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낮
- 감독
- 샹탈 아커만
- 제작년도
- 1991
- 출연
- 길랜느 롱드, 토마스 랭맨, 프랑소와 네그레
한밤중에 빨치산들이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을 모아놓은 다음 식량을 내놓으라고 위협한다. 아마도 한국전쟁 중일 것이다. 가난한 이 마을에서는 보릿고개라 자신들이 먹을 식량조차 변변치 않은 지경이다. 그러자 마을 사람 중의 한 명을 사살한 다음 다시 돌아올 때까지 쌀 다섯 가마를 구하라고 말하고 떠난다.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국군 토벌대 장교가 있었지만 이 마을까지 부대가 오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알려준다. 실망한 마을 사람들에게 목사님이 나서서 읍내에 나가 우리를 보호해 줄 사람을 구해오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읍내에 가서 여섯 명의 건달을 이끌고 있는 길용이라는 사내를 만난다. 잠깐, 이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가 아닌가요? 당신의 추측이 맞다.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이 도적들에게 약탈당하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 뭉쳐서 싸우는 시대활극 < 7인의 사무라이 >가 < 바람 같은 사나이 >의 원판이다. 하지만 임권택 이 참조한 영화는 <7인의 사무라이>가 아니라 존 스타제스의 < 황야의 7인 >이다.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 제임스 코번, 찰스 브론슨, 홀스트 부크홀츠, 브래드 덱스터, 로버트 본이 일곱 명의 카우보이로 나온 그 영화. 역시 악당에는 일라이 워락. 임권택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의 하나는 그가 몇 차례이고 할리우드영화들을 리메이크했다는 사실이다. 좀 더 가혹하게 말하면 표절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 한국은 아직 국제 저작권 협회에 가입하지 않았고, 한국영화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노래가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때 임권택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만희 는 < 석양의 무법자 >를 본 다음 < 쇠사슬을 끊어라 >를 찍었다. (그리고 다시 이 영화를 원본으로 하여 김지운 이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을 만들었다) 내가 환기하고 싶은 사실은 임권택이 할리우드 영화와 가졌던 친화성에 대해서 거의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 사이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거나 혹은 그 둘 사이의 간극의 심연 사이에서 인정투쟁을 위한 필사의 도약 따위는 없다. 오히려 그때의 한국영화에서 할리우드영화는 하나의 운명 같은 것이어서 그 안에 머무는 것에 대한 도착적 친화성에의 자발적 항복이라고 설명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1945년 해방, 친일 문학가들이 그렇게 빨리 해방이 될 줄 몰랐다고 탄식을 했을 만큼 절대적인 일본 제국주의의 머리에 원자폭탄을 떨어트리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나라. 1950년 전쟁 속에서 ‘소비에트와 중공’ 사회주의 군대와 싸운 다음 나라를 절반으로 만든 나라. 상상할 수 없는 풍요로움의 왕국.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수품과 문화들. 거기서 싹튼 대학가 포크 송과 이태원 로큰롤. 우리는 이 영향 관계 아래 21세기에도 그렇게 머물고 있다. 그런데 그때는 휴전을 하고 고작 10년이 조금 더 지난 다음이었다.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과 그들이 보는 할리우드영화 사이의 괴리감. “영화를 처음 만들 때는 누구나 목표를 갖게 되잖아요. 그때는 볼만한 영화라는 게 할리우드 영화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다들 그때 본 영화들이 자기의 목표가 된 거예요. 그러다가 점점 그게 얼마나 허망한 목표인 줄 깨달아가면서 자기의 영화를 찾기 시작한 거지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나는 사태를 단순하게 식민지 문화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다. 반대로 여기에는 근대라는 모던한 꿈이 역사라는 악몽과 서로 간섭하면서 그 한계를 초월하기는커녕 그 안에 주저앉아 격렬하게 자신의 실존을 증명해가는 과정이 있다. 이 말의 방점. 그 안에 주저앉기. 말하자면 끊임없는 연습. 그 안에서 영화는 주어진 경험세계로부터 자신의 이념 세계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영화에서 삶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 싶다. <7인의 사무라이>(1954) <황야의 7인>(1960) <바람 같은 사나이>(1968) 임권택 의 세 번째 영화 < 남자는 안 팔려 >는 빌리 와일더의 < 뜨거운 것이 좋아 >이고, 여기서 구봉서 와 이대엽 이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이 했던 여장을 하고 나온(다고 한)다. < 30년 만의 대결 >은 존 포드의 <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 >을 다시 만들었다. 모린 오하라에는 김지미 가 마돈나로 나오고 최무룡 이 존 웨인으로 박노식 이 빅터 맥라글랜으로 나와 긴 주먹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 바람 같은 사나이 >가 < 황야의 7인 >을 리메이크한 사실은 잘 안 알려졌다. 심지어 개봉 당시에도 그런 소개가 없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틀림없이 임권택이 1968년 < 바람 같은 사나이 >를 만들었을 때는 아직 < 7인의 사무라이 >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일본영화가 수입금지 되었으며 극장상영이(나 텔레비전 방영이) 아니면 달리 영화를 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았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오늘날 볼 수 있는 200분 판본의 <7인의 사무라이>가 아니라 다시 160분으로 편집된 극장 개봉 판이었을 것이다. 도날드 리치에 의하면(「The Films of Kurosawa Akira」) <7인의 사무라이>는 개봉했던 1954년 4월 26일 일본에서도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만 잠시 상영하고 사라졌다. 그런 다음 두 번 세 번에 걸쳐 재편집되었고 미국에서는 이 160분 판본을 수입한 RKO 사에서 다시 편집했다고 한다. 이런 미국식 편집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도 < 설국열차 >를 미국에 개봉하면서 하비 와인스타인이 편집한 사례를 알고 있다. <7인의 사무라이>는 1991년에야 190분 버전으로 복원되었고 2002년에 개봉 버전에 가까운 203분으로 복원되었다. 아마도 <7인의 사무라이>를 서부극으로 각색한 존 스타제스는 RKO 편집본을 보았을 것이다. <황야의 7인>은 일본에 개봉해서 일본 영화평론의 웨스턴 ‘狂人’이라는 마스부치 겐(增淵健)으로부터 “충분히 납득할만한 구로사와 원작의 환골탈태”라고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는 <황야의 7인>을 본 다음 “완전히 실망스럽다”고 그냥 간단하게 대답했다. 1960년에 만들어진 이 서부극은 재빨리 수입되어 서울에서 1962년 크리스마스 프로그램으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그해 임권택은 그해 구정에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로 데뷔하였고 7월에 두 번째 영화 < 전쟁과 노인 >을 만들었다. 아마 그런 다음 <황야의 7인>을 극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서부극 영화들에 대해서 모든 장르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셈에 포함시켜 주기 바란다. 하지만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사무라이 활극도 아니고 서부극은 더더구나 아니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이자 다찌마와리 액션활극이고 반공영화이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바람 같은 사나이>는 1968년의 영화이다. 길용은 오래전 동백마을에서 쫓겨난 사내였다. 그런 다음 그는 떠돌이 약장사와 바람잡이 이인조, 공기총 명사수, 소매치기 이인조를 이끌고 장터마다 돌아다니면서 가짜 약을 팔고 내기 판돈을 따고 길거리에서 주머니를 터는 패거리를 이끄는 두목이다. 말하자면 칠 인의 건달들. 그들은 갈 곳 없는 자신들에게 길용이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길용은 가난 끝에 사랑하던 영희가 이웃 마을 돈 많은 집에 시집을 가자 분을 참지 못하고 혼례식장에서 소동을 부리고 아버지로부터 다시는 고향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는 말을 듣고 쫓겨난 처지였다. 길용을 찾아온 고향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게다가 공비들에게 아버지가 총살을 당하고 지금은 어린 여동생 옥이 혼자 남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 아직도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영희가 있는 고향에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떠나기 전에 모은 돈을 패거리 동생들에게 모두 나눠주지만 그들은 형님이 고향이라면서 함께 마을을 지키기로 뜻을 모은다. 나는 무리하게 <바람 같은 사나이>의 서사를 < 7인의 사무라이 >로부터 가까이서 연상하거나 < 황야의 7인 >과 비교하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세 편은 서로 정교하게 영향을 주고받았다기보다는 마치 그저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남아있는 감흥을 가지고서 자기의 편에서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세 편의 영화는 비교하기에 너무 예술적 차이가 벌어진다. <7인의 사무라이>는 단지 걸작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할 정도로 위대한 영화이다. 도날드 리치는 일본영화란 <7인의 사무라이>라고 말했다. 완전하게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 견해를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 <황야의 7인>이 걸작은 아니지만 웨스턴 장르 안에서 컬트의 지위를 차지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바람 같은 사나이>는 한국영화사 안에서조차 거의 기억되지 않을 만큼 실패했다. 단지 발견되지 못했다기보다는 대부분 엉성하게 구성되었으며 이 시기 한국영화의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같은 해에 임권택 이 만든 세 편의 영화 중에는 < 요화 장희빈 >이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임권택은 어떤 감흥을 찍고 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게 대부분 단조롭게 나타나고 있고 종종 아직은 두텁게 장면을 뒤덮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 태백산맥 >을 본 다음 다시 <바람 같은 사나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거기서 겹쳐져 있는 동일한 두 개의 장면들 사이에서 오히려 이쪽이 더 선명한 기억의 흔적들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임권택은 그 스스로 돌아보기도 싫은 기억이라고 고향에서의 빨치산과 국군 사이의 상호상잔(相互相殘)의 밤과 낮을 언급하면서도 처음부터 이 시간에로 마치 하나의 원장면처럼 되돌아오고 다시 돌아왔다. 이건 임권택의 영화를 차례대로 보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여기서 저기서, 이번에도 또 이번에도, 그 시간을 그게 견딜만해 질 때까지 건드려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걸 임권택의 원장면에 대한 탐구라는 하나의 (트라우마라기보다는 멜랑콜리에 가까운) 개념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이다. 기억 속의 기호의 난독증. 그걸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산산조각 난 광경. 상상 속에서조차 겁먹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그러진 이미지. 하지만 그걸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그 장면의 공포와 다시 마주쳐야만 한다. 나는 지금 따분하게 한 사람의 전기를 재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영화와 삶이 분리될 수 없는 텍스트의 서명을 써 놓는, 놓을 수밖에 없는, 그렇게 반복할 수밖에 없는 방법의 실존에 대해서 질문하려는 것이다. 밤에 내려오는 사람들 영화의 첫 장면. 공비들이 한밤중에 산에서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집합시킨다. 이때 임권택 은 이 장면을 마치 귀신들이 무리 지어 찾아오는 공포영화처럼 찍었다. 밤에 찾아오는 사람들. 왜 그들은 낮에 찾아오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바깥에 있는 존재들. 하지만 영토의 안에 있는 사람들. 어쩌면 거기 아버지 어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직은 그걸 고백할 때가 아니다. 너무 많은 고향 사람들이 죽었고 유족들이 고향에 살아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인정하면 안 된다. 이상할 정도로 임권택은 첫 장면을 밤에 시작하는 영화들이 많다는 것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임권택의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는 밤에 시작한다. 게다가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같은 말의 반복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밤 장면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영화이다. 같은 길을 걸어 마을에 들어오는 두 남자 누군가 밤을 낮으로 만들어야 한다. 혹은 밤을 끝내야 한다. 여기 두 개의 선택이 있다. 두 명의 남자가 똑같은 길을 따라 마을을 찾아오는 장면을 유심히 보아주기 바란다. 하지만 두 남자는 동시에 도착하지 않고 서로 시차를 두고 마을을 찾아온다. 먼저 찾아온 남자는 국방군 장교지만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국방군이 이 마을까지 도착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한다. 국가의 보호로부터 버림받은 지역. 일종의 무법지대. 차라리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의 전선. 그런 다음 이 장교는 마을에 머문다. 하지만 그가 마을에서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마을 사람 중의 누군가와 교분을 맺지도 않는다. 그는 언젠가 도착할 국방군을 위한 신호이다. 국가의 가느다란 끈의 마지막 끝. 여기서 첫 번째 남자에 의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가정을 해보자. 국방군 장교가 절대적으로 수는 부족하지만 여섯 명의 소대원을 끌고 마을에 찾아온 다음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공비들과 싸우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임권택 은 이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다. 두 번째 찾아오는 남자는 원래 이 마을에서 자라났지만 고향에서 쫓겨난 다음 다시 돌아온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쌀 다섯 가마를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을 함께 지킬 여섯 명의 건달들과 함께 온다. 반대로 이야기는 장르 안에서 흥미롭게 작동하지만 그런 희생적인 전투가 한국전쟁 중에 정말 있었을 것이라고는 거의 믿기 어렵다. 임권택은 왜 역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을 버려두고 있을 수 없는 것을 가정하는 것일까. 여기서 두 남자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첫 번째 남자에게 동백마을은 자신이 지켜야 할 국토 전체 중의 하나의 작은, 아주 작은 지역에 불과하지만 두 번째 남자에게 이 마을은 자신의 고향이자 유일하게 돌아오기를 갈망한 곳이라는 지정학적 서열이다. 좀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여기는 전체 중의 작은 일부이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전부이다. 그래서 한쪽은 언제든지 전술상의 이유로 이 지역을 양보할 수 있지만 다른 한 쪽은 여기를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두 사람은 신기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어떤 갈등도 빚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동일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편이 올바른 교정이 될 것이다. 그 둘은 둘이 합쳐 하나가 된다. 하지만 이따금 이 영화는 어떤 불투명성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수많은 예 중의 하나. 두 번째 남자와 고향 사이에서 매개하는 역할을 목사가 나서서 떠안을 때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동백마을은 아주 작은 마을이고 마을 주민들은 단 한 명도 결정적인 순간에 찬송가를 부르지 않으며 이 영화에는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단 한 쇼트도 없다. 게다가 길용은 고향에 돌아와서 교회를 찾아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혹은 길용은 하느님을 믿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길용의 애인이 그런 것도 아니다. 또는 목사가 이야기에서 어떤 결정적인 해결의 역할을 하는 순간도 없다. 구태여 교회가 필요하다면 여섯 명의 건달 중 막내가 목사가 되겠다는 결심에 응답할 때뿐이다. 하지만 가장 난처한 순간은 목사가 읍내에 가서 길용을 설득하여 고향으로 데려올 때이다. 나는 여기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이 장면에서 지금 <바람 같은 사나이>는 사운드 네가가 유실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보고 나면 다시 보고 싶게 만든다. 다시 본다는 것은 그 순간에 다시 가고 싶다는 뜻이다. 거기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모든 실패조차 지나쳐가면서 어느 순간 과잉 하는 힘으로 지나간 시간을 무한정 반복하게 싶게 만드는 이것임. 설명할 수 없는 이것임. 여기서 순환은 일시적으로 중단될 것이다. 반대로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질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엔 종합에의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실패가 우리를 이것에로 최대한 접근 시킨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장면은 괴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실패의 질서가 있다. 당연하게도, 이미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그리고 존 스타제스의 웨스턴에서 본 것처럼, 물론 마지막 장면은 이 일곱 명의 사내들(과 국방군 장교와 엉겁결에 끼어든 리어카꾼)과 빨치산의 전투 시퀀스이다. 무엇보다도 이 전투는 아무 의미가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마치 눈앞에서 금방 벌어질 전쟁처럼 하나씩 물어보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갔고, 그러므로 이 마을에는 초가집들 말고는 달리 지킬 것이 없다. 곡물도 없고 재산이랄 것도 없는 가난한 시골 마을이다. 게다가 빨치산에서 탈출한 여인은 이제 곧 북한으로 귀대하게 될 연대가 이 부대와 합류할 것이라는 정보를 준 다음 죽는다. 그 정보를 듣고도 철수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마치 이들은 마지막 시퀀스를 위해서, 오로지 영화를 위해서, 여기 남아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들은 남겨진 숫자뿐만 아니라 무기도 열세이다. 누가 보아도 차라리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읍내로 철수하고 그런 다음 군부대와 합류하여 이들과 싸우기 위해 돌아오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다. 그런데도 납득할 수 있는 어떤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냥 남아서 마을을 습격하기 위해 찾아올 빨치산을 기다리고 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 같은 자멸적인 태도. 당신들이 주인공이 아니라면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그건 빨치산 쪽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전쟁은 패색이 짙고 (아마도) 남부군이 북한으로 이동하면서 도착하기를 기다려 합류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인 결정일 것이다. 여기서 전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으며 설혹 승리한다 할지라도 이득이 없다. 오히려 후퇴할 시간만을 뺏길 것이며 게다가 이 전투는 그들의 흔적을 남길 뿐만 아니라 탄약조차 낭비하게 되어 이후 벌어질 수도 있는 국방군과의 전투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에게 쌀 다섯 가마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동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면서 빨치산 부대 전원을 이끌고 마을로 향한다. 마치 이들의 결정은 자신들이 후퇴하기 전에 국방군이 도착하여 자신들을 섬멸해주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전술이다. 나는 약간 냉소적으로 열거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로 맞선 두 개의 그룹 모두에게 공통된 정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지나치면 안 된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 완전히 전멸하기를 기대하는 중이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아이러니. 이 무시무시한 공포의 전율을 쥐어짜는 것만 같은 감흥. 누구라도 조롱하듯이 지켜보게 될 이 상황에서 크게 웃으면서 가장 잔인하게 쳐다볼 사람은 임권택 이다. 이것이 이 장면을 모골이 송연하게 만드는 부정의 논리이다. 이 마지막 시퀀스에서 양쪽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제로에 근접한다. 일곱 명의 사내가 이 마을을 지킨다고 하지만 차라리 전원이 무사히 철수한 다음 마을 사람들과 되돌아와서 함께 재건하는 편이 훨씬 건설적일 것이다. 빨치산은 이 마을을 포기하고 빨리 본대에 합류하여 철수하는 편이 훨씬 전술적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마을은 양쪽 모두에게 생명을 내걸고 전선을 만들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 여기에는 실제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보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동백마을을 포기하는 것이다. 마치 이 동백마을이 그들 모두에게 어떤 물신숭배처럼 보일 정도이다. 어떤 물신? 고향이라는 물신. 한국에서 고향은 매우 까다로운 문화 담론의 계보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걸 충분히 지적할만한 자리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다소 일반론적인 방식으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약간 따분한 표현이긴 하지만 고향은 그들 모두에게 큰 타자 안에 머물기 위한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그 안에서 머물기. 하지만 그들이 거기 머물려고 노력할수록 그들은 자신이 그 안의 결여된 원인이자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좀 더 무자비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어느 쪽이건 고향의 실수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소될 때에만 고향은 다시 말끔해질 것이다. < 바람 같은 사나이 >의 이야기는 말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당신은 도식적이라고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당신에게 < 바람 같은 사나이 >가 이야기 위에 두텁게 덧칠해서 지워버린 결정적인 정보가 역사라는 것을 일깨우고 싶다. 고향을 사이에 두고 <바람 같은 사나이>는 의도적으로 불균형하게 배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둘 사이를 조정하기 위해 거기 있어야 할 것이 강제적으로 지워진 것을 보충할 필요를 느낀다. 길용이 고향을 떠난 이야기는 그가 돌아온 다음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후회를 하며 짧게 회상하는 장면으로 불려 나온다. (flash_back) 그러나 빨치산들은 그냥 처음부터 저 산속에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다른 마을이 아니라 여기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한국전쟁은 장르가 아니다. 그들은 아무 곳에나 머물지 않았다. 그걸 임권택 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해방 이후 고향에서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그런 다음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어제까지 고향 사람들이었다. 그런 다음 고향을 관리하듯이 밤만 되면 내려왔다. 그러므로 필요 이상으로 비열하게 그려진 이 마을 빨치산의 지도자도 이 마을에서,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인근 마을에서, 그렇게 전쟁이 나고 이데올로기에 의해 양쪽 편을 가르고 난 다음 산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 마을을 놓고 거기 머물기 위해 다투는 중이다. 1968년은 이데올로기를 거세하였고 영화에서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희생에 가까운 전멸의 전술이다. 한쪽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숫자의 상대와 전투를 치르기로 결심하고, 다른 한쪽은 여기서 지체하는 만큼 그들을 섬멸하기 위해 국방군이 가까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작전을 개시한다. 여기에는 미학적 긴장감도 없고 그렇다고 극적인 흥미가 우리의 감정을 고조시키지도 않는다. 그저 죽음에 대한 거의 외설적 묘사라고나 할까. 전투의 첫 접촉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빨치산 대장은 텅 비어있는 마을을 향해서 기관총을 쏘아댄다. 그때마다 약장사는 총알을 피해서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소매치기도 하모니카를 불면서 총구를 유인한다. 말하자면 전투의 첫 접촉. 여기서 임권택 이 일곱 명의 건달들의 각자의 전문적인 기술을 전투의 드라마 안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바이올린 연주나 소매치기 기술은 정작 전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명사수가 ‘귀신도 놀랄만한’ 솜씨를 보여주는 장면도 없다. 이 영화는 하워드 혹스적인 영화가 아니다.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 리오 브라보 >가 아니다. 기관총을 쏘아대던 빨치산 대장이 돌격, 을 외치자 부대원들은 일제히 산을 타고 마을을 향하기 시작한다. 이때 정말 괴이하게도 그들이 논두렁을 밟고 달려가는 장면에서 이제 막 봄날이 시작되어 파릇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논밭의 풍경이 이상할 정도로 아름답다. 나는 처음에 내가 무얼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면서 탄식하게 되는 것은 텅 빈 농촌 마을 그저 전쟁만 아니라면 한가로운 이 봄날의 장면이 찍고 싶어서 전투장면을 한정 없이 길게 늘여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 공기의 느낌이다. 이 시퀀스는 정말 길다. 종종 누가 누구를 쏘는지도 잊을 정도로 한없이 이어진다. 한 명씩 한 명씩 죽어가지만 이 시퀀스에는 애도의 감상이 없다. 마치 그들은 장르의 법칙에 따라 소멸하듯이 그렇게 차례로 자기의 역할이 끝나자 죽어간다. 반공영화가 마치 다찌마와리 장르가 끝나가듯이 그렇게 종말을 맞이하는 중이다. 이때 임권택은 어느 쪽의 승리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이 명백하다. 빨치산 공비들은 총알에 자신을 내맡기듯 그렇게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은 채 어떤 엄폐물도 없는 논두렁을 가로질러 끝도 없이 달려온다. 일곱 명의 건달은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긴다. 절망적인 사격. 왜냐하면 총은 겨우 아홉 자루이고 한없이 밀려오는 공비들은 곧 마을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병전을 벌여야 할 것이고 이 수많은 공비들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영화가 무심코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 같다.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텅 빈 마을. 그 마을의 잉여. 이 전투는 동백마을에 아무 쓸모도 없는 낭비일 뿐이다. 만일 그것이 필요하다면 그 잉여를 말소하기 위해서 지금 그걸 하는 중이다. 그걸 알지 못하는 그들은 스스로 그렇게 삭제되는 중이다. 나는 이미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보자마자 깜짝 놀란 마음을 안고 임권택의 첫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다음 몇 번이고 다시 반복될 전멸의 테마를 이야기했다. <바람 같은 사나이>는 그걸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시퀀스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장면은 국방군이 나타날 때이다. 그들은 일곱 명의 건달이 대부분 죽어갔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그런 다음 빨치산 공비들을 향해서 어떤 항복의 권유도 없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한다. 어떤 포로도 필요 없다는 듯한 이 무정함은 마치 청소를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마지막 표현을 주의 깊게 읽어주기 바란다. 청소. 국가에서 청소를 하는 것. 빨치산. 그리고 일곱 명의 건달. 하지만 임권택 은 여기서 알리바이를 내세우는 것처럼 서둘러 장황한 에필로그를 준비한다. 일곱 명의 건달 중의 막내는 공비였지만 몇 달 전에 자수를 해서 이 패거리를 따라다니고 있었고, 그는 마침 동백마을의 빨치산 공비들과 함께 산에 오른 사회주의자 인텔리 애인의 죽음을 목도한 다음 이 전투에 참여한다. 하지만 총을 맞았는데도 목사가 건네준 성경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나서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고 이제 길용의 애인이 마지막 질문을 한다. “대답을 듣고 싶어요” 그녀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피난을 가면서 길용에게 같은 질문을 했었다. “대답해주세요, 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때 길용은 모호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그만 가줘, 다음에 만나면 그때 대답을 하기로 하지”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덧붙였다. “노력해주세요. 불행한 일이 없도록.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이번에는 화면 안으로 교회 종소리가 들려온다. (off_sound_in_frame) 길용은 간단하게 대답한다. “영, 교회로 가지 않겠소. 하느님과 목사님이 계신 곳에서 부탁할 일이 있소” 그녀도 흔쾌히 대답한다. “좋아요” 그리고 끝. 이때 여기에는 죽은 여섯 명의 건달들과 동백마을까지 쌀 다섯 가마를 리어카에 싣고 왔다가 뜬금없이 전투에 참여하여 죽은 사내를 위한 어떤 애도의 시간도 없다. 마치 그들은 처음부터 있어야 할 자리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영화에서 말끔하게 사라진다. “우리는 또 다시 진 걸세.”, <7인의 사무라이>(위), <황야의 7인>(아래) 나는 이 엔딩에 대해서 약간 더 논쟁을 하고 싶다. < 7인의 사무라이 >는 몹시 긴 시간 동안 도적 떼들에 맞서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과 농민들이 싸우는 이야기지만 사실은 마지막에 모든 싸움이 끝난 다음 떠나가면서 사무라이들의 첫째인 감베이가 또 다른 사무라이에게 하는 그 유명한 대사, “우리는 또 다시 진 걸세. 우리는 졌어. 이긴 것은 농부들이야” 라는 그 말 때문에 찍은 영화이다. 사무라이들은 농부가 아니다. 그들이 다룰 줄 아는 것은 칼이지 농기구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마을을 떠나야 한다. 사실 그 승리는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제부터 사라져 가는 계급이자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신호가 될 것이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졌고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천황의 항복 이후 9년 후에 만들어진 영화. 임권택 은 < 바람 같은 사나이 >를 휴전 이후 16년 뒤에 만들었다. 물론 이 영화는 처음부터 <7인의 사무라이>처럼 야심적인 기획이 아니었다. 나는 두 영화를 마주 보게 할 의도는 조금도 없다고 이미 말했다. 내가 질문하려는 것은 길용이 왜 처음부터 여기 남아야만 하나의 이야기로 <바람 같은 사나이>가 성립 되냐는 것이다. < 황야의 7인 >도 일곱 명의 카우보이들은 멕시코 국경의 이 마을에 와서 도적 떼를 물리친 다음 마찬가지로 떠난다. 마을은 그들의 것이지 이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도적 떼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원래의 자리에 돌아가기 위한 것처럼, 마치 제 자리에 복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래서 자기의 권리를 되찾듯이 길용이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약간의 가정. 여기서 한국전쟁을 괄호치고 이야기의 형식을 조금만 비틀면 단지 그의 동생 여섯 명과 리어카꾼의 죽음만이 아니라 공비들의 시체가 논두렁에 즐비하게 널리는 전투마저 길용이 돌아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할 수 없이 치러야 한다, 고 예언하는 운명적인 귀환이 마침내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부르고 싶을 지경이다. 오이디푸스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를 죽여야 하며, 아버지는 아들의 귀환을 위해서 그때 그 순간에 그곳을 지나면서 아들에게 죽어야만 한다. <바람 같은 사나이>는 시작하면 공비들이 산에서 마을에 내려와 양민을 학살하고 쌀 다섯 가마를 요구한 다음에 물러가지만 이 장면은 동시에 길용이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막는 유일한 장애물인 아버지가 공비들에게 처형을 당하고 아들 길용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다음 홀로 남은 딸이자 길용의 어린 여동생 옥이를 길용과 결혼하지 못한 영희가 돌본다. 나는 다소 냉담하게 물어보고 싶다. 영희는 길용의 어린 여동생 옥이를 돌봐야 할 어떤 의무도 없다. 그런데 왜 그녀는 엄마 없는 옥이를 엄마처럼 돌보는 것일까. 질문을 정식화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이 모든 장치들이 정교하게 짜여진 (하지만 따분한)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변주곡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읽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기 바란다. 핵심은 이 모든 귀결이 목적론에 따라 작동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라가던 우리를 멈칫 세우는 것이다. 무엇이 이 영화 안에서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가. 이 이야기가 괴상한 것은 우연이 다른 우연 없이 서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때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우연(들)이 가까이 접근할 때 갑자기 이 모든 것을 잡아먹는 것은 고향이라는 집합 안의 블랙홀이다. 여기에는 두 개의 관점이 있다. 길용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고, 이 영화는 이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는 그것을 잃었고 그런 다음 되찾으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거기에 있는 고향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잃은 것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되찾을 것도 없다. 그 마을에 사는 농부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쌀을 내놓으라고 해도 내줄 쌀이 없다. 텅 빈 마을. 거기에 쌀 다섯 가마를 갖고 길용이 돌아온다. 아버지는 죽었고 아들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향에 찾아온다. 간단한 도식. 마치 그 둘은 형식과 내용처럼 서로를 끌어당긴다. 이때 서로는 서로에게 수행적인 임무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 다음 두 개의 임무 사이에서 갑자기 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한 오이디푸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르면 약간 과격하게 반격하고 싶어진다. 이건 히스테리인 줄 알았는데 정신분열에 빠진 오이디푸스 판본이 아닌가요. 그리고 여기에 무서운 국가가 있다. 차례로 등장하는 검열의 심급들. <바람 같은 사나이>는 정확하게 그 자리에서 자포자기한 영화이다. 그런 다음 재빨리 가족 안으로 후퇴하였다. 떠나는 사람들, <7인의 사무라이>(위), <황야의 7인>(아래) 남는 사람, <바람 같은 사나이> 아직 할 말이 남았다.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매정한 영화이다. 감정선은 대부분 끊어졌으며 인물들 사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네트워크는 거의 가녀리게 여겨질 정도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 전쟁과 여교사 >를 떠올려보면 그게 기이하게 보일 정도이다. 심지어 거기서는 감정이 과잉한 나머지 그 선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엉키기까지 한다. 두 영화의 동일한 배경. 하지만 서로는 서로에게서 완전히 벗어난다. 역사라는 사건은 영화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앞에서 존재하고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 살아가야 한다, 살아나야 한다. 이때 임권택 은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하나의 실험처럼 다룬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임권택은 실험영화를 찍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매번의 작업은 각각의 실험이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실험의 흔적이다. 나는 어디서부터 그 선이 끊어진, 자취가 어디선가 사라진,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관점의 뿌리 자체가 어디론가 뽑혀버린, 그래서 마치 포기해버린 것만 같은 자리에서 이리저리 흩어진 흔적들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아도 길용과 여섯 명의 건달들 사이에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줄 정도로 나누는 우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설명 없이 이 영화의 서사는 성립될 수 있는가. 그들은 그저 장르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고 그런 다음 자기에게 내어준 운명을 따른다. 그런 다음 오직 길용만이 희생의 열매를 맛본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왜 다른 이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들은 길용이 여기에 머물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가 하느님의 왕국으로 향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고향 이외의 모든 장소가 마치 비-장소(non_place)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공비들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출몰해도 마을 사람들 중에 이곳을 떠날 결심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금만 이 영화와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면 마치 길용이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안간힘이 거의 필사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하나의 주체로 성립될 수 있다는 최종적인 명제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때 핵심은 떠나간 자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원상복귀의 갈망이다. 여기서 떠나갔을 때의 시간과 돌아올 때의 조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에 대한 만족할만한 대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이 영화 안에서 우리를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나는 이미 <바람 같은 사나이>가 몇 차례이고 밤의 영화라고 말했다. 임권택에게 이 영화는 두 개의 입구를 보여주는 중이다. 하나는 다찌마와리 액션활극으로 가는 길이다. 임권택은 그런 다음 몇 년간 충실하게 이 장르를 찍었다. 그런 다음 여러 가지 이유로 반공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이 두 개의 입구는 사실은 하나의 길로 향하는 도정의 시작이다. 그 길의 끝에는 고향이 있다. 하지만 그때 임권택은 아직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있을 것이다, 라고만 어렴풋하게 말한다. 위장하고 있는 화해. 은밀한 야심. 고전적인 작가주의 이론은 거기에서 시작했고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라고 서명할 것이다. 나는 거기에 있을 지도 모를 여백을 이용하여 보충하고 싶다.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 임권택은 장애물들을 차례로 제거해나갈 것이다. 같은 말이지만 말소시켜 나갈 것이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말끔하게 청소할 것이다.반복해서 말하겠다. <바람 같은 사나이>는 매정한 영화이다. (계속) 추신_ < 바람 같은 사나이 >는 현재 영화 시작하고 11분 52초 동안 사운드 네가가 유실되었다. 이후의 장면들로 충분히 내용을 유추할 수 있긴 하지만 몇 장면들은 대사가 몹시 궁금하다. 특히 (이미 언급한) 목사가 길용을 설득하는 장면.
한국영상자료원에 제출한 10편의 나의 영화 목록은 자료원이 제시한 기한 내에 속하되‘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기준으로 했으며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유들까지 작동한 결과 작성된 사실상 위부터 아래로의‘순위별’이며, 그러므로 최고의 영화는 홍상수 의 < 자유의 언덕 >이다. 다만 나는 내게 훨씬 복잡하고 중요한 영화여서 좀 더 오래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느끼는 <자유의 언덕>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는 리산드로 알론소의 < 하우하 >에 관하여 쓰기를 택했다. 나로서는 최상의 것 대신 최적의 것을 택한 것인데, 어떤 목록의 제시 이후에 그 목록에 관한 해명의 글이 요구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최적의 예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특히 하나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 하우하 >를 본 몇몇 동료들은 내게 물어오곤 했다.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 올해 칸 영화제에서 <하우하>를 보고 난 뒤 내가 이 영화를 영화제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교적 최초로 강력하게 호감을 표방한 자의 구체적인 의견이 궁금했던 것 같다. 더하여 그 질문은 대개 두 가지 반문을 괄호 안에 포함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그다지 좋지 않던데?), 이 영화의 무엇이 좋았는가?(좋은 것 같기는 하지만 무엇이 좋다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던데?). 나는, 면밀하고 치밀하다 해도 사실상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한 화답으로는 거의 무용한 어떤 적극적 반론(나는 이만큼 정확하다) 혹은 작품과의 대면에서 발생한 불안정한 감각적 전압을 견디고 표현하는 지난한 과정은 회피한 채로 기존의 참조적이며 이론적인 용어들에 기대어 짐짓 우월한 지위를 점유한 척 하는 과시주의적 거드름(나는 이만큼 알고 있다)을 피우는 대신에, 거칠지만 솔직하고 미완적인 비평적 화답의 한 방편으로서 내가 이 영화를 관람하며 겪어 나간 순간순간 마다의 감각적 체험의 추이 자체를 복기하고 싶어졌다(나는 이만큼 느꼈다). 작품과 나 사이의 감각의 전압을 혹은 내가 작품에 빠져든 침잠의 상태를 할 수 있는 한 기록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하우하>를 관람한 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설득 대신 수기를 택한 것이다. <하우하>를 보지 못한 독자들의 경우라면 상당한 난독증을 겪을 것이 예상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됐다. <하우하>라는 영화 장면들의 흐름을 따라, 그 장면들을 보며 떠올랐던 나의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단상의 수준과 순서를 그대로 드러내며, 그러니 당연하게도 어떤 부수적이며 탈 맥락적인 또 다른 단상들의 개입까지도 허용하며, 그것들이 이 글의 구성에도 반영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애석하게 부산에서는 일정상 영화를 다시 보지 못했으므로 기억의 흐릿함과 부정확함이라는 무능까지 포괄하면서, 그 체험의 시간을 돌아보려 한다. 처음, 보다 제목이 < 하우하 >였다(부산영화제에서의 상영 제목은 < 도원경 >이었는데, 이 제목을 듣자마자 멋진 번역이라고 무릎을 쳤다. 모국어로서 이보다 더 근사하게 의역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이 제목은 앞으로도 유용될 만한 높은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혼선을 무릅쓰고 지금 구태여 <하우하>라고 적은 데에는,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마주했을 때 이와 같은 제목으로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감독이 영화의 제목에 관하여 했던 어떤 말이 기억에 남아서다.“무엇보다‘하우하’라는 단어의 소리가 주는 느낌이 좋았다. 뭔가 인디언들의 지명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국적이면서도 불가사의한 것 같고,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부터 그 오묘함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씨네21,957호). 알론소의 이 말은 중요한 것 같다. 단지 작명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 영화의 연출에 관한 감독의 어떤 감각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뜻의 제목이 아니라 소리의 제목이며 기의의 제목이 아니라 기표의 제목이고 해석의 제목이 아니라 감각의 제목이다). 심신이 지쳐가던 칸 영화제 중반 즈음, 사물함을 열어 보니 이 영화의 전단지가 들어 있었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어두운 밤 혹은 새벽, 검은 대지의 지평선 너머로 푸르스름한 별과 빛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기도하는 것인지 절망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채 눈을 감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비고 모르텐슨의 모습이 보였다. 포스터의 이미지만 보고도 이 영화와의 교감은 예감됐다. 그런 포스터들이 있다. 영화의 홍보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그 영화의 성질을 일견 담아내어 미리 느끼도록 하는 포스터들. 예컨대 홍상수 영화의 포스터는 내 느낌에 정확히 < 밤과낮 >부터 그런 중요한 존재물 혹은 일종의 부수적 예술 행위로 급상하였다. 가령 <밤과낮>의 포스터가 그렇다. 반바지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어느 여자의 하반신, 계단 아래에 쪼그려 앉아 걸레질을 하다 말고 그걸 올려다보는 어느 남자의 어색한 자세와 시선, 그런데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담고 있는 저 불가사의한 분위기가 그렇다. 그런 불가사의한 분위기의 일종을 <하우하>의 포스터를 보며 느꼈다. 알론소의 전작들에 솔직히 그다지 큰 애정과 기대가 없는 편이었던 나는 어떤 막연한 기대에 부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장에 들어섰고 첫 장면을 마주하자 그 즉시 전율이 일었다. 1.33:1의 화면비 안에 놓인 인물들의 정확한 자리 혹은 우아한 형상이 그 전율을 일으켰다. 나는 첫 장면에서 이미 이 영화에 관한 호불호가 갈린다고 확신한다. 이 장면을 아름다움의 성취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름다움을 가장한 위악적 제스처로 규정할 것인가, 나는 전적으로 전자라고 받아들인 관객이다. 알론소는 이 영화를 1.85:1로 촬영했으나 후반 작업 중 지금과 같은 화면비로 바꾸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화면비를 바꾼 다는 건 컬러로 찍은 뒤에 흑백으로 바꾸는 것만큼이나 대단히 위험하고 모험적인 결정이다. 그런데 이 위험한 모험은 적어도 이 영화에 관한한 옳았던 것 같다. 1.85:1의 <하우하>가 아름다울 리 없다고 나는 짐작한다. 화면비는 단순히 화면의 크기나 모양이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형상과 화면이 서로 맺고 공유하고 결탁하여 일으키는, 이 말이 어쩌면 착란에 해당할지라도, 지각적으로는 밀도의 문제라고 나는 늘 느낀다. 화면비는 구도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인 것이며 어떻게 얼마나 채워져 있는가의 느낌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첫 장면, 바위위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딸의 장면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딸은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앉았고 아버지는 뒤로 돌아 앉았다. 인물들은 정중앙의 정확한 자리에 꽉 차 있었다. 아름답게 꽉 차 있었다. 그들의 몸은 화면 안에서 중대한 권위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화면의 모서리에서부터 그들 몸 까지 이어지는 어떤 거리와 여백 그리고 정중앙을 점유하고 있는 그들 몸의 밀도의 팽팽함 때문에, 나는 아직 감동의 원인을 찾아내기도 전에 감동부터 먼저하고 있었다. 칼 드레이어의 후기 영화를 볼 때 이런 벅찬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내용의 전개와 무관하게 저 인물들의 밀도 높은 육체성이 화면에서 차지하고 있는 어떤 중대한 아름다움으로서의 권위와 지위가 그 감동적 경험의 요인이 되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은 성공적일 때에만 그러하다. 예컨대 자비에 돌란이 < 마미 >에서 과감하게 선택한 1:1의 화면비는 유효하지 않거니와 치장에 가까워서 영화 내의 밀도를 허투루 만들어버린다. <마미>의 화면비 선택은 형상을 그 화면안에‘어떻게 채울 것인가’하는 지점이 아니라 화면의 양 옆을‘얼마나 잘라낼 것인가’하는 것에 치중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잠시 1.85:1의 화면비를 구사하는 대목에서야 <마미>는 가장 아름다운 화면을 보유하게 된다. 알론소가 <하우하>의 화면 네 모서리를 둥글게 구부려 놓은 건 물론 디자인적 발상인 것 같다. 누군가는 이걸 싫어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젠체하는 장난 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둥근 곡선을 이 영화가 현실 안에서 비현실을 껴안는 자세로서 갖춘 우아한 시각적 은유 또는 이 영화가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동화가 되기 위해 갖추었어야 할 충분히 필요한 시각적 보충물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화면의 조건과 배경에 얼마간 눈이 익숙해지자 그리고 아버지와 딸의 육체를 벗어나자 이제 파타고니아의 드넓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SF영화가 세계의 어떤 기원을 강조하려 할 때마다 선택하는, 시간이 무화된 지리적 풍경이다. 하지만 나의 감탄의 다음 대상이 그 광대하며 원시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오히려 좁은 실내 장면을 보며 두 번째 감탄사를 뱉었다. 아버지와 딸이 머무는 작은 텐트 안 장면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우하>를 보고 나서 존 포드의 < 수색자 >를 거론했다. 대표적으로 내가 칸 영화제 베스트 리스트를 청탁했던 평자 제임스 콴트는“형언하기 어려운, 알랭 레네가 연출한 것 같은 <수색자>”라고 <하우하>를 묘사했다. 충분히 공감할 만하지만 그건 <하우하>의 내용에서 기인한 감상이다. 공감할 순 있지만 내가 이 영화에 매혹된 이유는 아니다. <하우하>를 보며 내가 존 포드를 심각하게 떠올린 건 어느 한 대목인데,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라는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가 아니라, 딸이 떠나기 전 아버지의 잠자는 모습을 우두커니 보는 장면의 특정한 앵글에서였다. 그때 아버지와 딸을 각각 나눠서 찍고 있는 카메라, 거기서 느껴지는 어떤 기이한 애환과 존엄함이 문득 존 포드의 어떤 장면들의 무드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존 포드 영화의 앵글은 서사적으로 중요한 국면이 아닌 순간들에서조차 어떤 애환과 존엄함의 분위기를 엄중하게 품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지금 당장 해명하기는 어렵지만 연달아 특정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의 첫 장면과 <러틀리지 상사>에서 병사가 전장에서 호각을 불기 위해 화면 중앙에 우뚝 서 있던 그 장면들이 그 때 문득 스쳐 지나갔다. 그 인물들을 찍어내는 앵글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어떤 존엄함과 애환이, 서사적 흐름과 무관하게 닥쳐오곤 했던 그 무드가 딸이 아버지를 두고 떠나려 하는 그 순간에도 문득 내게도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좁은 실내의 앵글이 별안간 존 포드를 상기시키며 흥분의 상태로 나를 몰아간 것이라면, 떠나간 딸을 찾기 위해 아버지 군너가 텐트를 걷고 외부로 나가자 이번에는 거기 버티고 있던 빛과 색들이 나를 쓰러뜨렸다. 딸은 젊은 남자와 함께 막사에서 도망쳤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딸을 찾아 나서려 한다. 그가 쓸쓸하게 제복을 주워 입고 칼을 차고 천막을 걷고 나와 맞은 그 새벽의 빛과 색 때문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모든 것이 어둠과 빛의 교차였고 모든 색은 자기들의 원색을 생생하게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로써 이 슬프고 힘겨운 순간에조차 영화는 도발적이었고 도취적이었다. 하늘은 짙은 청록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풀들은 녹색이었다. 저 멀리 산과 대지는 아직 칠흑같이 어두운 검정색이었고 덩그러니 놓인 텐트는 하얗고 하얀 흰색이었으며 텐트 옆의 모닥불은 주황색으로 활활 타고 있었고 그 옆에 갈색과 붉은 색이 반반씩 섞인 제복을 입은 이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많은 영화를 촬영해 온 촬영 감독 티모 살미넨이 촬영을 맡았다는 사실은 그 뒤에 알게 되었다. 칸 영화제에서 내가 본 영화들 중 여기에 견줄만한 빛과 색의 마술을 부린 작품은 토미 리 존스의 < 홈즈맨 >(촬영 로드리고 푸리에토)과 예시카 하우스너의 <아모레 포르> 단지 두 작품뿐이다(촬영 마틴 쉴라츠). 우리는 오즈 야스지로가 미루고 미룬 끝에 선택한 아그파 필름의 저 냉랭하고 음험한 색이 그의 영화에서 어떤 기이한 영화적 인상을 불러일으키는지 알고 있다. 더러 누군가는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쳤던 과장된 헌사를 기억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특히나 존경의 이유로서 오즈 영화의 그 붉은 색을 거듭 찬미했다. 그러한 특별하고 특정한 빛과 색의 효능이 <하우하>에도 있었다. 평론가 켄트 존스도 <하우하>를 보고 유사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이 영화의“거의 모든 이미지가 색과 빛의 모험이며 어떠한 외양적 술수나 조작도 없이 마네의 천부적인 색의 가치를 수행해내고 마는 많은 대목들이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므로 이 새벽 이후에 이어지는 장면들이 오랫동안 낮 장면들이라는 사실은 내게 중요해 보인다. 이후에 군너는 쏟아지는 햇볕 아래 드넓은 대지를 대책 없이 해매고 돌아다니게 된다. 인상주의 화폭안에 담긴 듯 했던 강렬한 빛과 색은 이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도래하기 전까지 잊히고, 한동안은 오직 백주 대낮의 태양 아래 쓰러지기 일보 직전으로 걸어다니는 군너의 처량한 여정뿐이다(문득, 정말 낮장면만 한동안 계속됐던가 의심이 든다. 내가 기억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 글은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활동까지도 포함하고 있으니, 그에 근거하여 계속 전개해보려 한다). 그러니 빛과 색에서 받았던 나의 감동은 그의 허무하고도 피로한 움직임과 동선에 기인하여 또 다른 축으로 옮겨와 있었다. 군너의 움직임과 동선은 이 영화의 화면비율과 또 다른 긴장의 국면에 놓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는 거의 매번 수평으로 움직이는 법 없이 수직 혹은 대각선으로 화면을 질러 다녔다. 수평과 수직의 동선이 이론적으로 어떤 인지적 차이를 가져오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거의 정사각형의 화면을 오르내리락 반복하는 그의 움직임이 갑갑하고 무용해서 더 피곤해 보였던 건 사실이다. 무료하기는커녕 손에 땀을 쥘 정도의 긴장감으로 넘쳐나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군너의 반복적이고 지난하고 피곤한 물리적 여정이 그러한 긴장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물리적 여정은 지겹거나 단순하지 않다. 예컨대 군너의 그 한 낮의 여정은 파트 1과 2로 교묘하게 나뉜다. 파트 1, 군너는 말을 타고 딸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 딸과 함께 도망친 젊은이 코르토가 혼자 죽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딸의 행방은 묘연하다. 군너의 근심은 더해진다. 하지만 그때 군너는 숨어 있던 원주민에게 총과 말을 탈취당한다. 때문에...) 파트 2, 군너는 이제 터벅터벅 걸어다녀야만 한다. 그는 더 느려졌고 더 피곤해졌으며 더 절망적이다. 말과 총을 잃어 버리는 사건 하나가 끼어 들어 내러티브 구조에 일단락의 임시적 균열을 일으키자, 그의 육체의 피로도와 심리의 긴장 상태는 급속하게 훨씬 더 아득한 늪으로 빠져 들었고, 동시에 그의 움직임과 동선과 속도감의 차원에도 더 큰 변화가 아니 더 큰 절망적 분위기가 배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도대체 이 정처없고 무력한 수색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때쯤 문제의 털빠진 들개가 나타나 그를 한 명의 노부인에게 인도한다. 그리고 나의 감동의 정체도 그 개의 출현을 따라 서서히 다시 또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다. 영화 속의 시간도 낮이 아니라 밤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다가올 장면들에서 내게 감동스러운 것은 동선도 움직임도 아닌 그 밤이며 비통한 음악의 자리이며 몸의 흔적이며 폐쇄적 공간이며 기이한 대화이며 그걸 거치자 엄습해 오는 우주적이며 상대적인 시간에 대한 멜랑콜릭함이며 현실에서 어느새 비현실로 옮겨간 시간의 차원적 전환성이었다. 예컨대 군너가 노부인을 만나게 되는 대목에서부터 그녀와 헤어져 돌아가는 대목 사이에서 그러한 것들을 느꼈다. 들개를 쫓다가 밤을 맞은 군너가 기진맥진한 채로 장검을 옆에 벗어 놓고 바위 위에 털썩 드러 누운 그 순간, 밤하늘의 별들이 무수하게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그 순간 기타리스트 버켓헤드가 연주하는 기타의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길고 험한 육신의 피로와 심리적 상처의 아픔을 기타의 연주가 대신 울고 있었다. 저 뒤로는 지금 일군의 별자리들이 반짝이고 있고 군너의 잠이 혼란스럽게 깊어질수록 별들은 대지를 향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무리지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며 어떤 앞선 장면을 기억해 낼 것이었다. 딸이 사라지기 직전, 영화 속 딸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연인 코르토에게 했던 중요한 말이 있다. 아마도 그들이 사랑을 나눈 뒤쯤이었을텐데 풀밭의 돗자리에 앉아 딸이 코르토의 등에 새겨진 반점들을 보고 매만지며 “꼭 별자리 같다”고 말한다.“쏟아지는 별처럼 아름답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말하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별자리 그리고 아름답게 쏟아지는 별들은 장면이 흘러 군너의 그 밤에 이르러서야 시각화 되는 것이다. 연인의 육체위에 새겨져 있던 그 아름답게 쏟아지는 별자리라는 모반에 관한 인상은, 딸을 찾는 아비가 바위 위에 지친 육신을 눕힌 그 밤에 이르러 실존의 풍경이 되어 있다. 누군가의 사랑은 누군가의 슬픔이 되었고 누군가의 등은 누군가의 하늘이 되었고 누군가의 모반은 누군가의 별자리가 되었다. 그 내부와 외부, 나와 타자, 육체와 우주의 기이한 설화적 이접이 나는 아름다웠다. 물론 이런 장면은 요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이 요설을 과장되어서 허위적인, 단지 지나친 형식주의로서의 탐미적 자세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반문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 자신에게 기입되어 있던 감탄의 경험들이 깨어나는 걸 느낄수 있었다. 저 멀리 불꽃 축제가 열리고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자동차의 수평 움직임속에서 도노반의 <허디거디맨>이 음울하게 들려오는 < 조디악 >의 첫 장면. 바비 빈튼의 <블루벨벳>이 고즈넉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정원의 한 남자가 뒷목을 짚으며 쓰러지고 풀숲의 잘린 귀로 카메라가 불길하게 이동해가던 < 블루벨벳 >의 첫 장면. 고되고 성스러우며 유머러스했던 종교적 여행길의 마지막에 이르러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 앞에 넙죽 업드려 경외를 바치는 그 순간 장엄하게 노래가 울려퍼지던 <새들의 노래>의 클라이맥스 장면. 시름에 젖은 여인이 슬로우 모션으로 국수통을 들고 좁다란 계단을 오르내리는 가운데 우베마야시 시게루의 현음악이 들려오던 < 화양연화 >의 국수집 장면. 그리고 수시로 그와 같은 순간들을 영화의 접히고 펼치는 접경지대로 사용하곤 하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들. 그것들에 황홀해 한 만큼 <하우하>의 이 장면에서도 황홀했다. 그리고 영화는 나의 황홀을 뒤로 하고 또 다시 앞으로 나아 갔다. 음악과 풍경의 장면들이 지나가고 빛의 장면들이 다시 도래했다. 하지만 이 번에는 다소 다르게 돌아왔다. 군너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노부인을 만나자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특별한 (어둠과) 빛의 효능이 이들을 감쌌는데 여기 특별하게 새로 개입해 들어온 것은 적절한 연극적 공간성이었다. 핀조명과도 같은 푸르스름한 한 줄기 빛을 받으며 군너와 노부인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군너가 노부인에게 병정 인형을 주니 그녀가 좋아한다(군너의 딸은 그 병정 인형을 갖고 도망쳤지만 군너는 그 인형을 딸을 찾는 도중에 발견했다). 둘의 대화는 가까워졌다가도 조금씩 빗나간다. 이 노부인은 누구인가. 노부인은 군너가 잃어버린 딸의 노년의 모습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렇게 애매해지는 사이에 어떤 사물과 제스처는 놀랍도록 다시 돌아와 자기 자리를 차지하면서 우리를 자극한다. 딸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나침반과 병정 인형은 군너와 노부인 사이에서 화제에 오르고 마침내 첫 장면에서 딸이 아버지의 어깨에 살짝 고개를 기대었던 것처럼, 노부인이 군너의 어깨에 그렇게 기대며 같은 제스처를 보일 때, 마침내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로서 일치짓고 확정짓는 것과 무관하게, 말하자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그 인상관계 때문에 아득한 애처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딸이 자신은 언제쯤 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지금의 노부인이 오로지 개를 가졌을 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는 걸 떠올렸다. 그리고 아직은 남아 있는 에필로그에서 현대의 어느 대저택에 사는 소녀가 털빠진 개를 또 한 마리 갖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세 마리 개만이 실마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즈음에 영화적 사태를 직감한다. 우리가 군너의 움직임과 동선을 좇아 다니는 동안 군너의 실종된 딸은 그녀의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군너가 그의 물리적 시간을 사는 동안 딸은 그녀의 서사적 시간을 살아갔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앞에 있는 저 노부인이 군너가 그토록 찾아 해멘 그의 딸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듭 말해도 그것은 사실 관계가 아니라 인상 관계로서 그러하다. 딸을 찾아 헤맨 군너의 시간관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걸 가능하게 하는 시간관은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한데, <하우하>를 본 내가 이때쯤 직감하게 된 것은, 우리가 군너의 여정을 따라다니는 동안 실제로는 더없이 동화적이며 설화적이어서 상대적인 시간의 대지를 건너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근거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에서 밤 장면은 기껏해야 한 번 정도 등장한 것 같다(나는 여전히 나의 이 기억과 진술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 의심에 바탕해서 감상을 지속하려 한다. 며칠 밤이 등장했다 해도 사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밤과 낮의 등장 시간으로만 측량하자면 군너는 단 하루의 시간 동안 딸을 찾아 헤맨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그럴 경우 단 하루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하지만 알론소가 군너의 그 무수했던 밤들 중 오로지 어느 하룻 밤만을 특화한 것일 수도 있으니 이 영화의 시간이 하루라고 우린 단정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럴 경우 이 영화는 하루처럼 보이도록 구성된 수많은 날들로 구성된 영화다. 물론 여기에는 군너의 변하지 않은 외양이라는 또 다른 모순점이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어느쪽이건 군너가 그렇게 오래 낮의 장면들을 해메야 했던 이유 중에는, 그리고 우리가 그걸 보아야만 했던 이유 중에는, 구조적 혼돈을 통한 시간의 상대적 성립이라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밝음과 어둠으로 계산되는, 그리고 그것때문에라도 실제로는 계산이 아리송해지는 낮과 밤의 시간의 흐름과 군너라는 인물의 동선에 따른 물리적 시간의 흐름과 그에 따른 심리적 시간의 흐름이 동화적이고 설화적인 이 영화의 상대적 시간의 빅뱅을 가능케 하고 있다. 시간의 초점을 모순되게 하고 중첩시켜 상대화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알론소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점時點이 중첩된다면 시점은視點 전환된다. 그리고 시점視點의 전환을 따라 시제의 전환까지 이루어진다. 기이한 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비주얼이 아니라 보이스라는 데 있다. 노부인의 동굴을 나온 다음 군너는 힘없이 무릎을 꿇는다. 내가 포스터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자세로 그는 절망한다. 내 기억으로는 바로 이때쯤 여인의 보이스 오버가 들려왔고, 군너의 저 여정을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번역된 영어 자막에 근거하자면) 과거형이었다. 노부인의 보이스 오버로 그렇게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정리해내자 이 영화는 갑자기 그간의 서사에서 완전히 돌아서, 군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어떤 회상의 이야기인 것 같은, 그것도 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회상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은, 시점 주체의 전환 및 시제의 전환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 것이다. 보이스 오버의 출현에 따른 시점視點과 주체와 시제의 변경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영화에 그어지는 또 하나의 곡선이었다. 군너가 동굴을 빠져 나와 걷는 그때 목소리는 묻는다.“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그리고 잠시 뒤 군너가 대지에 무릎을 꿇을 때 그 말은 한 번 더 반복된다.“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디졸브가 일어나 장면이 바뀌고 이 영화의 2부에 해당하는 짧은 에필로그가 등장한다. 동시대의 어느 대저택에서 어느 소녀는 잠이 깬다. 앞선 이야기는 꿈이었을까. 소녀는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가고 아버지를 만난다. 앞서 딸을 찾는 아버지 군너의 긴 수색이 있었다면 에필로그에는 아버지를 스쳐 지나간 딸의 짧은 산책이 있다. 소녀는 숲속에서 병정 인형을 줍지만 잠시 손에 쥐었다가 무심하게 호수에 휙 던져버린다. 병정 인형이 동심원의 파장을 일으키고 그 물결에 군너가 해멨던 19세기 파타고니아의 풍경이 잠시 비쳤다가 사라진다. 무엇이 삶을 움직이게 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다시, 보다 나의 두 번째 관람도 짧은 에필로그에 해당한다. 알론소의 인물들은 전작에서도 대체로 “외로운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누군가를 찾아 나서거나 향해갔고, 광대한 풍경을 혹은 폐쇄된 장소를 느리고 오래 유영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주인공의 내용적 여정에 새롭게 인위적이고 구조적으로 어떤 성질과 상태가 부여됐다는 점일 것이다. 알론소는 아르헨티나 시인인 파비앙 카사스가 쓴 시나리오에서 자신이 취하고 싶은 것들을 취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는데, 개인적인 바람을 말하자면, 알론소가 카사스와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카사스가 알론소 영화의 수준을 급상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론소는 전작들에서 시각적 인위와 연관된 사건의 매듭을 고안하는데 매우 불철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그렇게 무관심해야만 좋은 영화라고 믿는 경우들이 많았다. < 하우하 >는 다르다. 인물과 사건의 매듭이 전체 구조에 보다 긴밀하면서도 중요한 관계를 맺으며 영화 전체의 신비로운 리듬이 배가됐다. 그의 전작들은 인위적 구조에 무관심한 대신, 앵글에 담기는 장소의 리얼한 공기의 농축에 치중했는데, 자신이 취하고 싶은 만큼 완전치 못해서 원하는 만큼 충분히 물질적이지 못하거나 얼마간 지루했다. 알론소의 영화들은 무언가 조금씩 미비했고 그걸 자신의 형식적 진지함으로 덮곤 했다. 그런데 티모 살미넨의 참여가, 카사스의 시적인 개입이 알론소의 세계를 고양시킨 것 같다. 어쩌면 동시대의 감독들을 신중하게 의식한 긍정적인 결과일 수도 있겠다. <하우하>는 확실히 알베르 세라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들을 의식하고 있다. 현실에 인위적 구조를 더하여 비현실을 풍요롭게 끌어안으면서 다시 현실 쪽을 바라보게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이 긍정적이면서도 은밀한 모사의 성취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지켜보아야겠다. 다만 어떤 영화와 닮았는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부터 빅터 시외스트룀의 어드벤처물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와 닮았다고 거론되는 수편의 영화들에 관해 나는 들었지만, 그 지적들이 중요하게 들리지 않는다. 어떤 영화와 닮았는가 지적하는 것 보다는, 어떤 영화를 느끼는 방식으로 이 영화도 느낄 것인가, 묻는 건 어떨까. 알베르 세라의 미치광이 기사와 우스꽝스러운 동방 박사들을,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주정꾼들과 길 잃은 소년들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승려와 군인과 요괴들을 느꼈던 감상의 방식과 흡사하게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이른바, 불가사의함에 관한 시적 무드의 설화 내지는 동화라고 간주하며 감상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알론소의 영화가 얼마나 더 신비롭고 도발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는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단지 나는 이러한 감각의 과정들을 체험하며 <하우하>에 깊이 도취되었고, 좀처럼 거기에서 깨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정성일 _ 작년 부산영화제 회고전에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한 이유는 심금을 울렸습니다. 아직도 첫사랑을 생각하다니!! (웃음) 봉준호 _ 첫사랑은 아니고 두 번째 여자죠. 석 달 만나고 헤어진,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 뭘 하려나.(웃음) 정성일 _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떠올리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입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 봉준호 _ 두 개가 있어요. 강수연 선배가 (비구니가 되었다가 환속하면서 머물던 산사를 떠나서 속세로 향하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산을 향해 우는 장면과 한지일 선배와 처음 섹스 할 때 (아직 삭발한 채로 드러나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쓴 모자가 떨어지려고 하자 그) 모자 쓰려고 할 때 카메라가 올라가는 장면.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 강수연 선배님과 술을 한잔 하면서 물어볼 수 있어 영광이었는데 한 테이크 만에 찍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수평에서 시작해서 직부감까지 올라가는. 그 두 개가 생각이 나네요. 정성일 _ 그 장면이 왜 그렇게 자신을 잡아 끈 거 같으세요? 이를테면 두 번째 장면은 여러 가지 기술적 효과나 강수연 씨의 연기도 있기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이 주목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첫 번째 예로 든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기술적으로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본 사람들 중에서도 그 장면을 기억해내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봉준호 _ 보면서 되게 울컥 하더라구요. < 러브레터 >를 보면 산을 향해, 오겡끼데스까? 라고 부르는 데, 그거랑 많이 다르죠.(웃음) 정성일 _ 임 감독님을 지지하는 비평가들을 만나면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최고(Best)가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favorite) 영화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떤 장면이 즉각적으로 떠오릅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한 사람은 토니 레인즈였는데 뒤이은 질문에 바로 그 장면을 얘기했어요. 그러면서 임 감독님의 모든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씬일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다, 고 말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토니 레인즈는 한국 영화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서방세계 비평가이지 않습니까. < 아제아제 바라아제 > 봉준호 _ 저는 감성적으로 울컥했을 뿐더러 제가 울컥했다는 게 굉장히 신기했어요. 강수연 언니 얼굴이 안 나오고 음악도 안 나오고, 카메라가 다가가지도 않아요. 탁 주저앉고 산이 있는데 그걸 길게 끌지도 않으셨을 거예요. 저는 슬프기도 하면서 찌릿했어요. 그리고 대처로 나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부산에서 다시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걸 89년에 서울에서 봤을 때와 24년 만에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보면서, 그 사이 24년 동안 저한테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요. 두 번째 여자 친구는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영화감독도 되었고 결혼도 했고 애도 낳았는데. 같은 장면인데 다른 감정이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저 장면을 찍었다면 어땠을까. 카메라를 강수연 선배 앞으로 갖고 가고 싶어 하는 유혹을 끝내 못 이겨내지 않았을까. 그게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서 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선선함, 감정이 침전되는 그런 예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봤을 때는 굉장히 찌릿했었어요. < 길소뜸 >에서 한지일 선생께서 죽은 개를 들고 가는 장면도 강렬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강렬하게 잔상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그리고 저는 뒷모습이 많이 생각이 나네요. 마지막 장면에서 강수연 언니가 걸어가는... 전형적인 라스트 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과 속세에 대해 끌고 왔던 그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가 있는 탓도 있겠지만 사람들 틈으로 가는 강수연 씨의 남다른 뒷모습의 느낌이 있었다는 거 같아요. 뒷모습을 잘 찍는 다는 게 뭘까. 내가 영화에서 봤던 가장 인상작인 뒷모습이 뭘까, 가끔 생각해봐요 정성일 _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의) 에드워드 양도 뒷모습을 잘 찍는 감독입니다. < 태양은 없다 > 봉준호 _ < 태양은 없다 >에서도 정우성 씨의 뒷모습을 굉장히 잘 찍었습니다. 거기서 굉장히 외로워 보였습니다. 정성일 _ 정우성 씨를 카메라 앞에 세우면 다들 앞을 찍고 싶어 하죠. 봉준호 _ 저는 김성수 감독님 영화중에는 < 태양은 없다 >를 제일 좋아해요 정성일 _ 부산에서 < 아제아제 바라아제 >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102편이나 되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중에서 딱 한 장만 티켓을 준다면 어떤 영화를 선택하시겠어요? 만약 저라면 봉준호 감독의 한 편은 < 괴물 >을 선택할 것입니다. < 살인의 추억 >으로 미워졌던 제 마음을 호의로 돌아서게 해준 작품이니까요. (웃음) 봉준호 _ 중간에 한 단계를 거치면 조금 쉬워지지 않을까요? < 짝코 >, < 티켓 >, < 아제아제 바라아제 >일 거 같아요. <티켓>은 제게 잔상이 많은 영화였어요. < 길소뜸 >도 물론 아름다웠고, < 개벽 >도 있었고, (잠시 생각) < 축제 >는, ... < 창 >은, ... 아마 그 세 편인 거 같습니다. 간발의 차로 <길소뜸>. (웃음) 정성일 _ 바보 같은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봉준호 감독님께 좋은 영화란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정성일 _ 똑같은 질문을 저 자신도 대중강의 때 많이 받았습니다. 수차례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영화에 시네마틱한 모멘트가 있으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고 대답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주제와 아무리 감동적인 얘기를 한다고 해도 좋은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으로 봉준호 감독께 이 순간이 오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그런 게 있습니까? < 설국열차 > 봉준호 _ 좋은 영화가 뭔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런 의견에는 100퍼센트 공감합니다. 저도 그런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 영화를 만들거든요. 영화든 만화든. 소설에는 불가능한. 여지껏 본적이 없는 영화적인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 저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그걸 아편삼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 마더 > 때는 허벅지에 침을 놓고 태양을 (향해서) 일어섰을 때가 그런 거였고, 그것을 아편 삼아 영화를 찍었고, < 설국열차 >에는 기차가 암흑 속에 빠졌을 때 기차 맨 뒤의 꼬마가 성냥불을 켜서 올림픽 성화 봉송처럼 그걸 들고 뛰어갈 때, 착각이고 환상인데 그걸 아편삼아 버텨나가는 거 같아요. 사실 그게 참 힘들잖아요, 이미 영화감독이 되셨는데, 게다가 3시간 대작을 찍으셨는데 정인선 양이 햄버거를 먹는 강렬한 긴 롱 테이크로 시작하는, (그런 선택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화일이 굉장히 힘들잖아요. 일 년에 한 편 씩 찍는 우디 앨런도 그렇게 말할 거예요. 데이빗 린치도 정신적으로 단련한다,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개기고 버티는 게 그런 모멘트 인거 같아요. 사람들이 비난하면 비난 들어야 하고 돈을 투자한 사람한테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되게 이상한 직업이지만 그래도 계속 버티고 하고 싶은 거는 그런 모멘트를 만들고 싶어서, 이건 이제까지 아무도 한 적이 없어, 그걸 아편삼아 영화를 하는 거 같아요. 그런 모멘트가 있으니 이건 좋은 영화다, 라고 사람들 앞에서 그런 이유를 들이밀면서 우기지는 못하겠지만 이번 영화는 완전히 망했고 트위터에 사람들이 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면은 죽여, 그렇게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런 자기만족을 얻으면서 버티는 거 같아요. 근데 임 감독님 영화에는 항상 그런 게 있다는 거죠. 정성일 _ 평론가 입장에선 그런 순간이 있으면 영화를 필사적으로 방어해주고 싶어져요. 봉준호 _ 임 감독님 영화에는 그런 게 항상 있었던 거 같아요. 히치콕도 그렇고 이마무라 쇼헤이도 그렇고, 김기영 감독님 영화는 그런 게 되게 많은 거 같아요. 편애!! (웃음) 정성일 _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저는 항상 그 영화를 끄는 힘에 대해 항상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힘으로 난 끌고 갈 거야, 하는 그런 힘. 연출자로써 임권택 감독님영화를 보면서 가장 강렬한 힘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아까 매직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는데, 전 그게 있는 영화만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모든 걸 포기해도 좋으니 이것은 놓칠 수 없다 는 느낌. 그래서 이 힘을 모으려고 모든 것을 버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화에서의 매직은 저에게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입니다. 저는 그걸 같은 연출자로서 봉준호 감독이 임 감독님의 영화를 바라보면서 보는 특별한 순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봉준호 _ 시네마틱하거나 유니크한 대답은 못되겠지만 저는 임권택 감독님이 주인공이건 다른 사람이건 되게 가여워하시는 거 같아요. 오늘 본 < 짝코 >에서도 김희라 씨나 최윤석 씨를 가여워하시는 것 같고. 그렇다고 신파로 관객들을 눈물바다로 만든 적은 거의 없지만 < 티켓 >에서는 김지미 여사를, < 아제아제 바라아제 >에서는 강수연 뿐 아니라 (산사에서 머물면서 반대의 자리에 서서 강수연의 행동에 비판적이었던) 진영미 조차도, (그리고) < 서편제 >에서는 오정해 뿐만 아니라 눈을 멀게 한 김명곤조차도 가여워하시는 것을 우리도 약간씩 느끼는 거 같아요. 안됐다, 불쌍하다, 이런 마음의 기둥이 이렇게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매혹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어떤 시대건 인물이건 특히 주인공을 가여워하신다. 거기 본인의 처지가 투사되실 수도 있겠죠. 어쨌든 가여워하시는 거 같아요. 그 느낌이 계속 유지되니까 영화가 추동되어 나가는 거 같고. 정성일 _ 당연히 두 사람 사이에서 영화 편수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만 봉준호 감독도 이제 연출 경력에서 올해로 14년이 되는 프로페셔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 ,여기서 나와 임권택 감독님이 갈라지는구나, 우리는 서로 다른 연출자구나, 이런 걸 느껴본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이건 존경하는 것과 다른 차원이죠. 충분히 훌륭하지만 당신과 나는 이 지점에서 갈라지는 구나하는 지점이랄까. 봉준호 _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동경의 대상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그런 뜻입니다. 어느 지점에서 비슷하다가, 그래서 같은 줄 알았다가 결국에는 다르구나, 해야 갈라진다고 느낄 텐데, 처음부터 임 감독님은 강 건너편에 계신 분, 강 건너 아주 아름다운 배경으로 계시고, 저는 반대편 둑(embankment)에 있는 거죠. 어느 편이 좋고 나쁘고 가 아니라 강 건너편에 계신 데, 물살을 거슬러 도달할 수 없는, 세월의 두께를 표현한다거나 선선한 느낌 같은 거는 도저히 제가 흉내 낼 수 없는, 항상 제 뚝방의 영화만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건너편이라고 해서 꼭 차갑고 낯선 거리를 느끼는 건 아니잖아요. 정성일 _ 국적을 불문하고 이 사람은 나랑 영화적 피가 똑같다는 사람은 누군가요?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봉준호 _ 똑같다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똑같고 싶다, 똑같다면 좋지 않을까 혈액형이. 그런 감독은 많이 있죠. 기요시. 대착각으로(웃음) 말한다면 히치콕. 넓은 의미에서 히치코키안. 물론 히치콕의 발톱의 때만도 못하지만 넓은 의미의 히치코키안이 되고 싶어요. < 설국열차 > 때 존 허트 할아버지와 술 먹다가 그 분이 마이클 치미노, 리들리 스콧, 데이빗 린치랑도 찍었고, 엄청나잖아요. 술 먹으면서 우리 영화 얘기를 해야 하는데, 가끔 눈치를 보면서 < 천국의 문 > 때 현장에서 어땠어요, 그런 질문을 하고 싶잖아요. 저도 씨네필이니까. (웃음) 그런 얘기를 하다가 존 허트 할아버지가 미스터 봉! 너는 히치코키언 인거 같애. 너의 스토리보드와 찍는 방식을 보면 그런 거 같애, 그러면 되게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오! 녹음할 걸! 조잡한 조잡심이 발동하면서, 그런 대화가 즐겁고 이분이 찍었던 감독들 리스트에 내가 끼었다는 게 기쁘고. (웃음) 하지만 냉정해야지. 영화를 찍어야 하니까. 거대한 히치코키언의 혈통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거기에 샤브롤도 있고 드 팔마도 있는 거잖아요. 드 팔마는 대놓고 내가 외아들이야 서자들 다 꺼져, 너무 그러니까 안쓰럽기도 한데, 샤브롤 님은 저 위에서 웃고 계시고, 나도 그 혈통에 끼면 좋지 않을까. 원래 형제들끼리 많이 싸우잖아요. 조상님만 보는 거죠. 임권택 감독님의 < 족보 >도 있는데, 영화는 시원찮고 체형만 닮아가고 있죠. 안타깝습니다. (웃음) 정성일 _ 뚝방의 이쪽으로 와 보지요. (웃음)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는 제작을 한 < 해무 >까지를 포함해서 연극이나 만화에는 이끌렸지만 문학에 이끌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종종 문학적 대사에 대한 경멸을 느껴봅니다. 봉준호 _ 경멸까지는 아니지만 문어체 대사가 정말 싫습니다. 정성일 _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문학의 무언가가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에 끼어드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문학을 가능한 한 영화에서 밀쳐내는 것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든다고 생각 한달까요, 이 지점이 서로 갈라서는 지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임 감독님은 끊임없이 긴 시간동안 문학을 영화에 끌어오고 아예 나중에는 이청준 작가님을 영화 현장에 모셔 옆에 앉혀놓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대사를 물어보곤 하셨죠. 이번 새 영화 < 화장 >도 김훈 작가의 소설입니다만, 김훈 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찍고 싶어하는 마음은 아주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봉준호 _ 문학을 적대적으로까지 생각하지는 않았고 문학적인 뭔가가 침투되어 온다고 해서 이건 시네마틱 하지 않아, 라고 경계심과 적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고 그럴 계제도 못됩니다. 제가 문학을 잘 모릅니다. 형도 영문학을 전공하셨고, 외할아버지도 소설가셨는데, (외할아버지는 몽보(夢甫) 박태원 작가이다) 아직 외할아버지 소설도 다 읽지 못했습니다. 책보다는 DVD에 가까운 인간형이다 보니, 문학을 많이 접하지 못한 게 부끄러운데. 소설을 영화화한 적도 없었고, < 살인의 추억 >은 실제 사건과 김광림 선생의 「날 보러 와요」 희곡작품으로 했고, < 설국열차 >는 그래픽 노블이구요, < 괴물 >, < 마더 >, < 플란다스의 개 >는 저의 오리지널 스토리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는 모르겠는데, 소설 원작을 제안 받아본 적은 많이 있어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도 「모방범」을 일본에서 이미 영화화되기는 했었지만 꼭 영화화 해달라고 제안을 하셔서 오래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테드 창의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라고 작년에 700억 규모의 세트 영화로 제안을 받았어요. (이 소설은 한국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고 번역된 단편집 안에 세 번째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로 번역되어 있다) 스토리가 굉장히 아름답고 좋더라구요. 언어학적이라 골치가 아프긴 한데,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를 이미 각색한 걸로 저에게 제안을 했어요. 근데 테드 창의 원작이 저는 훨씬 좋았어요.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좋은 소설인데 각색은 조디 포스터의 < 콘택트 >처럼 하향평준화 해놨어요. 저는 원작 단편이 훨씬 좋았습니다.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원작 소설을 내가 다시 각색하고 싶다고 했더니, 각색한 분이 또 프로듀서 중의 한 분이고 이미 그것을 기다리는 배우가 있고 그래서 결렬되었어요. 미안하다 디렉터 봉. 네가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다고 믿는데 우리가 스튜디오랑 스케줄이 있다. 저게 첫 번째 문학 텍스트였을 뻔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저걸 < 프리즈너스 >와 < 그을린 사랑 >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하게 되었더라구요. 제가 문학 원작을 의도적으로 배척할 경지는 못되었고 사건이나 인물이 흥미로우면 저는 본능적으로 끌렸습니다. 하지만 대신 문예영화에는 경계가 있었어요. 문예영화라는 딱지를 붙었을 때 대종상을 더 받을 수 있는 영화고 점잖고 아름다운 영화. 소설을 바탕으로 한 문예영화가 아니면 그것을 장르영화로 폄하하는 카운터 관계로서 자리매김하는 건 너무 싫거든요. 장르라는 건 더 아름답고 영화적이다. 저는 장르는 존경받아야 한다. 저나 김지운 감독의 마음속에는. 김지운 감독도 굉장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장르를 선포하시잖아요. 이번에는 만주 웨스턴이요. 호러요. 저는 그런 건 좋은 관점 내지 태도라고 존중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장르를 폄하하지 말라는 뜻에서 문예영화라는 타이틀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던 거지, 문학이나 소설을 제가 딱히 경계할 위치는 못되었고 많이 읽지 못한 것을 개인적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죠. 정성일 _ 비평 커뮤니티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다섯 편을 연출하면서 문학과의 거리를 계속 유지하는 건 외할아버지와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 자체가 워낙 큰 작가이고 그런 것이 자기 세계에 얽혀 들어가는 것과 긴장을 유지한다고 할까. 봉준호 _ 처음 생각해보는 부분인 거 같습니다. 외할아버지를 포함해서 문학 전체에 대해 경계심을 갖지 못했던 거 같구요. 독서량이나 독서 습관이 잘 형성이 안 되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려서 만화와 TV를 너무 끼고 살아서(웃음) 장편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지구력과 맷집의 부족, 대학 때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영화화하고 싶어서 배우를 대입시켜서 생각해본 적은 있는데, 염상진은 이 사람이야, 하대치는 허벅지가 굵어야해. (웃음) 이미 임권택 감독님이 영화를 만드셨고. 문학에 대한 자의식과 디스턴스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송길한 , 송능한 형제님들이 있는데 영화를 찍고 있을 때 < 넘버 3 >의 시나리오를 구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굉장히 쇼킹한 적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사람이 이렇게 잘 쓸 수 있구나. 정말 훌륭하다. 이창동 감독님의 시나리오도 영화화되기 전에 구해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굉장히 아름답고 잘 쓰시고. 임상수 감독님도 참 대사도 잘 쓰시고 그렇지만 송능한 감독님의 시나리오 <넘버 3>를 봤을 때는 진짜 훌륭했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안 하시지만 그분의 형님이신 송길한 선생님이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 하신 작품들을 보면 < 짝코 >, < 길소뜸 >, < 만다라 >, < 티켓 >, 많네요. 소설 원작이 있었다고 해도 송길한 선생님은 제가 좋아하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많이 하셨고, 송길한 선생님의 시나리오는 문학의 영역같이 느껴져요. 신춘문예 당선작의 희곡과 시나리오를 보는 것처럼. 영화를 안 본 상태에서 송길한 선생님의 시나리오만 읽어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송길한 선생님 같은 경우는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니신가. 문학과 영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 분은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정말 위대한 문학가이지 않으신가. 정성일 _ 봉준호 감독님은 콘티를 정말 잘 그리는 걸로 충무로 넘버원이잖아요.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콘티 작업도 직접 하는데 끝난 콘티하고 완성된 영화하고 오차 범위가 얼마나 되세요? 봉준호 _ 상당히 비슷합니다. 정성일 _ 이를테면 박찬욱 감독은 거의 콘티대로 찍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봉준호 _ 저도 콘티대로 찍고 편집에서 약간 응용하거나 변화를 많이 주기도 하지만, 저는 샷 컨스트럭션 하는 게 감독의 가장 큰 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당일 날 아침에는 콘티를 복사해서 나눠주고, 콘티 배열대로 찍습니다. 다만 배우에게 있어서는 방금 물에서 잡은 물고기처럼 라이브하게 가야하니까, 현장에서만 시도해볼 수 있는 거라든가 숨통을 트일 수 있는 뭐가 있는 지 막 얘기하고 하는데 그렇게 찍는 장면도 설계된 카메라였구요, 그게 감독의 일이고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흔히 영화를 보면서 시나리오가 좋았어, 라고 생각하는 것도 시나리오를 인쇄해서 극장에서 나눠주는 게 아니잖아요. 영화 속에 배열된 장면을 보고 거기서 추출 되서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오게 되는 건데, 물론 시나리오도 제가 직접 씁니다만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 시나리오는 증발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장면과 사운드가 남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2시간 동안 연이어 보여지는 커트 수가 1,000개 이하거든요. < 설국열차 >때 처음 1,000개를 넘어갔는데, < 괴물 >도 약 800컷, < 마더 >도 약 600컷. 장면들의 연속이 물질적으로 영화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설계하는 게 감독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일 _ 현장에서의 우연이라는 건 배우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나요? 봉준호 _ 우연을 줄이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콘티 자체가 로케이션 헌팅을 하고 공간을 확정지은 후에 콘티를 수정하거나 만듭니다. 또는 세트의 설계도가 나온 후에 다시 수정하거나 합니다. 쇼트를 컨스트럭션 해야 하니까요. 반대로 쇼트를 설계하면서 공간도 설계하게 되니까, 이런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미술 감독에게 주문하죠. 취조실이 보일러실이고 이 창에서 김상경이 들여다보아야 하니까 이런 계단을 해주시오. 이 계단의 폭은 매우 좁아야합니다. 그 주문에 맞춰 류성희 미술감독이 세트를 만들어 줍니다. 만들어진 세트를 보고 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다시 공간을 설계하고 그렇게 가면 큰 문제가 없이 그대로 찍게 됩니다. 미친 듯이 준비하고 오차를 없애려고 하고.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불안한 게 많아서 그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겁이 나니까. 엑스트라 50명 왔는데 못 찍으면 어떡하지. 그렇게 해서 콘티를 그리고 카피해서 나눠줍니다. 몇 달 전에 나오는 콘티도 있고, 그전 날 나눠주는 콘티도 있고 당일 날 나눠주는 콘티도 있지만. 콘티 없이 현장에 스태프가 모이는 일은 없었어요. 이렇게 하면 마음이 놓이니까 그렇게 하죠. 그렇게 콘티를 스태프들이 다 쥐고 있으면 그때부터는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하죠. 콘티대로 하면 찍을 수는 있으니까 일단은 기본적인 안심은 됐고, 내가 만든 콘티지만 어떻게 반항할까, 거역할까. 어떤 걸 뭘 더 추가할까. 저 배우가 저 표정이 재밌으니까 옆에서 한번 찍어볼까. 현장에 몰랐는데 알고 보니 누가 버려둔 자전거가 있더라. < 흔들리는 도쿄 >때는 그걸 확 잡아 빼는 장면을 넣기도 했고. 그게 저를 흥분시키거나 현장에 나가고 싶게 만드는 요소죠. 하지만 그건 다 준비한 후구요. 콘티 없이 현장에 나가는 게 싫습니다. 정성일 _ 어떤 점에서는 시나리오가 끝났을 때 이미 영화가 머릿속에서 끝난 거네요. 봉준호 _ 다는 아닌데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 사운드랑 이미지로 생각했는데 그걸 그려 주기에는 (시나리오라는 것이) 낯선 단계이기 때문에 그걸 지문이랑 대사로 전환시켜서 인더스트리에서는 시나리오를 필요로 하잖아요. 그걸 가지고 스태프들을 구성하고 하니까. 구청에 갈 때는 민원서류를 들고 가듯이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서류를 통해서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인 것처럼 영화 일을 위해 시나리오를 쓴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많은 감독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사운드와 이미지가 먼저 있는 거고 그래서 제가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를 받아서 연출하는 걸 잘 못하는 거 같아요. 결국 제가 쓰게 되잖아요. 미국 영화 시스템에서는 에이전시에서 뿌리는 시나리오들. 시나리오와 감독과 배우가 짝짓기 하잖아요. 한국 같은 경우는 연애 결혼하는 거잖아요. 미국은 시스템 자체가 중매결혼 하고. 중매쟁이가 에이젠트들이죠. 미국에서도 타란티노같은 감독들은 연애 결혼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영화 사이의) 텀이 3, 4년 정도 걸리고. 직업적으로 더 많은 영화를 만들려면 때로 중매 결혼해야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은 거 같아요.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렇게 준비를 해서 현장 진행을 할 때 실용적 관점에서 찍으세요, 아니면 영화를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으세요? 봉준호 _ 순서대로 찍은 적은 없고요,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으려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요. 켄 로치가 < 랜드 앤드 프리덤 >을 찍을 때 그렇게 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한 효과가 클라이맥스에서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이크 리는 연극 공연처럼 접근한다고 들었어요. 몇 달간 모여서 연습하고 크랭크 인하는 시점이 대학로 무대 공연 올리는 시점처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건 그 양반들의 접근법이다, 라고 생각하고 저는 물리적입니다. < 설국열차 >도 첫날 라스트 씬을 찍었구요, 촬영 조건 때문에. 고아성 과 그 흑인 아이가 기차 밖으로 나가서, (그 설경 장면이) 실제 오스트리아의 산악지대에서 찍은 것이거든요. 이 라스트 씬 만큼은 실제 눈이어야 하지 않나. 두 시간 동안 기차 세트 안에서 찍고 창밖은 (스튜디오 안에서) 내내 그린 스크린인데, 이제 마침내 기차를 벗어나 이게 메시지인데, 그래서 마침내 기차 바깥을 나와서 차가운 실제 공기를 마시고 실제 곰이 있는 건데 이것까지 그린 스크린을 해야 되냐. 미국 라인 피디가 엄청 반대하는데 저랑 홍경표 촬영 감독이 우겨서 찍었어요. 영화를 4월, 5월, 6월에 찍은 건데 눈 녹기 전에 그 라스트 씬만 (먼저) 찍고 온 거죠. 3월이 지나면 눈이 녹으니까 스태프들이 모여서 영화 라스트 씬부터 찍은 거죠. 우리는 프로잖아?! 이러면서 찍은 거죠. 고아성 양이 감독님 어떻게 해야 되요? (현장 표정을 지으면서) 많은 일을 겪었잖아, 시나리오 읽었잖아? 이러면서 찍었죠. (웃음) 와 너무 좋아, 좋아, 잘했어!! 불안해하지 마! 이러고 찍었죠. < 살인의 추억 >에서도 라스트 씬에서 송강호 씨가 황금벌판 보는 장면을 촬영 초에 찍었어요. 벼가 누렇게 익어서 출렁출렁할 때 찍어야하니까. <살인의 추억> 크랭크 인이 전남 장성에서 2002년 8월 21일, 8월 말이었는데 황금벌판, 추수 직전에 찍고 싶었어요. 그게 논 주인들과 다 협상하고 얘기를 한 건데 벼 베기 직전에 우리에게 알려 달라, 논마다 벼 베는 시점이 다 달라요. 벼 베는 시점을 제작부장이 미리 다 체크를 하고 벼 베기 직전에 그것을 찍었기 때문에 전체 영화의 25퍼센트 지점에 (찍었어요). 그건 프로로써 당연히... (잠시 생각) 감독이나 배우로써 난감할 수 잇겠지만, 세트 가면 세트로 몰아서 찍는 거구요. 특히 <설국열차>에선 정말 촬영순서가 복잡했는데 왜냐면, 설명을 하자면, ABCD 이렇게 4개의 세트를 짓고 해체하면서 돌아가면서 찍는 거거든요. 식물 칸에서 찍고 있을 때 꼬리 칸을 한 쪽에서 만들고 있고, 완성되면 넘어가고. 이쪽에서는 또 해체하고, 뼈대만 남기고, 뼈대 가격이 정말 비쌌기 때문에, 전체 스케줄을 지배하는 게 미술팀인거에요. 기차 세트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건데 기차도 실제 크기이고. 총 26개 서로 다른 기차 칸을 짓는데 기차 예산을 가장 ‘코스트 이펙티브’ 하게 짓고 해체하는 데에 맞춰서 배우와 스태프 전체가 움직이는 거예요. 미술팀이 스케줄을 지배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했으니 간신히 400억에 만든 거예요. 그렇게 뒤죽박죽해서 찍는 와중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더 계획해야하고 스토리보드 대로 찍어야 하는 거죠. 정성일 _ 이건 비평가라기보다는 씨네필로서의 관심인데, 완전히 반대로 찍는 사람은 홍상수 감독이잖아요. 두 분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봉준호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항상 재밌게 본다는 이야기를 여러 인터뷰에서 읽었습니다. 완전히 다르게 찍는 이 감독의 영화에서 무엇이 재미있으세요? 봉준호 _ 다 요, 매직.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도 매직이 많지만,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도 매직이 정말 많은 거 같아요. 정성일 _ 그 매직이 가장 많은 영화는 어떤 영화였나요? < 북촌방향 > 봉준호 _ < 북촌방향 >. 최근에 흑백영화였죠. 술 먹고 아침에 길에 나와서 택시 잡는데 모여서, 그 장면이 정말 압권인거 같아요. 홍상수 감독님과 술을 몇 차례 먹어본 적은 있고, 섹시하시고 (웃음) 촬영현장에 가본 거는 딱 한 번뿐이에요. 김형구 감독님이 촬영하셨던 < 극장전 > 현장에 제가 갔었더랬어요. < 살인의 추억 >을 찍은 직후였고 김상경 도 볼 겸. 그 씬은 영화에서 편집 때 결국 잘려나갔는데 김상경이 술자리에서 여자들과 술 마시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세세하게 디렉팅하시더라구요. 여기 소주잔을 이렇게 잡고, 소주잔을 깨물어서 이렇게 하란 말이야! 단역배우에게도 굉장히 엄격하고 세세하게 얘기하더라구요. 존 카사베츠 스타일과 아주 다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전히 가장 매혹적인 영화를 만드시는 거 같아요. < 밤과 낮 >도 미국판 DVD를 얼마 전에 아마존에서 구했기 때문에 빼고는 다 갖고 있는데 모든 DVD를 늘어놓고 보면 몇 개씩 건너뛰어서 연결하면 한 영화 같기도 하고 이번 주 < 자유의 언덕 >도 보지만. 포스터를 보면 문소리가 비굴하게 해맑은 얼굴로 카세 료에게 수작을 걸잖아요. (웃음) 카세 료는 왜 이렇게 말랐을까, 감독님이 주문을 했나. 포스터부터 매혹됩니다. 정성일 _ 원래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2000년부터 < 플란다스의 개 >로 시작을 해서 영화 작업 기간이 14년이나 겹치는데 봉준호 감독과 임 감독님의 배우가 서로 안 겹칩니다. 한국영화는 의외로 매우 좁기 때문에 서로 배우를 피해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배우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을 제외하면 감독이 배우와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긴데, 이를테면 많은 감독들이 다른 감독 영화를 볼 때 그 감독이 배우를 어떻게 다룰까 유심히 보는 거 같습니다. 봉준호 _ 드디어 겹쳤습니다. 김호정 씨. 저의 첫 작품과 임 감독님이 최근 작품이! (웃음) 그런데 정말 안 겹치나요? 정성일 _ 양쪽 모두 자기에게 탑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겹치지 않았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강수연 씨도 안 쓰셨잖아요? (웃음) 말하자면 배우가 아니라 그 배우가 만들어내는 인물과의 친화성이랄까, 연출이란 결국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멀어지면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게 된다고 느껴집니다. 연기지도라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도 매우 특별한 자기 방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바라보면서 이것이 임권택 연기 디렉션 메소드라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인지요? < 마더 > 봉준호 _ 많은 명배우들이 나오셨잖아요, 임 감독님 영화에. 그래서 약간 외람되지만, 예를 들어 김갑수 , 강수연 선배님처럼 그런 명배우 말고 우리가 흔히 명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 배우를 보면 임 감독님의 메소드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한지일 씨. 제가 연출부에서 그분을 잠시 모신 적이 있어요. <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 >에서 슬레이트를 치고 첫 연출부를 했었는데( 박종원 감독의 연출부를 했다) 거기에 한지일 선배님이 나오시죠. 그때도 물어 봤죠 < 아제아제 바라아제 >랑 < 길소뜸 >에서 어떻게 하셨나. 그 분이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보면 소주병을 들고 (같이 자기와 살지 않으면) 자기가 죽으려고 한다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비구니인) 강수연에게 이상한 대사들을 하는데, 그때 영화 아카데미에서 친한 누나인 김명화 선배가 임권택 감독님 연출부를 몇 작품 하셨는데 한지일 선배님이 영화를 찍을 때 상황을 얘기 하시더라구요. 밤 새워 뭔가를 찍는 장면이 있었는데 계속 그 대사를 틀리셔서 결국에는 한지일 선배를 제외한 모든 스태프들이 그 대사를 외웠다는. (웃음) 임 감독님이 그것을 다 인내하시고 참아내시면서 결국 오케이를 하신다. 아까 말한 제 얕은 추측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을, (잠시 생각) 시대를 가여워 하시는 거 같습니다. 배우들에게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춘향뎐 > 예고편을 보면 배우들을 다그치고 윽박지르는 것도 나오지만 그런 건 표면적 메소드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들을 되게 아끼고 좋아하지 않으실까, 가여워하지 않으실까. 그런 마음이 있을 때 감독이 사실은 기다릴 수 있게 되거든요. 그 분이 이 인터뷰를 읽지 않을 거라는 추측에 이런 말을 하는데요. 김진구 할머니라는 분이 계세요. < 플란다스의 개 >에서 침 뱉는 할머니, 치와와 주인. < 마더 >에서 죽은 여고생 쌀떡 소녀의 할머니, 맨날 막걸리 드시는. 이창동 감독님 영화에도 몇 번 나오시고.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 배우신데. 여균동 의 < 죽이는 이야기 >에도 나오시고. 저는 김진구 여사님 되게 좋아하거든요. <마더>에서 김혜자 선생님과 연기 대결하는 순간이 있어요. 김혜자 선생님이 플래시 들고 갔을 때 쌀통 속에서 핸드폰을 좌악 꺼내며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대사를 빅 클로즈업에 하는 장면이 있어요. 나정이 핸드폰 여기 있어요? 그러니까, (김진구 여사가) 벌써 술 바꿔 먹었는데~~ 이러는 이상한 괴연(怪演)을 하는 게 있는데 그걸 제가 35 테이크 까지 갔어요. 그걸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컨셉이 있었는데. 고걸 제가 (그 앞에서 직접) 여러 번 해드렸어요. (그런데) 막상 하면 자꾸 딴 걸 하세요. 그 분이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하세요. 나중에는 옆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지치셔서, 아유 이렇게 찍으면 벙어리도 입이 열리겠네, 그러시는 거예요. (웃음) 그래도 제가 그 분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었거든요. 홍경표 감독님이 핸드 헬드니 얼마나 어깨가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다 기다려주시고. 임 감독님이 때로는 되게 배우들에게 무섭게 하신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영화처럼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을 가여워하신다고 추측해요. < 취화선 > 때 현장에 되게 오래 계셨잖아요? 정성일 _ < 취화선 > 때 손예진 양이 죽다 살아났죠. 똑같이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 영화도 필름으로 찍었는데 장승업이 손을 다치자 어쩌나, 그 귀한 손을, 하는 장면을 17 테이크를 갔죠. 약간 동선이 복잡해서 오후 내내 찍었어요. (웃음)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에서도 배우들의 앙상블이 종종 모든 걸 거는 장면들과 만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저는 < 살인의 추억 >에서 한꺼번에 룸살롱에 형사들이 몰려가서 얘기하는 장면의 앙상블이 정말 좋아요. 그게 희생자가 발견된 논두렁을 오가는 송강호 를 따라 롱 테이크로 쫓아가는 그 유명한 장면보다 훨씬 좋았어요. 봉준호 _ 거의 안무죠. 정성일 _ 정말 앙상블의 안무죠. 저로서는 < 플란다스의 개 >가 사랑스럽긴 하지만 여기서 이 사람이 연출자로 확 커져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건 그런 장면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좁은 공간으로 밀어 넣었는데 < 설국열차 >에는 왜 그런 순간이 없을까 아쉬웠어요. 좀 밋밋하게 느껴졌달까, 오히려 폐쇄 공간에 모든 배우들을 집어넣고 나면 저는 그런 순간이 계속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봉준호 _ 미세한 연기적 뉘앙스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밀한 터치를 하기가 < 설국열차 > 때 그게 쉽지가 않았어요.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적으로 2개월 4주 만에 그걸 다 찍는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찍는 분량이 제가 보통 찍는 분량보다 훨씬 많았죠. < 살인의 추억 >이 한 5개월 찍었고, < 괴물 >도 6개월, < 마더 >는 4개월. 제가 찍었던 영화 중 <설국열차>가 테이크 수가 제일 적었어요. 투박하고 거친 느낌으로 계속 밀어붙이지 않으면 제 일정 안에 끝내기 힘들,. 그런 계산이 첫 주 둘째 주부터 들더라구요. 그런 상황이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 때 자주 쓰시는 말 중 하나가 상상력입니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님 영화를 보면 상상력의 어떤 순간들이 진행되는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 괴물 >에 괴물이 나왔다는 차원이 아니라, < 살인의 추억 >의 경우 실제 사건을 쫓아가는 중에 어떤 장면을 연출할 때 사실을 과잉해버린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장식 과잉이 아니라 어떤 순간으로 밀어붙여 버린달까? 구태여 보일러실로 갈 필요가 없었는데 상식적으로 경찰서로 가면 되는데 보일러실로 내려가서 사실 공간으로부터 상상력의 공간으로 끌고 간달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봉준호 터치야, 라고 말하는. 구태여 시체를 전시한 < 마더 >의 장면에서도 그렇고, 봉준호 감독님의 대답을 흉내 내자면 빨래처럼 시체를 걸어놔야만 한다는 어떤 변태적인 증후들. (웃음) 이건 명백히 이야기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순조롭게 가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연출자가 그 상상력의 흔적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순간들이 있달까요. <괴물>의 경우에도 그 출발이 서울 시민 2천만이 다 보는 한강에 괴물을 구태여 끌어내서 실재와의 불가능성을 동거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그 과잉하는 상상력. 많은 사람들이 있는 백주 대낮의 한강에서 마주쳐야만 하는 괴물. 이 괴물은 처음부터 은밀하게 나타날 생각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상상력의 허구 안에서 필사적으로 리얼리티를 끌어내려고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상상력의 허구 안에서 필사적으로 리얼리티를 부여하려는,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과 리얼리티의 긴장, 공존의 긴장. < 살인의 추억 > 봉준호 _ 말씀하신 대로인거 같아요. 그런 걸 할 때 가장 즐겁습니다. 최대한 뻔뻔스러워지려고 하고. 영화라는 매체가 주는 중요한 흥분이라고 느껴져요. 말이 안 되는 건데 괴물이라는 생명체가 맨날 왔다 갔다 하는 한강 고수 부지 백주대낮에 가는 거잖아요. 그거에 대한 송강호 의 리액션은 또 너무나 사실적이잖아요. 분위기도 리얼하고 SF적인 포장이 전혀 없고. 거기서 오는 생경하면서 어색하기도 한, 표피가 리얼하면 보는 사람은 믿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는데 믿을 수밖에 없도록 표피를 만들고. 그런 상황이 저는 되게 좋아요 재밌고. 실제로 2001년인가 태국 무슨 서커스단이 한국에 와서 코끼리 다섯 마리가 장안동 광진구 쪽 일대를 돌아다니는 뉴스 클립이 유튜브에 있어요. MBC 뉴스데스크에 나오는데, 어떤 식당에 코끼리가 들어가서 가게 주인이 망연자실하게 보는데 코끼리가 김치 통을 까고 있고, (웃음) 실제로 뉴스 클립인데 초현실적이거든요. 그런 느낌을 좋아하니까 < 괴물 >같은 걸 한 거고, <괴물>처럼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어도, < 살인의 추억 >에서도 보일러실 얘기를 하셨지만 최소한의 저 자신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핑계거리만 있다면 밀어붙이려고 하거든요. 실제 화성연쇄 사건 기록을 봐도 미국처럼 근사한 취조실이 없어요. 라이트가 쫙 들어오고 밖에서만 안이 보이고, 80년대는 그런 게 절대 없어요. 취조를 근처 여관방에서 하고 그래요. 여인숙에 데려가서 앞에 순경 세워놓고 안에서 쥐어박으면서. 그런 증언이나 기록이 되게 많아요. <살인의 추억> 전체적으로 보면 야매에 대한 맥락이 있어요. 나이키와 나이스. 전미선 씨가 야매 주사를 놓고 경찰 자체가 FBI와 시골형사로 나눠놓고 증거자료가 오가고. 취조실도 제대로 된 취조실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보일러실 취조, 그래 좋다. 뻔뻔스럽게 스태프들을 먼저 설득을 하고요. (모두 모아놓고) 실제 이랬어요, 그러는 거죠. 김뢰하 씨가 워커 군화를 신고 용의자를 구타할 때 거기에 덧버선을 씌웠습니다. 사실 이건 제 머릿속에서 나왔는데 스태프에게는 항상 테스트 삼아 거짓말을 해봐요. 이건 내가 형사 인터뷰에서 들은 거라고, 그럼 다들 아, 진짜 리얼하네요, (웃음) 그래요. 보여주면, 설득하면 믿는 거 같아요. 항상 스태프가 첫 번째 관객이라고 생각하는데,그래서 (스태프들에게) 실제 형사를 취재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 디테일이에요, (라고 시침 뚝 떼고) 말하는 거죠. 그냥 시나리오 쓰면서 생각한 거거든요. 그런 게 점점 심해지면 <괴물>까지 나오는 거예요. 점점 뻔뻔스러워지죠. < 마더 >도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허벅지 어디다 침을 놓으면 기억을 상실하고, (그런데도) 동의보감에 그런 게 있다는 둥, (웃음) 우리가 보면 말이 안 되지만 동의보감이나 실제 고증해보면 있다. 이런 게.(웃음) 진정한 망각까지는 안 되겠지만 여기다 침을 놓으면 몸이 풀리면서 좋아진다고 해요. 그러면 김혜자 선생님도, 어. 그렇군요, 그러시죠. 누구를 속이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기본이 아닌가요. < 화니와 알렉산더 >에서도 나오지만 남자애가 거짓말을 하잖아요. 그게 사실 창작의 근원처럼 영화가 설명되고 있는데. 신부의 집에서 애가 모진 일들을 겪으면서, 마지막에 할머니가 재우면서 읽어주는 시도 그렇고 창작의 거미줄을 짓는 것. 그런 것을 상상력이라고 표현해주셨는데,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 이거 취재에서 나온 건데? 그렇게 믿게 만드는 거. 그럴수록 재밌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 _ 한국영화의 가장 큰 짐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라는 말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인과관계로 다가오고, 누군가에게 사실주의로 다가오는 데, 이 사회가 끊임없이 예술가들에게 요구를 하고 있는 것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문제는 리얼리즘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마법적 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봉준호 감독에게 리얼리즘이란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예전에도 얘기했지만 저는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이 없고 리스펙트도 없어요, 만화를 좋아하고 그리면서 컸기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정성일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있으면 디테일적인 리얼리즘이랄까요. 보는 쪽에서는 강박적일만큼. < 괴물 > 봉준호 _ 그런 걸 집착하고 즐기는데 모든 게 연출이라는 걸 다 알잖아요. 특히 < 괴물 >에서 간호사 다리만 나오는 뉴스 인터뷰 장면에서 TV 뉴스 따라한 거 저 정말 좋아하거든요. 진짜 최일구 앵커 나오고 자막도 뉴스 자막처럼 들어가고 실제 공중파 앵커들을 데려다가 한강에서 괴물이 나왔다고 찍는 게, 다 큰 어른들이 그러는 게 얼마나 한심하고 웃긴 상황이에요. 찍으면서도 너무 웃기죠. 그걸 뻔뻔스럽게 찍는 건데 말투부터 토씨까지 앵커처럼 바꿔서. 그게 강박적으로 리얼한 거 같지만 이 사건과 영화 전체가 너무나 황당한 거잖아요. 한강에서 포름알데히드를 부었다는 이유로 괴물이 나왔다. 과학자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초반 13분에 그냥 다 나와 버리니까. 괴물이 나올수록 오히려 저는 더 리얼하고 싶은 거예요. < 설국열차 >는 기차 안에 다 우겨넣으면서 오롯이 더 SF적인 세계인 건데, 이질적인 건데 다 뻔뻔스럽게 한 프레임에 우겨넣어버리거나 도저히 리얼할 수 없는 건데 그걸 기를 쓰고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이 부질없어 하면서도 재밌는 거죠. <괴물> 때 그게 극대화되었던 건데. 그게 영화 전체가 아니라 신이나 쇼트에서, 적은 단위에서도 그런 짓을 하는 걸 좋아하고,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경계가 없어지는 게 즐거워요. < 마더 > 개봉하고 실제 4개월 후에 대구에서 어떤 여고생이 살해되었는데 나무에 여고생을 걸어놨었어요. 그런 사건도 실제 벌어지거든요. 실제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 영화를 압도할 때가 있잖아요. 논픽션이 픽션을 압도하는 경우. 너무 기괴하고 이상해서 기구한. 마치 < 매그놀리아 > 도입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전혀 개연성이 없는 일인데 실제로 벌어진. 실제 다큐멘터리라고 하니까 더 믿을 수밖에 없는. 제 영화에서 가장 이상하고 괴상한 것을 반복해 놓은 게 <괴물>이었는데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과 연결시켜서 정리해놓은 게 있더라구요. 실제에서도 오히려 경계가 없지 않나 생각해요. 정성일 _ 디테일의 리얼리즘이 보는 쪽에게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님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잖아요. 근데 그걸 굉장히 냉소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거죠. 정치적 연상도 일으키고 한편에서는 아까 쓴 표현을 빌리자면 서늘한 거죠. 왜냐하면 내가 사는 세상을 향해 웃고 있는 거니까. 냉소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게 한편으로는 봉준호 감독님께서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한 건가요? 봉준호 _ 제 성격이 좀 그런 거 같아요. 임 감독님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특유의 선선함이나 가여워하는 것. 저도 그런 마음이 있거든요. 아무리 영화 속 악인이라도 가엽고, < 살인의 추억 >의 범인도 그렇겠지만. 가여움에 대한 관점이 있는데, 다만 성격적으로 제가 단일한 하나의 감정에 편하게 몰입을 못하는 성격이라. 사람들이랑 즐겁게 술을 먹다가도, 실제 생활에도 그런 면이 있어요. 제가 끼면 아마 사람들이 불편할 거예요. 정성일 _ < 마더 >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금기처럼 방어선을 쳐 놓은 모성이라는 안전한 세계를 광기처럼 만들어놓았습니다. 이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 시 >와 같은 해에 개봉했는데, 감독 자신은 전혀 원치 않겠지만, 마치 <마더>는 우연히도 <시>에 대한 메타 비평처럼 보입니다. 둘 다 결국은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잖습니까. <시>는 모성이 자식의 죄에 대해 가져야 할 도덕적 태도가 무엇인지 물어본 다음 전체의 질서 안으로 다시 편입시킵니다. <마더>는 그 사랑의 선택을 윤리적으로 바라본 다음 광기에로 밀어 넣습니다. 저는 여기서 모성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마더>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의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마치 보호해야할 무언가를 지키려는 듯한 암묵적인 전제에 대해 훨씬 성숙한 질문과 마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건 한국 사회에서 거의 절대적으로 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시종일관 산산조각 내버리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이었어요. 봉준호 _ < 시 >가 개봉했을 때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과 정확히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평을 블로그에서 본 적이 있어요. < 마더 >에서는 모든 것을 덮고 종팔이라는 다운증후군 애가 감방에 남고 원빈 을 끌고 나오는 내용인데, <시>에서는 할머니가 아이를 형사에게 보내잖아요. <시>가 더 성숙한 영화고, 봉준호 의 <마더>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응답이다. <시>가 더 윤리적으로 성숙하고 올바른 영화가 아니겠는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잠시 생각) 저는 그렇게 엄중하게 생각을 못했고 그게 영화의 출발이었어요. 왜냐면 김혜자 선생님과 일하고 싶어서 기획한 거니까요. 그 시나리오를 써놓고 배우를 선택한 게 아니었어요. 나는 김혜자 선생님이 정말 싸이코 같아, 미친 여자야, 나쁘게 말하면 미친년이야, 광고에서, 그래 이 맛이야, 하는 걸 볼 때마다 국민 엄마지만 저분은 무슨 광기가 있다, 무슨 토크쇼에서 제가 그것을 봤거든요. 연기표현이 아니라 어, 미친 분인 가봐. 그런 느낌을 받아가지고, 그게 출발이란 말이에요. 위대한 배우지만 동시에 국민엄마 아이콘이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미친 사람이고, 그 분을 영화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써야겠는데 엄마가 미친년이다, 그렇게 해서 쓴 스토리였습니다. 김혜자 선생님이 거절하면 그 영화를 엎었을 거예요. 김혜자 선생님이 안 하신다고 하면 나문희 선생님, 고두심 , 윤여정 , 이렇게 (주연을 바꿔가면서 제안을 할 수 있는) 그게 아니었어요. 우리나라는 특히 모성을 숭배하잖아요. 우정의 무대에도 엄마가 커튼 뒤에 서 있으면 엄마, 하고 울고, 사실 엄마와 관계가 안 좋은 아들들도 엄청 많은데, 그런데 그건 다 무시되잖아요. 엄마 하면 무조건 울어야 된다고 우리나라는 강요되는데, 그런 엄마의 아이콘이 김혜자 선생님이었고, 출발이 그랬던 거예요. 그래서 김혜자 선생님이랑 하는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영화였습니다. 다행히 김혜자 선생님께 시나리오 드렸을 때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아, 좋아요. 나도 이런 거 하고 싶어요. 봉 감독, (아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걸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피 좀 더 뿌려주세요. 머리를 깰까요? 그동안 수십 년간 MBC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 전원일기 >를 하면서) 최불암 님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렇게 분출했을 수도 있어서 저도 좋았죠. (웃음) 사람들은 불편한 면이 있었겠죠. 그런데 마케팅 팀에서는 그것도 극한의 모성이다. 그것조차도 큰 사랑의 범위 내에 우겨넣으려고 한 거고. 저도 그게 이해되기도 하고. (웃음) < 마더 > 정성일 _ 한국영화에서는 쎈 척 하는 영화가 많아도 일단 상업영화라고 부르는 경계 안으로 넘어오면 절대 못 넘는 금기가 몇 개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 마더 >는 그 중 하나를 돌파해버려서, 참 이것을 다시 넘어서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 설국열차 >는 영어권 배우들과 함께 찍으면서 <마더>를 순화시키는 해독제 같은 느낌이 있어요. 만약에 <마더> 다음에 한국영화를 바로 찍었으면 어떤 얘기를 갖다 붙여도 힘이 없어지는 느낌? 봉준호 _ 그 반대도 성립하고요. < 괴물 >과 <설국 열차> 사이에 < 마더 >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정성일 _ < 괴물 >도 선을 넘었죠. 딸을 죽인 거니까. 봉준호 _ 그거 같은 거는 저는 딜레마가 없었어요. 저는 시나리오부터 그렇게 쓴 거니까 아무 고민이 없었어요. 딸은 죽었고 다른 아이가 온다, 가 전제로 출발한 거여서. 일본사람들은 딸이 죽는 거에 대해 되게 당황하더라구요. < 괴물 >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 마더 >와 < 살인의 추억 >을 좋아하고. 정성일 _ < 괴물 >에서는 두 번 당황했는데, 하나는 괴물 장르의 영화가 갖는 규칙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놓여 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이는 데 한 시간, 그래서 힘을 합해 괴물과 싸우는 데 한 시간의 법칙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다 모여 있던 사람들을 55분이 되었을 때 갑자기 다 찢어놓았습니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미친 거 아니야? 이렇게 되면 영화가 도리 없이 이 사람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동분서주해야 하는데, 그런데 정말 그러면서 그냥 계속 가더라구요. (웃음) 그러다가 하여튼 한 자리에 모으더니 괴물과 싸워 물리치긴 하지만 이번에는 딸이 죽더라구요. 다시 한 번 중얼거렸죠. 그럼 이제까지 이 사람들이 뭐한 거야? (웃음) 봉준호 _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제가 그런 개념이 없어요. 아버지가 죽었으니 애들이 다 찢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정성일 _ 우리가 장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여기서 보는 것은 단지 이야기를 찢고 주인공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법칙을 찢고 컨벤션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그 안에서 리얼리티가 갑자기 귀환하면서 그 안에서 냉소적인 이성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봉준호 _ 제가 존경할만한 리얼리즘의 형태는 아니죠. 표피적인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보이는 순간을 믿도록 관객이 강요당하는 거죠. 사실은 한 발 짝 더 다가가서 그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완전 말이 안 되는 거죠. 애가 그렇게 죽었건, 허벅지에 침을 놓건, 말이 안 되는 건데, 표면적으로 그걸 믿게 만들고 심지어 디테일하다, 리얼하다고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정성일 _ 그건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자신의 영화에서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설명하는 바로 그 불가능성을 성립시키는 게 봉준호 감독 영화의 매직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성립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성립시키는 순간을 보면 그때 영화가 반짝반짝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들이 힘이 되는 거죠. 봉준호 _ 일부러 그런 것을 계산해서 포석을 까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성격상 불안해서 준비를 많이 하지만 포석을 잘 까는 타입은 아닙니다. 큐브릭은 항상 배우들과 현장에서 체스를 두잖아요. 하지만 저는 체스를 잘 못 두고, 바둑은 너무 어려워서 못 배웠어요. 성립되게 하는 것에 있어서도 약간의 뻔뻔함과 약간 곁다리로 빠지면서 오히려 그런 게 더 많은 거 같아요. 예를 들면 그런 거죠. < 괴물 >에서 박해일 이 이통사에서 근무하는 선배 임필성 을 찾아가잖아요. 알고 보면 형사들이 그 옆방에 숨어 있잖아요. 거기서 임필성이 갑자기 쓸데없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 수배 현상금 세금이 어떻게 됩니까? 그건 비과세 기타 소득이기 때문에 그건 세금을 안 때린다! 그걸 세무사들이 들으면 웃는 장면인데 (웃음) 사실은 리얼리즘은커녕 리얼리티와도 안 맞는 장면인데, 그때 그 상황 자체가 약간 의도적으로 너저분해지면서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현실이 원래 너저분하잖아요. 일목요연하게 진행이 안 돼 있고, 우리가 택시 기사와 싸울 때도 그렇고, 그런 걸 제가 막 깊게 계산해서 놓는 건 아니에요. 임필성은 결국 돈을 노린 거다. 왜냐? 카드빚이 많다 잖아? (웃음) 저는 굉장히 단순한 논리로 쓰는 거거든요. 거기 뭐, 후배를 꼰지르는 존재론적 고뇌를 하고 그런 거 전혀 없잖아요. 사실 우리가 살면서 고뇌를 그렇게 많이 하나요? 아주 작고 너저분한 것에 유혹되어서 많은 결정을 하잖아요. 정성일 _ < 해무 >를 보면, 심성보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를 했었으니까, 이게 스승으로부터 전염되었구나, 뭐랄까 봉준호의 터치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어요. 한예리 가 배 안에서 숨어서 뭔가 뒤집어쓰고 있는데 박유천 과 이야기를 나누다말고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돌아앉으면서 이희준이 그것을 벗길 때였어요. 제가 봉준호의 터치라고 느낀 순간은 영화를 보아온 이제까지의 관습으로는 여기서 커트를 나눠야 하는데 이 쇼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한 쇼트에 해결을 해야만 해, 아니 차라리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은데 한 쇼트에 우겨 넣어야 해, 하는 장면이었어요. 이게 무리하다는 판단이 되는 지점에서조차 밀고 나아가서 성립될 때 그게 유머로 전환되죠. 그때 여기에는 무언가 쇼트를 나누지 말고 하나의 쇼트로 성립을 시켜야한다는 터치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봉준호 감독님에게 쇼트는 무엇입니까? 봉준호 _ 정확히 짚어주신 것 같은데.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도 항상 매혹되는 순간은 쇼트를 나누지 않았을 때, 너무나 자연스러운 미장센 속에서도 누군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교차하고 퇴장하고, 연극적인 스테이징은 아니지만, < 짝코 >에서도 카메라가 공간 밖에 있는데 마치 안에서 찍는 것처럼 보여졌을 때도, 이 인물이 나와서 골목으로 꺾어져도 마치 물 흐르는 것처럼 찍은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있었지만, 제 자신의 영화를 찍을 때도 본능적으로 어떡하면 쇼트를 덜 쪼갤 수 있을까, 전체 영화의 커트 수가 어떻게 하면 더 적어질 수 있을까 본능적으로 그걸 느껴요. 그렇지만 타르코프스키가 촛불 들고 온천 이동하는 그런 데는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분할되지 않고 이어졌을 때 오는 이상한 쾌감. 이어짐으로 오는 어색함으로 오는 웃김. 저는 그런 게 되게 좋죠. 분할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흥분되는 감독님들도 많이 있는 거 같구요. 김성수 감독님도 그렇고. 저는 쪼갤 수 있는데 쪼개지 않거나 쪼개야 마땅한데 그것을 억지로 거스르는 게 재미있는 거 같아요. 정성일 _ 반대로 질문하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임 감독님 영화를 보다가 이건 임권택 터치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이 어떤 것인가요? 봉준호 _ 단역배우나 엑스트라가 되게 뻔뻔스럽게 뭔가를 설명할 때. (웃음) “아니 그래 저 놈이 누구 대감댁 둘째 아들인데 누구 애를 배게 해가지고 곤장을 맞았다지 뭐야?” 전혀 중요한 인물이 아닌데 거침없이 설명을 해버리잖아요. 그건 임 감독님 영화뿐 아니라 옛날 충무로 영화에는 그런 게 많았어요. “어 그런 게 말이야. 그래서 결국은 사또가 뭔가 했는데 결국 그게 둘째 딸이지 아마” (웃음) 저는 그게 굉장히 흥겹거든요. < 서편제 >에서도 김명곤 이 창할 때도 누군가 막 얘기하는데 후시녹음으로 생경한 앰비언스와 전혀 분리된 센 대사로 막 오잖아요. 거창하게 미학적으로 뭘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판소리로 치면 창을 하는 중에 얘기하잖아요. 서양식 연극에서도, <마이티 아프로디테>에서 하듯이, 무대 뒤에서 진행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그걸 그냥 잠깐 나오는 보조 출연자가 등장해서 굉장히 중요한 세팅 같은 걸 거침없이 얘기해버리고 하는 거 보면 반가워요, 흥겹고.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느닷없이 등장하는 수평 트래킹에 페티시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웃음) 그런 특별한 카메라 운동에 대해 영화적 흥분이 있으세요? 봉준호 _ < 살인의 추억 >도 그렇고, < 설국열차 >도 기차 자체가 트랙이죠. < 마더 >도 버스 자체가 트래킹이라고 할 수 있죠. 인물을 향해 다가가거나 멀어질 때도 있지만 수평 트래킹을 하면서 줌이 결합된다거나 그런 걸 제가 봐도 매우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원인은 모르겠지만. 정성일 _ 거기서 진행하던 이야기나 혹은 인물로부터 갑자기 어떤 특별한 거리(distance)를 만들고 싶은 그런 게 있나요? 봉준호 _ (잠시 생각) 글쎄 모르겠어요. 저 스스로 미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모르겠지만 쾌감이 있는 거 같아요. 다른 사람의 영화를 봤을 때, <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의 도입부에 보면 그 여자애가 합창단이고 비 맞고 뛰어갈 때, 수평 트래킹하면서 그 여자의 종아리로 줌 할 때 이상한 흥분을 느꼈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 마더 >에서 그걸 시도해본 장면이 있어요. 찍을 때 의식이 되더라구요. 진구 가 김혜자 선생님께 돈 받고 본드 먹은 고등학생을 발로 까는 장면이 있어요. 돈을 받고 애들을 깔 때까지가 한 테이크인데, 먼저 돈의 두께를 보죠. 그걸 가슴에 넣고 아이들을 까러 가는 장면을 트래킹하면서 발로 줌이 들어가요. 발에 줌이 들어가면서 속도가 확 붙어요. 달리(dolly)는 그대로지만 줌이 들어가서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보이죠. 그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장면이 생각났어요. 그런 장면을 찍을 때 흥분되는 거 같아요. 수평 트래킹뿐 아니라 트래킹 할 때 굉장히 흥분되는 거 같아요. 영화에서만 가능하고. 연극은 객석의 한 의자에 그냥 앉아 있는 거잖아요. 연극, 사진, 만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얘기고. 정성일 _ 영화적인 테크닉에 대해서 좀 더 질문하고 싶습니다. 남들도 다 사용하는 것이 봉준호 영화 안으로 들어오면 참 희한하구나, 라는 순간들을 만들고 내고 계시니까요. (웃음) 슬로 모션에 대해 몹시 특별한 견해가 있는 거 같아요. 영화에서 대부분의 슬로 모션을 볼 때, 그건 어떤 쾌감의 운동인데, 봉준호 감독이 슬로 모션을 쓰면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게 있어요. 이를 테면 (< 괴물 >에서) 현서가 괴물로부터 빨리 도망가야 되는데, 구태여 속도를 늦게 만들어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거나, < 설국열차 >에서 예카테리나 브리지를 지나 터널로 빠져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밸러 클로버를 뒤집어쓴 용병들의 도끼와 싸울 때 갑작스러운 슬로 모션은 뭔가 싸운다기보다 이들을 허우적거리는 몸짓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이 순간 결정적인 삑사리의 장면이 등장하죠. (웃음) 표준적인 판본으로 만나는 슬로 모션과 다른 감각의 슬로 모션의 감각을 원하는 것 같아요. 봉준호 _ 말씀하신 걸 들어보니 정말 대부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상황을 슬로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게) 삐뚤어진 성격 때문인 거 같아요(웃음) < 설국열차 >에서도 크리스 에반스가 얼마나 이 싸움이 지치고 고독하고 외로울까. 기차가 좁으니까 어디 숨을 데도 없는데. 피하고 싶은 상황들이잖아요. < 살인의 추억 >의 논에서 가장 망신스럽고 ‘카오스’스러운 것도 현장 검증할 때잖아요. 오우삼 감독님 슬로 모션 하는 거랑 너무 다르니까. 슬로 모션을 쓰지 않았던 영화가 < 마더 >였던 거 같아요. 유일하게 비가 안 나왔던 게 < 설국열차 >였고, 슬로 모션 없는 게 <마더>다운 거 같아요. 그래서 더 잔인한 면이 있는 거 같고. 아, < 플란다스의 개 >도 있었구나. 저의 시그너처, 인장(印章)이라 할 만한 영역은 아닌 거 같아요. 샘 폐킨파의 뭐, 웨스 앤더슨의 뭐, 이렇게 부를만한 게 저는 없는 거 같아요. 약간의 습성들은 있습니다만 스타일이다, 시그너처다, 라고 말할 건 일, 이십 년 뒤에야 가능한 거 같습니다. 정성일 _ 그런데 영화에서의 상황은 말씀과 정반대이지요. 시그너처가 없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 괴물 >부터 새로운 봉준호 서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이건 터치와도 또 다른데, 가족이 부서져야 얘기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괴물>에서 딸이 죽었을 때는 무심코 그런가, 했는데 < 마더 >와 < 설국열차 >를 보고 났을 때, <마더>는 완전히 파괴죠. 가족을 부수기 전에는 이야기를 안 끝낸다, 라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마더>가 영화 한편으로 한국영화가 결계처럼 쳐 놓은 금기중의 하나를 벗어난 건데, 이를테면 근친상간을 하고 똑같이 기억을 잃어도 < 올드 보이 >는 필사적으로 복원에 대한 갈망을 얘기하잖아요. 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끝장내면서도 가족을 복원하려는 안간힘이 있어요. 그게 가엽죠. 유일하게 한국에서 단 한 명, 봉준호 감독에게서 가족을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맹렬한 전투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가족주의라고 부르는, 말 그대로 혈연을 넘어서서 감정적인 공동체에 대한 이 냉소적인 이성이라는 것. 사실상 가족주의가 점점 확대되고 상상적으로 비유의 프레임을 만들어내서 환상의 형식으로 거짓 공동체를 발명해내서 결속시킬 때 그것이 한국 사회의 지나친 파토스의 시작이기도 하잖습니까. 이 파토스 안에서 보면 가족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이성 안에서 보면 정말 이상한 거니까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는 제 설명 바깥에 있지만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파토스에 대한 어떤 혐오와 마주하게 됩니다. 봉준호 _ 저는 표면상 큰 문제없는 가족에서 자랐고. 저도 95년에 장가를 가서 20년 정도 가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웃음) < 괴물 >, < 마더 >, < 설국열차 >, 지금 보니 그런 식의 파국을 맞은 건 사실인데, 지금 쓰고 있는 여섯 번째 영화에서도 가족이 있긴 있는데 그다지 파괴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직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했으니까 말씀드릴 건 아니지만, 일곱 번째 영화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아주 강력하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곱 번째 영화를 개봉시키려면 사, 오년이 더 있어야겠지만. (잠시 생각) 섣불리 경망스럽게 얘기할 주제는 아직 못되는 거 같고 가족을 박살내야겠다고 의식해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사실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는 누구나 다 있지 않을까요. 월트 디즈니 영화를 봤을 때 치밀어오는 짜증 같은 것. (웃음) 이만희 정성일 _ 산만하게 진행한다고 했으니 다시 원래의 우리 컨셉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웃음) 김기영 감독님과 임권택 감독님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봉준호 감독에게서 한 번도 듣지 못한 얘기는 이만희 감독입니다. 이만희 감독님의 영화는 봉준호 감독에게 어떻습니까? 봉준호 _ 일단 작품을 많이 못 봤습니다. EBS에서 < 돌아오지 않는 해병 >을 봤고, < 마의 계단 >도 재미있었고, 영상자료원에서 나온 스릴러 비슷한 < 암살자 >도 봤고, (잠시 생각) 사실 그렇게 많이 못 봤습니다. 엄청난 명성은 많이 들었지만. 정성일 _ 이토록 열심인 씨네필이 많이 보지 못했다는 건 끌리지 못했다는 이야기인 것이기도 하네요. (웃음) 봉준호 _ 아니, 보고 싶어요.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리만희”를 꼭 보고 싶다고 작년 부산에서 지랄을 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제가 한국영상자료원에 부탁해서 DVD를 보내줬어요. 한국의 장르마스터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보고 싶다고. 그 보답으로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 게리슨 유격대 >라고 그게 희귀작인데 보내줬어요. 저는 박스 세트를 보냈는데 정작 그 박스 세트의 영화를 (저는) 다 못 본 거 같아요. 흥미로운 거는 최근에 자주 뵈는 이장호 감독님이 저를 항상 이만희 감독님과 연결시켜서 말씀하세요. 봉, 너는 이만희 감독과 비슷해. 나는 (너를) 이만희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저 스스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장르영화에 대한 관점이 있어서 이장호 감독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꾸 이만희 감독님을 얘기 하시더라구요. 김기영 감독님 얘기는 안 하시고. (웃음) 정성일 _ 혹시 이만희 감독님의 < 검은 머리 >를 보셨어요? 아주 좋아하실 거 같은데, 오히려 세간에 알려진 < 쇠사슬을 끊어라 > 이런 영화는 안 좋아할 거 같지만... 봉준호 _ 현존하는 < 삼포 가는 길 >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만희 감독님 영화라기보다는 한국영화에서 시골에서 눈밭을 (걸어)가는 그런 장면들을 매우 좋아해요. 어렸을 때 MBC 베스트셀러나 KBS TV 문학관에 그런 장면들이 꼭 나와요. 겨울에 한 남자가 적막한 눈밭 속을 가다가 거기 주막이 있고 거기에 또 딸이 있어요. 거기서 겁탈이 일어나기도 하고, 남자가 가면 딸이 보따리를 들고 따라오기도 하고 그러다 바닷가에 가잖아요. 속초에 가기도 하고 대관령도 가고. 그것의 본령. 원조 같은 느낌. 정성일 _ 봉준호 감독 자신은 전혀 원치 않겠지만, 원컨 원치 않건, 봉준호의 영화를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읽으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죠. < 플란다스의 개 >만이 중산층을 다루었고 그런 다음 갑자기 방향전환을 해서 사회적 약자, 밑바닥 계급으로 내려왔습니다. 봉준호 감독처럼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를 찍는 감독도 없죠, 한국영화에서. 그러면서 < 괴물 >의 첫 장면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를 읽을 수밖에 없고, < 마더 >도 정치적 함의를 끌어내게 싶게 만들고, <설국 열차>도 계급으로 단순화시키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해석을 단순화시키면 안심이 되니까. < 설국열차 >는 너무 단순해져서 한편으로 여기서는 봉준호 감독이 거는 게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절반은 게임이고 절반은 의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게임과 의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다는 거죠. 정치,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이라는 것, 에 대한 견해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봉준호 _ 게임을 걸만큼의 성격이나 지적인 승부를 걸 깜냥은 안 되구요.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제가 그렇게 느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떤 정치적인 맥락이나 정치적인 서브 플롯이건, 서브 텍스트건, 상징이건, 뭐건 간에 보는 이를 교란시키기 위해서 떡밥, 밑밥을 던진 적은 없어요. 보여지는 것만큼 정말 저도 그렇게 느껴서. (주한미군 영안소 부책임자인 민간부 군무원 앨버트 L) 맥팔랜드가 실제 독극물을 방뇨했고, 실제 2000년도에 그랬죠. 미국이 한국에서 어떤 정치적 맥락인지 이 사건만큼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도 없구요. 그게 또 되게 SF 영화의 도입부 같잖아요. 이걸로 해서 보는 사람들이 호도되거나 게임을 걸고, 그렇게 해볼까? 그런 건 아니고 미국이 정말 우리나라에서 그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군대가 있어. 실제 이런 걸 방뇨해. 이걸 한국 공무원에게 시키는 게 더 재밌는 지점이야. 고도의 게임을 걸거나, 클로드 샤브롤은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구요. 자신도 평론을 했었기 때문에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평론가처럼 보고, 이런 식으로 자극하면 재밌지. 저는 그런 건 아니구요. 정말 그렇게 느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 설국열차 >나 < 괴물 >은 특히 직설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저의 정치적인 관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영화구요. < 살인의 추억 >은 실제 80년대, 제가 살았던 시대, 개별 살인 사건보다 더 어두운 시대라는 80년대에 대한 제 관점을 정리한 영화구요. < 마더 >만 약간 달라요. 어찌 보면 정치적 맥락에서 분석되지 않는 데까지 다가가 보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본 사진첩처럼 김혜자 의 눈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어요. <마더>는 하층계급 사람들끼리 서로 할퀴는 그런 이야기잖아요. 상층 계급에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괴물>처럼 하층 계급끼리 연대하는 것도 아니고, ‘로어 뎁스(lower depth, 밑바닥보다 더 밑바닥)에서 그쪽에 처박혀 있는 애들끼리 원빈을 빼내고 다운 증후군 아이를 거기에 밀어 넣는 굉장히 끔찍한 얘기죠. 정성일 _ 그런데 < 괴물 >에서 정치적 학습을 한 다음 < 마더 >를 보게 되면 골프장이 그런 효과를 만들어 내는 거죠. 한국에서 골프장이라는 장소의 도상적 이데올로기라고나 할까요. 할 일 없는 부르주아들의 판타지의 공간에서 뭔가 벌어진 다음에 프롤레타리아의 정치학으로 옮겨오지만 가난한 자들의 세계가 상대적으로 건강하기는커녕 더 음습해지고 음산하고 무시무시해질 때 어둠이 더 어두워진다고 할까요. 그때 그 안에서 괴상한 방식으로 냉소적인 이성이 더 빛나게 보이는 거죠. 거기까지 오면 이제 견디는 것은 미치는 거야, 라는 결론에로 이끌릴 때는 보는 쪽도 미치는 지경이 되는 거죠. 봉준호 _ 냉소적 이성이라고 이름 붙여 주시면 저는 감사한데, < 마더 >는 < 괴물 >의 반대말로써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또 밑바닥 사람들이 연대하는 영화고, <마더>는 서로 할퀴는 영화고 아빠에 관한 영화, 또 이거는 순도 100퍼센트 엄마에 대한 영화고, 모든 면에서 반작용이었습니다. 정성일 _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씨네마틱 모멘트로서의 인서트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게 생각하는 장면은, 그게 아마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두 장면입니다. 하나는 < 괴물 >에서 처음 괴물이 나타났을 때, 한강에 놀러온 사람들을 괴물이 쫓아가고 있는데, 그때 서강대교를 지나가는 버스에서, 그저 책을 읽던 할머니가 무심하고 한가롭게 내려다보는 장면입니다. 마치 영화의 동선과 세계의 동선, 두 개가 이상한 방식으로 공존할 때의 느낌이랄까. 다른 하나는 김혜자 씨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냥 무심하게 나무를 쳐다보는데, 거기 어떤 감정도 없는데, 그 나무의 쇼트가 굉장히 아름답고 시적이 있었어요. 차라리 시선이 아름답다고 할까요. 그때 문득 든 생각은 문득 봉준호 영화에는 가끔 영화를 멈춰 세우고 이미지에 우선권을 준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이미지에 우선권을 준다는 것은 공백의 인서트, 약간 재미없게 말하면 잉여의 이미지를 이야기의 동선 안으로 밀어 넣는 건데, 그게 어떤 시적인 이미지의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를테면 바람이나 햇빛은 우연의 산물일 수 있지만, 편집은 절대 우연이 아니지 않습니까? 봉준호 _ 말씀하신 것에 정확히 부합하는 게 (< 마더 >에서의) 그 나무 인서트였던 거 같습니다. (< 괴물 >에서의) 버스 시퀀스는 좀 다릅니다. 그 씬 자체를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시점으로 의도적으로 분산시키고 싶었어요. (그 장면 전에 한 소녀가) 손톱 밑의 때를 빼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데 괴물이 확 낚아채고, 서강대교에서 57분 교통정보가 깔리면서, < 이어도 >에 출연하신 할머니가 그것을 보고 있는 건데 시퀀스 맥락에 철저히 부합되는 거였습니다. 되게 산만하게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현서도 맥주 캔을 발로 뻥 찼는데, 아버지가 그것을 낚아채고, 그것은 시퀀스 내의 패턴이었던 거 같습니다. 되게 일상적인데 낯선 느낌. <마더>의 나무 같은 게 말씀하신데 철저히 더 부합하는 장면입니다. 그건 시나리오에는 없었던 디테일인데 운이 좋았어요. 거기가 장흥 교도소 주변인데, <마더>는 특히 로케이션을 되게 열심히 다녔어요. 저랑 홍경표 감독님이랑 스태프들이 미니버스를 대여해서 다 같이 타고 장소 헌팅을 다녔어요. 장흥 교도소를 시찰하고, 다음 장소 이동하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 다들 졸았어요. 운전기사만 운전하고 저만 깼어요. 그때 촬영한 나무를 봤어요. 주변에 숲이나 나무가 없잖아요. 길이 원형 트래킹 하듯이 그렇게 되었어요. 실제 영화의 김혜자 선생님 같은 시점으로 그 나무를 봤는데 굉장히 아름답더라구요. 프리 프로덕션 중에 이걸 봤기 때문에 이걸 꼭 어딘가 넣고 싶다. 그럼 어디에 넣으면 좋을까. 저 나무가 김혜자만큼 참 외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묘하게 찍을 수 있는 조건도 되고, 영화 중후반에 엄마가 나한테 다섯 살 때 농약 먹였잖아, 약(藥이 든)박카스. 김혜자 선생님이 경기(驚氣) 일으키고 울고, 그리고 나올 때 그 나무를 보게 되거든요. 거기서 나무를 넣으면 엄마의 감정이나 그런 게 논리적으로 설명은 안 되지만, 왠지 거기다! 거기 밖에 없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홍경표 감독님도 그 제안을 좋아하셨고 또 거기에 깔리는 스트링 음악이 있어요. 이병우 감독님도 그 모멘트를 좋아하셔서 특별히 신경 쓰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정성일 _ 콘티와 시나리오를 정확히 짜내서 진행하는 봉준호 감독 영화에 이제 시적인 우연의 장면들이 끼어드는 징조를 뭐라고 봐야 할까요?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것 같아요. < 살인의 추억 >에도 날아가는 새의 인서트 장면이 나왔지만 < 마더 >의 김혜자 씨 정도의 장면은 아니었어요. 이건 대화를 건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한 가지 더 질문하자면 봉준호 감독이 즐기는 것 중의 하나가 엔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엔딩을 볼 때마다 엔딩 다음 장면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엔딩을 살짝 지나쳐가는 듯한 느낌. 이를테면 그런 다음에 이제까지 내가 봐온 영화가 이제 그 영화를 보는 나를 본다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나 노골적인 <살인의 추억>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는 극장 안과 영화의 화면 자체가 동일해질 때,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버스 안의 미친 엄마를 봤을 때, 혹은 < 설국열차 >의 마지막 장면의 북극곰이 고아성을 본다기보다 우리를 본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시선도 차라리 고아성을 본다기보다는 우리를 보는 위치에 가 있었어요. 엔딩에 대해 이건 매우 특별한 감각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봉준호 _ 편수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일반화해서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잠시 생각)< 설국열차 >와 < 마더 >는 명확한 끝점이 있었구요. (<설국열차>에서)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와 컨택하는 곰이다, <마더>도 2004년 처음 스토리 구성할 때부터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버스 안 춤추는 엄마들로 끝낼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 괴물 >은 달랐어요. 시나리오 드래프트들 마다 달랐어요. TV를 발로 끄는 것까지는 똑같았는데 매점 벽에 걸린 멧돼지 대가리에서 남자아이의 생일 선물을 꺼내는 장면도 있었고. 몇 가지 버전이 있었어요. 갈팡질팡하다가 얼굴이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이들 세계가 얼마나 작은가. 그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있는데 어둠 속에선 뭐가 나올지 모르고, 그건 찍을 때 임박해서 결정했습니다. 멧돼지 대가리에서 생일 선물 꺼내는 장면도 찍었고, 그 장면은 DVD 부록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보면 되게 이상해요 (웃음) 뻘쭘 하고. 찍고 편집하며 결정하고 뺀 장면이에요. < 살인의 추억 >에서도 송강호 가 카메라를 보고 끝났는데 원래 한 장면이 더 있었습니다. 연쇄살인범으로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의 뒤통수가 명동의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뒤통수가 보여지면서 현대의 2003년 서울 거리를 보여주는, 김형구 감독님과 실제 명동에 나가서 찍었어요. 송강호가 카메라 보면서 끝내는 게 적합하다, 하면서도 그걸 찍으러 나가면서, 그래서 찍으면서도 긴가민가, 했어요, 왠지 안 쓰게 될 거 같은데, 저는 그걸 DOA 쇼트라고 부르는데, (웃음) 도착 즉시 사망(Dead on Arrival). 이미 찍고 있는데 안 쓰게 될 걸 아는 장면. 그걸 (이미 촬영현장에 나왔기 때문에) 차마 스태프들에게 말은 못하고, 오히려 실례니까. 그런 걸 개인적으로 DOA 쇼트라고 해요. 하여튼 끝까지 고민되는 부분인 거 같아요. <마더>는 너무나 확고했어요. 오히려 그 앞의 두 시간이 그 마지막 고속버스 춤추는 장면에 가기 위한 과정처럼 생각될 만큼 확고했고, 2004년부터 개봉할 때까지 한 번도 생각이 바뀌어본 적이 없어요. <설국열차>도 기차를 나와서 곰과 마주본다는 설정은 맞는데 제가 생각한 각도와 사이즈는 아니었어요. 실제 곰을 오스트리아에 갖고 가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곰은 CG가 아니에요. ‘내셔널 지오그래피’ 라이브러리에서 실제 곰 HD 영상을 찾아서 가져와 갖다 붙였어요. 곰의 CG를 만들기에는 예산이 없었고, 조악하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제가 진정 원하는 각도와 사이즈는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 프로모션 때 여러 번 질문을 받고 느낀 건데.. 그게 곰이 아니라 사슴이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자꾸 곰한테 잡아먹힐 거라는 얘기를 들어서. 아, 왜 곰이었지? 사슴이 탁 나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웃음) 정성일 _ 개인 소장 라이브러리가 궁금합니다. 영화사 속에서 존경받는 감독이긴 하지만 이 감독에게는 정말 동의가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존경하는 만큼 동의가 안 되는 감독은 누군가요? 이를테면 훌륭한 감독이라는 것도 알고 충분히 존경도 하지만 이상하게 제가 보지 않게 되는 건 펠리니의 영화들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그렇습니다. 훌륭한데 마음이 동하지 않고 안 보게 되는 명단이랄까. 봉준호 _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면서) 안토니오니. 세계영화사 어느 챕터를 차지한다는 걸 납득은 가는데 그 분의 DVD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요.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네요. 취향이니까. 어렸을 때 EBS에서 세계의 명화에서 연달아 상영도 했고, < 블로우 업 >은 재밌게 봤어요. 그거는 공원에서 촤악, 나뭇잎 흩날리면서 뼛속까지 스산해지는 느낌과, 그런데 그 외는 많이들 존경하겠죠, 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정성일 _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러니 바보 같은 가정, 바보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만약 연못에서 산신령이 나타나셔서 봉준호 감독! 임권택 감독님에게 아무거나 하나 가져가도 되니까 그거 하나 가져가게! 한다면 어떤 재능을 훔쳐가고 싶은 가요? 봉준호 _ (다시 한 번,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메라 여기다 놔. 여기, 여기 놔” 촬영 감독님과 상의를 할 수도 있고 먼저 촬영 감독님이 제안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정성일 _ 아아, 무슨 말씀인지 느낌이 정말 꽂히듯이 오네요. 감사합니다. 여섯 번째 영화를 열심히 기다리겠습니다. (註)_ 인터뷰 중의 대화는 가능하면 오가던 이야기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일부 어휘들이 영어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에도 옮기지 않고 그냥 고스란히 남겨 놓았다. 그 까닭은 의미는 옮길 수 있으나 대화의 문맥에서 그 단어가 가지는 ‘뉘앙스’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중의 일부가 두 사람 사이에서 서로 충분히 다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마치 점프 컷처럼 진행될 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를 치고 보충설명을 덧붙였다. 일부독자들에게는 필요치 않을 수 있지만 이 점 이해를 바란다. 또한 서로에게 약간의 어색한 표현들도 대화의 ‘라이브’한 무드를 돕기 위해 수정하지 않았다. 2014년 8월 28일, 날씨 하루 전날 큰 비가 온 뒤에 몹시 화창하고 무더웠음. 진행_ 장광헌, 유성관 녹취, 사진_ 이지영 장소_ 카페 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