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타령
- 감독
- 장진원
- 제작년도
- 1965
- 출연
- 조항, 추석양, 임성포, 김진규, 문정숙, 박암, 윤인자, 이예춘, 변기종, 구봉서, 김세라, 장훈, 이경림, 김신재, 주일몽, 염혜숙, 김웅, 김칠성, 김기범, 송일근, 장민호, 서월영, 이운호, 임해림, 이업동, 박성근, 성소민, 추봉, 박순봉, 문일학, 지계순, 석귀녀, 윤신옥, 권일정, 나일, 김월성
< 반도의 봄 >(1941)의 마지막 시퀀스는 도쿄 영화계를 견문하러 떠나는 한 쌍의 젊은 조선영화인과 그들을 배웅하는 동료들로 채워진 경성역 플랫폼 장면이다. 이제 막 건강을 회복한 남자는 일본의 선진적인 영화 시스템을 견학하러 떠나고, 영화 <춘향전>의 성공으로 조선영화계의 신성(新星)이 된 여자 ‘정희’( 김소영 분) 역시 견문을 넓히기 위해 동행한다. 사실상 당시 영화기업화론의 산물이라고 할 만한 <반도의 봄>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영화를 만들어온 ‘영일’( 김일해 분)이나 ‘훈’( 서월영 분)과 같은 식민지 남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배우 ‘정희’가 새로운 영화 시스템과 함께 스타로 부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제국의 수도 도쿄로 향하는 정희를 ‘경숙’(복혜숙 분)이 배웅하는 플랫폼 장면은 각자의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을 한 장소에 위치시킴으로써 토키 이후 조선영화의 세대교체뿐 아니라 제국으로 향하는 조선영화의 ‘신체제’를 은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반도의 봄 >의 ‘정희’, 김소영 (金素英, 1914~ ? )은 식민지 말기 조선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다. 1931년 우연한 계기에 < 방아타령 > 제작진의 눈에 띠어 영화계에 데뷔했던 무렵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이규환 감독의 < 무지개 >(1936)로 스크린에 복귀하고 그 이듬해 < 심청 >(1937)의 타이틀 롤을 맡으며 이제 막 토키 시대로 진입한 조선영화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심청>에서 “가히 다른 여배우로서는 따를 수 없는 신기한 연기”( 박기채, 「조선 남녀배우 인물평」, 삼천리, 1941. 6.)를 보여주었던 김소영은 이어서 출연한 최인규 감독의 < 국경 >(1939)에서 원숙한 매력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스타로 부상했다. 1930년대 후반 ‘조선 붐’과 맞물려 <국경>이 일본에서 상영되었을 때에는 일본의 유력한 평론가들로부터 ‘조선에서 가장 유망한 배우’(「朝鮮映画の現状を語る-座談会報告」, 日本映畵, 1939年 8月号)라고 인정받기도 했다. 문예봉 , 김신재 와 함께 발성영화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김소영 은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연기가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는 평가를 곧잘 받았다. 그 이유가 중외극장, 극단 신건설(新建設), 태양극장, 동양극장 청춘좌, 중앙무대, 극단 고협 등 여러 극단을 거치며 병행해온 무대 경험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연극을 통해 다져온 발성과 화술은 때로는 장점으로 때로는 단점으로 지목되었던 듯하다. 한편, 김소영은 청초하면서도 요염하고, ‘모던’하면서도 ‘고전미’가 있는 이율배반적인 매력으로 이미지의 스펙트럼이 넓은 만큼 배우로서 풍부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배역이 주로 미혼여성으로 국한되어 연기의 폭이 넓지 못했다. ‘젊은 어머니’ 같은 역을 연기해 보고 싶다고 피력하기도 했지만(김소영, 「今年 나의 生活풀랜」, 삼천리 1941. 6.), 세상 사람들은 남편 추적양 이 신건설 사건으로 수감된 후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을 시집에 두고 나왔으며, 첫남편과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인규 , 조택원 과 추문에 휩싸인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떠들기 좋아했다. 때마침 ‘영화 신체제’를 맞이한 영화계는 ‘인격수양’을 강조하며 스타급 여배우들을 ‘현모양처’로 표상되는 ‘총후’의 여성으로 배치했는데, 김소영에게 구축된 공적 퍼스낼리티는 그러한 표상에 부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김소영 의 매력이 가장 돋보이는 영화 < 반도의 봄 >에서 그녀는 명민한 배우지망생 ‘정희’에서 조선여인의 표상 ‘춘향’으로 또 조선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예 ‘정희’로, 말하자면 조선적인 미(美)와 동시대적 감수성, 그리고 근대적인 가치들의 교차점 위에 지정되었지만, 그녀의 ‘춘향’이 영화 속 영화의 단편에 그칠 수밖에 없듯이 (또 그것이 ‘안나’라는 여성과 공유하는 것이었듯이) 김소영은 ‘현모양처’의 표상을 점유하지 못했다. 조선군보도부가 조선과 일본에서 대대적인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 제작한 < 그대와 나 >(1941)를 비롯해 여러 편의 선전영화에 출연했지만, 김소영의 역할은 ‘병사의 가족’ 안으로 수렴되지 않았다. 법인 조영(朝映)의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 조선해협 >(1943)에서 그녀는 마지막 장면에 ‘간호부’ 역으로 잠깐 등장한다. 부상당한 병사( 남승민 분)와 함께 해변을 걷고 있던 그녀는 병사의 아내( 문예봉 분)와 누이( 김신재 분)가 있는 조선해협 너머를 바라보며, “압도적이네요.”라고 말하는데, 그 ‘압도적인 바다’란 그들 간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김소영 의 마지막 출연작은 안종화가 연출한 < 수우 (愁雨)>(1948)다. 해방기의 혼란 속에서 어떤 배우들은 인생을 걸고 북한을 택하고, 어떤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남한을 떠났으며, 어떤 배우들은 영화를 포기했다. 김소영은 재혼한 남편 조택원과 도미(渡美)해 무용단원으로 미주 공연에 동행했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그곳에 머물렀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국이나 출판사에서 일하고,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 뉴욕에서 미용실을 개업했다는 소식은 국내에 전해졌지만, 스크린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현모양처’의 표상이 되지 못하고 불혹(不惑)에 가까워진 여배우의 또 다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 글: 이화진 (한국영화사 연구자)
미래의 영화란 무엇일까? 실험적인 표현과 수사법으로 당대의 예술적 한계를 넘나드는 작품? 아니면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른바 대박을 치는 상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30년이 훨씬 지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낡은 형식의 대표격인 인터뷰가 깨알같이 이어지는 김태일 감독의 < 오월愛 >에서 미래의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518 광주민중항쟁(이하 518)은 이미 보훈처가 기념일을 관리하는 국경일이 되었다. 불의에 저항하고 공동체를 창조했던 민중들의 치열한 역사는 탈각시킨 상태이지만 말이다. 학살자 전두환과 그 일가족은 온갖 탈법, 위법으로 남부럽지 않은 호사로운 삶을 영위하며 뻔뻔하게도 여전히 광주 민중들의 항거를 폭도였다 떠들고 다니지만 말이다. 또 어떤가? 먼저 간 영혼을 위로하며 산자들의 부채감을 투쟁의 의지로 승화시켰던 ‘임을 위한 행진곡’보다는 ‘방아타령’이 기념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헐~(?) 스러운 상황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518은 30년이 지난 오래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의 모순을 치열하게 반영하는 거울로 남아있다. 이 거울 앞에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이 역사의 거울 앞에 김태일 감독은 어설픈 양비론과 어쩔 수 없음의 현실인식을 버리고 < 오월愛 >를 시작한다. 거대한 국가폭력의 잔인함 앞에 하나의 물방울에 불구했던 민초들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과거와 그 거울의 속내를 들추어낸다. 난 당신들 편이고 내가 바로 당신들이라며… ‘맛있는 참외 오천원 어치만 주세요’. 시장 어귀 참외 파는 할머니에겐 오월만 되면 나타나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을 들쑤셔 넣고 총총이 사라지는 카메라가 참으로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김태일 감독은 이런 빛고을 광주시민들에게 조심스럽지만 참으로 집요하게 그들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도매시장에 나가 과일을 떼어오고 리어커를 정리하며 시장 속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대인시장 과일 행상 할머니처럼 김태일 감독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방대한 양의 책을 읽으며 카메라를 들고 그들 한 가운데에 들어가 누구도 귀 기울려 주지 않았던 ‘민중들의 518’을 기록하는 일을 담담이 이어나갔다. 아침마다 들리는 커피행상의 아주머니들 사이로, 대인시장에 자리잡은 광주지역 예술가들 사이로, 도청 별관 안과 밖의 갈라진 5월 단체들 사이로 때로는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들어가며 그들의 속내를 눈치채고 드러낼 수 있게 지켜보고 기다리며 말이다. < 오월愛 > 안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평화반점 주인 부부, 양동시장 참외와 귤을 파는 노점 할머니, 대인시장 과일행상 할머니, 5월 화원 주인부부, 구두딱이 아저씨, 버섯농장을 하시는 아주머니, 대안학교 선생님,,, 이들은 518 당시 어떤 일을 했었을까. 계엄군도 있었고,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줬으며, 총을 든 시민군에게 밥을 해주면서, 시민들에게 518을 알려내는 역할들을 했던 인물들이다. 30년이라는 시간 만이 놓여 있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이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묵묵히 이 세상을 건너온 사람들인 것이다.(이중 계엄군/대안학교 선생님은 이질적인 변화를 겪은 듯 보이지만 그 역시 국가폭력의 희생자인건 자명하지 않은가) 이들을 묶어주는 역할은 김태일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실제로도 부부 관계인) 주로미 조감독과 지금은 전세버스 운전기사인 518 당시 기동타격대원인 양동남씨가 맡는다. 작품은 518의 ‘연대기’와 증언자의 ‘지금’이 부드럽게 오고 간다. 억지로 끼워 맞추듯 오디오와 비디오를 분리하여 시간을 ‘압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은 어차피 ‘하나’ 였음을 암시하듯 물 흐르듯 시간을 ‘해체’하여 현재하는 아픔 속에 과거를 바라보도록 우리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의 단락은 이야기의 재미를 쌓는 기능보다 작가가 선사한 주제의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기름기 하나 없는 스테이크 같다. 한 덩어리 천천히 씹어 제 맛이 날 때를 기다리면 다음 덩어리가 이어받아 결국에는 오랫동안 입 속에서 떠나지 않는 육즙의 향기가 진하게 남듯이 말이다. 여기서 오랜 기간 역사와 민중을 다루어 왔던 김태일 감독만의 완숙미를 확인 할 수 있다. 재미와 밀도라는 스토리텔링의 스킬에서 벗어나 익숙한 이야기를 바라보는 작각의 주제의식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더 힘이 세다는 것을 김태일 감독의 <오월愛>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무엇인가? 기록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민중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며 피곤한 삶을 건너가는 그 진짜 주인공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 다시 돌아가 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기록의 투쟁에서 518은 다시금 읽혀야 한다는 흔들리지 않는 선언이다. 5월만 되면 나타나는 당신들의 안락한 역사의식에 정면으로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 이른바 독립다큐멘터리는 이 사회에서 ‘영화’로서의 자기 지위만을 찾지 않는다.(이것을 포기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오해다) 누구도 지켜보지 않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의 문제를, 로드킬 당하는 뭇 생명들의 처절한 현실을, 국책사업에서 밀려나는 이들의 생존권을, 최소한의 인권마저 짓밟히는 소수자들의 눈빛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사람들에게 부담스럽고 무거운 이야기라 일컬어졌던 이 이야기들은 지금 방송과 주류미디어에선 당장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어 소통되어 가고 있다. 시장 속에 상품으로서 규정되는 ‘영화’로서의 자기 결정이 아니라 현실 운동의 변화와 함께 가야 할 자기원칙들을 점검하고 실행에 옮겼던 독립다큐멘터리의 역사가 보여준 결과인 것이다. 그 속에서 독립다큐멘터리스트는 변화의 주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감해 오면서 그 이슈와 거리가 먼 대중들과의 영화적 교감을 얻는 덴 실패했어도 주체들의 언어들을 남기고 근거를 기록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로서 그 이슈는 보편적인 문제로 사회와 소통하며 실질적인 변화에 한걸음 나아가는데 일조하게 된다. 이렇듯 난 ‘오월愛’가 몇 년 후, 518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논쟁에 어떤 식으로든 자기 역할을 할 것임을 장담한다. 미래의 가능성보다 당장의 살아남기에 급급한 독립영화의 풍토에서 미래의 영화란 어찌 보면 이렇게 발견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미래의 영화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에서 자기 역할을 해왔던 독립다큐멘터리에서, 그리고 바로 < 오월愛 >에서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