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하이
- 감독
- 이응복
- 제작년도
- 2011
- 출연
- 김수현, 배수지, 택연, 은정, 아이유, 장우영, 윤영아, 전아민, 정민주, 한지후, 박진상, 김보름, 배용준, 엄기준, 박진영, 이병준, 이윤지, 이윤미, 백원길, 안길강, 안선영, 안서현, 이혜숙, 최일화, 박혁권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쿠팡플레이가 야심차게 제작한 < 안나 >(이주영, 2022)는 공개되자마자 호평을 받았다. 빠른 호흡의 서사 전개, 단독 주연으로 조용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배수지의 강렬한 연기, 계급성을 드러내는 미술과 의상은 구독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갑작스럽게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상실한 사람들의 시점을 밀도 있게 그려낸 데뷔작 < 싱글라이더 >(2017)의 이주영 감독을 연출로 선택한 것이 적중한 듯 했다. 그러나 공개된 지 얼마 안 돼 감독을 비롯한 주요 창작자들이 <안나> 6부작(러닝타임 304분)의 크레디트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이례적인 요구를 했다. 감독은 쿠팡플레이가 최종 편집권을 약탈해 갔다고 주장했다. 쿠팡플레이는 감독의 8부작 판본(러닝타임 429분)에 불만이 있었고 100분에 가까운 분량을 감독의 동의 없이 편집해 공개했다. 이주영 감독은 <씨네21>(배동미, 2022.8.11)에서 “(쿠팡 플레이는) 뭐든 돈으로 사면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인터뷰했다. 2021년 서비스를 시작한 쿠팡플레이는 국내 OTT 중에서도 후발주자이다. 모회사인 쿠팡과 쿠팡플레이의 관계는 아마존과 아마존 프라임이 갖는 사업전략과 유사하다. 영화 스튜디오나 비디오 유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다른 플랫폼과 차이가 있다. 쿠팡은 아마존처럼 온갖 소비재를 판매하는 인터넷 유통 플랫폼이고, 콘텐츠 구독권과 쇼핑 회원멤버십을 결합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충분치 않고 주로 스포츠 중계와 예능 콘텐츠에 집중하던 쿠팡플레이는 <안나> 같은 서사와 영상미학 모두에 있어 완성도 있는 화제작을 제공해 기존 OTT의 영상문법에 익숙한 구독자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 같다. 그러나 쿠팡플레이는 자신들이 투자하고 배급하기 때문에 창작의 최종 권한을 살 수 있다고 믿었고, 이는 돈과 사회적 지위가 서로를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가 된 동시대 한국 사회를 비판한 <안나>의 메시지에 완전히 반하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영상창작물을 포함해 성격이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상품’으로서 경계 없이 유통되고 판매되는 시대에 창작권을 질문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영상연출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결국 협상이 이뤄지고 <안나> 감독판이 함께 공개되었다. 그리고 구독자들은 <안나>의 두 가지 판본, 쿠팡플레이의 6부작과 감독의 8부작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안나>는 정밀아 소설가의 <친밀한 이방인>(2017)을 각색한 작품이기에 비교할 대상, 즉 콘텐츠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언론은 추가된 2부작이 만든 차이를 논평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두 버전이 “대동소이”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한경> 김지원, 2022.8.14). 서사의 줄기는 크게 다르지 않고 어차피 이유미를 연기한 배수지의 스타성에 기댄 시리즈이기 때문에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쿠팡 플레이의 6부작이 빠른 전개로 몰입을 높여준 반면, 감독의 8부작은 장황한 인물 배경 및 심리 묘사로 늘어진다는 논평도 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서로 다른 두 판본이 공개되면서 벌어진 논란들은 OTT 플랫폼에서의 관람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고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시리즈는 한 번에 몰아보기를 유도하거나 구독유지를 독려하기 위해 첫 화에서 자극적이고 속도감 있고 선명하게 캐릭터와 서사를 설명하는 것을 선호한다. 다시 말하면, 복잡하고 모호한 심리 묘사나 정보성 서사와 상관없이 뉘앙스를 만들어 주는 장면들은 특히 시리즈 초반에서는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안나> 감독판과 쿠팡플레이 판본의 차이도 비슷한 곳에서 발생한다. 유미의 선택과 욕망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면들, 그리고 출신대학, 사회적 지위, 경제적 자산 등에 따라 나눠진 계층사회와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적 묘사들이 많이 삭제되었다. 초반 에피소드에 배치되어 있던 유미의 열망과 파국을 암시하는 ‘라 에스메랄다’의 발레 무대, 고등학생 시절 어린 유미의 감정을 이용하고 배신한 남교사의 비겁한 행태,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시작했던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과정, 자신의 거짓말로 모든 것을 잃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와중에 일어나는 폭력(고시원 총무의 성추행)과 차별(현주 가족의 무시)의 장면 등이 삭제되었다. 유미의 ‘허영’은 어떤가? 분명 유미는 자기 욕망을 드러내고 충족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어 남다르다. 피아노, 발레, 그림 등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유미는 부모의 경제력을 볼 때 지나친 욕심으로 보인다. 하지만 왜 어떤 아이의 꿈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이 되는 반면, 다른 아이의 꿈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허영이 되는가. 욕망과 허영 사이의 선은 그렇게 분명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특히 허영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최대 악행으로 그려진 역사를 고려해볼 때 더욱 그 선은 분명치 않다. 감독판과 달리 쿠팡플레이 6부작에서는 이 모호한 경계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남교사와의 연애도 마찬가지다. 쿠팡플레이 6부작만 보면 유미는 교사와 연애한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에 가득 찬 아이로만 묘사된다. 그러나 감독판에서는 유미의 감정이 어설프긴 하지만 진심이었을 수 있고 오히려 그 진심을 남교사가 이용한 것이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남교사는 유미와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서사를 구성한다. 상호적이라고 믿었던 그녀의 어설픈 사랑의 감정은 여자아이의 간교한 유혹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유미는 과잉처벌로 학교에서 쫓겨난다. 첫 시작에서 유미는 타인의 거짓말로 뿌리 뽑히고 낙인찍힌다. 삭제된 장면 중 갤러리에서 일하던 유미가 인격적 모멸을 느끼고 갤러리 창밖에 내리는 눈을 공허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감독판과 쿠팡플레이 판본의 차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서사적 정보와는 상관없다. 계급적 취향을 전시하는 하얗고 깔끔한 갤러리 실내,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에도 휴가를 받지 못하는 유미의 현실, 갤러리 오너인 현주(정은채) 가족이 남긴 와인을 마시며 즐거워하는 동료 직원들에게 느끼는 혐오감, 큰 유리창 밖으로 아름답게 떨어지는 눈은 아이러니를 만든다. 이 장면은 대사 한 줄 없이 현주의 여권과 증빙서류를 훔쳐 도망치려는 유미의 결심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든다. 부당함과 기만에도 묵묵히 일해 온 유미는 자신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으르고 부도덕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현주 가족의 공격에 자기 정체성과 존재가 텅 비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유미는 더 이상 자신을 알 수 없게 되며 자기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힘과 의지가 사라진다. 이 장면은 시청각적인 연출을 통해 관람자들이 유미의 복잡한 심정과 존재의 상태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결정적 장면이다. 또한 영상연출을 하는 감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증명한 장면이기도 하다. 쿠팡플레이 판본에서 정작 감독과 원작이 의도한 질문은 사라진다. 사실 유미뿐 아니라 대다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금수저로 태어난 현주, 정치인 남편, 선배 교수와 학장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인생이다. 거짓말을 한다 해도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체계 내에서 그것을 진실처럼 믿게 만들 수 있다. 그들은 자기의 속물적이고 악랄한 속성을 뻔뻔하게 드러내도 피해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는다. 반면 감독판에서 묘사된 유미는 대학 불합격이라는 한번의 ‘실패’를 겪은 후 계속 눈치를 봐야 하는 삶을 산다. 그에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선을 넘을 수 없다. 오히려 안나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유미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성찰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유미가 안나로 살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사기를 칠 때 정말로 노력하고 좋은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유미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유학을 잘 보내고 대학원에서 좋은 강의를 했다는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위, 명문대, 명품 의상이다. 어쩌면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사회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학력과 입고 있는 옷, 머릿결 같은 외양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원작인 <친밀한 이방인>의 정한아 작가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드라마는 원작보다 유미의 회복능력과 주체성을 강조한다. 유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있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속죄하려 시도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결말에서 유미는 자신의 거짓말로 죽음에 이른 현주의 아이를 거둔다. 추운 캐나다 어딘가에서 유미는 이름 없는 사람으로 그래도 살아남으며 그제야 자신을 되찾는다. 6부작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지우며 창작권을 되찾아 온 이주영 감독과 제잔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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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하길종은 신화화된 감독이라고.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하길종은 그의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감독이기에 이 말은 틀렸고, (그의 영화가 아니라) 하길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양산되면서 신화화 되었다는 점에서 이 말은 맞다. 문제는 후자에 있다. 하길종은 신화화하기 ‘딱’ 좋은 인물이다. (‘딴따라’라며 영화계를 천시하던 시기에) 서울대라는 최고 학부를 졸업했고, (누구도 제대로 된 영화 공부를 하지 않던 그때) 미국으로 건너가 명문 UCLA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했으며, (너무도 엄혹한 현대사의 중심에서) 그 어떤 영화인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다가,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일찍 세상을 떠나 버렸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다. ‘4.19세대’의 내로라하는 이들이, 특히 문화 분야의 이름난 이들이 하길종의 친구들이었다. 하길종 사후에도 신화화가 멈추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하길종을 둘러싼 신화가 굳건히 유지되면서 정작 그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갈수록 드물어졌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하길종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의 영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길종의 불행은 여기에 있다. 2013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간한 『한국영화 100선』에서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세 영화가 있었다. 김기영의 <하녀>(1960), 유현목의 <오발탄>(1961), 그리고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 등이 그것인데, 놀라운 것은 언제나 표현주의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하녀>, ‘한국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여겨지는 <오발탄>과 함께 <바보들의 행진>이 공동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분명 예상치 못한 결과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이런 질문을 해보자. 한국영화사에서 <바보들의 행진>만큼 한 시대를 온전히 담고 있거나 그 시대를 대변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엔딩 신인 용산역에서의 키스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현실적인 시간으로 1970년대를 살아갔던 이들에게 이 장면은 결코 잊히지 않는 장면(일 것)이다. 유신의 억압에 맞서 고뇌하고 좌절하던 청춘이 선택한 것은 자살과 군 입대였다. 낭만주의자로 살고 싶었던 병태는 친구 영철이 자살하자 역설적이게도 입대를 한다. 현실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입대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도피를 늦게 알게 된 영자가 달려와 기차에 매달린다. 둘의 그 슬픈 키스는 1970년대 청춘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때 구슬프게 들려오는 “날이 갈수록”을 더 설명해 무엇하랴? 그들에게 “고래사냥”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1970년대에 이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암울했을까? 역으로 말해, 이 영화가 존재함으로써 1970년대에도 한국영화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고, 사회문화적으로도 그 시대를 평가하고 회고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 있게 말하지만, 하길종은 이 영화 한 편만으로도 충분히 평가 받아야 할 감독이다. (사진1)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 엔딩 장면 ‘하길종 신화’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것이 김지하와의 인연이다. 중동고 졸업 앨범에는 하길종과 김지하가 나란히 등장한다. 훗날 함께 서울대 인문대에 합격해 ‘인문대 거지그룹’ 멤버가 되어 온갖 기행을 일삼은 두 사람은 그러나 가는 길이 달랐다. 4.19를 겪은 후 김지하는 민중 시인의 길을 걸었고 하길종은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가는 길이 달랐지만, 아니, 달랐기 때문에 둘은 꾸준히 교류할 수 있었다. 하길종이 귀국하자마자, 그리고 죽을 때까지 연출하려고 했던 영화가 <태인전쟁>이었던 것도 김지하와의 교류 덕분이다. 김지하가 공부하던 동학사상을 하길종은 영화로 만들어 세계 영화계에 한국영화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하길종이 오히려 한국적이면서 우주적인 소재를 발굴해 세계 영화계로 진출하려 노력한 것은 김지하와의 관계를 떼면 설명하기 쉽지 않다. (사진2) 중동고 졸업 앨범의 하길종 1964년, 하길종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 예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시절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에는 젊고 자신만만한 그의 모습이 있다. 우리 나이로 스물넷의 이 청년은 금문교 앞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잔뜩 멋을 부리고 앉아 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기에 그의 기대는 그만큼 컸을 것이다. 세계 최강국이면서 영화에 관한 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 아닌가. 미국에 온 지 일 년만에 마침내 UCLA 영화과 대학원에 입학했고, 2년 반만에 다큐멘터리에 관한 석사 논문을 써 졸업을 했다. 그 사이 전혜린의 동생, 전채린과 결혼해 득남했다. 이 시기 하길종은 친구 곽광수에게 편지를 쓰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꾸준히 했다. 결국 그가 설 곳은 한국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사진3) 유학 시절 금문교 앞에서 (사진4) 유학 시절 영화를 촬영하며 1969년, 하길종은 문제의 실험영화 <병사의 제전>(1969)을 만들었다. 영화사 MGM이 전미 영화과 학생 가운데 4명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하길종이 선발되어 후원을 받은 것이다. 귀국 후 몇 번 상영되다가 필름이 분실된 것으로 알려진 이 영화는 오랜 세월이 지난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하길종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발굴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사운드는 멸실되어 이미지로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얼마나 고뇌 깊은 영화인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하길종은 1960년대 중후반의 혼란스런 미국에서 받은 영향을 고스란히 실험적인 영화 형식 안에 담아냈다. 타나토스적 욕망과 에로스적 욕망, 문명과 인간, 삶과 죽음 등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장면을 알레고리화해 예술적 가능성을 실험했다. 당시 한국영화계에서는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할 강한 실험성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실험을 귀국 후 충무로에서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순진함이 차라리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이다. (사진5) <병사의 제전>(1969)의 한 장면 1970년 가을, 6년의 유학을 마친 하길종은 마침내 귀국했다. <태인전쟁>을 영화화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이효석의 원작 <화분>(1972)을 연출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하길종이 충무로에서 대중적인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완성한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고 비평에서도 표절 논쟁에 휘말리고 말았다.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지나 서서히 긴 침체기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 실험성이 강한 ‘정치적’ 영화를 당시 대중들은 수용하지 못했고, 보수적인 영화상과 비평계 역시 받아들이지 못했다. 196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 가령 이만희의 <휴일>(1968), 김수용의 <안개>(1967), 이성구의 <장군의 수염>(1968) 등의 작품보다 더 강한 정치적 실험을 영화 속에 녹여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파쇼적인 한국 사회에서, 당시 세계영화사적 흐름인 정치적 모더니즘으로 정면승부를 펼치려고 했으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로 상징되는 파란 집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추한 욕망을 전시하는 영화를 통해 하길종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적시했지만, 동시에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깨달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분>이 한국영화사상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 가운데 한 편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6) <화분>(하길종, 1972)의 한 장면 차기작 <수절>(1974)은 화천공사에서 제작했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하길종의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충무로 주류 영화사에서 제작했고, 화천공사에서 연출한 4편 가운데 흥행에 실패한 단 하나의 영화라는 말이다.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하길종의 연출작 7편 가운데 원작이 없는 유일한 영화이기도 하다. <화분>의 실패 이후 하길종은 현대의 푸른 집을 재현하는 대신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음에도 그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여전했다. 특정 마을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군부 독재의 폭정. 특이하게도 <수절>은 공포영화의 컨벤션을 빌려와 억울하게 죽은 아내와 딸의 한을 남편이 복수하는 내용이지만, 1970년대 중반이라는, 대사 하나, 장면 하나 검열하던 상황에서 온전히 통과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특히 강간 장면이 많이 잘려 나갔다. 검열에서 20분 정도 잘린 영화를 본 하길종은 “눈알과 입이 없고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간 나의 모습”이라고 당시 심정을 적었다. 데뷔 후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고 검열에서도 상처를 받은 하길종. 미국에서 꿈꾸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이었다. (사진7) <수절>(하길종, 1974) 촬영 현장에서 영화는 산업이다. 이 말은 투자한 돈은 회수할 정도의 흥행을 기록해야 한다는 뜻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하길종은 이번에는 흥행 영화를 만들었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소설가 최인호가 쓴 에피소드식 콩트 『바보들의 행진』을 하길종 식으로 각색해 완성한 것. 이후 최인호와 하길종은 깊은 인연을 맺어 <속 별들의 고향>(1978), <병태와 영자>(1979) 등을 함께 했는데, 이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하길종은 최인호와 작업할 때 자신만의 각인은 약해졌지만 흥행에서는 성공을 거두는 아이러니를 겪어야 했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하길종은 원작에 없는 영철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보수화된 당시 사회를 상징하는 캐릭터와 장면들을 넣었으며, 송창식과 강근식의 음악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1970년대 한국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아주머니들인 ‘고무신’ 관객에서 대학생인 ‘하이힐’ 관객으로 관객층이 변화하는 흐름을 만들어내었고, 다시 이것은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영화로 명명되었다. 단언컨대 1970년대의 영화가 탄생했다. (사진8)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을 개봉한 국도극장 풍경 <바보들의 행진>의 흥행 이후 하길종은 이장호, 김호선, 변인식 등과 함께 ‘영상시대’라는 동인을 만들었다. 이 동인을 통해 새로운 신인을 발굴하고 감독을 육성하면서 새로운 흐름, 즉 뉴 웨이브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영상시대 결성 이후 만든 <여자를 찾습니다>(1976)는 안타깝게도 다시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냉정하게 말하면, 김주영의 원작은 재미있었지만 영화화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숙집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남녀 갈등을 그린 원작은 영화보다는 TV 드라마로 각색되었을 때 그 묘미가 살아날 것 같았지만, 하길종은 하재영을 다시 한 번 주연으로 삼아 청춘의 질주를 그려냈다. 눈에 띄는 감각적인 영상은 곳곳에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영화가 살아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가 지향하는 지점이 시대와도 맞지 많았다. 도시의 타락과 대비되는 시골의 순수함으로 귀환한다는 내용은 뭔가 어색했고, <바보들의 행진>과도 한참이나 먼 거리에 있었다. (사진9) <여자를 찾습니다>(하길종, 1976)의 한 장면 <한네의 승천>(1977)은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이다. 하길종이 가장 좋아하던 하명중 주연, 유영길 촬영의 마지막 영화였고, 영상시대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하길종과 영상시대는 침체하던 한국영화를 갱신해 세계영화계로 나아갈 방법을 모색했는데, 그 하나가 한국적이면서 우주적인 소재를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하길종의 말을 빌리면, “전생과 내세와 현세가 한 지평 속에서 공존하는 윤회사상을 2대에 걸친 부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통하여 향토색 짙은 영상으로 그려 보려”고 한 것으로, 실제 설악산과 공주의 깊은 산에서 촬영한 영화에는 탈춤, 산신제, 남사당, 걸립 등이 등장한다. 윤회 사상을 그리기 위해 여배우 전영선이 1인 3역을 하고 흑백과 칼라가 교차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하길종의 의도대로, 한국의 비극이지만 한 여자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대결하는 서구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개봉도 하지 못한 채 영화는 묻히고 말았다. (사진10) <한네의 승천>(하길종, 1977)의 포스터 다시 하길종은 흥행 영화로 눈을 돌렸다. 대마초 파동으로 감독 자격이 정지되었던 이장호를 대신해 그는 <속 별들의 고향>(1978)을 연출했다. 하길종에게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장호의 뒤통수를 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만의 하나 흥행에 실패하면 그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배수지진. 이런 각오로 만든 <속 별들의 고향>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멜로드라마 가운데 손꼽을 만한 영화가 되었다. <별들의 고향>의 속편이지만 호스티스물이 아니라 낭만적이면서 병폐적인 사랑이야기를 아름답고 쓸쓸하게 재현한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볼거리를 남겼고, 또 어떻게 보면 하길종이 좋아하던 서구 감독에게 오마주를 바치면서 지적 이야깃거리를 던졌으며, 한편으로는 병으로 죽어가는 낭만주의자를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그의 자의식을 영화 속에 심어 놓았다. 어떻게 보더라도 주인공 문오는 감독 하길종과 겹친다. 잠깐 카메오로 등장해 한없이 초조해하던 하길종의 모습은 현실의 그가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이다. (사진11) <속 별들의 고향>(하길종, 1978) 촬영장에서 <병태와 영자>(1979)가 개봉해서 한창 흥행을 할 때 하길종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유작이 되어버린 것. 하길종에게 <병태와 영자>가 유작인 것은 아마 치욕일 것이다. 이 작품은 <바보들의 행진>의 속편이다. 그러니까 하길종은 <속 별들의 고향>도 속편이었고 <병태와 영자>도 속편이었다. 자신을 ‘속편 감독’이라고 자위하면서, <병태와 영자>의 흥행을 보며 이제는 진정 하고 싶은 영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니 하길종에게 <병태와 영자>는 참으로 할 말이 많은 영화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병태와 영자>는 그리 좋은 영화는 아니다. 속편의 연결성도 떨어지고 극적 재미도 덜하다. 그럼에도 가난한 청년이 시대의 권위와 부에 맞서 싸워나가는 에너지는 어떤 영화보다도 강하게 살아있다. 마이크 니콜스의 <졸업>(1967)을 연상시키는 엔딩이 더욱 그렇다. 가진 자가 자동차로 거리를 달릴 때 병태는 뛰어서 간다. 이때 감독은 둘을 교차로 편집하는데 기묘하게도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동차를 타고 가는 이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길종은 젊음의 싱그러움, 그 무한한 힘이 이기도록 설정해 놓았다. 미처 마흔도 되지 않은 하길종이 그 시절 젊었다는 것을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사진12) <병태와 영자>(하길종, 1979) 포스터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한다. 하길종은 영화감독만 한 것이 아니다. 귀국해 국내에서 활동한 시간 내내 그는 감독생활을 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감독이 평론을 겸한다는 것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지만, 하길종은 미국에서 배운 이론과 새로운 영화 사조를 국내에 빠르게 전파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엑소시소트』, 『스타워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등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중앙대, 서라벌예대 등에서 강의를 하다 서울예대에서 교수생활을 한 것도 인재를 양성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생전 하길종의 이 모든 활동은 한국영화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표 아래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 목표를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갰으며 무엇보다 타협하지 않았다. 하길종은 동료 감독의 영화를 매우 사실적이고 직설적으로 평하는 것으로 유명해 여러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다. 같은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신랄하게 평가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하길종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진13) 유현목 감독과 (사진14) 서울예대 제자들과 한국영화사의 숱한 감독들은 시대와 싸워야만 했다. 나운규의 일제강점기, 유현목과 임권택의 반공영화 시기를 보면 시대가 영화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하길종도 마찬가지이다. 하길종을 평가하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그가 충무로에서 활동한 시기이다. 박정희의 유신이라는 폭압적인 정치 체제 시기에 하길종이 활동했다. 더 세밀히 말하면, 데뷔작 <화분>을 만든 1972년은 유신이 시작된 때이고, 하길종이 세상을 떠난 1979년은 유신이 종말을 고한 때이다. 그러니까 하길종은 가장 가혹한 시기에 바로 이 땅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8년 동안 하길종은 영화감독으로서, 영화평론가로서, 영화학과 교수로서, 번역가로서, 영화운동가로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은 여기서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서른여덟이라는, 너무도 아까운 나이에 저세상 사람이 되어 버린 그. 지금 그는 경기도 광주의 한 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이 땅에서는 매우 드물게, 사각형의 돌로 된 그의 무덤에는 생전 그의 필체로 각인된 “河吉鐘”이라는 이름과 생몰연도만 기록되어 있다. (사진 15) 하길종의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