 수 있는 ‘Dark Discovery / Newt’s Horror’를 비롯해 착륙선을 타고 비행할 때 흐르는 ‘Combat Drop’이나 뉴트가 등장하던 장면에 쓰일 ‘Newt’, 그리고 여왕과 리플리가 대면하던 씬의 ‘The Queen’도 생략되었다. 해병대가 연구실에서 에일리언 숙주를 발견하는 장면에 쓰일 ‘Med. Lab’은 거의 음악 없이 진행되는 바람에 아주 적은 부분만 인용되었고, 대기정화시설에서 흐르던 ‘Atmosphere Station’ 역시 작은 레벨로 분위기를 자아내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반면 여러 번 반복돼 사용된 큐도 있다. ‘Queen To Bishop’과 ‘Bishop’s Countdown’이 바로 그 곡들로 특히 후자 경우 녹음 당시 한 곡이 비었다는 걸 깨닫고 호너가 단 하루 만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큐였다. 파워풀하고 아주 강렬한 액션 큐로 지금껏 북미 예고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곡으로도 유명하다. 진정한 지옥도를 맛보고 싶다면 ‘Futile Escape’가 제격이다. 이미 앞서 얘기한 ‘Bishop’s Countdown’과 리플리가 해병대들을 구하러 장갑차를 끌고 갈 때 흐르는 ‘Ripley’s Rescue’로 변주되긴 했지만, 진정한 묘미는 8분 30초에 이르는 이 대곡에 있다. 제임스 호너가 작업 중에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 분노, 좌절과 실망을 한데 뭉쳐 격정적으로 쏟아낸 것과 같은 이 악곡은 영화상 가장 긴 탈출 (액션) 시퀀스에 쓰인 트랙으로 가히 세상의 모든 아비규환과 절규, 광기와 공포가 흉포하게 담겨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듯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총공세를 펼쳐대는 관현악의 놀랄만한 비명은 강렬하고도 무시무시하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를 깨우치게 할 만큼 모든 혼이 울부짖고 브라스가 포효하며 스트링이 빠르게 활강하고 약동한다. 세상의 모든 악기가 내지르는 공포의 처절한 소리들은 너무도 실감 나게 그리고 절절하게 이 악몽을 묘사한다. 어디에도 없는 출구와 뚫려버린 피난처를 찾아 헤매게 되는 심경을 담아낸 아우성은 극도로 강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킨다. 그럼에도 결국 호너는 카메론을 100% 만족시키지 못했다. 카메론은 여전히 전편의 영향력이 남아있기(연장되기)를 바랬고, 그 분위기를 위해 골드스미스의 큐들을 몇 곡 골라 2편에서 그대로 사용했다. 1편 사운드트랙에 있는 ‘Parker’s Death’와 ‘Sleepy Alien’ 등이 그러한 트랙들이다. 2001년에야 이 모든 (생략, 변형된) 큐들을 온전하게 담아낸 디럭스 에디션 버전의 사운드트랙이 출반되었다. 타이타닉, 아바타 두 명의 제임스가 화해하기까지 대략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카메론과 호너는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거장이 되어 있었고, 시간은 완벽주의자인 그 둘을 조금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다. 호너는 카메론이 구상한 < 타이타닉 >의 이야기를 맘에 들어 했고, 카메론은 바로 전 해 작업한 호너의 < 브레이브 하트 >를 만족해했다. 둘은 첫 만남에서 5분 만에 화해하고 3시간 동안 <타이타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카메론과 호너는 이 영화로 처음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다. 다행히도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이후 둘은 다시 10 여년이 지나 < 아바타 >의 작업을 함께했으며 세상의 모든 영화의 수익에 관련된 기록을 싹 다 갈아치웠다. 그들은 다시 2016년 이후 <아바타> 후속편들로 세상을 지배할 계획 중에 있다. Track List 1. Main Title 2. Bad Dreams 3. Dark Discovery / Newt's Horror 4. LV-426 5. Combat Drop 6. The Complex 7. Atmosphere Station 8. Med. Lab. 9. Newt 10. Sub-Level 3 11. Ripley's Rescue 12. FaceHuggers 13. Futile Escape 14. Newt Is Taken 15. Going After Newt 16. The Queen 17. Bishop's Countdown 18. Queen To Bishop 19. Resolution And Hyperscape 20. Bad Dreams (Alternate) 21. Ripley's Rescue (Percussion Only) 22. LV-426 (Alternate Edit - Film Version) 23. Combat Drop (Percussion Only) 24. Hyperspace (Alternate Ending)
1989년엔 두 편의 ‘검은 비’ 영화가 만들어진다. 하나는 일본에서 < 구로이 아메 >로, 다른 하난 할리우드에서 < 블랙 레인 >으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영화지만 검은 비가 상징하는 바는 같았다. 원폭. 떨어진 도시에선 삼일 밤낮으로 검은 비가 내렸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특유의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화법으로 패전 직후 그 빗속에 놓인 피해 가족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리들리 스콧은 스타일리쉬한 감각으로 그 비를 맞고 자란 야쿠자의 역습에 고군분투하는 미국 형사의 액션 느와르를 완성해냈다. 버블이 최고조에 이르던 시기, 패전국에서 세계 제 1의 경제 대국으로 위상이 바뀐 일본의 미묘한 지형도를 두고 공교롭게 등장한 이 두 동명의 영화는 그저 한낱 영화로만 치부하기에 서로 간의 입장과 시선이 복잡하고도 불편하게 얽혀있었다. (버블이 꺼지며 휘발되고 말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사회적 함의와 책임은 지워버린 채 민생의 고초와 오락으로 덧댄 ‘검은 비’ 재림이 조금은 아쉽고 또 무섭게 다가왔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에게 그 검은 비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리들리가 <블랙 레인>을 만났을 때 그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 에이리언 > 이후 그는 줄곧 내리막을 걸었다. 지금에야 저주받은 걸작으로 칭송받지만 < 블레이드 러너 >는 그의 의도와 달리 대폭 수정된 채 극장에 걸렸다 폭삭 망했고, 꽃미남 톰 크루즈가 비현실적인 미모를 샤방샤방 발산하던 < 리젠드 >는 많은 양을 잘라냈음에도 지루하단 평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심지어 차기작으로 찍은 톰 베린저와 미미 로저스가 함께한 범죄물 < 위험한 연인 >은 지금까지도 리들리 스콧이 감독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그저 그런 범작이 되었다. 애초의 <블랙 레인>도 리들리의 몫이 아니었다. < 로보캅 >으로 대박친 폴 베호벤이 내정된 상태였으나 < 토탈리콜 >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그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그러나 탐미적이고 유려한 오사카의 야경을 일본인보다 더 환상적으로 담아낸 이 영화는 미국에서만 4600만 불의 흥행을 기록했고, 전 세계적으론 1억 불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리들리 스콧은 <블랙 레인>의 성공을 발판 삼아 오랜 기간 준비했던 < 델마와 루이스 >를 찍어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지명을 받는다. 이후 다소 작품의 부침은 겪지만 80년대 암울했던 상황과 달리 장인으로 인정받으며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블랙 레인>이 리들리 스콧에게 가져다준 또 하나의 행운은 이 영화로 자신의 영원한 음악적 동지 한스 짐머와 조우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그 어떠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미다스의 손이 되었지만, 1989년 당시 한스 짐머는 할리우드에 갓 입성한 신성 중의 신성이었다. 1988년 < 레인맨 >의 음악을 맡기 전까지 그는 주로 영국과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다. 그룹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로 유명세를 탔지만 그 외 다른 여러 밴드들과 작업했고, 팝에서 영화음악으로 넘어온 후론 < 디어 헌터 >와 <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로 유명한 스탠리 마이어스 곁에서 프로듀서와 일렉트릭 슈퍼바이저, 보조 작곡가 등 전천후 포지션을 소화하며 적응력을 높였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은 다른 영화음악가들과 달리 협업 플레이도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성과 진취성을 갖게 했으며, 더 나아가 ‘미디어 벤쳐’에서 ‘리모트 콘트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팀을 갖춰 후학을 양성하고, ‘짐머레스크 Zimmeresque’라는 하나의 시대적인 조류를 형성해 가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데이빗 번, 콩 슈가 함께한 < 마지막 황제 >의 프로듀싱을 물론, < 월드 아파트 >와 <페이퍼하우스> 등의 작품이 인정받으며 <레인맨>을 준비하던 배리 레빈슨에게 픽업되었는데, 그가 짐머에게 부탁한 건 단 한 가지였다. 감성적인 현악 위주의 뻔한 휴머니즘 스코어를 지양해달라는 것. 그래서 탄생한 <레인맨>의 테마가 익히 우리가 들어 알고 있는 그 쿨한 신디 사운드의 멜랑꼴리한 여운이다. 짐머는 이 인상 깊은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에 첫 노미네이트된다. 그에게 할리우드 러브콜이 쏟아진 건 기정사실. 그중에는 전자음악과 남다른 인연(!)이 있던 리들리 스콧도 포함돼 있었다. <블랙 레인>은 한스 짐머의 첫 번째 액션 스코어이자 그의 모든 액션 스코어의 근원이다. 짐머는 조르지오 모르도나 반젤리스 이후 할리우드에서 가장 신디 사운드를 영향력 있게 사용한 영화음악가고, 제리 골드스미스나 존 배리, 모리스 자르 등이 7-80년대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실패하고만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를 가장 완벽히 이뤄냈다. 기술의 발전도 무시 못 할 요인 중에 하나겠지만 전자가 신디를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하나의 악기로만 활용하거나 혹은 전면적인 오케스트라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면, 짐머는 보다 실용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에서 신디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혹은 편곡적인 차원의 믹서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셜리 워커라는 부동의 작곡가 겸 지휘자이자 오케스트레이터와의 만남은 짐머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그는 그 멀티레코딩된 소스를 다양하게 활용해 신디 사운드와 접목시켰다. 물론 아직 <블랙 레인>에선 완벽한 조화가 이뤄지진 않지만 모든 단초와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으며, 동양과 서양, 클래식과 팝 등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사운드는 폭포수처럼 모든 장르를 융합해 휘몰아치고 경계를 지워버린다. 잘 설계된 밑그림처럼 층층이 쌓아올린 음의 견고함은 이후 바로 다음에 나온 < 분노의 역류 >에서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완벽하게 짐머표 사운드를 정립했다. 리들리 스콧이 산업화된 오사카의 정경을 모던하면서도 세련되게 소화해낸 만큼 짐머도 그 스타일에 맞게 재단된 사운드가 필요했는데, 일본의 전통악기인 사쿠하치와 코토, 후에 등을 사용해 동양적인 음색을 담아내는 건 물론, 일본 문화에서 타이고나 하야시 등의 타악기가 갖는 강한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의 퍼커션 대신 신디와 일렉트릭 소스를 활용해 마치 총소리를 듣는 것 같은 타격음을 전면에 배치했다. 따라 초조하고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차갑고도 이국적인 선율로 인물들의 테마를 중간 중간 엮어내며 이 미칠 듯한 질주감을 조절한다. 짐머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닌 채 하나의 시퀀스 전체를 아우르는 긴 스코어링을 구사하는데, 이는 짧은 큐들과 다양한 테마로 인해 깨질 수 있는 통일감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다채로운 변주와 리듬의 배치, 테마들의 병합 등 유기적인 방식을 통해 관객들을 보다 영상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이후 이런 짐머레스크 사운드는 < 크림슨 타이드 >와 < 더 록 >으로 이어지며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으며, 특히 볼거리로 가득 찬 블록버스터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스타일로 현 할리우드 스코어의 주류가 되었다. <블랙 레인>을 더욱 세련되게 만든 건 짐머의 스코어 외에도 다양한 삽입곡들의 매력에도 크게 빚을 지고 있다. 오사카 야경을 헬기 샷으로 담아낸 장면에서 흘러나온 레게밴드 UB40의 ‘The Way You Do the Things You Do’을 필두로, 나이트클럽에서 나온 소울 투 소울의 ‘Back to Life’와 짐머와도 인연이 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왜색 짙은 ‘Laserman’, 이기 팝의 ‘Livin’ on the Edge of the Night’ 그리고 짐머가 직접 작곡한 이 영화의 실질적 주제곡 ‘I’ll Be Holding On’까지 하나하나 강렬하고 독특한 질감을 갖췄다. 1989년 버진 레코드에서 나온 사운드트랙은 한스 짐머의 스코어를 20여분 정도 수록하고 있으나, 작년 9월 라라랜드 레코드에서 3,000장 한정 2CD로 모든 수록곡을 온전히 담아낸 버전이 새로 발매되었다. 초창기 한스 짐머의 재기발랄하고 패기 넘치는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블랙 레인>은 현재 유행하는 블록버스터 액션 스코어의 태생을 알린 작품이자 초석을 다진 역작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Track List CD1 1. Sato Pt. 1/One-Way Glass 2. Osaka/Phony Cops 3. You Gonna Be Nice?/Sato Pt. 2 4. Sato Watching/Circling Motorbikes 5. Sugai's Photo/Sato Pt. 3 6. Sato Pt. 4 7. Charlie Loses His Head 8. Sequins 9. Masa's Reprimand/Sugai Pt. 1 10. The Steel Mill 11. Steel Mill Chase/Airplane/Escape 12. Sugai Pt. 2 13. Arrival of Oyabuns/Sato's Arrival/Meeting 14. Bikes/Fight/Nick and Masa CD2 Original Album 1. Livin' on the Edge of the Night - performed by Iggy Pop 2. The Way You Do the Things You Do - performed by UB40 3. Back to Life (Jam on the Groove Mix) - performed by Soul II Soul 4. Laserman - performed by Ryuichi Sakamoto 5. Singing in the Shower - performed by Les Rita Mitsouko and Sparks 6. I'll Be Holding On - performed by Gregg Allman 7. Sato 8. Charlie Loses His Head 9. Sugai 10. Nick and Masa Bonus Tracks 11. Airplane Muzak (Source) - composed by Shirley Walker 12. Charlie Loses His Head Pt. 1 (Alternate Percussion) 13. Charlie Loses His Head Pt. 2 (Alternate With Koto and Oboe) 14. Masa's Reprimand (Alternate) 15. Bikes/Fight (Alternate) 16. Bikes (Percussion Only) 17. Charlie Loses His Head (Monks W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