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의 시대
- 감독
- 류훈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박영서, 이한솔, 김희창, 김현태, 이주연, 박윤호, 이정은, 윤선희, 배용근, 홍서백, 김현중, 이윤석, 노재환
1964~1985년 사이, 특히 6~70년대에 고속도로 건설을 한답시고, 브라질 군부독재정권은 아마존 유역에 살고 있던 선주민(Indigenous People)인 와이미리-아트로아리(Waimiri-Atroari) 사람들을 내쫓고 2천 명 이상 학살했다. 심지어 그들은 축제 중에 헬기에서 대량 투하되는 네이팜탄으로 죽기도 했다. 한편, 브라질의 교육운동가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가 노동자•농민을 대상으로 1950~60년대에 펼친 문자 해독 교육 운동의 불씨는 이후에도 꺼지지 않았다. 프레이리는 “역사적 순간에 문해 교육과 민중의 정치적 의식화 사이에 긴밀한 끈을 묶는”일이 문해 교육이라며, 이 운동이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술회한 바 있다. 계속 문해 운동을 이어가던 활동가들은 선주민들이 교육 중에 작성한 글과 그림, 촬영한 사진을 아카이브로 간직했다. 아나 바스(Ana Vaz)는 1964년에서 1985년 사이의 아카이브 자료 3천여 점을 디지털 캡처하여, 선주민들이 부재하는 브라질의 현재 풍경과 포개어 프레임에 담는다. 아나 바스의 전작 <산을 자세히 응시하라, Olhe bem as montanhas>(2018)는 EXiS(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2020년에 나온 신작 <왜?>는, 식민지에 도착한 선박의 뱃고동을 연상케 하는 모종의 악기 소리, 땅 표면을 질질 끌다 못해 파헤치려 하고 하늘 언저리까지 샅샅이 훑는 듯한 노이즈 음악으로 시작한다. 이 삽입곡의 제목은 <근원적인 밤, A Noite Original>(2004), 브라질 구체음악을 대표하는 길례르미 바스(Guilherme Vaz)가 작곡했다. 2018년 타계한 길례르미 바스는 아나 바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1968년 리우데자네이루현대미술관에 실험예술 분과를 창설하고 1970년대 초반 독일 쾰른 피드백 스튜디오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길례르미는, 라틴아메리카로 돌아와 요셉 보이스 등이 포진한 당대 유럽 전위예술의 식민성에 이론과 실천으로 맞서고자 했다. 하여 브라질과 볼리비아 등지의 조로-팡간제(Zoró-Panganjej), 가비오-이콜렘(Gaviao-Ykolem), 아라라스(Araras) 등 여러 선주민 공동체와 시각 예술 작품과 음악을 공동 창작하고, 악기를 함께 만들었다. 또, 길례르미 바스는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Nelson Pereira Dos Santos)와 줄리오 브레사네(Julio Bressane) 등 브라질 ‘시네마 노부(Cinema Novo)’ 운동과 이후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협업하여 그들이 연출한 영화 음악 여러 편을 작곡했다. <왜?>의 카메라는 식민 역사를 기념하는 모더니즘 조형물과 군사 독재 개발주의의 상징인 마천루가 즐비한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 시가지에서 출발하여 길례르미의 스코어와 함께 브라질의 도시와 숲, 강 기슭을 떠돈다. 카메라의 눈과 소리가 동행하는 여정 속에서, 선주민들을 학살한 군부의 개발 독재 시기와 보우소나루가 코로나19 예방 백신 접종 대상에서 선주민을 배제하고 열대우림 파괴를 밀어붙이는 현재가 함께 거하는 시공이 섬광처럼 계시된다. 이 ‘풍경’들은 길례르미의 음악,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사람들이 그리고 쓴 도큐먼트, 그들이 주인공인 사진 이미지들과 마찰하며 지층 속에 머금고 있던 “어떤 세계의 비밀(즉, 그 대수롭지 않거나 영광스런 외양 뒤에서 그 법이 지배하는 다른 세계)을 폭로하는 간극과 충돌의 힘” (『이미지의 운명』, 자크 랑시에르, 김상운 역)을 융기한다. 이 힘으로 말미암아, 얼핏 보아서는 ‘비(非)장소’나 ‘반(反)장소’로 불릴 법한 고속도로 주변의 모노크롬 풍경이 특정한 역사 경험을 품은 ‘장소’로 단박에 탈바꿈한다. 아나 바스의 첫 작품 <사크리스 풀소, Sacris Pulso> (2007)서부터 길례르미는 사운드 디자인과 음악을 맡은 바 있다. 번역하기 어려운 이 영화의 제목을 한국어로 어떻게 일컬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하다 ‘즈려밟기’는 어떨까 싶었다. <사크리스 풀소>는 십 대 때 영화와 철학을 공부하러 호주로 이주했다 브라질로 돌아온 아나 바스가 수도 브라질리아 땅을 다시 밟고, 부모와 재회하는 순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영화는 세르지우 바지(Sérgio Bazi)와 줄레이카 포르투(Zuleica Porto)가 연출한 16mm필름 단편 <브라질리아리우스, Brasiliários>(1986) 일부를 인용하는데,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가 쓴 1962년과 1974년 브라질리아 방문기 서사, 길례르미의 사운드가 이 푸티지 이미지와 길항하거나 겹쳐진다. 그리하여 구축되는 브라질리아의 과거와 현재는 유령도시의 그것과 닮아있고, 영화는 수도 브라질리아 자체가 SF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후 아나 바스가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들을 길례르미 카레라(Guillherme Carrera) 같은 평자들은 “SF 다큐멘터리”로 일컫기도 했다. Brasília amidst ruins: The sci-fi documentary of Adirley Queirós and Ana Vaz(2018)라는 글에서 카레라는, 바스가 브라질 역사와 사회의 ‘실재’를 잡아내기 위해 과거에서 미래를 발굴하는 고고학처럼 “SF”를 도구로 쓴다고 주장한다. 카레라가 바스의 영화들을 분석하기 위해 인용한 Archaeologies of the Future(2005)에서,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미래의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고(…)우리 자신의 현재 경험을 낯설게 재구성하”는 장르가 SF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카레라는, 탈식민을 위한 토착문화운동이었던 브라질 트로피컬리즘에 정통한 연구자 로버트 스탬(Robert Stam)과 엘라 쇼햇(Ella Shohat)의 논의[Unthinking Eurocentrism: Multiculturalism and the Media(1994)]에 기대 “식민지, 신식민, 탈식민 국가의 구조적 단점이, 식민화 과정과 불평등한 분열이 만드는 '소수자’ 서사를 되레 SF로 다룰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호세 리살(José Rizal)이 민족 공동체를 상상하며 쓴 필리핀의 첫 근대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1887)를 라야 마틴(Raya Martin)이 인용하며, 현대 필리핀의 모순을 집약한 광산 지역에서 식민종주국 스페인으로 순간이동하는 커플을 다룬 <아르스 콜로니아, Ars Colonia>(2011)를 떠오르게도 하는 언설이다. 한편 아나 바스는, 라틴아메리카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 모더니즘•트로피컬리즘 등의 백가쟁명 속에서 “새로운 영화(시네마 노부)”를 주창한 글라우버 로샤(Glauber Rocha)의 <지구의 나이, A Idade da Terra>(1980)에 경의를 표하는 단편 <돌의 나이, A Idade da Pedra>(2013)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데 <돌의 나이>에서 바스는 브라질의 영화 전통을 존중하지만, 그와 동화하지는 않는다. 사회진보와 혁명을 꿈꾸던 로샤가 「굶주림의 미학」(1965)과 「꿈의 미학」(1971) 선언에서 펼친 "가난의 미학"이 실제로는 선험적 개념과 목적론적 역사관, 고정된 성역할 및 인종 재현에 기댄 예술을 창조했다고도 여기기 때문이다. 바스는 차라리 ‘사물’이 시간과 공간을 대체하여 과거/현재/미래의 경계가 없는 SF를 ‘발명’할 수 있기에, “다른 가능한 세계의 이미지를 계시”하는 SF 영화를 만들겠다고 서원한다. 이 작품은 아프로퓨처리즘 작가들의 영향 아래 이주와 난민의 역사를 사변 서사(SF)로 재구축하는 김아영의 <다공성 계곡> 연작을 떠오르게도 한다. (<다공성 계곡>에 등장하는 ‘페트라 제네트릭스’는 <돌의 나이> 속 ‘돌(pedra)’과 친연성이 크다.) 여러 평자들은, 아나 바스의 작품들이 실은 시네마노부 운동의 국가 및 젠더적 대표성보다는 북미의 애비게일 차일드(Abigail Child)나 수 프리드리히(Su Friedrich)의 작업, 즉 1970 년대 아방가르드 페미니스트 운동의 영향을 받아 “목적론적 서사를 부수려 시도하는” 영화들과 가깝다고 평하기도 한다. 또, 마야 데렌(Maya Deren)이 실사 이미지와 사운드를 겹치면서 현실과 분리된 영화적 세계와 집단적 역사 감각을 끊임없이 재구축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도 분석한다. 2020년 사사로운 리스트에 아나 바스의 <왜?>와 더불어 꼽은 <방파제, Quebramar>(2019)를 연출한 크리스 리라(Cris Lyra)도 브라질 여성 감독이다. 바바라 해머(Barbara Hammer)의 후계자라 불리는 리라는 <방파제>에서 젊은 레즈비언들이 새해를 맞으러 떠나는 길을 동행한다. 이 여성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과하며 성 정체성 논의와 그로 인한 개인적 체험, 브라질 사회의 긴장은 새로운 시공의 서사로 재구축된다. 또, <방파제>는 짧은 시간 안에 등장인물들의 몸과 목소리로 브라질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뒤섞고 진동시킨다.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비전형적 여성성을 탐구하는 리라의 차기작 <내 말을 들어줘, Ouça>는 팬데믹 시대 퀴어 여성들의 편지에 기반한 러브스토리라 한다. (<방파제>와 <왜?>는 모두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 Mubi 한국 서비스를 통해 볼 수 있다.) 한편, 라틴아메리카 여성영화의 선두주자인 아르헨티나 감독 루크레시아 마르텔(Lucrecia Martel)이 제작 중인 신작 <초코바르, Chocobar>는 2009년에 살해된 선주민 활동가 하비에르 초코바르에 관한 비디오 영상들을 인터넷에서 수집해 재편집하는 다큐멘터리로 알려져 있다. 한데 아나 바스는, 비디오나 필름보다 더 오래된 매체인 종이에 선주민들이 그리고 쓴 드로잉 몇 점을 ‘풍경’ 이미지, 소리와 충돌시킨 몽타주만으로 큰 각성을 불러 일으킨다.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사람들의 글과 그림은 자신을 학살하고 쫓아낸 국가의 총과 칼•전투기 뿐 아니라, 사람과 함께 네이팜 때문에 폭사한 아마존의 물고기들, 열대우림을 베어내는 자본의 거대한 전기톱까지 생생히 기록하고 낱낱이 증언한다. 현실 풍경과 겹쳐지되, 투시 원근법에서 자유로운 선주민들의 드로잉이 재창출하는 땅의 그림(말 그대로의 ‘지도’)은, 작금의 ‘풍경’ 속에 잊힌 기억과 사라진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다시 일깨운다. 역사 기억을 저장하고 새로운 예술 표현을 찾는 ‘매체’로 “쇠락한 기술적 지지체”를 ‘재창안’할 수 있다는 로절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논의와 만나는 최근 사례가 <왜?>라고 필자가 주장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이쯤에서 떠오르는 한국 작품, 김민정 감독이 16mm 필름과 디지털을 ‘재집합’하여 제주 4.3을 다시 호명하는 <레드 필터가 철회됩니다>(2020)도 또 다른 “매체 재창안”의 예가 될 수 있겠다.) 선주민들의 이차원 평면 글•그림과 16mm 필름으로 촬영해 디지털로 변환한 실사 이미지를 결합하며 매체의 역사를 더불어 기억하는 아나 바스는, 디오라마나 파노라마같은 삼차원 측면 감각이 식민과 개발을 위한 지도와 조감도ㆍ설계도에서 연원했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비슷한 예로, 필리핀 출신 남성 감독 미코 레베레자(Miko Revereza)의 근작들은 사물의 움직임만으로 공간과 거리, 그 사이의 이동을 형상화하면서 자본과 국가가 규정하는 현실 지도의 국경을 넘나들고, 마티 디옵(Mati Diop)이나 바스마 알샤리프(Basma Alsharif)같은 디아스포라 여성 감독들의 영화는 서사와 사운드의 운용으로 식민 통치의 기반이 된 역사적 원근법을 소멸시키기도 한다. 반면, 대만 작가 수유신(Su Yu Hsin)의 <잠자는 물II, water sleep II Akaike river under Xizang Road>(2019), 국내에서 주목받은 <그라이아이: 주둔하는 신>(2020, 정여름 연출) 등 지도를 작성하는 원리인 수직원근법과 게임의 3차원적 가상ㆍ증강현실 기법, GPS를 이용한 이미지를 적극 수집하여 아시아의 역사와 현실을 묘파하려는 시도들도 근간에 여럿 있었다. “왜?”로 번역되는 이 영화의 제목 “Apiyemiyekî?”는, 1960년 이후 선주민 문해 교육을 담당한 활동가 에기디오(Egydio)가 아카이브에 보존 중인,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사람들이 남긴 단말마 같은 글귀(“도시 사람들은 우리를 왜 죽였지? 왜?”)에서 따왔다. 에기디오 교수는 <왜?>에서 유일하게 살아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인터뷰이이다. 그가 아카이빙한 글과 그림들은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선주민 학살 진실 규명 소송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었다. 에기디오와의 협업 과정을 운전 중에 감독과 전화통화로 확인하는 스태프의 목소리와 승용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사람들을 죽이고 쫓아낸 뒤 닦은 BR-174 고속도로 위로 흩어져 간다. 이 사변적 (논)픽션은 어떤 ‘풍경’ 속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렇듯 증명하고야 만다. 영화의 카메라와 사운드 트랙이 브라질의 땅과 숲, 하늘과 물에 잠겨 있는 그들을 애타게 찾아 헤맬 때, 사진적 감각에 섞여드는 자연의 음향이 화룡점정할 때, 와이미리-아트로아리 사람들의 자취를 입은 아마존의 격랑이 이윽고 색을 얻을 때, 결코 잊힐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관객에게도 찾아온다. 영화 말미, 브리질리아로 귀환한 카메라는 분노가 내뿜는 바람에 실려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이 카메라의 운동은, 우리가 슬픔 속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와 맞서 저항할 미래의 동력이 되어줄 터다. 그래서 아나 바스의 <왜?>는 멕시코 선주민들의 역사와 운동을 ‘재집합’하는 ‘로스 인그라비도스 집단'(Colectivo Los ingrávidos)의 영화들과도 닮았다.
돌파구는 그렇게 간단히 열리지 않았다. 극장 개봉 대신 OTT 서비스 넷플릭스를 돌파구로 선택한 < 사냥의 시간 >( 윤성현 , 2020)은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 국에 단독 공개한다"는 보도자료가 나온 지 꼬박 한달 간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4월 23일(목), 드디어 관객을 만났다. 지난 3월 23일(월)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를 통해 단독 공개된다는 보도자료가 도착한 날부터,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조짐은 있었다. 넷플릭스의 보도자료가 도착한 뒤, 여섯 시간 만에 콘텐츠판다가 ‘이중계약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그날 저녁 8시 다시 리틀빅픽쳐스가 ‘이중계약 주장은 허위’라고 강한 반론을 제기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팽팽한 공방을 예고했다. 결국 콘텐츠판다는 이미 해외 판권이 팔린 국가에서는 넷플릭스로 영화를 상영할 수 없도록 하는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4월 8일(수) 법원은 콘텐츠판다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이 리틀빅픽처스가 주장하는 '계약해지가 가능한 천재지변'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이다. 4월 10일(금) 오후 4시 공개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영화 공개를 보류했다. 결국 4월 16일(목) 리틀빅픽쳐스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며, 콘텐츠판다에 사과를 구합니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해 깊이 머리 숙였고, <사냥의 시간>은 전세계 넷플릭스 구독자와 만나게 됐다. 우여곡절을 차지하더라도 <사냥의 시간>이 극장 대신 넷플릭스를 선택한 건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극장 관객 수가 1/10 수준으로 급감하고, 극장도 1/3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차일피일 개봉일을 미루던 영화들이 <사냥의 시간>을 새로운 롤모델로 삼진 않을까. 극장에는 사람이 없지만, OTT 서비스에는 언제든 '새로운 콘텐츠'를 볼 준비가 되어 있는 시청자가 기다리고 있다. 기약 없는 기다림만큼 무서운 고문도 없지 않은가. 2020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 30여 편의 영화 중 <사냥의 시간>과 같은 돌파구를 택하는 영화가 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일부에선 (극장 대신 OTT 서비스 공개가) “충분히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반기 개봉을 계획했던 영화들은 다시 극장 문이 열리고 관객들이 극장으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냥의 시간>에 관한 법원 판결이 나기 전, <더 스크린>이 취재한 개봉 예정 영화 관계자들은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지금은 지켜볼 뿐이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사냥의 시간>처럼 OTT 서비스로 직행할 가능성은 적다는 입장을 전했다. “다들 모든 옵션을 고민하고 있겠지만, 현재 개봉이 밀린 영화들은 모두 극장 개봉을 전제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이 중요” “가능성이 큰 작품들을 극장에서 관객에게 제대로 선보일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OTT 서비스 직행 가능성이 적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실적인 상황도 걸림돌이 많다. 한국 영화 기대작은 개봉 전에 해외 마켓에 소개되어 선판매되는 경우도 많고, OTT 플랫폼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프로세스 역시 검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사냥의 시간>의 경우 넷플릭스가 영화 제작비와 이미 소진한 마케팅 비용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판권 계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즉, 흥행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적자를 막기 위한 선택이다. 한 제작사 대표는 “(이미 해외 다수 국가에 판권이 판매된) 대형 영화의 경우엔 OTT 서비스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는 것으로 입장을 대신했다. 또한 영화 관객 수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극장 상영 방식과 OTT 서비스의 수익 정산 방식이 다른 것도 현실적 제약이다. 다행히 두 달 가량 강력하게 진행된 물리적 거리두기의 결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확연히 줄어들고, 개인 방역이 일상화되면서 극장들도 조금씩 관객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극장 문을 닫았던 멀티플렉스 극장들도 4월 29일(수)부터 전체 상영관을 정상 운영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관객 호응이 좋았던 재개봉 영화 상영에 이어, ‘마블 히어로 영화 특별전’을 진행 중이다. 재개봉이 흔치 않은 디즈니의 이례적인 결정에는 5월 개봉작 해리슨 포드 주연의 <콜 오브 더 와일드>,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언더 워터>를 극장 상영하기 위한 ‘관객 마중물’ 전략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봉준호 감독의 < 기생충 > 흑백 버전도 4월 29일(수) 극장 상영 일정을 확정했다. 상반기 개봉 예정이었던 한국 영화들도 조심스럽게 5월 이후 개봉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논의하고 있으나 개봉 일정을 공지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다. 마케팅 일정을 고려하면 시간이 많지 않은데, 자꾸 개봉이 밀리는 모양새라면 관객들도 김이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여름 이전 개봉을 준비하는 영화사 제작자의 고민이다. 본격적인 한국 극장 해빙기는 올여름, 7~8월이다. 한국 영화계 쇄빙선 역할은 천만 감독들의 신작 세 편이 맡았다. ‘좀비 천만 영화’ < 부산행 >의 스핀오프 속편 연상호 감독의 <반도>가 여름 개봉을 확정하고 예고편 공개 등 마케팅을 시작했다. <반도>의 제작사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는 “물론 상황을 주시할 수밖에 없지만,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라고 여름 개봉을 확인했다. “해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름 시즌 개봉을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 예고편도 공개하기 어려운 상황인 국가도 있다.”라며 한국 상황보다 해외 개봉을 오히려 변수로 꼽았다. 한국 최초로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를 선보이는 윤제균 감독의 <영웅>도 올여름 개봉을 확정하고 예고편, 포스터 등을 공개했다. 뮤지컬 초연 공연부터 10여 년 간 안중근 역할을 연기해 온 배우 정성화가 영화에서도 안중근 역을 맡아 연기와 노래를 함께 소화한다. 작품의 메시지와 시기성을 고려해 7~8월 개봉이 유력하다. 현재 촬영을 종료하고 후반 작업 중인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도 여름 개봉이 목표다. 배급사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는 “여름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시장 자체가 예년과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 예를 들면 여름 방학도 짧아질 것이고. 그래서 개봉 배급 일정은 탄력적으로 전략을 짜고 있다”라며 올해 여름 시장이 예년과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전망했다. 조성희 감독이 연출하고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이 합류한 첫 SF 블록버스터 <승리호>도 여름 개봉을 놓치지 않을 계획이다. 시장의 보편적 회복 탄력성을 고려한다면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도 있다. 매년 2억 장의 영화표가 판매되던 한국 극장 시장이 코로나19라는 강력한 외부적 요소로 위축된 만큼, 코로나19 종식에 이어 여름 대형 신작들이 공개된다면 한껏 눌러 두었던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관객 수가 폭증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어제와 완전히 다른 오늘이 시작됐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플랜 A’는 ‘플랜 B,C,D’로 변경되었다. 코로나19가 ‘극장이냐, OTT 서비스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위협하며 극장을 말살시키는 원흉처럼 느껴졌겠지만, 실은 위협보다는 백신으로 여기는 편이 적절하다. 전 세계 극장이 문을 닫고, 오프라인 활동이 일시 정지된 ‘미증유’의 현재는 냉정하게 짚어보면 새로울 게 전혀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변화 속도가 현기증날 만큼 빨라졌을 뿐, 재택근무, 원격 수업, 배달 산업, OTT 서비스는 이미 대세였다.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확산되고 삶의 모습이 혁신적으로 바뀐다는 ‘4차 산업 혁명’이 우리의 준비 상태와 무관하게 코로나19라는 광범위한 테스트베드를 통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직접 몸을 이동해 오프라인 공간에 모이지 않고도 일을 하고,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경험하기 전엔 몰랐던 이점도 있다는 걸 체험해버렸다. 한편으론 ‘온라인 연결’이 절대 채우지 못할 오프라인 경험이 얼마나 귀중한 지도 뼈저리게 확인했다. 극장에서 볼 이유가 분명한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그럴 필요를 찾지 못한다면 경험한 바대로 극장이 아닌 플랫폼에서 보는, 관객의 선택은 단호하고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원망도 들고, 안타깝긴 하지만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이라는 가정은 쓸모없다. 동시에 온라인인가 오프라인인가, ‘모 아니면 도’ 식의 양자택일 예측도 쓸모 없다. 지금 더 중요한 질문은 영화와 극장 모두가 ‘최신 영화를 가장 빨리 보여주는 플랫폼 경쟁력’, ‘극장 홀드백’같은 독점적 안전망이 약해진 상황에서 ‘각자의 생존 무기는 무엇인가’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똬리를 틀고 있는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여유가 길지 않다. 코로나19보다 더 두려운 건, 이미 각성해 버린 관객이다.
“죽은 지 3일이 지난 용돌이가 되살아났다.” 저작권 개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던 시절의 < 괴시 >( 강범구 , 1980)는 사실상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합작영화인 <Let Sleeping Corpses Lie>의 표절작이라고는 하나, 여러 한국적 상황과 변주가 더해진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기록돼 있다. 주인공이 백담사로 향하는 강원도 계곡에서 마주친, 초점 없는 얼굴로 느릿느릿 다가온 정체불명의 괴한에 대해 얘기하자, 마을 사람 누군가는 며칠 전 술 마시고 물에 빠져 죽은 용돌이에 대해 얘기하며 “용돌이가 살아 돌아왔나?” 라고 얘기할 뿐이다. 용돌이가 죽은 것은 경찰과 동행한 마을 사진관 주인이 직접 찍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국영화계에 처음으로 좀비가 등장했다. 어쩌면 지금 관객들은 물 맑고 공기 좋은 대자연에서 마주친 좀비라는 점에서 < 곡성 >( 나홍진 , 2016)에서 외지인(구니무라 준)의 등장과도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제작 당시로 보자면, 누군가는 홍콩영화의 좀비 ‘강시’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공교롭게도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했던 홍콩 강시 영화의 원조 <귀타귀>와 <괴시>는 1981년 4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함께 개봉했다. <괴시>의 가장 독특한 점은 도시가 아닌 강원도 산골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대만에서 온 강명은 강원도 백담사로 가던 길에 수지의 차를 얻어 타고 가게 된다. 미국에서 살던 수지는 5년 만에 한국을 찾아 언니를 만나기 위해 수리마을에 있는 별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언니는 건강 문제로 요양차 남편과 함께 강원도에 머물던 중이었다. 그런데 차가 낯선 곳에 이르러, 강명이 길을 살펴보려고 떠난 사이 수지는 계곡에서 첫 번째 좀비와 마주친다. 이후 그의 정체가 마을 사람들의 얘기와 경찰의 수사를 통해 3일 전 죽은 용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는 수지의 얘기를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결국 강명과 수지는 공동묘지 안치실에 찾아갔다가 용돌의 시체가 없음은 물론, 그 안에서 부활한 시체들에게 공격당한다. 그런 사이 강명과 수지의 뒤를 쫓던 형사와 집을 나간 수지의 형부도 좀비로 변하고 만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괴시’로 인해 공포에 떨게 된다. 영화는 무엇보다 좀비나 강시에 비해 괴시(怪屍)라는 제목 자체가 기괴하고도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거기에 더해 좀비물은 영화사적으로 완전한 영화적 피조물이라 할 수 있는 좀비라는 존재에 어떤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었느냐가 중요하다. 말하자면 좀비가 사람을 흡혈귀처럼 물어서 전염시킨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지속적인 변주가 더해지며 그 장르성이 확장되어왔다. 가령, 과거 좀비 영화의 좀비는 느리고 최근 좀비 영화의 좀비는 빠르다는 것이 가장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변화일 텐데, <웜바디스>(2012)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 뜬 좀비가 등장했고, < 부산행 >( 연상호 , 2016)에는 빛에 반응하는 좀비를 등장시켜서 터널에 머무는 시간을 긴장감의 요소로 훌륭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괴시>는 단순히 ‘느리게 걸어 다니는 옛날 좀비’라고 치부하기에는, 좀비 장르의 상업 블록버스터화를 이끌었던 <월드워Z>(2013),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의 존재를 알리며 무려 10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는 AMC TV 시리즈 <워킹 데드>와 비교해도, 영화역사상 아마도 가장 내구성이 강한 괴력의 좀비를 등장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비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제거 방법’으로서 좀비의 머리통을 권총으로 날려버리는 일이 <괴시>에는 불가능한 것은 물론, 좀비로 변한 수지의 형부 역시 차로 치어도 끄떡없이 일어나고 만다. 어쩌면 지금의 관객들, 혹은 좀비 영화의 팬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지점이 바로 거기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사진관에 걸려 있는 배우 율 브리너의 사진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이색지대>(1973)에서 율 브리너는 마치 좀비처럼 주인공을 끝까지 쫓아다니는 인조인간으로 등장했었고, 첨단과학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영화 속 휴양지 ‘웨스트월드’는 마치 사람들 모두 비밀을 쉬쉬하는 수리마을을 떠올리게도 한다. 억지 비유일 수도 있겠으나, <괴시>의 용돌이 역시 <이색지대>의 인조인간 율 브리너처럼 포기를 모르는 좀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시체를 다시 깨어나게 만든 것은 과학 실험 때문이다. 해충을 퇴치하는 초음파를 연구 중인 실험실에서 발생시킨 초음파가 시체의 신경을 건드려 부활시킨 것이다. 게다가 그 이전부터 수리마을에는 기형아가 발생한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이를 묵살해왔다. 좀비 창궐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주인공이 실험실을 찾아가 “사람 잡는 기계를 당장 꺼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를 그저 미친 사람취급하며 외치는 “우리는 과학자에요!”라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보통 좀비 영화에는 그 발생 원인에 대해 탐색하는 경우는 드문데, 신종 바이러스 문제와 결합하여 백신까지 만들어낸 <월드워Z>처럼 <괴시> 역시 원작의 설정처럼 환경파괴 문제로 나아간다. <괴시>의 초음파 실험실에 미국인 과학자가 있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 괴물 >(2006) 도입부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한강에 흘려보냈던 미국인 장교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괴시>의 초음파 실험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선의로 시작한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괴시>의 강범구 감독은 범죄 액션영화 < 북극성 >(1962)으로 데뷔한 뒤 황해, 김지미 , 박노식 주연 < 검은 꽃잎이 질 때 >(1963), 인기 가수 남진 주연 < 울려고 내가 왔나 >(1967), 남궁원 주연 < 국제 암살단 >(1971) 등 반공과 첩보 소재가 가미된 액션영화들을 주로 만들며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아왔다. 연출 경력의 후반기에는 < 일대영웅 >(1973), < 풍운의 권객 >(1974), < 사망탑 >(1980), < 몽녀한 >(1983) 등 대만이나 홍콩과의 합작영화들을 여러 편 만들며 실험성이 돋보이는 액션과 공포영화에 더욱 치중했다. <괴시>의 경우 원작이 된 해외 영화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등 한국 장르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뚜렷한 자기만의 세계를 일군 감독은 아니지만, <괴시>를 비롯해 크리처 무비 <몽녀한> 등 그가 아니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들로 한국 장르영화의 외연을 의미있게 넓힌 감독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 괴시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