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우편배달부
- 감독
- 이형민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영웅재중, 한효주, 신구, 김창완, 주진모, 이두일, 박윤식, 장정희, 백소미, 김희윤, 김재록, 오정원, 이일섭, 서민지, 장주연, 김수완, 이수련, 구본석, 최옥순, 정이안, 김유연, 조선욱, 정재진, 김도식, 김상빈, 윤석현, 육미라, 이혜상, 엄민우, 이배국, 정지아, 김지영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를 보기 전, 주목한 이름은 감독 도이 노부히로가 아니라 시나리오를 쓴 사카모토 유지였다. 도이 노부히로도 뛰어난 감독이다. <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04)를 연출했던 도이 노부히로는 영화보다 드라마를 주로 만들었다. <이상의 결혼> <파랑새> <스트로베리 온 더 숏케이크> <운명의 사람> <잠자는 숲> <중쇄를 찍자> 등등. 화제를 모은 최근작으로는 2016년에 찍은, 연애와 결혼에 부담을 느끼는 남녀의 다정하고 은근한 사랑 이야기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가 있다.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정작 실천에는 힘들고 부담스러움을 느끼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과 현실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사카모토 유지는 일본 드라마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은 <도쿄 러브 스토리>(1991)의 각본을 쓴 작가다. 당시 월요일 밤 9시가 되면 거리에서 젊은 여성을 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였고, ‘게츠큐’라고 불리는 월요일 밤 9시의 후지드라마는 최고의 인기 드라마 산실이 되었다. 1967년생이니, <도쿄 러브 스토리>를 쓴 것이 25세. 자기 세대의 일과 사랑을 리얼하게 그려내 찬사를 받았고, 트렌디 드라마 열풍을 가져왔다. 그런데 정작 사카모토 유지는 밝게만 그려내는 TV 업계에 질렸다며 96년, 돌연 일을 그만둔다. 한동안 연극과 소설 등을 파고들던 사카모토는 2002년 다시 각본을 쓰며 돌아온다. <라스트 크리스마스> <우리들의 교과서>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최고의 이혼>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콰르텟> <아노네> 등 화제를 모은 작품이 즐비하다. 복귀 이후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은 화제작보다 문제작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사카모토가 다루는 드라마의 소재는 이지메, 아동학대, 싱글 마더, 직장내 괴롭힘 등등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어둠을 그대로 보여준다. 트렌디 드라마의 원점이 사카모토 유지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사카모토의 드라마는 마주보기 불편한 이야기를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대중의 눈앞에 들이민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둡기만 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어둠에 먹히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사카모토 유지가 쓴 드라마를 좋아했기에, 그가 보여주는 청춘의 사랑은 어떨지 궁금했다. 영화 작업은 오랜만이었다. 사카모토는 2004년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의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당시 일본 영화계의 흐름을 바꾼 역작으로 평가된다. 이후 <김미 해븐>(06)과 <서유기>(07)의 시나리오를 쓴 후 15년 만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로 영화에 돌아왔다. 도이 노부히로와는 이전에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와 <콰르텟>을 함께 작업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20대 초반 남녀의 사랑을 그린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지는 작은 사랑 이야기. 대단할 것 없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울림이 큰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스물한 살의 키누는 말한다. 토스트를 바닥에 떨어트리면, 늘 버터를 바른 면이 바닥에 닿는다고. 살면서 유별난 행운이 찾아온 적 없고, 누군가 관심 있게 쳐다봐 준 적도 없는 평범한 인생. 그래서 언제나 조용히 지내고, 흥분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무리 좋아하고, 열광해도 나에게 좋은 일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무기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인 대학생이다. 구글 스트리트 뷰를 보다가 자신이 찍힌 것을 보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한 흥분이 있을까 생각한다. 좋아하는 동급생은 자기를 무시하는 듯 관심 있는 듯 거리를 두며 지낸다. 키누도, 무기도 눈에 띄지 않는 유형이다. 그렇다고 아주 보통은 아니다. 키누와 무기는, 일본식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문화계다. 책, 영화, 만화, 음악, 전시 등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전철 막차를 놓치고, 우연히 같이 있게 된 그들은 공통점을 발견한다. 심야 카페에서 ‘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과 함께 있던 직장인 남녀는, 마니아로 불릴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면서도 오시이 마모루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마녀 배달부 키키>를 실사로 보고 좋아하는 부류다. 함께 있던 자리에서 뭐라 말할 수 없었던 키누와 무기는, 밖에서 ‘오시이 마모루’를 떠올리며 즐겁게 대화한다. 그들의 대화는, 만남은 이렇게 ‘문화’로 시작되고 흘러간다. 좋아하는 작가가 같고, 같은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마침 신고 있는 신발도 같은 브랜드다. 무기의 집에 간 키누는 마츠모토 타이요와 나난 키리코, 모치즈키 미네타로, 오오토모 가츠히로의 만화와 나가시마 유, 호무라 히로시, 이시이 신지, 오가와 요코의 소설이 꽂힌 책장을 보며 말한다. ‘거의 내 책장이잖아’라고. 같은 것을 보고 듣는다는 호감으로 시작된 사랑은 같은 것을 함께 경험하면서 점점 커져간다. 그러나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2020년에서 시작한다. 카페에 앉은 남녀가 음악을 듣는다. 이어폰을 한쪽씩 자신의 귀에 꽂고, 같이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뒤편에 앉은 키누가 말한다. 저건 음악을 듣는 게 아니야. 다른 자리에 앉은 무기가 또 말한다. 엔지니어는 섬세하게 양쪽에 다른 소리를 배치하여 함께 들으면 하나의 음악이 완성되는 거야. 키누와 무기의 옆에는 다른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미 헤어진 것이다. 관객은 두 사람이 이제는 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어떻게 동거를 하는지 보게 된다. 궁금하다. 이렇게 비슷한 취향을 가진 남녀는, 어떤 과정을 통해 헤어지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이 서로 다른 길을 택하게 한 것일까. 키누와 무기는 보통의 남녀다. 키누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하게 취업을 하려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프리터가 된다. 무기는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하지만 대가가 너무 작다. 자신의 꿈을 찾겠다는 무기의 말에, 니이가카에 사는 아버지는 이제 생활비를 주지 않겠다고 답한다. 동거를 시작한 키누와 무기는 알바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을 유지해간다. 하지만 알고 있다. 알바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러스트 일만으로 안정적인 미래는 없다는 것을.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현실에서 조금씩 지쳐가는 남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같은 경험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방식으로 온전하게 각자의 생활을 유지해야만 ‘동거’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별적인 삶 없이 함께 하는 삶은 가능하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무기는 영업직으로 취직한다. 키누는 회계 자격증을 따서 병원에서 일한다. 무기의 바람은 현상유지다. 키누와 함께 이대로 주욱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책도, 영화도, 게임도 이제는 즐길 여유가 없다. 봐도 재미가 없다. 일하는 틈틈이 핸드폰 게임을 하는 정도다. 키누는 책을 보고, 영화를 보기 위해 일한다. 되도록 좋아하는 것들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림도 못 그리고, 글도 못 쓰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가깝게 지내며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면서, 현상유지를 하고 싶지는 않다. ‘꽃다발 같은 사랑’ 이야기다. 빛나는 순간,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 하지만 그들의 매순간이 완벽해서 그런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키누가 좋아하는 미라 전시를 무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는 가스탱크이지만 무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키누는 함께 보러 간다. 모든 것이 똑같기 때문에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즐겁게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으니까.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사랑의 미묘한 순간들을 부드럽게, 정서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서서히 어긋나는 과정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사건과 충돌이 아니라 미묘하게 어색하거나 낯선 공기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키누는 엄청 좋아할 때도 막 흥분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 영화도 그렇다. 그렇기에 더욱 진하게 감정이 밀려든다. 관객이 그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영화 속 일상의 공간에 채워 넣는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사랑의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대신, 함께 하는 것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스쳐 지나가며 관객이 상상하게 만든다. 스스로 깨닫게 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서서히 잠겨드는 영화다. 키누와 무기가 사회의 완강한 벽에 부딪쳐 좌절할 때에도, 세상 안에서 키누가 자신의 ‘취향’을 붙잡고 종종걸음을 칠 때에도, 공감을 느끼며 바라보게 된다. 이건 멋진 사람들의 화려한 연애담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작고 흔들리는 순간들의 이야기다. 결코 끝나지 않을 인생의 이야기. 언제나 내 주변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그 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키누와 무기는 헤어지고도, 여전히 같은 취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서로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사카모토 유지는 67년생, 도이 노부히로는 63년생. 둘 다 50대 중반의 나이다. 이제 장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지금 20대의 이야기를 너무나 신선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연구조사취재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언제나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20대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언제나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만드는 세상은 언제나 경이로우니까. 여전히 젊음이 사카모토 유지에게는 있다. 사카모토 유지의 젊은 대사, 장면을 보는 것은 너무나 생생하고, 마음이 끌린다. 젊다. 젊음의 빛나는 순간이 한껏 나의 세상에 비치는 영화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다. 그래서 즐겁고, 또 슬프다. 그들의 사랑이 그랬듯이.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이소룡 세대에게 바치는 절절한 송가이다. 서자로 태어난 집안의 천덕꾸러기 ‘삼촌’은 그 시절의 무수한 사내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소룡을 지극히 흠모했고, ‘그가 간 모든 길을 뒤따르고 싶어 했’다. ‘삼촌’은 이소룡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몸을 단련한다. 심지어 이소룡은 마치 벼락처럼, 계시처럼 그의 앞에 나타나 삶의 향방을 몸소 손짓으로 가리키는데, 먼 남쪽 하늘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중국집 배달부인 ‘삼촌’은 홍콩으로 가는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같은 형태의, 같은 크기의 열망을 품은 무수한 이소룡을 꿈꾸는 자들과 함께.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와 워너브러더스는 그의 죽음으로 중단된 영화 < 사망유희 >를 완성하기 위해 이소룡 대역을 찾고 있었다. 영화 속 이소룡의 육체를 대신하는 것. 그건, 이소룡에게 매료된 수많은 아시아의 젊은 남자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배는 난파하고, 삼촌과 함께 꿈꿨던 자들은 홍콩 땅은 밟지도 못한 채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비록 소설 속 ‘삼촌’의 밀항선은 난파되었지만 우리는 이 꿈과 같은 일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 본명 김태정, 예명 당룡(이 이름은 < 맹룡과강 >에서 이소룡이 분했던 바로 그 역의 이름이기도 하다)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부산 출신의 사내는 마치 삼촌이 그러한 것처럼, 혹은 같은 꿈을 꿨던 저 무수한 젊은 남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연히 < 정무문 >을 보고 이소룡과 같은 배우가 되기를 꿈꾸며 그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기 위해 부단한 연마를 거듭하였다. 김태정은 다른 수많은 아시아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망유희>의 대역으로 발탁되었다(이 영화의 또 한 명의 이소룡 대역은 1980년대 홍콩영화의 스타 중 하나가 될 원표였다). <사망유희> 이후 다시 한번 이소룡의 필름 푸티지를 알뜰히 활용한 영화 <사망탑>에서 이소룡의 동생으로 분한 그는 장 클로드 반담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 특명 어벤저 No Retreat, No Surrender >에서 이소룡의 유령 역을 맡은 것을 끝으로 ‘세계’ 영화계를 떠났다.(이 ‘국제적’ 영화인이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 홍콩, 미국의 합작으로 이루어질 <야쿠자>라는 영화였다. 『무비스트』, 2009.6) 1970년대의 전세계적이고 지역적이었던 이소룡 붐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고 해도, 단 한번도 부산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나이가, 단 한마디의 중국어도 하지 못했던 자가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홍콩으로 건너가 비록 한순간이나마 꿈꾸었던 바로 그 신체가 되는 이 이야기에는 여전히 기묘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이 이야기가 지독한 행운처럼 보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기묘함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가 보여주는 밀항선에 올라타 난파된 저 무수한 꿈들의 강도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부산에서 홍콩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압축시켜버릴만큼 강렬하다. 한 시기 한국의, 아시아의 젊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이 열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런데 다시 말하건데 이들이 꿈꿨던 것은 배우가 아니라, 정확히 ‘이소룡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이소룡 영화에서 진정 매혹적인 것(혹은 모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신체 자체이자 그 몸의 운동이다. 매끈한 근육질의 몸, 그것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디테일은 끊임없는 복기와 수련으로 가능해질 터, 이소룡 영화가 상영되는 동시상영관이야말로 이 모든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곳은 아침에 극장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똑같은 영화를 반복 학습하고 저녁에 되어서야 나왔던 진정 학습의 장이라 할만한 곳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이소룡이라는 이 중화권 최초의 국제 스타가 남긴 단 네 편의 영화를 어떤 일관성 속에서 포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 이소룡 자신의 제작사인 콩코드 픽쳐스, 할리우드의 워너브러더스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관여한 그의 영화는 초국적 시장에 대한 고려 위에서 만들어졌으며 크리스 베리의 언급처럼 “인종적이며 민족적인 동맹의 광범위함”을 특징으로 하는 이 영화들을 유일하게 하나의 일관성으로 묶고 있는 것은 이소룡이라는 강력한 페르소나이다. 공장주와 싸우는 이주 노동자(< 당산대형 >), 스승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에 맞서는 수제자(<정무문>), 로마에 도착한 동양인 촌뜨기(<맹룡과강>), 국제 첩보조직과 협력하는 소림사 수제자(< 용쟁호투 >). 인종과 민족과 계급에 관한 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이소룡이라는 유려하고 아크로바틱한 근육질의 신체를 가로지른다. 게다가 웃통을 벗고 맨몸의 상체를 드러낸 채 적과 맞서는 이 몸은 그 이전의 무협영화가 견지하고 있던 문화적 의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즉, 이 맨몸은 그 어떤 의장 없이, 오직 아시안, 젊음, 남성이라는 기호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럼으로 이 몸은 기술과 신체의 연마를 통해 ‘무한히’ 모방 가능한 것이 된다. “로저 무어가 나오는 <007> 영화를 보면 우리가 집에 가서 흉내를 내겠어요? 그건 상상의 나라인 거고. 근데 이소룡이 발을 차는 걸 보면 내가 운동하면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었던 거지.” 1) 김태정의 이 언급은 저 모방 가능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보여준다. 이소룡은 당연한 말이지만 동양인 남성이다. 그는 ‘내가 운동하며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은 맨몸의 격투 혹은 단순하지만 숙련이 필요한 오래된 기구(이를테면 쌍절곤)을 쓴다. 이소룡과 제임스 본드. 이는 단지 유행하는 액션 장르영화의 두 히어로를 불러온 것 이상으로 꽤나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007> 시리즈에서 당신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시리즈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당대 최고의 미녀들이 분하는 본드걸과 매번 새롭게 선보이는 최첨단 기구들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유지하는 매혹의 기본값이 아닐까. 본드걸을 동반한 이 백인 남성이 헤테로섹슈얼한 남성성을 과시하며 최첨단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면, 이소룡(과 한국, 홍콩, 대만, 태국, 필리핀 등등에서 유행했던 ‘권격영화’)은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럼으로 이 동성사회적(homosocial)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젊은 남성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소룡 영화와 권격영화의 몸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단련된 신체를 통해서 발현된다. 요컨대, 이소룡(과 권격영화의 주인공들)은 영국 첩보원이 구사하는 세계 전략과 테크놀로지와 신사다움과 지능이 아닌 맨몸과 오래된 기구를 이용하여 다수를 상대한다. 요절한 이소룡을 둘러싼 저 열망들, 이 지역 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공통의 감각이 발생시킨 트랜스내셔널한 아시아적 동일성이라 할만한 것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적 열망이라고 할만한 저 열망들은 백인 남성에 대한 동양남성의 오랜 좌절과 이 좌절에 대한 상상적 극복, 남성성의 재활성화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 패권하의 아시아 남성들, 계급적 하위자들이 미국에서 온 강한 동양인 이소룡에게 매혹당한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리라. 동시에 최첨단 기구가 장착된 신체와 수련을 거친 맨몸의 능력이라는 이 차이야말로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 제1세계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부과된 역할 분담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소룡 붐이 시작된 1973년, 한국은 유신 체제에 접어들었고 그해 8월 경제기획원은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1972~1981)」을 발표하며 경공업 중심 산업에서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알렸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으로 끝나게 될 이 개발근대화 하이모던 철권통치 기간이 홍콩-한국-대만의 권격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와 겹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 맨몸으로 상경한 산업 노동자(혹은 예비 인력들)들은 맨몸의 저 싸우는 영화들 속에서야말로 진정 신체의 어떤 이상(idea)을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 1) 김태정 인터뷰, 『무비스트』, 2009.6.(http://www.movist.com/star3d/read.asp?type=32&id=16400)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198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적인 개성은, 각자의 대사와 (완성형의) 자기 플롯이 있는 인물들이 무려 열다섯 명에 달한다는 것이고, 모두 뚜렷하게 구별이 가면서 그 필요를 인정할 만큼 생생하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세 청년을 중심으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도시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좌절과 상실을 주로 주목하지만, 그들이 만나는 여러 다양한 개성의 이웃들 또한 보기만큼 가볍거나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방향이 잘 설정되어 있고, 그 인물들이 틀림없는 순간과 장소에 정확하게 등장했다가 퇴장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성취인 것이다. 관심이 가고 주목이 되는 수많은 인물들을 스크린 위에 쏟아놓은 뒤, 교통정리를 잘 해가면서 각자가 내려야 할 도착지로 능숙하게 데리고 가는 이야기는 그것이 아무리 오래 전 만들어진 영화의 것이라 해도 매번 놀랍고 감탄스럽다. 세 청년들의 쓰라린 정착 초기 모습을 발랄하게 스케치한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면, 철가방을 든 젊은 얼굴의 안성기 가 등장한다. 덕배라는 이름의 어리숙한 이 중국집 배달부는 이후 유지인 이 연기하는 상류층 여성인 명희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로맨스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들의 플롯은 덕배로 하여금 결국 권투선수가 되어 이 영화의 유명한 마지막 대사(‘그동안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줄곧 맞아온 것처럼 생각되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맞아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를 내뱉게 하도록 작동한다. 그러니까 다들 엇비슷한 러닝타임을 가져가고 있는 터라, 딱히 누구의 이야기라 정리하기에 애매한 이들 청년의 플롯 중에서도, 굳이 ‘주인공’이라고 부를 만한 캐릭터를 꼽자면, 당시 가장 인지도 있는 배우( 안성기 )가 연기한 이 ‘덕배’라는 캐릭터일 것이다. 즉, 사나운 개가 핥고 있는 빈 그릇을 가져가지 못해 쩔쩔 매다 주인에게 비웃음이나 당하던 중국집 배달부의 앞모습이 이 영화의 오프닝이고, ‘이젠 맞아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는 보이스-오버와 함께 벌떡 일어나 주먹을 날리는 권투선수의 뒷모습이 엔딩이라면, 이 영화가 결국 ‘덕배’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이야기라 해도 무리가 없는 해석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종착점이었고, 그 마지막 보이스-오버가 이 영화를 정리해내는 한 줄 테마였다는 사실을 적용시켜보면, ‘덕배’야말로 수많은 인물들의 플롯이 씨줄날줄로 엮이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덕배가 권투선수의 마음을 가지고 영화 밖으로 퇴장하게 되기까지, 그를 조력했던 다른 두 청년의 플롯을 하나씩 짚어보자. 이영호 가 연기한 이발소 직원 ‘춘식’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미스 유( 김보연 )를 좋아하는데, 그녀는 단골손님이자 땅투기로 벼락부자가 된 김회장의 노골적인 추파를 받는다. 미스 유는 춘식에 대한 애정이 없진 않지만 줄줄이 딸린 동생들과 아픈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춘식과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다. 유럽의 복지국가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하며 자신의 꿈을 부끄럽게 고백하는 송전탑 아래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사무치게 아름다운 씬이 될 자격이 있다. 결국 이들의 플롯은 춘식이 김회장을 살인미수하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돌진하는데, 버림받은 아이처럼 자주 울컥하던 춘식의 영화 속 마지막 얼굴이 카메라를 향해 죽을 듯 울부짖는 클로즈업이라는 사실을 적용시켜보면, 온통 공사판인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이나 높은 언덕에서 자주 만나 속마음을 주고받던 이 두 사람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심장이나 다름없다는 생각과 마침내 만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성찬 이 연기한 ‘길남’은 여관에서 일하며 근처 미용실 직원 진옥과 연애하는 청년이다. 그의 꿈은 언젠가 평등하게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호텔을 여는 것이며, 아예 어리숙하거나 자주 울컥하는 다른 두 친구와는 달리, 길남은 세속적이면서도 대체로 긍정적이고 매사에 웃고 다니며 가끔 실없다. 그의 플롯은, 자신이 결혼상대로 생각해 맡겨둔 돈을 진옥이 들고 도망치자 망연자실하고 결국 군대에 끌려가는 것이다. 여기서 ‘끌려간다’는 표현은, 영장이 나왔다는 사실을 모든 희망이 사라졌고 결국 다 끝나버렸다는 듯 오열하며 말하는 장면이 숨기고 있는 감정에서 짐작가능하다. 춘식은 감옥에 갔고, 길남은 입대했으며 덕배는 권투선수가 되었다. 아니, 춘식이 감옥에 갔고, 길남이 군대에 끌려갔기 때문에 덕배가 권투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들이 스치듯 만나고 헤어졌거나 온 마음을 바쳐 사랑하고 미워했던 이웃들도 있었기에 더욱 더 그는 권투선수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영화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 안의 인물들도 모두 퇴장한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가는 2018년의 지금, 그들은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을까. 그 사람들은 어떤 현재를 보내고 있으며,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무엇보다, 아직까지 서로 만나는 친구사이일까. < 바람 불어 좋은 날 >은 볼 때마다 그런 궁금증들을 남기는 영화로 매년 나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