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신
- 감독
- 유현기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유승호, 고아성, 이현우, 지연, 이찬호, 김수로, 변희봉, 이병준, 임지은, 심형탁, 배두나, 오윤아, 김영옥, 방은희, 김하균, 구혜령, 박철호, 김미라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근·현대 한국사회를 관통한 균열과 진통의 시간을 영화에 남은 흔적으로 기억합니다. 장길수 감독의 < 은마는 오지 않는다 >(1991)는 안정효 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이후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국내 백상예술제에서 작품상 등 5개 부문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제15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여 언례 역을 맡았던 이혜숙 배우가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장길수 감독이 각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1] 장길수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제작 동기로 한국과 미국 문화의 갈등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그려 보려 애썼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2] 이에 따르면 영화는 미국과 한국의 문화 충돌과 갈등 문제를 유엔군 병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은 후 ‘양공주’로 전락해 가는 순박한 시골 여인의 삶을 통해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순박한 시골 여인이 양공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즉 ‘한국전쟁’과 ‘유엔군 참전’이라는 조건은 이 영화를 문화와 역사라는 두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전쟁이 낳은 뼈아픈 존재, ‘양공주’라는 타자의 출현 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작가 안정효는 작품에 형상화된 언례(이혜숙)가 사실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던 평범한 자신의 어머니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한국전쟁 당시 수없이 희생되었던 여성 중에서 발견된 존재이자 이름이었다. “언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51년 여름, 지금은 부천이라고 이름(조)차 바뀌어버린 소사읍 심곡리에서였습니다. (중략) 내가 언례씨를 발견한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러 왔다는 유엔군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하지 않으려고 (날)마다 도망을 다니던 내 어머니와 (다)른 많은 여자들 한가운데서였습니다. [3] ” (괄호 표기 필자)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아픈 부분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내몰린 여성들에게 다양한 희생이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외국군 주둔과 전쟁으로 인한 생활난은 여성으로 하여금 몸을 팔아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게끔 강요”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부녀자들이 생활난으로 일반 ‘양공주’나 매춘 행위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준다. [4] 이러한 당대 상황과 위의 인용문 내용을 겹쳐 읽어 보면 언례는 전쟁이 낳은 뼈아픈 존재들을 호명하는 대표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통에 남편도 없이 홀로 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먹고 살기 위해 양공주의 삶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그녀들의 목소리로 직접 증언되어야 했으나 지난 몇십 년 동안 사회적 배척과 배제 속에 잠들어 있었다. “전쟁미망인, 이산가족 여성, 불구가 된 남편, 그리고 ‘양공주’라고 불린 기지촌 여성들은 1950년대 결여된 가부장성을 홀로 지탱하며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까지 견뎌야 했던 불안한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었다” [5] 라는 지적은 1950년대 전후 여성들이 마주해야 했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따라서 언례와 양공주의 삶은, 잊힌 채 침묵 당해 왔던 타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며 역사의 뒤안길에서 귀환하는 궤적을 보여 주는 사례이자, 한국전쟁과 문화 식민의 공간이 어떻게 한국의 영토와 신체, 그리고 문화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면서 현재에 이르도록 했는지에 대한 기원을 되짚어 보는 문화적 계기로 작용한다. 이를 잘 말해 주듯 소설과 영화는 한국전쟁에서 출현한 양공주가 어떻게 전쟁을 통해 생산되고 문화적 타자로 호명되어 갔는가에 관심을 둔다. 양공주의 탄생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조건과 문화적 침식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비극으로 조명하는 방식은 허버트 미트갱(Herbert Mitgang)이 미국에서 출판한 안정효의 소설을 두고 “반미 소설이 아닌 반전 소설”이라고 평가한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6] 전쟁은 물질적 파괴뿐만 아니라 문화적·정신적 파괴 또한 초래함으로써 휴머니즘에 대한 깊은 비판과 성찰을 유도한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양공주로 호명되는 언례의 변화 과정은, 이를 둘러싼 전쟁과 휴머니즘의 문제를 부각하면서 ‘반전 소설’이자 ‘반전 영화’로서의 새로운 지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장길수 감독의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비로소 양공주의 삶이 형성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적극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극중 언례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한진 /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양공주의 삶을 통해 만나는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의 그늘 개봉 당시 이 작품은 “한국 속의 아메리카니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성 영화”로 소개됐다. [7] ‘아메리카니즘’이라는 문화적 현상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미군 주둔이 본격화되면서 1950년대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그런데 영화는 양공주와 ‘양키 문화’를 시각적 흥밋거리로 재현하기보다는 한국전쟁과 함께 나타난 아메리카니즘을 전쟁과 휴머니즘, 그리고 문화 침범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와 함께 드러낸다. 금산리에서 평범한 시골 촌부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언례의 삶이 급격하게 훼손되는 데는 유엔군의 참전과 전쟁에 휘말린 금산리 사람들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 태도가 크게 작용한다. 언례가 유엔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그녀는 황훈장( 전무송 )의 말을 통해 드러나듯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마땅한’ 더러운 존재가 된다. 그녀를 배척하는 금산리 사람들의 태도 이면에는 순결한 신체와 영토가 훼손당한 데 대한 문화적 충격과 유교적인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언례의 집과 신체는 전쟁으로 초래된 영토적 파괴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언례가 양공주로 변화하는 과정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급변 속에 끼어있는 존재, 즉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이’와 ‘경계’의 존재가 놓인 문화적 곤경을 집약해서 보여 준다. 이는 그녀가 경계 공간에 놓여 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금산리의 집과 양공주의 집은 전통 공간과 ‘양키 공간’으로 구분된다. 언례는 이 두 영역을 오감으로써 전쟁 전-전쟁 후, 전통-근대, 순수-오염, 선-악, 유교 문화-양키 문화 사이에 놓인 상징적 존재로 변모한다. 금산리의 집과 양공주의 집에서의 언례 (사진: 한진 /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문화 침범의 경계에 놓여 있는 언례에게 목소리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아들 만식과 황훈장, 그리고 찬돌 등의 남성적 시선이 영화 곳곳에서 규율 권력으로 출현하지만 언례와 용녀( 김보연 ), 순덕( 방은희 )은 삶에 대한 발언권을 가진 존재들로 생동감을 지닌다. 게다가 이는 양공주들을 문화 침범의 ‘쓰레기들’로 분류하려는 폭력적인 권력자들의 비윤리적 태도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문화적 저항이 된다. 영화에서는 미군의 쓰레기를 뒤지거나 구걸하고 쓰레기 더미를 차지하기 위해 패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여러 차례 재현되는데, 이는 한국전쟁이 초래한 아메리카니즘’이 한국인의 삶에 가져온 문화적 오염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들이다. 이로써 양공주의 삶과 한국인의 삶은 문화적 ‘오염’이라는 측면에서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양공주의 삶을 비판할 만한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을 경유하면서 ‘전쟁’과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의 주제로 접근한다. 미군의 주둔과 함께 시작된 ‘양공주의 삶’과 ‘쓰레기를 줍는 삶’은 한국전쟁이라는 급격한 변화 속에 내몰린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마주한 시대의 현실이자 곤경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신들을 배척하는 마을 사람들과 갈등하는 언례와 용녀, 순덕의 목소리와 저항이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질 때 이는 전쟁과 휴머니즘을 둘러싼 확장된 문화적 보편성과 현실성을 획득하는 길을 열게 된다. 마을 사람들과 대립하는 용녀와 순덕, 쓰레기를 줍던 마을 아이들의 패싸움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러한 영화 재현 양상은 사실 보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영화사에서 양공주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신상옥 감독의 영화 < 지옥화 >(1958)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양공주 쏘냐( 최은희 )는 육체적인 매력과 화려한 미제 사치품으로 무장한 채 남성들을 유혹하거나 미 군수품을 밀수하는 데 협력하는 ‘돈’과 ‘욕망’의 화신으로 이미지화된다. 영화 속에서 기지촌 양공주로 재현되는 줄리( 강선희 )에게 그나마 전쟁 전 순수했던 과거 이야기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순결한 동식( 조해원 )과의 결합을 위해 설정된 것이라고 할 만큼 주변적이고 작위적이다. 이는 영화 <지옥화>가 전통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당대 문화 이데올로기를 영화적으로 전유하기 위해 양공주를 동원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따라서 영화 속 양공주의 삶은 현실성을 획득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장길수 감독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 와서야 비로소 양공주의 삶이 현실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의 단단한 문화적 결합이 독재정권의 몰락과 함께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그동안 침묵했던 타자들의 출현을 알리면서 해방의 길을 모색하던 때 당도한 이 영화는,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의 거친 파도 속에서 그동안 잠자고 있던 타자들의 삶을 증언하는 대표적 작품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레이스 M. 조는 책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2008)에서 ‘양공주는 단지 죽거나 감상적으로 과거를 일깨우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현재에 생산적이고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유령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8] 실제로 양공주로 오랫동안 침묵 당한 삶을 산 어머니를 둔 그녀에게 양공주는 잊힌 과거를 현재로 다시 불러오는 주체적 존재들이다. 문화적 차원에서 양공주에게 다시 목소리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레이스 M. 조의 연구와 저서들은 이를 위한 후속 세대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잊힌 자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증언’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당도하고 있다. 그리고 <은마는 오지 않는다>야말로, 이러한 문화적 실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 [1] “방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몬트리올 영화제 2부문 수상”, 《동아일보》, 1991. 9. 3. [2] “인터뷰 몬트리올 영화제 각본상 수상 영예 장길수 감독 ‘방화 문제의식 세계 수준’”, 《경향신문》, 1991. 9. 4. [3]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언례에게/안정효 전쟁과 폭력의 희생양이었던 한국 여인 모습 알리려 했소”, 《동아일보》, 1996. 4. 30. [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전쟁과 사회 구조의 변화』, 1999, 41쪽. [5] 김학재 외,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50년대』, 창비, 2016, 71쪽. [6] “Books of The Times; Korean’s Novel Is Anti-War But Anti-American”, The New York Times , 1990. 2. 21. [7] “<개벽>, <은마는...>, <산산이부서진...>, 세계 영화 시장 ‘노크’”, 《조선일보》, 1991. 2. 22. [8] Grace M. Cho,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 University of Minesota Press, 2008, p. 18.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
“내가 졌소. 종로 바닥을 떠나겠소.” 요즘 이렇게 대사를 썼다간 현실감각이 없는 시나리오 작가로 낙인찍히기에 십상이다. 임권택 감독의 액션활극영화 < 장군의 아들 >(1990)은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급습과 뒤통수치기가 난무하는 요즘 누아르 영화 속 건달들과 달리 이 영화 속 주먹들의 대결은 예를 갖춘다. 싸움을 걸 때는 “한판 붙읍시다”하며 도전장을 내민다. 대결에서 진 사람은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난다. 아무리 못 돼 보이는 악당이라도 염치를 알고, 이긴 사람의 뒤를 노리지 않는다. 이긴 사람 또한 기가 꺾인 상대에게 모욕을 주지 않는다. 상대의 부하들에게 “병원에 빨리 모셔가라”고 큰 마음씨를 베풀기까지 한다. 양쪽 패거리를 포함해 구경꾼들이 싸움의 참관인이자 심판자다. 김두한( 박상민 )과 전라도 주먹 망치, 우미관 김만목 사장( 이해룡 )이 영입한 이또우 무사시와 쌍칼( 김승우 ), 김두한과 이또우 무사시, 하야시의 사주를 받은 김동회( 이일재 )와 왕십리파 왕막 등 영화 속 주먹들의 대결이 흥미로웠던 것도 그래서다. < 장군의 아들 >의 김두한은 싸우면서 성장한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돼 각설이 생활을 하다가 우미관패의 우두머리인 김기환의 눈에 띄어 극장 우미관에 들어갔으니 살아남기 위해 주먹을 써야만 했을 것이다(반면 영화 속 그의 친구는 책을 택했다). 그는 우미관패 조직원 둘, (우미관에 들어간 뒤 처음 상대하는) 전라도 주먹 망치, (우미관의 김만목 사장이 김기환 하나로는 하야시패에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해 영입한) 이또우 무사시, 유도 유단자인 마루오카 종로경찰서 경부, (하야시패가 영역을 넓히기 위해 돈을 주고 영입한) 김동회 등 약한 상대부터 강한 상대까지 차례로 맞붙는다. 모든 액션신에서 정일성 촬영감독의 촬영은 정교하다. 관객의 눈을 속이고 타격감을 강조하기 위해 클로즈업숏을 연달아 배치하는 보통의 액션영화와 달리 <장군의 아들>은 롱테이크숏과 클로즈업숏 그리고 부감숏을 번갈아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다. 두 사내가 서로 노려본 채 빙빙 돌며 기 싸움을 하는 롱숏(어떤 장면에서는 부감숏)은 매우 긴장감이 넘친다. 서부영화에서 총잡이들이 권총을 꺼내기 직전의 그 긴장감처럼 말이다. 이 롱숏 다음 장면으로 (서로에게 주먹을 주고받는) 클로즈업숏이 이어지니 긴장감과 속도감 모두 살아난다. <장군의 아들>은 컷을 잘게 잘라야, 컷의 사이즈가 타이트해야 영화의 속도가 빠른 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준다(특히, 김동회가 왕십리파를 접수하는 액션시퀀스에서 김동회의 날렵함을 강조하기 위해 컷 분할 없이 담아낸 달리숏은 대체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하다). 액션신이 생생하게 설계되는데 세트가 한몫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해야 하고, 세트를 만들더라도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없는 지금과 달리 종로 시장거리, 우미관, 혼마찌(충무로) 거리, 술집 등 < 장군의 아들 >의 주요 공간 대부분 세트로 구현돼 낯설고, 그래서 신선하다(이 영화가 세트영화의 부활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장군의 아들> 속 공간과 관련해 몇 번을 봐도 울컥하는 장면이 몇 있다. 신마적( 김형일 )이 패거리들과 함께 술에 취한 채 혼마찌의 술집으로 가는 길에 <봉선화> 노래를 단체로 부르는 영화의 후반부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너를 반겨 놀았도다~.” 화면의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갈 때만 해도 그들은 하야시패와 맞붙어 봉변을 당할 줄 몰랐을 것이다. 술집에서 하야시패와 맞붙다가 봉변을 당한 그들 중 한 명이 종로에 있는 김두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김두한이 신마적을 구하기 위해 신마적 일행이 걸어간 길의 반대 방향(그러니까 화면의 오른쪽(종로)에서 왼쪽(혼마찌))으로 달린다. 이 장면은 단 몇 컷만으로도 김두한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어 숨이 턱턱 막힌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촬영이 경제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순간이다. 이밖에도 김두한이 우미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 본 무성영화는 애절하고, 김두한이 화자( 방은희 )와 함께 절에서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쓸쓸하다. 누구는 < 장군의 아들2 >가 더 좋았다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이 장면들만으로도 < 장군의 아들 >이 충분히 아름다운 액션활극영화다.
강제규 감독을 모르는 영화팬은 없다. 한국 역사상 두 번째 천만 관객 영화이자, 현재까지도 최다관객기록 7위를 고수하고 있는 < 태극기 휘날리며 >를 만들었고, < 은행나무 침대 >, < 쉬리 >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을 만들고 실천한 연출가이며 제작자이다. 그는 감독이기 이전에 충무로에서는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많은 영화팬들의 뇌리에 선명한 수작 < 게임의 법칙 >이나 <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 같은 작품의 그의 각본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시나리오 작가 경력과 <은행나무 침대>로 시작된 연출 경력 사이에 위치한 영화가 한 편 있다. 그것이 비디오 영화로 제작, 출시되었던 < 공포특급 >이다. 그 때 그 책들 90년대 초반에 ‘어린이’ 혹은 ‘청소년’의 정체성을 가지고 질풍노도의 시기, 주변인, 방관자, 아웃사이더라 명명된 시절을 보낸 분이라면 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매직아이」, 「월리를 찾아서」와 함께 함께 항상 회자되곤 하는 추억의 서적류 3인방 중 하나가 「공포특급」이었다. 여기저기 떠도는 괴담, 전설 등을 모아 펴낸 책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 책과 제목이 같다. 제목‘만’, 같다. (포스터는 상당히 흡사한데, 책 「공포특급」이 < 13일의 금요일 >의 포스터를 그대로 베꼈다면, 영화 < 공포특급 >은 그대로 내긴 좀 그랬는지 거기에 < 늑대인간의 습격 Wolfen >의 이미지를 합성했다. 이러나저러나 베낀 것은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습작’이다. 3편의 단편(<국화>는 중편으로 쳐도 될 듯하지만)이 들어가 있는 옴니버스 영화인 < 공포특급 >은 책이 대유행했던 1993년 바로 다음 해, 1994년에 비디오 시장에 출시됐다. 사실 제목이 같을 뿐이고 무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로 보는 것이 옳다. <공포특급>의 단편들은 모두 오리지널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옴니버스 구성이야말로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자인 강제규 감독의 상업적 감각이 보이는 대목이다. 어차피 연출 연습을 하긴 해야 하는데 괜히 독립 영화나 단편을 만들어 영화제에서 몇 번 틀고 묵히느니 이런 식으로라도 시장에 내놓아 제작비도 뽑고 평가도 받는 일석이조의 방법을 취한 것이다. 물론 쌩짜 연출자가 아닌 충무로의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겠지만 그런 기반이 된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시도도 아니었을 것이다. 강제규 본인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아닐까? 이후 그의 행보가 처음부터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던 바로 그 길임을 생각하면 영화가 대단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뚝심 하나는 정말 인정 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1. 지하철 살인 범인 제목을 보면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살인을 다룬 것 같다. 그렇다면 물론 클라이브 바커의 <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 공포특급 >의 <지하철 살인>은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지하철’이 아니라 ‘지하철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추격전과, 이유 없이 펼쳐지는 무차별 살인에 대한 공포를 시각화하려고 한 노력이 보인다. 지하철역이라는 공간은 많은 영화에서 다뤄질 만큼 매력적인 공간이긴 하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미로가 있다면 지하철역이 아닐까?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는 공간의 매력을 살리는데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다. 주인공의 기지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살인마의 모습이 엄청나지도 않다. 배우 김주영이 맡고 있는 살인마 역은 옆집 아저씨가 칼 들고 마실 나오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좀 더 현실적인 악역을 맡았다면 사람 좋은 얼굴과의 역설이 가능했겠지만 ‘지하철역’이라는, 현실과 괴리된 느낌을 주는 공간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도망을 가고 쫓는 와중에 느닷없이 트위스트 김 선생님께서 출연하여 죽어주셔서 웃음을 주기도 한다.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 전미선이 주연을 맡고 있다. 2. 국화 최종 범인 그녀 방송사 간판 드라마 <국화>가 방영되면서 차례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죽어 나간다. 다름 아닌 드라마의 주인공 국화를 괴롭히던 악역들이 그 피살자. 다음에는 누가 죽을지 모르는 가운데 방송사 드라마국은 비상사태에 빠지고, <국화> 작가의 정체도 미스터리한 가운데 드라마는 종영하게 된다. 그 가운데 불안에 빠진 사람이 있고 작가를 찾는 경찰은 진실에 접근해 가는데... 당시로는 나름대로 호러영화로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 보면 오히려 <드라마시티>나 <베스트극장> 같은 느낌이 더욱 강한 에피소드다. 따지고 보면 막장드라마 같은 이야기라 좀 가벼웠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꽤나 심각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죽음 직전에서 살아난 여인이 미디어를 통해 복수한다는 아이디어가 꽤 신선한 감도 있다. 살벌한 이야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3편의 에피소드 중에 가장 공들인 티도 나고 짜임새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러닝타임도 가장 길다.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고, 그에 부족함이 없는 연출이라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94년 당시에 봤다면 꽤 재미있었을 에피소드. 애석하게도 요새 보기엔 자극이 세지 않은 편이다. 3. 13인의 피 김승우 와 방은희 앞서 <지하철 살인>에서 클라이브 바커를 언급했다. 그거야 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아닌가? 지하철이 우리나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13인의 피>를 본다면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셋 중 누군가는 분명한 클라이브 바커의 굉장한 팬임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에피소드는 ‘13’이라는 숫자가 암시하듯 지옥의 사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핀헤드는 나오지 않지만, 옷은 얼추 비슷하게 입혔다. 한 남자가 건물 안을 헤매다가 우연히 목이 칼로 그어져 죽어있는 여자 시체를 발견한다. 그러다 다른 남자에게 붙잡혀 모두 파출소로 오게 되는데. 최초의 목격자는 기억상실증이라며 횡설수설하고, 경찰에서도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목격자를 붙잡아 온 남자가 수상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면 앞선 모든 이야기를 통째로 맥거핀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실 이 정도로 달라져 버리면 반전이라 부르기도 민망해지는데, 그냥 안면몰수하고 ‘< 헬레이져 >의 분위기를 흉내내 보고 싶었습니다..’ 하는 느낌이다. ‘뜬금없음’이라는 것은 나쁜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장르의 관점에서는 꽤 재미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점이 재미있어서 이 에피소드가 가장 좋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풋풋한 배우 김승우 가 출연하고 있다. 헬레이저 분위기 위에서 ‘습작’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영화의 만듦새가 그리 깔끔하지는 않다. 게다가 호러 영화팬이라면 좀 뻔히 보이는 민망한 차용(표절이라고까지 하기는 좀 그렇고)들이 보이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문득 돌이켜 궁금해지는 것은, 강제규 감독이 왜 ‘호러’라는 장르를 자신의 습작으로 선택했을까 하는 것이다. 이후로 이어지는 작품들에 단 한 편도 호러 영화가 없으니 한국 호러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나름대로의 결론은, 1. 제작비가 적게 든다. 2. 당시만 해도 이 장르를 업신여기는 분위기여서 거의 아무도 완성도를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심심하면 별 생각 없이 대여점에서 빌려다 보는 장르가 또 호러. 4. 게다가 ‘공포’는 서사와 표현이 극단적으로 어우러져야 하니 연출 연습으로는 더 없이 경제적인 장르. 라는 점이 그의 필모에 어쨌든 호러 영화 한 편을 올리도록 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제임스 카메론도 호러 장르에서 기본기를 다졌음(본인은 부정하지만 어쨌든 연습을 하긴 한 거니까)을 생각해보면 뭐. 그럴듯하지 않나? < 공포특급 >은 하지만 지금은 유명 영화감독이 된, 자신의 영화로 세계와 쇼부를 보겠다는 야심을 품은 한 청년이 ‘여기서부터 시작이다’라는 깃발을 꽂은 지점이라는 것에서 한 번쯤 볼만 하다. 삐용삐용B무비에서 소개하는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많은 모자란 부분 속에서 나름의 매력이 조금씩 풍기는 그런 영화다. 전미선 (지하철 살인) 김주영 (지하철 살인) 신새길 (국화) 최학락 (국화) 조준형 (13인의 피) 방은희 (13인의 피) 감독: 강제규 , 김희철 각본: 강제규 , 김희철 개봉극장: 비디오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