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PD수첩 4대강 수심 6mm의 비밀-방영의 승리는 국민들이다
- 제작년도
- 2010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1978년 3월 16일 아침 9시 10분. 이탈리아 총리를 2번이나 역임한 기독교 민주당 대표 알도 모로가 붉은 여단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날은 기독교 민주당이 서구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공산당과의 연합정부를 구상하고 신임투표에 들어가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일명 ‘역사적 타협’의 설계자였던 모로는 당 안팎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납치, 살해, 테러, 총격전이 횡행했던 이탈리아의 가장 어두운 시기, 이른바 ‘납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는 좌우간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이 가장 폭력적인 시대의 희생자 아이콘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모로는 납치 당한 지 55일 만에 시신으로 돌아왔다. 다섯 명의 경호원이 죽고 모로가 납치된 그날로부터 빨간색 르노 자동차 트렁크에서 모로의 시신이 발견되는 날까지,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TV에 붙어 있던 55일 간의 일을 벨로키오는 오랫동안 곱씹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로 사망 40주기가 되던 해에 그는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그 55일의 이야기를 다성적이고 기념비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모두의 간절한 바람과 기도를 저버리고 거대한 비극을 상영했던 (벨로키오의 비유에 따르면) ‘거대한 TV 극장’은 실제 사건으로부터 44년 후에 (이번에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이탈리아 TV를 통해 다시 한번 송출된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 익스테리어, 나잇 >(2022)은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첫 시리즈 작품이다. 6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러닝타임 330분에 이르는 이 시리즈는 애초 TV 방영을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되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자 극장용 영화로 확장되었다. 제작 방식뿐 아니라 작품의 릴리스 방식 또한 무척 이례적이고 예언적이다. 시리즈물로서는 영화제부터 극장, TV, 무료 스트리밍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배급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고, 이 사례가 예외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예언적이기도 하다. 사실 시리즈물이 유수 국제영화제의 한 섹션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2022년 칸영화제는 <익스테리어, 나잇>을 칸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했다. OTT 영화에 대한 거부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온 칸일지라도 83세 이탈리아 거장의 시리즈물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익스테리어, 나잇>은 칸에서의 프리미어 상영 즈음에 두 파트로 나눠 이탈리아 극장에 순차적으로 개봉됐고, 이탈리아 TV에서 방영된 다음 이탈리아 넷플릭스와 무료 플랫폼 라이플레이(RaiPlay)에서 다시 공개되었다. 적어도 이탈리아인이라면 누구나, 언제나, 쉽게, 다양한 통로로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럼 그들은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1978년의 TV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무엇을? 벨로키오는 2003년에 모로 사건을 이미 한차례 영화로 만들었다. < 굿모닝, 나잇 >(2003)은 붉은 여단의 관점으로 밀실에 감금된 모로를 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내부 시선의 영화라면, <익스테리어, 나잇>은 시선을 외부로 전환하고 확장한, 리버스 버전의 영화다. 자연스럽게 여기엔 주인공이 여럿이다. 벨로키오는 정치인, 교황, 가족, 붉은 여단원을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 삼아 사건에 얽힌 그들의 내면 풍경을 자꾸만 반복 변주되는 악몽의 사이클로 재현한다. 에피소드 1에서는 기독교 민주당과 공산당의 연립정부를 구상하는 모로의 정치적 이상 뒤에 숨겨진 그의 불면과 연약함, 관용과 사랑을 그린 다음, 에피소드 2에서는 그의 정치적 동지인 내무부 장관 코시가의 죄책감과 정신분열적 망상을, 에피소드 3에서는 모로를 구하기 위해 온갖 방도를 강구하는 교황 바오로 6세의 절박한 무력감을, 에피소드 4에서는 붉은 여단 내부에 번져가는 정치적 의심을, 에피소드 5에서는 모로의 아내 엘레오노라의 고통과 소외를 거쳐 에피소드 6에 이르러 환상과 상상, 꿈으로는 바꿀 도리가 없는, 총체적인 파국으로 맺는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The Apartment Pictures), IMDb (촬영: Anna Carmerlingo) 에피소드마다 불현듯 끼어드는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꿈이 구현하는 것은 대개 알도 모로의 환생이다. 역사적 비극을 다각도로 재고하는 벨로키오의 상상력은 불가역적인 역사의 결말을 그렇게 뒤집는다. 공히 모로 사건을 다룬 <굿모닝, 나잇>과 <익스테리어, 나잇>에 또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바로 그 점이다. 역사에 환상과 상상, 그리고 꿈의 이미지를 덧대어 숨겨진 진실의 일단을 들춰 보이는 것. 어쩌면 결론이 바뀔 수도 있었다는 깨달음. 그 환영의 세계에서 모로의 운명은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익스테리어, 나잇>은 그렇게 <굿모닝, 나잇>의 엔딩에서 다시 시작한다. <굿모닝, 나잇>은 감금된 밀실에서 탈출한 모로가 새벽 거리를 비척대며 걸어가는 몽환적인 장면으로 끝나고, <익스테리어, 나잇>은 로마 병실에 누운 모로가 문병 온 동료 정치인들에게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우 초현실적이고 거의 신화적이기까지 한 이 오프닝의 환영은 러닝타임 330분을 관통하는 일련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거기서 모로는 코시가의 방음된 밀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침실 의자에 앉아 불면의 밤을 보내고, 홀로 십자가를 진 채 고난의 길을 걷고, 동료 정치인들과 함께 익사한 시신으로 강물에 떠내려가고, 르노 자동차 트렁크에서 마침내 눈을 뜨고 걸어 나온다. “그 남자는 그리스도처럼 죽어야 했다.” 벨로키오는 감독 노트에 그렇게 적어놓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의 수사가 아니라 실제의 이미지로 우리 눈앞에 재현해 보인다. 그는 아무것도 새롭게 밝히지 않으면서도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 허구를 통해, 오직 상상력만으로. (좌) <굿모닝, 나잇> 중 / (우) <익스테리어, 나잇> 중 / 사진: IMDb( 1 , 2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탈리아가 기묘한 열병을 앓고 있던 시기다. 벨로키오는 그 시대의 풍경을 장대한 프레스코화처럼 펼쳐놓고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걸어 나온 듯한 인물들을 차례로 무대 중앙에 세웠다. 1막이 오르고, 2막이 오르고, 3막에서 또다시……. 그렇게 여섯 개의 장에 3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모로의 정치적 동지와 정부가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는 사실을 영화는 낮은 톤으로 서늘하고 선명하게 우리에게 일러준다. “이 영화, 아니, 시리즈, 이게 뭐라고 불리든 간에” 벨로키오는 자신의 첫 시리즈물을 만들면서 그걸 무어라 규정하든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이 영화, 아니, 시리즈, 이게 뭐라고 불리든 간에’ <익스테리어, 나잇>은 영화제와 극장 스크린, TV와 OTT 플랫폼을 가로지르며 시네마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를 즐겁게 상상하도록 부추긴다. 완전한 몰입의 330분이 지나고 나면, 이걸 뭐라고 부르든 간에 저 멀리 제 길을 가는 시네마의 발걸음을 좇느라 바빠진다. 실은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영화는 매번 시네마의 경계를 탐문하느라 머뭇대는 우리를 저만치 앞질러 간다. 강소원(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l 영화제에서 일한다. 매년 엄청난 편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히어>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인가?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누군가는 이런 우유부단한 답변이 엄밀한 것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화’와 ‘영화’라는 여타의 매체들과 복합적으로 엮여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분명한 현실이니 말이다. ‘만화영화’란 말이 애니메이션의 고유성 내지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요즈음에 만화영화라는 호칭이 잘 쓰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그러나 고유성 내지 자율성이 위협받는 지점에서 그 매체의 성질이 잘 드러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런 반론은 오히려 애니메이션이 겪는 고유한 문제를 묵과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거친 단언들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매체사적 관점에서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서둘러 훑어봐야만 하겠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무엇인가? 여기서는 저 위대한 애니메이터 노먼 맥라렌의 (1950년대 조지 시피아노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쓰인) 정의를 일단 따르기로 하자.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의 예술이 아니라 그려진 움직임의 예술이다. 각 프레임 사이에 무엇이 발생했는가는 각각의 프레임상에 무엇이 존재하느냐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애니메이션은 프레임들 사이의 속임수로 눈에 보이지 않는 틈새를 교묘하게 조작하는 예술이다.” 즉 우리네 세계에 존재하는 물질들의 운동성을 (기록하는 대신) 만들어내고 나아가 시간의 흐름을 생성하기 위한 프레임 바이 프레임의 작업이 요구되는 미적 결과물 일체를 맥라렌은 애니메이션으로 정의한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기초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짚는 이 정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니 오늘날이라서 더욱 탁월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만화와 영화의 조합어가 특정 매체를 표현하는 말이 된 걸까? 아무래도 ‘만화’는 그려진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과장하여 초현실적인 묘사를 왕왕 보여준다는 점이 같기 때문에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운동(성)으로써 작용한다는 점, 그리고 이 작용의 주 형식이 프레임과 숏이라는 점 때문에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에서의 번역된 명칭만으로 너무 많은 걸 해석하려는 건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테다. 하나 만화영화라는 명칭은 사실 동아시아만의 것이 아닌데, 만화를 이르는 말 중 하나인 카툰(Cartoon)은 미국에서 만화영화와 비슷한 용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당장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전문 TV 방영사인 카툰 네트워크를 떠올려 보시라. 카툰 네트워크 스튜디오 그 태동기인 1910년대에 (< 리틀 네모 >의) 윈저 맥케이나 (< 고양이 펠릭스 >의) 오토 메스머 같은 위대한 만화가들의 세례를 받으면서 (셀-)애니메이션과 카툰은 창작에 있어서든 산업에 있어서든 깊이 뒤섞이고 혼용되기 시작했으며, 이 때문에 애니메이션학자 찰스 솔로몬이 『마법의 드로잉: 애니메이션의 역사(Enchanted Drawings: The History of Animation)』에서 말했듯 “애니메이션은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서 그려진 카툰의 동의어”가 되었다. 다시 한 번 “그려진 가상의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 그리고 이를 과장하여 초현실적인 묘사를 왕왕 보여준다는 점”을 곱씹어 보자. 하지만 당연하게도, 21세기의 우리들은 애니메이션의 세부적이고 다양한 갈래를 ‘만화’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노먼 맥라렌의 추상 애니메이션, 이리 트른카의 퍼핏 애니메이션, 그리고 < 터미네이터 2 >(제임스 카메론, 1991)와 < 쥬라기 공원 >(스티븐 스필버그, 1993) 이후 컴퓨터 그래픽스의 영화적 활용을 순전히 만화와의 상관만으로 논할 수 있을까? 혹은 스탠 브래키지, 존 휘트니, 바술카 부부 등의 작업들처럼 분명 애니메이션의 성립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보이나 (후대에 나온 3D 애니메이션과 달리) 애니메이션사 서술에서 주로 누락되고 실험영화사나 영상미술사에만 등장하는 경우는 또 어떤가? 이렇듯 오늘날 광대해진 애니메이션에 있어 ‘만화’의 특권성이란 어딘가 불충분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 영화학자 톰 거닝이 「순간을 애니메이션화하기: 애니메이션과 사진의 은밀한 대칭성(Animating the Instant: The Secret Symmetry between Animation and Photography)」을 비롯한 여러 연구에서 말했듯, 실사 영화의 역사와 전통적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단지 애니메이션이 좁은 의미에서 영화사의 일부인 것을 넘어) 서로 깊이 얽혀 있을뿐더러 순전히 기술의 계보로만 따지면 애니메이션이 실사 영화에 앞서서 우리네 세계에 출몰했다. 더군다나 요즈음 대부분의 대중적 실사 영화는 실사 이미지와 그래픽 이미지 사이의 디지털 합성으로 이루어진, 사실상의 부분적/비가시적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학자 수잰 부캔은 이를 ‘편재하는 애니메이션(pervasive animation)’이란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디지털 이후 영화는 근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특수한 일종이 되었다’라는, 미디어학자 션 커빗과 레프 마노비치의 따로 또 같은 주장은 그 도발성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논리적인 결론이라 할 만한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영화(사 서술)에 있어 렌즈 기반의 사진적 이미지가 지닌 특권성은 애니메이션을 주변화하거나 보조화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은폐된 기원이자 기둥으로서 애니메이션. (상) 원작 『여기서』(리처드 맥과이어, 2014) 중 / (하) 실사 영화 <히어> 중 (사진: " Here, 2014 ", Richard McGuire) 요컨대 애니메이션이란 범주는 ‘만화영화’로서의 요소를 강하게 지닌 동시에 이를 완전히 초과하는, 근원적인 ‘혼동과 분산(발터 벤야민)’에 처해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게 볼 만한 작품이 있다면, 아무래도 로버트 저메키스의 근작 < 히어 >(2024)이지 않을까? 리처드 맥과이어의 급진적인 반(反)만화 『여기서』를 영화화한다는 난제를 수행하면서, 저메키스는 원작의 (드라마적 서사와 정돈된 타임라인 없이 펼쳐지는) 초월적 고정 시점과 다중 프레임 구조에 적당한 인간적 중력을 부여하려 애쓴다. 그런데 어떻게? (마구 혼재된 타임라인을 관통하기 위한) 모션 캡처와 3D 애니메이션 기술을 적극 활용해 작품을 부분적인 가족 드라마로 변형시킴으로써.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영화는 불안정하고 과포화된 시각적 구도와 지나치게 매끈한 사물 이미지 등 그 외양에 있어 동시대 연극 같기도 하고, 제프 월이나 그레고리 크루드슨의 사진 같기도 하며, (저메키스 자신이 지난 2000년대에 천착했던) 모션 캡처 CG 애니메이션 같기도 한, 지극히 비(非)영화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달리 말해 반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비영화 <히어>에는 애니메이션이 활용된다는 것을 숨기거나 완화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그저 작품의 실패라고 쉽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저메키스에게는 ‘애니메이션다움’을 부상시키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을까? 우리가 지식으론 알고 있는 ‘편재하는 애니메이션’의 비가시적인 사실을 과도하리만큼 가시화하는 것 말이다. 고정된 위치에서 인간사와 자연사를 번잡하게 조망할 수 있는 초월적 시선이란 (적어도 영화 내적으로는) 애니메이션 기술을 통해서만 구현 가능하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저메키스는 그러한 시선으로 보는 세계는 인간적 지각(의 기준)과 닮기보다는 퍽 애니메이션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믿음으로 치환하여 밀어 붙여본 것이다. 이는 반만화적인 구상과 비영화적인 구성을 지탱하고 구축하는 것이 애니메이션 기술이란 사실과도 겹치며, 우리를 마지막 장면으로 끌고 간다. 기억을 더듬는 노년의 부부를 무심히 바라보다 마침내 거대하고 유려하게 움직이는 ‘영화적’ 시선. 그것의 감동은 애니메이션적인 것과 영화적인 것 사이의 내재적인 혼융이 양자의 전환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근사하게 제시한다는 데에서 온다. 다시 한 번, 이 무모한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만화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함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이 이중구속 속에서 제 역량을 탁월하게 발휘하기도 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렇기에 이 근원적인 ‘혼동과 분산’은 은총에 가깝다. 윤아랑(비평가) l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감각을 문제시하는 문화 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 『라임 앤 리즌 2호: 오컬트』(공저, 2025) 등이 있다.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1789년 혁명의 여름에 쓰인 인권선언은 재산과 생명을 불가침의 권리로 상정하였다. 이로써 프랑스혁명은 자본주의를 불러왔다. 도둑질을 대가로 가혹한 형벌을 받은 장발장은, 불가침의 권리를 어긴 대가가 얼마나 가혹했던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가혹한 처벌과 함께 시작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도시를 둘로 갈라놓았다. 도시의 한 켠에는 전례 없는 풍요와 번영이, 다른 한 켠에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빈곤이 자리를 잡았다. 도시에 넘쳐나는 이 빈곤과 마주하며 지식인들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말했다. 피에르 르루처럼 다수의 힘으로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며 ‘사회주의’를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세기말에 이르러 에밀 뒤르켐이나 마르셀 모스처럼 ‘연대’와 ‘증여’를 사회적인 것이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빈곤 속에서 허덕이는 이들의 행동과 사고를 관찰하며 문제를 분석해보자는 이들도 있었다.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을 말한 아돌프 께뜰레, 사회 역학(social epidemiology)을 말한 루이 빌레르메, 그리고 사회학(sociology)을 말한 오귀스트 꽁트가 그들이었다. ‘social’이라는 형용사가 만들어 낸 렌즈를 통해 사람들은 ‘사회’의 형상을 발견해 나갔고 또 발명해 나갔다. 관찰은 주장이 되었고, 정책은 안전망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회적 안전망은 도시의 삶과 습속의 ‘일반성’과 ‘정상성’ 창출을 목표로 했다. 이에 따라 남성의 경우, 고등학교 내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얻은 후에는 (핵)가족을 구성하고, 내 집과 내 차를 마련한 후에는 주중에는 일터와 집을 오가고 주말에는 백화점이나 공원과 집을 오가는 ‘보통의 삶’이 20세기 들어 점차 일반화되어갔다. 20세기 중후반 서구사회는 그랬다. 1990년대 한국의 대학가에는 ‘포스트(post)’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었다. 탈독재, 탈냉전, 탈사회주의라는 변화를 배경으로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너머(post)를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민족주의, 포스트발전주의 등, 대다수는 이른바 ‘선진국’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온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제 한국사회가 ‘정상’을 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상황 판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느 선진국처럼 민주주의를 누리고, 여느 선진국처럼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는 판단. 그렇기에 이제는 반봉건사회라든지 주변부 사회라 말하기 어렵다는 판단. 이런 판단들이 중첩되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과, 이제는 민중을 대신하여 중산층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삶을 보여준다는 판단이 지식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유령은 다름 아닌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이었다. 도시를 누비는 자동차의 숫자도 ‘아파트’라 불리는 주거 상품의 가격도 빠르게 늘어갔지만, 이렇다 할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사회에서 2000년대 이후 가장 빠르게 증가한 것은 불안한 일자리와 불안한 삶들이었다. 2차 대전 이후 서구사회가 경험했던 정상적인 삶의 일반화는 인류 중 소수만이 경험한 것이었고,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소수만이 경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여전히 괜찮은 일자리, 자동차, 아파트를 소유하고 중산층 가족을 구성하며 여가와 소비를 즐기는 삶을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 간주한다. 안전망 없이 규범만 존재하는 것이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사회적인 것’을 말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담론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과 사회적 안전망의 뒷받침 없이,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에 관한 규범만 창출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해, ‘사회적인 것’ 없이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서구와는 다른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적인 것’이 있던 것은 아닐까? 서구와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습속을 창출하는 장치들이 있던 것은 아닐까?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 88 서울올림픽대회 폐회식 야경 원경 ”, 한국정챙방송원 e영상역사관 그렇게 해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1988 서울올림픽이었다. 정상적인 삶을 창출하는 안전망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삶의 외양이 만들어지는 모멘텀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올림픽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아파트뿐만 아니라 백화점, 공원, 미술관, 공연장 등 정상적인 삶의 외양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배치하는 계기였다. 또한 그런 도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상인지에 대한 담론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정상적인 습속을 창출하기 위한 캠페인과 감시와 처벌이 일상화되는 계기였다. 이러한 도시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고 여겨지는 이들에 관한 드라마 <우리는 중산층>(1991)과 <말로만 중산층>(1991~1992)이 방영된 것은 올림픽 직후였다. 그랬기에 한국사회에서 ‘사회’의 탄생을 말하고자 한다면 서울올림픽을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논문에서 필자는 서울올림픽이 정상적인 삶으로서의 ‘사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수단이자, 습속에 관한 담론으로서의 ‘사회적인 것’을 둘러싼 정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많은 문서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잡지와 도서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면서 서울의 골목 골목마다 남아 있는 권력의 흔적을 보여주고, 또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일상 구석구석을 통제하고자 한 권력의 강박을 보여주고자 했다. 서울올림픽을 도시와 사회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메가이벤트(mega event)로 봄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을 탈정치화시키고 우민화시키고자 올림픽을 개최했다고 하는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메가이벤트라는 프레임은 정상적인 삶과 습속을 만들어가는 메커니즘에 대한 분석에 한계를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 책은 존 매칼룬과 요시미 슌야 등의 공연론을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이라는 기획에서 마무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공연의 기획에서 커튼콜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으로 해석해 보고자 했다. 또 그 범위가 무대 제작에서부터 배우 준비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기에 ‘연출’이 아닌 ‘드라마투르기(극작법)’로서 올림픽의 준비와 상연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사진: (상) "88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식(식전공개행사, 입장)( 1 , 2 )", (하) "88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식 공개 행사( 1 , 2 )", 한국정챙방송원 e영상역사관 그럴 때 발견된 것은 다음과 같다. 권력을 손에 넣은 군인들이 사회 구성원들과 맺은 것은 그럴듯한 공연에 관한 계약이라는 것. 그런 군인들은 서울올림픽을 위해 전 국민을 배우로 동원했고, 관객이 될 외국인의 시선을 앞세워 서울이라는 무대를 만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무대 위에서 보여줄 것과 무대 아래 감출 것을 나누었다는 것. 올림픽 이후에는 무대가 확산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연출하는 배우가 되어갔다는 것. 서울올림픽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은 군인을 대신하여 가상의 외국인과 공연 계약을 맺고 공연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 이는 외국인들에게 그럴듯한 공연을 보여주고 그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음으로써 한국사회 내 지지를 획득하는 사회적 질서로서의 88년 체제를 탄생시켰다는 것. 하지만 이런 공연 계약은 무대의 위와 아래를 나누어 사회적 갈등에 분열에 취약하다는 점. 책에는 쓰지 못했지만, ‘극장도시’라는 표현에는 필자의 개인적 체험이 반영되어 있다. 필자가 거주하던 서울 관악구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을 꿈꾸며 상경한 이들이 개별적으로 고군분투하는 공간이다. 서울은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좁기만 한 원룸이나 고시원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도시다. 이런 공간에 사는 이들이 불안과 우울을 견디는 한 가지 방법은, 한강이 되었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되었든 집 바깥의 어딘가 그럴듯한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곳을 사진으로 남기며 자신의 삶을 전시 내지 상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럴듯한 공간의 다수는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서울은 보여줄 수 없는 내 방과 보여주고 싶은 공원, 박물관, 백화점, 미술관 사이의 대비가 분명한 도시이자 무대의 위와 아래가 명확한 도시이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전시적 삶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서울은 극장도시인 것이다. 사진: “ 서울 풍경 ”, 서울특별시 서울사랑 (문덕관) 박해남(사회학 연구자) l 계명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면서 20세기 이후 한국과 일본의 도시와 도시 속 삶들을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